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시편 104:34
새번역,34 내 묵상을 주님이 기꺼이 받아 주시면 좋으련만! 그러면 나는 주님의 품 안에서 즐겁기만 할 것이다.

* 묵상(7879) 사야흐(sîyach) שִׂיחַ 스트롱번호 7879

1. 말.   2. 불평.  3. 묵상
발음 [ sîyach ]
어원 / 7878에서 유래
구약 성경  / 14회 사용
  • 1. 명사, 남성 말, 이야기, 왕하9:11
  • 2.명사, 남성 불평, 삼상1:16, 욥7:13, 9:27, 21:4,23:2, 시142:3(2).

  • 3. 명사, 남성 묵상, 왕상18:27.
  • 관련 성경 /  반항하는 마음(욥23:2), 근심(시55:2), 원통함(시142:2), 소리(시64:1), 기도(시104:34), 원망(잠23:29). [동] 묵상하다(왕상18:27).

󰃨 나의 묵상을 가상히 여기시기를(*, 예에라브 알라이우시히)
- 문자적인 뜻은 '나의 묵상이 그에게 달기를(즐겁기를)', 혹은 '그에 관한나의 묵상이 달기를'로 볼 수 있는데, '여호와 앞에서 내가 즐거워한다'는 의미를 분명히 견지하고 있는 하반절과의 동의적 평행을 중시할 때 후자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그에 관한 나의 묵상이 달기를'이란 하나님의 품성과 사역에 대한 묵상을 통하여 기쁨을 발견하기 원한다는 말이다. 참 경건한 자의 성품들 중의 하나는 하나님에 대해 묵상할 시간을 갖는다는 점이다. 그는 일단 규칙적인 시간을 정했으면 결코 돌이키지 않는다. 아무리 바쁜 일과 속에서도 그 시간을 생각하며 기뻐한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진정한 기쁨, 행복을 발견한다. 그러나 죄인은 그렇지 않다. 묵상의 시간도 없고 그분을 기뻐하지도 않는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그를 고통스럽게 할 뿐이다(사 30;11).

 שִׂיחָה

שִׂיחָה 스트롱번호7881

1.

묵상

2.

시119:97

3.

99

발음 [ sîychâh ]
구약 성경
3회 사용
  • 1.
    명사, 여성 [하나님의 일과 관계된 경건한] 묵상, 시119:97,99, 욥15:4.

참고 정보

문법설명

7879의 여성형

연관 단어

  • 문법설명
    7879의 여성형
    관련 성경
    ☞묵도하기(욥15:4). [동] 읊조리다(시119:97,99).



날마다(everyday. day by day)


날마다(Every Day, Day by Day)

날마다 구원을 선포하라
시편 96:2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 이름을 송축하며 그 구원마다 선파할찌어다.
Sing to the LORD, praise his name; proclaim his salvation day after day.

9. [역대상 16:23]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하며 그 구원을 날마다 선포할찌어다



날마다 주를 송축하라
시편 145:2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영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Every day I will praise you and extol your name for ever and ever.


[역대하 30:21]
예루살렘에 모인 이스라엘 자손이 크게 즐거워하며 칠일 동안 무교절을 지켰고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은 날마다 여호와를 칭송하며 큰 소리나는 악기를 울려 여호와를 찬양하였으며


15. [느헤미야 8:18]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칠일 동안 절기를 지키고 제 팔일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


날마다 죽노라
고린도전서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I die every day--I mean that, brothers--just as surely as I glory over you in Christ Jesus our Lord.



출애굽기 16:4]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 [누가복음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사도행전 17: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와 같다(잠언 18:10)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The name of the LORD is a strong tower; the righteous run to it and are safe.

구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로 소개합니다.
따라서 구약의 백성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시편 116:4).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신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 라고 합니다.
따라서 신약의 백성들은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요한복음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신약에서 예수님의 명칭을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예수
둘째는 그리스도
셋째는 임마누엘

예수라는 이름은 "저희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 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뜻을 간략하게 "예수 내 구주!"라고 하겠습니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 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기름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곧 성령을 받았다는 것으로 성령을 받은 자가 거듭난 사람이며 거듭난 사람만이 생명을 갖기 때문에 "예수 내 생명!" 이라고 합니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연약한 나는 강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어리석은 나는 지혜롭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임마누엘이란 "예수 내 권세!"라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이름에 따른 외침은 곧 그리스도인의 기도 내용이며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Youtube
동영상 자료  https://youtube.com/shorts/5Y7GtvNptCo?si=TSAtmd-AX0iv8yCz






승천(昇天)과 강하(降下)


승천(昇天) : 하늘에 오름.
강하(降下) : 높은 곳에서 아래로 향하여 내려옴.

성경에는 살아서 하늘로 올라갔던 인물 - 에녹과 엘리야
반면에 살아서 음부에 내려간 사람들 - 고라, 다단, 아비람(민수기 16:1-35)

축복기도(민수기 6:24-26. 고린도후서 13:13)



아론의 축복기도는 민수기 6장 22-27절에 기록된 기도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민 6:24)
  •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민 6:25)
  •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민 6:26)
    이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를 구하는 강력한 기도로, 여러 세대에 걸쳐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아론의 축복기도  (민 6:22-27)


이스라엘과 우리나라의 공통점은 인사의 내용이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인사는‘살롬’입니다. 살롬의 뜻은 안전의 의미가 담긴 평화를 비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안녕’과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나라는 오천 년의 역사 중에 외세의 침입이 많았습니다. 자고나면 마을이 불태워지고 수많은 이웃이 죽거나 끌려가는 불행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밤새 안녕하셨습니까?”라고 안부를 먼저 물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시 불행한 역사가 많았습니다. 이방나라의 침입으로 많을 고통을 당하기도 했고, 심지어 나라가 망하는 불행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살롬’이라고 상대방에게 인사를 합니다. 이스라엘의 수도가 예루살렘인데 ‘평화의 터’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된 평화(평강)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초대 제사장이었던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통해 백성들에게 축복하게 하기를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는 그의 백성들에게 참된 복을 주실 뿐만 아니라 그 복을 지속적으로 지켜주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얼굴을 그를 신뢰하고 순종하는 백성들에게 향하여 은혜를 베푸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3. 여호와는 얼굴을 향하여 평강 주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의 얼굴은 복과 저주를 결정하는 기준이 됩니다. 그래서 신앙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그 얼굴을 향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의 얼굴을 향하여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복은 ‘살롬’(평화, 평강)입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걱정, 근심, 불안, 절망의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최고의 권력자 대통령에서부터 가난한 서민에 이르기까지 이런 것들이 없는 평화를 누리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걱정, 근심, 불안, 절망이 최고조에 이르면 인생을 포기하게 됩니다. 얼마 전에 20대의 인기연예인이 자살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인터넷의 악성 댓글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환경에 따라 걱정과 근심, 불안, 절망에 이릅니다. 그래서 무당을 찾아가 그런 것들을 해소하려고 합니다.


사울 왕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이 가리어진 그의 삶은 걱정, 근심, 불안, 절망의 연속이었습니다. 악신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그는 변장하여 무당을 찾아가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참된 평화(평강)를 얻지 못하고 전투에서 부상을 입어 자살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찾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다면 결코 그렇게 비참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찾는 행복(평화)도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행복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있습니다. 세계의 평화를 위해 창설한 기구가 유엔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강대국들의 실리 때문에 약소국들의 평화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할 수 있는 것이 유엔을 만드는 것이지만 그것이 이 땅에 참된 평을 안겨주지 못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림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전쟁과 테러의 위협으로 평화가 상실되고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일시적이지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론을 통해 참된 평화를 축복하기를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평화)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릅니다. 이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의 왕이요, 평화의 완성자입니다.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를 볼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참된 평화를 주셨다는 사실을 고백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마귀는 평화를 깨드리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평화를 누리며 살던 아담 부부에게 마귀는 뱀을 이용하여 그들을 유혹하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평화를 깨드리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불행의 출발이 마귀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마귀와 귀신에게 행복을 구하고 있습니다. 서울에는 목사의 숫자보다 무당의 숫자가 더 많다고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도둑(마귀)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고 말씀 했습니다.


대하 20장에 여호사밧이 유다의 왕으로 있을 때 암몬 나라가 침략을 했습니다. 이 사실을 보고 받은 여호사밧은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의 숫자가 유다의 군대보다 많았던 것 같습니다. 여호사밧은 여호와께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온 백성들에게도 금식하게 했습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를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20:12)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사밧과 유다 백성들을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암몬의 큰 군대를 칼 한 번 쓰지 않고 전멸시켜버렸습니다. 대하20:30절에 “여호사밧의 나라가 태평하였으니 이는 그의 하나님이 사방에서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음이더라”고 했습니다.


시29:11에 다윗은“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고 했습니다. ‘자기 백성’은 곧 하나님의 신뢰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의 특징은 믿음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전혀 신뢰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복은 임하지 않고 진정한 평화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실패자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신뢰하지 않고 자신을 의지하거나 하나님을 떠날 때에 어려움과 불행이 주어졌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멸망된 사건입니다. 그들이 왜 멸망당했습니까? 군사력이 약해서 멸망당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우상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우상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그들에게서 평화를 거둬버렸습니다. 예수님을 배척하고 기독교를 핍박했던 이스라엘이 A.D 70년 로마에 의해 비참하게 멸망당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정신적인 지주였던 성전이 파괴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전 세계로 흩어져 핍박을 받았습니다. 독일의 히틀러에게 600만이 죽임을 당하는 치욕을 당했습니다. 이들이 왜 그렇게 당했습니까? 하나님의 참된 평화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자유입니다. 믿음을 가지든지 믿음을 가지지 않든지 선택은 자유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 참된 행복, 참된 구원은 우리의 선택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평화, 행복, 구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참된 행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평화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참된 평화는 우리에게 참된 행복과 참된 구원으로 이어집니다. 아론은 백성들에게 축복하기를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평화)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평화’는 인간이 가져야 할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이 평화는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게 아담에게 주셨던 선물입니다. 평화는 하나님과 하나된 것이고, 자연만물과도 하나된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하여 평화가 깨어졌을 때 인간의 비참함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은 물론이지만, 자연과도 하나되지 못했습니다. 자연은 인간으로 하여금 땀을 흘리게 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영생을 상실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상실된 영생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로만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참된 평화의 실체였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어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고 선언했습니다. 주님은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6)고 했습니다.


아론을 통해 백성들에게 축복하게 하신 하나님의 본심은 인간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지 않고는 인간이 추구하는 참된 행복, 참된 평화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에게 주어지며, 그 복의 실체는 평화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평화에는 우리가 구하는 행복과 구원이 있습니다. 평화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에게 이 복이 충만하게 채워질 것입니다. 재물과 건강, 명예와 권력을 얻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신앙을 가지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은 곧 하나님의 평화(평강)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자들에게 평화의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의 복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참된 행복과 천국을 소망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