꿈과 환상과 예언은 하나님의 언어입니다
의인의 삶의 기초(잠언 4:18)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 낮의 광명에 이르느니라.
이
말은 의인의 삶은 계속 빛 가운데 서게 될 것이며 가장 성숙한 모습으로 자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인도하는
예언적인 계시가 그 안에서 증가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처럼 그날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세상은 더욱 어두워질 것입니다.
캄캄함이 온 땅을 덮을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자라가는 사람들은 더욱 하나님의 영광과
광명으로 덮여질 것이며 오히려 일어나 빛을 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인의 삶은 반드시 다르게 드러날 것입니다.
이러한
의인의 삶의 기초가 되는 것은 먼저 하나님 앞에서 듣는 것입니다.
의인이란 어떤 행위 때문이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듣고 있다는 것은 말하는 대상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의 실패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듣기를 싫어하여 등을 돌리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그의 영으로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스가랴 7:11-12)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을 향하지도 않았고 믿지도 사랑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들을 수 있어야 행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위에 그 집을 세운 지혜로운 사람으로 표현했습니다(마 7:24).
대부분의 경우 듣지 못하는 사람은 말도
하지 못합니다.
귀머거리는 곧 벙어리입니다.
듣지 못하기 때문에 말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듣는 것을 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자주 말씀을 하셨습니다.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주님은 각 교회마다 이런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2:7, 11, 17, 29, 3:6, 13, 22)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듣고 있었지만 듣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음을 자주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이 믿음이 없는 것은 사실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로마서 10:17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토록
오랫동안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어찌 믿지 못합니까?
어찌 조금도 변화 되지 않습니까?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의 믿지 못함을
주님께서 책망하셨지요.
3년이 넘게 주님과 함께 지내면서 듣고 또 들어도 사실 듣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나 다른 많은
이들이 듣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영의 소리였고 하늘의 소리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라”고 했습니다(요 6:63).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그분은 비유로 말씀하심으로 사람들이 듣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마 13:13).
요즘 시대처럼 잘 들려지고 이해하고 깨닫도록 하기위해 설교하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로마서 11:8의 말씀은 의미심장합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못 듣는 자들의 문제를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귀가 할례 받지 못함으로 듣지 못하는도다”(렘 6:10)
어떤
의미에서 귀머거리에게 왜 듣지 못하느냐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귀머거리는 듣지 못합니다.
들을 수 있는 귀가 없는
그들이 불쌍할 뿐입니다.
앞 못 보는 맹인에게도 왜 못 보냐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의 눈을 열어 보게 해주고 귀를
열어 듣게 해주는 것만이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들어야 살아납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감각기관은 귀입니다.
듣는 것은 몸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듣는 것은 특별히 영적인 것에는 매우 큰 의미를 지닙니다.
주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고 하셨습니다(요 10:27).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고 주님은
강조했습니다(요 5:25).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마른 뼈들을 향하여 대언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겔 37:4, 5)
마른
뼈들에게 살아나기 위한 특별한 소리를 들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 주님의 언어는 이 땅의 소리와 다릅니다.
사람이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소리가 우리 주변에 있으나 들을 수 있는 영역만 들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전파를 타고 수많은 소리가 전달되지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기 위해서는 별도의 장치가 필요한 것과 같습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의 음성을 들을 때 다른 이들은 듣지 못했습니다(행 22:9).
하나님은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시고 그의 백성들에게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들만이 한
시대에 바로 세워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고 따랐고 순종했습니다.
그들만이 하나님 안에서 신실하게 살아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꿈과
환상과 음성(예언)은 하나님이 우리와 대화하시는 언어입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과 대화하실 때는 성령을 통해 하늘의 소리를
전달했습니다.
이 땅의 언어가 아닙니다.
영의 언어이며 하늘의 언어였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언어를 이해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언어를 가르쳤고 이해하고 깨닫도록 하나님은 그들을 다루셨습니다.
요엘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그분의 뜻을 알며 그분과 대화할 수
있는 언어를 주실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늘의 언어인 꿈과 환상과 음성(예언적)을 통한 계시적인 차원에서 대화해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는 꿈을 꾸고, 주님의 남녀종들이 예언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너무나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주셨던 하늘의 언어를 주시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분의 뜻을 알고 그분의 계획을 알며 그분과 함께 미래를 준비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 약속은 모든 사람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원하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꿈과
환상과 음성(예언)은 성령을 통한 하늘의 언어, 하나님의 언어입니다.
그러나 모든 꿈과 환상과 음성이 하늘로부터 오는 것은
아니며,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분별되어야합니다.
이것 또한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입니다.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만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과 꿈과 환상과 음성으로 말씀하시고 영으로 대화하셨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다만 소수의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좇아갈 수 있었습니다.
사실상 하나님의 언어를 모르고 하늘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위해 살지 못했습니다.
서로 대화할 수 없다면 사랑도 믿음도 친밀함도 없을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모든 것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한 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고전
2:9-10).
이 모든 것은 오직 성령을 통해 알 수 있고 받을 수 있을 뿐입니다. 오, 성령을 보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교회는
성령께서 이끌어 가셔야합니다.
그분이 오셔서 계시하시고 역사하시고 운행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분이 제한받지 않도록 그분께
자리를 내어 드려야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로 친밀함이 깊어지도록 사모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일을 말하여도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믿을 수 있겠냐고 하셨지요.
아버지께서
보게 하시는 것을 말하고 듣게 하시는 것을 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늘의 일을 우리에게 보게 하시고 알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하고 하나님의 일을 보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알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위한 기도처럼,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고 다시금 교회는 강력하게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롬 8:14).
참된 예배는 성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입니다(요 5:24).
성령을 좇아 행할 때에만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않게 될 것입니다(갈 5:16).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모두를 자유케 할 수 있습니다(롬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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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환상·예언·직통계시에 대한 고신 63회 총회 보고서
최근 들어
교회 성장의 둔화, 사회적인 불안의 확산, 세속적인 오락 문화의 확산 등 어려운 목회 환경 때문에 사역자들이 불건전한 신비
운동에 눈을 돌리는 경우가 더러 발생하고 있다. 고신 총회는 예언, 환상, 쓰러짐, 금가루 현상, 입신 등의 행위를 극단적으로
진행하는 집회에 대해 2013년 63회 총회에서 ‘극단적 신비주의’로 규정했다. 고신측은 63회 총회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객관적 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판단해야 하며, 말씀에서 어긋나거나 벗어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해야 한다”며
“이적(異蹟)이나 능력(能力)이 행해진다는 사실이 진리의 기준이 될 수 없으며, 우리는 그 모든 것을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판단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다음은 2013년 63회 고신 총회의 꿈, 환상, 예언, 직통 계시에 대한 연구 보고서다.
서 론
신사도 운동은 빈야드 운동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과 사도들과 초대교회에
일어났던 성령의 역사가 오늘날에도 그대로 재현될 수 있다고 믿는 운동이다. 따라서 이적, 신유, 귀신축출, 죽은 자를 살리는 일 등
초자연적인 것과 초대교회에 번성했던 방언, 예언, 통역 등 다양한 성령의 은사가 오늘날에도 계속된다고 믿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신사도 운동은 에베소서 4장 11절에 근거한 소위 ‘교회의 5대 직분 체제’ 즉, ‘사도’,
‘선지자(예언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 ‘교사’가 오늘날의 교회 안에서 올바로 자리 잡아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원래
계획하신 대로 교회가 세워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즉, 신사도 운동가들은 오늘날에도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메시지를 받아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예언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이들은 특별한 집회를 통해 성령의 은사를 전수(impartation)할 수
있고, 과거와 같이 맹목적인 회개로 인한 죄의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기름 부으심 앞에서 통회와 자복으로 본질적인 회개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특히 ‘예언’의 은사가 오늘날에도 계속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꿈이나
환상, 음성을 통해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성경 시대의 계시가 계속되는 것처럼 말함으로 많은 사람을 오도하며 교회를 혼란케 하고
있기 때문이다.
1. 구약 시대의 예언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꿈이나 환상 또는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통해 자신의 뜻을 알리셨다. 인간이 타락하기 전 에덴동산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직접 말씀하셨으며(창
1:28, 2:16-17, 19). 타락 후에도 하나님은 사람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셨다(참 3:8-19, 4:6-15). 하나님은
노아에게 직접 말씀하셨으며(창 6:13-21, 7:1-4, 8:15-17, 9:1-17), 족장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직접 말씀하시기도 하고(창 12:1-3, 13:14-17, 15:13-21, 17:1-22, 22:1-2 등), 꿈이나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도 하였다(창 15:1, 28:12-16 등). 또 요셉에게는 꿈으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시기도 하셨다(창
37:5-7, 9-11).
모세와는 직접 대면하여 말씀하셨으며(민 12:7-8), 여호수아, 사울, 사무엘, 다윗 등과도 말씀하셨다. 특별히 구약
시대에는 선지자들을 세우셔서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전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구약 시대에 여러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뜻을
백성에게 계시하셨다. 심지어 필요한 경우에는 이방인에게도 자기의 뜻을 계시하셨다(창 20:3-7, 40:5-23, 41:1-8
등).
그런데 선지자들 중에는 참 선지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거짓 선지자들도 있다. 여호와께서 보내지 아니하셨는데 여호와께서
보내셨다고, 또는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거짓으로 예언하는 자들이다(신 18:20).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첫째, 만일 어떤 선지자가 말했는데 그 말에 ‘증험’(證驗)도 없고 ‘성취(成就)함’도 없으면 그는 거짓 선지자이다.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신 18:22) 여기서 “증험도 없고”는 히브리 원문을 직역하면 “그
말(일)이 있지 아니하면”이고 “성취함도 없고”는 직역하면 “이 말이 오지(일어나지) 않으면”이다. 따라서 이 둘은 하나를
가리키는데, 곧 어떤 선지자라 하는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것이 성취되지 않으면 그는 거짓 선지자란 말이다. 따라서 거짓
선지자의 판단 여부는 그 예언한 말씀의 성취여부로 판단하게 된다(왕상 22:11-36, 렘 28장 참조).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원리는 그 선지자의 예언의 내용이다. 즉, 어떤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異蹟)과
기사(奇事)를 보이고, 그가 말한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진다고 할지라도 이스라엘 백성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자고
말한다면, 그는 거짓 선지자이니 죽이라고 말한다(신 13:1-5). 따라서 이적이나 능력보다도 또는 예언의 성취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 선지자가 말한 내용이 올바른가 하는 것이다. 그 내용이 다른 신들을 섬기자는 것이라면 그 선지자는 이적이나 기사, 또는
예언의 성취 여부에 관계없이 거짓 선지자이기 때문에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거짓 선지자에게도 이적과 기사, 또는 예언 성취를 허락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여부를 알기 위해 시험(試驗)하시기 때문이라고 한다(신 13:3).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라면 어떤
이적이나 성취에 관계없이 거짓 선지자로 판단하여야 함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이것을 조금 확대 적용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그 어떤 능력이나 성취가 있더라도 거짓이요 잘못된 것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초대 교회의 예언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고 구약의 예언을 이루셨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라고 한다(히 1:1-2).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고 성경을 풀어 주셨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사도들도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으며, 또 기록해 주었다.
사도들이 기록한 복음서와 서신들은 대부분 남아서 정경(正經)으로 인정되고 받아들여졌다.
뿐만 아니라 초대 교회 안에는 ‘선지자들’이 많이 활동하였다. 에베소서 2:20에 보면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고 하는데, 여기서 ‘선지자들’은 에베소서 3:5과 비교해 볼 때 구약의 선지자들이 아니라 신약의
선지자들을 가리킨다. 사도행전에 보면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천하에 흉년이 들 것을 예언했으며 그대로 되었다(행 11:28,
21:10-11). 전도자 빌립의 딸 넷도 ‘예언하는 자’라고 한다(행 21:9).
로마서 12:6에 보면 교회에 주신 은사들 가운데 ‘예언’(propheteia)이 나온다. 이 ‘예언’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것은 쉽지 않다. ‘예언’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모든 활동을 다 포괄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특별한
의미에서의 예언 곧 하나님의 특별 은사 중의 하나로서 ‘새로운 것들을 알리는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고전 12:10 참조).
헤르만 리덜보스는 이에 대해, 이것은 어떤 발언들을 하도록 강제되는 것을 말하는데 고전 14:3에 의하면 교회를 세우고 권면하며
격려하는 성격을 지닌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미래의 일들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리덜보스의 견해는 대체로 맞다고 보지만,
그러나 미래의 일에 대한 것이 꼭 제외되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초대교회에서는 미래의 일에 대한 예언도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적지 않게 있었다. 따라서 차라리 박윤선 박사처럼 ‘예언 사역은, 사도의 사역처럼 계시 시대(시도 시대)에만 있었던
단회적(單回的)인 것이다.“고 말하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된다.
고린도전서 14:3에 보면 ‘방언’(方言)에 비해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라고
말한다. 이것은 교회의 현재 상태나 미래의 일에 대해 말하고 성도들을 권면하고 위로하는 것이다. 같은 장 24-25절에 보면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고 한다. 여기에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난다’는 말을 보면, 이 에언이 꼭 권면과 위로의 말로만 제한되는 것은 아니고 특별한 은사로서의 예언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3. 예언 은사의 중단
이러한 특별한 ‘예언’의 은사는 성경이 완성됨과 동시에
중단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우리의 구원과 생활에 필요한 모든 내용을 다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구원과
생활에 필요한 하나님의 계시는 신구약 성경 66권으로 완성되었으며, 또 다시 새로운 계시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계시록 끝부분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계 22:18-19).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66권의 성경 말씀을 읽고 이해하고 적용함으로써 우리의
구원과 생활에 필요한 지침을 다 얻을 수 있으며, 이에서 벗어나 새로운 계시를 바라고 추구하는 것은 잘못이다.
2세기의 몬타누스주의자들은 그들이 방언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새 예언’(nova prophetia)을 받는다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계시가 자기들에게 와서 절정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처음에는 이들의 주장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지만, 나중에 이들이
이단으로 빠지는 것이 분명해지자 기성 교회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한정 확장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인 정경(正經)은 사도들의 시대로서 종결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다. 그 후에도 교회 역사상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이단으로 빠지게 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과격한 천년주의자들, 몰몬교, 안식교, 통일교 등).
따라서 신구약 66권으로써 우리의 신앙과 생활에 규범이 되는 정경은 완성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것에 무엇을 더하거나 빼는
것은 잘못이며 큰 재앙을 불러온다(계 22:18-19).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정경의 완성과 더불어 초대 교회에 역사했던 예언도
사라졌다고 보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제한이 있어서가 아니라 정경의 완성이라는 계시사적 사건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4. 성령의 특별한 인도와 간섭
요즘 한국교회에 자칭 예언자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직통계시라도 받는 듯이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말을 상투적으로 사용한다.
인간의 생각에서 나온 온갖 허튼 소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이름으로 범람하여 엄청난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주님(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말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 계시가 기록된 성경 말씀을 전할 때에 한해서만 주님이 말씀하셨다고 말할 수 있다.
성경 말씀과 다른 말을 하면서 주님이
말씀하셨다고 선언하는 것은 성경 외에 다른 계시를 주장하는 것과 진배없다.
자칭 예언자들은 그들의 예언이 성경 말씀과 같은
권위를 가진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교인들이 성경 말씀보다 그들의 예언을 더 의존하게 만든다.
그러니 성경보다 그들의 예언이 훨씬 더 실질적인 권위를 가진 셈이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특별한 성령의 감동이나 메시지가 주어졌다고 생각될 때에도 섣불리 그것이 주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마음에는 성령뿐 아니라 육신적인 욕망과 마귀적인 세력에 의해 자극된 온갖 잡다한 생각과 메시지가 복잡하게 교차되기
때문에 어떤 생각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
물론 오늘날에도 우리 개개인에게 역사하는 성령의 특별한
인도와 간섭이 있을 수 있다.
오늘날에도 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그것을 풀어 주고 적용해 주는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전달되지만, 하나님께서 개개인에게 직접 그 뜻을 나타내 주시는 경우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특별한 경우에
가끔 하나님께서 믿음의 성도들에게 꿈이나 환상이나 음성으로 보여 주시거나 말씀하시는 경우가 있음을 듣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박관준
장로나 안이숙 여사, 그리고 옥중 성도들의 간증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특별히 간섭하시고 인도하신 경우를 듣고 있다.
그러나
이럴 경우에 우리는 이것을 ‘예언’이나 ‘계시’라고 부르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하심’ 또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객관적 계시로서의 예언은 사도시대로 종결되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사례와 같이 매우 예외적이고 긴급한 특수 상황에서 하나님이 특별하게 인도하시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꿈이나 환상, 육성은 더 이상 계시적인 방편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신자를 인도하시는 성령의 보편적인 방편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환상이나 꿈을 해석하여 신적 메시지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한
인간적인 꿈일 수도 있고, 허상을 본 것일 수도 있으며, 또는 단순히 심리적인 작용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위험한 것은 사탄이 의도적으로 그러한 신비 체험을 주어서 성도들을 교란시키는 경유이다(고후 11:13-15, 살후
2:11-12).
고린도후서 11:13-15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데살로니가후서 2:11-12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특별한 체험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되며, 그것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에 맞는 것인지 아닌지를 검증해야
한다(고전 14:29, 32, 살전 5:21, 요일 4:1).
고린도전서 14:29, 32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데살로니가전서 5: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요한일서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그래서 기록된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을 때에는 아무리 그
체험이 그럴듯하고 확실해 보인다 할지라도 잘못된 것으로 배격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비록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맞을 때에라도,
우리는 그 체험을 의지하지 말고 그와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붙들도록 해야 한다.
5. 성령의 인도와 인간의 죄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초대 교회와 똑같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소위 그들의 ‘계시’ 또는 ‘예언’을 성경의 권위와 같은 차원에 두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큰 잘못이다.
성령께서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예수님의 약속(요 16:13)은 우리가 항상 진리 안에 거하며 실수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순절 날에 보혜사 성령 곧 진리의 영을 받은 베드로드 안디옥에서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않는 잘못을 범하였으며(갈 2:11-14), 바울과 바나바는 마가 요한의 문제로 서로 다투어 헤어졌다(행
15:36-41). 또한 베드로는 바울의 편지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다.”고 하였으며(벧후 3:16), 바울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 하였다(고후 11:30). 따라서 진리의 영이 오시면 사도들이 전혀 죄도 없고 실수도 없고 연약함도
없는 완전한 사람이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 이유는 사도들을 포함해서 우리에게는 중생 후에도 죄와 연약함이 남아 있어서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 성령께서는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시지만, 우리의 남아 있는 죄로 인하여
성령의 인도가 방해받고 있다.
그러나 사도들은, 비록 행함이나 생활에 있어서 연약함이나 실수가 있었을지라도, 복음을 전하고 가르침에 있어서는 오류가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벧후 1:21). 이것은 그들이 전한 복음의 권위와 직접 관련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하였다(갈 1:8). 또한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게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하였다(11-12절). 베드로는 또한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어
말한 것이라.”고 하였다(벧후 1:21). 특히 성경을 기록할 때에 특별한 성령의 감동으로 조금의 오류가 없도록 인도하셨다고
보아야 한다(딤후 3:16).
이처럼 사도들의 가르침과 기록에는 성령의 특별한 인도가 있었으며, 이것은 오늘날 성도들 가운데 역사하는 성령의 인도와
구별되는 것이다. 전자를 성령의 ‘계시’(啓示, revelatio) 또는 ‘영감’(靈感, inspiratio)이라고 부르며,
후자를 성령의 ‘조명’(照明, illuminatio)이라고 부른다. 전자는 정경의 완성과 더불어 사라졌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에서는 일체의 오류가 없도록 인도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사도 이후 시대에도 계속 이어진다고 본다. 그래서
소위 베드로의 사도직을 계승했다고 주장하는 교황이 ‘강단에서’(ex cathedra) 말하는 것은 무오(無誤)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교황 무오설을 지지하기 위해 그들은 성령의 특별 사역을 끌어들인다(마 16:18, 28:29, 요 14:16이하,
15:26, 16:12이하). 물론 그들은 성령의 사역에 있어서 구별을 하기는 한다. 사도들에 대한 성령의 활동은
‘계시’(revelatio)와 ‘영감’(inspiratio)에 있었지만, 교황에 대한 활동은 ‘조력’(assistentia)에
있다고 한다. ‘영감’에 있어서 성령의 활동은 엄밀한 의미에서 초자연적이었지만, ‘조력’에 있어서 그것은 대개 교회를 오류로부터
보호하는 ‘섭리’(providentia)의 돌봄에 있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은 사실상 ‘교황’의 권위를 ‘성경’과 같은 차원에
두는 것이며, 실제로는 성경보다 더 높은 위치에 두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왜냐하면 교황이 신앙과 생활의 문제에 있어서
무오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자료와 그 해석에 있어서, 곧 무엇이 성경과 전통인지를 결정하는 일에 있어서도 무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의 배후에는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자리잡고 있다. 곧 그들은
진리의 영이 오시면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는 말씀을 가지고 ‘교회’는 무오하다는 주장을 펼쳤으며, 이는 결국
‘교황’의 무오로 귀착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교회’를 절대화하는 것으로서 역사적 사실에도 맞지 않다. 교회는 부패할 수
있으며 또 실제로 부패했다. 하나님의 말씀에 벗어난 교회는 아무리 숫자가 많고 만장일치의 결정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진리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교회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판단을 받아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개혁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가 교회의 무오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성령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지만, 이것은 우리가 항상
무오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죄와 불순종으로 인하여 항상 성령의 충만한 인도하심을 온전하게 받지
못하며, 우리의 부패성 때문에 성령의 인도하심이 방해받곤 한다. 따라서 우리는 구원의 도리와 기본적인 삶의 원리에 대해서는
분명하고도 충분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 외의 어려운 주제들이나 성경 해석들에 있어서는 다 알지 못하며 때로 실수할 수도
있다. 이것은 노회나 총회의 결정도 마찬가지며 국제회의의 결정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압도적인 다수로 총회에서 ‘동성연애’가
합법적이며 죄가 아니라고 결정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진리가 될 수는 없다. 아무리 세계교회협의회(WCC)가 종교간의 대화를
주장하면서 무당의 굿판을 가리켜 성령의 역사라고 말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참된 성령의 역사가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인간의 죄와
불순종을 가리기 위해 성령의 역사를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다.
6. 자신의 특별한 체험을 객관화하여 다른 이들에게 강압하는 위험
이처럼 오늘날
성도들에게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지만(요 14:26, 16:13, 롬 8:14, 갈 5:18), 그렇다고 우리를 무오한 상태로
인도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최선의 상태에 있을 때에도 우리에게는 죄성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하지 못하다. 따라서 자신이 특별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다고 생각할 때에도 그것을 보편화하여 다른 교인들도 꼭 체험해야 한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자기는
그것이 ‘성령님의 인도’라고 생각할지라도 과연 그러한지 아닌지를 증명할만한 ‘객관적인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꿈이나 환성이나 음성으로 나타나는 특별한 체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런 것들도 잘못되고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결코 객관적인 교리나 윤리의 기준으로 삼을 수 없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과 똑같은 체험을 해야 한다고 종용할 수
없다. 비록 그런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진실하다고 생각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개인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그쳐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은 객관적 계시인 성경 말씀밖에 없다.
결 론
따라서 우리는 모든 것을 객관적인 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판단해야
하며, 말씀에서 어긋나거나 벗어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해야 한다. 비록 아무리 큰 능력과 신기한 이적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그것이 진리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탄도 그런 이적을 통해 사람들을 미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짓 선지자는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는” 이적을 행한다고 한다(계 13:13).
따라서 이적(異蹟)이나 능력(能力)이 행해진다는 사실이 진리의 기준이 될 수 없으며, 우리는 그 모든 것을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양의 옷을 입고” 나온다고 하였으며 (마 7:15), 사탄은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고 하였다(고후 11:14). 하나님께서 이런 것을 허용하시는 목적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한다(살후 2:12).
말세가 되면 이런 미혹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더욱 놀랍고 신기한 일들로 사람들을 미혹하고자 할 것이다. 이적을 행하며
능력이 나타나며 소위 예언이 성취되는 일 등이 일어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다(신 13: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 나타나며(요 14:21),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지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말세가 될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표준으로 삼고 따르는 것은 참 성도와 아닌 것을 구별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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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10 / 꿈이나 환상, 계시를 주신 이유
10. 그러나 그가 이것을 생각하는데, 오호, 주님의 천사가, “요셉아! 다윗의 자손아! 네 여자 마리아를 맞아들이는 것을 두려워 말아라. 그녀 안에 있는 분은 거룩한 영에게서 나셨기 때문이다.
오늘은 마태복음 10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가 이것을 생각하는데' 여기서 '그'는 요셉이죠. 요셉이 마리아를 버리려는 생각을 한 상태입니다. 그 때 요셉에게 계시가 옵니다. '오호 주님의 천사가' 물론 이것은 꿈이었습니다. 꿈에 계시가 우리에게 임할 수가 있습니다. 제가 계시를 부정한다는 것은 계시 자체를 부정한다는 것이 아니라 계시를 진리화 한다는 것을 부정한다는 것이지 계시는 반드시 따라 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죠? 그리고 예수님도 살아계시죠? 천사도 있지요? 우리 안에 성령님도 계시죠? 우리는 영이죠? 당연히 계시가 있습니다. 계시는 있는데 주어지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같지 않을 때 주어집니다.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우리는 말씀을 따라 갑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지식이 우리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또 한 가지는 말씀의 지식으로 완벽하다 할지라도 세부적인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계시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의 은사를 통해서도 나타나지만 은사가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는 계시가 주어지는데 꿈으로 주어집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음성으로 10번 만났습니다. 이삭은 꿈으로 반 음성으로 반 이었습니다. 야곱은 꿈을 통해 계시가 주어집니다.
오래 전에 저는 새로운 교회를 가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저에게 아주 많은 은혜를 끼친 교회였습니다. 그렇게 3개월쯤 지나서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물론 형상으로 나타나신 것은 아닙니다. 음성으로 말씀하시는데 '경호야!' 하고 부르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음성을 압니다. 저는 계시를 많이 받아왔기 때문에 꿈에 하나님을 인식합니다. 저는 '예'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네가 요즘에 왜 어려움을 당하는지 아느냐?' 보통 우리가 영적인 세계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굉장히 진실해 집니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로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 때 저는 이런 고백을 하게 됩니다. '저는 모릅니다.' 현실이 아니고 꿈이었고 진실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저는 모릅니다'라고 겸손하게 대답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를 보여 주시면서 하나님께서 그 교회에 대해 아주 좋지 않게 생각하시는 것을 저에게 투영시키면서 알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 때 하나님과 저와의 거리가 얼마나 먼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교회, 은혜롭다고 생각하는 그 말씀에 감동을 받았었는데 하나님은 그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꿈에 '경호야! 분당으로 가거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꿈일지라도 저는 하나님의 음성인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보여 주시는데 제가 눈길을 걷고 있는 것과 분당에 있는 교회들을 보여주시면서 제가 다닐 교회와 그곳에서 앞으로 몇 년을 다닐 것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한번도 분당에 있는 교회를 다녀 본 적이 없습니다. 굉장히 긴 꿈이었지만 자세하게는 말씀 못 드리고 제가 요약해서 말씀 드린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맞게 따라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 꿈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저는 계시를 믿습니다. 그러나 저는 계시를 가급적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꿈과 계시, 환상 같은 것들은 개인적인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말씀에 있는 꿈과 계시들은 100% 성령님에 의한 것이지만 어떻게 제가 제 꿈을 100%로 맞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단지 제가 저의 예를 들은 이유는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말씀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계시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계시를 다른 사람들에게 '이건 진리야!' 하고 공론화하거나 이 계시를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며 100% 맞다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요셉아! 다윗의 자손아!', '네 여자 마리아를 맞아들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지금 요셉이 마리아를 끊으려고 하는 생각에 대해서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죠. 맞아들이라는 하나님의 생각을 꿈을 통해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녀 안에 있는 분은 거룩한 영에게서 나셨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는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요셉은 인류 역사상 한 번도 난자와 정자가 아닌 성령에 의해서 잉태된 것은 있을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꿈을 통해서 '지금 그에게 잉태된 것은 성령에 의해서 잉태된 것'이라고 말씀을 주시는 것이며 이해 할 수 없는 것을 지금 알려 주는 것입니다.
꿈 얘기를 하나 더 하겠습니다. 20년 전에 히브리어를 공부해서 성경을 번역할 목표가 마음에 있었습니다. 저는 먼저 아랍어를 공부했습니다. 아랍어를 2년 공부하고 2년 뒤에 히브리어를 공부하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였습니다. 그 때도 꿈을 꾸게 됩니다. 아주 희한한 꿈이었는데 저기 멀리서 저를 향해 글자가 오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커다란 집채 같은 '음'이란 글자가 다가 왔습니다. 그 다음은 '복'자가 오고 '태'자가 오고 '마'자가 다가 왔습니다. 그 꿈의 초반부에 저에게 어떠한 음성이 들려왔느냐 하면 '경호야! 너 성경에서 중요한 곳이 어딘 줄 아느냐?' 저는 꿈속에서 하나님께 '하나님 저는 모릅니다. 어디가 중요한지를 저는 잘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꿈에 하나님의 말씀 곧 '어디가 중요한지 아느냐'라는 질문과 동시에 '음, 복, 태, 마'라는 거대한 글자가 지나갑니다. 꿈이지만 난감했습니다. '어! 저게 무슨 글자야?' 그 다음에 '음, 복, 가, 마'라는 큰 집채 만한 글자가 지나갑니다. 그 다음에 '음, 복, 가, 누' 또 지나갑니다. 그 다음에 '음, 복, 한, 요'라는 큰 글자가 지나갑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경호야! 이 책들의 요약이 무엇인지 아느냐?' 하셨고 '저는 모릅니다.'라고 말할 때 제 앞에 '로마서'라는 큰 글자가 제게 다가오다가 잠깐동안 움직이지 않고 멈춰 있다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너 이것을 한 마디로 하면 무엇인줄 아느냐?' 저는 '당연히 모르죠.'라고 답했고 그 때 또 다시 저기 멀리서 제게로 한 요절 말씀이 다가왔습니다. 저는 꿈 속 이었지만,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봤습니다. '갈라디아서 2:20' 이렇게 씌어져 있었습니다. 그것을 자세히 보는 것과 동시에 저는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일어나서 '갈라디아서 2:20이 뭐지?'하고 긴 시간 동안 묵상을 하였습니다. 나름대로 추측도 해보았습니다. '어떤 말일까?' 아침에 그 말씀을 찾아 보았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 말씀에 대한 제목이 '복음의 요약'이라고 되어있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놀라웠습니다. 제가 그 말씀을 알긴 알았지만 깊이 묵상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우리가 나름대로 어떤 길을 계획한다 할지라도 요셉처럼 계획하고 작정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꼭 원하시는 당신의 뜻이 우리랑 맞지 않을 경우에는, 우리에게 간섭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간섭하셔서 꿈을 통해 우리에게 메시지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꿈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 환상이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요셉으로 하여금 마리아를 맞이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꿈이나 환상이나 음성이나 입신이나 유체이탈이나 이런 모든 계시들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것을 통해서 나에게 하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중요합니다.
저는 꿈에 나온 메시지를 통해 제 생각을 바꿔서 드디어 히브리어가 아닌 헬라어를 공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뜻이 있으신데 우리가 그 뜻대로 가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런 계시로 간섭하십니다. 그러므로 계시는 대부분 개인적인 것입니다. 구약 시대는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계시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개인적인 사항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공론화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제가 지금 드린 꿈 얘기는 개인적인 것입니다. 이 꿈은 여러분이 적용해서 믿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제가 개인적으로 믿는 것입니다. 제가 히브리어를 공부해서 구약을 번역해야 하겠다는 제 의지의 전환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개인적인 진로와 방향을 말씀한 것이지 여러분이 적용하시면 안 됩니다.
저는 남들의 계시를 인정하지 않으며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제가 꿈 얘기를 하면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오늘 이 말씀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드린 말씀입니다. 이 요셉이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그리고 이제 뜻대로 사는 사람인데 그 뜻이 안 맞을 때 하나님께서 계시를 통해 방향을 수정해 주십니다.
내가 이해 할 수 없는 영역 '지금 그녀 안에 있는 분은 거룩한 영에게서 나셨기 때문이다.'라는 말씀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계시는 하나님께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서 나를 치고 들어오셔서 우리의 계획을 바꿔주시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꿈이나 계시나 환상을 통하여 가던 길을 멈추고 하나님께서 뜻하시고 원하시는 길로 가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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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환상의 구분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참된 꿈들은 여러 가지 개체의 꾸러미 형태로 온다. 상상들의 혼합, 은유들, 비유들, 시들, 꿈들, 그리고 잠자는 중에 놀랄만한 이야기들이 이어지는 것들이다. 꿈은 환상과 다르게 오직 사람이 잠들었을 때에만 받게 된다. 꿈을 꾸는 것은 단지 밤중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다. 꿈들은 영으로 받아진 후 이해를 돕기 위하여 마음 안으로 해석되어 들어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꿈의 형상들을 받아들이고 진행시키는 그림 창고를 가지고 있다. 성결하게 하는 마음이 세상 사건들의 배경에 있는 소음에도 불구하고 꿈들을 부패 없이 받아들이게 한다.
그러나 환상은 계시의 시각적 인식이거나 우리의 영적 눈들을 통한 초자연적 사건이다. 이들은 통상적으로 꿈들보다 더 현실적이며 보다 더 사실적이다. 사람은 정신이 깨어있을 때에라도 환상을 받을 수 있다.
꿈들과 환상들 사이의 차이점들
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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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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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기 위해서는 정신이 잠이 들어야만 한다(창15:12-13). “해질 때에 아브라함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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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들은 무아지경, 환영, 그리고 신성한 광경들을 통한 정신의 경계심의 여러 각도들에 따라 받아들여진다. 열린 환상은 자연적인 눈들이 활짝 열린 가운데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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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들은 항상 개인적 기반 위에서 경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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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들은 그룹 환경 안에서 경험되어질 수 있다.
(행22:6-9)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이 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내가 땅에 엎드려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보지 못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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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들은 사람의 영에 의하여 받아들여지며, 대부분이 영과 영의 만남들이다.
(단7:1) “바벨론 왕 벨사살 원년에 다니엘이 그 침상에서 꿈을 꾸며 뇌 속으로 이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
이것은 선견자의 사역 안에서 일반적인 꿈과 환상의 영역이라고 불리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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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들은 명백한 몸의 체험들 같이 신체적이거나 자연적 영역의 여러 각도들을 포함할 수 있다.
(행22:10)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 바 너의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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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들은 보다 상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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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들은 보다 실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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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꿈들은 상징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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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들은 선포되기 전에 주의 깊게 평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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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들은 종종 개인적 상징성과 함께 꿈꾸는 자를 위하여 보다 신적인 목적으로 형상화 된다. 새벽녘에 꾼 꿈들은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기에 애매모호함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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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들은 선포되기 보다 실제적이고, 종종 보다 명백하여, 약간의 해석만을 요할 수 있다. 그것들은 때때로 신속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할 수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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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들과 환상들의 상호작용
꿈들과 환상들은 꿈꾸는 자의 삶 안에서 많은 방법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다. 꿈꾸는 자는 많은 징후들을 가질 수 있다. 외적이나 내적 환상들, 꿈속의 환상들, 환상 속의 환상들, 꿈 안의 꿈, 혹은 환상 속의 꿈들이다. 전체적으로 이것의 다양한 결합들의 상호작용이 발생한다. 꿈들이 순수하게 영적 경험들(혹은 영과 영의 만남들)임에 반하여, 환상들은 자연적 영역의 여러가지 단계들이 다르게 뒤얽힌 영적 만남들이다.
다니엘 선지자는 다니엘서 7장 1절에서 꿈과 환상의 상호작용을 적절히 묘사하고 있다. 환상과 다르게 꿈은 꿈꾸는 자의 마음에 솟아오르며, 사람의 마음의 깊은 부분을 휘저어 놓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순수한 꿈들 가운데서는 주로 육체의 관여가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꿈들 안의 몸의 움직임으로 여겨지는 것은 거의 대부분 환상들을 동반한 꿈들의 결과이다.
거의 대부분의 꿈꾸는 자들에게 꿈들 속에서의 영적 만남들의 대부분은 환상의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꿈을 꾸고 있을 때, 육체의 관여가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 꿈과 환상의 영역으로부터 고통이 전해지는 것들처럼 보이는 것은 꿈꾸는 자가 깨어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순수한 꿈은 그것이 영과 영의 일이기 때문에 육체적 고통들의 전이를 가질 수는 없다.
반면에 환상들은 자연적 영역 안에서 다양한 단계의 육체적 관여를 가진다. 예를 들면, 바울이 그의 회심 후에 삼일 동안 소경이 된 것과, 야곱이 하나님과의 환상적 만남 이후에 평생 다리를 절었던 것과 같은 것들이다.
하나님 자신도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 꿈들과 환상들의 미묘한 차이점들을 말씀하셨다.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민12:6)
하나님께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라고 하신 것은 친밀함이나, 혹은 보다 깊은 관계성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나를 그에게 알라기도 하고”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주는 것이거나, 혹은 그의 특성들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꿈들은 하나님의 마음과 연결되는 것임에 반하여 환상들은 그의 성품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참된 성품을 경험하는 것이 오직 계시에 의해서인 사실은 이상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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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민수기 12:6)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요엘2:28)
영성이란?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이다.
꿈과
환상과 예언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과 의사 소통 수단으로 사용되져 왔다.(민수기12:6, 요엘2:28, 행2:17) 편견이나
선입관적인 사상들 혹은 비성경적인 견해들 때문에 이 마지막 시대 재림직전 꿈과 환상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려고 하시는 하나님을
제한하지 않기를 바란다.
꿈의 용어들 Dream Language
민수기 12:6 -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요엘2:28 -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꿈과 환상의 같은 점과 다른 점
* 꿈 =(헬: enupnion) - 꿈은 잠자는 동안에 나타나는 것
* 환상 = (헬: chizzayon) - 환상은 깨어 있는 상태에서 이미지로 보는것입니다.
환상을 통해서 기도하는 것에 대한 음성을 듣게 하신다.
1.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귀중한 체험
1) 야곱의 꿈 (창28:10-22)
야곱은 꿈속에서 천사들을 보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야곱의 반응은 몇 가지 구체적인 행동들을 실천에 옮겼다.
기름을 부어 단을 쌓고 벧엘(하나님의 집)이라 불렀다.
그는 꿈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계시면서 자신과 자손들을 보호해 주시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끝으로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다시 돌려 드리겠다고 약합니다.
야곱의 꿈에 등장하는 사닥다리나 천사, 에스겔에 마른 해골 뼈로 가득찬 골짜기(겔37:1-10),
모세의 불타는 떨기나무 요셉, 다니엘 선지자도 하나님의 계시를 받습니다.
2) 요셉의 꿈(창41:33-43) 요셉에게 꿈을통해 주님의 인도를 받습니다.
3) (마2:12) - 동방박사들의 꿈
4) (마2:13) -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애굽으로 가라는 꿈
2.꿈과 환상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
1. 꿈과 환상은 말세의 징보로서 믿는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시어 보게 하시는것을 예언하셨습니다.
(행2:16-18, 요엘2:28)
2. 하나님께서 예언적인 꿈과 환상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민수기12:6)
구약
1. 아브라함(창15장), 2. 야곱(창28장), 3. 요셉(창37장), 4. 솔로몬
5. 다른 예들
신약
아나니아(행9:10), 2. 고넬료 (행10:1-8), 3. 베드로 (행10:9-16) 4. 바울 (행16:9),
사도 요한(계시록)
꿈과 환상은 하나님의뜻을 전하기도 하십니다..(창28:10-15)야곱, (창37:5)요셉
(마1:20)마리아에 대한 요셉의 꿈
(행9:10)사울의 거듭남과 아나니아의 환상
(행10:3~10, 11:5)베드로에게 나타난 환상을 통해 이방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보고 사역함
환상 고넬료에게도나타남
(행16:9)바울의 마게도니아인이 나타나고 그들이 말으로 하는 환상을 통해 선교의 방향이 달라짐
(창41장) - 바로
(마2:12) - 동방박사
(마2:13) - 마리아와 아기예수를 데리고 애굽으로 가라는 꿈
마태복음에 5가지 꿈
(행22:17-21), (욥33:13-18)
꿈과 환상은 하나님의 특별한 지혜를 주시기도 한다 (열왕기상3:5)
꿈과 환상은 미래의 사건을 계시하고 예언하시기도 합니다.
환상을 통해 사명에 관한 명을 하시는것을 늘 경험하고 살고 있습니다.
환상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려 주시기도 합니다.
(단2:4) 침례 요한의 탄생에 대한 스가랴의 환상 (눅1:22)
꿈과 환상은 믿음을 크게 해주고 주님의 뜻을 명확하게 알게 해주실때가 있습니다.
(행18:9) - 고린도에서 바울의 환상
(행27:23) - 배의 파손에 대한 천사와 바울의 환상
꿈과 환상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과 대화를 나무시는 통로 이기도합니다. (민12:6), (신13:1)
기도 속에서 주님의 뜻을 잘모를때
꿈과 환상은 새로운 확신을 갖도록 돕기도합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알려주심
꿈과 환상은 하나님을 사모하게 만듭니다.(시34:8), (잠25:2)
꿈과 환상은 우리의 마음의 진정한 상태를 보여줍니다.(욥33:13-18), (단2:26-30,47. 4:2)
마귀적인 꿈 (렘23:32, 슥10:2)도 있기에 잘분별하여 적용해야합니다.
때로 환상 속에서 우리 영이 하나님께 말씀을 올리는것이 들리기도 합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우리 영이 중보하시는 소리가 들리기도합니다..
느브가넷살의 꿈 - 다니엘 2,4장
빌라도의 부인의 꿈
마음속에 예리한 영상-야곱의 꿈 - 창28장
반복되는 꿈-바로의 꿈
아브라함에게 꿈속에서 말씀하심 - 창15:12-17 창20:7
야곱 - 창28:12, 31:10 다니엘7장
아비멜렉 - 창20:3 라반 - 창31:24
미디안인 - 사사기7:13-14 바로 - 창40:5
느브갓네살 - 단2:1,4,36 동방박사 - 마2:12
빌라도의 부인 - 마27:19
신약 - 마1:20, 2:12-13, 2:19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로 말씀하심
1. 시편29장 - 하나님의 음성은
2. 욥33:13-14 - 꿈과 환상으로
3. 행10:9-16 - 베드로는 음성으로
4. 계5:11, 살전4:16 - 천사의 음성,
5. 계1:15 - 많은 물소리
6. 창3:8 - 하나님의 거니시는 음성
7. 삼하5:23-25 - 행진하는 소리
8. 행13:2 - 성령께서 말씀하시기를
요16:13 -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실 것이요.
9. 벧후1:21- 성령의 감동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10.출3:4 - 귀로 들을수 있는 음성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11.시85:8 - 속사람에게 평강으로 말씀하심
내가 하나님 여호와의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대저 그 백성 그 성도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저희는
다시 망령된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12. 고후12:1-4 - 삼층천 방문 -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음
13. 롬8:16 -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14. 벧후2:16 - 나귀
15. 야고보5:19-20 - 사람과 사람에게
16. 시편119:105 - 기록된 말씀
17. 히1:2 - 마지막날에 아들을 통해서
18. 요엘2:30-31 - 이적과 표적
음성을 듣자
1. 이사야28:23 -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2. 이사야50: 4-5
3. 이사야30:18-21
그러나 계시를 볼수도 있습니다.엡1:17-18
성령님을 통해 볼수 있는것
잠언29:18, 열하6:14-18, 스가랴4:1-7, 다니엘7:1-13, 엡1:17-19
요한5:19-20
마태13:34
스가랴의 밤에 보이는 환상 - 스가랴1-6장, 4:1 다니엘7:1,13-14
밖에서 보는 환상
엘리사 - 열하6:17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 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엘리사를둘렀더라.
2) 스데반 - 행7:55-56
3) 꿈과 환상 - 행10:10-23, 행16:9-10
3. 환상은 선지자들의 나타난 사역이다
이사야
1) 성전 안에서 본 하나님의 영광 - 이사야6장
2) 골짜기의 환상 - 이사야22장
예례미야
1) 렘1:11 - 살구나무 가지 2) 렘1:13 - 꿇는 솥 3) 렘24:1-2 - 무화과 두광주리
에스겔
1) 겔1:3,12 -14,23
2) 겔2:9
3) 겔8-9장
4) 겔10:1-7
5) 겔37:1-14 마른 뼈
6) 겔40-48장 예루살렘 성전
7) 겔47:1-12 물의 환상
다니엘
1) 단2:19 2) 단7:1-8 3) 단7:9-27 4) 단8:1-14 5) 단10장 6) 단11:2, 12:4 7) 단12:5-13
아모스
1) 7:12 2) 7:4 3) 7:7-8 4) 8:1-2 5) 9:1-3
스가랴
1) 1:8-11 2) 1:18-21 3) 3:1-5 4) 4장 5) 5:1-4 6) 6:1-8
환상 본 것에 대한 기록이 없는 선지자들 -
호세아, 요엘,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말라기
꿈과 환상은
행2:16-18, 요엘2:28
꿈과 환상은 예수께서 교회에 주신 약속이다. 행1:4,5
하나님께서 예언적인 꿈과 환상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 민수기12:6
꿈과 환상에 대한 성서적인 예들 들면
1) 구약
1. 아브라함- 창15장 2. 야곱 - 창28장 3. 요셉 - 창37장 4. 솔로몬 5. 다른 예들 -
2) 신약
1. 아나니아 - 행9:10 2. 고넬료 - 행10:1-8 3. 베드로 - 행10:9-16
4. 바울 - 행16:9 5. 사도요한 - 계시록
환상을 통해 영적으로 어떤 마음인지 마음의 동기까지 알리실때가 있습니다.
욥33:13-18 다니엘2:26-30,47 4:27
우리의 삶속에 내재하신 성령님이 기도로 깊이 나아가면 현재 마음의 동기를 알수 있을때가 잇습니다.
예언 - 미래 적인 것
지식의 말씀 - 계시하실때 혼상을 통해 알리시기도 합니다.
지혜의 말씀 - 영적인 방향 제시와 영적인 교훈을 주어 주님의뜻대로 살도록 도우실수 있게합니다.
믿음의 은사 - 하나님의 믿는 영적인 능력
영분별 - 영적인 흐름을 알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심볼을 이해하자
창40:8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컨대 내게 고하소서
예례미야15:19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서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천한 것에서 귀한
것을 취할 것 같으면 너는 내 입같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말지니라
마태13:24-43
씨뿌리는 자 - 인자 밭은 - 세상 씨는 - 하나님의 나라의 자녀들
가라지- 악한 자의 자녀 원수 - 마귀 추수 - 세상종말 추수꾼 - 천사들 그리스도의 심볼
떡 - 요 6:48 신랑 - 마9:15 가지 - 렘23:5 새벽별 - 계 22:16
양 - 계 5:6 용사 - 시 24:8 목자 - 벧전5:4 군대 장관 - 수5:14
종 - 사 53:11 사자 - 계 5:5 기초 - 사28:16 교회의 머리 - 엡5:23
빛 - 요8:2 성소 - 사 8:14 씻는샘 - 슥13:1 모퉁이돌 - 벧전2:6
왕 - 마21:5 반석 - 고전10:4 통치자 - 마2:6 의원[의사]- 마9:2
별 - 민24:17 장미 - 아가 2;1 심판자 - 행10:42 포도나무 - 요15:2
문 - 요10:7
성도의 심볼
종 - 마25:21 신부 - 계21:3 소금 - 마5:13 나무들 - 시42:1
몸 - 고전12:20 사슴 - 시42:1 아이 - 마11:25 독수리 - 시103:5
돌 - 벧전2:5 양들 - 사40:11 양떼 - 시78:52 경기자 - 고전9:24
해 - 사사기5:31 군인 - 딤후2:3 별들 - 단12:3 물고기 - 마13:48
빛 - 마태5:14 보물 - 출19:5 보석 - 말3:17 가지들 - 요15:2
사자 - 잠28:1 그릇 - 딤후2:20 비둘기 - 시68:13 어린아이 - 마18:3
성령의 상징
물 - 약3:5 불 - 마3:11 바람 - 요3:8 기름 - 눅10:34
비 - 시72:6 비둘기 - 마3:16
사탄의 심볼
도적 - 요10:10 뱀 - 계12:9 붉은용 - 계12:3 번개 - 눅10:12
꿈의 배경
꿈들은 대게 꿈꾼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환경, 좌절, 결정, 승리, 두려움, 과거의 아픔, 오래된 문제들, 관계의 문제, 필요한 부분
기본적인 심볼의 뜻
1). 집 -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삶을 묘사할 때 사용하셨다. - 마태7장
당신의 삶의 중요한 시기를 말할 때
2). 사람 - 꿈꾸는 자의 삶의 부분적인 심볼
다른 사람들의 예언적인 상태를 말할 때, 그러나 해석이 필요함.
3). 운송수단 - 꿈꾼 자의 살림살이
4). 짐승들 - 꿈꾼 자의 삶, 느낌, 예언의 심볼,
5). 숫자들
1
- 하나님 하나의 연합 2 - 언약, 증인 3 - 삼위일체 4 - 지구4계절, 동서남북 5 - 은혜, 구속함,
5중사역 6 - 사람 7 - 완전수 8 - 새로운 시작 9 - 성령 10 - 심판 11 - 긍휼히 여기심 12 - 하나님의
정부 13 - 갑절의 축복,
6). 색 - 다양한 해석들
1. 파란색 - 소망, 치료, 자유, 성령.
2. 흰 색 - 영광, 순결, 절대적인 것
3. 초록색 - 영생, 성장, 돈
4. 노랑색 - 기쁨, 햇빛
5. 검정색 - 어두움 6. 자주색 - 왕권
7. 빨강색 - 대속, 구원, 예수의 보혈, 용기, 노여움.
꿈의 해석에 대한 단계
1. 꿈에 들기전에 기도하라 - 하나님께서 꿈속에서 말씀하시도록 기도하라
2. 평안히 잠을 자라.
3. 준비하라 - 노트에 꿈을 기록하라.
4. 기도하라 - 해석을 위해서.
5. 꿈의 심볼들을 해석하라 - 필요하다면 - 성구사전,성경,사전
6. 꿈을 해석한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점검하라.
7. 이 과정이 끝나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내가 본 꿈의 내용을 상세히 기록한 후 날짜를 적어놓고 적용할 것을 질문한다.
신약 - 마1:20, 2:13, 2:12, 2:19
적용 꿈의 해석을 위해 기도하라 - 단2:4 꿈을 기록하라 - 다니엘7:1
꿈의 해석에 대한 질문
1. 제목을 붙인다.
2. 간단, 명확한 중심내용, 상징들을 차례로 기록한다.
3. 강렬하게 느꼈던 태도와 감정은 무엇이었던가?
4. 이 꿈이 내게 무엇을 깨닫게 해주고 있는가?
나는 어떻게 반응 할것인가?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5. 이 꿈이 나와 교회와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어떤 유익을 주고 있는가?
6. 주제별로 잘 정리한다.
꿈과 환상의 예언적인 책임 이사야55:11
1. 죄와 불순종 - 삼하3:1
개인적인 꿈과 환상은 하나님께 순종을 요구한다.
2. 두려움과 근심은 환상을 흐리게 한다
왕하6:8-엘리사의 종 게하시
사람들에게 주는 환상의 유익
1. 아버지와 깊은 친교가 이루어진다.
2. 평강을 가져온다.
3. 성결, 거룩, 지혜를 가져온다.
4.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
5. 하나님의 의를 경험한다.
6. 지혜와 기름 부음을 풀어놔 준다.
7. 하나님의 음성으로부터 기쁨을 풀어놔 준다.
신약 성경에 나타난 환상
행2:17, 행7:55-60 행9:1-9, 행10:1-2, 행10:9-16, 행16장,
구약 성경에 나타난 환상
창15:1, 겔11:24, 단4:13, 합2:2, 눅1:22 계9:7
환상을 잘 볼 수 있는 영성훈련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은밀하고 조용하게 하나님의 만남을 통해서 영적인 교제를 나누어 인간의 내면의 영력 깊이까지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과 뜻과 능력과 눈을 갖도록 훈련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겉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도록 마음의 기능을 절제시키고 영의 기능을
강화하는 집중훈련이다.
이 훈련은 초월명상이나 초능력 훈련과 유사한 점이 많아서 오해되어질 요소가 많다.
그러나 명상의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며 그 목적이 인간적인 욕망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는데 있다.
1. 성서의 본문을 자세히 관찰하여 예언이나 환상의 구조를 정확히 이해한다.
2. 방언기도를 통하여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가까이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
3. 믿음으로 성서에 나타난 장면을 묵상하며 내 마음속에 영상화시킨다.
4. 내 영이 성경의 사건 속에 들어가 경험되어 지도록 최대한 믿음과 마음과 감정과 상상력을 성령님께 맡긴다.
5. 영적인 사건 속에 들어가 하나님의 하시는 일과 환경 주변을 세밀한 부분까지 모두 살펴본다.
6. 영적인 사건 속에서 내 영이 과거의 사건과 미래의 사건을 볼 수 있고 행동과 대화도 감각의 느낌도, 영적 싸움도 가능하다.
7. 내 영이 하나님의 인도함을 잘 받기 위해 적절한 하나님의 찬양을 듣는 것이 좋다.
8. 이 과정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마무리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내가 본 환상의 내용을 상세히 기록한 후 날짜를 적어놓고 적용할 것을 질문한다.
환상을 통한 질문
1. 제목을 붙인다.
2. 간단, 명확한 중심내용, 상징들을 차례로 기록한다.
3. 강렬하게 느꼈던 태도와 감정은 무엇이었던가?
4. 이 환상이 내게 무엇을 깨eke게 해주고 있는가?
나는 어떻게 반응 할 것인가?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5. 이 환상이 나와 교회와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어떤 유익을 주고 있는가?
6. 주제별로 잘 정리한다.
사람들에게 주는 환상의 유익
1. 아버지와 깊은 친교가 이루어진다.
2. 평강을 가져온다.
3. 성결, 거룩, 지혜를 가져온다.
4.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이 된다.
5. 하나님의 의를 경험한다.
6. 지혜와 기름 부음을 풀어놔 준다.
7. 하나님의 음성으로부터 기쁨을 풀어놔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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