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 유다 왕국(BC 931-586) 바벨론 느부갓네살
1. 르호보암(왕상 14장 / 대하 11-12장)
유다의 첫 번째 왕인 르호보암입니다.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은 남유다의
초대 왕이 됩니다.
르호보암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했던 기간은 고직 3년뿐이었습니다(대하 11:17)
3년이 지나고 나라가 견고해지고 튼튼해지자 르호보암은 여호와의 율법을 저버립니다(역대하 12 :1)
르호보암이 즉위한 지
5년째 되던 해, 예루살렘은 애굽 왕 시삭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왕상 14:25)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스마야를 통해 유다가 행한
죄악을 심판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시삭의 손에 넘겼다고 말씀합니다(대하 12:5)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성전과 왕궁에 있는 모든
보물과 솔로몬이 만들었던 금 방패를 빼앗겨(대하 12:9), 놋 방패로만 궁문을 지킵니다(대하 12:10)
르호보암은 그렇게 17년 간 남유다를 다스립니다(대하 12:13)
2. 아비얌(아비야)(왕상15장 / 대하 13장)
유다의 두 번째 왕인 아비야라고도 불리는 아비얌입니다.
르호보암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비얌이 왕이 되고, 총 3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아비얌 역시 다윗의 길을 따르지 않고, 아버지 르호보암의
모든 죄를 그대로 행합니다(왕상 15:3).
당시 북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여로보암과 전쟁만 하다가(왕상 15:6) 병을 얻어
죽음을 맞이합니다.
3. 아사(왕상 15장 / 대하 14-16장)
유다의 세 번째 왕인 아사입니다.
아비야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사가
왕이 되고, 총 41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아사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와는 달리 다윗의 길로 행했고, 여러 종교 개혁들을
단행합니다(왕상 15:11)
먼저 남자 창기들을 밖으로 몰아내고, 조상들이 만든 모든 우상을 없애 버립니다(왕상 15:12)
그리고 우상을 섬기던 할머니 마아가도 과감히 쫓아냅니다(왕상 15:13)
또 오뎃의 아들 아사랴를 통해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대하 15:1) 우상 제거와 여호와의 제단을 재건하는 일에 박차를 가합니다(대하 15:8)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던 아사였지만 북이스라엘 바아사와의 전쟁 중,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아람 나라를 의지합니다.
이를 꾸짖는
예언자 하나니의 말에 몹시 화를 내며 그를 감옥에 가둡니다(대하 16:10)
아사 왕은 통치 말년에 발에 병을 얻어 죽음을
맞이합니다.
4. 여호사밧(왕상 22장 / 대하 17-20장)
유다의 네 번째 왕인 여호사밧입니다. 아사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여호사밧이 왕이 되고, 25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여호사밧은 아버지 아사를 따라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하는데요.(대하
17:4) 여호사밧 왕 때 남유다는 굉장한 부와 영광을 떨치게 됩니다.(대하 17:5) 여호사밧 역대 종교 개혁을 단행하는데요.
아버지 아사 왕의 개혁 후에도 남아있던 남자 창기들을 모두 쫓아내고(왕상 22:46), 재위 3년 차에 신하들과 제사장 그리고
레위 사람들을 뽑아 여호와의 율법책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게 합니다.(대하 17:9) 유다는 점점 더 강성해져 갔고(대하
17:10), 북이스라엘의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동맹을 맺게 됩니다.(대하 18:1) 하지만 그것이 여호사밧의 발목을 잡게
되었고, 하나니의 아들 예언자 예후를 통해 따끔한 질책을 받게 되죠.(대하 19:2) 여호사밧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2차
종교개혁을 단행합니다. 유다 곳곳을 직접 다니며 백성들을 살피고 재판관을 세우며, 공정한 재판을 할 것을 강조합니다. 얼마 후,
모압과 암몬, 그리고 마온 사람들이 힘을 합쳐 남유다를 공격 했고, 이에 여호사밧은 유다 온 백성과 함께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대하 20:5-6) 결과는 유다의 대승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여호사밧도 산당을 철거하지 않아서 온전한 개혁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대하 20:33)
5. 여호람(왕하8장/대하 21장)
유다의 다섯 번째 왕인 여호람입니다. 여호사밧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되고, 8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여호람은 왕권을 잡은 후, 형제들을 죽이는 끔찍한 일을 벌이는데요.(역대하
21:4) 그는 아합의 딸 아달랴와 결혼해 아합의 길을 따릅니다.(대하 21:6) 엘리야 선지자는 여호람에게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창자가 빠져나와 죽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전합니다.(대하 21:15) 그리고 말씀 그대로 창자가 빠져나와 죽게
됩니다.(대하 21:19)
6 .아하시야(왕하8-9장/대하 22장)
유다의 여섯 번째 왕인 아하시야입니다. 여호람의 뒤를 이어 막내아들인
아하시야가 왕이 되고, 1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아하시야 역시 아버지 여호람을 따라 아합의 집의 길을 따르죠.(대하
22:3) 아하시야는 당시 북이스라엘의 왕인 요람과 왕의 자리를 빼앗으려 했던 예후와의 싸움에 휘말려 예후에게 죽임을
당합니다.(대하 22:9)
7. 아달랴(왕하 11장/대하 22-23장)
유다의 일곱 번째 왕인 아달랴입니다. 아하시야의 죽음 뒤, 그의 어머니
아달랴는 유다의 왕족을 죽이기 시작합니다.(대하 22:10) 그때 아하시야의 누이인 여호세바(여호사브앗)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유모와 함께 빼내었고, 그렇게 요아스는 여호와의 성전에서 6년 동안 숨어 지냅니다.(왕하 11:2) 아달랴가 남유다의
왕이 된 지 7년째 되던 해, 제사장 여호야다는 아달랴를 몰아내고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기 위한 작전을 벌입니다. 작전은 성공했고,
아달랴는 죽임을 당하게 되죠. 이렇게 아달랴의 6년 간의 통치가 끝나게 됩니다.
8.요아스(왕하 12장/대하 24장)
유다의 여덟 번째 왕인 요아스입니다. 할머니 아달랴의 죽음 뒤에 왕이 된
요아스는 40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요아스는 아달랴 시대에 방치되었던 성전을 보수하고, 날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번제를
드리는 등 선한 왕의 면모를 보입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자신을 돌봐주고, 왕위에 오르게 한 여호야다가 죽자 요아스는
돌변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기게 된 건데요. 이에 하나님은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통해 무섭게
경고하시지만, 요아스는 그 경고를 무시하고 스가랴를 돌로 쳐 죽입니다. 얼만 지나지 않아 아람 왕 하사엘이 예루살렘을 공격해
왔고, 전쟁에서 부상을 당한 요아스는 신하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9.아마샤(왕하 14장/대하 25장)
유다의 아홉 번째 왕인 아마샤입니다. 요아스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되고, 남유다를 29년간 다스립니다. 아마샤을 왕권을 잡은 후, 아버지 요아스를 죽인 신하들을 먼저 처형합니다.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아마샤는 에돔 사람들이 섬기던 우상들을 가져와 섬기기 시작하는데요. 이를 지적하는 선지자를 무시하고,
자신의 힘을 과신한 나머지 북이스라엘과 전쟁을 일으킵니다. 전쟁에 크게 패배한 후에, 아마샤는 백성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10.아사랴(웃시야)(왕하 15장 / 대하 26장)
유다의 열 번째 왕인 웃시야라고도 불리는 아사랴입니다. 아마샤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사랴(웃시야)가 왕이 되고, 남유다를 52년간 다스립니다. 아사랴는 블레셋과의 전쟁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성을
튼튼히 하는 등 힘을 키워갔는데요. 유다의 힘이 커지는 만큼 아사랴의 교만도 커져갔고, 어느 날 제사장에게만 허용된 향을 피우는
일이 자신이 직접 행하려고 합니다. 제사장들의 만류에도 향을 피우려던 아사랴의 이마에 나병이 생기게 되었고, 죽을 때까지 격리되어
별궁에서 지내게 됩니다.
11.요담 (왕하 15장 / 대하 27장)
유다의 열한 번째 왕인 요담입니다. 아사랴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요담이
왕이 되고, 남유다를 16년 동안 다스립니다. 요담은 성전을 증축하고, 암몬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합니다. 하나님은 승리에도 겸손을
잃지 않은 요담을 점점 더 강하게 하시죠. 요담은 그렇게 다윗 성에 장사됩니다.
12.아하스(왕하 16장/ 대하 28장)
유다의 열두 번째 왕인 아하스입니다. 요담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되고, 남유다를 16년간 다스립니다. 아하스는 유다의 왕 중에서 가장 악한 왕으로 꼽히는데요. 바알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
심지어 자기 자녀를 제물로 바치는 끔찍한 일을 벌이죠. 그는 산당과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우상에게 제사를 드립니다. 아람과
이스라엘 연합군의 침입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고, 하나님이 아닌 앗시리아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도움을 청하죠. 급기야
앗시리아의 다메섹 제단을 그대로 유다로 가져오기까지 합니다. 아람과 이스라엘 연합군이 물러간 뒤 에돔 사람이 다시 유다를 공격 해
왔고, 블레셋 사람들의 공격까지 받게 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아하스 왕은 여전히 하나님이 아닌 앗시리아 왕과 다메섹 신들을
의지합니다. 마침내 아하스는 성전 안에 있는 기구들을 부수고 성전 문을 닫기까지 합니다. 또 유다 각 성읍에 산당을 세워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됩니다.
지난 시간에는 북이스라엘의 멸망 전에 남유다를 다스린 왕들을 살펴보았는데요.
오늘은 북이스라엘의 멸망 후에 남유다를 다스린 왕들을 쉽게 그리고 단숨에 정리해 보겠습니다. 영상을 끝까지 보세요.
13. 히스기야(왕하 18-20장, 역대하 29-32장)
유다의 열세 번째 왕인 히스기야입니다. 아하스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고, 남유다를 29년간 다스립니다.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는 유다의 왕 중에서도 가장 악한 왕으로 꼽히는
왕이었죠.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히스기야는 아버지 아하스와는 달랐습니다. 다윗의 길을 따른 건데요. 히스기야는 혼신의 힘을 다해
종교 개혁을 단행하는데요. 먼저 아버지 아하스가 닫아 놓았던 성전의 문을 열고 수리하는 성전 정화 운동을 벌였고, 다음으로는
오랫동안 멈춰있던 제사와 유월절을 다시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또 유다 온 땅에 펴진 우상과 산당 등을 제거하고, 유명무실했던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아 제 역할을 하도록 도왔죠. 성경은 히스기야를 유다 모든 왕들 중에 이처럼 하나님을 의지한
왕은 없었다고 평가하는데요. 그런 히스기에게도 어려움은 찾아왔습니다. 히스기야가 유다를 다스린 지 육 년째 되던 해,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히스기야 왕 제14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두 번에 걸쳐 유다를 침공
합니다.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의 경고에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앗수르 군대를 물리쳐
주십니다. 그 무렵 히스기야는 병에 들어 거의 죽게 되었는데요. 이때 히스기야는 벽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했고, 하나님은 역시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히스기야의 생명을 15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이렇게 많은 기적을 경험한 히스기야였지만, 병문안 차 방문했던
바벨론 왕의 사절들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교만의 덫에 걸려 넘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교만했던
히스기야에게 네 자손들이 후에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시죠. 히스기야는 다윗 자손의 묘실 중 높은 곳에
장사됩니다.
14. 므낫세(왕하 21장, 역대하 33장)
유다의 열네 번째 왕인 므낫세입니다. 히스기야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므낫세가 왕이 되고, 55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므낫세는 아버지 히스기야의 길이 아닌, 할아버지 아하스의 길을 따랐는데요.
심지어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우상의 제단을 쌓고, 손수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성전에 세우기까지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군대를 일으키셔서 므낫세를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하시죠. 포로가 된 므낫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고, 하나님은 므낫세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십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게 된 므낫세는 우상과 이방신들의 제단을 헐고, 여호와의 제단을 다시 보수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그는 웃사의 동산에 장사됩니다.
15. 아몬(왕하 21장, 역대하 33장)
유다의 열다섯 번째 왕인 아몬입니다. 므낫세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몬이
왕이 되고, 2년간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아몬은 아버지 므낫세를 따라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결국 그는 신하들에
의해 왕궁에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16. 요시야(왕하 22-23장, 역대하 34-35장)
유다의 열여섯 번째 왕인 요시야입니다. 아몬의 갑작스러운 죽음 후에, 유다
백성들이 반역을 일으킨 신하들을 죽이고, 아몬의 아들 요시야가 왕위에 올라 31년간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요시야는 아버지 아몬이
아닌 다윗의 길을 따르는데요. 성전 수리를 지시했고, 대제사장 힐기야가 성전에서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하게 됩니다. 요시야는
율법책의 말씀을 듣고 크게 슬퍼하여 옷을 찢었고, 백성들에게도 언약책의 말씀을 읽어 주며 다시 여호와의 언약을 세울 것을 백성들과
함께 맹세하죠. 이러한 맹세는 우상과 산당의 제거 그리고 유월절의 부활로 이어졌는데요. 이후 애굽과의 전쟁에서 화살에 맞은
요시야는 예루살렘에 돌아와 숨을 거두게 됩니다. 요시야의 죽음에 유다의 백성들은 슬퍼했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애가를 지어 요시야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17. 여호아하스(왕하 23장, 역대하 36장)
유다의 열일곱 번째 왕인 여호아하스입니다.
요시야의 뒤를 이어 그의 넷째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고, 3개월간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여호아하스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 애굽에 끌려가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18. 여호야김(엘리야김)(왕하 23-24장, 역대하 36장)
유다의 열여덟 번째 왕인 여호야김입니다.
동생 여호아하스의 뒤를 이어
요시야의 둘째 아들 여호야김(엘리야김)이 왕이 되고 11년간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여호야김은 애굽 왕 느고에 의해 왕이 됩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여호야김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쇠사슬에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수모를 당합니다.
19. 여호야긴(고니야, 여고냐) (왕하 24-25장, 대하 36장)
유다의 열아홉 번째 왕인 여호야긴입니다.
여호야김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되고, 석 달 열흘 동안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역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고, 바벨론의 공격으로 아버지와 같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갑니다.
이때 성전과 왕궁에 있는 보물과 그릇들도 빼앗기게 됩니다.
바벨론에서 37년 간 포로생활을 하던
여호야긴은 후에 느부갓네살의 아들 에윌므로닥이 다스릴 때, 감옥에서 풀려나 남은 여생을 에윌므로닥 왕의 지원을 받으며 살게
됩니다.
20. 시드기야(맛다니야)(왕하 24-25장, 대하 36장)
유다의 스무 번째 왕이자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입니다.
시드기야는 요시야의
셋째 아들로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세워진 왕입니다.
11년간 남유다를 다스리는데, 역시나 돌이킬 줄 모르고 여호와 앞에서
악행을 저지릅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예레미야와 에스겔, 그리고 하박국 선지자를 통해 경고하시지만, 시드기야는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고 결국 주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남유다는 멸망하게 됩니다.
북 이스라엘 왕국(BC 931-722) - 앗수르 살만에셀
1. 여로보암 :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많은
백성들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12개의 지파 중 무려 10개의 지파가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이 아닌, 여로보암을 지지했으니 그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여로보암은 그 인기를 잘 유지했습니다.
백성들의 요구를 적극 반영하여 강제 노역과 세금을 경감시켜 주었습니다.
이렇게 백성들의 인기를 유지했지만,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우상과 제사장과 절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여로보암은 22년 동안 북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여로보암이 왕이 된 지 이십이 년이라 그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들 나답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왕상 14:20)
여로보암 ― 북왕국 이스라엘의 제1대 왕
인적 사항
(1) 여로보암은 '백성을 더하게 하소서'라는 뜻.
(2) 에브라임 지파 출신(왕상11:25).
(3)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22년간 통치(왕상12:2;14:20).
(4) 솔로몬의 신복 느밧의 아들, 모친은 수루아(왕상 11:26).
(5) 고향은 세겜의 서쪽 사마리아 스레다임(왕상 11:26).
(6) 아들로는 아비야와 나답이 있음.
시대적 배경
여로보암 당시 이스라엘은 대변혁을 겪었다.
즉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 왕국이 분열됨으로써(B.C.930)
남왕국은 남왕국 대로 정치적 안정을 회복하기 위해 정비를 막 서두르게 되었고, 북왕국은 북왕국대로 정치적, 종교적 정비를 서두르던
때였다.
또한 이런 국내적 대격변과 함께 국외적으로도 솔로몬 말기부터 서서히 이스라엘을 침공해 오던 주변 국가들의 세력이
강성해짐에 따라 상당히 위기감이 고조되어 있던 때였다.
그러나 솔로몬 때까지 탄탄했던 이스라엘이었기 때문에 남북 왕국 분열 직후인
이 당시에는 아직 외적의 침입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남북 왕국간의 적대 감정이 매우 높아 잦은 전쟁이 벌어졌다.
이러한 시기에 여로보암은 새롭게 북왕국을 창건한 자로서 정치적으로는 매우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였으나 종교적으로는 악한 선례를
만듦으로써 북왕국 멸망의 근본 원인을 재공하고 말았다.
주요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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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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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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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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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족속의 노역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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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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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왕됨을 예언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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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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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1:3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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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에게 반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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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938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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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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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으로 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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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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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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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열 지파의 요청으로 애굽에서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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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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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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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호보암에게 노역 완화를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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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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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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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열 지파의 왕으로 추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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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930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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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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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겜과 브누엘을 요새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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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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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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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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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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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2: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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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인의 제사장직을 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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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12:31;대하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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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절의 날짜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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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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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엘 제단 훼파 예언 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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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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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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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히야에게서 재앙이 예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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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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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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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호보암과의 전쟁을 계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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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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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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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 왕 시삭의 침입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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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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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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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왕 아비얌과의 전쟁에서 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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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913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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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1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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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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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910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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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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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품
(1) 솔로몬 왕의 인정을 받아 공사의 감독자로 발탁될 만큼 부지런하고 유능한 자(왕상11:28).
(2) 이스라엘 분단에 대한 아히야의 예언을 듣고 곧 반란을 일으킬 만큼 정치적 야욕이 강한 자(왕상 11:26-32).
(3) 애굽 망명 후 유다 지파와 솔로몬 통치에 대한 백성들의 반목을 충동질하여 정권에 도전할 만큼 계략이 뛰어난 자(왕상12:2-4).
(4) 이스라엘 열 지파의 추대를 받고, 북왕국의 초대 왕이 된 것을 볼 때 정치·군사적 지도력이 뛰어난 자(왕상12:1-3, 20).
(5) 왕이 된 후 성막을 가진 유다로부터 종교적으로도 독립하는 동시에 왕권도 강화하기 위하여 북쪽 지역에 많은 산당과 우상을 만들만큼 대담한 인본주의 자(왕상 12:27, 31).
(6) 하나님의 책망조차 무시할 정도로 교만한 자(왕상 13:1-10).
구속사적 지위
(1)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라진 후 북왕국의 초대 왕이 됨(왕상 12:20).
(2) 왕권 강화를 위해 벧엘과 단에 우상을 만들어 섬기게 함으로써 자신뿐만 아니라 백성들까지도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게 한 왕(왕상 12: 28).
(3) 여로보암과 그 집을 향한 하나님의 재앙이 선포됨. 이는 세상적 정욕만을 추구하는 자에게 임할 심판의 표징이 됨(왕상 14:7-16).
주요 업적
(1) 솔로몬의 '밀로' 건축과 예루살렘 성벽 수축 공사를 감독함(왕상 9:15).
(2) 세겜과 브누엘을 건축하여 군사적인 요새를 강화함(왕상 12:25).
실수
(1)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워놓고, 백성들에게 우상 숭배를 강요함(왕상 12:27-29).
(2)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을 제사장으로 삼음(왕상 12:31;13:33).
(3) 후세들에게 악한 선례를 남김으로써 결국 북왕국 멸망의 원인을 제공함(왕상 14:10).
평가 및 교훈
(1) 여로보암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것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왕상12:28,29)고 하며 이를 경배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한 채 자신의 생각과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것은 곧 우상 숭배와 동일한 죄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완악한 마음이나 자신의 이해 관계가 앞서지 않도록 하며 오직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그 분을 섬겨야 한다.
(2)
여로보암은 일찍이 솔로몬 왕의 인정을 받아 요셉 족속의 역사를 감독할 만큼, 또한 북쪽 10지파의 추대로 왕이 될 만큼
부지런하고 유능한 자였다(왕상 11:28;12:20). 그러나 이렇게 뛰어난 지도자요 존경을 받던 그였지만 하나님을 떠남으로써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임을 당했다. 이를 통해 하나님 없이는 인간의 지혜와 칭찬이 헛됨을 깨닫게 된다. 더욱이 하나님을
버리는 자는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자신도 버림받게 됨을 기억해야 하겠다. 참으로 일이 형통할 때에 더욱 하나님을 겸손히 섬기는 자가 되자.
(3)
여로보암은 솔로몬의 왕권에 대적하여 북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였다. 이로써 그는 후세들에게 이스라엘의 분열이라는 좋지
않은 전통을 남겼고, 더더욱 우상 숭배를 조장함으로써 백성들의 신앙을 변절시켰다. 혹시 우리도 여로보암 처럼 그릇된 신앙의
모습을 신앙의 후배들에게 남기고 있지는 않는가?
핵심 성구
2. 나답 :
여로보암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나답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여로보암의 죄를 그대로 반복했고, 불과 2년 만에 바아사 장군의 반역으로 죽게 됩니다.
유다의 아사 왕 셋째 해에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고(왕상 15:28)
나답
「고상하다, 관대하다, 고귀하다」
여로보암 I세의 아들이다. BC 910년 경 왕위에 올라 아비처럼 하나님 앞에서 악을행하였다. 유다 왕 아사 제 3년에
바아사에게 학살 당하고,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이것은 여로보암의 집에 대한 여호와의 형벌이었다. 나답의 재위는 겨우
2년이었다(왕상 14:10,11,20,15:2531).나답(재위 기원전 909년경-908년경)은 분열 이스라엘 왕국의 2대 왕으로
아버지 여로보암 1세처럼 악한 짓을 많이 저질렀다.
나답은 아버지 여로보암 1세가 죽자 왕위에 올랐으나 악한 짓을 많이 저질렀고 하나님의 눈에 거슬리지 짓도 많이 했다. 이에
이사카르 집안 출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반란을 일으켜 필리시테인에 속해있던 기브톤에서 나답을 공격했다. 결국 나답은 바아사에게
살해당하고 바아사가 왕위에 올랐다.
바아사는 임금이 되자 여로보암 집안의 모든 사람들을 몰살해 전 여로보암 1세 때 베텔의 늙은 예언자의 예언이 이루어졌다.
1. 나답의 출생과 초기 생애
출생과 배경 :
- 나답은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열왕기상 14:20)
- 그는 여로보암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지만, 그의 생애와 초기 생애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여로보암의 영향:
- 나답은 여로보암의 통치 아래에서 자라며 왕위 계승자로 준비되었습니다. 여로보암의 종교적 개혁과 금송아지 숭배는 나답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 여로보암의 죄악된 길을 따라간 나답의 통치는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우상 숭배와 불순종으로 점철되었습니다.
2. 나답의 즉위와 통치 (열왕기상 15장)
즉위와 초기 통치:
- 나답은 여로보암의 죽음 이후 왕위에 올랐으며, 북이스라엘 왕국의 두 번째 왕이 되었습니다. (열왕기상 15:25)
- 그는 아버지의 죄악된 길을 그대로 따르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군사적 활동:
- 나답의 통치 기간 동안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쟁이었습니다.
- 그는 군대를 이끌고 블레셋의 성읍 깁브돈을 포위했습니다. (열왕기상 15:27)
3. 나답의 암살과 바아사의 반란 (열왕기상 15장)
바아사의 반란:
- 나답이 블레셋의 깁브돈을 포위하고 있을 때, 이사갈 지파 출신의 바아사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열왕기상 15:27)
- 바아사는 나답을 암살하고, 자신이 왕위에 오르기 위해 나답을 제거했습니다.
여로보암 가문의 멸망:
- 나답의 암살 이후, 바아사는 여로보암의 모든 후손을 제거했습니다. 이는 여로보암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열왕기상 15:29-30)
- 여로보암의 가문이 완전히 멸망한 것은 그의 죄악된 통치와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줍니다.
4. 나답의 종교적 행보 (열왕기상 15장)
우상 숭배와 죄악:
- 나답은 그의 아버지 여로보암이 시작한 죄악된 길을 따랐습니다. 그는 우상 숭배를 지속하며,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열왕기상 15:26)
- 그는 백성들에게 우상 숭배를 조장하며, 영적 타락을 초래했습니다.
5. 교훈과 적용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
- 나답의 생애를 통해 우리는 불순종과 죄악의 결과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의 통치는 짧았고, 그의 죽음은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였습니다.
-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줍니다.
지도자의 책임 :
나답의 이야기는 지도자의 죄악된 행보가 백성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의 불순종은 백성들에게 영적 타락을 초래했습니다.
이는 지도자가 올바른 신앙과 도덕적 기준을 지켜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공의 :
나답의 죽음과 여로보암 가문의 멸망은 하나님의 심판과 공의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죄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며, 공의롭게 심판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며,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6. 결론
나답의 생애와 통치는 북이스라엘 왕국의 역사에서 중요한 교훈을 남깁니다.
그의 짧은 통치와 죄악된 행보는 우리에게 불순종의 결과와 하나님의 심판을 상기시켜줍니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통해 순종과 신앙의 중요성, 지도자의 책임,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를 배울 수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과 함께 나답의 통치와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에 대해 토론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의견을 자유롭게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비극의 서막 (바아사, 엘라)
3. 바아사 :
나답을 죽이고 왕에 오르게 된 바아는 24년 동안 나라를 다스립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은 그가 여로보암의 죄를 그대로 반복했다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바아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왕상 15:34)
4. 엘라 :
바아사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엘라가 왕이 되는데요. 공교롭게도 바아사가 죽였던 나답과 같이 재위 2년 만에 시므리의 반란으로 죽게 됩니다.
시므리가 들어가서 그를 쳐죽이고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 곧 유다의 아사 왕 제이십칠년이라(왕상 16:10)
7일 천하 (시므리)
5. 시므리 :
시므리는 바아사의 온 집안사람들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다 죽이고 왕위에 오릅니다.
바아사의 온 집을 멸하였는데 선지자 예후를 통하여 바아사를 꾸짖어 하신 여호와의 말씀 같이 되었으니(왕상 16:12)
그러나 전장에 나가 있던 백성들은 시므리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군대
지휘관이었던 오므리를 왕으로 삼고 궁전으로 쳐들어갑니다. 시므리는 성읍이 함락된 것을 보고 왕궁 요새에 들어가 왕궁에 불을 지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왕 위에 오른 지 불과 7일 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시므리가 성읍이 함락됨을 보고 왕궁 요새에 들어가서 왕궁에 불을 지르고 그 가운데에서 죽었으니(왕상 16:18)
이렇게 시므리의 7일 천하는 끝이 납니다.
오므리 왕조의 시작 (오므리, 아합, 아하시야 여호람)
6. 오므리 :
오므리의 등장으로 혼란했던 북이스라엘은 점차
안정을 찾기 시작합니다.
오므리는 나라의 법을 새로 세우고 수도를 사마리아로 옮기는 “천도”를 실시하면서 많은 백성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게 됩니다.
북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안정되고 평화로운 시기가 도래한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평가는 어땠을까요?
5.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왕상 16:25)
오므리는 그렇게 12년 동안 북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7. 아합 :
아버지 오므리에 이어 왕이 된 아합은 그 이름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아합과 그의 아내 이세벨!
아합은 여로보암의 길을 따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사마리아에 바알의 신천을 건축하는 끔찍한 악행을 저지릅니다.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왕상 16:32)
아합과 싸움을 벌였던 엘리야 선지자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예언자를 정리할 때 다루겠습니다.
22년 동안 북이스라엘을 다스린 아합은 아람과의 전쟁에서 적이 무심코 쏜 화살에 맞아 죽게 됩니다.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겨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맞힌지라 왕이 그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려 내가 전쟁터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으나(왕상 22:34)
8. 아하시야 :
지난 왕조들은 2대를 채 넘지 못했지만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면서 오므리 왕조는 3대째 왕위를 이어갑니다.
아하시야는 다락 난간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고 2년 만에 엘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죽게 됩니다.
왕이 엘리야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고 그가 아들이 없으므로 여호람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둘째 해였더라(왕하 1:17)
9. 요람(여호람) :
아하시야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동생 요람(여호람)이 왕위에 오릅니다.
왕이 엘리야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고 그가 아들이 없으므로 여호람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둘째 해였더라(왕하 1:17)
요람은 오므리 왕조의 4번째 왕으로 12년 동안 북이스라엘을 통치합니다.
북이스라엘 전체 200여 년의 역사 중에 4분의 1에 해당하는 48년이라는 기간 동안 오므리 왕조가 다스립니다.
더 놀라운 건
열왕기서 전체 분량 중에 삼 분의 일이 오므리 왕조의 이야기입니다.(왕상 16 - 왕하 12장)
그야말로 오므리 천하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오므리 왕조를 무너뜨린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북이스라엘의 9번째 왕까지 살펴봤습니다.
첫
번째 왕 여로보암과 그의 아들 나답.
나답을 죽이고 새로운 왕권을 창출한 “바아사” 장군.
그러나 바아사 왕조는 그의 아들 엘라에
이르러 시므리에 의해 무너지게 되죠.
시므리는 바아사의 온 집안사람들을 다 죽이며 왕권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지만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7일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이후 왕위에 오른 오므리는 많은 백성들의 지지를 힘입어 오므리, 아합,
아하시야, 요람에 이르기까지 48년 동안 위세를 떨칩니다.
북이스라엘 전체 역사 중에서 유례없는 전성기를 구가했던 오므리 왕조.
그러나 하나님의 평가는 정반대였죠.
모든 왕들보다 더욱 악한 왕이라는 혹평을 받습니다.
예후 왕조의 시작 (예후, 여호아하스, 요아스, 여로보암 2세, 스가랴)
10. 예후 :
아합의 군대 장관이었던 그는 요람 왕을 죽이며
영원할 줄 알았던 오므리 왕조의 시대를 닫고, 예후 왕조의 시대를 엽니다.
하나님은 예후를 통해 그동안 쌓여 왔던 오므리 왕조의
악행을 철저하게 심판하시는데요.
오므리 왕조와 관련된 모든 이들과 특히 그들이 지극히 섬겼던 바알, 바알 숭배자들을 잔인할
정도로 처단합니다.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왕하 10:28)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던 오므리 왕조는 한순간에 무너지고 맙니다.
이렇게 타락한 오므리 왕조를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된 예후였지만, 그도 타락에서 자유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왕하 10:31)
예후는 28년동안 북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11. 여호아하스 :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의 재임 기간은
17년입니다.
금송아지를 섬기는 여로보암의 죄를 그대로 따랐던 여호아하스는 아람 나라의 공격을 받을 때는 잠시 하나님을 의지하는
듯했지만,
상황이 다시 좋아지자 여지없이 하나님이 아닌 여로보암의 죄를 따랐습니다.
12. 요아스 :
여호아하스의 아들인 요아스가 왕위에 오르는데요. 재임 기간은 16년입니다.
요아스 때에 기억할만한 특별한 사건이 하나가 있는데요.
엘리사 선지자의 죽음입니다.
요아스 역시 여로보암 죄를 그대로 반복합니다.
13. 여로보암 2세 :
다음으로 요아스의 아들인 여로보암
2세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여로보암과 이름이 같아서 2세로 구분한건데요.
북이스라엘 역사상 최장기 집권으로 유명하죠.
무려 41년간 나라를 다스립니다.
그만큼 백성과 신하들의 신뢰도 컸다는 이야기겠죠.
눈엣 가시와도 같았던 아람 나라를 정복하고,
이스라엘의 영토를 다윗과 솔로몬 때로 회복합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죠.
실제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 나온 요나 선지자는
여로보암 2세에게 희망을 걸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왕하 14:27)
막연한 기대는 아니었습니다.
적군이 없어지고, 영토가 회복되고, 안정을
찾아가는 나라의 모습은 분명 매우 긍정적인 신호였죠.
그러나 동시대를 살았던 아모스 선지자는 전혀 다른 메시지를 전합니다.
아모스서 5장 10절부터 12절까지의 말씀을 보시죠.
10-12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듣기 싫어한다. 진실은 인기가
없는 법이다. 그러나 적나라하게 드러난 진실이 여기 있다. 너희는 가난한 이들을 악랄하게 짓밟고 그들에게서 빵을 빼앗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결코 너희가 건축한 화려한 집에 들어가 살지 못할 것이다. 너희는 결코 너희가 재배한 값비싼 포도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다. 나는 너희 위법이 어느 정도인지, 너희 죄가 얼마나 중대한지 정확히 알고 있다. 참으로 섬뜩하다! 너희는 의롭게 사는
이들을 괴롭히고 이리저리 뇌물을 받아 가며 가난한 이들을 바닥에 내친다. (메시지 성경)
여로보암 2세를 향한 요나와 아모스의 상반된 평가!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혹시 회개를 외쳐야하는 절박한 순간에 희망을 노래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14. 스가랴 :
무려 41년 동안 장기집권을 했던 여로보암 2세가 죽고 그의 아들 스가랴가 왕위에 오릅니다.
스가랴는 아버지와는 달리 6개월 만에 살룸에 의해 죽임을 당하며 예후 왕조는 이렇게 막을 내립니다.
죽이고, 또 죽이고
102년간을 집권했던 예후 왕조의 몰락 이후 북이스라엘은 대혼란기에 접어
듭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다섯 명의 왕들 중에 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 반역을 통해 왕의 자리를 빼앗거든요.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한, 오직 권력에 눈이 멀어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이 시작된 겁니다.
15. 살룸 :
예후의 후손인 스가랴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살룸은 7일 천하 시므리 다음으로 짧은 한 달간 왕으로 있다가 므나헴의 반역으로 죽게 됩니다.
16. 므나헴 :
므나헴은 얼마나 잔인했던지, 왕이 된 후 자신을 선뜻 환영해 주지 않았다고 해서 그 주변 모든 임산부의 배를 갈랐습니다.
그 때에 므나헴이 디르사에서 와서 딥사와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사람과 그 사방을 쳤으니 이는 그들이 성문을 열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므로 그들이 그 곳을 치고 그 가운데에 아이 밴 부녀를 갈랐더라(왕하 15:16)
또 그는 친 앗수르 정책을 펼쳤고, 10년 간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17. 브가히야 :
므나헴의 잔혹함 때문에 미처 반역할 생각을 하지 못해서였을까요?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가 왕 위에 오릅니다. 이렇게 므나헴 왕조가 시작되나 했지만 2년 만에 장관인 베가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18. 베가 :
베가의 재임 기간은 20년입니다. 꽤 긴
시간동안 나라를 다스렸지만 성경에는 앗수르의 침략을 받았다.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다는 기록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기록하실까요? 반역으로 왕위에 올랐던 베가는 역시 반역으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19. 호세아 :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호세아 왕입니다.
왕위에 오른 지 9년 만인 주전 722년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침략으로 멸망하게 됩니다.
오므리 왕조의 시대를 닫고, 예후 왕조의 시대를 연 예후, 그리고 이어지는
여호아하스, 요아스, 여로보암 2세, 스가랴까지. 영원할 줄로만 알았던 예후 왕조도 살룸의 반역으로 무너지게 됩니다.
이후
북이스라엘은 대혼란에 빠지게 되는대요.
살룸을 죽이고 왕이 된 잔혹했던 므나헴, 므나헴이 무서웠던 걸까요?
반역 없이 그의 아들
브가히야가 왕 위에 오릅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2년 만에 부하였던 베가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베가는 20년이라는 비교적 오랜
시간 북이스라엘을 통치했지만 그도 역시 호세아가 일으킨 반역으로 죽임을 당합니다.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호세아는 왕 위에 오른
지 9년 만인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게 나라를 빼앗기게 됩니다.
열왕기하 17:34
그들이 오늘까지 이전 풍속대로 행하여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라 이름을 주신 야곱의 자손에게 명령하신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는도다.
당대에 최고라고 불리던 왕들이 여지없이 무너진 이유가 뭘까요?
“이전 풍속대로 행하여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며”
이전 풍속대로, 옛 습관과 본성을 버리지 못했기 아니,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듯 보이지면 결국엔 자신의 욕심과 쾌락과 안위를 위해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선물인 은혜를
마치 자기가 노력하여 얻은 자기만의 산물로 여겼던 것이죠.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내가 누리는 것들이 나만이 가져야 하는 산물로
여기시나요?
아니면, 모두와 나눠야 할 하나님의 선물로 여기시나요? 어리석은 왕들의 이야기가 바로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17:35-39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며 이렇게
명령하셨다. “다른 신들을 높이지 마라. 그들을 예배하지 말고 그들을 섬기지 말며, 그들에게 제사 지내지 마라. 하나님 곧 큰
능력으로 너희를 친히 이집트에서 구해 내신 그 하나님을 예배하여라. 그분을 공경하고 경외하여라. 그분을 예배하여라. 그분께 제사를
드려라. 오직 그분께만! 무엇을 믿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그분이 가르치신 것, 너희를 위해 기록해 두신 모든 것을 너희가 사는
날 동안 행하여라. 너희는 어떤 경우에도 다른 신들을 예배해서는 안 된다! 그분이 너희와 맺으신 언약에서 너희가 지켜야 할 것을
잊지 마라. 다른 신들을 예배하지 마라! 하나님, 오직 하나님만 예배하여라. 너희를 원수의 압제에서 구원하실 이는 바로
그분이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북이스라엘의 멸망 – 앗수르에 의한 심판과 영적 교훈
서론
기원전
722년, 사마리아 성이 함락되면서 북이스라엘 왕국은 역사의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약 200년간 존속했던 이 왕국의
멸망은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과 인간의 죄악이 만나 일어난 필연적 결과였습니다. 앗수르 제국의
철저한 정복 정책 앞에서 북이스라엘은 속절없이 무너졌고, 수많은 백성들이 이방 땅으로 끌려가 흩어졌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 할지라도 언약에 불순종할 때 어떤 결과를 맞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엄중한 역사적 교훈입니다.
1. 북이스라엘 왕국의 역사적 배경
1) 분열 왕국의 출발
기원전
930년경 솔로몬 왕의 죽음 이후, 통일 이스라엘 왕국은 두 개의 왕국으로 분열되었습니다. 여로보암이 이끄는 북이스라엘은 열 개
지파로 구성되었으며, 에브라임, 므낫세, 단, 아셀, 납달리, 스불론, 잇사갈, 르우벤, 갓, 그리고 베냐민의 일부가
포함되었습니다. 초기 수도는 세겜이었으나 후에 사마리아로 옮겨졌습니다.
2) 지리적 우위와 경제적 번영
북이스라엘은
남유다에 비해 월등히 넓은 영토와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갈릴리 지역의 비옥한 토지와 지중해 연안의 항구들, 그리고
중요한 국제 교역로들이 모두 북왕국의 영토 안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은 북이스라엘이 경제적으로 번영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3) 정치적 불안정
하지만
북이스라엘은 처음부터 정치적 불안정에 시달렸습니다. 약 200년의 역사 동안 19명의 왕이 통치했으며, 이 중 8명이
암살당하거나 반란으로 죽었습니다. 왕조의 잦은 교체는 국가 기반을 약화시켰고, 결국 외침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2. 영적 타락과 우상숭배
1) 여로보암의 종교 개혁
북이스라엘
멸망의 근본적인 원인은 초대 왕 여로보암부터 시작된 우상숭배였습니다. 여로보암은 정치적 목적으로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너희를 이집트에서 인도해 낸 너희의 신이다"라고 선포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 관계의 직접적인 파괴행위였습니다.
2) 계승되는 죄악
성경은
이후 북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이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했다고 기록합니다. 아합과 이세벨 시대에는 바알 숭배가 공식화되었고,
아세라 목상 숭배와 가나안 종교의 음란한 의식들이 만연했습니다. 이러한 종교적 타락은 단순한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도덕적 기반을 무너뜨렸습니다.
3) 사회적 불의와 부패
우상숭배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불의를 동반했습니다. 호세아와 아모스 선지자들이 고발한 것처럼, 부자들은 가난한 자를 착취했고, 재판관들은
뇌물을 받았으며, 상인들은 부정한 저울로 백성들을 속였습니다. 종교적 타락과 사회적 불의는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북이스라엘
사회 전체를 부패시켰습니다.
3. 하나님의 경고와 선지자들의 사역
1) 지속적인 경고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해 즉시 심판하지 않으시고, 약 200년 동안 끊임없이 회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엘리야, 엘리사,
호세아, 아모스, 미가 등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이들은 우상숭배의 죄악을 지적하고, 사회
정의를 외쳤으며,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간곡히 호소했습니다.
2) 백성들의 강퍅함
하지만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들의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열왕기하 17장 14절은 "그들이 목을 곧게 하여 그들의 조상들이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던 것 같이 믿지 아니하였고"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오래 참으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해서 완악한 마음을 품었습니다.
3) 징조적 심판들
하나님은
최종 심판 전에 여러 징조적 심판들을 통해 경고하셨습니다. 가뭄과 기근, 전쟁과 질병, 그리고 주변국들의 침입 등이
그것이었습니다. 특히 아람의 침공과 앗수르의 초기 공격들은 다가올 멸망의 전조였지만, 북이스라엘은 여전히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4. 앗수르 제국의 침공과 멸망 과정
1) 디글랏빌레셀의 1차 침공 (기원전 734-732년)
북이스라엘
멸망의 서막은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 3세의 침공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침공에서 갈릴리 지역과 길르앗 지역이 점령당했고,
상당수의 백성들이 앗수르로 끌려갔습니다. 이는 앗수르의 전형적인 정복 정책인 강제 이주 정책의 시작이었습니다.
2) 호세아의 반란과 살만에셀의 포위 (기원전 727-722년)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호세아는 처음에는 앗수르에 조공을 바쳤지만, 나중에 이집트와 동맹을 맺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에 앗수르 왕
살만에셀 5세가 사마리아를 포위했고, 이 포위 공격은 3년간 계속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사마리아 성 안에서는 극심한 기근과
고통이 이어졌습니다.
3) 사르곤의 최종 정복 (기원전 722년)
살만에셀이
죽은 후 그의 후계자 사르곤 2세가 사마리아를 최종 함락시켰습니다. 사르곤의 기록에 따르면, 27,290명의 이스라엘 백성이
앗수르와 메대 지역으로 강제 이주되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앗수르는 다른 지역의 민족들을 사마리아 지역으로 이주시켜 혼합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4) 잃어버린 열 지파
강제
이주된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민족들과 섞여 살면서 점차 그들의 정체성을 잃어갔습니다. 이들은 역사상 "잃어버린 열 지파"로
불리며, 다시는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앗수르의 민족 말살 정책이 얼마나 철저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5. 성경이 제시하는 멸망의 이유
1) 우상숭배의 죄
열왕기하
17장은 북이스라엘 멸망의 이유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우상숭배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께 범죄하여 다른 신들을 경외하고"(열왕기하 17:7)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의 근본적인 위반이었습니다.
2) 가나안 민족들의 악한 풍습 따름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그들 앞에서 쫓아내신 가나안 민족들의 풍습을 따랐습니다.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고, 아세라 목상을 세우며,
심지어 자녀들을 불에 태워 제사하는 몰렉 숭배까지 행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구별됨을 완전히 포기한
것이었습니다.
3) 선지자들의 경고 무시
하나님은
"각 선지자와 각 선견자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증언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돌이켜 악한 길에서 떠나 나의 계명과 율례를
지키라"(열왕기하 17:13)고 하셨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오래 참으심을 무시한 것이었습니다.
4) 왕들의 계속된 악행
북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이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했고, 일부는 더욱 악한 일들을 행했습니다. 특히 아합과 므낫세 등은 바알 숭배를 공식화하고 의인들을 핍박했습니다. 지도자들의 악한 모범은 백성들의 타락을 가속화시켰습니다.
6. 영적 교훈과 현재적 적용
1)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
북이스라엘의
멸망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죄에 대한 심판은
반드시 따라오며, 선택받은 백성이라 할지라도 예외는 없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2) 회개의 기회를 놓치지 말 것
하나님은
약 200년 동안 끊임없이 회개의 기회를 주셨지만, 북이스라엘은 그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음성에 즉시
반응하고, 회개할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는 히브리서의
경고가 떠오릅니다.
3) 형식적 종교의 위험성
북이스라엘은
여전히 종교적 의식들을 행했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예배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교회에 출석하고 예배를
드리지만, 그것이 형식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 마음의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4) 사회 정의의 중요성
선지자들이
강조한 사회 정의는 오늘날에도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개인의 신앙이 사회적 책임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온전한 신앙이
아닙니다. 가난한 자를 돌보고, 정의를 실현하며,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5) 리더십의 중요성
북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이 악을 행했다는 것은 리더십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지도자의 영적 상태는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오늘날 교회와 사회의 지도자들은 이를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7. 희망의 메시지와 구원의 약속
1) 남은 자의 약속
비록 북이스라엘은 멸망했지만,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계속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남은 자"의 개념을 통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거했습니다. 일부 경건한 백성들은 남유다로 피난하여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를 이어갔습니다.
2) 메시아 약속의 성취
북이스라엘의
멸망은 절망이 아니라 더 큰 구원 역사의 한 과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을 통해 메시아를 보내실 약속을 지키셨고,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는 계획을 이루셨습니다. 북이스라엘의 멸망도 이 큰 구원 역사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3) 회복의 약속
에스겔과 다른 선지자들은 분산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모여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는 부분적으로 바벨론 포로 귀환을 통해 성취되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믿는 자들이 하나 되는 것으로 완성되었습니다.
4) 교회에 대한 교훈
초대
교회와 오늘날 교회는 구약 이스라엘의 실패를 거울삼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합니다. 형식적 종교, 사회적 불의, 그리고
세상과의 타협은 교회를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멸망은 교회가 항상 깨어 있어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결론
북이스라엘의
멸망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 할지라도 언약에 불순종할 때 어떤 결과를 맞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엄중한 역사적 교훈입니다. 약
200년간 계속된 우상숭배와 사회적 불의, 그리고 하나님의 경고에 대한 무시는 결국 민족의 완전한 소멸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절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며 회개의 기회를 주셨지만,
동시에 죄에 대해서는 공의롭게 심판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주는 완전한 계시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역사적 사건을 통해 여러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즉시 반응하고, 형식적 종교에
빠지지 않으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리더십의 중요성과 공동체의 영적 상태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북이스라엘의
멸망은 과거의 역사이지만, 그 교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는 이 역사를 거울삼아 더욱 겸손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참여하는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고대 앗수르 제국의 역사 : 세계 최초의 제국에서 몰락까지
고대 앗수르 제국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메소포타미아, 레반트, 이집트 지역을 통일한
강력한 제국으로, 기원전 2450년부터 기원전 609년까지 약 1800년 동안 서아시아에서 정치적, 문화적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초기 청동기 시대부터 후기 철기 시대에 이르기까지 앗수르는 끊임없는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 혁신을 통해 강력한 제국으로
성장했지만, 결국 내외부적인 압력에 의해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앗수르의 흥망성쇠를 역사적 관점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앗수르의 기원과 초기 역사
앗수르의 기원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이 불명확하지만, 대체로 기원전 2500년경 북부
메소포타미아의 아수르라는 도시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도시는 남부 수메르 도시 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아카드
왕국의 지배하에 있던 시기에는 상당히 아카드화된 풍습과 신앙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앗수르인들은 수메르어나 아카드어와는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했으며, 기원전 2000년경부터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면서 본격적인 앗수르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초기 앗수르는 중개무역을 통해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히타이트 기록에 따르면
앗수르인들은 아나톨리아의 카네시 지역에 교역 기지를 설립하고 금, 은, 구리 등을 다른 지역으로 팔고, 이란 고원에서는 주석을,
바빌로니아에서는 직물 등을 교환하여 급속히 경제적 기반을 다졌습니다. 이러한 중개무역의 성공은 앗수르가 정치적 통일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기원전 19세기 말, 샴씨 아다드 1세가 앗수르를 최초로 정치적으로 통일하면서 고앗수르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2. 고앗수르와 중앗수르 시대: 통일과 팽창
고앗수르 시대는 샴씨 아다드 1세의 통치로 시작되었으며, 그는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마리와 북부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정복하며 앗수르의 정치적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후 앗수르는 내분과 분쟁으로 인해
급격히 쇠퇴하였고, 바빌로니아와 미타니 왕국의 속국이 되면서 오랜 침체기를 겪게 됩니다. 이 시기는 중앗수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시기로, 앗수르가 다시 부흥의 길을 걷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아슈르 우발리트 1세의 통치 아래, 앗수르는 히타이트와의 동맹을 통해 미타니 왕국을
공격하여 독립을 쟁취하였고, 이후 아다든 이라리 1세에 이르러서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미타니 왕국을 앗수르의 속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시기 동안 앗수르는 약 160년간 팽창 정책을 펼치며 전성기 시절의 영토를 회복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12세기 바다민족의 침입과 함께 청동기 문명의 붕괴로 인해 앗수르의 팽창은 한계를 맞이하게 되었고, 주변 민족들의 끊임없는 침략을
받으며 다시 한 번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3. 신앗수르 제국의 부흥과 확장
앗수르의 부흥은 아슈르단 2세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주변의 적들을 진압하고
다시 정복 사업을 재개하면서 본격적인 신앗수르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의 후계자들은 빠르게 주변국들을 정복하며 앗수르의 영토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신앗수르 제국의 군사적 성공은 철제 무기와 기마병, 그리고 최초의 정규군 편성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혁신적인 군사력 덕분에 앗수르는 단기간에 서아시아의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아슈르나시르팔 2세와 그의 후계자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통치로
유명했습니다. 아슈르나시르팔 2세는 점령지에서 반란이 발생할 경우, 반란자들을 잔혹하게 처형하고 그 기록을 남겨 다른 국가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는 공포 통치를 통해 앗수르의 안전을 보장하려 했으며, 이러한 방식은 그의 후계자들에게도
계승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아슈르나시르팔 2세는 문화적 융성을 위해 노력했으며, 수도를 님루드로 옮기고 대규모 건축 사업을
추진하여 앗수르의 문화적 중심지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4. 앗수르의 쇠퇴와 몰락
신앗수르 제국의 전성기는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와 사르곤 2세 시기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습니다. 이들은 군사적 개혁과 대규모 정복 전쟁을 통해 앗수르의 영토를 서아시아 대부분으로 확장하였습니다. 특히,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는 최초로 상비군을 편성하고, 기병대를 도입하는 등 군사 혁신을 이루어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도한 군사력
사용과 잦은 전쟁은 국력을 소모시키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앗수르는 이후 내부적인 문제와 외부적인 압력으로 인해 점차 쇠퇴하게 되었습니다.
사르곤 2세의 사망 이후, 그의 아들 산헤립은 수도를 니느웨로 옮기고 반란을 진압하는 데 집중했지만, 끊임없는 내분과 속국들의
반란으로 인해 제국은 점점 더 약해졌습니다. 최종적으로 앗수르는 기원전 612년 메디아와 신바빌로니아 연합군의 공격을 받고 수도
니느웨가 함락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5. 앗수르 제국의 유산과 교훈
앗수르 제국의 멸망은 몇 가지 중요한 원인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선, 앗수르는 넓은
영토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지 못했습니다. 잔혹한 통치는 피정복지의 단결을 초래했고, 이는 다시 반란으로
이어져 앗수르의 국력을 더욱 소모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악순환을 방지하기 위해 대규모 강제이주 정책을 실시했지만, 오히려 앗수르
본토의 인구 과밀을 초래하고, 장기적인 가뭄이 겹치면서 멸망을 재촉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앗수르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언어와
문화를 간직한 채 현재까지 살아남은 가장 오래된 민족 중 하나로, 이라크 북부, 시리아 북서부 등에 약 300만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약 400만 명의 앗수르인이 존재합니다.
고대 앗수르 제국의 역사에서 우리는 강력한 군사력과 잔혹한 통치만으로는 제국의
장기적인 안정과 번영을 보장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제국의 영광과 몰락은 강력한 힘의 양면성을 보여주며, 그
역사는 오늘날에도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애굽의 멸망에 대한 예언(예레미야 46:1~26)
* 본문요약
46장~51장은 남왕국 유다 주변에 있는 열방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입니다.
그중에서 제일 먼저 애굽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 나옵니다.
애굽과 바벨론과의 갈그미스 전투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입니다.
비록 애굽이 세계에게 가장 좋은 첨단의 무기로 무장하였을지라도
이 전투에서 패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애굽은 나일강의 창일함같이 그들의 세력이 불어나서 온 세상을 멸하리라고 장담하지만,
그러나 그날은 애굽이 하나님의 진노의 칼을 받는 날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이 애굽을 치는 일에 대하여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힘센 장사들이 사방에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을지라도 쓰러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몰아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과 애굽을 의지하는 모든 자들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붙이실 것입니다.
찬 양 : 357장(새 322)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
206장(새 284) 오랫동안 모든 죄 가운데 빠져
* 본문해설
1. 애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1~2절)
1) 열국(이방 나라들)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 애굽에 대하여 논한 것이니, 곧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제 4년에
유프라테스강 강가 갈그미스에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패한
애굽의 바로느고(애굽의 바로 왕 느고)의 군대에 대한 말씀이라.
- 애굽의 바로 왕 느고(2절) :
애굽의 바로 왕 느고는 주전 609년 므깃도 전투에서
하나님의 신실한 왕 요시야를 죽였습니다(왕하 23:28~30).
그는 이어서 왕이 된 여호아하스를 3개월 만에 포로로 잡아가고
친애굽파인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유다에게 과도한 조공을 요구하여
유다 백성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 주었습니다(왕하 23:35).
하나님께서 이 일에 대한 보복을 이 전투를 통해 갚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2. 애굽의 철저한 전투준비, 애굽의 수치스러운 폐배(3~12절)
3) “‘(애굽의 장교들이 말하기를)
너희는 큰 방패, 작은 방패로 무장하고 나가서 싸우라!
4) 너희 기병이여! 말에 안장을 지워 타며, 투구를 쓰고 나서며,
창을 날카롭게 갈며 갑옷을 입으라’(라고 말할 것이겠지만)
5)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본즉 그들이 놀라 물러가며,
그들의 용사는 패하여 급히 도망하며, 뒤를 돌아보지 아니함은 어찜이냐?
두려움이(공포가) 그들의 사방에 있음이로다’ 하셨나니,
6) 발이 빠른 자도 도망하지 못하며, 용맹이 있는 자도 피하지 못하고,
그들이 다 북방에서 유프라테스강 강가에 넘어지며 엎드러지는도다.
7) 저 나일강의 창일함과 흉용함같이 일어나는 저 사람들이 누구뇨?
8) 애굽이 나일강의 창일함과 강물의 흉용함같이 일어나는도다.
그가 이르되 ‘내가 일어나 땅을 엎어 성읍들과 그 백성을 멸할 것이라.
9) 말들아 달려라. 병거들아 급히 돌격하라. 용사여 나오라.
방패 잡은 구스(에디오피아) 사람과 붓 사람과
활을 당기는 루딤 사람들이여 나올지니라’ 한다마는
10) 그날은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 대적에게 원수 갚는 보복일이라.
칼이 배부르게 삼키며 그들의 피로 가득히 마시리니,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북편 유프라테스강 강가에서 희생을 낼 것이기 때문이라.
11) 처녀 딸 애굽이여 길르앗으로 올라가서 유향을 취하라.
네가 많은 의약(의사와 약)을 쓸지라도 무효하여 낫지 못하리라.
12) 네 수치가 열방에 들렸고(네 부끄러운 소문이 여러 나라에 퍼졌고),
네 부르짖음은 땅에 가득하였나니,
용사가 용사에게 부딪쳐(용사들이 서로 부딪쳐) 둘이 함께 엎드러졌음이니라.”
- 그가 이르되 … 루딤 사람들이여 나올지니라(8~9절) :
애굽의 바로 왕 느고의 진격 명령입니다.
먼저 기병이 나가고, 그 뒤를 병거가 따르고,
그 뒤를 방패와 창을 잡은 보병과 활 쏘는 자들이 따릅니다.
- 구스 사람과 붓 사람과 루딤 사람들(9절) :
구스와 붓과 루딤의 군대는 애굽에서 돈을 주고 고용한 용병들입니다.
구스는 에디오피아이고, 붓 사람은 홍해 연안에 살던 푼트족으로 보이고,
루딤인은 리비아 사람을 가리킵니다.
3. 애굽의 멸망의 대한 예언(13~17절)
13)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와서 애굽 땅을 공격할 일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말씀이라.
14) “너희는 애굽에 선포하며, 믹돌과 놉과 다바네스에 선포하여 말하기를,
‘너희는 굳게 서서 예비하라(방어 태세를 갖추어라).
네 사방이 칼에 삼키웠느니라(사방에서 전쟁이 일어나 너를 삼킬 것이라)’하여라.
15) 너희 힘센 장사(용사)들이 쓰러짐은 어찜이뇨?
그들이 서지 못함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몰아내셨기 때문이라.
16) 그가 많은 사람(군인들)을 넘어지게 하시니 사람이 사람 위에 엎드러지며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포악한 칼을 피하여 우리 민족에게로,
우리 고토로(고향으로) 돌아가자’하며
17) 거기서 부르짖기를 ‘애굽 왕 바로가 망하였도다.
그가 시기를 잃었도다(기회를 놓쳤도다)’하리라.”
- 애굽의 바로 왕이 기회를 놓쳤다(17절) :
느부갓네살이 바벨론의 군대 장관이었을 때
애굽의 바로 왕 느고와 갈그미스에서 전투를 벌여 크게 승리하였습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의 아버지 나보폴라사르가 죽자
바벨론으로 돌아가 바벨론의 왕이 됩니다.
그 후로 느부갓네살은 30여 년간 두로 등 다른 나라에 집중하느라
애굽을 침략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패배하여 도망하는 군사들이 애굽의 바로 왕이
이 기간을 느부갓네살을 공격할 반전의 기회로 삼지 못했다며
조롱하며 도망하는 것입니다.
-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침략하는 곳이 왜 믹돌과 놉과 다바네스인가(14절) :
믹돌과 놉과 다바네스는 유다인들이 머물고 있는 도시들입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이들 도시를 주로 공격한 것은
이 전쟁이 애굽에 대한 심판이면서
동시에 애굽에 있는 유다인들을 향한 심판이기도 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4. 애굽이 수치스러운 날(18~24절)
18) 만군의 여호와라 일컫는 왕이 이르시되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그가 과연 산들 중의 다볼같이, 해변의 갈멜같이 오리라.
19) 애굽에 사는 딸이여, 너는 너를 위하여 포로의 행리를(포로의 짐을) 준비하라.
놉이 황무하며 불에 타서 거민이 없을(사람이 아무도 살 수 없는 폐허가 될) 것임이니라.
20) 애굽은 심히 아름다운 암송아지라도 북에서부터 멸망에 이르렀고 이르렀느니라.
(혹은, 북쪽으로부터 몰려오는 쇠파리 떼에 시달리는 암송아지가 될 것임이니라).
21) 또 그 중의 고용군(용병들)은
외양간의 송아지 같아서 돌이켜 함께 도망하고 서지 못하였나니,
재난의 날이 이르렀고, 벌 받는 때가 왔음이라.
22) 애굽의 소리가 뱀의 소리 같으리니,
이는 그들의 군대가 벌목하는 자같이 도끼를 가지고 올 것임이니라.
2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황충보다 많아서 수를 셀 수 없으므로
조사할 수 없는 그의 수풀을 찍을 것이라.
(설명 : 그 숲의 나무들이 아무리 헤아릴 수 없이 많아도 다 찍을 것이라는 뜻)
24) 딸 애굽이 수치를 당하여 북방 백성의 손에 넘겨질 것이라.
5. 애굽과 바벨론과의 전투의 결과(25~26절)
25)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노의 아몬과 바로와 애굽 신들과 왕들
곧 바로와 및 그를 의지하는 자들을 벌할 것이라.
26) 내가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의 손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그 신하들의 손에 붙이리라.
그럴지라도 그 후에는 그 땅이 여전히 사람 살 곳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 노의 아몬과(25절) :
‘노’는 애굽을 대표하는 도시인 테베(Thebes)를 가리킵니다.
- 아몬(25절) :
‘아몬’은 테베의 수호신이었으나
B.C. 1900년경에는 애굽 전체의 주신(主神)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노의 아몬의 멸망은 애굽 전체의 멸망을 뜻합니다.
* 묵상 point
1. 역사를 주도하시는 하나님
1) 당시의 사람들이 예레미야의 예언을 이해하지 못한 이유 :
처음에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아주 미약하게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23년간 예레미야는
유다와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멸망하리라고 예언했고,
특히 당시 세계 최강의 군대를 가지고 있었던 애굽도
느부갓네살에게 망하리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예레미야의 이 말을 허무맹랑한 조롱거리로 여겼을까요?
만일 오늘날 어떤 사람이 미국과 필리핀, 혹은 미국과 대만이 전투를 벌여서
필리핀이나 대만이 미국을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완전하게 패배시킬 것이라고 말하고 다닌다면
세상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애굽은 당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나라였고,
바벨론은 아직은 그 군사력이 미미한 나라였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가 지난 23년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애굽을 물리치리라고 예언한 것은
참으로 당시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기에
예레미야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웃음과 조롱을 받은 것입니다.
2) 그러나 애굽과의 갈그미스 전투로 바벨론이 세계 최고의 나라로 등극합니다(2절)
그런데 예레미야가 예언했던 말이 이제 실현되는 그 전쟁이 벌어지기 직전에
하나님의 보다 구체적인 예언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습니다.
여호야김 제 4년(주전 605년)에 있었던
애굽과 바벨론간의 갈그미스 전투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전쟁에서 애굽은 더 이상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패배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애굽의 느고 왕은 이제 막 그 세력을 확장하려는
바벨론에 대항하기 위해 앗수르를 도우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애굽이 크게 패하리라는 말씀을 예레미야에게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 말씀 그대로 애굽은 갈그미스 전투에서 철저하게 패배하였고,
이 일로 세계의 판도가 뒤바뀌었습니다. 애굽은 군소국으로 전락하고,
바벨론은 세계를 지배하는 대제국이 되었습니다.
3) 애굽을 쇠파리 떼에 시달리는 암송아지로 비유(20, 22절)
애굽을 아름다운 암송아지로, 바벨론을 쇠파리 떼로 비유하여
암송아지가 쇠파리 떼에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비유하였습니다.
(개혁 성경에는 ‘멸망’으로 되어 있으나
개역개정에서는 본래의 뜻대로 ‘쇠파리 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 송아지가 힘이 센 살진 송아지라도
하나님께서 대적하시면 도살당할 살진 송아지에 불과합니다.
또 애굽을 뱀으로, 바벨론을 벌목꾼을 묘사하였습니다(22절).
애굽에서 뱀은 영원히 죽지 않는 영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도끼를 든 벌목꾼이 지나갈 때 두려움에 소리를 지르며 도망하는 뱀처럼
애굽은 바벨론 군사를 앞에서 혼이 빠져 소리를 지르며 도망할 것입니다.
2.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 예레미야의 예언
1) 갈그미스 전투를 할 때에도 애굽은 여전히 세계 최강의 나라였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 느고의 장담은
결코 호랑이 없는 동물의 나라에서 큰소리치는 여우와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무기도 좋았을 뿐만 아니라 군사들도 훈련이 잘되어 있었고,
또 경제력도 좋았기 때문에 주변 나라들로부터 용병들도 많이 사들였습니다(9절).
애굽의 모든 병사들이 큰 방패와 작은 방패를 가졌습니다.
투구를 쓰고 날이 잘 선 창을 가졌으며 좋은 갑옷도 입었습니다.
기병들은 좋은 말에 좋은 안장을 지웠습니다.
그야말로 최첨단의 가장 우수한 무기로 무장한 것입니다.
당시 애굽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군사력을 가진 나라였습니다.
객관적인 전투력으로 볼 때 바벨론은 애굽에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2) 애굽의 바로 왕 느고의 호언장담(3~4, 8~9절)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된 전투였기에
애굽의 바로 왕 느고는 이 전투에서의 승리를 확신하고,
나일강이 넘쳐서 주변 땅을 덮듯 애굽의 군사들이
세상의 모든 나라의 성읍들과 그 주민들을 덮어버릴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였습니다.
좋은 무기를 갖추고 말과 병거를 타고 질주하는 군사들의 모습에
애굽의 느고 왕은 승리를 확신합니다.
3) 그러나 이렇게 잘 준비된 전투였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과 맞설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된 전투에서 애굽은 수치스러운 패배를 당합니다.
좋은 무기에 잘 준비된 전투였는데 이상하게도 애굽의 군사들은
사방에서 다가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도망하기에 바쁨니다(14~17절).
그들은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힘센 장사들도 큰 두려움에 빠져 도망하기에 바빴습니다.
최첨단의 무기로 무장된 가장 뛰어난 군사력을 가진 애굽이
그보다 훨씬 못한 바벨론에게 이렇게 형편없이 패하게 되는 이유는
이 전쟁이 하나님의 보복전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을 상대하여 싸우시기 때문입니다.
한 나라를 세우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멸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 갈그미스 전투를 통해 예레미야가 전한 예언이 모두 사실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므로 갈그미스 전투를 통해
그동안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주셨던 모든 말씀이 다 진실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이때부터 예레미야의 사역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여전히 욕심에 사로잡힌 자들은 예레미야가 선포하는 말씀을 계속해서 듣지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있었던 신실한 자들은
이때부터 예레미야가 선포하는 말을 듣기 시작합니다.
4) 그 어떤 군사력도 하나님의 능력에 맞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전투(갈그미스 전투)를 통해
하나님의 신실한 왕인 요시야를 죽게 한 책임을 물어
그들에게 보복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10절).
일단 하나님께서 애굽을 상대하여 싸우겠다고 하신 만큼
이 전쟁에서 애굽이 승리할 방법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과 상대하여 이길 권세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은 나의 대적이다”하고 선언하셨다면
애굽이 가진 무기보다 10배나 더 많은 무기들을 준비하였더라도 그 전쟁에서 패합니다.
● 묵상 :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나와 대적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면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더라도 나의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 어떤 계획을 품고 있든 간에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십시오.
3.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안전지대는 없습니다.
1) 애굽이 자랑하는 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며 도망치는 모습(20~21절)
20~21절에서 외양간의 암송아지가 도망한다고 한 것은
애굽이 자랑하는 여러 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며 도망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20절의 심히 아름다운 암송아지는 애굽의 아피스 신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피스 신은 성스러운 황소와 풍요를 상징하는 신으로,
애굽 사람들이 위대한 신으로 섬기는 신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위대한 신이 하나님 앞에서 허둥대며 도망하는 모습을 표현합니다.
2) 애굽 사람들이 자랑하는 최고의 신 아몬의 멸망(25절)
또 25절의 아몬은 태양신 라(Ra)와 결합하여 아몬레(Amon-Re)가 되어
애굽의 모든 신들의 왕으로 간주되는 신입니다.
이런 아몬 신도 하나님의 징벌을 받는다고 표현하였습니다.
애굽이 의지하는 모든 것이 다 사라져서
애굽을 의지하는 자들이 애굽과 함께 멸망을 당할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애굽은 바벨론 후에 있는 바사(페르시아) 때에 완전히 멸망을 당합니다.
3) 하늘의 여왕 신, 하늘의 왕후를 섬긴 애굽의 유다 사람들의 최후(14절)
바벨론의 애굽을 침략할 때 애굽의 주요 도시가 믹돌과 놉과 다바네스가 되리라는 것은
애굽이 바벨론에 침략당할 때 애굽에 살고 있는 유다인들도
함께 심판을 당하게 되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다인들이 애굽의 믹돌과 놉과 다바네스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경고하셨고,
애굽의 바로 왕 호브라가 죽을 때가 심판의 시작이 될 것임을
알려주시기까지 했습니다(44:30).
그러나 이 모든 경고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여왕 신을 섬기는 즐거움을 버리지 못한 유다인들은
결국 애굽과 함께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헛된 것을 의지한 자들의 비참한 결과입니다.
● 묵상 :
우리도 영원하신 하나님보다 세상 것에 의지하게 된다면
그들과 같은 결과를 맞게 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세상은 눈에 보이니
세상을 더 많이 의지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결국 낡고 사라진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4) 하나님 이외에 안전지대는 없습니다.
유다인들이 애굽으로 피난해 온 것은
애굽이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였으므로
그곳이 가장 안전한 안전지대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곳도 결코 안전한 곳이 되지 못했습니다.
애굽이 바벨론에 패배한 것은 전투준비 부족 때문이 아닙니다.
이 전쟁이 하나님의 심판이기에 패배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과 함께하는 곳만이 안전한 곳임을 기억합시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 하나님과의 교제를 결단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5)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애굽이 멸망한다는 것을 애굽의 신들의 멸망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자랑하는 아피스 신도 도망하였고,
애굽 사람들의 최고의 신인 아몬의 신도
하나님의 징벌에 크게 두려워하며 소리를 지르고 도망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우리의 참 신으로 믿고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 묵상 :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으니
오직 예수님만을 우리의 구세주로 믿고 고백합니다.
다른 신을 섬기거나 예수님과 다른 신을 함께 섬기는
혼합주의 방식의 신앙을 따르지 마십시오.
애굽의 유다인들을 벌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도 진노를 발하실 것입니다.
* 기도제목
1. 한 나라를 세우기도 하시고 멸하기도 하시는
하나님의 권세를 깨닫게 하옵소서.
2. 예레미야처럼 이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신령한 눈과 지혜를 갖게 하옵소서.
3. 세상의 헛된 것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게 하옵소서.
4. 중보기도 :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인도하여 주시기를
그리스도인들 중에 우상숭배의 유혹을 받고 있는 자들을 위하여
바벨론 제국 바벨론 제국의 멸망
바벨론
제국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성장한 주요 문명 중 하나로, 특히 신바벨론 제국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이 시기는
기원전 626년 네부카드네자르 1세가 바벨론의 왕이 되면서 시작되어,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 제국에 의한 바벨론 멸망으로
끝납니다.
신바벨론
제국은 네부카드네자르 2세(기원전 605년부터 기원전 562년) 시대에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그는 바벨론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화려한 도시 중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을 포함한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고, 유대인들을 포로로 잡아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바벨론 포로). 이 시기의 바벨론은 경제적, 문화적으로 번영했으며, 건축과 예술, 과학에서 눈부신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네부카드네자르는 바벨론의 거대한 성벽, 이시타르 문, 그리고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공중 정원을
건설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바벨론
제국의 멸망은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이 바벨론을 정복하면서 발생했습니다. 키루스는 고도의 전략과 전술로
유명했으며, 바벨론의 방어를 우회하여 도시를 빠르고 효과적으로 함락시켰습니다. 키루스의 바벨론 정복은 평화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는 바벨론 사람들에게 종교적, 문화적 자유를 허용했습니다. 또한, 키루스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 있던 유대인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키루스 칙령).
바벨론의
멸망은 고대 근동 지역의 권력 구조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으며, 페르시아 제국의 부상을 의미했습니다. 바벨론은 이후에도 중요한
도시로 남았지만, 전성기의 영광을 다시는 되찾지 못했습니다. 바벨론의 멸망은 성경 예언의 이행으로도 간주되며, 구약성경 여러
권에서 예언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바벨론 제국과 그 멸망의 이야기는 고대 세계의 정치, 문화, 종교에 끼친 영향을 통해 오늘날까지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교만과 타락에 대한 경고,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과 정의에 대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