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입니다. 아래 원고는 **창세기 6:6의 “하나님이 후회하셨다”**를 중심으로, 히브리어 **נָחַם(nāḥam, 나함)**의 의미와 어원적 배경, 70인역의 번역, 구약의 주요 용례, 그리고 하나님의 불변성과 하나님의 마음의 아픔을 함께 연결한 약 30분 분량의 설교 원고입니다.
하나님도 후회하시는가?
— נָחַם(나함)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
본문: 창세기 6:5–8
보조본문: 사무엘상 15:11, 29; 민수기 23:19; 출애굽기 32:14; 요나 3:10; 예레미야 18:7–10
Ⅰ. 들어가는 말 — “하나님께서 후회하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을 읽다가 한 번쯤 멈추게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후회하셨다.”
창세기 6장 6절입니다.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질문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후회하실 수 있는가?”
후회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했을 때 생깁니다.
“그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잘못 선택했구나.”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다르게 했을 텐데.”
그런데 하나님은 전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르고 사람을 만드신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실수하신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창세기 6장의 **“후회”**는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가 살펴볼 핵심 단어가 바로 히브리어
נָחַם — nāḥam, 나함
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아주 깊은 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Ⅱ. נָחַם(나함)은 무슨 뜻인가?
히브리어 **נָחַם(nāḥam)**은 구약에서 매우 중요한 동사입니다.
이 단어는 문맥에 따라 다음과 같이 번역됩니다.
-
후회하다
-
한탄하다
-
슬퍼하다
-
마음 아파하다
-
뜻을 돌이키다
-
재앙을 거두다
-
위로받다
-
위로하다
따라서 נָחַם을 언제나 “후회하다”라고 번역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특히 하나님께 사용될 때는 인간의 후회와 동일하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점
נָחַם은 하나님이 잘못을 깨닫고 후회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문맥에 따라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악을 보시고 마음 아파하시며, 그 관계와 행동에 대해 뜻을 돌이키시는 것
을 표현합니다.
Ⅲ. 나함의 어원적 배경
נָחַם은 일반적으로 N-Ḥ-M, 즉
נ–ח–ם
이라는 세 자음으로 이루어진 어근으로 설명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나함의 원래 뜻은 이것이다”라고 단순하게 말하지만, 히브리어 어휘의 의미는 단순한 어원 하나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구약에서 실제 사용되는 문맥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동사가 두 방향의 의미 영역을 가진다는 점입니다.
1. 후회·뜻을 돌이키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재앙을 거두시는 경우입니다.
2. 위로하다
이사야 40장 1절입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여기서 사용되는 명사가 **נֶחָמָה(neḥāmāh)**이고, 같은 어근 계열입니다.
그러므로 나함이라는 단어에는
마음의 깊은 움직임
이라는 의미 영역이 나타납니다.
슬픔 때문에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을 위로하기도 합니다.
Ⅳ. 창세기 6:6 — 하나님의 후회는 무엇인가?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창세기 6장 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그리고 6절입니다.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여기 **“한탄하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נִחַם(niḥam)**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표현이 이어집니다.
“마음에 근심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6장의 초점은
“하나님이 인간을 만든 것이 실수였다”
가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의 죄가 하나님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가”
에 있습니다.
Ⅴ. 죄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우리는 죄를 너무 쉽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조금 잘못했을 뿐이지.”
“다들 그렇게 하는데.”
“하나님께서 용서하시면 되지.”
그러나 창세기 6장은 죄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을 보여줍니다.
사람의 죄악이 관영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보셨습니다.
“보시고”
그리고
“마음에 근심하시고.”
성경은 죄를 단순히 법률적인 위반으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파괴합니다.
죄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우리가 죄를 가볍게 여기면 회개도 가벼워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면 회개가 깊어집니다.
Ⅵ. 사무엘상 15장 — 사울을 세우신 것을 후회하신 하나님
이제 사무엘상 15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상 15:11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여기에도 נָחַם이 사용됩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의 불순종에 대해 마음 아파하십니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말씀이 바로 뒤에 나옵니다.
사무엘상 15:29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11절에서는 하나님께서 후회하셨다고 하고,
29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변개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모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모순이 아닙니다.
Ⅶ. 하나님의 불변성과 하나님의 마음은 어떻게 함께 존재하는가?
하나님께서 변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무 행동도 바꾸지 않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목적과 신실하심이 변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죄를 심판하시는 것도 거룩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회개하면 용서하시는 것도 거룩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상태가 변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행동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Ⅷ. 요나서 — 니느웨가 회개하자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셨다
가장 좋은 예가 요나서입니다.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선포합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그런데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합니다.
그러자 요나 3장 10절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여기서도 נָחַם이 사용됩니다.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실수하셨습니까?
아닙니다.
니느웨가 변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관계적 행동이 달라진 것입니다.
Ⅸ. 예레미야 18장 — 토기장이의 원리
예레미야 18장에는 이 원리가 더욱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떤 민족을 뽑고 멸하려 했는데 그 민족이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뜻을 돌이켜 그에게 내리려 하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반대로,
복을 주려고 했던 민족이 악을 행하면
“내가 뜻을 돌이켜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이것이 성경의 중요한 원리입니다.
인간이 변하면 하나님의 관계적 행동이 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품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동일하게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시며, 자비로우시고, 신실하신 하나님
이십니다.
Ⅹ. 70인역에서는 어떻게 번역했는가?
이제 신약성경의 배경이 되는 **70인역(LXX)**을 살펴봅시다.
70인역은 히브리어 נָחַם을 문맥에 따라 다양한 헬라어로 번역합니다.
창세기 6:6에서는
ἐνεθυμήθη
라는 표현이 나타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것을 깊이 생각하시고 마음에 두신다는 의미를 전달합니다.
반면 구약의 다른 נָחַם 용례에서는
μετανοέω
또는 관련된 표현들이 사용되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헬라어 μετανοέω를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회개”라는 의미 하나로만 기계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문맥에 따라
생각을 바꾸다, 마음을 돌이키다
라는 의미 영역을 가집니다.
그래서 성경 번역 전통에서 하나님께 사용되는 “후회” 또는 “뜻을 돌이킴”은 인간의 도덕적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 변화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적 응답
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Ⅺ. 민수기 23:19 — 하나님은 후회하지 않으신다?
이제 다시 어려운 구절을 보겠습니다.
민수기 23장 19절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여기서 “후회가 없다”에도 נָחַם 계열의 개념이 사용됩니다.
그렇다면 창세기 6장과 모순됩니까?
아닙니다.
민수기의 강조점은
하나님께서 인간처럼 거짓말하거나 변덕스럽게 약속을 뒤집는 분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은 신실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구원의 계획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변하지 않습니다.
Ⅻ. 성경은 하나님을 “차가운 하나님”으로 말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가 매우 중요한 신학적 사실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감각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회개를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출애굽기 32장에서도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심판을 말씀하시지만 모세가 중보합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32장 14절에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라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모세의 기도가 하나님을 설득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수정하게 만들었다는 식으로 단순화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성경은 중보기도 자체를 하나님의 섭리 안에 포함된 수단으로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기도하는 모세를 통해 자신의 긍휼을 나타내시는 하나님
이셨습니다.
ⅩⅢ. 하나님의 후회는 인간의 후회와 다르다
그러므로 두 가지를 분명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인간의 후회
“내가 잘못 판단했다.”
하나님의 나함
“죄악을 보시고 마음 아파하시며, 그 사람의 변화에 따라 관계적 행동을 달리하신다.”
인간의 후회에는 무지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함에는 무지가 없습니다.
인간은 미래를 모르기 때문에 후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미래를 모르셔서 후회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후회는 하나님의 실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마음의 표현입니다.
ⅩⅣ.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적인 언어를 사용하시는가?
성경은 하나님을 설명할 때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합니다.
이를 신학적으로 신인동형론적 표현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에게 “손”이 있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신다”고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신다”고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고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 “후회하신다”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과 똑같은 방식으로 몸을 가지고 감정을 경험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관계와 행동을 인간의 언어로 계시하신 것
입니다.
ⅩⅤ. 가장 무서운 것은 하나님께서 마음 아파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다
성도 여러분,
창세기 6장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근심하셨습니다.
왜입니까?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마음 아프지 않습니다.
관심이 없다면 근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근심은
하나님의 사랑의 반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거룩하게 표현된 모습입니다.
부모가 자녀의 잘못을 보고 마음 아파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보시고 마음 아파하십니다.
ⅩⅥ. 그러나 창세기 6장의 마지막은 심판이 아니다
창세기 6장 8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6절에는 하나님의 마음에 근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8절에는 은혜가 있습니다.
세상의 죄악이 아무리 커져도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심판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구원의 길을 준비하십니다.
노아에게 방주를 주셨습니다.
심판 가운데 구원의 길을 만드셨습니다.
ⅩⅦ. 신약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어디서 보는가?
신약에 오면 하나님의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우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죄인을 포기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필요했습니다.
ⅩⅧ. “하나님이 후회하신다”는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첫째,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내 죄 하나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하지 마십시오.
죄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둘째,
회개해야 합니다.
요나 시대의 니느웨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돌이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회개를 보셨습니다.
회개는 단순히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방향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셋째,
중보기도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세는 범죄한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교회는 세상을 정죄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 하나님 앞에 서는 공동체
가 되어야 합니다.
넷째,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사람을 쉽게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 아파하시는 것을 보고,
우리도 죄를 미워하면서 동시에 죄인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ⅩⅨ.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봅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 바라보실 때
“내가 왜 저 사람을 그렇게 사랑했을까?”
라고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저 사람은 넘어졌지만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라고 하시겠습니까?
혹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가 너에게 이렇게 많은 은혜를 주었는데…”
라고 말씀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돌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사람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ⅩⅩ. 결론 — 하나님은 후회하시는 분인가?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נָחַם”, 나함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실수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보시고 마음 아파하시며, 인간의 반응에 따라 관계적으로 행동하시는 것
을 나타냅니다.
동시에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은 거짓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변덕스럽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가지를 함께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의 죄와 회개에 무관심하지 않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발견하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죄를 보시고 마음 아파하십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자를 향하여 긍휼을 베푸십니다.
마지막으로 기억할 한 문장
“하나님의 후회는 하나님의 실수가 아니라,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마음의 아픔이며, 회개하는 자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의 움직임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죄에서 돌이키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믿음으로 돌아오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