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이스라엘 역대왕과 남유다의 역대왕 도표정리(05-17-2023 / 수)


북이스라엘 역대왕과 남유다의 역대왕 도표정리


북이스라엘 왕국

대수

이름

성경본문

연도(B.C.)

기간

비고

1

여로보암1세

왕상13:1~14:31

931~910

22년

북이스라엘의 창시자. 송아지 숭배 시작.

2

나답

왕상15:25~32

910~909

2년

여로보암 1세의 아들. 바아사에게 살해됨.

3

바아사

왕상15:33~16:7

909~886

24년

남유다 아사왕과 오랫동안 전쟁.

4

엘라

왕상16:8~14

886~885

2년

바아사의 아들. 술에 취하여 시므리에게 살해됨.

5

시므리

왕상16:15~20

885

7일

즉위 7일만에 오므리에게 패하여불타 죽음.

6

오므리

왕상16:21~28

885~874

12년

사마리아를 세움. 번영하였음.

7

아합

왕상16:29~22:40

874~853

22년

바알 숭배자였으며, 가장 악한왕으로 기록됨. 이세벨의 남편.

8

아하시야

왕상22:51~

왕하1:18

853~852

2년

아합의 아들. 병상에서 이방신에게 묻다가 엘리야의 책망 받음.

9

여호람

(요람)

왕하3:1~9:37

852~841

12년

아하시야의 형제. 형제들을 살해함. 예후에게 살해됨.

10

예후

왕하9:1~10:36

841~814

28년

바알 숭배자들을 몰살시켰으나,송아지 숭배는 계속함.

11

여호아하스

왕하13:1~9

814~798

17년

예후의 아들. 아람에게 침공당함.

12

요아스

왕하13:10~25

798~782

16년

여호아하스의 아들. 아람에게 빼앗긴 성읍 회복.

13

여로보암2세

왕하14:23~29

782~753

41년

요아스의 아들. 번영하였으나,우상숭배와 부패 만연.

14

스가랴

왕하15:8~12

753~752

6개월

여로보암 2세의 아들. 살룸에게살해됨.

15

살룸

왕하15:13~15

752

1개월

즉위 1개월만에 므나헴에게 살해됨.

16

므나헴

왕하15:16~22

752~742

10년

앗수르 왕 불에게 조공을 바침.

17

브가히야

왕하15:23~26

742~740

2년

므나헴의 아들. 베가에 의해 살해됨.

18

베가

왕하15:27~31

740~731

10년

앗수르의 침공으로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감. 호세아에게 살해됨.

19

호세아

왕하17:1~6

731~721

9년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앗수르의 침공으로 멸망함.



남유다 왕국

대수

이름

성경본문

연도(B.C.)

기간

비고

1

르호보암

대하10:1~12:16

931~913

17년

백성들의 뜻을 무시하여 왕국 분열을 초래함.

2

아비야

(아비얌)

대하13:1~22

왕상15:1~8

913~911

3년

르호보암의 아들. 여로보암과 전쟁하여 승리함.

3

아사

대하14:1~16:14

왕상15:9~24

911~870

41년

선한 왕. 하나님을 공경함. 우상숭배하는 모친 폐위.

4

여호사밧

대하17:1~20:37

왕상22:41~50

873~848

25년

아사의 아들. 선한 왕. 백성에게율법 교육. 아합과 연합하여 책망받음.

5

여호람

대하21:1~20

왕하8:16~24

848~841

8년

여호사밧의 아들. 아합의 딸 아달랴와 결혼함. 무서운 병으로죽음.

6

아하시야

대하22:1~9

왕하8:25~29

841

1년

여호람의 아들. 예후에 의해 살해됨.

7

아달랴

대하22:10~23:21

왕하11:1~21

841~835

6년

아하시야의 모친. 바알 숭배자.손자들을 학살. 제사장 여호야다의 개혁으로 살해됨.

8

요아스

대하24:1~27

왕하12:1~21

835~796

40년

아하시야의 아들. 여호야다의 지원으로 7세에 즉위. 성전 보수.말년에는 우상 숭배.

9

아마샤

대하25:1~27

왕하14:1~22

796~767

29년

요아스의 아들. 정직했으나 에돔신 섬김.

10

웃시야

(아사랴)

대하26:1~23

왕하15:1~17

791~740

52년

아마샤의 아들. 정직했으나, 후에 교만으로 문둥병에 걸림.

11

요담

대하27:1~9

왕하15:32~38

750~736

16년

웃시야의 아들. 아버지의 섭정받음.

12

아하스

대하28:1~27

왕하16:1~20

736~716

16년

요담의 아들. 우상을 숭배하고아들을 불사름.

13

히스기야

대하29:1~32:33

왕하18:1~20:21

716~687

29년

아하스의 아들. 하나님을 경외함. 종교개혁 단행.

14

므낫세

대하33:1~20

왕하21:1~18

696~642

55년

히스기야의 아들. 우상을 숭배하고 아들을 불사름.

15

아몬

대하33:21~25

왕하21:19~25

642~640

2년

므낫세의 아들. 우상숭배자. 신하들에게 살해당함.

16

요시야

대하34:1~35:27

왕하22:1~23:37

640~608

31년

아몬의 아들. 하나님을 경외함.율법책을 발견하여 개혁 단행.

17

여호아하스

(살룸)

대하36:1~4

왕하23:30~34

608

3개월

요시야의 아들. 바로에 의해 폐위됨.

18

여호야김

(엘리아김)

대하36:5~8

왕하23:34~24:7

608~597

11년

여호아하스의 형제. 바로에 의해즉위. 바벨론 포로가 됨.

19

여호야긴

대하36:8~10

왕하24:6~17

597

3개월

여호야김의 아들. 3개월만에 바벨론 포로가 되어 37년간 포로 생활.

20

시드기야

(맛다니야)

대하36:11~21

왕하24:1~25:30

597~586

11년

여호야긴의 아자비. 느부갓네살에 의해 즉위되었으나, 반역하여포로로 잡혀 감.

술 취하지 말라(에베소서 5:18) / 현재(계속적) 수동태(체험적) 명령형(무제한적)


술 취하지 말라(에베소서 5:18) 현재(계속적) 수동태(체험적)  명령형(무제한적)


에베소서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Do not get drunk on wine, which leads to debauchery. Instead, be filled with the Spirit.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 바울은 본절에서 어리석음의 구체적인 예로 잠언 23:29-35을 인용하여 술 취함으로 인한 방탕한 생활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다.
당시 술 취하는 일은 불신자 세계에 있어서 일반화되어 있었으며 초대 교회에서도 심각한 문제 중 하나였다(딤전 3:3; 딛 1:7;2:3, Wood, Foulkes, Hendriksen).
술 취함은 단순히 그 자체에만 문제가 있는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생활이 무절제하게 되고 방탕하기 쉽다는 것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여기서 '방탕'으로 번역된 헬라어 '아소티아'는 술 취함의 현상을 잘 나타내 주는 단어로 고대 헬라 세계에서는 '방종' 혹은 '돈과 육욕의 무절제한 낭비'를 의미했다(Wood).
이것은 신약성경 탕자의 비유에서 '허랑 방탕한 생활'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눅 15:13).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자로서 생활하려면 술 취함으로 인한 방탕한 생활 곧 어리석음의 일을 금해야 한다.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 '성령의 충만'은 '성령의 내주'나 '성령의 인침' 그리고 '성령 침례'와는 다르다(1:13; 4:30; 요 3:5;14:16; 롬 8:9; 고전 3:16).
성령의 내주나 성령의 인침 그리고 성령 침례는 단회적 사건인 반면에 '성령 충만'은 구원의 때뿐 아니라 그후에도 계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행 4:8, 31;6:3, 5;9:17;13:9, 52)
그리스도인이 능력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행 10:38;11:24; 살전 1:5; 벧전 4:11, Lincoln).
즉 이것은 이미 그리스도인에게 내주하신 성령께서(롬 8:9; 고전 12:3) 그리스도인을 온전히 지배하며 인도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한편 '충만을 받으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플레루스데'는 현재수동태 명령형이다.
이것은 다음의 내용을 함축한다.
1. '현재 시제'는 성령 충만이 일회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채워져야 함을 시사한다(Lincoln).
2. '수동태'는 성령 충만이 인위적(人爲的) 체험이 아니라(갈 3:2, 5) 성령에 의해서 체험됨을 시사한다(Wood).
3. '명령형'은 성령 충만이 제한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것임을 시사한다(Wood).

갈라디아서 3:2, 5
2.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취하다(3182) 메두스코(mĕthüskō)  μεθύσκω 

1. 술취하게 하다.  2. 술취하다. 3. 누가복음 12:45
발음 / 메두스코[ mĕthüskō ]
관련 성경 / 취하게 되다(눅 12:45), 취하다(엡 5:18, 살전 5:7)
신약 성경 / 3회 사용

누가복음 12:45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노비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데살로니가전서 5: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충만을 받으라(4137) 플레로오(plērŏō) πληρόω 

1. 가득하게 하다.  2. 시간을 채우다. 3. 마치다
발음 / 플레로오[ plērŏō ]
어원 / 미완료3인칭단수 ἐπλήρου, 미래 πληρώσω, 제1부정과거 ἐπλήρωσα, 완료 πεπ λήρωκα, 과거완료3인칭 단수 πεπληρώκει, 수동태, 미완료 ἐπλη- ρούμην, 수동태완료 πεπλήρωμαι, 수동과거완료3인칭 단수 πεπλήρωτο, 제1부정과거수동 ἐπληρώθην, 미래수동 πληρωθήσομαι, 4134에서 유래
관련 성경 / 이루어지다(마2:23, 26:54), 이루다(마3:15, 27:9, 행3:18), 완전하게 하다(마5:17), 가득하다(마13:48, 고후7:4, 빌1:11), 채우다(마23:32, 골1:9), 차다(막1:15, 행7:30, 롬15:14), 메워지다(눅3:5), 응하다(눅4:21), 마치다(눅7:1, 행12:25, 13:25), 별세하다(눅9: 31), 충만하다(눅2:40, 요3:29, 행13:52, 엡1:23, 5:18, 골2:10), 응하게 하다(요15:25, 19:36), 지나다(행24:27), 편만하다(롬15:19), 풍족하다(빌4:18), 온전하다(계3:2)
신약 성경 / 87회 사용

* 4134. πλήρης, ες 
1. 가득 찬
발음 / 플레레스 [ plērēs ]
어원 / 4130에서 유래
관련 성경 / 찬(마 14:20, 막 6:43), 충실한(막 4:28), 충만한(눅 4:1), 심히 많은(행 9:36), 가득한(행 13:10, 19:28), 온전한(요이 1:8)
신약 성경 / 16회 사용

* 4130. πλήθω 
1. 채우다.  2. 영향을 주다.  3. 완수하다
발음 / 플레도[ plēthō ]
관련 성경 / 가득하다(마 22:10, 눅 4:28, 행 5:17), 적시다(마 27:48), 충만함을 받다(눅 1:15, 41), 차다(눅 1:57, 2:6, 22), 채우다(눅 5:7), 충만하다(행 4:8, 31, 13:9)



* 자료소개

1. https://blog.naver.com/kjyoun24/220504596216

2. 왜 한국 교회는 술·담배를 그토록 싫어하는 것일까?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술·담배 금지 논의가 명확한 신학적 논리로 전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보수 교회가 낙태·동성애 반대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신학적·성서적 근거를 끌어다 쓰는 반면에, 한국 교회의 술·담배 금지는 그 근거가 거의 최소한으로 제시된 채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자유분방한 기독교인들이 술·담배 문제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더욱이 '복음의 본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제시하는 근거가 훨씬 더 많다.

이를테면 "예수님 별명이 먹보에 술꾼이었다.
예수님은 그런 문화적·도덕적 잣대에 갇히지 않으신다"거나, "술·담배는 아디아포라(선과 악이 명확한 문제가 아닌, 아무래도 괜찮은 '비본질'에 해당하는 문제라는 뜻)에 속한다" 같은 논의가 그것이다.

한국 교회는 미국 보수 교회의 판박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양자가 주된 의제로 삼는 윤리(도덕)적 쟁점은 꽤나 다르다.
미국 교회가 집중하는 '도덕 이슈'의 중심에 낙태와 동성애 문제가 있다면(그래서 종종 이 문제로 교단이 분열되는 일까지 벌어진다), 한국 교회의 중심에는 '술과 담배'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이런 논의들은 이 문제가 그토록 집요하게 한국 교회를 괴롭히고 있는 상황을 적실하게 해명하지 못한다.
사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머리로는' 술·담배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일요일이 아닌 주중의 사석에서는 큰 거부감 없이 술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그 태도는 돌변한다.
이를테면 자신들이 주중에 술을 마시는 건 괜찮아도, 목사나 전도사, 혹은 교회의 책임 있는 사람이 술과 담배를 가까이한다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 된다.
왜 그럴까? 사실 이 문제는 '안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술·담배 금지가 한국 교회의 '복음'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 방식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술·담배 금지 : 구별 짓기를 통한 정체성 확인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유독 한국 교회에서 술·담배가 중요한 도덕적 이슈로 떠오르는 것은 선교 초기의 경험에 기인한 것이다.
통상적인 설명은 그 당시 조선은 술·담배·오입질의 문제가 심각한, '매우 타락한' 상태였고, 따라서 선교사들의 전략 중 하나가 이 문제에 대한 강력한 대응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선교 전략'이란 것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타 문화권에 기독교를 전파한다고 할 때 교회는 여러 가지 전략을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최대한 그 문화권의 언어로 복음을 번역하는 토착화의 전략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초기 선교사들, 특히 미국 선교사들은 다른 전략을 택했다.
그것은 강고한 '구별 짓기'의 전략이었다.
(물론 이는 매우 복잡한 결들이 지나가고 있는 초기 선교 역사를 매우 단순하게 설명한 것임을 밝혀 둔다.)

선교사들은 이 중에서 구별 짓기 전략을 취했다.

첫째는 문명·비문명의 구별이었다.
미국 선교사들은 조선 땅에서 본국에서보다 훨씬 더 상류층의 생활양식을 갖고 살았다.
(류대영, <초기 미국 선교사 연구>,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이는 '복음'이 하나의 '상류 문화' 혹은 '고상한 삶의 길'로서 자리매김하도록 하였다. 또한 그들은 각종 '문명적 삶'을 '복음'과 거의 동일시하여, 선교사가 들어가는 곳마다 '문화 전쟁' 또한 동시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선교 전략에서 일부일처제·근대 교육·질병 관리 체계 등은 '복음'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두번째 전략은 조선인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구별 짓기의 전략이었다.
그것은 일상의 도덕적·문화적 삶을 선교사들이 통제함으로써 시작되었다.
"교회를 다닌다면(복음을 믿는다면) 술·담배·오입질을 그만두라"는 것. 교회가 세속으로부터 구별된 '거룩한 기관'인 것은 단지 영적으로만 알려지지 않는다.
언제나 그것은 '표징'을 요구한다. 한국 교회의 경우는 그 시작에 술·담배 금지가 핵심에 있었던 것이다. 초기 기독교의 신앙 수행에서 기독교인들은 술과 담배를 금함으로써 자신들이 하나의 구별된 집단 속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공동체의 유대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토착화 전략이 추구하는 지난하며 어려운 성찰적 과정보다는 훨씬 더 쉬운 방식으로 자신들의 교인됨을 확인하게 해 주었다. 복음은 아주 단순한 것(예수 믿고 교회를 다녀서 이전의 술·담배 하던 습관이 사라지는 것)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기록을 보면 선교사 자신들은 그다지 엄격하게 주초 금지를 지키지는 않았다고 한다. (사실 선교 모국에서도 술·담배 문제가 그다지 기독교인들의 구별 짓기 코드로 작동하지도 않았다.) 선교사들의 집에서는 가끔 와인 파티가 열리기도 했고, 골초 선교사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일종의 '문명인으로서의 자유함' 정도로 여겨졌고, 그들의 지도를 받는 조선인 교인들은 상당히 엄격한 수준에서 술·담배를 금함으로써 자신들의 '구별됨'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신학적으로는 술·담배 문제가 '아디아포라'라고, 혹은 예수가 '먹보에 술꾼이요, 죄인들의 친구'였다는 것을 긍정하더라도,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술을 입에 댈 때 불편함을 느끼고, 담배 피는 사람들을 보면 움찔하게 된다.
그것은 단지 술과 담배가 도덕적 이슈나 기호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을 가르는 구별 짓기의 코드로서 오랫동안 습속화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술·담배를 자유롭게 하는 기독교인을 아무리 신학적으로는 받아들이더라도, '기독교인 공동체의 어떤 유대감이나 소속감'이 그 순간 흐트러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복음'보다도 기독교인의 기독교인 됨을 손쉽게 확인할 표지가 바로 술·담배 문제인 것이다.

복음은 '구별 짓기'인가?

따라서 이 시점에서 우리가 기독교인들에게 물어야 할 것은 '복음'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복음을 하나의 '내용'으로, 특히 '기독교 공동체'가 '공유하는' 어떤 내용으로 이해할 때 나는 결코 순수한 복음을 찾아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그래, 술·담배 문제는 복음의 본질이 아니니, 복음의 본질에나 집중하자"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복음의 본질'이 공동체가 공유하는 어떤 내용이라면 그것은 언제나 '물 자체'로서가 아니라 다양한 코드들과 더불어 우리의 눈앞에 나타날 수밖에 없다. 선행, 따뜻한 성품, 형제자매애, 호칭, 교회의 용어들, 신학적 담론들, 예배 시의 신체 동작이나 방언 등 다양한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복음'이 무언지를 드러내게 하는 것이다.

때문에 복음을 이렇게 이해하는 한 영원히 복음은 한 '정체성 집단'의 것으로, 끊임없이 동일한 것을 재생산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만다. 술·담배 금지 같은 유치한 기준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타자와 자신을 구별함으로써 복음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복음이 이런 것일 때 '전도'는 언제나 타자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귀속시키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즉 '기독교인(공동체의 회원)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바로 (복음의 '시작'인) 1세기에 예수와 바울이 부딪혔던 문제이기도 했다. 그들의 적수였던 바리새인, 그리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언제나 '복음'과 '하느님나라'를 하나의 '구별 짓기'를 통해 이해했다. 그들은 끊임없이 소속되고자 했다. 하느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공동체에. 그들의 수많은 선행, 할례 등의 의례들, '이방인'에 대한 강렬한 거부감, 그리고 무엇보다 하느님의 은혜에 대한 개인적·집단적 체험들(우리는 손쉽게 유대교를 '율법의 종교'로, 기독교를 '은혜'의 종교로 이해하는 후대의 이해를 폐기할 필요가 있다. 유대교 역시 '은혜'를 전면에 내세운 종교였다)은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하느님나라의 시민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해 주었다.

바울은 이들에 대항하여 '믿음'을 내세운다. 따라서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흔히 생각하듯이 '다른 신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에 대한 믿음'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신뢰하는 믿음이. 그가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뭐든 간에 하느님은 모두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신뢰하여 그들과 '구별 짓는' 관계가 아닌 '열린' 관계를 맺는 것, 그것이 바울이 제시하는 '믿음'이다. 그렇지 않다면 바울의 '믿음'이 유대인들의 '율법'과 하등 다를 것이 없는 조건으로 기능하고 말 것이다.

예수의 영구 혁명 : '복음'은 '교회'로 환원되지 않는다

하지만 바울의 이런 전략은 너무도 쉽게 구별 짓기의 전략으로 회수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2000년 교회의 역사가 그걸 증명해 준다. 그들은 바울의 이름으로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논한다. 사실 바울의 서신들(신약성서의 1/3에 해당한다)을 읽어 보면 바울 자신도 결코 일관된 전략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방향은 바울 안에서 공존하고 있다. 뭐, 복음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거지만, 그래도 교회 설립 운동은 해야 하겠고…. (이런 고민이야 오늘날 사회주의자들도 똑같이 하는 것이 아닌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사는 사회주의 혁명은 해야겠는데, 그러려면 구별된 소집단(혁명가 집단)이 필요하고…' 하는 식으로.)

반면 예수의 전략은 그러한 회수가 좀 더 힘든 어떤 측면을 보여 준다. 예수의 삶과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에서, 특히 이른 시기의 복음서에서 예수는 결코 어떤 '구별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그리고 어떤 '내부자 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계속해서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기껏 병을 고쳐 놓고는 동네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식인 것이다. 예수 복음의 핵심은 바리새인들의 구별 짓기 전략에 맞서서 그 '구별'이 은폐·조장하는 폭력을 고발하는 데에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복음 선포는 바리새인과는 다른 정체성을 가진 '하나의 공동체'를 설립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불가능성을 끊임없이 드러냄으로써 구별의 논리 속에서 배제당한 자들로 하여금 그것으로부터 해방되도록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전략만 가지고 무슨 공동체를 만들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예수 자신이 그런 공동체를 통한 어떤 혁명 전략을 수행하지 못하고 몸소 그런 구별의 희생양이 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런 점에서 예수 운동은, 그 '복음'은 어쩌면 '교회'라는 것으로 결코 환원될 수 없는 '영구 혁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바울의 전략에 의해 하나의 교회를 만든다 할지라도, '구별 짓기를 철폐하는 예수'의 모습은 그 교회가 결코 '닫힐 수 없는' 어떤 것임을 계속해서 증명해 내는 전거로 등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의 부활 이야기를 그가 화석화한 하나의 기억으로 갇히지 않고 지금도 교회의 구별 짓기에 대항하는 존재로 살아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 교회에 의한 예수의 신격화는 오히려 이 '부활하여서 지금도 구별 짓기를 철폐하는 예수'를 구별 짓기의 논리로 회수하여 안전한 동일성의 토대를 확보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예수의 '복음'은, 그리고 '구원'은 어느 시대나 동일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어떤 '내용'이 아니라, 매 순간 구체적인 삶 속에서 동일시하는 어떤 폭력이나 배제로부터 벗어나는 '사건' 속에서만 잠시 잠깐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어쩌면 교회를 다니면서도 그 교회가 강요하는 구별 짓기의 논리를 거부하는 주당들과 골초들이야말로 '예수 사건'을 체험하는 '복 있는 자들'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공동체 내부의 논리 속에서만 머무르려 하는 '착한 그리스도인'들보다는 말이다.

출처 : NEWS M(http://www.newsm.com)

3. 한국교회사에서 본 금주 단연 운동 
- 이상규 (고신대학교 신학과 교수) 



한국교회는 한 때 금주,단연의 아름다운 전통을 지니고 있었지만,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술과 담배는 어정쩡한 위치에 있다. 음주나 흡연이 그 어느 측면에서도 이롭지 못하다는 점을 알면서도 사회적 환경때문에 어쩔수 없이 우리 시대의 문화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한국교회의 전통인 금주 단연이 약화되고 있고, 그것은 교회가 지도할 사안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적 사안이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술과 담배에 대해 한국교회가 어떤 입장을 취해왔는지를 뒤돌아보는 일은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교훈이 되리라고 본다. 이 글에서는 초기 한국교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금주 단연운동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음주,흡연문제에 대한 한국교회의 입장을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교회에서의 금주,단연 

한국에서 사역하던 선교사들이 술과 담배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처음부터 이를 금한 것은 아니었다. 한국교회 초기에 관한 기록을 보면 성탄절에 술을 빚어서 교인들이 함께 나누어 마신 일이 있고, 예배당에 들어올 때 신발장 옆에 담뱃대를 정렬해 두었다가 예배가 폐하면 함께 담배를 피웠다는 기록도 있다. 또 장로교회의 첫 번째 선교사인 언더우드(H.G.Underwood)는 한때 흡연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화란 개혁파 계통의 신학교에서 교육받았기 때문에 주초 문제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생각하는 편이었다. 또 부산 경남 지역에서 활동했던 호주 선교사들 중에도 흡연을 하는 이들이 있었고, 흡연장면의 사진이 지금도 남아있다. 말하자면 음주와 흡연을 '아디아포라(adiaphora)의 문제', 곧 불간섭의 영역으로 보고 있었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일정기간 음주문제에 대해 관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890년대를 거쳐가면서 그들은 술과 담배의 해악을 깨닫기 시작하였고, 따라서 금주와 단연은 신앙상의 유익과 건덕(建德)의 차원에서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지역적 차이는 있으나 한국에서는 초기부터 술과 담배가 신앙생활은 물론, 건강이나 경제적 손실, 그리고 극기나 절제등 국민 정신상 무익하다는 점을 가르쳐왔다. 

미국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선교할 때는 아편 사용에 대하여는 엄격한 입장이었으나 음주,흡연문제는 비교적 관대하게 다루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사정이 다름을 알게 되었다. 평소 그처럼 착한 사람도 일단 술을 마시면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하는 모습과 음주로 인하여 패가망신한 경우를 수차 목격하자 금주,단연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초기 내한 선교사들은 신학적인 면에서나 생활자세에 있어 보수적인 성격이 강했다. 그래서 이들은 안식일을 성수하고 노름을 범죄로 생각했으며 먹어도 유익이 없고, 안 먹어도 모자람이 없는 술과 담배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신자들에게 금주 단연을 권고하게 된 것은 주초의 심각한 폐단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선교사들은 도박과 축첩을 금하고 혼인, 장례 등의 악습과 구습을 타파하고 비합리적인 인습, 비과학적 의식을 개조하고자 노력하였는데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금주,단연이 강조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1900년대 후반기부터 금주,단연은 단순히 신앙생활의 유익이나 건강상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운동, 혹은 민족정신 함양운동의 차원에서 교회적으로 강조되었다. 


금주,단연운동의 초점 

선교사들은 금주 단연 운동의 추진 이유에 대해 크게 세 가지를 말했는데 그 첫째는 신앙상 유익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술 먹다가 죽으면 그 영혼이 하나님께로 갈 수 없다"는 극단적인 주장도 없지 않았다("계주론", 죠선 그리스도인 회보, 32호, 1897.9.8). 즉, 교회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금주,단연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둘째로는 건강에 해롭다는 의학적인 이유를 들었다. 그래서 우생학적으로 본 음주의 해독에 대해 강조하고 관계 연구결과를 제시하기도 했다. 셋째는 개화 혹은 국민의식 계몽을 위한 의도가 있었다. 

한국교회의 금주 단연 운동을 시기적으로 간단히 살펴보자. 


(1) 1900년 이전 

한국에서 금주 단연 운동이 일어난 것은 1900년 이후로 볼 수 있지만 사실은 이보다 앞서 금주 단연에 대한 권고와 경계가 있었음을 이미 말한 바이다. 선교사들은 선교 초기에는 술과 담배에 대해 어느 정도 허용하는 입장이었으나 1895년을 전후한 때로부터 금주 단연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계주론(戒酒論)을 펴나갔다. 이것은 선교사들의 청교독적 신앙생활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한국인의 신앙적 유익과 사회적 개화를 위한 의도가 있었다. 즉, 술은 백성의 재산을 폐하여 백성을 점점 곤궁토록 만들며, 장부의 기운을 꺾어 회복하지 못하게 해서 건강과 재산의 손실을 가져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교회는 계주론을 전파하고 교인들과 일반 백성의 금주를 권고하였던 것이다. 

감리교는 이미 1894년부터 금주정책을 견지했는데 그해 8월에 모였던 감리교 선교회에서는 교회의 금주 입장을 공식적으로 결의하였다. 장로교도 이와 유사한 시기에 금주 단연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1897년 4월 '죠선 그리스도인 회보'에는 제주도에서 한 교인이 단주(斷酒)한 사실을 들어 "참 새로 난 사람"이라고 보도한 일이 있었다. 술의 폐해가 켰기 때문에 금주를 입신(入信)의 전환적 결단으로 보았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때를 전후하여 한국교회 일각에서는 술의 해악을 지적하는 계주론이 크게 대두되었다. 

술은 바른 생애로 수고하야 모흔 제물을 빼아스며 걸인과 죄인을 만들고, 집을 망케하며, 협잡과 뇌물과 사졍을 셩행케 하야 사무를 그르치고 국재를 람용하며 부셰를 묵엄게 하고 유익한 일에 쓸 돈을 여러 백만금식 해로운 일에 허비하야 항상 이젼졍 군색하게 하니, 만일 술에 업새는 재물을 일용지물에 쓰면 사롱공상이 다 흥왕하고 돈 업서 어려워하는 괴로움이 구름갓치 헛터줄지니 경제상으로나 도덕상으로 보면 술은 업시할 물건이어날 오날날 어찌 그대로 두니 괴이하도다.("업시할 물건", 죠선 그리스도인 회보, 1897년 12월29일자) 

감리교의 조이스(Joice) 감독은1897년경 "우리 몸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기 때문에 술 담배를 금지해야 한다고 하였다. 1900년 감리교의 존스(G.H.Jones) 선교사는 전도인, 권사, 속장들의 모임에서 술을 마시는 교유들을 "즉시 출교"하겠노라고 경고한 일이 있었다. 장로교회의 새문안교회는 음주자를 치리한 일도 있었다. 이 교회은 음주 행위를 4중적 범죄로 규정하였는데, 첫째는 하나님께 범죄하는 일, 둘째는 교회법을 어기는 일, 셋째 부모, 형제, 처자에게 광언지설(狂言至設)하는 일, 넷째 자기 몸을 망하게 하는 일로 보았다. 

초기 한국교회가 단연 운동을 전개한 것은 흡연으로 인한 신체적 해독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 신문' 1897년 5월 7일자에서는 "담배 먹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불편한 것시 만흐니라. 이런 사람은 여러 가지 병이 잇나니 힘줄이 약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념통이 더 벌덕 벌덕하고 슈전증이 나고, 안력에 대단히 해롭고 여러 가지 병이 만흐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차츰 한국교회는 신체적 해독만이 아니라 도덕적 향상, 흡연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하나님이 거하는 전(殿)으로서의 몸에 대한 신앙적 동기 등에서 단연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일련의 금주 단연 운동의 결과로 한국교회 초기부터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술 담배를 끊는다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기에 한국교회 전통에서는 주일성수, 제사 중지, 노름 및 도박의 금지, 축첩(蓄妾) 금지 등과 함께 금주 단연은 세례받을 때 가장 중요하게 취급외었던 다짐이었다. 이 다섯 가지는 삶의 뚜렷한 변화를 요구하는 것으로 당시의 환경으로 볼 때 매우 힘겨운 요구였다. 그러나 이런한 결단을 통해 기독교인다운 삶의 방식을 보여 주었고, 성수주일, 금주 단연 등은 그 이후의 신앙생활의 중요한 표식으로 이해되었다. 그래서 선교사 노혜리(H.A.Rhodes)는 음주에 대한 경고의 글에서 "다행한 점은 조선의 불신자들은 신자는 의례히 금주한다는 것을 자명한 사실같이 생각하는 그것입니다. 교회는 절대 금주를 주장합니다. 신자는 금주 운동의 선험자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2) 1900년대 이후 

한국교회에서 금주 단연 운동이 조직적으로 전개된 것은 1900년대부터였다. 이 운동은 절제운동을 통해 보다 구체화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 이후 민족 지도자들은 국체보상운동의 일환으로 대대적인 절제운동을 제창하였다. 이것은 금주 단연 운동이 단순히 건강상의 이유나 신앙상의 이유에서만이 아니고 민족운동과 관련된 것임을 보여 주고 있다. 즉 금주 단연함으로써 절약한 재화로 외채 청산을 하자는 논리였다. 그것은 그 결과와 관계없이 상당한 정신적 효과가 있었다. 

1911년 에는 주한 선교사들이 '기독교절제회'를 조직하여 1년동안 금주 단연 순결에 관한 문서를 제작 배포하였다. 1912년에는 평양, 황해도 황주 등지를 중심으로 계연회가 조직되었고 점차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갔다. 이 계연회는 단연으로 절약한 돈을 모아 외지에 전도인을 파송하는 전도운도을 겸하였다. 

1917년부터(1941년까지)는 주일학교 '장(長)감(監) 연합공의회'가 발행하는 주일학교 장년 및 유년공과에 절제에 관한 내용을 삽입하여 교회학교에서 절제교육을 실시하였다. 

YMCA는 1920년부터 각 지방 YMCA를 통해 금주 단연회를 주직하여 절제운동을 전개하였고, 1923년 감리교회도 각 지방에 금주회를 조직하였다. 1930년에는 각 연회에 절제부를 두어 이 운동을 총괄하였다. 1933년에 공포된 감리교회의 '사회신경'에는 "심신을 폐망케하는 주초와 아편의 제조, 판매, 사용 금지" 조항이 삽입되었고 감리교인 임배세가 작사한 절제 계몽가 '금주가'가 1931년 간행의 『신정 찬송가』에 포함되기도 했다. 

장로교회의 경우는 음주만이 아니라 누룩의 제조 판매를 금지하는 문제가 장로교 총회에서 논의되기도 했다. 1924년 함남노회는 누룩매매업에 관여하는 교인의 치리문제를 헌의하였는데, 총회에서는 "누룩 장사하는 교인에 대하여 치리할 문제는 본 당회가 권면하여 보고 그 형편에 따라 치리할 것"을 결의한 일도 있었다. 

한국에서 절제운동과 사회교육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한 교단은 구세군이었다. 구세군은 한국선교 직후인 1910년 10월부터 매년 1회씩 『구세신문』의 '금주호'를 발행하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계몽운동을 펴기 시작했다. 1919년 10월호 『구세신문』에 실린 "단음함이 가함"이라는 글에서는 "대개 술이라 하난 음식은 재앙과 패망과 죄악과 형벌을 이루난 바 좋지 못한 물건"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밖에도 단계적이고 체계적인 논지로 『구세신문』의 각 특집호는 술과 담배의 경제적, 건강상의 손실과 윤리적, 심령적 타락 가능성을 일깨웠고, 나아가 민족 경제의 문제까지 계몽하였다. 구세군의 이러한 운동에 사회 각층의 인사들이 조력하였고, 『구세신문』의 '금주호'는 가두 판매는물론 철도 공무원 전체에 대한 배부, 호별 방문 배부 등으로 널리 보급하였다다. 특히 '금주호'에 첨부, 인쇄된 금주 서약서가 많은 독자들의 관심과 금주 결심을 촉발시켰고, 이것이 작성되어 구세군 본영에 송부되면서 절제운동은 사회적 분위기 조성에 일익을 감당했다. 이는 일제 말기까지 계속되었고 현재도 구세군의 주요 프로그램으로 계속되고 있다. 

절제운동이 이처럼 한국교회를 통해 전개되자 당시 언론도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이 운동을 격려하였다. 1934년 3월 2일자 『동아일보』는 "절제있는 생활"이라는 사설을 통해 삶의 목적이 여흥에 있지 않다고 말하고 술은 개인이나 사회에나 백해무익하다고 지적하였다. 또 "조선에서 1년에 1백70만 석의 술이 양조되고 있는 한, 해마다 조선 내에서 3,530만 원이란 거액의 돈을 담배 빨어 연기로 태워버리는 우맹한 행동이 유지되는 한 생활고를 운운하는 것은 광자(狂者)이다. 청년아 맹성(猛省)이 있을지어다"라고 쓰고 있다. 

이러한 금주 단연 운동은 1930년대 전국적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1935년 2월10일은 '금주의 날'로 선포되었고, 이때를 전후하여 조선기독교여자절제회와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 등이 주최하는 금주 가두행렬, 금주 강연회 등이 전개되었다. 

이때 불리던 절제운동가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 꿈을 깨어라 동포여 
지금이 어느 때라 술먹나 
개인과 민족 멸망케 하는 자 
그 이름 알콜이라 

2. 입에 더러운 담배는 왜 대리 
용단하라 형제여 
몸과 정신을 마비케 하는 것 
담배란 독약이라 

(후렴) 술잔을 깨치라 
담뱃대를 꺾어버려라 
2천만 사람의 살 길은 
절제운동 만만세 

찬송가에는 금주를 권장하는 찬송가가 편입되어 널리 불리기도 했는데 이때 불린 금주가 중에는 이런 가사도 있었다. 

1. 금수강산 내 동포여 
술을 입에 대지 마오 
건강기력 손상하니 
천치될까 늘 두렵다 

2. 폐가망신될 독주는 
빚을 내어 마시면서 
자녀교육 위하여는 
일전한푼 안 쓰려네 

(후렴) 아 보지도 마라 그 술 
아 마시지 마라 그 술 
우리 나라 복 받기는 
금주함에 있나니라 


(3) 1930년대 이후의 미성년자 음주 흡연 금지법 제정 노력 

한국교회는 1910년대 절제운동을 통해 금주 단연 운동을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회활동으로 전개하였는데, 이 절제운동을 단순히 국민의식 운동이나 정신운동으로만이 아니라 입법활동을 통해 법제화하려는 운동이 일어난 때는 1930년대였다. 말하자면 한국교회는 1930년대 이후 미성년자의 금주 단연을 법적으로 규제함으로써 청소년을 음주와 흡연의 해악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미 1929년 9월 조선예수교 장로회 총회, 조선기독교에 감리연회, 조선기독교 남감리4연회, 조선주일학교연합회 4단체 등은 '미성년자 음주 흡연 금지법 실시 기성동맹회'를 조직하고 입법촉구 운동을 시작하였으나 곧 와해되었다. 그후 1932년에는 앞서 말한 바처럼 '조선기독교 절제운동회'가 창립되었고, 1935년 12월 16일에는 이 조직을 중심으로 '미성년자 음주 흡연 금지법 실시 촉성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윤치호(위원장), 정인과, 양주삼, 오긍선, 백낙준, 김창준, 이대위 드을 위원으로, 송상석을 총무로 한 이 촉성회는 포스터 제작, 순회강연, 위정당국 교섭, 여론 형성 등을 통해 이 운동을 전개하였고, 1937년 6월에는 당시 총독 미나미 지로에게 '미성년자 음주 흡연 금지법 실시에 관한 참고자료'를 제출하고 이 법을 실시해야 할 필요성과 이유를 설명하였다. 

특히 『금주신문』이라는 제호의 기관지를 발간하여 이 운동을 확산하고자 노력하였는데 당시 총무였던 송상석 목사는 "무슨 까닭으로 미성년자 음주 흡연 금지법을 조선에는 실시하지 않느냐! 정부 당로자여! 빨리 각성하십시오. 우리들은 금반 양법을 조선에도 실시되도록 하는 운동을 개시했다. 당국의 색안경과 일부의 반대가 있는 것은 예상되지마는 천하 정의인도의 인사여, 하의 각 항에 대한 이해 있으시기 바라노라"고 하며 금주 단연법 제정의 필요성을 6가지로 정리하기도 했다. 

사실 일본에서는 이미 미성년자 흡연이 1900년 3월 6일자로 발표된 법률 제 33호로, 음주는 1922년 3월 29일 제정된 법률 제 20호로 각각 금지되고 있었으나 조선에서 이와 같은 양법을 제정하는 데는 미온적이었다. 일제의 식민통치는 근본적으로 우민화 정책이었고 따라서 한국에 유곽의 설치와 공창(公娼)제도를 도입하고 아편이 공공연하게 판매되도록 허용했던 것을 보면 일제가 한국 청소년들의 건전한 육체와 정신 함양에 소극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한 끈질긴 노력의 결과로 1938년 3월 26일, 미성년자 금주 단연법이 칙령 제 145호로 법령으로 제정되어 1938년 4월 1일자로 효력을 발생하였다. 미성년자의 음주 및 흡연 금지를 위한 입법 요구 활동을 시작한 지 9년 만에 얻을 결과였다. 이 당시 20세 이하는 미성년자로 간주되었는데 이러한 입법활동은 자기를 통제할 수 없는 청소년들에게는 불가피한 조치였다. 


(4) 오늘의 현실 

이상에서 우리는 금주 단연에 대한 교회의 입장과 이를 금하게 된 이유를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술과 담배는 신자의 생활과 건덕상 유익하지 않다고 보아 금지하였으나 일제하에서는 이를 거교회적 차원에서 강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민정신을 계도하고 절제운동을 통해 국민정신 게몽운동으로 발전하였다. 그 결과 금주 단연이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술과 담배가 신자의 순결한 삶을 위해서나, 육체의 건강에 조금도 유익하지 않다고 할 때 우리의 대답은 자명하다. 금주 단연은 우리들의 신앙 선배가 물려 준 소중한 전통으로, 이것이 우리 후손들에게 계승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오늘날처럼 성결과 순결이 경시되는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의구별된 삶의 방식은 그 자체가 가장 힘 있는 사회개혁의 방법이 될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18세기부터 금주운동이 교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일이 있는데 이것은 당시 영국과 미국에서 일어난 부흥운동의 결과였다. 복음에 대한 반응은 자연스럽게 개인의 삶의 변화를 촉구하였고, 개인의 변화는 그가 속한 사회와 공동체를 변화시켜 갔던 것이다. 한국교회 일각에서는 금주와 단연이 성경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이의 재고를 요구하고 있고, 실제로는 음주 흡연이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기도 하지만 절제하는 생활, 성결에의 촉구, 그리고 건덕의 차원에서도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이 계승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교계의 일부 목사들은 "아직도 술 담배가 문제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민족의 문제, 민중의 삶의 현실 같은 명분있는 문제에 관심을 돌려야지 아직까지 술과 담배로 공방을 벌여야 하느냐고 반론하고 있으나, 한 개인의 거룩함을 추구하려는 노력, 성결한 삶, 당연한 권리라도 이웃을 위해 포기할 줄 아는 건덕과 같은 그리스도인의 기본적 가치를 마냥 경시해서는 안된다. 술과 담배는 우리의 사회적 환경과 삶의 여건을 고려해 볼 때, 이것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살 그 자체가 이 시대를 향한 가장 힘 있는 개혁이 아닐까? 

- 자료출처 /  기독정보넷

4.

41. 기독교인은 왜 술 담배를 하면 안되는가?

기독교인은 왜 술 담배를 하면 안되는가?
 
■ 술 담배가 죄는 아니잖아요? 그런데 기독교인은 왜 술과 담배를 하면 안되는 거지요?  
 
■ 가톨릭 신부님들은 술 담배에 구애받지 않는데 목사님들은 왜 술 담배를 안합니까?  
 
■ 교인들은 일상적으로 술을 마시면서 교회에서는 안마시는 척 하는 것은 위선적 이중생활이 아닙니까? 
 
예수님 시대 담배 있었다면 금하셨을 것  

한국교회 금주·금연 운동 사회에 큰 공헌
 

우선 전제할 것은 성서에는 담배에 관한 언급이 없습니다. 당시에는 담배라는 것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만약 예수님 당시에 담배가 있었다면 예수님은 틀림없이 담배를 금하셨을 것입니다. 담배는 피우는 사람의 건강뿐만 아니라, 옆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주니까요. 그런 백해무익(百害無益)한 것을 예수님이 권장하셨을 리 만무하고, 틀림없이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십니다. 그 거룩한 몸을 니코틴으로 파괴하지 않도록 하시오.”(참고/고전 3:16∼17)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술에 관해서는 성서에 많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성서에 기록된 술은 주로 포도주였는데, 당시에는 포도주가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음식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포도주도 과하게 마실 경우, 노아가 술에 취해 자식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 이야기처럼(창 9장), 실수와 방탕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술에 취하지 마십시오. 거기에는 방탕이 따릅니다”(엡 5:18)라고 경고했으며,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을 맡는 감독과 집사의 자격을 말할 때 “술을 즐기지 않는 자” 또는 “술에 탐닉하지 않는 자”라고 규정했습니다(딤전 3:3, 8).

그리고 성서에는 일반 포도주 정도로 취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강한 술을 마셨던지, 독주에 대한 언급도 나옵니다(레 10:9, 사 28:7, 미 2:11 등 참고). 그리고 그 옛날에도 술자리를 2차, 3차로 옮겨 다니며 마셔대는 사람들이 있었던지, “늦게까지 술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잠 23:30)에 대한 언급도 나옵니다. 당시에도 우리나라 폭탄주 같은 술이 있었던지 “혼합주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잠 23:30)에 대한 언급도 나옵니다.

이러한 성서의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술에 대해서는 긍정적 발언보다는 부정적 발언들이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주신 기적의 사건(요 2장)은 잔치에서 필수요소인 포도주가 동났을 때, 잔치를 잔치되게 하신 예수님의 배려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사도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물만 마시지 말고 위장과 잦은 병을 생각해서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딤전 5:23)고 권면했습니다.

또 구약 아가서에서는 남녀간의 달콤한 사랑을 포도주에 비유한 표현들이 나옵니다(아 1:2, 7:9). 이러한 긍정적인 보도도 있지만 부정적인 보도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포도주는 사람을 거만하게 만들고 사람을 소란스럽게 만든다”(잠 20:1), “그들의 포도주는 뱀의 독이요, 독사의 맹독이다”(신 32:33), “음행의 포도주”(계 17:2) 등등.

이처럼 술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은 술취함으로 인해 파생되는 여러 가지 실수와 방탕과 범죄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가 기록되던 당시대와 오늘 우리 한국사회와의 시간적·공간적·문화적 차이로 인해 오늘날의 술 문제에 관한 절대적 기준을 성서에서 찾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궁극적 진리의 문제가 아닌 한 그렇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사회윤리적 차원에서 풀어가야 할 것입니다.

바울사도의 윤리적 기준은 약한 이웃에 있다  

저는 술 담배를 비롯해서 종교나 교단에 따라 금기시하는 제반 음식문제에 대해 우리가 성서에서 배워야할 윤리적 기준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울사도의 가르침입니다. 바울사도는 우상에게 제물로 바쳤던 고기를 먹는 문제에 대해서 이런 대답을 줍니다. “나는 그 고기를 먹는 것이 신앙적으로나 양심적으로 전혀 문제될 것이 없지만, 내가 그 고기를 먹는 것이 믿음이 약한 사람에게 걸림돌이 된다면 나는 평생 그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전 8장). 즉 건강한 사람의 자유가 약한 사람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바울사도는 음식문제로 형제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권면합니다(롬 14:13∼15). 이러한 바울사도의 가르침에 따르면 믿음(신앙수준, 의식, 지적수준 등)이 강한 사람이 믿음이 약한 형제를 위해 어떤 음식을 삼가한다면 그것은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사도의 가르침에서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술 문제에 대한 사회윤리적 기준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처신이 비신자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금주금연은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전통  

술과 담배 문제에 관해 생각해야할 또 다른 차원이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술과 담배를 금한 것은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이라는 점입니다. 금주금연운동은 초창기 선교사들에 의해 촉발되었고, 교회 내부뿐 아니라 1910년대 국채보상운동과 함께 YWCA, 기독교절제회 같은 기독교 단체들이 한국사회의 절제운동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따라서 금주금연운동은 한국사회 전반에 상당히 긍정적 공헌을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처럼 금주금연은 한국교회가 지켜온 아름다운 전통과 윤리의 문제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전통 속에는 ‘금욕과 절제’가 있는데, 그런 면에서도 금주금연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의 음주율과 청소년 흡연율이 세계 1∼2위를 다투고 있는 실정에서, 또한 주폭(酒暴)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어있는 현실에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다시한번 각성하여 금주금연을 실천하고,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을 지키고 보존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강영선 한신대 교수

5. 초기 선교사들, 술·담배 폐단 보며 운동 불붙여

한국에서 일했던 선교사들은 술과 담배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처음부터 이를 금한 것은 아니었다. 기독교가 소개된 초기에는 성탄절이 되면 술을 빚어서 교인들이 함께 나누어 마신 일이 있고, 예배당에 들어올 때 신발장 옆에 담뱃대를 정렬해 두었다가 예배가 폐하면 함께 담배를 피웠다는 기록도 있다.

선교사들 중에서도 음주나 흡연하는 이들이 있었다. 언더우드도 이 점에 대해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가 화란개혁파 계통의 신학교에서 교육받았던 점을 고려해 본다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초기 선교사들은 음주·흡연 문제는 아디아포라(adiaphora), 즉 ‘불간섭의 영역’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일정기간 음주나 흡연에 대해 관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한국 교회가 금주와 단연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알렌이 입국한 후 10여년이 지난 때부터였다.

금주·금연운동의 시작

내한한 초기 선교사들이 금주(禁酒), 금연(禁煙)을 권고하게 된 것은 이의 폐단을 목격하였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은 도박과 축첩을 금하고, 혼인 장례 등에서의 구습을 타파하고 비합리적인 인습, 비과학적인 의식을 개조하고자 노력하였는데, 금주·단연은 이런 측면에서 강조되었다. 한국 교회가 금주, 금연운동을 추진할 때 크게 세 가지 점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였는데, 신앙상 유익하지 않다는 점, 건강에 해롭다는 의학적인 이유, 그리고 개화 혹은 국민의식계몽을 위한 의도가 있었다.

한국에서의 금주운동이 일어난 것은 1900년 이후로 볼 수 있지만 1895년을 전후한 때로부터 금주, 단연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계주론(戒酒論)을 펴기 시작했다. 감리교는 이미 1894년부터 금주정책을 견지하고, 그해 8월에 모였던 감리교선교회에서 금주를 공식적으로 결의하였다. 당시 교회는 음주행위를 4중적 범죄로 규정하였다. 첫째는 하나님께 범죄하는 일, 둘째는 교회법을 어기는 일, 셋째 부모, 형제, 처자에게 광언지설(狂言至說)하는 일, 넷째 자기 몸을 망하게 하는 일로 보았다. 금연이 강조된 것도 동일한 이유였다. ‘그리스도 신문’ 1897년 5월 7일자에서는 “담배 먹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불편한 것시 만흐니라. 이런 사람은 여러 가지 병이 잇나니 힘줄이 약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념통이 더 벌덕 벌덕하고 슈전증이 나고, 안력에 대단히 해롭고 여러 가지 병이 만흐니라”고 하면서 금연을 강조하였다.

금주·금연운동의 조직화

한국교회에서 금주, 단연운동이 조직화된 것은 1900년대 이후인데, 특히 절제운동을 통해 보다 구체화되었다. 1907년 이후에는 금주, 금연으로 절약한 재화로 외채 청산에 기여하자는 민족적 동기도 있었다. 1911년에는 주한 선교사들이 ‘기독교 절제회’를 조직하고 금주, 금연, 순결에 관한 문서를 제작 배포하기 시작하였고, 1912년에는 평양, 황해도 황주(黃州) 등지를 중심으로 계연회(戒煙會)가 조직되어 점차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이 계연회는 금연으로 절약한 돈을 모아 외지에 전도인을 파송하는 전도운동을 겸하였다.

1917년부터 1941년까지는 ‘장·감 연합공의회’가 발행하는 주일학교 장년 및 유년공과에 절제에 관한 내용을 삽입하여 교회학교에서 절제교육을 실시하였다. YMCA는 20년부터, 감리교는 1923년부터 금주, 금연회를 조직하여 절제운동을 전개하였다. 1933년에 공포된 감리교회의 ‘사회신경’에는 “심신을 패망케 하는 주초와 아편의 제조, 판매, 사용금지” 조항이 삽입되었고, 감리교인 임배세(林培世)가 작사한 절제 계몽가인 ‘금주가’가 31년 간행의 ‘신정 찬송가’에 포함되기도 했다.

1. 금수강산 내 동포여 술을 입에 대지 마라/ 건강지력 손상하니 천치될가 늘 두렵다

2. 패가망신 될 독주는 빗도내어 마시면서/ 자녀교육 위하여는 일전한푼 안 쓰려네

3. 전국술값 다 합하여 곳곳마다 학교세워/ 자녀수양 늘 식히면 동서문명 잘 빗내리

4. 천부주신 네 제능과 부모님게 받은귀체/ 술의 독기 밧지말고 국가위해 일할지라

(후렴) 아 마시지 마라 그 술, 아 보지도 마라 그 술/우리나라 복 받기는 금주함에 잇나니라.

한국에서 절제운동과 사회교육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한 교단은 구세군이었다. 구세군은 한국선교 직후인 1910년 10월부터 연 1회 ‘구세신문’에 ‘금주호’를 발행하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계몽운동을 전개했다. 특히 ‘금주호’에 첨부, 인쇄된 금주 서약서가 금주 결단을 촉발하였다. 이러한 금주, 단연운동은 1930년대 전국적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1935년 2월 10일은 금주의 날로 선포되었고, 이때를 전후하여 조선 기독교여자절제회와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 등이 주최하는 금주 가두행렬, 금주 강연회 등이 전개되었다. 이때 불리던 절제운동가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 꿈을 깨어라 동포여 지금이/ 어느때라 술먹나/ 개인과 민족 멸망케 하는 자/ 그 이름 알콜이라

2. 입에 더러운 담배는 왜대리/ 용단하라 형제여/ 몸과 정신을 마비케 하는 것/ 담배란 독약이라.

(후렴) 술잔을 깨치라/ 담배대를 꺾어 버려라/ 2천만 사람의 살 길은/ 절제운동 만만세

이와 같은 금주, 단연 운동의 결과로 한국 교회 초기부터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술, 담배를 끊는다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한국 교회 전통에서는 주일성수, 조상제사 중지, 노름(도박)의 금지, 축첩반대 등과 함께 금주·단연은 세례 받을 시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었던 다짐이었다.

(고신대, 역사신학)


6.

술은 구원의 기준이나 훌륭한 신앙의 기준 아냐
오해 이유, 문화적·윤리적 관점 기준 없기 때문
선교사 교훈 따라 음주는 절주, 절주는 금주로
한 순간에 끊을 수도 없어, 하나님 은혜가 먼저
음주 자유로운 사람, 자신의 음주 정당화 말고
교회도 술 한 잔에 지옥 갈 것처럼 정죄 말아야

직장선교 사역을 오래 진행해 온 강하룡 목사(예함교회)가 지난 3월 27일 SNS에서 '크리스천의 음주 문제'를 정리한 글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강 목사는 먼저 술에 대해 부정적인 성경 구절(민수기 6:2-3, 잠언 23:29-33; 31:4, 누가복음 1:15)과 긍정적인 성경 구절(시편 104:15, 마태복음 11:19, 누가복음 22:20, 요한복음 2:10-11) 등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먼저 술은 구원의 기준, 신앙의 기준이 아님을 전제하고자 한다. 구원의 기준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믿음이다. 술 한 잔 마셨다고 예수님을 배반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전제는 '술은 훌륭한 신앙의 기준도 아니다'는 것이다. 그는 "훌륭한 신앙의 기준은 가정과 일터에서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을 배우고 순종하는 태도에 있다(마 28:19-20)"며 "술과 담배를 하지 않지만, 직업인으로 엉망인 삶을 살았던 크리스천들이 많이 있다. 건강한 신앙은 음주 여부가 아니라, 가정과 일터에서의 삶의 질로 평가돼야 한다"고 전했다.

셋째로는 "직업인들이 각자의 일을 주께 하듯, 빛과 소금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는 것이 좋은 신앙이다. 따라서 술은 신앙과 관련되어 비본질"이라며 "본질이 없으면 비본질에 목숨 걸게 된다. 술 문제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한국교회 신앙의 현실을 드러내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술과 신앙에 대하여 오해와 혼란이 많은 이유'로는 "술을 문화적인 문제로 볼 것인가 윤리적인 문제로 볼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강하룡 목사는 "문화는 옳고 그름이 없다. 의복 문화, 음식 문화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윤리는 옳고 그름이 있다.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기준이 있다"며 "성경에서는 술을 문화로 보는 관점도, 윤리로 보는 관점도 있다"고 소개했다.

강 목사는 "술을 문화로 보는 관점은 술에 대한 긍정적인 성경 구절에 잘 나타난다. 예수님께서 메시야 되심을 드러내신 첫 표적은 '양조(釀造)'였다"며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으로 자신의 신성을 드러내셨다. 또한 예수님은 사람들과 함께 포도주를 즐기셨고, 새 언약을 포도주로 제정하셨다"고 했다.

또 "술을 윤리로 보는 관점은 술에 대한 부정적인 성경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 잠언 23장의 경우 심각한 술 취함에 대한 경고"라며 "술 취함은 분명하게 윤리적으로 옳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죄이다. 사회법에서도 술을 몇 잔 즐기는 것은 문화로 보지만, 주폭(酒暴)은 범죄로 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그는 "술에 대한 부정적인 성경 구절 중 나실인의 율례와 왕에게 주는 교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실인의 율례는 자원하여 하나님께 헌신하는 자에게 포도주 뿐만 아니라, 포도열매도 먹지 않도록 요구했다"며 "왕에게 포도주를 금한 것은 백성들을 제대로 돌보기 위해, 식생활에서 어느 정도 금욕적인 생활을 요구한 것이다. 두 경우 모두 지도자에게 요구하는 절제의 미덕"이라고 평가했다.

강 목사는 "한국교회에서 술 문제와 관련해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신앙 전통이 있다. 100년 전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은 술을 윤리적인 문제로 규정했다"며 "그래서 대부분의 목회자와 성도들은 술을 윤리적 문제로 인식한다. 술을 윤리적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사람들은 고민하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나는 선교사들의 그런 결정이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도 유효한 결정이라 생각한다. 그들의 결정은 한국 교회에 축복"이라며 "술 문제는 이성 문제, 재정 문제, 폭력 문제 등 너무 많은 문제를 끌고 들오는 악의 통로와 같기 때문"이라고 했다.

강하룡 목사는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결론에서 "교회 지도자들, 중직자들, 성숙한 자들의 경우 나실인의 서원, 왕에 대한 포도주 교훈, 바울의 절제 전통, 선교사들의 가르침을 따라 엄격한 절제가 성경의 가르침"이라며 "당연히 금주하는 것이 유익하다.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전 8:13)'"고 말했다.

강 목사는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 신앙을 가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선교사들의 가르침을 따라 음주하는 사람은 절주, 절주하는 사람은 금주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며 "음주를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어짜피 한 순간에 술을 끊을 수도 없을 뿐더러 하나님과의 만남과 은혜가 먼저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음주에 자유로운 사람은 다른 크리스천에게 자신의 음주를 정당화하지 않도록 권하고 싶다. 약한 자의 믿음과 삶을 보호하기 위해, 음주를 정당화하는 발언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마 18:6)"며 "단, 교회에서는 술 한 잔 하는 것에 대하여 지옥 갈 것처럼 정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강 목사는 "어쩔 수 없이 술 한 잔 받는 것에 대해, 배도한 것처럼 몰아가지 않기를 바란다"며 "과도하게 경직된 기준을 제시하다 보니 성도들은 반감을 가지게 되고, 결국 자원하는 절제, 경건의 유익보다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됐다"고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는 말씀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7. 한국교회 금주전통의 발자취
  

본문


 

1925년경 한때 어깨띠를 두른 부녀자들이 ‘금주로 구국하자!’라고 적혀 있는 플래카드를 높이 치켜들고 광주 시내 밤거리를 돌면서 주점이나 요정을 찾아다녔다. 이들은 손님들에게 눈총을 받으면서도 금주를 권하는 선전지를 열심히 나눠주었다. 이들은 또 장날이면 모여서 시장 한 귀퉁이에 플래카드를 세워놓고 합창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 영문 모를 노랫소리에 이끌려 장터사람들이 삽시간에 모여들곤 했다.

1. 금수강산 내 동포여 술을 입에 대지 마라
건강지력 손상하니 천치될가 늘 두렵다

2. 패가망신 될 독주는 빚도 내어 마시면서
자녀교육 위하여는 일전한푼 안 쓰려네

3. 전국술값 다 합하여 곳곳마다 학교세워
자녀수양 늘 식히면 동서문명 잘 빛내리

4. 천부주신 네 재능과 부모님게 받은 귀체
술의 독기 밧지말고 국가위해 일할지라
후렴. 아 마시지 마라 그 술, 아 보지도 마라 그 술
우리나라 복 받기는 금주함에 잇나니라

이 찬송은 이화여전 출신의 여류 성악가 임배세(林培世) 선생이 작사·작곡하여 1920년경부터 불러온 금주가로 알려져 있다. 좬신정찬송가좭(1931)에 포함되었고 좬합동찬송가좭(1949)에 실리기도 하였다. 이 금주가에서는  몸의 건강을 해치기 때문(1절), 패가망신하기 때문(2절), 술값 낼 돈으로 학교를 세워 자녀수양을 하기 위해서(3절), 재능과 귀체를 망치지 않고 국가를 위해 일하기 위해서(4절) 등을 금주의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비록 좬합동찬송가좭 이후 더 이상 찬송가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한때나마 금주가가 교회에서 찬송으로 불렸을 정도로, 한국교회는 금주문화를 중요한 전통으로 여겼다. 그리고 현재 한국교회의 대부분에서는 금주를 지켜 마땅한 ‘교칙’(敎則)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의 금주전통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기독교 전래초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술, 선교사 눈에 비친 악습
주지하다시피 한국에 기독교를 전래한 사람들은 서양 선교사들이다. 이들 눈에 처음 비친 당시 조선의 풍습은, 도박·음주·싸움질 등 ‘아편을 피우는 것을 제외하고는 가능한 한 모든 악습을 다 갖고 있는’ 모습이었다.

조선 남자들은 노름에 대한 열정이 대단해서, 만약 노름에서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잃었다면 자기의 아내를 노비로 팔아서까지 노름에 미쳐 버린다. 조선에서는 술 마시기도 널리 유행하고 있다. 술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흰색의 걸쭉한 액체(막걸리)이고 다른 하나는 맑고 깨끗한 약주술이다. 이 술은 모두 쌀, 보리, 혹은 밀로 만든다. 주막은 안주를 곁들여 술을 먹는 사람들도 거의 매일 붐빈다. 길거리에는 술에 취한 감상주의자들 혹은 술주정꾼들이 서로 상투를 잡아당기며 싸우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조선인들의 생각은 단순하다. 그래서인지 사회적으로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타락행위가 만연하고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조선인은 유순하고 예의 바른 이방인으로서 특이하게도 아편을 피우는 것을 제외하고는 가능한 한 모든 악습을 다 갖고 있다.1)

초기 내한 선교사들 특히 미국 선교사들은 거의 대부분 청교도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춤추고 담배 피우고 노름하는 것을 죄로 보고, 참된 그리스도인이 결코 해서는 안될 일이라 생각했다. 청교도적 신앙으로 비추어 볼 때, 도박·음주·흡연 등은 ‘사회적으로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타락행위’라고 간주할 수밖에 없었다. 즉 청교도적 신앙의 실천은 선교사에게나 한국인들에게 ‘문명개화’와 거의 동일한 것으로 여겨진 것이다.2)

술, 문명개화의 걸림돌
초기 선교사들은 복음전파만이 아니라 문명개화에도 적잖은 공력을 들이고 있었다.2) 문명개화의 과제는 사회전반에 퍼져있는 각종 악습을 철폐하고 문명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선교사들은 술을 통해 일어나는 각종 폐해를 목격했던 것이다. ‘가슴이 벌넉벌넉하고 미친 사람 같이 혹 처자를 때리며 혹 가산을 붓기도 하고 혹 남과 싸움도 하다가 술이 깬 후에는 사지가 아프고 구미가 없고 정신이 없어 마치 중병앓고 난 사람’3)같이 만드는 술은 선교사들에게 미개의 상징 또는 ‘문명개화의 걸림돌’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좬죠션크리스도인회보좭는 다음과 같이 술을 경계하고 있다.

개화를 크게 해하는 물건은 술인고로 옳게 생각하는 사람마다 이것을 없이하기에 힘쓸지니 술은 바른 생애로 수고하여 모은 재물을 빼앗으며 걸인과 죄인을 만들고 집을 망하며 협잡과 뇌물과 사정(私情)을 성행케하여 사무를 그르치고 국재를 남용하며 부세를 무겁게 하고 유익한 일에 쓸 돈을 여러 백만금씩 해로운 일에 허비하여 항상 이전정 군색하게 하니 만일 술에 없애는 재물을 일용지물에 쓰면 사농공상(士農工商)이 다 흥왕하고 돈 없어 어려워하는 괴롬이 구름같이 흩어질지니 경제상으로나 도덕상으로 보면 술은 없이할 물건이어늘 오늘날까지 그대로 두니 괴이하도다.4)

즉 술은 ‘재물을 빼앗으며 걸인과 죄인을 만들고 집을 망하’게 하는 빈궁의 직접적 원인이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음주는 직접적인 금전적 지출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 ‘협잡과 뇌물과 사정을 성행케 하여 사무를 그르치고 국재를 남용하’게 하여 부가적인 지출 또한 유발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기회비용적 차원에서 볼 때, 술을 마시는 데 드는 비용을 유익한 곳에 사용한다면 경제적 손실을 막고 미래의 수입에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경제적 의미에서 한걸음 나아가 종교적 이유에서 술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술을 조선 안에서 먹는 까닭에 그 백성이 가산을 패하며 점점 곤궁도 하며 고생을 하여 장부의 기운이 아무리 하여도 회복하지 못하며 또 술 먹는 것이 크리스도교의 큰 원수도 되려니와 교중 일에 방해가 되니 우리 교에 유전하는 말대로 무론 무슨 술이던지 도무지 일절 금단하며 우리가 우리 고향 교우에게 간절히 바라노니 온갖 마땅한 계책을 써서 조선 교우가 술을 일절 먹지 않게 하고 몸들이 모두 정결하게 하기와 또 조선 교우들에게 지금부터 술 금하는 글을 지어 동토 사람 가운데 힘써서 전파하라고 미이미교회 열두째 연환회에 결정을 하였사오니 교우들은 이 작정한 조건을 자세히 읽어보시고 힘써 이것 행하시기들을 바라옵.5)

이처럼 음주는 ‘크리스도교의 큰 원수도 되려니와 교중 일에 방해’되는 행위라고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금주하는 것은 ‘몸들이 모두 정결하게’ 되는 것으로 인식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감리교회는 연회에서 금주를 결정하고, 교우들에게 ‘힘써 이것 행하시기들’을 바란다고 권유했다. 이즈음부터 음주는 기독교 안에서도 금기시해야 할 대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더 나아가 술 마시는 것은 영혼구원에도 문제 또는 범죄가 된다는 인식도 싹트기 시작했다.

우리 주 예수를 믿던 사람은 만일 수화(水禍)에 몸은 죽더라도 영혼이 하나님께로 갈 수 있고 호랑이나 사자에게 죽더라도 그 영혼이 하나님께로 갈 수 있거니와 술먹다가 죽으면 어찌 그 영혼이 하나님께로 갈 수 있으리오. (중략) 또 술 먹는데 죄 되는 걸로 말하면 취토록 먹어 죄는 것이 아니라 한 모금만 마셔도 죄 되나니 그 먹음으로 죄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죄 되느니라. 처음에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 선악과를 두고 아담 이와에게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고 경계한 후에 배암이 꾀이는 소리를 듣고 그 실과를 볼 때에 곧 범죄하는 마음이 나고 한 번 따서 맛본 것이 큰 죄가 되었으니 그 먹음으로 죄가 아니오 마음으로 죄 되었느니라 그럼에 술 먹는 것도 그러하니.6)

술 먹다가 죽으면 영혼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음주는 아담이 저지른 원죄에 비견할 만한 중대한 죄라고 강조하고 있다. 신학적 음미의 필요성 여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술에 대한 당시의 엄중한 시각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초기 기독교의 금주문제는 문명개화에서 강조되던 악습철폐에서 나아가, 종교적 이유에서 문제가 되고 팔요하다는 인식으로 전환되고 있었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신앙을 고백하는 것과 음주를 비롯한 각종 악습의 전폐(全廢)를 거의 동등한 무게로 취급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선교사 마펫(Samuel A. Moffet)은 우상숭배와 조상제사 폐지, 주일성수, 부모에 대한 효경, 가정의 순화와 더불어 축첩·음주·거짓말·잡기·간음 등의 악습 전폐 등을 세례의 조건으로 제시하였다.7) 감리교의 경우, 제12회 연회에서 공식적으로 금주를 결의하기도 하였다.8) 감리교 선교사 존스는 전도사들과 속장 등에게 술마시는 교인들은 출교시킬 것이고 다른 교회 교인이라면 감독에게 보고하여 책망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하였다.9)
이에 초기 한국 교인들은 술·담배·아편 등의 행위들을 죄로 고백하고 회개하였다. 예수를 믿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결심하는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제사·축첩 금지와 아울러 금주·금연은 이전과 구별되는 믿는 자의 본보기로 여겨졌다. 교인이 된다는 것은 금주·금연을 실행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한국 기독교인들이 단순히 선교사들의 권유에 따라 금주와 금연을 했다기보다는 스스로 이성적 판단에 의해 결행했다는 점이다. 아마도 한국교인들은 스스로 금주·금연 실천을 민족의 위기 상황에서 당대적 과제로 부상했던 문명개화의 한 단면으로 여겼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당시 선교사의 증언이다.

초기 기독교인들과 연관된 흥미 있는 사실 하나는 교회를 순수하게 지키려는 그들의 열정이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악한 것은 그 모양도 버려라’고 하셨을 때 뜻하신 바, 새신자들은 사악한 이교도의 종교행위나 그럭저럭 용인되는 사회적 관습과 연관되어 있는 것을 모두 그들의 생활에서 내몰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버려야 할 종교에 관련된 것들 가운데는 마술·점술·우상·주물·조상제사와 관계있는 위패와 제물들이 있다. 사악한 사회적 관습에는 축첩, 음주와 흡연 등이 있다. 때로 금연은 선교사들이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압박을 가한 사안으로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다. 초기 기독교인들 자신의 이성으로 금연하였던 것이다.10)

술, 몸과 마음과 사회의 해독(害毒)
한일강제병합 이후 조선총독부는 통치자금을 본국정부의 지원 없이 식민지에서 독자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그래서 기존 주세법(1909)이 세율이 낮고 미비한 조항이 많다는 판단 하에 주세를 증진할 목적으로 1916년 주세령을 실시하였다. 특히 3.1운동이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그 좌절감은 자포자기적인 향락문화로 빠져 들게 하였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요리집’, ‘카페’, ‘유곽’은 늘어만 갔다. 음주·흡연 등의 소비 또한 일제가 ‘주세령’을 실시한 의도에 부합할 정도로 늘어갔음은 물론이다. 연구에 의하면, 주세는 전체 조세량의 약 10.8%로 증가하였고, 연초세는 전체 조세량의 18%를 차지하며 총독부 재정수입의 주요기반이 되었다.11)
그런데 마침 미국에서 금주법(1919)이 실시되면서, 미국의 금주운동 상황, 또는 유명 인사들의 금주금연 사례가 좪기독신보좫 등의 교계 신문에 자주 소개되었다. 당시 기독교 문명국으로 인식되었던 미국의 예는 기독교인들에게 귀감이 되었고, 금주법은 문명국가로 나아가는 하나의 방편으로까지 인식되었다.12)
이와 같은 사회적 상황에서 기독교는 초교파적인 ‘기독교절제운동’을 전개하였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금주문화는 기독교 전래 초기부터 싹트기 시작하여, 1920년대에 이르러서는 기독교인이라면 의례히 지켜야 할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초기 기독교에서 금주문제가 ‘패가망신’으로 대표되는 개인 윤리적 차원 또는 ‘영혼구원’과 관련된 종교적 이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면, ‘기독교절제운동’에서는 총독부 재정만 살찌우는 주초 소비를 절약하여, ‘죽어가는 민중을 살리고 파멸에 임한 사회를 개조하는 사회운동’으로 초점이 옮겨가고 있었다.13)  기독교의 절제운동 초기부터 각 교회는 금주·금연을 통해 주초비를 저축하여 계를 조직한다든가 공동농사를 추진하기도 하였다.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보다 구체적 성과를 보였다. 본격적인 소비조합운동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소비조합 설립운동은 ‘죠션교회의 나아갈 길’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절제운동은 교회연합운동 차원에서 초교파적으로 전개되었다. 예를 들어 조선기독교연합공의회는 매년 음력 1월 15일을 ‘전조선절제주일’로 지키기로 했다. 특히 1933년을 금주년으로 정해 대대적인 가두시위를 벌이고 전국 각 교회에서 동일한 순서로 금주선전을 추진하였다.14) 금주·금연 절제운동은 명실공이 ‘사회를 개조하는 사회운동’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이 시기에서 주목할 것은 이전에 비해 금주의 논리가 정밀해졌다는 것이다. 술이 몸과 마음에 해독(害毒) 된다는 점을 의학적·과학적 논거를 들어 제시하고 있다.

음주가 신체에 여(與)하는 해독을 거(擧)하면 심장마비, 혈관경화증, 뇌출혈, 면역소파괴, 매독, 결핵, 뇌막염, 정신병 등등이라 한다. 더욱이 두려운 것은 음주의 해독이 호올노 자신에 지(止)할 뿐이아니오 자손후대에 까지 유전됨을 증명하였다.15)

술은 신체의 장기, 즉 심장을 마비시키고 혈관을 딱딱하게 하고 뇌출혈을 유발하여 몸을 위태하게 할 뿐만 아니라, 면역소를 파괴하여 신체를 약하게 만들어 버리는 몸 건강에 아주 나쁜 존재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더욱이 신체에 대한 폐해는 자신의 몸에만 그치지 않고 자손후대에까지 유전으로 전이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술은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에도 치명적인 독소를 갖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독일 의학박사 삘-씨 론(論)에 의하면 ‘주독(酒毒)은 혈구(血球)에 변동을 주어 뇌의 작용을 운둔(運鈍)케 하며 심하게 되면 경뇌막(硬腦膜)에 마비를 생(生)하야 정신운동이 저능하고 운동신경의 민활(敏活)한 활동력을 멸살(滅殺)식히며 결국은 정신이상까지 기(起)케 된다’고 하엿다. 그리고보니 금일(今日)에 우리 민족이 일반적으로 태정(怠情)하고 일하기를 실혀하며 낫잠을 조화하고 쾌활(快活)치 못한 것이 민족의 근성이 아니오 우리 선조의 과음한 인과적(因果的) 증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16)

음주는 뇌의 작용을 둔하게 만들어 뇌의 마비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운동신경을 말살하여 정신이상에 빠질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더욱이 우리 민족이 게으르고 노동을 기피하고 성격이 쾌활치 못한 것은 민족의 근성 때문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예로부터 과음을 했기 때문이라고 그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한편 이 시기에는 금주의 이유를 성서에서 찾고자 했다. 몸과 마음에 해독한 술인 바, “하느님께서 신성으로 거하시고저 하시는 성전이 된 우리 몸에 다가 미치게 하고 악하게 하는 술을 퍼 넣으며 담배내를 피워서 더럽게 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큰 죄악”으로 여겼다.17) 즉 고린도전서 6장 19-20절에 의거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성령의 전(殿)’인 우리 몸을 술과 담배로 망쳐서는 안된다는 논리이다. 뿐만 아니라 좪신학지남좫의 기고문에는 금주의 근거가 되는 성서구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18) 인용하면, 레 10:9, 잠 20:1, 잠 23:20-21, 잠 23:29-30, 잠 31:4-7, 사 5:11;22, 마 24:47-51, 눅 21:34, 롬 13:13, 엡 5:18 등이다. 다시 말해 금주의 논리를 종교적 이유에 근거하기 위해서 ‘영혼구원’ 등의 논리로 제시하기 보다는, 성서에서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훨씬 설득력을 더해 가고자 했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음주는 조선사회의 민생경제를 위협하는 해독으로 인식하고 있다.

주초(酒草)의 소비액은 실(實)노 놀날만하다. 최근 일년간에 조선의 주대(酒代)는 구천삼백여만원, 여귀에 연초대(煙草代)를 가(加)하면 적어도 일억사천만원 이상, 아 근난(饉難)한 우리 살님에 얼마나 거대한 소비인가. 동포의 팔할(八割)이 농민이라고 하면 이는 모다 그들의 혈한(血汗)이 석긴 신성한 재물이엇을 것이다. 이 거대한 금전(金錢)을 죄스럽게 낭비하는 배면(背面)에 빈곤한 세민(細民)은 얼마나 울고 잇스며, 기아선상(飢餓線上)에 방황하는 부상(不祥)한 생명은 그 수가 얼마나 많으냐.19)

즉 음주는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할뿐만 아니라, 우리 살림살이에 막대한 낭비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이 논자는 이외에도, 양심의 마비, 사회질서 문란, 육체상 해독, 정신건강 침해, 역사적 근거 등을 들어 금주의 이유를 조목조목 논하고 있다.
또한 이 논자는 금주의 방책으로서, 국법의 제재, 일반적 금주교육, 종교의 감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종교의 감화를 제일 중요한 방책으로 꼽고 있다. 왜냐하면 국법의 제재나 일반적 금주교육은 일시적 효과밖에 얻을 수 없는 피상적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철저하고 근본적인 방책은 기독교운동으로써 금주사업을 합리화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논하고 있다.

닫는 글
이상으로 한국교회 금주전통의 발자취를 대략 살펴보았다. 한국교회의 금주문화는 애초에 선교사들의 문명개화론적 인식에서 출발하여, 점차 종교적 이유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금주를 세례의 조건으로, 기독교인이 되는 본보기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다만 이즈음의 한국 기독교인들은 선교사의 권유에 이끌려서라기보다는, 스스로 이성적 판단을 통해 금주·금연을 실행했다. 이는 당대의 문명개화적 요청에 대한 적극적인 응답으로 여겨진다.
또한 3.1운동을 전후로 금주운동은 ‘사회를 개조하는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었다. 교회는 주초비를 저축하여 계를 만들어 상호부조에 충당하기도 하였고, 절제운동을 통해 소비조합을 설립하여 경제적 자강을 모색하는 데 앞장서기도 하였다. 이 또한 당대의 사회적 요청에 대한 한국 기독교인들의 적극적인 응답이었다.
현재 한국교회의 대부분은 금주전통을 교칙(敎則)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금주전통이 형성되어진 시대적 배경과 의미는 매우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국교회의 금주전통을 되짚어 보면서,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에게 요청되는 한국사회의 시대적 요청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이치만 l  교수는 일본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에서 교회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 한국교회사 조교수이다.


8.
역사적 관점, 현대적 시각 조명 술과 담배는 기독교에서 금하고 있는 식품? 언뜻 듣기에도 기독교와 술, 담배는 서로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비교적 술과 담배에 자유로운 자유주의 신학이 널리 퍼진 오늘날에도 술과 담배 때문에 신앙적 갈등을 겪는 성도들이 비일비재하고 신앙인이 술과 담배를 하면 곱지 않은 눈으로 쳐다보기 일쑤다.  술, 담배와 함께 한국교회 신자들이 갈등하고 있는 또하나의 문제는 제사 부분이다. 제사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내리기 위해 노력했으나 현재까지 명료하지 않은 상태이다. ‘신앙심이 깊어지면 자연스럽게 술과 담배는 끊어진다’는 목회자 혹은 신자들의 말처럼 신앙심이 깊어지면 술과 담배를 끊을 수 있다는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 ‘제사는 우상숭배로 기독교에서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 신앙의 시작에 걸림돌이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여러 가지 의문점을 갖고 있지만 오늘날 우리 교회는 아직 술과 담배, 그리고 제사문제에 자유롭지 못하다.  떳떳하지 못한 기독교인의 술과 담배, 그리고 정립되지 못한 제사문제에 대한 역사적 관점과 현대적 시각에서 짚어본다.한국교회의 숙제 `술·담배' 대부분 알고 있겠지만 사실 술과 담배의 부정적인 시각은 초기 선교사들에 의해 갖게됐다. 하지만 선교사들이 처음부터 술과 담배를 금한 것이 아니다. 한국교회사를 정리하다보면 성탄절에 술을 빚어서 교인들과 함께 나누어 마신 일이나 예배 전에 담뱃대를 정렬해 두었다가 예배를 마치고 함께 담배를 피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1890년대 이후 선교사들은 한국 기독교에게 술과 담배를 금하는 운동을 일으켰다. 당시 중국에서는 선교사들이 아편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금지했으나 술과 담배 문제는 관대하게 처리했다. 초기 선교사들이 한국으로 직접 들어온 수보다 중국을 거쳐 들어온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같은 활동은 신앙적 내용보다는 사회 계몽적인 차원이 강했다. 그렇다고 단정적으로 사회 계몽적인 운동이었다고만은 볼 수 없다. 한국실천신학연구소 박세환 박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 당시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대부분 대중설교가로 알려진 무디나 R. A. 토레이 또는 조지 휫필드의 영향을 받은 보수 청교도주의자들이었다. 당시 보수 청교도주의자들은 신앙운동으로 내면적인 경건 운동을 펼쳤으며 음주, 금연은 물론 껌을 씹는 것이나 연극을 보는 것까지 금할 정도로 삶에 직접적으로 필요 없는 것들에 대해 철저히 금하고 있었다.” 당시 금주, 금연 운동은 부정적 사회상과 박세환 박사의 말처럼 신앙적인 면을 정화하기 위한 모두를 내포한 운동이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렇듯 선교사들에 의해 금주, 금연 운동이 펼쳐지자 금주, 금연 운동은 각 교단별로 확대되어 진행됐다. 감리교는 이미 1894년부터 금주정책을 펼쳤으며 같은 해 8월에 모였던 감리교 선교회에서는 교회의 금주 입장을 공식적으로 결의했다. 또한 장로교도 비슷한 시기에 금주, 금연을 강조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금주, 금연을 강조했던 단적인 예가 장로교회인 새문안교회가 음주자를 치리했다는 기록이 있다. 새문안교회는 음주 행위를 4중적 범죄로 규정하였는데, 첫째는 하나님께 범죄하는 일, 둘째는 교회 법을 어기는 일, 셋째 부모, 형제, 처자에게 광언지설(狂言至設)하는 일, 넷째 자기 몸을 망하게 하는 일로 보았고 실제 이 문제로 인해 교회에서 쫓겨난 사람도 있었다. 이와 같은 일련의 금주 단연 운동의 결과로 한국교회 초기부터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술 담배를 끊는다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이해됐다.  그러기에 한국교회 전통에서는 주일성수, 제사 중지, 노름 및 도박의 금지, 축첩(蓄妾) 금지 등과 함께 금주 단연은 세례 받을 때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었던 다짐이었다. 그러나 당초 대사회적 운동과 신앙적인 부분이 하나가 되어 시작되었던 금주, 금연 운동은 어느새 신앙적인 척도로 자리잡아왔다. 최근은 담배와 음주에 대한 폐해가 과학적인 방법으로 속속히 드러나면서 점차 목소리가 줄고 있긴 하지만 술, 담배 금지에 대한 기독교인의 반발도 없다고는 볼 수 없다. 얼마전 A 교회 황 모 장로는 술, 담배로 인해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한국에 방문한 한 미국인 목사님을 접대하던 중 미국인 목사님이 아무 거리낌없이 담배를 꺼내 들었던 것이다. 그 뒤로 황 모 장로는 자신이 배워온 신앙관으로서는 담배는 분명히 금지되어 있는데 꽤 저명한 목사님이 담배를 피는 모습을 봤으니 갈등할 만도 하다. 어떤 이는 술, 담배를 금했던 당시의 상황과 현재는 경제적으로나 사회계몽적인 차원에서도 현저히 틀리고 술과 담배가 가지고 있는 사회화의 기능, 즉 술 담배를 통하여 스트레스를 풀고, 서로 대화를 나누며, 나아가 가까운 사이가 된다는 것에 대한 긍정적 면은 어떻게 해소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기독교에 던지고 있다. 그렇다면 술과 담배는 신앙의 척도가 될 수 있는가? 황 모 장로나 질문을 던진 사람의 문제는 술, 담배에 대한 신앙적 해석의 모호성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해 박세환 박사는 “기독교의 전통주의가 자유주의 신학론 때문에 변질된 결과”라고 말한다. 본지에서 창간 25주년을 기념해 기독인들을 대상으로 ‘기독인의 술, 담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으로 설문조사 실시, 총 179명 중 126명(70.3%)이 반대의사를 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과 담배는 이미 알게 모르게 기독인들 사이에 넓게 퍼져 있다. 이 설문조사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기독교인의 많은 수가 술, 담배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미 많이 보편화되어 있음에도 거부를 표하는 것은 술, 담배에 대해 그만큼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직장사역연구소 윤여길 목사는 이같은 모습이 사회적 관점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기독교에서 술, 담배를 거부한 것은 하나의 문화였지만 지금은 윤리화 되었다. 다른 사람의 이목이 ‘기독교인은 술, 담배를 하지 않는다’는 관점이 스스로를 억압해 자꾸 숨게 되는 것이다.” 또 이러다 보니 교회에서는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으로 사회에 나가서는 술, 담배에 자유로운 사람으로 인식되어 ‘신앙의 이중성’을 나타낸다. 하지만 아직도 숨어서 담배 피고, 술마시는 기독교인들은 어쨌든 마음이 복잡하다. 일반적인 통념대로 예수 믿고 신앙이 깊어지면 술, 담배는 자연스럽게 끊을 수 있단 말인가. 극단적인 표현일지 모르지만 그렇다면 술, 담배 하는 사람은 신앙이 없단 말인가.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한 답변을 자신 있게 할 수는 없다. 이제 술과 담배를 교리로 정하는 시대는 어느 정도 탈피했다고 볼 수 있다. 많은 목회자들이 술과 담배가 신앙의 척도가 될 수 없음을 말한다. 그러나 어느 목회자도 술, 담배에 관한한 쉽게 말하지는 못한다.  결국 기독교인들의 술, 담배문제는 `신앙의 이중성'이라는 문제에 봉착한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이에 대한 명확한 정립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문제가 돌출했다면 이제 한국교회가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야할 때가 된 것이다.제사문제는 어떠한가? 제사의 문제 역시 처음 시작은 한국에 들어온 초기 선교사들의 반대에서 비롯되었다. 제사문제는 역사적으로 볼 때 술과 담배와는 달리 처음부터 거부했다. 1883년 서상윤이 만주에서 세례받고 돌아온 이후 1891∼1897년까지 세례자의 서약 일곱가지중에 제사를 거부하는 약속을 하게 했다. 때문에 당시에 신앙을 택하기 위해서 매우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당시 제사의 문제가 거론된 이유로는 제사로서 돌아가신 부모를 잘 모시면 자손이 복을 받고, 재액이나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 동기가 있다. 죽은 자를 대상으로한 신앙이요,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예배가 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것은 우상숭배가 되는 것이고 이는 십계명중 1계명 `다른 신을 섬기지말라', 2계명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에 어긋난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제사문제로 비교가 되는 곳이 가톨릭이다. 가톨릭은 지금도 제사를 허용하는데 사실 가톨릭 역시 처음에는 제사를 반대했다. 처음 가톨릭은 유교의 제사에 대해 비판적 입장 취했고 신자들이 신주를 불태우고 제사를 거부하자, 전라도의 윤지충, 권상연 등이 순교 당하는 신해박해 사건이 1791년에 발생하는 등 강경한 입장있었다. 그러나 1939년 로마교황청이 제사 문제에 대해 새로운 입장을 표명 했고 신사참배나 조상숭배의식은 종교의미가 아니라 시민적 의식(civil rite)이라고 교황 피우스12세가 교서를 내린 이후 제사가 허용됐다. 물론 가톨릭 내부에서도 제사에 관한 논란은 여전히 존재한다. 본지에서 조사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응답자 총 179명 중 135명(75.4%)이 제사 참여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반면 제사를 드려도 된다고 응답한 수가 29명(16.2%)에 불과해 아직까지 제사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강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결과는 대체로 한국교회가 제사문제에 대해 우상숭배로 강하게 교육해 왔고 십계명에 우상숭배에 대해 철저히 금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제사 문제에 관해서 색다른 해석이 나오고 있다. 요즈음 와서는 제사에 대해 미신적인 요소보다도 부모나 조상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이고 우리 민족의 고유한 풍속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생겨났다. 즉 의무로써가 아니라 가정의 평화, 일치를 이루기 위한 것이고, 나쁜 것이 아니고 오히려 더 좋은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신학적 결론이었던 하나님과의 약속을 깨뜨리고 제2계명을 거스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제사문제에 대해 보수적인 견해도 만만치 않다. 제사문제에 대해 철저히 거부하는 이유로는 제사가 철학적으로 과거지향적인 순환론적 사고론이라는 것이다. 또 대부분 누가복음 16장의 말씀을 근거로 죽음 후 영과 육이 분리되었을 때, 산자와 죽은 자의 대화는 두절된 것으로 설명하고 제사를 산자와 죽은자의 만남으로 여기는 자체가 신앙적 모순이라고 말한다. 현재 기독교는 제사대신 추도예배나 추모예배를 드린다. 사실 추도예배는 1904년 중국의 중앙선교협의회가 조상숭배와 기독교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조상제사 대신 추도식을 가진 것이 기원으로 볼 수 있는데 그 이후에도 `무당적 요소'나 `기복신앙적 요소'가 있다고 해서 많은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것 같이 현재는 기독교는 대부분 추모·추도예배를 권장한다.  추모·추도예배가 제사를 못드리게 하는 대신 만들어진 것이지만 제사처럼 특별한 형식은 없다. 때문에 형식에 대해 여러가지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그런데로 경동교회가 좋은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경동교회에서 제시하는 추모예식은 기본적으로 검소하면서도 정성을 다하되 기독교인으로서의 신앙정신에 어긋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상제례 특히 추모제(기제사) 때에 고인의 사진이 없어 추모제 의식에서 “중심(中心)의 상징”이 필요한 경우에는 위패나 지방을 써 붙이지 아니하고 그 대신 “OOO씨 제 O주기 추모제”라고 화선지에 쓰고, 그 아래에 짧은 성경구절을 써 붙이고 추모식을 거행하는 것이 좋다고 제시하고 있다. 늘 문제시 되어왔던 절에 대한 색다른 해석이 돋보이는데 절이라는 형식을 예(禮)표현의 고유한 양식으로 보고 굳이 `절하는 예법'으로 되돌아 갈 필요는 없으나 가족과 일가 친척 중에서 때와 장소를 따라 `절하는 예법'으로써 조의, 추도, 추모의 뜻을 표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는 것은 신앙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함이 중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밖에도 상제례시에 제사상 위에 음식물을 진설하는 문제는 고인이 생시에 즐기던 음식을 중심으로하여 정성스럽게 음식물을 마련하거나 고인의 수의 문제에 대해서도 복식예법에 필요한 형태로서 간소화한 수의를 입히는 등 나름대로의 예법을 설명한다. 하지만 추모예배가 제사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이 신앙의 내부적인 충돌이 있음에도 대부분의 교회가 제사에 대한 구체적인 지도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몇몇교회는 장례식과 기타 의례준칙을 그런대로 갖추고 있어 좋은 지침을 제공해 주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교회는 제사에 대해 타협이 없다. 새신자 중에는 이 때문에 교회에 적응하기 힘들어 하기도 한다. 특히 아직 유교적 풍습이 강한 상황에서 제사 반대만 고집하다가는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또 실제로 여러 곳에서 이미 제사 문제로 충돌을 겪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조건 반대의 입장을 내세웠던 한국교회는 여기저기 유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긴 하지만 수천년간 내려온 유교의 풍습을 기독교가 아무런 변질 없이 수용한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며 제사를 기독교 신학에 맞춘다는 것이 애초부터 문제가 된다. 제사문제는 여전히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숙제 그러나 더이상 고유한 한국의 문화를 뒤로한 채 서구 기독교의 문화 속에만 머무르는 것을 탈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기독교 정신을 살리며 우리 고유한 문화와 접목시키는 작업, 그것은 이 시대를 사는 기독인이 마땅히 심사숙고 하며 내놓아야 할 과제다. 최성주 기

출처 : 복음인(http://www.ingn.net)

9.음주와 흡연에 대한 성서적 고찰 / 보수적 견해 / 진보적 견해

1. 술
(1) 술의 기원
술의 기원에 대하여 신화(神話)로 전해진 것은 에집트(EGYPT)에서는 오시리스(OSIRIS) 신이 곡물신에게 곡물로 술을 빚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하며, 희랍신화에는 박카스 신이 포도를 재배하는 방법과 아울러 포도주를 빚는 방법을 전했다 한다. 그리고 아르메니아의 스펜다라메트, 시리아의 몰로크, 리비아의 오라탈, 인도의 소마신(蘇麻神), 일본의 스사노오느미고도가 술을 만들었다 한다. 중국에서는 우왕의 딸 이적이 곡주를 만들어 드렸더니 우왕은 이것을 마신후 이 술로 인하여 후세에 반드시 몸을 망칠 자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한다. 이 술은 5천년전부터 있어 왔는데 한문자로 주(酒)는 두강(杜康)이 계세유시(癸歲酉時)에 양조를 시작 해서 "水"변에 "酉"자를 붙인 것. 또는 술독에서 더운 김이 나는 것과 술을 먹는 사람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합해서 "酒"자가 되었다고도 한다. 일본의 サケ는 시르게의 전용이라 한다. 이 술에 관하여 하무라비 법전(Code of Hammurabi, B.C1728-1676) 108-111조(주점(酒店)에 관한 법률)에는 술집 주모의 범죄는 사형, 화형, 투수(投水)로 처형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술에 대한 설화는 고구려의 동명왕 주몽이 천제(千帝)의 아들 해모수가 응심연가에서 하백의 딸 3형제를 취하려 할 때 미리 술을 만들어 먹여 취해서 수궁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세 처녀 중에서 큰딸 유화와 인연을 맺어서 주몽을 낳게 되었다는 고구려 건국담이 있다.
삼한시대 이전에도 제사와 잔치에 술을 썼고 동이전에는 마한에서 5월과 10월에 신에게 제사할 때 술을 썼으며 고구려전(傳)에는 신라주가 중국에까지 갔고, 고려시대에는 절에서도 술을 파는 폐단이 있었다고 하였다. 탁주, 청주이외에 소주도 고려시대, 이조시대에 유행되었다. 그리고 백제 다루왕 시대의 금주령, 세종대왕 26세시 금주권고, 중종, 효종, 숙종, 경종, 순종 시절에 때에 따라 술을 금한 사실은 이 땅의 술의 기원이 오래 되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2) 성경과 술
성경에는 술에 대한 7가지 난제(難題)가 있는데 그것은 아래와 같다.
 1) 바울이 디모데에게 포도주를 마시라고 한 것(딤전 5:23).
 2) 바울이 절주를 용납한 것(딤전 3:8).
 3) 구약시대에 제주로 사용한 것(민 15:5).
 4) 인심과 생명을 즐겁게 한다는 것(시 4:7).
 5) 멜기세덱,  족장들,  다윗의 음주(창 14:18, 대하 32:28), 성전의 수장(느             5:18).
 6) 예수의 포도주 사용(마 11:19).
 7) 예수의 가나 혼인잔치의 기적(요 2:1-11)(예수님은 사람에게 해로운 것             은 만드시지 않으신다).
그러나 신구약 66권에서 술에 관계된 귀절 중 직접관계된 귀절은 212 귀절, 간접 관계된 귀절은 175귀절, 총계 387귀절이 있다. 이와같은 성경귀절을 살펴볼 때 성경의 금주훈은
  1) 술에 그 몸을 태운다(사 5:11).
  2) 술 취하는 자는 가난하여 진다(잠 23:21).
  3) 술에 미혹되는 자는 지혜가 없다(잠 20:1).
  4) 술을 즐기는 자는 사악한 자다(합 2:5).
  5) 술을 마시고 법을 잊어버린다(잠 31:5).
  6) 재앙, 근심, 투쟁, 번민이 있는 자다(잠 23:29-30).
  7) 술 취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지 못한다(고전 6:10).
  8) 술의 위험을 경계하다(잠 23:31).
  9)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
 10) 참된 신앙생활은 술보다 더 기쁘다(시 4:7).
그 밖에 금지된 귀절과 실례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 역사문학에 나타난 것(레 10:9, 민 6:2-3, 신 29:5-6, 삿 13:4-14, 삼상              1:12)
  2) 지혜문학과 시편(잠 4:17, 21:7, 23:29, 31:4-5, 전 2:10, 10:19, 시 60:3,               107:27).
  3) 선지서(사 5:11, 12, 22, 28:7, 렘 35:14, 겔 44:21, 단 1:8, 5:3, 호 4:18,               7:5, 14, 암 4:1, 6:6, 미 2:11).
  4) 신약의 교훈(마 24:49, 눅 1:15, 7:33, 고전 5:11, 6:10, 갈 5:21, 살전 5:7,             딤전 3:3, 딛 1:7, 벧전 4:3).
  5) 성경의 술의 악한 실례
       노아의 추태(창 9:21), 룻의 딸들의 패륜(창 19:33), 금송아지 앞의 잔             치(출 32:4), 아론의 아들들의 급사(레 10:2), 세겜 사람들의 장담(사               9:27), 나발의 완고함(삼상 25:36), 아말렉의 참패(삼상 30:16), 우리야를             속임(삼하 11:13), 벤하닷의 패주(왕상 20:16), 아하스에로의 왕후 파면             (에 1:10), 벨사살왕 망국(단 5:4), 헤롯의 요한 참살(막 6:27).
  6) 금주가의 모범
       나실인(민 6:3), 마노아(삿 13:14), 레갑사람(렘 35:14), 다니엘(1:8,15),  세례 요한(눅 1:15).
노아가 포도를 재배할 때 악마가 와서 도와준다면서 양, 사자, 돼지, 원숭이의 썩은 피를 포도뿌리에 거름으로 주었다. 그러므로 포도주를 마시면 처음에는 양같이 순하다가 사자같이 사납고, 돼지같이 더럽고, 원숭이같이 추태를 부리게 된다는 것이다(탈무드).
(3) 술의 정체
 1) 술은 영양물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술은 쌀, 보리, 고구마, 옥수수, 과실 등으로 빚는데 당분이 있는 액체에 효모균을 섞으면 발효해서 산소와 비타민은 없어지고 무수탄산과 알코올 곧 주정(酒精)이 되어 버린다.
영양물은 ① 질소를 포함한 단백질물로써 신체 조직을 구성하는 구성적 영양물이요, ② 질소가 없는 전분 및 지방으로 연소해서 열을 발하는 호흡 영양물이다. 그러므로 쌀술 보리술은 쌀, 보리의 영양가를 그대로 지닌것이 아니다.
빵 두개는 한상자의 맥주보다 더 영양이 있다. 빵은 신체안에 저장되어 유조(有助)하지만 술성분은 위에 남아서 소회되지를 않고 즉시 혈액에 혼합되며 물에 녹은 알코올은 오줌으로 방출되고 호흡으로 즉시 발산해 버린다. 또한 맥주를 먹으면 배가 나오는 것은 덜 연소된 지방이 축척되기 때문이다. 만국의학 대회에서는 "알코올은 인체에 들어가서 영양의 효력은 전연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2) 백약지장(百藥之長)이 아니다.
한의학상으로 술은 덥게 하며, 불순한 기운을 헤치고, 적제된 울분을 내리며, 부간(扶肝), 양비, 후장위(厚腸胃)하고 피부를 윤택케 한다고 하지만 현대의학은 알코올은 생성세포를 죽이는 독물로써 발광, 간질, 정신허약, 신체 퇴폐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3) 술은 마취제요, 극약이다.
술을 마시는 것은 취하는 맛 때문인데 취한다는 것은 마취작용이다. 술은 아편, 몰핀, 코카인과 같이 마취작용을 하여 세포의 원형질 가운데서 생리화학적 산화작용을 방해하여 근육의 동작, 신경, 정신의 기능의 둔화되어 지혜와 판단이 흐려지게 됨은 사격실습, 인쇄공의 채자( 豆), 학생의 수학, 운전기사의 위험감각이나 속도조절 등의 실험으로 그 사실이 입증되었다.
 4) 술의 습관성
술은 먹을수록 내주성과 내약성이 생겨서 중독이 되고 습성화해서 그 강도가 더해간다. 초기에는 대단치 않지만 그것이 습관화 되므로 그 노예가 되어서 인격적 자유를 잃게 된다.
 5) 무서운 착각 현상
착각현상이란 오관기(五官器) 신경 또는 정신적 지각의 부분적 마취로 생기는 현상인데 그 착각 현상은 아래와 같다.


 6) 술과 변질 현상
술은 세포와 신경 마취, 착각케하고 조직 세포를 변질케해서 영구적으로 퇴화케하여 간장경변, 신장위축, 심장의 지방변성, 혈관의 경화, 중병, 불치병에 걸리게 한다.
 7) 술은 면역성을 파괴한다.
백혈구를 감약케하고 적혈구를 파괴한다. 술을 많이 먹는 자는 금주가보다 3배나 병에 더 잘 걸리며 12년간을 단명한다고 한다.
(4) 술의 해독
 1) 건강의 적
알코올이 신체 각 부분에 끼치는 영향을 살펴보면,
a. 수분을 흡수하고 또 지방을 용해한다.
b. 마취작용을 일으킨다.
c. 뇌의 고상한 기능을 둔하게 한다.
d. 내장의 여러 기관이 알코올에 침식된다.
e. 중독성 해독.
f. 기만작용과 신경 파괴 작용.
g. 병에 대한 면역을 약하게 한다.
세부적으로 말하면 구공과 소화기(위장)을 해치며 심장, 혈관(동맥경화증), 간장(간경변증), 신장, 뇌 및 신경계통(정신병), 비만증, 피부병, 신진대사기 병, 결핵, 성병 등 각 병에 미치는 그 해독은 막대하다.
그 밖에 골치 때리는 주범(主犯)은 알데히드. 흥분제가 아닌 마취제이며 농도에 따라서 머리복잡, 수다스럽고, 걱정을 잊고, 다행감, 과대망상, 잔소리, 불평, 혼수, 전신마취,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도 한다. 술독 근처만 가도 취하고 알콜성 지방간은 48-72시간이 지나야 정상화되고, 간염, 간장염의 만성화, 판단력 감퇴, 작업능률 저하, 기억력, 학습력 저하, 혈액 100cc중 알콜 300MG면 급성중독, 다발성 신경염, 정신장애, 사시, 혈압상승, 영양실조, 천치의 원인이 된다.
 2) 유전과 우생학
알코올 중독으로 인하여 신체 구성 물질 가운데 특히 생식세포가 그 영향을 많이 받아 손상을 입게 되는데 손상을 당하게 된 그 생식 세포로부터 발생하는 후손의 신체 또는 생식 세포에 결함이 생기게 하고 그 후손 역시 그와같은 불구적 생식 세포로 결함이 되어 그 후손들에게 결함을 전통 또는 유전케 한다.
 3) 술과 생명
① 음주가의 사망율, ② 음주가와 금주가의 생명비율, ③ 음주가와 금주가의 연령별 사망 비교표, ④ 보험가입자의 사망율 조사표, ⑤ 유아 사망율과 술, ⑥ 술꾼의 변사와 자살 등의 여러 통계표를 대조해 볼 때 음주가의 수명이 금주가의 그것 보다는 단명함은 확실하다.
 4) 술과 빈곤
술은 빈곤의 어머니다. 경제생활에서 본다면 빈곤의 최대 원인은 술임에 틀림없다. 영국에서 25%, 미국에서 24%, 독일에서 22.5%가 빈곤의 원인이 술이라는 것이 조사된 바 있다.
 5) 술과 능률
타이프 타자, 인쇄 식자공, 군대 행진, 사격명중, 시력측정 등에서 술로 인한 능률 저하가 증명되었다.
 6) 술과 범죄
주해(酒害)의 실증으로 음주 발악, 취중 만용(蠻勇), 취중 폭력 살인, 취중 윤리범, 취중 가정윤리 파괴, 취중 잔인무도한 악행, 음주 결례, 음주 변태 심리, 취중 강력범, 술꾼의 사교 실례, 취중 교통 재해 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한국 절제 교육연구 사료집 송 상석편에는 술의 해독의 실증으로써 1933년부터 주요 일간신문에 보도된 천여종의 사실을 스크렙 하였는데 그것을 보면 술의 해독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술은 교통사고의 원인도 된다. 또한 술은 이성과 양심을 마비시켜 파렴치한이 되게 하여 음란한 죄도 예사로이 범하게 되며, 난폭한 습성을 가진 자는 살인도 불사하는 예가 있다(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다음은 술이 술을, 마지막으로는 술이 사람을 삼킨다).
(5) 알코올 중독자에 대한 이해
 1) 알코올 중독이 되는 원인은 무엇인가?
① 생리적 문제가 따르는 신체적 원인 곧 내분비선의 분비가 고르지 못한데서 오는 경우. ② 심리적 원인으로서 알코올 중독은 심중의 문제들을 반영시킨 한 증상에 불과하다. 그네들은 마음과 인격에 병이 들었기 때문에 술을 마시고 이로써 이중으로 병을 악화시킨다. ③ 사회적 원인으로는 돈을 벌며 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술은 매력적 남성적 사교에 절대 필요한 것, 대인 관계에 꽃을 피우는 것, 그리고 인격 조절을 하는 매개물이라고 한다. ④ 철학적 종교적 요소로는 철학이나 종교에서 밝히듯이 생의 근본적 불안이 해소되지 않을 때 술에 탐닉한다.
 2) 중독자에 대한 지도자의 태도
① 윤리문제나 도덕적, 경제적 책임 추궁 보다는 지도자를 신뢰하고 자기의 무가치성, 무의미성, 무능성을 자각하고 병에서 재기하고자 하는 용기를 주어 인격의 전체적 변화 성장에 집중할 것. ② 전문지식, 기술, 통찰력, 긴밀성으로 그들의 문제를 꿰뚫고 동참할 것. ③ 상담자로서 양심을 괴롭히는 직선적 설교로 권고를 하되 비위맞춤을 피하고 자원해서 도움을 구하려는 분위기 조성과 불안의 심정을 같이 느끼는 태도가 중요하다. ④ 복음의 약으로 접근하여 무한한 용서와 사랑으로 그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 들이고 마음의 병을 복음의 약으로 고쳐주는 절호의 기회를 포착할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 술을 끊게 된다. 그러나 술꾼의 교정은 지극히 힘들다. 그것은 재발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보의 기도가 있어야 한다. 잠시라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된다.
(6) 음주의 이유와 음주의 길
왜 술을 마시는가를 연구해 볼 때 여러가지 이유가 있으나 그것을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교제상, 원기 증가, 기분 전환, 습관성 등으로 대별되는데 또 다른 이유로는 남의 주의를 자신에게 집중시키기 위하여, 불만족의 애정대신, 이상과 현실의 갈등으로, 책임회피, 수치, 열등감에서 탈출시도, 실패를 망각하고자, 성적 부조화와 혼란, 공포 불안에서 해방, 자기 비판의 죄악감을 축출, 자기처벌 수단, 생리적 고통 완화를 위해서 술을 마신다. 이러한 음주를 하므로서 미치는 해독은 건강손실, 수명단축, 지혜혼탁, 타락에의 길, 낭비, 가정파괴, 자손악화, 범죄, 사회풍기 손상, 유전, 영혼 멸망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와같은 해독을 예방하거나 치료하고자 하면 먼저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할 터인데 어떻게 하면 금주를 단행할 수 있을 것인가를 살펴보도록 한다.
먼저 금주의 방법은 술의 해독을 깊이 생각하고, 술에 대한 그릇된 생각을 회개하며, 단연코 금주할 것을 결심해야 한다. 그리고 위에서 주시는 능력을 힘입고 즉시 금주를 단행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제 금주는 하였지만 어떻게 하면 금주를 계속할 것인가? 계속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금주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먼저 금주주위를 공표하고 술집과 술자리에서 멀리하여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고, 진격적(적극적) 태도를 취하며, 교회(신앙적 단체)에 소속, 예배에 참석하기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술-위궤양-위암-성병-심장병-충심(衝心)-뇌일혈-발광-유전-죽음-적빈(赤貧)-가족이산-아내의 고생-자녀의 눈물은 모두 동의어다. 이러한 것을 깊이 명심하는 것도 금주의 동기를 도울 것이다.
* AA운동(Alcoholics Anonymous)
주해자 익명회라 하여 교파나 종파, 정치 단체에 가담하지 않고 회원 상호간의 금주문제 해결에 노력하는데 일본에서는 단주신생회, 단주벗의회, 단주호조회 등의 명목으로 활동 중이다. 한국에서도 한때 금주 봉사회에서 시도한 적이 있다.
* 주객 감화원
스웨덴, 호주 등 여러나라는 주세(酒稅)의 일부를 법적으로 사용하여 술꾼 교정에 힘쓴다. 생활이 향상됨에 따라서 음주의 경향도 늘어나는데 교수, 기사, 기업가, 의사도 이 학습의 노예가 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자성관(自省館)을 열어서 50명을 수용하여 전문가의 지도하에 의학, 심리 및 신앙 감화로 구제를 추진하고 있다. 적당한 노동(폐품개작, 농장작업), 스포츠, 영화, 오락, 독서 등으로 심신의 위안을 주며 극히 실제적인 종교 예배로 감화를 주는데 6개월 혹 1년이 지나면 교정의 실효를 거두는 예도 많다.
(7) 한국인과 술
한국의 2천 4백만 술꾼은 1979년 한해 동안에 5,600억원어치의 술을 마셨다. 1973년에 1천 700억원이던 것이 엄청나게 증가하였다. 15가지 술 가운데 소주는 일인당 58명, 막걸리는 일인당 41되, 청주는 20세이상 남자가 평균 3병을 마신 셈이다. 5천억원이면 100억짜리 은행 50개, 50억짜리 대학 100개, 10억짜리 공장 500개를 세울수 있는데 이것을 마셔버린 것이다. 사무실이나 일터를 떠나 집으로 가는 길에 한 잔 마시는 자들은 모두 중독자로 간주될 수 있다. 각국의 술의 소비율은 프랑스, 이탈리아, 서독 순이며 미국이 13위, 일본이 21위인데 한국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2. 담배
(1) 담배의 기원
담배의 기원에 대하여는 여러가지 학설이 있는데(한국 절제 교육 연구 사료집), 대체로 원산지는 멕시코이며, 아메리카 토인들 사이에 퍼진것이 1492년 콜럼버스의 탐험대에 의하여 스페인에 전파되고 1558년 프랜시스코 퍼낼도스가 유럽으로 수입하였다. 16세기 말엽에는 포르투갈인에 의하여 인도, 동 아시아 및 일본에 전파되었다(일본은 1550-70). 한국에는 광해(光海) 10년 무오년(1618년)에 들어왔는데 처음 피운 사람은 계곡 장유씨라고 한다. 조선시대의 이익 선생은 이미 담배의 득실을 말하였는데, 유익된 점은 ① 담이 목구멍에서 잘 나오게 하고, ② 기(氣)역하고 침이 돌때, ③ 음식이 소화가 잘 안될 때, ④ 체하여 토산할 때, ⑤ 추울때 어한에 좋다고 하였다.
한편 해로운 것은 안으로 ① 정신을 해하고 밖으로 이목을 해하고, ② 두발이 속히 희게하고, ③ 얼굴이 창백하여지며, ④ 이가 삭고, ⑤ 피육이 여위고, ⑥ 속히 늙고, ⑦ 악취, ⑧ 재산소모, ⑨ 허송세월이라고 지적하였다.
(2) 담배의 해독
중추신경 계통 - 손떨리고 어지럽다.
심장맥관 - 심장고동 증가, 혈압 상승.
호흡기 계통 - 구공, 인후, 성대, 기관지 자극 - 기침.
소화기 - 식욕감퇴, 혈액순환 지장.
혈액 - 적혈구중 일산화탄소 증가 - 산소 운반율 감퇴
벤즈피렌 14종 - 발암 물질포함 - 간암 유발
* 흡연학생의 성적불량표
10-17세 학생들을 상대로 하여 뉴욕의 D.L 로드교수가 담배를 피우는 학생과 담배를 피우지 않는 학생을 조사하여 나온 통계는 다음과 같다.


"냄새나는 호흡, 더러운 침, 구강암, 더러운 이, 피부 원동력이나 운동 능력 감소, 생산능력 격감, 7년 수명 단축, 둔한 두뇌, 약한 정신, 도덕적 및 정신적 감각 괴멸, 끊임없는 욕구불만의 노예, 위궤양, 미음미용(美音美容) 상해, 이(齒) 손상, 불면증, 영양실조"(岡田道 박사의 "煙草"에서).
담배는 ① 신경 진통제 ② 식욕증진 ③ 변비조절 ④ 살균 - 결핵균 사멸 ⑤ 살빼기 ⑥ 위안을 준다는 말은 합리성이 없으며 담배는 백해무일리(百害舞一利)일 뿐이다.

오늘의 연초독설(煙草毒說)
하루 1갑 이상을 피우면 수명은 6년이 단축되며 폐암 등으로 인한 사망율도 24배나 된다. 흡연하는 자는 비흡연자보다 사망율이 32%나 높다. 그리고 흡연자의 심장병, 혈관병, 기관지염, 늑막염, 폐기증, 위궤양, 12지장궤양, 간경변 등에 의한 사망율도 역시 높다. W.H.O(세계 보건기구)는 "자살이며 타살 행위다"고 강경하게 경고하였다.
담배는 니코틴 등 화학물질 200여종이 포함되어 있고, 그 중 타르색소는 발암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850℃에서 생성된 벤즈피렌은 실험 결과 쥐의 피부에서 암이 발생하였다. 담배의 니코틴 흡수량은 한개비에 1mg인데 급성중독이 되면 설사, 호흡이 거칠어지며, 마비 현상도 나타난다. 특히 임산부가 흡연을 하면 태아가 성장하는데 지장이 있다. 그리고 1일 25개피 피우는 끽연자는 사망율이 비끽연자보다 40배에 달한다. 간경변증에 의한 사망율도 역시 높으며, 동맥경화를 촉진하며 발병 가능성은 2배나 높다. 이 니코틴은 뇌에 허혈 발작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렇게 많은 해독성을 지닌 담배는 서인도의 토바코라는 섬이름에서 유래하였다하며 니코틴은 1868년 빈(오스트리아)에서 존 니코트에 의해서 발견되었으며 그 중독 현상은 1868년 하인리히 및 투워루아크에 의해 밝혀졌으며 그 화학적 구조식은 1893년 빈네르에 의해 밝혀졌다.
(3) 담배를 피우는 이유
국제 금연 협의회 조사에 의하면 담배를 피우는 이유는 어른 세계를 향한 도전과, 호기심,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리고 조상문씨의 조사에 의하면 호기심에서(30.8%), 친구와 어울리기 위해서(17.8%), 맛이 있어서(7.3%), 어른된 기분으로(6.5%)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왜 담배를 피우는가를 살펴볼 때 그 유형은 다음과 같다.
자극형 - 자극을 찾아서 - 피우고 싶고, 기분전환, 잠 깨우려고.
심심해서형 - 만지작 거리고, 불붙이고, 비벼서 끄는 취미.
쾌락형 - 끽연 자체에 쾌락을 느낌.
마음의 의지처형 - 울분, 불유쾌, 걱정, 속상할때 피움.
갈망형 - 안절부절하며 못참고 몹시 피우고 싶음.
습관형 - 무의식중, 재떨이에서 타는데 또 새 것을, 또는 입에 물고 있는 것                도 잊고서.
주전 3천년에 애굽에서 태양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예식에 대마초 끽연을 했고, 주전 7백년 흑 6백년에 헬라에서도 종교적 의식으로 대마초를 끽연했다. 서력 기원 초기에 담배 요법으로 환부에 연기를 쏘이게 했고, 주후 470 -620년간에 마야족도 종교의식으로 끽연을 했다. 곧 뿌리가 깊은 것이 습관 형성의 연유가 된 것이다.
(4) 한국인과 담배
1978년 한 해 동안에 한국의 끽연 인구 1천만명이 632억개비의 담배를 피워 1인당 6,320개비 곧 316갑이었다. 그 길이를 합치면 지구에서 달까지 7.6회, 서울에서 부산까지 6280번 왕복할 수 있는 길이다. 그리고 그 금액은 5,365억원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담배 생산량은 세계 제 8위, 수출은 세계 제 4위, 단보당 생산실적은 제 2위 그리고 1일 개인 평균 소비량은 14.9본(미국 10.4본. 영국,일본 각 8.8본, 서독 7.2본, 이탈리아 5.2본, 프랑스 5.1본)으로 세계에서 첫번째이다.
근자에는 학생층에도 담배피우는 자가 많아 중고교생 5명중 1명이 담배를 피운다하며 특히 여대생 가운데도 그 수효가 상당수에 이른다 한다. 한편 일본은 남자 2,915만명, 여자 647만명이 년간 2조8천5백70억 7,800만엔을 담배값으로 지불했으며, 미국은 5,300만명이 6,200개비를 피웠다. 그런데 1972년경에 한국인구 300만명 끽연자가 연간 1천억원 어치의 담배를 태운다는 보고가 있었는데 위의 수치로 보아 엄청난 증가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우리의 문제는 젊은 기독교인의 끽연 현상의 만연인데 어떤 조사에 따르면 아래와 같다.
 1) 얼마나 피우는가?
1일 1갑 정도 : 25%,   2일 1갑 정도 : 37%,
1일 2갑 이상 : 6%,   가끔 : 10%,
절대금연 : 19%,    불답 : 3%
 2) 왜 피우는가?
정신 해독 : 23%,    심심풀이 : 22%,
대인 관계 : 20%,    습관 : 19%,
자극 : 9%,     기타 : 7%
 3) 왜 안피우는가?
불건강 : 57%,    생리적 혐오 : 21%,
비위생적: 12%,    죄책 : 10%
 4) 피우면서 갈등을 느꼈는가?
다소간 : 7%,    전연 안느낌 : 43%,
약간 거북스러움 : 42%,   불답 : 8%
 5) 교회의 흡연 문제 해결책은?
금지 : 8%,     불간섭 : 52%,
절제권장 : 37%,    불답 : 3%
이 조사는 교회 안에도 끽연의 악습이 만연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것은 교회가 시대의 추세를 따라서 추종되는 현상임을 말하는데 반면에 절대 금연을 고수하는 자도 많다.

3. 교회의 절제운동
3세기 교회생활 특징의 하나는 금식, 독신주의 수도원 생활이었고, 성 프랜시스 교단의 기초는 눅 9:1-6, 마 16:24-27의 빈고(貧苦)의 복음이었으며, 루터의 독일 크리스찬 귀족서한에는 ① 호사 사치금지, ② 향료 제한, ③ 음식의 남용, ④ 창가(娼街) 폐지였다. 그리고 칼빈의 제네바 교회훈련 제 4조는 무도, 도박, 취주, 음란가곡 금지였다.
금주운동의 시작은 1745년 웨슬레의 "음주 및 주류판매를 죄악시함"의 장정(章程) 설정에 기인하였다. 영국교회는 1818년, 미국교회는 1826년, 일본교회는 1876년에 노력하였는데 특히 1874년에 미국의 월라드 여사가 창설한 여자기독교 절제회로 이 운동은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한국교회의 초기의 강령 7개조 중 제 7조는 술과 도박의 금지였으며(1905년 이전), 장로교회 단일총회시절(1912년)의 특별 교훈 제 3조에는 술, 아편, 담배를 금했다.
문헌상으로는 구세군신문 1910. 6월호에 "단음함이 가흠"이라 했고, 1916년에 현순 목사, 1917년에 노불 부인, 1918년에 김 장준목사가 기독신문에 금주를 논했다. 장로교회의 주일학교 절제통일 공과는 1917-1941년까지, 60공과에 금주를 다루었다. 그리고 1919년에는 선교회에서, 1920년에는 YMCA에서 특히 1923년에는 틴링양의 발족으로 설취된 여자기독교 절제회를 통해서 맹활약을 하게 되었다.
구세군은 1921년 구세신문 금주 특집호 2만부를 시발하였고 감리교는 1923년 지방회에서, 1926년 연회에서, 장로교는 1928년에 상설 절제부를 조직했고 1932년 총회의 승인을 얻었다. 1932년에는 조선 예수교 연합 공의회에서 1월 15일을 전국 금주주일로 정했다. 더우기 이 운동은 3.1운동 이후 자산, 자급, 자립 운동으로 그 활동이 더욱 활발하였다.
장로교 선교회 절제본부는 1934년 1월 금주, 금연의 절제교육의 철저한 실천을 부탁하는 근청문(謹淸文)을 각 교회에 보냈다.
1936년 6월 1일 조선일보 사설에는 5월 5일 단오절의 기독교 금주운동 지지단체가 1,200임을 밝히고 당시 2천만 인구의 술값 4천만원(1인당 2원)을 경고했다.
한편 1948. 5. 10선거시에 미군정청은 전국에 금주령을 발표했다.
1978년 9월 7일에는 서울에서 송상석, 박형룡, 강신명 등 원로목사들이 한국기독교 절제회를 재건하고 고문, 임원, 실행위원을 선정하여 이 절제운동에 활력을 가하게 하였다.

4. 한국교회와 주초문제
(1) 주초문제로 교회는 많은 젊은이들을 상실하고 있다. 주초를 해도 교회생활이 가능한데 무작정 금하기에 그들은 2중인격, 혹은 자기 체념을 하면서 교회생활을 하고 있기도 하다.
(2) 주초가 복음의 내용과 구원 사실에 위배되거나 저촉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3) 문제시 않을 것(성경에 계율적, 금욕적 금령이 없음)을 문제삼는 것이 또 하나의 문제를 낳는다.
(4)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고민을 해소하려고도 하지않음은 우리의 심각한 문제다.
(5) 다른 선도책이 없음도 또한 문제를 낳는다.
그런데 한국 교회에서 주초를 금하게 된 이유는
(1) 초창기 선교사들이 그들의 복음주의, 경건주의 청교도적 신앙 배경으로 금주 금연을 실천했다.
(2) 당시의 민중은 절망, 원한, 공허를 달래려고 술, 담배, 노름에 열중해서 이를 추방하고자 했고, 구한말 국체 보상운동으로 금주, 금연운동이 벌어졌다.
(3) 금주, 단연은 새 사람의 새 생활임을 증명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이런 여러가지 배경으로 인하여 한국 기독교의 교리화가 되어있는 금주, 금연은 기호품으로 자유선택하도록 하되 복음에 취해서 술맛이나 담배맛을 잃게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교회 안에는 술을 먹으며 담배를 피우는 자들이 적지않고 많은 젊은이들은 술, 담배 자체가 신앙생활에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하여 술, 담배를 하면서 교회에 나가고 있는 자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술, 담배로 교회에서 평신도를 처벌하는 일이 없으면서도 주초문제는 한국교회와 교인의 심각한 문제가 되어있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술, 담배가 죄가 되지 않음을 인정하고 ① 바울의 말씀같이 주초를 하는 자와 아니하는 자 간에 서로 멸시와 판단을 말 것(롬 14:2-3). ② 주초로 성(聖) 속(俗)의 구별을 삼지말고 신앙 양심에 따를 것(고전 8:8). ③ 남에게 정죄될 일은 말 것(롬 14:15, 고전 8:9-10). ④ 절제 교육이 필요하다(고전 6:12, 8:9, 롬 14:20).
금주의 이유는 파생적인 죄를 범하는 죄원(罪源)이며, 한국인의 술 먹는 태도가 유별나서 술은 술로 보답하고자 하며, 건덕(建德)상 좋지 못하며 안하는 것이 하는 것 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또한 기계문명 사회에서 술은 살인자의 역할을 하며, 범죄 부도덕의 증가를 촉발시킨다. 그리고 알코올 중독은 가정 경제 파탄, 인격 부조화, 자아와 용기상실, 만성병의 원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예수, 바울, 사도들의 교훈을 따라 저스틴 마터, 클레멘트, 어거스틴, 루터, 칼빈, 쯔빙글리, 웨슬레 그리고 칼빈(신앙 생활의 3대적은 댄스, 도박, 음주라 함)은 금주를 강조했다. 또한 술은 아무 이익이 없고 절주(節酒)는 금주보다 힘들며 남을 실족케하고, 많은 선을 행할 기회를 놓치기 때문이다.
(1) 담배 연기의 화학적 분석
 1) 니코틴은 중추신경계, 심장, 혈관에 유해한 작용.
 2) 타르분(分)은 피부암의 원인.
 3) 휘발성 자극물 10여종이 있어서 기관지계통에 유해한 작용을 하며 폐안            에 오염물질을 형성.
 4) 일산화 탄소는 관상 동맥혈전, 혈관 내면 질환을 유발.
(2) 끽연에 기인한 의료문제
 1) 폐암 : 과거 25년간 8배로 사망율이 증가했는데 27.15% 담배가 원인임.
 2) 관상동맥의 이상에 의한 심장병 : 끽연자 사망율은 2배 더 높음.
 3) 기관지염과 폐기종증 : 비끽연자보다 5배 위험.
 4) 기타 질환 : 위, 12지장궤양, 구강, 후두, 식도암, 방광암, 치은염(齒銀炎)                        등의 원인.
 5) 임신 : 매일 10개비 피우는 임산부는 태아의 성장이 지연되며 유산, 조                   산, 사산율이 증가하고 사망 영아를 출산할 위험이 높다.
 6) 여명(餘命) : 25세 남자가 하루 15-20개비의 담배를 피운다면 40.4년 밖                        에 못살지만 비끽연자는 48년을 살 수가 있다.
 7) 약물 의존 : 속히 습성화되며 대마초, 환각제 사용을 유발.
(3) 비용
35세부터 하루 25개비씩 65세까지 피운다면 약 420만원 가량 소비.
(4) 예방
담배의 해독을 인식하며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손해될 것이 없고 오히려 건강에 유익하며 교육상 좋다. 선생, 의사, 운동가, T.V연출자의 끽연벽이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아뭏든 담배는 습관성이므로 처음부터 철저한 예방이 절대 필요하다.
(5) 도덕문제
열성적 그리스도인에게는 끽연은 육체, 마음, 영성에서 볼 때 바울의 고전 6:19-20의 말처럼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전이므로 끽연은 ① 건강해독, ② 불결, ③ 금전낭비, ④ 타인에게 폐, ⑤ 태도 불단정하게 되므로 피하는게 좋다.

5. 우리의 각오
서양의 통계는 끽연자의 10%는 10세때에, 65%는 고등학교 시절에 습성화 된다고 한다. 습관 형성의 중대한 시기는 12-14세이며 서양의 아동의 3인중 1인은 15세까지 상습 끽연자가 된다. 일본의 경우는 남자 2,935만명, 여자 677만명이 끽연자인데 연간 3조5백70억7천8백만원이 담배값으로 지불되며, 미국은 5천5백만명이 6천4백억개비를 태웠다.
한국은 중고교생 5명에 한 명은 담배를 피운다는 보고가 있다.
민병기박사는 "자라나는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을 흡연과 음주의 해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성인들부터 스스로 금연, 금주의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하며, 적절한 여가 선용책과 함께 교육적, 제도적, 사회적 대책이 적극적으로 이루워져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금연을 알려주는 책자도 있다("당신도 담배를 끊을 수 있다" 권명달역, "담배가 깨끗이 끊어지는 책" 김성숙역).
금연을 위해서는 니코틴의 무서운 독을 익히 알고 타력(他力)주의를 버려야 한다. 점진주의도 안되고 즉시 즉각시작하여야 하는데 중(重)중독자는 금연을 해도 죽지는 않고 두어주간 병들 정도다. 또 상식적으로는 금연의 시기를 잘 선택해야 하며, 양을 줄이고 흡인할 때 연기의 양을 줄이는 것도 중요한 금연의 방법이다. 그리고 흡연의 해독을 인식하고 스포츠 등으로 취미를 전환하여 금연하는 방법도 있다.
통속적으로 금연에 성공할 확률은 300분의 1이라 한다. 이와같이 금연이 매우 어려운 것을 실감할 때 어릴때부터 습성화 되지 않도록 주안에서 신앙으로 인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할 것이다.

* 음주에 대하여
(1) 술에 대한 성경의 견해
한국교회는 초창기부터 복음을 전해 준 선교사들이 술과 담배의 해독과 신앙 건덕상의 이유로 주초(酒草)를 금했으며 이것이 좋은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여러가지 시비와 문제를 안게 되었다. 또 복음전도에 있어서 이미 주초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것인가 하는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먼저 술에 대한 성경의 교훈을 생각해 본다.
구약시대에 술을 마셔서 실수한 사람들에 대하여 성경의 여러곳에 기록되어 있다(창 9:21의 노아, 창 19:30-38의 롯). 또한 술을 마시는 것은 좋지 않은 언행과 판단을 가져옴으로 금주를 장려한 구약성경 귀절이 많이 있다(잠 20:1, 렘 25:15, 사 5;11, 28:7, 호 4:11). 그리고 특별한 사람은 술을 금해야 한다는 귀절이 있다(레 10:9, 렘 35:5-10, 겔 44:21). 그외에 나실인에게는 술을 금했으며 특히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포도주를 마시지 않기로 결심한 사실이 다니엘서 8장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포도주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서 생각한 귀절도 있고(창 14장, 27:28, 호 2:8), 하나님께 제물로 드린 사실도 기록되어 있다(출 29:40, 레 23:13). 특히 포도주는 양식과 함께 유대인의 일상생활의 필수품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느 5:15). 이렇게 구약은 금주와 허락하는 양면을 말하고 있다.
신약에는 포도주를 약으로 또는 주님의 피로 말씀하신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막 2:22, 눅 22:20, 요 2:1-11, 딤전 5:23). 이는 음주를 허락한 부분이다. 그러나 금주의 교훈은 더 많이 있는 것을 알수 있다(눅 1:15, 고전 5:11, 엡 5;18, 딤전 3:8, 딛 1:7, 2:3). 이렇게 신약도 허락하는 곳도 있고 금하는 곳도 있다.
여기서 성경을 요약하여 술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면,
① 술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지만 사람이 선하게 쓰면 선이 되고, 악하게 쓰면 악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② 노아의 추태나 롯의 추행으로 보아 기타 음주자의 괴벽이나 술의 해독, 악한 일의 촉진제가 되는 것으로 보아 과음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③ 그리고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하겠다. 곧 제사장이나 레위사람들이 회막 성전에 들어 갈 때 술을 먹지 말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④ 지도자는 마시지 말아야 겠다(직분자, 감독, 목사, 장로기타 신앙의 지도자는 건덕을 위해서 술을 금해야 할 것이다).
⑤ 그러나 약용으로는 쓸 수 있겠다. 이 말은 술을 권장하는 말이 아니다. 병자가 약용으로 쓸 수 있되 병이 나으면 안해야 한다. 그러니 건강한 사람은 마실 필요가 없겠다. 요사이는 좋은 약이 많으므로 특별히 술을 약으로 마셔야 할 병이 있겠는지는 의문이다.
⑥ 우리의 몸은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다(요 2:13-22, 롬 12:1, 고전 3:16-17). 그러므로 마음과 같이 몸도 술의 해독과 술이 가져다 주는 잘못된 습관과 악행의 염려에서부터 깨끗하게 되어야 하겠다. 그러나 율법적으로 제재(制裁)를 가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본다.
술을 조금 마시는 것은 분명히 죄가 아니요 구원에 관계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문제는 성경의 근본적인 핵심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음주가 비록 죄와 구원과는 무관하더라도 그 해독, 특히 술에 중독이 된 사람에게 있어서는 술이 자신의 건강이나 사회생활에 치명적인 손실을 끼칠 수 있으므로 사람이 유익을 위해서 술을 조금 먹는 것이 아니라 술이 사람을 먹어 버리는 일이 없도록 극력 조심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교회는 일단 술을 마시는 사람을 정죄만 할 것이 아니라 일단 복음을 전하여 신앙생활을 하게 하면서 여러가지로 지도해 나갈 것이요, 신앙이 성장함에 따라 또한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과거의 잘못된 생활의 구습에서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저절로 벗어날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여기서 아직까지도 술을 지나치게 마시고 있는 사람들이 그 구습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되도록 술이 주는 해독을 간단히 살펴 보고자 한다.
(2) 술이 주는 해독(害毒)
① 신체에 해롭다.
술의 주성분인 알콜은 사람의 힘(정력)을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뇌신경의 작용을 방해하고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또한 몸의 각 기관에 알콜이 들어가면 그 작용이 둔화되고 이것이 오래 쌓이게 되면 몸의 각 기관세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쳐서 모든 질병의 근원이 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지나친 음주로 인하여 폐가망신한 사람을 많이 보고 있거니와 건전한 사회인으로서 특히 성령께서 그 안에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지나친 음주는 신앙생활에 특히 신령한 생활에 큰 손해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② 정신적으로 타락하게 된다.
알콜은 또한 판단력과 분별력을 둔화시키며 이것이 계속되면 정신계에 큰 영향을 주어 사람으로 하여금 소극적이요 나아가서는 퇴폐적, 부정적인 생각이 들도록 유도하는 확률이 높다. 자칫하면 성실한 삶을 살아가는 삶의 의지마저 잃어버릴 가능성이 많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③ 지적감퇴를 가져온다.
우리나라에서 1년간의 술 판매액은 도서 판매액의 수십배 또는 그 이상에 달한다고 한다. 이 뿐만 아니라 실제로 알콜의 과음은 사람을 지적으로 감퇴시킨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더우기 주초를 하는 임산부는 기형아를 출생시킬 확률이 금하는 사람의 몇배나 된다는 것도 이미 의학적으로 밝혀져 있다.
④ 경제적인 손실을 가져오며 이로 인해 가정불화의 주된 원인이 된다.
해마다 1년동안에 마셔 버리는 술로 인해서 엄청난 곡식과 돈이 낭비된다. 그리고 이 숫자는 해마다 늘어만 간다고 한다. 물질적인 손해도 손해이거니와 이로인해 겪게 되는 가정적인 어려움은 또 얼마겠는가! 또한 여러가지의 퇴폐풍조와 비도덕적인 행태는 어떠하겠는가? 이와같이 지나친 음주는 경제적인 손실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악이 조장(助長)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알콜이 주는 해독은 여러 면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므로 건덕을 위해 금주의 좋은 전통을 이어 받아온 한국교회는 더욱 이를 지켜 나가는 동시에 아직도 술의 마성(魔性)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이해와 관용의 입장에서 우선 교회로 인도하고 복음을 전하고 신앙으로 지도하여 믿음의 힘으로 이러한 구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하겠다. 또한 신자의 이유있는 음주는 건덕과 신앙양심에 맡기는 수 밖에 없겠다.

* 흡연에 대하여
(1) 담배에 대한 성경의 견해
성경에서 담배에 대해 언급한 곳은 한군데도 없다. 이는 그 당시에 담배가 아직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이는 몇몇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담배에 대한 간접적인 성경의 견해라고 하지만 이는 성경해석을 잘못한 아전인수격(我田引水格)이다.
(2) 담배의 유래(由來)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Columbus) 탐험대의 일행은 이 신대륙에서 참으로 신기한 놀라운 것을 많이 보았는데 그 가운데는 그곳 원주민들이 불붙인 무엇을 입에 물고 빨아들이면서 코와 입으로 연기를 내뿜는 것도 있었다. 다름아닌 타바코(tabacco), 즉 담배였다. 이 때가 1492년 10월말 아니면 11월초의 어느 날이었다고 한다. 이로부터 담배 피우는 습속(習俗)이 매우 빠른 속도로 퍼져 1500년대에 와서 스페인 사람, 포르투 사람들에게 전해지다가 차츰 전 유럽에 전파되었다. 한편 스페인이 필리핀을 침략하여 동양무역의 확장을 꾀한 것이 1565년이었으니 이즈음에 담배가 동양에 처음 들어왔다고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때에 일본의 해외무역자들에 의해 그들 나라로 수입되어 1570년에서 1580년 사이에 전국으로 퍼졌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에는 1607년에 연초금령(煙草禁令)이라는 게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담배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이 수광의 지봉유설(之峯類說, 1614)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담바고는 다른 이름이 남영초(南靈草)이다. 근래(近來)에 왜국(倭國)에서 건너왔다"고 하고서는 담배가 무슨 약초인양 소개하였다. 그리고 왕조의 실록인 광해군일기에는 "임술(壬戌, 1622) 동래왜관에 큰 불이 났다. 이것은 왜인(倭人)들이 담배 피우기를 즐기는고로 담뱃불에서 옮겨 붙은 까닭이다"고 하였다. 또한 이보다 좀 뒤의 기록으로서는 효종(孝宗) 후비(后妃) 인선왕후(仁宣王后)의 생부(生父)인 장유(張維)의 계곡만필(1635)에서도 볼 수 있다. 위의 기록들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담배가 들어오기는 임진왜란(1592)때부터 비롯했다고 하겠다. 또한 고추와 호박도 이때에 들어왔다고 한다. 이렇게 담배가 일본의 침략군에 의해서 묻어 들어왔는데 한일합방이후 1921년에 또 일본인이 처음으로 연초전매령을 공포하여 시행하도록 했다. 그리하여 1924년에는 대구에 현대식 담배공장이 최초로 준공되었던 것이다.
(3) 담배의 용도 및 보급
담배의 줄기와 잎에는 니코틴(Nicotine) 성분이 들어 있다. 이것을 추출(抽出)하여 주로 유산 니코틴을 만들어서 살충제로 쓰기도 하나 잎으로 담배를 제조하는 것이 주된 용도이다. 상기한 지봉유설에 "잎을 따서 말리우고 열을 가한다. 병자가 담뱃대로 연기를 마시면 탄질기가 치료되고 취한 술을 깨워준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심고 사용도 하지마는 그 공(功)만 볼 것이 아니라 독(毒)이 있음을 알고 가볍게 사용치 말라"고 한 기록이 있다. 니코틴 소량을 물에 푼다면 아주 치명적인 독물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담배는 이렇도록 사람의 신체와 정신에 장해를 주는 해독 뿐인데도 인간생활의 매력적인 기호물로써 수많은 금연법과 억제책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에 퍼졌고, 애연가의 수는 날로 늘어나고 있으며 이로인한 정신적, 물질적 피해 또한 막중한 것이다.
(4) 흡연에 있어서의 실제적인 문제들
흡연은 과연 구원과 관계가 있는 것인가?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서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선물로써 곧 우리는 아무런 공로가 없으나 은혜로 된 것이다. 그러므로 흡연과 구원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가 금연의 전통을 지켜오고 또 이를 주장하고 있는 것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앙생활의 건덕과 열매를 위하여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합당한 생활에 유익하므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흡연은 복음을 받는데 있어서 조건이 되지 않을 뿐더러 그리스도인이 되고 안되는 어떤 자격의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흡연은 위생상, 생활 에티겟상 흡연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여러가지의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피우지 않는 우리의 입장만 너무 생각하지 말고 피우는 사람의 처지를 잘 이해하여야 할 것이며, 더우기 죄악시하거나 율법적으로 보려는 생각은 절대 금물인 것이다. 신자인데도 여러가지 사정으로 흡연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는데 이들은 그들의 신앙이 점점 성장해 감에 따라 흡연이 신앙생활에 유익하지 못하며 또한 여러가지로 많은 문제가 있는 것을 깨닫고 저절로 끊어 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 노력과 동시에 기도해야 할 것이다.

술과 담배와 교회

김 경재(한신대 교수, 목사)

술보, 먹보, 형편없는 패거리의 왕초, 이것은 이천년 전에 유대 나라에 살았던 예수의 별명이 됨직한 이름들이다. 고요한 산 속에 들어가 때로는 밤을 새워 기도하며 울부짖기도 하던 경건한 랍비, 전문적인 구약성경 해석자들보다 훨씬 더 깊고 권위있게 민중에게 구약성경을 풀이해 주던 훌륭한 선생, 수정같이 맑은 마음과 진리의 밑바닥까지 꿰뚫어 보는 밝은 눈으로 더러운 우리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춰주며 산상 수훈을 가르쳐 준 예수의 별명이 "술보, 먹보, 형편없는 패거리의 왕초"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경건한 정통파 기독교 신자는 예수를 이렇게 모독할 수 있느냐고 펄펄 뛸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건이라는 색안경을 벗어 버리고 복음서를 읽어 본 사람들은 예수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그런 평을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며, 이 때문에 오히려 예수에게서 넉넉한 인간미를 느낄 것이다.
신약성경에 있는 공관 복음서는 예수의 생애를 그대로 적어놓은 이른바 예수의 자서전은 아니지만 그래도 초대 기독교 공동체가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쓴 예수의 일대기인 것은 틀림이 없다. 이 속에서 우리는 예수의 별명이나 세상 사람들의 평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는 것을 보고서는, 보아라, 저 사람은 먹고 마시기만 좋아하고 세리와 죄인하고만 어울리는구나 하고 말합니다"(공동 번역 마태복음 11장 19절과 누가 복음 7장 34절)라는 말처럼 그때의 유대 사람들로 부터 항상 죄인으로만 업신여김을 받은 세리나 창녀들과 어울려 실컷 마시고 먹고 떠들기 좋아하는 예수가 요즈음 말로 술보, 먹보, 형편없는 패거리의 왕초와 같은 별명을 얻을 수 있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이 낳은 역사가인 아돌프 폰 하르낙은 인류의 역사 속에 소크라테스가 살았었다는 사실이야말로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한때 예수가 우리와 함께 살았었다는 사실은 그보다 몇백 곱절이나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왕관을 쓰지 않은 왕 중의 왕, 창녀도 숙녀도, 부자도 가난뱅이도, 학자도 무식장이도, 대통령도 막일꾼도, 신을 믿는 사람도 믿지 않는 사람도 예수를 한번 알게 되면 누구나 친한 친구처럼 느끼고 아무리 존경해도 자기의 자존심이 다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그 예수는 오늘날 한국 교회가 쉬쉬 하고 있는 술과 담배를 놓고 어떻게 얘기했을까?
예수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술을 먹으라고 권해 본 적도 없고 자기를 따르려면 반드시 술과 담배를 끊어야 한다는 단서를 붙인 적도 없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오늘날 한국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처럼 술 한잔을 들고 죄책감을 느끼거나 남의 눈치를 살핀 적도 없고, 술은 자유롭게 마신다며 개화된 신앙을 뽐낸적도 없다.
예수가 살고 있던 그때의 이스라엘에는 담배가 없었으니까 성경에 담배 이야기는 없지만 술에 대한 이야기는 참으로 많다. 재미있는 것은 예수가 보여 준 첫번째 기적이 물로 포도주를 빚어낸 사건이라는 점이다. 그때의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그곳에서 많이 생산되는 포도로 포도주를 담가 누구든지 서슴없이 마셨으며 석류, 사과, 대추, 곡식, 꿀 같은 것으로도 술을 빚었다.
예나 이제나 술이 있는 곳에는 독한 술이 있기 마련이고 독한 술에 취하여 추태를 부리고 도덕과 윤리의 생활이 깨어져, 끝내는 사람과 사회를 망치게 하는 것은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성경엔 술에 취하지 말라는 경고와 술을 마시지 말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삼손과 같은 나실 사람들 중에는 종교의 전통에 따라 포도주뿐만 아니라 아예 포도 나무 열매에서 나는 것은 입에 대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오늘날 한국 기독교에 계율화되다시피한 술과 담배의 금기나 금욕주의는 찾아 볼 수 없다. 아마 예수의 생각이 오늘날 한국 기독교 지도자들의 생각과 같았더라면 예수가 가나 마을에서 벌어진 혼인 잔치에서 술을 만들었다는 것이나,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에서 포도주를 마셨다는 이야기가 신약 성경 속에 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디모데 전서 5장 23절의 "이제 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라는 말은 더욱 더 나타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한국의 기독교에는 금연과 금주가 계율화 되다시피 했을까? 예수를 믿는 사람은 곧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사람이고 술과 담배를 하는 사람은 곧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며 술과 담배를 하는 사람은 예수를 믿는다 해도 죄에 빠진 엉터리 교인이란 논리가 왜 자리잡게 되었을까? 이 우수꽝스러운 이야기, 그러나 부끄럽게도 한국 기독교인들에게는 심각한 이 문제의 핵심과 그 문제성에 숨겨진 본질과 오해들을 웃으면서 이야기해 보자.
1885년 언더우드나 아펜셀러 같은 개신교 선교사들이 한국에 새로운 학문과 의료 기술과 복음을 들고 왔을 때 이미 한국에는 백년의 역사로 터를 잡은 가톨릭 교회가 있었다. 혼돈과 황혼이 깃든 조선 시대 말기에 한국 사회에 들어온 개신교가 대원군의 서슬이나 위정척사파들의 살기에 눌려 요사이처럼 우뚝우뚝 교회당을 지을 수 있었을 턱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의 서민층에 한번 뿌리를 내린 한국 개신교는 끊임없이 신자가 불었고 인간과 사회를 해방시키고 자유롭게 하는 복음의 힘은 폐쇄적인 봉건 사회 체제 아래서 수천년 동안 눌려 살던 한국 사회의 밑바닥 사람들에게 시원한 샘물과 새로운 바람으로 받아들여져 갔다.
개신교의 복음은 수천년 동안이나 사람들의 마음을 칭칭 감아왔던 혈연, 지연, 전통 따위의 쇠사슬을 풀어 주었고 벗을래야 벗어 버릴 수 없었던 무거운 멍에를 벗겨 주었으며 칠흑처럼 캄캄하던 민중의 가슴 속에 환한 빛을 비추어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 주었다.
한국 교회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들어온 미국 선교사들의 신앙의 배경은 복음주의적이고 경건주의적인 청교도 형이었다. 복음에 대한 순수한 신앙, 헌신적인 뜨거운 정열, 경건하고 성실한 삶의 태도들은 이러한 종파 선교사들이 갖춘 훌륭한 점이다. 그러한 장점이 없고서야 편안하고 행복한 자기들 나라의 생활을 뒤에 두고 목숨까지도 걸어야 하는 꼭꼭 막힌 쇄국의 나라에 와서 어떻게 젊음을 바칠 수 있었을 것인가. 사람을 사랑하는 뜨거운 정이 그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목숨을 다 바쳐 삶의 밑바닥에서 신음하던 이 나라 민중의 찢겨진 마음을 복음으로 감싸고 의술로써 어루만지며, 미신과 악령과 폐쇄적인 전통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행방시키려고 병원과 학교를 세우고, 한글말 사전을 만들며, 문맹자들에게 글을 일깨움으로써 거의 반신불수가 되어 죽어가던 이 땅의 민중에게 새로운 피를 공급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때의 언더우드, 아펜셀러, 게일, 맥켄지와 같이 위대한 선교사들이 모두 이삼십대의 청년 선교사들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신앙의 배경이 복음주의와 경건주의라고 해서 그들의 관심이 술과 담배와 같은 작은 문제에 얽매일 사람들은 아니었다.
초가집 넓은 마루를 예배당으로 삼아 예배를 드리던 한국 초대 교회의 사진을 보면 1905년까지, 아니 그 뒤에도 교회당의 처마나 싸리 대문 이곳 저곳에 장죽이 천연스럽게 꽂혀 있는 광경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성경대로 살려는 순수한 정열로 불타 있었던 한국 초대 교인들은 성경이 주는 놀라운 힘과 복음의 빛으로 아주 새 사람들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한국 초대 교회 신도들이 점차로 술과 담배를 끊을 수 있었던 까닭은 술과 담배가 꼭 지켜야 하는 금기의 계율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복음으로 새 사람된 사람의 자연스러운 변화 곧 거듭난 사람의 변화가 기호품의 변화로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복음에 취한 사람들의 입에는 술과 담배의 맛은 시시해져 버렸던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복음 정신을 계승한 한국 기독교의 맥박이다. 복음을 올바로 받아들인 지도자와 신도가 모두 이처럼 차원 높은 금주와 금연을 했지, 그 뒤에 잘못되어 간 것처럼 율법의 금기에 쫓겨 억지로 한 것이 아니었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 한 토막이 있다.
육이오 때에 공산당에게 납치되어 순교하신 송창근 목사의 이야기이다. 송창근 목사는 오늘의 영락 교회를 세운 한경직 목사와 한국 신학 대학을 이끌어온 김재준 목사와 더불어 미국에 있는 프린스톤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일본 제국주의 밑에서 신음하는 조국의 동포를 복음으로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자고 약속한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가 젊어서 김천 지방에서 목회를 할 적에 하루는 어느 마을의 "영수" 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영수는 교회의 직분 가운데 하나로서 나이가 지긋하고 신앙 생활을 오래한 신도를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송 목사가 같이 간 사람들과 영수 집에 불현듯 들어섰을 때 주인은 마침 마당에서 고추를 널면서 긴 곰방대에 담배를 뻐끔뻐끔 빨고 있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목사와 신도들을 보고 이 영수는 어찌할 줄 모르고 타고 있는 담뱃대를 엉겁결에 등 뒤에다 감추었다. 그때에 송 목사는 모른 척하지 않고 얼른 담뱃대를 빼어 주면서 "영수님, 등을 데지 않으셨읍니까?"고 물었다. 이 영수는 "목사님, 제가 속병이 있어서 약초를 좀..." 하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데 송 목사가 얼른 그 말을 받아 "암, 약에는 개똥도 쓰니까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 주일이 되어 예배를 보다가 송 목사는 "영수님은 속병 때문에 담배를 태우고 계시니까 모두들 그리 아시고 탓들 하지 마시오"라고 하였다.
지금 들으면 우습고 재미있는 토막 이야기이긴 하지만 술과 담배를 금기로 삼아 가던 그때의 교회에서 술과 담배에 매이지 않은 목사와 신도의 모습을 보며 술과 담배에 관한 지혜로운 해답을 얻는다. 만일 어떤 목사나 장로가 참새구이 장수를 기어코 전도하려고 포장마차의 포장을 들추고 들어가, 오뎅 한 접시와 닭똥집 한 점을 시키고 소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세상살이 이야기를 했다면 그 다음날 그 목사와 장로는 지금까지 다녔던 교회에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될 것이고, 노회나 교회 기관에서 엄한 징계를 받게 될 것이다. 목사나 장로가 대낮에 얼굴이 벌게 되어 다니는 꼴은 덕스럽지 못할 뿐만 아니라 더우기 술에 취하여 추태를 부린다면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만일에 이 목사와 장로가 실제로는 술을 좋아하지도 않으며 별로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지만, 새벽에 나가 밤늦게 돌아오는 참새구이 장수 내외를 만나는 곳이 그때 그곳 뿐이어서 그 내외가 정성들여 만들어 파는 음식에 그들이 따라주는 소주 한 잔을 마시고 이런 저런 세상살이 얘기를 나다면 그것 자체는 아무 문제될 까닭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한국 교회는 이상스러울 만큼 이러한 일들을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러면 왜 한국 교회에서는 금주와 금연이 율법화되었을까? 거기에는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지난 날의 역사가 있다.
앞서 말한 대로 한국에 처음으로 들어온 선교사들은 유럽 대륙 쪽의 선교 기관에서 보낸 사람들이 아니라 미국과 캐나다와 호주의 개신교파의 배경을 가진 선교사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복음 주의와 경건주의를 따르는 청교도적인 선교사들이었다. 복음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열정과 희생적인 헌신은 그들이 갖고 있는 커다란 강점이었다.
그러나 사람이란 그들이 배우고 자라 온 사회 관습과 공동체 속의 삶의 형태를 어쩔 수 없이 닮아 가는 존재이다. 복음주의와 경건주의는 위에서 말한 훌륭한 점 뿐만 아니라 그것이 부정적으로 발전할 소지를 담고 있었다. 복음과 새 하늘을 우러러 섬기는 신앙은 잘못하면 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을 멸시하는 진지하지 못한 태도를 갖게 만들고, 세속적인 삶에서 벗어나 신자답게 살아가겠다는 생각은 모든 것을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으로 갈라, 성스러운 것은 곧 좋은 것이고 세속적인 것은 곧 나쁜 것이라는 이원론적인 삶의 태도로 발전시켜 종교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계율을 절대화하는 경향에 빠지기 쉽게 만든다. 이러한 기질과 경향을 가진 한국의 초대 교회 지도자들은 그때의 한국 사회의 현실에 맞는 금주와 금연령을 제때에 내리게 되었다. 그것은 조선조 말기는 부서진 배가 방향을 잃고 떠돌아 다니는 상태와 같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종교는 그 빛을 잃어 갔고 사상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 힘을 쓰지 못했으며 여기에 사회 지도 세력의 수탈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관료주의에 젖은 양반 계층의 몰락 과정에서 생기는 사회 기강의 혼란으로 민중은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이 나라의 민중이 그들의 혼 밑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절망과 원한과 공허를 달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술과 담배와 노름뿐이었다면 지나친 말일까? 사회 경제의 구조와 생산 양식이 제약되고 원시성을 벗어나지 못한 농촌 사회까지도 농한기에는 담배 연기 자욱한 사랑방 구석에서 날 지새는 줄을 모르고 노름판을 벌였다. 가장이 노름 끝에 집 문서, 논 문서를 날리는 바람에 수많은 아낙네들이 울어야 했고 먹고 살 식량도 아쉬운 판에 밀주를 담그는 술장수는 번창해 갔다.
그때 한국 사회를 사회 병리학적으로 진단한 지도자들은 저마다 술독과 담배 연기와 노름 속에서 한국 혼이 썩어 가고 있음을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 민족이 사는 길은 민중의 속 정신이 다시 태어나서 당장 술과 담배와 노름 따위에서 손을 떼게 하는 길 밖에 없다는 뚜렷한 명제를 끌어낼 수 있었다.
이러한 지극히 당연하고 타당한 금주, 금연운동이 그때의 한국 교회 지도자들의 청교도적인 기질과 공통 분모를 갖게 되었고 더우기 구한 말의 국체 보상 운동의 한가지 방법으로 한국 기독교계가 벌인 금연, 금주 운동은 충분한 설득력을 갖고 한국 기독교인들의 생활 규범으로 굳어져 가게 된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새 사람이 된다는 말이요, 새 사람이 된다는 말은 옛 관습에서 손을 씻고 나온다는 것이므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것은 옛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한 못된 것의 상징이요, 술과 담배를 끊는다는 것은 새 사람, 새 정신으로 살겠다는 신앙의 상징이었다. 술과 담배를 끊고 열심히 일하는 초대 기독교 신자는 생활이 점점 윤택해져 갔고 특히 서북 지방에서는 한국의 새로운 중산 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상인 계층이 나타났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술과 담배를 끊고 새 생활을 시작하는 기독교인들이 많아졌다.
한국 기독교인이 중심이 된 초기 개화 시대의 금주, 금연 운동이 한국 사회의 도덕 정화 기능과 건실한 생활상 형성에 기여한 높은 공헌을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처음의 그 기백과 그 정신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살아 숨쉬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나 생생한 영의 운동도 날이 지날수록 타율적인 율법으로 굳어져가는 것이 종교 역사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인 듯하다.
한국 초대 교회 지도자들과 신도들이 벌였던 위대한 도덕 갱신 운동과 새 생활 혁신 운동, 그것의 한 방법으로 펼쳐진 금주, 금연 운동도 탁월한 초대 선교사들의 정신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이대, 삼대 선교사들과 또 그들에게서 철저한 타율적인 종교 교육을 받은 한국 교계 지도자들에 의해 금주와 금연이 마치 기독교인의 자격을 결정하고 구원을 받고 못 받고의 표징으로 삼을 만한 절대 규범으로 바뀌어 갔다. 더우기 1905년의 한일 합방 뒤부터 절망스럽게 펼쳐져 가는 한국 사회의 정치 현실은 한국 교회의 신앙 형태를 점점 현실과는 거리가 먼 다른 세상 곧 내세에 기우는 신령 중심의 금욕적인 기독교로 만들어 갔다.
이러한 금욕적이고 보수적인 신앙의 기질은 참다운 청교도 정신의 적극적인 생활 자세 곧 개척자 정신과 개혁 정신과 근면하고 성실한 직업에 대한 소명 의식들을 발전 시키기보다 계율적인 도덕주의를 발전시켜 오늘의 한국 개신교로 하여금 무력한 도덕주의와 율법주의와 이원론적인 굴레 속에서 신음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것이 금주, 금연 운동 곧 영으로 시작한 운동이 육으로 끝마치게 된 한국 교회의 간략한 역사이다.
한국 기독교 지도자들은 삼십년대까지 선교사가 공급해 주는 우유병 속의 우유만 먹고 자란 셈이었다. 세계 신학계의 움직임이나 기독교 유형에 다른 종류가 있는 줄도 몰랐고 있을 턱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십년대부터 한국 교회 지도자들이 서서히 미국으로 영국으로 캐나다로 유학의 길을 떠났다. 그때에 유학을 떠날 정도면 쟁쟁한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었고 한국 교회에서는 이미 지도적인 인물로 누구나가 공인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유학을 떠나기 전부터 세계적인 신학자들이 쓴 글과 논문을 읽고 훌륭한 사상에 마음이 움직여 꿈에라도 그와 같은 훌륭한 신학자들의 얼굴을 바로 맞대어 보기를 몹시도 그리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들이 막상 만난 대 신학자들은 쉬는 시간이면 학생들과 함께 곰방대를 열심히 빨고, 저녁 식사 때는 부끄러움 없이 맥주를 들이키는 것이 아닌가? 순수하고 경건한 신앙 속에서 자라고 또 신도들을 그렇게 가르쳐 온 한국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그것은 충격적인 모습이었고 분노마저 자아내는 태도였다. 술과 담배를 멋대로 마시고 피우는 그런 신학자로부터 올바른 복음과 신학이 어떻게 나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심은 그들의 사람됨의 성실성까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견디다 못해 미국이나 캐나다 안에서도 좀더 보수적이고 경건한 학교로 옮겨 버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한달이 가고 한해가 흘러 술과 담배를 즐기는 교수와의 인간적이고 학문적인 사귐이 깊어 갈수록 그들의 신앙과 학문과 인격이, 그들이 즐겨 마시고 피우는 술과 담배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짧은 유학 생활이나마 나에게도 인상깊은 추억이 있다. 미국 시카고 북부 아이오아 주에 인구 십만의 교육 도시인 듀북이 있는데, 그곳에는 역사 깊은 대학과 신학교가 여럿 있었다. 어느해 가을 내가 택한 과목 가운데 "니코스 카차키스의 문학과 종교"라는 과목이 있었다. 이 과목은 강의와 세미나와 토론뿐만이 아니라 그 작가의 작품을 영화로 만들어 시청각 교육까지 하였다. 하루는 "희랍인 조르바"라는 흑백 영화를 보면서 주연으로 나온 안소니 퀸의 연기에 빠져 있는데 앞 자리에서 어느 미국인 친구가 치즈 한 덩어리와 술 한병을 넘져 주지 않는가? 밤 아홉시가 넘었으니까 이 시청각 교실에서 영화를 보고 나면 기숙사에 돌아가 자는 일 밖에 남지 않았었다. 이 친구의 말은 우두커니 앉아서 싱겁게 영화만 보지 말고 뭘 좀 씹고 마시면서 보라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까 그 친구는 비오는 날마다 나를 자기 차에 싣고 강의실까지 데려다 주는 믿을 만한 친구였다. 이미 그 친구의 진실성과 성실성과 헌신적인 삶의 태도 그리고 실력파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터라 나에게는 그 친구가 건네주는 치즈 덩어리와 술병이 오히려 새롭게 보이고 멋있게 느껴졌다.
그해 크리스마스 전날밤이었다. 기숙사생들은 이미 고향으로 돌아가고 집도 절도 없는 동양인 유학생 몇명만이 덩그렇게 빈 기숙사에 남아 자취를 하면서 연말의 향수를 달래고 있었다. 그런데 듀북 신학교의 본부에서 좀 떨어진 가톨릭의 아퀴나스 신학부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기숙사의 빈 방을 지키는 우리들 보고 오라는 것이었다. 약속한 라운지에 가보니 벽난로에 장작불을 빨갛게 지피고 열 사람 남짓한 신부가 스무 가지가 넘는 술과 갖가지 음식을 차려 놓고 크리스마스 전야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이처럼 그들의 음식에는 술과 담배가 적당히 끼어 있었지만 그들은 결코 술과 담배에 먹히지 않았다. 술과 담배가 그들의 신앙과 경건과 학문을 털끝만치라도 방해를 하거나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마치 하나님의 권능의 손 아래에서는 사단과 악도 하나님을 봉사하는 머슴이 되어 버리듯이 그들에게 술과 담배는 우정과 친교를 두텁게 해 주는 다리 구실을 했다.

술과 담배가 사람의 몸에 끼치는 해독
은 의학에서도 이미 충분히 밝혀냈다. 담배 속에 들어있는 니코친이 끈적끈적한 타액으로 기관지에 착색된 것을 실제로 본 사람은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각오가 새로와질 것이다. 그리고 술이 사람의 몸에 끼치는 해독과 정도에 지나친 술로써 생기는 도덕의 파탄을 다시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그러나 술과 담배의 해로움과 술과 담배 때문에 빚어지는 실수가 아무리 엄청나다고 해도 그것들은 기호품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야기할 성질의 것이지 신앙이나 윤리의 본질과 관련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은단이나 커피나 조미료를 다루듯이 술과 담배도 그와 같이 다루어야할 기호훔일 따름이다.
한국 교회는 술과 담배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어야 한다. 이 말은 술과 담배를 권장하거나 도덕적인 절제 생활을 철폐하자는 말이 결코 아니다. 복음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말라는 따위의 세상 풍속에 얽매인 시시한 소식이 아니다. 복음은 술과 담배를 먹고 마시지 않아도 삶을 멋있고 풍성하게 해 줄 수 있는 능력을 주며 또한 술과 담배를 마시고 피워도 재미있고 알맞게 인간 관계를 위해 봉사하는 자리에 묶어 두고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
멋있는 삶은 취할 수 있는 삶이다. 다만 무엇에 취하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예술에 취하고 학문에 취하고 사랑에 취하고 자연에도 취한다. 술에 취하고 니코친의 향내에 취하는 것도 삶의 멋일지 모른다. 그러나 기독교인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존재에 취하고 반해서 예수 밖의 다른 것으로는 취하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한국 여자 교육의 선구자인 김활란 박사가 독신으로 일생을 마친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그를 존경하는 수많은 제자들이 김활란 박사에게 독신주의가 당신의 삶의 철학이냐고 물었을 때, 김활란 박사는 자기가 독신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나라와 민중과 한국의 여자 교육과 그리스도의 복음에 취해서 일하느라고 혼인할 틈도 정신도 없어서 저절로 그렇게 되었노라고 말했다.
기독교인에게 술과 담배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존재인 예수 그리스도의 매력과 향기에 취해서 술과 담배의 맛이 시시해져 버린 사람들을 우리는 왜 존경하지 아니하겠는가? 한국 기독교인 모두가 예수의 사랑과 사람됨에 취하여 술과 담배의 맛쯤은 영원히 우습게 여기는 신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한국 교회가 처음부터 그랬듯이 다른 단체를 이끌어 술과 담배를 금하는 운동을 꾸준히 벌이는 힘있는 모체가 되어 사람들의 건강까지도 지켜주는 파수꾼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제발 술과 담배를 못하게 하는 한국 교회의 계율에 매인 율법주의에서는 해방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제발 술과 담배를 마시고 피우는 사람들을 자기보다 타락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도덕적인 교만과 종교적인 오만에서 하루바삐 벗어나기를 바란다.
술과 담배는 기호품이다. 복음을 들고 싸우는 하나님의 일꾼들이 기껏 기호품을 쓰고 안쓰고 하는 문제를 놓고 신경과 정력을 쏟기엔 해야 할 다른 일들이 이 땅에는 너무나 많다. 문제다운 문제를 문제삼기 위해서 술과 담배문제에서 자유를 얻자. 그래야 복음이 가진 그 싱싱한 샘물을 민중에게 다시금 줄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구, 아랍, 흑인 등 다른 종족들에 비해 체질상 술에 훨씬 약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충남대 김 영진교수(생물학)가 지난 해 7월부터 남녀대학생 5백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인 집단에 있어서의 아세트알데히드탈수소효소의 유전인자결핍에 관한 연구"에서 나타난 것. 서독 함부르크대의 "괴테"박사가 고안한 모근추출법을 써서 "아세트알데히드탈수소효소유전인자"의 존재여부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진행된 이 조사분석결과, 남녀 학생모두 35%가 ALDH-1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ALDH란 알콜(술)성분이 체내에서 분해될때 생기는 아세트알데히드를 분해, 초산으로 바꿔주는 대사효소로 ① - ④까지의 4가지 종류가 있다. 그 중 ①형(型)이 가장 강력한 분해능력을 갖고 있다.
우리가 술을 마시면 체내에 들어간 알콜성분은 알콜탈수소효소(ADH)에 의해 아세트알데히드로 변하고, 이것이 다시 ALDH의 작용으로 초산이 되었다가 최종적으로 탄산가스와 물로 분해된다. 그런데 술의 대사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세트알데히드의 분해과정이다. 왜냐하면 이 물질이 가장 많은 독성을 체내로 배출하기 때문에 빨리 분해되지 않을 경우 얼굴이 빨개지고 심박동이 빨라지며 위가 불편하거나 잠이 오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몸이 말을 안듣거나 인사불성이 되는 등 이른바 "취하게"되는 것이다. 어느 교수(동물학 교수)에 따르면, 서양사람의 경우 음주 후, 위의 고통 6%, 가슴두근거림 0%, 얼굴홍조 3%, 근육무기력증 3%, 어지럼증 9%, 졸리거나 잠에 빠짐 6%인데 비해 동양인은 위의 고통 53%, 가슴두근거림 26%, 얼굴에 홍조 44%, 근육무기력증 26%, 어지럼증 37%, 졸리거나 잠에 빠짐 51%로 서양인보다 최소 4배 이상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바로 ALDH결핍에 따른 체내 알콜거부현상이라는 것이다.
한편 민족별 ALDH결핍률을 보면 미국, 유럽 등 서구인과 이집트, 수단 등의 아랍인, 라이베리아 등 흑인들의 경우 0.5%로 결핍률이 거의 없는데 비해 중남미 고지대의 인디언 69%, 베트남인 57%, 일본인 44%, 중국인 35%, 인도네시아인 39%는 ALDH가 없어 동양인이나 인디언이 술에 약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실제로 서양사람들의 경우 술을 마시면서 토하거나 졸기, 술마신 후 비틀거리는 사람을 보기힘든 것은 그들이 술을 천천히 마시는데도 기인하지만 근본적으로는 ALDH가 우리보다 풍부해 분해능력에서 앞선 때문이라는 것이 교수의 설명이다.

서양사람에게 알콜중독자가 많은 것도 ALDH가 풍부해 술을 마시는 능력이 좋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ALDH의 분량은 어떻게 결정되며 증가시킬 수는 없는 것인가. 다른 효소도 마찬가지지만 ALDH도 염색체속의 유전인자 안에 생산능력이 결정돼 선천적으로 타고 나기 때문에 민족마다, 또 사람에 따라 다른 비율로 ALDH결핍률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간혹 예전엔 술을 마시면 각종 거부 반응과 부작용으로 고생하던 사람이 최근들어 주량이 부쩍 늘어 났다고 느끼는 경우는 거듭되는 음주로 염색체내의 ALDH 생산유전인자가 자극을 받아 생산량이 증가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아 한국 사람은 술에 약하기 때문에 폭주를 삼가고 마시더라도 ALDH의 분해능력 안에서 서서히 마시는 것이 현명한 음주법이다. ♣












통일한국을 위하여


통일한국을 위하여(에스겔 37:17)

그 막대기 들을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1938년 신사참배를 결의한 제27회 총회

신사참배 가결,
1. 하나님 말씀의 위반,
2. 장로회 헌법과 규칙 위반,
3. 일본 국법인 종교자유헌장에 위반,
4. 보통회의법의 위반

1938년 9월(9-16일) 오후 8시에 평양서문외예배당에서 제27회 총회가 개회되었다.
총회가 개회되고 제1부 경건예배를 마치고 정회한 후 2일째 되는 날 새벽 6시에 임종순 목사가 요한복음 16:25-33절 말씀을 읽고 “그리스도를 힘입어 안심함을 얻음”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오전 9시 30분에 속회되어 새 총회장으로 선출된 홍택기 목사가 히브리서 10:5-7절, 요한복음 4:34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대로”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한 후 10시 40분에 안건 심의에 들어갔다.

공천부장의 함태영 목사의 보고를 별지로 받고 곧바로 신사참배 안건 심의에 들어갔다.
제27회 총회가 경건예배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신사참배 문제를 거론하여 결의를 했다는 것은 이미 신사참배의 가결을 몇 달 전부터 계획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고 제27회 총회는 이를 실행에 옮기는 총회가 되었다.

총회가 소집되는 날 서문외교회당 안팎에는 수백 명의 사복 경찰관들이 둘러싸고, 강대상 아래는 평남경찰부장 등 수십 명의 고위 경찰들이 칼을 찬 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총대들 사이에는 각기 그 지방에서 올라온 경관 2명이 끼어 앉아 있고 총대석 좌우와 후면에도 무술경관 100명이 상엄하게 둘러싼 채 회가 시작되었다. 먼저 평남도지사의 축사를 시작으로 경건회에 이어 공천부 보고는 별지로 받기로 한 후 신사참배 안건을 상정했다.

전국 27개 노회(만주 4노회 포함) 목사 회원 86명, 장로 총대 85명, 선교사 22명, 합계 193명이 참석한 가운데 동 안건을 가결에 붙이자 떨리는 목소리로 가(可)만 묻고 부(否)는 묻지 않은 채 신사참배가 만장일치로 가결되었음을 선언했다. 이 때 자리 사이에 끼어 앉아 있던 경찰이 일제히 일어나 경계태세에 들어갔는데 선교사 20여명이 일어나 “불법이오”, “항의합니다”며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결국 총회는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말았다.

총회의 신사참배 결의 후 곧바로 “부총회장과(임원대표) 각노회장으로(회원대표) 본 총회를 대표하여 즉시 신사 참배를 실행하기로 가결”하였다. 신사참배를 가결하고 난 시간이 12시였다. 오후 2시에 속회할 때까지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부총회장 김길창 목사의 안내에 따라 평양 신사로 가서 절하고 돌아왔다.

이와 같은 신사참배를 하고 난 이후 속회된 회의에서 “신사참배 결의안을 조선 총독, 총감, 경무국장, 학무국장, 조선군사령관, 총회대신, 척무대신, 제 각하에게 전보를 발송하기로 가결”하게 되는 비운을 겪게 되었다.

선교사들은 같은 날(10일) 오후 1시에 따로 모임을 갖고 신사참배 가결를 무효화 시키기 위하여 “신사참배 가결은 하나님 말씀의 위반이요, 장로회 헌법과 규칙을 위반함이요, 일본 국법인 종교자유헌장에 위반이요, 이번 처사는 보통회의법의 위반”이라는 항의서를 총회에 긴급동의안으로 제출했다.
 
총회 12일에는 권찬영 외 25명도 연서날인으로 “이번 총회의 결의는 하나님의 계율과 조선예수교장로회 헌법에 위배 될 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 발언을 허락하지 않고 강제로 회의를 진행한 것은 일본 헌법에 부여한 종교자유의 정신에도 어긋난다”라는 항의서를 총회에 제출했다. 총회는 경찰의 강압에 못이겨 이들 항의서를 토론에 붙일 기회마저 주지 않고 무조건 기각시켜 버렸다.

총회가 파회(罷會)되고 석 달 후, 신사참배 결의가 가져온 비극적인 일들이 총회 산하 전국교회에 하달되었다.
총회장 홍택기 목사는 회장으로 신사참배를 가결시킨 것도 부족해서 각 교회에 신사참배 반대한 행위에 대해 처벌할 것에 대한 총회장 서한을 보내게 되었는데 내용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총회의 결의를 경멸하는 행동일 뿐만 아니라 주님의 뜻에 위배되는 유감 천만의 행동이다. 이런 비상 시국하에서 만일에 아직도 옛 습관으로 해서 이를 보류하거나, 주저하는 자가 있다면, 저들은 결코 신민으로 인정될 수 없으며, 교인으로도 인정될 수 없을 뿐 아니라, 교회의 입장으로 볼 때도 이러한 반대하는 무리나 요소는 마땅히 처벌되어야 한다.”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그 후 한국교회로 하여금 신사참배를 하도록 강요하였다.
총회 결의가 있는 이후 일본 경찰은 즉시 친일적인 목회자를 만드는 데 앞장섰다.
그러나 그 시대 양심의 소리가 있었다는 점은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소재열 목사 근간,『한국장로교신학 전통』중에서.





신사참배 강요(神社參拜強要)


일제 강점기에 조선 곳곳에 신사를 세운 뒤 조선인에게 참배하도록 강제한 정책을 가리킨다.
신사참배는 신토의 신사에 참배하는 종교 의식이다.
종교의 교리가 신사참배와 충돌하는 기독교 신자들은 신사참배 강제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여 이에 저항하다가 피해를 입기도 했다.


배경

신토는 조선에  1876년 개항 이래 문화 침략의 일환으로 도입되었으며,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에는 조선통족부의 보호 아래 동화 정책의 일환으로 보급되었다.
특히 1930년대에 일본 제국이 중국 침략을 계획하면서 점차 강제적인 정책으로 변화했다.
일본 천황 신격화와 강제 신사참배는 조선을 정신적으로 지배함으로써 효율적인 식민 통치와 전쟁체제의 구축을 노린 것이었다.

추진 과정

1930년대 경성소방서 직원 신사참배

일제는 각지에 신사를 세우고 학교와 가정에도 소형 신사를 설치하도록 하여 황민화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주로 기독교 계열의 사립학교를 중심으로 이같은 정책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조선에는 개화기 이래 선교사들이 세운 기독교 학교들이 다수 있었고, 우상 숭배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기독교의 교리는 신사 앞에서 절하는 신사참배 의식과 충돌을 낳았다.

기독교계는 신사참배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가 1935년을 기점으로 조선총독부의 강경책에 신사참배 용인파와 반대파로 분열되면서 큰 갈등이 시작되었다.

1937년 중일 전쟁 무렵부터는 조선총독부가 일부 학교를 폐교시키면서까지 신사참배 강행 의지를 보여 문을 닫지 않은 학교들은 신사참배를 실시해야 했다.

조선총독부는 기독교계 학교에 보급된 신사참배를 교회로까지 확장시키기 위하여 압력을 행사했고,
1938년 조선 예수교 장로회 총회의 신사참배 결의를 계기로 각 교파의 목회자들이 솔선해 신사참배에 나서면서 급격히 황민화 정책에 동조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반대파의 강경론자인 주기철, 최상림이 옥사하는 등 희생자도 발생했다.

한편 평양에 있던 기독교 계열의 숭실대학은 1912년 11월 25일 조선 통독부 학무국이 학교 인가를 했으나,
1925년 대조선 교육방침(소위, 문호통치)으로 숭실대학교를 전문학교로 격을 낮추었다.

1938년 3월 4일 일본 제국의 억압적인 통치와 강제적 신사참배에 반대한 숭실전문학교는 자진 폐교 결정을 내린다.

신사참배와 친일활동을 했던 당시의 다른 대학들에 비교해 볼 때 이는 진정으로 민족을 위한 대학이었다는 평가가 의식있는 국민들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신사참배에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불교 등 다른 종교 성직자와 신자들도 참여해야 했으나, 상대적으로 마찰은 적었다.

영향

신사참배는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의 하나로 강요한 것으로서, 신사는 일본의 민간종교인 신도(神道, Shintoism)의 사원으로 일본 왕실의 조상신이나 국가 공로자를 모셔놓은 사당이다.

일제는 합방 후 신사사원규칙을 발표, 서울에 조선신궁을 세우는 한편, 각 지방에 신사를 세웠다.
조선인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한 것은 1935년경부터인데, 우선 각급학교 학생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했으나 기독교계 학교에서는 이를 거부하다가 평양 숭실학교·숭의학교 등이 폐교되었고 학생·선교사·목사들의 반대운동은 계속되었으며, 주기철 목사와 같이 적극적으로 반대하다가 투옥되어 순교한 일이 발생하였다.

중일전쟁(1937∼1945년)을 전후하여 기독교 성직자들에게 재차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천주교는 로마교황청의 결정에 따라 신사참배에 응했고,
감리교도 이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장로교는 한때 반대했으나, 총독부의 요구와 일부 친일목사들에 의해 제27회 총회에서 찬성결의를 함으로써 결국 굴복했다.

1945년 8월 15일 지국주의 야욕의 일제가 패전으로 종전되었지만 신사참배와 관련하여 아직까지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등 문제와 논란이 발생되고 있다.

신사참배에 기독교계 전체가 공식적으로 동원된 것은 그 후유증이 상당히 컸다.
일제 패망 후 며칠만에 신사를 불태워 버렸을 만큼 신사참배 강요에 대한 조선인의 반감이 강했기 때문이다.
특히 신사참배에 앞장선 이들이 법적 책임을 지는 과거사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문제가 잠복해 있었다.
후에 이로 인한 상처를 씻기 위해 공산주의를 사탄으로 삼는 지나친 반공주의와 보수주의적 흐름이 나타났을 정도로 한국 기독교 역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견해가 있다.

2006년 대한민국의 소장파 목회자들이 모여 결성한 한국 기도굑 목회자 협의회가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한 일과 독재정권 시절에 권력층과 야합해 정의를 뒤엎기도 한 죄악에 대해 마음을 찢으며 참회한다."
내용으로 반성문을 발표하기도 했으나, 교단 차원의 공식적인 인정이나 참회는 현재까지 하지 않고 있다.








제27회 총회서 17개 노회 수치스런 결의 ... 전국 노회서 공식 취소 결의 잇따라야



▲ 제27회 총회회의록 중 신사참배 결의 내용을 담은 성명서가 기록된 부분.

1938년 9월 9일부터 15일까지 평양서문밖교회에서 조선과 만주 27개 노회의 총대 193명(목사 86명, 장로 85명, 선교사 22명)이 모여서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7회 총회를 개최하였다. 개회 당시 총회장은 이문주 목사(경북노회·대구남산교회)였다.

첫날 저녁 8시에 개회하여 임원을 선출하니 총회장으로 평북노회 홍택기 목사가 선출됐다. 이튿날 오전 9시 30분 속회하여 박응률 목사로 기도하게 하고 회무를 시작한 후 1시간이 지나서 10시 50분경, 평양노회장 박영률 목사가 평양노회 평서노회 안주노회의 연합대표로 신사참배를 결의하자는 제안을 하여 즉시 가결하였다. 그리고 성명서를 발표한다.

“아등(我等)은 신사(神社)는 종교가 아니오, 기독교의 교리에 위반되지 않는 본의를 이해하고 신사참배가 애국적 국가의식임을 자각한다. 그러므로 이에 신사참배를 솔선 려행(勵行)하고 나아가 국민정신동원에 참가하여 비상시국 하에 있어서 총후(銃後) 황국 신민으로서 적성(赤誠)을 다하기로 기한다.

소화13년(1938년) 9월 10일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장 홍택기”

총회는 신사참배 가결 후 후속조치로 부총회장과 각 노회장이 총회를 대표하여 즉시 신사를 참배할 것을 결정하여, 12시 정회 후 평양 신사에 참배하고 돌아와서 오후 2시부터 속회했다.

평북노회는 총회 개회 이전인 1938년 2월에 이미 신사참배를 가결하였고, 전북노회도 6월 8일 제32회 정기노회 중에 가결하였으며(‘전북노회록’ 참고), 경북노회는 8월 19일 제36회 2차 임시노회에서 신사참배하기로 가결하고 이에 찬성하는 회원들을 총대로 선정하였다(‘경북노회105년사’ 참고).
▲ 신사참배를 결의한 조선예수교장로회 대표들이 1938년 9월 10일 평양신사를 찾아가 참배하는 모습이 당시 조선일보에 게재됐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전남노회였다. 전남노회(당시 노회장 박연세 목사)는 전국 27개 노회 중에 유일하게 노회 보고서에 신사참배를 결의한 내용을 총회에 제출하여 총회록에 남겼다. 1938년 5월 6일부터 10일까지 목포양동교회에서 열린 전남노회의 제30회 정기노회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노회록에 담았다.

“광주 4교회 도당회와 목포양동교회 당회의 헌의안을 받아 다음과 같이 보고하나이다.

1.신사참배는 국민정신통일에 순연한 국가의식임으로 본 노회로서는 혼연히 참배함이 당연한 국민의 의무인 동시에 교회지도상 선명한 태도인줄을 아오며.” (만장 일치 가결)

이와 관련해 제27회 총회회의록(121쪽)의 제9호 각 노회 상황보고에서 전남노회 해당 부분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특별사항은 금춘 정기노회에 오랫동안 문제로 되어오던 참배 문제에 대하여 당국의 지시대로 신사는 종교가 아니요, 참배는 국민정신 통일을 위한 국가 의식임을 인식하고 본 노회로서도 참배함이 국민의 당연한 의무인 동시에 교회 지도상 선명한 태도일줄 알고 이를 결의 실행하는 동시에 관내 각교회에 통지하여 일반 교인으로 취할 것을 보였사오며.”

제27회 총회에 참석한 전체 27개 노회 중에 공식적으로 신사참배를 결의한 노회는 17개였다. 이때 일제는 총회에 참석할 총대들은 신사참배를 찬동하는 자들로 선정할 것을 지시하였다. 당시 총회에 참석하고 상황을 목격한 김양선 목사는 당시의 상황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 기록에 따르면 당시 일제는 각 지방 경찰서를 통하여 총대로 선정된 노회 대표들에게 다음 3개의 조건 중 택일할 것을 강요하였다. 3개의 조건은 ‘1.총회에 참석하면 신사참배가 죄가 아니라는 것을 동의할 것 2.신사참배 문제가 상정되며 침묵할 것 3.상기 양안을 실행할 의사가 없으면 총대를 사퇴하고 참석하지 말 것’ 등이었다. 그리고 이 세 조건을 모두 불응하는 사람들을 구속 투옥하였다.

뿐만 아니라 총회 석상에서 경찰서 지도부들이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총대석 옆에도 정복 경찰이 서 있었으며, 총대석에도 사복경찰이 포진해 있었다.

이처럼 총회의 신사참배 결의는 일제의 엄청난 강압에 의한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스스로 수치스러운 결의를 한 것이며, 또한 당일 12시에 총회 대표가 직접 평양 신사에서 참배를 실시함으로 범죄를 저지르는데 이르고 말았다.

해방 후 1946년 남부총회에서 신사참배 취소 결의를 하였으나, 이는 남한 노회들만의 것으로 인정됐다. 이후 1954년 제39회 총회에서 남북한 노회의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안건(권연호 목사 제안)으로 받아, 신사참배 결의가 불법인 것으로 취소하는 정식 결의를 한다. 당시 총회 기간 중 회개의 성찬과 3시간 특별기도회를 열고, 6월 한 주일 전국교회가 회개하는 의미로 연보하여 신사참배를 거부한 순교자들의 가족을 위로하는 일을 실시하였다.

하지만 총회와는 달리 과거 신사참배를 결의한 노회가 정식으로 회개하고 취소한 기록은 오랫동안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2016년 7월 31일 산정현교회에서 평양노회에서 분립한 7개 노회(경평, 남평양, 동평양, 서평양, 평양, 평양제일, 북평양)들이 과거 신사참배에 앞장선 노회 결의를 무효로 선언하는 취소결의를 했다.

또한 이 자리에서 순교자 주기철 목사의 복직도 결의한 후, 각 노회 대표들과 노회원들 그리고 총회역사위원회가 함께 모여 ‘주기철 목사 복권 감사예배’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과거 신사참배에 앞장선 노회와 선배 노회원들의 불의와 허물을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아가 신사 참배 거부운동에 앞장선 주기철 목사의 일사각오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결의도 하였다,
▲ 장영학 목사(한국교회역사자료박물관 관장)

올해는 총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한 지 80주년을 맞는 해이다. 전국의 노회들은 총회의 치욕적인 신사참배 결의에 대해 공동 책임을 지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신사참배 결의에 대한 취소 결의를 하고, 회개하며 참회하는 성찬을 받아야 할 것이다. 비록 총회 차원에서 취소 결의를 했지만, 해방 이후 노회들이 정식으로 취소 결의를 한 흔적을 찾을 수 없으니 이에 대해 부담감을 갖고 노회들마다 정식 취소 결의를 해야 할 것이다, 모두가 역사적 책임을 지는 마음으로 참회를 해야 할 것이다.
▲ 평양 금수산에 세워진 신사.

이름도 예쁜 ‘금수산’ 자락에 ‘광풍정’이라는 이름의 정자가 서있던 자리였다. 모란대와 을밀대 그리고 대동강 등 평양의 온갖 장관을 한 눈에 볼 수 있던 바로 그 자리. 하지만 이미 빼앗긴 조국의 산하였고, 거기에는 치욕의 상징인 일본 신사(神社)가 서있었다.

일행은 왼손, 오른손, 입을 차례로 씻고 옷깃을 여민 후 본격적인 신사참배 의식에 들어갔다. 정해진 순서대로 절을 하고, 손뼉을 치는 행위가 반복됐다. 바로 몇 시간 전 예배당에서 찬송을 부르던 그 입술이었고, 기도하기 위해 모았던 그 손이었다.

신사는 일본의 국교 신도(神道)의 사당이다. 당초 신도는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선조나 자연을 숭배하던 토착신앙이었다. 그러나 1868년 일본이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천황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신도를 적극 활용하면서 국가종교로 부각되었다.

대륙침탈의 야욕을 불태우던 일제는 자신들이 진출한 지역에는 반드시 신사를 세워 자국민의 단합과 상대민족의 사상통일을 꾀했고, 우리나라에도 1876년 개항 이후 전국에 수많은 신사를 설치한다. 처음에는 일본 거류민들 중심의 민간차원에서 건립과 운영이 이루어졌지만, 1910년 한일병탄 뒤부터는 본격적으로 국가 차원의 육성이 시작됐다.
▲ 서울 남산에 건립된 조선신궁.

1925년 서울 남산에 조선신궁이 건립된 것을 계기로 일제는 본격적으로 신사참배를 우리 민족에 강요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립학교, 그 다음에는 일반 사립학교, 나중에는 기독교학교와 교회들까지 주요 공략대상이 됐다.

처음에는 ‘우상숭배’라며 강력히 맞섰던 한국기독교의 대오는 소위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부르짖으며 강력한 식민정책을 펼친 일제의 탄압 앞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로마 교황청의 훈령을 받고 투항한 가톨릭에 이어, 개신교에서는 감리교회가 앞장서 1936년에 백기를 들었다.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주도했던 장로교회마저 1938년 9월 10일 평양서문밖교회에서 개회한 제27회 총회를 기점으로 변절하며, 한국교회는 결국 패배의 쓴잔을 받아든다. 일본 경찰들이 대놓고 자행하는 감시와 통제 속에서 신사참배를 공식 결의한 조선예수교장로회총회 대표들은 회의까지 멈추고, 평양신사로 향했다.

평양신사는 일본인들이 ‘천조대신(天照大神)’이라 부르는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를 제신으로 섬기는 사당이었다.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린 이들은 ‘기독교 교리에 위반하지 않는다’ ‘애국적 국가의식이다’고 스스로 강변했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는 우상숭배이자 배교행위였다.

한국교회는 그렇게 쓰러졌다. 한 번 내준 신앙의 정절은 속절없이 내팽개쳐졌다. 이후 장로교 총회 기간에는 신사참배가 당연한 절차처럼 실시됐고, 전국 교회로부터 돈과 종을 거두어 일본군대의 무기 구입자금으로 헌납하기도 했다. 1942년에는 ‘조선장로호’라는 이름이 붙은 전투기가 등장했다.

이름 있는 목사들은 겨레 청년들을 점령국의 용병으로 내몰고, 일제의 대동아전쟁에 협력하도록 교회를 독려하는 시국강연회 연사로 등장했다. 한 때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리었던 ‘대부흥’의 성지 평양의 교회들은 신사참배 결의 이후 쇠락의 길을 걷다가 결국 해방 이후에도 회복되지 못했다. 무서운 암흑기가 도래했다.

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



2018년 9월 10일 신사참배 결의 80주년을 맞이하며

한국 장로교회 신사참배 결의와 1940년대의 부일과 배교

 

나삼진 목사 (Joyful Educational Ministries 원장)

2018년 9월 10일은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7회 총회가 “신사는 종교가 아니오, 기독교 교리에 위반되지 않는 본의를 이해하고, 신사참배가 애국적 국가의식임을 자각”하며, 이를 “솔선 여행하고, 비상시국하에서의 총후 황국 신민으로서의 적성을 다하기로” 결의하고 성명서를 낸 지 8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는 한국 장로교회 50주년 희년잔치를 마친 후 불과 4년 만의 일이었는데, 오늘날까지 134년의 한국 장로교회 역사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이 신사참배 결의 80주년을 맞이하여 관심은 갖지만 매우 피상적으로 알고 있으며, 그 이후 1945년 해방 때까지 교회가 어떤 범과를 저질렀는가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신사참배 결의 80주년을 맞이하여 회개 집회를 갖는다는 보도가 있지만,1) 신사참배 결의에 대한 학문적인 평가와 반성도 빈약한 실정이다. 더구나 올해는 한국 장로교회 중요 교단 총회가 신사참배 결의 80주년 기념일에 개회하는 데도, 이에 대한 의미있는 행사가 준비되지 않고 있는 것은 한국 교회의 빈곤한 역사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교회 역사를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한국 장로교회 총회의 신사참배 결의 80주년을 맞이하여, 그 이후 1940년대 한국장로교회의 부일과 배교의 역사를 정리하고자 한다. 이 사건은 우리 시대에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그 역사적인 경계를 삼고자 한다. 이 논의를 통해 한국 장로교회가 새롭게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1.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와 장로교 총회의 신사참배 결의

1) 일제강점기 기독교 탄압의 배경과 신사참배 강요

일본 제국주의(일제)의 식민지 정책은 정치적 억압정책, 경제적 수탈정책, 문화적 말살정책 등 세 가지 정책으로 나타났다.2) 정치적 억압정책은 한국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한국인의 정치적 참여를 봉쇄하는 것이었고, 경제적 수탈정책은 농업 방면과 상공업 방면에서의 수탈이 중심이 되었으며, 문화적 수탈정책은 교육정책과 언어정책, 역사왜곡 등이 중심이 되었다. 거기다가 종교적 탄압정책도 함께 나타났는데, 일제는 기본적으로 기독교에 대해서 극심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천황숭배와 신사신앙을 축으로 하는 그들의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 이데올로기가 기독교와는 조화, 공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제에게는 당시 기독교가 민족운동과 깊은 연대를 가진 배일세력으로 인식되었으며, 일본과 경쟁, 혹은 적대관계에 있는 영국과 미국 등 서구 여러 나라들과 선교사를 매개로 연결되어 통제나 지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3) 일제가 기독교를 유독 탄압했던 것은 이렇게 일본의 제국주의적 본성과 갚은 관련을 갖는다.

1910년 한일합방으로 한국을 식민지로 삼은 일본은 그 야욕을 중국으로 뻗히게 되었는데, 1932년에 허수아비 정권으로 만주국을 수립했다. 일제의 이러한 야욕은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더욱 노골화되어, 1937년 7월 선전포고 없는 중일전쟁을 도발한 후에는 대동아공영권을 주창하며 중국대륙을 병탄하려 했다. 이는 전쟁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었으므로, 그들이 즐겨 사용했던 ‘총후(銃後, 후방을 의미)의 지원과 협력을 위해 국민정신의 통일이 중요했다. 이에 조선과 일본이 하나임을 강조하는 내선일체 정신 계몽에 적극적이었다.

1936년 8월 관동군 사령관 출신의 미나미가 제7대 조선총독으로 부임하면서 조선민족을 말살하는 대대적인 억압정책을 폈다. 일제는 1937년에 들면서 9월 6일 애국일 제정, 10월 2일 ‘황국신민의 서사’의 제정과 일상적 제창 강요, 1938년 2월 6일 지원병제 실시, 3월 4일 민족성 말살을 위한 조선교육령 개정, 1939년 1월 10일 창씨개명 강요, 1942년 5월 징병제 실시, 1942년 초등교육 배가계획 등의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였다.4)

일제는 식민지 통치를 시작한 후 그들의 종교 신도(神道)를 한국에 이식하기 시작했다. 1925년 조선신궁을 건립한 이래 도처에 신사를 건립하면서 1936년에는 전국에 54개의 신사(神社)와 293개의 신사(神祠)를 보유하게 되었다. 일제는 신사참배로 국민들의 정신적 통일을 이루려 하였다.

신사참배의 강요의 첫 시도는 1932년 춘기 황령제의 제례에 각급학교의 참여를 요구한 데서 시작되었다.5) 이러한 요구가 1935년부터 기독교 학교 신사참배 강요로 나타났고, 1936년부터는 교회와 교회기관에도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다. 1937년 7월에 1면 1신사 정책이 추진되면서, 신사가 급격히 늘어 1945년에는 신사(神社) 79개와 신사(神祠) 1,062개가 되었다.6) 최근 공개된 1942년 5월 경 전남 담양면장의 공문에 의하면, 일제는 신사운영비까지 주민이 부담하게 했다.7)

2) 장로교 총회의 신사참배 결의

신사참배는 기독교 여러 교파에 요구되어 장로교에서는 1938년 2월 9일 평북노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한 이후 8월에는 평양노회, 9월에는 경안노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하였고, 전국 23개 노회 가운데 17개 노회가 일제의 강요에 굴복하여 신사참배를 결의하였다.8) 이 시기에 각 종교단체나 다른 교파들 가운데 천주교는 교황청의 정책에 따라 일찍이 1936년 5월에 국가의식으로 받아들였고, 안식교는 1935년에, 감리교는 1938년 9월 3일 총리사 양주삼의 명의로 신사참배 여행 성명서를 발표했다. 마지막으로는 장로교 총회가 1938년 9월 10일 제27회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아등은 신사는 종교가 아니오, 기독교 교리에 위반되지 않는 본의를 이해하고 신사참배 가 애국적 국가의식임을 자각하며 이에 신사참배를 솔선 여행하고 추히 국민정신총동원 에 참가하여 비상시국 하에서 총후(銃後) 황국신민으로서 적성(赤誠)을 다하기로 기(期)함

소화 13년 9월 10일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장 홍택기

제27회 총회에서는 이 결의 후 평양기독교친목회 심익현 목사가 신사참배 즉시 실행을 특청하자, 총회가 이를 받아들여 김길창 부총회장의 인솔로 전국노회장 23명이 총회를 대표하여 평양 신사에 참배하였다.9) 이어 총회에서 김길창이 제출한 건의안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10)

1) 당국과 조선교회와 선교사단과의 삼각적 관계의 원만을 도모할 일

2) 총후보국(銃後報國)에 물자헌납운동은 물론 우선 정신 동원의 일부로서 내지교회와의 연락을 위한 친선사절을 보낼 일

3) 국방헌금은 교회가 일정한 시일에 애국예배를 보는 동시에 국방헌금대로서 조직할 일

4) 신사참배는 사대절(四大節)에 일반시민과 같이 참배하도록 당국과 교섭할 일.

12월 12일에는 장로교 홍택기, 김길창, 감리교의 양주삼, 김종우, 성결교의 이명직 등 5인이 한국교회 대표단으로 일본의 이세신궁과 가시하라신궁 참배를 떠났다.11) 제27회 총회의 신사참배 결의는 일제의 강요에 의한 것이겠지만, 총회에서의 부속 결의와 그 이후 지도자들의 행적으로 볼 때 신사참배는 일제의 강요와 억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인 성격이 강했다고 할 수 있다.

 

3) 기독교 학교의 폐쇄와 신사참배 반대운동

신사참배 강요에 대한 저항의 반작용도 있었는데, 평양 장로회신학교는 신사참배를 하지 않기 위해 1938년 졸업생들에게 우편으로 졸업장을 보내고 스스로 휴교했다. 주한 각 선교부들은 신사참배에 응하지 않기 위해 그동안 설립, 운영해오던 기독교 학교를 폐교했다. 이들 선교부들 가운데는 남장로교회 선교부가 강력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신사참배 강요가 본격화 되면서 선교본부 풀톤 총무가 내한하여 신사참배 반대의 의지를 분명히 함에 따라 그해 9월 6일 전라남북도의 도지사들은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전라지역의 네 학교를 강제로 폐교하였다. 순천 매산학교, 전주 신흥학교, 기전여학교 등의 세 학교도 스스로 폐교 신청을 해 폐교되었다.12) 이같은 반응은 부산경남지역을 관할하던 호주장로교회도 1938년 6월에 학교들을 폐쇄하였다.

신사참배 반대에 따른 일제의 종교적 탄압이 가속화되면서 다른 교파들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1942년 2월 20일 미국감리교회 해외선교부에서 선교사들은 모든 선교지역에서 철수하라는 지시가 하달되었고,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본국으로 철수하였다.13)

제27회 총회의 신사참배 결의 후 전국적인 신사참배 반대운동이 전개되었는데, 대표적인 인물은 평안남도 주기철, 평안북도 이기선, 경상남도 한상동, 만주 한부선 등이었다.14) 집단적, 조직적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전개한 이들은 1940년 9월 20일 새벽 4시 일제검거로 체포되었다. 한국 교회에서 신사참배 반대로 200여 교회가 폐문되고, 2천여 명이 투옥되었으며 이중 50여 명이 순교하였다.15) 8월 17일 밤 이기선, 주남선, 한상동 등 20명이 평양감옥에서, 손양원이 청주감옥에서, 또다른 소수가 부산감옥에서 출옥했다.16)

 

2. 신사참배 결의 이후의 한국 장로교회의 훼절과 배교

장로교 총회가 신사참배를 종교의식이 아니라 국가의식으로 결의한 이후 교회는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이듬해 9월에 있은 제28회 총회에서는 일제에 협력하기 위한 기구로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연맹을 조직했다. 총회 파회 후 산회되는 총회와는 달리 이 기구는 상시체제를 유지하였는데, 이사장은 총회장이 맡고, 각 노회장은 이사로, 총대들은 평의원으로 선임되었으며, 전국에 26개 노회 지맹이 결성되고, 731개 애국반이 조직되었다. 1937년 7월부터 1940년 8월까지 장로회 총회연맹에 보고된 장로교의 친일행위는 전승축하회 604회, 무운장구기도회 8,953회 국방헌금 15,803.46원, 휼병금 1,726.46원, 유기 308점, 시국강연회 1355회, 위문 181회, 위문대 1,580개였다.17)

1940년대의 한국 장로교회 총회는 개회 이후 총대 일동이 신사에 참배하는 치욕을 겪어야 했다.18) 제30회 총회에서는 시난극복의 결의문을 작성, 총회장 명의로 발표하고, 이를 지나주둔황군사령관에게 보내기로 결의하였다.19)

동양평화를 확보하고 팔기일우의 대이상을 구현한다는 황국부동의 국시를 지금은 적성국 가의 제국에 대한 도전적 태도가 일일 노골화되어 아국의 국시수행에 방해를 위해 광분 하는 현 시국의 긴박하고 비상의 때인 가을에 기독교도로서 초연하지 않고 장로교파 36 만 신도는 불퇴전의 결의를 가지고 국책에 순응하여 결전태도를 실천확립하고 시난극복 의 정신을 갖도록 한다.

소화 16년 11월 22일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장

1940년대의 한국 장로교회가 얼마나 부일과 배교의 길을 걷게 되었는가는 제31회 총회 회의록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20)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개회되었던 제31회 총회는 개회예배 전에 먼저 필승 기원선언문을 채택하고, 다음과 같은 선언문을 발표했는데, 회의록은 “일동은 크게 감격해서 박수를 하였다”고 기록하였다.21)

천황의 덕분으로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고, 그로 인해 세계 신질서를 완성한 것 이 우리 제국의 국시입니다. 우리의 황군 장병은 하늘에서 바다에서 육지에서 큰 전과를 거둬가 고 있는 것에 대하여 전장의 뒤에 있는 국민은 감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가을에 우리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천황의 은혜에 감격해 눈물을 흘리고, 협심 전력으로 성스러운 업적을 완수하도록 매진할 것을 결심합니다.

왼쪽과 같이 선언합니다.

소화 17년 10월 16일

조선예수교장로회총회

제31회 총회에서는 이 선언문 채택뿐만 아니라 개회 이튿날 1942년 10월 17일 오전 9시 30분 총대원들이 일제히 평양 신사에 가서 참배하였으며, 이어 평안남도 고등감찰과장의 시국강연, 국민의례, 특별강연회, 전승기도예배가 있었다. 주일에는 성만찬 예식이 있은 후 창무 조선군 보도부장의 강연, 저녁에는 오후 7시에 전승기도예배를 가졌다. 총회 주최로 대동아전쟁 목적 관철과 기독교도의 실무를 재삼 격려하기 위하여 호남선, 경부선, 함경선, 황해선, 경의선 등 다섯 조로 나누어 전조선 중요도시에서 시국순회 강연대를 파송하기도 했다.22) 총회의 경건회에서도 설교를 맡은 목사가 로마서 13장 1-3절을 중심으로 ‘기독교인의 국민적 각오’라는 친일적 설교를 하기도 했다. 제27회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가결한 이후 불과 4년 안에 총회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이는 더 이상 장로교회의 총회일 수가 없었다.23)

1940년대에는 황민화 사상이 기독교 안에 까지 깊숙이 들어왔는데, 전국 교회에 가미다나(信朋)을 설치하고, 예배 전에 천조대신의 신패에 경배하고, 동쪽을 행해 일본 왕에게 절하고, 황국신민서사 낭독과 국기배례를 한 후 예배를 드렸다. 더구나 서울의 한강이나 부산의 송도 앞바다에서 천조대신 이름으로 신도침례(미소기 바라이)를 받도록 했다. 또 구약성경 사용을 폐지하고, 찬송가도 부분적으로 삭제되었다.24) 한부선은 그 시대에 모든 교회가 총독부의 선전도구가 되기 위해 하나의 교회로 묶여 총독부의 통제아래 놓이게 되었다고 증언한다. 성경도 구약성경에서 종말론과 연관이 있는 부분들은 사용이 금지되었고, 복음서를 중심으로 설교하게 했으며, 기독교인들이 주일에도 ‘전쟁을 위한 노력 동원’이 되었다고 전한다.25) 찬송도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금주가 등 21곡이 삭제되었다.26) 이같은 일은 감리교에서 더 협조적이었는데 1939년 1월 히라누마 내각에 의해 종교단체법이 통과된 후에 일본 기독교 조선 감리교단 정춘수 통리가 전국교회에 시도한 공문에서 확인된다. 공문에는 구약성서와 신약의 묵시록을 사용하지 않고, 사복음서에 기인하여 교의를 선포하기로 교회에 통달이 있었다.27)

3. 1940년대 한국 장로교회의 부일, 배교 행적들

제31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1942년 10월 16일 서문밖교회당에서 26개 노회 총대 목사 69명, 장로 66명, 모두 135명이 참석한 가운데 회집했다. 이 총회에 각 노회에서 상황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총회 회의록 79면부터 90면까지에 수록되어 있다. 각 노회는 감사의 건, 교회상황, 특별상황, 교육상황, 장래 계획, 교세 통계 등을 보고하는데, 노회는 특별상황과 장래 계획이라는 항에서 부일, 배교 행적들을 상세하게 남기고 있다. 이를 내용별로 분류,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애국기 헌납 헌금

1841년 8월 ‘조선장로교도 애국기 헌납기성회’가 조직되고, 모금을 시작하였다. 이어 이 일은 ‘국민총력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연맹’을 통해 이루어졌다. 다수의 노회에서는 애국기 헌납을 위해 헌금하였는데, 충청노회는 4,051.60원을, 전북노회는 4,000여 원을, 군산노회는 4,500원을, 용천노회 25,000원, 평서노회 8,000여 원을 헌금했고, 삼산노회와 제주노회는 금액을 밝히지는 않지만 애국기 헌금을 위해 후방국민으로서 정성을 다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 모든 헌금은 기성회를 통해 모금되어 군에 전달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계속되자 일제는 무기 제작을 위한 물자 확보를 위해 교회의 종을 징발했다. 충청노회는 82개 교회 가운데 80개 교회의 종을 헌납하였고, 평서노회는 68교회에서 국방헌금 외에 조종 77개와 놋그릇 152개를 헌납하였으며, 전북노회는 종과 함께 금속류 회수운동을 전개하여 놋그릇 수 천점과 교회 조종을 헌납했다고 보고하고 있다.28) 이렇게 수납된 종은 1941년 10월부터 1942년 10월 15일까지 전국적으로 1,540개, 총액 약 11만 9,832원에 달했으며, 놋그릇 등 잡종기 헌납은 2,165점이었다.29)

이렇게 모금운동을 전개하여 1942년 2월 10일 육해군에 애국기 1대 또는 기관총 7정의 대금으로 150,317.50원을 헌납하였고, 그 후 들어온 자금으로 같은 해 6월 조선군 사령부를 방문하여 육군환자용 자동차 3대 기금으로 23,221.28원을 납부했다.30) 1942년 9월 20일 해군성으로 헌납한 애국기 명명식이 경성운동장에서 개최되었는데, 총회 대표가 함께해 감사장과 수납서를 받았으며, 해군보국호 선상전투가 한 대와 육군 기관총 두 정에 대한 명명은 ‘조선장로호’로 명하고, 당일 헌납 보국호 사진을 해군성으로부터 받았다는 총회 연맹 보고를 하고 있다.31)

총회 연맹은 1944년 반도인에 대한 징병령 계획에 따라 “이 감격을 안고 동 준비운동을 함에 있어 실제적 운동으로서 전 조선 기독교 가정 부인계몽운동을 하기로”하고, “전 조선 기독교 지도자는 일본적 기독교 정신 아래 교회원을 지도하도록 함에 있어서 본 총회 연맹은 그 지도자에 대한 황도정신에 함량과 함께 기독교 신학사상의 명랑화를 기해서 철저하게 연성운동을 하도록 함”이라 보고한다.32) 이 시기 한국 장로교회의 부일협력과 반민족적인 행위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2) 시국강연회와 전승축하대회

이 시기에 여러 노회에서 시국강연회도 실시하였다. 충청노회는 관내 82개 교회 가운데 80교회에서 시국강연회를 실시하고, 조종을 헌납하고, 부여신궁 제조에 근로봉사대 3인을 파견했다. 이와 함께 충청노회가 교파합동 청원서를 총회에 제출하였다.33) 삼산노회는 징병제 실시 경연과 애국예배를 실하였고, 제주노회도 1938년 2월 지원징병제 실시에 따라 축하 강연을 도경찰서 고등계의 후원 아래 제주도내 20여 개 교회에서 개최하였다.

일본군이 전장에서 승리하면서 노회에서는 전승축하대회도 개최하였다. 이 일에 가장 앞장섰던 노회는 서울을 교구로 하는 경성노회였는데, 결전 체제강화 신도대회를 개최하고, 전승기원대회와 남방 출정 황군장병을 위한 일장기 500본을 발송했으며, 싱가포르 함락 축하 신도대회 및 징병제 실시 감사대회를 개최하였다.34) 노회 관내 여러 교회는 국어(일본어) 강습회 개최, 황군장병에 대한 위문품, 위문금을 종전대로 발송하였다는 보고로 보아 이전부터 계속된 사업임을 알 수 있다.

3) 교회 통폐합

일제는 교회의 통폐합에도 적극적이었다. 일제는 기독교 세력의 약화를 기하기 위해 지역교회의 통폐합을 강요하여 1941년 3,624교회에서 1942년에는 2,543교회로 줄어들었다.35) 한 해 동안 모두 1,081교회가 폐쇄되었는데, 이는 당시 총 장로교교회 수의 30%가 되는 것이다. 그중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이 경남노회로, 노회 상황보고에서 “통제에 의해 교회의 통폐합을 실행한 결과, 335교회 중에 108교회가 감소하였다”고 보고하고 있다.36) 이는 총회산하 교회 감소분의 꼭 10%를 차지하는 수로, 전국 26노회인 것을 고려하면 가장 많은 수의 교회가 폐쇄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에 일제의 박해에 의해 기독교 신앙과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지만, 노회의 보고를 볼 때 노회가 일제의 뜻을 따라 적극적으로 교회 통폐합에 협력하였음을 알 수 있다.

4) 일본적 기독교 추진

일제는 기독교를 일본적 기독교로 바꾸기에 혈안이 되었고, 교회들이 이에 협력했다. 충청노회는 일본적 기독교로 진일보 전환했다고 보고하고, 함북노회는 교역자 하기 수련회를 개최하여 일본정신사 강의를 한 주 동안 청강을 보고하고 있다. 황해노회는 신도의 신앙에 충실하기 위해 힘을 쏟았음을 보고하고, 평양노회는 비상시국에 임하여 각 시찰부에서 활동하는 선교 대신에 목사를 파견하여 순회하도록 하고 있다. 삼산노회에서는 일요학교에서 일본어로 가르치고, 일요학교 지도수련회를 개최할 계획을 세우고 있음을 보고하고 있다.

또한 여러 노회가 일본적 기독교화에 앞장서겠다는 장래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경성노회는 신도로서 충성보국의 전신을 철저하게 하도록 하며, 전북노회는 일본적 기독교 확립에 매진하며, 전남노회도 황국길에 따라서 일본 기독교 완성에 매진할 계획을 보고하고 있다. 제주노회도 국어 보급을 장려하고, 일본적 기독교에 매진하며, 경남노회도 교회의 지도자 및 신도 등을 노회 또는 지방적으로 각각 훈련시켜 일본적 기독교 건설에 매진하며, 경동노회도 신도들에게 철저히 시국인식을 하게 하여 전도 사업 및 종교교육에 임하여 일본적 기독교 건설에 매진토록 하는 것을 장래 계획으로 보고하고 있다. 경북노회와 함북노회 등도 유사한 내용을 보고하고 있다.

5) 교파의 통폐합

한국 장로교회의 이같은 부일협력과 배교행위가 따르는 사이, 일제는 기독교를 효율적으로 통제, 관리하기 위해 교파통합을 추진, 각 교파를 일본기독교 조선교단으로 통폐합하려 했다. 교파통합을 위한 일제의 뜻을 파악하였던 충청노회와 평양노회는 교파 통합청원서를 총회에 제출하였다. 이 청원은 정치부로 보내졌다가, 정치부 보고를 받아 가결하고 중앙상치위원회에 위임되었다.37)

교파의 통폐합은 제31회 총회 이전에 이미 추진되고 있었는데, 1942년 1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일본기독교 조선교구, 구세군 등 다섯 교파 대표가 모여 조선기독교합동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통합을 추진하다가 감리교의 이탈로 실패로 돌아갔다. 교파 통합이 결렬되자, 장로교 총회는 상치위원회의 결의에 따라 1943년 5월 총회를 해산하고, ‘일본기독교 조선장로교단’이 되었다.38) 이어 일제는 전세가 이미 기울었음에도 불구하고 1945년 8월 1일에 다시 모든 교파들을 ‘일본기독교 조선교단’으로 통합되었다.39) 초대 통리는 장로교 김관식, 부통리에는 감리교 정춘수가 맡았다. 이것이 불과 해방 두 주 전의 일이었다.

장대현교회 목사로 평양노회 총대로서 교파 통합안을 헌의하고, 일본기독교 조선교단 설립에 앞장서 통리가 되었던 김관식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재빠르게 변신해 해방과 함께 조선교단의 기구적인 재건에 앞장섰다. 그는 1945년 9월 8일 새문안교회당에서 남부대회를 소집해 대회장을 맡아 교단을 이끌기를 원했으나 감리교와 장로교 대표들이 각각 교파로 환원을 원하면서 단일교단 유지가 무산되었다. 기독교계 친일인사들이 이렇게 해방 후 자숙없이 한국교회 대표로 등장하였고, 그에 비해 출옥성도들을 중심으로 한 교회쇄신론자들은 분리주의자로 매도되고, 결국 1951년 장로교 총회에서 축출되고 말았다.40)

이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 국가의 체계를 갖추기에 급급한 나머지 친일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아 민족정기가 바로 서지 못한 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한국 교회의 불행한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 정권에 협력하였던 독일 교회가 1945년 8월에 프랑크푸르트에서, 10월에 슈투트가르트에서 모여 지난날의 잘못을 참회하고 ‘슈투트가르트 죄책 고백’을 발표하고 하고, 책임있는 사람들은 독일교회의 재건과정에서 물러난 것과 대비되고 있다.41)

맺는 말

지금까지 일제의 기독교 탄압과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7회 총회에서 신사참배 결의, 그 후 1940년대 한국 장로교회가 어떻게 훼절되고 배교의 길을 걸었는가를 논의하였다. 이제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하며 이 소론을 마치려 한다.

첫째, 한국 교회는 신사참배 결의 80년을 맞아 부끄러운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회개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1930년대 말과 1940년대 당시의 우상은 신사에 절하는 것이었는데, 이 시대에 어떤 우상들이 그리스도인의 삶과 교회에 침투하고 있는가를 인식하고, 이를 청산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가장 심각한 우상은 돈과 명예와 권력일 것이다.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교회와 목회자들의 재정비리는 교회가 돈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기 때문이다. 목회에 어느 정도 성취를 경험한 이들이 감투에 대한 욕심이 연합기관을 만들어 명예를 추구하고, 비상식적인 기관 운영으로 자주 물의를 일으킨다. 또 교회의 역량을 넘어선 거대한 예배당을 건축하고, 이를 유지하지 못해 이단교회에 넘기는 일까지 발생되는 것은 교계 지도자들이 명예의 우상을 섬기기 때문이다. 또 오늘의 한국 교회에 교권주의가 판을 치고, 교회 지도자들이 국가권력과 결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것은 권력 우상을 섬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한국 교회에서 더 이상 교권이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일을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된다.

둘째, 한국 장로교회 총회의 신사참배 결의 이후 발생한 교회의 훼절과 배교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 교회는 총회에서 신사참배 결의가 이루어지고 그 방파제가 무너진 후 1940년대에 모든 것이 일시에 무너지는 도미노 현상을 경험했다. 1940년대에 목사들이 신도 침례까지 받았고, 한국 장로교회 총회는 애국기 헌납 헌금, 시국강연회와 전승축하대회, 교회 통폐합, 일본적 기독교화 추진, 교파 통폐합 등에 앞장서 부일과 반민족적 배교의 길을 걸었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한 매체의 보도에 의하면 한국 교회 총회장이나 중요 기관장들의 상당수가 교회를 자녀에게 세습했다. 한국 장로교회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예장통합의 총회 재판국이 총회 헌법의 규정을 벗어나 명성교회의 세습이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함에 따라 이 문제가 제103회 총회의 핫이슈가 되어 있다. 한국 교회 희년 잔치를 벌인 후 4년 만에 이루어진 신사참배 결의와 같이 이 사건은 한국장로교회 총회 설립 100년 잔치를 벌인 후 불과 6년 만에 일어났다. 한국 장로교회 총회의 신사참배 결의가 한국 교회의 일제강점기의 부일과 배교의 본격적인 출발이 된 것과 같이 명성교회 세습의 용인은 한국 장로교회가 향후 돈과 명예와 권력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을 것인가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이 문제의 통합총회의 최종 결정이 한국 교회의 미래의 결정적인 방향타가 될 것이 분명하다. 한국 교회는 지금 흥망의 기로에 서 있다.

셋째, 한국 교회와 교계는 법과 상식으로 목회와 행정이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최근 비리 혐의로 총신대 총장과 이사들이 해임되어 임시이사가 파송되었고, 피어선성경학교의 백년 역사를 이은 평택대 총장은 20년 동안 여직원 성추행이라는 파렴치한 사건으로 법정 구속되었다. 대형교회들에서 발생한 목회자 비리와 윤리적인 문제들이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있으며, 많은 기독교계 대학들이 비리로 몸살을 앓고, 이러한 여러 문제들이 자주 방송에 노출되어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 혐오감을 갖고 있다. 한국 교회는 교회 행정과 재정운영에서 사회에서 통용되는 기준도 따르지 못해 사법부의 판단과 정죄를 받고 있다. 한국 교회는 공적 신앙을 회복해야 한다.

넷째, 한국 교회와 연합기관은 지난 수년 동안 정치적인 행사에 참여하면서 극단적인 수구세력으로 지목되고, 지성사회의 혐오를 받고 있다.

지도자들이 역사의식을 갖지 못하고 교회를 정치집회에 동원하면서 교회의 영광이 손상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 한국 교회는 이 땅에 존재하지만, 이 땅에 속한 기관이 아니다.

한국 교회가 신사참배 결의 80주년을 맞아 이 중대한 역사적 범죄를 깨닫고, 이를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나아가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를 사로잡고 있는 우리 시대의 돈과 명예와 권력의 우상을 척결하는 일에 앞장 서야 한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교회에 주어진 사명에 충실해 하나님 나라를 새롭게 하여 한국 교회 200년의 새로운 역사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 한국 선교 원년 : 1885년 4월 5일 / 2021년은 선교 136주년



신사참배는 ‘차금법’ 문제 바로 볼 수 있게 하는 거울



한국교회가 지은 신사참배의 죄에 대해 되돌아보면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된다.

첫째, 만일 모든 한국교회가 힘을 합하여 저항했더라면 그것은 막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저항을 포기한 사람들에 의해 지도자들의 의견들이 분열되었고, 결국 신사참배의 강요에 굴복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이것은 모든 교회사가가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둘째, 마귀는 그 죄악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일제는 이 신사참배가 종교 행위가 아니라 국민의례라는 명분을 들고 나왔고, 많은 지도자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 가운데는 실제로 그렇게 믿은 사람들도 있었고, 강요 때문에 굴복당하는 자신의 모습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렇게 믿고 싶어 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셋째, 마귀는 처음에는 조그만 것부터 시작하며, 일단 그것을 받아들이면 점점 더 심한 요구로 나아간다

한국교회가 신사참배는 국민의례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자, 일제는 더 심한 것들을 강요했다.

천조대신이나 천황이 여호와 하나님보다 더 높은 신이라고 주장해도 받아들여야 했다. 교회당 안에 간이신사를 설치하고 그것에 절하라고 해도, 예배시간에 신도예배를 함께 드리라고 해도, 목회자들에게 신도침례를 받으라고 해도,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신사참배는 종교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수용했기 때문이다.

넷째, 마귀는 처음에는 양처럼 접근해서는 폭군으로 돌변한다

신사참배가 처음에는 국민의례라는 부드러운 얼굴로 나타났지만, 일단 결의가 이루어지자 곧바로 반대자들을 탄압하는 무서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다섯째, 법적 결의가 중요하다

날치기 결의였지만, 총회에서 일단 결의가 이뤄지자 그것은 모든 배도의 근거가 되었고, 반대자들을 탄압하는 빌미가 되었다. 그러므로 어떤 총회의 결의나 법은 그것이 나쁜 것이라면 어떤 형태든 방관해서도 안 되고 함부로 통과되게 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교훈은 오늘날 문제가 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평등법과 같은 악법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차별금지법은 여러 가지 면에서 신사참배 문제와 유사성이 있다.

첫째, 신사참배가 그 속의 죄악을 감추기 위해 국민의례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난 것처럼, 차별금지법도 그 속에 들어있는 죄악을 숨기기 위해 인권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나고 있다.

소위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명분은 참으로 그럴듯해 보이고 선한 동기가 들어있는 것 같지만, 그 실체를 들여다보면 결국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기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엄청난 죄일 뿐이다. 우리는 그 가면에 속아서는 안 된다.

둘째, 신사참배가 조그만 것에서 시작해서 더 큰 배도로 이어진 것처럼, 동성애도 하나를 양보하면 더 큰 것을 양보하게 되어 있다.

동성애도 처음에는 동성 간의 애정을 허용하는 것에서 시작하다가 지금은 동성 간 결합까지도 허용하고 있다. 또 처음에는 육체적 성전환만을 트랜스젠더로 인정하다가 나중에는 육체적 성전환 없이 본인의 성정체성 주장만으로도 트랜스젠더로 인정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확대해 나간다면 나중에는 일부다처제도 소위 성소수자의 인권이라는 명분으로 보호해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셋째, 신사참배가 국민의례라는 부드러운 얼굴로 시작했다가 반대자들을 탄압하는 폭군이 됐다.

차별금지법 역시 성소수자의 인권 보호라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지만, 나중에는 반대자들을 탄압하는 무서운 얼굴로 돌변하게 된다. 이미 이 법은 동성애 반대자에 대한 탄압과 처벌 조항을 담고 있다. 신사참배의 가장 큰 피해자가 기독교였듯 차별금지법의 가장 큰 피해자도 기독교가 될 것이다.

넷째, 신사참배가 총회에서 결의되자 다른 모든 배도의 근거가 된 것처럼, 동성애 역시 법으로 합법화되면 교육이나 문화적인 면에서 다른 모든 죄악을 허용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

이 법에 따라 학교에서는 동성애 옹호 조장교육이 진행될 것이다. 언론과 문화 예술에서는 동성애를 미화하게 될 것이고, 삶의 현장에선 동성애가 만연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든 법이 제정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다섯째, 신사참배 문제에 대해 교회지도자들이 일치단결하여 반대하지 못했기 때문에 신사참배가 한국교회에 강요된 것처럼 차별금지법 문제에 대해서도 교회가 일치단결되지 않는다면 이 법이 제정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교회는 하나 된 목소리로 차별금지법에 반대하고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 이런 면에서 신사참배 문제는 차별금지법 문제를 바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좋은 ‘거울’이다. 팬데믹 시대 신앙을 위협하는 갖가지 시도에 대응하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라도 교회사를 더욱 깊이 연구해 나아갈 길을 찾자.

信行一致





두 종류의 실존 / 하나님 앞에서(코람 데오) & 사람 앞에서(코람 호모, 호미니부스)


2023년 2월 22일(재의 수요일) 사순절 제1일
나는 어떤 삶을 추구하며 살아왔는가?

두 종류의 실존 

사람의 삶을 두 종류의 실존으로 구분한다.

첫째는 하나님 앞에서의 실존(로마서 14:8)
(코람 데오) Coram Deo, Before God

로마서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코람 데오(Coram Deo, 신전의식. 神前意識,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은 하나님의 임재 혹은 신전사상(神前思想)를 의미한다.
2개의 라틴어 단어 코람(coram)과 데우스(Deus)가 합쳐진 합성어 이다.
라틴어 coram은 '면전에서 혹은 앞에서'(in the presence of)라는 의미
Deo라는 단어는 Deus(God, 하나님)의 탈격(ablative, 명사를 부사처럼 사용하기 위한것)이다.
이 두 단어가 결합하여 Coram Deo가 되었다.
이 말은 영어 before God(하나님 앞에)인데 coram hominibus(before men, 인간 앞에서)와 대비되는 말이다.

주로 기독교 신학에서 사용하는 용어인데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이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권위 아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신학사상이다.

인간을 지켜보시는 그분 앞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하나님의 임재라는 말로도 쓰인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시간과 공간의 영역안에서 자신을 친히 나타내시는 거룩한 행위이다.

독일의 신학자 게하르트 에벨링은 코람 데오와 비슷한 의미로서 임재관계(Coram-Relation)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그는 이 개념을 마틴 루터의 생각으로부터 가져왔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면전에서 그리고 세상의 면전에서 인간의 상황을 다루는 것이며 동시에 물질적 존재론에 대해서 관계적 존재론의 대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둘째는 사람 앞에서의 실존(갈라디아서 1:10, 마태복음 6:1)
(코람 호모) Coram Homo. Coram Hominibus, Before Men


마태복음 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갈라디아서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열왕기하 22:1-20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합니다.
사람들 눈치를 봅니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 모든 것의 동기입니다.
모든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두고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외식하는 자’라고 번역된 단어 휘포크리테스(ὑποκριτής)는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배우, 연기자’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나 아람어에는 없는 개념이기 때문에 번역을 하지 못하고 그냥 음역(音譯, transliteration)을 했습니다.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합니다.
진짜 자기는 가면 뒤에 숨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가면을 보여줍니다.
자기 모습이 아니고 전혀 다른 인물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사람이 바로 휘포크리테스, ‘외식하는 자’입니다.


다윗 왕조 제 17대 유다 왕인 요시야(640/639-609 재위)는 그다지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여덟 살에 즉위하여 31년 통치를 했다고 하니까 39세에 죽은 것이 됩니다. 그러나 그의 삶에 대해 성경이 이렇게 평가합니다.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왕하 23:25). 

최고의 인생, A+ 인생이란 뜻입니다. 짧지만 제대로 살았어요.
삶이 이러면 좋겠는데 저 자신 꼴이 꿀꿀해 보일 때는 ‘난 너무 구질구질하게 길게 산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런 평가를 받게 되었을까요?
오늘 본문 22:2 말씀입니다.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원문을 직역하면 “그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것을 행했다”입니다. 의역을 하자면 이런 뜻입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똑바로 살았다.” 

히브리어로 ‘베에이네이 아도나이’(하나님 앞에서)입니다.
이를 라틴어로 옮기면 유명한 ‘코람 데오’(Coram Deo)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요시야는 모든 것을 지켜 보시고 중심을 보셔서 동기(動機)까지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살았기 때문에 짧고 굵게 최고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사람들 보는 앞에서만 잘 하려고 하는 ‘코람호모’에 그치지 않고 진정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사는 ‘코람데오’의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당시의 노예 출신 교인들에게 권하는 말입니다. 


골로새서 3:22-25
“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24.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25.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골 3:22-25). 

서러움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들 앞에서 교만한 인간 주인 앞에서 살지 말고 그들을 주인보다 더 높게 봐 주시는 진정한 주님이신 하나님 앞에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인생이 ‘외식’, 즉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연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정직하고 진실하게 하나님 지켜보시는 앞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하는 삶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서 행동하고 하나님 앞에서 말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기 원합니다. 요시야와 같은 평가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수년 전 연변을 다녀오면서 시인 윤동주의 생가가 있는 용정을 찾아가 봤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치열한 젊음이었습니다. 코람데오의 마음이지요. 연기할 것인가, 살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중 가장 혼란스러워 하는 부분중 하나가 성생활에 관련된 부분일 것이다.
성경상으로 보았을때 아담이 외로울까 하여 하와를 만들어 주신걸 보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성생활을 허용했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분별하게 모든걸 허락하셨다는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성생활은 세상 사람들의 성생활과 구분되어져야 하는데 그것의 기준은 아마도 음심일 것이다.

세상적인 성생활은 안목의 정욕과 말초신경의 자극을 통한 만족을 극대화 시키는것임에 반해 그리스도인의 성생활은 사랑을 기반으로 둔 교류를 통해 영적 만족감을 추구하는 관계여야 한다.

세상적 성관계는 타인이 보았을때 얼굴이 뜨거워지고 부끄러운 감정과 음심이 발동 하겠지만,
그리스도인의 성관계는 거룩하기 때문에 타인이 보아도 지극히 아름다운 모습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외로 많은것들을 허락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선악과를 추구하고 결국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고 하나님께 버림받아야 정신을 차리겠는가?

당신은 자녀들에게 기독교인 으로서의 성교육을 시키고 있는가?

청소년의 이성교제가 얼마나 조심스러워야 하는지 자각해야 한다.

신앙이 무너지는건 방심에서 시작된다.

철저한 신앙의 추구는 치우친 신앙과 동의어가 절대 아니다.

긴장하고 허리띠를 동여메자!









Dietrich Bonhoeffer목사
왜 나치 정권때 조국으로 돌아가서 순교의 길을 걸었을까?

독일의 설교가요, 신학자였던 디트리히 본훼퍼 목사(1906-1945)는 히틀러의 독재 정권 앞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몸소 보여준 참 신앙인 이었다.

16세때 이미 신학 공부를 시작할 정도로 천재적인 머리를 가지고 있었던 그는, 깊은 사고력과 성찰력 까지도 겸비해 그의 나이 20세 때 이미 신학박사 학위를 받을 정도로 당대에 뛰어난 학자였다. 

후대에 그를 평가하는 모든 사람들이 본훼퍼 목사를 존경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의 타고난 능력과 실력에도 불구하고 한평생을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살지 않았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서 한순간 한순간을 아낌없이 삶을 살았다는 점에 있다.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본훼퍼 목사는 더욱 철저하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강단에서, 교회에서, 방송에서 쉼 없이 외치며 선포했다.

이 때문에 그는 히틀러 정권에 의해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연금되며, 감옥에까지 갇히는 고초를 당해야 했다.

그러던 중에 그의 천재적인 능력을 아까워 하던 미국 유니온신학교의 라인홀드 니이버 교수에 의해 1939년 6월 12일에 초대되어 교환교수로 미국에 들어오게 된다.

그러나 미국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히틀러가 그해 9월 1일에 세계 제2차 대전을 일으키자 본훼퍼 목사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동료들과 독일 백성들이 미치광이 히틀러 때문에 전쟁의 노예가 되고, 살상과 피 흘림의 도구로 전락해 버리는 현실을 보면서 그는 다시 독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이 때 그의 독일 행을 만류하며 미국에 남아 살 것을 권했던 라인홀드 니이버 교수에게 본훼퍼 목사는 이런 편지를 남기게 된다.

나는 독일의 역사에서 어려운 시기를 독일의 크리스천과 함께 보내겠습니다.
만일 내가 나의 동료들과 같이 고난의 시기를 함께 보내지 않는다면,
전쟁이 후에 독일 크리스천의 재건에 동참할 권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본 훼퍼 목사는 독일에서 주님이 자신을 부르신 그 목적대로 히틀러를 향하여 준엄한 신앙의 양심을 선포하다가 히틀러가 자살하기 20일 전인 1945 4 9 39의 나이로 감옥에서 순교 당했다.

20세기가 낳은 가장 탁월한 학자로서 자신의 뜻과 명예를 얼마든지 펼칠 수 있었던 본훼퍼 목사가 이런 삶을 살았던 이유는 바로 그가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인 답게 사는 것을 말한다. 아무리 내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그리스도인 답게 살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그리스도인 일 수 없다.

신약의 초대교회 시절에 비로소 안디옥에 살던 성도들을 향하여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 부르게 된 것은 저들의 모습 속에 무엇인가 다른 삶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저들이 믿는다고 하는 그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남들이 아무리 상대방을 속이고 실속을 챙기는 그 순간에도 결코 남의 것을 취하지 않고, 남을 해하지 않으며 오히려 손해보고, 자기의 것을 나누어 주는 그 이상한 모습 때문에 드디어 세상 사람들은 교회의 성도들을 그리스도인들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즉, 그리스도인이라 부르게 될 때에는 그리스도인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삶의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

이것이 본훼퍼목사의 삶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본훼퍼목사는 독일의 격변기에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며 살았던 용기있는 하나님의 백성이었음에 틀림없다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der Einzelne/ individual)'의 삶이란?
Soeren Kierkegaard

모든 인간은 육신의 병을 품고 살 듯이 실존하는 모든 개인 역시 절망이라는 병을 품고 산다.

진정한 종교적 실존, 즉 하나님 앞에서 발견되는 죄는 법적인 죄나, 윤리적인 죄, 혹은 양심의 죄가 인간에게 주는 형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한 ‘내적 형벌’을 경험케 한다.  이런 절망을 통과하지 못하고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사유하는 사람이 아닌, 신앙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손쉬운 관념”이나, “도덕적 모범”으로 취급하고 있다. 죄 많은 우리의 자아에 죽음을 요구하는 고귀한 은총보다 아무런 노력 없이도 만물을 구원해 주신다는 값싼 일반 은총만을 받아들이고, 기대여 사는 믿음의 자세를 비판했다.

사람들은 사회적 관습이나 규범을 기준 삼아 윤리적 판단을 하게 되는데, 이런 경향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바리새인’들이 보여준 종교적 패쇄성과 율법주의를 불러 온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신앙의 틀’이라는 안전한 구조 속에 숨어, 자기를 기만하면, 주체적인 윤리적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가짜 그리스도인으로 전락하고 만다. 죄의 본질은 특정한 행위가 아니라, 우리의 자아가 하나님 앞에 서기를 거부하는 상태이다. 모든 죄는 그러한 정신 상태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창세기 22장 ‘아케다 (the Aqedah: 히브리어로 ‘묶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바치려고 약속의 아들인 이삭을 제단 위에 묶어 놓은 사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성경 구절은 믿는 우리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우리는 손쉽게 간과하는 두 가지가 있다. 아브라함이 과연 신앙의 아버지인가? 라는 도발적인 질문과 의문을 갖게 된다. 먼저, 아들 이삭을 죽이려고 한 아브라함의 패륜적 결정이며, 하나님이 과연 살인 교사를 하셨을까? 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이 두 가지 문제는 기존의 관습, 도덕, 윤리체계를 뛰어 넘는 시각과 결단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가 만약 아내, 사라하고 상의를 했다면 아내가 과연 이런 행동에 동의 했을까?  윤리적 범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생각과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아브라함은 윤리적 기준에서 본다면 단순한 영아 살해 시도를 했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그는 전적으로 고귀하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윤리를 포기하는 압도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아브라함의 입장과 위치는 온전히 “하나님 앞에 홀로 서 있는 존재 (단독자)인 것이다.”   단독자란 모든 사람중에 '오직 한 사람'을 지칭하는 동시에, '누구나'를 의미하는 절대적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단독자가 된다는 것은 지극히 고통에 부딪치는 것이다. 단독자가 된다는 것은 무리에 대하여는 죄를  짓는 것이며, 무리에게 조소와 미움을 받아 죽임을 당하는 위험에 자신을 내 맡기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윤리의 본질을 초월해서, 개별적인 종교적 실존을 결단했다는 의미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단독자 (개별자, der Einzelne)’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깨닫게 된다. 첫번째는 우리가 얼만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준엄하게 서 있느냐 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윤리체계가 있기 때문에 인간이 서로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음을 분명히 인정한다. 다만,그러한 윤리체계들이 절대적인 것으로 둔갑된다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게된다. 신앙은 윤리의 대안이나 파괴자가 아니라, 윤리의 구원자이다. 기존 윤리 체계의 신앙적 틀에 이미 갇혀져 있다면 우리가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는 믿음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 Dietrich Bonhoeffer목사 (1906-1945)의 히틀러 암살 모의 예를 보자.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살인임을 알고, 그것을 인식하고 있었는데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암살 모의에 가담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 속에서 나오는 신앙적 결단이 요구될 때가 있다.  히틀러를 살인하는 행동은 평화주의자라는 본훼퍼 목사 자신의 본성을 궁지로 몰아넣는 투쟁이자, 윤리체계를 명백히 거스르는 행동이었다. 곤혹스러운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안위를 위해 이러한 사실을 외면한체 그저 숨어 있을 수 만은 없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만을 들으면서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에 머물러야만 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서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1800년대, 덴마크는 사회 전체가 기독교 국가였다.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기독교의 승리를 자축하며, 더 이상 종교의 핍박이 존재하지 않는 다고 확신할 때, 키에르케고르는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된 이 나라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세상에 오신다면, 다시 한번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이다.”                                                 

사회 전체가 기독교가 된 덴마크에 진실하고,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은 이미 없다는 뜻이었다.  그는 복음이 필요한 곳은 교회 밖이 아니라, 교회 안이라고 보았다. 하루하루를 무감각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파문을 던지는 메시지 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스도인의 존재 방식

인간의 존재 방식에서 사르트르를 비롯한 실존주의자들은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착한 사람이기 때문에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남을 잘 돕기 때문에 착한 사람이 된다고 합니다.

실존주의는 인간의 고유한 본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실제 행동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 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물은 무의미한 존재이지만 인간은 그 무의미한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존재라는 면에서 다른 사물과 구별된다고 합니다. 또한 실존주의자들은 인간의 존재 방식을 불안이라는 정서에서 이해합니다. 그 불안이 인간으로 하여금 끓임 없이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움직이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문제 삼는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즉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뇌하면서 보다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는 인간 이해를 위한 토대를 성경 계시가 아닌 인간 스스로가 파악한 ‘실존’에 두는 것입니다.

인간 존재의 방식은 신 존재의 방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지만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들은 많습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유신론,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 그 존재를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도 있습니다. 신이 없다는 무신론과 신 존재를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에 대해 우리가 깊은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이들의 신 존재를 증명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음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에 따라 성경에서 계시된 하나님을 만날 수도 있고 엉뚱한 신을 만나게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자연신학은 이 세계가 아름답고 또한 합리적이며 완전한 질서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세계를 창조한 현명한 신이 존재해야만 한다고 설명합니다. 우주론적으로 신의 존재를 설명하는 이들은 자연과 인과관계를 계속 추적해 가면 제1원인인 신을 부인할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존재론적 설명은, 인간은 불완전하고 신과 인간은 상호 관련이 있으므로 완전무결한 신이 존재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목적론적 설명은 자연이 어디까지나 목적에 적응한 질서를 지니고 있는 이상, 자연 전체의 설계자로서의 신이 존재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도덕적 설명은 우리에게 그 실행을 강력히 요구하는 도덕 법칙의 원천으로서 신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미학적 설명은 아름다움을 통하여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일 때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을 믿게 되어도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하는 방식에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론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삼위일체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 대한 성경의 계시를 서술한 것입니다. 따라서 삼위일체를 논리적으로 증명하려고 하면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최종적이고 가장 확실한 증명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존재와 뜻을 가장 확실하고 최종적으로 계시하셨습니다(히 1:1,2).

하나님의 존재 방식을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방법도 하나님의 존재를 완전하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 인간의 존재 방식을 결정한다는 사실입니다. 인간 존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인간의 존재 방식이 곧 하나님의 존재 방식을 따라야 할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 사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존재에 대한 그 어떤 설명도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 사랑이라는 사실은 성경 계시의 핵심입니다. 이 계시를 지향하는 것이 인간 존재의 방식입니다. 성경 곳곳에서 하나님께서 이 사실을 강조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고 하셨고, 모세에게도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신 18:13)고 하셨으며,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는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고 하셨습니다. 완전함이나 거룩함은 하나님의 속성인데 이 둘도 결국은 사랑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16)고까지 이야기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계시의 완성이고 그것은 곧 사랑입니다.

인간의 생물학적 존재 방식은 호흡을 하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사회적 존재 방식은 인간관계 가운데서 활동하는 것입니다. 영적 존재 방식은 앞의 두 가지를 포함하여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활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한 인간은 하나님의 존재 방식과 같은 존재 방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능력과 수준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신분에 따른 요구입니다. 인간의 행위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든 간에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합니다. 죄를 지적하고 불의를 비판하는 일까지도 사랑의 방식이어야 합니다. 사랑이 동기와 방법과 목적을 지배하지 않는다면 말하지 말고 행동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사회에서는 명분과 실천이 불일치하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믿음과 삶이 불일치합니다.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그리스도인들이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지만 그보다 신자들끼리 사소하고 지엽적인 문제로 다투고 서로 적개심을 품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구체적 문제에 있어서 비난 받는 사람과 비난하는 사람의 수준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예수를 믿어도 잘 바뀌지 않습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믿음과 삶은 완전하게 일치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위나 삶을 보고 믿음을 평가하지만, 엄격하게 말한다면 믿음은 삶이나 인격과 차원을 달리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믿는 사람의 윤리적 책임을 소홀히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은 행위와 차원이 다른 믿음을 말하면서 또한 윤리적 책임을 강조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가 윤리적인 책임을 소홀히 하면 교회가 상처를 입고 전도의 문이 막히게 되는 것을 염려하였습니다. 믿음과 윤리적 삶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여러 가지 덕목을 제시하여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덕목들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권고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존재론적 토대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완벽하게 이루어 내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에 부응하는 행위를 하도록 힘쓰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바울은 율법으로 인간이 구원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업적 위주의 행위와 율법주의를 비판하였습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순서상으로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 신분입니다. 이것은 구체적 신앙의 규범에 집착하기보다 새로운 신분의 차원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창조에서 종말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존재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의 존재 방식으로 살라고 하십니다. 사랑의 존재 방식은 사랑에 의존하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노력으로 완전한 도덕군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신 하나님께 의존하여 생각하고 표현하고 행동 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 어떤 말을 하기 전에, 어떤 글을 쓰기 전에, 설교하기 전에, 권면하기 전에, 책망하기 전에, 행동하기 전에 사랑이 동기가 되고 있는지 사랑이 목적이 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그렇지 않다면 하지 않는 것이 유익합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 골 3:14, 고전 13:3, 요일 4:8 -









존 맥스웰은 긍정적인 가치관을 가졌습니다.
그는 “오늘을 사는 원칙”이라는 책에서 자기 자신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10대 때, 내 사고는 긍정적인데 집중했다.”

이것은 일반사람들에게 표현하면서 긍정적인 것이라고 했지만 이 글을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이 인생의 우선적인 가치관이라는 사실을 선언한 것입니다. 

“20대 때, 내 사고는 나와 동료들과 구별시켰다.” 

  이것은 친구들과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20대에 벌써 동료들과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동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인생의 기쁨과 삶의 목표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30대 때, 내 사고는 나에게 청중과 추종자를 주었다.” 

  이것은 청중을 들을 수 있게 해 주었고 추종자를 허락해주었다는 것입니다. 

“40대 때, 내 사고는 일을 훨씬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것은 일하는 데도 안목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뭔가 일을 성취할 수 있도록 수준을 끌어올렸다는 것입니다. 

“50대 때, 내 사고는 나를 훨씬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것은 일만 잘하게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를 인격적으로 풍요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한 가지를 더 추가적으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리고 너무 다행인 것은 내가 여전히 사고하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러분, 예수를 믿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예수님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진리이신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과 더불어 기독교적인 삶과 사고를 할 수 있는 축복을 해 주셨습니다.
삶을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은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에 해결책이 있지 않습니다.
신앙의 비밀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하나님과 더불어 생각하면서 삶을 살아가는데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말을 조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기독교 신앙의 핵심 세 가지 - 창조, 성육신, 부활


창조 신앙의 신학적 의미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태초에(베레쉬트)
- 만물의 시작을 알려주는 때
- 시간의 시작

하나님(엘로힘)
- 엘루하의 복수
-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 하나님은 복수형으로 하나가 된 단수

천지(
-

창조(바라)

창조하다 - 바라,아사,야차르, 바나

히브리 원어에는 ‘창조하다’ 즉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행위’를 의미하는 단어로 ‘바라, 아사, 야차르, 바나’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아사, 야차르, 바나’는 영어로 ‘make, form, build'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3가지 단어는 ‘있는 재료를 가지고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창조’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바라’라는 단어는 ‘무로부터의 창조, 즉 아무 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무언가 존재하게 하는 유의 상태로 만드는 창조 행위, create'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바라’라는 단어는 오직 하나님과 관련해서만 사용되었습니다

워치만 니의 바라와 아사와 야차르에 대한 해석 (이는 지방교회의 해석입니다.)

 

출처 --- 기본교문서선교회 창조의 신비 워치만 니/ 윤무길 역   12페이지

 

창세기의 첫 두장에서 창조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세개의 다른 말이 사용되어 있다.

1) 바라 -- 미리 존재하는 재료의 도움 없이 존재케하는 것

 

2) 아사 --- 이것은 바라와는 매우 다르다.

바라가 아무런 재료도 없이 창조한다는 뜻을 지칭하는데 반해 "아사"는 이미 존재하는 재료로 부터 만들거나 형성하거나 작성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목수는 의자를 만들 수는 있으나 창조할 수는 없다.

창조기사의 6일 동안의 일들은 주로 아사의 차원에 속한다.

 

3) 야차르 --- 이것은 도공이 진흙으로 하듯이 모양이나 형을 짓는 것을 의미한다.

이 낱말은 창2:7에 사용되어 있다.

 

창조한은 무에서 부터 성립시킨 것을 의미하고

지었고는 일정한 형태로 이루었음을 지칭하며

만들었느니라는 앞서 존재한 재료로부터 제작했음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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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드 ====> 비판

 

재창조설을로 맞추기위에 워치만 니는
바라는 create로 아사를 make로, 야차르를 form이 라고 제한 해서만 사용하는데
이 해석이 창세기 안에서만 봐도 충돌 됩니다.

기본형을 적습니다.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바라
(창 2:4) (창 2:4)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 바라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 아사
(창 1:21하)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 새: 바라

(창 1: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 짐승, 가축, 땅에 기는 것 -- 아사
(창 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 짐승.새 -- 야차르
(창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사람 -- 아사
(창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 사람 --- 바라
(창 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 사람 --- 야차르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히브리어를 모른 다는 것 이 창세기만 봐도 명백히 드러납니다.

 

구약성경 다른 부분도 바라와 아사와 야차르는 혼용하여 사용되는 것을 여러구절에서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창조뿐만 아니라 섭리에 해당하는 분에도 사용됩니다.  --> 안찾겠습니다.

벌콥 신론에 창조개요라는 부분에서 이를 설명하니 보려면 그 부분을 찾아보세요.

재창조설로 신학을 전개하니 그 구조의 틀이 무너지면 워치만 니 신학 전반이 무너지는 겁니다. 

어디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정말 원문을 알았을까요?

창세기 1장과 2장부분만이라도  원어로 제대로 살폈어도 그런 전개 안했을 텐데요.



하나님의 네 가지 창조사역(창1:1, 1:7, 1:27, 2:7, 2:18, 2:22)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상황에 맞추어 만물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지으시기 전에 이미 계획하시고 창조하셨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지으시고 직접 임하셔서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세상은 영원이라는 시간 속에 잠시 끼어있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통해 이 세상의 피조물들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네 가지 창조를 통해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실 때에 어떤 창조를 하셨는지를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영원이라는 무한의 시간에서 이 세상의 유한의 시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태초에 이미 하나님께서 시작하시면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도 시작되고 있습니다.
아니 이미 모든 것을 끝마쳐 놓으시고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בראשית(베레쉬트. 7225)
시작, 처음, 근본, 이라는 뜻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유한한 시간을 창조하시면서 이 세상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근본이며 처음으로 창조하시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작정하시고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있습니다.

‘베레쉬트’의 히브리적 의미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 땅과 하늘을 창조하시면서 시작하시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쉼과 안식을 얻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이미 인간의 구원계획도 끝내 놓으셨습니다.
십자가의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선택받은 백성들을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셨으며 사역을 완수시킨 것입니다. 이것이 나를 향한 구원의 역사입니다.

‘창조하시니라’ ברא(바라. 1254)
만들다, 창조되다, 지음을 받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태초에 만드시는데 모든 만물들이 창조되고 지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어느 누구도 이 세상을 지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이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단 하나 밖에 없는 세상을 만들었으며 더 이상 손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완벽하게 지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손길이 이 세상 구석구석 만지셔서 창조하셨고 많은 만물들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바라 창조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인데 무에서 유를 만드신 것을 말씀하고 있는 창조입니다.
창조에 바라의 단어를 쓰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보이는 만물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쓸 수 있는 단어입니다.
사람은 절대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요즘에 복제동물을 만든다고 하는 것은 바라의 창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한한 인간은 무한하신 하나님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것들을 가지고 다시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창세기 1: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이제는 궁창을 만드시고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누시게 됩니다.

‘만드사’ עשה(아사. 6213)
창조하다, 조각하다, 만들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궁창을 만드셨는데 하나님께서 직접 조각하듯이 세밀하게 우주의 넓은 공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창조사역을 하시는데 이 사역은 즉시로 천지를 만드시고 시작하시게 됩니다.
이 사역은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는 것이며 세심하게 심혈을 기울여 완벽한 창조를 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라의 창조를 통해 무에서 유를 만드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사 창조를 하시고 있습니다.
아사 창조는 이미 만들어진 것들을 가지고 다른 모형으로 만들어내는 창조입니다.
그래서 유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창조가 아사 창조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시작하실 때에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이곳에 하나님은 아사 창조로 아주 넓은 공간의 궁창을 이미 바라 창조된 것을 가지고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사 창조입니다.
현재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물건들이 바로 아사 창조된 것입니다.
인간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바라 창조하신 것들을 가지고 새롭게 물건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아사 창조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지혜가 뛰어나도 하나님이 하신 일들은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창세기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은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아사(עשׂה)'는 이미 창조된 물질을 재료로 더욱더 나은 물체를 만드는 것을 가리킨다(16, 25, 26절).

*창 1:16/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아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자기형상’ צלם(첼렘. 6754)
형상, 그림자, 라는 뜻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의 형상을 그대로 따라서 만드셨습니다.
바로 실체가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실체를 따라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첼렘’의 히브리적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깨끗하게 정화되고 말씀으로 통제받아 가르침을 받고 익혀서 하나님을 갈망하여 바라보는 존재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존재로 만드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 절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지 못한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자들입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통해 형상이 완전하게 회복되었습니다.
바로 내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되어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자가 된 것입니다.

‘창조하시되’ ברא(바라. 1254 와우접속사. 동사, 칼,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만들다, 창조되다, 지음을 받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이 창조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유를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것은 이 세상에 사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이미 사람을 만드시기로 작정하시고 예정하셔서 즉시 창조에 착수하셔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사역으로 완전하게 만드셨습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정도로 완전하게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창조하시고’ ברא(바라. 1254 동사, 칼, 완료, 남성, 3인칭, 단수)
만들다, 창조되다, 지음을 받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을 때는 와우 접속사가 빠졌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똑같은 창조인데 문법이 다릅니다.
사람을 창조하신다고 말씀하셨을 때는 계속 계획을 하셨다가 즉시로 바라 창조에 들어가신 것을 의미합니다.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던 창조는 이미 계획이 끝나고 창조된 결과물로서 완벽하게 무에서 유로 창조된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시제 자체가 완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께서 손을 대지 않아도 되는 완벽한 존재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도 나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완전하게 하나님을 알고 섬길 수 있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림자는 항상 실체를 따라다니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그림자와 같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면 항상 하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실체를 따라가야 살 수 있습니다.
내 안에 항상 예수그리스도가 있어야 합니다.
실체가 없으면 그림자도 없습니다.
내 안에 실체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나는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진 자가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항상 실체가 내 안에 있어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 내 안에 실체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바라”라는 말은 주로 세 가지 형태로 사용된 것 같은데 칼 형과, 니팔 형과 피엘 형입니다. 이 문법적 말의 뜻을 저는 잘 모르지만, 칼 형 “바라”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하시는 행위에만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에서 유를 이끌어낸 것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불러내신 것입니다.(롬4:17) 유명한 개신교 신학자 폰 라드(Von Rad)는 창세기 주석에서 “바라, 곧 ‘창조하다’란 동사는, 한 편으로는 전혀 힘들이지 않는다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재료에 대한 진술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무에서의 창조(Creatio ex nihilo)란 의미를 포함한다.”고 했습니다. 올바른 설명이지요.

니팔 형은 일단 피동형으로 모면 됩니다. 피엘 형은 강조하려는 사실에 사용하지만 다양하게 사용됩니다. 그래서 니팔 형은 창조 되었다. 또는 창조함을 받다는 표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피엘 형은 베어 넘기다, 베어 버리다는 뜻이 있네요. 그러나 해산하다 낳았다는 뜻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창세기 1장에는 창조와 관련된 단어 세 가지가 사용되었는데, 바라, 아사, 야차르입니다. 아사는 자주 바라와 상호 교대로 사용되어 단순히 창조 과정에서 관련된 대상들을 조성하거나 만드는 행동을 나타내지만 바라는 그 물체자체를 없는데서 있게 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야차르는 주로 어떤 물체의 형태(모양을 만드는 것이나 형성하는 것)를 만드는 것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2:7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라고 했을 때 “지으시고”가 야차르입니다. 또 2:19에 동물들을 지으시고 라는 말도 야차르입니다. 창세기 1장 2장에는 창조와 관련하여 이 세 단어가 사용된 것 같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이 단어들 중 어느 단어도 해산했다. 낳았다는 뜻이 있다고 기록한 참고서는 제게 없습니다. 그런 말을 쓰신 분은 어떤 책을 읽고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했으니 믿음으로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일 것입니다.


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바라 창조하시고 이제는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기를 코에 불어넣으셨더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바라 창조를 통해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땅의 흙으로 사람을 또 지으시고 있습니다.

‘지으시고’ יצר(야차르. 3335 와우 접속사. 동사, 칼,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꾸미다, 구성하다, 형성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바라 창조하셨지만 완전하게 숨을 쉴 수 있는 존재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차르 창조를 하시고 있는데 이 창조는 건물을 건축하고 나서 인테리어를 하여 더 완전하게 사람이 살 수 있도록 꾸미는 것처럼 하나님은 인간을 더 완숙하게 꾸미고 구성하여 하나님의 완전한 형상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라 창조로 완벽하게 무에서 유로 만드셔서 건물을 지으셨다면 야차르 창조는 그 건물에 인테리어를 꾸며서 더 정돈되어 건물이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만드시는 것처럼 이제는 사람이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숨을 쉬는 존재로 만들어 주신 창조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즉시로 꾸미고 형성하여 숨을 쉴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 가시고 있습니다.
전에는 숨을 쉬지 못하는 존재로 있다가 이제는 완전하게 숨을 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야찰(יצר)'은 '아사'와 비슷하나 특별한 목적에 따라 기존사물을 새로 완벽히 조성하는것을 가리킨다(2:7.9).

*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야찰)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한편 천지창조를 주제로 하는 창세기에서 '바라'. '아사', '야찰' 등 이 세 단어는 정확한 뜻에 따라 해당 귀절에서 사용되었음 알 수 있다. 그 예로 '바라'는 (1)무에서 유에로의 존재 창조를 가리키는 1절 (2)생물에게 생명의 근원을 주시는 창조 행위를 가리키는 21절 (3)그전 까지 전혀 없었던 영적 존재의 창조를 가리키는 27절에서만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책인 성경은 정확무오한 단어가 구별되어 사용된 그야말로 일점 일획도 오류가 없는 책임을 새삼 인지할 수 있다(마 5:18). 즉 우리는 '바라'뿐 아니라 모든 성경 원어를 분석, 연구할 때마다 성경은 단어 하나에 이르기 까지 영감된 책임을 새롭게 깨닫는 것이다.


이제 이처럼 중요한 단어인 '창조하다'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의미와 그 기사의 정확성을 간추려 보자.

(1)하나님의 창조 활동은 그분의 자유로운 의지에서 기인한 단독 사역이다.
(2)하나님의 창조능력은 제한적이거나 부차적이지 않고 완전한 무에시 유에로의 창조를 가능케 하는 새롭고 신비한 성격의 것이다.
(3)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존재인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주인으로서 그 모든 것을 자신의 기쁘신 뜻에 따라 말씀에 의해 만드셨다(시33:6-9; 렘10:12).
(4)또한 이는 성경기록이 비논리적이거나 비과학적이라는 주장을 일소시켜 준다.

'창조'라는 개념조차도 무에서 유에로의 창조와 기존물질을 변형하여 새롭게 제작하는 것과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을 정도로 성경은 합리적인 것이다. 한편 이 '바라'라는 단어는 사 40-66장에도 약 20번이나 언급되면서 인간에게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가를 명확히 드러내 주고 있다.

즉 (1)하나님은 우주의 창조자이시다(사42:5; 45:7-9).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셨으며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종에게 말씀하신다.
(이사야 42:5)

(2)언약 공동체인 이스라엘의 창조자이시다(사 43:1,15).

*이스라엘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너는 두려워하 지 말아라. 내가 너를 구원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내 것이다.(이사야 43:1)

(3)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분이시다(사 65:17).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한다.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이사야 65:17)

(4)인류 구원의 주도권을 가지신 분이심(사 42:5-9:49:5,6)을 밝혀 주고 있는 것이다.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이사야 42:5)

이외에도 다윗의 참회시에도 볼 수 있듯 하나님은 죄인을 중생케 하시는 새 창조의 근원이심(시 51:10; 고후 5:17)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편 51:10)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존재입니다. 옛 사람은 없어지고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고린도후서 5:17)

‘생령’ נפש(네페쉬. 5315)
숨 쉬는 존재, 생명, 생기,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숨 쉬는 존재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숨을 쉴 수 있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이제는 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 창조하셔서 영혼과 마음과 육체가 모두 하나님의 뜻대로 형성된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야 하나님의 형상대로 완전하게 창조된 상태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런 상태가 바로 사람이 죄를 짓기 전의 완전한 상태의 창조입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게 됩니다.
이 상태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기 위하여 특별히 에덴동산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어 결국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 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야차르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으로 인도하여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음으로 하나님께서 돕는 배필을 지어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때에 지으시는 창조가 아사 창조입니다.
이미 여자는 하나님께서 바라 창조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이 상태에서 유를 만드시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존재로 이미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있습니다.

창세기 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만드시고’ בנה(바나. 1129 와우 접속사. 동사, 칼,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건축하다, 세우다, 증축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 창조는 바나 창조입니다.
바나 창조는 이미 바라 창조되었고 무에서 유를 만들어 놓은 것을 가지고 유에서 유를 만든 아사 창조물로 건축하는 창조를 말합니다.
아담의 갈빗대는 이미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창조물입니다.
이 창조물을 가지고 하나님은 여자를 바나 창조하시는데 이미 이 여자는 앞에서 바라 창조된 자입니다.

이 여자를 건물을 증축하듯이 더 세밀하게 건축하여 세우는 창조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무에서 유를 창조한 여자를 남자의 갈빗대로 건축하여 세워 더 확실하게 여자의 존재를 만드신 것입니다.
이미 여자라는 존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아담의 배필을 아담의 갈빗대를 가지고 한 몸이 될 수 있도록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건물을 지을 때에 철근도 들어가고 시멘트와 돌과 벽돌과 나무들이 들어가는 것처럼 남자의 몸에 있는 갈빗대를 가지고 여자를 건축하는데 재료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여자를 창조하신 바나의 창조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갈빗대를 즉시 취하여 여자를 창조하셨는데 완전한 모습으로 여자를 창조하셨고 이제는 더 이상 여자를 만들지 않아도 될 만큼 세밀한 것까지 신경을 써서 하나님께서 건축하듯이 창조하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사용하는 단어 네 가지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모든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동물도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하나님의 손길이 닿아서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직접 나를 무에서 유로 창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생기를 불어 넣어 주셔서 숨을 쉴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시고 하나님과 똑같은 완전한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럼 이제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으니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니 하나님께서 직접 이 땅으로 성육신 하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몸으로 직접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가니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주님을 찬양하고 몸으로 실천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귀한 존재로 창조하셨는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도 신경 쓰시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아주 완벽하게 창조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인간이 죄를 짓고 우상을 섬기면 마음이 아프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창조된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면 하나님은 너무나 기쁘신 것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창조된 피조물로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섬기는 거룩한 주의 백성의 대열에서 함께 전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창세기 1장 1절 말씀은 크게 두 문장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태초에'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베리쉬트'라는 단어인데, 사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정관사'(the)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히브리어 성경 창세기 1장 1절에는 'in the beginning'이 아닌 'in beginning'로 되어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리자면, '정관사'(the)가 있을 때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라고 완벽하게 문장이 끝나는 '독립절'로 해석되지만, 정관사(the)가 없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에'라고 1장 1절이 2절과 연결되는 '연결절'로 해석됩니다.
1장 1절이 한 문장으로 완벽하게 끝나는 '독립절'인가, 아니면 1장 2절과 연결되는 '연계절'인가에 따라 '창조'에 대해 완전히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무튼 히브리어 성경 창세기 본문에는 정관사(the)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대부분 문자적 변역을 하고 있는 영어 성경(NRSV, ESV 등)과 한글 성경이 정관사(the)를 넣어 기록하는 이유는 정관사(the)가 없음에도 독립절로 사용된 예가 창세기 외의 다른 성경에서도 많기 때문입니다(레 2:12, 신 33:21; 느 12:44; 잠 4:7; 사 46:10; 암 6:6 등)

창세기 1장 1절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해석하는 것은 적절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에'로 번역된 구절 'בְּרֵאשִׁ֗ית'이 창조 이야기에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래와 같이 관용구로도 사용된 것이다.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에 여호와께로부터 이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에레미야 26:1)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할 때에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예레미야에게 임하시니라.(에레미야 27:1)

그 해 곧 유다 왕 시드기야가 다스리기 시작한 지 사 년 다섯째 달 기브온앗술의 아들 선지자 하나냐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예레미야 28:1)

유다 왕 시드기야가 즉위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엘람에 대한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예레미야 49:34)

​또한 전치사 없이 사용된 'רֵאשִׁ֤ית' 단어는 늘 정관사가 있는 것으로 풀이한다.(창세기 10:10, 출애굽기 23:19, 34:26, 레위기 2:12, 23:10, 민수기 15:20, 24:20, 신명기 18:4, 21:17, 26:10, 33:21, 사무엘상 15:21, 역대하 31:5, 느헤미야 10:37, 욥 40:19, 시편 78:51, 105:36, 111:10, 잠언 1:7, 4:7, 8:22, 17:14, 예레미야 2:3, 49:35, 에스겔 20:40, 48:14, 아모스 6:1, 미가 1:13)

​이런 점에서 창세기 1장 1절을 해석하면서, "정관사가 없더라도 문장을 정관사가 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지"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해석하는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바라', 목적있는 창조

​창세기 1장 1절에서 '창조'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바라'(Barah)입니다.
이 단어는 몇 가지 조건이 맞아야만 사용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그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는 주어가 있어야 하며,
둘째로는 목적어가 있어야 하고,
셋째로는 주어의 의지가 반드시 담겨 있어야만 합니다.
즉, 주어가 분명한 목적과 의도, 의지를 가지고 무언가를 만들 때 '바라'(Barah)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의미입니다.​

'바라'로 표기한 히브리어 단어는 'בָּרָ֣א'이다.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다.
'그가 창조하다'의 뜻이다.
영어로 음역할 때에는 'Barah'가 아니라 'Bara'(bā·rā) 정도로 표기한다.
바라(בָּרָ֣א)의 마지막 철자는 h로 옮길 수 없다.

​신성윤 교수는, "구약성서에서 '바라' 동사는 모두 38회 나온다.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은 이사야이다.
20회. '바라'가 항상 하나님이 주어로 나오는 것은 맞다."고 말한다.

​바라가 조건이 맞아야만 사용할 수 있는 단어라고 하면서 그 첫번째 조건으로 주어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히브리어 동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인칭(1인칭, 2인칭, 3인칭), 성(남성, 여성), 수(단수, 쌍수, 복수)이 담겨 있다. 그런 점에서 '바라'라는 단어가 주어가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다는 표현은 조금 자연스럽지 못하다. 비록 창세기 1장에서 '바라'(그가 창조하다)가 하나님(엘로힘)이라는 단어가 같이 사용되고 있지만, 하나님이라는 별도의 주어 표시 없이도 가끔은 사용되곤 했다. (창세기 1:27 하반절 בָּרָ֣א אֹתֹ֑ו זָכָ֥ר וּנְקֵבָ֖ה בָּרָ֥א אֹתָֽם)

​"주어의 의지가 반드시 담겨 있어야만 합니다. 즉, 주어가 분명한 목적과 의도, 의지를 가지고 무언가를 만들 때 '바라'(Barah)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말하지만, 뒤에서 그가 언급한 단어로, 토기장이가 토기를 만들 때도 사용한 단어 יָצַר도 토기장이의 목적과 의도, 의지가 담겨있다는 면에서, 위와 같은 주장은 자연스럽지 않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바라라는 단어가 있고 유에서 유를 창조하는 아사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유에서 인테리어 하듯이 형성하는 창조인 야차르라는 단어가 있고 유에서 건축하는 단어인 바나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분석하여 깨달으면 창세기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지으시기 전에 이미 계획하시고 창조하셨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지으시고 직접 임하셔서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세상은 영원이라는 시간 속에 잠시 끼어있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통해 이 세상의 피조물들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네 가지 창조 단어를 통해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실 때에 어떤 창조를 하셨는지를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1절은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 에트 하솨마임 베에트 하아레츠입니다.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영원이라는 무한의 시간에서 이 세상의 유한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태초에 이미 하나님께서 시작하시면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도 시작되고 있습니다. 아니 이미 모든 것을 끝마쳐 놓으시고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은 선택한 백성들이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만세전에 이미 구원할 자를 선택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선택을 받았습니다. 

‘태초에’라는 단어는 베레쉬트 7225 명사 여성 단수입니다. 시작, 처음, 근본, 이라는 뜻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유한한 시간을 창조하시면서 이 세상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근본이며 처음으로 창조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작정하시고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있습니다. 베레쉬트에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시작하는 베이트는 집이라는 상형에서 왔습니다. 히브리어 첫 번째 알파벳은 알레프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제일 최초로 쓰인 단어가 베이트입니다. 집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습니다. 성경 전체를 베레쉬트라는 단어에 모두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히브리어 알파벳 상형 의미로 ‘베레쉬트’를 해석해 보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 땅과 하늘을 창조하시면서 시작하시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쉼과 안식을 얻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이미 인간의 구원 계획도 끝내 놓았습니다.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선택받은 백성들을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셨으며 사역을 완수시켰습니다. 이것이 나를 향한 구원의 역사입니다. 주님이 아니면 나는 절대 원죄에서 해방될 수가 없습니다. 

‘창조하시니라’라는 단어는 바라 1254 동사 칼(능동태) 완료 남성 3인칭 단수입니다. 만들다, 창조되다, 지음을 받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태초에 만드시는데 모든 만물들이 창조되고 지음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 외에는 어느 누구도 이 세상을 지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이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단 하나밖에 없는 세상을 만들었으며 더 이상 손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완벽하게 지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칼형과 완료 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분이기 때문에 이 세상을 꼼꼼하게 창조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손길이 이 세상 구석구석 만지셔서 창조하셨고 많은 만물들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바라라는 단어의 창조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인데 무에서 유를 만드신 것을 말씀하고 있는 창조입니다. 창조에 바라의 단어를 쓰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보이는 만물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쓸 수 있는 단어입니다. 사람은 절대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요즘에 복제동물을 만든다고 하는 것은 바라의 창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한한 인간은 무한하신 하나님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것들을 가지고 다시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7절은 바야아스 엘로힘 에트 헤라키아 바야베델 베인 하마임 아쎄르 미타하트 라라키아 우베인 하마임 아쎄르 메알 라라키아 바예히 켄입니다.

창 1: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이제는 궁창을 만드시고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누시게 됩니다.

‘만드사’라는 단어는 아사 6213 와우접속사. 동사 칼(능동태)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입니다. 창조하다, 조각하다, 만들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궁창을 만드셨는데 하나님께서 직접 조각하듯이 세밀하게 우주의 넓은 공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창조사역을 하시는데 이 사역은 즉시로 천지를 만드시고 시작하시게 됩니다. 이 사역은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는 것이며 세심하게 심혈을 기울여 완벽한 창조를 하시고 있습니다. 와우접속사 문법은 시제를 바꾸어 해석하는 문법입니다. 하나님은 궁창을 만드셨는데 완벽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바라의 창조를 통해 무에서 유를 만드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사 창조를 하고 있습니다. 아사 창조는 이미 만들어진 것들을 가지고 다른 모형으로 만들어내는 창조입니다. 그래서 유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창조가 아사 창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시작하실 때에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이곳에 하나님은 아사 창조로 아주 넓은 공간의 궁창을 이미 바라 창조된 것을 가지고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사 창조입니다. 현재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물건들이 바로 아사 창조된 것입니다. 인간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바라 창조하신 것들을 가지고 새롭게 물건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아사 창조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지혜가 뛰어나도 하나님이 하신 일들은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산에 있는 나무를 잘라다가 책상과 의자를 만들었습니다. 전혀 새로운 형태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아사 창조입니다.

27절은 바이베라 엘로힘 에트 하아담 베찰모 베첼렘 엘로힘 바라 오토 자카르 우네케바 바라 오탐입니다.

창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은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자기 형상’이라는 단어는 첼렘 6754 명사 남성 단수입니다. 형상, 그림자, 라는 뜻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의 형상을 그대로 따라서 만드셨습니다. 바로 실체가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실체를 따라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기 때문에 죄를 짓기 전에는 거룩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게 됨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깨졌습니다.

히브리어 알파벳 단어인 ‘첼렘’의 히브리적 상형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깨끗하게 정화되고 말씀으로 통제받아 가르침을 받고 익혀서 하나님을 갈망하여 바라보는 존재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존재로 만드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 절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지 못한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자들입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통해 형상이 완전하게 회복되었습니다. 바로 내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되어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자가 되었습니다.

‘창조하시되’라는 단어는 바라 1254 와우접속사. 동사, 칼(능동태)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입니다. 만들다, 창조되다, 지음을 받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이 창조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유를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것은 이 세상에 사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이미 사람을 만드시기로 작정하시고 예정하셔서 즉시 창조에 착수하셔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사역으로 완전하게 만드셨습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정도로 완전하게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와우접속사는 하나님이 즉시 인간을 창조하셔서 완전하고 완벽하게 창조했음을 의미합니다.

‘창조하시고’라는 단어는 바라 1254 동사 칼(능동태) 완료 남성 3인칭 단수입니다. 만들다, 창조되다, 지음을 받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을 때는 와우접속사가 빠졌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똑같은 창조인데 문법이 다릅니다. 사람을 창조하신다고 말씀하셨을 때는 계속 계획을 하셨다가 즉시로 바라 창조에 들어가신 것을 의미합니다.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던 창조는 이미 계획이 끝나고 창조된 결과물로서 완벽하게 무에서 유로 창조된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시제 자체가 완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께서 손을 대지 않아도 되는 완벽한 존재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은 하나님이 너무나 완벽하고 완전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인간이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도 나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완전하게 하나님을 알고 섬길 수 있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림자는 항상 실체를 따라다니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그림자와 같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면 항상 하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실체를 따라가야 살 수 있습니다. 내 안에 항상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합니다. 실체가 없으면 그림자도 없습니다. 내 안에 실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나는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진 자가 됩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항상 실체가 내 안에 있어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 내 안에 실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떠난 인간은 아무런 존재 가치가 없습니다. 결국 영혼은 구원받지 못하고 육체의 삶만 살다가 끝나버립니다.

7절은 바이체르 아도나이 엘로힘 에트 하아담 아파르 민 하아다마 바이파흐 베아파이브 니쉐마트 하임 바예히 하아담 레네페쉬 하야입니다.

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바라로 창조하시고 이제는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기를 코에 불어넣으셨더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바라 창조를 통해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땅의 흙으로 사람을 또 지으시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지으시고’라는 단어는 야차르 3335 와우접속사. 동사 칼(능동태)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입니다. 꾸미다, 구성하다, 형성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바라 창조하셨지만 완전하게 숨을 쉴 수 있는 존재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차르 창조를 하시고 있는데 이 창조는 건물을 건축하고 나서 인테리어를 하여 더 완전하게 사람이 살 수 있도록 꾸미는 것처럼 하나님은 인간을 더 완숙하게 꾸미고 구성하여 하나님의 완전한 형상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라 창조로 완벽하게 무에서 유로 만드셔서 건물을 지으셨다면 야차르 창조는 그 건물에 인테리어를 꾸며서 더 정돈되어 건물이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만드시는 것처럼 이제는 사람이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숨을 쉬는 존재로 만들어 주신 창조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즉시로 꾸미고 형성하여 숨을 쉴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 가시고 있습니다. 전에는 숨을 쉬지 못하는 존재로 있다가 이제는 완전하게 숨을 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야차르 창조는 겉 사람을 만드는 창조를 의미합니다. 겉 사람이 숨을 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생령’이라는 단어는 네페쉬 5315 명사 여성 단수입니다. 숨 쉬는 존재, 생명, 생기,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숨 쉬는 존재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숨을 쉴 수 있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이제는 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 창조하셔서 영혼과 마음과 육체가 모두 하나님의 뜻대로 형성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야 하나님의 형상대로 완전하게 창조된 상태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런 상태가 바로 사람이 죄를 짓기 전의 완전한 상태의 창조입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게 됩니다. 이 상태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기 위하여 특별히 에덴동산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어 결국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18절은 바요메르 아도나이 엘로힘 로 토브 헤요트 하아담 레바도 에에세 로 에제르 케네게도입니다.

창 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야차르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으로 인도하여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음으로 하나님께서 돕는 배필을 지어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때에 지으시는 창조가 아사 창조입니다. 이미 여자는 하나님께서 바라 창조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이 상태에서 유를 만드시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존재로 이미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있습니다.

22절은 바이벤 아도나이 엘로힘 에트 하첼라 아쎄르 라카흐 민 하아담 레이솨 바예비에하 엘 하아담입니다.

창 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만드시고’라는 단어는 바나 1129 와우접속사 동사 칼(능동태)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입니다. 건축하다, 세우다, 증축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 창조는 바나 창조입니다. 바나 창조는 이미 바라 창조되었고 무에서 유를 만들어 놓은 것을 가지고 유에서 유를 만든 아사 창조물로 건축하는 창조를 말합니다. 아담의 갈빗대는 이미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창조물입니다. 이 창조물을 가지고 하나님은 여자를 바나 창조하시는데 이미 이 여자는 앞에서 바라 창조된 자입니다. 이 여자를 건물을 증축하듯이 더 세밀하게 건축하여 세우는 창조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무에서 유를 창조한 여자를 남자의 갈빗대로 건축하여 세워 더 확실하게 여자의 존재를 만들었습니다. 이미 여자라는 존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아담의 배필을 아담의 갈빗대를 가지고 한 몸이 될 수 있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건물을 지을 때에 철근도 들어가고 시멘트와 돌과 벽돌과 나무들이 들어가는 것처럼 남자의 몸에 있는 갈빗대를 가지고 여자를 건축하는데 재료로 사용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여자를 창조하신 바나의 창조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갈빗대를 즉시 취하여 여자를 창조하셨는데 완전한 모습으로 여자를 창조하셨고 이제는 더 이상 여자를 만들지 않아도 될 만큼 세밀한 것까지 신경을 써서 하나님께서 건축하듯이 창조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와우접속사 문법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사용하는 단어 네 가지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모든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동물도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하나님의 손길이 닿아서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직접 나를 무에서 유로 창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생기를 불어넣어 주셔서 숨을 쉴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시고 하나님과 똑같은 완전한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럼 이제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으니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니 하나님께서 직접 이 땅으로 성육신 하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몸으로 직접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가니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말씀을 듣고 주님을 찬양하고 몸으로 실천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게 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귀한 존재로 창조하셨는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도 신경 쓰시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아주 완벽하게 창조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인간이 죄를 짓고 우상을 섬기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창조된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면 하나님은 너무나 기쁩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창조된 피조물로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섬기면서 나아가는 신앙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창조 신학이 근본이다

일원론으로 본 세상

기독교의 성경만 우주의 창조를 기록한다(창 1:1). 창조주는 한 분이다. 기독교의 창조주 하나님만이 우주와 이 세상에서 유일한 참신이란 뜻이다. 그리고 창조 기사는 전지전능한 창조주 하나님이 직접 다스린다는 일원론(一元論: monism)을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창조주 하나님인 여호와(창 2:4)는 인격적 신(神)이다.

시작과 끝도 없이 영원히 존재하는 하나님은 먼저 특정한 목적을 정하고 그다음 계획을 세웠다. 이 목적과 계획에 따라 시간과 공간 그리고 물질의 세계를 창조했고 또다시 말씀으로 창조하며 이들을 채워 나갔다. 추상적인 주제(主題 : theme)인 창조 목적이 형상적인 소재(素材 : material)라 할 창조 세계를 통해 잘 설명된다.

하나님의 창조 행위는 영적 세계를 물질세계로 표현시키는 행위로 초월(超越 : transcendence)과 내재(內在 : immanence) 사이 조화로운 관계를 설명한다. 창조 기사는 이원론(二元論 : dualism)을 전혀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논리적인 이해를 위해 초월과 내재를 분리시킬 수 있다.

창조된 우주와 세계는 창조주 하나님과 그의 창조 목적을 가장 잘 드러내도록 돕는 구조와 기능을 가진다(롬 1:19~20). 즉 자연 계시가 특별 계시를 설명한다. 자연 계시를 잘 이해한다면 하나님과 그의 창조 목적도 알 수 있다. 단 두 장에 기록된 창조 기사는 너무나 중요하다. 창조 기사가 성경의 나머지 계시들을 위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유감스럽지만 교회는 헬라 철학의 이원론적 영향을 받아 창조 기사의 중요성을 덜 인식했다. 논리 영역은 물론 역사 영역에서도 초월과 내재 사이 관계를 강제로 분리시켰다. 창조 신학의 일원론이 무시되었다. 그 결과 창조 신학도 거의 무시되고 창세기 3장부터 기독교 신학이 출발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이것을 완강하게 부정한다.

창조 기사는 하나님의 마음에 감추어진 작정과 목적 그리고 의지를 제일 처음 드러냈다. 창조 신학의 내용을 알 수 있다면 나머지 계시들의 방향과 목표가 무엇인지도 알려진다. 창조 기사는 재해석되어야 한다.

창조 세계는 유기체이다

우주와 만물은 모두 하나의 창조물에서 기원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 1:1~5)."

첫째 날 하나님은 원형적 우주(창 1:1)와 비물리적인 빛(3~4)을 창조했다. 원형적인 우주는 그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 그러나 성령이 물 위에 운행했다. 그리고 둘째 날부터 원형적 우주에서 우주와 지구 그리고 그 가운데 만물이 차례로 창조되었다.

창조주 하나님이 만물의 유일한 주재자(主宰者)란 뜻이다.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대상 29:11, 렘 31:7 참조)."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열방의 주재심이로다(시 22:28)."

하나님은 질서의 신(神)이다(고전 14:33).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 우주는 서서히 안정적인 구조를 드러내며 질서 정연하게 존재했다. 이 구조 안에서 우주와 만물은 하나의 유기체와 같다. 이 점에서 우주 안에 존재하는 것들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무시될 수 없다.

만물의 주재자인 창조주 하나님은 우주라는 몸의 머리였고 창조 목적을 달성하기까지 그 몸을 유지하며 보존하고 섭리하며 통치할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첫날 비물리적인 빛을 창조했고 아울러 성령이 창조된 세상 위에 늘 운행하도록 조치했다. 이미 존재하기 시작한 사단의 존재와 그 활동을 억제시키기 위함일 것이다.

창조 세계가 유기체와 같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창조 과정에서도 잘 증명된다. 창조 과정은 주기성(週期性)을 보여 준다. 첫째 삼일과 둘째 삼일 모두 우주, 하늘과 바다 그리고 뭍(육지)의 순서로 창조가 진행된다. 첫째 주기인 첫 삼일 동안 시간과 공간이 창조되었다면 둘째 주기인 두 번째 삼일 동안 그 시공에 거주할 피조물들이 차례로 창조되었다. 두 주기들은 서로 유기적이다.

창조의 날들이 지날수록 창조 세계도 점점 더 완벽해졌다. 여섯째 날 맨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최고 걸작인 인간이 창조되었다. 6일간의 창조 행위는 인간을 위한 창조 과정 자체였다. 인간은 하나님에 버금가는 존재로서 창조주를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릴 것이다. 인간을 위해서도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완벽해야 했다.

넷째 날 창조물인 우주의 천체들도 결국 인간을 위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창 1:14)." 태양은 일과 쉼을 결정해 주는 주야를 인류 사회를 위해 나누어 줄 뿐만 아니라 사계절, 일자와 연한까지 정해 주어 덕분에 인류 사회는 규칙적으로 그리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다.

태양의 주기적인 운행 덕분에 인류 사회는 이 지구에서 평화롭게 생존할 수 있다. 그리고 태양의 에너지는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들의 생명을 보존 내지 유지시켜 준다. 이 덕분에 인류 사회는 활동에 필요한 양식을 늘 얻을 수 있다(창 1:29). 태양이 없다면 우주는 존재할 수 없다. 우주는 태양계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모든 생물들을 '각 종류대로' 창조하였다(창 1:12, 21, 24, 25). 창조 세계는 사람의 몸과 같은 유기체이다. 몸을 구성하는 지체들이 있듯이 우주를 구성하는 수많은 부분들이 있다. 이 부분들은 모두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맡은 역할과 기능을 소유한다. 우주를 구성하는 것들은 아무리 작은 것도 무용한 것은 없다.

그러므로 '각 종류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각 은사대로', '각 기능대로', '각 역할대로', '각 사명대로' 또는 '각 직분대로' 만물이 지어졌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각 종류대로'란 표현은 '자연도태', '적자생존'이나 '약육강식'을 주장하는 무신론적 진화론(進化論: evolution)을 완전히 부정한다.

진화론적 사고는 두 가지로 나뉜다. '어느 것이 더 강하냐 또는 더 크냐?'라는 상대적 이분법과 생물들 사이 천적 관계를 주장하는 대립적 이분법. 이런 사고에 의하면 피조물들 중 상대적으로 작은 것들이나 약한 것들은 존재 의미와 목적을 못 가진다. 또는 천적 관계로 어느 한 쪽은 다른 쪽을 위해 희생되어야 한다. 진화론에 의하면 자연 세계는 오로지 강자(强者)와 승자(勝者)만의 소유물이다.

학자들은 진화론으로 인류 사회를 분석한다. 모든 사회적 현상이나 인류의 역사를 상대적 또는 대립적 이분법에 따라 재평가한다. 우생학이나 인종 개량학 그리고 공산주의 등등은 모두 진화론의 결과물이다. 영웅인 강자와 승자만 높게 평가되고 나머지는 약자나 패자로 무시된다. 사람들에게 승리와 성공만이 유일한 가치이다.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 차이가 너무나 크다. 앞에 것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따라 모든 만물은 생존의 의미와 목적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뒤에 것은 나타난 현상이나 결과에 근거를 두고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앞에 것은 미천한 것도 중요하게 보지만 뒤에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이들이 서로 다른 것은 창조 세계의 타락 이전과 이후 사이 차이에서 나온다.

타락 이후 아담의 통치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에게 넘겨졌다. 사단은 자연 세계는 물론 인류 사회에서 하나님의 반대자로 등장하며 하나님이 세운 모든 조화를 무너트린다. 이 때문에 이원론이 맞고 일원론이 틀린 듯 보인다. 그러나 이런 방해와 반대는 일시적이다. 유일한 창조주인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 목적을 달성하고자 여전히 세상을 통치한다. 그러므로 창조 신학은 인류 사회를 위해 여전히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6일 창조 과정에서 창조된 모든 것들은 통섭적인 관점에서 관찰되어야 한다. 어느 한 부분만을 강조하며 다른 것들을 무시하는 그런 학문적, 과학적 연구 방법은 성경이 처음부터 권하지 않는다. 우주와 그 가운데 만물은 모두 예외 없이 하나님이 달성할 창조 목적에 이바지하도록 지어졌다. 창조 기사는 통섭적 과학 방법을 주장한다.

신국론이 창조 신학의 중심이다

최초의 인간 아담은 6일째 날 마지막 창조물이었다. 그가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인간은 창조 결과를 은혜로 받고 누리면서 하나님에게 감사하면 되었다. 창조주는 피조물 인간으로부터 이런 영광과 찬송과 명예를 받길 원했다(시 102:18, 사 43:7, 21 60:21, 61:3, 엡 1:6, 14, 21). 이를 위해 하나님은 인간을 독특한 방법으로 창조해야 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 1:26절)."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닮았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자체가 아니다. 인간은 복사본으로 하나님과 비슷하지만 같지 않다.

창조주 하나님은 아담에게 자신의 통치권(창 1:28)을 넘겼다. 인간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처럼 문화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그렇게 인간은 하나님으로 살아가며 하나님처럼 되어 간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는 존재로 설 것이다(엡 1:4~5).

'하나님의 형상대로'라는 용어는 인간 존재의 출발은 물론 그 목적이 무엇인지 잘 알려준다. 문화 사명을 잘 수행하도록 하나님은 자신의 신적 은사와 능력을 인간에게 줄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라는 용어가 품는 신학적 의미이다. 신의 일을 맡은 인간은 신의 성품에도 참여한다(벧후 1:4 참조).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처럼 이성, 지식, 도덕, 감성 그리고 예술 면에서 은사를 소유한다. 이로써 불완전한 인간은 세 단계를 거쳐 완전함에 이를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 문화 사명을 수행하는 인간 그리고 마침내 아들로 인침을 받은 인간. 이것은 신약성경과 다르지 않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는 칭의, 아들로 살아가는 성화 과정 그리고 마침내 아들로 인정받는 영화.

문화 사명은 세 분야로 구성된다. 문화 사명은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에게 명한 것이다(하나님과 사람 사이 관계, 신앙과 종교 영역). 이 사명은 인간의 생육과 번성 그리고 땅에 충만을 명한다(인간과 인간 사이 관계, 윤리와 사회 인문과학의 영역) 그리고 자연은 문화 명령을 수행할 또 다른 무대이다(자연과 사람 사이 관계, 자연과학의 영역). 이것들이 신앙 삶을 구성한다. 신앙은 윤리나 과학을 배제시키지 않는다. 인문과학과 자연과학도 분리될 수 없다. 결국 신학과 각종 과학은 모두 하나님나라를 위한다.

지금까지 기독교와 신학은 앞의 두 가지 관계만 중요하게 보았다. 셋째 관계는 비교적 무시되었다. 물질세계를 저급한 것으로 보는 헬라의 이원론적 철학 때문이다. 오늘날 환경오염과 파괴의 원인은 바로 이원론에 있다. 그러나 창조 신학은 하나님의 통치가 자연을 포함한 인류의 문화의 영역에서 실현되어야 할 것을 명한다.

이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세워지고 확장될 것이다. 이것이 인간 창조의 목적이다(창 1:26). 기독교는 자연 세계의 보존과 유지 그리고 관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기독교 신학에서 다른 관계들과 동등하게 자연과의 관계도 강조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기독교 신학은 세상의 학문이나 과학을 배척해선 안 된다.

하나님은 인류가 효과적으로 문화 사명을 수행하도록 별도의 조치를 취했다. 안식일을 정하고(창 2:1~3) 에덴동산을 창설했으며(8~15절) 선악과 규례를 주었고(16~17절) 그리고 가정을 세웠다(18~25절).

일주일 중 마지막 날 인류는 쉬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며 창조 기사를 묵상해야 한다. 육적 쉼이 영적 쉼을 겸할 때 진정한 쉼이 된다. 이로써 인류는 자신의 존재 목적과 의미를 절대로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늘 창조주 하나님에게 감사하며 찬송과 영광과 명예를 돌릴 것이다. 이를 잊는다면 인간이기를 거부한 것이다. 미천한 짐승처럼 살 것이다.

에덴동산은 문화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 근거지이며 동시에 출발점이다. 문화 사명은 에덴동산의 영역을 세상으로 점점 더 확장시켜 나감으로 훌륭하게 수행된다. 이로써 하나님의 통치 영역도 세상으로 확장되어 가며 하나님나라가 저절로 이 세상에 건설된다. 그리고 에덴동산은 인류가 생육하고 번성하는 장소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훈련받는 곳이다. 여기서 배우고 습득한 후 에덴 밖에서 실천할 수 있다.

선악과 규례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인류가 문화 사명을 수행할 것을 요구한다. 문화 사명이라는 일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길을 따라 수행하여야 한다. 일만 중요하지 않다. 정해진 길을 따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를 조건으로 인류는 에덴동산에서 계속 살며 창조주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 이를 창조 언약(창 2:17)이라 한다.

이런 삶과 사명 수행을 통해 인류는 불완전함에서 완전함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다. 완전한 순종자만이 하나님이 마련한 완전한 낙원에 이를 것이다. 이 낙원의 기업을 얻는다면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는다. 이것은 신약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의 완성인 영화 단계이다.

그러나 순종은 영화(榮華: glorification)에 달하는 조건은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이미 낙원 에덴에 살고 있다(칭의, justification). 그런 무조건적인 은총을 받은 인류는 문화 사명을 수행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짊어진다(성화, sanctification). 그러나 노력의 정도에 따라 받을 상급의 정도가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가정 제도는 문화 사명을 위해 꼭 필요하다. 문화 사명을 수행할 일꾼들은 가정에서 생육하고 번성할 것이다. 그러므로 결혼 제도, 부부 제도 그리고 가정 제도는 하나님 앞에 너무나 신성하다. 최초의 가정은 바로 교회와 학교와 정부 노릇을 했다. 가장이 목사, 교사 그리고 왕의 역할을 맡는다. 구약시대로 말한다면 가장이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 같은 존재이다. 가정은 인류 사회라는 공동체의 최소 단위로 교육장과 훈련장이다. 이곳으로부터 하나님의 일꾼들이 배출된다.

남녀 관에서 창세기 1장과 2장 사이 차이가 발견된다. 보편적 창조 기사를 말하는 창세기 1장에서 남자와 여자는 모든 면에서 동등한 존재이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 평등하며 수평적 관계를 가진다. 그러나 인간 창조를 기록한 2장에서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지 않다. 남자는 가정의 가장(家長)으로 왕적 존재이다. 남자와 여자 사이 관계는 수직적이며 종속적이다.

이 둘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가정에선 창세기 2장의 가르침을 그러나 가정 밖 사회에선 창세기 1장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성경적이다. 이에 대한 반발로서 창세기 3장에 기록된 하와의 저주(16절)를 예로 든다. 그러나 본문도 가정을 배경 한다. 즉 가정 안에서 여자는 남편의 감독 아래 있어야 함을 말한다.

그러므로 가정과 교회 밖 사회에서 남녀 사이 성적 차별은 성경적 가르침이 아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문화 사명의 수행과 은사 면에서 여자를 남자와 차별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사명이 수행되는 인류의 문화 영역은 너무나 다양하다. 효과적으로 사명을 수행하려면 남자와 여자 사이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남자의 우월성은 현대사회 이전 농업 시대 절대적이었다. 그 시대 육체적인 힘이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오늘날 정보화 시대 몸의 힘보다 머리의 힘인 지식이 더 중요해졌다. 여자도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 다원화 시대 여자가 활동할 수 있는 분야들은 참으로 많다. 이 모든 일들을 남자들만 감당할 수 없다. 학자들은 여성의 노동력이 나라의 발전과 성장을 좌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이 이를 뒷받침한다. 예전 인류 사회는 한 사람의 유능한 리더에 의존했다. 그러나 오늘날 다원화 시대 유능한 전문가들은 참으로 많다. 이젠 조직원들의 전문적인 능력을 최대한 끄집어내는 리더가 필요하다. 이 리더십에 권위적인 남성보다 모성적인 여성이 더 적합할 수 있다.

창세기 1장의 남녀 관은 이런 시대와 사회를 미리 내다보고 있다. 인류 사회도 일인 지도자만 고집하는 권위주의보다 모든 이들을 아우르는 평등주의를 요구한다. 이제 인류 사회는 여성 지도력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

결국 하나님나라를 세우기 위해 교회와 성도가 노력해야 할 다섯 가지 일들이 있다. 성경 말씀의 고수, 문화 사명 수행, 주일 성수, 교회의 보존 그리고 경건한 가정의 육성이다. 이들은 그대로 창조 신학의 가르침들이다. 이들에 힘쓴다면 교회는 산 위에 켜진 등불처럼 만인 위에 비출 것이며 성도는 사회의 빛과 소금 역할을 감당할 것이다. 그만큼 하나님나라도 인류의 문화 영역에서 더 빨리 세워지고 확장될 것이다. 교회도 인간 사회도 모두 사는 길이다.

결론

창세기 1~2장에 기록된 창조 기사의 종국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인류를 대리자로 세워 자신의 통치를 이 세상에 실현시켜 하나님나라를 완성하는 것이다. 창조 기사가 말하는 신국론(神國論: doctrine of God’s kingdom)은 모든 신학들의 목표이며 방향이다. 모든 신학들은 신국론과 분리되어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사도바울이 말하는 성부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엡 1:4~5)이 이를 증명한다. 시간상으로 선택보다 앞서는 하나님의 예정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이다. 그리고 예정에 따라 이루어진 선택의 목적은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이다.

하나님의 선택은 예정을 성취하고 완성시키는 방법이다. 피택자들로 표현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는 존재로 세움을 입고 마침내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거룩한 신분 획득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리고 양자 됨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각각 가능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선택 이후에도 성도의 삶에 작용할 것은 분명하다. 그 목표는 하나님의 형상 자체인 그리스도를 닮은 형제들로 그를 세우기 위함이다.

피택자들은 그리스도를 맏형으로 둔 형제들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들의 아버지이다. 결국 하나님의 가정이 곧 하나님나라이다. 이것이 하나님나라의 진면목이다. 창세전 세워진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 즉 하나님의 작정에 따라 창조주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다. 창조 후 인류 사회는 바로 하나님의 가정의 상징이며 모형으로 하나님나라였다.

이미 실현된 하나님의 통치를 전 세계로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 인류의 사명이었다. 문화 사명은 바로 이를 목표했다. 지금까지 살핀 대로 창조 기사가 말하는 신학적 주제들은 결국 하나님나라라는 제 일차적인 주제와 긴밀히 연결된다. 창조 신학은 이런 논리적인 진리 체계를 보여 준다.

하나님나라는 세상 문화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이 사실은 부활주인 예수님에 의해서도 증명된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골 1:18, 계 1:5 참조)." 만물의 으뜸이라면 지금도 예수님이 세상 역사를 주관한다.

비록 보이는 차원은 아니라도 영적 차원에서 하나님나라가 이 세상에 세워져야 한다. 이것은 문화 영역에서 실현된다. 이를 위해 부활주 예수님도 은사들을 나누어 주며 신자들을 돕는다. 먼저 예수님은 성도의 인격 안에 그리고 교회 안에 하나님나라를 세운다. 그리고 그 영역이 세상으로 확대되도록 일한다. 이 점에서 신약시대 교회는 창조 기사의 에덴동산 같고 구약시대의 가나안 땅과 같다. 그리고 신약시대 교회는 하나님나라를 위한 거점이며 출발지이다.

결론적으로 헬라인의 이원론은 창조 신학에 안 맞는다. 성도는 히브리인의 일원론으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 일원론과 이원론은 모든 면에서 하늘과 땅 사이만큼 엄청난 차이를 드러낸다. 특히 세계관과 역사관과 가치관 면에서…인류 삶의 내용과 성격은 이들에 의해 결정된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려면 일원론을 택하여야 한다.

사단이 아직도 활동함으로 이원론이 맞는 듯 착각하게 한다. 그러나 그도 하나님의 품꾼에 지나지 않는다. 사단의 시험은 성도들에게 연단의 기회가 되지만 그리스도 밖의 사람들에게는 파멸케 하는 유혹이 된다. 결국 사단은 자기 일로 참주인인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루어 줄 뿐이다.

기독교와 성도는 이원론에서 나온 대립적 또는 상대적 이분법을 버려야 한다. 그 대신 일원론에 근거를 둔 논리적 이분법에 따라 사고해야 한다. 일원론적 세계에서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의 목적에서 벗어난 것은 없다. 그리고 종국적으로 하나님의 목적은 결국 성도들에게도 유익하다(롬 8:28).

그러나 사물을 상대적으로 또는 대립적으로 판단하는 이분법은 사물의 다른 면들 중 어느 하나를 버리게 만듦으로 성숙한 그리고 지혜로운 판단을 방해한다(창 3:6~24). 흑백논리에 따라 산다면 편협한 인간이 된다. 이로 인해 신앙 삶의 내용인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과의 관계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를 모두 파괴된다. 이것은 바로 사단의 전략이며 그가 원하는 바이다. 이원론과 그에 따른 사고방식은 참으로 위험하다. 그러나 새로운 피조물은 새로운 사고로 살아야 한다. 옛사람의 사고방식을 버리고 새사람의 사고방식을 따름으로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사실은 창조 기사의 신학이란 다른 신학들의 목표와 방향을 제시해 줄 뿐 성취나 완성을 보여 주지 못한다. 첫 사람 아담의 실패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를 자신의 대표자로 세운 뜻과 목적이 실패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목적은 취소될 수 없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인간이 되어야 할 이유였다(창 3:15).

예수는 둘째이면서 마지막 아담(고전 15:45~47)이 되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려면 중생하여야 한다고 말했다(요 3:1~16). 오늘날 이것은 성령의 사역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성취된다. 기독론, 구원론과 성령론도 결국 하나님의 통치 즉 하나님의 나라를 목표한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에 의해 하나님나라는 성취 내지 완성된다. 예수님이 하나님나라의 열쇠이다. 진실로 예수님은 인류의 참소망이다(딤전 1:1). 마라나타!








성육신의 신학적 의미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The Word became flesh and made his dwelling among us. We have seen his glory, the glory of the One and Only, who came from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기독교 신앙의 핵심에는 개념들이 있지 않고 구체적인 역사적 인물이 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역사적 인물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된다. 성탄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성육신의 첫 출발점이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는 다른 관념이나 이데올로기의 창시자의 존재와 전혀 다른 성격을 띤다. 헤겔주의나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관념들은 그 관념의 주창자와 독립하여 존재할 수 있다. 비록 그 사상 체계가 그들에 의하여 소개되거나 종합되었을지라도 이제 그 사상 체계는 그 주창자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한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단순히 소개된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기독교 사이의 관계는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 사이의 관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지닌다. 기독교 신앙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핵으로 둘러싸며 존재하는데 예수그리스도는 육신이 되신 말씀이다.

성육신(成肉身)이란 요한복음 1장 14절에 있는 말씀에 근거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사건을 의미한다. 이 말씀은 세상의 창조 이전부터 계신 분이며,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을 뿐만 아니라 이 말씀 자신이 곧 하나님이시다.(요1:1) 요한의 증언에 따르면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은 이 말씀을 통하여 지음을 받았다.(요1:3) 이 말씀은 이제 육신이 되어서 사람들 사이에 거하셨는데 이 말씀은 참 빛이며 모든 사람들의 생명이다. 육신이 되신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로서 우리에게 오셨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의 사건이 곧 성육신의 사건이다. 성육신의 개념은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 곧 자기를 비워 모든 조건에서 인간과 같이 된 것을 의미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빌2:6-8) 성육신은 모든 만물을 지으신 분이 지음을 받은 존재 가운데 하나가 되었음을 뜻한다.

기독교 신앙은 역사적 인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다는 주장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데 이는 성육신 교리에서 그 분명한 모습을 드러낸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가 단지 위대한 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라고 주장한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는 곧 하나님 자신이다. 예수는 하나님을 대표하여 행동한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를 경배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며 우리가 예수를 알 때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우리가 예수의 약속을 들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들으며 우리가 예수와 마주칠 때 우리는 하나님과 마주치는 것이다. 성육신의 개념은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의 절정이다. 여기에서 성육신의 핵심은 예수 자신이 곧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자신이라는 성육신의 진리는 우리의 신앙과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닐까? 2,000년 전에 팔레스타인에 살았던 한 초라한 인간의 삶 속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왜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을 그토록 열심히 붙들어야만 하는가? 우리는 여기에서 성육신 사건의 신학적 의미를 구원론의 차원과 신론의 차원에서 살펴본 뒤에 이러한 성육신 이해가 기독교 영성 이해에 미치는 함축점을 살펴보도록 하자. 여기서 우리가 살펴볼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성육신 사건은 기독교의 구원 이해에 어떤 기초를 마련해 주는가? 성육신 사건에서 나타나는 기독교 신앙의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성육신 사건에 기초할 때 기독교적 삶의 양식이 드러내야 할 기독교 영성은 어떤 것인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성육신 사건의 구원론적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 성육신사건은 무엇보다도 구원의 사건이다. 성서의 중심적 주제는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다.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인간과 그의 세계를 저버리지 않으시고 옛적부터 선지자를 보내어서 구원의 손길을 펼쳐 오셨다. 이제 하나님은 자신의 사자를 보내실 뿐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옷을 입으신다.

예수 그리스도 곧 성자 하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죄악에 빠진 인간과 그의 세계를 구원하신다. 성자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계에 찾아 오신 사건 곧 성육신의 사건은 하나님이 이 세계를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사랑하심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고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 신성과 참 인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많은 논쟁을 벌였다. 여러 가지 복잡한 논쟁을 굳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고대 교부들이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여겼는가를 잘 알고 있다. 주후 451년에 있었던 칼케돈 회의는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 이며 '참 사랑' 임을 선언함으로써 복잡한 신학적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런데 고대 교회의 신앙인들은 무슨 이유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그토록 복잡한 논쟁을 벌였는가? 이 논쟁의 중요성은 구원론적인 시각에서 올바로 파악될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며 참 사람임을 고백한다. 여기서 핵심적인 쟁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동시에 확보되지 않는다면 기독교 신앙이 선포하는 구원이 불가능해진다는 점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참 사람인 것이 왜 중요한가? 예수 그리스도는 참 사람으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사람이 해야 하는' 속죄의 사역을 대신한다. 그러면 왜 예수를 그저 뛰어난 인간 헌신적인 인간이라고만 말하지 않는가? 예수는 틀림없이 인간이었다. 고대 교회와는 달리 오늘날에는 이 점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예수가 인간이기만 하다면 예수도 역시 인간의 곤경을 함께 나누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예수가 참으로 구원자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인 것이 왜 중요한가?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으로서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그 사역을 완성한다. 그러면 '예수가 하나님이었고 하나님이기만 했다'고 말함으로써 이 문제를 풀면 되지 않는가? 하지만 예수가 하나님이기만 했다면 예수와 우리 인간 사이의 접촉점은 상실되고 만다. 예수 그리스도가 참 사람이 아니라면 예수가 인간을 대신하여 죽은 것이 우리에게 무슨 관련이 있을 수 있는가? 요약하자면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 아니었더라면 그는 인간을 구원할 수 없었을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참 사람이 아니었다면 인간은 그에 의한 구원의 대상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하여 예수는 참 하나님이며 참 사람이었다는 주장은 고대교회에서 매우 중요하게 받아 들여졌으며 이는 성경의 주장에 합당한 결정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참 하나님이 참 인간 안에서 나타난 성육신의 사건은 기독교 신앙의 구원론에 확고한 기초를 마련해 주게 된다.

다음에 성육신 사건의 신론적 의미를 살펴보자 성육신 사건은 하나님 이해에 있어서 결정적 단서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하나님 이해의 차원을 가진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과 목적에 대해서 결정적인 내용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것은 단지 한 명의 인간이 더 태어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결정적인 모습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났다고 믿는다. '하나님은 누구일까? 라는 이 문제를 다루기에 앞서서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먼저 던져야 한다. 우리는 참 하나님에 관하여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의 존재를 알기 위하여 자연을 보아야 할까, 또는 인간 자신을 보아야 할까, 아니면 역사를 보아야 할까? 하나님은 여러 가치 자연 세계와 역사적 사건 속에서 발견될 수 있다.

성경도 하나님은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히 1:1)우리에게 말씀하신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결정적인 모습은 어디에서 드러날까? 이에 대하여 성경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다고 말한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하나님 지식에 있어서 가장 신뢰할 만한 기초가 된다. 이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결정적으로 말씀하셨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히 1:3)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육신의 개념을 강력하게 부정하는데 그 이유는 분명한 신학적 이유때문이다. 이는 성육신의 개념이 자신들이 미리 마음 속에 품고 있던 하나님 상(Image, 이미지)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이미 머리 속에 분명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하나님을 하나의 보편적 개념이나 일반적 원리로 생각한다. 개념이나 원리는 보편적이며 일반적인 것이지 구체적이여 특정적인 것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자신의 하나님 개념에 기초하여 그들은 성육신의 사건을 부인한다. "어떻게 우주의 원리인 로고스(말씀)가 한 역사적 인간 속에서 자신을 다 드러낼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것이 그들의 질문이다.

고대 교회는 이 문제에 관하여 또한 심각한 논쟁을 벌였다. 이 논쟁의 핵심 질문은 다음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비슷한(homoiousios)본성을 가졌을 뿐인가(아리우스) 아니면 하나님과 동일한(homoousios)본성을 가졌는가?(아타나시우스)" 이 두 단어 사이의 문자적 차이는 그리스어 i 일 뿐이지만 이 둘 사이의 신학적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우리가 만일 예수는 그저 하나님과 비슷한 존재일 뿐 참 하나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 뒤에는 다음과 같은 그리스 철학적 하나님 이해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피조물과 철저하게 다른 존재이며 하나님은 일반적 원리이기에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 없다. 하나님은 피조물과 전혀 다르기에 결코 피조물의 아픔과 고통 가운데 들어올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은 저 하늘에 있는 초월적인 존재일 뿐이다." 그러므로 보편적이지 않은 진리는 참 진리가 될 수 없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조들이 이끌어 낸 하나님 지식은 어디로부터 비롯되는가?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 얻어진 하나님 지식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진 하나님 지식보다 더 신뢰할 만한 것이라는 증거가 있는가? 결국 다른 곳에서 얻어진 하나님 이해와 상충되기 때문에 성육신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육신에 대한 반론이 되지 못한다. 그러한 주장은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그들 자신의 이해가 그리스도밖에 얻어진 선이해(先理解)에 근거한 것임을 보여줄 뿐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에 기초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에 관하여 그저 추상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는 대체로 하나님은 불멸하며 무한하며 불변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이 어떤 존재가 아니다'라는 것 이외에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의 불멸성, 무한성, 불변성 등은 단지 하나님은 멸하지 않으며(죽지 않으며-유한하지 않고, 변하지 않는다는 정도만 말할 뿐이다. 하나님의 불멸성, 무한성, 불변성 등은 보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기초할 때 하나님의 구체적 모습은 어떠한가? 성육신 교리에 따르면 하나님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성품은 예수 그리스도 같은 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있기 전에는 하나님에 관한 모든 상(image: 이미지)은 우상으로 여겨졌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세우고 그것을 섬겼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참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 하시는 하나님의 형상(image)'(골 1:15)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육신은 하나님을 눈에 보이게 만든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와 같은 분이기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봄으로써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비로소 배우게 된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우리는 성육신 교리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셨듯이 친구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사랑(요15:13)과 같다고 성경은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하나의 분명한 상(image: 이미지)을 얻을 수 있다.

성육신 사건을 통해서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본성에 대하여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우리의 하나님이 그저 개념이나 원리로서 존재하는 타자(他者)가 아니라 구체적인 인격으로 오시는 분임을 말한다. 성육신 사건에 따르면 하나님의 참 존재는 인격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개념으로 찾아오시는 존재가 아니라 인격 안에서 찾아오시는 분이다. 하나님께서 개념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인격으로 오시기에 신앙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지적인 이해와 수긍이 아니라 인격적 신뢰와 순종이다. 인격은 신뢰와 순종을 요청하는 까닭이다.

둘째 하나님의 존재가 인격적이기에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행동하시는 분이다. 성육신 사건에 따르면 하나님의 존재는 피조물 세계를 향하여 찾아오는 가운데 행동하는 존재이다. 하나님의 존재는 피조물을 향한 구체적 행위 가운데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육신은 우리의 하나님을 피조물의 삶과는 동떨어진 가운데 멀리서 따로 존재하는 지배자가 아니라 피조물의 역사속으로 계속해서 찾아오시는 분임을 말한다. 성육신에 따르면 하나님은 구체적인 사건 속에서 피조물에게 찾아 오신다.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의 운명에 대해서 무관심한 분이 아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에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분이며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까지 내어 주시는 분이다.

성육신 사건에 따르면 기독교 신앙의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의 운동을 펼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이라는 구체적인 행위 속에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시는 분이다. 성육신은 우리의 하나님이 사랑 안에서 구체적으로 행동하시는 분임을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이라'(요 4:8)고 고백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저 사랑의 원리가 아니라 사랑 가운데 구체적으로 행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구체적인 행동 가운데 나타내셨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다.'(요일 4:9)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선언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안에서 올바로 이해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저 보편적이며 추상적인 개념이나 원리로 오해될 수 있다.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구체적으로 그 아들을 보내셨다.(요 3:16)는 성경의 선포는 참 진리는 그저 추상적인 원리가 아니라 구체적인 행위임을 말해 주고 있다. 요약하자면 성육신 사건은 "하나님은 저기 멀리에 있는 낯선 존재가 아니다. 역사적 예수 안에서 구체적인 인격으로서 찾아오신 이가 곧 하나님이다? 라고 하나님 존재에 대하여 선언한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구원론적인 기초를 제공하며 또한 우리에게 결정적인 하나님 이해의 터전을 마련해 준다. 이러한 성육신의 사건에 기독교 신앙은 어떠한 삭의 양태를 요청하는가? 다시 말하자면 성육신 사건은 어떠한 영성을 요청하는가? 첫째 성육신 사건에서 드러난 기독교의 영성은 하나님과 세계를 분리하고 대립시키는 이원론을 거부하는 영성이다. 기독교의 신앙은 세계를 부정하는 영성이 아니라 세계를 긍정하는 영성을 전개한다. 이는 중세의 수도원적인 영성과 대비된다. 기독교의 영성은 하나님이 자신을 주셔서 사랑하신 이 세계를 저버리지 않는다. 물론 피조물인 세계를 하나님의 위치에까지 높이는 것은 거부된다.(롬 1:25) 하지만 세계는 하나님의 영광의 무대(마당)로서 긍정된다. 이 세계는 타락한 세계이지만 세계는 타락하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이기에 이 세계는 하나님에 의하여 사랑을 받는다.(요 3:16)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구속 사건 안에서 이 세계는 거듭남을 경험하는 가운데 이 세계는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 아래 포함된다. 그러므로 세계를 부정하는 이원론적 영성은 기독교적 성육신의 영성과 일치하지 않는다.

둘째 성육신의 영성은 이 세계 안에서 그 구체적 표현을 지향하는 영성이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기독교 신앙의 하나님은 추상적인 개념이나 원리가 아니며 피조물의 세계를 향하여 구체적으로 찾아오시는 살아계신 인격이다. 이러한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앙하는 진리는 또한 추상적인 진리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람과 사건 가운데 드러난 진리이다. 그러므로 움직이는 진리이며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진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하여 이 세계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이제 성령 안에서 또 다른 성육신을 통하여 이 세계를 변화시킨다. 하나님을 이제 추상적인 진리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육신 안에(In carnation) 진리를 넣어 주신다. 기독교의 진리는 구체적인 사람과 사건 가운데 드러난 진리이다. 복음서에는 하나님의 역동적인 진리가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 안에 거하였다. 이제 사도행전에는 하나님의 역동적인 진리가 성령 안에서 믿음의 사람들 안에 거하기 시작한다. 이제 성령에 의하여 잉태되신 그리스도는 모든 그리스도인 안에서 다시 성령에 의하여 (재)잉태되기를 원하신다.

성육신 사건은 기독교 신앙의 구원 이해에 기초를 제공해 주는 사건이며 참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에게 알려 주는 계시의 사건인 동시에 기독교적 영성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보여 주는 하나님의 모범의 사건이다. 성육신 안에서 참 하나님이며 참 사람이신 분이 인간 구원의 사역을 이루신다. 기독교 신앙의 하나님은 인간과 세계를 외면하든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낮춤의 고난을 감수하시고(빌 2:6-8)스스로 피조물 세계에 찾아오신 하나님이다. 성경은 인간으로 하여금 구원받기 위하여 구원의 사다리를 올라가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 자신이 자신의 왕관과 왕위를 버리고 이 땅에 찾아오셨음을 선포한다. 피조물의 범죄함 이전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고난의 사건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이다. 김교신은 이러한 구체적 하나님 이해를 깨달은 후에 자신의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오늘 재판정에 다녀왔다. 피고를 위하여 애쓰는 변호사가 아름답게 보였다. 문득 나를 위하여 변론까지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나를 위하여 대신 피고의 자리에 서서 죽으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니 눈물이 나더라."



부활의 신학적 의미

요한복음 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Jesus said to her,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He who believes in me will live, even though he dies;
and whoever lives and believes in me will never die. Do you believe this?"




기독교 신앙은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한다. 인간 삶의 마지막에 찾아오는 죽음은 인간에게 결코 가벼운 주제가 아니다. 모든 인간이 다 죽게 마련이라고 말하면서, 죽음의 실재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뇌하지 않는 모습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낯선 자세이다. 기독교 신앙은 또한 죽음이 던지우는 그림자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죽음의 세력이 오직 생물학적인 단계의 마지막에만 오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삶의 한 가운데서 인간은 죽음의 다양한 세력과 그림자로 인하여 고통 당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자연, 심지어는 종교적 영역에서도 죽음은 아직도 자신의 그림자를 완전히 거두지 않았다.

죽음의 현실에 대항하여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선포한다. 기독교 신앙은 그 근본에 있어서 부활 신앙이다. 사도신경은 우리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다. 사도신경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본받아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는다고 또한 말하고 있다. 사도신경의 부활 항목을 고찰함으로써 우리는 부활 신앙의 신학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사도신경은 우리의 신앙이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 근거한 것임을 말한다.

우리는 여기서 부활 신앙이 곧 부활 사건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님을 지적해야 한다. 제 2차 세계대전의 말기에 신학자들은 비신화화(demythologization)의 논쟁에 휘말려 있었고, 당시에 불트만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부활에 관한 논의가 십자가의 중요성에 대한 긍정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있을까?" 불트만에 따르면, "부활에 대한 신앙이란 단지 구원 사건으로서의 십자가에 대한 신앙일 뿐이다. ... 부활 그 자체는 과거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 오직 제자들의 부활 신앙만이 역사적 사건으로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불트만에 반대하여 우리의 신앙이 부활의 기초가 아니라, 역으로 부활이 우리 신앙의 기초가 됨을 지적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 신앙이 철저히 하나님 자신의 역사적 행위 속에 기초한 신앙임을 말해야 한다.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우리의 "믿음도 헛것"(고전 15:14)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의 현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의 현실에 기초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도신경은 누구의 부활을 말하고 있는가? 부활하신 분은 다름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분이다. 즉,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내적인 연관성을 맺고 있음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십자가 사건과 연관되어 있음은 부활 사건이 예수의 구속(救贖)의 십자가의 맥락 안에서, 곧 구원론적인 시각에서 살펴져야 할 것임을 뜻한다. 예수는 죄와 죽음과 율법의 세계에 대항하여 십자가를 지셨으며, 이것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대속물로 준 것을 의미한다. "인자의 온 것은 ...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

부활의 일차적 중요성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대결하고 있는 어둠의 세력과 관련하여 살펴질 때 그 뜻이 분명히 밝혀지는데, 그 세력은 곧 죄와 죽음과 율법의 세력이다.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에 대적하는 세력은 언제나 다음의 세 가지 무기를 가지고 도전한다: 죄, 율법, 죽음.

하나님 없는 인간은 죄 가운데 살며, 율법 아래 놓여 있고, 죽음의 세력 아래서 신음한다.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 15:56]) 바울은 죄의 댓가로서 죽음이 찾아왔음을 지적하면서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롬 6:33) 이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건 간에, 결국에는 사망의 피고용인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건 간에, 또는 어떤 것을 성취하건 간에 결국에는 사망의 세력을 위하여 봉사하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모든 일이 끝날 때, 아니 그 이전에 이미 사망은 우리에게 우리의 봉급을 나누어주고 있음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러한 죄와 사망의 굴레 속에 있는 사람들과 피조물을 향한 구원론적인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부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역을 하나님께서 정당하다고 선언하신 것을 뜻하는 사건이다.

사도신경은 그리스도께서 "장사한지 사흘만에" 부활하였음을 또한 말한다. 이 "사흘"은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성경은 "요나가 밤낮 사흘을 ...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마 12:40)고 말하고 있으며, 또한 "여호와께서 ...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호 6:2)고 선포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 구약과 신약 전체를 흐르는 구원사의 사건 속에 살펴져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사흘만에"라는 구절은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와 부활을 단지 하나의 사건의 두 측면으로만 해석하는 것이 무리임을 지적한다.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 사이에 삼일간의 간격이 있음을 인식함으로써, 부활은 십자가의 구속적 의미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와는 독립된 구체적인 사건을 의미한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구체적 사건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부활 사건을 이해함에 있어서 우리는 두 가지 양 극단의 부활 이해를 거부해야 한다.

 

한 편으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부활은 하나의 실존주의 신앙의 사후(事後) 반성과 성찰에 의하여 만들어진 사건이 아니다. 부활 사건이 주관적 신앙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의 객관적 사건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 편으로, 우리는 또한 역사 실증주의의 유혹에 넘어가서,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의 역사적 실증성을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것에 부활 사건의 정당성 여부를 걸어서도 안된다.

 

우리는 부활 사건의 역사성을 변호함에 있어서 은밀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데, 그것은 부활 사건의 종말론적 새로움을 무의식적으로 평가절하(平價切下)하게 되는 유혹이다. 우리는 과학적이거나 역사적인 방법에 의하여 부활 사건의 핵심에 도달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부활 사건은 예수의 지상의 삶의 단순한 환원이 아니며 시체의 본래대로의 환원도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부활은 궁극이전의(penultimate) 삶의 연장이 아니라 궁극적인(ultimate) 삶과 세계의 도래이다. 궁극적인 세계와 삶의 도래는 궁극 이전의 물음과 범주들에 의하여 전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바울이 부활 사건의 의미 맥락을 증명과 실증에 두지 아니하고, "전파"와 "신앙"에 두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부활 사건의 적합한 맥락은 단순한 지적인 동의가 아니라 "전파와 신앙"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전파와 신앙"이 헛된 것임을 말하면서, 부활이 있기에 우리의 "전파와 신앙"이 살아 있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고전 15:14)


바울은 왜 실증과 증명이 아니라, 전파와 신앙을 부활 사건 이해의 올바른 맥락으로 제시하는가? 그것은 다름 아니라 부활 사건이 이 세계에 속하지 아니하는 새로운 사건이며, 지금 세계의 연장이 아닌 종말론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만일 부활 사건이 이 세계의 모든 범주에 의하여 증명될 수 있다면, 그것은 부활 사건의 전적인 새로움에 대한 반증이 될 수밖에 없다. 즉, 이 세계 안에서 증명가능한 사건으로 머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활 사건은 이 세계의 일부분의 사건이 아니라, 다가오는 새로운 세계를 선포하는 사건이기에, 그것의 전체 의미 맥락은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의 틀에서 이해되어야만 올바로 이해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란 하나님의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시대가 이미 이 세계 속에서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예수의 부활이란 이전의 삶의 소생이거나 이전 세계의 단순한 연장(延長)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부활 신앙을 실존적 차원으로만 축소해서는 곤란하다. 불트만이 지적하고 있듯이, 부활 사건은 분명히 우리의 실존 이해에 있어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그러나 부활 사건이 우리에게 열어주는 새로운 지평은 인간의 실존적 차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부활 사건은 우리에게 새로운 실존의 포괄적 틀이 되는 새로운 세계, 새로운 시대, 새로운 나라를 선포한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골 1:13)로 옮기셨음을 말한다. 성경은 신앙의 단순한 실존주의적 주관화에 반대하는데, 그것은 성경이 분명히 새 하늘과 새 땅을 선포하고 있기 때문이며, 새 하늘과 새 땅의 역사가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이미 결정적으로 선취된(anticipated) 사실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음"(고후 5:17)을 선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새 것을 단지 실존의 영역에만 국한해서는 안된다. 죽음의 세력의 영역이 포괄적이듯이, 부활의 생명이 다스리는 영역도 포괄적이기에 개인의 차원이나 영혼의 차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도신경은 마지막 부분에서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역사의 종말에 우리의 부활이 있을 것임을 고백한다: "몸이 다시 사는 것(을) ... 믿사옵나이다."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피조물의 역사에 있어서 유래가 없는 첫 사건이었으나, 그것이 마지막 사건은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 참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이 그의 부활 장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 15:20)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모든 인간, 아니 모든 피조물의 미래가 선취되어 나타났다.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 가운데 부활한 것과 같이, 모든 성도도 육체 가운데 부활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영생의 상태가 단순한 영혼주의적 환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지적해야 한다. 영혼과 육체, 정신과 물질, 하늘과 땅 사이의 이원론은 기독교 신앙의 부활 이해에서 정면으로 거부된다. 성도의 최종적 완성은 육체를 벗고 영혼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의 부활의 삶에 참여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생각함에 있어서 "몸이 다시 사는 것"의 측면을 간과한다면, 부활에 대한 성서적 가르침은 축소되고 빈곤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사도신경의 고백을 중심으로 부활 신앙의 신학적 의미를 고찰해 보았다.

이러한 부활 이해는 오늘 여기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실천적인 의미를 제시하고 있는가? 우리는 부활 신앙의 실천적 의미를 "죄악된 세계 아래 있는 운명론에의 도전" 속에서 찾는다. 부활 사건은 이 세계가 폐쇄된 세계이며 이제 더 이상의 새로움은 없다는 운명론적인 선언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여기서 우리가 논하고 있는 차원은 부활 신앙의 변혁적인 차원이다. 이제 참 물음은 부활을 인식적으로 믿느냐, 아니냐의 지적인 차원만의 물음이 아니다. 참 물음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의 실재와 현실에 들어섬으로써 새 역사의 변혁 속에 참여하느냐, 아니면 분리되어 있어서 여전히 죄, 사망, 율법 가운데 있느냐의 실존과 역사 변혁의 물음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전파와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이 세계의 삶으로부터 도피하도록 만들지 않는다. 우리가 도피하는 실재가 있다면 그것은 이 세계의 실재가 아니라 죽음의 실재일 뿐이다. 또한 우리는 죽음의 실재에 대해서 도피하는 소극적 자세만을 취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부활 사건에 기초한 부활 신앙 가운데 죽음의 실재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며, 저항하는 가운데 마지막에 궁극적으로 성취될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에 선취적으로 참여한다. 우리는 죽음과 죽음의 세력이 마지막이라고 외치는 모든 죽음의 운명론에 대항하여 부활 사건을 증거하며,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 예기적으로 참여한다.

우리는 서론에서 기독교 신앙이 죽음의 현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며, 죽음의 실재를 진지하게 대면함을 지적하였다. 이제 우리는 여기 결론에서 기독교 신앙이 죽음의 현실을 극복하는 부활의 현실과 실재를 더욱 진지하게 다룬다는 것과, 그리하여 죽음을 모든 삶의 궁극적인 실재로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두 장면의 회상(回想)과 함께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지금부터 50년 전, 4월 9일 (부활절 즈음하여) 독일의 플로센부르그의 한 감옥에서 본회퍼라는 젊은 목사가 교수형을 당해 세상을 떠났다. 그는 당시 독일을 장악하고 있던 제3제국의 전제적 통치에 대항하여 히틀러 암살을 기도하다가 투옥되었고, 이제 마지막으로 교수형을 앞두고 있었다. 그와 마지막 주간을 보낸 영국인 장교 페인 베스트는 본회퍼 목사의 마지막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본회퍼 목사는 짤막한 예배를 인도하였고, 우리 모두의 마음에 와 닿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씀을 전했다. ... 그가 마지막 기도를 마치자마자 문이 열렸고, 사복을 입은 인상이 나쁜 두 사람이 들어와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죄수 본회퍼! 우리와 가도록 준비하라." 이 말은 거기에 있던 모든 죄수들에게는 오직 한 가지만을 의미했는데 그것은 교수형을 뜻했다. 우리는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때 그는 나를 끌어 다니며 말했다: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는 삶의 시작입니다."

자신의 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부활 신앙을 몸소 실천한 본회퍼는 자신의 미완성 작품인 "윤리학"에서 죽음의 우상화를 경계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기적은 현재 우리 가운데 횡행하고 있는 죽음의 우상화를 뿌리째 뒤흔든다. 죽음이 최후의 것이라면, 지상의 삶은 모든 것이든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다."

지금부터 약 1900년 전 고대 근동의 한 동네에서 한 사람이 로마 제국의 세력과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의 모함에 의하여 희생되었다. 그를 따르던 그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그를 팔았으며, 나머지 제자들은 그의 체포와 죽음의 사건 가운데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그 장면을 보고 그날 밤 잠자리에 들었던 사람들은 모두 생각하였다: '그것이 그들이 지녔던 실낱같은 희망의 마지막이라고'. 그때에는 어느 누구도 그것이 새로운 시작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장사한지 사흘만에"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시고, 새 역사를 향한 새로운 행진은 시작되었고, 오늘도 그 완성을 향하여 진행되고 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 "우리는 발 아래 짓밟히고 살해당한 모든 것의 부활을 믿는다. ...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의 열린 무덤의 틈새를 통하여, 부활과 생명의 끝없는 흐름이 세계 속으로 들어온다. 바로 그것이 부활절이며, 바로 그것이 부활 신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