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로 옷 입으라
“골 3:12-14절에 나오는 7개의 덕목은 하나님의 선택자,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로서 우리가 입는(put on) 옷입니다.
영어 킹제임스 단어들로 보면 그 의미가 좀 더 분명합니다.
긍휼은 ‘긍휼히 여기는 심정(bowels of mercies)’,
자비는 ‘친절(kindness)’,
겸손은 ‘겸손한 생각(humbleness of mind)’,
온유,
오래 참음,
용납은 ‘서로
참아주기(forbearing one another)’,
용서는 ‘서로 용서 (forgiving one another)’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매는 띠인 사랑 즉 ‘charity’를 입는 것입니다.
약 3:17절의 위로부터 난 지혜는 성결 즉
‘순수하고(pure)’, ‘화평하고(peaceable)’, 관용 즉 ‘부드럽고(gentle)’, 양순 즉 ‘간청을 잘
들어주며(easy to be intreated)’, 긍휼과 선한 열매로 가득하고(full of mercy and good
fruits),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즉 ‘차별 없고(without partiality) 위선이 없나니(without
hypocrisy)’입니다.
약 3:17은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땅에 속한,
관능적이고 마귀에 속한 지혜와 비교되는 위로부터 난 지혜의 특성입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롬 13:14)
위에 열거된 성품은 그리스도의 것이니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창조 6000년 역사 가운데 인간의 한결같은 고민은 의식주 해결입니다. 죄가 들어오자 바로 무화과 잎으로 가리개를 만들어 지어 입고(창 3:7), 저주받은 땅에서 힘들여 먹거리를 해결하니(창 3:17) 말입니다. 문명이 획기적으로 발달한 오늘에도, 예수님이 오셨던 2000년 전에도, 의식주로 고민하는 상황엔 큰 변화가 없습니다(2000에 대한 조명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오죽하면 예수님도 ‘들풀도 입히시고 공중에 나는 새도 먹이시는 하나님이시니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6:25-34)’고 당부하셨을까요. 그랬던 주님도 하나님이지만 인간의 몸을 입으셨기에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건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 없이(마 8:20) 이 땅 가운데 지내셨습니다.
범죄한 아담이 제일 먼저 해결하려 한 게 벗은 몸을 가리는 것이었기에, 성경의 먹거리 변천사(‘노아의 때와 같이’ 참고)에 이어 오늘은 무엇을 벗고 무엇을 입을지를 쓰려고 합니다. 성경에서 입고(put on, clothed), 벗고(put off, naked) 구절들을 모두 찾아보니 흥미롭게도 구약엔 실제 옷이나 신발이 나오는 반면 신약엔 영적인 것들이 나왔습니다. 아담의 무화과 잎으로 만든 첫 옷이 구약에 나오는 옷이라면 하나님께서 벗기고 입히신 가죽옷은 신약의 영적인 옷에 해당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히려면 어떤 동물의 죽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죄로 인해 이때 일어난 첫 죽음은 아마도 양의 죽음일 거라고 합니다. 이러한 진리는 신약으로도 이어집니다. 구약에서 범죄한 첫 사람을 양의 가죽으로 입히셨던 하나님은 신약에선 ‘세상 죄를 가져가는(takes away)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입히십니다.
따라서 성경은 ‘어둠의 행위를 벗고(롬 13:12)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롬 13:14)’고 우리에게 촉구합니다. 여기서 ‘어둠의 행위(일)’란 ‘육신의 행위’며 ‘방탕, 술 취함, 음란, 호색, 다툼, 시기, 정욕’을(롬 13:13-14) 말합니다. 또한 ‘속이는 것으로 가득한 욕심에 따라 부패한 옛사람(엡 4:22)’을 벗으라고 합니다. 이 ‘옛사람과 그의 행위(골 3:9)’는 ‘음행, 부정함, 무절제한 애정, 악한 욕정, 탐욕(우상숭배), 분노, 진노, 악의, 신성모독, 더러운 대화(부패한 대화), 거짓말, 도둑질, 소리 지름, 악독, 비방(엡 4:22-32; 골 3:2-10)’입니다.
‘어둠의 행위를 벗고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는 권고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성령을 받으라는 촉구이기도 합니다. ‘너희 가운데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자는 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갈 3:27)’고 성경은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은 자들은 육신의 죄에 속한 몸을 벗어 버린 사람들이며(골 2:11)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서 새로워진 새 사람을 입은(골 3:10)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참된 거룩함으로 창조하신 새 사람을 입을 것을 가르침 받은 우리는 생각을 새롭게 하고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노동하여 궁핍한 자에게 주는 선한 일을 하고 덕을 세우는 좋은 말만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쳐야(엡 4:23-29)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기에 서로 순종하며 온유로 단장하고 겸손으로 옷 입어야(벧전 3:4-5, 5:5)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로서 긍휼, 친절(상냥함), 겸손, 온유, 오래 참음을 입고 서로 참고 용서하되 그리스도께서 용서하신 것같이 하며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의 띠를 맵니다(골 3:12-14).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 받아 성령을 받은 ‘새 사람’의 성품은 그리스도의 것이자 성령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에게도 ‘내게서 불로 정제한 금을 사고 흰옷을 사서 입어 네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내지 말며 눈에 안약을 발라 볼 것을 권고(계 3:18)’하십니다.
이어지는 구절에 ‘보라,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으리라(계 3:20)’고 하신 것을
미루어 이들은 주님을 영접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바울도 교회로 보낸 서신서임에도 불구하고 ‘너희 가운데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자는 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갈 3:27)’고 합니다.
이는 ‘너희 가운데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 받지 않은 자들도 있다’란 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약속하신 흰옷은(계 3:5; 4:4) 그리스도의 신부가 입는 옷이며(계 19:8) 그리스도를 따르는 군사들이 입는(계 19:14) ‘성도의 의(계 19:8; 엡 4:24; 롬1:17, 3:21-22)’입니다. 그렇기에 성경은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 갑주(whole armor of God)를 입으라고(엡 6:11)’ 합니다. 빛의 갑옷(armor of light)을 입고 낮에 하듯이 정직하게 걸으며(롬 13:12) 낮에 속했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흉갑을 입고 구원의 소망으로 투구를 써야 합니다(살전 5:8). 악한 날에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해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으로 신어 준비하고 사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끌 믿음의 방패와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말씀)을 취해야 하는 것입니다(엡 6: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