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祈禱)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다.
기도는 사람이 하나님과 협력하는 경로이고, 사람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방식이다.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 영으로 감동 받는 과정이다.
그래서 기도가 없는 사람은 영이 없는 죽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도가 없으면 정상적인 영적 생활을 할 수 없고, 더욱이 성령님의 역사를 따를 수도 없다.
또한 기도가 없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이다.

기도 성경구절 22가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 전서 5:16-18)

우리가 기도할 때, 성경 구절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것은 큰 도움과 위로가 된다. 막연한 마음과 두려움, 불안함이나 의심이 들 때도 성경 구절을 붙잡고 기도하면 힘을 얻을 수 있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어 하신다. 

그런데 진실하게 기도 해야 하나님께서 들으신다. 그래야 늘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느낄 수 있으며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다.

  어떤 것이 진실한 기도일까? 바로 하나님께 마음속 말을 감춤 없이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진실한 기도를 드리면, 하나님이 바로 내 앞에 있다고 느끼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께 할 말이 있다고 생각되고, 마음속이 아주 환하게 된다. 

진실한 기도를 하고 나면, 마음속에 평안을 얻게 되고 누림이 있게 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이 속에서 일어나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마가복음 11:24)

1. 마태복음 7:7~8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2. 마가복음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3. 빌립보서 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4. 예레미야 29:12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5. 예레미야 33:2-3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6. 사무엘상 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

7. 역대하 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8. 시편 4:1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9. 시편 17:6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으므로 내가 불렀사오니 내게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

10. 시편 145:18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11. 잠언 15:8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12. 잠언 15:29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 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

13. 마태복음 6:6~7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14. 마태복음 18:19~20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15. 마태복음 21: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16. 마태복음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17. 누가복음 11: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18. 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19. 골로새서 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20. 야고보서 1:5-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21. 야고보서 5: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22. 요한일서 5:14-15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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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방법 - 올바른 기도를 위해 꼭 알아야 할 4가지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과 통하는 직접적인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하나님께 기도하지요.
그러나 기도해도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느끼지 못할 때가 참 많습니다.

그 이유를 아십니까?
하나님은 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시는지
어떻게 기도해야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될 수 있는지?

아래의 4가지 정확한 기도 실행법을 통해 그 답을 밝혀 드리겠습니다.

정확한 기도법
1. 규례가 아닌 진정으로 기도하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 4:24)

기도는 어떤 형식적인 절차를 거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 외우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기도는 말을 따라 하거나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고, 하나님과 마음을 나눔으로써 감동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사람의 겉치레 행위를 기뻐하시지 않고 입으로만 가까이하는 것을 열납하지 않으시며 신령과 진정으로 기도하고 경배하기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진실한 기도를 해 봤던 사람이라면 경험했을 것입니다. 예배할 때 혹은 큐티할 때 혹은 어떤 일이 생길 때 마음을 평온히 하고 전념해서 성실하게 하나님께 기도드리면 감동받고 평안과 기쁨을 느낍니다.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경우에 신령으로 기도해 하나님과 가까이하기는커녕 규례를 지키고 형식적으로 몇 마디 하는 등 진심 어린 기도를 드리지 않습니다. 이러한 무심한 기도가 어찌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을까요? 예컨대, 새벽(밤) 기도, 식전(식후) 기도 등은 오랫동안 규례적인 행위가 되어 형식적으로 하지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가끔은 하나님께 기도할 내용이 없으면서도 신앙인으로서 의식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아무 말이나 중얼거립니다. 이러한 기도는 형식적인 것인데 하나님이 들어주실까요? 결코 들어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규례를 지키는 무심한 기도는 듣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드리는 기도만이 하나님께 상달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마음을 평온히 하기를 중요시해 진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정확한 기도법입니다. 이런 기도만이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정확한 기도법
2.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라

예수님께서 이런 비유를 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눅 18:10~14)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 주님은 세리의 기도를 칭찬하고 바리새인의 기도에는 염증을 내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입에 발린 말이고 자신의 공로와 좋은 행위를 자랑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상을 받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세리는 자신이 죄인이므로 하나님 앞에 천한 존재임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세리는 기도할 때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마음을 터놓고 자신의 패괴를 인정하며 하나님께 진심으로 용서를 구해서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세리와 같은 겸허한 마음을 갖췄나요? 사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늘 외식하며 자기 자랑을 합니다. 예컨대, 다른 사람이 기도를 길게 했을 때,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적지만 우습게 보일까 봐 반복적으로 말을 해서 기도 시간을 늘립니다. 일부러 많은 성경 구절을 외운다거나 듣기 좋은 말을 해서 돋보이려고 합니다. 열심히 사역해서 성과를 거두면 스스로를 주님을 사랑하고 충성하는 자로 여기며 기도로 축복과 면류관을 요구하고 천국에 들어가 상을 받으려 합니다. 이렇듯 이러한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실까요?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를 하려면 세리를 본받아 어떤 일이 임하든 겸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자신의 실제 정형을 털어놓아야 합니다. 거짓과 꾸밈이 없고 외식하지 않으며, 어떤 패괴를 유로했든지 하나님께 고하며 구원해 달라고 빌어야 합니다. 이것이 정확한 기도법이고 이렇게 기도해야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정확한 기도법
3. 이성적으로 피조물의 위치에서 기도하라

성경의 기록을 보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겟세마네라는 곳에서 세 번 기도했습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 다시 두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 나아가 세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마 26:39~44)

예수님은 구하는 마음, 순종의 자세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구하였지 하늘 아버지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통을 피하게 해 달라고 간구하거나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세 번의 기도를 마친 후 예수님은 천부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성육신하게 된 이유는 인류를 십자가에서 구원하는 사역을 하기 위함이었기에 예수님은 완전히 순종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자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러나 피조물의 위치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드리며 그의 뜻을 구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이성적으로 기도하고, 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시어 피조물의 각도에서 기도함으로 우리의 모델이 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부분입니다.

반성해 보면 우리는 이성적인 기도를 했을까요? 피조물의 위치에서 하나님께 구하고 순종하는 기도를 한 것이었을까요? 우리는 비이성적인 기도를 드릴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뜻대로 이렇게 저렇게 해 주세요 하고 심지어는 하나님께 강요합니다. 예컨대, 몸이 아플 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보다 우리의 병을 고쳐 달라는 기도를 하기에 바쁩니다. 병에 호전이 없으면 하나님을 오해하고 불평하지요. 하나님을 위해 포기하는 것이 좀 있고 헌신하거나 본분을 조금 하게 되면 우리가 평안하고 모든 것이 순조롭도록 지켜 달라고 하나님께 요구하고, 심지어는 가족들의 복까지 구합니다. 또 핍박과 환난이 임했을 때 하나님의 보호를 구하며 그 환경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구하는 등 이러한 기도는 다 비이성적인 것입니다. 구하는 자세와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도드린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의 욕망을 채워 달라고 하나님께 요구하고 우리의 뜻대로 해 주십사 강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비이성적인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는 진실한 기도가 아주 적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기도할 줄 모른다. 사실 기도는 주로 마음속의 말을 하는 것인데, 평소에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기도하기만 하면 위치를 잘못 선다. 하나님의 뜻에 맞든 맞지 않든, 하나님께 베풀어 달라고 억지로 구하는데, 그 결과 기도하면 할수록 무미건조해진다. 기도할 때 네가 마음속으로 어떤 것을 구하든, 어떤 것을 사모하든, 어떤 것을 얻으려고 요구하든, 혹은 어떤 일을 처리하려고 할 때 꿰뚫어 볼 수 없어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하든, 힘을 더해 달라고 하든, 혹은 하나님께 깨우쳐 달라고 하든, 이런 말하는 방식에도 *이지가 있어야 한다. 만약 네가 이지 없이 무릎 꿇자마자 “하나님, 저에게 힘을 더해 주십시오. 제 본성을 보게 해 주십시오. 당신께서 해 주십시오. 혹은 저에게 무엇 무엇을 주십시오. 제가 어떻게 어떻게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한다면, 이 ‘주십시오’ 안에 강박적인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반드시 그렇게 해 주어야 한다고 압력을 가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네가 스스로 사전에 다 정해 놓은 것이다. 네가 비록 그렇게 기도할지라도 성령은 그런 기도에 대해 ‘네가 이미 스스로 정해 놓고 그렇게 하려고 한 이상, 그런 기도가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라고 여긴다. 기도할 때에는 마땅히 찾고 구하고 순복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너에게 일이 임할 때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면 너는 이렇게 말하여라. “하나님, 저에게 이런 일이 임했는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일에서 당신을 만족게 하기를 원하고, 당신의 뜻을 찾고 구하기를 원하며,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저의 뜻대로 하지 않고 당신의 뜻대로 하기를 원합니다. 사람의 뜻은 다 당신의 뜻을 어기는 것이고, 당신을 대적하는 것이고, 진리에 부합되지 않는 것임을 당신께서 아십니다. 저를 깨우쳐 주시고, 이 일에서 인도해 주셔서 당신을 거스르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런 어조의 기도는 적합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를 하려면 이성을 갖춰 기도해야 합니다. 피조물의 위치에서 기도하며 자신의 선택과 요구와 계획이 없이 하나님께 구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가령 천재지변이나 인재로 인한 사고 등의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났을 때,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자기가 원하는 것이나 하나님의 보호를 강요하며, 그런 고난을 옮겨 달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피조물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고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상황을 마련해 주신 뜻이 우리의 믿음을 단련시키고 온전케 하시기 위함이거나 우리의 증언을 보기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순종하는 자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한 자세로 기도해야 하나님께 열납될 수 있고, 우리가 기도하는 문제를 알 수 있도록 깨우쳐 주시고, 나아갈 방향을 가리켜 주실 것입니다.

정확한 기도법
4. 개인을 위한 기도도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1~33),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 6:9~13)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바람은 하나님 당신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사탄에 의해 패괴된 후로, 하나님은 계속 구원 사역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진정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를 얻기 바라시며, 그리스도의 나라가 땅에 펼쳐지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 또한 자기 소원을 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취지가 담긴 기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취지가 담긴 기도, 하나님께서 더 많은 사람을 얻을 수 있도록 힘쓰는 기도, 그리스도의 나라가 땅에 이루어지게 하기 위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러한 기도가 하나님 뜻에 합당한 기도입니다.

성경에서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윗 왕의 소원은 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여호와의 성전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위해 다윗은 항상 그 소원을 가지고 간구하며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 기도를 기뻐해 다윗을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라 하셨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제사를 드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잘 다스리고, 그들이 하나님을 잘 예배할 수 있도록 이끌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제사와 기도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지혜만 주신 것이 아니라 솔로몬이 구하지 않은 장수와 부귀영화까지 더해 주셨습니다. 욥은 언제나 악에서 떠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큰 시련 속에서도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1:21), “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 2:10)라는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고백으로 사탄을 부끄럽게 하고, 하나님 편에 서서 울림 있는 증거를 보이며 후세들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 위해, 하나님을 흡족게 하고 진리를 실천하기 위해 드리는 기도가 가장 하나님 뜻에 합당한 기도이며, 반드시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드리는 기도를 살펴보면, 대부분 육의 욕심을 위한 기도일 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가 별로 없습니다. 예를 들면, 자녀의 대학 진학을 위한 기도, 부자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간구하는 기도를 비롯해 전부 개인의 이익을 구하는 기도이자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기도가 태반입니다. 계속 하나님께 손 내밀며 축복과 은혜를 갈취하려고만 할 뿐,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거나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기도를 드리는 경우가 없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 위해 기도를 드리는 것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겠습니까?

우리의 기도는 자기 욕구를 채우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 위한 기도여야 합니다. 예를 들면,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히거나 뒷걸음치게 될 때, 하나님께 힘을 더해 달라고 간구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널리 전파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간구하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또 설교하거나 사역을 할 때면, 항상 책임감으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고,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고 체험하는 길로 이끌 수 있게 성령님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간구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런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고,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늘 이런 문제를 놓고 기도한다면, 언제나 하나님의 인도와 빛 비춤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상 하나님께 상달되는 네 가지 기도법의 실행 원칙에 관해 정리해 보았습니다.
기도에 관한 올바른 실천 원칙을 파악하면, 기도가 어렵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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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祈禱)

기도는 언제해야 하나요?

(1) ( 항상 )해야 합니다

눅18:1 예수께서 그들에게 ( 항상 )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이 낙심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항상)기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 항상 )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판토테[모든 것에] 라는 말로서 영어로 언제나,항상 [always] 과 뜻이 비슷합니다. 그러므로 종합적인 의미는 ( 모든 만사 )에 기도로 시작해야할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모든 일에는 낙심할 일들이 있으며 이를 막는 방패와 같은 것이 기도임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2) ( 아침 ) 시간에 할 수 있습니다.

시5:3 여호와여 ( 아침 )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막1: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 아침 )혹은 ( 새벽 )에 기도하는 것은 구약의 왕들이나 예수님이 주로 하신 시간이었습니다. 이른 아침은 조용하고 하루의 ( 첫 ) 시작을 알리는 때이기에 하나님과 함께 이 귀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한다는 신앙의 결단을 보이는 태도입니다. 미합중국 대통령이었던 아브라함 ( 링컨 )은 백악관에 기도처를 만들어 놓고 이른 아침마다 흐느끼며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남북전쟁의 승리의 원동력은 링컨과 온 국민의 기도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3) 하루 ( 세 ) 번 시간을 정하여 기도할 수 있습니다.

시55:17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단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
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 세 )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윗은 영적 회복을 위해 ( 아침 ) ( 정오 ) ( 저녁 )에 기도하며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회개를 통해 믿음을 회복하였습니다. 다니엘은 다른 신에게 기도하는 것을 금한 조서를 어기고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순교자적인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들의 기도의 결과는 용서와 회복(다윗) 그리고 사자굴에서도 살아남는 기적(다니엘)을 경험하였습니다.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요?

(1) 기도는 온 ( 마음 )과 온 ( 뜻 )을 다해 그리고 온 ( 힘 )을 다해 간절히 해야 합니다.
(2) 거룩한 ( 회개 )의 삶을 살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3) ( 외식 )하며 기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 6:5-8 [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 외식 )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 상 )을 이미 받았느니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 골방 )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 중언부언 )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 외식 )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휘포크리테스  입니다. 이는 ( 가면 )을 쓴 해설자가 독백하는 가사를 대화체로 대답을 해주는 사람에게서 유래된 말입니다. 즉, 얼굴과 내면이 다른 사람을 의미할 때 사용하는 말로서 기도하는 사람과 말이 ( 가면 )을 쓴 자처럼 다르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기를 좋아하여 거짓된 삶을 회개하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을 싫어하십니다. 가면을 쓴 거짓 기도를 버리고 행동과 마음이 일치되는 기도를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하나님과 일대일로 정직하게 기도하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4) ( 중언부언 )하는 기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 6: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 중언부언 )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중언부언한다는 말은 말을 ( 더듬다 )에서 유래된 말로써 반복적으로 같은 말을 계속함으로써
오랜 시간을 보내는 기도방식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 핵심적인 ) 말을 간결하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오래 기도하는 것은 전략이 필요합니다. 기도의 제목과 내용을 어느 정도 숙지한 후에 기도를 시작하는 것도 이러한 잘못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장소

기도의 장소는 어디인가요?

(1) 기도 장소는 ( 어느 곳이든지 ) 가능합니다.
딤전2:8 그러므로 ( 각처 )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기도의 ( 장소 )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 어디에서나 ) 기도할 수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 바로 ( 성도 )이며, 만민이 기도하는 ( 집 )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초대교회 성도들 중 남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면서 각처에서 기도하기를 소망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각처는 헬라어 뜻으로 ( 모든 )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곳이든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2) 예수님이 추천하신 기도 장소는 ( 골방 )입니다.
마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 골방 )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왜 예수님께서는 ( 골방 )기도를 명령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기도하는 목적이 아버지 하나님
만을 만나 비밀스럽게 대화하며 영적교제를 가지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타인에
게 공개되어 자신의 기도시간이나 모습이 ( 자랑 )이 되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장소에서 하나님이 개인적으로 ( 보상 )을 기도하는 이들에게 주시기에 하나님이 개인적으로 주는 은혜를 충분히 ( 겸손 )하게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예: 통회하는 회개, 신비한 경험들)

(3) ( 산 )이나 ( 교회 예배당 )에서 기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막 6: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 산 )으로 가시니라
눅18: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 성전 )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기도는 어느 곳이든지 가능하지만,예수님은 정해진 장소인 ( 산 )으로 갔습니다. 늘 기도하던( 산 )에서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대화가 아무에게도 ( 방해 )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공개적인 기도처인 ( 성전 )에서 유대인들은 항상 기도했습니다. 공식적 기도처인 ( 예배당 )에서 기도시간을 정하여 하나님과 영적 교제 시간을 갖으며 공동체가 합심하여 기도하는 모습을 갖는 것 역시 성경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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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의 기도, 그 관습과 전통

들어가는 말  
기독교인들이 실제의 삶에서 신앙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실천적 토대를 언급하자면 여러 가지가 있을터인데, 그 중에서 '기도'가 위치한 자리가 앞머리가 될 것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어보인다. 그만큼 기도는 중요하다. 따라서 기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기 위해서 우리가 들이는 노력은 대단히 크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러한 노력의 대부분이 기도의 영성적 측면을 강조하는 모습에 치우쳐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기우일까? 기도를 이해함에 있어서는 그 영성적인 면뿐만 아니라, 기도의 문화가 형성되어 온 과정과 그 관습, 그리고 전통을 이해함도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므로 이렇게 중요한 기도의 관습과 전통이 기독교의 기초와 맞닿아 있는 유대교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자리매김이 되어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기 위해서 도움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비록 유대교라는 제한된 배경만을 다루고 있지만, 기도에 대한 역사적 이해의 단초를 제공하는 자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유대교의 기도 
기도의 형식 내지는 습관 그리고 대상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뿐, 종교적 현상으로서의 기도는 모든 종교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을 주지하면, 기독교의 뿌리랄 수도 있는 유대교 안에 기도의 전통과 습관이 오래전부터 전승되어 내려온다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사도행전 3장 1절을 보면, "제 구시(우리 시간으로 오후 세시) 기도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쌔"라는 구절이 있다. 베드로와 요한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성전에 올라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유대교의 기도관습에 익숙해 있었던 것 만큼은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개신교의 전통에서 볼 때, 우리의 기도 관습은 대단히 개인화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형식에 있어서도 통일된 양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비교해 볼 때, 유대교의 그것은 훨씬 더 양식화되어있고 규범화되어 있으며, 보다 공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우리네 예배에서 기도는 '목회기도' 내지는 '회개기도'의 형식으로, 그리고 '주기도' 등의 순서로 한 두 차례 목차에 오르는 것으로 역할을 끝내고 있으며, 개인이 시간을 내어 자원해서 드리는 기도의 측면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유대교에서는 예배와 기도를 따로 구별해 낼 수가 없다. 그들의 예배는 기도로 가득 채워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기도는 공식적인 것이다. 물론, 개인 기도 역시 매일 드리는 상시적인 기도 습관 가운데 포함되어 있지만, 워낙 그들의 삶이 공식적인 기도의 시간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개인 기도라는 구분된 시간의 필요성이 적은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유대인들이 지키던 달력이 기본적으로 예전적인(liturgical) 시간 구분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데서 보다 더 분명해진다. 유대인들의 하루는 기도시간을 기준으로 해서 설정되어 있다. 이를테면, 유대교의 기도의 가장 기본 단위는 '하루'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하루'의 연속이 곧 절기(festival)로 연결된다. 유대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절기는 유월절(페싸흐), 오순절(샤부오트), 그리고 초막절(쑤코트)이며, 이 절기에 드리는 기도가 따로 공적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절기들로 가득 찬 한 해의 문을 여는 시기가 유대 달력상 신년이며, 이 때를 유대인들은 '로쉬 하샤나'(일년의 시작, 혹은 머리)라고 부른다. 따라서 이러한 절기에, 그리고 매일마다 드려지는 기도의 관습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그들의 기도 전통과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된다. 물론 이 글에서 지면 관계상 유대교의 모든 기도를 소개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기도를 몇 가지 골라서 살펴보기로 하자. 

1. 매일 드리는 기도(Daily Prayers)  
유대교에서는 하루에 드리는 기도를 세 차례로 규정하고 있다:

(1) 아침기도(샤하리트);
(2) 오후기도(민하);
(3) 저녁 혹은 밤기도(마아리브).

이렇게 세 번의 기도 시간을 정해 놓은 것은 하루를 기준으로 나타나는 시간의 변화(해 뜰 무렵, 석양 무렵, 밤)에 맞춘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또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루에 드리는 세 번의 제사(아침, 석양 무렵, 그리고 밤) 시간과 연결해 놓은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바빌론 탈무드, 베라코트 4:1).

매일 드리는 기도는 안식일과 절기 기도의 기본형태이기 때문에 이 기도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기도는 신성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기도자에게는 몸을 깨끗하게 할 것이 요구된다. 몸을 씻고, 옷을 단정하게 입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기도드리는 장소는 개인의 집이나 회당, 둘 다 가능하다. 어떤 장소이건 청결해야 하며, 사람을 자극하는 향내나 냄새가 나서도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이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 시간은 대략 한 차례의 기도에 낮 시간의 1/3 정도가 소요된다고 보면 될 것이다. 탈무드(아루크, 58:1)는 낮과 밤을 열 두 시간씩으로 구분하기 때문에 한 차례의 기도 시간은 네 시간 정도가 될 것이다. 물론, 이 네 시간 동안 물리적으로 기도하는 것은 아니며,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마음이다. 랍비 요하난은 "사람은 하루종일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다"(바빌론 탈무드, 베라코트, 21a)라고 말했는데, 그 뜻은 어느 사람이건 하루종일 하나님 앞에서 그와 교제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형식위에 존재하는 '마음'은 기도의 중요한 요소이며, 이러한 점은 기독교나 유대교나 다를 것이 없다. 

(1) 아침기도(샤하리트)


아침기도는 우선 '아침의 축복문'(비르코트 하샤하르)을 암송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유대예전(Jewish liturgy)의 가장 근본적인 철학은 "하나님은 자신을 끊임없이 역사 속에, 자연속에, 그리고 인간의 매일 삶 속에 드러내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예전은 이러한 '신적 계시'(divine revelation)를 강조하고 확인하는데서 출발한다. 그래서 아침에 드리는 축복문에는 그들이 일어나는 시간에 다시 한번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그것이 계속해서 지속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그 다음 순서는 '찬양의 노래'(페수케이 데지므라)로서, 묵상(meditation)과 찬양이 결합되어있는 시간이다. 우리의 예배로 치자면, 공식 예배 전에 신자들이 교회에 일찍 나와서 묵상하고 찬양하는 시간과 같은 성격의 것이다. 이 시간에는 시편 84편 5절, 144편 15절이 불리워지고 난 후에 시편 145편 전체가 기도문으로서 암송된다. 찬양이 끝나면 공식예배가 시작되며, 우리가 잘아는 '쉐마'(들으라!)가 기도문으로 드려진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쉐마는 일종의 신앙고백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도신경 암송과 같은 성격을 갖고있다. 그들은 이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체성과 그 분에 대한 자신들의 믿음을 표현하며, 하나님 한 분만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쉐마는 우리가 잘 아는 신명기 6장 4절-9절('하나님 나라의 신민으로서 해야 할 의무') 외에도, 신명기 11장 13절-21절('지켜야 할 계명들'), 그리고 민수기 15장 37절-41절('출애굽을 통한 구원의 상기')등의 기도문이 포함되어 있다. 그 다음 순서는 '서서 드리는 기도'(아미다)이다. 미쉬나(Mishnah)에서 그저 단순히 '기도'(???? 테필라)라고 표현되어있는 것은 모두 '아미다'를 지칭할 정도로 대표적인 기도라고 할 수 있다. 이 기도는 성경에 기록되어있는 모든 헌신에 관한 기사들을 그 내용으로 하고있다. 기도자들은 기도를 드리는 시간에 모두 서 있어야 하며, 이러한 전통은 에스겔 1장 17절에 천사들이 일어서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인데서 비롯되었다. '아미다'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는데(찬양, 간구, 감사), 이것은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자연스런 기도의 순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에 드려지는 기도는 '간구'(타하눈, supplication)이다. 기도의 중심인 '아미다'가 끝나면 '마침기도'(the concluding prayer)를 드림으로 예배가 끝나는데, '아미다'와 '마침기도' 중간에 드리는 기도가 '타하눈'이다. 이 기도는 기도자의 헌신을 다시 한번 다짐하는 기도로서 월요일과 목요일에는 다소 긴 형태의 기도가 드려지고 나머지 요일에는 짧은 기도가 드려진다. 간구가 끝나고 예배가 마쳐지기 전에 유대인들은 '케리아트 토라'(토라 낭독) 시간을 가진다. 이 시간은 기도 드리는 시간은 아니지만, 유대교 예배에 있어서 빼어놓을 수 없는 핵심이다. 유대인들의 회당(synagogue)에 가보면, 예배당 전면에 화려하게 치장해놓은 커다란 상자를 볼 수 있는데, 그 안에는 토라 두루마리가 들어있다. 나중에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안식일 예배 시에는 사람들이 토라를 상자에서 꺼내 토라를 들고 예배당 전체를 한 바퀴 돈 후에 짜여진 순서대로 낭독자들이 나와서 막대기('손'이라고 불리는 특별한 막대기)를 짚어가면서 토라를 낭독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안식일에는 강론이 뒤따르지만 매일 예배에는 강론이 없다. 토라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가 따로 없을 정도로 우리가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토라 낭독은 일주일에 삼일 이상을 걸러서는 절대로 안된다. 아침기도가 마쳐질 시간이 되면, 기도자들은 시편 145편을 '마침기도'(concluding prayer)로 암송한다. 

(2) 오후기도(민하):

원래 '민하'라는 이름은 엘리야가 바알의 제사장들과 적대했던 상황에서 드려졌던 희생제사(왕상 18:29, 36)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유대인들이 매일 오후에 드렸던 제사를 중심으로한 예배를 의미한다. '민하'는 기본적으로 '아미다'를 중심으로 드려지는 예배이며, '아미다'를 드리기 전에 찬양기도(페수케이 데지므라)에 사용되는 시편 145편을 읽음으로써 기도를 시작한다. 왜냐하면 유대교의 기도에서는 모든 간구나 헌신 전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꼭 필요하고 자연스런 일이기 때문이다. '민하'에서 '아미다'는 묵상으로 드려지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 후에 짧은 '타하눈'을 드림으로써 오후기도를 마치게 된다. 오늘날에는 오후 열두 시 삼십 분에서 해질 녘 사이의 시간에 '민하'가 드려지며, 가장 최적의 시간은 오후 세 시 삼십 분에서 네 시 사십오분까지, 혹은 어두워지기 한 시간 반 전까지이다. 따라서 사도행전 3장 1절의 '구시 기도시간'은 오후기도로 이해함이 타당해 보인다. 

(3) 저녁, 혹은 밤기도(마아리브):

저녁기도는 기본적으로 아침기도와 그 형태가 거의 흡사하다. 단지 예배를 여는 시작기도와 마침기도가 없는 것이 그 차이점이다. 따라서 저녁기도 역시 '쉐마'와 '아미다'가 그 중심이다. 저녁기도는 시작기도 대신에 시편 78편 38절과 20편 10절을 암송함으로 드려진다. '타하눈'은 저녁기도에서 생략되며, '아미다'를 드린 후에 '알레이누'라는 찬양을 드림으로써 예배를 마치게 된다. 저녁기도를 드리는 때는 탈무드에 의하면 "육안으로 별 세 개를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어두워 질 때"이다. 오늘날로 치자면, 그저 해가 진 직후 정도가 될 것이다. 따라서 유대교 예전에서는 전통적으로 '민하'가 드려진 직후 저녁기도를 잇따라 드리는 것으로 이해되어왔다.

 2. 안식일에 드리는 기도(the Sabbath Prayers)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주머니를 비우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말이 있다. 혹시나 주머니에 물건이 들어있으면, 안식일에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옮기는 일을 하게 될까봐 조심해야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말이다. 그만큼, 안식일은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날이다. 신심이 깊은 사람들은 일주일의 첫 날부터 안식일을 위해서 준비하며 좋은 음식을 그 때부터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안식일은 창조와 깊은 연관이 있다. 쉼은 곧 새로운 창조를 의미한다는 것이 유대인들의 생각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빛이 있으라"고 하셨던 것을 그들은 잊지 않는다. 그래서 안식일은 촛불을 켜는 일과 함께 시작된다. 촛불은 흔히 금요일 해지기 전에 켜지며, 촛불을 켜면 평상시에 드리던 '민하'를 조금 일찍 시작함으로써 안식일 기도를 시작한다. '민하'에 이어 역시 '마아리브'를 드리는데, '타하눈'은 생략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 기도가 마쳐지면 부모가 아이들을 전례에 따라 축복하는 관습이 있으며, 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를 나눈다. 요즘에는 금요일의 이른 저녁에 '마아리브'를 드리는 것이 현실 여건상 어렵기 때문에 밤 늦은 시간에 '마아리브'를 드리는 것도 허용되고 있다. 안식일 아침이 되면, 아침기도(예배)를 드리는데, 평상시에 드리던 기도보다 몇가지 성경귀절이 첨가되어 조금 길어진 기도를 드림으로써 안식일 아침예배가 드려진다. 아침예배를 마치면, 매일 드리던 희생제사에 잇대어 특별한 안식일 제사를 드린다. 유대인들은 예전에서 '연속성' (continuity)을 무엇보다 중시해서 매일드리는 희생제사를 먼저 드린 후에야 이어서 안식일 제사를 드린다(민 28장, 29장; 바빌론탈무드, 요마 33b). 통상적으로 아침예배 전에는 음료수를 제외하고는 어떤 음식이든지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병이 있는 경우는 예외), 제사를 드리고 난 후에 유대인들은 함께 금요일 저녁과 같은 형태의 공동식사를 한다. 이어서 '민하'를 드리고 난 후에 가볍게 저녁식사를 하고나서 '마아리브'를 드림으로써 안식일 예배를 마감하게 된다. 

3. 절기에 드리는 기도(Festival Prayers) 

(1) 유월절(페싸흐):

유월절은 팔 일동안 지속되는 유대교의 절기로서 우리가 알다시피 대단히 중요한 절기이다. 유월절이 시작되기 전날 저녁에는 평상시에 드리는 것과 같은 '민하'와 '마아리브'를 드리는데, 단지 안식일처럼 촛불이 켜진다는 점이 다르다. 그날 밤에는 다 함께 모여서 유월절 식사를 하는데, 이것에 관한 관습과 전통을 기록한 책을 '하가다'라고 하며, 유월절에 관한 모든 내용을 담고 있다. 무교병과 쓴 나물 그리고 구운고기를 먹는 식사와 더불어 부모들은 유월절이 갖는 해방과 자유의 정신을 출애굽기 13장 8절에 근거해서 자녀들에게 가르치며, 왜 이날은 다른 날과는 달라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해 주어야 한다. 유월절 첫날은 약간의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보통 안식일에 드리는 아침기도를 드린다. 토라낭독 시간에는 특별히 출애굽기 12장 21절-51절을 읽으며 이에 상응하는 '하프타라'(성경의 토라 이외의 부분)로서 시편 24편과 29편이 낭독된다. '민하'와 '마아리브' 역시 안식일에 준하는 기도로 드려진다. 둘째 날 역시 첫째 날과 똑같은 예배와 기도가 드려지며, 낭독하는 시편에 있어서만 조금 차이가 있다. 셋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일종의 '준 명절'(semiholidays)로서 지켜진다. 이 나흘 동안은 다른 평상시에 드리는 것과 똑같은 세 차례의 매일기도를 드리며, 약간의 제약은 있지만 일하는 것도 허용된다. 특이한 것은 이 기간동안에는 결혼식을 치를 수 없다는 점이다. 또한 처음 이틀과는 달리 무교병을 먹어야하는 의무에서도 풀려난다. 따라서 이 기간동안에는 유월절 식사 규정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하지만, 마지막 칠일 째와 팔일 째는(이스라엘은 칠일째만, 다른 지역에서는 이틀 동안) 유월절의 처음 이틀 동안처럼 거룩하게 여겨지므로, 그 이틀과 똑 같은 행사와 기도, 예배를 드려야 한다. 

(2) 오순절(샤부오트):

유월절이 끝나고 나서 오순절이 시작될 때까지의 기간을 '쎄피라'(counting)라고 한다. '쎄피라'가 끝나면 오순절이 시작된다. 이스라엘의 삼대명절 가운데 두 번째로 맞는 절기이며, 이 절기에 관한 역사비평적 이해가 어떠하건 간에, 유대인들은 이 절기를 그들의 역사 속에서 추수 감사절로 여겨왔다. 따라서 단순히 날짜의 셈을 의미하는 오순절(샤부오트, 신 16:10-12)이라는 명칭 외에도 '추수명절'(하그 하카찌르, 출 23:16; 34:22)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미쉬나에 의하면, 이 절기에는 유월절과 같은 수준의 기도와 예배가 드려져야 하며, 낭독하는 성경만 다를 뿐이다. 흔히 첫째 날에는 출애굽기 19장, 20장 그리고 민수기 28장 26절-31절이 낭독되며, '하프타라'로서는 에스겔서가 읽혀진다. 둘째 날에는 신명기와 하박국 말씀이 읽혀지는 정도가 차이점이다. 특기할만한 것은 절기의 첫날에는 온 밤을 새워서 잠을 자지 않고 토라를 공부해야 한다는 점이다. 전설에 의하면, 잠들어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천둥과 번개를 사용해서라도 깨워서 말씀을 공부하도록 했다는 이야기도 있을 만큼 이 전통은 중시되고 있다. 또 한가지 언급할 것은 둘째 날에는 룻기를 읽는 관습이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룻이 이스라엘에 돌아온 때가 오순절이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다윗이 오순절에 죽었다는 전설에 기초해서 룻이 다윗의 선조이므로 룻기를 읽는다든지, 혹은 룻기가 성문서(케투빔)의 제일 첫 번째 책이므로 오순절에는 룻기를 선택해서 낭독한다는 설명들이 있다. 

(3) 초막절(쑤코트):

레위기 23장 42절, 43절에서 비롯된 쑤코트 역시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는 그 안에 농업문화가 갖는 추수 감사의 성격이 들어있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다른 절기들처럼, 처음 이틀은 거룩한 날로 지키며 중간의 나흘은 '준 명절'로 지킨다. 유월절과 오순절에 드리는 예배의 형식이 그대로 이 절기에 드려지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특이한 것은 마지막 이틀은 다른 절기와는 달리 '쉐미니 앗쩨레트' 그리고 '심핫 토라'라는 이름을 가진 독립적인 절기로 지켜진다는 점이다. 이 두 명절은 초막절을 마감하면서 기쁨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며 특히 메시야의 도래에 대한 대망을 마음 속에 확인한다는 의미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절기가 시작되기 나흘 전부터는 금식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축제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모습이라고 하겠다. 유대인들은 초막절에 반드시 나무와 풀로 지은 '초막'(쑤카)을 만들어 그 안에서 지내는 체험을 해야 한다. 초막을 만드는 규정은 미쉬나와 탈무드 속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나가는 말  유대인들이 지키는 절기와 관련해서 그들이 드리는 기도의 관습과 전통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살펴보았다. 이러한 절기에 드려지는 기도의 모습을 보면, 그들의 삶은 하루 하루, 일주일, 그리고 일년 내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로 가득 차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그들의 예배가 형식으로 드려지는 무미 건조함을 탈피하는 생기로 가득 차 있기만 하다면, 이러한 기도의 전통은 우리에게도 의미있는 것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의 저명한 유대교 신학자인 아브라함 헤쉘(Abraham J. Heschel)은 그의 책 Man's Quest for God에서 랍비 메이어(R. Meir)의 입을 빌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떤 신발 고치는 사람이 기도 때문에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의 고객들은 모두 가난한 사람이어서 해질 녘에 일을 끝낸 후에야 신발을 받아서 밤새 새벽까지 그것들을 수리한 후에 그들이 일 나가기 전에 배달을 해야했으니, 그에게 기도시간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가 그저 내 뱉을 수 있었던 말은 고작해야, "이런, 아직도 아침기도를 못 드렸네…아이구" 같은 말이었다고 한다. 헤쉘은 이것이야 말로 한숨 속에 숨어있는 생활인의 위대한 기도라고 평가하고 있다. 기도가 공식적인 것이든, 개인적인 것이든 그 안에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스며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기도는 위대해지는 것이다. 우리 모두 늘 하나님과 마주하는 기도의 시간에 이러한 열정까지 소유한 기도자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유대인의 일상 기도에 관한 정리

유대인은 매일 하루 세차례에 걸쳐서 기도시간을 가진다. “기도”는 히브리어로 테필라(Tefilla, 혹은 복수형태로 테필로트)라고 한다. 이 기도시간에 사용되는 여러 기도문들을 모아 놓은 기도책을 시두르(Siddur)라고 한다. 탈무드에 의하면, 하루 세차례씩 기도를 드려야 하는 이유가 두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루 세차례씩 봉헌물이 올려졌기 때문이고, 둘째는 세명의 족장(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각각 아침기도, 오후기도, 저녁기도를 예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도는 개인기도와 공중기도가 있는데, 공중기도회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기도회 정족수(보통10명)가 채워져야 하며, 기도회정족수를 히브리어로 민얀(Minyan)이라 한다.

하루 세차례 드리는 기도시간의 명칭은 다음과 같다.

아침기도 : 샤하리트(Shacharit, “아침 빛”이라는 의미)

오후기도 : 민하(Mincha, 소제(素祭, 곡식으로 드리는 봉헌)를 의미)

저녁기도 : 마아리브(Ma’ariv, “일몰”의 의미임) 혹은 아르비트(Arvit, “저녁”의 의미)

위에 열거된 매일 드리는 세차례 기도시간외에 안식일이나 절기, 월삭등 특별한 날에 드리는 기도시간이 있는데, 그것을 무사프(Musaf, “추가”의 의미임)라고 한다. 또한 매년 속죄일(욤키푸르)에 특별히 드리는 기도시간이 있는데, 네일라(Neila, 영어로는 “closing”으로서, “결산”혹은 “마무리”의 의미)라고 한다.

매일 드리는 세차례의 기도 시간중 아침기도시간(샤하리트)의 과정을 조금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나머지 기도시간도 대동소이하다.

(1) 비르코트 하-샤하르(birkot ha-shachar, “morning blessing”의 의미)

(2) 페수케이 데지므라(Pesukei D'Zimrah, “찬양시(詩)”의 의미) ; 시편100, 145~150, 출애굽기14~15장등으로 구성됨

(3) 쉐마(Shema)

(4) 아미다(Amidah, “일어서서 드리는 기도”의 의미); 이것은 매일 드리는 세차례 기도시간에 모두 포함되는 중심이 되는 기도순서이며, 19개의 찬송시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는 18개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쉐모네 에스레이(Shemoneh Esrei, "18"의 의미)라고도 불리는데, 야브네(Yavneh; AD70년 예루살렘 성전파괴후 산헤드린이 거처를 옮긴 지역)시절에 1개가 추가되어 현재는 19개이다.

1. 아보트 Avot (조상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찬양함

2. 게부로트 Gevurot  (능력); 하나님의 능력과 힘을 찬양함

3. 케두샤트 하쉠 Kedushat ha-Shem (성호); 하나님의 성호를 찬양함

4. 비나 Binah (명철); 우리에게 명철과 지혜를 주실 것을 간구함

5. 테슈바 Teshuvah (회개); 토라를 지키는 삶으로 회개할 수 있도록 간구함

6. 셀리하 Selichah (용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간구함

7. 게울라 Geulah (구속); 이스라엘을 구속해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함

8. 레푸아 Refuah (치유); 치유를 간구함

9. 비르카트 하샤님 Birkat HaShanim (풍년); 풍년을 기원함

10. 갈루요트 Galuyot ("diasporas"); 흩어진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땅으로 다시 모일 것을 간구함

11. 비르카트 하딘 Birkat HaDin (공의); 공의의 회복을 간구함

12. 비르카트 하미님Birkat HaMinim (이단); 이단을 멸하여 주시기를 간구 (*야브네 당시 첨가된 항목)

13. 짜디킴 Tzadikim (의인); 의인에 대한 축복을 간구함

14. 보네 예루샬라임 Bo'ne Yerushalayim (예루살렘의 재건); 예루살렘의 재건을 간구함

15. 비르카트 다비드 Birkat David (다윗의 자손); 메시아의 도래를 간구함

16. 테필라 Tefillah (기도); 우리의 기도를 받아주시기를 간구함

17. 아보다 Avodah (성전제사); 성전제사를 회복시켜 주실 것을 간구함

18. 호다 Hoda'ah (감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림

19. 심 샬롬 Sim Shalom (큰 평강); 하나님의 축복과 자비를 간구함

(5) 타하눈(Tachanun, “간구”의 의미)

(6) 케리아트 하토라(K'riat HaTorah, “토라를 봉독함”의 의미)

(7) 알레이누(Aleinu, ”우리의 의무”의 의미);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우리의 마땅한 의무임을 고백하는 폐회송



Jewish Prayer

유태인기도 ɪləs]; 영어: Yiddish davening דאַוון davn '기도하다')는 랍비 유대교 준수의 일부를 형성하는 기도문입니다.
종종 지침과 설명이 포함된 이러한 기도문은 전통적인 유대인 기도서인 Siddur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마음의 봉사"로서의 기도는 원칙적으로 율법에 근거한 계명입니다. 이것은 유태인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시대를 초월한 의무입니다. 그러나 특정 기도문을 암송하라는 랍비의 요구 사항은 남성과 여성에 따라 다릅니다. 유대인 남성은 특정 시간 범위 내에서 매일 세 번의 기도(zumanim)를 암송해야 하는 반면, 많은 접근 방식에서는 여성이 한 번만 기도하도록 요구합니다. 또는 특정 구절을 하루에 두 번 암송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매일 세 번의 기도를 바칩니다. 아침기도: Shacharit 또는 Shacharit (שַחֲרִית, "새벽에") 오후 기도: Mincha 또는 Minha(מִנְחָה),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 드리는 밀가루 제물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저녁 기도: Arvit (עַרְבִית, "저녁의") 또는 Maariv (מַעֲרִית, "밤을 가져오다") 안식일과 공휴일에는 두 가지 추가 예배가 낭독됩니다. Mussaf(모사프, "추가")는 안식일, 유대교의 주요 명절(Chor Hamoyed 포함) 및 Rosh Chodesh에 정교회 및 보수파 회중이 읽습니다. Neelas (נְעִילָה, 'Closing')는 Yom Kippur에서만 외칩니다. 개인 기도와 미니안으로 알려진 정족수가 필요한 합동 기도 사이에 차이가 있지만 다음을 포함할 수 있는 합동 기도가 선호됩니다.

전통에 따르면 현재의 표준기도 중 많은 부분이 초기 제2성전 시대(기원전 516년 – 서기 70년)에 그랜드 카운슬의 현자들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기도문은 분명히 현대적이지만 종종 성경의 관용구를 사용합니다.
현대 경건 예배의 주요 구조는 탄나 시대(서기 1-2세기)에 고정되었으며, 일부 추가 사항과 축복의 정확한 텍스트는 나중에 나타납니다. 유대인의 기도서는 중세 초기 바빌로니아 시오니즘 시대(서기 6~11세기)에 등장했습니다.

지난 2000년 동안 Ashkenazi, Sephardi, Yemen, Eretz Israel 등 또는 Hasidism 및 Chabad와 같은 최근 전례 발명품. 그러나 차이점은 유사점에 비해 미미합니다. 대부분의 유대 전례는 전통적인 선율과 은유에 따라 노래하거나 낭송합니다. 회당은 특히 안식일과 공휴일에 회중의 기도를 인도할 목적으로 전문가나 평신도 하잔(칸토르)을 임명하거나 고용할 수 있습니다.


[시편 109편]  "나는 기도할 뿐이라"는 다윗의 고백이 내 고백 되기를


시편 기자들의 일상생활:

말씀ㆍ기도ㆍ찬송은 시편 기자들의 일상생활입니다.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4절)"고 한 것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신앙인은 왜 기도하나요?


1. 기도는 하나님께서 크리스천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된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반 종교에도 기도의 행위는 있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기도가 더 진지하고 엄숙한 면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의 기도를 받으실 대상이 있는지에 대한 여부입니다.

기도를 받고 응답하는 분이 있느냐? 혹은 없느냐? 에 따라 크리스천이 드리는 기도는 타 종교와 차이를 보입니다.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하나님에게 기도할 것을 말씀하셨고 우리가 말씀대로 기도하면 시행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2. 기도는 악을 선으로 바꾸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악한 입과 거짓된 입을 열어 나를 치며 속이는 혀로 내게 말하며 또 미워하는 말로 나를 두르고 까닭 없이 나를 공격하였음이니이다(2~3절)" 말씀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일부 사람은 선을 악으로 갚고 사랑을 미움으로 갚지만 하나님은 이와 반대로 악을 선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이는 요셉이 당했던 어려운 상황을 떠올리면 이해가 잘 되실 겁니다. 요셉의 형들은 동생인 요셉을 해하려 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 말씀이 이를 잘 대변하지요.


3. 기도는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더니 복이 그를 멀리 떠났으며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더니 저주가 물 같이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의 뼈 속으로 들어갔나이다(17~18 말씀)"


인생을 살다보면 항상 평탄한 일만 있을수는 없습니다. 누군가에 의해 까닭없는 모함과 공격을 받기도 하고 힘든 일을 직면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내 귀에 모함이나 조롱, 비방하는 말이 들린다면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 한 사람만 속임과 미움을 받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 믿음의 신앙인들도 이유없는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나는 기도할 뿐이라"는 다윗의 고백을 나의 믿음의 고백으로 바꾸어 기도로 이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 우리 모두는 기도를 가까이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안에서 복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악한 입과 거짓된 입을 열어 나를 치며 속이는 혀로 내게 말하며
또 미워하는 말로 나를 두르고 까닭 없이 나를 공격하였음이니이다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그들이 악으로 나의 선을 갚으며 미워함으로 나의 사랑을 갚았사오니

악인이 그를 다스리게 하시며 사탄이 그의 오른쪽에 서게 하소서
그가 심판을 받을 때에 죄인이 되어 나오게 하시며 그의 기도가 죄로 변하게 하시며
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
그의 자녀들은 유리하며 구걸하고 그들의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고리대금 하는 자가 그의 소유를 다 빼앗게 하시며 그가 수고한 것을 낯선 사람이 탈취하게 하시며
그에게 인애를 베풀 자가 없게 하시며 그의 고아에게 은혜를 베풀 자도 없게 하시며
그의 자손이 끊어지게 하시며 후대에 그들의 이름이 지워지게 하소서
여호와는 그의 조상들의 죄악을 기억하시며 그의 어머니의 죄를 지워 버리지 마시고
그 죄악을 항상 여호와 앞에 있게 하사 그들의 기억을 땅에서 끊으소서

그가 인자를 베풀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와 마음이 상한 자를 핍박하여 죽이려 하였기 때문이니이다
그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더니 복이 그를 멀리 떠났으며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더니 저주가 물 같이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의 뼈 속으로 들어갔나이다
저주가 그에게는 입는 옷 같고 항상 띠는 띠와 같게 하소서
이는 나의 대적들이 곧 내 영혼을 대적하여 악담하는 자들이 여호와께 받는 보응이니이다

그러나 주 여호와여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를 선대 하소서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나를 건지소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여 나의 중심이 상함이니이다
나는 석양 그림자 같이 지나가고 또 메뚜기 같이 불려 가오며
금식하므로 내 무릎이 흔들리고 내 육체는 수척하오며
나는 또 그들의 비방 거리라 그들이 나를 보면 머리를 흔드나이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구원하소서
이것이 주의 손이 하신 일인 줄을 그들이 알게 하소서 주 여호와께서 이를 행하셨나이다
그들은 내게 저주하여도 주는 내게 복을 주소서 그들은 일어날 때에 수치를 당할지라도 주의 종은 즐거워하리이다
나의 대적들이 욕을 옷 입듯 하게 하시며 자기 수치를 겉옷 같이 입게 하소서
내가 입으로 여호와께 크게 감사하며 많은 사람 중에서 찬송하리니

그가 궁핍한 자의 오른쪽에 서사 그의 영혼을 심판하려 하는 자들에게서 구원하실 것임이로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동입니다.
반대로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사도신경이 참 고백이 되려면 그 고백이 사도들이나 다른 사람의 고백이 아닌 내 신앙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신경은 첫 부분부터 아주 중요한 고백이 나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고백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인간의 모순과 무능함과 연약함과 끈기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주인님이신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가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인정하지 않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인간의 능력을 의지하는 사람이 됩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기도의 원형은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부르짖어 기도했고 아주 많이 등장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간구’입니다. 삼손도 간구합니다. 다윗도 간구합니다. 기도는 소리를 내어 하게 되어 있습니다. 반면 묵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조용히 되새김질 하며 나의 삶을 돌이켜 보고 하나님의 주파수에 나를 맞추어가게 합니다. 기도는 간절하게 부르짖고 말씀은 묵상을 하며, 돌이킬 것과 따라갈 것을 구분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게 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33:3)

그런데 이 부르짖는 기도를 하다 보니까 회개가 어려웠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귀와 시선을 의식하게 된 것이지요. 부르짖는 기도를 하다 보니까 공통분모를 위한 기도는 가능한데 나 자신만을 위한 간절한 기도가 어색해졌습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 앞에서 기도할 때 자꾸만 하나님보다는 사람을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기도의 내용이 달라졌습니다. 회개와 결단의 기도보다는 다른 사람 들으라고 자랑하는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특히 바리새인들의 기도가 더욱 그랬습니다. 그들의 기도가 무엇이었습니까?
(눅 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눅 18: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어느새 다른 사람들을 의식해서 기도가 자기 자랑으로 바뀌었습니다. 형식은 여전히 부르짖는 것이었으나, 내용이 달라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기도는 사람 들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 의식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기도하라는 가르침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마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그렇다고 해서 모든 기도가 골방에서 은밀한 중에만 해야 함을 가르치시는 본문이 아닙니다.
원형적 기도는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골방에서 부르짖어도 되고, 회중앞에서 부르짖어도 됩니다. 중요한 핵심은 기도의 대상이 결코 사람이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언제부터인가 모든 기도가 ‘골방에서 은밀한 중에’ 로 바뀌어지고 있습니다. 묵상과 침묵이 강조됩니다. 결국 기도하다가 잠을 자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유혹일 수 있습니다.
기도는 부르짖음이요 간구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도 그랬습니다. 겟세마네의 기도도 그랬습니다.
기도의 대상은 결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내 안에 있는 죄와 허물을 꺽어버리려면 역시 부르짖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죄의 본성을 억제하는 것도 탄식과 부르짖음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 사랑담은 간절함도 부르짖음에서 시작됩니다.
은밀한 중에 골방에서는 기도의 대상을 가르치시기 위한 표현이셨습니다.
기도의 방법은 여전히 부르짖음과 간구입니다. 예수님도 부르짖으셨습니다. 바울 목사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조용히 은밀한 중에 침묵으로 기도해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큐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보니 교회들이 거의 다 죽었습니다.
목회자만 남은 교회가 절반이나 됩니다.
저희에게 오셔서 부르짖는 기도를 가르쳐주십시오!”

혼자서 혹은 여럿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본래적 기도가 회복되기를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