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는 예수 필터



헌금에 대한 신앙 

성도의 삶 — 의무(義務. duty) · 생활(生活. life) · 사명(使命. mission)

십일조는 성도의 의무요,
감사는 성도의 생활이며,
선교는 성도의 사명이다.

영역 핵심 성경적 의미
십일조   의무(義務)     하나님이 주신 것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
감사 생활(生活)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삶
선교 사명(使命)        받은 복음과 은혜를 세상에 전하는 삶

1. 십일조 — 성도의 의무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 말라기 3:8

십일조는 단순히 돈을 내는 행위가 아니라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고백입니다. 
십일조 = 소유권의 고백

2. 감사 — 성도의 생활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 데살로니가전서 5:18

감사는 특별한 날에만 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일상적인 삶의 태도입니다. 
감사 = 은혜를 발견하는 삶

3. 선교 — 성도의 사명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 마태복음 28:19

성도는 복음을 받은 사람에서 끝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부름받았습니다. 
선교 = 복음을 전달하는 삶

한문장 결론 요약  /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
                                감사는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며,
                                선교는 하나님을 세상에 전하는 것이다.

또는 설교 제목으로 더욱 압축하면  「드림· 감사· 전함」
십일조는 드림이요, 감사는 삶이요, 선교는 사명이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 드리고(십일조) →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고(감사) → 하나님을 세상에 전한다(선교)”는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헌금에 대한 신앙(獻金에 對한 信仰)
 성도의 삶 — 의무(義務) · 생활(生活) · 사명(使命)   

 십일조는 성도의 의무
 감사는 성도의 생활
 선교는 성도의 사명

드림은 믿음의 고백이요, 감사의 표현이며, 복음 전파를 위한 헌신이다. 

1. 세 가지 헌금 신앙의 성경적 근거

① 십일조(十一條) — 의무(義務)

Tithe · עֲשֵׂר (아세르, 십분의 일을 나타내는 어근)

핵심 신앙: 모든 소유가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인정한다.

  • 말라기 3:10 —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 레위기 27:30 — 땅의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

  • 마태복음 23:23 — 십일조를 행하되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리지 말라

십일조는 하나님이 주신 소유를 청지기답게 관리한다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다만 신약에서 십일조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는 교회 전통에 따라 해석의 차이가 있으며, 십일조만으로 신앙의 성숙도를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② 감사헌금(感謝獻金) — 생활(生活)

Thanksgiving Offering · εὐχαριστία (유카리스티아, 감사)

핵심 신앙: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일상에서 감사로 살아간다.

  • 데살로니가전서 5:18 — “범사에 감사하라”

  • 고린도후서 9:7 —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 시편 116:12 —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감사는 헌금 시간에만 드리는 행위가 아닙니다. 말과 행동, 가정과 직장, 이웃을 섬기는 삶 전체가 감사의 열매가 되어야 합니다.

③ 선교헌금(宣敎獻金) — 사명(使命)

Mission Offering · ἀποστολή (아포스톨레, 보냄·사명)

핵심 신앙: 복음을 전하고 이웃과 열방을 섬기는 일에 동참한다.

  • 마태복음 28:19–20 —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

  • 사도행전 1:8 —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 빌립보서 4:15–18 — 복음 사역에 동참한 교회의 헌신

선교헌금은 선교사와 선교 사역을 지원하는 실제적인 참여입니다. 재정뿐 아니라 기도, 시간, 은사, 복음 전파를 통해서도 선교 사명을 감당합니다.

2. 의무 · 생활 · 사명의 관계

구분

의무(義務)

생활(生活)

사명(使命)

헌금 신앙

십일조

감사헌금

선교헌금

신앙의 초점

하나님께 속함

은혜에 감사함

복음을 전함

삶의 방향

청지기 정신

감사의 실천

이웃과 열방 섬김

핵심 성구

말 3:10

살전 5:18

행 1:8

신앙의 열매

신실함

기쁨

나눔과 선교

3. 헌금에 관한 신약의 세 가지 원칙

첫째,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립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 고린도후서 9:7

둘째, 형편에 따라 드립니다.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 고린도후서 8:12

셋째, 나눔과 선행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 디모데전서 6:18

헌금은 강요나 과시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도의 형편과 양심을 존중하면서, 자원하는 마음과 정직한 재정 관리, 이웃 사랑이 함께해야 합니다.

4. 설교의 핵심 메시지

설교 제목: 「헌금은 돈이 아니라 신앙의 고백이다」

  1. 십일조 — 내 소유의 주인은 누구인가?

  2. 감사헌금 — 나는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사는가?

  3. 선교헌금 — 나는 복음의 사명에 참여하고 있는가?

헌금의 핵심은 액수의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감사, 그리고 이웃을 향한 사랑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십일조로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고,
감사헌금으로 은혜를 기억하며,
선교헌금으로 복음의 사명에 동참한다. 

참된 헌금은 예배당에서 끝나지 않고, 성도의 생활 속에서 사랑과 나눔의 열매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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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는 가장 중요한 필터 — 예수 필터


성경을 통전적(通典的)으로 읽는다는 것은 모든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읽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 요한복음 5:39

따라서 성경을 읽을 때 다음과 같은 ‘예수 필터’ 7가지 질문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수 필터 질문
① 예수는 누구인가?    이 본문에서 예수님의 인격과 정체성이 어떻게 드러나는가?
② 예수는 무엇을 하시는가?      구원, 심판, 용서, 치유, 통치 가운데 무엇이 나타나는가?
③ 십자가가 어디에 있는가?          죄, 희생, 대속, 속죄의 원리가 어떻게 나타나는가?
④ 부활이 어떻게 연결되는가?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전환이 어떻게 나타나는가?
⑤ 하나님 나라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예수님의 왕 되심과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나타나는가?
⑥ 교회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무엇을 배우고 실천해야 하는가?
⑦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말씀을 통해 예수를 믿고, 따르고, 증언하는 삶은 무엇인가?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  “본문 → 그리스도 → 십자가 → 부활 → 교회 → 나의 삶” 이 흐름으로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사건(창 22장)을 읽을 때 단순히 “아브라함처럼 순종하자”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삭 → 사랑받는 독자 → 희생될 아들 → 하나님이 준비하신 제물 → 그리스도의 희생이라는 구속사적 흐름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성경을 설명하실 때도,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 누가복음 24:27

그래서 ‘예수 필터’란 성경의 모든 구절을 억지로 예수님에게 끼워 맞추는 방법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그리스도의 구속사라는 큰 맥락 속에서 읽는 해석의 렌즈
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설교용으로 압축하면

성경을 읽되 예수의 눈으로 읽고,
말씀을 듣되 십자가를 통하여 듣고,
복음을 믿되 부활의 능력으로 믿고,
교회를 보되 그리스도의 몸으로 보고,
세상을 살되 예수의 증인으로 살자.

또는 아주 간결하게  
“성경의 중심은 예수,
성경의 절정은 십자가,
성경의 승리는 부활,
성경의 목적은 예수의 제자 됨이다.”


성경을 읽을 때 점검하는 7가지 질문”으로 정리하면, 
단순히 성경 지식을 얻는 독서가 아니라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삶이 변화되는 성경 읽기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점검할 7가지

순서 점검할 내용 핵심 질문
① 하나님      이 말씀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으로 나타나시는가?
② 예수님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누구이며 무엇을 하시는가?
③ 성령님     성령께서는 무엇을 깨닫게 하시고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④ 깨달은 죄               내가 버리고 회개해야 할 죄는 무엇인가?
⑤ 회개의 기도       깨달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⑥ 실천할 덕목        오늘 내가 순종하고 실천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⑦ 적용의 즐거움     말씀을 삶에 적용하면서 어떤 기쁨과 변화를 경험하는가?

1. 하나님 —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성경의 첫 질문은 **“나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가 아니라 **“하나님은 누구신가?”**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창세기 1:1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성품·뜻·능력·거룩·사랑·신실하심을 찾습니다.

점검 : “오늘 본문에서 내가 새롭게 발견한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2. 예수님 — “이 말씀은 예수님을 어떻게 증거하는가?” 성경 읽기의 중심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 요한복음 5:39

따라서 성경을 읽을 때마다  “이 본문에서 예수님을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는가?”를 질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말씀하신 “예수 필터”입니다.

3. 성령님 — “성령께서 무엇을 깨닫게 하시는가?”

성경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 요한복음 16:13

점검 :  “성령님께서 오늘 내게 특별히 깨닫게 하시는 말씀은 무엇인가?”

4. 깨달은 죄 — “내 안에서 무엇을 발견했는가?”

말씀은 거울과 같습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 야고보서 1:22

말씀을 읽고 다른 사람의 죄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내 죄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

  • 교만
  • 불신
  • 미움
  • 용서하지 못함
  • 탐욕
  • 거짓
  • 게으름
  • 불순종
  • 사랑의 부족

5. 회개의 기도 — “무엇을 하나님께 고백할 것인가?”

죄를 발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기도로 하나님께 가져갑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 시편 51:1

발견 → 고백 → 회개 → 용서 → 변화 라는 흐름입니다.

짧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이것이 제 안의 죄임을 깨닫습니다. 용서하여 주시고, 돌이킬 힘을 주시며, 다시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도록 성령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6. 실천해야 할 덕목 —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말씀은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 야고보서 1:22

오늘 본문에서 하나의 덕목을 선택합니다.

사랑 · 용서 · 겸손 · 인내 · 온유 · 정직 · 충성 · 섬김 · 감사 · 순종

그리고 질문합니다.  
“오늘 내가 실제로 무엇을 하면 되는가?”

7. 적용의 즐거움 — “말씀대로 살아보니 무엇이 달라지는가?”

여기가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 읽기를 의무로만 생각하지 않고, 말씀을 삶에 적용하면서 경험하는 기쁨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 시편 119:103

즉,  읽는 기쁨 → 깨닫는 기쁨 → 회개의 기쁨 → 순종의 기쁨 → 변화의 기쁨으로 나아갑니다.

 7단계로 압축하면

하나님 → 예수님 → 성령님 → 죄 → 회개 → 실천 → 기쁨

또는 설교용으로 조금 더 기억하기 쉽게:

“누구를 보았는가?” — 하나님
“누구를 만났는가?” — 예수님
“누가 깨닫게 하셨는가?” — 성령님
“무엇을 발견했는가?” — 죄
“무엇을 내려놓는가?” — 회개
“무엇을 행하는가?” — 실천
“무엇을 누리는가?” — 적용의 즐거움

한 문장으로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을 발견하고,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말씀을 실천하고, 그 적용의 기쁨을 누린다.

이것을 더 압축하면 “성경 읽기의 7대 초점”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 → 그리스도 중심 → 성령 의존 → 자기 성찰 → 회개 → 순종 →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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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기 위한 ‘예수 필터’ 갖추기

예수를 중심으로 읽는 성경 · 그리스도 중심적 성경 읽기 · Christ-centered Biblical Reading

성경을 바르게 읽는 비결은 성경 지식만 쌓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분을 중심으로 말씀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안경에 맞는 렌즈를 끼우면 사물이 선명하게 보이듯이, 성경을 읽을 때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는 해석의 관점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예수 필터’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다만 예수 필터란 모든 구절을 억지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로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각 본문의 역사적·문학적 의미를 먼저 살피면서, 그 말씀이 성경 전체의 구원 이야기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예수 필터의 성경적 근거

핵심 성구 ① 요한복음 5:39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핵심 원리 : 성경을 연구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님을 발견하십시오.

핵심 성구 ② 누가복음 24:27

예수님께서는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성경에 자신에 관하여 기록된 것을 제자들에게 설명하셨습니다.

핵심 원리 : 구약을 포함한 성경을 그리스도와 연결하여 읽되, 각 본문의 원래 의미를 존중하십시오.

핵심 성구 ③ 누가복음 24:44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는 것을 설명하셨습니다.

핵심 원리: 성경의 약속과 성취, 예언과 복음의 관계를 살펴보십시오.

핵심 성구 ④ 요한복음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핵심 원리 :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구원, 참된 생명을 이해하십시오.  

예수 필터를 구성하는 7개의 렌즈

성경을 읽을 때 순서대로 적용할 수 있는 실천적 틀입니다.  

① 그리스도 렌즈 — 예수님은 누구신가?

基督中心 · Christ

본문이 예수님의 인격, 사역, 십자가, 부활, 왕권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핍니다.

성구: 요한복음 5:39, 골로새서 1:15–20  

② 문맥 렌즈 — 본문은 무엇을 말하는가?

文脈 · Context

누가, 누구에게, 언제, 어떤 상황에서 기록했는지 살핍니다. 앞뒤 문맥과 장르도 확인합니다.

성구: 느헤미야 8:8, 디모데후서 2:15  

③ 구속사 렌즈 —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어떻게 이어지는가?

救贖史 · Redemptive History

창조, 타락, 언약, 출애굽, 왕국, 포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새 창조의 흐름을 살핍니다.

성구: 창세기 3:15, 갈라디아서 4:4–5, 요한계시록 21:1–5 

④ 복음 렌즈 — 죄와 은혜와 구원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

福音 · Gospel

인간의 죄와 한계, 하나님의 거룩하심, 은혜, 회개, 믿음, 칭의와 화해를 살핍니다.

성구: 로마서 3:23–24, 에베소서 2:8–10   

⑤ 하나님 나라 렌즈 — 하나님의 통치는 무엇을 요구하는가?

神國 · Kingdom of God

하나님의 통치, 의와 사랑, 섬김, 정의, 거룩함, 하나님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살핍니다.

성구: 마가복음 1:15, 마태복음 6:33  

⑥ 성령 렌즈 — 말씀은 나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聖靈 · Holy Spirit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죄를 깨닫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증언하시며, 믿음과 순종으로 이끄시는 것을 살핍니다.

성구: 요한복음 16:13–14, 갈라디아서 5:22–25  

⑦ 제자도 렌즈 — 어떻게 믿고 살아야 하는가?

門徒道 · Discipleship

말씀을 단순히 지식으로 소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랑, 용서, 섬김, 증언과 선교로 실천합니다.

성구: 요한복음 13:34–35, 야고보서 1:22 


예수 필터로 성경을 읽는 5단계

이 다섯 단계는 개인 성경 공부와 설교 준비에 모두 사용할 수 있습니다.

1단계 — 본문을 관찰한다 (觀察)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는가?

반복되는 단어, 인물, 사건, 명령, 약속을 찾습니다.

2단계 — 본문의 뜻을 해석한다 (解釋)

당시 독자에게 어떤 의미였는가?

역사적 배경, 문맥, 히브리어·헬라어, 문학적 구조를 확인합니다.

3단계 — 그리스도와 연결한다 (基督)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에 어떻게 연결되는가?

직접적인 예언과 성취인지, 모형인지, 성경 전체의 구원 계획과 관련되는지 구분합니다.

4단계 — 복음 안에서 적용한다 (適用)

나는 무엇을 믿고 회개하며 실천해야 하는가?

인간의 노력만 강조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 성령의 역사 안에서 적용합니다.

5단계 — 제자로 살아간다 (實踐)

말씀을 삶과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개인의 변화에서 가정, 교회, 이웃을 향한 사랑과 증언으로 나아갑니다.  

실제 적용 : 창세기 1장 1절을 예수 필터로 읽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창세기 1:1

필터

해석의 질문과 방향

본문

누가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는가?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선포합니다.

문맥

창세기 1장은 창조와 질서, 생명과 인간의 사명을 보여 줍니다.

그리스도

요한복음 1:1–3은 만물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고 증언하며, 요한복음 1:14는 그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고 선포합니다.

구속사

창조에서 시작한 성경의 이야기는 죄와 타락을 거쳐 그리스도의 구속과 새 창조로 이어집니다.

적용

나는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과 창조 세계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중요한 해석 원칙: 창세기 1:1 자체가 예수님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는 것은 아닙니다. 창조에 대한 본문의 원래 의미를 존중하면서, 신약의 요한복음 1장과 골로새서 1:15–20을 통해 창조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통전적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예수 필터를 갖추기 위한 점검표  

성경 읽기 전후 자기 점검

본문의 앞뒤 문맥을 충분히 읽었는가?
역사적 배경과 본래 의미를 살폈는가?
예수님과의 연결이 성경 본문에 근거하는가?
구약과 신약의 연결을 확인했는가?
죄와 은혜, 십자가와 부활을 고려했는가?
성령의 열매와 제자도의 실천으로 이어지는가?
나의 선입견이나 정치적·교파적 주장을 본문에 억지로 넣지 않았는가?
초기화점검표 복사  

목회와 설교를 위한 핵심 공식

목사님의 성경 연구와 설교 준비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 그리스도 → 복음 → 변화 → 사명

본문을 바르게 읽고, 그리스도를 발견하며, 복음을 믿고, 삶이 변화되어, 세상에 증언한다.

이것을 설교 준비의 다섯 질문으로 바꾸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본문: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2. 그리스도: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3. 복음: 그리스도의 은혜가 인간의 죄와 문제에 어떤 답을 주는가?

  4. 변화: 이 말씀 앞에서 무엇을 회개하고 믿고 순종해야 하는가?

  5. 사명: 이 말씀을 통해 교회와 세상을 어떻게 섬기고 증언할 것인가?

결론 : 성경을 읽는 눈을 바꾸십시오

예수 필터의 핵심은 예수님을 성경에 억지로 넣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성경 지식은 많지만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지 못할 수 있습니다. 성경 구절은 암송하지만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마다 지식의 축적을 넘어 믿음과 인격과 삶의 변화를 구해야 합니다.

기억할 세 가지 원리

  • 성경의 초점 :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라.

  • 성경의 해석 : 본문의 뜻을 존중하면서 성경 전체를 연결하라.

  • 성경의 목적 : 그리스도를 믿고 닮아 가며 증언하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 요한복음 3:30

  • 이 고백이 성경 연구자와 설교자에게 필요한 마지막 필터입니다. 
    말씀을 통해 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러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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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에 대한 성찰 / 성경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한국교회 문제점 / 성경적 축복과 현실의 축복





    福 = 示 + 畐

    • 示(시) : 신에게 제사하다, 신적 영역·제의와 관련된 의미
    • 畐(복) : 가득 차다, 충만하다의 의미를 가진 요소

    따라서 전통적인 문자 해석에서는 福을 대체로  “신으로부터 내려오는 충만한 복” 이라는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자의 자형을 신학적으로 확장한 해석이지, 성경의 복 개념과 일대일로 동일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구약의 복  / 베라카 — בְּרָכָה(berākāh)

    성경에서 중요한 히브리어는 בְּרָכָה — berākāh — 브라카 

    어근은 ברך (brk)  이며, 기본적으로 축복하다, 복을 빌다, 복을 받다라는 의미 영역을 갖습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창세기 12:2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단순히 “복을 주신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복의 구조  / 하나님 → 아브라함 → 열방

    즉,  받는 복 → 존재의 변화 → 흘려보내는 복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복은 단순히 “내가 많이 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받아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福이라는 한자가 성경의 복을 설명하는 첫 번째 장점 
    福의 개념에는 “복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라는 방향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복의 궁극적 근원은 하나님입니다.

    야고보서 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따라서 福은 위로부터 오는 복 이라는 설명은 성경의 기본적인 복 이해와 상당히 잘 연결됩니다.  

    중요한 차이

    성경에서 복은 물질적 풍요와 동일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福과 성경적 복을 비교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현대적인 복의 개념은 흔히 건강 + 돈 + 성공 + 장수 + 자녀 + 좋은 직장 등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때때로 고난받는 사람을 복 있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에서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는 μακάριος (makários, 마카리오스) 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재산이 많아서 복 받았다”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복된 상태 를 가리킵니다. 

    성경에는 ‘복’이라는 말이 두 방향으로 나타납니다  

    ① בְּרָכָה — בְּרָךְ 계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 하나님 → 인간

    예.  “내가 네게 복을 주리라.”

    ② μακάριος

    하나님 앞에서 복된 사람의 상태를 선언한다. “복이 있도다.”

    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따라서 한국어의 “복”이라는 하나의 단어가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서로 다른 의미 영역을 모두 담아내고 있습니다.  

    福과 성경의 복을 비교하면

    구분 福의 일반적 이해 성경적 복
       근원        신적 존재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내용        풍요·안녕·행복           하나님과의 관계
       물질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음           하나의 요소일 뿐
       고난 일반적으로 복의 반대   고난 가운데서도 복될 수 있음
      목적           개인의 행복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
      방향             내가 누림      받고 → 누리고 → 나눔
      핵심               충만       하나님 안에서의 충만
    궁극적 복           현세적 행복                 하나님 자신

    성경에서 가장 놀라운 복은 무엇인가?

    여기서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성경의 복을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주시는 것”으로만 이해하면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궁극적인 복은 하나님 자신을 얻는 것입니다.

    시편 16: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시편 73: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이것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에베소서 1:3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여기서 복의 중심은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적 복은 복을 받는 것보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아는 것에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福을 기독교적으로 재해석한다면   

     福 = 示 + 畐

    이를 신학적으로 묵상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충만함”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성경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복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 자신을 복으로 알라.”

    따라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복 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  
    종교적 복은 하나님께 원하는 것을 받는 것
    성경적 복은 하나님을 얻고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
    궁극적 복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하는 것

    아브라함에게서 이 구조가 완성됩니다

    창세기 12:2에서 하나님은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라고 하십니다.

    여기에는 4단계가 있습니다.

    ①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 정체성

    ② 네게 복을 주어 → 수여

    ③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 사명

    ④ 너는 복이 될지라 → 나눔

    따라서 성경적 복은 복을 받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차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의 개념이 완성됩니다

    갈라디아서 3:14은 놀라운 말씀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여기서 복은 단순한 재산이나 성공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적 복을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저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복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과 생명과 은혜를 주시고, 
    그 사람을 하나님 안에서 살게 하며, 마침내 다른 사람에 게 복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福, 복을 다시 생각하다」

    부제 : “복을 받는 사람에서 복이 되는 사람으로”

    또는 「福인가, 福음인가」

    조금 더 강한 설교 제목으로는

    「복을 구하는 신앙에서 복이 되는 신앙으로」

    그리고 핵심 문장을 하나 만들면 좋습니다. 
    “세상은 복을 소유하는 것을 복이라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을 복이라 한다.”

    또 하나는 “복은 손에 무엇이 많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삶의 중심에 들어오시는 것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연결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실 뿐 아니라, 우리를 복으로 만드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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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정의 투명성 부족
    2. 권력집중과 권위
    3. 사회적 문화적 이슈에 대한 태도
    4. 성범죄 및 윤리적 문제
    5. 세대간 갈등




    한국교회가 직면한 문제를 단순히 “교인 수가 줄어드는 문제”로 보면 해결책도 결국 전도 프로그램이나 교회성장 전략에 머물게 됩니다. 더 근본적으로 보면 신뢰· 거룩· 제자도· 다음세대· 공동체성· 공공성의 위기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히 2026년 기윤실 조사에서는 한국교회를 신뢰한다는 응답이 19.0%,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5.4%로 나타났습니다. 
    무종교인의 교회 신뢰도는 6.8%였습니다. 
    조사에서 개선점으로 지적된 것은 교회 이익 우선 태도, 타종교에 대한 태도, 불투명한 재정, 지도자의 삶 등이었습니다.  

    1. 가장 심각한 문제 : 신뢰의 붕괴

      
    문제

      교회가 말하는 복음과 교회가 실제로 보여주는 삶 사이에 간격이 생겼습니다.

    • 설교는 사랑을 말하지만 교회 안에는 갈등이 있습니다.
    • 거룩을 말하지만 지도자의 윤리 문제가 발생합니다.
    • 청렴을 말하지만 재정이 불투명한 경우가 있습니다.
    • 섬김을 말하지만 교회 자체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인상을 줍니다.
    • 복음을 말하지만 사회에서는 정치적 집단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2026년 조사에서 신뢰 회복을 위해 필요한 사회적 활동으로 윤리·도덕 실천이 가장 많이 지목된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결

      “교회를 크게”보다 “교회를 바르게” 세우는 것이 먼저입니다. 
      신뢰는 설교로 얻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얻는다.

      초대교회의 힘도 건물이나 조직 규모보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힘쓰는” 공동체성에 있었습니다(행 2:42).  

     목회자 중심주의와 권위주의

      
    문제

      한국교회의 일부에서는 목회자가 지나치게 절대적인 위치에 놓이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 담임목사에게 권한 집중
    • 장기집권
    • 교회 재정과 인사에 대한 견제 부족
    • 세습 문제
    • 목회자와 교인의 관계가 제자와 목자의 관계보다 권력관계로 변질

      이런 구조에서는 목회자가 실수했을 때 교회 전체가 함께 무너질 위험이 있습니다. 

      해결  /  목사의 권위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인 권위로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라고 하셨습니다(막 10:43).

      따라서 목회자의 권위는 직분 → 권력이 아니라 직분 → 섬김 → 희생 → 본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정치화와 복음의 본질 약화

      이 문제는 정치적 입장을 어느 쪽이 옳다고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사명이 특정 정치세력과 동일시될 위험을 살펴야 하는 문제입니다.

    2026년 조사에서 목회자의 정치적 발언·집회 참여에 대한 개선 요구가 상당히 높게 나타났습니다. 

       문제

       교회가 정치적 사안에 대해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 = 특정 정당,  기독교 신앙 = 특정 정치 이념 으로 연결되면 복음의 보편성이 훼손될 수 있습니다.

       해결  /  교회는 정치에 무관심해서도 안 되지만 정당의 하부조직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교회가 말해야 할 기준은 정당의 이름보다

    • 생명
    • 정의
    • 정직
    • 자유
    • 약자 보호
    • 평화
    • 가정
    • 인간 존엄
    • 책임
    • 사랑

    같은 성경적 가치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정당보다 하나님 나라를 먼저 말해야 한다.

      다음 세대의 위기

    한국교회의 미래를 가장 직접적으로 결정하는 문제입니다.

    현재의 교인 숫자를 유지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20년 후 교회에 누가 남아 있는가입니다.  

      문제

      많은 교회에서 어린이 → 청소년 → 청년 → 장년으로 이어지는 신앙 전승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부모의 신앙이 자녀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되지 않는 문제가 큽니다.  

      해결  /  교회학교를 단순히 “아이들을 모아놓는 프로그램”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가정과 교회가 함께  예배 → 말씀 → 관계 → 실천 → 사명을 경험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청년들을 교회의 미래가 아니라 오늘의 교회로 인정해야 합니다.  

      성도의 제자도 약화

      교회에 출석한다고 해서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

    주일예배 참석자는 많지만 말씀을 따라 사는 제자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것은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였습니다(마 28:19).

    따라서 교회의 목표가 출석자 → 교인 → 봉사자에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해결  / 목표를 교인 → 제자 → 사역자 → 또 다른 제자를 만드는 사람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교회는 사람을 모으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드는 곳이어야 합니다.  

      교회의 양적 성장주의

    문제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큰 교회 = 성공한 교회라는 평가에 익숙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교회의 성공 기준은 건물 크기나 헌금 규모가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를 보면 이것이 아주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외형보다

    • 처음 사랑
    • 환난 중 충성
    • 진리에 대한 타협 여부
    • 거룩
    • 깨어 있음
    • 말씀을 지키는 것
    • 미지근함을 평가하십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 2–3장은 오늘 한국교회에 매우 중요한 거울이 될 수 있습니다.  

     세속화와 교회의 정체성 상실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기 전에 오히려 세상의 가치에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공 → 돈 → 건물 → 영향력 → 유명세가 교회의 성공 기준이 되면 복음의 중심이 흔들립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라고 하셨습니다(막 8:36). 

      해결  / 교회의 기준을 다시 성공이 아니라 충성, 성장이 아니라 성숙, 소유가 아니라 섬김, 유명함이 아니라 거룩 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재정의 투명성과 교회 운영

    2026년 신뢰도 조사에서도 불투명한 재정 사용이 중요한 개선 과제로 지적되었습니다. 

     해결  /  교회 재정은 단순히 회계 문제가 아니라 영적 신뢰의 문제입니다.

    필요한 것은 

    • 정기적인 재정보고
    • 복수의 재정 담당자
    • 독립적인 감사
    • 목회자와 재정의 적절한 분리
    • 교회 구성원이 이해할 수 있는 보고
    • 목적별 예산 공개 등입니다.

    투명한 재정은 교회의 신뢰를 세우는 목회의 일부다.

    지역사회와 단절

    교회가 세상과 담을 쌓으면 복음의 증언도 약해집니다.

    초대교회는 예배당 안에서만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성전 + 가정 + 시장 + 사회

    속에서 복음을 살아냈습니다.

    오늘의 교회도

    • 독거노인
    • 장애인
    • 이주민
    • 한부모 가정
    • 청년
    • 노숙인
    • 경제적 취약계층

    등을 실제적으로 섬길 필요가 있습니다.

    기윤실도 2025년 교회 신뢰회복 사업에서 지역사회 돌봄과 이주민 환대를 중요한 과제로 제시했습니다.  

     교단과 교회의 분열

    한국교회의 또 다른 문제는 너무 많은 분열입니다.

    신학적 차이가 존재할 수 있지만,

    본질에는 일치하고, 비본질에는 자유를 주며, 모든 것에는 사랑으로

    대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였습니다(요 17:21).

    교회의 분열은 복음의 증언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해결의 핵심은 무엇인가?

     한국교회의 문제를 7개의 회복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문제 회복
    신뢰 붕괴 정직 회복
    목회자 권력화 섬김의 리더십 회복
    정치화 복음의 중심 회복
    다음세대 위기 신앙 전승 회복
    제자도 약화 말씀과 삶의 일치 회복
    세속화 거룩의 회복
    사회적 고립 이웃 사랑과 공공성 회복

    그리고 이것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교회를 교회답게, 목사를 목사답게, 성도를 성도답게.”

       
    특히 요한계시록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교회가 일곱 교회에 보내신 예수님의 말씀을 자기 교회에 주시는 말씀으로 읽어야 합니다.

     에베소 —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
    서머나 — 고난 가운데 충성하라
    버가모 — 세상과의 타협을 경계하라
    두아디라 — 거룩을 회복하라
    사데 — 죽은 신앙에서 깨어나라
    빌라델비아 — 작은 능력이라도 말씀을 지켜라
    라오디게아 — 미지근함에서 벗어나라

    결국 일곱 교회의 문제는 오늘 한국교회의 문제와 놀랍도록 연결됩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 가장 무서운 말씀 가운데 하나는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는 말씀입니다(계 2:5).

    따라서 한국교회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어떻게 교회를 크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교회를 계속 촛대로 인정하실 것인가?” 
    가 되어야 합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한국교회의 개혁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보다 회개하고, 말씀으로 돌아가고,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세상 속에서 복음을 삶으로 증명하는 것
    에서 시작한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현대 한국교회의 문제점들은 너무 복합적이며 다양한 측면을 안고 있습니다. 자성의 마음으로 주요 문제점들을 성경적 가르침과 비교하여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1. 성장주의와 물질주의

    성경적 가르침 : 성경은 교회의 본질을 건물의 크기나 교인의 수, 재정 규모가 아닌,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공동체(엡 4:16)로 묘사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외형적 성장이 아니라 내면적 성숙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둡니다(갈 5:22-23).

    현대 한국교회 문제점 : 외형적 성장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형교회를 성공의 척도로 삼고, 교회 건물을 웅장하게 짓는 데 많은 재정을 쏟아붓는 반면, 정작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섬기는 사명에는 소홀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성장주의는 십자가의 복음마저도 사람을 끌어모으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2. 신앙의 개인화와 공동체성 상실

    성경적 가르침 : 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묘사하며, 성도들이 서로 '지체'가 되어 연합하고 교제하며 사랑해야 함을 강조합니다(고전 12:27, 롬 12:5). 믿음은 개인적인 고백이지만, 그 신앙은 반드시 공동체 안에서 함께 성장하고 실천되어야 합니다.

    현대 한국교회 문제점 : 현대 사회의 개인주의적 경향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나'의 신앙생활과 '나'의 구원에만 집중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다른 교인들과 깊은 교제를 나누기보다 예배만 드리고 돌아가는 '선데이 크리스천'이 늘어나고,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책임지는 공동체의 본질이 약화되고 있습니다.

    3. 잘못된 권위 의식과 목회자 중심주의

    성경적 가르침 : 예수님께서는 섬김의 리더십을 강조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 20:26-27). 교회의 머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며, 목회자는 그리스도의 양 떼를 섬기는 청지기일 뿐입니다(벧전 5:2-3).

    현대 한국교회 문제점 : 일부 교회에서는 목회자가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교회의 모든 것을 좌우하는 '목사 우위' 현상이 나타납니다. 목회자를 성경적 권위 이상으로 높이거나, 목회자의 세속화와 윤리 의식의 실종으로 인해 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잃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4. 예배의 형식화와 삶의 예배 부재

    성경적 가르침 : 진정한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이며(요 4:24),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롬 12:1). 예배당 안에서의 예배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현대 한국교회 문제점 : 예배가 지나치게 설교와 예전 등 형식적인 부분에만 치우쳐, 성도들의 삶과 분리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배당을 나서는 순간,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는 '이중적 삶'을 사는 경우가 많아, 교회가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5. 이원론적 세계관과 사회적 책임 방기

    성경적 가르침 : 성경은 거룩한 영역과 세속적인 영역을 엄격하게 분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창조주시며,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마 5:13-16).

    현대 한국교회 문제점 : 일부 교회는 신앙생활을 개인의 영혼 구원 문제로만 국한하고, 사회 정의나 윤리 문제, 빈곤 문제 등 세상의 영역에는 무관심하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그 결과, 교회가 사회의 병폐를 치유하고 변화시키는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의 비판 대상이 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정치에 관여하는 것이 아닌, 불의에 대한 책망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결론적으로, 현대 한국교회가 직면한 문제들은 성경의 본질적인 가르침, 즉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 '섬김의 리더십', '삶으로 드리는 예배', '세상을 향한 책임' 등에서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외형적 성장이 아닌 내면적 성숙을 추구하고, 잃어버린 공동체성을 회복하며, 말씀에 근거한 바른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현실과 미래에 대한 진단과 대책 방안

                            -객관적 평가와 그 비전 및 미래 방안-

    정준모목사, 라이프굿타임즈 대표 및 발행인, 로키마운틴 성경 및 신학 연구원

    1. 서론: 질문 앞에 선 한국교회

    21세기 초반의 한국교회는 이전 세기와는 다른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외형적 성장은 멈추었고, 사회적 신뢰는 하락하고 있으며, 내부적으로는 세속화와 공동체성의 붕괴, 다음 세대의 이탈이라는 위기를 맞고 있다. 본 논문은 이러한 한국교회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미래 교회의 건강한 비전을 제시함과 동시에 실천 가능한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2. 한국교회의 현실에 대한 객관적 평가

    2.1. 양적 성장의 정체와 구조적 위기

    1990년대까지 한국교회는 눈부신 성장세를 기록했으나, 이제는 출석률, 교세, 재정 모두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대형 교회로의 집중 현상은 농어촌 및 중소 교회의 고사로 이어지고 있다. 목회자 공급 과잉과 신학교 입학 감소도 구조적 위기의 일부이다.

    2.2. 사회적 신뢰도 저하와 이미지 손상

    교회의 공공성과 도덕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정치 편향, 재정 불투명, 목회자 윤리문제, 교회 세습, 대형 교회의 특권화 등은 신뢰를 잃게 만들었다. 교회는 이제 사회 문제의 해결자보다 문제 유발자로 여겨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2.3. 복음의 본질 상실과 타락한 신앙 소비주의

    ‘복음’은 본래의 능력과 능동적 성격을 잃고 개인주의적 성공담이나 감정적 위로로 축소되었다. 교회는 삶의 변화보다 감정 자극과 성공 메시지로 신자들을 붙잡으려 한다. 이는 신자들을 소비자로 전락시키고, 제자도의 본질을 약화시킨다.

    2.4. 세속화와 탈교회화 현상의 가속화

    특히 청년 세대는 교회가 삶의 실제적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고 느끼며 교회를 떠나고 있다. 전통적 예배와 교회의 언어는 그들에게 낡고 배타적으로 다가온다. 복음과 삶의 연결이 단절된 것이다.

    3. 미래 교회에 대한 비전

    3.1. 복음의 중심 회복

    모든 변화는 복음의 본질 회복에서 출발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도래라는 중심 메시지를 삶 전체와 연결해야 한다. 교회의 목적은 ‘구경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제자’를 세우는 데 있다.

    3.2. 공동체 중심의 관계 교회

    신앙은 개인의 구원만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자라야 한다. 교회는 교제, 나눔, 돌봄, 책임의 공동체로 거듭나야 하며, 권위적 구조가 아닌 수평적이고 열린 리더십 체계를 지향해야 한다.

    3.3. 세상을 향한 선교적 교회

    교회는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라, 세상 속에 복음을 실천하는 존재로 나아가야 한다. 정의, 평화, 환경, 약자 옹호, 문화 참여 등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구현하는 선교적 교회로 나아가야 한다.

    3.4. 다음 세대를 향한 복음의 재언어화

    Z세대와 알파세대에게 복음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것이 전달되는 방식은 새로워져야 한다. 새로운 언어, 새로운 매체, 새로운 참여 구조가 요구된다. 교회는 그들과 동행하고 경청해야 한다.

    4. 미래 교회를 위한 실천적 방안 (확장 정리)

    4.1. 교회 구조의 개혁

    목회자 중심 구조 탈피:

    목회자의 모든 권한과 기능이 집중된 구조를 벗어나 장로, 집사, 평신도 사역자의 협력 구조를 형성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 전체가 제사장’이라는 개신교의 신학을 실천적으로 구현해야 한다.

    투명한 재정 운영과 공적 책임:

    교회 재정은 반드시 외부 감사, 회중 보고, 헌금 목적별 회계 분리 등의 방법으로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한다. 매년 재정 보고서를 회중에게 공개하는 것이 기본이다.

    세습 및 권위주의 해체:

    교회 세습은 성경적 원리에도 맞지 않으며, 한국교회의 도덕성에 큰 상처를 주고 있다. 교회 리더십은 개방적 선출 구조와 임기제 도입을 통해 자정 기능을 갖춰야 한다.

    4.2. 예배와 설교의 갱신

    성경 중심, 삶 중심 설교:

    시대를 분별하며 성경 본문을 깊이 있게 해석하고, 청중의 실제 삶에 연결하는 설교가 필요하다. 회중이 ‘삶으로 살아내는 복음’을 깨닫게 해야 한다.

    하나님 중심의 예배 회복:

    감정 자극이나 공연 중심의 예배에서 벗어나, 성삼위 하나님께 드리는 경건하고 질서 있는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 다양한 음악과 표현도 가능하지만 중심은 하나님이어야 한다.

    다세대 참여형 예배 모델 실험:

    어린이, 청소년, 청년, 장년이 함께 예배에 참여하고 기도, 성경 봉독, 간증 등의 역할을 나누는 공동체 예배가 필요하다. 이는 교회를 ‘가정’으로 경험하게 한다.

    4.3. 신앙 교육과 영성 훈련

    성경적 세계관과 비판적 사고 교육:

    단순 암기식 교리가 아닌, 복음을 통해 세상을 해석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기르는 교육이 필요하다. 영화, 사회 문제, 기술 변화 등을 성경적 틀로 읽는 훈련이 요구된다.

    영성 훈련 커리큘럼 도입:

    매일 말씀 묵상, 기도, 금식, 봉사, 공동체 생활 등 고전적 영성 훈련을 교회 교육에 정착시켜야 한다. 특히 소그룹 중심의 훈련은 참여와 책임을 강화시킨다.

    온·오프라인 하이브리드 교육 체계:

    코로나19 이후 정착된 온라인 환경을 적극 활용하여, 온라인 소그룹, 디지털 신앙 콘텐츠, 앱 기반의 성경 퀴즈 등으로 다음 세대와 소통해야 한다.

    4.4. 작은 교회 운동과 지역 네트워크 활성화

    지역 밀착형 작은 교회 설립 장려:

    건물 중심, 대규모 교회 중심의 신앙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가정교회, 카페교회, 일터교회 등 작은 공동체 중심의 모델이 효과적일 수 있다.

    목회자 재교육과 리더십 교류:

    고립된 목회를 피하기 위해 지역 목회자 네트워크를 통해 공동 설교, 공동 훈련, 사역 자원의 공유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소외된 지역교회도 살아날 수 있다.

    교단을 초월한 사역 연대:

    특정 교단 중심의 분열적 구조에서 벗어나, 지역 단위에서 교단을 초월한 사역 협력이 필요하다. 예: 지역 청소년 연합수련회, 사회봉사 연대 등.

    5. 결론: 다시 복음으로, 다시 공동체로

    한국교회는 지금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간의 성공 신화는 끝났으며, 이제는 복음의 본질, 제자도의 회복, 공동체적 책임을 묻는 시대가 도래했다. 세속화와 탈교회화라는 외적 변화는 교회의 내적 개혁을 촉구하는 하나님의 기회이기도 하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며, 프로그램이 아니라 복음이다."

    우리는 복음의 깊이, 공동체의 진정성, 세상에 대한 책임, 다음 세대와의 소통을 회복함으로써 다시 건강한 교회, 미래를 여는 교회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바로 ‘회개’와 ‘돌아감’이다. 주여, 한국교회 초대 교회의 영성을 회복하게 하소서, 미래 한국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으로 복음의 신령한 도구가 되게 하소서.


    한국 교회가 현재 직면한 위기와 그 원인

    교회의 급격한 쇠퇴: 과거(1976~1981년) 매년 60만 명씩 신자가 늘고 하루에 6개씩 교회가 세워지던 전성기와 달리, 현재는 대다수의 교회가 고령화와 재정난으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신뢰도 추락: 세습 문제, 재정 비리, 사회적 물의, 그리고 코로나19 당시의 갈등 등으로 인해 국민의 74%가 한국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젊은 세대의 이탈: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가치관과 교회의 경직된 문화, 정치적 편향성 등으로 인해 20대 개신교인의 비율이 크게 줄었으며, 하나님은 믿어도 교회는 나가지 않는 '가나안 성도'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재정 양극화 및 고령화: 헌금의 주축이었던 기성세대의 고령화와 십일조 감소로 인해 많은 교회가 재정 자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대형 교회와 작은 교회 간의 재정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탈종교화 시대: 이는 단순히 개신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탈종교화' 현상으로, 종교를 통한 공동체 의존도가 낮아지는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1866년부터 지금까지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조선말기 쇄국정책으로 시대에 뒤처진  사회에 선진 문명과 기술, 교육, 의술을 전하며 근대화에 지대한 공헌을 이바지하였습니다. 조선을 계승한 대한제국은 나라의 체질개선을 위해 열심을 다했지만 여전히 열강에 의해  간섭과 위협을 받는 상태에 놓여 있었는데  이 당시 선교를 위해 입국한 많은 선교사들의 헌신과 열정이 근대화에 일조를 하게 됩니다. 선교의 3자 원칙으로 선교사로부터 전수받은 우리의 신앙선배의 충성스러운 노력으로 점차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며 민족의 수난기간이었던 일제의 주권찬탈의 오욕속에 민족의 자존과 자주 독립의 희망의 불씨를 지켜왔던 교회가 존재했었습니다. 

    이렇게 한국 교회가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게 되기까지 신앙의 선배들이 각고의 노력을 해온 것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민족의 수난을 외면하지 않았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민중들과 애환을 같이 했으며 암울한 사회를 계몽하고 교육, 의료, 학문,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해 온 것입니다. 일제의 교회핍박에 맞서 싸우고 공산주의자에 의해 수 많은 믿음의선배들이 순교의 피를 뿌리며 믿음을 지켜왔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70년대 이후에는 사회의 민주화와 정의를 위해 싸우기도 하는 등 역사발전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노력과 희생으로 인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종교들 중의 하나로 자리잡았고,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도시나 시골이나 아디를 가도 교회가 없는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인이 전체 인구의 약 30%에 이를 정도로 성장을 한 것입니다.

    교회와 기독교인이 많아지면서 사회에 긍정적인 면보다 여러 가지 부정적인 모습등으로 인해 좋지않은 이미지가 쌓여 가며 일반인들에게 주요 종교들 중 가장 나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설문조사에 의하면 일반인들이 종교를 가질 경우 선택하고 싶은 종교에서 기독교가  가톨릭이나  불교에 비해서 가장 낮은 수치를 나타낼 정도로 비호감도가 높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성장의 감소와 영향력 감퇴로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교인은 감소한 반면 교회만 증가하는 현상은 한국 교회가 그만큼 정상적이지 않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근래에 매스컴에 보도되고 있는 교회와 기독교의 모습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교회안에서, 목사들과 교인들에 의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적 모범이 되고 이끌어 나가야 할 주체인데도 불구하고 악영향을 끼치는 일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 교회를 우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과연 한국 교회에 미래가 있는가?

    한국 교회가 앞으로도 존재할 수 있을까?

    회개와 변화가 없다면 한국교회는 상식적인 생각과 생활을 가진 사람들과는 동떨어진 교인들만의 교인만을 위한 세상으로부터 낙오된 공동체로 전락하게 될 위험이 매우 큽니다. 그만큼 한국 교회는 위기상황에 처해 있고, 이제는 그 위기를 어느 누구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시점에 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의 현실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그것들의 문제점들을 파악하며, 더 나가서 그 해결 방안들을 찾아보는 일은 더 이상 늦춰질 수 없습니다. 우선적으로 한국 교회를 엄격하고 냉정하게 보는 일로부터 출발해야 하며 주님이 주인인 교회로 거듭나야 합니다. 주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교회가 세상적인 문제에 빠지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문제는 일단 중요하게 보이는 현상들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 배타적 독선과 분열

    수 많은 교단으로 분열되어 있는 모습이 대표적인 한국 교회와 기독교의 문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그만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 교단을 세우고 또 그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현실을 보면 참 믿음을 갖고 복음을 전하는 기관인지 의구심이 갑니다 . 자기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 하고 반목하고 협력하지 못 하면서 어떻게 사회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낸들 들을 사람들이 있을까요?

    참 답답한 현실입니다. 인간의 탐욕과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얼룩진 모습을 보면서 사회적 솔선수범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부끄러움도 모르는 교단과 교회의 현실은 절망을 안기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오직 한분이며 우리의 지침이 되는 성경도 하나인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하나가 아니고 수 많은 겉가지로 찢어져서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이분법적 신앙관으로 자신만이 최고라는 우월심으로 귀를 막고 '함께 '가 아니고 '나만'이 문제인 것입니다.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천주교가 유일하게 잘 하는 것이 교황을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한 목소리로 한 방향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이점은 기독교는 깊이 반성하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따르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을 골백번 외치지만 실제로 자신은 이와 동떨어진 삶을 사면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는 현실을 회개하지 않고선 결코 병폐를 도려낼 수가 없습니다. 자신을 내려놓고 타인의 말을 귀담아 들을려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교회일치운동의 순수한 동기를 우리는 다시 살펴보아야 합니다. 교회일치운동, 에큐메니즘( Ecumenism)은 개신교회의 일치에서 시작하여, 개신교회와 정교회의 협력으로 이어진 기독교 교회 일치 운동입니다. 기독교의 다양한 교파를 초월하여 모든 교회의 보편적 일치 결속을 도모하는 신학적 운동으로 한국 교회는 거듭나서 불필요한 교리의 차이에 대한 논쟁을 삼가하고 하나가 되기 위한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개신교 또는 복음주의,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는 16세기 서방교회 개혁 찬성파인 교회의 개혁가들의 종교개혁을 통해 생겨난 기독교의 한 전통입니다. 11세기 교회 대분열로 공교회(보편교회) 중심이었던 지금의 동방교회에서 서방교회가 분리되었고, 이후 16세기 서방교회내에서 종교 개혁 운동의 '반대파'인 천주교회와 '찬성파'인 개신교가 분리되었습니다. 이후 기독교의 가장 주된 종파는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에서 정교회, 천주교회, 개신교회로 형성되었으며 개신교 내부적으로 크게 '개선주의'인 개신교 공교회주의의 루터교, 성공회, 감리교 등의 교단들과 '재건주의'인 개혁주의의 장로교, 침례교 등과 재침례파, 재림교 등의 교단들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말하는 '기독교', '교회'는 일반적으로 '개신교'를 가리킵니다.

    2. 고개를 들 수 없는 교회세습와 대립

    교회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교회는 목사의 개인적인 사유물이 아닙니다. 또 교회는 교회의 살림을 책임지는 장로나 집사의 소유물이 더더욱 아닙니다. 그런데 교회를  세습하고 있고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공산당의 세습왕조도 아닌데 대한민국 교회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참 부끄러운 한국 교회의 민낯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교회 세습이 가능한 것은 우리 한국 교회의 독특한 권위주의 구조 때문이며  민주적인 방식으로 교회의 행정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의  많은 교회들이 담임목사 1인 중심의 교회체제를 가지고 있고 이것을  유지하는 것이 마치 목회의 매우 중요한 부분인 것처럼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체제나 행정을 철저하게 목사 1인 중심으로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에 모든 권한이 목사 1인에게 집중되며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각종 회의나 기관들은 요식 행위와 절차로서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식으로 길들여지고 체질화된 구조 속에서는 담임목사가 은퇴할 나이에 이르면 얼마든지 자기 아들에게, 혹은 자기가 물려주고 싶은 사람에게 물려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목사의 권위에 도전할 수 없는 환경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니라고 속으로 외치고 마는 것입니다. 만약에 민주적인 구조 속에서 민주적인 투표와 절차를 거쳐서 후임자를 선정한다면  후임자가 아들이건 형제이건 아무런 상관이 없고 시비할 이유가 없습니다. 잡음으로 교회가 흔들리지도 않으며 외부에 소문이 나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생산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대형화된 교회속에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재정이 운영되고 있으며 목사 1인 체제가 유지되는 교회는 세습이라는 문제가 항상 대두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외에도 현재 한국 교회의 권위주의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은 특히 교회내의 모든 갈등과 분쟁, 분열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세습문제가 반대의 경우도 존재합니다.  권위주의(권력)가 목사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역사가 깊은 교회들은 오히려 장로와 당회의 권위가 목사의 권위를 압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장로들이 대표이고 목사는 임시직이라는 얘기까지 나도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분위기의 교회에서는 실제로 당회가 목사의 건강하고 소신 있는 목회를 방해하는 일이 매우 흔하고 또한 목사가 능력 있어서 교인들의 지지를 획득할 기미가 보이면 미리 트집을 잡아 쫓아내는 일까지 일어나는 실정이니 청빙된 목사가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목회를 하지 못 하고 당회나 장로의 의중을 살피는 웃고픈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단 역시 권위주의가 심각하여 교단이 갈라지고 어느 날 갑자기 새로 교단이 생겨 납니다. 총회장이 되기 위해 정치판에서나 볼 수 있는 금품공세로 하면서까지 애쓰는 것을 보면 권력을 얻으면 분명히 얻는 것이 있기 때문에 부정한 짓을 하면서까지 당선되고자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선거로 인한 문제를 해소하는 것은 성경에 잘 나와 있습니다. 바로 배신하고 죽은 가룟 유다대신 맛디아를 12제자로 선출한 방식이 제비뽑기로 선출하면 됩니다. 신청을 받고 교단에 정한 자격조건을 충족한 사람들중에  제비뽑기로 선출하면 타락하고 세속적인 부정적인 선거가 사라지고 형평성의 문제도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제비뽑기는 선거과열과 금전살포 및 수수의 폐해로 인해 거룩한 교회가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습과 같은 해괴한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할려면 목사의 임기제를 도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임기 5년제에 1회에 한하여 연임을 하는 제도를 하면 장로나 당회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고 소신있게 교회를 이끌어 갈 수 있으며 또한 임기제로 인해 권위를 만들기 쉽지 않아 세습을 꿈꾸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한 장로 등 임직자들의 임기제도를 시행해서 종신 장로와 임직자에 의해 발생하는 애로사항을 없애서 압력으로 교회와 당회을 좌지우지하지 못 하도록 하면 권위주위에 의해서 발생하는 피해를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권위는 자신이 권위자가 되려고 하거나 권위가 억지로 생기거나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전혀 권위가 없을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오히려 제사장들이나 서기관들이나 율법학자들이 예수의 권위를 보고 놀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권위를 발견하고 "저 사람의 권위가 어디서 나오는가?" 라고 반문했습니다. 권위는 지위나 명목, 형식에서가 아니라 실제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권위가 참다운 것이고  위엄이 더해지고 믿음이 가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낮아짐에 있습니다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성립자체가 하나님의 인간됨,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높으심이 낮아짐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보여주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겸손와 자기비움으로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가 큽니다. 기독교의 존재 이유 혹은 존재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승리는 세상적인 승리가 아니고 반대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겸손과 봉사와 희생 그리고 그 위에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그는 "누구든지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겠고, 낮아지고자 하는 자는 높아진다."라고 했으며 또한 "살고자 하는 자는 죽겠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겠다."고도 말씀하셨듯이 이 말에 대한 믿음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기독교의 권위는 권위를 갖고자 하는데서 얻는 것이 아니라 권위를 갖지 않고자 하는 데서 얻어집니다. 그것은 권위가 아니라 실제를 취하는 일과 동일한 것입니다. 기독교의 실제, 즉 본 모습은 먼저 낮아지고 남들을 섬기는 종의 도를 취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나갈 길이고 기독교인의 바른 길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는 것이 예수님의 호소이자 요청이었다. 그 말씀을 잘 따라 자기부정과 겸비와 봉사의 길을 가는 사람이 바로 참다운 신앙과 인격과 삶과 능력을 인정받고, 따라서 권위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권위만이 참다운 권위이다. 원래 기독교에는 권위주의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 예수의 가르침은 본질적으로 낮아지고 사랑하는 데 있지, 자신의 권위를 높이거나 도모하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2. 세속적인 물질추구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가 또한 세속적인 물질추구일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기독교 그리고 기독교인이 교회에서 복음을 팔고 아니  팔아야 하고 팔리지 않으면 팔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교회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대에 맞지 않는 십일조를 강요하고 건축헌금을 내도록 만들며 심지어 직분에 주는 대신 감사헌금을 강요하는 현실에 직면한 교회는 기업입니까? 아니면 세상의 구원을 위한 마중물입니까? 하는 반문이 할 정도로 오염이 되어 있고 잘 못된 길을 가고 있습니다. 사람의 중심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적인 위치와 부에 따라 대접이 다른 교회는 진정한 교회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남보다 내가 더 잘 되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옹졸한 마음으로 목회를 하는 목회자들 그리고 많은 헌금을 낸 것을 자랑하고픈 기독교인들로 인해 진정한 그리스도의 도를 찾기 힘든 우리의 모습은 참 불쌍하게 보일뿐입니다. 사람들이 듣기 좋은 유창하고 유머스러운 설교를 하는 목회자가 아닌 시대에 맞는 말씀을 찾아 연구하고 준비해서 교회 공동체에 계시되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명과 책임을 갖고 해야 합니다. 목사의 설교는 사람들로 하여금 말씀에 비추어서 자기를 돌아볼 수 있게 하고, 죄와 오류와 무력함을 보게 하고, 죄인을 사랑하고 구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게 하고, 그래서 자유와 생명을 얻게 하고, 참된 자녀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북돋아주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어야 진정한 목회자의 길을 갖는 것입니다.

     교회가 바로 서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인 교회의 리더가 솔선수범하고 주님의 뜻을 새기며 바른 길을 갈때 자연스럽게 교회의 구성원들이 따르게 됩니다. 교회가 주님의 말씀을 들을려고 하면 되는데  사람들의 반응에 맞루어 설교를 한다거나 교회를 운영하게 되면 탈이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일주일 헌금 목표가 얼마이고 건축헌금의 목표를 정해서 기도하며 강요하는 한 세상의 논리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결국은 이러한 세속적인 물질에  종속이 되어버리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교회의 일관된 가치관도 없이 다른 교회에서 성공한 경우를 베껴서 따라하기나 꼭 필요할 때 해야 하는 부흥회 등을 신도의 확보나 재정문제의 해결 그리고 교회안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용으로 남발하여 순수한 부흥회의 의의를 퇴색시키는 행위 등은 마치 잘 팔리는 물건을 갖다 놓고 많이 팔아야만 한다는 식의 세속적 상업주의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팔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저급한 세상적인  이치가 한국 교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에서는 복음과 진리에 대한 순수성도, 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는 자기부정의 십자가도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이 된 것입니다. 세속적인 의미에서 교회가 잘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지 하는 교회,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무리한 방법을 동원하여목표달성만을 강조하는 사고와 행태가 지배하는 교회, 그래서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식의 목회로 일관하는 교회는 더 이상 교회로서 존립할 수 없고 존립해서도 안 됩니다. 외형만 교회이지 사실상 기업이나 다름이 없으며 목회가 아니라 마케팅이고 목사가 아니라 경영자이며 교회등록증은 사업자등록증이 되는 되고 말았습니다.

    교회가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 사람들이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사람들의 힘과 물질과 열성을 모아서 교회를 부흥시키려는 생각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의 목표를 위해서 사람들을 총동원한다든지, 사람들을 수단으로 삼는다든지, 사람들을 교회에 예속시킨다든지 하는 일도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가 대가를 기대하거나 이익을 목표로 무슨 일을 계획한다면 세상속으로 빠져버리는 것입니다 . 교회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고, 사람들을 섬기도록 자리 매김을 해야 하며 세속적 물질을 추구하는 교회는 이 중요한 본분을 지키기가  불가능합니다. 

    교회의 목표는 세속적인 성공에 있지 않으며 목회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세속적인 성공을 지향하는 목회자들로 인해 많은 문제를 야기시킵니다. 이는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대형교회, 신도가 많은 교회 더블어 재정이 넘치는 교회는 참된 성공이 아니고 세상적인 성공입니다. 이런한 교회를 꿈꾸는 목사는 진정한 리더가 아닌 삭꾼이며 세속적인 탐욕에 빠진 채 엉뚱한 방향으로 불을 밝히는 등대와 같습니다.

    한국 교회를 세속적인 물질추구의 병폐로부터 되살리기 위해서는 목회자들이 확고한 교회관과 자의식을 가져야 하며 " 왜 교회가 존재하는가?" 그리고 "목회자는 존재이유와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하는가?" 라는 끊임없는 자기 물음과 성찰 속에서 교회를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의지와 노력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값없이 주신 복음과 이 복음을 위해 부름받은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받음에 감격하며 항상 감사하는 자세를 갖어야 합니다.

    교회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다. 즉 주님의 은총으로 받은 복음으로 새롭게 거듭난 자들이 감사한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예배하고 자발적으로 헌신하고 자발적으로 사랑하고 자발적으로 헌금하고 자발적으로 봉사하며 교회가 서야 합니다. 교회는 말씀을 있고 은혜가 있으며 사랑이 있고 참된 삶의 기쁨을 주는 곳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진정한 교회입니다. 


    3. 이기주의적 자세

    기독교 사회문제 연구소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습니다. 결과를 보면 의미하는 바가 매우 충격적입니다. 질문은 '기독교인이 비기독교인 보다 더 이기적인가?' 이었는데  '그렇지 않다.'고 한 사람이 17.5%에 불과한 반면 '그렇다.'고 답변한 사람은 31.7%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한편으로 교회가 외적 확장에 너무 치중하고 헌금 등을 강요하면서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특성을 나타낸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가장 이타적이고 자기 희생적이어야 할 기독교가 그 사회에서 "이기적" 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런 상태라면 과연 교회가 이 사회에서 얼마나 더 존립할 수 있을까 하는 위기심과 우려를 씻을 수가 없습니다. 이후 비슷한 조사에서도 기독교에 점점 비우호적일뿐만 아니라 나쁜 이미지로 인식이 되고 있음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노방전도를 한다면서 확성기를 이용하여 큰 소리로 전도를 하며 찬양을 하는 행위가 과연 옳은 것인가?

    주변 이웃들에게 편의를 제공하지 않고 오히려 불편을 초래하는 것이 과연 괜찮은가?

    대형교회의 교회버스를 이용한 편의제공으로 타 교회 성도들을 유인하는 것도 심각한 집단 이기주의의 표본이 아닌가? 

    직장문제로 먼 곳으로 이사간 성도에게 자기 교회로 계속 나오라고 강요하는 목회자들 ...

    자기만 생각하고,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달려가는 사람들은 맹목적이고 안타깝습니다. 이들은 자기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자기 외의 모든 것들은 무시해 버립니다. 또한 자기만 되면 된다는 생각, 남들이야 어쨌든 자기 목표만 달성하고, 자기 뜻만 관철시키면 된다는 태도로 일관하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에 해당됩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 자기밖에는 안중에 없는 사람들, 자기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 남들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철저하게 자기만을 위하는 사람들... 유독 그런 사람들이 한국 교회에는 많다는 것은 너무 이율배반적인 일입니다. 실제로 한국 교회에는 이기적인 행태가 만연해있고, 그것 때문에 일반 사회인들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마저도 눈살을 찌푸리고 가슴아파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으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런 이기적인 행동이 일부 광신자들만 아니라  목회자나  교회 자체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한국 교회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기주의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교회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이기주의가 아닌 이타적인 사랑을 전하는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만 알고, 자기만 위하는 이기심은 형제의 관계, 더 나가서는 공동체를 파괴시키며 공동체의 단절과 대립 그리고 경쟁과 분열을 가져오는 적펴일ㄴ 것입니다. 이기심에는 기독교가, 교회가 지향하는 참다운 평화나 사랑이 들어설 여지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을 구원하고자 사람들에게 참 자유와 생명을 주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면서까지 이 세상에 오셨는데, 그런 예수를 주로 믿고 고백하는 교회가 어떻게 이기적일 수 있습니까? 본회퍼는 "교회는 오직 남들을 위해 존재할 때만이 교회이다."라고 말했는데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정곡으로 찌르는 말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빛에 비추어서 날마다 자신의 이기심을 꺾고 진정으로 타인를 위해 사랑하고 봉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며 그럴 때만이 교회가 시대와 인간을 위한 참된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한국 교회의 이기주의 문제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교회와 교인들의 근본적인 그리고 지속적인 자기 변화가 요구되며 이기주의는 인간의 가장 뿌리깊은 죄성에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늘 깨어서 각성하고 빠지지 않을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4. 도덕적 타락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는 원인중에 하나가 바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도덕적 타락"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도덕적 타락에는 목회자의 성범죄뿐만 아니라 사회적 도리 또는 역할인 재정사용의 투명성과 종교인 과세에 대한 비토 등도 포함됩니다. 한국교회가 턱없이 낮은 사회적 신뢰도를 회복하려 기본적으로 윤리와 도덕 회복'이 급선무이며 이를 위해서는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가장 피해가 큰 것이 목회자의 성범죄입니다. 목회자 성범죄 문제는 목사 개인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교회에 대한 비판 나아가 하나님 존재 자체에 대한 의심으로 번질 정도로 매우 엄중한 사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선한 역사를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위치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일을 자행한다는 것 자체로도 심각한 범죄입니다.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이에 대한 응당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범죄에 대한 개인적인 처벌과 함께 사회적 책임도 함께 지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처벌로 교단과 교회에서 영원히 목회자 신분을 박탈하여 엄정한 댓가를 치루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이 문제는 확연히 줄어들고 사라질 것으로 판단합니다.

    또 한편으로 불투명한 재정에 있습니다. 재정상황을 투명하게 관리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투명한 재정관리는 교회를 신뢰하게 하며 교회와 교인들 사이에 생길 수 있는 의심과 불신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대형교회에서 나오는 불법적인 재정을 유용하여 목회자와 임직자가 구속이 되는 것을 종종 지면을 통해 들을때마다 기독교인이나 일반인들의 교회애 대한 불신은 커져갈 수 밖에 없습니다.  종교인(목회지)에 과세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거세지만 교회의 반대로 여전히 실현되지 못 하고 있는 보편적 사회정의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군사독재와 협력하며 얻은 교회의 흑역사인 이 문제는 스스로 사회적 윤리와 도덕적 신뢰를 무너지게 하는 한 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모인 재정을 통해 사회의 약자나 도움이 손길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도록 일종의 기금을 만들어 사회에 환원을 하는 방법도 있는데 오직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교회의 타락한 도덕성의 회복은 요원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결론적으로 한국교회의 문제는 매우 심각한 상태입니다. 많은 문제점이 있지만 우선적으로 위에서 언급한 4가지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만 추락하고 떠헝진 신회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사공이 많은 배는 산으로 간다는 격온처럼 찢어진 교단의 분열을 화합하여 일치하고자 노력이 필요합니다. 작은 교단의 이익에 눈이 멀어서 주님의 뜻을 따르지 못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세속적인 물질에 현혹돼서 거대주의 최고주의에 빠져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보는 어리석음과 그리스도의 낮은 대로 임하시고 자기를 낮추며 희생과 사랑의 본을 따라가야 합니다. 주님의 자기희생을 통해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이웃의 아픔을 품을 수 있는 이타적인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화룡점정은 바로 윤리와 도덕적 신뢰회복입니다. 교회가 세워진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면 자연스럽게 문제점을 극복하고 사람들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본연의 모습을 회복할 것으로 확신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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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적 축복과 현실의 축복

    성경에서 말하는 축복(祝福)과 우리가 현실에서 흔히 말하는 축복(祝福)은 서로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중심과 목적이 다릅니다. 

       현실의 축복은 “내 삶이 얼마나 좋아졌는가”를 묻지만,
       성경적 축복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바르게 되었는가”를 먼저 묻습니다.

    축복(祝福)의 한자적 의미

    祝福 /  祝(빌 축) :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복을 빎 
               福(복 복) :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

    따라서 축복은 단순히 돈· 건강· 성공을 얻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경적 관점에서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은혜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복된 상태가 중심입니다.

     현실의 축복

    현실에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축복은 대체로 다음과 같습니다.

    현실에서 생각하는 축복 대표적인 모습
               물질            돈, 재산, 집
               건강      질병이 없고 장수함
               성공    사업 성공, 승진, 명예
               자녀     자녀의 성공과 출세
               관계  좋은 배우자, 좋은 인간관계
               안전    사고와 재난이 없는 삶
             편안함     걱정과 고통이 적은 삶

    이것들도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성경도 양식, 집, 자녀, 건강, 평안, 재물과 같은 현실적인 복을 인정합니다. 
    문제는 이것을 축복의 전부로 생각할 때 발생합니다.  

     성경적 축복의 출발점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축복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창세기 12:2 /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복을 받는다 → 복을 누린다 → 복이 된다라는 구조입니다. 
     아브라함은 단순히 부자가 되기 위해 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즉, 성경적 축복은 나를 위한 축복에서 끝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한 축복으로 흘러갑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

     예수님의 팔복은 현실적인 성공의 목록과 상당히 다릅니다. 

     마태복음 5:3–10

     예수님은

    • 심령이 가난한 자
    • 애통하는 자
    • 온유한 자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 긍휼히 여기는 자
    • 마음이 청결한 자
    • 화평하게 하는 자
    •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 를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반드시 성공한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μακάριοι (makarioi)라고 부르십니다.

    μακάριος - 복된, 행복한, 하나님께 인정받는 상태

    따라서 성경의 복은  “내 상황이 좋은가?”보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가?” 에 더 깊은 관심을 둡니다. 

     중요한 차이
      
    현실의 축복 - 소유 중심 /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성경적 축복 - 관계 중심 / 내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가난해도 복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 자체를 미화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물질의 많고 적음이 하나님의 축복 여부를 결정하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바울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감옥에 갇혔고, 매를 맞았고, 굶주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빌립보서 4:12–13에서 말합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그리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여기서 바울의 축복은 환경이 아니라 그리스도였습니다.  

     부자라고 반드시 복된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 이 문제를 보여주십니다. 
     그 사람은

    • 재산이 많았고
    • 종교적으로도 열심이었지만
    • 예수님을 따르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따라서 재산이 많음 =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히려 이렇게 질문합니다. 
    “네가 가진 것이 너를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하는가, 멀어지게 하는가?”. 

     성경적 축복에는 역설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매우 독특한 역설이 있습니다.

    현실의 관점 성경의 관점
    많이 가지면 복 하나님을 가지면 복
    편하면 복 하나님 안에 있으면 복
    성공하면 복 충성하면 복
    오래 살면 복 생명을 하나님께 드리면 복
    고난이 없으면 복 고난 중에도 믿음을 지키면 복
    유명해지면 복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면 복
    받으면 복 주면 복
    나만 잘되면 복 다른 사람을 살리면 복

     성경적 축복의 최고점

    성경에서 가장 큰 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여기서 중요한 표현이  “그리스도 안에서” 입니다.

    성경적 축복은 단순히 하나님 → 물질이라는 구조가 아니라 
    하나님 → 그리스도 → 구원 → 성령 → 새로운 생명 → 사명 의 구조입니다.

    축복의 성경적 구조  

    복 → 관계 → 정체성 → 사명

    ① 복 하나님께 은혜를 받는다.

    ↓

    ② 관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다.

    ↓

    ③ 정체성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정체성을 갖는다.

    ↓

    ④ 사명 받은 복을 세상에 흘려보낸다.

    그래서 창세기 12:2의 말씀처럼 “복을 받는 사람”에서 “복이 되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축복받았습니다”라는 말을 조심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업이 잘되고, 집을 사고, 자녀가 좋은 대학에 가고, 건강해지고, 경제적으로 형편이 좋아졌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나만 특별히 사랑하셔서 복을 주셨다” 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사업에 실패하고, 질병을 겪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 고 판단해서도 안 됩니다.

    욥기가 바로 이 문제를 다룹니다.

    욥의 친구들은 고난 = 죄 = 하나님의 심판 이라는 단순한 공식을 가지고 욥을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단순한 판단을 책망하셨습니다. 

     현실적인 복은 중요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현실의 필요도 중요하게 다룹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도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가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적 신앙은 “돈은 필요 없다.” “건강은 중요하지 않다.” “성공하면 안 된다.”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문제는 수단과 목적의 순서입니다. 

     잘못된 순서 / 하나님 → 내가 원하는 복을 얻기 위한 수단
     
    성경적 순서 / 하나님 → 하나님을 사랑함 → 하나님의 뜻 → 필요한 것을 맡김 

     축복의 최종 목적

    성경에서 축복은 소유의 증가보다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을 위한 섬김에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돈이 많아지는 것이 축복의 증거가 아니라
    돈을 가지고도 하나님을 잃지 않는 것이 축복이다. 

    건강한 것이 축복이 아니라는 말이 아니라,
    건강할 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축복이다. 

    자녀가 성공하는 것만이 축복이 아니라,
    자녀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깊은 축복이다. 

    「축복을 받는 신앙에서 축복이 되는 신앙으로」

    祝福 → 祝福者

    또는 「현실의 복인가, 성경의 복인가」

    또는 조금 더 강하게 「복을 소유하는 사람인가, 복을 흘려보내는 사람인가」

    핵심 문장은 이것으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현실의 축복은 내가 무엇을 얻었는가를 묻지만, 성경적 축복은 내가 누구의 사람이 되었으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신약의 관점에서는 가장 근본적인 축복을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주셨는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하나님이 되셨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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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 히브리어에서 복이란 단어와 신약 헬라어에서 복이란 단어의 의미

    성경에서 **“복(福)”**은 단순히 “돈을 많이 얻거나 일이 잘되는 것”이라는 의미보다 훨씬 깊습니다. 특히 구약 히브리어와 신약 헬라어의 ‘복’은 서로 다른 단어와 개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궁극적으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와 연결됩니다.

    1. 구약 히브리어의 “복”

    구약에서 대표적인 단어는 **בְּרָכָה(berākhāh, 베라카)**입니다.

    ① בְּרָכָה — berākhāh

    뜻: 복, 축복, 번영,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

    어근은 **בָּרַךְ (bā·rakh, 바라크)**입니다.

    בָּרַךְ — בָּרַךְ — בְּרָכָה
    바라크 → 축복하다 → 베라카 → 축복, 복

    대표적인 본문은 창세기 12:2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여기서 복은 단순히 아브라함 개인이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 아브라함 → 열방

    이라는 흐름입니다.

    즉,

    복을 받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복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는 것

    이 아브라함 언약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2. 히브리어에는 또 하나 중요한 “복”이 있습니다

    אַשְׁרֵי — ’ashrê, 아쉬레이

    시편에서 굉장히 중요한 단어입니다.

    시편 1:1:

    אַשְׁרֵי־הָאִישׁ
    ’ashrê-hā’îsh
    “복 있는 사람은”

    여기서 사용된 단어가 **אַשְׁרֵי(ashrei)**입니다.

    이것은 **בְּרָכָה(berakhah)**와 의미가 조금 다릅니다.

    בְּרָכָה와 אַשְׁרֵי의 차이

    히브리어 음역 기본 의미 강조점
    בְּרָכָה berākhāh 복, 축복 하나님이 주시는 복
    בָּרַךְ bārakh 축복하다 복을 주는 행위
    אַשְׁרֵי ’ashrê 복되다, 행복하다 복된 상태

    따라서 시편 1편의

    “복 있는 사람”

    은 단순히 재산이 많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복된 상태

    를 말합니다.

    시편 1:3에서 그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따라서 구약의 복은

    소유 → 번영

    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 바른 삶 → 열매

    라는 구조를 갖습니다.


    3. 신약 헬라어의 “복”

    신약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μακάριος — makários

    마카리오스

    입니다.

    뜻은:

    복된, 복 있는, 하나님 앞에서 행복한 상태에 있는

    입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에서 반복됩니다.

    마태복음 5:3:

    Μακάριοι οἱ πτωχοὶ τῷ πνεύματι
    Makárioi hoi ptōchoi tō pneumati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여기서 μακάριοι가 복입니다.


    4. μακάριος는 “돈이 많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팔복을 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

    세상의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반드시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을

    μακάριοι — 복된 자들

    이라고 선언하십니다.

    따라서 성경의 복은 현실적 성공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5.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면

    흥미로운 점은 신약에서 μακάριος가 구약의 **אַשְׁרֵי(ashrei)**와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편 1:1의 칠십인역(LXX)은

    μακάριος ἀνήρ

    라고 번역합니다.

    즉,

    히브리어 אַשְׁרֵי
    ↓
    헬라어 μακάριος

    라는 연결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전체에서 “복 있는 사람”이라는 개념을 연결하면:

    אַשְׁרֵי → μακάριος

    라고 볼 수 있습니다.


    6. 그런데 신약에는 또 다른 “복”의 개념이 있습니다

    신약에는 **εὐλογέω(eulogeō)**라는 동사가 있습니다.

    εὐλογέω — eulogeō

    εὖ(eu) = 좋게, 선하게
    λόγος(logos) = 말

    따라서 문자적으로는

    “좋게 말하다”

    라는 의미에서 출발하여

    축복하다, 복을 빌다

    라는 뜻으로 발전합니다.

    명사형은:

    εὐλογία — eulogia

    축복, 복, 축복의 말,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

    입니다.

    예를 들어 에베소서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여기에는 εὐλογία 계열의 개념이 나타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늘에 속한 복

    입니다.


    7. “복”을 세 단어로 정리하면

    성경의 복을 이해할 때 다음 세 단어를 구분하면 매우 유익합니다.

    구약

    בָּרַךְ — bārakh
    → 축복하다

    בְּרָכָה — berākhāh
    → 축복, 복

    אַשְׁרֵי — ’ashrê
    → 복된 상태, 행복한 사람

    신약

    μακάριος — makários
    → 하나님 앞에서 복된 상태

    εὐλογέω — eulogeō
    → 축복하다

    εὐλογία — eulogia
    → 축복, 복


    8. “현실의 복”과 “성경의 복”을 구별해야 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신학적 구별입니다.

    현실에서 생각하는 복

    돈
    건강
    장수
    성공
    좋은 직장
    좋은 집
    자녀의 성공
    사회적 명예

    이런 것들도 하나님의 선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체가 성경이 말하는 복의 전부는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오히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것

    이 복의 중심입니다.


    9. 성경적 “복”의 구조

    제가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복은 “내가 무엇을 많이 소유하는가”보다 “내가 누구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가”에 더 중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복을 구조화하면:

    하나님
    ↓
    관계
    ↓
    은혜
    ↓
    정체성
    ↓
    순종
    ↓
    열매
    ↓
    사명
    ↓
    다른 사람에게 복이 됨

    특히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라고 하신 말씀은 받는 복에서 나누는 복으로 넘어가는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10. 예수님의 팔복에서 복의 절정

    팔복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은 단순히

    “복 받으십시오.”

    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어떤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서 복된 사람인가를 선언하십니다.

    특히 마태복음 5:3과 5:10은 수미상관을 이룹니다.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따라서 팔복의 중심은 결국

    “천국”

    입니다.

    그래서 성경적 복을 가장 압축해서 표현하면:

    복(福) =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안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그 은혜가 삶의 열매와 사명으로 나타나는 것

    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선생님께서 최근 말씀하신 **“성경적 축복과 현실의 축복”**을 구분해서 설교하실 때 아주 좋은 출발점이 됩니다.















    보혈, 십자가,


    주 보혈(主 寶血)
    주 보혈이란 예수의 피를 의미합니다.
    물론 보혈이란 단어가 성경에는 없습니다.
    성경에도 없는 '보혈'이란 단어를 즐겨 사용하는 이유는 예의 피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인류의 죄를 속죄하고 생명을 주는 가장 귀하고 존귀한 희생의 피가 되었기 때문에 한국교회에서 성경의 신학적 의미를 담아 사용하는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보혈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신약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베드로전서 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but with the precious blood of Christ, a lamb without blemish or defect.  

    "보배로운"에 해당하는 헬라어 '티미모스(timios. τίμιος)'는 "귀한, 값진, 존귀한,  최고의 가치를 가진" 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에서는 이를 자연스럽게 "보혈"이라고 번역하여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보혈이란 한문자의 훈(訓)은 '보배 보(寶)' '피 혈(血)'이라고 하여 "보배로운 피" "가장 귀한 피" "값으로 헤아릴 수 없는 피"라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보배로운"은 헬라어 τίμιος (timios) 이며, 귀한, 값진, 존귀한,  최고의 가치를 가진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이를 자연스럽게 보혈이라고 번역하여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피를 '보혈'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한 인간의 피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완성한 피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τίμιος, α, ον Storng number 5093  
    Pronunciation  [ timiŏs ]  
    Etymology /  5092에서 유래  

    I. 값있는, 가치있는, 고귀한, 
      1. [물건에 대해]  
        a. 값진, 귀한, 고전3:12, 계17:4.  
        b. 매우 가치있는, 귀중한, 약5:7, 벧전1:19, 벧후1:4.  
        c. 귀하게 여김 받는, 히13:4.  

      2. [사람에 대해] 존경받는, 행5:34.

     관련 성경  /  존경받는(행5:34), (귀중한)(고전3:12, 계17:4, 21:19), 귀한(행20:24), 귀히 여기는(히13:4), 보배로운(벧전1:19, 벧후1:4).


     2. 성경은 '보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가?

    성경 원문에는 "보혈"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신약에서는 대부분 αἷμα (haima)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 αἷμα = 피
    • 혈액
    • 생명을 나타내는 피

    그러나 이 피가 예수님의 피일 때는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예를 들어,  "그의 피" "그리스도의 피" "어린양의 피"라고 표현하면서 그 피의 구속적 의미를 강조합니다. 

    3. 왜 예수님의 피가 그렇게 귀한가?  

    (1) 죄 사함을 이루는 피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9:22

    구약에서도 죄를 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가 필요했습니다. 
    이는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레위기 17:11

    예수님의 피는 구약의 모든 희생 제사를 완성한 단 한 번의 영원한 제사입니다.  

    (2)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피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골로새서 1:20

    죄로 인해 단절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예수님의 피가 회복시켰습니다.  

    (3)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피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7

    여기서 "깨끗하게 하다"는 헬라어 καθαρίζει (katharizei)이며, 
      계속 깨끗하게 하다, 정결하게 하다, 죄의 오염을 제거하다  

    (4) 새 언약을 세우는 피

    예수님은 성만찬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28

    예수님의 피는 새 언약의 기초가 됩니다. 

    4. 왜 "보배로운 피"인가?

    예수님의 피는 죄를 사함, 양심을 깨끗하게 함, 하나님과 화목하게 함, 사탄의 권세를 이김, 새 언약을 세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함이라는 놀라운 효력을 지니므로, 교회는 이를 보혈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5. 보혈 신앙의 핵심

    예수님의 보혈은 단순히 과거 십자가 사건을 기억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 피를 통해 믿는 자가 지금도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 죄 사함 :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에베소서 1:7)
  • 의롭다 하심 :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로마서 5:9)
  • 담대함 :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브리서 10:19)
  • 승리 : "그들이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 그를 이겼으니"(요한계시록 12:11)   

    정리  
  • '보혈'은 성경 원문에 있는 단어는 아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가장 귀하고 값진 구원의 피라는 성경적 진리를 담아 한국교회에서 사용해 온 신앙적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단순한 육체의 피가 아니라, 죄 사함과 구속, 하나님과의 화목, 새 언약, 영원한 생명을 이루신 "보배로운 피"(τίμιον αἷμα, timion haima)이기에 '보혈'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보혈'은 성경 원문(히브리어·헬라어)에 있는 단어가 아니라, 교회가 예수님의 피의 가치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신앙적 용어입니다. 

    2. 성경은 왜 예수의 피를 특별하게 말하는가?

      (1) 죄 사함을 이루는 피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언약의 피니라."(마태복음 26:28) 
      여기서 "피"는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새 언약을 세우는 피입니다.

       (2) 생명을 대신한 피

     구약에서는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레위기 17:11)

    히브리어  / דָּם (dam) = 피 
    피는 생명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는 생명을 내어주신 희생을 뜻합니다.  

      (3) 죄를 깨끗하게 하는 피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한일서 1:7)

      헬라어  /  αἷμα (haima) = 피

    καθαρίζει (katharizei) = 깨끗하게 하다, 계속 정결하게 하다

    예수의 피는 죄책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선포됩니다.   

      3. 왜 '귀한 피'인가?  

      베드로의 설명  

      "너희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1:18-19)

     여기서 τίμιος (timios)는  귀한,  값비싼,  존귀한,  매우 가치 있는 이라는 뜻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피는 세상의 어떤 보물보다 더 가치 있는 피라는 의미입니다.

    '보혈'이라는 표현은 바로 이 구절의 의미를 압축한 신앙 언어입니다. 

     4. 히브리서가 말하는 예수의 피

     구약의 제사는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사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느니라."(히브리서 9:12)

     또한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브리서 9:22)

    예수님의 피는 단 한 번 흘려졌고  영원한 효력을 가지며,  완전한 속죄를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 피를 보혈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5. 보혈의 신학적 의미

    예수의 보혈은 다음과 같은 은혜를 상징합니다.

  • 죄 사함 (에베소서 1:7)
  • 속죄 (로마서 3:25)
  • 구속 (골로새서 1:14)
  • 정결케 함 (요한일서 1:7)
  • 하나님과의 화목 (로마서 5:9-11)
  • 새 언약의 확립 (누가복음 22:20)
  •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감 (히브리서 10:19) 

  • 6. 오늘날 신앙에서 '보혈'의 의미

    '보혈'은 단순히 예수님의 육체적 피를 강조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피는 생명을 내어주는 희생과 언약, 속죄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예수의 보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새 언약을 세우시며, 믿는 자를 깨끗하게 하고 구속하신 구원의 은혜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예수님의 피를 '보혈'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피가 하나님의 독생자의 생명이 담긴 가장 귀한 희생이며, 인간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는 유일하고 완전한 속죄의 피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한 존칭이 아니라,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의 희생과 구원의 가치를 압축하여 표현한 신앙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란 헬라어 표기와 그 의미

    신약성경에서 십자가는 주로 σταυρός(스타우로스, staurós)라는 헬라어로 표현됩니다. 이 단어는 단순한 처형 도구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제자의 삶을 상징하는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1. 헬라어 표기

    • σταυρός
    • 발음: 스타우로스 (staurós)
    • 품사: 남성 명사
    • Strong's 번호: G4716

    어원

    ἵστημι(histēmi, "세우다, 서게 하다")와 관련된 어근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원래는

    • 땅에 세우는 말뚝(pole)
    • 울타리 기둥
    • 형벌을 위한 기둥을 의미했습니다.


    2. 고전 헬라어에서의 의미

    예수 시대 이전에는 다음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 말뚝
    2. 기둥
    3. 울타리 말뚝
    4. 형틀의 기둥

    즉, 종교적인 의미는 없었습니다. 

    3. 로마 시대의 의미

    로마 제국에서는

    σταυρός가

    십자가형을 집행하는 형틀

    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형태는 하나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 일자형(I)
    • T자형(T)
    • †형(Latin Cross)

    등 여러 형태가 존재했습니다.

    4. 신약성경에서의 의미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에는 의미가 완전히 확장됩니다.

    ① 속죄의 도구

    예수께서 죄를 대신 담당하신 곳입니다.

    "그가 친히 나무에 달려..."

    • 베드로전서 2:24

    ②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극적으로 나타난 사건입니다.

    • 로마서 5:8

    ③ 화목의 상징

    하나님과 인간을 화목하게 하는 자리입니다.

    • 골로새서 1:20

    ④ 승리의 상징

    사탄과 죄와 사망을 이기신 승리입니다.

    • 골로새서 2:15

    ⑤ 제자의 삶

    예수께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σταυρός는

    • 자기희생
    • 순종
    • 헌신
    •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

    을 의미합니다.


    5. "십자가를 지다"의 헬라어

    예수께서 사용하신 표현은

    ἀράτω τὸν σταυρὸν αὐτοῦ

    (아라토 톤 스타우론 아우투)

    직역하면

    "자기의 십자가를 들어 올리라."

    입니다.

    여기서

    • ἀράτω
      • 동사 αἴρω(들다, 들어 올리다)의 명령형
      • "들어라"
      • "메라"

    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를 지다

    는 단순히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자신을 부인하고 희생을 받아들이는 삶을 의미합니다.

    6. 관련 헬라어

    헬라어 발음 의미
    σταυρός 스타우로스 십자가, 형틀
    σταυρόω 스타우로오 십자가에 못 박다
    συσταυρόω 쉬스타우로오 함께 십자가에 못 박다
    ἀνασταυρόω 아나스타우로오 다시 십자가에 못 박다
    αἴρω 아이로 들어 올리다, 지다
    βαστάζω 바스타조 짊어지다, 운반하다, 감당하다

    7. 신학적 의미 요약

    신약성경에서 σταυρός는 단순한 처형 도구를 넘어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1. 속죄 — 죄를 대신 담당하신 장소
    2. 희생 — 하나님의 어린양의 제물
    3. 사랑 —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
    4. 화목 —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회복
    5. 승리 — 죄와 사망과 사탄에 대한 승리
    6. 제자도 — 자기 부인과 순종의 삶
    7. 영광 — 수치의 상징이 구원의 영광으로 변화됨

    바울은 이러한 신학을 집약하여 "십자가의 말씀"(ὁ λόγος ὁ τοῦ σταυροῦ)(고린도전서 1:18)과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갈라디아서 6:14)고 선언하며, 십자가를 기독교 복음의 중심으로 제시합니다.




    십자가 신앙은 단순히 십자가를 믿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하여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사랑을 믿고, 그 삶을 따르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십자가는 고난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승리와 영광의 상징입니다. 

    십자가 신앙의 중심  

     구원의 신앙 -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에베소서 1:7)

    십자가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동시에 나타난 사건입니다. 

     사랑의 신앙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로마서 5:8)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 주는 최고의 계시입니다. 

     순종의 신앙

     예수님은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8)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에 끝까지 순종하는 삶을 보여 줍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의미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가복음 8:34)

     여기서 "자기 십자가를 지다"는 단순히 고난을 참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 구절에서 "지다"는 헬라어 αἴρω (airō), 
    "들어 올리다, 짊어지다, 기꺼이 맡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신 것은 억지로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입니다.

    반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구레네 시몬의 경우에는 로마 병사들에게 억지로 지게 되었습니다(마태복음 27:32). 
    이때 사용된 표현은 강제로 동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제자의 자발적인 십자가와 대조를 이룹니다. 

    바울이 말하는 십자가 신앙  

    갈라디아서 2:20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의미는 / 옛 사람이 죽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고린도전서 1:18 -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세상은 십자가를 실패처럼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구원의 능력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십자가 신앙의 열매

    십자가 신앙은 다음과 같은 삶으로 나타납니다. 

     죄를 회개하며 살아간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
     사랑으로 섬긴다.
     고난 가운데서도 소망을 잃지 않는다.
     부활의 소망을 붙든다.

     십자가와 부활은 함께 이해해야 한다

    성경은 십자가만 강조하지 않습니다.

    • 십자가는 죄 사함과 화해를 이루는 사건입니다.
    • 부활은 새 생명과 승리를 선포하는 사건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구속의 근거를 잃고, 부활 없는 십자가는 패배로 끝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은 십자가와 부활을 함께 붙드는 신앙입니다.

    6. 오늘날의 적용

    십자가 신앙은 고난을 위한 고난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믿고,
  •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며 그리스도를 따르고,
  •   받은 용서를 다른 사람에게도 베풀며,
  •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십자가의 길은 희생을 통한 사랑, 순종을 통한 승리, 죽음을 통한 생명의 길이며, 
    그 길을 따르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참된 십자가 신앙입니다.






    질문 /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김정은, 이재명과 같은 사람도 사랑해야 하나요?
     

    동영상 자료 / https://www.youtube.com/shorts/LUJauTsgug8

    원수를 사랑하라 — 원수의 헬라어와 의미 및 신앙적 적용

    본문: 마태복음 5:43–48 · 누가복음 6:27–36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의 사랑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을 넘어, 나를 미워하고 대적하는 사람에게까지 사랑을 실천하라는 명령입니다.  

    원수라는 헬라어 / 에크트로스 echthrós  ἐχθρός

    품사 : 형용사이며, 명사적으로 사용될 때는 ‘원수, 적대자’를 뜻합니다.

    주요 의미 : 원수, 적. 적대하는 사람. 미워하거나 대항하는 사람. 관계가 원수 된 상태에 있는 자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약 32회 사용되며, 문맥에 따라 사람 사이의 원수 또는 하나님과 적대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마태복음 5:44의 원문  
    ἐγὼ δὲ λέγω ὑμῖν, ἀγαπᾶτε τοὺς ἐχθροὺς ὑμῶν 
    에고 데 레고 휘민, 아가파테 투스 에크트루스 휘몬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헬라어

    발음

    의미

    ἐγὼ

    에고

    나

    λέγω

    레고

    말하다

    ἀγαπᾶτε

    아가파테

    사랑하라

    τοὺς ἐχθρούς

    투스 에크트루스

    그 원수들을

    ὑμῶν

    휘몬

    너희의

    본문의 ἐχθρούς(에크트루스) 는 기본형 ἐχθρός의 복수 목적격입니다. 
    따라서 ‘너희 원수들’을 의미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 사랑의 헬라어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원수를 뜻하는 ἐχθρός뿐 아니라 사랑하라는 명령인 ἀγαπάω(아가파오) 입니다.

    ἀγαπάω — 아가파오

    상대방의 가치나 행동이 마음에 들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원수 사랑의 문맥에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상대방의 유익을 구하는 사랑을 실천하라는 의미입니다.

    ἀγαπᾶτε — 아가파테

    현재 능동 명령법 · 2인칭 복수

    예수님께서 여러 제자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일은 감정이 자연스럽게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할 제자도의 과제입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아가페 사랑을 단순히 ‘감정이 전혀 없는 사랑’이라고 정의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원수 사랑은 마음의 변화뿐 아니라 말과 행동, 기도로 나타나는 실제적인 사랑입니다.

    성경에서 원수는 누구인가?

    성경 구절

    원수의 의미

    신앙적 교훈

    마태복음 5:44

         나를 미워하고 박해하는 사람

         원수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라

    누가복음 6:27–28

         미워하고 저주하며 모욕하는 사람

                     선을 행하고 축복하라

    로마서 12:20–21

                  나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골로새서 1:21–22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상태의 사람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됨

    로마서 5:10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의 인간

              하나님께서 먼저 화목의 길을 여심

    이 구절들을 종합하면, 원수 사랑은 단순한 인간관계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베푸신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나타내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원수 사랑의 네 가지 실천

    첫째, 원수를 사랑하라

    마태복음 5:44

    상대방의 악한 행동을 선하다고 인정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악에 똑같은 악으로 대응하지 않고, 회개와 변화와 구원의 가능성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둘째,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44

    “하나님, 그 사람을 변화시켜 주시고 저도 미움과 복수심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옵소서.”

    기도는 상대방을 하나님 앞에 맡기고, 내 마음도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과정입니다.

    셋째, 원수에게 선을 행하라

    로마서 12:20–21

    악담으로 되갚지 않고, 필요한 도움을 주거나 진실하고 온유한 말로 대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되 악을 묵인하거나 불의를 돕지는 않아야 합니다.

    넷째, 악을 선으로 이기라

    로마서 12:21

    원수의 행동이 내 인격과 신앙까지 지배하게 두지 않는 것입니다. 복수 대신 진실과 정의와 선을 선택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승리입니다.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참으라는 뜻인가?

    이 부분은 목회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 사랑하되 악을 악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죄를 용인하는 것과 죄인을 사랑하는 것은 다릅니다.

    • 용서하되 지혜롭게 경계를 세울 수 있습니다. 폭력이나 학대가 계속된다면 안전한 장소로 피하고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 화해를 소망하되 상대방의 회개와 신뢰 회복을 무조건 전제하지 않습니다. 용서는 내가 복수의 권리를 움켜쥐지 않는 것과 관련되며, 관계 회복에는 진실과 책임과 변화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 정의를 구하되 복수심으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잘못을 신고하거나 법적 보호를 구하는 일도 원수 사랑과 반드시 충돌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악을 선이라고 부르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악에 악으로 반응하지 말고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을 나타내라고 하셨습니다(마태복음 5:45–48).  

    원수 사랑의 신앙적 핵심 /  원수 사랑의 네 단계

    미움의 감정을 하나님께 맡기라 
    내 마음을 살피고 복수심을 내려놓는다.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라 
    그 사람의 변화와 나의 성숙을 구한다. 
    선한 행동을 선택하라 
    악한 행동을 따라 하지 않는다.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 가라

    마태복음 5:45–48의 가르침을 실천한다.  

    묵상할 성경 말씀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로마서 5:8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원수 사랑은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베푸는 사랑이 아니라, 먼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신앙의 열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고, 저를 미워하고 대적하는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게 하옵소서. 
    악을 악으로 갚지 않게 하시며, 진리와 사랑을 함께 붙들고 선으로 악을 이기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원수의 악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의 악이 나의 사랑과 신앙까지 악하게 만들지 못하도록 예수님의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네 가지 실천 명령

    마태복음 5:44의 문맥을 살펴보면, 예수님은 원수 사랑을 추상적인 감정으로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헬라어

    발음

    의미

    실천

    ἀγαπᾶτε

    아가파테

    사랑하라

    선의를 품고 사랑을 실천하라

    εὐλογεῖτε

    율로게이테

    축복하라

    저주와 악담으로 맞서지 말라

    καλῶς ποιεῖτε

    칼로스 포이에이테

    선을 행하라

    악으로 갚지 말고 선을 행하라

    προσεύχεσθε

    프로슈케스데

    기도하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참고: 마태복음 5:44의 헬라어 사본과 번역본에 따라 축복과 선행에 관한 표현의 포함 여부가 다를 수 있습니다. 위 표는 해당 절의 넓은 문맥에서 제시되는 명령들을 종합한 것입니다.

    ① 사랑하라 — ἀγαπάω (아가파오)

    상대방이 나에게 잘해 주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사랑입니다.

    • 관련 성구: 로마서 12:20–21

    • 적용: 미워하는 사람을 보복의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고, 그 사람의 회복과 회개를 바라봅니다.

    ② 축복하라 — εὐλογέω (율로게오)

    좋게 말하다, 축복하다라는 뜻입니다.

    • 관련 성구: 로마서 12:14

    • 적용: 나를 비방하는 사람에게 똑같이 악한 말로 대응하지 않습니다.

    축복한다는 것은 거짓을 참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은 잘못이라고 말하되, 상대방의 파멸을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③ 선을 행하라 — καλῶς ποιέω (칼로스 포이에오)

    좋은 일을 행하다, 선하게 행동하다라는 뜻입니다.

    • 관련 성구: 누가복음 6:27

    • 적용: 원수에게도 정당하게 대하고,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지혜롭게 선을 행합니다.

    ④ 기도하라 — προσεύχομαι (프로슈코마이)

    하나님께 기도하다, 간구하다라는 뜻입니다.

    • 관련 성구: 누가복음 23:34, 사도행전 7:60

    • 적용: 상대방을 저주하는 데 마음을 빼앗기기보다, 하나님의 공의와 그 사람의 회복을 구합니다.

    예수님은 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는가?

    마태복음 5:45–48에서 예수님은 그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 마태복음 5:45

    하나님은 선한 사람에게만 햇빛을 주시지 않습니다. 악한 사람에게도 비를 내리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바로 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첫째, 원수 사랑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것입니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 누가복음 6:36

    둘째, 악에 악으로 대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 로마서 12:21

    셋째, 십자가의 사랑을 본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누가복음 23:34).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무엇이 아닌가?

    이 부분은 목회와 성도의 실제 생활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원수 사랑의 의미

    원수 사랑의 오해

    미움과 복수심에 사로잡히지 않음

    잘못을 무조건 용납함

    상대방의 회개와 회복을 바람

    악한 행동을 선하다고 인정함

    공의와 진실을 추구함

    불의를 침묵으로 방치함

    용서의 길을 선택함

    반드시 즉시 화해하거나 신뢰해야 함

    필요할 때 선을 행함

    자신이나 타인을 위험에 빠뜨림

    용서와 화해, 신뢰는 구별해야 합니다. 용서는 복수심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과 관련되지만, 화해에는 상대방의 태도와 관계 회복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반복적인 폭력이나 학대가 있다면 안전한 거리를 두고 도움을 구할 수 있습니다. 원수 사랑은 불의를 방치하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오늘의 삶에 적용하는 다섯 가지 질문

    1. 지금 내가 가장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2. 그 사람 때문에 내 마음에 복수심과 분노가 자라고 있지는 않은가?

    3. 그 사람을 저주하는 대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수 있는가?

    4. 잘못을 분명히 지적하면서도 인격적인 모욕과 보복은 피할 수 있는가?

    5. 내가 오늘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선행은 무엇인가?

    처음부터 따뜻한 감정이 생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감정이 따라오지 않는 상황에서도 기도하고, 악을 악으로 갚지 않으며, 지혜롭게 선을 행하는 것이 순종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본문 : 마태복음 5:43–48

    중심 명제 : 원수 사랑은 인간의 본능을 넘어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제자의 삶이다.

    1. 원수를 바로 알라 — ἐχθρός, 적대하는 사람을 직시하라.

    2. 사랑을 선택하라 — ἀγαπάω, 감정만이 아니라 의지와 행동으로 사랑하라.

    3. 기도로 악을 이기라 — προσεύχομαι, 복수심을 하나님께 맡기라.

    4. 하나님의 성품을 닮으라 — 마태복음 5:45, 하나님의 자비를 나타내라.

    세상은 말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라.”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가 나에게 잘해 주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원수에게도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승리는 원수를 무너뜨리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원수의 악이 내 안에 미움과 복수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나타내는 데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나를 미워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을 사랑하기가 어렵습니다. 
    내 안의 분노와 복수심을 다스려 주시고, 악을 악으로 갚지 않게 하옵소서. 
    잘못을 분별할 지혜와 진실을 말할 용기를 주시며, 원수의 회개와 회복을 위해 기도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내 삶으로 나타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헌금에 대한 신앙 / 성도의 삶 — 의무(義務. duty) · 생활(生活. life) · 사명(使命. mission)



    헌금에 대한 신앙 

    성도의 삶 — 의무(義務. duty) · 생활(生活. life) · 사명(使命. mission)

    십일조는 성도의 의무요,
    감사는 성도의 생활이며,
    선교는 성도의 사명이다.

    영역 핵심 성경적 의미
    십일조   의무(義務)     하나님이 주신 것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
    감사 생활(生活)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삶
    선교 사명(使命)        받은 복음과 은혜를 세상에 전하는 삶

    1. 십일조 — 성도의 의무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 말라기 3:8

    십일조는 단순히 돈을 내는 행위가 아니라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고백입니다. 
    십일조 = 소유권의 고백

    2. 감사 — 성도의 생활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 데살로니가전서 5:18

    감사는 특별한 날에만 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일상적인 삶의 태도입니다. 
    감사 = 은혜를 발견하는 삶

    3. 선교 — 성도의 사명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 마태복음 28:19

    성도는 복음을 받은 사람에서 끝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부름받았습니다. 
    선교 = 복음을 전달하는 삶

    한문장 결론 요약  /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
                                    감사는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며,
                                    선교는 하나님을 세상에 전하는 것이다.

    또는 설교 제목으로 더욱 압축하면  「드림· 감사· 전함」
    십일조는 드림이요, 감사는 삶이요, 선교는 사명이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 드리고(십일조) →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고(감사) → 하나님을 세상에 전한다(선교)”는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헌금에 대한 신앙(獻金에 對한 信仰)
     성도의 삶 — 의무(義務) · 생활(生活) · 사명(使命)   

     십일조는 성도의 의무
     감사는 성도의 생활
     선교는 성도의 사명

    드림은 믿음의 고백이요, 감사의 표현이며, 복음 전파를 위한 헌신이다. 

    1. 세 가지 헌금 신앙의 성경적 근거

    ① 십일조(十一條) — 의무(義務)

    Tithe · עֲשֵׂר (아세르, 십분의 일을 나타내는 어근)

    핵심 신앙: 모든 소유가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인정한다.

    • 말라기 3:10 —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 레위기 27:30 — 땅의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

    • 마태복음 23:23 — 십일조를 행하되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리지 말라

    십일조는 하나님이 주신 소유를 청지기답게 관리한다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다만 신약에서 십일조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는 교회 전통에 따라 해석의 차이가 있으며, 십일조만으로 신앙의 성숙도를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② 감사헌금(感謝獻金) — 생활(生活)

    Thanksgiving Offering · εὐχαριστία (유카리스티아, 감사)

    핵심 신앙: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일상에서 감사로 살아간다.

    • 데살로니가전서 5:18 — “범사에 감사하라”

    • 고린도후서 9:7 —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 시편 116:12 —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감사는 헌금 시간에만 드리는 행위가 아닙니다. 말과 행동, 가정과 직장, 이웃을 섬기는 삶 전체가 감사의 열매가 되어야 합니다.

    ③ 선교헌금(宣敎獻金) — 사명(使命)

    Mission Offering · ἀποστολή (아포스톨레, 보냄·사명)

    핵심 신앙: 복음을 전하고 이웃과 열방을 섬기는 일에 동참한다.

    • 마태복음 28:19–20 —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

    • 사도행전 1:8 —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 빌립보서 4:15–18 — 복음 사역에 동참한 교회의 헌신

    선교헌금은 선교사와 선교 사역을 지원하는 실제적인 참여입니다. 재정뿐 아니라 기도, 시간, 은사, 복음 전파를 통해서도 선교 사명을 감당합니다.

    2. 의무 · 생활 · 사명의 관계

    구분

    의무(義務)

    생활(生活)

    사명(使命)

    헌금 신앙

    십일조

    감사헌금

    선교헌금

    신앙의 초점

    하나님께 속함

    은혜에 감사함

    복음을 전함

    삶의 방향

    청지기 정신

    감사의 실천

    이웃과 열방 섬김

    핵심 성구

    말 3:10

    살전 5:18

    행 1:8

    신앙의 열매

    신실함

    기쁨

    나눔과 선교

    3. 헌금에 관한 신약의 세 가지 원칙

    첫째,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립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 고린도후서 9:7

    둘째, 형편에 따라 드립니다.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 고린도후서 8:12

    셋째, 나눔과 선행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 디모데전서 6:18

    헌금은 강요나 과시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도의 형편과 양심을 존중하면서, 자원하는 마음과 정직한 재정 관리, 이웃 사랑이 함께해야 합니다.

    4. 설교의 핵심 메시지

    설교 제목: 「헌금은 돈이 아니라 신앙의 고백이다」

    1. 십일조 — 내 소유의 주인은 누구인가?

    2. 감사헌금 — 나는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사는가?

    3. 선교헌금 — 나는 복음의 사명에 참여하고 있는가?

    헌금의 핵심은 액수의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감사, 그리고 이웃을 향한 사랑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십일조로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고,
    감사헌금으로 은혜를 기억하며,
    선교헌금으로 복음의 사명에 동참한다. 

    참된 헌금은 예배당에서 끝나지 않고, 성도의 생활 속에서 사랑과 나눔의 열매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