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림



데살로니가전서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Q. 누가 하늘로부터 강림하신다고 말씀하나요?
  A. 주께서. / 원어로 보면, ‘주님’이 강조되었다. ‘주께서 친히’, ‘주님이 직접’ 오신다는 뜻이다.

Q. 강림이 무슨 뜻인가요?
  A. 신이 하늘에서 인간 세상으로 내려옴.[네이버사전]

강림 : 내릴 강(降), 임할 림(臨). 강림은 내려온다는 뜻이다.
주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신다는 예언이다.
이 말씀에서 주의 강림은 두 번째 다시 오심을 가리킨다.

Q. ○○는 주님이 강림하실 것이라고 믿나요, 안 믿나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A. 자녀의 말을 들어보자.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이다. 전에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모두 이루어졌듯이, 예수님의 강림 예언도 반드시 이루어진다.

Q. 주께서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때, 무슨 소리가 난다고 말씀하나요?
  A.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

호령 : 큰 소리로 외치는 명령.

Q. 주님이 강림하실 때 들리는 호령은 무슨 명령일까요?
  A. 자녀의 말을 들어보자.

Q. 천사장(천사의 우두머리)의 소리는 무엇일까요? 나팔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요?
  A. 자녀의 말을 들어보자.

Q. 하늘로부터 주님이 강림하시는 광경은 어떨 것 같아요?
  A. 다양한 대답이 가능하다.

위엄 있고, 장엄한 광경이 펼쳐질 것이다.

Q. 주님이 강림하실 때, 누가 먼저 일어난다고 말씀하나요?
  A.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

Q.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누구를 가리키나요?
  A. 예수님을 믿고 죽은 성도들.

죽음은 끝이 아니다. 반드시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날 것이다.

Q.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몇 명일까요? 그들이 동시에 일어나면 어떤 광경이 펼쳐지는지 말해보세요.
  A. 자녀의 말을 들어보자.

예수님을 믿고 죽은 성도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수백억명도 더 될 것이다.
물에서, 무덤에서, 도로에서 죽었던 자들이 다시 부활할 것이다.
부활한 성도의 모습은 좀비처럼 괴물과 같이 생기지 않았고, 예수님의 부활처럼 썩지 않고 죽지 않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가 주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하옵소서.
죽음이 끝이 아님을 알고, 반드시 부활이 있음을 믿고, 이 땅에서 지혜롭게 살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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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재림과 성도의 휴거(데살로니가전서 4:14 - 5:6)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재림의 소식입니다. 신약성경의 여러 서신서 중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전체의 주제로 삼은 것은 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입니다. 우리는 이 두 책에서 종말 성도에게 주시는 주님의 귀한 교훈을 받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소박한 신앙인들이었습니다. 복음을 듣고 믿은 지 오래지 않아서 그런지 그들은 순수하면서도 뜨거운 마음으로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겼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편지하면서, “여러분들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첫사랑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소박한 신앙에서 나온 지나친 열심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가진 것이 문제였습니다. 

살후 3:11=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재림을 대망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일상생활의 규모를 잃어버린 것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의 재림에 대해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진리를 분명히 깨닫고 가르침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성도 여러분의 재림 신앙을 더욱 돈독히 다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1.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

16절=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본문에 나타나 있는 예수님 재림의 모습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때는 엄청난 일이 동반됩니다. ‘호령’ 이 있고, ‘천사장의 소리’ 와 ‘하나님의 나팔소리’ 가 울려 퍼집니다. 나팔소리가 날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 이 무덤을 열고 다시 살아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여기 ‘호령(켈류스마티)’ 은 지휘관이 군인에게 내리는 명령인데 거부할 수 없는 귄위를 가집니다. ‘천사장의 소리’ 는 가브리엘이나 미가엘과 같은 천사장이 죽은 자들을 깨우는 음성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나팔 소리’ 는 하나님이 직접 나팔을 분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하는 나팔’ 이란 뉘앙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나팔을 분다’ 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산 아래로 모으고 하나님의 임재를 알릴 때(출 19:13,16,19), 새해가 시작 됨을 알릴 때(레 23:24), 타국에 흩어져 있던 백성들이 성산에 돌아옴을 알릴 때(사 27:13), 그리고 심판의 날이 임박했음을 알릴 때(욜 2:1) 나팔을 부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의 날에 하나님의 나팔이 울린다는 것은 새 세계가 도래하는 시점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불러 모으는 것을 나타냅니다(마 24:31).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도무지 믿기 어려운 말씀이고 인간의 이성이나 과학으로는 결코 풀 수 없는 영역의 사건들입니다. 성경은 이처럼 초자연적인 사건인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을 거침없이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곳만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4장, 마가복음 13장, 누가복음 21장에도 그리스도의 재림과 종말에 대한 상세한 말씀이 나옵니다. 위의 세 장을 가리켜 ‘소(小)계시록’ 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내용이 요한계시록을 압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 24:30에서 예수님은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본절(16절)과 잘 부합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요 진리입니다. 만일 주님의 재림이 거짓이라면 성경의 모든 것이 무너질 수밖에 없고 우리의 신앙도 헛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라나타! 주님은 반드시 속히 오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주님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난다’ 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 때 땅에서 일어날 현상 가운데 하나는 무덤들이 열리고 죽은 자들이 부활하는 것입니다. 엄청난 일입니다. 

여기에서 성경은 죽은 자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로 한정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죽은 성도들만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한 축복에 참여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이미 죽어 땅속에 묻힌 자들은 주의 재림의 날 그 영광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들의 생각과 달리, 죽은 자들이 살아 있는 자들보다 먼저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내용입니다. 거기에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 예수님의 재림 때에 그리스도인들이 부활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14절=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예수께서 육체적으로 죽지 않으셨다면 인간의 죄악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께서 육체적으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는 죄 있는 여느 인간과 조금도 다름 없는 존재로서 그의 죽음은 무가치한 것 밖에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심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메시야(=그리스도) 이심을 나타내셨고, 또한 그를 믿는 모든 자들로 부활의 소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14절은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 을 ‘데리고 오실 것’ 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 신앙 때문에 죽은 자들’ 을 하나님께서 하늘에서부터 ‘붙잡아 함께 인도하실 것’ 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16절에는 주님의 재림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난다’ 는 표현이 있습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3:13에 보면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신다’ 고 했습니다. 따라서 본절(14절)은 예수 믿고 죽은 성도들의 영혼이 낙원에 올라가 있다가(눅 23:43) 예수님 재림 때에 그와 함께 영으로 내려온다는 표현이고, 16절은 죽은 후 영혼과 분리되어 땅 속에 묻혀 있던 성도들의 육체가 그 영혼을 만나 다시 살아난다는 표현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의 계시의 말씀을 받은(15절) 사도 바울은 주님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에 대한 분명한 그림을 갖고 있었습니다. 

15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여기 ‘강림’ 이라는 말이 직접 나오는데, 이 단어(=파루시아)는 원래 황제가 지방의 도시를 방문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황제의 방문에는 그 도시민들의 환영 행사가 있었고, 황제가 내리는 상(賞)에 대한 시상식이 수반되었습니다. 따라서 황제의 ‘파루시아’ 는 그 도시에 큰 영광이요 기쁨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개념이 신약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개념으로 된 것입니다. 

그런데 15절과는 달리 16절의 ‘강림하시리니’ 로 번역된 단어(=카타베세타이)는 ‘위에서부터 아래 쪽으로 내려오다’ 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는 예수님의 재림이 영(靈)으로만 오시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체로 내려오는 ‘하강의 모습’ 을 강조하는 표현이라 하겠습니다(행 1:11 참조). 이것은 예수님이 영적으로 재림할 것이라는 이단의 가르침이나, 초림 때 처럼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날 것이라는 이단 사설들이 옳지 않음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재림을 확신하십니까? 주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마지막 나팔에 무덤을 열고 다시 살아날 꿈을 갖고 계십니까? 

2. 성도의 휴거, 그 황홀한 광경

17절=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본절은 휴거(Rapture) 교리의 근거가 되는 구절입니다. 예수님 재림 때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이어서 살아 있던 성도들의 몸은 홀연히 다른 몸으로 변화하여 공중으로 끌려 올라갑니다. 

고전 15:51-52=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성도 여러분! 이것은 저와 여러분이 이제 곧 경험하게 될 엄청난 사건입니다. 그 황홀한 광경이 바로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절에서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라고 한 것은 돌연히 잡아채는 것, 강탈해 가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하르파조)의 수동태입니다. 주님 재림 시에 살아남은 성도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님의 뜻에 의해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순간에 부활한 성도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휩쓸려 올라가거나 낚아채어져 올라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영접’ 이라는 말은 당시 황제가 행차할 때 성읍의 성주가 얼마간 나아가서 황제를 영접하여 성 안으로 인도해 들어오는 장면을 염두에 둔 말입니다. 따라서 본절은 성도들이 구주 되시는 예수님을 영접하러 나간 뒤 다시금 돌아온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접의 최종 상태는 성도가 그리스도와 영원히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한편 휴거된 성도들이 재림 주 예수를 영접하는 장소는 ‘공중(아에라)’ 입니다. 이 말은 지구의 대기권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악한 영이 공중에 대한 권세를 잡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는 점입니다(엡 2:2). 

따라서 ‘공중에서 주를 영접할 것’ 이라는 말은 재림의 날 사탄은 완전히 패배할 것이며 주의 성도들은 사탄의 영역을 깨뜨릴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L. 모리스(Moriss)는 논평하기를, “주께서 자기 성도들을 마귀의 근거지에서 만나기로 하셨다는 것은 마귀의 세력을 완전히 정복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라고 했습니다. 

휴거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살아남은 사람들이 죽은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강력한 힘에 의해 끌어올려지는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서로 연합하게 하기 위함이고, 또한 그들 자신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휴거 받은 성도들은 그들이 살아남은 자이든 죽은 자이든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것이며, 또한 무엇보다 그리스도와도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휴거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이 있기는 하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가 들림받는 궁극적인 목적이 단순한 황홀경이나 광희(狂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성도 서로 간의 연합과 예수님과의 연합을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빌 3:20, 21=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7절을 다시 봅시다.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이 말씀은 주님의 재림의 때에 성도들이 주님을 영접한 뒤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이라는 가슴 벅찬 말씀입니다. 이는 이미 시작된 주님과의 관계가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와 영원히 함께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성도에게 있어서 최대의 소망이자 최고의 축복인 것입니다. 

그때에는 더 이상의 고통도 더 이상의 슬픔도 없습니다. 오직 능력의 삶만이, 오직 기쁨의 삶만이 우리에게 예비되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그 순간을 소망하면서 현재의 고통과 고난을 이겨나가야 할 것입니다. 종국에 가서는 우리 모두 영원히 주님과 함께 할 것이므로 이 땅의 삶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지라도 주님을 배반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 거하는 복된 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3.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

6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재림과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 그리고 살아남은 성도들의 휴거에 관하여 생각해 왔습니다. 이어서 5장에서는 재림의 시기에 관하여 언급하면서, 빛의 자녀들인 성도들이 어떻게 재림을 기다려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재림의 시기를 두 가지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임한다’ 는 것이고(2절), 또 하나는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른다는 것입니다(3절). 두 가지 모두 갑자기 임한다는 면에서는 공통점이 있습니다만, 자세히 보면 다릅니다. 

첫째, 도둑은 방심하다가 도둑맞는 것이지, 준비하고 방비하면 도둑맞을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잉태한 여인에게 해산의 고통은 그렇지 않습니다. 도둑처럼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주님의 재림은 임신한 여인에게 때가 되어 찾아오는 해산의 고통과 더욱 닮았습니다. 

또한 도둑은 손해 일변도입니다. 도둑을 맞게 되면 물질을 잃게 되고 정신적인 타격을 받게 되고 심지어 살상을 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해산의 경우 얼마동안 고통을 받지만 그 고통을 능가하는 아름다운 선물을 빋게 됩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밤에 도둑같이 오는 것은 불신자가 예수님의 재림을 맞는 것을 가리킨다면, 임신한 여인이 아이를 낳는 것은 우리 성도들이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자신들이 준비를 잘 하면 도둑 걱정은 없다고 생각하다가 막상 주님 오실 때에 ‘산아 바위야 나를 가리라’ 고 부르짖게 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영원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임신한 어머니가 아기를 위해 미리 준비하고 의사에게 태아의 건강상태를 체크하면서 대처해 나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것은 종말 시대의 성도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이 반드시 다시 오신다고 믿고 재림을 준비하는 사람은 모두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재림을 믿지 않고 준비하지 않는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6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 ‘다른 이들’ 은 자신의 구원에 무관심하고 다가오는 심판의 날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영적으로 무감각한 상태에 있는 자들입니다. 밤의 아들들이 영적으로 무감각한 채로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낮의 아들들은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깨어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다’ 는 말은 원문으로 볼 때 ‘술 취하지 않은 완전히 맑은 정신 상태’ 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신학자 헨드릭슨은 이 말을 ‘영적 도덕적 진실에 충만하여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너무 들떠 있지도 않고 완전히 무관심하지도 않은 채, 조용하고 꾸준히 그리고 정신을 바짝차리고 자기의 책임과 직무를 완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온 세상이 죄의 흑암으로 뒤덮일지라도 여러분은 영적으로 깨어 근신하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이 땅을 향한 주님의 의도와 말씀에 민감하며, 동시에 지금 여러분이 하고 계시는 그 일에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한 손에는 주님의 재림을 대비하는 적절한 경각심을, 다른 한 손에는 주님의 재림에 대비한 적절한 근신을 들고 있기를 바랍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약속하신대로 반드시 속히 오십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마태복음 24장에 있는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에 의하면 우리가 자신의 직업에 몰두하고 있을 때 주님이 홀연히 강림하셔서 우리를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마 24:40-41=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종말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은 예수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어느 순간 주님이 오시든 부끄럽지 않게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는 것입니다. 

실로 그리스도의 재림은 우리에게 최고의 축복이요 최상의 상급입니다. 그날 우리 모두 홀연히 변화하여 공중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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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降臨)과 휴거(携擧, Rapture) 데살로니가전서 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降臨)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携擧)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도입 이야기)
 문화 차이에 의해서 경험한 이야기
 미국에서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두 자녀들이 미국에서 유치원 과정을 마치고 부모님이 한국에서 사업을 하게 되어 한국에 정착한 후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한번은 아이들이 선생님으로부터 꾸중을 듣게 되었는데 두 아이들이 선생님을 쳐다보자 선생님은 버릇없이 선생님을 쳐다보느냐 하며 호되게 야단쳤다고 합니다. 얼마 후 집에서 부모님으로부터 꾸중을 듣게 되어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부모님의 야단치는 이야기를 듣는데 이번에는 왜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느냐 하며 꾸짖습니다.
 두 아이들은 한국과 미국의 문화 차이에 혼돈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도 이와 비슷한 현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강림이란 단어는 한글성경에서 39회 사용되었습니다.
 휴거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두 불구하고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휴거에 대한 신앙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생각하며 "강림과 휴거"라는 주제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 강림(降臨) 데살로니가전서 4:16

헬라어 성경에 "강림"으로 번역 된 단어가 세 가지입니다.
카타바이노, 파루시아, 에르코마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携擧)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For the Lord himself will come down from heaven, with a loud command, with the voice of the archangel and with the trumpet call of God, and the dead in Christ will rise first.

강림이란 "내릴 강(降)" "임할 림(臨)"
한글성경에 39회(구약 23회, 신약 16회)
특히 데살로니가전서 후서에서 9회(전서 6회, 후서 3회)
NIV 성경 - come down
헬라어 - 카타바이노(καταβαίνω) / 카타(κατά) + 바이노(βαίνω) / down + stepping, walking Strong's Greek: 939. βάσις (basis) -- a foot

Strong's Exhaustive Concordance. foot. From baino(to walk)
basis : a foot
Original Word : βάσις, εως, ἡ

Strong's Greek: 1684. ἐμβαίνω (embainó) -- to walk on, to

Strong's Concordance. embainó: to walk on, to step into, ie embark. Original Word:
ἐμβαίνω Part of Speech: Verb Transliteration: embainó Phonetic


(예) 누가복음 3:22(강림, 카타바이노), 데살로니가전서 4:16(카타바이노)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예) 고린도전서 15:23(강림, 파루시아)  παρουσία(parousia. 3952) a presence, a coming, 요한일서 2:28(파루시아), 베드로후서 1:16(파루시아), 3:4(파루시아), 야고보서 5:7-8(파루시아), 데살로니가후서 2:1(파루시아), 데살로니가후서 2:8(파루시아), 데살로니가전서 2:19(파루시아), 데살로니가전서 3:13(파루시아), 데살로니가전서 4:15(파루시아)

(예) 데살로니가후서 1:10(에르코마이) ἔρχομαι(erchomai. 2064)  to come, go
 데살로니가전서 1:10(에르코마이),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휴거(携擧, Rapture)

데살로니가전서 4: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携擧)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After that, we who are still alive and are left will be caught up together with them in the clouds to meet the Lord in the air.  And so we will be with the Lord forever.   

첫째, 휴거(Rapture)란 무엇인가?

휴거는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성도들을 불러올리는 사건을 말합니다.
그런데 휴거라는 단어가 성경에는 없습니다.
그러면 왜 휴거라는 단어를 사용할까요?

한글 성경을 처음 번역할 때 중국의 한문 성경을 참조하여 한글로 번역했습니다.
당시 한글은 언문(言文)이라며 아녀자들만 사용하는 아주 천한 언어라고 하여 선비들은 주로 한문을 사용했습니다.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한문 성경을 기본으로 사용하여 한글로 번역했습니다.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라는 말씀에서 “끌어 올려(caught up)” 라는 말씀을 한문 성경에서 “휴거(携擧)”라고 합니다.
따라서 공중으로 끌어 올려라는 문장을 간략하게 "휴거(携擧)" 라고 사용한 것입니다.

둘째, 휴거(Rapture)의 의미는 무엇인가?

1. 한자의 의미

휴거(携擧)”라는 한자는 “이끌 휴(携)” “들 거(擧)” 라는 훈으로 “이끌려 들려지다”라는 뜻입니다.

2. 영어의 의미

휴거를 영어로  “랩처(Rapture)” 라고 합니다.
랩처(Rapture)”의 뜻은 “환희(delight), 열중, 넋을 잃음”입니다.
따라서 공중으로 끌어 올려간다는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면 왜 영어에서 휴거를 랩처라고 하였는가?

라틴어 성경에서 "공중으로 끌어 올려" 라는 말씀을 “라피오(rapio)” 또는 “라페레(Rapere)” 라고 합니다.
라피오(rapio)”를 영어로 번역할 때 “랩처(rapture)” 라고 합니다.

3. 헬라어의 의미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caught up)”는 헬라어로 “하르파게소메다(ἁρπαγησόμεθα)”라고 합니다.
"하르파게소메다"의 동사 원형은 "하르파조(ἁρπάζω)" 라고 합니다.

"하르파조(ἁρπάζω. harpazó. 726)"를 영어로 “to snach away” 라고 하며 그 의미는 “낚아챈다, 빼앗는다”는 뜻입니다(to seize, catch up, snatch away)

* 끌어올려 - 수동태(Caught up)

“갑작스럽게 잡아서 옮기다.” “강한 힘을 가지고 강하게 빼앗아 가다”, “재빠르게 자기에게 끌어들이다”

* 데려감을 당하고 (마 24:40∼41, 눅 17:34-35) - 수동태(Taken away)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 데려감 / “파라람바노(paralambano.παραλαμβάνω. 3880 )" : to receive from, “가까이 오도록 취하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끌다.

* 버려둠
/ "아피헤미(aphiémi.  ἀφίημι. 863)": to send away, leave alone.

셋째, 성경에서 휴거(하르파조, ἁρπάζω) 단어가 사용된 사례를 살펴봅니다.


1. 요한복음 6:15 - 붙들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

2. 요한복음 10:12 - 물어 가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도 제 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헤치느니라(물어 가고) 라는 말씀에서 “늑탈하고” 또는 "물어 가고" 라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3. 요한복음 10:28 - 빼앗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에서 "빼앗을" 이란 뜻으로 사용합니다.

4. 요한계시록 12:5 - 올려가다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GRK : σιδηρᾷ καὶ ἡρπάσθη τὸ τέκνον

NAS : and her child was caught up to God

KJV : her child was caught up unto God,

INT : iron and was caught away the child 

5. 유다서 1:23 - 끌어내다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GRK : ἐκ πυρὸς ἁρπάζοντες οὓς δὲ

NAS : save others, snatching them out of the fire;

KJV : fear, pulling [them] out of

INT : out of fire snatching [them] others moreover 

6. 데살로니가전서 4:17 - 끌어 올리다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GRK : σὺν αὐτοῖς ἁρπαγησόμεθα ἐν νεφέλαις

NAS : and remain will be caught up together

KJV : [and] remain shall be caught up together

INT : with them will be caught away in [the] clouds 

성경 여러 구절에서 "끌어 올려(하르파조, ἁρπάζω)" 라는 의미를 살펴본 결과는 "공중으로 끌어 올려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악한 세력의 손에 끌려 갈 수 없다."라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휴거라는 것에 열광할 이유가 없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절(말라기 4:5~6)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엘리야는 선지자 엘리야가 아니라 장차 오실 메시아 즉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결론은 메시아이신 엘리야가 반드시 오실 것이라는 예언이라고 하겠습니다.

신약의 마지막 절(요한계시록 22:20~21)

이것들을 증거 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신약의 결론은 구약의 마지막 책 말라기 4장에서 오실 메시아로서 엘리야로 오실 것을 예언했던 그 메시아가 신약에서 이 세상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후에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로 올라가셨는데 다시 오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재림(再臨)이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의 사건을 요한계시록 21:1-2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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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에 대한 비성경적인 신앙

칠년 대환난을 당할 때 환난의 시기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공중으로 들림을 받는 것이다.

첫째, 대환난 시대를 피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을 이해할 때 공중 재림은 7년 대환난 시대에 공중으로 들려올라 가므로 환난의 때를 아주 평안하게 지낼 수 있다고 믿는다.

둘째, 공중으로 끌어 올려에 대한 오해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공중으로 끌어 올림을 받는다는 것은 실제로 공중으로 들려올라가는 문자적인 의미가 아니다.
이와 같은 가르침은 사도 바울의 가르침이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악한 것에 의해서 빼앗길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신명기 7:6-7)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표현한 성경구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자신의 언약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하나님의 축복과 보호를 받는 존재로서,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신명기 7:6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출애굽기 19:5-6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이사야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의 언약과 이스라엘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맺은 언약을 통해 이스라엘과 영원한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이 언약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을 받을 것임을 보증합니다.

 창세기 17: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예레미야 31: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율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시편 105:8-10

8 그가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걸쳐 명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9 이것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요 이삭에게 하신 맹세이며
10 그것을 야곱에게 법으로, 이스라엘에게 영원한 언약으로 세우셨다


하나님의 아들, 딸로서의 백성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자신의 자녀로 여겨 사랑과 보호를 약속하십니다. 그들을 아버지로서 돌보시며, 자녀에게 거룩한 삶을 요구하십니다.

신명기 14:1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고 눈썹 사이 이마에 털을 밀지 말라

호세아 1:10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다의 모래 같아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고린도후서 6: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아들딸이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요한일서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하나님의 양으로서의 백성

하나님은 자신을 목자로, 백성을 양으로 비유하십니다. 목자는 양을 돌보고 인도하며 보호합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따라야 하며, 목자의 보호 안에서 안전하게 살아갑니다.

시편 23:1-3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이사야 40:11

그는 목자와 같이 자기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요한복음 10:14-15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로서의 백성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의 사랑과 돌보심을 받는 특별한 존재로 묘사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와 같은 사랑으로 백성을 지키시며, 그들을 기뻐하고 축복하십니다.

이사야 43:4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너를 대신하여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스바냐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는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나님의 포도나무와 가지로서의 백성

하나님은 백성을 포도나무의 가지로 비유하십니다.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으며, 하나님 안에서만 생명과 성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사야 5:7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하나님의 신부로서의 백성

성경은 백성을 하나님의 신부로 묘사하며, 하나님과 백성 간의 관계를 사랑과 헌신의 언약 관계로 설명합니다. 신부된 백성은 하나님께 충성하고 순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사야 62:4-5

4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결혼한 여자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 같이 될 것임이라
5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고린도후서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질투하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하였음이라

하나님의 소유로서의 백성

하나님은 백성을 자신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그들은 세상 가운데 구별된 존재로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출애굽기 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보호와 이스라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인도하시는 목자와 같은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험에서 지키시며, 그들의 필요를 채우시고 회복과 승리를 주십니다.

이사야 41:8-10

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신명기 33: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시편 121:4-5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이스라엘의 사명과 역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을 세상에 전하는 제사장 나라로서의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이사야 49:6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의 보존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이라 그러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신명기 4:6-7

6 너희는 이것을 지켜 행하라 이것이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명철이라 이것을 듣는 모든 민족들이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들은 참으로 지혜와 명철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에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회복 약속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불순종할 때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회복을 약속하시며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실 것을 언약하셨습니다.

예레미야 30:22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호세아 2:23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기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이사야 62:4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결혼한 여자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 같이 될 것임이라

하나님의 아들, 딸로서의 백성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자신의 자녀로 여겨 사랑과 보호를 약속하십니다. 그들을 아버지로서 돌보시며, 자녀에게 거룩한 삶을 요구하십니다.

신명기 14:1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고 눈썹 사이 이마에 털을 밀지 말라

호세아 1:10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다의 모래 같아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고린도후서 6: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아들딸이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요한일서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하나님의 양으로서의 백성

하나님은 자신을 목자로, 백성을 양으로 비유하십니다. 목자는 양을 돌보고 인도하며 보호합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따라야 하며, 목자의 보호 안에서 안전하게 살아갑니다.

시편 23:1-3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이사야 40:11

그는 목자와 같이 자기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요한복음 10:14-15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로서의 백성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의 사랑과 돌보심을 받는 특별한 존재로 묘사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와 같은 사랑으로 백성을 지키시며, 그들을 기뻐하고 축복하십니다.

이사야 43:4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너를 대신하여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스바냐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는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나님의 포도나무와 가지로서의 백성

하나님은 백성을 포도나무의 가지로 비유하십니다.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으며, 하나님 안에서만 생명과 성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사야 5:7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하나님의 신부로서의 백성

성경은 백성을 하나님의 신부로 묘사하며, 하나님과 백성 간의 관계를 사랑과 헌신의 언약 관계로 설명합니다. 신부된 백성은 하나님께 충성하고 순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사야 62:4-5

4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결혼한 여자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 같이 될 것임이라
5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고린도후서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질투하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하였음이라

하나님의 소유로서의 백성

하나님은 백성을 자신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그들은 세상 가운데 구별된 존재로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출애굽기 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신명기 7:6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하기 위하여 선택하신 민족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하나님을 찾지 않고 모두 우상을 섬기던 시대에 이스라엘을 선택하셔서, 모든 우상은 거짓이고 여호와 하나님만 참 신임을 보이셨던 것입니다. 애굽과 그 신에 벌을 내리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고 홍해를 건너게 하시며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신 그 모든 일도 자신이 참 하나님 되심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 네가 있기 전 하나님이 사람을 세상에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지나간 날을 상고하여 보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이런 큰 일이 있었느냐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었느냐 어떤 국민이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처럼 듣고 생존하였었느냐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 신 4:32-35)

이스라엘 민족이 세상의 중앙에 거하는 것이나 비록 작은 국가지만 강대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것, 또 노벨상의 1/3을 차지할 만큼 머리가 우수한 것도 다 이스라엘의 배후에 있는 하나님을 증거합니다.

또, 1900여 년간 나라없이 흩어져 살다가 독립하여 고토(故土)에 나라를 다시 세우고, 그 땅을 개척하여 에덴동산과 같이 아름답게 가꾸어 성경에 예언된 모든 것을 그대로 성취한 사실도 이스라엘 배후에 하나님이 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의 증인으로 이 땅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 사 43:10)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신 또 한 가지 이유는 성경을 기록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롬 3:1-2)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에게 구약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는데, 여기에는 예수님을 보내실 것과 그의 행적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하여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신 이후 신약성경을 완성하게 하여,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사실과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이 전파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까지는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맡겨 두었던 성경을, 예수님이 구속의 역사를 완성하신 후에는 이방인에게까지 전파되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가장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구원을 완성하시고, 모든 민족에게 전할 준비가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후략)” (롬 9:4-5)

약속대로 정한 때에, 기록한 곳에서 처녀의 몸을 빌어 태어나신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설명하시고 이적으로 보여 주셨으며,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이 은혜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아브라함에게 하신 그 약속의 성취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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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입성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성취하신 것이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2:3)

하나님은 가나안에 거주하는 족속들의 악함이 땅에 가득하였기에 그 악을 제거하고,

그 땅에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거룩한 백성'을 거주하게 하실 것이다

그들이 "악"을 철저하게 파괴함으로써 하나님이 명령하신 "거룩"을 온전히 지킨다면,

그들만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으로서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이 있다

1. 하지 말아야 할 것

하나님은 이러한 전체 그림을 그리시고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면 가나안 여러 민족을 다 쫓아내라고 명령하신다

하나님께는 "악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것"이 바로 거룩의 의미를 표현하는 방식인 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2-3)

#가나안_대표_7족속(헷, 기르가스,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부스)을 다 쫓아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열방을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시야를 좁혀서 생각해서 "잔인하다"라고 판단하면 안 된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이 가득 찰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그들을 벌하시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창 15:16)

하나님이 그들을 참으신 기간은 아브라함 이후 4대 즉, 400여 년이 걸렸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 이스라엘이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그들이 오로지 하나님께만 속했음을 의미한다

가나안 7족속은 각각 자기 나름의 신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종교는 거짓될 뿐만 아니라 부도덕했다

제사를 드리면서 하는 매춘 행위는 풍작 기원 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

그러한 관행은 거룩하시고 순결하신 하나님께는 범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그들과 교류하게 되면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타락에 처할 위험이 매우 컸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진멸"하라고 하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① 그들과 언약을 맺으면 안 된다

하나님이 그들을 진멸시키기로 작정하셨는데,

이스라엘이 그들과 언약을 맺는 행위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는 것이 된다

② 인간적으로 그들을 진멸시키는 것을 불쌍히 여겨서도 안 된다

하나님은 가나안 7족속의 죄악에 대해서는 진멸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셨지만

니느웨 성의 악독에 대해서는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이 큰 성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12만 명이고, 가축도 많으므로 아끼지 않을 수 없다"(욘 4:11)

요나의 때에 그들은 요나가 선포한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멸망으로부터 구원받았지만,

그들의 죄악은 결국 그들을 멸망으로 이끌고 말았다(습 2:13-15)

그러므로 이 한 구절만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잔인하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만 오래 참으시는 분이 아니라, 열방을 심판하실 때도 여러 번의 기회를 주신다

니느웨에게 살 길을 주시기 위해 기회를 주셨던 하나님은

가나안 7족속에게도 400 년의 기회를 주시지 않았던가!

우리의 생각과 뜻보다 크고 깊으신 하나님의 생각과 뜻대로 '공의'에 입각하여

어떤 민족은 살리시고, 어떤 민족에게는 노하시는 것에 대하여 감히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가나안 땅 전체의 역사를 아시는 하나님과 짧은 시간만 가나안 족속들과 접촉한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누가 더 가나안 족속에 대해서 잘 알고 있겠는가!

하나님이 이들을 멸하시기로 했다면, 거기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오랜 시간 동안 하나님은 그들이 죄악으로부터 돌이키기를 기다리셨을 것이다

③ 그들과 혼인을 하면 안 된다

그 이유는 이방의 딸들이 이스라엘의 아들을 유혹하여 하나님을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할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이 진노하사 이스라엘을 갑자기 멸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2. 해야 할 것

① 가나안 족속들이 섬기는 모든 종교를 뿌리째 없애는 것이다

오직 너희가 그들에게 행할 것은 이러하니

그들의 제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조각한 우상들을 불사를 것이니라(5)

'주상'은 아세라(다산의 여신) 목상'과 언급된다는 점에서 볼 때 '바알'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바알과 아세라 상(像)을 깨뜨리고 찍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도 헐어버려야 한다

당시 가나안 족속은 온갖 신들을 상(像)으로 제작하여 숭배하였으므로 그것들까지 다 불사르라고 하셨다

하나님 이외의 모든 우상들을 뿌리째 다 없애 버리라는 뜻이다

그들을 하나라도 남겨 두었다가는 연약한 그들이 언제라도 미혹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②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택하신 하나님과 가나안 족속들이 섬기는 신들 중

누가 그들을 더 사랑하고, 누가 더 능력이 있고, 누가 그들을 구원할 자이신지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이 왜 지상 만민 중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는지

왜 애굽에서 종 노릇하던 그들을 큰 능력으로 인도해 내셨는지,

왜 광야 40년 동안 넉넉하게 먹이시고 입히시고 보호해 주셨는지,

왜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려는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다(8)

다른 이유가 없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적으니라(7)

하나님의 은혜로 그냥 택하심을 입은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어떤 미덕이 있어서가 아니고, 이스라엘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거나 가장 강해서도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적은 민족, 그것도 남의 나라에서 종노릇하고 있던 민족을 택하셔서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나타내시고자 하였다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 스스로는 절대로 감행할 수 없었음을 이스라엘도, 애굽도, 인근 다른 나라들도 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알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민족이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가 되고,

세상과 구별되지 않았던 민족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본받아 거룩한 백성이 되고,

그들이 살게 될 가나안 땅에서 모든 악독을 버리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그들은 천 대까지 그들과 맺은 언약을 이행하시고, 인애를 베푸실 것이다(9)

그리고 땅의 모든 족속은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대로 "복을 얻게 될 것"(창 2:3)이다

반면, 그들이 이러한 축복을 버리고 하나님을 미워하고 그 명령을 지키지 않는다면

보응하시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멸하게 될 것이다(10)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그 능력을 직접 뵌 민족으로서 복과 저주의 두 가지 길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그들이 복된 길을 택하게 되면 그들뿐만 아니라 온 세계와 열방이 복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저주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면 그들도 멸망하게 될 것이고,

다른 민족들을 구원할 기회도 잃게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예수를 믿어 누리게 될 복된 길과 그와 반대되는 저주의 길이 있다

우리는 반드시 나와 내 가정뿐만 아니라 이웃과 열방도 살리는 복된 길을 택하여야 하겠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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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피(寶血) - 대속물

https://sl.bing.net/goaNmk7xX52

오래 전에 이 책을 읽었습니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내용 중 일부는 미국의 과학자들이 순수한 금가루를 맑은 물에 풀었을 때 갑자기 그 물의 색이 붉게 변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을 과학자들이 보면서 모세가 금송아지를 불에 태운 후에 가루로 만들어 물에 풀어 백성들에게 마시게 하였다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 것이며, 그 결과 금송아지를 만들고 숭배한 죄에 대한 용서라고 합니다.

창세기 4:11
이 그 입을 벌려 네 에서부터 네 아우의 를 받았은즉 네가 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דָּם 스트롱번호1818

1. 피.  2. 유혈 살해. 3. 포도즙
발음 [ dâm ]
어원  / 1826에서 유래
구약 성경   / 360회 사용
  • 1. 명사, 남성 피, 신 19:10,13, 27:25, 삼상14:32,33,왕하21:16, 시106:38, 렘19:4, 22:17, 겔33:25
  • 2. 명사, 남성 유혈 살해, 학살, 살인죄, 창37:26, 레17:4, 19:16, 신17:8.
  • 3. 명사, 남성 포도즙, 창 49:11, 신 32:14.
    • a. 명사, 남성 복수 דָּמִים
    • b. 명사, 남성 피, 살해, 시5:7(6), 26:9, 55:24(23),사9:4(5)
    • c. 명사, 남성 살해, 살인죄.
  • 문법설명 /  연계형 דַּם, 어미활용 דָּמוֹ
  • 관련 성경 /  피(창4:11, 왕하3:22, 겔35:6), 산혈(레12:4,5,7), 살인(시26:9), 살육(겔5:17), 피투성이(겔16:6,22), 피 값(겔3:18), 죄(겔33:6), 핏빛(욜2:31), 피 흘린 자[죄](레17:4, 신21:8), 피흘리기를 즐기는 자(시59:2).

창세기 49:11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마태복음 27:4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 무죄한 피 - 사본에 따라서는 '의로운 피' 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이같은 변형은 전체 문맥과 잘 조화를 이룬다. 즉 19절절에 '의로운 사람'이라는 문구가 예수께 사용되고 있고, 24절에도 '이 의로운 사람의 피'라는 문구가 언급되고 있는데 이들과 '무죄한 피'와는 동일한 맥락을 이룬다. 한편 '피'는 생명의 요체로서 특히 본문에서는 사람의 전존재를 의미한다. 실로 예수는 '무죄한 인격'이었던 것이다.

󰃨 죄를 범하였도다 - 유다는 무죄한 죄를 판 자신의 죄를 뒤늦게 고백하나, 하나님께가 아니라 공범자인 산헤드린에게 했다. 따라서 이 자인(自認)은 구원에 이르는 회개가 아니라 자기의 실수에 대한 인간적인 강박 관념에서 비롯된 일종의 넋두리에 불과했다.

󰃨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 고전 셈어의 관용적 표현으로서 참으로 매정한 결별 선언이다. 즉 이것은 배신자에 대한 뼈아픈 배신선언인 것이다.

󰃨 네가 당하라 - 똑같은 문구가 24절에 다시 한번 나온다. 여기서 '당하라'는 헬라어 '와세이'(*)는 강한 의지가 내포된 명령이다. 따라서 본문을 재구성하면 '그것은 너의 일이니 네가 알아서 하라'가 된다. 이러한 견지에서 공동 번역에서는 '그대가 알아서 처리하라'로 번역되어 있다.

피(하이마. haima)  αἷμα, ατος, τό 스트롱번호 129

1. 피.    2. 사랑의 피.  3. 동물의 피
발음 [ haima ]
  • I.  피.
    • 1. [문자적으로]
      • a.  사랑의 피, 요19:34. ῥύσιςαἵ- ματος: 혈루증, 막5:25, 눅8:43.
      • b.  동물의 피, 히9:7,8,25. ζᾠων τὸ αἷ: 짐승의 피, 히13:11.
    • 2.  [상징적으로]
      • a. 생명의 거처로서의 피, 마23:30, 27: 4,6, 행22:20, 롬3:15, 히12:4, 계16:6.
      • b. 대속의 희생물로서의 피와 생명, 특히 대속의 의미로서의 예수님의 피, 롬3:25, 엡1:7, 히9:12, 요일1:7, 계1:5.
    • 3. [하늘에 재앙의 표시로 나타나는] 붉은 색깔.
      • a.  불과 연기와 함께, 행2:19.
      • b.  우박과 불과 함께, 계8:7.
      • c.  달의 색깔, 행2:20.
  • 관련 성경 /  피(마 23:30, 히 9:7), 혈(육)(마 16:17, 요 1:13), 혈(루증)(막 5:25, 눅 8:43).




생명의 피와 예수님의 보혈

무엇이 생명인가?
또한 과학적으로 생명의 속성은 무엇인가?
생명체와 무생물의 차이는 무엇이며, 다른 생명체와 인간의 차이는 무엇인가?
본 논문에서는 이들에 대한 과학적인 현상을 논의할 것이다.
기독교와 피는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 가운데 가장  힘드셨던 일중에 하나는 아마도 자신의 육체와 피를 나누어주는 일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육체와 피를 나누어준다는 말을 아마도 생명을 잉태하고 분만하는 산모들은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누어준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경험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의 육체와 피를 나누어 주신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성찬식을 거행하고 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음으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위기 17:11).

본 논문에서는 피의 과학적인 기능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신앙적 의미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I. 본문

생명이란 무엇인가?
대학에서 생명과학 과목을 가르치며, 연구하고 있기에, 이 질문을 받았다면 생명체는 다음과 같은 과학적인 특징이 있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이는 동물, 식물, 미생물에게 모두 해당되는 사실이다.

첫째, 생명체는 세포로 구성된 조직이 있고,
둘째, 에너지를 사용하여 물질대사를 하며,
셋째, 생체를 있는 그대로 유지하려는 항상성을 가지고 있으며,
넷째,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고,
다섯째, 가장 중요한 생명체의 특징은 생식에 있다.
즉 자손을 증식시키되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난다는 특징이며, DNA와 같은 유전정보가 대대로 전달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생명의 본질에 대한 대답은 되지 못한다.
그 답은 생명체를 창조하신 생명의 원천인 하나님께 있다고 생각된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땅에 속한 생명의 속성은 땅으로 돌아가고, 하늘에 속한 생명의 속성은 하늘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땅에 속한 생명의 속성으로는 육체, 혼 등을 말하며, 하늘에 속한 생명의 속성은 영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떻게 생명의 창조를 이야기하고 있는가?
물론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

그러나 창세기 1장의 기록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창조(bara.  영어로는 create)라는 동사를 3번 쓰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왜 그럴까?
창조란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유의 상태’를 만들 때에 이를 창조라고 한다.
예술가가 창작물을 만드는 것은 창조활동이지만, 목수가 나무로 책상을 만드는 것을 창조라고 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하나님의 창조속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러한 방법을 쓰신 것 같다.

첫 번째로는 제1일에 천지 및 물질을 창조하실 때 사용되었으며(창세기 1:1),
두 번째로는 제5일에 물고기와 새와 같은 동물 혹은 짐승을 창조하실 때 사용되었으며(창세기 1:21),
세 번째로는 제6일에 사람을 창조하실 때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창세기 1:27).

신기하게도 제3일에 식물은 만들다(assa; 영어로는 make)라는 동사를 쓰셨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물론 식물이나 미생물이 생명체가 아니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해가 없으시기를 바란다.
(명색이 생명과학자인 제가 이러한 주장을 펼 이유가 있는가?)
또한 이들이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아닐 것이다.
단지 하나님의 창조속성이 무엇인가를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제1일에 창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공백의 상태에서 이루어진 ‘물질의 창조’이었으며, 제5일은 ‘혼(혹은 의식)의 창조’이고, 제6일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영의 창조’를 뜻한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그렇다면 다른 생명체와 짐승의 차이는 무엇인가?
생명의 성경적 정의는 '피”의 유무에 달려 있다.
혼 즉 의식, 느낌, 인지 및 지각능력이 있는 동물은 대체로 이들을 조절하는 뇌의 기능과 피(혹은 이의 유사체)가 흘러 몸을 조절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혼을 가진 존재이다.
식물이나, 미생물 혹은 소위 이야기하는 하등동물이 생명체가 아니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며, 물론 이 생명체들도 하나님의 창조물임은 이미 이야기 한바 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짐승을 만드실 때에 혼을 창조하심으로 다른 생명체와 차이가 나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성경은 인간은 영, 혼, 육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데살로니가전서 5:23, 욥기 12:10).
본인은 이 세 가지가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속성이라고 생각한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May God himself, the God of peace, sanctify you through and through. May your whole spirit, soul and body be kept blameless at the coming of our Lord Jesus Christ.

생물들의 혼과 인생들의 이 다 그의 에 있느니라.
In his hand is the life of every creature and the breath of all mankind.

그렇다면 짐승과 사람의 차이는 어디에서 나는가?
하나님을 주권자로 알아볼 수 있는 ‘영의 유무’에 있다고 생각한다.
영의 기능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보고 그와 교감하는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이 친히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생명으로 오셨으며, 우리 죄를 씻기 위해 피를 흘리며 돌아가신 '보혈”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순간 우리의 영은 거듭나게 되며, 하나님께 속한 '영원한 생명의 영”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와 피는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예수님께서 하신 일 가운데 가장  힘드셨던 일중에 하나는 아마도 자신의 육체와 피를 우리에게 나누어주는 일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육체와 피를 나누어준다는 말을 생명을 잉태하고 분만하는 산모들은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누어준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경험한다고 생각한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육체와 피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성찬식을 거행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피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음으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위기 17:11).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한다.
모든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다!
모든 생명은 피에 있기에 죄로 죽은 생명을 살리려면 누군가 그 죄인을 대신하여 피를 흘리고 죽어야만 하는 것이 곧 기독교의 가르침이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하면 정결한 짐승을 끌고 가서 제사장에게 주며 죄를 고백하고, 제사장은 그 죄를 짐승에게 전가 시키고 그 짐승을 죽여 그 피를 뿌려서 죄를 정결케 하였다.
즉 죄를 지으면 반드시 죽어야하나 그 사람의 죄 대신 짐승이 피 흘려 죽어 죄로 죽을 생명을 살려내는 것이며, 잘 알다시피 예수님께서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고 죽으심으로 우리가 그 안에서 생명을 얻는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과학에서 피의 기능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자.
동물의 피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과 혈장으로 이루어졌다.
먼저 적혈구는 O2를 허파에서 받아 말초세포까지 나르는 역할을 한다.
그 뿐 아니라 세포에서 생긴 노폐물인 CO2와 H+ 이온을 나르는 역할을 한다.
백혈구는 침입한 병균을 물리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면역작용을 하는 것이다.
혈소판은 피부 등에 상처가 나서 피를 흘리게 되면 즉시 피를 응고시켜 우리 몸을 병균이 침투하지 못하게 보호하고 아까운 피가 흘러 없어지는 것을 막아주며 상처가 치유되도록 도와 준다.
혈장에는 항체가 있어서 침입한 병균을 물리치며, 각종 영양분을 세포로 나르고, 세포의 노폐물을 몸 밖으로 배출하게 해 주며, 몸의 완충용액으로 pH, 무기염류농도, 체온 등을 적정하게 유지해 준다.
복잡한 과학이야기를 쉽게 정리해 보자.

첫째, 생명의 양식인 산소와 영양분의 공급
둘째, 노폐물을 씻어냄
셋째, 몸 보호 및 항상성 유지
넷째, 병균의 대적 및 상처의 치유

본인이 십 수년 동안 피에 대해서 강의를 할 때 마다 느끼는 것은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이다.

첫째, 예수님이 보혈을 흘리시면서 돌아가셨기에 우리에게 새 생명을 공급하셨다.
둘째,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의 죄를 씻어 내신다.
셋째, 예수님이 보혈이 우리의 육체와 혼과 영을 덮어주시기에 우리 몸이 보호되고 유지된다.
넷째,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병이 들었을 때 치유 혹은 사탄의 공격을 받았을 때 대적하는 능력을 나타낸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보면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라는 말씀이 있다.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 죄를 깨끗이 사해주시고, 새 생명을 주시는 것이다.

창세기에서 아담 하와가 범죄 했을 때 그들은 나뭇잎으로 몸을 가렸지만 하나님은 동물을 잡아 그들에게 가죽옷을 입혀 몸과 죄를 가리워 덮어 주셨는데 동물이 아담 하와의 죄 때문에 피를 흘리고 생명이 최초로 희생된 것이다.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도 없다고~~~~

기독교는  도덕이나 윤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구속의 종교이다.
요한계시록 12장 11절에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했다.
예수님의 보혈로써 어두움의 세력을 무찌르고 이길 수가 있는 것이다.
예수의 피는 사탄이 우리의 죄를 근거로 하여 우리 양심에 송사할 때 물리치고 대적하는 능력의 방패가 된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이미 죄에 대하여는 사함을 받은 자요 또한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그의 부활과 함께 새 생명을 얻어 다시 산 것이다.

히브리서 12장 1, 2절에는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는 말씀과 같이 허다한 예수님의 증인들도 복음을 위해 자기 생명을 버리고 죄인을 위해 순교의 피를 흘렸다.
그들의 피 흘림은 복음들고 산을 넘는 아름다운 발걸음이 되어 시대를 넘어 우리에게 까지 복음이 전파되었다.
보혈과 믿음의 증인들의 피의 역사 위에 복음이 전파되었음을 상기할 때 복음의 귀중함과 그리스도의 보혈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며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된다.

(주) 이 내용의 일부는 ”30가지 테마로 본 창조과학”(생명의 말씀사 간, 2010)과 '창세기의 과학적이해”(한국창조과학회/생명의 말씀사 간, 2010)에서 발췌됨.
* 출처 - 2012 국제학술대회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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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피


그리스도의 피(基督-血, 라틴어: Sanguis Christi, 영어: Blood of Christ)는 십자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로 흘렸던 육체의 를 말하며,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인류 구원은 바로 이 피를 흘림으로써 이루어졌다.
보혈
(寶血) 또는 보배로운 피라고도 한다.
가톨릭교회동방 정교회 등에서 성찬례 때 사용하는 축성된 포도주성혈(聖血)이라고 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상에서 흘렸던 피와 동일시하는 신학적 용어이기도 하다.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등은 성찬례에서 사제가 포도주를 축성하면 성령의 힘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변화한다고 가르친다. 다시 말해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아시리아 동방교회 등은 포도주의 형상은 그대로 있으나 그 안에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그리스도의 피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다. 특별히 가톨릭교회에서는 빵과 포도주가 성령의 힘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실체 변화하는 것을 ‘성변화’라고 부른다. 반면 개신교에서는 이러한 실체 변화를 인정하지는 않지만 이를 기념한다는 의미에서 성찬을 거행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희생 제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구약의 속죄의 희생제물은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대제사장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희생 제사를 드리던 성전 뜰은 주님께서 죽으신 골고다 언덕을 가리킨다. 구약의 성막은 손으로 짓지 아니한,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완전한 성막, 즉 하나님의 영광스런 임재가 있는 영원한 천국을 가리킨다.

오늘 성경은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세 가지로 말씀한다. (히브리서 9장 11-22절)

  1.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속죄하신다. (12절) 우리의 모든 죄값을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지불하신다.
  2. 우리를 하나님을 섬기는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신다. (14절)
  3. 영원한 기업을 약속으로 얻게 하신다. (15절)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을 입고 새 생명으로 거듭난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광스럽고 풍성한 기업을 얻게 될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미사 성제 때 집전 사제의 축복 기도와 동시에 성령의 힘이 내려와 빵과 포도주 안에 그리스도의 영과 신성이 깃들게 되면서 그리스도의 빵과 포도주로 실체 변화한다고 가르친다. 가톨릭교회는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성찬례를 제정할 때에 빵과 포도주를 들어 올리면서 “이것은 내 몸이다.”, “이것은 내 피다.”라고 한 말에서 “이다.”라는 말은 사물의 본질에 대하여 말하고 있으므로 단순하게 “상징한다.”라고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있다. 2세기의 순교자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주교(35~110)는 성찬례에 대해 다음과 같은 증언을 남겼다.

“나는 하느님의 빵을 갈망한다. 이 빵은 다윗 가문의 출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이다. 나는 하느님의 음료를 원한다. 이 음료는 썩지 않는 사랑인 그분의 피다.”

그리스도의 성혈에 대한 신심은 15세기 플랑드르 지방을 기점으로 발전하였는데, 하느님의 어린양인 그리스도에게서 또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로 가득 찬 생명의 샘의 은총을 부각시켰다.

지극히 고귀한 그리스도의 성혈 호칭 기도문

○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 그리스도님, 저희의 기도를 들으소서.
○ 우주의 창조자이신 하느님,
● 자비를 베푸소서.
○ 세상을 구원하신 하느님,
● 자비를 베푸소서.
○ 거룩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 자비를 베푸소서.
○ 영원하신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성혈이여,
● 저희를 구하소서.
○ 새롭고 영원한 계약의 궤이신 그리스도의 성혈이여,
● 저희를 구하소서.
○ 사랑과 자비의 샘이신 그리스도의 성혈이여,
● 저희를 구하소서.
○ 성심을 열어 쏟아주신 그리스도의 성혈이여,
● 저희를 구하소서.
○ 매 맞으실 때 흘리신 그리스도의 성혈이여,
● 저희를 구하소서.
○ 가시관을 쓰셨을 때 흘리신 그리스도의 성혈이여,
● 저희를 구하소서.
○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성혈이여,
● 저희를 구하소서.
○ 창에 찔리신 그리스도의 성혈이여,
● 저희를 구하소서.
○ 늑방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성혈이여,
● 저희를 구하소서.
○ 악의 세력을 쳐 이기신 그리스도의 성혈이여,
● 저희를 구하소서.
○ 성직자들의 힘이신 그리스도의 성혈이여,
● 저희를 구하소서.
○ 수도자의 근원이신 그리스도의 성혈이여,
● 저희를 구하소서.
○ 죄인들을 회개로 이끄시는 그리스도의 성혈이여,
● 저희를 구하소서.
○ 회개하는 이의 희망이신 그리스도의 성혈이여,
● 저희를 구하소서.
○ 짐진 이들의 휴식처이신 그리스도의 성혈이여,
● 저희를 구하소서.
○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이의 위안이신 그리스도의 성혈이여,
● 저희를 구하소서.
○ 불신을 신뢰로 이끄시는 그리스도의 성혈이여,
● 저희를 구하소서.
○ 미움을 화해로 바꾸어 주시는 그리스도의 성혈이여,
● 저희를 구하소서.
○ 갈등과 고뇌하는 이의 위로자이신 그리스도의 성혈이여,
● 저희를 구하소서.
○ 임종하는 이의 위안이신 그리스도의 성혈이여,
● 저희를 구하소서.
○ 마음의 안식과 평화이신 그리스도의 성혈이여,
● 저희를 구하소서.
○ 영원한 생명의 증표이신 그리스도의 성혈이여,
● 저희를 구하소서.
○ 모든 영광과 흠숭과 찬미를 받으셔야될 그리스도의 성혈이여,
● 저희를 구하소서.
○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 저희를 구하소서.
○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 저희의 기도를 인자로이 들으소서.
○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 자비를 베푸소서.
◎ 오, 주님! 당신의 거룩한 성혈로 저희를 구원하셨습니다.

+ 기도합시다.

하느님, 당신의 아들 그리스도의 성혈을 통하여 당신은 온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당신 자비로 이루신 구원을 저희 안에 견고케 하시어 저희로 하여금 새 계약의 중재자이신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구원의 열매를 충만히 체험하게 해 주소서. 우리의 주님이시며, 당신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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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속물(代贖物) ransom

예수(Jesus)가 십자가(十字架)의 보혈(寶血)로 만민(萬民)의 죄(罪)를 대신(代身) 씻어 구원(救援)한 일.
대속(代贖) : 대신할 대, 속바칠 속  /



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가복음 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욥기 33:24
하나님이 그 사람을 긍휼히 여기사 이르시기를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하시리라.

󰃨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 하나님께서 심판을 돌이키시는 근거가 언급된다. 영원한 사망의 '구덩이'(22절)에서 구원을 가능케 하시는 것은 사람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대속물을 보시고 돌이키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있는 것이다. 여기서 '대속물'(*, 코페르)에 대해서는 '덮다', '화해하다', '대속하다'라는 뜻의 동사 '카파르'(*)에서 파생되었으며, '구속하다'를 뜻하는 '파다'(*, 개역성경은 '건져서'로 번역함. 시 49:7 참조)와 연관된 속량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대속의 개념은 희생 제물의 피를 뿌리는 제사 의식과 관련이 깊다(레 1:4;4:4;16:21). 일반적으로 이 단어는 범죄에 의한 처형이 있기 전에 그 몸값을 지불하여 자유의 몸이 되게 하는 수단을 가리킨다. 이런 점에서 '그를 놓아주라'(개역 성경은 '건지라'로 번역함)는 하나님의 명령이 '대속물'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의미를 이해하는 빛이 된다.

대속물(3724)

כֹּפֶר 스트롱번호3724

1.

마을

2.

역청

3.

고벨화

발음 [ kôpher ]
어원
3722에서 유래
구약 성경
13회 사용
  • 1.
    명사, 남성 마을, 부락, 촌락, 삼상6:18
  • 2.
    명사, 남성 역청, 송진, 창6:14.
  • 3.
    명사, 남성 고벨화[작은 관목], 아1:14, 4:13.
  • 4.
    명사, 남성 속전, 몸값, 구속의 대가, 출21:30,30:12.

연관 단어

  • 관련 성경
    ☞속죄금(출21:30), 속전(출30:12, 민35:31,32), 마을(삼상6:18), 대속물(욥33:24), 보상(잠6:35), 고벨화(아1:14), 뇌물(암5:12). [동]칠하다(창6:14), 갚다(삼상12:3).


대속물
λύτρον, ου, τό 스트롱번호3083

1. 속전.  2. 석방금.  3. 마 20: 28
발음 [ lütrŏn ]

어원  / 3089에서 유래
  • 1.  속전, 석방금, 마 20: 28, 막 10:45.
  • 관련 성경  /  대속물(마20:28, 막10:45).














표징을 보여주옵소서(삼상 14:8-10, 사사기 6:17,


시편 86:17
은총의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저희가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심이니이다.
Give me a sign of your goodness, that my enemies may see it and be put to shame, for you, O LORD, have helped me and comforted me.






사무엘상 14:8-10
요나단이 가로되 보라,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로 건너가서 그들에게 보이리니.
그들이 萬一(만일) 이같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너희에게로 가기를 기다리라 하면 우리는 우리 곳에 가만히 서서 그들에게로 올라가지 말 것이요.
그들이 萬一(만일) 이같이 말하기를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하면 우리가 올라갈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붙이셨음이니 이것이 우리에게 表徵(표징)이 되리라 하고.


사사기 6:17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산 자의 하나님



1. [마태복음 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2. [마가복음 12:2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3. [누가복음 20:38]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나는 산 자의 하나님을 믿습니다!(마태복음 22:32)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잘 한다는 것은 주로 사람의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이지만 바르게 하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평가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출애굽기 3: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하나님, 이삭하나님, 야곱하나님이니라 모세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사도행전 7:32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이삭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알아보지 못하더라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두개인들이 부활에 대해 예수님과 논쟁하려고 찾아왔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다윗 왕 때 대제사장의 후손들로 덕망 높은 명문가였지만 신앙이 타락해 영도, 부활도 부정하며 ‘사람은 죽고 나면 그만’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었습니다(행 23:6-11).
사람이 죽었다 살아난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소문이 자자해지자 예수님께 도전해 골탕을 먹이기 위해서 찾아온 것입니다.

“7형제가 있는데 맏형이 먼저 죽었습니다. 그러면 형수는 유대 율법에 따라 동생의 부인이 될 텐데, 그런 식으로 7형제가 모두 형수와 결혼했다가 죽는다면 그 형수는 부활 때에 7형제 중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라고 예수님께 따져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답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마 22:27-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셨던 말씀입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고통 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부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예수님이 다시 꺼내서 하신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모세 5경을 신봉하던 자들이라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는 놀라서 감히 더 이상 예수님께 묻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시대로부터 아브라함은 무려 2천 년 전의 사람입니다. 2천 년이 흘렀으니 아브라함의 머리털까지 다 삭아 없어졌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 그리고 이삭의 아들 야곱이 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에는 더 세밀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눅 20:38)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산 자’라고 말씀하신 의미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은 언제 ‘산 자’가 됐습니까. 하나님께서 그가 84세 때 장막에서 이끌어 내셔서 “네 몸에서 난 자식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이가 80이 넘도록 자식이 없을 때입니다. 자신도 늙고, 아내는 이미 경수가 끊어져 자식 얻을 소망이 없어지고 종 엘리에셀을 후계자로 삼겠다고 하나님께 아뢰었을 때 하나님이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100% 믿었습니다(창 15:6). 그때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의(義)로 여기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라면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그 믿음으로 생명을 받은 것입니다. ‘죽은 자’였던 그가 부활의 이름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산 자’라고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아벨이 죽었지만 그 믿음으로 지금까지 말하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히 11:4).
믿음은 우리가 말씀을 믿고 언약을 믿을 때 우리 속에서 요동합니다. 날선 검같이 예리해서 영과 혼과 육까지 찌를 수 있는 하나님의 권세 있는 말씀을 아브라함이 받은 것입니다. 그 말씀을 믿는 순간 아브라함은 부활의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산 것입니다. 하나님은 ‘산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마 27:50-53, 눅 20:38).

창세기에는 세 조상이 등장합니다.

첫 조상 아담은 인류의 조상이지만 불순종의 조상, 사망의 조상입니다.
사망과 고통, 괴로움, 눈물, 한숨, 우수사려를 다 가져다 준 ‘죽은 자의 조상’입니다(롬 5:12, 6:23).

아담의 10대손 노아는 당세에 완전한 사람입니다. 의인으로 인정받았습니다(창 6:7-13, 1:28). 하나님께서 그에게 아담과 똑같은 축복을 주셨습니다(창 9:1). 그러나 둘째 아들 함으로 말미암아 그 축복이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다시 10대가 지나 노아의 10대손 아브라함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써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2천여 년 만에 이 땅에서 잊어버렸던 믿음을 되찾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롬 4:16)

아무리 애써도 일이 안 되다가 도와줄 누군가를 만나면 주위에서 “야, 이제 너 살았다. 그 사람은 널 도와줄 거야.”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은 분명 죽음의 조상인 아담의 후예였지만 믿음으로 살아나 새로운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담은 불신과 사망, 무덤, 눈물, 고통, 괴로움, 근심의 조상,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이 어영부영하는 인생의 조상이지만, 아브라함은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조상입니다. 그래서 믿음 있는 사람은 아브라함과 똑같은 축복을 받습니다(갈 3:7-9). 믿음으로 구원받는 도리가 아브라함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대속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에 생명이 있다는 보혈의 공로를 믿는 부활 신앙의 원리입니다(롬 4:3-25, 8:1-2, 벧전 1:18, 25, 히 9:22, 레 17:11, 마 20:28, 롬 6:1-23, 창 15:6-7).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아브라함같이 말씀의 언약을 믿고 있습니까. 부활의 신앙을 믿지 못하면 모두 거짓입니다. 믿지 못하면 정직하지 못합니다. 성실하지 못합니다. 욕심이 가득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야 합니다(빌 2:5). 남을 싫어하고 저주하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누가 더 좋고 누구는 싫고, 누구에게 더 마음이 가는 것이 없습니다. 어떤 죄인도, 어떤 환경에 있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향해서 구원의 반열에 세우는 일을 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욕심이 없어야 합니다. 자기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한다고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말씀했습니다. 한번 성을 내면 공든 신앙의 탑이 다 무너집니다(약 1:20). 하나님의 뜻을 이룩할 수 없습니다. 90세가 다 된 나이에 ‘네 몸에서 난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라는 말씀을 믿은 아브라함처럼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게 될까?’ 하니 안 되는 것입니다. 신앙도 사업도 모험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고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산 자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흉년이 들었지만 믿고 씨를 뿌렸습니다. 믿지 않는 블레셋이 뿌린 씨는 바싹 타 죽었지만 이삭은 백 배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믿고 판 우물에 샘물이 터졌습니다, 믿지 않는 블레셋이 판 땅에는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말씀대로 하늘의 별 같은 존재가 됐습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하는 사람은 별같이 빛난다고 했습니다(단 12:3).

성도 여러분. 산 자의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생명 자체입니다.
말씀이 생명입니다.
그러니까 “나사로야 일어나라!”,
“다비다야 일어나라!"
“나인성 과부의 아들 청년아 일어나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언약(言約)’이 말씀 언(言) 자를 쓰지 않습니까.
말씀이 왔을 때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20장 34-38절 말씀을 볼 때 아브라함은 성령을 따라 부활을 약속받는 산 자의 조상이 됐습니다.
부활은 죽은 사람이 다시 성령으로 살아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하셨습니다.
말씀을 받을 때 하나님의 영을 받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 것입니다(요 5:24-25).
그 음성을 들을 때 죽은 자의 무덤에서 산 말씀을 통해 다시 새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모세도 자신의 조상인 아브라함,이삭,야곱이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을 들은 뒤 이 3대의 신관(神觀)을 깨닫고 놀랐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비로소 바로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담대하게 애굽으로 들어갔습니다.
육신적으로 생각할 때는 사라는 아이를 낳을 수 없습니다. ‘죽은 태(胎)’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 모든 경계를 유월절 때처럼 뛰어넘어 버리셨습니다. ‘산 태(胎)’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계 앞에 막히지 않습니다. 통과해 넘어가 버립니다. 사라는 자식이 있겠다는 하나님의 천사의 말씀을 들었을 때 장막에서 몰래 웃었습니다.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가 사라가 웃은 것을 알고 “네가 왜 웃느냐?” 물으니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런 하나님입니다. 사라도 믿지 않을 수 없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영을 받고 있습니다. 부활의 말씀을 받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죽지 않고 살아서 홀연히 변화됩니다. 이 말씀이 100% 믿어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신령한 부활의 몸으로서, 그 터전 위에서 죽지 않고 사는, 변화의 말씀을 믿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망을 잡아먹는 놀라운 말씀의 능력과 권세, 마지막 비밀을 가지고 있는 여러분입니다. 생명이 사망을 삼켜버립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세상이 다 지나가기 전에 이룩한다”고 하는 마태복음 24:34-35 말씀을 꼭 믿으십시오.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하신 빌립보서 3장 21절 말씀을 믿으십시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으면 영원히 산다.” (요 11:25-26) 하신 말씀을 믿으십시오. 이것이 결론입니다.
“죽어서 천당 가려고 신앙생활한다”고 하지 마십시오.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염라대왕처럼 죽은 영혼이나 찾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데리고 일하시지 않습니다.
이제 죽은 하나님이 아닌 산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신 5:26, 수 3:10, 시 42:2, 렘 10:10, 호 1:10, 고후 3:3, 딤전 4:10, 히 3:12). 하나님과 간격을 두지 마시고 기차들이 연결되듯 하나님께 바짝 붙어서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님께서 살려주셨다.”는 것을 믿고, 나를 부활의 영으로 축복해 주셨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떨기에 관한 글에 보였으되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눅 20:34-38)

무엇으로 살아 있습니까?
믿음으로, 그리고 주시는 말씀으로 살아 있습니다.
말씀으로 약속된[言約] 하나님을 믿고, 우리도 살았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한 가지 남은 것은 살아서 예수님과 결혼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랑 되시고 우리는 신부입니다 (계 19:7-8). 예수님은 만방에 영원히 빛날 선물을 가지고 하늘나라에서 기다리십니다. 그 결혼식에 가기 위해 입성할 때 천군 천사가 우리를 영접합니다. 죽음도, 아픔도, 눈물도, 괴로움도 없는 세계입니다. 세상 고생은 한 순간에 다 잊어 버립니다(계 21:4). 그날을 생각할 때 이 세상에서 무슨 욕심을 부리겠습니까. 욕심이라면 기도할 욕심, 은혜 받을 욕심뿐이어야 합니다. 이제부터 어디 있든지 낙심하지 말고 “나는 산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하나님의 딸이다!”하는 자부심을 가지고 용기 백배해서 이 어려운 세상에서 승리하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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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령(言霊. 고토다마)은 일반적으로 일본에서 믿어지는 신앙으로, 에 깃들어 있다고 믿어지는 영적인 힘을 말한다.
언혼(言魂)이라고도 쓴다.

소리를 내어 말한 언어가 실제 현실에 무언가 영향을 준다고 믿으며, 좋은 말을 하면 좋은 일이 일어나고, 불길한 말을 하면 흉사가 일어난다고 여긴다. 때문에 축사를 할 때 절대로 잘못 읽는 일이 없도록 주의 받는다. 오늘날에도 일본에 많이 남아있는데, 결혼식 등에서 사용을 피하는 단어들(떠나다, 자르다, 돌아가다 등)도 언령 사상에 기초한 것이다. 일본은 언령의 힘에 의해 복이 찾아오는 나라라고 하여 "언령으로 행복해지고 번영하는 나라"로 불렸다.

이러한 신앙이 생겨난 원인은, 고대에는 "말(言:고토)"과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事:고토)"이 동일한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한자가 도입된 당초에도 말과 현실은 구별되지 않고 사용되었으며, 예를 들면 일본의 신 고토시로누시(事代主)가 고사기에서는 고토시로누시(言代主)라고 쓰여진 부분이 있다.

자신의 의지를 확실히 소리를 내어 말하는 것을 "말을 입에 올리다(言挙)"라고 하는데, 그때 그 말이 자신의 교만함에 의한 것이었을 경우엔 나쁜 결과가 초래된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고사기"에 나오는 야마토타케루이부키 산에 오를 때 산신의 화신과 만났는데 야마토타케루는 그것을 신의 심부름꾼이라고 생각하고, 돌아가는 길에 퇴치하겠다고 “언급”하였다. 그것이 타케루의 자만심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타케루는 신의 저주를 받아 죽게 되었다. 즉, 언령사상은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 단순한 애니미즘적 사상을 넘어서서, 바른 마음가짐의 모습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타 문화권에서도 언령과 비슷한 사상이 발견된다. 구약성경의 "רוח הקודש", 예를 들어 신약성경에서 '성령, 영'으로 번역되는 프뉴마(Πνεύμα) (동사 “불다:πνεω”를 어원으로 하며, 숨, 혹은 거대한 존재의 숨이라는 의미를 포함한다)가 해당된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3장 8절에서 예수가 “바람은 자신이 불고 싶은 곳으로 분다. … 성령으로 난 사람도 모두 이와 같다”라고 언급한 구절에서 '바람'과 '성령'이 동일한 구절을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소리나 말은 불길한 영혼을 내쫓고 자리를 깨끗하게 하는 일을 한다고 여겨진다. (예:신토에서 박수를 치는 것.) 이것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제례, 축제, 악령퇴치 때 행해지는 것이다. 신에게 제사 지낼 때 치는 큰북, 카니발에서의 피리, 종, 큰북, 중화권의 춘절에 쏘는 폭죽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사람의 말도 주문이나 조서의 형태로 그 영적인 힘이 이용된다. 다만 그 근본이 되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事)"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세계적으로 제각기 다른 견해가 있다. 예를 들어 “진리란 반석과 같은 것으로 그 위에 교회를 지을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 혹은 “진실을 알고 싶다면 거울에 너 자신을 비춰보아라, 그로써 모든 것이 명백해 질 것이다”라는 말처럼 현실을 실감나게 파악할 수 있다고 하는 의견이 있고, 혹은 그 “현실” 자체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이것은 서로 다른 문화나 시대에 따라, 또는 개인에 따라 크게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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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령

전 세계적으로 '말에 힘이 있다.'는 개념은 역사가 기록되기 한참 전부터 이어진, 종교의 역사와 함께한 보편적인 개념이다. ‘말이 씨가 된다.’는 식의 속담이 이러한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어떤 문화권이건 민간신앙에 있어서 주문이 얼마나 중요한지만 보아도 언령이라는 것이 인류 보편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것을 미신으로 여겨 적극적으로 배척할 것 같은 이미지인 기독교에서도 '언어 자체에 힘이 있다'는 관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 당장 창세기에서만 봐도 빛이 있으라 하고 말하는 것으로 세상의 창조가 시작되었다고 묘사할 정도이다. 요한 복음서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두고 "말씀이 사람(육신)이 되었다"고 묘사하며, 이 밖에도 성경에서는 여러 가지 야훼의 권능을 두고 '말씀'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전통주의 가톨릭 진영에서는 서방 교회의 표준 언어인 라틴어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신성시까지 하기도 한다. 한편 불교힌두교 등 인도 계통 종교에서는 만트라(진언)라는 개념을 정의하여 특정한 영적/물리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산스크리트팔리어 낱말이나 발음, 구절이 있다고 여기고 있다.

종교가 아니더라도 이러한 개념은 민간사상에 깊게 뿌리를 내렸다. 한민족의 경우만 해도 고조선 시절부터 말을 조심하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호랑이를 "산군님"이라고 부르거나 도둑을 "밤손님"이라 부르는 등 그 존재의 위협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데 제일 먼저 호칭을 피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비슷한 의미에서 고대 중국에서는 아예 황제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피휘라는 개념을 썼고, 그렇게 '삼가는 뜻을 표한다.'는 의미가 맞아떨어져 한반도에서도 줄곧 써먹었다.[1]

[1] 슬라브어파와 게르만어파에서의 도 마찬가지다. 다른 단어로 돌려 말하다가 아예 곰을 가리키던 본래 단어가 실전되어 버렸다.[2] 가령 노블레스에서 라이제르'꿇어라' 한 마디로 상대를 무릎 꿇게 하는 건,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자신과 상대의 정신을 연결시켜 지배한 뒤 명령을 내리는 것이므로 언령이 아니다. 제시카 존스킬그레이브(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역시 범위 내에서만 자신에게 있는 특수 바이러스를 이용하여 통제할 수 없는 강박을 일으킬 뿐, 위와 같은 정신 조작에 가깝다.[3] 금각은각형제의 호리병 앞에서 대답을 하면 호리병 안에 빨려들어가지만, 말은 어디까지나 트리거에 불과하다.[4] 말한 게 거꾸로 된다.[5] 작중에서 스틱의 힘을 이용해 말하는 것이 그대로 현실이 되게 한다. 단, 말을 끝까지 해야만 발동된다는 약점이 있다.[6] 언령 마법을 쓸 수 있는 유이한 등장인물.[7] 단순히 화술이 뛰어난 걸 넘어서 그의 말이 권능이나 다름없기에, 그의 언변에 다들 무의식적으로 경계심을 풀고 따르게 된다.[8] 언령 실체화.[9] 소리를 실체화시키거나, 말의 의미를 구현시키는 등 언령과 유사한 능력을 보인다.[10] 저주 한정이라 주언(呪言)이라고 칭한다.[11] 이누마키의 주언을 모방한 바가 있다.[12] 본래는 화술이 뛰어난 정도에 불과하지만, 생각한대로 능력을 구현시키는 회원들을 상대로는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따라 능력을 강화시키거나 봉쇄하는, 그야말로 말에 담긴 힘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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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靈信仰 (ことだましんこう, 언령신앙)

언령신앙(言灵信仰)은 동북아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오랜 전통으로 말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어 불가사의한 힘이 있다는 믿음이다. 즉 말에 혼(魂)과 영(靈), 즉, 보이지 않는 '힘'이 깃들어 있어 그 말대로 길흉화복(吉凶禍福)이 좌우되고 평생의 운명(運命)까지도 영향을 받는다는 믿음이었다.

  고대 일본 역시 마찬가지로 언어에는 신비한 영적인 힘이 깃들어 있고, 그 힘은 현실세계에 큰 영향력을 갖는다고 여겼다. 그러한 힘을 믿고, 그 힘으로 현실을 바꾸려 하는 것을 '고토다마신코(言灵信仰)'이라 한다. 고대의 일본인들은 좋은 말이나 아름다운 말을 하면 행복이 오고, 반면 나쁜 말을 하면 재앙이 온다고 믿었던 것이다.
  한편, 고대 일본인들은 사람의 이름에도 '언령'이 머물고 있다고 믿었다. 특히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 자신의 혼이라 여겨, 남성이 여성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구혼을 의미한다. 따라서 여성이 남성에게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 준다는 것은 구혼을 승낙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또 염불(念佛)을 외면서 징이나 북에 맞춰서 추는 '염불 오도리'의 경우 '남무아미카불'의 명호를 주문으로 외어 말로써 악령을 물리치는 언령신앙이 깃들어있다. 이처럼 고대 일본에서는 언령신앙이 일상 생활의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어 있었다.
  언령신앙의 영향을 받아 고대에 일본의 제사 의식에서 신을 제사 지낼 때의 언어는 아름답고 엄숙하게 미화되어 문학적 성격을 띄게 되었다. 제사를 연행하는 자는 산 위에 올라가 나라의 땅이 얼마나 기름지고 풍요로운가를 노래로 표현하고는 했는데, 이것은 말의 힘으로 현실 세계의 풍작이 이루어지도록 하려는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는 풍작의 모습을 노래로 표현하는 것으로, 그 노래, 바로 말에 담긴 힘이 현실의 풍작을 가져온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러한 언령신앙의 전통은 '노리토(祝詞)''센묘(宣命)'라는 일본 상대의 고유한 문학 양식을 발달시킨다. '노리토(祝詞)'는 기년제(祈年祭) 등의 궁정제사에서 읊어진 신전에서 부르는 노래를 말한다. 본래는 간단한 주문(呪文)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집단 제사를 올릴 때 선미(善美)를 다한 말들을 봉헌하고, 사람들의 번영과 행복을 기원하고 신의 위력에 감사하는 행사를 거듭하는 동안에 점차 '노리토'의 형식을 갖추게 된 것이다.
  노리토의 주 내용은 신의 이름을 부르고, 제사를 지내는 이유, 제신(祭神)의 내력과 업적의 설명, 진설(陳設物)의 열거, 기원하는 일 등이다. 이러한 내용을 음률과 성조에 유의하여 반복, 대구, 열거, 마쿠라 고토바(일본 전통 시가인 '와카'에서 어떤 말 앞에 붙이는 특수한 수식어), 비유 등을 사용하여 장중미(莊重美)를 살려 읽는 과정을 통해 노리토의 형식을 완성하였다. 문헌상 현존하는 '노리토'는 『엔기시키 (延喜式)』에 수록된 27편과 『타이키 (台記)』에 수록된 1편으로 총 28편이 전해지고 있다.
  한편 '센묘(宣命)'는 천황이 신하에게 내리는 조칙(詔勅)을 말한다. 천황의 즉위나 양위, 황후를 세우는 일, 연호를 바꾸는 일, 황태자를 세우거나 폐하는 일, 상을 주거나 벌을 주는 일 등 국가의 중대한 일에 관하여 작성한 문서이다. '노리토'가 신과 인간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라면, '센묘'는 임금과 신하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장도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었을 뿐만 아니라 감정도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특징이 있다. 현존하는 센묘는 『쇼쿠니혼키 (續日本記)』 62편이 수록되어 있고 그 밖의 문헌에 3편이 수록되어 있다.
  한국에도 '언령신앙'의 전통이 있어, 우리 조상들은 말조심을 강조했다. 특히 설날부터 대보름까지의 기간에는 아예 남에게 듣기 좋은 덕담만 하는 풍습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또한 언령 신앙은 중국이나 한국 등지에서 볼 수 있는 '휘(諱)', '피휘(避諱)'의 풍습과도 연결된다. 원래 '휘'는 죽은 사람의 생전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을 말하였으나, 나중에는 생전의 이름 자체가 '휘'로 와전되는 바람에 이름을 부르지 않는 행위는 따로 '피휘'라고 명명하였다. '피휘'의 풍습은 범위가 확대되어 살아있는 사람에게까지 미쳤다.
  한국 문학의 경우 『삼국유사』 등에서 언령신앙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삼국유사 중 '혜공과 혜숙'의 일화에서 광덕이 아미타불을 향하여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달을 증인으로 삼는다. 여기에는 자신이 바라는 바를 미리 질문으로 던져버려 이루어지리라고 여기는 풍류도 계통의 언령신앙이 담겨있다고 말 할 수 있다. "말이 씨가 된다"와 같은 속담도 언령 신앙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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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붓다

[이처럼 일본 신도의 신들과 신도적 세계관을 밑그림으로 삼고 있는 <너의 이름은>을 통해 신카이 마코토가 정말로 전하고 싶어 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잃어버린 ‘일본’이라는 이름일지도 모른다.]


  신예 애니메이션 감독 신카이 마코토(新海誠, 1973~현재)는 흔히 ‘일본의 램브란트’ 혹은 ‘빛의 작가’로 불릴 만큼 아름답고 절절하면서 한없이 부드럽고 또 잔혹하기까지 한 배경미술의 모노노아와레적 서정성과 함께 특히 강렬하고 세밀하기 그지없는 빛의 상징을 통한 심리 묘사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준다. 그는 실제 풍경을 사진 찍어서 리터칭을 통한 리얼리즘을 추구한다든지, 독백으로 캐릭터의 감정을 표현하는 기법을 선호한다. 그가 최근에 내놓은 <너의 이름은 (君の名は, 2016)>은 <초속5센티미터>라든가 <언어의 정원>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직접 소설도 쓰고 애니메이션도 제작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2016년 8월 일본에서 개봉된 이래  일본영화를 통틀어 역대 2위의 흥행기록을 올려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이목을 모았다. 2017년 1월 한국에서도 공개되었고, 부천국제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장편부문 우수상을 수상받기도 했다. 2018년 2월 까지도 이 작품은 일본 애니메이션 역대 흥행 제1위를 마크하고 있다.

  일본에서 개봉되기 두 달 전에 동명 소설이 가도카와 문고(角川文庫)에서 출간되어 영화 공개시점까지 매출 50만부를 돌파하고 2016년 문고부문 1위의 매출 기록을 올렸다. 소설과 영화는 스토리상의 큰 차이는 없지만 화자가 조금 다르다. 소설판은 다키와 미쓰하의 1인칭 시점만으로 서술되어 있는 데 비해, 애니메이션판은 3인칭 시점이다. 이 밖에 가노 아라타(加納新太)가 쓴 가도카와 스니커문고(角川スニーカー文庫)판 소설도 있다. 여기에는 신카이의 소설에 나오지 않는 에피소드 3개가 추가되어 있다. 이 두 종류의 소설 <너의 이름은>은 모두 한국어 번역본이 나와 있다. 처음에 혜성이 낙하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가상적인 마을 이토모리에 사는 여고생 미쓰하는 미야미즈(宮水)신사 가문에서 태어난 무녀이다. 그녀와 도쿄에 사는 고교생 다키는 꿈에서 몸이 서로 바뀌는 기이한 체험을 하게 되고 둘은 서로가 남긴 메모와 일기를 통해 상대방의 인생을 알아 나가지만,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몸이 바뀌지 않게 된다. 그러자 다키는 자신이 체험한 이토모리 호수 마을의 풍경화를 여러 장 그린 후 어딘지도 모르는 그곳을 찾아 떠난다. 그의 손목에는 언제나처럼 부적 실매듭이 둘러져 있다. 하지만 언제 누구한테 받은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던 때 우연히 들른 라면집 주인이 이토모리 마을 출신이었는데, 그는 3년 전 이토모리 마을이 혜성 ‘티아마트’의 운석 재해로 전체 주민 1500여 명 중 500여 명이 죽고 나머지도 점차 마을을 떠나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고 전해준다. 운석은 축제 중이던 미야미즈신사 부근에 떨어졌고, 그곳은 원래 있던 이토모리 호수 근처였기 때문에 내부에 물이 흘러들어 하나의 조롱박 형태의 새로운 호수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다키는 휴대전화에 입력해 놓았던 미쓰하의 일기를 불러오지만, 그 글씨들이 다키가 보는 앞에서 모두 지워져 버린다. 도서관에서 찾아낸 관련 책자에서 다키는 미야미즈 히토하(82세), 미쓰하(17세), 요쓰하(9세)가 모두 사망자 명단에 들어있는 것을 알게 된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다키가 미쓰하의 구치가미자케(口噛み酒)를 마심으로써 둘은 다시 몸이 바뀌고 순간적이나마 황혼녘 때 극적인 재회를 한다. 그 직후 미쓰하의 몸으로 바뀐 다키는 마을 이장인 아버지를 설득하여 재앙을 피한다. 5년 후 다키와 미쓰하는 모두 상대방의 이름도 잊어버렸지만 우연히 도쿄에서 만나 서로 이름을 묻는다.

  이 <너의 이름은>은 내가 아는 한 일본 신도의 핵심을 가장 잘 묘사한 서브컬쳐 작품이다. 몸이 바뀐다는 중심 모티브 자체가 몸에서 혼이 빠져나온다는 신도적 관념을 전제로 하고 있다. 가령 새로 즉위한 천황이 최초로 행하는 추수감사제인 대상제(大嘗祭, 다이조사이)에 앞서 행해지는 진혼제(鎭魂祭)는 혼이 몸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안정시키는 의식을 가리킨다. 또한 《일본서기(日本書紀)》의 오나무치(大國主神) 신화에서는 스쿠나히코나(少彦名)가 바다 저편에서 빛을 발하며 다가와 자신을 모시면 나라를 세울 수 있다고 하면서 스스로를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오나무치의 행혼(幸魂)・기혼(奇魂)’이라고 밝힌다. 이는 혼과 몸이 분리될 수 있다는 관념이 투영된 신화라 할 수 있다. <너의 이름은>에서 주인공의 혼이 자기 몸을 빠져나와 상대방의 몸으로 들어간다는 발상의 바탕에는 이와 같은 일본의 전통적 관념이 깔려있는 것이다.

  이런 몸의 뒤바뀜에 대해 소설판의 다키는 흥미롭게도 “인격이 서로 뒤바뀐다는 일 자체는 말도 안 되는 경험이었지만, ‘나라는 존재로부터 잠시 동안 멀어질 수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면 일종의 ‘자유’를 획득하게 되는 셈이 아닐까?”라고 반문한다. 하지만 이때의 자유는 우리나라 무속의 경우처럼 한(恨)을 ‘풀어내는’ 자유가 아니라 인도 요가의 경우처럼 ‘묶어내는’ 자유에 속한다. 실제로 영화 <너의 이름은>에서는 묶는 것을 뜻하는 일본어 ‘무스비’(結び)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미야미즈신사의 여궁사인 미야미즈 히토하는 이 무스비의 의미에 대해 손녀딸 미쓰하와 요쓰하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쳐 준다. 

  “땅의 수호신을 말이다. 옛말로 ‘무스비’라고 부른단다. 여기에는 몇 가지 깊은 뜻이 있지...실을 잇는 것도 무스비, 사람을 잇는 것도 무스비, 시간이 흐르는 것도 무스비. 전부 같은 말을 쓴단다. 이 말은 신을 부르는 말이자 신의 힘이란다. 우리가 만드는 실매듭도 신의 솜씨와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지...한데 모아서 모양을 만든 후에 꼬아서 휘감고, 때로는 되돌리고, 끊기고, 또 이어지고, 그것이 실매듭. 그것이 시간. 그것이 무스비...물이든 쌀이든 술이든, 무언가를 몸에 넣는 행위 또한 무스비라고 한단다. 사람 몸에 들어간 것은 영혼과 이어지는 법이지. 그러니 오늘 올리는 제사는 말이다. 미야미즈 가문의 핏줄이 몇 백 년이고 지켜온, 신과 인간을 단단히 이어주는 아주 소중한 전통이란다.” 

  “신이란 말이다, 관계를 의미한단다. 말은 사람과 사람을 엮지. 말 자체는 신이 아니지만 말에 의해 엮이는 마음 자체는 신이 되는 거야. 주먹밥은 신이 아니지만 쌀을 만든 땅과 물, 그리고 쌀을 기르고 수확한 사람과 쌀로 밥을 지어 주먹밥으로 만든 사람, 나아가 그 주먹밥을 받아서 먹는 사람을 모두 이어주지. 주먹밥으로 이어지는 그런 관계가 신이라는 뜻이지. 꿈이란 말이다, 평소와 다르게 어디인지 모르는 장소에서 상식을 벗어난 연을 맺는 일이란다. 그것도 ‘무스비’라고 부를 수 있는 게지.”

  단적으로 말해 무스비는 신(神)이다. 《고사기(古事記)》는 무스비를 원초적 신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신으로서의 무스비는 모든 관계성이자 시간이고 언어이며  실매듭이면서 동시에 먹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그것은 실과 실, 사람과 사물, 사람과 사람, 몸과 영혼을 연결시켜 주는 신의 힘 그 자체이다. 이 중 시간과 신을 동격으로 여기는 관념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시간의 신 크로노스를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관계성을 신적인 무스비로 여기는 관념은 지극히 일본적이다. 그것은 관계를 중시하는 간인(間人)주의라든가 장(場)의 윤리, 역(役)의 원리, 세켄(世間), 화(和)의 원리와 같은 일본문화코드를 연상케 한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신을 언어와 연관시키는 발상이다. 사실 고대 일본인은 언어와 사물 사이를 구분하지 않고 양자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여 말 속에 영혼이 깃들어있다고 믿었다. 이를 ‘언령(言靈)신앙’이라 한다. 통상 신은 인간과 사회와 세계의 구성에 관여하는 근원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신으로서의 무스비를 언어와 동일시하는 위의 관념은 지극히 라캉적이다. 라캉은 언어야말로 그가 상징계라고 이름붙인 인간과 사회와 세계의 구성을 결정짓는 근원적 요소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너의 이름은>이 표현하는 세계는 시공간이 연결되어 있는 무스비의 세계라 할 수 있다. 

  미쓰하는 마을 사람 대부분이 같은 신을 모시는 이토모리 마을의 오래된 미야미즈신사 집안의 손녀딸이다. 할머니가 신사를 지키는 궁사를 맡고 있기 때문에 미쓰하와 요쓰하는 마쓰리 때마다 무녀로서 신에게 바치는 제물인 신악무(神樂舞)를 추는 등 주역을 맡는다. <너의 이름은>의 중심 무대인 미야미즈신사는 대대로 여자가 이어받기 때문에 미쓰하는 언젠가 할머니의 뒤를 이어 신주가 되리라는 기대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신사는 실이나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신의 힘을 ‘무스비’로서 섬기고 있으며, 신체(神體)는 이승과 저승, 현재와 과거,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장소로 여겨진다. 혜성 티아마트가 떨어진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그 제신의 이름은 미야미즈 가문의 조상신인 시토리노카미다케하즈치(倭文神建葉槌命)로 별칭 아메노하즈치노오노카미(天羽槌雄神)라고도 한다.

  이 신은 《고사기》에는 등장하지 않으며, 《고어습유 (古語拾遺)》에서 인간에게 베 짜는 방법을 가르친 베틀의 신으로 나온다. 또한 《일본서기》에 따르면 천신 계열의 무신(武神)인 후쓰누시와 다케미카즈치가 토착신들을 평정하려 했을 때 별의 악신 아메노카가세오(天香香背男)만 토벌하지 못해 곤란해 했다. 이때 그들 대신 나아가 별의 신을 굴복시킨 자가 바로 베틀의 신 시토리노카미다케하즈치였다. 이토모리 마을에는 이 신이 끈을 무수히 엮어서 용을 휘감아 퇴치했다는 전설이 있다. 이처럼 일본 신도의 신들과 신도적 세계관을 밑그림으로 삼고 있는 <너의 이름은>을 통해 신카이 마코토가 정말로 전하고 싶어 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잃어버린 ‘일본’이라는 이름일지도 모른다.   

박규태_
한양대학교 일본학과 교수
chat0113@daum.net
논문으로 〈현대일본종교와‘마음’(心)의 문제-‘고코로나오시’와 심리통어기법에서 마인드컨트롤까지-〉,〈고대 오사카의 백제계 신사와 사원연구〉등이 있고, 저역서로 《일본문화사》,《신도,일본 태생의 종교시스템》,《일본정신의 풍경》,《일본 신사의 역사와 신앙》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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