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와 같다(잠언 18:10)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The name of the LORD is a strong tower; the righteous run to it and are safe.

구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로 소개합니다.
따라서 구약의 백성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시편 116:4).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신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 라고 합니다.
따라서 신약의 백성들은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요한복음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신약에서 예수님의 명칭을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예수
둘째는 그리스도
셋째는 임마누엘

예수라는 이름은 "저희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 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뜻을 간략하게 "예수 내 구주!"라고 하겠습니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 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기름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곧 성령을 받았다는 것으로 성령을 받은 자가 거듭난 사람이며 거듭난 사람만이 생명을 갖기 때문에 "예수 내 생명!" 이라고 합니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연약한 나는 강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어리석은 나는 지혜롭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임마누엘이란 "예수 내 권세!"라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이름에 따른 외침은 곧 그리스도인의 기도 내용이며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Youtube
동영상 자료  https://youtube.com/shorts/5Y7GtvNptCo?si=TSAtmd-AX0iv8yCz






승천(昇天)과 강하(降下)


승천(昇天) : 하늘에 오름.
강하(降下) : 높은 곳에서 아래로 향하여 내려옴.

성경에는 살아서 하늘로 올라갔던 인물 - 에녹과 엘리야
반면에 살아서 음부에 내려간 사람들 - 고라, 다단, 아비람(민수기 16:1-35)

축복기도(민수기 6:24-26. 고린도후서 13:13)



아론의 축복기도는 민수기 6장 22-27절에 기록된 기도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민 6:24)
  •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민 6:25)
  •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민 6:26)
    이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를 구하는 강력한 기도로, 여러 세대에 걸쳐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아론의 축복기도  (민 6:22-27)


이스라엘과 우리나라의 공통점은 인사의 내용이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인사는‘살롬’입니다. 살롬의 뜻은 안전의 의미가 담긴 평화를 비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안녕’과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나라는 오천 년의 역사 중에 외세의 침입이 많았습니다. 자고나면 마을이 불태워지고 수많은 이웃이 죽거나 끌려가는 불행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밤새 안녕하셨습니까?”라고 안부를 먼저 물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시 불행한 역사가 많았습니다. 이방나라의 침입으로 많을 고통을 당하기도 했고, 심지어 나라가 망하는 불행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살롬’이라고 상대방에게 인사를 합니다. 이스라엘의 수도가 예루살렘인데 ‘평화의 터’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된 평화(평강)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초대 제사장이었던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통해 백성들에게 축복하게 하기를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는 그의 백성들에게 참된 복을 주실 뿐만 아니라 그 복을 지속적으로 지켜주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얼굴을 그를 신뢰하고 순종하는 백성들에게 향하여 은혜를 베푸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3. 여호와는 얼굴을 향하여 평강 주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의 얼굴은 복과 저주를 결정하는 기준이 됩니다. 그래서 신앙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그 얼굴을 향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의 얼굴을 향하여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복은 ‘살롬’(평화, 평강)입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걱정, 근심, 불안, 절망의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최고의 권력자 대통령에서부터 가난한 서민에 이르기까지 이런 것들이 없는 평화를 누리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걱정, 근심, 불안, 절망이 최고조에 이르면 인생을 포기하게 됩니다. 얼마 전에 20대의 인기연예인이 자살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인터넷의 악성 댓글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환경에 따라 걱정과 근심, 불안, 절망에 이릅니다. 그래서 무당을 찾아가 그런 것들을 해소하려고 합니다.


사울 왕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이 가리어진 그의 삶은 걱정, 근심, 불안, 절망의 연속이었습니다. 악신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그는 변장하여 무당을 찾아가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참된 평화(평강)를 얻지 못하고 전투에서 부상을 입어 자살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찾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다면 결코 그렇게 비참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찾는 행복(평화)도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행복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있습니다. 세계의 평화를 위해 창설한 기구가 유엔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강대국들의 실리 때문에 약소국들의 평화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할 수 있는 것이 유엔을 만드는 것이지만 그것이 이 땅에 참된 평을 안겨주지 못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림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전쟁과 테러의 위협으로 평화가 상실되고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일시적이지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론을 통해 참된 평화를 축복하기를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평화)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릅니다. 이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의 왕이요, 평화의 완성자입니다.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를 볼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참된 평화를 주셨다는 사실을 고백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마귀는 평화를 깨드리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평화를 누리며 살던 아담 부부에게 마귀는 뱀을 이용하여 그들을 유혹하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평화를 깨드리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불행의 출발이 마귀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마귀와 귀신에게 행복을 구하고 있습니다. 서울에는 목사의 숫자보다 무당의 숫자가 더 많다고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도둑(마귀)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고 말씀 했습니다.


대하 20장에 여호사밧이 유다의 왕으로 있을 때 암몬 나라가 침략을 했습니다. 이 사실을 보고 받은 여호사밧은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의 숫자가 유다의 군대보다 많았던 것 같습니다. 여호사밧은 여호와께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온 백성들에게도 금식하게 했습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를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20:12)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사밧과 유다 백성들을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암몬의 큰 군대를 칼 한 번 쓰지 않고 전멸시켜버렸습니다. 대하20:30절에 “여호사밧의 나라가 태평하였으니 이는 그의 하나님이 사방에서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음이더라”고 했습니다.


시29:11에 다윗은“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고 했습니다. ‘자기 백성’은 곧 하나님의 신뢰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의 특징은 믿음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전혀 신뢰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복은 임하지 않고 진정한 평화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실패자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신뢰하지 않고 자신을 의지하거나 하나님을 떠날 때에 어려움과 불행이 주어졌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멸망된 사건입니다. 그들이 왜 멸망당했습니까? 군사력이 약해서 멸망당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우상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우상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그들에게서 평화를 거둬버렸습니다. 예수님을 배척하고 기독교를 핍박했던 이스라엘이 A.D 70년 로마에 의해 비참하게 멸망당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정신적인 지주였던 성전이 파괴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전 세계로 흩어져 핍박을 받았습니다. 독일의 히틀러에게 600만이 죽임을 당하는 치욕을 당했습니다. 이들이 왜 그렇게 당했습니까? 하나님의 참된 평화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자유입니다. 믿음을 가지든지 믿음을 가지지 않든지 선택은 자유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 참된 행복, 참된 구원은 우리의 선택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평화, 행복, 구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참된 행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평화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참된 평화는 우리에게 참된 행복과 참된 구원으로 이어집니다. 아론은 백성들에게 축복하기를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평화)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평화’는 인간이 가져야 할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이 평화는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게 아담에게 주셨던 선물입니다. 평화는 하나님과 하나된 것이고, 자연만물과도 하나된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하여 평화가 깨어졌을 때 인간의 비참함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은 물론이지만, 자연과도 하나되지 못했습니다. 자연은 인간으로 하여금 땀을 흘리게 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영생을 상실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상실된 영생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로만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참된 평화의 실체였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어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고 선언했습니다. 주님은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6)고 했습니다.


아론을 통해 백성들에게 축복하게 하신 하나님의 본심은 인간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지 않고는 인간이 추구하는 참된 행복, 참된 평화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에게 주어지며, 그 복의 실체는 평화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평화에는 우리가 구하는 행복과 구원이 있습니다. 평화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에게 이 복이 충만하게 채워질 것입니다. 재물과 건강, 명예와 권력을 얻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신앙을 가지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은 곧 하나님의 평화(평강)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자들에게 평화의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의 복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참된 행복과 천국을 소망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강림



데살로니가전서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Q. 누가 하늘로부터 강림하신다고 말씀하나요?
  A. 주께서. / 원어로 보면, ‘주님’이 강조되었다. ‘주께서 친히’, ‘주님이 직접’ 오신다는 뜻이다.

Q. 강림이 무슨 뜻인가요?
  A. 신이 하늘에서 인간 세상으로 내려옴.[네이버사전]

강림 : 내릴 강(降), 임할 림(臨). 강림은 내려온다는 뜻이다.
주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신다는 예언이다.
이 말씀에서 주의 강림은 두 번째 다시 오심을 가리킨다.

Q. ○○는 주님이 강림하실 것이라고 믿나요, 안 믿나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A. 자녀의 말을 들어보자.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이다. 전에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모두 이루어졌듯이, 예수님의 강림 예언도 반드시 이루어진다.

Q. 주께서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때, 무슨 소리가 난다고 말씀하나요?
  A.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

호령 : 큰 소리로 외치는 명령.

Q. 주님이 강림하실 때 들리는 호령은 무슨 명령일까요?
  A. 자녀의 말을 들어보자.

Q. 천사장(천사의 우두머리)의 소리는 무엇일까요? 나팔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요?
  A. 자녀의 말을 들어보자.

Q. 하늘로부터 주님이 강림하시는 광경은 어떨 것 같아요?
  A. 다양한 대답이 가능하다.

위엄 있고, 장엄한 광경이 펼쳐질 것이다.

Q. 주님이 강림하실 때, 누가 먼저 일어난다고 말씀하나요?
  A.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

Q.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누구를 가리키나요?
  A. 예수님을 믿고 죽은 성도들.

죽음은 끝이 아니다. 반드시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날 것이다.

Q.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몇 명일까요? 그들이 동시에 일어나면 어떤 광경이 펼쳐지는지 말해보세요.
  A. 자녀의 말을 들어보자.

예수님을 믿고 죽은 성도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수백억명도 더 될 것이다.
물에서, 무덤에서, 도로에서 죽었던 자들이 다시 부활할 것이다.
부활한 성도의 모습은 좀비처럼 괴물과 같이 생기지 않았고, 예수님의 부활처럼 썩지 않고 죽지 않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가 주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하옵소서.
죽음이 끝이 아님을 알고, 반드시 부활이 있음을 믿고, 이 땅에서 지혜롭게 살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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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재림과 성도의 휴거(데살로니가전서 4:14 - 5:6)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재림의 소식입니다. 신약성경의 여러 서신서 중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전체의 주제로 삼은 것은 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입니다. 우리는 이 두 책에서 종말 성도에게 주시는 주님의 귀한 교훈을 받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소박한 신앙인들이었습니다. 복음을 듣고 믿은 지 오래지 않아서 그런지 그들은 순수하면서도 뜨거운 마음으로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겼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편지하면서, “여러분들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첫사랑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소박한 신앙에서 나온 지나친 열심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가진 것이 문제였습니다. 

살후 3:11=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재림을 대망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일상생활의 규모를 잃어버린 것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의 재림에 대해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진리를 분명히 깨닫고 가르침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성도 여러분의 재림 신앙을 더욱 돈독히 다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1.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

16절=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본문에 나타나 있는 예수님 재림의 모습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때는 엄청난 일이 동반됩니다. ‘호령’ 이 있고, ‘천사장의 소리’ 와 ‘하나님의 나팔소리’ 가 울려 퍼집니다. 나팔소리가 날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 이 무덤을 열고 다시 살아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여기 ‘호령(켈류스마티)’ 은 지휘관이 군인에게 내리는 명령인데 거부할 수 없는 귄위를 가집니다. ‘천사장의 소리’ 는 가브리엘이나 미가엘과 같은 천사장이 죽은 자들을 깨우는 음성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나팔 소리’ 는 하나님이 직접 나팔을 분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하는 나팔’ 이란 뉘앙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나팔을 분다’ 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산 아래로 모으고 하나님의 임재를 알릴 때(출 19:13,16,19), 새해가 시작 됨을 알릴 때(레 23:24), 타국에 흩어져 있던 백성들이 성산에 돌아옴을 알릴 때(사 27:13), 그리고 심판의 날이 임박했음을 알릴 때(욜 2:1) 나팔을 부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의 날에 하나님의 나팔이 울린다는 것은 새 세계가 도래하는 시점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불러 모으는 것을 나타냅니다(마 24:31).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도무지 믿기 어려운 말씀이고 인간의 이성이나 과학으로는 결코 풀 수 없는 영역의 사건들입니다. 성경은 이처럼 초자연적인 사건인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을 거침없이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곳만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4장, 마가복음 13장, 누가복음 21장에도 그리스도의 재림과 종말에 대한 상세한 말씀이 나옵니다. 위의 세 장을 가리켜 ‘소(小)계시록’ 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내용이 요한계시록을 압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 24:30에서 예수님은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본절(16절)과 잘 부합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요 진리입니다. 만일 주님의 재림이 거짓이라면 성경의 모든 것이 무너질 수밖에 없고 우리의 신앙도 헛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라나타! 주님은 반드시 속히 오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주님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난다’ 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 때 땅에서 일어날 현상 가운데 하나는 무덤들이 열리고 죽은 자들이 부활하는 것입니다. 엄청난 일입니다. 

여기에서 성경은 죽은 자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로 한정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죽은 성도들만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한 축복에 참여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이미 죽어 땅속에 묻힌 자들은 주의 재림의 날 그 영광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들의 생각과 달리, 죽은 자들이 살아 있는 자들보다 먼저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내용입니다. 거기에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 예수님의 재림 때에 그리스도인들이 부활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14절=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예수께서 육체적으로 죽지 않으셨다면 인간의 죄악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께서 육체적으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는 죄 있는 여느 인간과 조금도 다름 없는 존재로서 그의 죽음은 무가치한 것 밖에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심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메시야(=그리스도) 이심을 나타내셨고, 또한 그를 믿는 모든 자들로 부활의 소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14절은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 을 ‘데리고 오실 것’ 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 신앙 때문에 죽은 자들’ 을 하나님께서 하늘에서부터 ‘붙잡아 함께 인도하실 것’ 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16절에는 주님의 재림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난다’ 는 표현이 있습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3:13에 보면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신다’ 고 했습니다. 따라서 본절(14절)은 예수 믿고 죽은 성도들의 영혼이 낙원에 올라가 있다가(눅 23:43) 예수님 재림 때에 그와 함께 영으로 내려온다는 표현이고, 16절은 죽은 후 영혼과 분리되어 땅 속에 묻혀 있던 성도들의 육체가 그 영혼을 만나 다시 살아난다는 표현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의 계시의 말씀을 받은(15절) 사도 바울은 주님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에 대한 분명한 그림을 갖고 있었습니다. 

15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여기 ‘강림’ 이라는 말이 직접 나오는데, 이 단어(=파루시아)는 원래 황제가 지방의 도시를 방문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황제의 방문에는 그 도시민들의 환영 행사가 있었고, 황제가 내리는 상(賞)에 대한 시상식이 수반되었습니다. 따라서 황제의 ‘파루시아’ 는 그 도시에 큰 영광이요 기쁨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개념이 신약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개념으로 된 것입니다. 

그런데 15절과는 달리 16절의 ‘강림하시리니’ 로 번역된 단어(=카타베세타이)는 ‘위에서부터 아래 쪽으로 내려오다’ 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는 예수님의 재림이 영(靈)으로만 오시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체로 내려오는 ‘하강의 모습’ 을 강조하는 표현이라 하겠습니다(행 1:11 참조). 이것은 예수님이 영적으로 재림할 것이라는 이단의 가르침이나, 초림 때 처럼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날 것이라는 이단 사설들이 옳지 않음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재림을 확신하십니까? 주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마지막 나팔에 무덤을 열고 다시 살아날 꿈을 갖고 계십니까? 

2. 성도의 휴거, 그 황홀한 광경

17절=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본절은 휴거(Rapture) 교리의 근거가 되는 구절입니다. 예수님 재림 때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이어서 살아 있던 성도들의 몸은 홀연히 다른 몸으로 변화하여 공중으로 끌려 올라갑니다. 

고전 15:51-52=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성도 여러분! 이것은 저와 여러분이 이제 곧 경험하게 될 엄청난 사건입니다. 그 황홀한 광경이 바로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절에서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라고 한 것은 돌연히 잡아채는 것, 강탈해 가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하르파조)의 수동태입니다. 주님 재림 시에 살아남은 성도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님의 뜻에 의해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순간에 부활한 성도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휩쓸려 올라가거나 낚아채어져 올라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영접’ 이라는 말은 당시 황제가 행차할 때 성읍의 성주가 얼마간 나아가서 황제를 영접하여 성 안으로 인도해 들어오는 장면을 염두에 둔 말입니다. 따라서 본절은 성도들이 구주 되시는 예수님을 영접하러 나간 뒤 다시금 돌아온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접의 최종 상태는 성도가 그리스도와 영원히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한편 휴거된 성도들이 재림 주 예수를 영접하는 장소는 ‘공중(아에라)’ 입니다. 이 말은 지구의 대기권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악한 영이 공중에 대한 권세를 잡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는 점입니다(엡 2:2). 

따라서 ‘공중에서 주를 영접할 것’ 이라는 말은 재림의 날 사탄은 완전히 패배할 것이며 주의 성도들은 사탄의 영역을 깨뜨릴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L. 모리스(Moriss)는 논평하기를, “주께서 자기 성도들을 마귀의 근거지에서 만나기로 하셨다는 것은 마귀의 세력을 완전히 정복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라고 했습니다. 

휴거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살아남은 사람들이 죽은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강력한 힘에 의해 끌어올려지는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서로 연합하게 하기 위함이고, 또한 그들 자신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휴거 받은 성도들은 그들이 살아남은 자이든 죽은 자이든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것이며, 또한 무엇보다 그리스도와도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휴거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이 있기는 하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가 들림받는 궁극적인 목적이 단순한 황홀경이나 광희(狂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성도 서로 간의 연합과 예수님과의 연합을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빌 3:20, 21=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7절을 다시 봅시다.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이 말씀은 주님의 재림의 때에 성도들이 주님을 영접한 뒤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이라는 가슴 벅찬 말씀입니다. 이는 이미 시작된 주님과의 관계가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와 영원히 함께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성도에게 있어서 최대의 소망이자 최고의 축복인 것입니다. 

그때에는 더 이상의 고통도 더 이상의 슬픔도 없습니다. 오직 능력의 삶만이, 오직 기쁨의 삶만이 우리에게 예비되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그 순간을 소망하면서 현재의 고통과 고난을 이겨나가야 할 것입니다. 종국에 가서는 우리 모두 영원히 주님과 함께 할 것이므로 이 땅의 삶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지라도 주님을 배반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 거하는 복된 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3.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

6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재림과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 그리고 살아남은 성도들의 휴거에 관하여 생각해 왔습니다. 이어서 5장에서는 재림의 시기에 관하여 언급하면서, 빛의 자녀들인 성도들이 어떻게 재림을 기다려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재림의 시기를 두 가지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임한다’ 는 것이고(2절), 또 하나는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른다는 것입니다(3절). 두 가지 모두 갑자기 임한다는 면에서는 공통점이 있습니다만, 자세히 보면 다릅니다. 

첫째, 도둑은 방심하다가 도둑맞는 것이지, 준비하고 방비하면 도둑맞을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잉태한 여인에게 해산의 고통은 그렇지 않습니다. 도둑처럼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주님의 재림은 임신한 여인에게 때가 되어 찾아오는 해산의 고통과 더욱 닮았습니다. 

또한 도둑은 손해 일변도입니다. 도둑을 맞게 되면 물질을 잃게 되고 정신적인 타격을 받게 되고 심지어 살상을 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해산의 경우 얼마동안 고통을 받지만 그 고통을 능가하는 아름다운 선물을 빋게 됩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밤에 도둑같이 오는 것은 불신자가 예수님의 재림을 맞는 것을 가리킨다면, 임신한 여인이 아이를 낳는 것은 우리 성도들이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자신들이 준비를 잘 하면 도둑 걱정은 없다고 생각하다가 막상 주님 오실 때에 ‘산아 바위야 나를 가리라’ 고 부르짖게 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영원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임신한 어머니가 아기를 위해 미리 준비하고 의사에게 태아의 건강상태를 체크하면서 대처해 나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것은 종말 시대의 성도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이 반드시 다시 오신다고 믿고 재림을 준비하는 사람은 모두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재림을 믿지 않고 준비하지 않는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6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 ‘다른 이들’ 은 자신의 구원에 무관심하고 다가오는 심판의 날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영적으로 무감각한 상태에 있는 자들입니다. 밤의 아들들이 영적으로 무감각한 채로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낮의 아들들은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깨어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다’ 는 말은 원문으로 볼 때 ‘술 취하지 않은 완전히 맑은 정신 상태’ 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신학자 헨드릭슨은 이 말을 ‘영적 도덕적 진실에 충만하여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너무 들떠 있지도 않고 완전히 무관심하지도 않은 채, 조용하고 꾸준히 그리고 정신을 바짝차리고 자기의 책임과 직무를 완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온 세상이 죄의 흑암으로 뒤덮일지라도 여러분은 영적으로 깨어 근신하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이 땅을 향한 주님의 의도와 말씀에 민감하며, 동시에 지금 여러분이 하고 계시는 그 일에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한 손에는 주님의 재림을 대비하는 적절한 경각심을, 다른 한 손에는 주님의 재림에 대비한 적절한 근신을 들고 있기를 바랍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약속하신대로 반드시 속히 오십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마태복음 24장에 있는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에 의하면 우리가 자신의 직업에 몰두하고 있을 때 주님이 홀연히 강림하셔서 우리를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마 24:40-41=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종말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은 예수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어느 순간 주님이 오시든 부끄럽지 않게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는 것입니다. 

실로 그리스도의 재림은 우리에게 최고의 축복이요 최상의 상급입니다. 그날 우리 모두 홀연히 변화하여 공중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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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降臨)과 휴거(携擧, Rapture) 데살로니가전서 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降臨)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携擧)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도입 이야기)
 문화 차이에 의해서 경험한 이야기
 미국에서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두 자녀들이 미국에서 유치원 과정을 마치고 부모님이 한국에서 사업을 하게 되어 한국에 정착한 후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한번은 아이들이 선생님으로부터 꾸중을 듣게 되었는데 두 아이들이 선생님을 쳐다보자 선생님은 버릇없이 선생님을 쳐다보느냐 하며 호되게 야단쳤다고 합니다. 얼마 후 집에서 부모님으로부터 꾸중을 듣게 되어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부모님의 야단치는 이야기를 듣는데 이번에는 왜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느냐 하며 꾸짖습니다.
 두 아이들은 한국과 미국의 문화 차이에 혼돈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도 이와 비슷한 현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강림이란 단어는 한글성경에서 39회 사용되었습니다.
 휴거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두 불구하고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휴거에 대한 신앙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생각하며 "강림과 휴거"라는 주제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 강림(降臨) 데살로니가전서 4:16

헬라어 성경에 "강림"으로 번역 된 단어가 세 가지입니다.
카타바이노, 파루시아, 에르코마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携擧)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For the Lord himself will come down from heaven, with a loud command, with the voice of the archangel and with the trumpet call of God, and the dead in Christ will rise first.

강림이란 "내릴 강(降)" "임할 림(臨)"
한글성경에 39회(구약 23회, 신약 16회)
특히 데살로니가전서 후서에서 9회(전서 6회, 후서 3회)
NIV 성경 - come down
헬라어 - 카타바이노(καταβαίνω) / 카타(κατά) + 바이노(βαίνω) / down + stepping, walking Strong's Greek: 939. βάσις (basis) -- a foot

Strong's Exhaustive Concordance. foot. From baino(to walk)
basis : a foot
Original Word : βάσις, εως, ἡ

Strong's Greek: 1684. ἐμβαίνω (embainó) -- to walk on, to

Strong's Concordance. embainó: to walk on, to step into, ie embark. Original Word:
ἐμβαίνω Part of Speech: Verb Transliteration: embainó Phonetic


(예) 누가복음 3:22(강림, 카타바이노), 데살로니가전서 4:16(카타바이노)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예) 고린도전서 15:23(강림, 파루시아)  παρουσία(parousia. 3952) a presence, a coming, 요한일서 2:28(파루시아), 베드로후서 1:16(파루시아), 3:4(파루시아), 야고보서 5:7-8(파루시아), 데살로니가후서 2:1(파루시아), 데살로니가후서 2:8(파루시아), 데살로니가전서 2:19(파루시아), 데살로니가전서 3:13(파루시아), 데살로니가전서 4:15(파루시아)

(예) 데살로니가후서 1:10(에르코마이) ἔρχομαι(erchomai. 2064)  to come, go
 데살로니가전서 1:10(에르코마이),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휴거(携擧, Rapture)

데살로니가전서 4: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携擧)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After that, we who are still alive and are left will be caught up together with them in the clouds to meet the Lord in the air.  And so we will be with the Lord forever.   

첫째, 휴거(Rapture)란 무엇인가?

휴거는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성도들을 불러올리는 사건을 말합니다.
그런데 휴거라는 단어가 성경에는 없습니다.
그러면 왜 휴거라는 단어를 사용할까요?

한글 성경을 처음 번역할 때 중국의 한문 성경을 참조하여 한글로 번역했습니다.
당시 한글은 언문(言文)이라며 아녀자들만 사용하는 아주 천한 언어라고 하여 선비들은 주로 한문을 사용했습니다.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한문 성경을 기본으로 사용하여 한글로 번역했습니다.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라는 말씀에서 “끌어 올려(caught up)” 라는 말씀을 한문 성경에서 “휴거(携擧)”라고 합니다.
따라서 공중으로 끌어 올려라는 문장을 간략하게 "휴거(携擧)" 라고 사용한 것입니다.

둘째, 휴거(Rapture)의 의미는 무엇인가?

1. 한자의 의미

휴거(携擧)”라는 한자는 “이끌 휴(携)” “들 거(擧)” 라는 훈으로 “이끌려 들려지다”라는 뜻입니다.

2. 영어의 의미

휴거를 영어로  “랩처(Rapture)” 라고 합니다.
랩처(Rapture)”의 뜻은 “환희(delight), 열중, 넋을 잃음”입니다.
따라서 공중으로 끌어 올려간다는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면 왜 영어에서 휴거를 랩처라고 하였는가?

라틴어 성경에서 "공중으로 끌어 올려" 라는 말씀을 “라피오(rapio)” 또는 “라페레(Rapere)” 라고 합니다.
라피오(rapio)”를 영어로 번역할 때 “랩처(rapture)” 라고 합니다.

3. 헬라어의 의미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caught up)”는 헬라어로 “하르파게소메다(ἁρπαγησόμεθα)”라고 합니다.
"하르파게소메다"의 동사 원형은 "하르파조(ἁρπάζω)" 라고 합니다.

"하르파조(ἁρπάζω. harpazó. 726)"를 영어로 “to snach away” 라고 하며 그 의미는 “낚아챈다, 빼앗는다”는 뜻입니다(to seize, catch up, snatch away)

* 끌어올려 - 수동태(Caught up)

“갑작스럽게 잡아서 옮기다.” “강한 힘을 가지고 강하게 빼앗아 가다”, “재빠르게 자기에게 끌어들이다”

* 데려감을 당하고 (마 24:40∼41, 눅 17:34-35) - 수동태(Taken away)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 데려감 / “파라람바노(paralambano.παραλαμβάνω. 3880 )" : to receive from, “가까이 오도록 취하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끌다.

* 버려둠
/ "아피헤미(aphiémi.  ἀφίημι. 863)": to send away, leave alone.

셋째, 성경에서 휴거(하르파조, ἁρπάζω) 단어가 사용된 사례를 살펴봅니다.


1. 요한복음 6:15 - 붙들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

2. 요한복음 10:12 - 물어 가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도 제 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헤치느니라(물어 가고) 라는 말씀에서 “늑탈하고” 또는 "물어 가고" 라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3. 요한복음 10:28 - 빼앗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에서 "빼앗을" 이란 뜻으로 사용합니다.

4. 요한계시록 12:5 - 올려가다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GRK : σιδηρᾷ καὶ ἡρπάσθη τὸ τέκνον

NAS : and her child was caught up to God

KJV : her child was caught up unto God,

INT : iron and was caught away the child 

5. 유다서 1:23 - 끌어내다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GRK : ἐκ πυρὸς ἁρπάζοντες οὓς δὲ

NAS : save others, snatching them out of the fire;

KJV : fear, pulling [them] out of

INT : out of fire snatching [them] others moreover 

6. 데살로니가전서 4:17 - 끌어 올리다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GRK : σὺν αὐτοῖς ἁρπαγησόμεθα ἐν νεφέλαις

NAS : and remain will be caught up together

KJV : [and] remain shall be caught up together

INT : with them will be caught away in [the] clouds 

성경 여러 구절에서 "끌어 올려(하르파조, ἁρπάζω)" 라는 의미를 살펴본 결과는 "공중으로 끌어 올려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악한 세력의 손에 끌려 갈 수 없다."라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휴거라는 것에 열광할 이유가 없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절(말라기 4:5~6)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엘리야는 선지자 엘리야가 아니라 장차 오실 메시아 즉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결론은 메시아이신 엘리야가 반드시 오실 것이라는 예언이라고 하겠습니다.

신약의 마지막 절(요한계시록 22:20~21)

이것들을 증거 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신약의 결론은 구약의 마지막 책 말라기 4장에서 오실 메시아로서 엘리야로 오실 것을 예언했던 그 메시아가 신약에서 이 세상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후에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로 올라가셨는데 다시 오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재림(再臨)이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의 사건을 요한계시록 21:1-2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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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에 대한 비성경적인 신앙

칠년 대환난을 당할 때 환난의 시기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공중으로 들림을 받는 것이다.

첫째, 대환난 시대를 피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을 이해할 때 공중 재림은 7년 대환난 시대에 공중으로 들려올라 가므로 환난의 때를 아주 평안하게 지낼 수 있다고 믿는다.

둘째, 공중으로 끌어 올려에 대한 오해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공중으로 끌어 올림을 받는다는 것은 실제로 공중으로 들려올라가는 문자적인 의미가 아니다.
이와 같은 가르침은 사도 바울의 가르침이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악한 것에 의해서 빼앗길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신명기 7:6-7)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표현한 성경구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자신의 언약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하나님의 축복과 보호를 받는 존재로서,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신명기 7:6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출애굽기 19:5-6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이사야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의 언약과 이스라엘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맺은 언약을 통해 이스라엘과 영원한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이 언약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을 받을 것임을 보증합니다.

 창세기 17: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예레미야 31: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율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시편 105:8-10

8 그가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걸쳐 명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9 이것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요 이삭에게 하신 맹세이며
10 그것을 야곱에게 법으로, 이스라엘에게 영원한 언약으로 세우셨다


하나님의 아들, 딸로서의 백성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자신의 자녀로 여겨 사랑과 보호를 약속하십니다. 그들을 아버지로서 돌보시며, 자녀에게 거룩한 삶을 요구하십니다.

신명기 14:1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고 눈썹 사이 이마에 털을 밀지 말라

호세아 1:10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다의 모래 같아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고린도후서 6: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아들딸이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요한일서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하나님의 양으로서의 백성

하나님은 자신을 목자로, 백성을 양으로 비유하십니다. 목자는 양을 돌보고 인도하며 보호합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따라야 하며, 목자의 보호 안에서 안전하게 살아갑니다.

시편 23:1-3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이사야 40:11

그는 목자와 같이 자기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요한복음 10:14-15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로서의 백성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의 사랑과 돌보심을 받는 특별한 존재로 묘사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와 같은 사랑으로 백성을 지키시며, 그들을 기뻐하고 축복하십니다.

이사야 43:4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너를 대신하여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스바냐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는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나님의 포도나무와 가지로서의 백성

하나님은 백성을 포도나무의 가지로 비유하십니다.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으며, 하나님 안에서만 생명과 성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사야 5:7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하나님의 신부로서의 백성

성경은 백성을 하나님의 신부로 묘사하며, 하나님과 백성 간의 관계를 사랑과 헌신의 언약 관계로 설명합니다. 신부된 백성은 하나님께 충성하고 순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사야 62:4-5

4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결혼한 여자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 같이 될 것임이라
5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고린도후서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질투하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하였음이라

하나님의 소유로서의 백성

하나님은 백성을 자신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그들은 세상 가운데 구별된 존재로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출애굽기 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보호와 이스라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인도하시는 목자와 같은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험에서 지키시며, 그들의 필요를 채우시고 회복과 승리를 주십니다.

이사야 41:8-10

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신명기 33: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시편 121:4-5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이스라엘의 사명과 역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을 세상에 전하는 제사장 나라로서의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이사야 49:6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의 보존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이라 그러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신명기 4:6-7

6 너희는 이것을 지켜 행하라 이것이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명철이라 이것을 듣는 모든 민족들이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들은 참으로 지혜와 명철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에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회복 약속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불순종할 때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회복을 약속하시며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실 것을 언약하셨습니다.

예레미야 30:22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호세아 2:23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기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이사야 62:4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결혼한 여자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 같이 될 것임이라

하나님의 아들, 딸로서의 백성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자신의 자녀로 여겨 사랑과 보호를 약속하십니다. 그들을 아버지로서 돌보시며, 자녀에게 거룩한 삶을 요구하십니다.

신명기 14:1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고 눈썹 사이 이마에 털을 밀지 말라

호세아 1:10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다의 모래 같아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고린도후서 6: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아들딸이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요한일서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하나님의 양으로서의 백성

하나님은 자신을 목자로, 백성을 양으로 비유하십니다. 목자는 양을 돌보고 인도하며 보호합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따라야 하며, 목자의 보호 안에서 안전하게 살아갑니다.

시편 23:1-3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이사야 40:11

그는 목자와 같이 자기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요한복음 10:14-15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로서의 백성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의 사랑과 돌보심을 받는 특별한 존재로 묘사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와 같은 사랑으로 백성을 지키시며, 그들을 기뻐하고 축복하십니다.

이사야 43:4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너를 대신하여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스바냐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는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나님의 포도나무와 가지로서의 백성

하나님은 백성을 포도나무의 가지로 비유하십니다.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으며, 하나님 안에서만 생명과 성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사야 5:7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하나님의 신부로서의 백성

성경은 백성을 하나님의 신부로 묘사하며, 하나님과 백성 간의 관계를 사랑과 헌신의 언약 관계로 설명합니다. 신부된 백성은 하나님께 충성하고 순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사야 62:4-5

4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결혼한 여자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 같이 될 것임이라
5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고린도후서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질투하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하였음이라

하나님의 소유로서의 백성

하나님은 백성을 자신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그들은 세상 가운데 구별된 존재로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출애굽기 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신명기 7:6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하기 위하여 선택하신 민족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하나님을 찾지 않고 모두 우상을 섬기던 시대에 이스라엘을 선택하셔서, 모든 우상은 거짓이고 여호와 하나님만 참 신임을 보이셨던 것입니다. 애굽과 그 신에 벌을 내리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고 홍해를 건너게 하시며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신 그 모든 일도 자신이 참 하나님 되심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 네가 있기 전 하나님이 사람을 세상에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지나간 날을 상고하여 보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이런 큰 일이 있었느냐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었느냐 어떤 국민이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처럼 듣고 생존하였었느냐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 신 4:32-35)

이스라엘 민족이 세상의 중앙에 거하는 것이나 비록 작은 국가지만 강대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것, 또 노벨상의 1/3을 차지할 만큼 머리가 우수한 것도 다 이스라엘의 배후에 있는 하나님을 증거합니다.

또, 1900여 년간 나라없이 흩어져 살다가 독립하여 고토(故土)에 나라를 다시 세우고, 그 땅을 개척하여 에덴동산과 같이 아름답게 가꾸어 성경에 예언된 모든 것을 그대로 성취한 사실도 이스라엘 배후에 하나님이 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의 증인으로 이 땅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 사 43:10)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신 또 한 가지 이유는 성경을 기록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롬 3:1-2)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에게 구약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는데, 여기에는 예수님을 보내실 것과 그의 행적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하여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신 이후 신약성경을 완성하게 하여,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사실과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이 전파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까지는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맡겨 두었던 성경을, 예수님이 구속의 역사를 완성하신 후에는 이방인에게까지 전파되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가장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구원을 완성하시고, 모든 민족에게 전할 준비가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후략)” (롬 9:4-5)

약속대로 정한 때에, 기록한 곳에서 처녀의 몸을 빌어 태어나신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설명하시고 이적으로 보여 주셨으며,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이 은혜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아브라함에게 하신 그 약속의 성취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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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입성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성취하신 것이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2:3)

하나님은 가나안에 거주하는 족속들의 악함이 땅에 가득하였기에 그 악을 제거하고,

그 땅에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거룩한 백성'을 거주하게 하실 것이다

그들이 "악"을 철저하게 파괴함으로써 하나님이 명령하신 "거룩"을 온전히 지킨다면,

그들만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으로서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이 있다

1. 하지 말아야 할 것

하나님은 이러한 전체 그림을 그리시고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면 가나안 여러 민족을 다 쫓아내라고 명령하신다

하나님께는 "악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것"이 바로 거룩의 의미를 표현하는 방식인 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2-3)

#가나안_대표_7족속(헷, 기르가스,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부스)을 다 쫓아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열방을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시야를 좁혀서 생각해서 "잔인하다"라고 판단하면 안 된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이 가득 찰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그들을 벌하시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창 15:16)

하나님이 그들을 참으신 기간은 아브라함 이후 4대 즉, 400여 년이 걸렸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 이스라엘이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그들이 오로지 하나님께만 속했음을 의미한다

가나안 7족속은 각각 자기 나름의 신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종교는 거짓될 뿐만 아니라 부도덕했다

제사를 드리면서 하는 매춘 행위는 풍작 기원 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

그러한 관행은 거룩하시고 순결하신 하나님께는 범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그들과 교류하게 되면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타락에 처할 위험이 매우 컸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진멸"하라고 하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① 그들과 언약을 맺으면 안 된다

하나님이 그들을 진멸시키기로 작정하셨는데,

이스라엘이 그들과 언약을 맺는 행위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는 것이 된다

② 인간적으로 그들을 진멸시키는 것을 불쌍히 여겨서도 안 된다

하나님은 가나안 7족속의 죄악에 대해서는 진멸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셨지만

니느웨 성의 악독에 대해서는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이 큰 성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12만 명이고, 가축도 많으므로 아끼지 않을 수 없다"(욘 4:11)

요나의 때에 그들은 요나가 선포한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멸망으로부터 구원받았지만,

그들의 죄악은 결국 그들을 멸망으로 이끌고 말았다(습 2:13-15)

그러므로 이 한 구절만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잔인하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만 오래 참으시는 분이 아니라, 열방을 심판하실 때도 여러 번의 기회를 주신다

니느웨에게 살 길을 주시기 위해 기회를 주셨던 하나님은

가나안 7족속에게도 400 년의 기회를 주시지 않았던가!

우리의 생각과 뜻보다 크고 깊으신 하나님의 생각과 뜻대로 '공의'에 입각하여

어떤 민족은 살리시고, 어떤 민족에게는 노하시는 것에 대하여 감히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가나안 땅 전체의 역사를 아시는 하나님과 짧은 시간만 가나안 족속들과 접촉한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누가 더 가나안 족속에 대해서 잘 알고 있겠는가!

하나님이 이들을 멸하시기로 했다면, 거기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오랜 시간 동안 하나님은 그들이 죄악으로부터 돌이키기를 기다리셨을 것이다

③ 그들과 혼인을 하면 안 된다

그 이유는 이방의 딸들이 이스라엘의 아들을 유혹하여 하나님을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할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이 진노하사 이스라엘을 갑자기 멸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2. 해야 할 것

① 가나안 족속들이 섬기는 모든 종교를 뿌리째 없애는 것이다

오직 너희가 그들에게 행할 것은 이러하니

그들의 제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조각한 우상들을 불사를 것이니라(5)

'주상'은 아세라(다산의 여신) 목상'과 언급된다는 점에서 볼 때 '바알'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바알과 아세라 상(像)을 깨뜨리고 찍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도 헐어버려야 한다

당시 가나안 족속은 온갖 신들을 상(像)으로 제작하여 숭배하였으므로 그것들까지 다 불사르라고 하셨다

하나님 이외의 모든 우상들을 뿌리째 다 없애 버리라는 뜻이다

그들을 하나라도 남겨 두었다가는 연약한 그들이 언제라도 미혹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②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택하신 하나님과 가나안 족속들이 섬기는 신들 중

누가 그들을 더 사랑하고, 누가 더 능력이 있고, 누가 그들을 구원할 자이신지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이 왜 지상 만민 중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는지

왜 애굽에서 종 노릇하던 그들을 큰 능력으로 인도해 내셨는지,

왜 광야 40년 동안 넉넉하게 먹이시고 입히시고 보호해 주셨는지,

왜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려는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다(8)

다른 이유가 없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적으니라(7)

하나님의 은혜로 그냥 택하심을 입은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어떤 미덕이 있어서가 아니고, 이스라엘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거나 가장 강해서도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적은 민족, 그것도 남의 나라에서 종노릇하고 있던 민족을 택하셔서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나타내시고자 하였다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 스스로는 절대로 감행할 수 없었음을 이스라엘도, 애굽도, 인근 다른 나라들도 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알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민족이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가 되고,

세상과 구별되지 않았던 민족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본받아 거룩한 백성이 되고,

그들이 살게 될 가나안 땅에서 모든 악독을 버리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그들은 천 대까지 그들과 맺은 언약을 이행하시고, 인애를 베푸실 것이다(9)

그리고 땅의 모든 족속은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대로 "복을 얻게 될 것"(창 2:3)이다

반면, 그들이 이러한 축복을 버리고 하나님을 미워하고 그 명령을 지키지 않는다면

보응하시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멸하게 될 것이다(10)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그 능력을 직접 뵌 민족으로서 복과 저주의 두 가지 길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그들이 복된 길을 택하게 되면 그들뿐만 아니라 온 세계와 열방이 복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저주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면 그들도 멸망하게 될 것이고,

다른 민족들을 구원할 기회도 잃게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예수를 믿어 누리게 될 복된 길과 그와 반대되는 저주의 길이 있다

우리는 반드시 나와 내 가정뿐만 아니라 이웃과 열방도 살리는 복된 길을 택하여야 하겠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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