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 / God's Mind & Man's Mind(마태복음 16:23)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마태복음 16:23) 
God's Mind & Man's Mind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But He turned and said to Peter, "Get behind Me, Satan! You are a stumbling block to Me; for you are not setting your mind on God's interests, but man's.

(도입 이야기)

스토코프스키(Stokovsky)는 런던 출생의 폴란드계 교향악단 지휘자로 유명하다.
그는 1905년 미국으로 건너가 교향악단을 지휘했고 1912년~1936년 까지 필라델피아 상임 지휘자로 활동했다.
그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때 있었던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그가 어느 날 베토벤의 오버츄어(overture)란 곡을 연주하게 되었다.
이 곡은 연주 도중에 무대에서가 아니라 관중석 뒤쪽에서 트럼펫 솔로 연주가 나오게 되어 있다.
일종의 깜짝 연주인 것이다.
스토코프스키는 멋진 폼으로 신나게 지휘봉을 휘두르고 있었다.
관현악단은 우렁찬 화음을 만들어냈고 이윽고 관중석 2층에서 트럼펫 연주가 시작될 순간이었다.
지휘자는 관중석 쪽으로 획 몸을 돌려 트럼펫 연주자에게 연주 시작을 지시하였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선 고요한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이게 웬일인가?
지휘자의 얼굴은 순간 불을 퍼부었다.
결국 그날의 관현악 연주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그럼 트럼펫 연주자는 어찌된 것일까?
그는 엉뚱한 봉변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전에 연락이 되지 않아서였는지 그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던 수위가 트럼펫을 들고 관객석 뒤로 올라가는 연주자의 팔을 뒤로 비틀어 꼼짝도 못하게 하면서 의기양양해 있었다.

“이 미친 녀석아 !
네가 오늘 연주를 방해하여 망치려고 작정한게지 어림도 없다.
이런데서 나팔을 불도록 내가 그대로 버려둘 줄 알았니?”
수위는 자기 나름대로 필라델피아 교향악단을 위해 큰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은 그날의 연주를 망쳐버린 장본인은 바로 그 수위였던 것이다.

수위는 수위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연주회를 위해서는 수위가 한 일은 결코 칭찬 받을만한 일이 아니다.
큰 그림으로 보면 수위가 한 일은 잘못된 일이었다.
그러나 수위라는 자리에서 보면 아주 잘 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문제는 소통이라고 하겠습니다.

(전개 이야기)

어느 날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을 지나시다가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셨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예, 선지자 중에 하나라고 하던데요.”
“그럼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예,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베드로의 대답이었다.
예수님은 이 대답을 들으시고 베드로를 칭찬하셨다.

1. 바요나 시몬아 이것을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다.
2. 네 이름을 이제부터 베드로라고 부를 것이다.
3.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
4. 하늘 문을 열고 닫는 열쇄를 주리니 땅에서 열면 하늘에서 열리고, 땅에서 닫으면 하늘에서도 닫히리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 사건 후에 곧바로 예수께서 비로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할 것을 예고하셨다.
그러자 이에 조금 전에 분에 넘치는 칭찬을 들었던 베드로가 주님께 말하기를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님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그러자 주님은 그런 베드로를 향하여 심하게 꾸짖으시며 말씀하시기를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라고 책망하셨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일은 무엇이고, 사람의 일은 무엇인가?
베드로는 순간적으로 그것을 분간하지 못했다.
주님을 감동시킨 탁월한 신앙고백으로 반석이라는 분에 넘치는 칭찬을 들었던 베드로가 순간 사단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 전락했던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은 사실 종이 한 장 차이처럼 가깝다.
일 년 52주 휴가도 반납한 채 교회에서 땀 흘려 봉사하며 일하는 성도들이나 교단을 위해 일하는 사역자들 중에 애초부터 사람의 일을 하겠다고 작정하는 사람들은 없다.
너도나도 모두가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며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러나 뼈 빠지게 열심히 일 했다고 할지라도 사람의 일에 최선을 다했다면 그 일은 결국 문제만 남기고 말게 된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할 거룩한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았다면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구별할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 10:31)

(적용을 위한 이야기)

일이란 영어 단어에서 work가 아니라 mind라고 합니다.
일을 마치 사람이 무슨 행동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안 될 것입니다.

참조 마가복음 8: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나님의 일...사람의 일

- 베드로는 하나님의 일, 즉 하나님께서 이미 계획하시고 섭리한 바대로 예수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수난받고 죽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21절), 사람의 일,곧 예수가 수난의 현장에 가면 안된다는 생각에 집착(執着)했던 것입니다.

실로 그는 철저히 인간의 이성에 근거하여 세속적 관점에서 예수의 수난 사건을 평가함으로써 결국 예수에게 크나큰 수치와 장애를 안겨 주고 말았습니다(Chrysostom).

일 -  5426. φρονέω 

1. 생각하다,  2. ~에 몹시 마음을 두다,  3.생각을 가지다
발음  / 포르네오(phrŏnĕō)
어원 / 미완료 ἐφρόνουν, 미래 φρονήσω, 제1 부정과거 ἐφρόνησα, 5424에서 유래
관련 성경 / 생각하다(롬 8:5, 빌 1:7, 골 3:2), 여기다(롬 14:6), 뜻이 같게 하다(롬 15:5), (서로에게) 마음을 기울이다(롬 12:16, 빌 2:2, 5), [명] 사상(행 28:22)
신약 성경 / 26회 사용

* 5424. φρήν, φρενός, ἡ
1. 생각,  2. 이해,  3. 고린도전서 14:20
발음  / 프랜(phrēn)
어원 / 복수 αί φρένες, φράω ‘고삐를 매다’에서 유래
관련 성경 / 지혜(고전 14:20).
신약 성경 / 2회 사용

예수를 바르게 잘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다!


요한복음 6:28-29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
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Therefore they said to Him, "What shall we do, so that we may work the works of God?"
Jesus answered and said to them, "This is the work of God, that you believe in Him whom He has sent.


예수를 바르게 잘 믿으려면?

마태복음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하라
자기 십자가를 지라

로마서 15:17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히브리서 2:17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역대상 24:5
이에 제비 뽑아 피차에 차등이 없이 나누었으니 이는 성소의 일을 다스리는 자와 하나님의 일을 다스리는 자가 엘르아살의 자손 중에도 있고 이다말의 자손 중에도 있음이라.

시편 64:9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며 그 행하심을 깊이 생각하리로다.

전도서 11:5
바람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 것을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요 6:29).

예수님은 벳새다 마을의 빈들에서 5,000명 이상의 무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신 후 배고픈 무리를 위하여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다(마 14:13-21; 막 6:30-44; 눅 9:10-17; 요 6:1-14). 특히 누가복음 9장 11절은 오병이어의 기적 이전에 무리를 향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야기하며, 병자들을 고치셨다고 기록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무리를 배불리 먹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예수님이 바로 모세가 예언한 그 선지자요,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이심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의도와 다르게 떡을 먹고 배부른 것에 만족하여 다시 그 목적으로 예수님을 찾았다. 예수님을 찾을 때 당시 유대인처럼 먹을 것이 목적이 아니라,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자신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찾는 것이 우리의 물질적인 복과 잘 먹고 잘살기 위한 목적이라면 당시 유대인이 예수님을 찾았던 목적과 차이가 없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말씀하셨다(요 6:27). 그 말씀을 듣고 무리는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요 6:28) 라고 질문을 하였다. 그때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 6:29)며,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명백히 밝혀 주셨다.

여기서 “믿는다”라는 것은 헬라어로 “피스튜에테”라는 단어로 지속적인 믿음의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즉 예수님을 믿음으로 계속해서 그분의 통치와 인도하심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오신 예수님을 환영하고 영접하며, 그분의 통치와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거나 스스로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면서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였다. 대표적으로 사울은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으로 교회를 박해하고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감옥에 보내기도 하였다(행 22:3-4; 빌3:5-6).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믿고 사람들이 제자들을 박해할 것이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요 16:2). 이처럼 예수님을 찾지만, 그것이 자신의 필요를 위한 목적 또는 잘못된 신념으로 인한 열심은 하나님의 일과는 상관이 없다.


예수동행일기 제자훈련인 “With Jesus Ministry” 운동을 하는 유기성 목사는 설교를 통해 “조심스럽지만, 꼭 드려야 할 말씀이 있다. 주님과의 관계보다 더 중요하고 바쁜 것은 다 우상”이라고 했다. 또 “사람들이 칭찬하고 부러워해도, 주님과의 관계가 메말라 있다면 무슨 만족이 있겠나”라며, “주님이 낯선 분인 것을 너무 늦게 깨닫게 된다면 이보다 두려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하나님과 관계 없는 일들은 우상이 될 수도 있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우선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주어진 일이 진정한 하나님 일이 될 수 있다. 마태복음 10:41-42에 선지자의 이름, 의인의 이름이나 제자의 이름으로 영접하거나 냉수 한 그릇을 주어도 상이 있다고 한 것은 어떤 일을 한 것보다 예수님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 믿음으로 행한 일들이 하나님께 의미 있음을 말해 준다.

헨리 블랙바기 목사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를 하나님의 일에 어떻게 동참케 하시는지 성경적인 원리를 가르쳐 준다. 그중 가장 중요한 원리가 하나님은 자녀와 친밀한 관계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알리시고 초청하신다는 내용이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은 자기 일을 도와주시기 위해 존재하시는 것처럼 생각하고 기도하는 경향이 있다. 마치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생각하여 천동설을 믿는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고 주권자 되시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알아 그분의 일에 동참해야 한다.

하나님은 실존하셔서 역사하시고 당신의 일에 사람들을 참여시킬 때에 주도권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과 길을 아는 것이 필수이다. 로렌스 형제는 『하나님의 임재 연습』에서 우리가 어떤 사람과 친밀해지려면 그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친밀해지려면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고 그분을 계속 생각하라고 한다. 하나님은 그가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이미 계획하시고 역사하시는 일을 우리의 마음에 소원을 두고 기도하게 하신다(빌 2:13).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하나님의 일이 되는 이유이다. 스바냐 3장 7절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를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말씀하시는데, 자녀가 하는 일로 인해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 기뻐하고 사랑하는 분이심을 알려 준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 3:17).

예수님께서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하신 데는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무디(D. L. Moody)는 “인간은 깨어진 그릇과 같으므로 계속 충만하게 되는 방법은 물이 쏟아지는 수돗물 아래 그 깨어진 그릇을 가져다 놓는 방법밖에 없다.”라면서, 깨어진 존재 같은 우리가 채움을 받기 위해서는 날마다 십자가 앞으로 성령님을 의지해 나가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십자가 앞에서의 회개는 관계 회복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칼빈은 회개가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로 속죄와 중생의 체험을 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경험한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회개한 자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으신다고 하였다(히 8:12; 10:17). “기억하지 않겠다”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나의 모든 죄와 또 내가 일평생 싸워야 할 죄의 본성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정죄함에 이르지 않게 하신다는 의미이다. 

회개와 믿음은 회복된 관계로 귀결된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은 나 자신의 필요를 위한 목적도 아니고, 하나님을 위한다고 스스로 쌓아 올린 업적도 아니다. 예수님 자신이 목적이 되고,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의 일은 예수님을 믿는 것(The work of God is to believe in Jesus).
요한복음 6:29


요 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Jn 6:29, NIV) Jesus answered, "The work of God is this: to believe in the one he has sent."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야”
교회학교 교사, 성가대 봉사, 전도와 선교만이 하나님의 일인 줄 알았는데 예수님은 근본적인 것을 말씀하신다.
그렇다.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역사이다.
성령이 아니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고 시인할 수 없다. (고전 12:3)
    
예수 믿는 것은 예수님을 내 안에 주인으로 모시는 것, 영접하는 것이다(요 1:12)
믿음은 지적동의나 신념이 아닌 관계이다. 예수님을 내 안에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을 주인으로 모시며 동행하는 삶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그것이 바로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이다.



오병이어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은 다음 날도 예수님을 찾습니다.
제자들과 같이 바다를 건너지도 않으신 예수님이 어디에도 없자,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와서까지 예수님을 만납니다.
참 열심입니다. 사람들은 병자를 고치시고 5000명을 기적적으로 먹이신 분이라면 개인적으로는 건강 걱정이나 생계 걱정은 하지 않고 살 수 있을 거란 기대를 가졌을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전체적으로는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아, 정치적∙민족적 해방 왕으로서 이스라엘에 풍요와 영광을 가져오는 부푼 꿈에 열렬히 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람들을 향해, 표적을 보았지만 표적이 의미하는 것을 모른다고 말씀하십니다.
썩을 양식을 구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하는 양식을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건지 묻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영생에 이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문합니다.
사실 그들은 여전히 세상의 배부름, 썩을 양식에 관심이 있었고 영생에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기대와는 달리,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인 자신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 믿는 믿음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대답하십니다.

율법 준수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생각을 가진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또 다른 지켜야 할 규례를 말씀하실지 귀를 기울였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일이란 율법을 준수하며 의로운 행위를 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의로운 행위를 통해 인정하신다는 생각을 하며 과연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건지 묻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행위로 인해 드러나는 것이 아닌, 하나님 그분 자신이 하시는 일에 초점을 맞추십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과의 계속적인 교제를 통한 ‘자람’입니다. 단순히 예수님을 영접함에 그치는 것이 아닌, 말씀의 순종과 삶의 성숙과 성화로 그리고 마침내 영생의 영광인 영화로 이어지는 성도의 신앙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이 모든 것을 고백하는 것이며, 우리의 행위로서가 아닌 하나님께서 성도를 향해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우리의 열심은 과연 어디에 기초를 두고 있는지요? 유대인들처럼 열정적으로 예수님을 찾아 다녔지만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세상의 떡을 구하며 헤매는 모습은 없는지요? 실제로 예수님을 따르던 유대인들은 이후 기적 자체만을 구하다가 많은 수는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떠납니다(요6:66).

무언가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일을 해야 하나님이 의롭다 여기시며 축복해주시는 것은 아닌가 해서, 의무감과 부담감으로 자유함을 잃어버리고 살지는 않는지요? 반대로 열심히 봉사한 만큼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고 이 땅의 물질적 풍요로움으로 갚아 주실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지는 않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