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혈, 십자가,


주 보혈(主 寶血)
주 보혈이란 예수의 피를 의미합니다.
물론 보혈이란 단어가 성경에는 없습니다.
성경에도 없는 '보혈'이란 단어를 즐겨 사용하는 이유는 예의 피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인류의 죄를 속죄하고 생명을 주는 가장 귀하고 존귀한 희생의 피가 되었기 때문에 한국교회에서 성경의 신학적 의미를 담아 사용하는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보혈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신약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베드로전서 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but with the precious blood of Christ, a lamb without blemish or defect.  

"보배로운"에 해당하는 헬라어 '티미모스(timios. τίμιος)'는 "귀한, 값진, 존귀한,  최고의 가치를 가진" 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에서는 이를 자연스럽게 "보혈"이라고 번역하여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보혈이란 한문자의 훈(訓)은 '보배 보(寶)' '피 혈(血)'이라고 하여 "보배로운 피" "가장 귀한 피" "값으로 헤아릴 수 없는 피"라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보배로운"은 헬라어 τίμιος (timios) 이며, 귀한, 값진, 존귀한,  최고의 가치를 가진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이를 자연스럽게 보혈이라고 번역하여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피를 '보혈'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한 인간의 피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완성한 피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τίμιος, α, ον Storng number 5093  
Pronunciation  [ timiŏs ]  
Etymology /  5092에서 유래  

I. 값있는, 가치있는, 고귀한, 
  1. [물건에 대해]  
    a. 값진, 귀한, 고전3:12, 계17:4.  
    b. 매우 가치있는, 귀중한, 약5:7, 벧전1:19, 벧후1:4.  
    c. 귀하게 여김 받는, 히13:4.  

  2. [사람에 대해] 존경받는, 행5:34.

 관련 성경  /  존경받는(행5:34), (귀중한)(고전3:12, 계17:4, 21:19), 귀한(행20:24), 귀히 여기는(히13:4), 보배로운(벧전1:19, 벧후1:4).


 2. 성경은 '보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가?

성경 원문에는 "보혈"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신약에서는 대부분 αἷμα (haima)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 αἷμα = 피
  • 혈액
  • 생명을 나타내는 피

그러나 이 피가 예수님의 피일 때는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예를 들어,  "그의 피" "그리스도의 피" "어린양의 피"라고 표현하면서 그 피의 구속적 의미를 강조합니다. 

3. 왜 예수님의 피가 그렇게 귀한가?  

(1) 죄 사함을 이루는 피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9:22

구약에서도 죄를 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가 필요했습니다. 
이는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레위기 17:11

예수님의 피는 구약의 모든 희생 제사를 완성한 단 한 번의 영원한 제사입니다.  

(2)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피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골로새서 1:20

죄로 인해 단절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예수님의 피가 회복시켰습니다.  

(3)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피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7

여기서 "깨끗하게 하다"는 헬라어 καθαρίζει (katharizei)이며, 
  계속 깨끗하게 하다, 정결하게 하다, 죄의 오염을 제거하다  

(4) 새 언약을 세우는 피

예수님은 성만찬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28

예수님의 피는 새 언약의 기초가 됩니다. 

4. 왜 "보배로운 피"인가?

예수님의 피는 죄를 사함, 양심을 깨끗하게 함, 하나님과 화목하게 함, 사탄의 권세를 이김, 새 언약을 세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함이라는 놀라운 효력을 지니므로, 교회는 이를 보혈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5. 보혈 신앙의 핵심

예수님의 보혈은 단순히 과거 십자가 사건을 기억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 피를 통해 믿는 자가 지금도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 죄 사함 :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에베소서 1:7)
  • 의롭다 하심 :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로마서 5:9)
  • 담대함 :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브리서 10:19)
  • 승리 : "그들이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 그를 이겼으니"(요한계시록 12:11)   

    정리  
  • '보혈'은 성경 원문에 있는 단어는 아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가장 귀하고 값진 구원의 피라는 성경적 진리를 담아 한국교회에서 사용해 온 신앙적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단순한 육체의 피가 아니라, 죄 사함과 구속, 하나님과의 화목, 새 언약, 영원한 생명을 이루신 "보배로운 피"(τίμιον αἷμα, timion haima)이기에 '보혈'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보혈'은 성경 원문(히브리어·헬라어)에 있는 단어가 아니라, 교회가 예수님의 피의 가치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신앙적 용어입니다. 

    2. 성경은 왜 예수의 피를 특별하게 말하는가?

      (1) 죄 사함을 이루는 피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언약의 피니라."(마태복음 26:28) 
      여기서 "피"는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새 언약을 세우는 피입니다.

       (2) 생명을 대신한 피

     구약에서는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레위기 17:11)

    히브리어  / דָּם (dam) = 피 
    피는 생명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는 생명을 내어주신 희생을 뜻합니다.  

      (3) 죄를 깨끗하게 하는 피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한일서 1:7)

      헬라어  /  αἷμα (haima) = 피

    καθαρίζει (katharizei) = 깨끗하게 하다, 계속 정결하게 하다

    예수의 피는 죄책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선포됩니다.   

      3. 왜 '귀한 피'인가?  

      베드로의 설명  

      "너희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1:18-19)

     여기서 τίμιος (timios)는  귀한,  값비싼,  존귀한,  매우 가치 있는 이라는 뜻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피는 세상의 어떤 보물보다 더 가치 있는 피라는 의미입니다.

    '보혈'이라는 표현은 바로 이 구절의 의미를 압축한 신앙 언어입니다. 

     4. 히브리서가 말하는 예수의 피

     구약의 제사는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사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느니라."(히브리서 9:12)

     또한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브리서 9:22)

    예수님의 피는 단 한 번 흘려졌고  영원한 효력을 가지며,  완전한 속죄를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 피를 보혈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5. 보혈의 신학적 의미

    예수의 보혈은 다음과 같은 은혜를 상징합니다.

  • 죄 사함 (에베소서 1:7)
  • 속죄 (로마서 3:25)
  • 구속 (골로새서 1:14)
  • 정결케 함 (요한일서 1:7)
  • 하나님과의 화목 (로마서 5:9-11)
  • 새 언약의 확립 (누가복음 22:20)
  •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감 (히브리서 10:19) 

  • 6. 오늘날 신앙에서 '보혈'의 의미

    '보혈'은 단순히 예수님의 육체적 피를 강조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피는 생명을 내어주는 희생언약, 속죄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예수의 보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새 언약을 세우시며, 믿는 자를 깨끗하게 하고 구속하신 구원의 은혜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예수님의 피를 '보혈'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피가 하나님의 독생자의 생명이 담긴 가장 귀한 희생이며, 인간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는 유일하고 완전한 속죄의 피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한 존칭이 아니라,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의 희생과 구원의 가치를 압축하여 표현한 신앙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란 헬라어 표기와 그 의미

    신약성경에서 십자가는 주로 σταυρός(스타우로스, staurós)라는 헬라어로 표현됩니다. 이 단어는 단순한 처형 도구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제자의 삶을 상징하는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1. 헬라어 표기

    • σταυρός
    • 발음: 스타우로스 (staurós)
    • 품사: 남성 명사
    • Strong's 번호: G4716

    어원

    ἵστημι(histēmi, "세우다, 서게 하다")와 관련된 어근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원래는

    • 땅에 세우는 말뚝(pole)
    • 울타리 기둥
    • 형벌을 위한 기둥을 의미했습니다.


    2. 고전 헬라어에서의 의미

    예수 시대 이전에는 다음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 말뚝
    2. 기둥
    3. 울타리 말뚝
    4. 형틀의 기둥

    즉, 종교적인 의미는 없었습니다. 

    3. 로마 시대의 의미

    로마 제국에서는

    σταυρός

    십자가형을 집행하는 형틀

    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형태는 하나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 일자형(I)
    • T자형(T)
    • †형(Latin Cross)

    등 여러 형태가 존재했습니다.

    4. 신약성경에서의 의미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에는 의미가 완전히 확장됩니다.

    ① 속죄의 도구

    예수께서 죄를 대신 담당하신 곳입니다.

    "그가 친히 나무에 달려..."

    • 베드로전서 2:24

    ②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극적으로 나타난 사건입니다.

    • 로마서 5:8

    ③ 화목의 상징

    하나님과 인간을 화목하게 하는 자리입니다.

    • 골로새서 1:20

    ④ 승리의 상징

    사탄과 죄와 사망을 이기신 승리입니다.

    • 골로새서 2:15

    ⑤ 제자의 삶

    예수께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σταυρός

    • 자기희생
    • 순종
    • 헌신
    •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

    을 의미합니다.


    5. "십자가를 지다"의 헬라어

    예수께서 사용하신 표현은

    ἀράτω τὸν σταυρὸν αὐτοῦ

    (아라토 톤 스타우론 아우투)

    직역하면

    "자기의 십자가를 들어 올리라."

    입니다.

    여기서

    • ἀράτω
      • 동사 αἴρω(들다, 들어 올리다)의 명령형
      • "들어라"
      • "메라"

    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를 지다

    는 단순히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자신을 부인하고 희생을 받아들이는 삶을 의미합니다.

    6. 관련 헬라어

    헬라어 발음 의미
    σταυρός 스타우로스 십자가, 형틀
    σταυρόω 스타우로오 십자가에 못 박다
    συσταυρόω 쉬스타우로오 함께 십자가에 못 박다
    ἀνασταυρόω 아나스타우로오 다시 십자가에 못 박다
    αἴρω 아이로 들어 올리다, 지다
    βαστάζω 바스타조 짊어지다, 운반하다, 감당하다

    7. 신학적 의미 요약

    신약성경에서 σταυρός는 단순한 처형 도구를 넘어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1. 속죄 — 죄를 대신 담당하신 장소
    2. 희생 — 하나님의 어린양의 제물
    3. 사랑 —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
    4. 화목 —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회복
    5. 승리 — 죄와 사망과 사탄에 대한 승리
    6. 제자도 — 자기 부인과 순종의 삶
    7. 영광 — 수치의 상징이 구원의 영광으로 변화됨

    바울은 이러한 신학을 집약하여 "십자가의 말씀"(ὁ λόγος ὁ τοῦ σταυροῦ)(고린도전서 1:18)과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갈라디아서 6:14)고 선언하며, 십자가를 기독교 복음의 중심으로 제시합니다.




    십자가 신앙은 단순히 십자가를 믿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하여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사랑을 믿고, 그 삶을 따르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십자가는 고난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승리와 영광의 상징입니다. 

    십자가 신앙의 중심  

     구원의 신앙 -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에베소서 1:7)

    십자가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동시에 나타난 사건입니다. 

     사랑의 신앙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로마서 5:8)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 주는 최고의 계시입니다. 

     순종의 신앙

     예수님은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8)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에 끝까지 순종하는 삶을 보여 줍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의미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가복음 8:34)

     여기서 "자기 십자가를 지다"는 단순히 고난을 참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 구절에서 "지다"는 헬라어 αἴρω (airō), 
    "들어 올리다, 짊어지다, 기꺼이 맡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신 것은 억지로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입니다.

    반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구레네 시몬의 경우에는 로마 병사들에게 억지로 지게 되었습니다(마태복음 27:32). 
    이때 사용된 표현은 강제로 동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제자의 자발적인 십자가와 대조를 이룹니다. 

    바울이 말하는 십자가 신앙  

    갈라디아서 2:20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의미는 / 옛 사람이 죽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고린도전서 1:18 -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세상은 십자가를 실패처럼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구원의 능력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십자가 신앙의 열매

    십자가 신앙은 다음과 같은 삶으로 나타납니다. 

     죄를 회개하며 살아간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
     사랑으로 섬긴다.
     고난 가운데서도 소망을 잃지 않는다.
     부활의 소망을 붙든다.

     십자가와 부활은 함께 이해해야 한다

    성경은 십자가만 강조하지 않습니다.

    • 십자가는 죄 사함과 화해를 이루는 사건입니다.
    • 부활은 새 생명과 승리를 선포하는 사건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구속의 근거를 잃고, 부활 없는 십자가는 패배로 끝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은 십자가와 부활을 함께 붙드는 신앙입니다.

    6. 오늘날의 적용

    십자가 신앙은 고난을 위한 고난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믿고,
  •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며 그리스도를 따르고,
  •   받은 용서를 다른 사람에게도 베풀며,
  •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십자가의 길은 희생을 통한 사랑, 순종을 통한 승리, 죽음을 통한 생명의 길이며, 
    그 길을 따르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참된 십자가 신앙입니다.





    성경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한국교회 문제점




    1. 재정의 투명성 부족
    2. 권력집중과 권위
    3. 사회적 문화적 이슈에 대한 태도
    4. 성범죄 및 윤리적 문제
    5. 세대간 갈등




    한국교회가 직면한 문제를 단순히 “교인 수가 줄어드는 문제”로 보면 해결책도 결국 전도 프로그램이나 교회성장 전략에 머물게 됩니다. 더 근본적으로 보면 신뢰· 거룩· 제자도· 다음세대· 공동체성· 공공성의 위기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히 2026년 기윤실 조사에서는 한국교회를 신뢰한다는 응답이 19.0%,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5.4%로 나타났습니다. 
    무종교인의 교회 신뢰도는 6.8%였습니다. 
    조사에서 개선점으로 지적된 것은 교회 이익 우선 태도, 타종교에 대한 태도, 불투명한 재정, 지도자의 삶 등이었습니다.  

    1. 가장 심각한 문제 : 신뢰의 붕괴

      
    문제

      교회가 말하는 복음과 교회가 실제로 보여주는 삶 사이에 간격이 생겼습니다.

    • 설교는 사랑을 말하지만 교회 안에는 갈등이 있습니다.
    • 거룩을 말하지만 지도자의 윤리 문제가 발생합니다.
    • 청렴을 말하지만 재정이 불투명한 경우가 있습니다.
    • 섬김을 말하지만 교회 자체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인상을 줍니다.
    • 복음을 말하지만 사회에서는 정치적 집단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2026년 조사에서 신뢰 회복을 위해 필요한 사회적 활동으로 윤리·도덕 실천이 가장 많이 지목된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결

      “교회를 크게”보다 “교회를 바르게” 세우는 것이 먼저입니다. 
      신뢰는 설교로 얻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얻는다.

      초대교회의 힘도 건물이나 조직 규모보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힘쓰는” 공동체성에 있었습니다(행 2:42).  

     목회자 중심주의와 권위주의

      
    문제

      한국교회의 일부에서는 목회자가 지나치게 절대적인 위치에 놓이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 담임목사에게 권한 집중
    • 장기집권
    • 교회 재정과 인사에 대한 견제 부족
    • 세습 문제
    • 목회자와 교인의 관계가 제자와 목자의 관계보다 권력관계로 변질

      이런 구조에서는 목회자가 실수했을 때 교회 전체가 함께 무너질 위험이 있습니다. 

      해결  /  목사의 권위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인 권위로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라고 하셨습니다(막 10:43).

      따라서 목회자의 권위는 직분 → 권력이 아니라 직분 → 섬김 → 희생 → 본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정치화와 복음의 본질 약화

      이 문제는 정치적 입장을 어느 쪽이 옳다고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사명이 특정 정치세력과 동일시될 위험을 살펴야 하는 문제입니다.

    2026년 조사에서 목회자의 정치적 발언·집회 참여에 대한 개선 요구가 상당히 높게 나타났습니다. 

       문제

       교회가 정치적 사안에 대해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 = 특정 정당,  기독교 신앙 = 특정 정치 이념 으로 연결되면 복음의 보편성이 훼손될 수 있습니다.

       해결  /  교회는 정치에 무관심해서도 안 되지만 정당의 하부조직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교회가 말해야 할 기준은 정당의 이름보다

    • 생명
    • 정의
    • 정직
    • 자유
    • 약자 보호
    • 평화
    • 가정
    • 인간 존엄
    • 책임
    • 사랑

    같은 성경적 가치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정당보다 하나님 나라를 먼저 말해야 한다.

      다음 세대의 위기

    한국교회의 미래를 가장 직접적으로 결정하는 문제입니다.

    현재의 교인 숫자를 유지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20년 후 교회에 누가 남아 있는가입니다.  

      문제

      많은 교회에서 어린이 → 청소년 → 청년 → 장년으로 이어지는 신앙 전승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부모의 신앙이 자녀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되지 않는 문제가 큽니다.  

      해결  /  교회학교를 단순히 “아이들을 모아놓는 프로그램”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가정과 교회가 함께  예배 → 말씀 → 관계 → 실천 → 사명을 경험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청년들을 교회의 미래가 아니라 오늘의 교회로 인정해야 합니다.  

      성도의 제자도 약화

      교회에 출석한다고 해서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

    주일예배 참석자는 많지만 말씀을 따라 사는 제자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것은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였습니다(마 28:19).

    따라서 교회의 목표가 출석자 → 교인 → 봉사자에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해결  / 목표를 교인 → 제자 → 사역자 → 또 다른 제자를 만드는 사람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교회는 사람을 모으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드는 곳이어야 합니다.  

      교회의 양적 성장주의

    문제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큰 교회 = 성공한 교회라는 평가에 익숙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교회의 성공 기준은 건물 크기나 헌금 규모가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를 보면 이것이 아주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외형보다

    • 처음 사랑
    • 환난 중 충성
    • 진리에 대한 타협 여부
    • 거룩
    • 깨어 있음
    • 말씀을 지키는 것
    • 미지근함을 평가하십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 2–3장은 오늘 한국교회에 매우 중요한 거울이 될 수 있습니다.  

     세속화와 교회의 정체성 상실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기 전에 오히려 세상의 가치에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공 → 돈 → 건물 → 영향력 → 유명세가 교회의 성공 기준이 되면 복음의 중심이 흔들립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라고 하셨습니다(막 8:36). 

      해결  / 교회의 기준을 다시 성공이 아니라 충성, 성장이 아니라 성숙, 소유가 아니라 섬김, 유명함이 아니라 거룩 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재정의 투명성과 교회 운영

    2026년 신뢰도 조사에서도 불투명한 재정 사용이 중요한 개선 과제로 지적되었습니다. 

     해결  /  교회 재정은 단순히 회계 문제가 아니라 영적 신뢰의 문제입니다.

    필요한 것은 

    • 정기적인 재정보고
    • 복수의 재정 담당자
    • 독립적인 감사
    • 목회자와 재정의 적절한 분리
    • 교회 구성원이 이해할 수 있는 보고
    • 목적별 예산 공개 등입니다.

    투명한 재정은 교회의 신뢰를 세우는 목회의 일부다.

    지역사회와 단절

    교회가 세상과 담을 쌓으면 복음의 증언도 약해집니다.

    초대교회는 예배당 안에서만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성전 + 가정 + 시장 + 사회

    속에서 복음을 살아냈습니다.

    오늘의 교회도

    • 독거노인
    • 장애인
    • 이주민
    • 한부모 가정
    • 청년
    • 노숙인
    • 경제적 취약계층

    등을 실제적으로 섬길 필요가 있습니다.

    기윤실도 2025년 교회 신뢰회복 사업에서 지역사회 돌봄과 이주민 환대를 중요한 과제로 제시했습니다.  

     교단과 교회의 분열

    한국교회의 또 다른 문제는 너무 많은 분열입니다.

    신학적 차이가 존재할 수 있지만,

    본질에는 일치하고, 비본질에는 자유를 주며, 모든 것에는 사랑으로

    대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였습니다(요 17:21).

    교회의 분열은 복음의 증언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해결의 핵심은 무엇인가?

     한국교회의 문제를 7개의 회복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문제 회복
    신뢰 붕괴 정직 회복
    목회자 권력화 섬김의 리더십 회복
    정치화 복음의 중심 회복
    다음세대 위기 신앙 전승 회복
    제자도 약화 말씀과 삶의 일치 회복
    세속화 거룩의 회복
    사회적 고립 이웃 사랑과 공공성 회복

    그리고 이것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교회를 교회답게, 목사를 목사답게, 성도를 성도답게.”

       
    특히 요한계시록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교회가 일곱 교회에 보내신 예수님의 말씀을 자기 교회에 주시는 말씀으로 읽어야 합니다.

     에베소 —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
    서머나 — 고난 가운데 충성하라
    버가모 — 세상과의 타협을 경계하라
    두아디라 — 거룩을 회복하라
    사데 — 죽은 신앙에서 깨어나라
    빌라델비아 — 작은 능력이라도 말씀을 지켜라
    라오디게아 — 미지근함에서 벗어나라

    결국 일곱 교회의 문제는 오늘 한국교회의 문제와 놀랍도록 연결됩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 가장 무서운 말씀 가운데 하나는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는 말씀입니다(계 2:5).

    따라서 한국교회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어떻게 교회를 크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교회를 계속 촛대로 인정하실 것인가?” 
    가 되어야 합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한국교회의 개혁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보다 회개하고, 말씀으로 돌아가고,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세상 속에서 복음을 삶으로 증명하는 것
    에서 시작한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현대 한국교회의 문제점들은 너무 복합적이며 다양한 측면을 안고 있습니다. 자성의 마음으로 주요 문제점들을 성경적 가르침과 비교하여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1. 성장주의와 물질주의

    성경적 가르침 : 성경은 교회의 본질을 건물의 크기나 교인의 수, 재정 규모가 아닌,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공동체(엡 4:16)로 묘사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외형적 성장이 아니라 내면적 성숙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둡니다(갈 5:22-23).

    현대 한국교회 문제점 : 외형적 성장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형교회를 성공의 척도로 삼고, 교회 건물을 웅장하게 짓는 데 많은 재정을 쏟아붓는 반면, 정작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섬기는 사명에는 소홀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성장주의는 십자가의 복음마저도 사람을 끌어모으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2. 신앙의 개인화와 공동체성 상실

    성경적 가르침 : 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묘사하며, 성도들이 서로 '지체'가 되어 연합하고 교제하며 사랑해야 함을 강조합니다(고전 12:27, 롬 12:5). 믿음은 개인적인 고백이지만, 그 신앙은 반드시 공동체 안에서 함께 성장하고 실천되어야 합니다.

    현대 한국교회 문제점 : 현대 사회의 개인주의적 경향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나'의 신앙생활과 '나'의 구원에만 집중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다른 교인들과 깊은 교제를 나누기보다 예배만 드리고 돌아가는 '선데이 크리스천'이 늘어나고,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책임지는 공동체의 본질이 약화되고 있습니다.

    3. 잘못된 권위 의식과 목회자 중심주의

    성경적 가르침 : 예수님께서는 섬김의 리더십을 강조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 20:26-27). 교회의 머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며, 목회자는 그리스도의 양 떼를 섬기는 청지기일 뿐입니다(벧전 5:2-3).

    현대 한국교회 문제점 : 일부 교회에서는 목회자가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교회의 모든 것을 좌우하는 '목사 우위' 현상이 나타납니다. 목회자를 성경적 권위 이상으로 높이거나, 목회자의 세속화와 윤리 의식의 실종으로 인해 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잃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4. 예배의 형식화와 삶의 예배 부재

    성경적 가르침 : 진정한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이며(요 4:24),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롬 12:1). 예배당 안에서의 예배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현대 한국교회 문제점 : 예배가 지나치게 설교와 예전 등 형식적인 부분에만 치우쳐, 성도들의 삶과 분리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배당을 나서는 순간,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는 '이중적 삶'을 사는 경우가 많아, 교회가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5. 이원론적 세계관과 사회적 책임 방기

    성경적 가르침 : 성경은 거룩한 영역과 세속적인 영역을 엄격하게 분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창조주시며,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마 5:13-16).

    현대 한국교회 문제점 : 일부 교회는 신앙생활을 개인의 영혼 구원 문제로만 국한하고, 사회 정의나 윤리 문제, 빈곤 문제 등 세상의 영역에는 무관심하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그 결과, 교회가 사회의 병폐를 치유하고 변화시키는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의 비판 대상이 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정치에 관여하는 것이 아닌, 불의에 대한 책망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결론적으로, 현대 한국교회가 직면한 문제들은 성경의 본질적인 가르침, 즉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 '섬김의 리더십', '삶으로 드리는 예배', '세상을 향한 책임' 등에서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외형적 성장이 아닌 내면적 성숙을 추구하고, 잃어버린 공동체성을 회복하며, 말씀에 근거한 바른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현실과 미래에 대한 진단과 대책 방안

                            -객관적 평가와 그 비전 및 미래 방안-

    정준모목사, 라이프굿타임즈 대표 및 발행인, 로키마운틴 성경 및 신학 연구원

    1. 서론: 질문 앞에 선 한국교회

    21세기 초반의 한국교회는 이전 세기와는 다른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외형적 성장은 멈추었고, 사회적 신뢰는 하락하고 있으며, 내부적으로는 세속화와 공동체성의 붕괴, 다음 세대의 이탈이라는 위기를 맞고 있다. 본 논문은 이러한 한국교회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미래 교회의 건강한 비전을 제시함과 동시에 실천 가능한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2. 한국교회의 현실에 대한 객관적 평가

    2.1. 양적 성장의 정체와 구조적 위기

    1990년대까지 한국교회는 눈부신 성장세를 기록했으나, 이제는 출석률, 교세, 재정 모두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대형 교회로의 집중 현상은 농어촌 및 중소 교회의 고사로 이어지고 있다. 목회자 공급 과잉과 신학교 입학 감소도 구조적 위기의 일부이다.

    2.2. 사회적 신뢰도 저하와 이미지 손상

    교회의 공공성과 도덕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정치 편향, 재정 불투명, 목회자 윤리문제, 교회 세습, 대형 교회의 특권화 등은 신뢰를 잃게 만들었다. 교회는 이제 사회 문제의 해결자보다 문제 유발자로 여겨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2.3. 복음의 본질 상실과 타락한 신앙 소비주의

    ‘복음’은 본래의 능력과 능동적 성격을 잃고 개인주의적 성공담이나 감정적 위로로 축소되었다. 교회는 삶의 변화보다 감정 자극과 성공 메시지로 신자들을 붙잡으려 한다. 이는 신자들을 소비자로 전락시키고, 제자도의 본질을 약화시킨다.

    2.4. 세속화와 탈교회화 현상의 가속화

    특히 청년 세대는 교회가 삶의 실제적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고 느끼며 교회를 떠나고 있다. 전통적 예배와 교회의 언어는 그들에게 낡고 배타적으로 다가온다. 복음과 삶의 연결이 단절된 것이다.

    3. 미래 교회에 대한 비전

    3.1. 복음의 중심 회복

    모든 변화는 복음의 본질 회복에서 출발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도래라는 중심 메시지를 삶 전체와 연결해야 한다. 교회의 목적은 ‘구경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제자’를 세우는 데 있다.

    3.2. 공동체 중심의 관계 교회

    신앙은 개인의 구원만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자라야 한다. 교회는 교제, 나눔, 돌봄, 책임의 공동체로 거듭나야 하며, 권위적 구조가 아닌 수평적이고 열린 리더십 체계를 지향해야 한다.

    3.3. 세상을 향한 선교적 교회

    교회는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라, 세상 속에 복음을 실천하는 존재로 나아가야 한다. 정의, 평화, 환경, 약자 옹호, 문화 참여 등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구현하는 선교적 교회로 나아가야 한다.

    3.4. 다음 세대를 향한 복음의 재언어화

    Z세대와 알파세대에게 복음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것이 전달되는 방식은 새로워져야 한다. 새로운 언어, 새로운 매체, 새로운 참여 구조가 요구된다. 교회는 그들과 동행하고 경청해야 한다.

    4. 미래 교회를 위한 실천적 방안 (확장 정리)

    4.1. 교회 구조의 개혁

    목회자 중심 구조 탈피:

    목회자의 모든 권한과 기능이 집중된 구조를 벗어나 장로, 집사, 평신도 사역자의 협력 구조를 형성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 전체가 제사장’이라는 개신교의 신학을 실천적으로 구현해야 한다.

    투명한 재정 운영과 공적 책임:

    교회 재정은 반드시 외부 감사, 회중 보고, 헌금 목적별 회계 분리 등의 방법으로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한다. 매년 재정 보고서를 회중에게 공개하는 것이 기본이다.

    세습 및 권위주의 해체:

    교회 세습은 성경적 원리에도 맞지 않으며, 한국교회의 도덕성에 큰 상처를 주고 있다. 교회 리더십은 개방적 선출 구조와 임기제 도입을 통해 자정 기능을 갖춰야 한다.

    4.2. 예배와 설교의 갱신

    성경 중심, 삶 중심 설교:

    시대를 분별하며 성경 본문을 깊이 있게 해석하고, 청중의 실제 삶에 연결하는 설교가 필요하다. 회중이 ‘삶으로 살아내는 복음’을 깨닫게 해야 한다.

    하나님 중심의 예배 회복:

    감정 자극이나 공연 중심의 예배에서 벗어나, 성삼위 하나님께 드리는 경건하고 질서 있는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 다양한 음악과 표현도 가능하지만 중심은 하나님이어야 한다.

    다세대 참여형 예배 모델 실험:

    어린이, 청소년, 청년, 장년이 함께 예배에 참여하고 기도, 성경 봉독, 간증 등의 역할을 나누는 공동체 예배가 필요하다. 이는 교회를 ‘가정’으로 경험하게 한다.

    4.3. 신앙 교육과 영성 훈련

    성경적 세계관과 비판적 사고 교육:

    단순 암기식 교리가 아닌, 복음을 통해 세상을 해석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기르는 교육이 필요하다. 영화, 사회 문제, 기술 변화 등을 성경적 틀로 읽는 훈련이 요구된다.

    영성 훈련 커리큘럼 도입:

    매일 말씀 묵상, 기도, 금식, 봉사, 공동체 생활 등 고전적 영성 훈련을 교회 교육에 정착시켜야 한다. 특히 소그룹 중심의 훈련은 참여와 책임을 강화시킨다.

    온·오프라인 하이브리드 교육 체계:

    코로나19 이후 정착된 온라인 환경을 적극 활용하여, 온라인 소그룹, 디지털 신앙 콘텐츠, 앱 기반의 성경 퀴즈 등으로 다음 세대와 소통해야 한다.

    4.4. 작은 교회 운동과 지역 네트워크 활성화

    지역 밀착형 작은 교회 설립 장려:

    건물 중심, 대규모 교회 중심의 신앙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가정교회, 카페교회, 일터교회 등 작은 공동체 중심의 모델이 효과적일 수 있다.

    목회자 재교육과 리더십 교류:

    고립된 목회를 피하기 위해 지역 목회자 네트워크를 통해 공동 설교, 공동 훈련, 사역 자원의 공유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소외된 지역교회도 살아날 수 있다.

    교단을 초월한 사역 연대:

    특정 교단 중심의 분열적 구조에서 벗어나, 지역 단위에서 교단을 초월한 사역 협력이 필요하다. 예: 지역 청소년 연합수련회, 사회봉사 연대 등.

    5. 결론: 다시 복음으로, 다시 공동체로

    한국교회는 지금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간의 성공 신화는 끝났으며, 이제는 복음의 본질, 제자도의 회복, 공동체적 책임을 묻는 시대가 도래했다. 세속화와 탈교회화라는 외적 변화는 교회의 내적 개혁을 촉구하는 하나님의 기회이기도 하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며, 프로그램이 아니라 복음이다."

    우리는 복음의 깊이, 공동체의 진정성, 세상에 대한 책임, 다음 세대와의 소통을 회복함으로써 다시 건강한 교회, 미래를 여는 교회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바로 ‘회개’와 ‘돌아감’이다. 주여, 한국교회 초대 교회의 영성을 회복하게 하소서, 미래 한국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으로 복음의 신령한 도구가 되게 하소서.


    한국 교회가 현재 직면한 위기와 그 원인

    교회의 급격한 쇠퇴: 과거(1976~1981년) 매년 60만 명씩 신자가 늘고 하루에 6개씩 교회가 세워지던 전성기와 달리, 현재는 대다수의 교회가 고령화와 재정난으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신뢰도 추락: 세습 문제, 재정 비리, 사회적 물의, 그리고 코로나19 당시의 갈등 등으로 인해 국민의 74%가 한국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젊은 세대의 이탈: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가치관과 교회의 경직된 문화, 정치적 편향성 등으로 인해 20대 개신교인의 비율이 크게 줄었으며, 하나님은 믿어도 교회는 나가지 않는 '가나안 성도'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재정 양극화 및 고령화: 헌금의 주축이었던 기성세대의 고령화와 십일조 감소로 인해 많은 교회가 재정 자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대형 교회와 작은 교회 간의 재정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탈종교화 시대: 이는 단순히 개신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탈종교화' 현상으로, 종교를 통한 공동체 의존도가 낮아지는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1866년부터 지금까지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조선말기 쇄국정책으로 시대에 뒤처진  사회에 선진 문명과 기술, 교육, 의술을 전하며 근대화에 지대한 공헌을 이바지하였습니다. 조선을 계승한 대한제국은 나라의 체질개선을 위해 열심을 다했지만 여전히 열강에 의해  간섭과 위협을 받는 상태에 놓여 있었는데  이 당시 선교를 위해 입국한 많은 선교사들의 헌신과 열정이 근대화에 일조를 하게 됩니다. 선교의 3자 원칙으로 선교사로부터 전수받은 우리의 신앙선배의 충성스러운 노력으로 점차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며 민족의 수난기간이었던 일제의 주권찬탈의 오욕속에 민족의 자존과 자주 독립의 희망의 불씨를 지켜왔던 교회가 존재했었습니다. 

    이렇게 한국 교회가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게 되기까지 신앙의 선배들이 각고의 노력을 해온 것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민족의 수난을 외면하지 않았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민중들과 애환을 같이 했으며 암울한 사회를 계몽하고 교육, 의료, 학문,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해 온 것입니다. 일제의 교회핍박에 맞서 싸우고 공산주의자에 의해 수 많은 믿음의선배들이 순교의 피를 뿌리며 믿음을 지켜왔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70년대 이후에는 사회의 민주화와 정의를 위해 싸우기도 하는 등 역사발전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노력과 희생으로 인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종교들 중의 하나로 자리잡았고,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도시나 시골이나 아디를 가도 교회가 없는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인이 전체 인구의 약 30%에 이를 정도로 성장을 한 것입니다.

    교회와 기독교인이 많아지면서 사회에 긍정적인 면보다 여러 가지 부정적인 모습등으로 인해 좋지않은 이미지가 쌓여 가며 일반인들에게 주요 종교들 중 가장 나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설문조사에 의하면 일반인들이 종교를 가질 경우 선택하고 싶은 종교에서 기독교가  가톨릭이나  불교에 비해서 가장 낮은 수치를 나타낼 정도로 비호감도가 높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성장의 감소와 영향력 감퇴로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교인은 감소한 반면 교회만 증가하는 현상은 한국 교회가 그만큼 정상적이지 않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근래에 매스컴에 보도되고 있는 교회와 기독교의 모습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교회안에서, 목사들과 교인들에 의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적 모범이 되고 이끌어 나가야 할 주체인데도 불구하고 악영향을 끼치는 일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 교회를 우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과연 한국 교회에 미래가 있는가?

    한국 교회가 앞으로도 존재할 수 있을까?

    회개와 변화가 없다면 한국교회는 상식적인 생각과 생활을 가진 사람들과는 동떨어진 교인들만의 교인만을 위한 세상으로부터 낙오된 공동체로 전락하게 될 위험이 매우 큽니다. 그만큼 한국 교회는 위기상황에 처해 있고, 이제는 그 위기를 어느 누구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시점에 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의 현실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그것들의 문제점들을 파악하며, 더 나가서 그 해결 방안들을 찾아보는 일은 더 이상 늦춰질 수 없습니다. 우선적으로 한국 교회를 엄격하고 냉정하게 보는 일로부터 출발해야 하며 주님이 주인인 교회로 거듭나야 합니다. 주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교회가 세상적인 문제에 빠지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문제는 일단 중요하게 보이는 현상들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 배타적 독선과 분열

    수 많은 교단으로 분열되어 있는 모습이 대표적인 한국 교회와 기독교의 문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그만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 교단을 세우고 또 그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현실을 보면 참 믿음을 갖고 복음을 전하는 기관인지 의구심이 갑니다 . 자기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 하고 반목하고 협력하지 못 하면서 어떻게 사회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낸들 들을 사람들이 있을까요?

    참 답답한 현실입니다. 인간의 탐욕과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얼룩진 모습을 보면서 사회적 솔선수범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부끄러움도 모르는 교단과 교회의 현실은 절망을 안기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오직 한분이며 우리의 지침이 되는 성경도 하나인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하나가 아니고 수 많은 겉가지로 찢어져서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이분법적 신앙관으로 자신만이 최고라는 우월심으로 귀를 막고 '함께 '가 아니고 '나만'이 문제인 것입니다.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천주교가 유일하게 잘 하는 것이 교황을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한 목소리로 한 방향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이점은 기독교는 깊이 반성하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따르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을 골백번 외치지만 실제로 자신은 이와 동떨어진 삶을 사면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는 현실을 회개하지 않고선 결코 병폐를 도려낼 수가 없습니다. 자신을 내려놓고 타인의 말을 귀담아 들을려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교회일치운동의 순수한 동기를 우리는 다시 살펴보아야 합니다. 교회일치운동, 에큐메니즘( Ecumenism)은 개신교회의 일치에서 시작하여, 개신교회와 정교회의 협력으로 이어진 기독교 교회 일치 운동입니다. 기독교의 다양한 교파를 초월하여 모든 교회의 보편적 일치 결속을 도모하는 신학적 운동으로 한국 교회는 거듭나서 불필요한 교리의 차이에 대한 논쟁을 삼가하고 하나가 되기 위한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개신교 또는 복음주의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는 16세기 서방교회 개혁 찬성파인 교회의 개혁가들의 종교개혁을 통해 생겨난 기독교의 한 전통입니다. 11세기 교회 대분열로 공교회(보편교회) 중심이었던 지금의 동방교회에서 서방교회가 분리되었고, 이후 16세기 서방교회내에서 종교 개혁 운동의 '반대파'인 천주교회와 '찬성파'인 개신교가 분리되었습니다. 이후 기독교의 가장 주된 종파는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에서 정교회, 천주교회, 개신교회로 형성되었으며 개신교 내부적으로 크게 '개선주의'인 개신교 공교회주의의 루터교, 성공회, 감리교 등의 교단들과 '재건주의'인 개혁주의의 장로교, 침례교 등과 재침례파, 재림교 등의 교단들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말하는 '기독교', '교회'는 일반적으로 '개신교'를 가리킵니다.

    2. 고개를 들 수 없는 교회세습와 대립

    교회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교회는 목사의 개인적인 사유물이 아닙니다. 또 교회는 교회의 살림을 책임지는 장로나 집사의 소유물이 더더욱 아닙니다. 그런데 교회를  세습하고 있고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공산당의 세습왕조도 아닌데 대한민국 교회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참 부끄러운 한국 교회의 민낯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교회 세습이 가능한 것은 우리 한국 교회의 독특한 권위주의 구조 때문이며  민주적인 방식으로 교회의 행정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의  많은 교회들이 담임목사 1인 중심의 교회체제를 가지고 있고 이것을  유지하는 것이 마치 목회의 매우 중요한 부분인 것처럼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체제나 행정을 철저하게 목사 1인 중심으로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에 모든 권한이 목사 1인에게 집중되며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각종 회의나 기관들은 요식 행위와 절차로서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식으로 길들여지고 체질화된 구조 속에서는 담임목사가 은퇴할 나이에 이르면 얼마든지 자기 아들에게, 혹은 자기가 물려주고 싶은 사람에게 물려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목사의 권위에 도전할 수 없는 환경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니라고 속으로 외치고 마는 것입니다. 만약에 민주적인 구조 속에서 민주적인 투표와 절차를 거쳐서 후임자를 선정한다면  후임자가 아들이건 형제이건 아무런 상관이 없고 시비할 이유가 없습니다. 잡음으로 교회가 흔들리지도 않으며 외부에 소문이 나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생산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대형화된 교회속에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재정이 운영되고 있으며 목사 1인 체제가 유지되는 교회는 세습이라는 문제가 항상 대두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외에도 현재 한국 교회의 권위주의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은 특히 교회내의 모든 갈등과 분쟁, 분열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세습문제가 반대의 경우도 존재합니다.  권위주의(권력)가 목사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역사가 깊은 교회들은 오히려 장로와 당회의 권위가 목사의 권위를 압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장로들이 대표이고 목사는 임시직이라는 얘기까지 나도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분위기의 교회에서는 실제로 당회가 목사의 건강하고 소신 있는 목회를 방해하는 일이 매우 흔하고 또한 목사가 능력 있어서 교인들의 지지를 획득할 기미가 보이면 미리 트집을 잡아 쫓아내는 일까지 일어나는 실정이니 청빙된 목사가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목회를 하지 못 하고 당회나 장로의 의중을 살피는 웃고픈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단 역시 권위주의가 심각하여 교단이 갈라지고 어느 날 갑자기 새로 교단이 생겨 납니다. 총회장이 되기 위해 정치판에서나 볼 수 있는 금품공세로 하면서까지 애쓰는 것을 보면 권력을 얻으면 분명히 얻는 것이 있기 때문에 부정한 짓을 하면서까지 당선되고자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선거로 인한 문제를 해소하는 것은 성경에 잘 나와 있습니다. 바로 배신하고 죽은 가룟 유다대신 맛디아를 12제자로 선출한 방식이 제비뽑기로 선출하면 됩니다. 신청을 받고 교단에 정한 자격조건을 충족한 사람들중에  제비뽑기로 선출하면 타락하고 세속적인 부정적인 선거가 사라지고 형평성의 문제도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제비뽑기는 선거과열과 금전살포 및 수수의 폐해로 인해 거룩한 교회가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습과 같은 해괴한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할려면 목사의 임기제를 도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임기 5년제에 1회에 한하여 연임을 하는 제도를 하면 장로나 당회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고 소신있게 교회를 이끌어 갈 수 있으며 또한 임기제로 인해 권위를 만들기 쉽지 않아 세습을 꿈꾸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한 장로 등 임직자들의 임기제도를 시행해서 종신 장로와 임직자에 의해 발생하는 애로사항을 없애서 압력으로 교회와 당회을 좌지우지하지 못 하도록 하면 권위주위에 의해서 발생하는 피해를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권위는 자신이 권위자가 되려고 하거나 권위가 억지로 생기거나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전혀 권위가 없을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오히려 제사장들이나 서기관들이나 율법학자들이 예수의 권위를 보고 놀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권위를 발견하고 "저 사람의 권위가 어디서 나오는가?" 라고 반문했습니다. 권위는 지위나 명목, 형식에서가 아니라 실제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권위가 참다운 것이고  위엄이 더해지고 믿음이 가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낮아짐에 있습니다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성립자체가 하나님의 인간됨,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높으심이 낮아짐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보여주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겸손와 자기비움으로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가 큽니다. 기독교의 존재 이유 혹은 존재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승리는 세상적인 승리가 아니고 반대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겸손과 봉사와 희생 그리고 그 위에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그는 "누구든지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겠고, 낮아지고자 하는 자는 높아진다."라고 했으며 또한 "살고자 하는 자는 죽겠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겠다."고도 말씀하셨듯이 이 말에 대한 믿음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기독교의 권위는 권위를 갖고자 하는데서 얻는 것이 아니라 권위를 갖지 않고자 하는 데서 얻어집니다. 그것은 권위가 아니라 실제를 취하는 일과 동일한 것입니다. 기독교의 실제, 즉 본 모습은 먼저 낮아지고 남들을 섬기는 종의 도를 취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나갈 길이고 기독교인의 바른 길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는 것이 예수님의 호소이자 요청이었다. 그 말씀을 잘 따라 자기부정과 겸비와 봉사의 길을 가는 사람이 바로 참다운 신앙과 인격과 삶과 능력을 인정받고, 따라서 권위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권위만이 참다운 권위이다. 원래 기독교에는 권위주의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 예수의 가르침은 본질적으로 낮아지고 사랑하는 데 있지, 자신의 권위를 높이거나 도모하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2. 세속적인 물질추구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가 또한 세속적인 물질추구일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기독교 그리고 기독교인이 교회에서 복음을 팔고 아니  팔아야 하고 팔리지 않으면 팔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교회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대에 맞지 않는 십일조를 강요하고 건축헌금을 내도록 만들며 심지어 직분에 주는 대신 감사헌금을 강요하는 현실에 직면한 교회는 기업입니까? 아니면 세상의 구원을 위한 마중물입니까? 하는 반문이 할 정도로 오염이 되어 있고 잘 못된 길을 가고 있습니다. 사람의 중심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적인 위치와 부에 따라 대접이 다른 교회는 진정한 교회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남보다 내가 더 잘 되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옹졸한 마음으로 목회를 하는 목회자들 그리고 많은 헌금을 낸 것을 자랑하고픈 기독교인들로 인해 진정한 그리스도의 도를 찾기 힘든 우리의 모습은 참 불쌍하게 보일뿐입니다. 사람들이 듣기 좋은 유창하고 유머스러운 설교를 하는 목회자가 아닌 시대에 맞는 말씀을 찾아 연구하고 준비해서 교회 공동체에 계시되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명과 책임을 갖고 해야 합니다. 목사의 설교는 사람들로 하여금 말씀에 비추어서 자기를 돌아볼 수 있게 하고, 죄와 오류와 무력함을 보게 하고, 죄인을 사랑하고 구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게 하고, 그래서 자유와 생명을 얻게 하고, 참된 자녀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북돋아주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어야 진정한 목회자의 길을 갖는 것입니다.

     교회가 바로 서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인 교회의 리더가 솔선수범하고 주님의 뜻을 새기며 바른 길을 갈때 자연스럽게 교회의 구성원들이 따르게 됩니다. 교회가 주님의 말씀을 들을려고 하면 되는데  사람들의 반응에 맞루어 설교를 한다거나 교회를 운영하게 되면 탈이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일주일 헌금 목표가 얼마이고 건축헌금의 목표를 정해서 기도하며 강요하는 한 세상의 논리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결국은 이러한 세속적인 물질에  종속이 되어버리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교회의 일관된 가치관도 없이 다른 교회에서 성공한 경우를 베껴서 따라하기나 꼭 필요할 때 해야 하는 부흥회 등을 신도의 확보나 재정문제의 해결 그리고 교회안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용으로 남발하여 순수한 부흥회의 의의를 퇴색시키는 행위 등은 마치 잘 팔리는 물건을 갖다 놓고 많이 팔아야만 한다는 식의 세속적 상업주의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팔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저급한 세상적인  이치가 한국 교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에서는 복음과 진리에 대한 순수성도, 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는 자기부정의 십자가도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이 된 것입니다. 세속적인 의미에서 교회가 잘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지 하는 교회,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무리한 방법을 동원하여목표달성만을 강조하는 사고와 행태가 지배하는 교회, 그래서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식의 목회로 일관하는 교회는 더 이상 교회로서 존립할 수 없고 존립해서도 안 됩니다. 외형만 교회이지 사실상 기업이나 다름이 없으며 목회가 아니라 마케팅이고 목사가 아니라 경영자이며 교회등록증은 사업자등록증이 되는 되고 말았습니다.

    교회가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 사람들이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사람들의 힘과 물질과 열성을 모아서 교회를 부흥시키려는 생각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의 목표를 위해서 사람들을 총동원한다든지, 사람들을 수단으로 삼는다든지, 사람들을 교회에 예속시킨다든지 하는 일도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가 대가를 기대하거나 이익을 목표로 무슨 일을 계획한다면 세상속으로 빠져버리는 것입니다 . 교회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고, 사람들을 섬기도록 자리 매김을 해야 하며 세속적 물질을 추구하는 교회는 이 중요한 본분을 지키기가  불가능합니다. 

    교회의 목표는 세속적인 성공에 있지 않으며 목회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세속적인 성공을 지향하는 목회자들로 인해 많은 문제를 야기시킵니다. 이는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대형교회, 신도가 많은 교회 더블어 재정이 넘치는 교회는 참된 성공이 아니고 세상적인 성공입니다. 이런한 교회를 꿈꾸는 목사는 진정한 리더가 아닌 삭꾼이며 세속적인 탐욕에 빠진 채 엉뚱한 방향으로 불을 밝히는 등대와 같습니다.

    한국 교회를 세속적인 물질추구의 병폐로부터 되살리기 위해서는 목회자들이 확고한 교회관과 자의식을 가져야 하며 " 왜 교회가 존재하는가?" 그리고 "목회자는 존재이유와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하는가?" 라는 끊임없는 자기 물음과 성찰 속에서 교회를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의지와 노력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값없이 주신 복음과 이 복음을 위해 부름받은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받음에 감격하며 항상 감사하는 자세를 갖어야 합니다.

    교회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다. 즉 주님의 은총으로 받은 복음으로 새롭게 거듭난 자들이 감사한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예배하고 자발적으로 헌신하고 자발적으로 사랑하고 자발적으로 헌금하고 자발적으로 봉사하며 교회가 서야 합니다. 교회는 말씀을 있고 은혜가 있으며 사랑이 있고 참된 삶의 기쁨을 주는 곳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진정한 교회입니다. 


    3. 이기주의적 자세

    기독교 사회문제 연구소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습니다. 결과를 보면 의미하는 바가 매우 충격적입니다. 질문은 '기독교인이 비기독교인 보다 더 이기적인가?' 이었는데  '그렇지 않다.'고 한 사람이 17.5%에 불과한 반면 '그렇다.'고 답변한 사람은 31.7%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한편으로 교회가 외적 확장에 너무 치중하고 헌금 등을 강요하면서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특성을 나타낸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가장 이타적이고 자기 희생적이어야 할 기독교가 그 사회에서 "이기적" 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런 상태라면 과연 교회가 이 사회에서 얼마나 더 존립할 수 있을까 하는 위기심과 우려를 씻을 수가 없습니다. 이후 비슷한 조사에서도 기독교에 점점 비우호적일뿐만 아니라 나쁜 이미지로 인식이 되고 있음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노방전도를 한다면서 확성기를 이용하여 큰 소리로 전도를 하며 찬양을 하는 행위가 과연 옳은 것인가?

    주변 이웃들에게 편의를 제공하지 않고 오히려 불편을 초래하는 것이 과연 괜찮은가?

    대형교회의 교회버스를 이용한 편의제공으로 타 교회 성도들을 유인하는 것도 심각한 집단 이기주의의 표본이 아닌가? 

    직장문제로 먼 곳으로 이사간 성도에게 자기 교회로 계속 나오라고 강요하는 목회자들 ...

    자기만 생각하고,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달려가는 사람들은 맹목적이고 안타깝습니다. 이들은 자기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자기 외의 모든 것들은 무시해 버립니다. 또한 자기만 되면 된다는 생각, 남들이야 어쨌든 자기 목표만 달성하고, 자기 뜻만 관철시키면 된다는 태도로 일관하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에 해당됩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 자기밖에는 안중에 없는 사람들, 자기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 남들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철저하게 자기만을 위하는 사람들... 유독 그런 사람들이 한국 교회에는 많다는 것은 너무 이율배반적인 일입니다. 실제로 한국 교회에는 이기적인 행태가 만연해있고, 그것 때문에 일반 사회인들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마저도 눈살을 찌푸리고 가슴아파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으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런 이기적인 행동이 일부 광신자들만 아니라  목회자나  교회 자체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한국 교회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기주의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교회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이기주의가 아닌 이타적인 사랑을 전하는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만 알고, 자기만 위하는 이기심은 형제의 관계, 더 나가서는 공동체를 파괴시키며 공동체의 단절과 대립 그리고 경쟁과 분열을 가져오는 적펴일ㄴ 것입니다. 이기심에는 기독교가, 교회가 지향하는 참다운 평화나 사랑이 들어설 여지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을 구원하고자 사람들에게 참 자유와 생명을 주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면서까지 이 세상에 오셨는데, 그런 예수를 주로 믿고 고백하는 교회가 어떻게 이기적일 수 있습니까? 본회퍼는 "교회는 오직 남들을 위해 존재할 때만이 교회이다."라고 말했는데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정곡으로 찌르는 말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빛에 비추어서 날마다 자신의 이기심을 꺾고 진정으로 타인를 위해 사랑하고 봉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며 그럴 때만이 교회가 시대와 인간을 위한 참된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한국 교회의 이기주의 문제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교회와 교인들의 근본적인 그리고 지속적인 자기 변화가 요구되며 이기주의는 인간의 가장 뿌리깊은 죄성에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늘 깨어서 각성하고 빠지지 않을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4. 도덕적 타락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는 원인중에 하나가 바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도덕적 타락"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도덕적 타락에는 목회자의 성범죄뿐만 아니라 사회적 도리 또는 역할인 재정사용의 투명성과 종교인 과세에 대한 비토 등도 포함됩니다. 한국교회가 턱없이 낮은 사회적 신뢰도를 회복하려 기본적으로 윤리와 도덕 회복'이 급선무이며 이를 위해서는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가장 피해가 큰 것이 목회자의 성범죄입니다. 목회자 성범죄 문제는 목사 개인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교회에 대한 비판 나아가 하나님 존재 자체에 대한 의심으로 번질 정도로 매우 엄중한 사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선한 역사를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위치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일을 자행한다는 것 자체로도 심각한 범죄입니다.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이에 대한 응당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범죄에 대한 개인적인 처벌과 함께 사회적 책임도 함께 지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처벌로 교단과 교회에서 영원히 목회자 신분을 박탈하여 엄정한 댓가를 치루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이 문제는 확연히 줄어들고 사라질 것으로 판단합니다.

    또 한편으로 불투명한 재정에 있습니다. 재정상황을 투명하게 관리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투명한 재정관리는 교회를 신뢰하게 하며 교회와 교인들 사이에 생길 수 있는 의심과 불신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대형교회에서 나오는 불법적인 재정을 유용하여 목회자와 임직자가 구속이 되는 것을 종종 지면을 통해 들을때마다 기독교인이나 일반인들의 교회애 대한 불신은 커져갈 수 밖에 없습니다.  종교인(목회지)에 과세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거세지만 교회의 반대로 여전히 실현되지 못 하고 있는 보편적 사회정의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군사독재와 협력하며 얻은 교회의 흑역사인 이 문제는 스스로 사회적 윤리와 도덕적 신뢰를 무너지게 하는 한 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모인 재정을 통해 사회의 약자나 도움이 손길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도록 일종의 기금을 만들어 사회에 환원을 하는 방법도 있는데 오직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교회의 타락한 도덕성의 회복은 요원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결론적으로 한국교회의 문제는 매우 심각한 상태입니다. 많은 문제점이 있지만 우선적으로 위에서 언급한 4가지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만 추락하고 떠헝진 신회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사공이 많은 배는 산으로 간다는 격온처럼 찢어진 교단의 분열을 화합하여 일치하고자 노력이 필요합니다. 작은 교단의 이익에 눈이 멀어서 주님의 뜻을 따르지 못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세속적인 물질에 현혹돼서 거대주의 최고주의에 빠져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보는 어리석음과 그리스도의 낮은 대로 임하시고 자기를 낮추며 희생과 사랑의 본을 따라가야 합니다. 주님의 자기희생을 통해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이웃의 아픔을 품을 수 있는 이타적인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화룡점정은 바로 윤리와 도덕적 신뢰회복입니다. 교회가 세워진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면 자연스럽게 문제점을 극복하고 사람들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본연의 모습을 회복할 것으로 확신하는 바입니다.















    신앙고백 사도신조



    사도신경의 역사를 이해할 때 가장 먼저 바로잡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니케아 공의회(325년)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에서 한 번에 결정된 신조가 아닙니다.
    오히려 초대교회의 세례 신앙고백이 오랜 기간 발전하여 형성된 것입니다.

    사도신경이 결정된 단일 회의는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사도신경(Apostles' Creed)은 특정 공의회에서 어느 날 완성하여 결의한 문서가 아닙니다.
    그 뿌리는 2세기 로마교회의 세례 신앙고백, 즉 흔히 고대 로마 신조(Old Roman Creed, Roman Symbol)라고 부르는 형태에 있습니다.

    대략적인 발전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대 발전 내용 역사적 의미
    1세기 사도들의 복음 선포와 신앙고백 성부·성자·성령, 예수의 죽음과 부활 등
    2세기 중엽 세례 때 사용하는 신앙고백 형식 발전 이단에 맞서 정통 신앙을 확인
    약 150–200년 고대 로마 신조 형성 오늘날 사도신경의 직접적인 조상
    3세기 로마 신조가 세례와 교육에 사용 삼위일체적 신앙고백이 정착
    4세기 여러 지역 교회에서 신조가 조금씩 발전 로마·아퀼레이아 등 지역별 형태 존재
    390년경 루피누스가 아퀼레이아 신조를 해설 초기 신조의 실제 형태를 확인할 중요한 자료
    5세기 현재의 사도신경과 매우 가까운 형태 등장 서방교회에서 점차 정착
    6–8세기 현재 형태가 서방교회에서 널리 사용 오늘날의 사도신경으로 정착

    고대 로마 신조는 2세기부터 증언되며, 히폴리투스의 『사도전승』에서도 초기 형태가 확인됩니다. 

    왜 "사도신경"이라고 부르는가?

    여기서 중요한 구별이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회의하여 직접 작성한 문서가 아닙니다.

    초대교회에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요약한 신앙의 규범(regula fidei)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성령을 믿고
    교회를 믿으며
    죄 사함과 부활을 믿는다.

    이러한 사도적 신앙의 핵심이 세례와 교육 과정에서 점차 일정한 형태로 정리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이라는 이름은 그 내용이 사도적 신앙을 요약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가장 안전합니다. 
    가톨릭 교리서 역시 이를 고대 로마교회의 세례 신조라고 설명합니다. 

    가장 중요한 출발점 — 고대 로마 신조

    사도신경의 직접적인 역사적 모체는 고대 로마 신조입니다.

    대략 이런 구조였습니다.

    성부
    → 전능하신 하나님

    성자
    → 예수 그리스도
    → 하나님의 아들
    →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심
    → 십자가에서 죽으심
    → 부활하심
    → 하늘에 오르심
    → 다시 오심

    성령
    → 성령

    그리고

    교회
    → 거룩한 교회

    구원
    → 죄 사함
    → 몸의 부활
    → 영생

    즉 오늘날 우리가 암송하는 사도신경의 기본 골격이 이미 초기 교회에 존재했습니다.

    니케아 공의회 325년은 무엇을 결정했는가?

    여기서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조를 혼동하면 안 됩니다.

    니케아 공의회 — AD 325

    당시 가장 큰 문제는 아리우스(Arius)의 주장이었습니다.

    아리우스는 간단히 말하면 "성자는 하나님보다 낮은 존재이며 피조물이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니케아 공의회는

    ὁμοούσιον τῷ Πατρί
    homoousion tō Patri
    성부와 동일 본질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을 분명하게 고백했습니다. 
    따라서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만들어진 것은 사도신경이 아니라 니케아 신조입니다.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 AD 381

    381년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등장했습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성령의 신성에 대한 논쟁이었습니다. 
    그래서 381년 콘스탄티노플에서는 성령에 대한 신앙을 더욱 분명하게 고백하는 형태의 신조가 발전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부르는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조입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구별하면 매우 쉽습니다.

    사도신경

    초대교회의 세례 신앙고백 → 수세기에 걸쳐 발전

    니케아 신조

    325년 → 아리우스주의와 그리스도의 신성 문제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조

    381년 →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령의 신성에 관한 교리적 확립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조는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150명의 교부들의 신조"로 공식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사도신경"이라는 명칭은 언제 나타나는가?

    매우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390년경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와 관련된 자료에서 Symbolum Apostolorum, 즉 "사도들의 신조"라는 표현이 확인됩니다.

    여기서 라틴어를 살펴보면 Symbolum Apostolorum

    • Symbolum = 신조, 신앙고백
    • Apostolorum = 사도들의

    따라서 문자적으로는 "사도들의 신앙고백"이라는 뜻입니다. 

    "12사도가 각각 한 문장씩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전통적으로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한 부분을 말하고, 다른 사도들이 각각 한 항목씩 말하여 12개의 조항을 만들었다는 전승입니다.

    그러나 역사학적으로 이것을 실제 사도들이 모여 작성한 회의록처럼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루피누스(Rufinus, 약 345–410)가 이러한 전승을 기록했지만, 현대 역사 연구에서는 사도들이 실제로 회의를 열어 현재의 사도신경을 작성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따라서 설교에서는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직접 작성한 문서는 아니지만,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핵심 내용을 초대교회가 신앙고백의 형태로 계승하고 정리한 것입니다." 

    사도신경의 역사적 배경은 "이단과의 싸움"입니다

    사도신경이 발전한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교회가 무엇을 믿는지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초대교회에는 여러 가지 질문이 있었습니다.

    질문 ① 예수님은 누구인가?

    단순한 인간인가?
    선지자인가?
    하나님의 아들인가?
    참 하나님인가?

    질문 ② 예수님의 죽음은 실제인가?

    실제로 십자가에서 죽으셨는가?

    질문 ③ 부활은 실제인가?

    육체의 부활인가?
    단순한 영적 부활인가?

    질문 ④ 성령은 누구인가?

    단순한 하나님의 능력인가?
    아니면 하나님이신가?

    질문 ⑤ 교회는 무엇인가?

    단순한 인간들의 모임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거룩한 공동체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교회가 "우리는 이렇게 믿는다"라고 고백한 것이 신조입니다. 

    사도신경을 성경의 관점에서 보면

    사도신경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① 성부 하나님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창세기 1:1과 연결됩니다.

    창조주 하나님

    ② 성자 예수 그리스도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탄생

    고난

    십자가

    죽음

    부활

    승천

    재림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

    ③ 성령 하나님

    "성령을 믿사오며"

    성령

    거룩한 공회

    성도의 교제

    죄 사함

    몸의 부활

    영생

    완성주 하나님

    이렇게 보면 사도신경은 사실상 성부의 창조 → 성자의 구속 → 성령의 적용과 완성 
    이라는 삼위일체적 구원 역사를 압축한 신앙고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 문장으로 역사 정리

    목회나 성경공부에서 다음처럼 설명하시면 좋습니다. 

    "사도신경은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만들어진 것도 아니며,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결정된 것도 아니다. 
    그 뿌리는 2세기 로마교회의 세례 신앙고백인 고대 로마 신조에 있으며, 초대교회가 사도적 복음의 핵심을 계승하고 이단에 맞서 신앙을 고백하는 과정에서 수세기에 걸쳐 발전하여 오늘의 형태로 정착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아주 중요한 차이입니다.

    니케아 신조 = 공의회에서 교리적 논쟁에 대응하여 공식화 
    사도신경 = 세례와 교육을 통한 신앙고백이 역사적으로 발전

    따라서 사도신경은 "교회의 신앙을 설명하는 교리문"인 동시에 "내가 무엇을 믿는지를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고백하는 신앙고백"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도신경(使徒信經, Apostles’ Creed) 
    초대교회부터 이어져 온 대표적인 기독교 신앙의 핵심 고백입니다. 
    성부·성자·성령과 교회, 죄 사함, 부활, 영생에 대한 믿음을 압축하여 고백합니다.

    사도신경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
    아멘.

    사도신경의 세 중심

    1. 성부 하나님 — 창조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

    성경의 시작은 창조주 하나님입니다(창 1:1).

    2. 성자 예수 그리스도 — 구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탄생 → 고난 → 십자가 → 죽음 → 부활 → 승천 → 재림과 심판이라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고백합니다.

    3. 성령 하나님 — 교회와 완성

    “나는 성령을 믿으며…”

    성령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성도들을 하나 되게 하시며, 마지막에는 몸의 부활과 영생으로 완성하실 것을 믿습니다.

    따라서 사도신경은 한마디로,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고 →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 완성하실 성령을 믿는다.”

    라는 삼위일체적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요한계시록과 연결하면  창조(창 1장) → 구원(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 교회(계 1–3장) → 심판(계 20장) → 새 하늘과 새 땅·영생(계 21–22장)이라는 성경 전체의 흐름과도 연결됩니다.






    2026년 9월 13일 주보 칼럼

    신앙고백(信仰告白)이란
    내가 무엇을 믿으며, 누구를 믿고, 그 믿음에 따라 어떻게
    살 것인지를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입으로 고백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고백은 단순히 “나는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이 하신 일을
    믿으며, 그 믿음에 나의 삶을 맡깁니다.”라는 약속입니다.
    신앙고백의 성경적 의미는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믿음의 대상
    믿음의 대상은 내가 누구를 믿는가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 대표적인 고백은 사도 베드로를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둘째는 믿음의 내용
    믿음의 내용은 하나님은 창조주, 예수님은 구세주로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부활하셨으며 재림과 심판주로 다시 오실 것을 믿는 것이며, 
    성령님은 지금도 이 세상에서 하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역사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셋째는 믿음의 삶
    믿음의 삶이란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한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이 고백한 내용을 그들의 생활을 통하여 실천하는
    삶을 말합니다. 따라서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신앙고백이라고 하겠습니다. 


    신앙고백(信仰告白)이란?

    신앙고백은 단순히 “내가 무엇을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계시하신 진리를 내가 믿고, 입으로 고백하며, 삶으로 증언하는 것입니다.

    1. 신앙고백의 성경적 의미

    로마서 10:9은 신앙고백의 핵심을 이렇게 보여 줍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여기에는 세 가지가 연결됩니다.

    마음 → 믿음 → 입 → 고백 → 삶 → 증언

    즉, 믿는 것(Belief) → 고백하는 것(Confession) → 살아내는 것(Life)입니다. 

    2. 신앙고백의 핵심은 “예수는 누구신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신앙고백 중 하나가 베드로의 고백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 마태복음 16:16

    헬라어로는 Σὺ εἶ ὁ Χριστός, ὁ υἱὸς τοῦ θεοῦ τοῦ ζῶντος. 
                       “당신은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여기서 신앙고백은 예수님에 대한 단순한 감정이나 의견이 아닙니다. 
    예수 = 그리스도 =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고백입니다. 

    3. 신앙고백은 세 단계로 발전합니다

    단계 고백 의미
    ① 예수 예수 내 구주 나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분
    ② 그리스도 예수 내 생명 나의 왕·주권자·기름부음 받은 자
    ③ 임마누엘 예수 내 권세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

    따라서 신앙고백은 “예수님을 믿습니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의 구주이시며, 나의 주님이시며,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라는 삶의 고백으로 나아갑니다. 

    4. 요한계시록에서 신앙고백은 더욱 깊어집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주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장에서는 부활하시고 영광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봅니다.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 요한계시록 1:18

    따라서 요한계시록의 신앙고백은 다음과 같이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 → 그리스도 → 주님 → 처음과 나중 → 생명의 주 → 심판의 주 →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주

    결국 신앙고백의 중심은 “예수님은 누구신가?”입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신앙고백(信仰告白)이란,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며 삶으로 증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가 함께 드리는 대표적인 공동 신앙고백이 사도신경(使徒信經)입니다.












    성경에 없음이라는 구절의 의미


    성경에 없음이라는 구절의 의미

    마태복음 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괄호의 의미?)
    오래된 사본에는 없지만 후기에 기록된 사본에만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성경의 사본은 대략 5,800개 라고 합니다.
    많은 사본들 중에서 매우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으로 구분하여 성경을 편집할 때 참고하였습니다.

    원래 성경에는 장과 절이 표시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은 대분자로만 기록되었기 때문에 쉽게 읽을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세계 도처에 흩어지면서 히브리어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위하여 히브리어 성경을 처음으로 헬라어로 번역한 것을 칠십인 역이라고 합니다.

    "없음"의 의미

    마태복음 23:13-15

    13.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14. (없음)
    15.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일부 사본에는 기록되었으나 중요한 사본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

    “없음”이란 구절(13구절)

    마태복음 17:21, 18:11, 23:14
    마가복음 7:44, 46, 11:26, 15:28
    누가복음 17:36, 23:17
    사도행전 8:37, 15:34, 28:21
    로마서 16:24

    마태복음 17:20-21

    20.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21. (없음)
    22.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킹제임스 흠정역 마태복음 17: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종류는 기도와 금식을 통하지 않고는 나가지 아니하느니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9:29의 말씀을 인용한 것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8:10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11. (없음)
    12.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킹제임스 흠정역 마태복음 18:11


    사람의 아들은 잃어버린 것을 구원하려고 왔느니라.

    누가복음 19:10을 인용한 것

    사람의 아들은 잃어버린 것을 구원하려고 왔느니라 하시니라.


    1. 성경의 저자는 몇 명인가? 40명

    2. 성경은 몇 년 동안 기록되었나요? 1500, 1600년

    3. 성경은 모두 몇 권인가요? 66권
    구약 : 39권, 신약 27권

    4. 성경 모두 몇 장인가요? 1189장
    구약 : 929장, 신약 260장


    5. 성경의 장을 구분한 것은?
    13세기 영국 캔터베리 대감독
    스티븐 랭톤(Stephen Lengton), 라틴어 성경

    6. 성경의 절을 구분한 것은?
    1551년 프랑스 스테파누스(Stephanus)
    Stephanus Robertus, 1506~1559 그리스어 신약성경 4판

    7. 성경의 절을 완성한 것은?
    1560년 휘팅햄(William Whitingham) 

    8. 성경에서 가장 긴 절은? 
    에스더 8:9
    그 때 시완월 곧 삼월 이십 삼일에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고 무릇 모르드개의 시키는대로 조서를 써서 인도로부터 구스까지의 일백 이십 칠도 유다인과 대신과 방백과 관원에게 전할쌔 각 도의 문자와 각 민족의 방언과 유다인의 문자와 방언대로 쓰되.

    9. 성경에서 가장 짧은 절은?
    요한복음 11:35
    (한글 성경)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영어 성경) Jesus wept
    (헬라어 성경) Ἐδάκρυσεν ὁ Ἰησοῦς


    표준새번역 성경 

    손톱묶음 ( ) 

    요한복음 1:38-42 / 랍비, 메시아, 게바

    꺽쇠묶음 [ ]

    마가복음 3:14 /
     예수께서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또한 사도라고 이름하셨다.]  이것은, 예수께서 그들을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그들을 내보내어서 말씀을 전파하게 하시며,  

    어떤 사본에는 있고 어떤 사본에는 없어서 원본의 본문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 본문은 꺾쇠묶음 안에다가 넣었다.  

    겹꺾쇠묶음 [[ ]]
    마태복음 6:13 / 후대에 첨가된 본문으로 교회가 일찍부터 중요하게 여기고 읽어온 본문은 겹꺾쇠묶음

    한글개역성경에서 괄호 묶음


    축도의 성구


    구약의 축도 민수기 6:24-26

    신약의 축도 고린도후서 13:13

    구약의 축도(아론)  민수기 6:24-26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신약의 축도(바울) 고린도후서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현대인의 성경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사귐이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새번역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공동번역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주시는 친교를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기를 빕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Question
    성경을 읽다가 보면 어떤 곳에는 괄호로 표시가 되어있고, 또 어떤 부분에는 ‘절 없음’이란 표시가 나옵니다.
    그냥 그런 표시 없이 성경이 기록되어 있으면 혼돈되지 않고 더 좋겠는 데 왜 그런 표시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Answer
    성경은 약 40명의 저저에 의해 약 1500년 혹은 1600년에 걸쳐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구약 39권, 신약 27권 모두 66권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성경 전체는 1,189장(구약 929장, 신약 260장)
    성경의 절 수는? 31,173절(구약 23,214절, 신약 7,959절)
    성경에서 가장 긴 절은 에스더 8장 9절이며, 가장 짧은 절은 요한복음 11장 35절입니다.
    단, 요한복음 11장 35절은 한글로는 그렇게 짧지 않게 보이지만 원어에는 두 단어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영어로도 ‘Jesus wept’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장은 13세기에 영국 캔터베리 대감독이었던 스티븐 랭톤(Stephen Lengton)에 의해 라틴역 성경의 장이 시작되었고,
    성경의 절 구분은 1551년 프랑스의 스테파누스(Stephanus)에 의해 착수되었고 1560년 휘팅햄(William Whitingham)에 의해 완성이 되었습니다.

    성경 중에 괄호로 묶인 것은 어떤 사본에는 있고, 어떤 사본에는 없는 절들이며, ‘절 없음’이란 표시도 사본에는 그 절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최대의 선물인 성경에 대한 여러 학자들과 신앙인들의 수고가 오늘 우리가 쉽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질문 /  
    성경을 읽다 보면 (없음) 이라고 되어 있는 절들이 나옵니다.
    (없음)이라고 쓴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요?
    원래 성경에 있었는데, 후에 그것을 잃어버렸다는 말인가요?

    대답 / 

    1. 원래 성경 저자들이 직접 기록했던 원본(히브리어나 헬라어로 기록한 원본)은 소실되고 현재 남아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성경책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 성경 사본들을 참고해서 만든 것입니다.
    학자들은 성경 사본들을 참고해서 성경 원본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2. 그런데 여러 가지 사본들을 비교해 보면 그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개역 성경의 (마 6:13) 후반부를 보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라고 기록된 부분이 괄호 안에 기록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후기에 기록된 사본에는 있지만, 오래된 사본(더 중요함)에는 생략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개역 성경은 이 내용이 일부 사본에는 있지만 다른 사본에는 없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 이 구절을 괄호 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3. 또 성경을 읽어 보면 질문한 것처럼 (없음)이라고 된 구절들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는 일부 사본에는 기록되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사본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비록 일부 사본에는 기록되었지만, 원본에는 없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서 개역 성경의 (마 23:14)을 보면 (없음)이라고 기록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본문은 일부 사본에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하는 기도..."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원본의 내용을 정확하게 유지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사본들에는 이 내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학자들은 (마 23:14)이 원본에는 없었는데, 이 내용을 후대에 사본 기록자가 첨가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개역 성경에는 그 내용이 믿을 수 없지만, 일부 사본에는 포함된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 그 절을 (없음)이라고 표시를 하고 있습니다.

    4. 이와 같이 성경 학자들은 성경 내용을 기록할 때에 괄호나, (없음), 또는 단어나 구절 아래에 난하주를 붙여서 사본 상의 문제가 있는 것을 정확하게 표시하였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이러한 사본 상의 문제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여 성경 원본의 내용을 보다 정확하게 생각해 볼 수 있게 돕기 위해 취한 조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참고로 성경에 (없음)이라고 표시된 예들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마태복음 17:21, 18:11, 23:14

    마가복음 7:44,46, 11:26, 15:28

    누가복음 17:36, 23:17

    사도행전 8:37, 15:34, 28:21

    로마서 16:24


    민영진 목사님께

    언젠가 햇순을 통해서 괄호 속 본문에 관한 질문을 한 적이 있고 또 좋은 대답을 들었던 독자입니다.
    요즘에 [새번역]으로 성서를 읽다가 ( ), [ ]. [[ ]] 이상 세 종류의 서로 다른 괄호가 사용된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성경을 지금 [새번역]으로 읽고 계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아마도 그것은 [성경전서 표준새번역 개정판](2001)일 것 같습니다.
    같은 성경을 2004년 판 부터는 [성경전서 새번역]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돌머리 님께서 읽고 계시는 성경이 바로 이 [새번역]이라면 책 앞쪽 ‘일러두기’난에 이런 손톱묶음 ( ), 꺽쇠묶음 [ ]. 겹꺽쇠묶음 [[ ]] 등에 대한 설명이 간략하게 나와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있는 대로 간단히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손톱묶음 ( )

    1) 본래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주석처럼 설명을 가한 본문을 이 괄호로 묶었습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서 1장 38-42절을 보면 한 문단 안에 손톱묶음에 묶인 본문이 세 곳이나 나옵니다. 보시겠습니까?

    35 다음 날 요한이 다시 자기 제자 두 사람과 같이 서 있다가, 36 예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서, "보아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 하고 말하였다. 37 그 두 제자는 요한이 하는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갔다. 38 예수께서 돌아서서,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물으셨다. "너희는 무엇을 찾고 있느냐?" 그들은 "랍비님,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랍비'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다.) 39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와서 보아라." 그들이 따라가서, 예수께서 묵고 계시는 곳을 보고, 그 날을 그와 함께 지냈다. 때는 오후 네 시 쯤이었다.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시몬 베드로와 형제간인 안드레였다. 41 이 사람은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서 말하였다.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소." ('메시아'는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42 그런 다음에 시몬을 예수께로 데리고 왔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로구나. 앞으로는 너를 게바라고 부르겠다." ('게바'는 '베드로' 곧 '바위'라는 말이다.)

    위의 경우는 ‘랍비’, ‘메시아’, ‘게바’는 다 히브리말입니다. 그리스어로 쓰인 신약을 읽는 독자들, 특히 이방인 독자들을 위해 편집자가 그러한 히브리어를 번역해 주고 있는데, 그런 번역이 괄호 속에 들어 가 있습니다. ‘랍비’는 ‘선생’이란 뜻이고, ‘메시아’는 ‘그리스도’ 라는 뜻이고, ‘게바’는 ‘베드로’ 곧 ‘바위’라는 뜻을 가졌다고 편집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2) 길을 잃고 헤매는 본문도 손톱묶음 속에 넣어서 보호하고 있습니다. 어딘가에 있었을 본문인데, 잘못 들어 와서 문맥의 흐름을 끊는 그런 본문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스바 여왕이 솔로몬을 방문했을 때 솔로몬이 그 여왕에게 선물을 주는 것을 기록하는 왕상 10장 10-13절 안에 아무런 관련도 없는 본문이 끼어들어 있습니다. 본문을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10 그런 다음에 여왕은 금 일백이십 달란트와 아주 많은 향료와 보석을 왕에게 선사하였다. 솔로몬 왕은, 스바 여왕에게서 받은 것처럼 많은 향료를, 어느 누구에게서도 다시는 더 받아 본 일이 없다. 11 (오빌에서부터 금을 싣고 온 히람의 배들은, 대단히 많은 백단목과 보석을 가지고 왔는데, 12 왕은 이 백단목으로 주님의 성전과 왕궁의 계단을 만들고, 합창단원이 쓸 수금과 하프를 만들었다. 이와 같은 백단목은 전에도 들여온 일이 없고, 오늘까지도 이런 나무는 본 일이 없다.) 13 솔로몬 왕은 스바의 여왕에게 왕의 관례에 따라 답례물을 준 것 밖에도, 그 여왕이 요구하는 대로, 가지고 싶어하는 것은 모두 주었다. 여왕은 신하들과 함께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오빌에서 금을 싣고 온 히람의 배들에 관한 기록(왕상 10:11-12)은 왕상 9장 27-28절 부근 어딘가에 놓여 있어야 할 본문입니다.


    꺽쇠묶음 [ ]

    이것은 어떤 사본에는 있고 어떤 사본에는 없어서 원본의 본문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 본문은 꺾쇠묶음 안에다가 넣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께서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또한 사도라고 이름하셨다.]
    이것은, 예수께서 그들을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그들을 내보내어서 말씀을 전파하게 하시며,
    ([새번역] 막 3:14)


    겹꺾쇠묶음 [[ ]]

    후대에 첨가된 본문이지만 교회가 일찍부터 중요하게 여기고 읽어온 본문은 겹꺾쇠묶음 속에 넣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주기도의 마지막 부분일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여 주십시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알다시피 성경은 독일의 쿠텐베르그1440년 경 금속활자를 발명하기 전까지는 전문 필사자(筆寫者)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베껴서(handwritten) 재판(再版)을 제작하고 보존 계승해 왔습니다.
    그러다보니 간혹 후대의 필사자들이 그 의미를 보충하려는 의도에서 원문에는 없는 구절을 추가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저자가 종이(파피루스)나 양피지에 잉크와 펜을 사용해 직접 기록한 최초의 성경 원본은 현재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시일이 너무 지나 낡았던지 분실 소실 등의 이유로 다 없어졌습니다.
    성경뿐 아니라 현존하는 고대 문서들의 거의 전부가 필사본입니다.
    후대 필사자들이 참고한 성경원본도 자기들이 물려받은 또 다른 필사본입니다.

    그럼에도 그 신빙성과 진실성을 보장할 수 있는 까닭은 성경의 초기 필사자들이 모두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야훼 하나님의 말씀인 구약성경을 정말로 보물 다루듯이 아주 소중하게 취급했습니다.

    신약성경 필사도 믿음이 좋은 자만 맡았기에 누구라도 성경에 더하거나 제하면 하나님이 심판을 내리신다는 요한계시록 22:18-19의 경고를 엄중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모든 성경의 필사자들이 실수를 절대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

    18.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그러나 필사자들도 사람인지라 의도치 않은 오류가 나올 수 있고, 또 극히 부분적이지만 내용을 첨가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수천 개가 넘게 남아있는 사본들을 상호 대조함으로써 그런 오류 내지 추가 조항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원문의 의미를 손상하거나 비 진리적인 오류는 전혀 없고 무시해도 될 만한 사소한 것들뿐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 (없음)으로 표시된 것은 초기의 권위 있는 다수의 사본들에는 없고 후대의 비교적 중요하지 않는 소수의 사본들에 다른 구절이 추가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그렇다는 사실만 참조하면 되고 무시하고 읽으시면 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추가 구절이 원문의 뜻에 모순 상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태여 추가된 구절을 찾아서 기입해 넣고 함께 연결해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둘째, (없음)이라고 표시된 기존의 성경이 더 권위 있는 초기사본의 번역본이므로 더욱 원전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7:21의 "없음"에는 후대의 일부사본에 마가복음 9:29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는 말을 인용해 놓았습니다.

    필사자로선 19절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추가하는 것이 좋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20절)고 이미 충분히 답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11의 (없음)에도 누가복음 19:10의 "인자가 온 것은 잃은 자를 구원하려 함이니라"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추가구절은 무시하고, 사실상 주석서를 보지 않는 한 어떤 구절이 추가되었는지 알지도 못하지만, 10절과 12절을 연결해서 읽으면 됩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궁금한게 있어서 질문 드립니다
    주로 쓰는 한극개역판 성경이나 NIV영어성경에 보면 신약성경에서 마17:21절 같이 "없음"으로 되어있는 성경절이 13구절 나오는데 원본이나 사본에 내용이 소실되어 내용이 확실하지 않아 번역이 안 된건가요 ?

    그리고 말씀보존학회라는 곳에서는 킹제임스성경에서 번역된 킹제임스한글판에는 그 구절을 번역해 놓았는데 소실되었다면 어떤 과정이나 근거가 있어서 번역을 한 것입니까 ?

    구원에 직결되는 문제는 아니지만 성경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다가 궁금증이 생겨 질문드립니다

     

     

    성서공회 홈페이지를 검색하다가 아래의 질문과 답변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만족할 만한 답변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더 좋은 답변을 드릴 만한 실력이 없어서 아래의 것으로 답변을 대신합니다. 늘 말씀 안에서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질문:신약 성경 속에 (없음)으로 되어 있는 부분이 있는데, 왜 이런 부분이 있습니까?

    답변:

    마태복음 17장 21절을 찾아보면, 본문이 있어야 할 곳에 본문은 없고, 그 대신에, 괄호가 쳐 있고 그 괄호 안에 "21절 없음"이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난외주 1번을 보라는 지시가 있습니다. 그 지시를 따라서 난외주 1번을 보면, "어떤 사본에, 21절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가 있음"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것은 후대 사본이 마가복음 9장 29절에서 따다가 첨가한 것입니다. 

     

    18장 11절도, 본문이 없고 난외주에 "어떤 사본에는, 11절 [인자가 온 것은 잃은 자를 구원하려 함이니라]가 있음"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것은 후대사본이 누가복음 19장 10절에서 가져다가 여기에 첨가시킨 것입니다.

     

    "-절 없음"이라고 된 부분은 고대 사본에 없는 본문입니다. 3세기 전후의 파피루스 사본이나, 4-5세기의 대문자 사본에는 없는 본문들입니다. 11세기 전후의 소문자 사본에만 나오는 본문입니다.

     

    11세기의 사본을 가지고 절을 구분하고 거기에 고유 번호를 붙였기 때문에 그 이전의 고대 사본에 없는 구절의 경우는, 절만 빼고, 절 번호는 그대로 두었기 때문에, 이러한 "-절 없음"이라는 표시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11세기의 사본은 확대된 사본입니다. 확대된 내용은 다른 어느 곳에서 온 것이 아니라 성경의 관련 구절에서 온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절 없음"이라는 표시가 있는 난외주에서 거기에 첨가되어 있던 본문을 보면 결코 생소한 본문이 아닌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을 읽다보면 '절없음'이라는 구절이 신약성경에 13번 나타납니다.

    왜 절이 없을까? 없는 것이라면 처음부터 뺄 일이지하고 성도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입니다.

    성경에 따라 밑에 작은 글씨로 다른 사본에는 '...' 구절이 있다고 설명해주는 성경도 있고 그렇지 않은 성경도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발행된 성경 중 대표적인 개역한글, 개역개정, 새번역,공동번역 성경은 동일하게 이 13곳을 제거하고 성경에 따라 밑에 각주로 설명을 붙여놓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KJV(킹 제임스 번역성경)의 한국 번역판에는 이 삭제된 구절들을 원문에 그대로 실어놓았습니다. 사실은 이 부분-삭제한 부분의 타당성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기도 합니다.

     

    우선 킹 제임스번역 성경이 기초한 원어 성경은 비교적 훗날에 완성된 안디옥-비잔틴 계열(Byzantine family of manuscripts 500 to 1000 AD)-소문자 중심으로 기록된 사본들이 원문입니다. 이것을 흔히  '공인본문'(公認本文 : Textus Receptus)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성경에는 지금 삭제된 구절들이 모두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킹 제임스 번역본을 주장하는 분들은 이것이 바로 원본 성경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지금 그 구절들을 뺀 번역성경들은 비잔틴 계열의 원문보다 훨씬 오래전 존재하여 원본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원어성경( ‘Alexandrian Family’ manuscripts 200 to 400 AD)-대문자 중심으로 기록된 사본들을 참고하여 지금 삭제된 내용들은 더 오래전에 존재하는 원본에는 없었던 것인데 훗날 첨가되었기 때문에 삭제하거나 또는 각주로 설명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서로 부딪히는 상황입니다.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개역한글성경이나 개역 개정성경은 이 알렉산드리아-오리겐 계통의 원본을 기초로 한 것입니다. 시기적으로 더 오래된 것임은 맞습니다. 다만 오래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원본에 가까운 것만은 아니라는 주장이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두 계열의 성경 장절 구분이 일단은 1500년대에 성경을 인쇄한 프랑스 출신의 궁정 인쇄업자인 스테파누스 (Stephanus Robertus [프] Etienne Robert 1503-1559)의 장절 구분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그리스어로 신약성경을 인쇄하면서 그리이스어학자인 아들의 도움을 받아 장절을 구분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그 구절을 빼거나 넣는 것으로 신학적 토론이 치열한 성경의 '장절 구분'을 그냥 인쇄업자가 해냈다는 사실이 조금 실소가 나오긴 하는데 역사현실입니다. 신학자들이 해결하지 못하면 인쇄업자가 해결해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개역성경은 원본에 더욱 가깝다고 여겨지는 신구약 원본에서 번역한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신뢰할만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삭제된 문장들을 삽입해도 큰 신학적 오류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직접 읽어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 다만 삭제된 부분을  그대로 넣어야한다는- 킹제임스 버전 성경의 유일성을 주장하는 말씀보존학회의 토론 중에는 수긍할만한 부분이 있습니다.중요한 것은 그 본문을 넣고 빼는 것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리는데 있습니다.


    아래는 대한성서공회의 답변입니다. 이렇게 정리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절 없음"이라고 된 부분은 고대 사본에 없는 본문입니다. 3세기 전후의 파피루스 사본이나, 4-5세기의 대문자 사본에는 없는 본문들입니다. 11세기 전후의 소문자 사본에만 나오는 본문입니다. 11세기의 사본을 가지고 절을 구분하고 거기에 고유 번호를 붙였기 때문에 그 이전의 고대 사본에 없는 구절의 경우는, 절만 빼고, 절 번호는 그대로 두었기 때문에, 이러한 "-절 없음"이라는 표시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11세기의 사본은 확대된 사본입니다. 확대된 내용은 다른 어느 곳에서 온 것이 아니라 성경의 관련 구절에서 온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절 없음"이라는 표시가 있는 난외주에서 거기에 첨가되어 있던 본문을 보면 결코 생소한 본문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글 개역 개정 신약성경에는 아래와 같은  총 13절의 '없음'이 있습니다.

      1) 마태복음 17:21

      2) 마태복음 18:11

      3) 마태복음 23:14

      4) 마가복음 9:44

      5) 마가복음 9:46

      6) 마가복음 11:26

      7) 마가복음 15:28

      8) 누가복음 17;36

      9) 누가복음 23:17

    10) 사도행전 행 8:37

    11) 사도행전 15:34

    12) 사도행전 28:29

    13) 로마서 16:24

    <직접 읽어보기>

    전체문맥 이해를 위해 개역개정과 한글 KJV 앞 뒤 한절씩 추가했습니다.

    1) 마태복음 17:21  

    < 개역개정 성경>

    [마17:19]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마17: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 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마17:21] (없 음)

    < 한글 KJV번역 성경>

    [마17:19]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따로 나아와서 말씀드리기를 "어찌하여 우리는 그를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라고 하니

    [마17:20]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너희가 이 산에게 말하여 '여기서 저리로 옮겨져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에게 불가능한 일이 전혀 없을 것이니라.

    [마17:21] 그러나 이런 종류는 기도와 금식에 의하지 않고는 나가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시더라. 

     

    2)마태복음 18:11

    < 개역개정 성경>

     마18: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18: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 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마18:11 (없 음) 

    < 한글 KJV번역 성경>

    마18:9 또 네 눈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뽑아 던져 버리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한 눈을 가지고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나으니라.

    마18:10 너희는 이런 어린 아이들 중에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늘에 있는 그들의 천사들이 항상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뵙고 있느니라.

    마18:11 인자가 온 것은 잃어 버린 자를 구원하려는 것이라.


     

    3) 마태복음 23:14

    < 개역개정 성경>

     마23: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마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23:14 (없 음)

    마23: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 한글 KJV번역 성경>

    마23: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요, 자신을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마23:13 그러나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이는 너희가 사람들에게 천국을 닫아 버려서 너희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라.

    마23:14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너희들이 과부들의 집을 삼키며 남들에게 보이고자 길게 기도하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더 큰 심판을 받으리라.

    마23:15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너희가 한 사람의 개종자를 얻으려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얻고 나면 그를 너희보다 두 배나 더 악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기 때문이라. 

     

    4) 마가복음  9:44

    < 개역개정 성경>

     막9:42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막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막9:44 (없 음) 

    < 한글 KJV번역 성경>

    막9:42 또 나를 믿는 이런 어린 아이들 가운데 하나를 실족케 하는 자는 연자 맷돌을 그의 목에 걸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더 나으니라.

    막9:43 네 손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잘라 버리라. 두 손을 가지고 결코 꺼지지 않는 불 속인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나으니라.

    막9:44 그 곳에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5) 마가복음 9:46

    < 개역개정 성경>

     막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막9:44 (없 음)

    막9: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막9:46 (없 음)

    막9: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뻬어 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 한글 KJV번역 성경>

    막9:43 네 손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잘라 버리라. 두 손을 가지고 결코 꺼지지 않는 불 속인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나으니라.

    막9:44 그 곳에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막9:45 네 발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잘라 버리라. 두 발을 가지고 결코 꺼지지 않는 불 속인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나으니라.

    막9:46 그 곳에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막9:47 네 눈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뽑아 버리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불에 던져지는 것보다는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나으니라. 

     

    6) 마가복음11:26

    < 개역개정 성경>

     막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11: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막11:26 (없 음) 

    < 한글 KJV번역 성경>

     막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기도할 때에 바라는 것들은 무엇이나 받은 것으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 것이 되리라.

    막11:25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만일 어떤 사람과 적대 관계에 있다면 그를 용서하라. 그러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죄들을 용서하시리라.

    막11:26 그러나 만일 너희가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죄들를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시더라. 

     

    7) 마가복음 15:28

    < 개역개정 성경>

     막15:26 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막15:27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막15:28 (없 음)

    막15:2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 한글 KJV번역 성경>

    막15:26 죄명을 쓴 명패가 있었는데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였고

    막15:27 주와 함께 강도 두 명을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한 사람은 주의 오른편에, 또 한 사람은 주의 왼편에 있더라.

    막15:28 그리하여 '그가 범죄자들과 더불어 헤아림을 받았다.'고 말한 성경이 이루어졌더라.

    막15:29 그때 지나가던 자들이 자기들의 머리를 흔들며 주를 모독하여 말하기를 "아하! 성전을 헐고 삼일 만에 짓는 자여,

     

    8) 누가복음 17;36

    < 개역개정 성경>

     눅17: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눅17:36 (없 음)

    눅17:37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이르시되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

    < 한글 KJV번역 성경>

    눅17:35 두 여인이 함께 맷돌을 갈고 있다가, 한 사람은 데려가게 되고 한 사람은 남게 되리라.

    눅17:36 또 두 사람이 들에 있는데 한 사람은 데려가게 되고 한 사람은 남게 되리라."고 하시니라.

    눅17:37 그러자 그들이 대답하여 주께 말씀드리기를 "주여, 어디니이까?"라고 하니,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어디든지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도 함께 모이느니라."고 하시더라.

     

    9) 누가복음 23:17

    < 개역개정 성경>

     눅23:15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그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

    눅23:16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

    눅23:17 (없 음)

    눅23:18 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눅23:19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러라 

     < 한글 KJV번역 성경>

    눅23:15 헤롯 역시 잘못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내가 너희를 그에게로 보냈음이라. 보라, 그가 사형을 당할 만한 일을 행한 것이 없노라.

    눅23:16 그러므로 나는 그를 매질한 후 놓아 주겠노라."고 하니라.

    눅23:17 (명절에는 반드시 그들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게 되어 있더라.)

    눅23:18 그러자 그들이 일체가 되어 소리질러 말하기를 "이 사람을 처단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라고 하니

    눅23:19 (그는 그 성읍에서 난동을 부리고 살인으로 인하여 감옥에 갇힌 자더라.)

     

    10) 사도행전 8:37

    < 개역개정 성경>

     행8: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행8:37 (없음)

    행8:38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 한글 KJV번역 성경>

    행8:36 그리하여 그들이 길을 따라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자 그 내시가 말하기를 "보라, 여기 물이 있도다. 내가 침례를 받는데 무슨 거침이 있느뇨?"라고 하니

    행8:37 빌립이 말하기를 "만일 당신이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합당하니라."고 하니, 그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나이다."라고 하더라.

    행8:38 그리고 나서 그가 마차를 세우라고 명한 다음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로 내려가서 빌립이 그에게 침례를 주니라.

     

    11) 사도행전 15:34

    < 개역개정 성경>

    행15:33 얼마 있다가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고 자기를 보내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되

    행15:34 (없음)

    행15:35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 한글 KJV번역 성경>

    행15:33 그 곳에서 잠시 지체한 후 그 곳 형제들로부터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받고 사도들에게로 가려 하되

    행15:34 실라는 오히려 그 곳에 머무는 것을 좋게 여기니라.

    행15:35 바울과 바나바도 안티옥에 머물면서 많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주의 말씀을 가르치고 또 전파하니라.

     

    12)사도행전 28:29

    < 개역개정 성경>

    행28: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행28:29 (없 음)

    행28: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행28: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 한글 KJV번역 성경>

    행28:28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을 이방인들에게 보낸 것과 그들이 그것을 들을 것을 너희가 알라."고 하더라.

    행28:29 그가 이 말을 마치니 유대인들이 자리를 뜨더라. 그리고 그들 사이에 상당한 쟁론이 있더라.

    행28:30 바울이 만 이 년을 자기 셋집에서 지내며 자기에게 오는 모든 사람을 맞아들여

    행28: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일들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이 담대함으로 하였더라. 

     

    13) 로마서 16:24

    < 개역개정 성경>

     롬16:22 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롬16:23 나와 온 교회를 돌보아 주는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관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롬16:24 (없음)

     < 한글 KJV번역 성경>

    롬16:22 이 편지를 쓴 나 터티오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롬16:23 나와 온 교회의 집 주인인 가이오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도시의 재무관인 에라스토와 형제 쿠알토가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롬16: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 '없음' 본문만 따로 모음>  < 한글 KJV번역 성경>

    1) 마태복음 17:21 "그러나 이런 종류는 기도와 금식에 의하지 않고는 나가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시더라." 

    2) 마태복음 18:11  "인자가 온 것은 잃어 버린 자를 구원하려는 것이라."

    3) 마태복음 23:14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너희들이 과부들의 집을 삼키며 남들에게 보이고자 길게 기도하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더 큰 심판을 받으리라."

     4) 마가복음 9:44 "그 곳에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5) 마가복음 9:46 "그 곳에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6) 마가복음 11:26 "그러나 만일 너희가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죄들를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시더라."

    7) 마가복음 15:28 "그리하여 '그가 범죄자들과 더불어 헤아림을 받았다.'고 말한 성경이 이루어졌더라."

    8) 누가복음 17;36 "또 두 사람이 들에 있는데 한 사람은 데려가게 되고 한 사람은 남게 되리라."고 하시니라."

    9) 누가복음 23:17 "(명절에는 반드시 그들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게 되어 있더라.)"

    10) 사도행전 행 8:37 "빌립이 말하기를 "만일 당신이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합당하니라."고 하니, 그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나이다."라고 하더라."

    11) 사도행전 15:34 "실라는 오히려 그 곳에 머무는 것을 좋게 여기니라."

    12) 사도행전 28:29 "그가 이 말을 마치니 유대인들이 자리를 뜨더라. 그리고 그들 사이에 상당한 쟁론이 있더라."

    13) 로마서 16: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신학적 입장은 조금 달라도 성경번역 역사에 대해 이해하기 쉬울 것같아 참고로 싣습니다.

     

     

     

    안티오크 계열
    (ANTIOCHIAN LINE)

    알렉산드리아 계열
    (ALEXANDRIAN LINE)

    ①안티오크 원문(Antochian Text)

    ①알렉산드리아원문(Alexandrian Text)

    ②비잔틴 원문(Byzantine Text)

    ②이집트 원문(Egyptian Text)

    ③시리아 원문(Syrian Text)

    ③국부(지역) 원문(Local Text)

    ④황제 원문(Imperial Text)

    ④헤시키안 원문(Hesychian Text)

    ⑤종교개혁 원문(Reformation Text)

    ⑤소수 원문(Minority Text)

    ⑥보편적 원문(Universal Text)

     

    ⑦전통 원문(Traditional Text)

     

    ⑧수용 원문(Textus Rreceptus)

     

    ⑨다수 원문(Majority Text)

     

     

     

    NIV(New International Version)에서 삭제된(없는) 구절들

     

    KJV(킹제임스)
    NIV
    개역 한글
    마 17:21
     그러나 이런 종류는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나가지 아니하느니라.
    '삭제'
    (없음)
    마 18:11
     인자가 온 것은 길 잃은 자를 구원하려 함이니라.
    '삭제'
    (없음)
    마 23:14
     화 있으리라 성경기록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이여! 너희가 과부들의 집을 삼키고 가식으로 길게 기도하는도다. 그런즉 너희가 더욱 큰 정죄를 받으리라.
    '삭제'
    (없음)
    막 7:16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삭제'
    '15절을 잘라서 16절로 만든 다음 원래의 16절은 슬쩍 삭제해 버림'
    막 9:44
     거기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삭제'
    (없음)
    막 9:46
     거기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삭제'
    (없음)
    막 11:26
     만일 너희가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하셨더라.
    '삭제'
    (없음)
    막 15:28
     그리하여 성경 기록이 성취되었으니 말씀하시되, 또한 그분께서 범법자들과 함께 헤아림을 받으셨도다, 하였느니라.
    '삭제'
    (없음)
    눅 17:36
     두 남자가 들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다른 사람은 남게 되리라, 하시니라.
    '삭제'
    (없음)
    눅 23:17
     (이는 그가 그 명절에 필히 한 사람을 그들에게 놓아 주어야 함이라.)
    '삭제'
    (없음)
    요 5:4
     이는 천사가 어떤 때에 못에 내려와 물을 요동시키는데, 물이 요동한 후에 누구든지 먼저 들어가는 자는 무슨 병에 걸렸든지 온전케 됨이라.
    '삭제'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행 8:37
     빌립이 말하되, 만일 그대가 마음을 다하여 믿는다면, 받을 수 있느니라, 하니, 내시가 대답하여 말하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노라, 하고,
    '삭제'
    (없음)
    행 15:34
     실라는 거기 그대로 거하는 것을 기뻐하더라.
    '삭제'
    (없음)
    행 24:7
     총대장 리시아스가 우리를 습격하여 심한 폭력으로 우리 손에서 그를 빼앗아 가고는
    '삭제'
    '8절을 잘라서 7절로 만든 다음 원래의 7절은 슬쩍 삭제해 버림'
    행 28:29
     그가 이 말을 한 뒤에, 유다인들이 떠나 자기들끼리 큰 논쟁을 벌이더라.
    '삭제'
    (없음)
    롬 16: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삭제'
    (없음)
    요일 5:7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세 분이 계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한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
    '삭제'
    '6절의 끝부분을 잘라서 7절로 만든 다음 원래의 7절은 슬쩍 삭제해 버렸음'

     

     

    이 구절들은 없어야 되는 구절인가?

    이 구절들은 없어도 되는 구절인가?

    이 구절들이 없기때문에 논쟁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고린도후서 2장]

    17 For we are not as many, which corrupt the word of God: but as of sincerity, but as of God, in the sight of God speak we in Christ. 
    17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킴으로써 이익을 취하는 여러 사람들과 같지 않고, 오직 성실함과 하나님께서 보낸 사람처럼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갈라디아서 1장]

    7 Which is not another; but there be some that trouble you, and would pervert the gospel of Christ.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너희를 교란시키는 어떤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개시키려는 것이라



    신약성경에서 "없음"이 생기게 된 이유

     


     

    신약성경을 읽다보면 가끔 '(없음)'이라고 되어 있는 부분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절 없음... 27절, 28절, 29절 세 절에서 28절이 없는 내용이라면 굳이 '없음' 표시를 하지 않고 29절을 28절로 바꾸면 될텐데 왜 굳이 (없음)이라는 표시를 해놓았을까요?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신약성경의 사본과 인쇄본에 대해 아셔야 합니다.

    첫째, 사본이라 함은 필사본의 약자로 손으로 배껴 쓴 본문을 말합니다.

    현재 신약성경의 사본은 2008년 4월 기준 5,760개가 있습니다.
    신약성경 사본은 5천개가 넘는 방대한 양이 있지만, 어느 사본도 100% 일치하지 않는 특징을 지닙니다.
    또한 후대의 사본일수록 고대의 사본보다 양이 많다는 특징 또한 가집니다.

    둘째, 인쇄본은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후 인쇄기에 의해 쓰인 성경 본문을 말합니다.

    최초의 그리스어 인쇄본은 에라스무스 라는 사람이 찍어냈습니다.
    에라스무스는 16세기의 인문주의자로 유명하지요.

    그런데 에라스무스가 히메네스라는 스페인의 추기경이 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로 이루어진 성경을 만들고 교황청의 허가를 기다린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자신도 그리스어 신약성서를 만들어내려고 합니다.

    히메네스의 성경에 대한 교황청의 허가가 오랜 기간 동안 나지 않았기 때문에 에라스무스최초의 그리스어 성서 인쇄본 제조자의 명예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에라스무스는 고작 몇개월에 걸쳐 그리스어 신약성서를 만들어냈고, 그가 구한 그리스어 사본은 12세기의 사본들이었습니다. 앞서 사본에 대해 말씀드릴 때, 사본은 후대로 갈수록 양이 점점 많아진다고 하였습니다.

    에라스무스가 12세기의 열등한 사본을 가지고 그리스어 인쇄본을 만들었고, 그 이후 스테파누스, 베자, 엘제비어 형제들이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신약성서 인쇄본을 토대로 여러 특성을 지닌 신약성서를 인쇄하였습니다.

    첫째, 스테파누스의 성경에서 중요한 것은 제 3판과 제 4판입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성경이 밑에 주석이 달려있지요.
    이를 본문 비평 장치라고 하는데, 스테파누스 제 3판 성경에서 본문 비평 장치가 처음 등장했습니다.
    제 4판에는 최초로 장, 절 구분되었습니다.
    하지만 스테파누스가 말 위에서 장과 절을 구분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장, 절 구분은 엉성했습니다.

    하지만 스테파누스 제 4판 성경 이후로 나온 성경들이 거의 다 이 성경의 장, 절 구분을 따랐기 때문에 오늘날 장과 절이 내용상 단락과 맞지 않는 경우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둘째, 베자 성경은 이 성경이 제임스 왕 흠정역(King James Version, KJV)의 번역 대본이 되었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셋째, 엘제비어 형제의 성경에서 '수용본문(Textus Receptus,TR)'이라는 용어가 등장했기 때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용본문'이라는 말은 엘제비어 형제가 자신들의 성경을 홍보할 때 쓴 말입니다.
    "귀하는 이제 모두에게 수용되는 성경 본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자신들의 성경이 권위가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절 없음 현상'의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스테파누스의 성경에 주목해야 합니다.

    앞서 스테파누스의 성경은 에라스무스의 성경을 토대로 만들어졌고, 에라스무스 성경은 12세기의 그리스어 사본을 토대로 만들어졌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또한 사본은 후대로 갈수록 양이 점점 많아진다는 말씀 또한 드렸습니다.

    스테파누스의 성경에서 처음 장 절이 구분되었으나 이는 후대에 갈수록 첨가된 내용이지 고대 사본에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스테파누스 성경보다 훨씬 전 시대의 사본이 발견되고 있고 연구되고 있는 지금, 고대 사본에 신빙성을 부여하며 스테파누느 성경에 있던 절을 뺀 것이며, 따라서 절 없음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성경침례회, 말씀보존학회에서는 킹 제임스 성경만이 유일한 하나님의 성경이며, 나머지는 사탄이 변개한 성경이라고 하는 주장 중에 '절 없음 현상'도 있습니다. 어찌 하나님의 말씀에 없는게 있느냐며, (없음)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빼버린 것이라 주장하는 것이죠.

    하지만 (없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빼버린 것이 아닙니다.
    후대로 갈수록 사본의 양이 점점 불어났던 것은, 이스라엘 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독자들을 배려하여 보충 구절이나 문맥상 매끄럽지 못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필사자들이 삽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후대의 사본보다 더 가치 있는 고대 사본을 토대로 성경을 번역했고, 이미 널리 쓰이는 스테파누스 성경식 장 절 구분을 같이 쓰면서 후대의 사본에만 있는 구절을 (없음)이라고 처리한 것입니다. 또 밑에 각주를 달아서, '어떤 사본에는 몇 절에 ~~라는 구절이 있음'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이 글이 성경을 읽다가 (없음)이라는 표시를 보고 혼란을 느꼈거나, 말씀보존학회의 궤변으로 기존 성경을 불신하게 된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료출처 / [타인글이나 자료 인용] 민경식, 신약성서 손에 오기까지, 대한기독교서회, 2008]

    성서가 현대에 이른 경위

    1800년에 16세의 메리라는 소녀는 성서 한 권을 사러 맨발로 40km 걸어갔습니다.
    메리는 6년 동안 모은 돈을 가지고 갔는데, 도착하여 보니 성경이 다 팔렸다는 애기를 듣자, 풀이 죽은 채 흐느껴 울었습니다.
    이것을 본 교직자는 너무나 감동되어 자기 성서 한 권을 그 소녀에게 주었습니다.

    이 일 있은 후에 그 교직자는 성경을 필요로 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문제를 런던에 있는 친구들과 함께 논의하였습니다 그 결과 - 1804년 영국 및 외국 성서 공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취지는 - 저렴한 가격으로 성서를 여러 언어로 인쇄, 공급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확산되어 1813년 성서공회가 독일, 네델란드, 덴마크, 러시아에 설립되었습니다.
    자국어로 번역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충분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언어가 수천 개가 있으리라고 상상도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방향을 바꾸어 번역 사업을 후원하였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와 헬라어에서 직접 자신의 나라 언어로 번역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번번이 영어 성경 제임스 왕역을 근거로 번역 작업을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선교인들이 번역 작업을 하였는데, 참으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사고 방식이 다르고, 표현 방법도 다르고, 본 적이 없고, 어떤 언어와도 비슷한 점이 없고, 사전이나 통역자가 없을 때 난감하였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혼동을 일으킵니다.

    예를들면 “하늘의 아버지”의 표현을- “창공의 빛깔을 띤 아버지”로 번역하기도 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 현지인 교사의 도움으로 번역 작업을 하였습니다.
    - 참으로 힘든 일이었지만 성서 번역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저드슨 선교사 부부였습니다 그는 미얀마어로 번역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1824년 미얀마에서 국왕의 관리들이 이 선교사 집을 급습하였습니다.
    귀중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모두 가져갔습니다.
    그러나 몰래 번역된 성서 원고를 빼앗기지는 않았습니다.

    하여튼 이 선교사 남편은 국가 스파이 혐의로 감옥에 감금되었습니다.
    부인은 곧 출산할 예정이었지만, 베개 속에 원고를 넣어 옥중 남편에게 전달하였습니다.
    부인은 이런 호된 시련에다 병까지 겹쳐 부인은 건강이 몹시 나빠졌습니다.

    남편이 석방된 지 얼마 안 되어 - 용감한 부인과 딸은 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남편은 가슴이 찢어질 듯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께 의지하여 번역 일을 계속하여 1835년 미얀마 성서을 완역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성서 번역을 위해 헌신적인 남녀들이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성서의 확실성과 예수를 포함한 성서 인물들이 역사상의 실존 인물임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성서의 순수성에 대해 의심하였습니다.

    여러 세기 동안 먹구름같이 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17세기까지만 해도 신약 성서의 가장 오래 된 사본이 10세기, 즉 원본이 기록된 지 900년 이상이 흐른 후에 나온 것입니다. 내용의 변경이나 부주의한 복사자의 실수로 인해 그리스도의 소식이 손상되지 않았나 의심이 되었습니다.

    이 때 성서의 신빙성을 확증하는 학문적인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독일의 천부적인 언어학자인 콘스탄틴 폰 티셴도르프입니다.

    4년 동안 유럽 내의 최상의 도서관을 샅샅이 살펴본 후 - 1844년 5월에 고대 성서 사본을 찾기 위해 중동 전역을 여행하며 시내 산의 성 카타리나 수도원에 도착하였습니다 - 허락받아 도서실을 며칠 동안 뒤졌지만 성과가 없없습니다.

    막 떠나려는데 불쏘시게로 쓰려고 바구니에 넣어 둔 양피지 책을 발견하였습니다.
    무슨 책이었습니까?
    가장 오래 된 성서 사본 129장을 발견하고는 깜작 놀라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거절당하자, 사정하여 43장 받았습니다.

    11년 후에 두 번째로 찾아갔지만 성과가 없업습니다.
    6년 후 세 번째로 찾아갔지만 역시 헛수고라고 생각하고 떠날 준비를 하는데, 한 관리인이 자기 방으로 초대 하여 붉은 천에 싼 책장 한 뭉치를 불쑥 내려놓았습니다.

    놀랍게도 15년간 찾아 헤맨 진주였습니다.
    찾고 있는 성서 사본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놀랍게도 헬라어로 된 신약 성경 전체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시나이 책자본입니다.
    기원 350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믿어지는 이 사본은 그 당시 권위 있는 사본보다 600년 이상 오래 된 것이 었습니다.
    가장 오래 된 사본 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그 동안 성경 본문이 고쳐졌다는 것을 밝혀 주었습니까?
    오늘날 성경 본문과 기본적으로 동일하였습니다.
    그러나 부당하게 변경시킨 몇 군데가 발견되었습니다.

    심각하게도 삼위일체를 지지하기 위해 본문을 변경시킨 내용이 발견되었습니다.
    디모데후 3:16입니다.
    시나이 사본과 가장 오래 된 사본에는 "그분으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 사본에는 "그분"을 "하나님"으로 변경되어 있엇습니다.
    이처럼 명백한 위조 문구는 삭제되었습니다.

    또한 심각한 변경의 예로 요한 1서 5:7.8이 있습니다.

    킹제임스역 "하늘에 증거하는 자가 셋이 있으니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령이 있으며 그 셋은 하나이니라"

    이 구절은 10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희랍어 사본에는 없습니다.
    성서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지나치게 삼위일체론에 열심인 한 라틴계 서기관이 부가하였으며 스페인어 성서에서 생겨난 것이며, 처음에 성서 주해서라는 방법을 통해 발전하다가 본문에 삽입되었다는 것이 확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10세기 이후의 희랍어사본에만 날조된 구절이 나타납니다. 

    1611년 킹제임스 역에도 날조된 구절을 도입하였던 것입니다

    이 구절이 날조되었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왜냐하면 신약 성경 사본이 1만 3000개가 넘으며, 그 중 수천 개의 희랍어 사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 어떤 사본에는 예수와 사도들 당시까지 소급합니다.

    그런데 매우 오래 된 사본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나중에 첨가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새로운 대부분의 현대 번역판들 가운데서는 이것이 빠져 있습니다.

    이와같은 사본적 증거때문에 현대의 대다수 번역판에서는 날조된 표현을 삭제시켰습니다

    하여튼 성서가 지상에서 단연 가장 널리 배포된 책이 되도록 기여해 온, 결단력 있는 남녀들에 관해 쓸 수 있는 이야기는 훨씬 더 많이 있습니다. 여러 세기에 걸쳐 적어도 40억 부의 성서와 부분역 성서가 2000여 개의 언어로, 즉 세계 인구의 90퍼센트가 훨씬 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들로 인쇄되었습니다!

    성서는 우리 시대에 하나님의 왕국이 세계 전역에서 선포될 것임을 예언하였습니다. 이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친히 사람들을 인도해 오심으로써 이제는 거의 세계 전역에서 성서를 구할 수 있게 하신 것이 분명합니다.과거의 담대한 성서 번역자들과 발행자들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하기 위하여 온갖 위험을 무릅썼습니다. 그들의 모범에 우리의 마음이 감동되어, 그들이 나타낸 동일한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에 따라 생활하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날마다 우리의 수중에 있는 신뢰할 만한 성서를 온전히 활용하십시오!

    조작된 표현을 삭제한 주요한 세계적 영어 번역판 몇 개만 열거하면 이렇습니다. 

      

    Revised Standard Version,1952),

    The New English Bible,1970),

    The New American Bible, 1970,

    The American Standard Version

    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For there are three that testify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ASB)

    For there are three that testify:

    Darby Translation (DARBY)

    For they that bear witness are three:

    New Living Translation (NLT)

    So we have these three witnesses--

    요한 1서 5:7

    개역판 /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현대인의 성경 / "이사실을 증거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이것은 성령님 자신 이 진리이기 때문입"

    공동번역 / "증언자가 셋 있습니다" 

    표준역 / "증언하는 이가 셋인데"

    킹 제임스 역은 좋은 번역이지만 요한 1서 5:7에 있어서는 조작된 표현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습니다.
    성서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일은 하나님 앞에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18,19
    "내가 이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거릇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처럼 조작된 성구를 삽입하는 것은 심각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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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6년 맥스웰, 바실 홀 1832년 귀츨라프 선교사 1866년 대동강 토머스목사 1883년 나가사키 1885년 4월 5일 언더우드 아펜셀러


    1816년 맥스웰, 바실 홀
    맥스웰(William Maxwell), 바실 홀(Basil Hall)
    영국 해군 탐사선이 조선 서해안에 접근하여 조선과 서양의 접촉을 남김

    1832년 귀츨라프 선교사
    귀츨라프(Karl Friedrich August Gützlaff)
    조선에 온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로 널리 알려짐. 성경과 기독교 문서를 전하려 함

    1866년 대동강 토머스목사
    토머스(Robert Jermain Thomas) 목사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대동강에서의 성경 전달. 순교를 통해 한국 선교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기억됨

    1883년 나가사키
    한국 개신교 전래사에서 중요한 일본 경로가 형성됨. 이 시기 이수정의 역할과 연결하여 보는 것이 중요함

    1885년 4월 5일 언더우드 아펜셀러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두 선교사가 제물포에 입국하면서 한국 개신교 선교의 본격적인 시작

    말씀하신 내용을 한국 개신교 선교·복음 전래의 주요 연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다만 몇 가지 연도·인물은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에 복음의 문이 열리는 과정

    연도 인물·사건 역사적 의미
    1816 맥스웰(William Maxwell), 바실 홀(Basil Hall) 영국 해군 탐사선이 조선 서해안에 접근하여 조선과 서양의 접촉을 남김
    1832 귀츨라프(Karl Friedrich August Gützlaff) 조선에 온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로 널리 알려짐. 성경과 기독교 문서를 전하려 함
    1866 토머스(Robert Jermain Thomas) 목사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대동강에서의 성경 전달. 순교를 통해 한국 선교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기억됨
    1883 나가사키 한국 개신교 전래사에서 중요한 일본 경로가 형성됨. 이 시기 이수정의 역할과 연결하여 보는 것이 중요함
    1885. 4. 5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두 선교사가 제물포에 입국하면서 한국 개신교 선교의 본격적인 시작

    특히 중요한 흐름

    이 연표를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복음의 길이 어떻게 준비되었는가”라는 관점으로 보면 매우 아름다운 구조가 됩니다.

    1816 → 1832 → 1866 → 1883 → 1885

    접촉 → 성경 전달 → 순교 → 복음의 연결 → 선교사 입국

    그리고 1885년 4월 5일은 하나의 결정적인 전환점입니다.

    언더우드 → 장로교 선교
    아펜젤러 → 감리교 선교

    두 사람이 같은 날 제물포에 도착함으로써 한국에서 조직적인 개신교 선교가 본격화됩니다.

    또한 1883년을 나가사키 자체의 사건으로만 표시하기보다는, 이수정(李樹廷)과 일본에서의 성경 번역·복음 수용, 그리고 미국 선교사들에게 한국 선교의 문을 연결한 과정으로 설명하면 역사적으로 훨씬 정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