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복의 의미




신령한 축복

은 신령한 축복을 의미하는데 복음서 와 계시록에 가장 많이 사용되어 있다 (마 5:3-11, 11:6, 눅 11:28, 요 20:29, 계 1:3, 14:13, 20:6). a. 죄 사함을 받는 것 (시 32:1) b. 영생의 (시 133:3) c.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평강 (시 29:11) d. 지경을 넓히는 것과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는 것 e. 아름답고, 지극한 (시 21:3,6) 2. 께서 주시는 대상 주의 백성............................ 시 3:8;29:11

히브리어 원어 '바라크(Barak)'를 중심으로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복의 정의 3단계

1. 성경적 복의 핵심 : '명사'가 아닌 '동사'

우리는 흔히 복을 '내가 소유한 것(명사)'으로 생각하지만, 성경에서 복은 하나님과 함께 움직이는 '사건과 과정(동사)'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어(Input), 사람을 변화시키고(Process), 세상을 향해 나가는(Output) 흐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성경적 복의 3단계 통합 정의

성경에서 "복"이라는 단어를 마주할 때마다 아래의 3단계 틀을 대입하면 문맥이 명확해집니다.

​• 1단계 [본질] 
하나님과의 연결 (Presence)
 
가장 본질적인 복은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과 '함께 계시는 상태' 그 자체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얼굴을 우리에게 향하시는 것이 복의 시작이며, 하나님과 단절되는 것이 곧 저주입니다.

​• 2단계 [역량]  
생명력의 부여 (Vitality & Power)
 
하나님으로부터 흘러 들어온 에너지가 내 삶을 온전하게 회복하고 번성케 하는 힘입니다. 
이는 단순히 물질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는 생명력과 한계를 돌파하는 지혜가 내면에 채워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 3단계 [목적]  
통로와 사명 (Mission & Overflow)
 
나에게 고인 복이 담장을 넘어 타인과 세상에 선한 영향력으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성경적 복은 결코 개인의 소유로 끝나지 않으며, 나를 통해 주변이 살아나고 하나님의 다스림이 나타나는 사명으로 완성됩니다.

히브리어 원어로 보는 깊은 통찰 : '바라크'와 '아쉐르'

성경에는 '복'으로 번역되는 두 가지 주요 단어가 있습니다.

바라크(Barak)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부어주시는 생명력과 권세이며, 어원적으로는 '무릎을 꿇다'라는 의미에서 왔습니다. 
즉, 피조물이 창조주 앞에 겸손히 머물 때 진정한 복이 시작됩니다.

아쉐르(Asher)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그 길을 걷는 사람이 누리는 행복과 만족을 뜻합니다.

삶에 적용하기 : 야베스의 기도와 만능 공식

역대상 4장 10절의 '야베스의 기도'는 단순한 기복 신앙이 아닙니다. 
야베스는 고통이라는 운명을 끊어낼 생명력(바라크)을 구했고,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할 사명의 범위(지경)를 넓혀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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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4편 
히브리어 바라크(בָּרַךְ)로 읽는 성경적 ‘복’의 본질 

복이란 무엇인가?

“복 받으세요.”
“그분은 참 복 있는 분이에요.”
 우리는 일상 속에서 ‘복’이라는 단어를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합니다.하지만 정작 “복이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쉽게 답하기 어렵습니다.복이란 단순히 일이 잘 풀리는 것일까요?
 건강과 경제적 안정, 자녀의 성공처럼 우리가 기대하는 ‘좋은 일’의 총합일까요?
우리는 흔히 복을 외적 조건이나 성취 중심으로 이해합니다.그러나 성경은 ‘복’을 훨씬 더 깊고 거룩한 차원에서 정의합니다.성경에서 복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안에서 누리는 존재의 상태이며,그분과 동행하는 삶의 방향성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복’을 나타내는 대표적 단어가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시편 1편에서 등장하는 “애쉐르(אַשְׁרֵי)”입니다. 

이 단어는 ‘행복하다’, ‘바른 길을 걷는 자’라는 의미로, 방향성과 태도를 강조합니다.“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시 1:1)라는 말씀처럼, 악한 길을 피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묵상하는 삶의 자세가 복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오늘 함께 살펴볼 시편 24편에 나오는 “베라카(בְּרָכָה)”입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축복을 뜻하며, 그 어근 “바라크(בָּרַךְ)”는 ‘축복하다’와 동시에 ‘무릎을 꿇다’는 의미를 함께 담고 있습니다.
 복이란 내가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그 앞에 무릎 꿇는 예배자의 삶에 부어지는 은혜라는 뜻입니다. 시편 24편은 이 ‘베라카’가 누구에게 임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시편 24편이 말하는 복의 세 가지 본질이 있습니다. 

첫째, 복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설 수 있는 은혜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시 24:3)
복은 단순히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시편 기자는 ‘복’을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에 설 수 있는 자격과 특권으로 정의합니다.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않으며, 거짓 맹세하지 않는 자”(v.4) 이러한 내적·외적 정결함을 가진 자에게 임재의 복, 즉 하나님과 마주할 수 있는 복이 주어집니다. 복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담대히 설 수 있는 존재의 상태입니다.

 둘째, 복은 하나님과의 진실한 관계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v.5)
이 말씀은 복이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안에서 주어진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복은 단지 ‘의로운 삶’의 보상이 아닙니다.복은 하나님을 구하고, 그분의 얼굴을 찾는 자에게 임하는 응답입니다.
복 있는 자는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지 않습니다.그는 하나님 그분 자체를 구합니다.하나님을 통하여 무언가를 얻으려 하기보다,하나님을 목적으로 삼고 그분과 동행하려는 삶, 그것이 복입니다.

 셋째 복은 공동체로 흘러가는 하나님의 은혜

시편 24편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v.7)
개인의 경건이 공동체의 예배로 확장됩니다.복은 한 사람의 거룩함에 머물지 않습니다.복 있는 자의 순전한 신앙은 공동체를 하나님 앞으로 이끄는 통로가 됩니다.

진정한 복은 나 하나만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복은 하나님이 계신 곳에 모든 이가 함께 살아가는 조화이며,그분의 임재가 공동체에 머무는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복이란 무엇인가?
복은 단지 좋은 일이 생기는 상태가 아닙니다.복은 하나님의 얼굴 앞에 서는 특권이며,그분과 깊은 교제와 신뢰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의 상태입니다.

복은 하나님을 목적으로 삼는 삶에서 흐르고,그 은혜가 개인을 넘어 공동체로 흘러갈 때 완성됩니다.

복은 샬롬입니다.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고,그분의 동행 안에서 삶이 평안하게 이어지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지만,진정한 복은 그분 자체를 갈망할 때 주어집니다.
복은 하나님을 구하는 자에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선물입니다.그분을 찾는 자는 결코 복을 놓치지 않습니다.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시 24:5)

이 말씀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그분 앞에 무릎 꿇는 자,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자,그가 진짜 복 있는 사람입니다.



설교본문: 잠언  10:22

주의 복, 그것은 사람을 부하게 하나니 그분께서는 그것에 슬픔을 더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설교: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란 

그리스도인들에게 종종 찾아오는 특별한 유혹이 있습니다. 그것은 축복에 익숙해져 버리는 것입니다.

만약 태양이 일 년에 한 번만 뜬다고 해 보십시오. 많은 사람은 그 해를 보고 감탄할 것이며, 해를 만드신 하나님께 감사할 것입니다. 그러나 태양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날마다 뜹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감사하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감사할 것들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아주 자주 불평 거리만을 찾습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

우리는 축복에 익숙해져 있는 마음을 치료받아야 합니다.

그 유일한 치료 방법은 계속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고 하신 모든 것에 대하여 그분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보고 듣는 것마다 신기해하며 놀라움을 발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지하게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평범한 은혜와 생활의 위안, 건강한 육체와 건전한 정신, 좋은 음식과 옷, 따뜻함과 빛, 그리고 공기, 가정의 평화와 사랑의 신성한 끈 등 우리가 해야 할 감사는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 아주 진지해져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고난 중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일들은 우리 주위에 항상 있습니다.

미국선교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남미의 미개척지에서 선교사님 한 분이 매우 중한 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슬픔이 더 하였던 것은 그녀에게 돈이 도착하지 않아서 자신이 먹고 싶은 맛있는 음식을 먹지 못하고 할 수 없이 날마다 오트밀과 깡통에 든 우유로 살아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점차 회복이 되었으며 꾸준히 30일 동안 오트밀 음식을 먹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송금한 돈을 받게 되었고, 다른 것들도 얻을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휴가 때가 되자 그녀는 이 시련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말을 하였습니다. 그녀의 간증을 듣던 사람 중에 한 의사가 그녀의 병의 증상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는 심한 소화불량이 있었다는 말을 듣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만약 당신에게 돈이 빨리 도착했었더라면 당신은 오늘 나에게 여기서 말할 수 없었을 거요. 우리가 그 병을 위하여 항상 처방하는 음식이 바로 30일간의 오트밀 식사랍니다."

그녀의 고난이 바로 축복이었습니다. 고난과 역경은 축복을 싸고 있는 보자기입니다.

우리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하나님의 축복을 오늘 우리가 함께 보고자 합니다. 그 은혜로운 뜻을 알고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시는 저희가 되기를 바랍니다.

잠언 10장 22절의 말씀입니다.

주의 복, 그것은 사람을 부하게 하나니 그분께서는 그것에 슬픔을 더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복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하게 한다는 말씀을 영어로 보시면, rich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물질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주변 환경으로나 아주 풍성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에는 슬픔이 더해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힘을 얻어내는 물질과 부유함에는 슬픔이 더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온전하며 슬픔이 더해지지 않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볼 것은 구약에서의 복과 신약에서의 복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던 사람들의 특징은 모두 부자였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부자였습니까? 네, 부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삭과 야곱도 부자였습니까? 그렇습니다. 욥기의 주인공인 욥 역시도 부자였습니다. 다윗도 부자가 되었고, 솔로몬도 부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던 사람들은 대부분 부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신약은 어떻습니까? 우리 주 예수님은 어떠하셨습니까? 사람으로 오실 때부터, 남의 집 마구간 말구유에서 오셨고,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어떠했습니까? 주님을 만나고 더 부자가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가진 것을 다 버렸습니다. 바울은 어떠했습니까? 자기에게 이득이 되던 것들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신약의 성도들은 주님을 믿고 더 가난해졌습니다.

이것은 아주 큰 흐름입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물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과 동행하였지만 정말 가난하였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엘리야는 위대한 하나님의 대언자였지만, 가난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신실한 대언자였지만 감옥신세를 면하지 못했습니다.

또 신약시대에도 부자였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장사지냈던 아리마대 요셉은 부자였습니다.또 바울이 복음을 전해서 믿었던 사람들 중에서도 부자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교회의 역사를 볼 때도 부자들이 있었습니다. 모라비안 형제단의 진젠돌프 백작도 부자였고, 스탠리 탬도 하나님께 신실한 사업가이자, 부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아주 특수한 몇 경우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신약 성도들에게 주시는 복은 물질적인 복이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물질적인 복을 주신다면 만수르나, 빌게이츠 같은 사람이 가장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에게는 고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모든 자는 핍박을 받을 터이나”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할까요?

오늘날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복은 물질적인 번영이 아닙니다.

고난과 핍박 가운데 있는,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며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물질적인 보상과 영광은 이 땅에 세워질 천년왕국에서 주어질 것입니다. (엡 1:3)

즉,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복은 하늘의 처소들에 있는 모든 “영적인 복”입니다. “영적인 복”이라는 것은 먼저 죄들이 용서받고 가려진 복을 말합니다.

우리가 복음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은혜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날마다 은혜와 평강과 긍휼과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런 “영적인 복”은 어떤 힘을 가질까요?

일본에 사는 “미우라 아야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소위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였습니다.

그녀의 일생, 77년 동안 그녀는 병과 싸웠습니다. 그녀는 24세부터 결혼하기 전 37세까지 13년 동안은 움직이지 못하고 침대 위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그녀는 예수님을 알면서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녀는 그 주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그 감격을 전하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사람의 비극은 자신은 억울하게 고통당한다는 생각의 오해 때문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마음속의 빙점을 극복하면 어느 누구도 절망에 빠질 필요가 없다”라는 것을 그녀는 깨달았습니다.

이후, 그녀는 이러한 깨달음을 글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녀는 일평생 결핵성 척추염, 대상포진, 직장암, 파킨슨병 등의 난치병과 싸우면서도 고백했습니다;

“병으로 잃은 것은 오직 건강뿐이고 그것 때문에 오히려 신앙을 갖게 돼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공을 구하고, 축복을 구하고, 문제 해결을 구하고, 건강을 구하십시오.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주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럴 때마다 우리에게 삶의 위기가 있을 때에도 우리는 주의 은혜에 감사할 것이고, 우리에게 닥친 위기는 곧 축복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극심한 고난이 있어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합니다”라고 할 때 마귀와 질병과 저주는 순식간에 결박당하고 그의 앞길에는 축복의 대로가 활짝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은혜와 축복이 우리에 있는 것이 바로 “영적인 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는 길로 나가야 합니다.

복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이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진 “언약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어떤 이가 목사님을 찾아와 항의를 했답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가 교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이에 목사님이 대답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에게 아들이 있었습니다. 성장과정에서 부모인 우리에게 그 아들은 참으로 많은 것을 요구했습니다. 눈만 뜨면 무섭게 달라는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시는 것처럼 지난해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더 이상 우리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성도님 살아있는 교회는 헌신을 요구한답니다. 죽은 교회는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헌신의 요구에 대해 응할지 말지는 성도님의 몫이랍니다.”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복을 받는 자로 살 수 있을까요? 신명기 30장 20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오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아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받은 그 축복의 세계에 머물 수 있는 비결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를 내 아버지로 삼은 언약의 관계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받은 축복의 세계에서 사시는 분이 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축복 가운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시는 주 하나님

우리는 오늘 만복의 근원되시는 주님과 동행하고 있음을 우리가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길 가운데에는 슬픔이 더해지지 않음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영원히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실 것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경적 복의 개념

1.어원적 의미

a. (바락)

원래의 뜻은 '무릎을 꿇다'는 뜻으로 낮은 자가 높은 자를 경배하고 찬양할 때(시

72:15)에 쓰였다.또 축복을 빌 때(대상4:10)나 이미 받은 축복을 감사하여 찬양할

때(시145:1-2,대상29:10,느9:5) 쓰이기도 했다.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이 축복

하실 때(창1:28,9:1,12:2,22:16-18)에 쓰이고 있다.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실

것을 약속하실 때는 영적이며 물질적이며 동시에 후손이 받을 먼 훗날의 축복까지

포함했다.

b. (유로게오)

히브리어 '바락'을 헬라어로 번역할 때 쓰여진 말로 '칭찬하다' '복을 빈다'는 뜻

이다.예외는 있을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영적인 축복을 가리킬 때 쓰인다(행3:26,갈

3:8-9,엡1:3).

c. (마카리오스)

'근심없는 평안'의 뜻이 포함되어 있다.이 복은 신령한 축복을 의미하는데 복음서

와 계시록에 가장 많이 사용되어 있다(마5:3-11, 11:6, 눅11:28, 요20:29, 계1:3,

14:13, 20:6).

* 영적인 복

a.죄 사함을 받는 것(시32:1)

b.영생의 복(시133:3)

c.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평강(시29:11)

d.지경을 넓히는 것과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는 것

e.아름답고,지극한 복(시21:3,6)

2.주께서 복주시는 대상

주의 백성............................시3:8;29:11

의인.................................5:12;잠10:6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신115:13

정직하고 선량한 일 행하는 자..............신6:18

3.복받는 시기

천지 창조전............................엡1:3,4

현재...................................마25:34

미래...................................마25:34

아브라함은 어떤 복을 받았다고 본문이 말씀하는가?

①큰 민족을 이루는 복:이스마엘(에짚트 출신 시녀였던 하갈),이삭(리브가),

그두라(다섯아들)---

(성경)계7:9,"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나라와 각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수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나오더라 "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영광스러운 민족,큰 민족을을 이루는 조상이

된 줄로 믿으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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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이름이 창대케 되는 복: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이름이 누구의 이름

이겠는가?

여러분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이름,존귀한 이름이 누구겠는가? 예수 그

리스도 아닌가?

(성경)빌2: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그 발 앞에 굴복하게

하셨다."

마1:1--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은 세

상에서 불려졌던 이름 중 가장 위대한 이름을 자손으로 낳음으로 창대한 이

름을 얻었다.예수님의 이름을 빼고 인간 중에는 가장 큰 이름을 얻었다.

③복의 근원이 되는 복:3절 다같이 읽자.

#유산 안물려주기 운동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 중에 돈이 가장 작은 것이다.

돈 보따리 물려주면서 자녀들의 돈 싸움이 훤히 내다보여 두눈을 차마 못감

고 죽는 아비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 주는 것 중에 돈이 가장 작은 것인줄 깨닫는 이 시간

되시길 축원한다.

아브라함은 오늘 본문의 약속대로 자기 후손들에게,모든 민족들에게,바로 저

와 여러분들에게 가장 귀한 복을 물려준 복의 근원이 되었다.

(성경) 갈3:14,"이늘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였으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

아브라함의 복은 곧 예수 그리스도와 약속의 성령입니다.

복의 근원이 되려면 ----:

1.우르를 떠나라.

2.하란을 떠나라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나면...

1. 만사가 형통하게 된다

하나님의 축복의 가장 근본은 萬事亨通(만사형통)이다. 아브라함이 갈바를

2. 자손들이 잘 된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가정은 그 자손들이 잘 된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3. 항상 즐겁게 살게 된다

하나님의 복을 받은 영혼은 언제나 즐겁다. 천국이 무엇인가? 슬픔과 고통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1.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야

2. 복을 귀한줄 알아야

3. 축복을 사모하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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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께서 복주시는 대상

주의 백성............................시3:8;29:11

의인.................................5:12;잠10:6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신115:13

정직하고 선량한 일 행하는 자..............신6:18

5.복받는 시기

천지 창조전............................엡1:3,4

현재...................................마25:34

미래...................................마25:34

아브라함은 어떤 복을 받았다고 본문이 말씀하는가?

①큰 민족을 이루는 복:이스마엘(에짚트 출신 시녀였던 하갈),이삭(리브가),

그두라(다섯아들)---

(성경)로마서 ,갈라디아서, 모든 믿는 자의 조상! 세상에 이만큼 큰 민

족의 조상이 어디있는가?

(찬송168)"하나님의 나팔 소리 천지 진동할때에 예수 영광중에 구름 타시

고 천사들을 세계만국 모든 곳에 보내어 구원 얻은 성도들을 모으리---"

(성경)계7:9,"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나라와 각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수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나오더라 "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영광스러운 민족,큰 민족을을 이루는 조상이

된 줄로 믿으시기를 축원한다.

②이름이 창대케 되는 복: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이름이 누구의 이름

이겠는가?

#어떤 아이들에게 "네 아버지 존함이 무엇이냐?"하면, "김 자 준자 수자이십

니다."---어떤 분은 그것이 너무 버릇이 되어,"당신 이름이 무엇입니까?" 제

이름을 물어보는대도 ,"예,제 이름은 김자 준자 수자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이름,존귀한 이름이 누구겠는가? 예수 그

리스도 아닌가?

(성경)빌2: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그 발 앞에 굴복하게

하셨다."

마1:1--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은 세

상에서 불려졌던 이름 중 가장 위대한 이름을 자손으로 낳음으로 창대한 이

름을 얻었다.예수님의 이름을 빼고 인간 중에는 가장 큰 이름을 얻었다.

③복의 근원이 되는 복:3절 다같이 읽자.

#유산 안물려주기 운동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 중에 돈이 가장 작은 것이다.

돈 보따리 물려주면서 자녀들의 돈 싸움이 훤히 내다보여 두눈을 차마 못감

고 죽는 아비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 주는 것 중에 돈이 가장 작은 것인줄 깨닫는 이 시간

되시길 축원한다.

아브라함은 오늘 본문의 약속대로 자기 후손들에게,모든 민족들에게,바로 저

와 여러분들에게 가장 귀한 복을 물려준 복의 근원이 되었다.

(성경) 갈3:14,"이늘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였으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

아브라함의 복은 곧 예수 그리스도와 약속의 성령입니다.

여러분도 자녀들에게 다른 것 못 물려줘도,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업

으로 물려줄 수 있는 부모들 되시기를 축원한다. 그렇게 하면 최고,최상의

부모이다. 돈 몇푼 집 한채 더 물려줄려고 잠 못자고,쉬지도 못하고 아둥바

둥하면서 ,그리스도와 말씀과 교회에 대한 신앙생활은 건성으로 하는 사람들

은 틀림없이 잠시후 후회할 것이다. 아주 크게 후회할 것이다. 자기도 망하

고 자녀도 망하는 길을 지금 가고 있기 때문이다.------ 죽을 때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불러 앉혀 놓고,찬송 부르고 통성 기도하고,말씀을 읽고,한사람씩

머리에 손 얻고 안수하며 축복기도한 다음 "내가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달

려갈 길을 다 마쳤으니 이제는 우리 주님께서 씌어주시는 생명의 면류관을

받으러 가노라"---하고 성령과 은혜가 충만한 자손들에게 둘려서 주님께로

가시는 여러분 다 되시기를 축원한다.

복의 근원이 되려면 ----:

1.우르를 떠나라.

우르---아브라함의 고향이다. 바벨론의 해변가에 있었다. 우상의 도시였

다. 당시 사람들은 자연력을 신으로 섬겼다. 태양,달,바람,강등 의 자연력이

인생의 생사화복을 지배하는것으로 여겼다. 또 그들은 性을 신성시 했다. 왜

냐하면 모든 것이 性을 통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전에서의 여사제

들과 남자들과의 성교는 자연스럽게 이뤄졌고,모든 부인 ,처녀와 과부들도

그런 예식에 적어도 한번은 참여해야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은 그런 환경 속에 있는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하나님은 환경의 좋

고 나쁨을 따지지 않으신다. 우리들을 보아도 그렇다. 대부분이 하나님을 모

르고 우상을 숭배하고 세상 풍속을 좇던 가문과 환경에서 불러내셨다. 우리

주변에 더럽고 악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모르고 교만하게 오물처럼 뒹굴며

사는 영혼들에게도 하나님의 구원의 부르심이 임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축원한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 부르심은 어떤 것이었는까?

①주권적,은혜로 인한 부르심:아브라함이 가장 무력할 때 하나님이 그를 불

러내신다.11:30--,"사래는 잉태치 못함으로 자식이없었더라" 자녀가 없었다

---당시로서는 굉장히 난처한 입장이었다. 마치 죽은자와 같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큰 민족'의 약속으로 불러내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부

르심은 이처럼 먼저 찾아오셔서 죽은자 가운데서 불러내시는 은혜와 구원의

부르심이다.

엡2:8,너희가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하나님

에 대한 믿음은 먼저 우리에게 자기를 나타내신 하나님의 은혜와 부르심으로

인하여 일어난 나의 긍정적 반응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믿음으로 말

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를 얻는 것이 아니고,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로 말미암

아 우리에게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②개인적 부르심: #아무리 어미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해도 자식 밥 먹는다고

어미 배가 부르지는 않는다. 어떤 여자 성도님의 은혜로운 간증,6.25 때 얼

마나 배가 고프든지 업고 가던 애기 먹던 주먹밥을 뺏어 먹었단다. "먹어야

젖이 나올 것 아니냐---!"

노아도,에녹도 다 자기의 의로 자기 하나만 구원할 것이다---말씀하신다. 하

나님의 부르심은 개인적이다. 여러분, 하나님의 부르심을 개인적으로 받았는

가? 그러면 우르를 떠나십시오! 완전히 세상의 타락한 풍속과 양심에서 떠나

십시오. 아내의 믿음이 여러분을 보호해주지 못한다. 순장의 열심이 여러분

을 대신해주지 못한다. 자녀의 믿음이 여러분을 구원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개인적이다.

③희생을 요구하는 부르심:고향을 떠나라.친족을 떠나라.익숙하던 생활과

안정을 보장하던 생업과 터전을 모두 버리라.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는 부르

심이었다. 그렇게 날 사랑하던 부모에게서 등을 돌려야 하다니,그렇게 날 아

껴주던 친척,동료들을 원수로 삼아야 하다니,그렇게 좋아하던 오락과,술과

취미와 쾌락을 다 버려야 하다니----. 하나님의 부르심은 때로는 직장도 일

터도 내버려야만 하는 때도 있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다,"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르 부인하

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④ 그런데 하나님의 부르심은 더 좋은 것을 주시는 부르심이다:네가 버린

친척보다 더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네가 버린 고향 보다 더 좋은 땅을 네게

주고,고향에서 버린 바된 네 이름을 창대케 해주리라. 별수 없는 오물덩어리

에 불과했던 너를 모든 민족의 복의 근원이 되게 해주마.

하나님과의 만남은 사람 팔자를 이렇게 바꾸어 버린다. 더럽고,추하고,쓸

모없는 것들,원래부터 내버려야 할 것들을 내버리게 하시고,전혀 생각지도

못할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썩지않을 것들로 대신 주신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이 바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줄로 믿

으시기를 축원한다. 여러분의 우르는 어디인가? 여러분의 우르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의 부르심 앞에 깨끗이 내 버리고 떠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

원한다.

2.하란을 떠나라

아버지 데라와 아브라함과 롯이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내려오다가 머물

게 되는 중간 지점이다.

우르의 서북쪽 960km, 가나안의 동북쪽 640km

하란이란 이름의 뜻이 "교차로"이듯이,장사꾼 대상,군대들이 통과하는 길목.

바벨론,앗시리아,수리아,소아시아,애굽으로 통하는 길목. 이미 잘 개척되었

던 도시.

데라는 가나안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이곳에 머물러 버린다. 아예 보따리

풀고 주저 앉아 2백5세에 죽을 때까지 하란을 떠나지 못한다. 데라는 먼길을

떠나 오다 지쳤던가 보다. 고향 우르가 너무 그리워졌던가 보다. 고향 우르

와 비슷한 동네 하란에 오자마자 생각이 싹 달라져 버렸다. 가나안으로 향하

던 발을 돌려 하란에다 못박아버렸다. 더 이상 옛 생활의 맛과,그리운 냄새

와 평안한 삶의 즐거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개가 토했던 것을 도로 주

어 먹듯이 버렸던 옛생활의 오물들을 다시 삼켜 버렸다.

아브라함과 함께 순례의 여행을 하고 있었지만,데라는 영원히 변치 않았던

이교도였다. 그는 약속의 사람,믿음의 사람이 못되고,여전히 우르의 사람으

로 남아 있었다. 그런 그가 자나가게 된 하란에는 골목골목에서 "과거로 돌

아가라","과거로 돌아가라"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술을 딱 끊고 열심히 신앙생활 하시던 아버지가 가끔 술

을 보시거나 티브이 선전 보다가도 눈 빛이 달라지고,꼴깍거리신다. 그 때

다시 시작하셨으면 우리 아버지는 아직 하란에 머물러 계셨을 것이다.

오늘날 아브라함을 따라 가나안으로 가다가 하란에 머물러 옛생활로 되돌

아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사는 교인들이 없는가? 겉으로는 교인인데,마음은

여전히 육욕이 그득하다. 옛생활의 맛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옛 고향의

즐거움과 능력들을 완전히 떠나지 못하고 있다. 하란의 즐거움을 결코 떨쳐

버릴 수가 없어서 가나안의 즐거움이 얼마나 다르고 좋을지를 미처 상상하지

못한다. 그래서 가나안을 향하여 더 진행하지 못하고 다시 하란에 머물러/

옛고향 우르의 삶을 다시 살고 있는 것이다. 하란은 우르와 멀리떨어진 곳

같으나 역시 우르인 곳이다. 그들이 죽고 묘비에는 이런 글이 적힐 것이

다. "000는 70세를 향유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

하란에 머물다 죽은 데라는 자기만 망할 뿐 아니라,자기 자녀들도 그곳에

붙잡아 두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한다. 믿음으로/ 가나안을 향하여/ 계속 전

진하지 못하고/ 믿는 것 같으면서도 실은 하란에 머물러 있는 부모들은/ 자

녀들을 더 낳은 신앙생활로 격려하는 것이 아니라,열이면 열/ 다/ 자기 자녀

들을 하란의 풍습,하란의 사상,하란의 경계선 안에 붙잡아 둔다. "지금 이대

로도 좋다,지금 이대로도 괜찮은데 뭘 더 나가려고 하느냐---" 여러분과 여

러분의 자녀들이 이런 하란의 속삭임에 속지 않으시기를 축원한다.

행7:4,"아브라함이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

서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데라가 죽으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다시 나타나셨다.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데라를 죽여야 한다. 옛날이 더 좋다. 옛날로 돌아

가자. 지금 이대로도 좋다. 여기서 머물러도 되겠다. 하란이나 가나안이나

마찬가지 비슷하지 않겠느냐. 가나안의 복과 즐거움이 하란의 즐거움보다 나

을 것이 무엇 있겠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데라이다!

데라의 죽음은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다시 나타나셨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즉시 믿고 순

종하였다. 그래서 마침내 가나안에 이르렀다는 것이 오늘 본문 마지막 절의

증거이다.그는 마침내 복의 근원이 되리라는 약속이기도 하다.

아브라함에게는 우르라는 고향의 위협,교차로 하란의 위기,영원히 변치

않는 이교도 아버지 데라의 방해가 있었지만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대로 가나

안에 도착했다.

여러분이 아직 우르에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미련없이 그곳을 떠

나시라. 권력의 자리인가? 돈방석의 자리인가? 향내나는 비단 침대 쾌락의

자리인가? 뱀 처럼 미끄럽게 넘어가는 술과 노름의 자리인가? 떠나라! 믿음

과 순종의길을 떠나라.비록 그 길이 어렵고 괴로워도,눈에 보이는 것,손에

잡히는 것이 없더라도 떠나라. 그 길만이 가나안으로 나가는 길,복의근원이

되는 길이다.

여러분이 지금 하란에 머물고 있는가? 우르에선 떠난 것이니까 아주 나

쁜 죄인은 아니겠지---? 하란은 우르의 복사판이다. 약속의 땅 가나안이 아

닌 곳은 다 우르이다. 여러분의 발목을 잡고 손목을 잡은 데라의 손을 떨쳐

버리고 약속의 땅을 향해 힘차게 길을 떠나시라. 가나안의 것들은/ 우르와

하란의 것들처럼/ 눈에 확실히 보이지는 않지만/ 오직/ 믿음으로/ 순종하여

/계속 나아가면/여러분을 우르에서,하란에서,데라에게서 불러내신 하나님께

서 마침내 여러분을 약속의 나라에 이르게 하실 것이다. 지금은 비록 미약하

지만 여러분은 복의 근원이 되어 큰 민족을 이루고,창대한 이름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한 죄수(경찰에 의해 감옥에 넘겨지는,살인범)와 어린 소녀(부모 손을 잡

고 우연히 그 광경을 보게된 )."나는 아저씨가 너무 불쌍해요--"."예수님도

아저씨를 불쌍히 여기셔요" 도망가 숨었다. "너무 포악한 녀석입니다. 당신

들 매우 고생하실 것입니다.조심하십시오." 그런데 다음날 부터 이 죄수는

전혀 딴 사람이 되 있었다. 법을 잘 지키고,청소를 도맡아하고,친절하고,얼

굴에 환한 웃음이 피기 시작하였다. 조그만 한 소녀의 단 두마디 말때문이었

다.

여러분,부자나 가난한 자나,배운자나 못배운자나,병든자나 건강한자나,어

느 민족 어느 족속 누구에게든지 세상 죄를 대신 지고 골고다 십자가에서 보

혈을 흘려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장사한지 삼일만에 부활하여 죽음

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 생명의 첫열매가 되신 에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따르는 것이 복중의 복이다. 그래서 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자마다 불행

에서 행복으로,사망에서 생명으로,슬픔에서 기쁨으로,원망하던자가 위로자로

변화되는 줄로 믿는다. 이와 같은 복이 여러분의 것이되고,또 여러분이 그

복을 전하고 물려주는 복의 근원이 되시길 축원한다.

福된 사람이 되라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나면...

그렇다. 세상에서 얻는 모든 것은 다 이와같은 것이다. 그

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은 세상의 이와같은 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

께서 주시는 복은 세상의 근심과 걱정이 섞여 있지 않는 참으로 고귀하고 놀라운

것이기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 성도들이 생명만큼이나 이와같은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고 사모하는 것이다. 그럼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나면 어떻게 되는지? 구체

적으로 성경의 증거를 찾아 보도록 하자.

1. 만사가 형통하게 된다

하나님의 축복의 가장 근본은 萬事亨通(만사형통)이다. 아브라함이 갈바를

알지 못하고 부모형제와 정든 고향을 떠났지만 하나님께서 일일이 그 발걸음을 인

도하여 형통케 해 주셨다. 그는 두 번씩이나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며 자신

의 생명을 부지하려고 부끄럽게 처신했지만(창세기 장,20장을 참고 하라, 여기에서

아브라함은 바로와 아비멜렉 앞에서 두 번씩이나 아내를 동생이라고 속였다), 하나

님께서는 그 때마다 초자연적인 역사로 바로나 아비멜렉의 손에서 사래를 보호해

주셨다. 뿐만아니라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좋은 땅 선택하기를 종용하여 롯이 젖

과 꿀이 흐르는 소돔성을 선택하여 茫然自失(망연자실)하여황량한 들판만 바라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거기에도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아 너는 눈을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

르리라"(창세기 13:14-15)고 보장해 부셨다. 또한 아브라함이 자식 하나 없이 늙어

가매 하나님께서 기적같은 역사로 이삭을 주시어 그 이삭을 통해 야곱이 나오는 자

손 축복의 길을 열어 주셨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 받은 자의 삶이 어떻

게 이루어져 가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

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

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같으리라"(예레미야 17:7-8)는 말씀이나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

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편 1:3)는 말씀만 보아도, 복 받은 자의

삶이 어떻게 되는지 분명하게 알수가 있다. 그렇다. 우리 성도는 다 이렇게 하나

님의 복을 받아 형통한 삶을 살아야 한다. 실로 이것은 상상만 하여도 황홀하지 않

는가? 그러니 이와같은 축복을 한갖 추상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생활 속에 실제적

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보장된 역사인줄 확신하여 끝까지 이와같은 복을 받을 수 있

도록 최선을 다하는 우리 빌립보의 가족들이 되시기를 소원하는 바이다.

2. 자손들이 잘 된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가정은 그 자손들이 잘 된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아브라함이 복을 받으니 그의 자손들이 덤으로 복을 받았다. 이삭도 하나님의

복을 받아 그 해에 농사하여 백배나 얻었고 마침내 창대하고 왕성하여 거부가 되었

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창세기 26:12-13참조). 야곱도 복을 받아 아들을 열 둘

씩이나 낳았고, 그 아들들이 다 이스라엘의 열 두지파가 되었다. 이렇듯이 하나님

의 복을 받으면 자손들이 다 잘 되게 되어 있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시편 112:1-2)고 성경은 또한 확실히 증거하고 있다. 그

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우리 당대에 하나님의 복을 받아 시냇가에 늘어진 수양버들

처럼 만사가 형통하는 삶을 누려야 하겠지만 이처럼 우리들의 사랑하는 후대가 잘

되게 하기 위해서도 하나님의 신령한 복을 받아야 하겠다.

3. 항상 즐겁게 살게 된다

하나님의 복을 받은 영혼은 언제나 즐겁다. 천국이 무엇인가? 슬픔과 고통

이 없는영원토록 즐거운 그곳이 천국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여호와의 복을 받은 심

령은 언제나 즐거움을 누리니 그는 이미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

의 축복 그 자체가 즐거움이요 기쁨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손 대접하기

를 너무나도 즐거워 하였고, 그렇게 하다가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여 큰 복을 받

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그가 만약 자신의 삶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없었다

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생활도 골몰스러운데 어떻게 지나가

는 나그네에게까지 관심을 가질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

으로 늘 지상천국을 이루고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다윗은 노래하기를, "주

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

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편 16:11)고 노해하였다. 이처럼 하나님께 있는 것은

앞이나 옆이나 다 즐거움이요 기쁨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복을 받는 자는 이

렇게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신명기 16:15에도 이와같은 말씀이 남아 있는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 할지니라"고. 여호와의 복은 즐거움을 창조케 하는 것

이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쁨을 상실하며 삶에 食傷(식상)한체 살

아가고 있다. 소리 내어 웃어 본적이 언제인지 모른체 그렇게 하루 하루를 겨우 延

命(연명)하고 있는 것이다. 저마다 말세의 징조를 따라 사랑이 식어져 삭막하기 그

지없고, 자기 욕심에 이끌리어 모두가 자기에게 잘 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좌절과 절

망가운데서 분노만이 재산처럼 득세를 하는 그런 현실에 짓눌려 있는 것이다. 그러

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이와같은 놀라운, 세상 사람들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는 엄청난 기쁨을 누리며 보배 같은 웃음을 나누며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뭐니뭐니 해도 웃으며 사는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니까 말

이다.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이제 본격적으로 복에 관한 진리를 공부해 보자. 먼저 우리는 어떻게 하여

야 하나님의 복을 받는 복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거기에는 틀림없이 복을 받는

길이 있을 것이다. 성경은 이에 대해서 어떻게 증거하고 있는지? 살펴 보도록 하

자.

1.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야

말씀 서두에서도 이미 말씀을 드렸듯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복을 보장

해 주셨는데, 그와같은 복을 보장하시기 전에 前提條件(전제조건)으로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명령을 순종하라"는 명령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하신 풍

성한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한다. 이는

신,구약성경의 전체 사상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하나님의 축복은 있을 수 없

다.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 축복과 저주 이두 가지

를 두시고 우리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선택하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

을 순종하고 아브라함처럼 복을 선택 할 수도 있고(창세기 22장의 이삭을 바치는

순종), 사울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분순종하고 저주를 선택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복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말씀을 순종하는

참신한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다음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상고해 보라. "오

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예레미야 7:23)는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

종하는 것과 그 하나님의 축복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가장 확실히 가르쳐 주

는 성경 진리다. 뿐만아니라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출애굽기

20:6참조). 그리고 이렇게 약속하신 하나님은 우리 사람과 같은 변덕쟁이가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야고보서 1:17; 신명기 7:9참조). 그러므로 그렇게 "순종하

는 자에게 복을 주시마"고 하신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복을

받기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지금부터 우리들의 신앙을 말씀중심으로 변화시키면 틀

림없이 복을 받을 수 있다.

2. 복을 귀한줄 알아야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귀한 것으로 여기시기를

원하신다.우리는 언제나이것을 분명하게 잘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축복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못하고 경홀히 여기면 절대로 하나님으로부터 지속적인 축복을 받지

못한다. 오죽하면 예수님께서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

에 던지지 말라"고 하셨을까?(마태복음 7:6참조). 여기에서 거룩한 것과 진주는 하

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며, 개와 돼지는 예수님을 저버리는 자들을 의미한다. 그러므

로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귀하게 여기고 사모하여야한다. 하나님의 복을 누구보다

도 많이 받았던 다윗을 보라. 그는 고백하기를,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 밖에는 나

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시편 16:2)고 하였다. 그러니 그는 세상에 많고 많은 복

이 있지만 하나님이 곧 가장 귀한 복이였던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복을 귀하게

여기는 다윗을 하나님은 이미 귀하게 여기시고 그의 평생을 통하여 복을 허락해 주

셨던 것이다. 그러나 에서를 보라. 그는 하나님의 축복의 뿌리가 되는 장자의 직분

을 그렇게 귀한줄 모르고 내동이 쳤다가 눈물로 뉘우쳤으나 끝내 축복을 받지 못했

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것을 매우 신중히 그리고 명확하게 증거해 주고 있

는데,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구하되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히브리서

12:16-17)고 하였다. 이처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귀한 것을 귀한줄 모르는자는 서

러운 버림을 받게 되어 있는 법이다. 우리가 잘 아는데로 사울은 하나님이 내려 주

신 성령을 만홀히 여기고 버렸다가 하나님으로부터 가차없이 버림을 당하는데 참아

눈으로 보기에도, 마음으로 상상하기에도 가련하고 불쌍하기 이를데 없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

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돌아 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

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사무엘이 가려고 돌이킬 때에 사울이 그의 옷자락을 붙잡

으매 찢어진지라"(사무엘상 15:24-27). 이 모습은 참으로 비참하기 이를데 없는 성

경 인물의 최대 비극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이렇게 되지 말자. 하나

님의 것을 귀한줄 알고 고맙고 감사하게 간직하여야 한다. 예수님께서 5병2어로 5

천명을 배불리 먹이신 기적을 베푸시고 나서 저희가 배부른 후에 그들에게 명령하

시기를,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요한복음 6:12)고 하셨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무엇떠문에 배물리 먹었는데, 그 가치 없는 부스러기

를 버리지 말라고 명령하시는가?그리고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능력 많으신 주님께

서 또 만드실 수 있는데 그까짓 부스러기를 왜 버리지 말라고 하시는가? 거기엔 비

록 부스러기일망정 하나님의 축복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축복을 이렇게

귀하게 여겨야 끊임없이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교훈하시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

는 때때로 교회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신령한 직분을 시애틀 한인회장 자리보

다도 덜 귀하게여기지 않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더이상 하나님으로부터 내릴 축복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결단코 우리

인생들에게 속지 않으신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경고하신다. "너 자신을

속이지 말라"고.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을 향하여 이렇게 외쳤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7)고.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속으시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결단코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소홀히 하지 말자. 하나님께

서 주신 것이면 지극히 작은 부스러기 하나라도 귀하게 여기고, 감사하며 사모하는

심정으로 간직하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놀라운 축복을 허락해 주실 것

이다.

3. 축복을 사모하여야

하나님의 축복을 귀한 것으로 여기게 되면 늘 그것을 얻지 못해 안타까와

하고 그것을 얻으려고 간절히 사모하게 되는 법이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필요로하고 찾아오기를 너무나도 원하신다. 성경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마음을

종합해 보면 이것이 너무나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

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여 진홍 같

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이사야 1:18)고 하신 말씀이라든지,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

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

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이사야 55:1-3)는 말씀이 바로 이것을 대변해 준

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며 그 하나님께서 주실 축복을

사모하여야 한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

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언 8:17)고, 간절하게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겠다

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확실히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창세기 33:26의 말씀을 잘 알고 있다.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다가

날이 밝아 오자 천사가 "나로 가게 하라"고 하자,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는 말씀을 말이다. 이것은 얼핏 우리들에게 두 가지의

의미를 제공해 준다. 하나는 '야곱이라는 인물은 참으로 하나님꼐 대하여 뻔뻔스런

인간이다'는 인상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께 축복을 달라고 간절히 매달

리면 하나님은 결국 뿌리치지 못하시고 복을 주시는구나'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전

체적인 본문의 해석은 바로 후자이다. 야곱은 그렇게도 축복을 사모하였다. 만약

이 자리에서 그가 하나님의 축복을 따내지 못하면, 날이 새고나면 그는 형 에서로

부터 영원히 보복을 면하기 어려운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자

신과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려고 애쓰는 모습은(13-23까지를 참조하라), 차마 눈물

겨울 정도다. 그러므로 지금 그가 하나님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는 이 말은 오늘날 우리들이 나름대로 먹고 살면서 '하나님께

서 복을 주시면 더욱 생활이 윤택해지고 여유 있게 되겠으나 주시지 않으셔도 그런

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우리들의 현실과는 참으로 거리가 먼 그런 급박한 상황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우리들이 오늘날 하나님의 축복을 바로 이와같은 야

곱의 심정으로 사모해야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 나의 모든 재산을 다 가지고

가시더라도 진정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생명을 건

기도와 간절함이 우리 속에서 우러 나와야 되겠다는 말씀이다. 진실로 우리의 영적

인 투쟁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환도

뼈가 부러지도록 씨름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주실 복만 있다면 나는 매달리겠다는 決

死(결사)의 각오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다. 슬프고 힘든 세상에서 우리가 과연 사모하고

누려야 할 것은 무엇이겠는가? 차라리 바라는 소망마져도 망각한체 살고 있지는 않

는지? 신앙 없는 세상을 바라보면 측은하고 불쌍하기 그지가 없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열심히 교회에 나오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하

고 있지 않거나 귀하게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결코 살아

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차라리 어린 아이와 같이 되라고 하시지 않았

던가? 그렇게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을 찾고 바라고 기대 하라는 말씀일 것이다. 우

리는 자칭 잘 났고 잘 산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너무나도 초라하고 비참하다. 그러

므로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에게 사로잡혀 있지 말고 가슴을 활짝 열고 하나님

께 나아 가자. 그리고 정말로 간절히 그분의 말씀을 경청 하자. 말씀이 없는 영혼

은 이미 죽은 영이다. 그러므로 죽은 영에는 하나님의 고귀한 축복이 담기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우리들의 영혼도 하나님의 축

복을 사모하여 쇠약하여져야 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모하는 영은 만족케 하시니

까 말이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의축복을 이 세상의 그 어떠한 것보다도 더 귀하게

여기는 가치관을 가져야한다. 만약에 은행이 우리들의 재산을 귀하게 여기고 잘

보관하지 않는다면 거기에 재산을 갖다 맡기겠는가? 어림도 없을 것이다. 우리 연

약한 인생도 내것을 귀하게 여겨야 갖다 맡길줄 안다면 하물며 하나님께서는 얼마

나 더 하시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의 축복을 귀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다. 이

렇게 하여 복을받게 되면 우리는 이제 엄청난 영화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모든

기쁨이 우리들의 것이 될 것이고, 우리들의 자손들이 땅에서 강성할 것이며, 마침

내 우리들의 모든 삶이 만사형통하게 되는 것이다. 아, 이 얼마나 황홀한 결실인

가? 우리 빌립보의 모든 가족들이 바로 이와같이되기를 충심으로 축원하는 바이

다.

신자의 밑바닥에 잠재해 있는 잘못된 복의 개념

성경이 가르치는 복 관념을 살피기 전에 우리의 복관념을 알아야 볼 필요가 있다.

한국민의 복관념은 곧 우리의 속에 깊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통속적 현세적 복관념은 중국의 복관념에서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다.고래로 5복

을 말할 때 훌륭한 아내를 맞는 것 부유해지는 것 평안을 누리는 삶 덕을

쌓는 일 죽을 때 뜻을 이루는 일 등을 말해왔다.복(福)자의 글자풀이를 하는 사람

가운데,'옷 衣'字 옆에 '입 口'字,그리고 '밭 田'字,맨 위에 '한 一'字로서 한 인생

의 행복이란 겨우 옷 한벌입고 입에 풀칠할 수 있는 전답이나 있으며 하는 지극히

소박하며 현시적인 것이라 하는 이도 있다.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神觀은 창조주로서

의 하나님이나,윤리적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이 아니다.막연한 인간 운명의 대명사로

서 인간에게 화와 복을 내리시는 '보이지 않는 힘'에 불과하다.

'하나님께 빈다'는 표현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뜻'의 성취를 비는 기도가 아

니라,자기의 유익만을 비는 자기 중심적인 기도이다.불교나 유교가 우리나라에 들어

와서 처음부터 샤만이즘과 동화되질 아니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동화되었

듯이 기독교도 이와 마찬가지로 영적인 차원의 구원 개념보다 현실적 구복사상(求福

思想)으로 기울어져 왔다.이러한 한국인의 신앙적 의식구조 속에 깔린 샤만이즘의

암반이 순수한 복음의 씨가 뿌리를 내리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이러한 기복적(祈福的)신앙이 일반화됨에 따라 구속의 복음을 전하는 성경 강해보

다는 돈벌고 병낫고 축복받았다는 신비적이고 카리스마적인 체험 간증이 더 환영을

받게 된다.그러나 돈벌고 병낫고 잘되는 현실적 축복은 아무에게나 고루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땅을 정복하고 열심히 일하는 자에게 주어질 것이다(창1:28,살후3:10).

성경적 축복 개념

1.어원적 의미

a. (바락)

원래의 뜻은 '무릎을 꿇다'는 뜻으로 낮은 자가 높은 자를 경배하고 찬양할 때(시

72:15)에 쓰였다.또 축복을 빌 때(대상4:10)나 이미 받은 축복을 감사하여 찬양할

때(시145:1-2,대상29:10,느9:5) 쓰이기도 했다.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이 축복

하실 때(창1:28,9:1,12:2,22:16-18)에 쓰이고 있다.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실

것을 약속하실 때는 영적이며 물질적이며 동시에 후손이 받을 먼 훗날의 축복까지

포함했다.

b. (유로게오)

히브리어 '바락'을 헬라어로 번역할 때 쓰여진 말로 '칭찬하다' '복을 빈다'는 뜻

이다.예외는 있을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영적인 축복을 가리킬 때 쓰인다(행3:26,갈

3:8-9,엡1:3).

c. (마카리오스)

'근심없는 평안'의 뜻이 포함되어 있다.이 복은 신령한 축복을 의미하는데 복음서

와 계시록에 가장 많이 사용되어 있다(마5:3-11, 11:6, 눅11:28, 요20:29, 계1:3,

14:13, 20:6).

2.성경에 나타난 축복문들

a.구약성경의 축복문들

구약성서에서 축복문들은 거의 시편기자들과 지혜문학가들의 저작 속에서만 나타

난다.이들은 여러가지 다양한 종교적 의미를 지닌 양식을 사용하였다.이들 축복문들

은 의로운 사람,악행을 멀리하는 사람,안식일을 욕되게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선포

되고 있다.즉,이러한 사람은 평화,재산,가정생활의 만족,성전과 예배의 기쁨,새로운

힘의 획득 등의 지상적 보상들을 안심하고 기대할 수 있다(시41:1,65:4,84:5,128:1,

잠8:32,사32:20).일반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은 종말론적으로 사유되었던 것이 아니라

지상적 삶을 영위하는 동안 실현될 수 있는 하나의 해택으로 간주되었다.

구약 서두부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라는 복으로 시작하여,이 자손

번영의 축복은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은" 많은 자손을 가질 것을 예언한 것

으로 구체화되었다.이 자녀번창은 동시에 사업번창을 수반한 것으로 축복이 나타난

다.구약의 성도들은 밭의 농사,들의 짐승들이 많은 생산을 할 때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이 함께 하심을 깨달았다.후에 축복은 적을 무찌르게 하심에서 나타나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으로 연결되어 구약에 전반적으로 나타난 축복은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과 직접 간접으로 관련되어 엮어져 간다.

b.신약성경의 축복문들

구약의 축복문들과 유사한 점도 있지만 내용상 신약성경의 축복문들은 한가지 중

요한 점에서 구약성서의 축복문들과 다르다.신약성서의 축복문들은 이 지상적 삶에

대한 보상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는 종말적 기쁨을 더 강조하였다.현

재에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즉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가난한 사람들,재난

을 당한 자들 등)은 복되다고 선언되었다.이들 개인들은 심판날에 정죄됨을 면할 것

이다.왜냐하면 ,그들은 심판날의 도래를 위하여 깨어있음으로써 (마24:46,눅

12:37-38,계16:15),적대의 감정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꺼이 들음으로써(마11:6),믿

음의 눈으로 메시야의 도래의 표적들을 봄으로써(눅1:45,10:23,요20:29) 그들의 새

롭게 발견된 믿음을 구체적 행위로 표현함으로써(마24:46,약1:12,25,계14:13,22:7)

스스로를 예비했기 때문이다.

신약의 축복문은 마5:3-11,눅6:20-26,요20:26-29,갈3:1-9등을 참조하라.

* 영적인 복

a.죄 사함을 받는 것(시32:1)

b.영생의 복(시133:3)

c.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평강(시29:11)

d.지경을 넓히는 것과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는 것







프롬행사


“프롬 행사( prom )” 
주로 미국과 일부 국가의 고등학교에서 열리는 졸업 전 공식 무도회 / 파티입니다. 
보통 11학년(주니어 프롬) 또는 12학년(시니어 프롬)에 열리며, 학생들에게는 중요한 학교 행사 중 하나예요.


프롬 행사의 핵심 특징

1. 공식 복장

  • 남학생 : 턱시도, 정장
  • 여학생 : 드레스 (롱드레스가 일반적)
  • 헤어, 메이크업도 중요한 이벤트 요소

2. 행사 구성

  • 입장(limousine이나 단체 이동)
  • 사진 촬영
  • 디너 또는 뷔페
  • 무도회 (댄스 파티)
  • “프롬 킹 & 퀸” 선정

3. 문화적 의미

  • 고등학교 마지막 큰 행사 중 하나
  • 친구들과의 추억, 사회적 성장의 상징
  • “청소년의 성인식 같은 이벤트”로 여겨지기도 함

4. 특징적인 문화

  • 데이트 상대를 공식적으로 초대 (“promposal”)
  • 단체 사진과 영상 촬영
  • 애프터 파티(비공식 모임)


프롬 문화가 미국에서 중요한 이유는 단순한 “파티”가 아니라, 성장 과정의 상징적인 통과 의례(rite of passage)이기 때문입니다.

 1. “어른으로 넘어가는 마지막 행사”

프롬은 보통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12학년)에 열립니다.

  • “학생 시절의 마지막 큰 이벤트”
  • “곧 성인이 되는 시점의 상징”
  • 친구들과의 마지막 공식적인 추억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인생의 한 장면”처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2. 사회적 관계 형성 (Social milestone)

프롬은 단순한 춤이 아니라 사회적 경험 훈련장 역할을 합니다.

  • 데이트 문화 경험 (프롬 파트너 초대)
  • 그룹 활동과 사교 능력
  • 친구 관계 정리 및 확장

 미국에서는 이 경험이 “사회성 성장 이벤트”로 여겨집니다. 

 3. 학교 공동체의 상징 행사

프롬은 학교 전체 문화의 정점입니다.

  • 프롬 킹 & 퀸 선발
  • 학생 투표 참여
  • 교사, 학부모, 학교가 함께 참여

 단순한 파티가 아니라 “학교 공동체 행사”입니다. 

 4. 평생 기억되는 ‘인생 사진’ 이벤트

프롬은 사진 문화가 매우 강합니다.

  • 드레스 & 턱시도
  • 레드카펫 촬영
  • 가족과 친구들과 기념사진

 “인생 앨범에 남는 순간”으로 인식됩니다. 

5. 미국 대중문화의 영향

영화, 드라마에서 프롬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더 중요해졌습니다.

  • “고등학교 경험 = 프롬”이라는 이미지 강화
  • 청소년 성장 서사의 핵심 장면
  •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이벤트로 자리 잡음
핵심 요약

프롬은 미국에서 단순한 파티가 아니라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상징적 의식 + 사회적 성장 경험 + 공동체 행사” 
이 세 가지가 합쳐진 문화입니다.







로뎀나무


성경에서 로뎀나무의 의미와 상징

성경에서 로뎀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특히 광야· 고독· 탈진· 하나님의 돌보심· 회복을 상징하는 중요한 이미지로 사용됩니다.

성경의 로뎀나무는 보통 오늘날의 광야 관목류(white broom tree, Retama raetam)로 이해됩니다.
사막과 메마른 지역에서도 살아남는 강인한 식물입니다.

대표적으로 두 본문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1. 엘리야와 로뎀나무 — 절망 속의 쉼과 회복

가장 유명한 장면은 열왕기상 19장입니다.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 열왕기상 19:4

선지자 엘리야는
갈멜산 승리 이후 이세벨의 위협을 받고 광야로 도망갑니다.

그는 극도의 탈진과 두려움 속에서 로뎀나무 아래 쓰러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 천사를 보내시고
  • 떡과 물을 공급하시며
  • 잠들게 하시고
  • 다시 일어나게 하십니다.

즉, 로뎀나무는

상징

  • 인간의 한계
  • 영적 탈진(Burnout)
  • 고독
  • 광야의 쉼터
  •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


흥미로운 점은 하나님이 엘리야를 즉시 책망하지 않고 먼저 “쉬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로뎀나무는
“무너진 사람을 하나님이 다시 일으키시는 자리”를 상징합니다.

2. 시편의 로뎀나무 — 심판과 날카로움

또 다른 중요한 본문은 시편 120편입니다.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로뎀나무 숯불이리로다”
— 시편 120:4

여기서는 로뎀나무의 이 등장합니다.

광야의 로뎀나무는 숯을 만들면 오래 타고 매우 뜨거운 열을 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상징

  • 강한 심판
  • 오래 지속되는 징계
  • 거짓 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 불같은 정화

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로뎀나무의 영적 상징 정리

상징 의미
광야의 나무 메마른 환경 속 생존
그늘 보호와 쉼
엘리야의 로뎀나무 탈진한 영혼의 회복
로뎀 숯불 강한 심판과 정화
깊은 뿌리 인내와 견딤
외로운 나무 고독한 신앙 여정

성경적 메시지

로뎀나무는 성경에서 매우 역설적인 상징입니다.

  • 어떤 때는 지친 자의 안식처
  • 어떤 때는 심판의 불
  • 어떤 때는 광야의 생명력

으로 등장합니다.

특히 엘리야 이야기에서는:

“사명이 끝난 것이 아니라,

잠시 지친 것이다”

라는 메시지가 핵심입니다.

하나님은 로뎀나무 아래의 엘리야를 버리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곳에서 다시 사명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성경 속 나무들의 상징 비교(생명나무·무화과·감람나무·백향목 등)” “로뎀나무와 현대인의 번아웃의 영적 연결”

성경 속 나무들의 상징 비교

성경에서 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인간의 상태·하나님의 언약·영적 생명·심판과 회복을 상징하는 중요한 이미지입니다.


1. 생명나무 —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임재

성경

핵심 성구

  • 창 2:9
  • 창 3:22–24
  • 계 2:7
  • 계 22:2

상징

  • 하나님의 생명
  • 영원성
  • 에덴의 회복
  • 구속의 완성

의미 구조

성경은 생명나무로 시작해서 생명나무로 끝납니다.

  • 창세기: 인간이 죄로 인해 접근 상실
  • 요한계시록: 구속받은 자들이 다시 접근

즉,

“잃어버린 생명의 회복”

이라는 성경 전체의 큰 흐름을 상징합니다.


2. 무화과나무 — 이스라엘과 영적 상태

무화과

핵심 성구

  • 호 9:10
  • 렘 24장
  • 마 21:18–19
  • 막 13:28

상징

  • 이스라엘 민족
  • 영적 열매
  • 외형과 실제의 차이

특징

예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종교적 형식은 있으나 실제 열매는 없는 상태”

에 대한 심판적 상징입니다.

또한 말세의 징조 비유에서 무화과나무는 회복과 시대 변화를 암시합니다.


3. 감람나무(올리브나무) — 언약과 성령의 기름부음

올리브

핵심 성구

  • 시 52:8
  • 롬 11장
  • 슥 4장

상징

  • 언약 백성
  • 성령의 기름
  • 지속성
  • 화해와 평화

특징

올리브기름은:

  • 제사장
  • 선지자

에게 부어졌습니다.

그래서 감람나무는:

“하나님께 붙어 있는 지속적 생명력”

을 상징합니다.

로마서 11장의 의미

  • 참감람나무 = 하나님의 언약
  • 돌감람나무 접붙임 = 이방인의 구원

즉,
구원의 확장과 은혜의 연결 구조를 보여줍니다.


4. 백향목 — 위엄·강함·왕권

레바논 의 백향목

핵심 성구

  • 왕상 4:33
  • 시 92:12
  • 겔 31장

상징

  • 왕권
  • 영광
  • 높아짐
  • 인간 제국의 교만

특징

레바논 백향목은 매우 크고 견고했습니다.

그래서:

  • 성전 건축
  • 왕궁 건축

에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선지서에서는:

“높아진 교만한 나라”

의 상징으로도 사용됩니다.

즉 백향목은:

  • 하나님 안의 존귀함
  • 혹은 인간의 교만

둘 다 표현할 수 있습니다.


5. 포도나무 — 관계와 열매 맺음

포도

핵심 성구

  • 사 5장
  • 요 15장

상징

  • 하나님과의 연결
  • 열매
  • 생명의 흐름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핵심은:

  • 붙어 있음
  • 공급받음
  • 열매 맺음

입니다.


6. 종려나무 — 승리와 의로움

종려나무

핵심 성구

  • 시 92:12
  • 요 12:13
  • 계 7:9

상징

  • 승리
  • 인내
  • 왕의 입성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때 종려가지는:

왕을 맞이하는 상징

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구원받은 무리의 승리

를 의미합니다.


나무 상징 전체 비교표

나무 핵심 상징 대표 의미
생명나무 영생 하나님과의 완전한 연합
무화과나무 영적 상태 열매 여부와 심판
감람나무 언약 성령과 지속성
백향목 위엄 영광 혹은 교만
포도나무 관계 연결과 열매
종려나무 승리 의와 구원
로뎀나무 지친 영혼의 회복

로뎀나무와 현대인의 번아웃의 영적 연결

로뎀나무

핵심 본문

  • 왕상 19:4–8

선지자 엘리야 는 갈멜산의 대승리 직후 극심한 탈진 상태에 빠집니다.

그는 로뎀나무 아래에서:

  • 죽기를 구했고
  • 고립되었고
  • 무기력해졌습니다.

놀라운 점은:
하나님이 먼저 하신 일이
“책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하신 4가지

1. 먼저 잠들게 하심

육체 회복이 먼저였습니다.

2. 먹이심

천사가 떡과 물을 제공합니다.

3. 쉬게 하심

한 번이 아니라 다시 자게 하십니다.

4. 그 후 말씀하심

회복 뒤에 사명을 다시 주십니다.


현대 번아웃과의 연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 과잉 성과 압박
  • 끊임없는 비교
  • 디지털 피로
  • 관계 소진
  • 영적 공허

속에서 “로뎀나무 상태”를 경험합니다.

특징은 엘리야와 매우 비슷합니다.

엘리야 현대 번아웃
“나만 남았다” 고립감
죽기를 원함 무기력
광야 도피 회피 심리
탈진 감정 소모
두려움 미래 불안

로뎀나무의 영적 메시지

1. 위대한 사람도 무너질 수 있다

엘리야는 실패 직후가 아니라:

“최대 승리 직후”

무너졌습니다.

번아웃은 약함 때문만이 아니라:

  • 지속된 긴장
  • 과도한 책임
  • 영적 소모

에서도 옵니다.


2. 하나님은 탈진한 자를 정죄보다 회복시키신다

로뎀나무 사건의 핵심은:

“회복이 사명보다 먼저”

라는 점입니다.


3. 광야는 끝이 아니라 재정비의 장소

엘리야는 로뎀나무 이후:

  • 호렙산으로 가고
  •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 새 사명을 받습니다.

즉,
광야는 버려진 장소가 아니라:

“다시 방향을 듣는 장소”

가 됩니다.

성경 전체 흐름 속 로뎀나무의 위치

  • 생명나무 = 영원한 생명
  • 포도나무 = 열매 맺는 삶
  • 감람나무 = 지속적 기름부음
  • 로뎀나무 = 지친 영혼의 쉼

로뎀나무는 “사역 이전에 존재 자체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매우 인간적인 상징입니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 / 개인구원과 사회구원



소승불교(小乘佛敎)와 대승불교(大乘佛敎)는 불교의 두 큰 흐름으로, 수행 목표와 방식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1. 수행의 목표

  • 소승불교 (테라와다 불교)
    → 개인의 해탈(깨달음)을 목표로 함
    → “나 자신이 먼저 깨닫자”

  • 대승불교
    → 모든 중생의 구제를 목표로 함
    → “나뿐 아니라 모든 존재를 함께 깨닫게 하자”

 소승불교는 주로 동남아 지역에서 발전한 불교로 개인 구원을 강조한다.
반면에 대승불교는 한국과 일본에서 발전한 불교로 사회구원을 강조한다.

2. 이상적인 인간상

  • 소승불교 : 아라한
    → 스스로 번뇌를 끊고 열반에 도달한 사람

  • 대승불교 : 보살
    →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도 중생을 위해 남아 돕는 존재 

3. 수행 방법과 태도

  • 소승불교
    → 엄격한 계율과 개인 수행 중심
    → 출가자(스님) 중심

  • 대승불교
    → 자비와 이타행 강조
    → 재가자(일반 신자)도 수행 가능

4. 경전과 사상

  • 소승불교
    → 초기 불교 경전(팔리어 경전) 중심
    → 비교적 보수적

  • 대승불교
    → 새로운 경전(법화경, 반야경 등) 추가
    → 사상적으로 더 확장됨

5. 분포 지역

  • 소승불교 :
    →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 대승불교 :
    →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등

한 줄 정리

소승불교는 ‘개인의 깨달음’, 대승불교는 ‘모두의 구원’을 강조한다고 보면 이해하기 쉬워요.


아래처럼 표로 보면 훨씬 한눈에 비교됩니다.

구분       소승불교 (테라와다)           대승불교
목표           개인의 해탈                모든 중생의 구원
이상적 존재              아라한                          보살
수행 중심       개인 수행, 엄격한 계율               자비와 이타행 강조
공동체 성격       출가 승려 중심              출가 + 재가 신자 모두
경전     초기 불교 경전 (팔리어)           반야경, 법화경 등 추가 경전
특징    보수적, 원형 유지                    확장적, 사상 다양
대표 지역        동남아시아         동아시아 (한국, 중국, 일본 등)

핵심 한 줄 정리

  • 소승불교 : “나 먼저 깨닫는다”(개인구원)
  • 대승불교 : “모두 함께 깨닫는다”(사회구원)  예를 들면 불국사(나라를 구하는 사찰)

1.  왜 부처의 가르침이 두 갈래(소승· 대승)로 나뉘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가르침이 달라졌다기보다 “해석과 강조점이 달라진 것” 

● 역사적 이유

부처 사후 약 100~400년 사이에 불교는 인도 전역과 주변 지역으로 퍼지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 다양한 지역 문화와 융합
  • 승가(승려 공동체) 내부의 해석 차이
  • “깨달음의 목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논쟁

이 과정에서 두 흐름이 크게 형성됩니다.  

초기불교 / 상좌부(소승으로 불린 흐름)

  • 목표 : 개인의 해탈(열반)
  • 이상형 : 아라한(자기 깨달음을 완성한 수행자)
  • 특징 :
    • 계율과 명상 중심
    • 원형 불교 가르침 보존 강조
    • “자기 수행” 중심 구조

핵심 :  “나는 어떻게 깨달을 것인가” 

대승불교
  • 목표 : 모든 중생의 구제
  • 이상형 : 보살(자신의 깨달음을 미루고 타인을 돕는 존재)
  • 특징 :
    • 자비 강조
    • 다양한 경전 확장
    • 불성(모든 존재가 깨달을 가능성 있음)

핵심 :  “나는 어떻게 모든 존재를 구할 것인가”

핵심 차이 한 줄 정리

  • 소승 : “개인의 해탈”
  • 대승 : “보편적 구제”

 둘은 “진리의 분열”이라기보다
구원/깨달음을 개인 중심으로 볼 것인가, 공동체 중심으로 볼 것인가의 확장 차이입니다.

 예수의 사랑 개념 vs 대승불교 자비 개념 비교

이 둘은 표면적으로 매우 비슷해 보이지만, 내부 구조는 다릅니다. 

● 공통점

둘 다 핵심은 “자기 중심을 넘는 사랑”입니다.

  • 나만의 구원이 아니라 타인을 향함
  • 희생적 성격
  • 윤리적 실천 강조 

차이 1 : 사랑의 근원

● 기독교 (예수의 사랑)

  • 근원: 하나님의 사랑 (Agape)
  • 인간은 “받는 존재”
  • 사랑은 “위에서부터 주어짐”

 구조 :  하나님 → 인간 → 이웃

●  대승불교 자비

  • 근원 : 깨달음에서 자연히 발생하는 자비
  • 자비는 “깨달은 마음의 속성”
  • 신적 존재가 아니라 “각성 상태”에서 나옴

 구조 :  깨달음 → 자비 → 중생 구제 

● 차이 2 : 목적

예수의 사랑

  •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 죄 용서와 구원

 핵심 목적 :
“관계 회복(구원)”

대승불교 자비

  • 모든 존재가 고통(윤회)에서 벗어남
  • 집착과 무명을 끊는 것

 핵심 목적 :
“고통의 소멸(해탈)” 

● 차이 3 : 개인 vs 존재 구조

항목      예수의 사랑       대승불교 자비
중심      인격적 하나님       깨달음 상태
방향         관계 회복        고통 제거
동기            은혜         깨달음
결과            구원          해탈 

핵심 정리
1. 불교 분화의 핵심

 “개인의 해탈” vs “모든 존재의 구제”

2. 예수 사랑 vs 대승 자비

 둘 다 타자를 향하지만

  • 기독교 : 인격적 사랑(관계)
  • 불교 : 존재론적 자비(상태)



예수의 탄생 년도 기원전 4년 / 예수의 공생애와 기적 /



예수 탄생 년도가 기원전 4년인 이유

예수님의 탄생 연도가 흔히 기원전(B.C.) 4년경으로 추정되는 이유는, 
성경 기록과 역사 자료를 함께 비교할 때 가장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핵심 이유는 바로 헤롯 대왕 의 사망 연도입니다.

1. 예수님은 헤롯 왕 때 태어나셨다

마태복음 에 따르면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즉 예수님의 탄생은 헤롯이 살아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역사학자 요세푸스 의 기록에 따르면, 헤롯 대왕은 대체로 기원전 4년에 죽은 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최소한 그 이전에 태어나셔야 합니다.

2. 헤롯의 “두 살 이하 아이 학살” 사건

마태복음 2장에서 헤롯은 동방박사들에게서 별이 나타난 시기를 듣고

  • 베들레헴의 “두 살 이하 사내아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이 때문에 학자들은 

  • 별의 출현
  • 박사들의 이동
  • 예수님의 출생 시점

사이에 어느 정도 시간이 있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을 보통

  • 기원전 6년
  • 기원전 5년
  • 기원전 4년사이로 추정합니다.

그중 기원전 4~5년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3. 왜 “기원전”에 태어나셨는가?

아이러니하게도 “기원전/기원후” 기준 자체가 예수님의 탄생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는데, 계산에 오차가 있었습니다.

6세기 수도사인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 가 연대를 계산하면서

  • 헤롯의 사망 연도
  • 로마 황제 재위 기간 등을 정확히 맞추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실제 예수님의 탄생은 현재 달력 기준보다 몇 년 앞선 것으로 이해됩니다.

즉 

  • “기원후 1년” = 예수 탄생 직후가 아니라
  • 실제로는 이미 예수님이 몇 살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4. 누가복음의 기록과의 관계

누가복음 은 예수님 탄생 당시 호적 등록과 가이사 아구스도 시대를 언급합니다.

또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삼십 세쯤” 이었다고 기록합니다.

이를 디베료 가이사 의 통치 연도와 연결하면 역시 대략 기원전 4~6년 정도가 계산됩니다.

정리

예수님의 탄생을 기원전 4년경으로 보는 이유는

  1. 예수님은 헤롯 왕 시대에 태어나셨고
  2. 헤롯은 기원전 4년에 죽었으며
  3. 동방박사 사건 등을 고려하면
  4. 예수님은 그 이전 몇 년 사이에 태어나신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성경학자들은  

예수 탄생 시기 ≈ 기원전 6~4년 정도로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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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탄생 년도가 기원전 4년인 이유

예수님의 탄생 연도가 흔히 기원전 4년(B.C. 4) 정도로 추정되는 이유는, 성경 기록과 역사 자료를 함께 비교할 때 핵심 기준이 되는 인물인 헤롯 대왕의 사망 시점 때문입니다.

1. 성경 기록 : 예수는 헤롯 왕 때 태어남

마태복음 2장에는 예수님이 “헤롯 왕 때” 태어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찾아왔을 때 헤롯은

  • 베들레헴의 남자아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했고
  • 두 살 이하 아이들을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즉, 예수님의 탄생은 헤롯이 살아 있을 때였습니다. 

2. 역사 기록 : 헤롯은 기원전 4년에 죽음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 헤롯은 월식 이후 죽었고
  • 유월절 이전에 사망했습니다.

천문 계산과 역사 비교를 통해 많은 학자들은 이 월식을 기원전 4년 3월 13일의 월식으로 봅니다.

따라서

  • 헤롯은 기원전 4년 봄에 죽었고
  • 예수님은 그 이전에 태어나셔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탄생 연도는 보통

  • 기원전 6년 ~ 4년 사이로 추정됩니다.

3. 그런데 왜 “서기 1년”이 예수 탄생 기준인가?

현재 사용하는 연도 체계(B.C./A.D.)는 6세기 수도사인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계산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준으로 연도를 정하려 했지만

  • 헤롯의 실제 사망 연도
  • 로마 황제 통치 연도 계산
  • 당시 달력 차이 등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해 몇 년 오차가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 “서기 1년”이 실제 예수 탄생 직후가 아니라
  • 실제보다 약 4~6년 늦게 설정된 것입니다. 

4. 누가복음과의 관계

누가복음에는 예수님 탄생 당시

  • 구레뇨의 호적 조사가 있었다고 기록됩니다.

하지만 구레뇨의 공식 총독 시기는 서기 6년경이라,
학자들은

  • 이전의 행정 활동 가능성
  • 번역 문제
  • 다른 인구 조사 여부 등 여러 해석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헤롯 사망 연대를 더 강한 기준으로 사용합니다.

정리

예수님의 탄생을 기원전 4년경으로 보는 가장 큰 이유는:

  1. 예수는 헤롯 왕 때 태어남
  2. 헤롯은 기원전 4년에 죽음
  3. 따라서 예수는 최소 그 이전에 태어나야 함
  4. 현재 연도 체계 계산에는 몇 년 오차가 있음

그래서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예수님의 실제 탄생 시점을 대략 기원전 6~4년 사이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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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공생애

예수님의 공생애(公生涯)는 예수가 세상에 공개적으로 나타나 복음을 전하고 사역하신 약 3년 정도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보통 30세 전후에 시작되어 십자가 죽음과 부활까지 이어집니다. 

1. 공생애의 시작 – 세례와 시험

  • 세례 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며 사역 시작
  • 이후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시험을 받음

 이 과정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사명 선언”으로 이해됩니다.

 2. 갈릴리 중심 사역 – 가르침과 기적

주요 활동 지역 : 갈릴리

핵심 내용

  • 하나님 나라(천국)의 도래 선포
  • 사랑, 용서, 겸손 강조 (대표: “산상수훈”)
  • 수많은 기적 :
    • 병자 치유
    • 귀신 축출
    • 오병이어 (5병 2어)
  • 제자 12명 선택 및 훈련

 이 시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따르며 명성이 크게 퍼짐.

 3. 예루살렘 사역 – 갈등과 대립

주요 특징 :

  • 종교 지도자들과 갈등 (바리새인, 서기관 등)
  • 성전 정화 사건 (상인들을 내쫓음)
  • 점점 십자가 죽음을 향해 긴장 고조

 4. 고난과 십자가, 그리고 부활

  • 최후의 만찬
  • 체포 → 재판 → 십자가 처형
  • 3일 후 부활

 기독교 신앙의 핵심 사건

 공생애의 핵심 메시지

  • 하나님 나라의 도래
  • 사랑과 용서 (특히 원수 사랑)
  • 회개와 믿음
  • 구원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연대기 요약

예수님의 공생애는 대략 3년 반 정도로 보며, 복음서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흐름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공생애의 시작

①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심

  •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심
  •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함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림

 마태복음 3장

② 광야 시험

  • 40일 금식
  • 사탄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으심
    1. 돌로 떡 만들기
    2.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기
    3. 세상 권세와 영광

→ 말씀으로 모두 이기심

 마태복음 4장

2. 갈릴리 초기 사역

③ 제자들을 부르심

  •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등
  •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마태복음 4장

④ 가나 혼인잔치

  •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심
  • 첫 번째 기적

 요한복음 2장

⑤ 산상수훈

예수님의 대표적 가르침

핵심 내용 :

  • 팔복
  • 주기도문
  • 원수를 사랑하라
  • 천국 백성의 삶

 마태복음 5–7장

3. 갈릴리 사역의 확장

⑥ 수많은 치유와 기적

  • 중풍병자 치유
  • 나병환자 치유
  • 귀신 축출
  • 풍랑 잠잠케 하심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음을 보여주심

⑦ 오병이어 사건

  •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
  • 약 5천 명을 먹이심

의미  :

  • 예수님은 생명의 떡
  • 광야의 만나보다 크신 분

 마태복음 14장

⑧ 물 위를 걸으심

  • 폭풍 가운데 제자들에게 오심
  • 베드로가 잠시 물 위를 걷다가 의심함

 마태복음 14장

4. 후반기 사역

⑨ 변화산 사건

  • 모습이 영광스럽게 변형됨
  •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남

의미 :

  • 율법과 선지자의 완성자이심

 마태복음 17장

⑩ 나사로를 살리심

  • 죽은 지 4일 된 나사로를 살리심

→ 부활과 생명이심을 나타냄

 요한복음 11장

5. 예루살렘 마지막 주간

⑪ 예루살렘 입성

  • 나귀 타고 입성
  • 사람들이 “호산나” 외침

 마태복음 21장

⑫ 성전 정화

  • 장사꾼들을 내쫓으심
  • “내 집은 기도하는 집”

⑬ 최후의 만찬

  • 제자들과 유월절 식사
  • 성찬 제정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누가복음 22장

6. 십자가와 부활

⑭ 겟세마네 기도

  •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⑮ 십자가 처형

  •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달리심
  • 인류의 죄를 대신 담당

 요한복음 19장

⑯ 부활

  • 사흘 만에 부활
  • 죽음을 이기심

 마태복음 28장

7. 승천과 약속

⑰ 승천

  • 제자들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심

 사도행전 1장

⑱ 성령 강림 약속

  • 오순절에 성령이 임함
  • 교회 시대 시작

공생애 전체의 핵심 메시지

예수님의 공생애는 단순한 기적의 기록이 아니라:

  1. 하나님 나라의 선포
  2. 죄인 구원
  3.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새 언약
  4. 하나님의 사랑 계시를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특히 핵심 선언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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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이적 사례

예수님의 이적(기적)은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권능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들입니다.
보통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습니다.

1. 자연을 다스리는 이적

물을 포도주로 변화

  •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심
  • 예수님의 첫 번째 표적

📖 요한복음 2장

풍랑을 잠잠케 함

  • 갈릴리 바다의 폭풍을 꾸짖어 잠잠하게 하심
  • 제자들이 “바람과 바다도 순종한다”고 놀람

📖 마태복음 8장

오병이어

  •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수천 명을 먹이심

📖 마태복음 14장

물 위를 걸으심

  • 제자들이 탄 배로 바다 위를 걸어오심

📖 마태복음 14장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하심

  •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자 말라버림
  • 영적 열매 없는 이스라엘에 대한 상징적 경고로 해석됨

📖 마태복음 21장

2. 병을 고치는 이적

나병 환자 치유

  • 부정하게 여겨지던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심

📖 마가복음 1장

중풍병자 치유

  • 지붕을 뜯고 내려온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과 치유를 선포

📖 마가복음 2장

혈루증 여인 치유

  • 12년 동안 혈루증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 치유됨

📖 마가복음 5장

맹인 치유

  •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심
  • 대표적으로 바디매오 치유 사건

📖 마가복음 10장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 치유

  • “에바다(열리라)” 말씀으로 고치심

📖 마가복음 7장

3. 귀신을 쫓아내는 이적

거라사 광인 치유

  • 군대 귀신(레기온)을 쫓아내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하심

📖 마가복음 5장

귀신 들린 아이 치유

  • 제자들이 실패했던 아이를 예수님이 고치심
  • 믿음과 기도의 중요성을 가르치심

📖 마가복음 9장

4. 죽은 자를 살리는 이적

야이로의 딸 소생

  • “달리다굼” 말씀으로 소녀를 살리심

📖 마가복음 5장

나인성 과부의 아들 소생

  • 장례 행렬을 멈추고 청년을 살리심

📖 누가복음 7장

나사로 부활

  • 죽은 지 4일 된 나사로를 살리심
  • 예수님의 가장 강력한 표적 중 하나

📖 요한복음 11장

이적의 공통된 의미

예수님의 이적은 단순한 “신기한 능력”이 아니라:

  • 하나님 나라의 도래
  • 긍휼과 사랑
  • 죄와 죽음에 대한 권세
  • 메시아 되심의 증거
  • 믿음을 일으키는 표적을 나타냅니다.

특히 요한복음에서는 기적을 “이적”보다 “표적(sign)”이라고 부르며,
예수님의 정체를 드러내는 사건으로 강조합니다.

대표적인 7가지 표적 (요한복음 중심)

  1. 물을 포도주로 변화
  2. 왕의 신하의 아들 치유
  3. 38년 된 병자 치유
  4. 오병이어
  5. 물 위를 걸으심
  6. 날 때부터 맹인 된 자 치유
  7. 나사로를 살리심

예수님의 37가지 기적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기적이 많이 기록되어 있으며, 전통적으로 약 37가지를 대표적인 기적으로 정리합니다.
기적은 단순한 “초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예수님의 정체성과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표적(sign)”의 의미를 가집니다.

1. 예수님의 37가지 기적 전체 목록 (시간순 배열)

순서 기적 본문
1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 요 2:1-11
2 왕의 신하의 아들 치유 요 4:46-54
3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 치유 막 1:21-28
4 베드로 장모의 열병 치유 마 8:14-15
5 많은 병자와 귀신 들린 자 치유 마 8:16-17
6 첫 번째 기적적 고기잡이 눅 5:1-11
7 나병환자 치유 마 8:1-4
8 중풍병자 치유 막 2:1-12
9 손 마른 사람 치유 막 3:1-6
10 백부장의 종 치유 마 8:5-13
11 나인성 과부의 아들 살림 눅 7:11-17
12 폭풍을 잠잠케 하심 막 4:35-41
13 거라사 광인 치유 막 5:1-20
14 혈루증 여인 치유 막 5:25-34
15 야이로의 딸 살림 막 5:35-43
16 두 맹인 치유 마 9:27-31
17 말 못하는 귀신 들린 자 치유 마 9:32-34
18 38년 된 병자 치유 요 5:1-9
19 오병이어 마 14:13-21
20 물 위를 걸으심 마 14:22-33
21 게네사렛 병자 치유 마 14:34-36
22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 치유 막 7:24-30
23 귀먹고 말 더듬는 자 치유 막 7:31-37
24 칠병이어 막 8:1-10
25 벳새다 맹인 치유 막 8:22-26
26 간질 들린 아이 치유 막 9:14-29
27 성전세를 위한 물고기 입의 동전 마 17:24-27
28 날 때부터 맹인 된 자 치유 요 9장
29 꼬부라진 여인 치유 눅 13:10-17
30 수종병 환자 치유 눅 14:1-6
31 열 명의 나병환자 치유 눅 17:11-19
32 나사로를 살리심 요 11장
33 여리고 맹인 바디매오 치유 막 10:46-52
34 무화과나무 저주 마 21:18-22
35 말고의 귀를 고치심 눅 22:50-51
36 두 번째 기적적 고기잡이 요 21:1-14
37 부활 후 승천 눅 24장, 행 1장

2. 기적들의 영적 의미

예수님의 기적은 단순한 문제 해결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보여줍니다.

(1) 치유 기적

예:

  • 나병환자
  • 맹인
  • 중풍병자

의미:

  • 죄와 타락으로 망가진 인간 회복
  • 메시아의 긍휼
  • 영적 눈뜸

예수님은 육체만 아니라 영혼도 회복시키셨습니다.

(2) 자연 기적

예:

  • 폭풍 잠잠
  • 물 위를 걸으심
  • 오병이어

의미:

  • 창조주 권세
  • 자연도 복종하는 하나님
  • 광야의 만나를 주신 하나님과 동일하심

특히 오병이어는:

  • 광야의 만나
  • 생명의 떡 되신 그리스도를 연결합니다.

(3) 귀신 축출

예:

  • 거라사 광인
  • 더러운 귀신 들린 자

의미:

  • 사탄 왕국에 대한 승리
  • 하나님 나라의 침투

예수님은 단순한 선지자가 아니라 영적 권세의 왕으로 나타나셨습니다.

(4) 죽은 자를 살리심

예:

  • 야이로 딸
  • 나인성 과부 아들
  • 나사로

의미:

  • 생명의 주권자
  • 장차 있을 부활의 예표

특히 나사로 사건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요 11:25) 라는 선언의 실제 증거입니다.

3. 복음서별 기적 비교

복음서 특징
마태복음    메시아 왕권 강조
마가복음    능력과 즉각성 강조
누가복음    긍휼과 치유 강조
요한복음    “표적(sign)” 중심 

요한복음의 7대 표적

요한복음은 특별히 기적을 “표적”이라고 부릅니다.

표적 의미
물→포도주 새 언약
왕의 신하 아들 치유 말씀의 권세
38년 병자 치유 율법을 넘는 은혜
오병이어 생명의 떡
물 위를 걸으심 창조주 권세
맹인 치유 영적 빛
나사로 부활 부활과 생명

4. 구약의 기적과 예수님의 기적 비교

구약 예수님의 기적
      모세의 만나        오병이어
      홍해 가름      물  위를 걸으심
  엘리야 과부 아들 살림      나인성 과부 아들
    엘리사 나병 치유       나병환자 치유
     엘리사가 떡 증식         오병이어

핵심 차이

구약 선지자

  • 하나님께 기도하여 기적 발생

예수님

  • 자신의 권세로 명령
  •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즉, 예수님의 기적은 하나님이 직접 오셨다는 증거 입니다.

5. 현대 교회에서 말하는 “기적”과의 차이

예수님의 기적 특징

특징 설명
공개성     많은 사람 앞에서 일어남
즉각성           즉시 회복
완전성      부분적 치유 아님
목적성       하나님 나라 증거
메시아성      예수님의 정체 증명

현대 교회의 “기적” 주장과 차이

현대에는:

  • 병 고침
  • 예언
  • 신유집회
  • 초자연 체험

등을 기적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적 기준에서는 다음을 분별해야 합니다.

성경이 강조하는 기준

  • 하나님께 영광이 가는가
  • 복음 진리가 중심인가
  •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가
  • 삶의 열매가 있는가
  • 성경과 일치하는가

중요한 차이

예수님의 기적은:

“사람을 놀라게 하기 위한 쇼”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표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적 자체보다:

  • 회개
  • 믿음
  • 하나님 나라를 더 강조하셨습니다.

6. 결론

예수님의 기적은 크게 5가지를 보여줍니다.

  1. 예수님은 창조주이시다
  2. 예수님은 죄와 사탄을 이기신다
  3. 예수님은 생명의 주이시다
  4.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
  5. 기적의 목적은 믿음과 구원이다

요한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요 20:31)

즉 기적의 핵심은 “기적 자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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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과 기적의 차이

성경에서 “기적”과 “표적”은 비슷하게 쓰이지만, 강조점이 다릅니다.
특히 신약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할 때 이 차이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1. 기적(奇蹟) = 놀라운 능력의 사건

기적은 인간의 자연 법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초자연적 사건 자체를 말합니다.

대표적인 헬라어:

  • δύναμις (뒤나미스) = 능력, 권능
  • 영어 성경에서는 often “miracle”, “mighty works”

즉,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사건”에 초점이 있습니다.

예시

  • 물을 포도주로 변화
  • 폭풍을 잠잠케 함
  • 죽은 자를 살림
  • 병자를 고침

이 사건들은 모두 “초자연적 능력”이 드러난 것입니다.

2. 표적(表跡) = 무엇인가를 가리키는 표시

표적은 단순한 신비 현상이 아니라, 그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초점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헬라어 :

  • σημεῖον (세메이온) = sign, signpost

즉, “하나님이 누구신지 보여주는 표시”라는 뜻입니다.

표적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이 가리키는 영적 진리로 향하게 합니다. 

3. 쉽게 말하면

구분 기적 표적
초점           능력                   의미
목적       놀라게 함              깨닫게 함
질문 “어떻게 이런 일이?”       “왜 이것을 보여주셨나?”
강조   초자연적 현상              영적 메시지
헬라어        뒤나미스               세메이온

4. 예수님의 사역에서의 차이

예수님은 단순히 “기적을 행하는 분”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특히 Gospel of John에서는 기적보다 “표적”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합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행위가 그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표지판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예:

  1. 물 → 포도주
    → 새 언약과 기쁨의 시대를 의미
  2. 오병이어
    →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심을 보여줌
  3. 맹인 치유
    → 예수님이 세상의 빛이심을 보여줌
  4. 나사로 부활
    → 예수님이 부활과 생명이심을 보여줌

즉,  사건 자체보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드러내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5. 성경에서 중요한 점

성경은 단순히 “신기한 현상”을 믿음의 중심으로 두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 거짓 표적도 가능하며
  • 사람은 기적만 보고도 회개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 세대를 책망하셨습니다.

즉,

참된 표적은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게 해야 합니다. 

6. 현대 교회의 “기적”과 성경의 “표적”

오늘날 많은 경우:

  • “병이 나았다”
  • “문제가 해결됐다”
  • “신비한 체험을 했다”

이런 현상 자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 표적은:

  •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고
  •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 믿음과 회개로 이끄는 것이어야 합니다. 

핵심 정리

기적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초자연적 사건”

표적

“그 사건을 통해 하나님과 그 뜻을 가리키는 영적 표시”

따라서 모든 표적은 기적일 수 있지만, 모든 기적이 참된 표적은 아닐 수 있습니다.

기적과 표적의 차이
빠른 답변

“기적”과 “표적”은 비슷해 보이지만, 특히 성경에서 쓰일 때 의미가 조금 다릅니다.

간단히 말하면:

  • 기적(奇蹟, miracle) → 놀라운 사건 자체에 초점
  • 표적(表蹟, sign) → 그 사건이 가리키는 의미(메시지)에 초점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면

1. 기적 (miracle)

자연 법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초자연적인 사건을 말합니다.
사람 입장에서는 “와, 대단하다!”라는 놀라움이 중심이에요.

예:

  • 병자가 낫는 것
  •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것

 핵심: 능력과 놀라움

2. 표적 (sign)

겉으로는 기적과 같은 사건이지만, 그 사건이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한 ‘표시’**라는 의미가 강조됩니다.

예:

  • 예수님의 기적 → 단순한 능력 과시가 아니라
    → “나는 누구인가(메시아)”를 드러내는 신호

 핵심: 의미와 메시지

3. 차이를 한 줄로 정리하면

  • 기적: “놀라운 사건 그 자체”
  • 표적: “그 사건이 가리키는 하나님의 뜻과 메시지”

4. 비유로 이해하기

  • 기적 = 불꽃놀이  (보는 순간 놀람)
  • 표적 = 표지판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줌)

 “왜 요한복음은 ‘기적’ 대신 ‘표적’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는가?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보다 “기적” 자체보다 그 기적이 무엇을 가리키는가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표적”(σημεῖον, 세메이온)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합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 기적(miracle) → 놀라운 사건 자체
  • 표적(sign) → 그 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영적 의미와 예수님의 정체

즉 요한복음에서 기적은 단순한 초자연 현상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보여주는 “표지판”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1.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심
    → 단순한 능력 과시가 아니라
    예수님이 새 언약의 기쁨과 풍성함을 가져오시는 분이라는 표적입니다.(요 2:11)

  2. 오병이어
    → 단순한 배부름이 아니라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심을 드러내는 표적입니다.(요 6장)

  3. 나사로를 살리심
    → 단순한 부활 사건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나타내는 표적입니다.(요 11장)

그래서 사도 요한은 기적을 기록할 때마다 거의 항상:

  • 사람들이 무엇을 깨달았는가
  • 예수님의 영광이 어떻게 드러났는가
  • 믿음이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함께 강조합니다.

요한복음의 목적 자체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요 20:31)

즉 요한복음에서 표적은:

  • 사람을 놀라게 하기 위한 이벤트가 아니라,
  •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영적 표지판입니다.

또 흥미로운 점은,
공관복음(마태·마가·누가)은 “능력”(dynamis)이나 “기적” 자체를 자주 강조하지만,
요한복음은 의도적으로 “7개의 대표적 표적” 구조를 통해
예수님의 신성을 단계적으로 드러냅니다.

대표적인 7표적은 보통 다음처럼 정리됩니다.

  1. 물을 포도주로 변화
  2. 왕의 신하의 아들 치유
  3. 베데스다 병자 치유
  4. 오병이어
  5. 물 위를 걸으심
  6. 날 때부터 맹인 된 자 치유
  7. 나사로 부활

이 표적들은 점점 더 큰 계시로 발전하면서
마지막에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이어집니다.

결국 요한복음에서 “표적”은:

  • 눈에 보이는 사건이면서,
  • 동시에 보이지 않는 진리를 가리키는 창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