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쎄네파



바리새인(Pharisees)과 사두개인(Sadducees)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바리새파


“바리새(Pharise)”라는 말은 “분리된 자”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페루쉼(Pherushim)”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리스(헬라)와 로마 문화가 융합된 이방문화의 영향을 받았던 헬라시대에 이스라엘 고유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이스라엘의 고유 야훼 신앙이 점차적으로 약하여 지는 것을 우려하여 모세오경(토라 또는 율법)의 가르침을 문자적으로 준수하는데 철저함을 보였던 유대교의 종파가 바리새파입니다.


BC 135년경, 마카비 전쟁 이후로 유대교에서 가장 강력한 종교적인 당파로 발전하였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토라)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운동의 결과로서 제사장 계층보다는 유대인 일반인들, 성전보다는 회당 중심으로 하여 시작된 움직임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에세네파, 사두개파와 함께 유대교의 3대 분파의 하나로서 예수님 시대에는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는 사람들이었으며, 산헤드린 공의회의 회원들이 많았고 경건한 지도자와 존경받는 사람들이 바리새파 사람들 중에는 많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물려받은 율법 및 선조들의 전통을 존중하고 일상생활의 사소한 데에 이르기까지 이 율법을 정확하게 지키려는 열정을 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이 되기 위해서는 3명 이상의 바리새파 회원 앞에서 십일조 및 결례 규정과 같은 바리새파의 규범을 엄격하게 잘 지킬 것을 맹세하고 1년 동안의 시험 기간과 같은 예비 기간을 거친 뒤에 바리새의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는데 그들의 직계 가족까지

회원으로 취급되었습니다.


바리새파의 규범이란, 바리새파 회원이 아닌 사람과는 식사를 함께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바리새파 회원이 아닌 제사장에게 십일조를 내지 않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일주일에 두 번씩(월요일과 목요일) 금식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죽은 이후의 삶, 부활, 그리고 천사들 및 영들의 존재를 믿었습니다. 이들은 모세의 율법에 적힌 것뿐만 아니라 입으로 전해 내려온 정확하고도 엄격한 적용 규칙들, 곧 “장로(=이전의 율법 스승)들의 유전”도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들은 의식상 부정을 가져올 만한 것은 무엇이든지 엄격하게 피했습니다. 제사의 정결 문제나 음식 먹는 법, 안식일 계명 등에 대해 특별한 주의를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의 바벨론 포로 시대에 활약하였던 다니엘은 이러한 하시딤(경건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항상 적은 집단을 이루고 있었으며, 헤롯왕 시대에는 6,000명 정도에 불과하였던 적은 무리들이었습니다. 바리새파는 율법을 강조하던 사람들이었는데 그들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헬라 시대에 헬레니즘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담당하였던 유대교 종파였습니다.


그들이 반드시 지켰던 율법은 613개 조항으로 되어 있는데, 248개는 긍정적이며 365개는 부정적인 것이었습니다. 이것에 첨가되어 많은 보조적인 율법적인 명령들이 추가되었는데, 이러한 원칙은 아무도 깨뜨릴 수 없었던 조항이었습니다. (안식일에 관련된 조항만 해도 39개나 되었다).

또한 이들은 기록된 토라, 즉 모세 오경과 마찬가지로 구전 토라, 즉 미쉬나(2세기경 랍비 유다 하나시가 편집함)도 똑같은 권위를 부여했습니다. 바리새파 안에는 율법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샴마이 학파”와 좀 더 부드럽게 해석하는 “힐렐 학파”가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11:46)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율법학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는 견디기 힘든 짐을 사람들에게 지우고 있다. 그러면서 너희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도 그 짐에 대려고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말씀하셨던 바리새파 율법학자는 “샴마이 파”로 보이는 바리새파 사람들로 보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뒤에 국민 생활의 재건을 위해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은, 힐렐 학파의 요하난 벤 자카이였습니다. 이들은 예루살렘 성과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서도 하나님께 제사와 같은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성전이 파괴된 이후에 이들에게 예배란 피의 제사(성전의 제사장이 드렸던 예배)가 아니라 기도와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성전 이외의 예배장소로서 성전과 분리된 회당(Synagogue)을 많이 발달시켰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유대교의 중심이 된 회당을 바리새파 유대인들이 중요하게 여김으로 발달시켰으며 유대인의 종교적 삶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정통 유대교의 발전에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이 있었던 운동이었던 바리새파의 활동 시기는 AD 2세기에서 AD 3 세기까지 이어졌고 바리새파는 변화하는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유대인의 성서해석에 융통성을 부여함으로써 유대교를 보존하고 전수해 왔던 것입니다. 그들이 회당 교육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일은 유대인들이 디아스포라로 세계로 흩어진 이후에도 유대인들의 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습니다.

AD 70년 유대사람들의 로마에 저항하는 폭동이 있었을 때 로마에서는 티투스 장군을 선두로 하여 군대를 파견하여 진압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예루살렘의 성전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하던 유대교는 성전이 없는 유대교로 변화되었고, 정치적 지배 세력을 지지하며 주로 권력층에 속하였던 제사장 그룹이었던 사두개파는 성전이 무너지면서 자연적으로 약화되었으며, 무력항쟁을 지지하던 젤롯파는 이스라엘이 패망하게 되면서 더 이상 존속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유대교의 종파 중에서 마지막으로 남게 된 바리새파는 이후에 유대교의 주류가 되었고, 성전 없이 회당을 중심으로 하는 유대교를 형성하여 유대교의 중요한 종파로 남게 되었습니다.

바리새파는 초기 기독교도와 첨예하게 대립하였습니다. 바리새파는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회당과 유대사회에서 축출하고, 추방하였으며, 기독교 전파와 형성을 유대교의 위험요소로 인지하여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제지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신약성서 마태복음서에 나오는 바리새파의 대부분은 반기독교, 반그리스도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묘사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적대적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생(Born Again)에 대하여 예수님께 질문하였던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체포하려하였던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을 변호하였으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님을 장사지내기 위하여 자신의 새 무덤을 내어 주었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도 바리새인으로 알려졌고,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도 처음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에 대하여 적대적인 행동을 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부활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사두개파


BC 2세기경부터 AD 66-70년 전쟁 때까지 계속해서 존재했던 유대주의의 한 종파가 사두개파입니다. 그 사두개(Sadducees)라는 이름은 다윗시대의 대제사장이었던 “사독(삼하8:17, 왕상2:35)”으로부터 유래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제사장을 편애하였으며, 율법해석에 있어서도 제사장의 역할을 가장 존중하였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대제사장들과 그에게 충성하였던 친인척들, 예루살렘의 부유한 귀족들은 대부분 사두개파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소수의 부유한 유대 귀족 가문들과 연합하여 성전을 관할하였는데, 이를 위해 성전에 “수호장”(성전 맡은 자, 행 4:1)을 두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로마의 속국이었던 예수님 시대에 유대의 자치 사법기구였던 산헤드린의 회원들은 대부분 사두개인들이었으며,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헤롯 왕궁이나 로마에서 파견된 집정관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비록 사두개인들이 로마 권력의 비호 아래 정치적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일반 백성들 사이에선 그다지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을 지배한 것은 엄격한 금욕적 율법주의를 따르던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의 절기에 성전예법이나 정결법 등과 같은 율법해석에 있어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의견이 다를 때, 사두개인은 바리새인의 관점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두개인은 율법, 즉 기록된 성경(모세5경) 만을 인정하였지만, 이를 해석한 서기관들의 전승 기록과 장로들의 유전 율법들은 거부하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사두개인은 변화와 혁신을 거부하는 당시 유대의 보수적 기득권층을 대변하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두개인은 육신의 부활과 사후심판, 천사의 존재를 믿지 않았으며, 따라서 “그리스도(메시아)의 오심” 등에 대해선 거의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철저한 정치적, 물질적 실리주의자들로 이들의 관심은 오직 현재 그들이 당면하고 있던 현실뿐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악과 분리시키기 위하여 그들은 주장하기를 “모든 것은 우리 자신의 힘 안에 있으므로, 우리 자신은 우리 자신의 복지에 대해 책임이 있으며, 반면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분별없음으로 인해서 불운을 겪는다.”고 하였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레위지파 출신의 제사장들을 포함한 부유하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로서 고대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주장하였고, 초자연적인 것을 부인하는 종교 합리주의자들이었으며, 세속주의적이고 현세주의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운명”)을 인간 역사에서 배제하고, 인간의 존재와 복을 이 세상에서의 삶으로만 제한시켰으며, 자신들의 권력과 위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어떠한 짓이라도 서슴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신약 성서에 예수님과 사두개파 사람들이 만났던 사건을 마태복음 22장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 못박히기 전 마지막 주간을 예루살렘에서 보낼 때 예루살렘 성전의 뜰에서 그들은 서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22:24~28) “선생님, 모세는 ‘남자가 아들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서 형을 대신하여 아들을 낳아 주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첫째가 결혼했지만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어, 아내를 자기 동생에게 남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둘째도, 셋째도, 그리고 일곱째까지 첫째와 똑같이 되었습니다. 결국엔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일곱 형제 모두가 이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부활 때에 이 여자는 이 일곱 형제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사두개인들은 부활에 관한 어려운 문제를 예수에게 제시하였습니다. 이들은 부활을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일찍 죽은 일곱형제의 예를 들면서 예수를 곤경에 빠뜨리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칠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장가들은 후에 후사가 없이 죽었으므로 그 동생들이 후사를 잇게 하여야 하는데 그의 형처럼 후사가 없이 죽게 되어 모세의 법에 따라 계속하여 그 형의 아내를 아내로 맞이 하였는데, 부활 때에 그녀가 누구의 아내가 되어야하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지극히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2:30) “부활할 때에는 누구도 장가가거나, 시집 가지 않으며, 오직 사람들이 하늘에 있는 천사처럼 될 것이다.”

(누가복음 20:34~3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은 장가가고 시집간다. 그러나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여 하늘 나라에서 살 자격이 인정된 사람들은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는다. 그들은 천사들과 같아서 다시 죽을 수도 없다. 그들은 부활의 아들들이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바리새인 중의 어떤 율법학자가 예수님의 대답에 감명을 받아서 칭찬을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눅 20:39) “율법학자 몇 사람이 대답하였습니다. “선생님, 옳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은 신약에서 자주 함께 언급되고 있는데(마 3:7 ; 16:1-12), 많은 관점의 차이와 반목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항상 연합한 것은 아니었지만 예수님과 초대교회를 박해하는 일에 대하여서 함께 힘을 합하였습니다.


바리새인은 “부활”에 대한 믿음에 있어서는 예수님과 그리스도인들과 의견을 함께 하였습니다. 이러한 증거로 성경에 그리스도인이 된 바리새인에 대한 기록은 있지만(행 15:5 ; 빌 3:5) 그리스도인이 된 사두개인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유대의 한 종파였던 사두개파는 AD 66-70년 사이에 성전이 무너지면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의 비교



















“율법”에 있어서 바리새파는 기록된 율법인 모세5경과 더불어 구전되어온 율법도 인정되었지만 사두개파는 오직 기록되어진 율법인 모세5경만 인정되었습니다.


자유의지와 예정”에 있어서 바리새파들은 하나님이 정하여 놓으신 예정에 따라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고 믿었으며, 따라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밖에는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두개파는 운명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는 없다고 하는 예정은 없다고 믿었으므로 모든 행동의 책임은 인간에게 있기 때문에 선한 일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사람이 죽은 다음의 생에 대하여” 바리새파는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삶에 따라서 영혼은 상과 벌을 내세에서 받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내세에 받게 되는 벌은 영원한 지옥이며 영원한 상은 부활과 영생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사두개파는 영혼불멸설을 부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예배하는 이유는 그분이 창조주이시기 때문이지 부활과 영생이라는 다른 목적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천사”에 대하여 바리새파는 그의 존재를 인정하였지만 사두개파는 천사의 존재를 부인하였습니다.

성서의 레위기에 기록되어 있는 “정결법”에 대하여 바리새파는 모든 유대백성들이 지켜야 하는 법이라고 하였지만 사두개파는 제사장들과 성전을 출입하는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법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회당을 그들의 근거지로 하였으며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는 율법을 준수함으로만 유지된다고 믿었던 반면, 사두개파 사람들은 유대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성전이라고 믿었습니다.


메시야(Messiah)관”에 관하여서는 바리새파 사람들은 메시아의 도래설(到來說)을 믿었지만 사두개파 사람들은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는 것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하시딤(거룩한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헤브라이즘이 종교의 순수성을 보장한다고 생각하는 종교적인 이상주의적이었지만 사두개파 사람들은 성전제의(성전에서 제사 드리는 일)만 보장된다면 어떠한 정치 체제와도 손잡을 수 있다고 하는 실용주의적인 정치적 성향을 가졌던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회당과 제휴한 유대인의 중류계급인데 비하여 사두개인들은 제사장적 귀족계급이었으며 성전과 제휴하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그들은 권력과 돈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던 지도계급이었습니다.

1세기의 역사가 조세프스는 바리새인들은 서로 사랑하였고 공동체와 조화로운 관계를 창출해 냈으나 사두개인들은 그들의 행동에서 야비했으며 그들의 동료와의 대화에서 외국인(이방인)에게 하듯이 무례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War 2.166)


에세네파와 셀롯(열심)당


“에세네”라는 명칭은 “경건한”, “거룩한”을 의미하는 히브리어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들이 특별히 거룩하다거나 경건하다고 여기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들 자신들을 메시야가 이스라엘에 오실 때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될 신비한 “진리의 수호자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1896년경에 카이로 회당에서 발견된 메시야의 길을 예비할 선과 악 사이의 최후의 싸움을 묘사하고 있는 “사독 문서들”이 에세네 집단에 의해서 기록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에세네파들은 이러한 유형의 정보를 적절한 시기까지 비밀로 간직할 것을 서로 약속하였습니다. 그들은 아마 자신들을 “마스킬림(지혜로운 사람)” 혹은 다니엘서에 기록된 것처럼 혼란기에 유대인들을 인도할 자들로 믿었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에세네파들은 멀리 떨어진 광야 지역에서 공동체를 이루어서 살았으며, 또 다른 에세네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에서 살기도 하였는데 그들은 육체적 및 정신적으로 그들 자신들을 정결하게 하기 위하여 정결한 의식을 행하였습니다.

그들의 문서들은 (즉, 사해사본으로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을 에세네파에 의해서 기록한 문서로 간주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신실함을 영화롭게 하신다는 소망가운데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 의해서 타락하지 않도록 대단한 주의를 기울였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사해 옆에 있는 쿰란 공동체 유적지



에세네파쿰란공동체라고 불리는 공동체생활을 하던 유대교의 한 사조였습니다. 에세네파가 쿰란공동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들이 금욕생활을 하던 정착지가 쿰란(Qumran)지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앞으로 다가오게 될 종말에 대한 기대와 신앙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와 격리되려는 경향을 보였던 종파입니다.


AD 70년에 있었던 유대항쟁의 와중에 로마 군대에 의해서 궤멸된 것으로 보이며, 이들 공동체의 유적에서 현존하는 구약성서 사본들 중 가장 오래된 사해사본이 1947년 베드윈 목동에 의해서 우연하게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이곳에서 발견된 대부분의 사본들은 마카비 시대에 기록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아직도 쿰란 공동체의 사람들이 실제로 에세네파인 사람들이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 논쟁을 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몇몇 점의 문서들이 현재까지 잘 알려진 에세네 가르침들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대교의 사두개파는 제사장 계층으로 세속적 권력에 깊이 빠져 있었고, 바리새파는 제사, 십일조, 경건 등에 관심을 가졌었으나 속사람의 변화보다는 사람의 칭찬을 구하는 종교적 외형, 체면 등을 중시하였으며, 헤롯 당파는 세속적인 권력을 잡은 헤롯 왕권을 지지하고 보존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열심당(셀롯당)은 당시 로마 지배세력에 대한 무력항쟁으로 유다의 독립을 쟁취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에세네파는 당시의 유대교적 삶으로부터 퇴각한 은둔 공동체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에세네파 사람들(Essenes)은 BC 130년부터 AD 70년경까지의 시기에 광야에서 고립된 집단생활을 하였던 사람들입니다. 스스로 구별된 자라고 자처했던 바리새인들이 율법에 대해 철저하지 못함을 비판하면서 에세네인들은 광야로 은둔생활을 하면서 사실상 세상으로부터 도피하였던 종파였습니다.

에세네파는 세속과의 철저한 단절 속에서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에세네파 가운데 여러 공동체가 있었는데 이 가운데 쿰란이라는 마을에서 집단생활을 한 쿰란공동체(Qumran community)는 다른 어떤 공동체 보다 엄격한 율법공동체였습니다.

쿰란공동체는 구약성서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자 했지만,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에서 드려지는 희생제사는 거부하였습니다. 그들은 고유한 정결의식을 거행했으며 태양력을 사용하는 절기들을 제정하였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세우실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들은 앞으로 오시게 될 “의의 교사(teacher of Righteousness)”를 기다렸습니다. 세례 요한은 에세네파 중의 한 사람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열심당 (Zealots)


열심당(Zealots)은 AD 1세기에 유대교의 영향력이 있는 당파였습니다. B.C. 63년, 로마의 폼페이 장군이 팔레스타인 지방을 침공함으로써 유대인들의 소원이었던 이스라엘의 회복의 소망을 여지없이 파괴시키고 말았습니다. 이때에 어떤 집단들이 유대인들이 로마군을 대항하여 침략군들을 격퇴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일어나게 된 열심당들은 유대인들 가운데서 민족적이고 애국적으로 로마에 대항하는 반역을 선동하였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열심당 지도자는 갈릴리 사람이었던 “유다”였습니다. (행 5:37)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내린 칙령으로 인하여 모든 유대 사람들이 호적을 하도록 하였을 때, 갈릴리 사람이었던 “유다”가 로마에 반항하여 폭동을 일으켰던 적이 있었습니다. 갈릴리 사람 “유다”와 그의 추종자들은 그들의 나라가 어떤 다른 나라의 세력에 의해서 지배당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격분하였던 것입니다.


AD 1세기의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것이 로마 제국에 대한 유대인들의 투쟁의 시작이었다고 관찰했는데, 이러한 투쟁들은 AD 70년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더불어 종식되었던 항쟁이었습니다.

벨릭스가 유대 총독으로 재임하는 동안 (AD 52-60) 열심당들은 “시카리”(Sicarii, “단검 사람들”)라고 알려진 급진적인 집단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시카리”는 축제 동안에 군중들 틈에 섞여 있다가 그들의 품속에 숨겨온 단검으로 로마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유대인의 반역자라고 간주하여 찔러 죽이는 일을 자주 저질렀습니다.


AD 70년에 있었던 폭동을 진압하러 왔던 로마군대와 싸움을 하는 동안에 (AD 66-70) 그들(시카리)은 “마사다”에 있는 옛 유대의 요새로 도피해서 그 곳을 본부로 삼아 마지막 순간까지 저항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한 지 2년 후까지도 저항하기를 끊이지 않았던 “마사다”를 로마 군대가 포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방인의 손에 잡혀 죽느니보다는 자결의 길을 택했는데, 자결한 숫자는 그들의 가족들을 포함하여 모두 960명이었다고 AD 1세기의 역사가 요세푸스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 항쟁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마사다 요새



유다는 비느하스(Phinehas), 엘리아, 마타디아스(Mattathias)에 의하여 세워진 열심의 전통을 따르면서 이스라엘 하나님 때문에 열심이라고 자신을 불렀습니다. 유다는 약속의 땅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 지배자에게 세금을 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에게 와서 가이사(시져)에게 세금을 내야합니까? 내지 말아야 합니까? 라고 질문하였을 때,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쳐라”고 대답을 하였던 기록이 있습니다. (막 12:17) 이것이 예루살렘에서 예수에게 던져진 로마의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가라는 질문의 배경이었습니다.


이들은 혁명적인 행동으로 새로운 메시아 왕국의 건설을 꿈꾸어 왔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에도 이전에 이들과 함께 있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가나안 사람 “시몬”입니다. “가나안 사람”으로 번역된 “카나아니아”라는 아람어는 “셀롯 당원(열심 당원)”이라는 말입니다.

한편 (마가복음 15:7)에는 예수님을 대신하여 풀려났던 바라바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 15:7) “바라바라고 하는 사람이, 폭동이 일어났을 때, 살인을 저지른 폭도들과 함께 감옥에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의 전례대로 예수를 놓아주기를 원했지만 백성들이 아우성을 치면서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고 요청하였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열심(Zealot) 당원이었던 바라바 대신에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막 15:15)


인간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안에서 인간의 각 구성요소와도 같은 각 종파들은 그들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역할을 사용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구속섭리를 위하여 일하도록 사용하신 것입니다. 각 당파(종파)들은 전적으로 자기들의 정치적 종교적 유익을 위하여 일했지만 결국 그것은 하나님의 구속의 사업을 이루는데 일조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을 고발한 자들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었고, 그를 사형선고 하도록 한 자들은 헤롯 당파였으며, 그리고 열심당원이었던 바라바는 예수님을 대신하여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에세네파는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경건한 자들이었습니다. 참으로 오묘한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예수님 대신에 풀려났던 죄수, 바라바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실 때, 구름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승리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환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도 환영하면서 열광하였던 사람들이 왜 갑자기 예수님으로부터 돌아서게 되었으며,  유대의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의 잘못 된 점을 찾지 못하여 풀어주려고 하였지만 제사장들과 군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소리쳤던 소요에 두려움을 느껴 예수님을 군중들에게 내어 준 바가 되었는데 그때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전통적으로 유월절과 같은 유대인들의 커다란 명절이 되면 죄수 한 명을 사면하여 주는 관례가 있었습니다.  이런 관례에 따라 아무런 죄가 없다고 판단된 예수를 풀어주기 위하여 빌라도 총독은 군중들에게 물었습니다. “나사렛 예수를 놓아줄까, 아니면 바라바를 놓아줄까?”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장악하고 있었던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그들을 선동하고 있었다고 하는 주장도 있었지만  자신이 메시아라고 주장하던 예수의 재판을 지켜보고 있었던 군중들은 예수 대신에 바라바를 놓아 주라고 소리쳤습니다.


     예루살렘의 채찍질 교회의 창문의 스테인 그라스 그림, 풀려나면서 좋아하는 죄수 바라바(Jesus Barabbas).


마태복음에서는 이 “바라바”라는 사람을 “이름이 잘 알려진 죄수”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누가복음에서는 “예루살렘에서 소요와 폭동을 일으켰던 정치범이며, 폭동 중에 살인도 저지른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서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바라바”의 이름은 “예수 바라바”였다고 합니다.  마태복음서에는 원래 “바라바”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었는데, 예수라는 이름이 바라바라는 흉악한 죄수의 이름과 함께 있다는 것을 혐오스럽게 생각하였던 성서 사본가들에 의하여 의도적으로 삭제되었다고  성서학자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학자들은 “바라바”라는 이름이 “바르 아바(아바의 아들, son of Father)”였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는데, “아바”라는 이름은 당시에 존경을 받고 있었던 사람이나 랍비의 이름으로 많이 사용되었던 이름이었기 때문에 “바르 아바”도 어떤 랍비의 아들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또 요한복음에서는 “바라바”를 소개하기를, “그는 유명한 강도”였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1세기 로마 제국이 이스라엘 땅을 다스리고 있었던 때에는 “강도”라고 불렸던 죄수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반적인 서민들의 인기와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부르는 “강도”들은 세롯(Zealot) 당의 한 멤버로서 로마와 결탁하여 부를 누리고 있었던 상류층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여 소요를 일으키고 테러를 일삼으면서 강도질을 하고 사람들을 죽이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적용시킨다면 “홍길동”과 같이 “의적”이라고 불리던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일반 서민들은 비폭력 메시아로 자처하던 “예수 그리스도”보다 정의롭지 못하고 부패한 상류사회를 정면으로 대항하며 의적과 같은 행동을 함으로써 힘이 없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속 시원하게 활동하였던  “바라바”라는 의적강도를 예수님 대신에 풀어 달라고 소리쳤다고 하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로마에 대항하여 테러를 일삼으면서 위험인물이었던 열심당원의 주요 인물이었던 “바라바”를  로마의 유대 총독이었던 빌라도가 군중들이 원한다고해서 그렇게 손쉽게 내어 주었을 리가 없다고 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대신하여 살아남게 되었던 “바라바”에 대한 이야기에는 그가 나중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하는 전설도 있다고 하지만 아무런 이야기도 남아 있지 않고 마침내 잊어지고 말았습니다.


에고 에이미(내니 두려워 말라) 마태복음 14:27, 요한복음 6:35. 48,


에고 에이미 εγω ειμι
야훼 יהוה 여호와


  여호와(야훼의 히브리어)  요드-헤-와우-헤 


구약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이름을 물은 사람이 야곱, 모세, 마노아, 세 사람이다. 

야곱이 엉덩이뼈가 다치도록 밤새도록 주의 사자와 씨름(기도)하고 날이 새어 사자가 가려고 하자 “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그가 자기의 이름은 가르쳐주지 않고 야곱에게 ‘네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고, 사람과도 겨루어서 이겼다’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고 떠났는데, 그분이 예수님이셨다.
그리고 야곱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12지파가 탄생되고 하나님의 선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모세가 가시떨기 나무에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누가 보내서 왔다고 해야 합니까?
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에 히브리어로는 “에예 아쇠르 에예” 헬라어로는 “에고 에이미”라고 하셨는데, 영어로는 “I AM THAT I AM” 우리말로 번역하기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 헬라어로는 “에고 에이미”라고 번역하였다.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자기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자에게 이름을 물었을 때에 “어찌하여 묻느냐?”라고 하며 대답하셨는데, 여러 가지 번역이 다 다르다.
우리말로는 “내 이름은 기묘니라”(개역), ‘기묘자니라’(개정판)라고 했는데, 영어성경들은 “seeing it is secret?” “seeing it is Wonderful?” “It is a name of wonder” 등으로 번역했다.
그러니까 이때도 이름을 가르쳐주시지는 않고, “내 이름은 기묘하니라.”라고만 하신 것이었다.


영어 성경에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없고 거의 모두 LORD로 되어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시므로 이름이 필요하지 않는 단 한 분이시다.

‘에고 에이미’는 “나는 …이다”라는 번역으로 요한복음에 7번 나온다.


1.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6:35, 48, 51)
2.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3. 나는 양의 문이다(10:7, 9)
4. 나는 선한 목자다(10:10, 14)
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7. 내가 참 포도나무다(15:1)

예수님은 우리에게 떡, 빛, 구원의 문, 목자, 부활, 생명, 길, 진리, 포도나무시다.
즉 예수님은 내가 이 세상에서 꼭 필요한 모든 것이시다.
“나는 …이다”의 ‘…’에 사랑, 소망, 믿음 등 자기가 좋아하는 말씀을 넣고 그 분이 예수님이시라고 믿을 수도 있다.
즉 “나(예수님)는 사랑이다”라고 넣고 그렇게 내 믿음대로, 성격대로 믿을 수가 있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셨다(요 5:43).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 내가 시행하리라.”고 하셨다(요 14:14).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요 17: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요 17:26)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제자들을 보전해 주소서.”(요 17:11-12) 


구약에서는 두려운 공의의 심판의 하나님이시라면,
신약에서는 자비로우신 아버지로서, 독생자 예수님까지도 주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그 이름을 믿고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게 하셨다.
그 이름으로 귀신을 쫓으라고 하셨고 병든 자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사탄은 ‘예수!’ 그 이름을 너무 싫어한다.
그리하여 믿지 않는 자들은 그 이름을 부를 수도 없고 가질 수가 없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누구나 다 외롭고 고달프고 괴롭고 힘들다.
나이가 들면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불효했던 것을 후회하게 되고 쓸쓸한 고아가 되는데 예수님께서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다고 하시고 ‘예수’라는 이름을 주시고 그 이름으로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셨다.

이 세상 육신의 아버지는 때로 악한 아버지도 있고 능력이 없어서 자녀들을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하지만 전능하신 하늘의 아버지는 우리가 구하는 모든 것을 해 주실 수가 있으시니 얼마나 감사한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예수님께서 내가 참포도나무이니 너희는 꼭 나에게 붙어있으라고 하셨다.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지면 가지는 말라서 죽는다.
우리는 예수님께 꼭 붙어있어야 산다.


우리는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을 본 적이 없으나 너무나 잘 아는데 그것은 그분의 사상과 업적과 마음을 책에서 읽고 감동을 받고 그 이름을 알고 존경하기 때문이다.
그 분들의 이름이 없다면 그 업적과 사상을 알 수가 없고 구별할 수도 없다.


우리는 삼위일체를 믿는다.
그러면 성부와 성자는 하나다.
그런데 이름이 다르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기 위해 오신 임마누엘이시고 그분이 즉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는 예수님이시다.
그 이름으로 우리는 무엇이든지 구하면 주신다고 하셨고 그렇게 하시려고 오셨고 공의의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죗값을 다 치루시고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면서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지켜주신다.

그 이름 예수, 너무나 좋은 나의 아버지, 당신은 그 이름을 부를 수 있나요?
그 이름을 가지셨나요?
당신이 세상을 떠날 때에 누구를 부르다가 갈 것인지?

오직 한 분 예수님을 부르세요. 그 분께 당신을 맡기세요. 남편, 아내, 자녀들을 그분께 맡기고 안심하세요. 그러나 살아생전에 꼭 그분을 더 깊이 알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저 하늘나라에서 꼭 놀라운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받으소서. 아직 늦기 전에 ...


에고 에이미 εγω ειμι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에서 자주 말씀하신 "나는 ~이다" ( I am~)라는 말의 헬라어

<에고 에이미 εγω ειμι>는 히브리어 <여호와(야훼)>와 같은 뜻을 가진다. 즉,

<여호와-야훼 יהוה >라는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바꾸면 <에고 에이미 εγω ειμι>가 된다.

 יהוה

에고 에이미 εγω ειμι = 야훼 יהוה  여호와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말씀 중 "나는 생명의 떡이다." I am the bread of life. 의 "나는~이다"라는 표현이 여러번 나타납니다.  여기의 '나는~이라'는 말은 헬라어의 ἐγώ εἰμι 인데 '에고 에이미'라고 발음합니다.영어로는  I Am~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입니다.  ἐγώ εἰμι  ὁ ἄρτος τῆς ζωῆς.  "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 요한복음 6:48)
 흔히 이 말씀들을 요한복음의 7가지  '나-말씀'( I-sayings)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직접  나는 누구이다라고  말한 부분이 7번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 7가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 영어성경은 NIV성경을 인용했는데 KJV도 마찬가지입니다.) 

 
1. 나는 생명의 떡이다( 요한복음 6 : 35, 48)

Then Jesus declared, "I am the bread of life. He who comes to me will never go hungry, and he who believes in me will never be thirsty. [John6:35]

I am the bread of life.[John6:48]

 
2.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9:5)

When Jesus spoke again to the people, he said, "I am the light of the world. Whoever follows me will never walk in darkness, but will have the light of life." [John8:12]
While I am in the world, I am the light of the world." [John9:5]

 
3.  나는 양의 문이다(10:7)

Therefore Jesus said again, "I tell you the truth, I am the gate for the sheep. [John10:7]

 
4. 나는 선한 목자다(10:11)

"I am the good shepherd. The good shepherd lays down his life for the sheep. [John10:11]

 
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Jesus said to her,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He who believes in me will live, even though he dies;[John11:25]

 
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Jesus answered,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John14:6]
 

7.  나는 참포도나무다(15:1)

" I am the true vine, and my Father is the gardener.[John15:1]

 

그런데 인상적인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나는 ~이다"라는 헬라어 "에고 에이미 εγω ειμι" 를 히브리어로 바꾸면   바로 "여호와-야훼" יהוה 라는 말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3:14절에서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있음!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바로 그 말씀에 근거해 그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 여호와-야훼 יהוה 가 된 것이었습니다.

 

▶ (개역개정)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 (공동번역)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곧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분은 나다.- 라고 하시는 그분이다.' 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라."  

▶ (표준새번역)  하나님이 모세에게 대답하였다. "b) 나는 스스로 있는 나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c) 스스로 계신 분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b. 70인역에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히> 나는 나다. c. 히> 나라는 분이)

▶ (한글 KJV)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곧 나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같이 말할지니 '나이신 분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시니라.

▶ (KJV) And God said unto Moses, I AM THAT I AM: and he said, Thus shalt thou say unto the children of Israel, I AM hath sent me unto you.

▶ (NIV) God said to Moses, "I AM WHO I AM. This is what you are to say to the Israelites: 'I AM has sent me to you.'"

구약성경 출애굽기 3:14절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이름 יהוה  여호와-야훼- 아마 이 히브리 자음 4글자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두렵게 한 글자는 없었을 것입니다.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읽으면서 히브리어 스펠링으로 말하자면 "요드-헤-와우-헤(하나님의 성호 네 글자), 영어식으로 하자면 YHWH라는 자음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 네 음절을 <테트라그라마톤(Tetragrammaton)>이라고 부릅니다. 발음이 불분명합니다. 감히 발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야훼라고 (영어/Yahweh)라고 발음했던 것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יהוה

이 야훼 יהוה 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오랜 세월의 고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있으신 분, 존재하심 그 자체, 있으심, 누구의 설명을 받으실 필요가 없으신분.. 수많은 신학적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 글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야훼'를 헬라어로 바꾸면 '에고 에이미' 가 된다는 사실과 요한복음의 예수님의 어록에 바로 이 부분이 강조되어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70인 역 성경으로 알려진 셉투아진트(Septuagint)  LXX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셉투아진트(Septuagint) LXX 성경 -> 신학을 공부하다보면 늘 나오는 이 70인 번역 성경은 원래 히브리어로 쓰여진 구약성경을 B.C. 300년 경 시대조류에 맞추어 세계인들에게 알리고자 히브리인 중에서 뛰어난 랍비들이 당시 학문의 중심지였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모여서 당시 세계언어였던 헬라어로 번역한 구약성경입니다. LXX는 70이라는 숫자의 라틴어 기호입니다. 70여명의 당시 뛰어난 히브리 석학들이 모여서 책임지고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했다고 해서 70인 번역이라 부릅니다. 히브리어를 모르던 사람들도 헬라어를 통해서 구약성경을 알게되는 즉 구약성경 반포작업으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이 과정에 편집,추가과정이 있어 훗날 구약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경-70인 번역 LXX 헬라어 성경의 출애굽기 3:14절에서 '여호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히브리어 '여호와'를  <에고 에이미εγω ειμι>로 번역하였습니다. 아래는 70인 번역성경 원문입니다.

 

[출애굽기 3:14] και ειπεν ο θεος προς μωυσην εγω ειμι ο ων και ειπεν ουτως ερεις τοις υιοις ισραηλ ο ων απεσταλκεν με προς υμας

 

다시 강조하여 싣습니다. LXX-70인번역을 한 최고의 지성 랍비들이 히브리어 '야훼'를 "에고 에이미"로 번역했습니다!

[출애굽기 3:14] και ειπεν ο θεος προς μωυσην εγω ειμι ο ων και ειπεν ουτως ερεις τοις υιοις ισραηλ ο ων απεσταλκεν με προς υμας


 ▶ LXX성경을 헬라어 원어로 읽기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 사이트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 셉츄어진트 http://bibledatabase.net/html/septuagint/

εγω ειμι =  יהוה

구약의 '여호와-야훼'를 헬라어로 바꾸면 '에고 에이미'가 된다는 사실과 요한복음에 기록한 예수님의 말씀에 계속 이   <에고 에이미>가 등장하는 것은 무척 의미심장합니다.

물론 언어 서술적 측면에서 '에고 에이미' εγω ειμι는 영어로는 'I am'이라는 뜻으로서 언제나 그리고 유일하게 '야훼' 하나님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쓰인 것만은 아니고 일반적인 서술법에도 많이 쓰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에고 에이미'라는 단어가 구약성경의 '야훼'가 같은 단어라는 이유 하나로 예수님의 신격(神格) 선언을 뒷받침한다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일상용어는 아람어를 쓰셨던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리이스어(헬라어)로 '에고 에이미'라고 말씀하지는 않으셨을 것이고 이 용어는 요한복음 저자의 헬라어 번역일 것입니다. 그러면 요한복음은 그냥 우연의 일치로서 일반적 서술 중에 '에고 에이미'를 자주 인용한 것일까요?

그런데 요한복음 전체를 읽어보면 요한복음은 분명히 그 의도를 담고 있었음을 감지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흔히 비판적 신학자 들이 말하는 대로 사도 바울이 신학적으로 만들어 낸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니라 그 자신이 자신의 신격(神格)을 분명히 선언하신 분임을 사도 요한은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요8:24]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John8:24] I said therefore unto you, that ye shall die in your sins: for if ye believe not that I am [he], ye shall die in your sins. * KJV성경

[John8:24] I told you that you would die in your sins; if you do not believe that I am the one I claim to be, you will indeed die in your sins." * NIV성경

윗 부분의 '내가 그인줄'이라는 말씀도 원어에는 '에고 에이미'입니다.

 

[요8:2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인자를 들어올리는 그때에야 너희는 내가 그인 줄 알게 되리라.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나 오직 내 아버지께서 내게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들을 말하노라.

[요8:5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나는 있느니라."고 하시니라.

[요18:6]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윗 부분의 붉은 밑줄 친 부분도 원문에는 모두 '에고 에이미'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εγω ειμι' 를 히브리어로 바꾸면 '야훼 הוהי 하나님이 됩니다.

즉 요한은 분명히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분명히 의도하고 선언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초대교회에서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은 가장 중요한 신앙고백의 핵심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삼위일체적 하나님이심에 대한 요한복음의 외침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랍비나 사상가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으로 존경할 이유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보자면 세상엔 대단한 혁명가와 위대한 사상가와 랍비가 너무도 많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것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그 사랑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바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땅에  육신으로 오셨다는 그 '이해할 수 없는 신비'가 우리를 구원하는 놀라운 은혜임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이 곧 이 '에고 에이미'를 생각하며 깨달은 진리였음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요일5: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시라

 

[롬9:5]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야훼(야웨, 히브리어: יהוה, 영어: Yahweh)는 하느님[1]의 이름을 일컫는[2]고대 히브리어 소리를 한국어로 옮긴 것이며, 이는 출애굽기(탈출기) 3:1-14에 근거한 유대교기독교의 하느님에 대한 호칭이 아니라 고유 이름이다.[3] 이전에는 히브리 글자에 모음 표기가 없었기 때문에 4 자음만이 남아 있다. 기원 1세기 이후에는 이 이름을 발음하는 것은 그릇된 것이라는 미신적 전통이 유대인들에게 생겨나 발음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대의 정확한 발음은 잊혀지고 말았다.[4]

'야'에 대한 모음은 거의 확실한데[출처 필요], 여기에서 딴, 성경에 나와 있는 많은 이름이 -야 또는 -야후로 끝나기 때문이다. 초기 기독교 문서에서 그리스어: Ιαβε라는 표기가 발견된다. (당시 발음법에 따르면 IPA: [jave]라고 읽게 됨.)

로마자로 표기할 때는 YHWH, YHVH, JHWH, JHVH라고 쓰고, 독일에서는 JHWH로 통일해서 쓴다.

[편집] 야훼와 테트라그라마톤

야훼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4문자 YHWH로 쓰여진 하느님의 고유 이름이며 정확한 실제 발음은 밝혀져 있지 않아 논란 거리에 있지만, 이 4글자 단어 자체는 테트라그라마톤이라고 부른다.[5] 유대 사람들은 이스라엘 하느님이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통치가 임하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그리스 로마 시대에 이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대신 "하느님"을 뜻하는 일반 명사 "엘로힘"으로 대체하였다. 같은 시기에 이 거룩한 이름은 발음할 수 없을만큼 너무 신성하게 치부되었으며 아도나이(Adonai: "나의 주님")라는 낱말이나 이를 가리킬 때 하솀("이름")으로 불렸다. 그 밖에도 거룩한 이름을 뜻하는 솀 하메포라쉬라고도 불렸다. 6세기에서 10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대 학자들은 아도나이나 엘로힘을 여호와라는 이름을 나타내는 YHWH의 발음을 모음 표기로 사용하였으며 이것이 르네상스 이후의 기독교 학자들에게 채택되었다.[6]

19세기에 히브리 학자 빌헬름 게제니우스 (1786~1842년)는 초기 그리스어 사본, 신명에 대한 그의 연구를 바탕으로 "야훼"를 가장 사실적인 발음으로 제안하였으며 사마리아 전통에 이 이름의 발음을 보고하였다.[7] 그 결과 19세기와 20세기에 성경 학자들은 야훼라는 형태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성경 학계에 일반적으로 쓰이게 되었다.[6]

 

 

70인역성서 [七十人譯聖書, Septuaginta]  

현재 전하는 가장 오래된 그리스어역(語譯) 구약성서.

본문
72명의 학자가 이 번역사업에 종사했다는 전설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는 헤브라이어(語) 원전의 ‘율법’ 부분을 가리키는데 초대 그리스도 교회에서는 여기에다 ‘예언서’ ‘제서(諸書)’의 번역까지 포함시켜서 약기호(略記號)로 LXX라 불렀다.번역된 고장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이며 이 지역의 디아스포라 ·유대인(人)들의 요구에 따라 처음에는 BC 3세기 중엽에 ‘모세 5서(율법서)’가 번역되었고, 그뒤 약 100년 사이에 현재의 정경(正經)의 거의 전부가 번역되어 나왔다. 성서 연구에는 물론, 언어학상으로도 중요한 자료인데, 신약성서의 문체와 사상을 연구하는 데 특히 귀중한 자료이다.

유래아리스테아스의 편지에 따르면 본국에서 초청 온 72명의 유대인들이 알렉산드리아에서 번역한 것으로 전해진다. 후에 70인역 성경의 권위가 사람들 사이에서 높아지는 과정에서 70인역의 번역과정이 예언자 모세가 야훼로부터 율법을 수여받는 과정에 유비되어,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에 따르면 72명이 번역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70인역이라는 말로 불리게 된다.

외경70인역 성경에는 히브리어 구약성경에 없는 헬라어로만 기록된 성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외경이나 제2 정경으로 불리는 이 헬라어 성경들은 70인역 성경에 처음부터 포함된 것은 아니다.

현재 기독교에서는성공회, 로마 가톨릭, 정교회, 루터교회에서 교회사를 통해 형성된 전통에 따라, 외경을 제2 정경이나 준 정경으로 존중하고 있으며, 성경말씀을 교회력에 맞게 배열한 성서정과에도 집회서등의 외경이 일부 나온다.

대본70인역의 대본은 마소라와 다른 제2의 히브리어 본문이라고 학자들은 추정한다. 실제로 마소라 본문과 70인역 본문은 주목할 만한 차이를 드러낸다. 이 때문에 마소라 본문 비평가들에게 70인역은 중요한 자료가 된다. 70인역이 번역된 것은 성경이 한글로 번역된 것과 같은 과정이다.

헬레니즘 시대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디아스포라 유대인) 2, 3세들은 더이상 히브리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모국어인 헬라어로 된 성경이 필요하였다. 이런 필요에 의해 히브리 성경 또는 구약 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된 것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구약성서의 문헌들이 언제부터 기록되기 시작했는지는 문헌 고고학적으로 아무리 살펴봐도 명확하지 않다.
집필 연대가 가장 오래된 모세 오경을 학계의 다수설인 4전승설의 분류법을 따라 구분하여 검토해 보아도, 헤브라이 왕국기 이전의 시대에 기록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오경을 이루는 대부분의 나머지 후기 전승 문헌(사제계, 신명계)들은 유다왕국 멸망 후 신 바빌로니아나, 페르시아 왕국의 통치하에서 '하시딤'들에 의해 작성되었을 것으로 추론되고 있다.

성문서나 예언서의 경우에는 바빌론 유수기에 이미 완성되어진 것도 있지만, 많은 작품들은 예루살렘 귀환 이후에 에스라의 뒤를 잇는 서기관 계급들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알렉산더 휘하의 장군이었던 셀레우코스가 분봉왕으로서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을 다스리게 되면서, 그 후예인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혹독한 박해 속에서 후기 구약 문서들이 최종적으로 완성되었다. 이러한 구약 문헌들은 특별한 저자가 모두 만들어 낸 산물이라기 보다는, 긴 시간에 걸쳐서 여러 저술가/필사자에 의해 내용들이 조금씩 윤색, 첨가됨으로서 비로소 현재의 성서로서 완성되어졌다.

마케도니아의 정복자, 알렉산더 대제는 코스모폴리타니즘의 신봉자였고, 국제화를 특색으로 하는 헬레니즘 문화를 그가 정복한 넓은 지역에 유행시켰다. 알렉산더의 이런 세계화 정책으로 인해 그가 정복한 지역들은 삽시간에 헬라화되었고, 유다인들도 이러한 헬라화의 거대한 물결 앞에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그들은 헬라 세계 구석구석으로 흩어졌고, 그들이 정착한 지역에서는 이른바 유다인 디아스포라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알렉산더 제국의 또다른 분봉왕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산하였던 알렉산드리아 디아스포라의 유다인들은, 혹독한 팔레스타인의 통치자인 셀레우코스 왕조 통치 아래의 본토 유다인들과는 다르게 평화와 번영을 누렸다. 그러면서 그들은 점차 헬라화 되어갔고, 모국어인 히브리어를 잊고서 점차 그리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러한 언어의 변화는, 전통적 유다교의 보존에 크나큰 위협이 되었고, 종교적 생존에 위기를 느낀 알렉산드리아의 제사장과 랍비들이 히브리어 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하여 종교적 문화를 온존하고자 하는데, 그것이 바로 70인역의 탄생이었다.

BC 3세기 경 모세 오경의 번역을 시작으로 이후 수백년에 걸쳐서 히브리어로 쓰여진 원본 성서를 두서없이 그리스어로 번역하는 와중에서, 히브리 원본 문헌의 존재 여부를 알기 어려운 그리스어 성서 문헌들이 새로이 번역된 성서의 목록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따라서 70인역은, 원래의 히브리어 성서보다 그 권수가 더 많아지게 되었고, 그것은 기나긴 외경의 경전성 논쟁의 원인이 되는 것이었다. 어쨌든, 70인역은 히브리어를 몰랐던 대다수의 이방 디아스포라 유다인들에게 자리를 잡았고, 이방 유다인들은 70인역을 그들의 일반적인 성서로서 사용하게 되었다.

예수님이 활동하시던 시기에도, 사도 시기에도, 사도 이후의 시기에도 70인역은 헬라 문화권의 디아스포라 유다인들의 성서였다. 물론, 지역에 따라서, 모세 오경을 제외하고서는 인정되는 성서 목록이 달랐던 것은 주지할만한 사실이다.

(중략 - 얌니야 회의 부분)

초기 기독교는 그리스어를 쓰는 유다인들로부터 성서를 받았으며, 초기 개종자의 대다수를 이 헬레니즘 세계에서 찾았다.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어 성서(70인역)가 그래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공식적인 성서가 되었으며, 신약 성서에 압도적 다수를 이루고 있는 히브리 성서 인용 문구들은 바로 이 70인역에서 가져온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70인역 안에 있는 외경들도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 성서의 일부가 되었다. 하지만 외경들의 정확한 정경적 지위에 대하여는 이견이 많았다. 사도적 교부들(1세기 말부터 2세기 초)에게는 이 문헌들이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유스티누스, 폴리카르포, 로마의 클레멘스, 이레네오등은 이 문헌들을 폭 넓게 성서의 말씀으로서 이용하였다. 특히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유다인들의 히브리어 성서와 70인역간 목록이 다른 점을 놓고서, 이미 그들과 열띤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70인역의 성서는 본래 '모세오경(토라)'만을 지칭하는 것이었으나, 초대 기독교의 교부들은 성서의 범위를 성문서와 예언서등의 전 영역으로 확대시켰다. 교부들은 70인역의 번역 과정에 대하여 아리스테아스나, 요세푸스가 미화시킨 기록들을 더욱 더 미화시켜, 70인이 각자 번역한 성서의 결과물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았다고 과장하기에 이르렀으며, 70인역이 히브리어 본문 성서에 못지 않은 영감성을 지니고 있다는 주장을 한 알렉산드리아의 필로와 그 견해를 일치시켰다.

70인역은 초대 교회의 기독교 교리 형성에 있어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였고, 얌니야 회의와 그 이후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유다교가 기독교를 배척하자, 초대 기독교 교회는 더욱 70인역에 집착하였다. 대다수의 초대교회의 교부들은 70인역의 권위를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하였으며, 당대의 히브리어 원문 성경과 그 내용이 다르다는 점이 드러나더라도, 복음 기자들과 사도들도 70인역 성서를 그대로 사용했다는 점을 들면서 하느님의 섭리로 기독교 신앙에 적합하게 성서의 내용이 변형된 것이라고 우기면서까지 70인역의 권위를 옹호하였다. 


구약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은 유대인들입니다.

70인역은 유대인들이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기록한 책인 구약 39권에 유대인들이 외경으로 분류한 7권을 모두 다 번역한 책입니다.

1. 외경이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중간기에 형성된 제2경전을 천주교에서 제2경전(第二經典. deuterocanonical)] 이라고 부르고 기독교에서는 이를 외경이라고 합니다.
제2경전에 들어가는 책은 역사적으로 변천되어왔으며 1977년에 한국에서 나온 신•구교가 번역한 '공동 번역성서'(1977)에서, [토비트]•[유딧]•[에스델](제1경전 [에스델]의 추가부분)•[지혜서]•[집회서]• [바룩]•[다니엘](제1경전 [다니엘]의 추가부분)•[마카베오 상]•[마카베오 하] 등 9권의 외경이 있습니다.

2. 외경과 정경의 결정 외경이 성립된 유대교에서도 외경의 권위는 처음부터 의심 받아 왔으며 정경과 동일한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누가 외경을 구분하였느냐고 한다면 이는 유대인들이며 그 시기는 불확실합니다.

성립시기가 정경보다 늦은 외경은 원래 최초 성립 시기부터 정경과는 다른 대접을 받아 온 것입니다.
90년 얌니아(Jamnia) 회의에서 히브리어 성서의 범위가 확정되었고 외경은 이 때 공식적으로 정경의 범위에서 제외되었고 그동안 경전성 논란을 불러일으킨 [에제키엘]• [잠언]• [아가]• [전도서]• [에스델] 등이 이때 함께 경전이 되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초기부터 외경을 성경으로 받아들였으나 그 권위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을 가지고 있다가1546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외경을 '제2경전'으로 결정하게 됩니다.

이 때부터 제2경전은 천주교에서 정경으로 인정 받게 됩니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루터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신학자가 외경을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와 구별하여 별도의 부록으로 엮어 넣고 "외경은 경전과 동등하지 않지만 읽어서 유익한 책"이라고 언급했습니다만 천주교가 공식적으로 외경을 경전으로 인정하자 "외경은 영감으로 씌어진 책이 아니다”라고 공식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현재까지도 개신교 가운데서 어느 한 교회도 외경을 경전으로 인정하는 교회는 없습니다.
 
구약성경의 권수에 대하여 말하자면 먼저 얌니아회의를 아셔야합니다.
얌니아종교회의에 대해 설명하자면  A.D.70년 로마의 장군 티투스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된 후에,  즉 유다가 완전히 멸망한 후에 뿔뿔이 흩어진 유다의 율법학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비교적 가까운 지중해연안의 도시인 얌니아로 주로 이주를 합니다.
그리고 얌니아의 율법학자들은 로마 당국에 얌니아에 율법학교를 세우고 자기네의 종교생활을 보장해  줄 것을 특별히 탄원을 하여 허락을 받습니다. 결국 유다가 로마에 의해 완전히 멸망을 한 후 얌니아는 많은 숫자의 유다교 율법학자들과 율법학교가 있는 도시가 됩니다.

여기서 A.D 90년경(혹은 100년경)에 유다교 종교회의가 개최가 됩니다.
이 회의에서 율법학자들은 유대교 성서(그리스도교의 구약성서)의 경전목록을 확정합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새로운 확정은 아니고 기원전 400년경, (일설에 의하면 에스라에 의해) 일차적으로 확정된 목록을 그대로 재확인한 셈입니다.
이때 이 회의가 경전목록에 해당하는 책들을 확정할 때 적용한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

가. 히브리어로 저술된 책
나. 모세오경의 정신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책
다. 저술장소가 팔레스티나 내부인 책
라. 기원전 400년, 에스라 시대이전에 저술된 책

이렇게 하여 얌니아 회의 이전까지 유다교에서 주로 성서로 사용하고 있었던 70인역 성서(기원전 3세기에 그리스어로 번역된 구약성서)에 포함되어 있었던 일부 책들을 유대교 경전목록에서는 제외시킵니다.
이 제외된 책들이 소위 말하는 가톨릭의 제2경전입니다.
가톨릭은 70인역 성경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지만, 개신교에서는 유다교의 이 결정사항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사용하고 있습니다.즉 얌니아회의에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구약경전에서 차이가 확정되고난 후 중세에 개신교가 가톨릭으로 부터 갈려 나올때 개신교에서는 이 얌니아회의의 결정을 받아들여 개신교 구약성경을 정하게 된 것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출애굽기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요한복음에는 일곱 개의 '에고에이미' 선언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고에이미'란 '나는 ......이다'라는 뜻의 헬라어입니다. 최초의 '에고에이미' 선언은 출애굽기에 나옵니다. 떨기나무 가운데에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해야 하냐고 모세가 묻자 하나님께서 대답해 주신 말씀입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I AM WHO I AM" (출 3:14)


'나는 곧... 나'라는 것입니다. '나는 나다'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하나님,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그냥 하나님이십니다. 


'에고에이미'는 바로 그 선언입니다. 하나님이심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특별히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심을 강조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스스로를 하나님이라 선언하시는 말씀이 바로 '에고에이미'인 것입니다.


일곱 개의 '에고에이미' 선언이 있습니다.


  1. "나는 생명의 떡이다" (6:35, 48)
  2. "나는 세상의 빛이다" (8:12; 9:5)
  3. "나는 양의 문이다" (10:7,9)
  4. "나는 선한 목자이다" (10:11, 14)
  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11:25)
  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14:6)
  7. "나는 참 포도나무이다" (15:1, 5)


일곱 개의 '에고에이미'와 함께 요한복음에는 또한 일곱 개의 '표적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많은 이적들 가운데 특별히 일곱 개만  선별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곱 개의 표적들은 일곱 개의 '에고에이미' 선언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 표적들을 '에고에이미'의 예증이요 예화라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곱 개의 '에고에이미' 선언을 일곱 개의 표적들과 연결하여 보면 그 의미를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일곱 개의 표적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표적 (2:1-12)
  2.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신 표적 (4:46-54)
  3.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표적 (5:1-9)
  4. 오천 명을 먹이신 표적 (6:1-15)
  5. 물 위를 걸으신 표적 (6:16-21)
  6.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을 고치신 표적 (9:1-7)
  7. 나사로를 살리신 표적 (11:1-44)

일곱 개의 '에고에이미'는 하나님이심을 선언하는 말씀이요,
일곱 개의 표적은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는 사건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는 것이요, 그로 인해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고에이미' 선언들을 통해, 행하신 표적들을 통해, 우리가 보고 깨달아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더 확실하게 믿어야 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서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확신을 갖게 하기 위해서 '에고에이미' 선언과 표적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공관 복음서와 다르게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집중한다.

7가지의 기적이나 다른 복음서에 비해 과하게 많은 설교 등은 이것을 반영한다.
또한 신학적 표현 중의 하나님 ‘나는 나다’(에고 에이미)가 빈번하게 사용된다.
정확하게 ‘나는~이다’ 형태를 띤 구절은 7번 사용된다.

1. 나는 생명의 떡이다(6:35)

Ἐγώ εἰμι ὁ ἄρτος τῆς ζωῆς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이 표현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직후에 하신 말씀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고대 이스라엘의 광야시절에 비유될 수 있다.
광야에 식탁을 베풀 수 있을까?
의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로 응답하신다. 요한복음은 주리지 아니할 것이라는 말씀 뒤에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는 반석의 생수 사건을 연상시키는 은유적 표현을 덧붙이신다. 그렇다면 이 표현은 정확하게 사십 년 광야 생활에서 이스라엘의 필요를 채우신 하나님을 상징하는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광야의 떡과 예수님 자신의 ‘떡’과 비교되고 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시며, 먹는 자는 영적으로 주리지 않을 것이다. 즉 영생을 얻을 것이다.

2.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Ἐγώ εἰμι τὸ φῶς τοῦ κόσμου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예수님게 데려온 후에 주어진 말씀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다그치는 질문에 답하지 않으시고, 땅에 글을 쓰신다. 다시 재촉하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나이든 사람으로부터 시작 젊은이까지 모두 떠난다. 여자 외에 아무도 없자 여자에게 묻는 ‘너는 정죄한 사람이 있느냐?’ 그러신 후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신다. 그리고 이 말씀이 주어진다.

요한복음에서 빛은 생명과 진리, 하나님의 영광으로 비유된다.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으로 소개하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상의’라는 표현이다. 세상은 예수님의 사역의 장소이며, 구원할 타락한 곳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κόσμος)을 사랑하신다. 세상은 악한 자들의 소굴이며, 사단이 지배하는 곳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세상을 구원하기 원하신다. 그래서 세상(κόσμος)을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셨다.

Οὕτως γὰρ ἠγάπησεν ὁ Θεὸς τὸν κόσμον, ὥστε τὸν Υἱὸν τὸν μονογενῆ ἔδωκεν, ἵνα πᾶς ὁ πιστεύων εἰς αὐτὸν μὴ ἀπόληται ἀλλ’ ἔχῃ ζωὴν αἰώνιον.(Nestle 1904)

‘세상의’는 ‘세상에서’ 또는 ‘세상을’이란 의미를 내포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과 분리된 존재가 아닌, 세상에 있고, 세상을 위한 존재인 것을 드러내신다. 

3. 나는 문이다.(10:7, 9)

ἐγώ εἰμι ἡ θύρα τῶν προβάτων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문은 출입구다. 또한 부여된 자격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문은 아무나 들어가지 못한다. 제한된 사람, 출입이 허가된 존재들만 가능하다. 예수님은 양의 문이시다. 즉 양들이 출입하는 곳이다. 양이 아닌 다른 동물은 들어갈 수 없다. 모든 양도 아니다. 오직 예수님의 양이다. 그것은 주인의 목소리로 구분될 것이다. 예수님의 음성을 아는 자는 그 문으로 들어갈 것이나, 알지 못하는 자는 결코 들어갈 수 없다. 다음 구절들은 양의 문으로 들어간 결과에 대한 것이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9-10)

예수님은 문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 가를 설명하신다. 먼저는 ‘구원’을 얻는다. 문은 구원의 문이다. 둘째는 ‘꼴’ 즉 양식을 얻는다. 먹을 것이 풍부하다. 이 부분은 문인 동시에 생명의 떡으로 비유하신 것이다. 세 번째는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는다.

4. 나는 선한 목자라.(10:11)

 Ἐγώ  εἰμι ὁ ποιμὴν ὁ καλὸς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Ἐγώ  εἰμι ὁ ποιμὴν ὁ καλὸς

직역하면, '나는 이다. 그 목자 그 선한' 

목자는 양들을 돌보는 사람이다. 요한은 예수님을 목자로 소개함으로 예수님이 누구신가는 그러낸다. 선한 목자는 삯꾼 목자와 다르고, 강도와 반대된다. 당대 종교지도자들은 겉으로는 목자였지만 강도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제사를 빌미로 백성들의 재물을 탐했고, 과부들의 재산을 몰수했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오히려 양들을 위해 존재한다. 목숨을 바치고, 꼴을 준다.

여기서 선한(καλὸς)이란 단어는 ‘선하다’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아름답다’는 뜻이기도 하다. 리유(Rieu)는 ‘나는 아름다운 목자다’라고 번역하도록 권유한다. 요한이 말하는 ‘선한’이란 말의 정체는 무엇일까? 성경의 용례들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로마서 7:16에서는 ‘율법이 선하다’는 의미다.
디모데전서 1:8에서는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맥락에서 ‘율법은 선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디모데전서 4:6에서는 약간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
‘좋은’이란 단어로 번역했다.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좋은 교훈’을 자신이 가르치는 복음, 즉 하나님의 말씀을 전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과 연관된다.

마태복음 13:24로 넘어가면 씨뿌리는 농부의 비유에서 ‘좋은 씨’를 뿌리는 농부가 나온다.
그가 뿌리는 씨앗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마태복음 18:8에서 ‘더 낫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로마서 7:16 νόμῳ ὅτι καλός

딤전 1:8 δὲ ὅτι καλὸς ὁ νόμος

딤전 4:6 τοῖς ἀδελφοῖς καλὸς ἔσῃ διάκονος

영어 성경은 칼로스(καλός)를 다양하게 번역하고 있다.(beautiful, as an outward sign of the inward good, noble, honorable character; good, worthy, honorable, noble, and seen to be so.) 이러한 의미를 볼 때 ‘좋은’이란 뜻은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완전한 상태이거나, 흠이 없고, 일반적인 어떤 상태보다 월등한 것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은 택하신 백성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은 양자삼으신다. 양들은 아무런 힘이 없고, 방어할 수도 없다. 그들은 느리고, 둔하다. 목자가 없으면 살 수 없는 동물들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과의 관계는 이처럼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과 포용으로 가능한다.

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Ἐγώ εἰμι ἡ ἀνάστασις καὶ ἡ ζωή·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이 선언은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 나사로의 집에 갔을 때 이루어진다. 예수님께서 이곳에 계셨다면 나의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마르다가 말한다. 마지막 날에 대한 부활의 확신은 있지만, 이 땅에서는 더 이상 소망이 없음을 말했던 것이다. 마르다의 말을 들은 예수님은 자신을 부활과 생명이라고 소개하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는 부활이다. 그리고 생명이다’라는 표현이다. 요한은 예수님의 이 선언을 굉장히 중요하게 다룬다. 부활과 생명을 하나로 보며, 예수님을 진정한 생명이라고 재선언한다.

요한복음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11:4은 생명과 빛이 연결된다. 이제 부활과 연결되고, 부활은 새로운 생명이다. 이로서 생명의 정체가 드러나며, 죽음을 이기시는 예수님의 영원한 능력이 완전하게 드러난다. 죽음까지 정복하신 예수님이시다.

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Ἐγώ εἰμι ἡ ὁδὸς καὶ ἡ ἀλήθεια καὶ ἡ ζωή·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장은 예수님의 마지막 강론이 시작되는 곳이다. 공관복음서와 다르게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강론을 길게 넣는다. 도마는 예수님의 가시는 길을 모른다고 투덜거린다. 의심이 많았던 도마는 무엇인가 확실하게 알고 싶었을 것이다. 그 때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신다.

11장에서 부활과 생명이 만났다면, 14장에서는 생명이 길과 진리와 만난다. 세 개의 정의에 모두 관사(ἡ)가 붙어 있다. ‘내가 그 길이고, 그 진리고, 그 생명이다.’라고 번역해야 한다.


예수님은 여러 개의 길 중의 하나가 아니다. 바로 ‘그 길’이다. 길은 곧 진리와 만나, 예수님의 배타성과 진리의 순수성을 강조한다. 그 진리는 다시 생명으로 나아간다. 

7. 나는 참 포도나무다(15:1.5)

Ἐγώ εἰμι ἡ ἄμπελος ἡ ἀληθινή,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곳에서는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도의 관계를 드러낸다. 먼저 하나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1절) 예수님은 농부가 기르는 포도나무다(1,5절) 성도는 무엇일까? 예수님은 ‘가지’라고 말씀하신다.(5절) 성도가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포도나무이시다.

헬라어 원문은 ‘참’에 관사가 있어, 포도나무와 구분된다. 이러한 구분은 하나의 동사를 취함으로 앞선 문장을 설명한다고 할 수 있다. ‘참’이라는 표현은 다른 거짓된 것과 구분된다. 요한은 의도적으로 거짓된 포도나무, 즉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는 다른 것과 구분하고 차별화 시킨다. 이사야와 예레미야에 나타난 포도나무는 하나님을 실망시키는 돌포도나무다. 그들은 거짓되고, 악하며, 열매를 맺지 못하거나 빈약하다. 하나님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그릇된 포도나무다.

‘안에 있다’는 표현은 중요하다. 가지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원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붙어있다. 안에 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계명에 순종하는 삶이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열매 없는 가지(성도)를 잘라 낸다는 말은 종말론적 심판을 상징한다. 이곳에서 선택된 백성이 버려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다. 요한은 붙어 있다는 의미는 겉으로 드러난 공동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한 듯하다. 즉 교회에 있으나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이 아니라면 그는 심판의 때에 제해질 것이다. 그가 진정한 제자인지는 열매가 보증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 / God's Mind & Man's Mind(마태복음 16:23)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마태복음 16:23) 
God's Mind & Man's Mind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But He turned and said to Peter, "Get behind Me, Satan! You are a stumbling block to Me; for you are not setting your mind on God's interests, but man's.

(도입 이야기)

스토코프스키(Stokovsky)는 런던 출생의 폴란드계 교향악단 지휘자로 유명하다.
그는 1905년 미국으로 건너가 교향악단을 지휘했고 1912년~1936년 까지 필라델피아 상임 지휘자로 활동했다.
그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때 있었던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그가 어느 날 베토벤의 오버츄어(overture)란 곡을 연주하게 되었다.
이 곡은 연주 도중에 무대에서가 아니라 관중석 뒤쪽에서 트럼펫 솔로 연주가 나오게 되어 있다.
일종의 깜짝 연주인 것이다.
스토코프스키는 멋진 폼으로 신나게 지휘봉을 휘두르고 있었다.
관현악단은 우렁찬 화음을 만들어냈고 이윽고 관중석 2층에서 트럼펫 연주가 시작될 순간이었다.
지휘자는 관중석 쪽으로 획 몸을 돌려 트럼펫 연주자에게 연주 시작을 지시하였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선 고요한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이게 웬일인가?
지휘자의 얼굴은 순간 불을 퍼부었다.
결국 그날의 관현악 연주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그럼 트럼펫 연주자는 어찌된 것일까?
그는 엉뚱한 봉변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전에 연락이 되지 않아서였는지 그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던 수위가 트럼펫을 들고 관객석 뒤로 올라가는 연주자의 팔을 뒤로 비틀어 꼼짝도 못하게 하면서 의기양양해 있었다.

“이 미친 녀석아 !
네가 오늘 연주를 방해하여 망치려고 작정한게지 어림도 없다.
이런데서 나팔을 불도록 내가 그대로 버려둘 줄 알았니?”
수위는 자기 나름대로 필라델피아 교향악단을 위해 큰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은 그날의 연주를 망쳐버린 장본인은 바로 그 수위였던 것이다.

수위는 수위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연주회를 위해서는 수위가 한 일은 결코 칭찬 받을만한 일이 아니다.
큰 그림으로 보면 수위가 한 일은 잘못된 일이었다.
그러나 수위라는 자리에서 보면 아주 잘 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문제는 소통이라고 하겠습니다.

(전개 이야기)

어느 날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을 지나시다가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셨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예, 선지자 중에 하나라고 하던데요.”
“그럼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예,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베드로의 대답이었다.
예수님은 이 대답을 들으시고 베드로를 칭찬하셨다.

1. 바요나 시몬아 이것을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다.
2. 네 이름을 이제부터 베드로라고 부를 것이다.
3.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
4. 하늘 문을 열고 닫는 열쇄를 주리니 땅에서 열면 하늘에서 열리고, 땅에서 닫으면 하늘에서도 닫히리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 사건 후에 곧바로 예수께서 비로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할 것을 예고하셨다.
그러자 이에 조금 전에 분에 넘치는 칭찬을 들었던 베드로가 주님께 말하기를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님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그러자 주님은 그런 베드로를 향하여 심하게 꾸짖으시며 말씀하시기를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라고 책망하셨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일은 무엇이고, 사람의 일은 무엇인가?
베드로는 순간적으로 그것을 분간하지 못했다.
주님을 감동시킨 탁월한 신앙고백으로 반석이라는 분에 넘치는 칭찬을 들었던 베드로가 순간 사단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 전락했던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은 사실 종이 한 장 차이처럼 가깝다.
일 년 52주 휴가도 반납한 채 교회에서 땀 흘려 봉사하며 일하는 성도들이나 교단을 위해 일하는 사역자들 중에 애초부터 사람의 일을 하겠다고 작정하는 사람들은 없다.
너도나도 모두가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며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러나 뼈 빠지게 열심히 일 했다고 할지라도 사람의 일에 최선을 다했다면 그 일은 결국 문제만 남기고 말게 된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할 거룩한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았다면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구별할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 10:31)

(적용을 위한 이야기)

일이란 영어 단어에서 work가 아니라 mind라고 합니다.
일을 마치 사람이 무슨 행동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안 될 것입니다.

참조 마가복음 8: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나님의 일...사람의 일

- 베드로는 하나님의 일, 즉 하나님께서 이미 계획하시고 섭리한 바대로 예수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수난받고 죽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21절), 사람의 일,곧 예수가 수난의 현장에 가면 안된다는 생각에 집착(執着)했던 것입니다.

실로 그는 철저히 인간의 이성에 근거하여 세속적 관점에서 예수의 수난 사건을 평가함으로써 결국 예수에게 크나큰 수치와 장애를 안겨 주고 말았습니다(Chrysostom).

일 -  5426. φρονέω 

1. 생각하다,  2. ~에 몹시 마음을 두다,  3.생각을 가지다
발음  / 포르네오(phrŏnĕō)
어원 / 미완료 ἐφρόνουν, 미래 φρονήσω, 제1 부정과거 ἐφρόνησα, 5424에서 유래
관련 성경 / 생각하다(롬 8:5, 빌 1:7, 골 3:2), 여기다(롬 14:6), 뜻이 같게 하다(롬 15:5), (서로에게) 마음을 기울이다(롬 12:16, 빌 2:2, 5), [명] 사상(행 28:22)
신약 성경 / 26회 사용

* 5424. φρήν, φρενός, ἡ
1. 생각,  2. 이해,  3. 고린도전서 14:20
발음  / 프랜(phrēn)
어원 / 복수 αί φρένες, φράω ‘고삐를 매다’에서 유래
관련 성경 / 지혜(고전 14:20).
신약 성경 / 2회 사용

예수를 바르게 잘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다!


요한복음 6:28-29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
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Therefore they said to Him, "What shall we do, so that we may work the works of God?"
Jesus answered and said to them, "This is the work of God, that you believe in Him whom He has sent.


예수를 바르게 잘 믿으려면?

마태복음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하라
자기 십자가를 지라

로마서 15:17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히브리서 2:17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역대상 24:5
이에 제비 뽑아 피차에 차등이 없이 나누었으니 이는 성소의 일을 다스리는 자와 하나님의 일을 다스리는 자가 엘르아살의 자손 중에도 있고 이다말의 자손 중에도 있음이라.

시편 64:9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며 그 행하심을 깊이 생각하리로다.

전도서 11:5
바람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 것을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요 6:29).

예수님은 벳새다 마을의 빈들에서 5,000명 이상의 무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신 후 배고픈 무리를 위하여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다(마 14:13-21; 막 6:30-44; 눅 9:10-17; 요 6:1-14). 특히 누가복음 9장 11절은 오병이어의 기적 이전에 무리를 향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야기하며, 병자들을 고치셨다고 기록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무리를 배불리 먹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예수님이 바로 모세가 예언한 그 선지자요,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이심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의도와 다르게 떡을 먹고 배부른 것에 만족하여 다시 그 목적으로 예수님을 찾았다. 예수님을 찾을 때 당시 유대인처럼 먹을 것이 목적이 아니라,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자신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찾는 것이 우리의 물질적인 복과 잘 먹고 잘살기 위한 목적이라면 당시 유대인이 예수님을 찾았던 목적과 차이가 없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말씀하셨다(요 6:27). 그 말씀을 듣고 무리는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요 6:28) 라고 질문을 하였다. 그때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 6:29)며,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명백히 밝혀 주셨다.

여기서 “믿는다”라는 것은 헬라어로 “피스튜에테”라는 단어로 지속적인 믿음의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즉 예수님을 믿음으로 계속해서 그분의 통치와 인도하심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오신 예수님을 환영하고 영접하며, 그분의 통치와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거나 스스로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면서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였다. 대표적으로 사울은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으로 교회를 박해하고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감옥에 보내기도 하였다(행 22:3-4; 빌3:5-6).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믿고 사람들이 제자들을 박해할 것이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요 16:2). 이처럼 예수님을 찾지만, 그것이 자신의 필요를 위한 목적 또는 잘못된 신념으로 인한 열심은 하나님의 일과는 상관이 없다.


예수동행일기 제자훈련인 “With Jesus Ministry” 운동을 하는 유기성 목사는 설교를 통해 “조심스럽지만, 꼭 드려야 할 말씀이 있다. 주님과의 관계보다 더 중요하고 바쁜 것은 다 우상”이라고 했다. 또 “사람들이 칭찬하고 부러워해도, 주님과의 관계가 메말라 있다면 무슨 만족이 있겠나”라며, “주님이 낯선 분인 것을 너무 늦게 깨닫게 된다면 이보다 두려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하나님과 관계 없는 일들은 우상이 될 수도 있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우선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주어진 일이 진정한 하나님 일이 될 수 있다. 마태복음 10:41-42에 선지자의 이름, 의인의 이름이나 제자의 이름으로 영접하거나 냉수 한 그릇을 주어도 상이 있다고 한 것은 어떤 일을 한 것보다 예수님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 믿음으로 행한 일들이 하나님께 의미 있음을 말해 준다.

헨리 블랙바기 목사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를 하나님의 일에 어떻게 동참케 하시는지 성경적인 원리를 가르쳐 준다. 그중 가장 중요한 원리가 하나님은 자녀와 친밀한 관계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알리시고 초청하신다는 내용이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은 자기 일을 도와주시기 위해 존재하시는 것처럼 생각하고 기도하는 경향이 있다. 마치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생각하여 천동설을 믿는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고 주권자 되시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알아 그분의 일에 동참해야 한다.

하나님은 실존하셔서 역사하시고 당신의 일에 사람들을 참여시킬 때에 주도권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과 길을 아는 것이 필수이다. 로렌스 형제는 『하나님의 임재 연습』에서 우리가 어떤 사람과 친밀해지려면 그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친밀해지려면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고 그분을 계속 생각하라고 한다. 하나님은 그가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이미 계획하시고 역사하시는 일을 우리의 마음에 소원을 두고 기도하게 하신다(빌 2:13).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하나님의 일이 되는 이유이다. 스바냐 3장 7절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를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말씀하시는데, 자녀가 하는 일로 인해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 기뻐하고 사랑하는 분이심을 알려 준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 3:17).

예수님께서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하신 데는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무디(D. L. Moody)는 “인간은 깨어진 그릇과 같으므로 계속 충만하게 되는 방법은 물이 쏟아지는 수돗물 아래 그 깨어진 그릇을 가져다 놓는 방법밖에 없다.”라면서, 깨어진 존재 같은 우리가 채움을 받기 위해서는 날마다 십자가 앞으로 성령님을 의지해 나가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십자가 앞에서의 회개는 관계 회복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칼빈은 회개가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로 속죄와 중생의 체험을 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경험한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회개한 자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으신다고 하였다(히 8:12; 10:17). “기억하지 않겠다”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나의 모든 죄와 또 내가 일평생 싸워야 할 죄의 본성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정죄함에 이르지 않게 하신다는 의미이다. 

회개와 믿음은 회복된 관계로 귀결된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은 나 자신의 필요를 위한 목적도 아니고, 하나님을 위한다고 스스로 쌓아 올린 업적도 아니다. 예수님 자신이 목적이 되고,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의 일은 예수님을 믿는 것(The work of God is to believe in Jesus).
요한복음 6:29


요 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Jn 6:29, NIV) Jesus answered, "The work of God is this: to believe in the one he has sent."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야”
교회학교 교사, 성가대 봉사, 전도와 선교만이 하나님의 일인 줄 알았는데 예수님은 근본적인 것을 말씀하신다.
그렇다.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역사이다.
성령이 아니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고 시인할 수 없다. (고전 12:3)
    
예수 믿는 것은 예수님을 내 안에 주인으로 모시는 것, 영접하는 것이다(요 1:12)
믿음은 지적동의나 신념이 아닌 관계이다. 예수님을 내 안에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을 주인으로 모시며 동행하는 삶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그것이 바로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이다.



오병이어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은 다음 날도 예수님을 찾습니다.
제자들과 같이 바다를 건너지도 않으신 예수님이 어디에도 없자,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와서까지 예수님을 만납니다.
참 열심입니다. 사람들은 병자를 고치시고 5000명을 기적적으로 먹이신 분이라면 개인적으로는 건강 걱정이나 생계 걱정은 하지 않고 살 수 있을 거란 기대를 가졌을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전체적으로는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아, 정치적∙민족적 해방 왕으로서 이스라엘에 풍요와 영광을 가져오는 부푼 꿈에 열렬히 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람들을 향해, 표적을 보았지만 표적이 의미하는 것을 모른다고 말씀하십니다.
썩을 양식을 구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하는 양식을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건지 묻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영생에 이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문합니다.
사실 그들은 여전히 세상의 배부름, 썩을 양식에 관심이 있었고 영생에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기대와는 달리,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인 자신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 믿는 믿음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대답하십니다.

율법 준수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생각을 가진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또 다른 지켜야 할 규례를 말씀하실지 귀를 기울였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일이란 율법을 준수하며 의로운 행위를 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의로운 행위를 통해 인정하신다는 생각을 하며 과연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건지 묻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행위로 인해 드러나는 것이 아닌, 하나님 그분 자신이 하시는 일에 초점을 맞추십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과의 계속적인 교제를 통한 ‘자람’입니다. 단순히 예수님을 영접함에 그치는 것이 아닌, 말씀의 순종과 삶의 성숙과 성화로 그리고 마침내 영생의 영광인 영화로 이어지는 성도의 신앙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이 모든 것을 고백하는 것이며, 우리의 행위로서가 아닌 하나님께서 성도를 향해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우리의 열심은 과연 어디에 기초를 두고 있는지요? 유대인들처럼 열정적으로 예수님을 찾아 다녔지만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세상의 떡을 구하며 헤매는 모습은 없는지요? 실제로 예수님을 따르던 유대인들은 이후 기적 자체만을 구하다가 많은 수는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떠납니다(요6:66).

무언가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일을 해야 하나님이 의롭다 여기시며 축복해주시는 것은 아닌가 해서, 의무감과 부담감으로 자유함을 잃어버리고 살지는 않는지요? 반대로 열심히 봉사한 만큼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고 이 땅의 물질적 풍요로움으로 갚아 주실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지는 않는지요?
































부활



예수는 죽은 후에 부활한 것인가요?

우리는 모두 죽은 후에 어떻게 될 지 궁금해합니다. 사랑하는 이가 세상을 떠나면, 우리도 세상을 떠난 후에 그를 다시 다시 만나기를 바랍니다. 죽고 나면 그렇게 멋진 재회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아니면 죽음은 모든 의식이 종말하는 것일 뿐일까요?

예수는 우리가 죽은 후에도 삶이 끝나지 않는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런 놀라운 주장을 했습니다. “내가 부활이며 삶이다. 나를 믿는 자는 다른 이들처럼 죽더라도, 다시 살게 될 것이다.” 예수와 가까이 지냈던 증인들에 따르면 당시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후 3일간 땅 속에 묻혀 있다가 죽은 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거의 2000년이란 시간동안 희망을 가진 이유가 이러한 믿음 때문입니다.

하지만 죽음 후에도 희망이 전혀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신론자 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셀은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내가 죽고 나면 몸은 썩겠지만, 내 정신은 살아남을 것입니다.”[1] 러셀은 예수의 말을 믿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의 추종자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땅에 묻힌 후에 살아있는 모습으로 자신들 앞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예수를 직접 보았을 뿐 아니라, 식사도 같이 하고, 몸에 손을 대보기도 했으며 40일을 함께 보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입니다.

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과장된 이야기일까요? 아니면 확실한 증거가 존재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기독교의 근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가 정말로 죽은 자들 사이에서 살아 온 것이라면, 자신에 대한 주장, 삶의 의미와 죽음 후의 운명에 대한 말이 모두 사실이 되는 셈입니다.

예수가 정말로 죽은 자들 사이에서 살아 온 것이라면, 예수 외에는 삶의 의미와 죽음 후에 우리를 기다리는 것에 대한 답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반면에, 예수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면 기독교의 근본은 거짓이 되는 셈입니다. 신학자 R.C. 스프라울은 이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부활에 대한 주장은 기독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스도가 신의 힘으로 죽은 자들 사이에서 일어났다면, 다른 어떤 종교 지도자들도 갖지 못한 자격을 증명한 것입니다. 부처도 죽었습니다. 마호메트도 죽었습니다. 모세도 죽었습니다. 공자도 죽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살아있습니다.[2]

여러 회의론자들은 부활이 거짓임을 증명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런 회의론자들 중 한 명인 존 맥다웰은 부활의 증거를 찾는 데에만 700시간 넘게 노력했습니다. 맥다웰은 부활의 중요성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인간의 마음에 대해 가해진 가장 사악하고 비열하며 비정한 거짓이거나, 역사상 가장 환상적인 사실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3] 후일 맥다웰은 자신이 쓴 고전 “판단이 필요한 새로운 증거(The New Evidence That Demands A Verdict)”에 자신이 발견한 내용을 적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부활은 환상적인 사실일까요? 아니면 사악한 거짓일까요? 그 답을 얻으려면 역사상의 증거를 살펴보고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예수의 부활을 조사한 회의론자들이 직접 발견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냉소주의자들과 회의론자들

안타깝게도 모든 사람들이 증거를 공정하게 평가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버트런드 러셀은 예수에 대한 자신의 관점이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다”고 인정했습니다.[4] 역사학자 조셉 캠벨은 자신의 PBS TV 프로그램에서 어떤 증거도 언급하지 않고 예수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고 조용히 말했습니다.[5] 지저스 세미나(Jesus Seminar)의 존 도미닉 크로상과 같은 다른 학자들도 캠벨과 동의합니다.[6] 이러한 회의론자 중에서 자신의 관점에 대해 증거를 제시하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진정한 회의론자는 냉소주의자들과 반대로 증거에 관심을 갖습니다. “회의론자란 무엇인가?(What is a Skeptic?)”라는 회의론 전문 잡지에서는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렸습니다. “회의론이라 함은… 이성을 모든 생각에 적용하는 것이며, 그 예외가 되는 “성스러운 소”라는 개념은 절대 허용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회의론자들은 어떤 현상이 실제이거나 어떤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에 대해 조사를 하지 않습니다. “회의론자”라는 말은 즉, 반드시 설득력있는 증거가 제시되어야만 믿는다는 뜻입니다.”[7]

러셀이나 크로상과 같은 회의론자와 달리 진정한 회의론자 중에서는 예수의 부활에 대해 조사를 실시한 경우가 적지 않으며, 이제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질문일 수 있는 이 조사의 내용과, 증거를 분석한 방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는 정말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을까요?

자기 예언

예수는 죽기 전에 제자들에게 자신이 배신당하게 되며 십자가에 못박히고 그로부터 3일 후에 살아 돌아온다고 말했습니다. 계획 치고는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요? 무슨 이유였을까요? 예수는 청중의 요구에 따라 공연을 하는 엔터테이너가 아니었으며, 그 대신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자신이 진정한 메시아였음을 증명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성서학자 윌버 스미스는 예수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힌 후 3일 만에 살아나 죽은 자들 사이에서 돌아온다는 말을 했을 당시 예수가 만약 자신이 살아날 것임을 확신하지 못한 상태에서 모든 제자들의 헌신을 더 오래 기대했다면 이는 바보나 했음직한 말을 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인류 역사상 어떤 종교 지도자도 감히 그런 말을 한 경우가 없습니다.[8]

다시 말해서, 예수는 이미 명확하게 제자들에게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이 말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대로 사기가 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이는 앞서 가는 것입니다. 예수는 (진짜 죽었다면) 살아나기 전에 어떻게 죽었을까요?

끔찍한 죽음, 그리고. . . ?

브레이브하트(Braveheart), 로드 워리어(Road Warrior) 등으로 유명한 배우 멜 깁슨이 주연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를 보았다면 예수의 마지막 생전이 어땠는지 알 수 있습니다. 눈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차라리 영화를 촬영할 때 카메라에 빨간 필터를 대고 찍는 게 나았을 정도로) 영화의 못 보신 장면이 있었다면, 신약의 아무 복음서에서 뒤쪽을 펼치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는 예언한 대로 제자 중 한 명인 가롯 유다에게 배신당했고 체포되었습니다. 로마 총독인 본디오 빌라도가 주재한 모의 재판에서 예수는 반역죄와 십자가에 못박히는 형을 선고받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에 예수는 로마식으로 끈이 9개 달린 채찍으로 처참히 맞는데 이 채찍에는 뼈와 쇳조각이 달려있어 맞는 사람의 살을 찢을 정도입니다. 몇 번이고 주먹과 발로 맞고 심지어 침까지 맞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로마의 집행관은 나무망치로 무거운 쇠못을 예수의 손목과 발에 박습니다. 마지막으로 땅에 구멍을 파고, 절도죄로 잡힌 도둑들이 매달린 십자가 사이에 예수의 십자가를 넣었습니다.

예수는 이 상태로 약 6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오후 3시, 즉 유월절에 양을 제물로 바치는 그 시간에(뭔가 너무 상징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는 아람어로 “다 이루었다”라고 외치고 숨을 마쳤습니다.[9] 그러자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땅이 흔들렸습니다.[10]

그위 권세와 생명의 기쁨에 빠져 있던 사람들은 암울한 깊은 어둠 속에서 꿈이 깨졌습니다. 전 영국 대법관인 헤일셤 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십자가의 비극은 그들이 슬픔에 잠겨 있고, 완전히 도덕적이며, 금욕적면서 어두운 인물을 십자가에 매달았다는 점이 아닙니다. 이들이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은 바로 젊고, 생명력이 넘치며 기쁨이 가득한 청년, 바로 생명 그 자체의 구주였으며, 온전한 기쁨을 찾아 사람들이 따랐던 정말로 사람을 끌어 당기는 존재였다는 것이 비극입니다.”[11]

빌라도는 십자가에 박혔던 예수의 몸을 땅에 묻기 전에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로마 병사가 예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습니다. 피와 물이 섞여 흘러나오는 모습을 통해 예수가 죽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죽은 자는 보통 피를 흘리지 않지만 인간의 심방은 멈춘 후에 피를 저장해 두며 바깥쪽에 있는 주머니는 수심낭이라 불리며 혈청이 담겨있습니다.”[12] 예수가 죽은 것으로 확인되자 그의 몸은 십자가에서 내려져 아리마데의 요샙의 무덤에 묻혔습니다.옆에 있던 로마 병사들이 무덤을 봉인했으며 24시간 감시했습니다.

그 동안 예수의 제자들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J. P. 모어랜드 박사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는 모습을 보고 제자들이 얼마나 절망하고 혼동에 빠졌는지 이렇게 설명합니다. “제자들은 예수가 신이 보낸 존재임을 더 이상 믿지 못했습니다. 또한 이들은 하나님이라면 메시아가 목숨을 잃게 두지 않을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예수 운동이 완전히 끝난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13]

모든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로마와 유대인 지도자들이 승리했거나, 적어도 그렇게 보였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의 운동이 멈춘 것이 아니었으며, 기독교도 오늘날 세계 최대의 종교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의 몸이 십자가에서 내려져 무덤에 묻힌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뉴욕 타임즈 기사에서 피터 스타인펠즈는 예수가 죽고 3일이 지난 후에 일어난 놀라운 사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처형된 후 그 추종자들은 혼란스러워하고 겁먹은 모습에서 갑작스런 변화를 겪었으며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살아있는 예수와 앞으로 나타날 왕국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했고, 결국 이들은 왕국을 변화시켰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진 것만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일이었을까요?”[14]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사실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하는 질문입니다.

예수의 부활로 알려진 사건에 대해서 타당한 설명은 다음의 다섯 가지가 있으며, 모두 신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 “부활” 자체가 음모였습니다.

• 제자들은 환영을 보았습니다.

•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허구입니다.

• 실제 사건입니다.

어떤 것이 가장 정확한 지 한 가지씩 짚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는 진짜 죽었을까요?

“말리는 완전히 죽은 것이었으며,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Christmas Carol)은 이렇게 시작하지만 디킨스는 곧 벌어질 일의 초자연적인 성격에 대해 독자가 오해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기 TV 프로그램인 CSI의 등장인물이 부활에 대해 조사한다면 증거를 짜맞추기 전에, 실제로 시체가 존재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간혹 시체인 줄 알았던 사망자가 영안실에서 몸을 움직이고 결국 살아났다는 뉴스도 보도됩니다. 그런 일이 예수에게도 일어난 것일까요?

일각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음에도 생명을 유지했으며 무덤 속의 차갑고 습한 공기 덕분에 살아난 것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론은 의학적 증거와는 맞지 않습니다. 미국 의학 협회(American Medical Association)의 회보에서는 소위 말하는 “기절 이론”이 말도 안되는 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역사 및 의학적 증거에서는 예수가 죽었음이 명백합니다. 예수의 오른쪽 갈비뼈 사이를 찌른 창은 오른쪽 폐을 뚫었을 뿐 아니라 심낭과 심장도 뚫었기 때문에 예수가 죽은 것이 확실합니다.”[15] 하지만 이 이론에 대해서도 2000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회의론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다른 의견을 들어 볼 필요는 있습니다.

예수가 살았던 시대의 비기독교 역사학자가 만든 보고서에서 그러한 의견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의 죽음을 언급한 비기독교 역사학자는 3명이 있습니다.

먼저 루시안(c.120 – c.180)은 예수에 대해 십자가에 못박힌 궤변가(철학자)라고 불렀습니다.[16]

요세푸스(c.37 – c.100)는 “이 때 현자인 예수가 나타났는데 그는 놀라운 행동을 한 사람이었다. 빌라도가 그를 십자가에 못박았을 때 우리 중에 이끄는 자들은 예수를 비난했으며, 그를 사랑한 자들은 계속해서 그를 사랑하였다”라고 적었습니다.[17]

타키투스(c. 56 – c.120)는 “그의 이름이 유래한 크리스튀스(Christus)는 우리의 총독인 본디오 빌라도의 손에 극심한 고통을 받았다”라고 기록했습니다.[18]

이는 마치 고문서 기록실에서, 1세기의 어느 화창한 봄날에 ‘예루살렘 포스트 정도의 이름을 가진 신문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사망했다고 1면 기사 처리한 걸 발견하는 느낌입니다. 상당히 잘 찾아낸 결과물이며, 마무리도 잘 된 듯 합니다.

사실 기독교인이나 로마인 또는 유대인이 남긴 역사 기록 중에서 예수의 죽음 또는 땅에 묻혔던 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경우는 없습니다.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회의론자인 학자들도 예수가 죽었다는 데에는 동의합니다. 유명한 회의론자인 제임스 테이버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수가 로마 정부의 십자가형으로 처형당했음을 고려한다면 예수의 사망에 대해 의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19] 회의론적으로 악명높은 지저스 세미나의 공동 설립자인 존 도미닉 크로상 역시 예수가 실제로 살았으며 사망했다는 데 동의합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았다는 점은 어떠한 역사학자의 말과 같이 확실합니다.”[20]

역사적 및 의학적 증거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앞서 말한 다섯가지 중 첫번째는 잊어도 무방할 듯 합니다. 예수는 분명히 죽은 것이며, “이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빈 무덤의 문제

진정한 사학자라면 예수가 십자가에서 끌어내려졌을 때 이미 죽었다는 점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학자들은 예수의 몸이 어떻게 무덤에서 사라질 수 있는지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영국의 언론인인 프랭크 모리슨 박사는 처음에는 부활이 거짓이거나 사기라고 생각하고 이를 증명하는 책을 쓰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21] 이 책은 유명해지긴 했지만 모리슨 박사의 의도와는 다른 이유였습니다.

모리슨은 먼저 빈 무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이 무덤은 산헤드린 공의회에 속한 의원인 아리마데의 요셉의 무덤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공의회 의원의 자리는 마치 록 스타와 다름없었습니다. 공의회 의원이 누구인지는 다들 알고 있습니다. 요셉 역시 실존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유대인 지도자들이 부활을 부인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거짓이라고 공격했을 것입니다. 또한 요셉의 무덤은 잘 알려진 곳에 있었을 것이며 찾기도 쉬웠을 것이므로, 예수가 “묘지에서 사라졌다”는 주장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모리슨은 “빈 무덤설”이 거짓임에도 왜 예수의 적들이 이를 허용했는지 의아했습니다. 예수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면 그 즉시 모든 이야기가 틀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상으로 예수의 적들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예수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갔다고 비난했다는 것이며, 이는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합니다.

웨스턴 미시건 대학의 고대사 교수인 폴 마이어 박사도 비슷한 말을 합니다. “모든 증거를 면밀하고 공정하게 검토했다면, 예수가 묻힌 무덤이 사실 부활절의 첫 날 아침부터 비어있었다는 결론도 정당화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어떠한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이 이야기는 허구가 됩니다.”[22]

유대인 지도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이들은 제자들이 시체를 훔쳤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무덤은 잘 훈련된 4명에서 16명 사이의 로마 병사들이 24시간 지키고 있었습니다. 조쉬 맥도웰은 이 병사들이 일반적인 군인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 경비병들이 잠들거나 근무지를 이탈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 실제로 그랬음을 나타내는 역사적 근거가 다수 있습니다. 이 병사들은 옷이 벗겨졌으며, 이 옷을 태운 불에 산 채로 화형당하거나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못박혔습니다. 이 경비병들은 훈련이 잘 되어 있었으며 어떤 원인으로든 실패를 두려워했습니다.”[23]

누구라도 이 경비병들 몰래 2톤이나 되는 묘비를 옮기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묘비는 치워졌고, 예수의 시체는 사라졌습니다.

예수의 몸이 어디서든 발견될 것이었다면 그 적들은 즉시 부활이 거짓이라고 공격했을 것입니다. 캘리포니아 법정 변호사 협회(California Trial Lawyers Association)에서 회장을 맡았던 바 있는 톰 앤더슨은 이 주장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습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사건이니만큼 단 한 명의 역사학자나 증인 또는 반대주의자라도 그리스도의 몸을 보았다고 기록하는 게 합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 부활에 대한 증언과 관련된 역사의 침묵은 너무나 조용합니다.[24]

그리하여 실제적인 증거가 없으며, 이 알려진 이의 무덤이 비어버린 상태에서, 모리슨은 예수의 시체가 어떤 방식으로든 무덤에서 사라졌다는 증거를 확실하다고 인정했습니다.


묘지 도굴?

모리슨은 계속해서 예수의 추종자들이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았을 지 동기를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부활이라는 건 시체를 도둑맞은 사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부활한 예수를 보았다는 이야기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역사학자 폴 존슨은 자신의 저서 “유대인의 역사(A History of the Jews)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의 죽음을 둘러싼 상황이 아니라, 예수가 부활했다는 이야기에 대해 갈수록 많은 이들이, 그것도 아주 강하게 믿었다는 사실입니다.”[25]

무덤은 정말로 비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체가 없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예수의 추종자들이 깜짝 놀랐을까요?(게다가 자신들이 정말로 시체를 훔쳤을 경우에도) 예수의 추종자들에게는 뭔가 놀라운 일이 일어났고, 이들은 슬퍼하거나 몸을 숨기지 않고 살아있는 예수를 보았다는 주장을 두려움없이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각 증인의 말에 따르면 예수가 갑자기 추종자들의 눈앞에 실제로 나타났으며, 여자들이 먼저 보았다고 합니다. 모리슨은 왜 공모자들이 여성을 음모의 중심으로 만들었는지 궁금했습니다. 1세기 당시 여성은 권리나 개성 등은 생각할 수도 없는 열악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리슨은 이 음모가 성공하려면 공모자들이 여성이 아닌 남성이 예수를 먼저 보았다고 묘사해야 했다고 추리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도 여성들이 예수를 먼저 만졌고, 대화를 나누었으며 빈 무덤도 먼저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이후 증인들의 말에 따르면 제자들도 모두 예수를 10번 이상, 각기 다른 상황에서 보았다고 합니다. 증인들은 예수가 손과 발을 보여주고 만져보라고 했다고 기록했습니다. 또한 식사도 함께 하고 이후 한 번은 500명이 넘는 추종자들 앞에 살아있는 모습을 나타냈다고도 합니다.

법학자인 존 워릭 몽고메리는 “서기 56년 당시 [사도 바울은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아난 예수를 보았으며 그들 중 대부분이 살아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6ff.) 초기 기독교인들이 그러한 이야기를 지어내서, 예수의 시체를 가지고 간단하게 반박할 수 있는 이들 사이에 퍼뜨렸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라고 기록했습니다.[26]

성서학자 가이슬러와 튜렉도 이에 동의합니다. “부활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왜 사도 바울은 증인으로 추정되는 명단을 제시했을까요? 그런 노골적인 거짓말로는 고린도서를 읽은 이들로부터 완전히 신뢰를 잃게 될 것입니다.”[27]

베드로는 자신과 다른 제자들이 예수가 가이사랴에 모인 군중에게 설명했습니다.

우리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행적을 보고 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생명을 앗아갔지만 하나님은 3일 후 예수님께 다시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바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함께 음식을 먹고 마신 사람들입니다. (사도행전 10:39-41)

영국 성서학자 마이클 그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가 부활했음은 고대의 어떤 사건만큼이나 사실임이 입증된 일입니다. 부활이 실제라는 점에 대해서 합리적인 의심이란 불가능합니다.”[28]


일관성

증인들의 말이 모리슨의 회의론에 대해 충분한 답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그 역시 제자들의 행동에 혼란을 느꼈습니다. 역사학자, 심리학자, 회의론자 모두를 혼란에 빠뜨린 역사적 사실은 그 전까지 11명의 겁쟁이에 불과하던 이들이 갑자기 모욕과 고문, 죽음까지 이기는 의지를 보였다는 점입니다. 예수의 제자들 중에서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순교자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단지 거짓말을 하려고 몸을 바쳐서 그런 희생을 감수했을까요?

911 테러를 감행한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은 자신이 믿기만 한다면 잘못된 믿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습니다. 하지만 거짓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위해 순교하려는 의지는 광기라 할 수 있습니다. 폴 리틀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사실이라 믿는 것을 위해, 비록 그것이 실제로는 거짓이라 할 지라도, 목숨을 바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거짓임을 알고 있는 것을 위해 목숨을 바치지는 않습니다.”[29]예수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주인이 살아있다는 진정한 믿음을 끝까지 유지하는 식으로 행동했습니다.

제자들이 거짓으로 밝혀진 사실을 위해 목숨을 바치려 한 이유를 적절하게 설명한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모두 예수의 부활에 대해 거짓말을 하기로 공모했다고 하더라도 돈이나 명예를 위해 굴복하지 않고 수십년을 지내는 게 가능했을까요? 모어랜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개인적 영달을 위해 거짓을 말하는 자는 오래 가지 못하며, 특히 고난은 이익이 줄어들 때 더욱 그렇습니다.”[30]

닉슨 대통령 재직 시 워터게이트 스캔들에 연루되었던 척 콜슨은 여러 사람이 오랫동안 거짓말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저는 부활이 사실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는 워터게이트를 통해 배운 사실입니다. 어떻게 깨달았냐고요? 12명의 사람들이 예수가 죽었다가 살아 오는 모습을 보았다고 증언했고, 이 주장을 40년 동안 단 한 번도 부인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그들 모두 그 때문에 매를 맞고 고문 당했으며 돌에 맞았고 감옥에도 갔습니다. 사실이 아니었다면 견디지 못했을 겁니다. 워터게이트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12명의 사람들이 연루된 사건이었지만, 이들은 단 3주도 거짓말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열 두 제자가 40년 동안 거짓말을 계속 할 수 있었겠습니까? 절대 불가능합니다.”[31]

이 남녀들의 모든 것을 변화시킨 어떤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모리슨은 이 점에 대해서는 인정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단순히 설명할 수 없는 사실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 사실은 바로… 이 제자들에게서 강한 확신이 왔다는 것이며, 그 확신은 예수가 무덤에서 살아서 나왔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변화입니다.”[32]


제자들은 환영이라도 본 것일까요?

사람들은 아직도 뚱뚱하고 머리가 하얗게 센 엘비스 프레슬리가 던킨 도너츠 매장으로 달려들어가는 모습을 본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난 밤에 외계인들이 뭔가 실험을 하고 있던 우주선에 끌려갔다는 생각도 합니다. 간혹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과 관점으로만 사건을 “바라볼” 수 있는데 문제는 이 사건이 실제로 벌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제자들이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너무나 심란한 나머지 예수가 살아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 너무 강해져서 환영을 보았다고 주장합니다. 가능한 일일까요?

미국 기독상담자협회장을 역임했던 심리학자 게리 콜린스는 환영으로 인해 제자들의 행동이 급격하게 변할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콜린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환영은 개인적인 변화입니다. 그 특성상 한 번에 단 한 사람만이 특정한 환영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 명의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환영은 없습니다.”[33]

심리학자 토마스 J. 소어번에 따르면 환영은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마음의 안정성을 가진 5백명의 사람들이 시각, 청각, 감각 등 다양한 느낌을 경험하고 그러한 경험이 결국 환영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절대적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34]

게다가 환영에 대한 심리학적으로 간절함이 너무나 강해서 마음에서 환영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초기 교회의 주요 지도자였던 야고보와 바울 두 사람 모두 부활한 예수를 만나는 기쁨에 대한 기대나 바람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만났다는 주장을 너무가 강력하게 내세웠습니다. 사실 사도 바울의 경우 기독교에 대한 초기 탄압을 주도했기에 그의 변화는 예수가 부활하여 그에게 나타났다는 그 자신의 증언이 없으면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환영 이론도 그다지 답이 되지 못하는 듯 합니다. 부활을 부정할 수 있는 다른 설명이 있을까요?

거짓에서 전설로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일부 회의론자들은 부활에 대한 이야기가 한 두 사람의 거짓말 또는 부활한 예수를 보았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발전했다고 주장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전설은 여러 사람에게 회자되면서 미화되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가능한 시나리오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이론에는 3가지 큰 문제가 있습니다.

• 먼저, 전설은 이를 부인할 수 있는 여러 증인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고대 로마 그리스의 역사학자인 A. N. 셔윈-화이트는 부활에 대한 소식이 전설로 진전되기에는 너무 빨리 퍼졌다고 주장합니다.[35]

• 두 번째로 전설은 구전으로 발전하게 되며 입증이 가능한 현대 역사 문서와는 무관합니다. 하지만 복음서들은 부활이 있은 후 30년 내에 작성되었습니다.[36]

• 세 번째로 전설 이론은 빈 무덤이라는 사실 또는 예수가 살아 있었다는 역사적으로 입증된 제자들의 신념으로는 설명이 어렵습니다.[37]

그러므로 전설 이론은 이 놀라운 주장을 부인하기 위한 다른 시도들보다 그다지 가능성이 높지 않은 듯 합니다. 또한 예수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로 인해 실제로 역사가 바뀌었으며 그러한 변화는 로마 제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부활이라는 전설은 그 짧은 시간 내에 그렇게 거대한 역사적인 영향을 미칠 수가 있었을까요?


기독교는 어떻게 승리하였는가?

모리슨은 “어떻게 그런 작은 움직임이 로마 제국뿐 아니라 유대인 조직의 치밀한 통제를 넘어설 수 있었는 지”에 대해 당혹스러워했습니다.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어떻게 승리했을까요?

모리슨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20년도 되지 않아 이 갈릴리 농부들의 주장은 유대 교회를 무너뜨렸으며… 로마 제국의 평화를 위협하기 시작한 것은 50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말을 다 했음에도 가장 큰 의문이 남아있습니다. 기독교는 도대체 어떻게 승리한 것일까요?”[38]

모든 점을 감안하고, 부활이 사실이 아니었다면 기독교는 예수가 죽은 십자가 위에서, 제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도망갔을 때 무너졌어야 합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기독교를 확고히 했습니다.

J. N. D. 앤더슨은 이렇게 썼습니다. “한 무리의 패배한 겁쟁이들이 하루는 윗층 방에서 벌벌 떨다가 단 며칠 만에 어떠한 탄압도 막을 수 없는 집단으로 재탄생했으며, 이러한 변화를 말도 안되는 조작 외에는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은 심리학적으로 말이 되지 않습니다.”[39]

놀라운 결론

전설, 환영, 부검상 오류 등은 모두 제외되었으며, 빈 무덤에 대한 확실한 증거, 예수의 부활을 본 상당수의 증인, 그리고 예수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설명할 수 없는 변화와 세상에 미친 영향 등을 알게 된 모리슨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자신의 선입견이 잘못되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모리슨은 다른 책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제목은 이렇습니다. 누가 돌을 움직였는가?(Who Moved the Stone?)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새롭게 내린 결론을 정리했습니다. 모리슨은 사건의 진실이 명백하게 나타날 때까지 단순히 일련의 증거를 하나씩 좇아왔습니다. 그가 놀란 점은 이 증거들로 인해 부활에 대해 믿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전까지 회의론자였던 모리슨은 이 책의 첫 장인 “쓰이기를 거부한 책(The Book That Refused to Be Written)”에서 어떻게 해서 이 증거들이 자신에게 예수의 부활이 역사적 사건이었다는 확신을 안겨주었는지 설명합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잘 알려진 길을 따라 숲을 지나려 하다 예상치 못한 곳에 도달한 것과 비슷합니다.”[40]

모리슨 외 다른 이들도 비슷한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수없이 많은 회의론자들도 예수의 부활에 대한 증거를 조사한 결과 인간 역사상 가장 놀라운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존재조차 의심했던 C. S. 루이스의 경우 예수의 부활에 대한 증거에 설득당한 경우입니다.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우주 역사상 완벽하게 새로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리스도는 죽음을 이겨냈습니다. 항상 잠겨있던 문이 정말 처음으로 강제로 열린 것입니다.” [41]

부활에 대한 증거를 인정한 다른 회의론자들의 경우도 살펴보겠습니다.

놀라서 할 말을 잃은 교수

부활이 단순한 전설이라고 생각했으나 모리슨처럼 생각을 바꾼 이들 중에는 세계 최고의 법학자인 사이몬 그린리프 박사도 있습니다. 그린리프는 하버드 법대를 키워낸 인물입니다. 그는 3권으로 된 법학의 걸작이자 “법 관련 서적 중에서 단연 독보적인 작품”으로 알려진 증거의 법칙에 대한 논문(A Treatise on the Law of Evidence)을 쓰기도 했습니다.[42] 현대 미국의 재판제도는 아직도 그린리프가 구성한 증거의 규칙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린리프 교수는 하버드 재직 시절 학생들에게 예수의 부활은 단순한 전설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무신론자인 그는 기적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 중 3명이 그의 증거의 규칙을 부활에 적용해 보라는 반론을 던졌습니다.

수없이 재촉을 받은 후에야 그린리프 교수는 학생들의 도전을 받아들이고 증거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역사적 사실에 자신의 명석한 두뇌를 사용한 그는 부활이 거짓임을 증명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린리프 교수가 역사 기록을 깊이 파고 들어갈수록 예수가 실제로 무덤에서 살아 나갔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의 강력함에 할 말을 잃을 뿐이었습니다. 그린리프의 회의론은 인간의 역사를 뒤바꾼 사건에 의해 무너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는 예수가 죽은 후 얼마 되지 않아 벌어진 일련의 극적인 변화를 설명할 수 없었으며, 그 중에서도 제자들의 행동이 변한 점은 가장 혼란스러웠습니다. 한두명도 아니고, 제자들 모두가 예수의 부활을 주장했던 것입니다. 자신이 만든 증거의 규칙을 사실에 적용한 그린리프 교수는 결국 결론을 내렸습니다.

놀랍게도 입장을 뒤바꾼 교수는 예수의 부활이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직후 일어난 사건들을 말해 주는 가장 좋은 설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명석한 법학자이자 이전까지 무신론자였던 그에게도 부활한 예수를 직접 보지 않았다면 제자들이 부활에 대한 자신들의 신념을 유지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43]

그린리프 교수는 자신의 저서인 전도사의 증언 (The Testimony of the Evangelists)에서 자신의 마음을 바꾸게 만든 증거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린리프 교수는 책의 결론에서 부활에 대한 진실을 찾는 이라면 공정한 자세로 증거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그는 그러한 증거에 너무나 깊은 인상을 받은 나머지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편견이 없고 법정에서처럼 정직하게 증거를 검토한 사람이라면 자신과 같은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으로 부활했다는 결론입니다.[44]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한 가지 의문을 남깁니다. 예수가 죽음을 이겨냈다는 사실이 나와 무슨 상관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이야말로 신약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예수는 우리가 죽은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까?

예수가 실제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돌아왔다면, 죽은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는 삶의 의미와 우리의 미래에 대해 어떤 말을 했을까요? 신께 이르는 길은 다양하다고 했을까요? 아니면 예수 자신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했을까요?

이곳을 클릭하면 “왜 예수인가?”를 읽고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한 말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는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요?

이곳을 클릭하시면 예수가 다음 삶의 의미에 대해 내린 중요한 질문의 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 곳에 있는가?”

“나는 죽은 후 어디로 가는가?”

아래에서 응답을 공유하여 더 알아보기

아니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예, 기도하고 예수님을 저의 삶으로 초대했습니다.
예, 기도하고 저의 삶을 예수님께 다시금 봉헌하였습니다.
아니요, 저는 이미 예수님을 저의 삶에 받아들였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출애굽기 3:8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성경 검색(젖과 꿀이 흐르는 땅) (구약 19회)
출애굽기 4회
레위기 1회
민수기 3회
신명기 6회
여호수아 1회
예레미야 2회
에스겔 2회

  • 네게브(광야, 황야) 70%

민수기 16:13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 고라, 르우벤의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 아비람, 벨렛의 아들 온
  족장 250명이 모세와 아론에게 대항

* 고라 일당의 반역

신명기 11:10-11

네가 들어가 차지하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에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애급 /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땅
기근 시 애급으로 양식을 구하러 떠났다 

창세기 17: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아브람 99세 때 여호와께서 나타나셔서
언약을 맺는다

출애굽기 3: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레위기 18:27

너희가 전에 있던 그 땅 주민이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고
그 땅도 더러워졌느니라.

* 골육지친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 어미, 계모, 자매, 손녀, 외손녀, 고모, 이모, 숙모.....등

창세기 10:15-18

가나안은 장자 시돈과 헷을 낳고.
또 여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알가 족속과 신 족속과. 아르왓 족속과 스말 족속과 하맛 족속을 낳았더니
이 후로 가나안 자손의 족속이
흩어져 나아갔더라.

* 창세기 10:6 /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레위기 18:26-27

그러므로 너희 곧 너희의 동족이나
혹은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나
내 규례와 내 법도를 지키고
이런 가증한 일의 하나라도 행하지 말라.
너희가 전에 있던 그 땅 주민이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고
그 땅도 더러워졌느니라.

출애굽기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미 더러워진 땅에서
거룩한 삶을 회복하므로
그 땅의 더러워진 것을 몰아내므로
하나님이 만드신 처음의 세상으로
세워나갈 수 있다는 소망의 땅이 될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는 황야와 같은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만들 수 있다. 

신명기 11:10-11

네가 들어가 차지하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에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신명기 11: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성경 검색을 통하여 구약에서 19회 사용된 것으로 낱타난다.

출애굽기 4회
레위기 1회
민수기 3회
신명기 6회
여호수아 1회
예레미야 2회
에스겔 2회

출애굽기 3:8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첫째, 자유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땅

애급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백성들이 애급으로부터 탈출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간다는 것은 이제부터 주권을 갖고 살아가는 땅이 될 것을 말합니다.

젖과 꿀이란 그 땅에서 생산 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애급처럼 비옥한 땅이 아니므로 젖은 목축을 통한 산물이며 꿀은 양봉을 통한 산물입니다.
따라서 농사를 지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는 사막과 같은 황령한 땅에서 자유인이 노력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을 상징화하여 표현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땅

비옥한 땅이 아니므로 반드시 농사철이 되면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내려야만 경작이 가능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적절한 시기에 비를 내려 주시므로 농사를 지을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하게 하나님을 믿고 순종할 때에 약속된 삶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우기에 내리는 ‘이른비와 늦은비’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이른비와 늦은비’로 비유하셨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스라엘의 자연적 특성과 기후를 알아야 한다.

이른비와 늦은비는 이스라엘에서 축복의 단비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물이 귀한 나라다. 강수량이 적고 토질이 석회석과 사암 등으로 형성되어 있어 지하수를 얻기도 어렵다. 유적지 중 우기 때의 비를 저장해 식수로 쓰던 저수지가 많고, 성경 역사에서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들이 가는 곳마다 우물을 파거나 우물 때문에 다툼이 생긴 것도 이 때문이다. 이스라엘에서 비는 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비가 내리지 않으면 생존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농경사회에서 비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비, 늦은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육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으로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의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신명기 11:14~17)

이스라엘의 여름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건기가 지속된다. 우기는 가을과 봄이 시작되는 시점인 10월경에서 이듬해 4월경까지다. 이른비, 겨울비, 늦은비가 내리는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이른비(Autumn Rain)는 10~11월경인 가을에 내리는 첫 비를 가리킨다. 이른비를 시작으로 우기가 시작된다. 여름철 건기 동안 비가 오지 않아 땅이 메말라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때 비가 내리지 않으면 경작을 할 수 없다. 농부는 농사 지을 준비를 갖추어놓고 메마른 땅을 보며 간절히 이른비를 기다리는 것이다(야고보서 5:7).

이른비가 내리기 시작해 2~3주가 지나면 들판은 푸른 초장으로 변한다. 농부들은 이때 밭을 갈고 파종한다. 이른비가 적당한 시기에 내려야 제때 씨를 뿌릴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이른비는 경작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겨울비는 본격적인 장맛비로, 12~2월경에 내린다. 이스라엘에서는 건기를 대비해 이때 내리는 비를 저장해 사용했다.

늦은비(Spring Rain)는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는 3~4월경에 내리는 비다. ‘봄비’라고도 불리는데 그야말로 단비다(스가랴 10:1). 겨울 동안 자란 농작물 결실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늦은비가 제때 오지 않는 것을 저주로 간주하기도 한다(아모스 4:7).

 

이른비 – 초대교회 오순절 성령의 역사

이스라엘의 농사에서 때에 맞게 내리는 이른비와 늦은비는 하나님의 축복이라 할 수 있다. 성경에 등장하는 비에 대한 기록들을 보면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신명기 32:2, 에스겔 34:26, 시편 65:10). 비에 의해 좌지우지되던 이스라엘의 농사는 하나님의 복음사업을 예표한다. 농사철 우기에 내리는 두 차례의 특별한 비, 이른비와 늦은비는 하나님께서 영적인 농사를 위해 허락하시는 성령을 상징한다.

시온의 자녀들아 ···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비와 늦은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요엘 2:23)

이른비의 역사는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던 초림 예수님 당시,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예루살렘에 모여 열흘간 전심으로 기도한 제자들에게 ‘오순절’에 허락된 성령의 역사로 예언이 성취되었다. 초대교회에는 하루에 3천 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고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사도행전 2:1~41)



1. 가나안 땅에 대하여  

가나안(Canan)은 "저지(抵地)" 즉 "낮은 땅" 이라는 뜻으로 팔레스티나의 고대 명칭의 하나이다.
보통 요단강 서편의 지역을 가리킨다.
애굽과 메소보다미아의 교류지로서, 옛부터 훌륭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이 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일컬어졌다(출 3:8,신 6:3).
이미 이곳은 아브람함과 그 자손에게 주어질 것이 약속되어 있었다(창 12:7,출 6:4,레 25:38).

아마르나 문서(이집트의 고문서)에 따르면, BC 3000년 무렵 셈족이 여기에 거주했고, BC 2200∼BC 2000년 이집트인이 이 지역을 정치적으로 지배하였으며, BC 15세기에는 이집트의 지배력이 약화되어 그 지배하에 있던 팔레스타인과 시리아가 혼란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BC 11세기에는 이집트 세력이 가나안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곧  출애굽 후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 인솔된 이스라엘 백성이 그곳에 들어가 정착하게 되었다.

2.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우리 말에는 '문전옥답(門前沃畓)'이라는 관용적인 표현이 있듯이, 고대근동 지역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는 표현이 있습니다.

'젖이 흐른다'는 말은 유목민이나 반유목민들이 가장 선호는 목축을 하기에 좋은 땅을 상징한 것이지요.

'꿀'에 대해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벌꿀이 아니라 당도가 높아서 당시 사람들이 좋아했으며, 아랍인들이 주식으로 사용한 '대추야자(date palm)'를 상징적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대추야자는 '종려나무'의 일종인데 늙은 나무의 끝에 상처를 내어 받은 수액을 발효시켜 야자술을 만들며, 이것을 증류한 것이 아라크(arrack)입니다. 

열매는 크게 감미형 ·약감미형 ·건조형의 3가지로 분류하는데, 건조형은 낙타대추야자라고 하며 아랍인의 주식(主食)으로 이용됩니다.

조건이 좋으면 대추야자나무 한그루에서 해마다 약 100kg의 열매가 열립니다.
대추야자나무 세 그루가 있으면 한 사람이 굶어 죽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나 아랍지역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대추야자를 쉽고 구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젖과 꿀(대추야자)이 흐르는 땅'이라는 말이 생겼으니, 목축과 농사가 풍요한 땅, 먹고 살기 좋은 땅을 상징하는 용어가 된 것이지요.  

3. 기브온에 대한 화친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이스라엘 백성이 다 순종한 것은 아니니까? 기브온에 대한 화친도 그런 맥락헤서 볼 수 있겠지요.

 


기브온(Gibeon)

팔레스틴 중부의 산악지에 있던 히위 사람의 도성이었는데(수9:3,17), 예루살렘의 서북쪽 9㎞ 지점에 있는 오늘날의 `에 집'(ej-Jib, 학자에 따라서는 `엘 집, el-Jib'로도 표기된다)과 동일시된다. 이것은 유력한 성읍으로서 이스라엘의 가나안 침입시에는 그비라, 브에롯, 기럇 여아림의 왕들과 협의하여 그 지도권을 장악하고 책략을 꾸며 이스라엘과 화친하였다(수 9:3-17). 그들의기만이 드러났을 때에도 여호수아는 계약의 의무를 지켜 그들을 아모리 사람 연합군의 내습으로부터도 보호하였다(수 10:1-15). 가나안 땅 분배시에 기브온은 베냐민의 기업으로 되고(수 18:25), 후에는 레위 자손의 성읍으로 되었다(수 21:7). 사울 왕의 사후에 일어난 내란 때에 이스보셋과 다윗을 각각 대표하는 아브넬과 요압은 `기브온 못'(삼하 2:13)가에서 양 군을 교전시켰다. 그러나 그들은 승패를 결정하기 위해 쌍방에서 각각 12명의 대표군사를 뽑아 일대 일로 싸우게 하였다. 서로 옆구리를 찌르고 같이 죽었으므로 그 곳을 `헬갓핫수림'(「날카로운 칼의 밭」)이라 불렀다(삼하 2:15). 기브온은 후에 다윗과 블레셋 사람의 교전장으로 되었다(삼하 5:25에서는 `게바'로 되어 있다. 병행 기사 대상 14:16에는 `기브온'). 또 요압이 아마사를 살해한 것은 기브온 큰 바위 곁에서였다(삼하 20:8). 사울 왕은 단기였기 때문에 많은 기브온 사람들을 죽였다. 그러나 유족들은 사울의 자손 중에서 7사람을내 놓으라 요구하여 이들을 죽임으로써 복수했다(삼하 21:1-).기브온은 옛부터 유명한 산당이 있었으며, 실로 함락 후는 여호와의 성막이 이 곳으로 옮겨져 있었다고 한다(대상 16:39,21:29). 솔로몬은 왕으로서의 첫 희생을 이 기브온의 산당에서 드렸다(왕상 3:4과 9:2 비교). 기브온은 유대 왕 르호보암의 제 5년(BC 921)에 애굽 왕시삭(BC 935-915 재위)이 침략한 팔레스틴 중부의 성읍 중 하나로서, 그의 비석에기록되어 있다. 기브온은 선지자 하나냐의 출신지였다(렘 28:1). BC 586년 느부갓네살에 의한 예루살렘 점령후 거기서 도망한 사람들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싸우러 나간 `기브온 큰 물'이 인용되고 있다(렘 41:12). 이 성읍의 주민은 바벨론에서 포로 귀환 후 예루살렘복구에 협력했다(느 3:7).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AD 66년 10월 케스티우스(Cestius)는 "벧호론을 거쳐 올라와 예루살렘에서 9㎞쯤 떨어진 가바오(Gabao,Gabawv, 구약성경의 '기브온')라고 하는 장소에 그의 진영을 쳤다"고 한다.경지 정리가 잘 되어 있는 넓은 골짜기로 된 분지의 중앙에는 60m 정도의 장타원형 내지는 계란형의 구릉이 있다. 그 구릉은 평원에서 윗쪽으로 큰 계단을 이루고 있는 석회암의수평층으로 되어 있어 올라가기 힘들다. 성읍은 북단의 넓은 정상에 있다. 성읍 동남쪽 구릉에서 퍽 아랫쪽에 아름다운 샘이 있다. 인공적으로 판 지하의 저수지로 흘러들어가고 있다.이 성읍에의 거주는 초기 청동기 시대(BC 3100-2100)부터 시작하여 철기 시대 Ⅱ기(BC 900-550)까지 이르고 있었다. 성읍의 면적은 6.4ha로서 상당히 큰 성읍이었다는 것을 보이고 있다. 구릉 주위는 비옥한 고원인데, 감람ㆍ포도 재배가 성하다. 이 발굴은프리챠드(J.B. Prichard)에 의해 전후 5회에 걸쳐 행해졌다(1955-57,1559-60, 1962). 각 시대를 대표하는 토기 파편이 많이 출토되었으나, 특히 진귀한것은 56개의 `항아리'의 손잡이인데, 그 중 24개에는 `기브온'의 문자가 새겨져 있다. 이것은 BC 7세기의 일군의 포도주 저장굴이 발견된 사실에 비추어 보아 이 손잡이가 달린 `항아리'는 포도주 수송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기브온에서는 두 종류의 급수 설비가 발견되었다. `기브온 못'(삼하 2:13)은 이 나선상 계단이 내부에 설치된 못을 가리킨다. 전에는 `못'을 성읍의 동북쪽에 있는 장방형의 저수지(11×18m, 깊이 2-2.4m)와 동일시하였는데, 그것은 로마 시대의 축조였기 때문에그것은 시대 착오이다. 로마 시대(BC 63-AD 325) 초기에는 기브온에 재거주가 실시되었지만, 그때는 `로마 평화'(Pax Romana)의 안전성을 반영하여 성읍은 무방비 상태로개방되어 있었다. 기브온 성벽은 2기에 걸쳐 구축되었는데, 전기의 것은 BC 12세기, 후기의것은 BC 10세기에 존재했으며, BC 7세기까지 존속했다. 후자의 성벽이 잘 보존되어 있었는데, 약 134m가발굴되었다.성벽의 두께는 평균 4m이며, 전장은 954m로 계산된다.

 

늦은비 – 초막절 성령시대의 역사

곡식을 수확하는 시기에 내리는 늦은비는 영적 추수 때인 이 시대에 알곡으로 비유된 하나님의 백성을 불러 모으시는 복음사업을 위해 내려주실 성령의 역사를 표상한다.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마태복음 24:30~31)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시작되는 영적 추수기에 허락될 늦은비 성령은 ‘초막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나아가는 자들에게 임하도록 되어 있다.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천하 만국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스가랴 14:16~17)

명절 끝 날 곧 큰 날(초막절)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한복음 7:37~39)

지금은 영적 결실기인 초막절 시대로, 추수밭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늦은비 성령을 간구해야 할 때다. 그 하나님의 약속대로 예루살렘의 실체이신 하늘 어머니께로 나아오는 자들만이 늦은비 성령의 능력을 덧입게 될 것이다.




셋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탕이 비옥한 것을 말한 것이 아니다.
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셨을까?

땅이 비옥한 것이 아니라 적당한 때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주시므로 농사가 가능하다는 의미라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 순종을 전제로 가능한 것이다(신명기 11:13-17)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나의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비, 늦은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육축을 위하여 들에 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으로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의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설교제목>약속의 땅
<성경말씀> 마태복음 6장 19절-34절
출애굽기 3장 7절-8절
<교독> 교독문 43(마태복음 6장)
<찬송> 278, 369

<주석> 애굽의 압제에서 신음하는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은(출 3;7) 하늘에서 내려 오셔서(3:8) 구원의 행동을 개시하셨다. “그들을 애굽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겠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애굽을 떠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다. 그러나 험난한 광야의 생활을 거쳐 막상 도착한 그 약속의 땅은 “젖과 꿀“로 상징되는 ‘풍요의 땅’이 아니었다. 양의 젖이나 벌통의 꿀이 풍부하여 먹고 마시고도 남아 넘쳐흐르는 땅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약속의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존을 위해 매순간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이민족들과 수많은 전쟁을 치러야만 했던 척박하고 황량한 땅이었다.(삿 1장)
“젖과 꿀”이 물질적 풍요를 의미한다면 이스라엘이 정착한 팔레스타인의 지리적 특성과는 먼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의 본래적 의미는 이스라엘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특별히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신앙적 관계’에서 파악하여야 할 것이다.
젖은 ‘어미’가 ‘새끼’에게 전달하는 ‘생명의 양식’이다. 또한 무방비적인 새끼를 향한 본능적인 사랑이다. 젖을 먹이는 어머니의 모습은 사랑으로 풍요하고, 젖을 빠는 새끼의 모습은 화이다. 젖으로 말미암아 잇대어진 어미와 새끼의 사랑과 평화로운 관계는 바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이다.
한 방울의 ‘꿀’을 모으기 위해 수많은 벌들이 하나같이 협동하여 이 꽃 저 꽃을 날아다니며 수고한다. 그러나 그 꿀은 어느 한 개체의 소유로 주장되지 않으며, 어느 한 개체가 독점적 소유권을 주장하지도 않는다. 꿀은 공동체 정신의 과정이요 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사랑과 협동과 평화의 공동체에로의 약속이다.(이상 KNCC 간 <교회와 세계> 2005년 가을호 ,86-87쪽, 유경동 글‘기독교의 경제윤리: 희망은 있는가?’ 중에서 발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현세적 축복, 물질적인 축복, 개인주의적 축복으로 믿는다면, 역사적 지리적 현장과도 맞지 않으며, 성경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고 있는 하나님의 의도와도 모순이 된다.
그러나 현대 기독교인들 중, 현세적 축복, 물질적 축복이 믿음의 많고 적음의 기준이라고 믿고 있다.
세계는 한국이 두 가지의 기적을 이룬 나라라고 한다. 가장 빨리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 가장 빨리 교회 성장을 이룬 나라.

<예화>
1) 2004년 현재 한국의 경제는 세계 11위이다.(내일 신문, 2005년 8월 9일 자).
세계 11번째로 축복 받는 나라이다.
2) 1960년 총인구비 기독교인은 4.6%, 6십7만 명(1981년 기사연간 <기독교 사정>,)
2004년 총인구비 기독교인 21.4%, 1천 3백만명 (한국갤럽 2004년,<타임 매거진> 2005년 7월)
경제 성장, 양적 성장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는 축복이라면 우리나라는 약속의 땅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통계도 있다.
<예화>
3) 한국의 자살인구 수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에 4위이며 지난 10년 전보다 2.4배가 늘었다.(상기 <교회와 세계> 78쪽, 참조 지난 10년 동안의 인구증가율은 0.9%-연합통신 간 <2004년 연감>)
* 60억 재산가 할머니가 재산을 둘러 싼 자녀들의 분쟁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하였다.
4) OECD 국가들 가운데 두 번째로 가장 소득이 불균형한 나라이다.(경향신문 2005년 8월 9일)
*우리나라의 주택보급률이 102.2%이지만 무주택자가 45%이다.
*총인구의 1%가 총사유지 51,5%를 소유하고 있다.
*상위 10%계층의 소득은 하위 10% 계층의 소득의 15.28배 (내일신문 2005년 8월 3일)
5) 정부는 우리나라의 빈곤층 인구가 700만 명이 넘었다고 발표했다(경향 2005 년 8월 26일)
그런 신앙에 따라 이런 예화를 보고 있노라면 한국백성은 결코 축복받은 백성이 아니다.


마태복음 6장 19절-34절은 재물과 이 세상적인 염려에 관한 예수님의 교훈을 전하고 있다. 좀이나 동록(銅綠)이 해하고 도적이 도적질하지 하는 땅 위에 쌓아 두지 말고 그것들이 해하지 않는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셨다(19-20절). 하나님과 재물은 같이 섬길 수 없다(24절).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입을 것, 먹을 것, 세상의 축복도 이에 더하시리라 약속하신다( 25-34절).

<결론>
마태복음의 이 말씀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현세적 축복, 물질적 축복의 여하로 판단된다는 믿음은 잘못되었다는 말씀이다.
앞서 인용한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1997년부터 2004년까지 7년 동안 750만 명이 개신교를 떠나갔다고 한다.
개신교에 대한 사회 호감도는 12.3%며 개신교를 싫어하는 6가지 중에 사회 봉사와 이웃사랑 부족, 사리사욕과 지나친 물질주의가 들어 있다.
혹시나 한국의 개신교회가 ‘젖과 꿀’을 물질적 축복으로 간주하여, 못사는 사람은 벌 받아 못 살고, 잘 사는 사람은 복 받아 잘 산다고 가르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한다.


팔레스틴의 꿀

(풍습) 사사기 14:8-9

본문에는 삼손이 죽인 사자의 주검에 벌의 무리와 꿀이 있었고, 그래서 삼손이 그 꿀을 취하여 먹었다는 기사가 나온다.
이는 야생벌들이 팔레스틴에 많이 서식하였고, 또 당시에 야생벌에게서 꿀을 얻어 음식으로 이용했음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성경에는 팔레스틴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묘사하는 등 꿀을 비유한 기사가 많이 나온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풍습과 성경 상에 나타난 꿀의 이용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1. 꿀의 용도

고대로부터 꿀은 유대인에게 있어서 더없이 친근한 음식의 하나였다.
왜냐하면 팔레스틴에는 꿀벌들이 무척 흔했기 때문에 바위에 뚫린 구멍이나 나무, 혹은 광야에서 쉽게 꿀을 얻을 수 있었으며, 설탕이 생산되기 전에는 음식을 달게 하는 데 꿀이 최상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빵이나 과자를 만드는데 꿀을 사용했고, 생선에도 꿀을 발라 먹었다.
또한 꿀은 당시 사람들이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제일 좋은 영양 공급원이었다.(잠언 25장에서 꿀과 건강 참조).
그래서 그들은 꿀을 약으로도 사용하였고, 다른 사람에게 주는 유익한 선물로도 사용 되었다. (삼하 17:29, 왕상 14:3).
이렇듯 꿀은 매우 인기가 있는 식품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후기에 양봉(養蜂)을 하여 외국에 수출을 할 정도로 굴을 풍부하게 생산하였다.(겔 27:17).

2. 꿀에 대한 성경의 비유

여호와는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즉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을 약속하셨다.(출 3:8).
이것은 팔레스틴이 꿀벌이 살만한 조건 즉, 비가 적게 오고 날씨가 따뜻하며 들에는 여러 가지 꽃들로 향기가 퍼지는 땅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에 있어서 꿀은 더없이 좋은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시편과 잠언의 기자들은 꿀을 비유의 수단으로 많이 사용하였다. 즉 여호와의 규례가 꿀보다 달고(시 19:9-10), 선한 말이 꿀과 같으며(잠 16:24), 또한 지혜와 지식이 영혼에 꿀과 같다고 했다.(잠 24:13-14). 그리고 솔로몬의 아가에서 신랑 신부가 꿀의 달콤함을 노래하고 있다.(아 4:11, 5:1).

그러나 한편 모세의 율법에는 꿀을 넣은 식품은 여호와께 제물로 드릴 수 없다고 규정되어 있었다.(레 2:11).
이는 꿀이 발효 작용과 관계가 있는 바, 곧 발효 시키는 물질은 죄악을 상징하였기 때문이었다. (레위기 23장 꿀과 발효와 누룩 참조) 

3. 의의

이상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팔레스틴에는 꿀벌의 자생이 많은 곳이었다.
그래서 꿀은 중요한 영양원과 감미료소서 이스라엘인들의 생활에 밀착되어 있었다.
야생에 꿀벌이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은 그곳이 얼마나 많은 꽃이 피는 풀과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어디서나 꿀을 얻을 수 있었고 많은 목초지가 있었으므로 목축하기에 최적의 지역이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활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이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라고 표현하였다.

한편 본문에는 삼손이 죽은 사자의 시체에서 꿀을 채취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벌은 썩은 시체에는 모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본문에 나오는 사자는 살이 완전히 뜯겨 나간 채 뼈대만 남아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여우나 솔개가 남은 살을 먹었을 것이고, 또한 개미들이 그 남은 조각을 모두 먹은 다음에 완전히 자연적 미라가 되어있는 사자의 뼈가 굴벌의 집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시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이라가 되고 그래서 별로 냄새를 풍기지 않게 되는 일은 실제로 기후가 더운 나라에서 간혹 보여지는 진기한 현상이다.
이처럼 성경이 배경으로 하고 있는 팔레스틴의 풍습과 풍토를 알아보는 것은 성경의 이해에 큰 도움을 준다. 이는 성경이 그들의 역사를 통해 계시된 여호와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스라엘 성지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 (the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라고 하는데 그 뜻은 무엇인가요?

팔레스틴을 여행하는 많은 사람들은 유대 광야와 네게브 사막을 지나는 동안 한가지 의문을 갖는다.
막연하게 상상했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약속의 땅은 매우 비옥할 것으로 생각했던 환상이 황량하고 메마른 지역들을 보면서 점차 흐려지기 때문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다른 말로 기름지고 비옥한 땅이란 말로 이해해도 되는가?

이스라엘에서 성경의 역사 지리적인 배경을 공부하던 필자도 초기에는 그 의미가 사뭇 궁금했었다.
그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표현에 대한 주석학자들의 다양한 해석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독일학자인 벤징거(Benzinger)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리스의 신화적인 배경에서 신들의 음식인 젖과 꿀의 땅’으로 해석하였다. 벤징거는 가나안을 신들의 땅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레쓰만(Greβmann)은 이 표현은 ‘가나안을 낙원으로 이해한 상태에서 바벨론의 신화적인 요소가 반영된 것’이라 하였다.
그러면서 그레쓰만은 요엘 3:18절 (요엘 3:28. 그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 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

앙드레케커(André Caquot)는 위의 내용을 우가릿의 한 내용(ANET 140)과 연결시켜 이해했다.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가나안이 비옥한 땅이란 사실은 고대의 여러 문헌들만 아니라 (Sinuhe's story, Thutmose III's inscriptions) 성경에도 종종 나타난다(신4:21, 7:13, 8:7, 11:10, 28:3, 창13:10, 레26:4).

요세푸스의 기록이 나로마의 타키투스(Tacitus)의 역사책에도 나타난다.
아모스 9:13절(“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그 때에 밭가는 자가 곡식 베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에 근거하여 이것은 선지자들의 종말론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하였다.)

후트만(Houtman)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욥기 20:17절(그는 강 곧 꿀과 엉긴 젖이 흐르는 강을 보지 못할 것이요.)에 근거하여 시적 표현에서 비롯된 과장법으로써, 젖과 꿀이란 가나안의 대표적인 농산물로 이해하였다.
그래서 이 표현은 광야에서 40년을 생활했던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시각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성경학자요 랍비인 모쉐 데이빗 카수토(Moshe David Cassuto)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광야에 살았던 유목민들이 가나안 땅을 가리켜 처음 사용했던 표현으로, 그 의미는 목축을 통해서는 젖을 그리고 농업을 통한 각종 나무로부터 벌의 꿀처럼 많은 실과를 거둘 수 있는 배경에서 이해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의미는 확대되어 각종 실과를 풍성하게 소출하는 가나안 땅을 포괄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세가 보낸 12명의 정탐군들이 포도, 석류, 무화과 및 그 해의 소산들을 가져 오면서 보고하는 내용을 참고하면: 그 땅은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이것이 그 실과들입니다(민 13:27).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저명한 유대 학자인 나훔 마타티아스 사르나(Nahum Mattathias Sarna)는 젖과 꿀이 흐르는 표현을 ‘가나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조심스럽게 해소하기 위해 사용된 표현’으로 이해하였다.

이 표현은 히브리 민족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시면서 말씀하신 약속의 땅에 대해 성경에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내가...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 이르려 하노라 (출 3:8).

(이상하게도 약속의 땅에 대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는 이 표현을 한차례도 사용하지 않으셨지만 출애굽기 3장 8절 이후에는 자주 나타난다. 그래서 이 표현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시기는 후기 가나안 시대 곧 출애굽 직전에 제한된다. 사실 가나안이나 요단 동편에서 흉년이 발생할 때에는 이 지역에 생활하던 유목민들은 일시적으로 이집트의 델타지역으로 피신했던 경우는 고대 역사적인 문헌들을 통해 자주 대할 수 있다. 성경에도 그 예들이 많이 발견된다(창12, 20, 26).

성경에서 꿀은 약 50번 정도 나타난다.
양봉에 의한 꿀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소아시아 지역에서는 일찍 생산되었지만 정작 성경에서 이 부분은 언급이 없다.
성경에서 꿀에 의한 꿀은 삼손과 요나단의 두 차례 기록되었을 뿐이다.
히브리어의 꿀에 해당되는 드바쉬는 벌에 의한 꿀과 과일 시럽 모두 의미한다(출 43:11, 아 5:1, 시 81:16, 대하 31:5, 삼하 17:29,
사7:15, 22)

당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생활했던 나일강 삼각주 지역은 지역은 흉년을 피한 이주민들이 정착하기에 적합한 지역이었다.

성경의 역사 지리학자인 데니스 발리(Denis Baly)는 이 표현을 광야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의 시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가나안 땅이 꼭 비옥하다는 의미가 아닌 광야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괜찮은 땅’이란 표현으로 이해하였다.

민수기 16:13-14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과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 (브엘세바 평야의 황량한 전경을 찍은 사진이다)

이렇듯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표현에 대해 학자들마다 다양한 주장들이 제기되었다.

비록 일부이지만 이 표현에 대한 대표적인 학자들의 의견들을 거의 망라하였다.
여기에 덧붙여 성경을 탐독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가나안 땅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표현이 사용되었던 후기 가나안 시대의 역사 지리적인 배경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1. 지정학적인 측면

가나안 땅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곧 가나안 땅은 상호 국제 무역을 주도할 수 있는 자연적인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이런 지리적인 이점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정착민들은 무역이 아닌 목축과 농사에 종사하였다.
국제 무역은 오히려 페니키아에서 활기를 띠었다.
성경에 기록된 가나안의 대표적인 산물들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마음을 윤택하게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시 104:15)

열방들이 혹시 주의 백성들에게 조롱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할 때”에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시면서 이 땅으로부터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욜 2:17-19).

위에 언급한 세가지 산물들에 대한 성경의 다른 기록들을 참고한다.

창 27:28, 37, 신 7:13, 11:14, 12:17, 14:23, 18:4, 28:51, 33:28, 왕하 18:32, 대하 31:5, 32:28, 느 5:11, 10:39, 13:5,12, 시 4:7, 사 36:17, 애 2:12, 호 2:5, 8, 22, 욜 1:10, 학 1:11.

2. 후기 가나안 시대(Late Bronze Age)

가나안 땅의 정착 인구는 이전에 비해 현저히 감소되었다.

네게브는 크게 황폐되었다.
중기 가나안 시대(Middle Bronze Age)에 번성했던 주요 성읍들은 대부분 파괴되고 황폐되었다.
특히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 곳은 브엘세바 인근, 중앙 산지, 그리고 요단 계곡이 대표적이다.
실로, 벧술, 여리고, 헤브론은 중기 가나안 시대에 견고한 성읍이었지만, 후기 가나안 시대에 이르라 작은 촌락으로 전락되었다.
텔 아줄(Tell el-Ajjul)과 텔 나길라(Tel Nagila)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다.
농사를 위하여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정착했던 사마리아 중앙 산지에서는 중기 가나안 시대의 수 많은 작은 도성들이 후기 가나안 시대에 들어서 사라졌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지역의 경제 구조가 농경에서 유목 생활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램고프나(RamGophna)의 연구에 의하면,  이 시대에 가나안은 크게 황폐되었고 도시의 수도 현저히 감소되었다.
특히 후기 가나안 시대의 초기인 주전16세기 이집트의 힉소스가 추방될 당시 가나안은 심각하게 유린되었다.
그러나 일부 지역에서 중기 가나안 시대의 주요 성읍들은 계속 남았다 (라기스, 게셀, 므깃도, 벧산, 하솔).
특히 하솔은 후기 가나안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성읍으로 남았다.
그리고 해안평야, 쉐펠라, 이스르엘, 벧산 골짜기 주변으로 작은 도시들이 많이 건설되었다.
당시 경제적인 한 주요활동은 해상무역이었다.
지중해 연안에 형성된 항구들로는 텔아부하밤(Tell Abu Hawam) 쉬크모나(Shiqmona), 텔나미(Tell Nami), 텔미갈(Tel Michal), 텔모르(Tel Mor)가 있다.) 후기 가나안 시대의 말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던 시대이다.

3. 이집트 시누헤 문서

애굽과 가나안 정착 시대보다는 앞선 때이지만, 가나안 땅에 대해 잘 표현된 고대 이집트의 시누헤 문서가 있다.
주전 20세기 초반에 속한 시누헤 문서에 나타난 가나안 땅에 대한 내용이다. 

그곳은 야(Yaa)라 부르는 땅이다.
그 곳에는 무화과와 포도가 가득하였다.
그곳에는 물보다 포도주가 흔하였다.
꿀은 넘치고 올리브는 풍부하였다.
각종 나무에는 온갖 종류의 실과들이 열렸다.
보리도 있었다.
양과 소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는 나를 그 땅의 가장 뛰어난 지파의 지도자로 삼았다.
매일의 양식으로 빵이 준비되었으며 포도주는 일용한 음료로 마련되었다.
나를 위하여 사막의 야생 고기 대신 (집에서 기른) 고기가 요리되었고 구워진 닭 요리가 내 식탁에 마련되었다. . . . .
나를 위한 온갖 종류의 음식이 마련되었고 우유로 만든 각종 요리들이 준비되었다 (ANET 18-22).

주전 20세기 초반의 시누헤 문헌에 야(Yaa)는 상당히 발달된 농경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야(Yaa)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올리브, 각종 나무에서 생산되는 실과, 탐스럽게 열린 포도송이들이 언급되었는데, 이것들은 가나안의 대표적인 농산물이다.

여기의 농산물들은 보통 늦여름에서 초가을에 수확하고, 밀, 보리는 늦봄에서 시작하여 여름 내내 추수하는 곡식이다.
학자들은 야(Yaa)의 위치를 갈릴리 호수의 동쪽, 골란 고원의 기름진 평야로 이해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해서 한 마디로 분명하게 정의하기는 어려워도 두리뭉실하게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이 표현이 성경에 처음 기록된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시기 위해 부르신 때이다.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출 3:17).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약속의 땅(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표현 방법이셨던 것이다.

그런데 그 땅은 일부 기름진 곳에서는 곡식을, 일부 척박한 곳에서는 가축을 돌보므로 젖을 구할 수 있는 땅이다.

아모스 7:14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요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로서

신명기 11:12
비옥한 땅과 척박한 땅이 첨예하게 공존하는 이 땅에 하나님의 시선은 늘 그곳에 있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신명기 11:14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지중해성 기후와 아열대성 기후가 교차되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건기의 여름과 우기의 겨울이 분명하게 구분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5월 중순경에 시작되는 여름 동안 이스라엘에는 비가 전혀 내리지 않고 고온 건조한 날씨만이 계속된다.
그러나 10월 중순경부터 시작되는 겨울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5개월 가까이 지속된다.
하늘의 비만을 의존하여 경작하는 이스라엘 농업은, 겨울 우기 동안만 가능한 셈이다.

겨울 우기 동안 내리는 비는 세 종류로 구분된다.

겨울이 시작되면서 내리는 이른 비(10월 경)와 겨울 우기가 끝나는 마지막 기간에 내리는 늦은 비(4월 경), 그리고 이 두 기간 사이에 내리는 겨울비 등이 그것이다.
겨울비를 장맛비라고도 부른다.

이 세 종류 가운데 가장 많은 양의 비가 겨울비이다.
이른 비와 늦은 비가 각각 전체 강우량의 15%에 불과한 반면, 겨울비는 70%를 차지한다.
그런데도 성경에서 양이 훨씬 적은 이른 비와 늦은 비가 강조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비록 강우량은 미미하지만, 그것이 농작물에 끼치는 영향과 중요성이 무척 크기 때문이다.
즉 이른 비가 내려야만 여름 동안 메말라 있던 땅이 젖고 부드러워져 파종이 가능하게 된다. 늦은 비는 겨울 우기 동안 자란 곡식들을 더욱 충실하게 맺게 하는 역할을 한다. 비록 적은 양이긴 하지만, 적당한 때에 내리는 이른 비와 늦은 비는 농작물 재배에 있어서 많은 양의 겨울비보다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이스라엘에서 비는 인간 삶과 직결된 필수적 요소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모두의 목이 타게 되어 있고, 삶은 가뭄으로 인하여 핍절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비를 내려 주신다는 것은 곧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가장 큰 은혜요 복이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의 은혜와 복 가운데 더욱 중요한 것은, ‘양’의 겨울비가 아니라 ‘질’의 이른 비와 늦은 비이다. 이것은 성경의 강조점이 양보다 기능과 역할에 있음을 보여준다. 성경이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주신다고 하신 것이 그 때문이다. ‘때’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에트’로서, ‘대답하다’를 의미하는 ‘아나’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곧 ‘에트’는 필요에 부합하는 최적의 때라는 뜻이다.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결정적 기회의 시간’을 의미하는 ‘카이로스’이다.

때를 따라 비가 내린다 하여도, 그것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은 아니다. 파종과 가꿈의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기회와 여건이 주어졌다 하더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기회를 활용할 줄 아는 지혜와 성실한 노력을 의미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것이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라”(신 28:12)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들에게 때를 따라 은혜와 복을 내려 주신다. 그런데 많은 경우 그런 은혜와 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결과까지도 주실 것이라는 일방적인 기대감을 갖고, 자신들이 해야 할 일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 주시는 것은, 우리에게 일할 수 있는 능력과 가능성을 열어 주신다는 뜻이다. ‘복’으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베라카’는 기본적으로 ‘생산성의 회복’을 뜻한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변함없이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우리에게 내려주신다. 그러나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도나 방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기회와 복을 거부하는 셈이 된다. 하나님의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겸손한 마음,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미래를 향하여 우리의 꿈을 정성껏 심고 가꾸는 성실한 손, 그리고 미래에 주어질 결실을 인내로 바라보며 기다리는 깊고 깨끗한 비전의 눈, 이것이 신앙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갖추어야 할 아름다운 모습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한국 성지순례객들이 이스라엘에 처음 와서 가장 많이 하는 질문 가운데 하나는 "어떻게 이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할 수 있나?"라는 것이다. 성서에서 표현하고 있는 이스라엘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메마르고 척박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스라엘 땅이 푸른 풀밭과 아름다운 들꽃으로 뒤덮혀 아름다울 때도 있다. 우기가 거의 끝날 무렵인 3월, 특히 중순께 사해 지역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칠고 메마른 유다 광야조차도 수천송이씩 무리지어 피어오른 푸르고 아름다운 형형색색의 들꽃들로 가장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한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광경도 4월에 들어서면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면서  급격히 사라진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좋은 땅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부터 버려야 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이 최초에는 목축을 하기에 좋은 땅을 의미하는 관용 표현이었다(민수 16,13 참조). 아브라함이 반 유목민이었음을 생각할 때, 하느님께서 아주 적합한 땅을 약속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아브라함이 벼농사를 짓는 농부였다면 하느님께서는 '기름이 흐르는 땅'(기름진 옥토)을 약속하셨을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은 가나안 땅을 다소 과장시켜 생산성이 좋은 땅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별히 사막 유목민들이나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먹을 음식이 풍부한 땅을 묘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성서에서는 젖과 꿀, 혹은 그러한 것에서 생산된 물품들을 매우 가치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젖과 꿀은 대표적 고단백질 음식이었다. '젖'이란 성서에서 목축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목축은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경제수단이었다.

이스라엘 땅 자체가 사막에 인접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목축은 이스라엘 여건에 적합한 경제수단이 되었다. 그래서 목축에서 대표적 동물이었던 양은 이스라엘 제사 제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제물이었다.

젖과 꿀로 만든 음식들은(2 사무 17,28 참조) 고대사회에서 중요하게 취급되는 교역 물품들이었고,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 봉헌되는 물건이기도 했다(2역대 31,5 참조).

 "무엇이 꿀보다 달겠느냐?"(판관 14,18 참조)는 표현처럼 성서는 달콤한 것을 비교하는 여러가지 표현에 꿀을 사용했다. 잠언에서 꿀은 즐거움과 건강함을 주는 선한 말에 비유되고 있다(잠언 16,24 참조).

그런가 하면 꿀은 또한 하느님 말씀(시편 19,10 참조), 지혜(잠언 24, 13 참조) 혹은 연인 사이의 아름다운 감정과 같이 다양한 즐거움과 유익함의 상징적 표현이었다.

이처럼 분명히 젖과 꿀은 고대사회에서 높이 평가되는 값진 물건들이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께서 양식으로 주셨던 만나는 그 맛이 벌꿀과자 맛 같다고 표현되고 있다(출애 16,31). 그래서 죄인들에게 젖과 꿀은 허락될 수 없는 양식이기도 했다(욥기 20,17 참조).

 그러나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넘쳐흐르는 비옥한 땅이라 할 때 이것은 이스라엘의 실제 지리적 상황과는 거리가 상당히 먼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땅에 관한 대표적 표현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이스라엘의 실제 현실과 더불어 이스라엘 민족의 다양한 역사 경험과 신앙 속에서 이해돼야 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은 좋은 땅을 의미하는 성서 히브리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가나안 땅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선조들에게 약속하신 거룩한 축복의 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나안 땅의 축복성은 땅의 풍요로움이라는 외형적 차원이 아니라 하느님과 신앙적 관계성이라는 차원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평화신문


https://www.cjob.co.kr/christianity/1392


질문: 이스라엘 성지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 (the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라고 하는데 그 뜻은 무엇인가요? (학술원 신학생)
답변: 이주섭 목사 (성서지리연구소, Atlanta, GA, USA_

팔레스틴을 여행하는 많은 사람들은 유대 광야와 네게브 사막을 지나는 동안 한가지 의문을 갖는다. 막연하게 상상했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약속의 땅은 매우 비옥할 것으로 생각했던 환상이 황량하고 메마른 지역들을 보면서 점차 흐려지기 때문이다. 이 표현,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다른 말로 기름지고 비옥한 땅이란 말로 이해해도 되는가?

이스라엘에서 성경의 역사 지리적인 배경을 공부하던 필자도 초기에는 그 의미가 사뭇 궁금했었다. 그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표현에 대한 주석학자들의 다양한 해석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독일학자인 벤징거(Benzinger)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리스의 신화적인 배경에서 신들의 음식인 젖과 꿀의 땅’으로 해석하였다. 벤징거는 가나안을 신들의 땅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레쓰만(Greβmann)은 이 표현은 ‘가나안을 낙원으로 이해한 상태에서 바벨론의 신화적인 요소가 반영된 것’이라 하였다. 그러면서 그레쓰만은 요엘 3:18절 (요엘3:28절: 그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 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 앙드레케커(André Caquot)는 위의 내용을 우가릿의 한 내용(ANET 140)과 연결시켜 이해했다.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가나안이 비옥한 땅이란 사실은 고대의 여러 문헌들만 아니라 (Sinuhe's story, Thutmose III's inscriptions) 성경에도 종종 나타난다(신4:21, 7:13, 8:7, 11:10, 28:3, 창13:10, 레26:4). 요세푸스의 기록이 나로마의 타키투스(Tacitus)의 역사책에도 나타난다.)과 아모스 9:13절(“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그 때에 밭가는 자가 곡식 베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에 근거하여 이것은 선지자들의 종말론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하였다.)

후트만(Houtman)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욥기 20:17절(그는 강 곧 꿀과 엉긴 젖이 흐르는 강을 보지 못할 것이요.)에 근거하여 시적 표현에서 비롯된 과장법으로써, 젖과 꿀이란 가나안의 대표적인 농산물로 이해하였다. 그래서 이 표현은 광야에서 40년을 생활했던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시각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성경학자요 랍비인 모쉐 데이빗 카수토(Moshe David Cassuto)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광야에 살았던 유목민들이 가나안 땅을 가리켜 처음 사용했던 표현으로, 그 의미는 목축을 통해서는 젖을 그리고 농업을 통한 각종 나무로부터 벌의 꿀처럼 많은 실과를 거둘 수 있는 배경에서 이해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의미는 확대되어 각종 실과를 풍성하게 소출하는 가나안 땅을 포괄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세가 보낸 12명의 정탐군들이 포도, 석류, 무화과 및 그 해의 소산들을 가져 오면서 보고하는 내용을 참고하면: 그 땅은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이것이 그 실과들입니다(민13:27).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저명한 유대 학자인 나훔 마타티아스 사르나(Nahum Mattathias Sarna)는 젖과 꿀이 흐르는 표현을 ‘가나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조심스럽게 해소하기 위해 사용된 표현’으로 이해하였다. 이 표현은 히브리 민족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시면서 말씀하신 약속의 땅에 대해 성경에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내가...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 이르려 하노라 (출 3:8).(이상하게도 약속의 땅에 대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는 이 표현을 한차례도 사용하지 않으셨지만 출애굽기3:8절 이후에는 자주 나타난다. 그래서 이 표현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시기는 후기 가나안 시대 곧 출애굽 직전에 제한된다. 사실 가나안이나 요단 동편에서 흉년이 발생할 때에는 이 지역에 생활하던 유목민들은 일시적으로 이집트의 델타지역으로 피신했던 경우는 고대 역사적인 문헌들을 통해 자주 대할 수 있다. 성경에도 그 예들이 많이 발견된다 (창12, 20, 26). 성경에서 꿀은 약 50번 정도 나타난다. 양봉에 의한 꿀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소아시아 지역에서는 일찍 생산되었지만 정작 성경에서 이 부분은 언급이 없다. 성경에서 꿀에 의한 꿀은 삼손과 요나단의 두 차례 기록되었을 뿐이다. 히브리어의 꿀에 해당되는 드바쉬는 벌에 의한 꿀과 과일 시럽 모두 의미한다(출43:11, 아5:1, 시81:16, 대하31:5, 삼하17:29, 사7:15, 22) 당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생활했던 나일강 삼각주 지역은 지역은 흉년을 피한 이주민들이 정착하기에 적합한 지역이었다.

성경의 역사 지리학자인 데니스 발리(Denis Baly)는 이 표현을 광야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의 시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가나안 땅이 꼭 비옥하다는 의미가 아닌 광야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괜찮은 땅’이란 표현으로 이해하였다. 민수기 16:13-14절에 기록되기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과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 (브엘세바 평야의 황량한 전경을 찍은 사진이다)
이렇듯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표현에 대해 학자들마다 다양한 주장들이 제기되었다. 비록 일부이지만 이 표현에 대한 대표적인 학자들의 의견들을 거의 망라하였다. 여기에 덧붙여 성경을 탐독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가나안 땅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표현이 사용되었던 후기 가나안 시대의 역사 지리적인 배경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1) 지정학적인 측면에서 가나안 땅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곧 가나안 땅은 상호 국제 무역을 주도할 수 있는 자연적인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이런 지리적인 이점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정착민들은 무역이 아닌 목축과 농사에 종사하였다. 국제 무역은 오히려 페니키아에서 활기를 띠었다. 성경에 기록된 가나안의 대표적인 산물들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마음을 윤택하게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시 104:15)이다. 열방들이 혹시 주의 백성들에게 조롱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할 때”에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시면서 이 땅으로부터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욜 2:17-19).( 위에 언급한 세가지 산물들에 대한 성경의 다른 기록들을 참고한다: 창27:28, 37, 신7:13, 11:14, 12:17, 14:23, 18:4, 28:51, 33:28, 왕하18:32, 대하31:5, 32:28, 느5:11, 10:39, 13:5,12, 시4:7, 사36:17, 애2:12, 호2:5, 8, 22, 욜1:10, 학1:11)

2) 후기 가나안 시대(Late Bronze Age)에 가나안 땅의 정착 인구는 이전에 비해 현저히 감소되었다. 네게브는 크게 황폐되었다. 중기 가나안 시대(Middle Bronze Age)에 번성했던 주요 성읍들은 대부분 파괴되고 황폐되었다. 특히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 곳은 브엘세바 인근, 중앙 산지, 그리고 요단 계곡이 대표적이다. 실로, 벧술, 여리고, 헤브론은 중기 가나안 시대에 견고한 성읍이었지만, 후기 가나안 시대에 이으러 작은 촌락으로 전락되었다. 텔 아줄(Tell el-Ajjul)과 텔 나길라(Tel Nagila)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다. 농사를 위하여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정착했던 사마리아 중앙 산지에서는 중기 가나안 시대의 수 많은 작은 도성들이 후기 가나안 시대에 들어서 사라졌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지역의 경제 구조가 농경에서 유목 생활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램고프나(RamGophna)의 연구에 의하면,  이 시대에 가나안은 크게 황폐되었고 도시의 수도 현저히 감소되었다. 특히 후기 가나안 시대의 초기인 주전16세기 이집트의 힉소스가 추방될 당시 가나안은 심각하게 유린되었다. 그러나 일부 지역에서 중기 가나안 시대의 주요 성읍들은 계속 남았다 (라기스, 게셀, 므깃도, 벧산, 하솔). 특히 하솔은 후기 가나안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성읍으로 남았다. 그리고 해안평야, 쉐펠라, 이스르엘, 벧산 골짜기 주변으로 작은 도시들이 많이 건설되었다. 당시 경제적인 한 주요활동은 해상무역이었다. 지중해 연안에 형성된 항구들로는 텔아부하밤(Tell Abu Hawam) 쉬크모나(Shiqmona), 텔나미(Tell Nami), 텔미갈(Tel Michal), 텔모르(Tel Mor)가 있다.) 후기 가나안 시대의 말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던 시대이다.

3) 비록 출애굽과 가나안 정착 시대보다는 앞선 때이지만, 가나안 땅에 대해 잘 표현된 고대 이집트의 시누헤 문서가 있다. 주전 20세기 초반에 속한 시누헤 문서에 나타난 가나안 땅에 대한 내용이다: 그곳은 야(Yaa)라 부르는 땅이다. 그 곳에는 무화과와 포도가 가득하였다. 그곳에는 물보다 포도주가 흔하였다. 꿀은 넘치고 올리브는 풍부하였다. 각종 나무에는 온갖 종류의 실과들이 열렸다. 보리도 있었다. 양과 소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는 나를 그 땅의 가장 뛰어난 지파의 지도자로 삼았다. 매일의 양식으로 빵이 준비되었으며 포도주는 일용한 음료로 마련되었다. 나를 위하여 사막의 야생 고기 대신 (집에서 기른) 고기가 요리되었고 구워진 닭 요리가 내 식탁에 마련되었다. . . . . 나를 위한 온갖 종류의 음식이 마련되었고 우유로 만든 각종 요리들이 준비되었다 (ANET 18-22).

주전 20세기 초반의 시누헤 문헌에 야(Yaa)는 상당히 발달된 농경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야(Yaa)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올리브, 각종 나무에서 생산되는 실과, 탐스럽게 열린 포도송이들이 언급되었는데, 이것들은 가나안의 대표적인 농산물이다. 여기의 농산물들은 보통 늦여름에서 초가을에 수확하고, 밀, 보리는 늦봄에서 시작하여 여름 내내 추수하는 곡식이다. 학자들은 야(Yaa)의 위치를 갈릴리 호수의 동쪽, 골란 고원의 기름진 평야로 이해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해서 한 마디로 분명하게 정의하기는 어려워도 두리뭉실하게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이 표현이 성경에 처음 기록된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시기 위해 부르신 때이다: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출 3:17).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약속의 땅(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표현 방법이셨던 것이다.
그런데 그 땅은 일부 기름진 곳에서는 곡식을, 일부 척박한 곳에서는 가축을 돌보므로 젖을 구할 수 있는 땅이다.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요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로서”(암7:14) 비옥한 땅과 척박한 땅이 첨예하게 공존하는 이 땅에 하나님의 시선은 늘 그곳에 있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신 11:12)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신명기 8:8
보리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들의 나무와 소산지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주요 산물은 밀, 보기, 포도, 무화과, 석류, 감람, 꿀이라고 하였다.


http://www.ck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482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의미(신명기 11:8-12)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을 것이며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그와 그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네가 들어가 얻으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대부분의 신자들, 아니 많은 목회자들마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젖과 꿀이란 당시로선 일용하는 필수 식품이 아니라 기호 식품 중에서도 상당히 고급스런 식품의 대명사입니다.
그래서 가나안을 아주 풍요로운 땅으로 쉽게 단정짓고는 예수를 믿고 나면 이전보다 생활 형편이 훨씬 나아지는 축복을 받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아주 잘못된 해석이자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의 본질과는 거리가 멉니다.

많이 생산된다는 의미로 "흐른다"라고 표현했듯이 가나안 땅의 주산물은 물론 젖과 꿀입니다만 땅 자체가 풍요롭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젖과 꿀이 주산품이라는 것은 목축과 양봉이 주산업이라는 의미인데 곡물을 심을 수없는 아주 척박한 땅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아리조나 사막 지역에 가보면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보호 구역이 곳곳에 있는데 너무 덥고 메마른 모래 땅이라 염소와 꿀벌을 치고 토산품을 만들어 파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바로 그런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그 정의를 어떻게 내리고 있습니까?

"파종한 후에 채소 밭에 발로 물대기"를 할 수 있는 애굽 땅과 비교했습니다.
수차(水車)를발로 저어 물을 댈 수 있는 비옥한 평지라 채소나 곡물을 심기만 하면 풍족하게 수확할 수 있는 곳입니다.
반면에 가나안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라고 합니다.
우선 채소와 곡물을 심을만한 평지가 거의 없습니다.
그나마 간혹 내리는 비가 대지를 적실 정도가 안 됩니다.
말하자면 인간이 일용할 주 식품인 곡물과 채소를 경작할만한 여건이 전혀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젖과 꿀을 칠 수밖에 없는데 이런 기호 식품은 양으로 따지면 조금만 생산해도 사실은 아주 많은 양이 됩니다.
기호식품이란 주 식품에 첨가해서 아주 적은 양을 섭취하는 것이고 또 매일 젖과 꿀만 먹고 살 수는 결코 없기 때문입니다.
쌀 수십만 톤과  꿀 1 톤이 먹일 수있는 사람 수를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나아가 당시의 경제적 형편과 식생활 습관을 감안하면 젖과 꿀은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최고급 식품입니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흐르는"이란 표현을 이해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도저히 사람이 살 데가 못되는 땅이 가나안입니다.

정작 신자가 관심을 쏟아야 할 부분은 "왜 그런 척박한 땅을 하나님은 오히려 축복의 땅이라고 약속하셨고 또 그 크고도 수많은 희생들을 거쳐서야 인도하셨는가?" 입니다.

애굽의 종살이 사백년과 가데스 바네야와 광야에서의 온갖 반역으로 인해 수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죽었지 않습니까?
그 중에 모세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 해답을 본문이 정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歲初-신년초)부터 세말(歲末-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척박하여 산물이 희귀한 땅이라 오히려 하나님이 일년365일 한 시도 떠나지 않고 항상 지켜 보호해 주시는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오히려 그런 땅을 당신의 백성에게 권고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여건이 풍족한 곳이 아니라 정반대의 땅으로 당신의 자녀들이 들어가 살기를 하나님은 원한다는 것입니다. 또 바로 그러하기에 세상 수단에 절대 의지하지 않고 오직 당신의 계명대로만 살아라고 합니다.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으로 선정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백성으로 선정한 이유와 완전히 동일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신 7:7)

신약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해주는 백성들의 모습도 동일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전 1:26)
        
한 마디로 신자가 되었다는 것, 믿음으로 산다는 의미는 주위 여건이 어떠하든 삶의 세밀한 구석부터 전 인생을 걸기까지 오직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에 의존하여 산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절대로 돈의 많고 적음이나, 사람들의 칭찬이나 멸시와, 환경의 풍족함이나 궁핍함에 굴복하지 않고 사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신 8:3) 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렇게 살면 젖과 꿀은커녕 마실  물마저 없는 광야에서 무려 40년을 방황해도 주리거나 갈하지 않고 의복이 헤어지지 않으며 발이 부릍지 않게 해줄 하나님이 세초부터 세말까지 항상 우리를 지켜봐 주십니다.

바로 이것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참 정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막상 가나안 땅에 들어가선 젖과 꿀을 싫컷 맛보았을지 몰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젖과 꿀과는 거리가 멀어져 버렸습니다.
어쩌면 40년간 방황하던 광야가 오히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지금 당신은 발로 물 대는 애굽 땅에서 우상을 숭배하고,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의 탐심을 좇아 살고(골 3:5) 있습니까?
진정한 젖과 꿀을 사모하기에 땅이 물을 흡수하는 험한 산과 골짜기에서 넘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손을 잡고 따라 가고 있습니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팔레스틴의 남쪽과 동쪽은 사막이며, 국토의 대부분은 광야와 거친 땅으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이곳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칭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이 땅을 ‘약속의 땅, 에레쯔 이스라엘, 하아레쯔, 이스라엘, 유다, 시온, 필리스티나, 성지’로 불렸던 이름들이 다양하다.

성경외 고대 근동의 역사에도 이 땅을 가리키는 명칭 또한 다양하게 나타난다.

하리우샤(Hariu-sha), 아모리의 땅(the land of Amurru), 레테누(Retenu), 자히(Djahi), 호리 족속의 땅(the land of Hurru), 가나안 땅(the Land of Canaan) 이 있다.

이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표현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만약 이 표현을 땅의 비옥도에 맞추어 생각하면 혼란에 빠진다.

팔레스틴은 외부적으로 보아 흠모할 만하거나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여건을 고루 갖춘 곳이 아니다.
팔레스틴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면 우리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표현이 결코 땅의 비옥도에 맞추어 사용된 표현이 아님을 곧 알게 된다.
왜냐하면, 국토의 절반을 사막이 차지하며, 남아 있는 땅 가운데서도 중앙산지의 거의 대부분은 황량한 바위로 이루어져 있고, 식물이 자라기 어려운 환경에, 중앙 산지의 남쪽 절반은 유대 광야가 차지하고 있음으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지울 수 없는 이런 의구심으로 많은 학자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표현에 주목하여 나름대로 자신들의 의견들을 피력하였다.

독일학자인 Benzinger는, 그리스의 신화적인 배경에서 젖과 꿀을 신들의 음식으로 이해하였다.

Greβmann은 주장하기를, 이 표현은 가나안을 낙원으로 묘사한 전체적인 흐름 가운데 바벨론의 신화적인 요소가 반영된 것이라 하였다. 그러면서 Greβmann은 요엘 3:18아모스 9:13에 근거하여, 이것은 종말론적인 선지자들의 표현으로 주장하였다.

Houtman욥기 20:17 에 근거하여 시적 표현에서 비롯된 과장법으로써 젖과 꿀은 가나안의 대표적인 농산물로 이해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 같은 표현이 나타나게 된 배경은 사막에서 생활하였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고대 근동의 시각에서 바라 보아야 한다고 전제하였다.

Cassuto의 입장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광야에서 생활하였던 유목민들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된 표현으로 목축을 통해서는 젖을 그리고 사람의 손길을 거쳐 각종 나무로부터는 큰 수고를 하지 않고도 꿀벌의 꿀처럼 많은 실과를 거둘 수 있다는 배경에서 사용된 말로 이해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의미는 보다 확장되어 각종 풍부한 실과를 생산하는 가나안 땅을 포괄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는 견해이다.

N. Sarna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가나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조심스럽게 해소하기 위해 사용된 반어적인 표현으로 이해하였다.

이것은 야곱의 후손들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할 때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의 땅에 대한 형용사적인 표현으로 처음으로 사용되었는데(출 3:8)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활하였던 델타 지역은 야곱이 가족들을 이끌고 흉년을 피하기 위해 이주한 지역으로써 정착하기에 매우 적합한 지역이었다.

D. Baly는 이 표현은 사막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가나안이 절대적으로 비옥하다는 의미가 아닌 사막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괜찮은 땅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이다(민 16:13-14).

이것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의견들이다.

앞서 소개한 여러 내용과 함께 성경에서 말하는 가나안 땅의 전반적인 흐름은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가나안은 지정학적인 측면에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중간에 위치하면서 국제간 무역을 이룰 수 있는 자연적인 여건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런 지리적인 여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주민들은 무역 보다는 주로 목축과 농사에 종사하였다. 무역은 오히려 페니키아에서 활기를 띠었다. 성경이 말하는 가나안의 대표적인 산물은 세 가지로 축약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마음을 윤택케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시 104:15)이다. 열방들이 혹시 주의 백성들을 조롱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있느냐?" 할 때에 YHWH께서는 백성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시면서 이 땅으로부터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욜 2:17-19)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둘째, 후기 가나안 시대에 들어 팔레스틴의 인구는 이전에 비해 현저히 감소하였다.

네게브와 같은 지역들은 크게 황폐되었으며 중기 가나안 시대의 중요한 도시들은 전부 파괴 또는 부분적으로 황폐되었다. 특히 브엘세바 골짜기(Beersheba valley), 중앙 산지(central hill country), 요단 계곡(Jordan valley)이 대표적이다. 실로, 벧술, 여리고 그리고 헤브론은 중기 가나안 시대에 견고한 도시였으나 후기 가나안 시대에 들어 매우 열악한 도시로 전락하였다. Tell el-Ajjul과 Tel Nagila 역시 같은 입장에 처하였다. 농사를 위하여 형성된 에브라임과 므낫세 산지에서는 중기 가나안 시대의 많은 조그만 성읍들이 후기 가나안 시대에는 거의 모두가 사라졌다. 아마도 그 이유는 이 지역 사람들의 경제 구조가 농경에서 유목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으로 이해한다.

비록 후기 가나안 시대는 아니지만 주전 20세기에 속한 고대 이집트의 시누헤 이야기를 일부 소개하면: 그곳은 Yaa라 부르는 땅이었다. 그 땅에는 무화과와 포도가 그득하였다. 그곳에는 물보다 포도가 더 흔하였다. 꿀은 넘치고 올리브는 풍부하였다. 각종 나무에는 온갖 종류의 실과들이 있었다. 보리도 있었다. 양과 소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는 나를 그 땅의 가장 뛰어난 지파의 지도자로 삼았다. 매일의 양식으로 빵이 준비되었으며 포도주는 일용한 음료로 마련되었다. 나를 위하여 사막의 야생 고기 대신 (집에서 기른) 고기를 요리하였고 구워진 닭은 내 앞에 진설되었다....... 나를 위한 온갖 종류의 음식을 만들었으며 우유로 각종 요리들이 마련되었다 (ANET 18-22).

기록으로 보아 시누헤가 머문 장소는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른 발달된 농경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이야기 중에서 연중 생산되는 농산물은 올리브와 온갖 종류의 실과가 열린 나무들, 탐스럽게 열린 포도송이들로써 이것들은 가나안의 산지에서 생산되는 대표적인 농산물이다. 이 농산물들은 보통 늦여름에서 초가을에 추수한다. 그리고 밀, 보리들은 늦 봄에 시작 여름 내내 추수하는 곡물들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의 통일된 사회 구조를 엿 볼 수 있다. 시누헤 이야기와 비슷한 표현이 성경에서 발견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곳은 골짜기에든지 산지에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들의 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너의 먹는 식물의 결핍함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라 (신 8: 7-10).

밀과 보리는 골짜기에서 생산되며 포도와 무화과 석류, 감람은 산지에서 생산되는 가나안의 대표적인 산물이다. 여기에서 꿀이란 꿀벌에 의한 꿀과 함께 종려 나무의 열매로부터 얻는 시럽일 가능성이 크다. 히브리어로 꿀이란 ‘드바쉬’인데 우리의 조청과 같은 과일 시럽을 꿀(드바쉬)이라 불렀다. 종려 나무로부터 얻을 수 있는 꿀은 요단 계곡과 사해 주변에서 생산되는 대표적인 농산물이다.

또 다른 예를 다윗의 관료들을 열거한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대상 27:25-31).

아스마웨는 왕의 곳간을 맡았고... 요나단은 밭과 성읍과 촌과 산성의 곳간을 맡았고... 에스리는 밭가는 농부를 거느렸고... 시므이는 포도원을 맡았고... 삽디는 포도원의 소산 포도주 곳간을 맡았고... 바알하난은 평야의 감람나무와 뽕나무를 맡았고... 요아스는 기름 곳간을 맡았고... 시드래는 사론에서 먹이는 소떼를 맡았고... 사밧은 골짜기에 있는 소떼를 맡았고... 오빌은 약대를 맡았고... 예드야는 나귀를 맡았고... 야시스는 양떼를 맡았으니...

이상에서 우리가 살펴본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다양한 관점에서 서로 다른 해석을 가져올 수 있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작지만 그러나 고대 문명이 교차되는 이 땅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기업으로 주셨고 이 땅에서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성경은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성경을 보다 자세히 그리고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이 땅에 관심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팔레스틴을 여행하는 많은 사람들은 유대 광야와 네게브 사막을 지나는 동안 한 가지 의문을 갖는다.

막연하게 상상했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약속의 땅은 매우 비옥할 것으로 생각했던 환상이, 황량하고 메마른 지역들을 보면서 점차 흐려지기 때문이다.

이 표현,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다른 말로 기름지고 비옥한 땅이란 말로 이해해도 되는가?

이스라엘에서 성경의 역사·지리적인 배경을 공부하던 필자도 초기에는 그 의미가 사뭇 궁금했었다.
그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표현에 대한 주석학자들의 다양한 해석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독일학자인 벤징거(Benzinger)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리스의 신화적인 배경에서 신들의 음식인 젖과 꿀의 땅”으로 해석하였다. 벤징거는 가나안을 신들의 땅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레쓰만(Greβmann)은 이 표현은 “가나안을 낙원으로 이해한 상태에서 바벨론의 신화적인 요소가 반영된 것”이라 하였다.
그러면서 그레쓰만은 요엘 3장 18절과 아모스 9장 13절에 근거하여 이것은 선지자들의 종말론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하였다.



후트만(Houtman)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욥기 20장 17절에 근거하여 “시적 표현에서 비롯된 과장법으로, 젖과 꿀이란 가나안의 대표적인 농산물”로 이해하였다.
그래서 이 표현은 광야에서 40년을 생활했던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시각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성경학자요 랍비인 모쉐 데이빗 카수토(Moshe David Cassuto)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광야에 살았던 유목민들이 가나안 땅을 가리켜 처음 사용했던 표현으로, 그 의미는 목축을 통해서는 젖을, 그리고 농업을 통한 각종 나무로부터 벌의 꿀처럼 많은 실과를 거둘 수 있는 배경에서 이해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의미는 확대되어 각종 실과를 풍성하게 소출하는 가나안 땅을 포괄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저명한 유대 학자 나훔 마타티아스 사르나(Nahum Mattathias Sarna)는 젖과 꿀이 흐른다는 표현을 “가나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조심스럽게 해소하기 위해 사용된 표현”으로 이해하였다.
이 표현은 히브리 민족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시면서 하신 말씀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내가 …(중략)…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중략)… 이르려 하노라”(출 3:8). 당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생활했던 나일강 삼각주 지역은 지역은, 흉년을 피한 이주민들이 정착하기에 적합한 지역이었다.  
 
성경의 역사·지리학자인 데니스 발리(Denis Baly)는 이 표현을 광야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의 시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가나안 땅이 꼭 비옥하다는 의미가 아닌, 광야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괜찮은 땅”으로 이해하였다. 민수기 16장 13-14절에 기록되기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이 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과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



이렇듯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표현에 대해 학자들마다 다양한 주장들을 제기했다.
비록 일부이지만 이 표현에 대한 대표적인 학자들의 의견들을 거의 망라하였다.
여기에 덧붙여 성경을 탐독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가나안 땅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표현이 사용되었던 후기 가나안 시대의 역사·지리적인 배경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1. 지정학적인 측면

가나안 땅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곧 상호 국제 무역을 주도할 수 있는 자연적인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이런 지리적인 이점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정착민들은 무역이 아닌 목축과 농사에 종사하였다. 국제 무역은 오히려 페니키아에서 활기를 띠었다. 성경에 기록된 가나안의 대표적인 산물들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마음을 윤택하게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시 104:15)이다. 열방들이 혹시 주의 백성들에게 조롱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할 때”에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시면서 이 땅으로부터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욜 2:17-19).

2. 후기 가나안 시대(Late Bronze Age)

가나안 땅의 정착 인구는 이전에 비해 현저히 감소되었다. 네게브는 크게 황폐되었다. 중기 가나안 시대(Middle Bronze Age)에 번성했던 주요 성읍들은 대부분 파괴되고 황폐되었다. 특히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 곳은 브엘세바 인근, 중앙 산지, 그리고 요단 계곡이 대표적이다. 실로, 벧술, 여리고, 헤브론은 중기 가나안 시대에 견고한 성읍이었지만, 후기 가나안 시대에 이르러 작은 촌락으로 전락되었다. 텔 아줄(Tell el-Ajjul)과 텔 나길라(Tel Nagila)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다. 농사를 위하여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정착했던 사마리아 중앙 산지에서는 중기 가나안 시대의 수많은 작은 도성들이 후기 가나안 시대에 들어서 사라졌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지역의 경제 구조가 농경에서 유목 생활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후기 가나안 시대의 말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던 시대이다.  

3. 출애굽과 가나안 정착 시대보다는 앞선 때이지만,

가나안 땅에 대해 잘 표현된 고대 이집트의 시누헤 문서가 있다.
주전 20세기 초반에 속한 시누헤 문서에 나타난 가나안 땅에 대한 내용이다.

“그곳은 야(Yaa)라 부르는 땅이다. 그 곳에는 무화과와 포도가 가득하였다. 그곳에는 물보다 포도주가 흔하였다. 꿀은 넘치고 올리브는 풍부하였다. 각종 나무에는 온갖 종류의 실과들이 열렸다. 보리도 있었다. 양과 소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중략)… 그는 나를 그 땅의 가장 뛰어난 지파의 지도자로 삼았다. 매일의 양식으로 빵이 준비되었으며 포도주는 일용한 음료로 마련되었다. 나를 위하여 사막의 야생 고기 대신 (집에서 기른) 고기가 요리되었고 구워진 닭 요리가 내 식탁에 마련되었다. …(중략)… 나를 위한 온갖 종류의 음식이 마련되었고 우유로 만든 각종 요리들이 준비되었다”(ANET 18-22). 
 
주전 20세기 초반의 시누헤 문헌에 야(Yaa)는 상당히 발달된 농경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야(Yaa)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로는 올리브, 각종 나무에서 생산되는 실과, 탐스럽게 열린 포도송이들이 언급되었는데, 이것들은 가나안의 대표적인 농산물이다. 여기의 농산물들은 보통 늦여름에서 초가을에 수확하고, 밀, 보리는 늦봄에서 시작하여 여름 내내 추수하는 곡식이다. 학자들은 야(Yaa)의 위치를 갈릴리 호수의 동쪽, 골란 고원의 기름진 평야로 이해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해서 한 마디로 분명하게 정의하기는 어려워도 두루뭉수리하게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이 표현이 성경에 처음 기록된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시기 위해 부르신 때이다: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출 3:17).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약속의 땅(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표현 방법이셨던 것이다. 그런데 그 땅은 일부 기름진 곳에서는 곡식을, 일부 척박한 곳에서는 가축을 돌봄으로 젖을 구할 수 있는 땅이다. 비옥한 땅과 척박한 땅이 첨예하게 공존하는 이 땅에, 하나님의 시선은 늘 있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신 11:12).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