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보좌는 아브라함 종교 즉 주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 하나님이 다스리는 중심이다.
다양한 성경에서는 왕좌가 유대교에서 아라보트(עֲרָבוֹת' ărāḇōṯ)라고 불리는 일곱 번째 하늘 너머에 있다고 말한다.[1]
유대교
미가야(열왕기상 22:19), 이사야(이사야 6장), 에스겔(에스겔 1장), 다니엘(다니엘 7:9)은 모두 하나님의 보좌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사디아 가온(Saʿadiah Gaon)과 마이모네데스와 같은 일부 철학자들은 그러한 언급을 우화로서의 "왕좌"로 해석했다.[2]
기독교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보좌는 하나님의 보좌인 천국, 다윗의 보좌, 영광의 보좌, 은혜의 보좌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언급된다.
신약성경은 천국
자체를 "하나님의 보좌"로 유대인들이 동일시하는 것을 계속하지만, 또한 하나님의 보좌를 "하늘에 있는" 것으로 위치시키고 그리스도의 시간을 위해 하나님의 우편에 이차적인 자리를 갖는다고 말한다.[3]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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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신학을 가르치는 김영욱 교수의 논문 / 신학지남 2022년 봄호에 실린 내용
'하늘보좌에 앉으신 이'라는 주제는 얼핏보면 매우 단조롭고 추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여 흥미가 반감될 수 있습니다만,현실적으로 매우 가치가 있고, 반드시 누군가 써야하는 주제입니다.
현대신학의 흐름과 또 한국교회에 만연하고 있는 '신인동형론'의 잘못된 신학을 바로잡아야 하며, 그로 인하여 바른 예배가 드려질 수 있기에 이런 논문은 현재 꼭 나와야만 하는 절박한 필요성이 있습니다.
- 목 차 -
1. 서론
2. 하늘보좌
3. 하늘보좌에 앉으신 이
4. 요한계시록의 하늘보좌
5. 결론
1. 꼼꼼함
구약을 전공하신 분으로서 항상 구약을 시발점으로 자신의 견해를 전개해 나갑니다.
하늘보좌에 대하여 구약성경(이사야, 에스겔, 다니엘)을 기본으로 삼고 마침네 요한계시록의 종착역에 도착합니다.
2. 관심 - 하늘보좌에 계신 앉아 계신 하나님
보좌라는 단어는 구약에 136회 정도 나오는데 저자는 하늘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성부)에게 집중합니다.
사람이 앉은 보좌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보면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의 모습(모양)이 어떠한지 간절히 찾고 있습니다.
"이 논문은 하늘보좌에 앉아 계신 분에 관하여 집중하려고 한다.
과연 성경은 하늘보좌와 그 주위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그리고 하늘보좌에 앉아 계시는 분에 대해서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모습 또는 하나님의 형상을 어떻게 말하는지 하는 것이다."(p.11)
이런 관점의 글은 현재 한국교회에 너무도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성도들의 예배를 드리면서 예배의 대상이 되는 성부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너무 빈약하기 때문입니다.
참다운 지식이 없기에 막연한 대상을 향해 막연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3. 보좌를 상징으로 해석하는 자들은 틀렸다.
저자 김영욱 교수는 하늘보좌가 실질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다수의 신학자들이 보좌를 상징으로 해석해서 하나님의 권위 정도로만 이해하며,
실질적으로 보좌는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들이 난무한 곳에 폭탄을 투하한 것입니다.
"이렇게 구약은 하늘에 보좌가 있고, 앉아계시는 분이 있다고 증언한다.
...하나님은 이 보좌에 앉아서 심판하시며(시 9:4, 7), 모든 것을 통치하신다."(p.12)
4. 하나님의 형상은 사람의 형상과 동일한가? 비슷한가?
저자는 신인동형론을 주장하는 자들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려는지 약간의 애매함을 유지합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사람의 형상은 똑같은 것이 아니라 비슷하다고 주장합니다.
"전치사 케(~같이)와 모양(형상)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인간의 형상은 하나님과 유사하게,
닮은 모습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모습이 인간과 비슷하지만 똑같지 않다는 사실은 계속 이어지는 설명에서 알 수 있다."(p. 22)
저자는 왜 이런 애매모호한 관점을 취하게 되었을까요?
현재 인간에는 전혀 없는 요소를 하나님(성부)은 가지고 있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잘 묘사하는 두 단어 - 빛과 불 -로 인하여 인간과는 전적으로 동일한 형상을 주장하기가 무리라고 본 듯합니다.
"그리고 에스겔이 강조하는 것은 '불같고'이다.
불이 하나님의 형상을 설명하는 데 아주 중요한 단어로 등장한다.
이것은 모세의 경험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시내산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을 '불'이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모습에서 광채(빛)가 발한다고 말한다.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겔1:28)."(p. 22-23)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빛에 거하시는 분이다. 이래서 에스겔과 요한은 보석이나 무지개로 설명한다.
광채가 나기 때문이다."(p. 32)
아쉽게도 저자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그대로 닮았다라는 것까지는 도달하지 못하고,
다만 유사함과 비슷함을 닮았다는 말의 정의를 내리는데 사용합니다.
다소 애매한 표현으로 논문을 마무리 합니다.
5. 성부 하나님은 어떤 형상인가?
한국교회 최초로 성경전체 주석을 쓰셨던 박윤선 박사는 성부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 소극적으로 일관합니다.
"성부 하나님은 물리적인 형상이 없다"라는 애매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곧바로 "하나님의 본성"을 연구하는 것으로 전환합니다.
모두 상징으로 보기 때문에 빚어진 참사입니다.
현재 반틸의 제자로 알려진 존 프레림 역시 동일한 견해입니다.
"하나님이 손, 눈, 그리고 발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말인가?
그분은 확실히 우리가 손, 눈, 발로 하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더 많이, 더 좋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문자적 언어와 비유적인 언어 사이에 어떤 구분을 지어야 한다.
하나님은 육체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비록 인간의 손이 하나님의 세공 수단을 적절하게 상징한다고 해도,
그분은 실제로 손을 가지지 않으셨다.
우리는 성경적 해석의 건전한 방법, 특별히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함으로 문자적인 것들과 비유적인 것들을 구분한다"
(신론, 기독교문서 선교회, 존 프레임 저, 김재성 역, p.532)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무형체적(incorporeal - 실체가 없는, 무형의)이란 점에 일반적으로 동의하고 있기에,
하나님이 문자적으로 남성이냐 여성이냐 하는 것에 대해 어느 누구도 주장하지 않는다"(같은 책, p.548)
하지만 김영욱 교수는 상징이 아닌 성부 하나님의 형상을 묘사한 문자대로 받아들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사람과 닮은 형상을 지녔고, 손과 발이 있으며, 얼굴도 있는데 자세한 묘사는 없는 것이 신구약 성경의 특징인 것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옷을 입고 머리털이 있으시며 허리가 있다.
사람의 모양을 하고 계신다.
하지만 에스겔과 요한의 표현 가운데 주목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의 모습을 '~같다'고 설명한 것이다.
인간과 유사하지만 정확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가장 특이한 것은 하나님의 얼굴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사실이다."(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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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전체를 종합하면,
“하늘 보좌에 성부· 성자· 성령이 세 분으로 나란히 앉아 있다”라고 이해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특히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의 좌우에 앉아 계신다는 그림은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핵심은 삼위일체의 본질과 성경이 보여주는 구속사적 계시의 장면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1. 요한계시록에서 보좌에 앉으신 분
요한계시록 4장에서는 분명히 “보좌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계 4:2) 라고 합니다.
여기서 보좌에 앉으신 이는 성부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5장에서는 그 보좌 앞에 어린양이 등장합니다.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서 있는데…” (계 5:6)
따라서 계시록 4–5장의 장면을 단순화하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성부) → 보좌 앞 / 가운데에 서신 어린양(성자) → 일곱 영(성령의 충만한 사역을 상징) 이라는 구도로 볼 수 있습니다.
2. 그렇다고 성부와 성자가 서로 다른 두 하나님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여기가 매우 중요합니다.
성부와 성자는 본질상 한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요한복음 1:1에서도
“말씀은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계시록에서 성부와 성자가 구별되어 나타나는 것은 삼신론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위격은 구별되지만 본질은 하나라는 삼위일체의 신비가 계시의 장면 속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3. 그러면 성자는 어디에 계시는가?
성경에는 특별히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골로새서 3:1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
또한 “그의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 — 히브리서 10:12
따라서 성자가 성부의 오른편에 계신다는 표현은 성경적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성부 | 성자 | 성령
세 분이 물리적인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오른편”은 왕권· 통치권· 영광· 권세에 참여하심을 나타내는 성경적 표현입니다.
시편 110:1이 그 배경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신약은 이 말씀을 그리스도의 승천과 왕권에 연결합니다.
4. 그렇다면 성령은 어디에 계시는가?
여기서 “성령은 보좌의 왼쪽에 앉아 계신다”라고 말하면 성경적 근거가 없습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동일하게 참 하나님이시지만, 성경은 성령을 보좌에 앉아 있는 제3의 인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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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보좌 앞의 “일곱 영”으로 상징되기도 하고(계 1:4; 4:5)
-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으로 역사하시며
-
성도 안에 거하시고
-
교회 가운데 역사하시며
-
그리스도를 증언하십니다.
따라서 계시록의 상징을 가지고 “성부 중앙, 성자 오른쪽, 성령 왼쪽”이라는 도식을 만드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5. 가장 중요한 것은 “한 보좌”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읽으면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보좌는 하나입니다.
계시록 4장의 중심은 θρόνος (thronos) — 보좌 입니다.
그런데 5장에서는 그 보좌와 어린양이 함께 계시되면서 놀라운 장면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계시록 22:1에 가면 더욱 놀랍습니다.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생명수의 강이 흘러나와…”
여기서는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양의 보좌”가 분리된 두 보좌가 아니라 하나의 통치권 안에서 표현됩니다.
계시록 22:3은 더 놀랍습니다.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하나님의 보좌 = 어린양의 보좌 라는 계시가 마지막 장면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6. 따라서 이렇게 정리하면 가장 성경적입니다
| 질문 |
성경적 이해 |
| 보좌에 앉으신 이는 누구인가? |
특별히 성부 하나님으로 묘사됨 |
| 성자는 어디에 계시는가? |
하나님의 오른편, 그리고 계시록에서는 어린양으로 나타남 |
| 성령은 왼쪽에 앉아 계시는가? |
그렇게 묘사한 성경은 없음 |
| 세 분이 세 개의 자리에 앉아 계시는가? |
아님 |
| 삼위 하나님은 몇 하나님인가? |
한 하나님 |
| 위격은 몇 분인가? |
성부· 성자· 성령 세 위격 |
| 보좌는 몇 개인가? |
계시록의 궁극적 통치 중심은 하나의 보좌
|
한 문장으로 말하면
“성부· 성자· 성령이 세 자리의 의자에 앉아 계신다”가 아니라,
한 분 하나님께서 삼위로 존재하시며,
성경의 계시 장면에서는 성부가 보좌에 앉으신 이로, 성자는 어린양으로서 그 오른편에 계신 분으로,
성령은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으로 나타나신다.
그리고 이것이 선생님께서 지금 연구하시는 “보좌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다니엘 7장 → 에스겔 1장 → 요한계시록 4–5장 → 요한계시록 21–22장을 연결하면,
마지막에는 “누가 보좌에 앉아 계시는가?”에서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하나”라는 계시로 절정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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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
제1절 : 시편 110편에 나타난 우편보좌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제사장적 왕권”
제2절 : 다니엘 언약과 우편보좌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홀을 내어 보내시리니 주는 원수 중에서 다스리소서
“메르카바 전승”
“두 보좌의 사상”
“그 사람의 아들 같은”
“예수의 자기 칭호, 인자”
“메르카바 전승과 이위일체론”
제3절 : 신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좌소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성도의 고난 가운데 함께 하심”
“성도를 위해 기도하심”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서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시는 예수”
“믿음의 주, 성도의 믿음의 모범”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
제9장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우편, 하나님의 우편보좌”는 예수의 좌소로 일관되게 그려진다.
※ 하나님의 우편은 어떤 물리적 위치와 방향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와 조력을 상징하며,
※ 하나님의 우편 보좌는 단순한 장소적 의미가 아니라
⓵ 그곳에 앉는 존재의 신성과
⓶ 만물에 대한 통치권과
⓷ 하나님의 구원 계시의 경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곳으로 상징한다.
※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 앉아있는 존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구약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때”가 오기까지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 앉아있다.
∙하나님의 때가 찼을 때, 예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이 땅에 와서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의 구원의 길을 이루고 승천한다.
∙승천하신 예수는 하나님의 통치 대권을 위임받고
다시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 앉아 세상과 만물을 다스리며 주관 한다.
∙재림하는 날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악을 심판하고
믿는 자는 예수와 더불어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한다.
제1절 시편 110편에 나타난 우편 보좌
< 시편 110:1 >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 사도행전 2:34-36 >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시편 110편에서 다윗은 자신이 목격한 하늘의 비밀을 노래하고 있고,
그 비밀은 종말에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세상을 심판하고 통치할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
∙시편 110편을 성경 전체에서 말하는 의미를 이해하려면 사도행전 2장을 보아야 하는데,
∙사도행전 2장의
⓵ 전반부(1-13절)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차제를 이야기하고 있고
⓶ 후반부(14-36절)은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를 이야기 하고 있다.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의 기조는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와 다윗과의 관계로서
--- 이 땅에서 살았던 사람인 다윗이 마치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보고 들은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구체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 이것의 논증으로 베드로는 시편 110편 1절을 인용한다.
∙그레고리 보이드는 시편110:1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베드로에 따르면, 예수가 행한 핵심적인 일은 시편 110:1을 성취한 것이다.”
예수는 패배하고 낮아진 그의 원수들을 딛고서 신적 권세를 지닌 자리에 오르셨다.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의 결론은
다윗이 “내주”라고 부른 존재가 바로 “너희가 십자가에서 못 박은 예수”이며
이 예수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시고 만물의 “주”와 “그리스도(메시아)”가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1. 시편 110:1에서 다윗이 “내 주”라고 부르는 존재는 누구인가?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이 하나님 외에 내 주라고 부르는 존재는 신의 존재일 것.
2. 시편 110:5에서 “주의 오른 쪽에 계신 주”의
첫 번째 주는 여호와
두 번째에 나오는 주는 누구인가?
--- 그는 첫 번째 주인 여호와의 오른쪽에 있으며, 하나님과 동등하게 주라 불리고 있다.
3. 1절과 5절에서 다윗이 목격한 주라 칭하는 신적 존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신약에서 분명하게 한다.
< 마 22:41-46 >
“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다윗이 어찌 그리스도(메시아)를 주라 칭하였는가?
⓵ 예수가 바리세인들에게 던진 질문
⓶ 시편 110:1은 유대 신학이 풀 수 없는 문제.(삼위일체론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어야 한다고 믿는 그들에게 있어서)
⓷ 예수는 이 대화에서 자신이 다윗이 불렀던 그 ”주“라는 주장을 하고 계신다.
⓸ 예수는 시편 110:1절에서 말하는 그 ”주“, 신적 존재인 그분이 바로 자신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 발판(발등상) >
고대 왕들이 자신의 위엄을 드러내려고 온갖 장식으로 치장된 높은 보좌에 앉을 때
발을 올려 놓던 것.
--- 단순한 발판 이상의 의미
--- 왕의 위엄과 권위를 한층 높이기 위한 장치
--- 발판의 겉면에 왕의 업적을 새겨 놓아 왕좌에 앉아 있는 왕의 존엄과 공적을 드러냄.
ex) 전쟁에서 승리해 누구의 항복을 받아냈거나 영토를 넓힌 이야기, 국난을 극복 한 이야기, 기념비적인 토목공사를 이룬 이야기 등등...
--- 이집트 국립 박물관이나 카르낙 신전에 있는 이집트 파라오의 보좌들의 발판과
중근동 지역의 앗수르나 바벨론에서 발견된 유물들에서도 이와 같은 발판들 이 발견
고대 사회 문헌에 정복자가 피정복자의 목을 발로 밟는 모습이 자주 나타남
--- 내가 승리 했고 이제 너와 너희 나라는 내 보좌의 발판이 되었다는 표현
--- 수 10:24 “그 왕들을 여호수아에게로 끌어내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을 부르고 자기와 함께 갔던 지휘관들에게 이르되 가까이 와서 이 왕들의 목을 발로 밟으라 하매 그들이 가까이 가서 그들의 목을 밟으매”
--- 원수를 발판으로 삼아서 정복을 선포하는 고대 풍습과 관련 있는 상징적 행위.
이런 고대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고려하면서 시편 110:1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 이 되게 하기까지”를 읽을 때, 이것은 단순한 발판이 아니라 이 발판의 주인공이 자 신의 업적을 한껏 과시하고 그 위엄을 드러내는 수단이 된다.
따라서 이 말씀은 “예수가 원수인 사탄을 향해 승리를 거두고, 예수의 승리의 전리품인 사탄을 예수의 보좌의 발판(발판에 새기는, 사탄의 머리를 발로 밟 는)으로 삼는 날이 올 때 까지”로 해석 할 수 있다.
내 오른 쪽에 앉아 있으라
내 오른 쪽은 예수 그리스도의 좌소를 가리킨다.
다윗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보내 심을 받을 때까지 예수님의 좌소는 하나님 우편 보좌였다.
하나님의 우편 보좌는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상징.
⇨ 예수는 “통치의 대권을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아 시행하는 분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시행하는 분”이지만 이 땅에 오기까지는(하나님의 때가 차기까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자신의 때를 기다리신다.
4. 베드로의 해석
⇨ 사도행전 3:20-21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미리 정해져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낼 것이다.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그의 거룩한 선지자를 통해 약속한 것은 예수를 통해 만물을 회복시키 겠다는 것이다. 그 시간이 오기까지 예수는 반드시 하늘에 머물 것이다.
⇨ 베드로는 시편 110편과 마찬가지로 초림 이전의 예수의 좌소는 하늘, 하나님 우편 보좌였다고 말하고 있다.
5. 시편 110:1의 전체 의미를 재구성해보면
⓵ 다윗이 앞으로 천년 이후에 이루어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될 하나님의 복음의 비밀을 미리 보는 신비한 경험의 기록으로.
⓶ 다윗은 환상 중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다.
⇨ 시편 110편 1절의 말씀을 신약의 언어로 설명하면
“장차 우리의 모든 악의 근원이 되는 사탄이 예수에 의해 결박당할 날 이 올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는 그 날이 바로 원수인 사탄 에게 결정적 승리를 거두는 날이고, 사탄을 예수의 보좌의 발판으로 삼는 날이다.”
제사장적 왕권
시편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시편 110편은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 앉아 왕으로써 통치하는 메시아를 가리키며
본문이 멜기세덱을 언급한 것은 “메시아의 제사장적 왕권 사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멜기세덱은 누구인가?
창세기 14장에서 아브라함이 자신의 전리품중 1/10을 바치면서 등장.
히브리서 7장 1절: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7장 7절: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높은 자로서 낮은 자인 아브라함을
축복한 분으로 아브라함보다 높은 자.
히브리서 6:19-20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해 지성소에 들어감으로 우리에게 죄 사함의 길이 열린다.
4. 결론적으로 시편 110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에 관한 엄청난 신비를 목격.
다윗은 자신보다 높은 왕권을 가진 한 신적 존재를 본다.
그분은 “종말에 왕들을 쳐서 깨뜨릴 분”으로 그때(종말)가 올 때까지 하나님의 우편 에 앉았다가 때가 되면 이 땅에 와서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등상이 되게 하리라”는 말씀을 이룰 것이다.
예수가 바로 그 언약의 성취자로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은 사탄을 예수 그리스도의 발등 상에 새겨 넣게 만든 사건이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죽임을 당한 예수를 다시 살리심으로 “네 원수들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리라”는 말씀을 성취하신다.
또한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은 멜기세덱의 계열의 제사장이 우리의 죄를 사하려고지성소로 들어간 사건이기도 하다.
제2절 다니엘 언약과 우편보좌
다니엘서는 전반부(1-6장)인 다니엘의 삶과 후반부(7-12장)인 다니엘이 본 환상의 묵시 부분으로 나눌 수 있고, 이 묵시 부분은 다니엘이 꾸는 꿈과 다니엘이 본 환상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 묵시 부분을 요약하면
앞으로 네 개의 짐승으로 나타나는 악의 시대를 거치게 될 것이다.
그 악의 시대가 끝나면 깨진 언약의 갱신이 일어나고 최종적으로 악이 패하며 하나님 나 라가 온전히 실현될 것이다..
메르카바 전승
메르카바는 “전차”를 의미
메르카바 전승이란? 구약과 묵시문학 중에서 .
하나님의 보좌 수레가 나타나고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⓷ 두 가지 특징을 가진 환상을 가리키는 신학용어
다니엘서 1장을 보면 전차가 나오고(1:15-21), 하나님이 사람의 모양으로 표현(1:26)
다니엘서 7장 역시 전차(7:9)가 나오고, 하나님이 사람의 모양(7:13)으로 표현됨
< 다니엘 7:9-10 >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불이 강처럼 흘러 그의 앞에서 나오며 그를 섬기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서 모셔 선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메르카바 전승(Merkabah Tradition)이란?
메르카바(Merkabah, מֶרְכָּבָה)는 히브리어로 “병거, 전차(chariot)”라는 뜻입니다.
특히 에스겔 1장의 ‘하나님의 보좌를 실은 하늘의 병거’ 환상을 중심으로 발전한 고대 유대교의 신비주의적 전승을 가리킵니다.
1. 단어의 의미 / מֶרְכָּבָה (merkāvāh)
-
발음 : 메르카바
-
어근 : רכב (r-k-b)
-
기본 의미 : 타다, 올라타다, 병거를 타다
-
명사 מֶרְכָּבָה : 병거, 전차
따라서 메르카바는 단순히 물리적인 전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에스겔의 환상에서는 하나님의 영광과 통치를 나타내는 하늘의 병거라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2. 성경적 출발점 : 에스겔 1장메르카바 전승의 가장 중요한 성경적 출발점은 에스겔 1장입니다.
에스겔은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환상을 봅니다.
“하늘들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그 환상에는 네 가지 중요한 요소가 나타납니다.
① 네 생물 — חַיּוֹת (ḥayyôt)
② 네 얼굴 — 사람· 사자· 소· 독수리
③ 바퀴 — אוֹפַנִּים (’ôpannîm)
④ 궁창 위의 보좌 — כִּסֵּא (kissē’)
그리고 그 위에 “사람의 형상 같은 것”이 있습니다(겔 1:26).
즉 구조적으로 보면 네 생물 → 바퀴 → 궁창 → 보좌 → 사람의 형상 → 하나님의 영광 이라는 하늘의 통치 장면입니다.
3. 메르카바의 핵심은 “병거”보다 “보좌”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신학적 포인트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에스겔의 병거 환상”이라고 부르지만,
에스겔 1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병거 자체가 아니라 그 병거 위의 보좌와 그 보좌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래서 메르카바 전승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면 좋습니다.
메르카바 = 하나님의 하늘 보좌와 그 보좌를 둘러싼 천상 세계에 대한 환상과 묵상에서 발전한 전승
이것이 후대 유대교에서 천상으로 올라가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는 신비주의적 전승으로 발전합니다.
4. 다니엘 7장과 연결됩니다
메르카바를 연구할 때 에스겔 1장만 보면 안 됩니다.
특히 다음과 연결됩니다.
에스겔 1장
→ 하나님의 보좌와 네 생물
다니엘 7장
→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의 보좌와 하늘 법정
이사야 6장
→ 높이 들린 보좌와 스랍의 “거룩하다”
요한계시록 4장
→ 하늘 보좌, 네 생물, 24장로
이렇게 보면 성경 안에서 “보좌 환상”이라는 하나의 계보가 나타납니다.
5. 특히 요한계시록 4장과 매우 중요하게 연결됩니다
최근 연구하신 요한계시록 4장과 연결하면 매우 흥미롭습니다.
| 에스겔 1장 |
요한계시록 4장 |
| 하늘이 열림 |
하늘에 열린 문 |
| 하나님의 보좌 |
하나님의 보좌 |
| 네 생물 |
네 생물 |
| 생물의 눈 |
생물의 눈 |
| 보좌 주위의 광채 |
보좌에서 번개·음성 |
| 하나님의 영광 |
하나님의 영광 |
| 생물의 경배 |
생물의 경배 |
| 하나님의 거룩하심 |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
특히 “네 생물”과 “거룩하다”는 연결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4장은 단순히 미래의 천국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에스겔의 메르카바적 보좌 환상을 새롭게 재구성한 묵시적 장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6. 그런데 “메르카바 전승 = 성경”은 아닙니다
여기서 반드시 구별해야 합니다.
성경의 보좌 환상
→ 에스겔 1장
→ 이사야 6장
→ 다니엘 7장
→ 요한계시록 4–5장 과 후대 유대교의 메르카바 신비주의는 동일한 것이 아닙니다.
후대의 메르카바 전승에서는 천상계의 여러 단계, 천사들, 하늘로 올라가는 신비적 경험,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는 묵상 등이 점차 발전합니다.
대표적으로 헤칼롯(Hekhalot, הֵיכָלוֹת) 문헌과 연결됩니다.
Heikhalot는 문자적으로 “궁전들/성전들”이라는 뜻이며,
신비가가 여러 천상의 궁전을 통과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이르는 내용이 중심이 됩니다.
7. 메르카바 전승의 신학적 핵심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보다 “누가 우주를 통치하시는가?”를 보여주는 전승입니다.
메르카바 환상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하나님의 통치권입니다.
따라서 목회적으로는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보좌는 하나님의 통치권이다.
병거는 하나님의 임재가 움직이는 통치이다.
네 생물은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통치 앞에서 경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관점에서 보면 최근 말씀하신
“다니엘서의 보좌는 제국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에스겔서의 보좌는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
요한계시록의 보좌는 교회를 세워 다스리시는 하나님” 이라는 구상도
상당히 의미 있는 성경신학적 발전 구조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다만 메르카바 전승 자체를 그 구조의 중심으로 놓기보다는,
에스겔 1장의 보좌 환상이 후대 메르카바 전승으로 발전했고,
요한계시록 4–5장은 다시 그것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재구성한다고 구분하는 것이 학문적으로 더 정확합니다.
핵심 흐름
에스겔 1장
↓
메르카바(מֶרְכָּבָה) 전승
↓
헤칼롯 신비주의
↓
천상 보좌·천상 예배에 대한 유대교적 묵상
↓
요한계시록 4–5장의 보좌 환상과 비교 연구
그리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신학적 차이는 요한계시록 5장입니다.
에스겔의 보좌 환상이 “하나님의 영광과 통치”에 집중한다면, 요한계시록 5장은 그 보좌의 중심에 “죽임을 당한 어린양”을 등장시킵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의 보좌 신학은 궁극적으로
“보좌 → 하나님 → 어린양 → 십자가 → 구속 → 온 우주의 예배”로 확장됩니다.
이것이 메르카바 전승과 요한계시록 4–5장을 연결할 때 가장 중요한 기독교적 차별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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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칼롯 신비주의(Heikhalot Mysticism)
헤칼롯 신비주의(히브리어 הֵיכָלוֹת, Hekhalot, “궁전들·성전의 전당들”)는 고대 유대교에서 발전한 하늘의 여러 궁전(heavenly palaces)을 통과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이르려는 신비주의적 전승입니다.
특히 앞서 살펴보신 메르카바 전승(Merkabah Mysticism)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1. 헤칼롯이란 무엇인가?
הֵיכָל (Hekhal) = 궁전, 전당, 성전
복수형이 הֵיכָלוֹת (Hekhalot)입니다.
따라서 문자적으로는 “하늘의 궁전들” 또는 “하늘의 전당들” 이라는 뜻입니다.
헤칼롯 문헌에서는 신비가가 환상 가운데 여러 하늘의 궁전들을 차례로 통과하여 마지막에 하나님의 보좌와 영광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 주제가 됩니다.
2. 메르카바와 헤칼롯의 관계
두 전승을 구별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 구분 |
메르카바 신비주의 |
헤칼롯 신비주의 |
| 핵심 |
하나님의 보좌/병거
|
하늘의 궁전들
|
| 히브리어 |
מֶרְכָּבָה |
הֵיכָלוֹת
|
| 성경적 중심 |
에스겔 1장 |
에스겔 1장과 보좌 환상 |
| 관심 |
하나님의 보좌를 봄 |
여러 하늘 궁전을 통과함 |
| 목표 |
하나님의 영광에 접근 |
궁전들을 지나 보좌 앞에 도달 |
| 중요한 인물 |
에스겔 |
랍비·신비가, 특히 Rabbi Ishmael 등 |
| 위험 |
거룩한 보좌에 접근하는 위험 |
각 궁전의 천사와 수호자를 통과하는 위험 |
즉, 메르카바가 “무엇을 보는가?”에 초점을 둔다면,
헤칼롯은 “어떻게 하늘의 궁전들을 통과하여 그곳에 이르는가?”에 더 관심을 둡니다.
3. 성경적 출발점은 에스겔 1장
헤칼롯 신비주의의 가장 중요한 성경적 배경 가운데 하나가 에스겔 1장입니다.
에스겔은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특히 에스겔 1:26–28의 핵심은
“보좌의 형상”
“그 위에 사람의 모양 같은 형상”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입니다.
따라서 유대교 신비주의에서는 에스겔 1장 → 메르카바 → 하늘의 궁전 → 하나님의 보좌라는 발전이 이루어집니다.
4. 왜 '궁전'이 중요한가?
헤칼롯 전승에서 하늘은 단순히 하나의 공간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신비가가 하나님의 임재에 가까이 갈수록 여러 단계의 궁전을 통과해야 한다고 묘사합니다.
일반적으로 일곱 궁전의 이미지가 중요합니다.
제1궁전
↓
제2궁전
↓
제3궁전
↓
제4궁전
↓
제5궁전
↓
제6궁전
↓
제7궁전
↓
하나님의 보좌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이 일곱 궁전 구조를 성경이 직접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의 보좌 환상에서 출발하여 후대 유대교 신비주의가 발전시킨 신비주의적 우주론입니다.
5. 천사들이 중요한 이유
헤칼롯 전승에서는 각 궁전에 천사적 존재와 수호자가 등장합니다.
따라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단순한 여행이 아닙니다.
거룩함의 문을 통과하는 과정입니다.
신비가는 자신이 그곳에 들어갈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야 하며, 천사들에게 적절한 인장·이름·찬양·비밀 지식 등을 제시하는 이미지가 나타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신학적 특징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보좌에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고 두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존재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6. '보좌'가 헤칼롯의 중심이다
성경에서 보좌는 단순한 의자가 아닙니다.
보좌 = מלכות(Malkhut) = 왕권·통치 입니다.
따라서 하늘 보좌를 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보는 것이다. 라는 신학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에서는 하나님의 보좌가 성전과 우주적 통치의 이미지와 연결되고,
다니엘 7장에서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보좌에 앉으셔서 제국들을 심판하십니다.
요한계시록 4장에서는 “하늘에 보좌를 베풀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 가 나타납니다.
따라서 에스겔 → 다니엘 → 요한계시록의 보좌 신학은 매우 중요한 성경적 연결고리가 됩니다.
7. 그러나 헤칼롯과 요한계시록을 동일시하면 안 됩니다
이 부분이 특히 중요합니다.
요한계시록에도 하늘 보좌와 천사, 찬양, 거룩함, 하늘의 존재들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 헤칼롯 문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적으로도 헤칼롯 문헌의 대부분은 신약성경 이후의 유대교 신비주의 전승입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구별하는 것이 학문적으로 안전합니다.
성경
에스겔 1장
↓
다니엘 7장
↓
요한계시록 1장
↓
요한계시록 4–5장
↓
요한계시록 21–22장
후대 유대교 신비주의
에스겔의 메르카바 환상
↓
메르카바 신비주의
↓
헤칼롯 문헌
↓
하늘 궁전과 보좌로 올라가는 신비주의적 전승
이렇게 구별하는 것이 좋습니다.
8. 헤칼롯 문헌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헌들이 있습니다.
-
Hekhalot Rabbati — 「큰 헤칼롯」
-
Hekhalot Zutarti — 「작은 헤칼롯」
-
3 Enoch / Sefer Hekhalot — 「에녹 3서」
-
Ma'aseh Merkavah — 「메르카바의 행위」
특히 3 Enoch에서는 에녹이 천상 세계로 올라가 메타트론(Metatron)이 되는 이야기가 매우 중요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다만 이것은 성경의 에녹 이야기와 후대의 신비주의적 에녹 전승을 구별해서 읽어야 합니다.
9. 헤칼롯 신비주의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목사님이 설교나 강의에서 정리하신다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헤칼롯 신비주의는 에스겔의 메르카바 환상을 배경으로 인간이 여러 하늘의 궁전들을 통과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보좌와 영광에 접근하려는 고대 유대교의 신비주의적 전승이다.”
그리고 성경적 보좌신학과 비교한다면 더욱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헤칼롯은 ‘하나님의 보좌에 어떻게 올라갈 것인가’를 묻지만, 성경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보좌에 누가 앉아 계시며 그분이 누구를 통해 세상을 통치하시는가’를 계시합니다.
특히 요한계시록 4–5장에서는 인간 신비가가 보좌에 올라가는 것이 중심이 아니라,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이 계시의 중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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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보좌 사상
다니엘 7:9의 보좌는 “보좌들(”thrones were set in place)로 번역되어야 한다.
이것을 “두 보좌 사상”이라고 한다.
다니엘은 하늘에 두 개의 보좌들이 놓여 있는 환상을 본다.
이것은 유대 신학의 전통적이고 완고한 유일신론을 벗어나는 것으로
다니엘서에 기록된 두 보좌는 대단히 이례적인 것이다.
이 두 보좌 중에서 한 보좌의 주인은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인 하나님이다.
그렇다면 다른 보좌에 앉을 존재는 누구일까? 13절에 그 다른 보좌에 앉을 주인공(인자 같은 이)이 등장함.
“ 그 사람의 아들”같은
< 다니엘 7장 13절 >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like a son of man)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하늘에 놓인 두 보좌 중에서 다른 한 보좌에 앉을 그는 분명 인간이 아닌 신적 존재이다.
그 이유는?
그는 신적 임재를 나타내는 전형적인 표현인 “하늘 구름을 타고(coming with the clouds of heaven)오기 때문이며,
그는 ”인자 같은 이,like a son of man“으로 묘사 되기 때문이다.
• ”인자(son of man)“는 ”사람의 아들“로 결국 ”사람“
• ”인자 같은 이(like a son of man)“은 사람같이 생겼지만 사람이 아닌 신적 존재임을 의 미.
다니엘 7:14에서 ”그 사람처럼 생긴 신적 존재“에게 세상 통지권이 부여된다.
”사람처럼 생긴 신적 존재“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통치권을 부여받은 존재“ 이 두 가지를
만족시키는 존재라면, 예수 그리스도외에는 상상 할 수 없다,
시편 110편의 다윗처럼, 선지자 다니엘도 하나님의 통치 대권을 위임 받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우편 보좌“의 주인임을 증언한다.
예수의 자기 칭호, 인자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의 자기 칭호는 언제나 ”인자(그 사람의 아들, the son of man)이다.
예수의 자기 칭호의 의미는?
다니엘 7장의 “인자 같은 이(사람의 아들처럼 생긴,like a son of man)와 연결된다.
예수의 자기 칭호인 그 사람의 아들에서 ”그“는 정관사 ”the“로 다니엘이 환상 중에
보았던 ”사람의 아들처럼 생긴“을 지시한다.
예수의 자기 칭호인 ”인자, 그 사람의 아들“은 자신이 다니엘의 묵시에 나타나는
”사람의 아들처럼“생긴,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통치대권을 위임받은“
바로 그 신적 존재임을 드러내는 호칭이다.
<마 26:63-64>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산헤드린이 예수를 심문하는 본문에서
예수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고 묻는 대제사장에게
소극적으로 ”네가 말했다“고 대답하지만
64절에서는 자신이 다니엘서 7장 묵시에 나타난 바로 그 메시아임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다니엘서의 핵심 내용은?
하나님이 하나님 보좌의 우편에 있는 보좌에 앉을 분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하나님의 통치 대권을 맡긴다는 것
예수님의 초림이 있기 600년전에 다니엘의 환상으로 드러난 계시는 신약에서 성취되었다.
신약은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통치권을 부여받아 세상을 통치하여
장차 다시 오셔서 사탄과 죽음을 멸하고 영원토록 왕 노릇 한다는 것이다.
단7:14에서 말하는 ”소멸되지 않는 영원한 권세“”멸망당하지 않을 영원히 존재하는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완전히 성취되었음을 보여준다.
<요한 계시록 1:13-16>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 게 비치는 것 같더라“
요한 사도가 승천한 예수 그리스도를 ”인자 같은 이(like a son of man)“로 묘사하고 있다.
결국 다니엘이 본 것과 같은 ”인자 같은 이“는 하나님의 통치권을 받은 자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며 결국 그는 다니엘 언약의 성취자로서의 ”인자 같은 이“인 것이다.
다니엘 언약(인자 같은 이, like a son of man)
예수(인자, the son of man)
요한계시록(인자 같은 이, like a son of man) 이 연결되고 성취 된다.
제3절 신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좌소
< 마가복음 16:19 >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좌소가 주는 의미는?
⓵ 승천하신 예수님은 재림의 때를 기다리신다.
⓶ 승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여전히 세상을 통치하고 보존하고 주관하는 일을 지속하신다.
⓷ 하나님이 정하신 재림 때 예수는 그 보좌에 앉아서 구원과 심판을 행한다.
성도의 고난 가운데 함께 하심
사도행전 7장은 스데반이 산헤드린 공회에서 설교를 마치지도 못한 채 순교당하는 모습을 이야기 하고 있다. 스데반 집사가 순교를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사도행전 6장에 나온다.
<사도행전 6:13>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 하는도다”
거짓 증인들에 의해 스데반은 “성전”과 “토라(모세의 율법)”을 부정한다고 고발을 당한다.
유대교 입장에서 “성전, 토라, 구원에 이를 만한 행위”중 두 가지를 부정하는 것은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심각한 죄이다.
그너나 스데반은 조금도 위축됨 없이 유대인의 거짓 고발처럼 “거룩한 곳(성전)”을 거슬러 말하고, 이스라엘이 항상 율법을 거스르고 지키지 않았음을 선언한다.
스데반 설교:
⓵ <행 7:48-50> ---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성전을 부정하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손으 로 지은 곳, 곧 성전에 제한되어 머물러 있지 않는다고 선언함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 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⓶ <행 7:51-53> --- 유대인들이 율법을 거슬러 정작 의인이 올 것을 예언한 자들을 죽였고, “의인”인 예수도 죽인 살인자로 천사가 전하여준 율 법을 받고도 지키지 않은 죄인임을 천명함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 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 도다 하니라”
⓷ <행7:55-56>
• 성령 충만한 스데반은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본다.
“보라 하늘이 열렸다, 인자가 하나님의 우편에 서신 것을보노라”
“주목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순교하는 현장에 ”서신 예수“이다.
• 예수의 증인이 되려고 기꺼이 죽음을 택하고 순교자의 길을 가는 스데반을 두고
평안히 보좌에 앉아 있을 수 없서 서신 예수를 보라.]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심
< 로마서 8:33-35 >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 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 이나 칼이랴“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가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음을 상기시켜주고 있으며, 하나님 우편 보좌에서 드려지는 예수의 끊임없는 기도는 우리를 향한 예수의 사랑의 확증이고 이러한 예수의 사랑의 기도 덕분에 우리는 어떤 환란 가운데서도 넉넉히 이기고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서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 히브리서 8:1-3,6>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 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그러므로 그도 무엇인가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 그러나 이제 그 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 시라“
• 히브리서8장의 주제는 새 언약(6절에 의하면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인
예수 그리스도이다.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는 지금도 하늘의 참 성전에서 대 제사장으로서의 사역을 지속하 고 있다.
• 대 제사장이 있는 목적이 무엇인가?
⓵ 성전에서 예불과 제사드림을 위해 세워진 자
⓶ 이를 통해 백성들은 죄 사함을 얻는다.
하나님 우편에 앉은 예수 대제사장직은 지상에 있는 성전의 대제사장과 다르다.
<히브리서 10:11-14>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 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 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가 거룩 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예수 이전에는 모두가 제물을 가지고 성전으로 가서 대제사장의 집례로 제사를 드려야 했다.
예수가 자신의 몸을 단번에 드림으로 우리는 더 이상 제물을 가지고 성전으로 갈 필요가없다.
• 히브리서 8:6에 의하면 예수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로
히브리서 10:12에 의하면 “이 세상의 모든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 의 우편에 앉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되심에 힘입어 우리는 온전케 된다.
시편 110:1의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말씀이 종말의 시작이라며,
히브리서 10“13의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 되게 하살 때까지 기다리시나니“는 마지막 종말의 최후의 심판을 의미한다.
믿음의 주, 성도의 믿음의 모범
< 히브리서 12:1-3 >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 를 생각하라“
히브리서 전체를 관통하는 상황은 “시련, 핍박”이다.
이런 핍박의 시기를 잘 통과하려면 신앙적 덕목이 인내다.
인생과 신앙의 길은 마라톤과 같다. 이는 끝까지 잘 견디며 달려가야 할 길이다.
이 마라톤과 같은 신앙의 길은 외로운 길이 아니다.
왜냐하면 ⓵ 앞서서 이 길을 달려간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⓶ 무작정 방향없이 달려가는 길이 아니라 예수를 바라보며 달려가는 길이므로
믿음의 주(히12:2절)
⓵ 아르케고스( 주 ): 아르케고스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지중해를 항하는 배의 선 원 중 수영을 가장 하는 사람이 맡는다. 고대 위험한 지중해 항해에서 배가 난파의 위기에 처하면 이 아르케고스가 허리 에 밧줄을 메고 바다로 뛰어든다. 해안가에 도착해서 배를 해안에 안전하게 접안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⓶ 이러한 아르케고스에서 의미가 확장되어 “선구자, 선두”의 뜻을 가지게 되었고.
⓷ 성경에서는 복음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르케고스로 표현한다.
⓸ 예수는 죽음의 위기에 처한 우리를 위하여 선두에서 사랑의 바다로 뛰어들어 부활로
이기고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할 아르케고스이다.
2. 창시자, 임금, 주 (히브리서와 사도행전에서 말하는) --- 아르케고스
<히브리서 2:10>
“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 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 행 5:30-31 >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 느니라“
< 행 3:14-15 >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히브리서의 “창시자” 사도행전의 “임금” “주”도 아르케고스이다.
예수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고 부활한 것은 아무도 가지 않는 선구자의 길이며,
우리의 선두에서 죽음을 이긴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예수는 “구원의 창시자요, 임금이며 또한 믿음의 주”이다.
하나님의 그 어린 양의 보좌
<요한계시록 7: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 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요한계시록 22:1-5>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 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 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 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 다”
위 구절들은 구원의 최종적 상태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22장은 창세기 3장의 에덴과 대비를 이루는 “새 에덴, 회복된 에덴”의 삶을 나타내고 있다.
첫 에덴에서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류에게 영적, 육적 죽음이 선포 되었지만
새 에덴(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없는)서는 저주의 가능성이 사라진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 하여 어린 양으로 드려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탄도, 죽음도, 죄도 없어졌기 때문 이다.
새 에덴 중앙에는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좌가 놓여 있고 이곳으로부터 생명 수 강이 흘러나오는데 바로 하나님 및 그리스도와 나누는 친밀한 교제를 의미한다.
이런 교제가 이루어지는 이곳에서는 더 이상 아담처럼 하나님을 피할 필요가 없이 모두가 그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4절), 그때에 그들은 예수와 함께 세세토록 왕 노릇 하게 될 것이다(3절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