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 유다 왕국(BC 931-586) 바벨론 느부갓네살
1. 르호보암(왕상 14장 / 대하 11-12장)
유다의 첫 번째 왕인 르호보암입니다.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은 남유다의
초대 왕이 됩니다.
르호보암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했던 기간은 고직 3년뿐이었습니다(대하 11:17)
3년이 지나고 나라가 견고해지고 튼튼해지자 르호보암은 여호와의 율법을 저버립니다(역대하 12 :1)
르호보암이 즉위한 지
5년째 되던 해, 예루살렘은 애굽 왕 시삭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왕상 14:25)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스마야를 통해 유다가 행한
죄악을 심판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시삭의 손에 넘겼다고 말씀합니다(대하 12:5)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성전과 왕궁에 있는 모든
보물과 솔로몬이 만들었던 금 방패를 빼앗겨(대하 12:9), 놋 방패로만 궁문을 지킵니다(대하 12:10)
르호보암은 그렇게 17년 간 남유다를 다스립니다(대하 12:13)
2. 아비얌(아비야)(왕상15장 / 대하 13장)
유다의 두 번째 왕인 아비야라고도 불리는 아비얌입니다.
르호보암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비얌이 왕이 되고, 총 3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아비얌 역시 다윗의 길을 따르지 않고, 아버지 르호보암의
모든 죄를 그대로 행합니다(왕상 15:3).
당시 북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여로보암과 전쟁만 하다가(왕상 15:6) 병을 얻어
죽음을 맞이합니다.
3. 아사(왕상 15장 / 대하 14-16장)
유다의 세 번째 왕인 아사입니다.
아비야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사가
왕이 되고, 총 41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아사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와는 달리 다윗의 길로 행했고, 여러 종교 개혁들을
단행합니다(왕상 15:11)
먼저 남자 창기들을 밖으로 몰아내고, 조상들이 만든 모든 우상을 없애 버립니다(왕상 15:12)
그리고 우상을 섬기던 할머니 마아가도 과감히 쫓아냅니다(왕상 15:13)
또 오뎃의 아들 아사랴를 통해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대하 15:1) 우상 제거와 여호와의 제단을 재건하는 일에 박차를 가합니다(대하 15:8)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던 아사였지만 북이스라엘 바아사와의 전쟁 중,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아람 나라를 의지합니다.
이를 꾸짖는
예언자 하나니의 말에 몹시 화를 내며 그를 감옥에 가둡니다(대하 16:10)
아사 왕은 통치 말년에 발에 병을 얻어 죽음을
맞이합니다.
4. 여호사밧(왕상 22장 / 대하 17-20장)
유다의 네 번째 왕인 여호사밧입니다. 아사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여호사밧이 왕이 되고, 25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여호사밧은 아버지 아사를 따라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하는데요.(대하
17:4) 여호사밧 왕 때 남유다는 굉장한 부와 영광을 떨치게 됩니다.(대하 17:5) 여호사밧 역대 종교 개혁을 단행하는데요.
아버지 아사 왕의 개혁 후에도 남아있던 남자 창기들을 모두 쫓아내고(왕상 22:46), 재위 3년 차에 신하들과 제사장 그리고
레위 사람들을 뽑아 여호와의 율법책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게 합니다.(대하 17:9) 유다는 점점 더 강성해져 갔고(대하
17:10), 북이스라엘의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동맹을 맺게 됩니다.(대하 18:1) 하지만 그것이 여호사밧의 발목을 잡게
되었고, 하나니의 아들 예언자 예후를 통해 따끔한 질책을 받게 되죠.(대하 19:2) 여호사밧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2차
종교개혁을 단행합니다. 유다 곳곳을 직접 다니며 백성들을 살피고 재판관을 세우며, 공정한 재판을 할 것을 강조합니다. 얼마 후,
모압과 암몬, 그리고 마온 사람들이 힘을 합쳐 남유다를 공격 했고, 이에 여호사밧은 유다 온 백성과 함께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대하 20:5-6) 결과는 유다의 대승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여호사밧도 산당을 철거하지 않아서 온전한 개혁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대하 20:33)
5. 여호람(왕하8장/대하 21장)
유다의 다섯 번째 왕인 여호람입니다. 여호사밧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되고, 8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여호람은 왕권을 잡은 후, 형제들을 죽이는 끔찍한 일을 벌이는데요.(역대하
21:4) 그는 아합의 딸 아달랴와 결혼해 아합의 길을 따릅니다.(대하 21:6) 엘리야 선지자는 여호람에게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창자가 빠져나와 죽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전합니다.(대하 21:15) 그리고 말씀 그대로 창자가 빠져나와 죽게
됩니다.(대하 21:19)
6 .아하시야(왕하8-9장/대하 22장)
유다의 여섯 번째 왕인 아하시야입니다. 여호람의 뒤를 이어 막내아들인
아하시야가 왕이 되고, 1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아하시야 역시 아버지 여호람을 따라 아합의 집의 길을 따르죠.(대하
22:3) 아하시야는 당시 북이스라엘의 왕인 요람과 왕의 자리를 빼앗으려 했던 예후와의 싸움에 휘말려 예후에게 죽임을
당합니다.(대하 22:9)
7. 아달랴(왕하 11장/대하 22-23장)
유다의 일곱 번째 왕인 아달랴입니다. 아하시야의 죽음 뒤, 그의 어머니
아달랴는 유다의 왕족을 죽이기 시작합니다.(대하 22:10) 그때 아하시야의 누이인 여호세바(여호사브앗)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유모와 함께 빼내었고, 그렇게 요아스는 여호와의 성전에서 6년 동안 숨어 지냅니다.(왕하 11:2) 아달랴가 남유다의
왕이 된 지 7년째 되던 해, 제사장 여호야다는 아달랴를 몰아내고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기 위한 작전을 벌입니다. 작전은 성공했고,
아달랴는 죽임을 당하게 되죠. 이렇게 아달랴의 6년 간의 통치가 끝나게 됩니다.
8.요아스(왕하 12장/대하 24장)
유다의 여덟 번째 왕인 요아스입니다. 할머니 아달랴의 죽음 뒤에 왕이 된
요아스는 40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요아스는 아달랴 시대에 방치되었던 성전을 보수하고, 날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번제를
드리는 등 선한 왕의 면모를 보입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자신을 돌봐주고, 왕위에 오르게 한 여호야다가 죽자 요아스는
돌변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기게 된 건데요. 이에 하나님은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통해 무섭게
경고하시지만, 요아스는 그 경고를 무시하고 스가랴를 돌로 쳐 죽입니다. 얼만 지나지 않아 아람 왕 하사엘이 예루살렘을 공격해
왔고, 전쟁에서 부상을 당한 요아스는 신하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9.아마샤(왕하 14장/대하 25장)
유다의 아홉 번째 왕인 아마샤입니다. 요아스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되고, 남유다를 29년간 다스립니다. 아마샤을 왕권을 잡은 후, 아버지 요아스를 죽인 신하들을 먼저 처형합니다.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아마샤는 에돔 사람들이 섬기던 우상들을 가져와 섬기기 시작하는데요. 이를 지적하는 선지자를 무시하고,
자신의 힘을 과신한 나머지 북이스라엘과 전쟁을 일으킵니다. 전쟁에 크게 패배한 후에, 아마샤는 백성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10.아사랴(웃시야)(왕하 15장 / 대하 26장)
유다의 열 번째 왕인 웃시야라고도 불리는 아사랴입니다. 아마샤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사랴(웃시야)가 왕이 되고, 남유다를 52년간 다스립니다. 아사랴는 블레셋과의 전쟁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성을
튼튼히 하는 등 힘을 키워갔는데요. 유다의 힘이 커지는 만큼 아사랴의 교만도 커져갔고, 어느 날 제사장에게만 허용된 향을 피우는
일이 자신이 직접 행하려고 합니다. 제사장들의 만류에도 향을 피우려던 아사랴의 이마에 나병이 생기게 되었고, 죽을 때까지 격리되어
별궁에서 지내게 됩니다.
11.요담 (왕하 15장 / 대하 27장)
유다의 열한 번째 왕인 요담입니다. 아사랴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요담이
왕이 되고, 남유다를 16년 동안 다스립니다. 요담은 성전을 증축하고, 암몬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합니다. 하나님은 승리에도 겸손을
잃지 않은 요담을 점점 더 강하게 하시죠. 요담은 그렇게 다윗 성에 장사됩니다.
12.아하스(왕하 16장/ 대하 28장)
유다의 열두 번째 왕인 아하스입니다. 요담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되고, 남유다를 16년간 다스립니다. 아하스는 유다의 왕 중에서 가장 악한 왕으로 꼽히는데요. 바알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
심지어 자기 자녀를 제물로 바치는 끔찍한 일을 벌이죠. 그는 산당과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우상에게 제사를 드립니다. 아람과
이스라엘 연합군의 침입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고, 하나님이 아닌 앗시리아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도움을 청하죠. 급기야
앗시리아의 다메섹 제단을 그대로 유다로 가져오기까지 합니다. 아람과 이스라엘 연합군이 물러간 뒤 에돔 사람이 다시 유다를 공격 해
왔고, 블레셋 사람들의 공격까지 받게 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아하스 왕은 여전히 하나님이 아닌 앗시리아 왕과 다메섹 신들을
의지합니다. 마침내 아하스는 성전 안에 있는 기구들을 부수고 성전 문을 닫기까지 합니다. 또 유다 각 성읍에 산당을 세워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됩니다.
지난 시간에는 북이스라엘의 멸망 전에 남유다를 다스린 왕들을 살펴보았는데요.
오늘은 북이스라엘의 멸망 후에 남유다를 다스린 왕들을 쉽게 그리고 단숨에 정리해 보겠습니다. 영상을 끝까지 보세요.
13. 히스기야(왕하 18-20장, 역대하 29-32장)
유다의 열세 번째 왕인 히스기야입니다. 아하스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고, 남유다를 29년간 다스립니다.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는 유다의 왕 중에서도 가장 악한 왕으로 꼽히는
왕이었죠.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히스기야는 아버지 아하스와는 달랐습니다. 다윗의 길을 따른 건데요. 히스기야는 혼신의 힘을 다해
종교 개혁을 단행하는데요. 먼저 아버지 아하스가 닫아 놓았던 성전의 문을 열고 수리하는 성전 정화 운동을 벌였고, 다음으로는
오랫동안 멈춰있던 제사와 유월절을 다시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또 유다 온 땅에 펴진 우상과 산당 등을 제거하고, 유명무실했던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아 제 역할을 하도록 도왔죠. 성경은 히스기야를 유다 모든 왕들 중에 이처럼 하나님을 의지한
왕은 없었다고 평가하는데요. 그런 히스기에게도 어려움은 찾아왔습니다. 히스기야가 유다를 다스린 지 육 년째 되던 해,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히스기야 왕 제14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두 번에 걸쳐 유다를 침공
합니다.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의 경고에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앗수르 군대를 물리쳐
주십니다. 그 무렵 히스기야는 병에 들어 거의 죽게 되었는데요. 이때 히스기야는 벽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했고, 하나님은 역시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히스기야의 생명을 15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이렇게 많은 기적을 경험한 히스기야였지만, 병문안 차 방문했던
바벨론 왕의 사절들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교만의 덫에 걸려 넘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교만했던
히스기야에게 네 자손들이 후에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시죠. 히스기야는 다윗 자손의 묘실 중 높은 곳에
장사됩니다.
14. 므낫세(왕하 21장, 역대하 33장)
유다의 열네 번째 왕인 므낫세입니다. 히스기야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므낫세가 왕이 되고, 55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므낫세는 아버지 히스기야의 길이 아닌, 할아버지 아하스의 길을 따랐는데요.
심지어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우상의 제단을 쌓고, 손수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성전에 세우기까지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군대를 일으키셔서 므낫세를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하시죠. 포로가 된 므낫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고, 하나님은 므낫세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십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게 된 므낫세는 우상과 이방신들의 제단을 헐고, 여호와의 제단을 다시 보수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그는 웃사의 동산에 장사됩니다.
15. 아몬(왕하 21장, 역대하 33장)
유다의 열다섯 번째 왕인 아몬입니다. 므낫세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몬이
왕이 되고, 2년간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아몬은 아버지 므낫세를 따라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결국 그는 신하들에
의해 왕궁에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16. 요시야(왕하 22-23장, 역대하 34-35장)
유다의 열여섯 번째 왕인 요시야입니다. 아몬의 갑작스러운 죽음 후에, 유다
백성들이 반역을 일으킨 신하들을 죽이고, 아몬의 아들 요시야가 왕위에 올라 31년간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요시야는 아버지 아몬이
아닌 다윗의 길을 따르는데요. 성전 수리를 지시했고, 대제사장 힐기야가 성전에서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하게 됩니다. 요시야는
율법책의 말씀을 듣고 크게 슬퍼하여 옷을 찢었고, 백성들에게도 언약책의 말씀을 읽어 주며 다시 여호와의 언약을 세울 것을 백성들과
함께 맹세하죠. 이러한 맹세는 우상과 산당의 제거 그리고 유월절의 부활로 이어졌는데요. 이후 애굽과의 전쟁에서 화살에 맞은
요시야는 예루살렘에 돌아와 숨을 거두게 됩니다. 요시야의 죽음에 유다의 백성들은 슬퍼했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애가를 지어 요시야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17. 여호아하스(왕하 23장, 역대하 36장)
유다의 열일곱 번째 왕인 여호아하스입니다.
요시야의 뒤를 이어 그의 넷째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고, 3개월간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여호아하스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 애굽에 끌려가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18. 여호야김(엘리야김)(왕하 23-24장, 역대하 36장)
유다의 열여덟 번째 왕인 여호야김입니다.
동생 여호아하스의 뒤를 이어
요시야의 둘째 아들 여호야김(엘리야김)이 왕이 되고 11년간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여호야김은 애굽 왕 느고에 의해 왕이 됩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여호야김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쇠사슬에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수모를 당합니다.
19. 여호야긴(고니야, 여고냐) (왕하 24-25장, 대하 36장)
유다의 열아홉 번째 왕인 여호야긴입니다.
여호야김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되고, 석 달 열흘 동안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역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고, 바벨론의 공격으로 아버지와 같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갑니다.
이때 성전과 왕궁에 있는 보물과 그릇들도 빼앗기게 됩니다.
바벨론에서 37년 간 포로생활을 하던
여호야긴은 후에 느부갓네살의 아들 에윌므로닥이 다스릴 때, 감옥에서 풀려나 남은 여생을 에윌므로닥 왕의 지원을 받으며 살게
됩니다.
20. 시드기야(맛다니야)(왕하 24-25장, 대하 36장)
유다의 스무 번째 왕이자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입니다.
시드기야는 요시야의
셋째 아들로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세워진 왕입니다.
11년간 남유다를 다스리는데, 역시나 돌이킬 줄 모르고 여호와 앞에서
악행을 저지릅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예레미야와 에스겔, 그리고 하박국 선지자를 통해 경고하시지만, 시드기야는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고 결국 주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남유다는 멸망하게 됩니다.
북 이스라엘 왕국(BC 931-722) - 앗수르 살만에셀
1. 여로보암 :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많은
백성들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12개의 지파 중 무려 10개의 지파가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이 아닌, 여로보암을 지지했으니 그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여로보암은 그 인기를 잘 유지했습니다.
백성들의 요구를 적극 반영하여 강제 노역과 세금을 경감시켜 주었습니다.
이렇게 백성들의 인기를 유지했지만,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우상과 제사장과 절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여로보암은 22년 동안 북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여로보암이 왕이 된 지 이십이 년이라 그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들 나답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왕상 14:20)
여로보암 ― 북왕국 이스라엘의 제1대 왕
인적 사항
(1) 여로보암은 '백성을 더하게 하소서'라는 뜻.
(2) 에브라임 지파 출신(왕상11:25).
(3)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22년간 통치(왕상12:2;14:20).
(4) 솔로몬의 신복 느밧의 아들, 모친은 수루아(왕상 11:26).
(5) 고향은 세겜의 서쪽 사마리아 스레다임(왕상 11:26).
(6) 아들로는 아비야와 나답이 있음.
시대적 배경
여로보암 당시 이스라엘은 대변혁을 겪었다.
즉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 왕국이 분열됨으로써(B.C.930)
남왕국은 남왕국 대로 정치적 안정을 회복하기 위해 정비를 막 서두르게 되었고, 북왕국은 북왕국대로 정치적, 종교적 정비를 서두르던
때였다.
또한 이런 국내적 대격변과 함께 국외적으로도 솔로몬 말기부터 서서히 이스라엘을 침공해 오던 주변 국가들의 세력이
강성해짐에 따라 상당히 위기감이 고조되어 있던 때였다.
그러나 솔로몬 때까지 탄탄했던 이스라엘이었기 때문에 남북 왕국 분열 직후인
이 당시에는 아직 외적의 침입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남북 왕국간의 적대 감정이 매우 높아 잦은 전쟁이 벌어졌다.
이러한 시기에 여로보암은 새롭게 북왕국을 창건한 자로서 정치적으로는 매우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였으나 종교적으로는 악한 선례를
만듦으로써 북왕국 멸망의 근본 원인을 재공하고 말았다.
주요 생애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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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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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족속의 노역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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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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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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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왕됨을 예언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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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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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1:3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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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에게 반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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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938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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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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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으로 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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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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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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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열 지파의 요청으로 애굽에서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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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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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호보암에게 노역 완화를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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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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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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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열 지파의 왕으로 추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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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930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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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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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겜과 브누엘을 요새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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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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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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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2: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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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인의 제사장직을 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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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12:31;대하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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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절의 날짜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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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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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엘 제단 훼파 예언 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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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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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히야에게서 재앙이 예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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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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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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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호보암과의 전쟁을 계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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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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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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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 왕 시삭의 침입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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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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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왕 아비얌과의 전쟁에서 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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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913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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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1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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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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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910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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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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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품
(1) 솔로몬 왕의 인정을 받아 공사의 감독자로 발탁될 만큼 부지런하고 유능한 자(왕상11:28).
(2) 이스라엘 분단에 대한 아히야의 예언을 듣고 곧 반란을 일으킬 만큼 정치적 야욕이 강한 자(왕상 11:26-32).
(3) 애굽 망명 후 유다 지파와 솔로몬 통치에 대한 백성들의 반목을 충동질하여 정권에 도전할 만큼 계략이 뛰어난 자(왕상12:2-4).
(4) 이스라엘 열 지파의 추대를 받고, 북왕국의 초대 왕이 된 것을 볼 때 정치·군사적 지도력이 뛰어난 자(왕상12:1-3, 20).
(5) 왕이 된 후 성막을 가진 유다로부터 종교적으로도 독립하는 동시에 왕권도 강화하기 위하여 북쪽 지역에 많은 산당과 우상을 만들만큼 대담한 인본주의 자(왕상 12:27, 31).
(6) 하나님의 책망조차 무시할 정도로 교만한 자(왕상 13:1-10).
구속사적 지위
(1)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라진 후 북왕국의 초대 왕이 됨(왕상 12:20).
(2) 왕권 강화를 위해 벧엘과 단에 우상을 만들어 섬기게 함으로써 자신뿐만 아니라 백성들까지도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게 한 왕(왕상 12: 28).
(3) 여로보암과 그 집을 향한 하나님의 재앙이 선포됨. 이는 세상적 정욕만을 추구하는 자에게 임할 심판의 표징이 됨(왕상 14:7-16).
주요 업적
(1) 솔로몬의 '밀로' 건축과 예루살렘 성벽 수축 공사를 감독함(왕상 9:15).
(2) 세겜과 브누엘을 건축하여 군사적인 요새를 강화함(왕상 12:25).
실수
(1)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워놓고, 백성들에게 우상 숭배를 강요함(왕상 12:27-29).
(2)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을 제사장으로 삼음(왕상 12:31;13:33).
(3) 후세들에게 악한 선례를 남김으로써 결국 북왕국 멸망의 원인을 제공함(왕상 14:10).
평가 및 교훈
(1) 여로보암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것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왕상12:28,29)고 하며 이를 경배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한 채 자신의 생각과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것은 곧 우상 숭배와 동일한 죄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완악한 마음이나 자신의 이해 관계가 앞서지 않도록 하며 오직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그 분을 섬겨야 한다.
(2)
여로보암은 일찍이 솔로몬 왕의 인정을 받아 요셉 족속의 역사를 감독할 만큼, 또한 북쪽 10지파의 추대로 왕이 될 만큼
부지런하고 유능한 자였다(왕상 11:28;12:20). 그러나 이렇게 뛰어난 지도자요 존경을 받던 그였지만 하나님을 떠남으로써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임을 당했다. 이를 통해 하나님 없이는 인간의 지혜와 칭찬이 헛됨을 깨닫게 된다. 더욱이 하나님을
버리는 자는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자신도 버림받게 됨을 기억해야 하겠다. 참으로 일이 형통할 때에 더욱 하나님을 겸손히 섬기는 자가 되자.
(3)
여로보암은 솔로몬의 왕권에 대적하여 북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였다. 이로써 그는 후세들에게 이스라엘의 분열이라는 좋지
않은 전통을 남겼고, 더더욱 우상 숭배를 조장함으로써 백성들의 신앙을 변절시켰다. 혹시 우리도 여로보암 처럼 그릇된 신앙의
모습을 신앙의 후배들에게 남기고 있지는 않는가?
핵심 성구
2. 나답 :
여로보암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나답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여로보암의 죄를 그대로 반복했고, 불과 2년 만에 바아사 장군의 반역으로 죽게 됩니다.
유다의 아사 왕 셋째 해에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고(왕상 15:28)
나답
「고상하다, 관대하다, 고귀하다」
여로보암 I세의 아들이다. BC 910년 경 왕위에 올라 아비처럼 하나님 앞에서 악을행하였다. 유다 왕 아사 제 3년에
바아사에게 학살 당하고,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이것은 여로보암의 집에 대한 여호와의 형벌이었다. 나답의 재위는 겨우
2년이었다(왕상 14:10,11,20,15:2531).나답(재위 기원전 909년경-908년경)은 분열 이스라엘 왕국의 2대 왕으로
아버지 여로보암 1세처럼 악한 짓을 많이 저질렀다.
나답은 아버지 여로보암 1세가 죽자 왕위에 올랐으나 악한 짓을 많이 저질렀고 하나님의 눈에 거슬리지 짓도 많이 했다. 이에
이사카르 집안 출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반란을 일으켜 필리시테인에 속해있던 기브톤에서 나답을 공격했다. 결국 나답은 바아사에게
살해당하고 바아사가 왕위에 올랐다.
바아사는 임금이 되자 여로보암 집안의 모든 사람들을 몰살해 전 여로보암 1세 때 베텔의 늙은 예언자의 예언이 이루어졌다.
1. 나답의 출생과 초기 생애
출생과 배경 :
- 나답은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열왕기상 14:20)
- 그는 여로보암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지만, 그의 생애와 초기 생애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여로보암의 영향:
- 나답은 여로보암의 통치 아래에서 자라며 왕위 계승자로 준비되었습니다. 여로보암의 종교적 개혁과 금송아지 숭배는 나답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 여로보암의 죄악된 길을 따라간 나답의 통치는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우상 숭배와 불순종으로 점철되었습니다.
2. 나답의 즉위와 통치 (열왕기상 15장)
즉위와 초기 통치:
- 나답은 여로보암의 죽음 이후 왕위에 올랐으며, 북이스라엘 왕국의 두 번째 왕이 되었습니다. (열왕기상 15:25)
- 그는 아버지의 죄악된 길을 그대로 따르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군사적 활동:
- 나답의 통치 기간 동안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쟁이었습니다.
- 그는 군대를 이끌고 블레셋의 성읍 깁브돈을 포위했습니다. (열왕기상 15:27)
3. 나답의 암살과 바아사의 반란 (열왕기상 15장)
바아사의 반란:
- 나답이 블레셋의 깁브돈을 포위하고 있을 때, 이사갈 지파 출신의 바아사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열왕기상 15:27)
- 바아사는 나답을 암살하고, 자신이 왕위에 오르기 위해 나답을 제거했습니다.
여로보암 가문의 멸망:
- 나답의 암살 이후, 바아사는 여로보암의 모든 후손을 제거했습니다. 이는 여로보암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열왕기상 15:29-30)
- 여로보암의 가문이 완전히 멸망한 것은 그의 죄악된 통치와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줍니다.
4. 나답의 종교적 행보 (열왕기상 15장)
우상 숭배와 죄악:
- 나답은 그의 아버지 여로보암이 시작한 죄악된 길을 따랐습니다. 그는 우상 숭배를 지속하며,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열왕기상 15:26)
- 그는 백성들에게 우상 숭배를 조장하며, 영적 타락을 초래했습니다.
5. 교훈과 적용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
- 나답의 생애를 통해 우리는 불순종과 죄악의 결과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의 통치는 짧았고, 그의 죽음은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였습니다.
-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줍니다.
지도자의 책임 :
나답의 이야기는 지도자의 죄악된 행보가 백성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의 불순종은 백성들에게 영적 타락을 초래했습니다.
이는 지도자가 올바른 신앙과 도덕적 기준을 지켜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공의 :
나답의 죽음과 여로보암 가문의 멸망은 하나님의 심판과 공의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죄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며, 공의롭게 심판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며,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6. 결론
나답의 생애와 통치는 북이스라엘 왕국의 역사에서 중요한 교훈을 남깁니다.
그의 짧은 통치와 죄악된 행보는 우리에게 불순종의 결과와 하나님의 심판을 상기시켜줍니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통해 순종과 신앙의 중요성, 지도자의 책임,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를 배울 수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과 함께 나답의 통치와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에 대해 토론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의견을 자유롭게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비극의 서막 (바아사, 엘라)
3. 바아사 :
나답을 죽이고 왕에 오르게 된 바아는 24년 동안 나라를 다스립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은 그가 여로보암의 죄를 그대로 반복했다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바아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왕상 15:34)
4. 엘라 :
바아사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엘라가 왕이 되는데요. 공교롭게도 바아사가 죽였던 나답과 같이 재위 2년 만에 시므리의 반란으로 죽게 됩니다.
시므리가 들어가서 그를 쳐죽이고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 곧 유다의 아사 왕 제이십칠년이라(왕상 16:10)
7일 천하 (시므리)
5. 시므리 :
시므리는 바아사의 온 집안사람들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다 죽이고 왕위에 오릅니다.
바아사의 온 집을 멸하였는데 선지자 예후를 통하여 바아사를 꾸짖어 하신 여호와의 말씀 같이 되었으니(왕상 16:12)
그러나 전장에 나가 있던 백성들은 시므리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군대
지휘관이었던 오므리를 왕으로 삼고 궁전으로 쳐들어갑니다. 시므리는 성읍이 함락된 것을 보고 왕궁 요새에 들어가 왕궁에 불을 지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왕 위에 오른 지 불과 7일 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시므리가 성읍이 함락됨을 보고 왕궁 요새에 들어가서 왕궁에 불을 지르고 그 가운데에서 죽었으니(왕상 16:18)
이렇게 시므리의 7일 천하는 끝이 납니다.
오므리 왕조의 시작 (오므리, 아합, 아하시야 여호람)
6. 오므리 :
오므리의 등장으로 혼란했던 북이스라엘은 점차
안정을 찾기 시작합니다.
오므리는 나라의 법을 새로 세우고 수도를 사마리아로 옮기는 “천도”를 실시하면서 많은 백성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게 됩니다.
북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안정되고 평화로운 시기가 도래한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평가는 어땠을까요?
5.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왕상 16:25)
오므리는 그렇게 12년 동안 북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7. 아합 :
아버지 오므리에 이어 왕이 된 아합은 그 이름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아합과 그의 아내 이세벨!
아합은 여로보암의 길을 따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사마리아에 바알의 신천을 건축하는 끔찍한 악행을 저지릅니다.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왕상 16:32)
아합과 싸움을 벌였던 엘리야 선지자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예언자를 정리할 때 다루겠습니다.
22년 동안 북이스라엘을 다스린 아합은 아람과의 전쟁에서 적이 무심코 쏜 화살에 맞아 죽게 됩니다.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겨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맞힌지라 왕이 그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려 내가 전쟁터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으나(왕상 22:34)
8. 아하시야 :
지난 왕조들은 2대를 채 넘지 못했지만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면서 오므리 왕조는 3대째 왕위를 이어갑니다.
아하시야는 다락 난간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고 2년 만에 엘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죽게 됩니다.
왕이 엘리야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고 그가 아들이 없으므로 여호람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둘째 해였더라(왕하 1:17)
9. 요람(여호람) :
아하시야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동생 요람(여호람)이 왕위에 오릅니다.
왕이 엘리야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고 그가 아들이 없으므로 여호람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둘째 해였더라(왕하 1:17)
요람은 오므리 왕조의 4번째 왕으로 12년 동안 북이스라엘을 통치합니다.
북이스라엘 전체 200여 년의 역사 중에 4분의 1에 해당하는 48년이라는 기간 동안 오므리 왕조가 다스립니다.
더 놀라운 건
열왕기서 전체 분량 중에 삼 분의 일이 오므리 왕조의 이야기입니다.(왕상 16 - 왕하 12장)
그야말로 오므리 천하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오므리 왕조를 무너뜨린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북이스라엘의 9번째 왕까지 살펴봤습니다.
첫
번째 왕 여로보암과 그의 아들 나답.
나답을 죽이고 새로운 왕권을 창출한 “바아사” 장군.
그러나 바아사 왕조는 그의 아들 엘라에
이르러 시므리에 의해 무너지게 되죠.
시므리는 바아사의 온 집안사람들을 다 죽이며 왕권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지만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7일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이후 왕위에 오른 오므리는 많은 백성들의 지지를 힘입어 오므리, 아합,
아하시야, 요람에 이르기까지 48년 동안 위세를 떨칩니다.
북이스라엘 전체 역사 중에서 유례없는 전성기를 구가했던 오므리 왕조.
그러나 하나님의 평가는 정반대였죠.
모든 왕들보다 더욱 악한 왕이라는 혹평을 받습니다.
예후 왕조의 시작 (예후, 여호아하스, 요아스, 여로보암 2세, 스가랴)
10. 예후 :
아합의 군대 장관이었던 그는 요람 왕을 죽이며
영원할 줄 알았던 오므리 왕조의 시대를 닫고, 예후 왕조의 시대를 엽니다.
하나님은 예후를 통해 그동안 쌓여 왔던 오므리 왕조의
악행을 철저하게 심판하시는데요.
오므리 왕조와 관련된 모든 이들과 특히 그들이 지극히 섬겼던 바알, 바알 숭배자들을 잔인할
정도로 처단합니다.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왕하 10:28)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던 오므리 왕조는 한순간에 무너지고 맙니다.
이렇게 타락한 오므리 왕조를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된 예후였지만, 그도 타락에서 자유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왕하 10:31)
예후는 28년동안 북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11. 여호아하스 :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의 재임 기간은
17년입니다.
금송아지를 섬기는 여로보암의 죄를 그대로 따랐던 여호아하스는 아람 나라의 공격을 받을 때는 잠시 하나님을 의지하는
듯했지만,
상황이 다시 좋아지자 여지없이 하나님이 아닌 여로보암의 죄를 따랐습니다.
12. 요아스 :
여호아하스의 아들인 요아스가 왕위에 오르는데요. 재임 기간은 16년입니다.
요아스 때에 기억할만한 특별한 사건이 하나가 있는데요.
엘리사 선지자의 죽음입니다.
요아스 역시 여로보암 죄를 그대로 반복합니다.
13. 여로보암 2세 :
다음으로 요아스의 아들인 여로보암
2세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여로보암과 이름이 같아서 2세로 구분한건데요.
북이스라엘 역사상 최장기 집권으로 유명하죠.
무려 41년간 나라를 다스립니다.
그만큼 백성과 신하들의 신뢰도 컸다는 이야기겠죠.
눈엣 가시와도 같았던 아람 나라를 정복하고,
이스라엘의 영토를 다윗과 솔로몬 때로 회복합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죠.
실제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 나온 요나 선지자는
여로보암 2세에게 희망을 걸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왕하 14:27)
막연한 기대는 아니었습니다.
적군이 없어지고, 영토가 회복되고, 안정을
찾아가는 나라의 모습은 분명 매우 긍정적인 신호였죠.
그러나 동시대를 살았던 아모스 선지자는 전혀 다른 메시지를 전합니다.
아모스서 5장 10절부터 12절까지의 말씀을 보시죠.
10-12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듣기 싫어한다. 진실은 인기가
없는 법이다. 그러나 적나라하게 드러난 진실이 여기 있다. 너희는 가난한 이들을 악랄하게 짓밟고 그들에게서 빵을 빼앗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결코 너희가 건축한 화려한 집에 들어가 살지 못할 것이다. 너희는 결코 너희가 재배한 값비싼 포도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다. 나는 너희 위법이 어느 정도인지, 너희 죄가 얼마나 중대한지 정확히 알고 있다. 참으로 섬뜩하다! 너희는 의롭게 사는
이들을 괴롭히고 이리저리 뇌물을 받아 가며 가난한 이들을 바닥에 내친다. (메시지 성경)
여로보암 2세를 향한 요나와 아모스의 상반된 평가!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혹시 회개를 외쳐야하는 절박한 순간에 희망을 노래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14. 스가랴 :
무려 41년 동안 장기집권을 했던 여로보암 2세가 죽고 그의 아들 스가랴가 왕위에 오릅니다.
스가랴는 아버지와는 달리 6개월 만에 살룸에 의해 죽임을 당하며 예후 왕조는 이렇게 막을 내립니다.
죽이고, 또 죽이고
102년간을 집권했던 예후 왕조의 몰락 이후 북이스라엘은 대혼란기에 접어
듭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다섯 명의 왕들 중에 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 반역을 통해 왕의 자리를 빼앗거든요.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한, 오직 권력에 눈이 멀어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이 시작된 겁니다.
15. 살룸 :
예후의 후손인 스가랴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살룸은 7일 천하 시므리 다음으로 짧은 한 달간 왕으로 있다가 므나헴의 반역으로 죽게 됩니다.
16. 므나헴 :
므나헴은 얼마나 잔인했던지, 왕이 된 후 자신을 선뜻 환영해 주지 않았다고 해서 그 주변 모든 임산부의 배를 갈랐습니다.
그 때에 므나헴이 디르사에서 와서 딥사와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사람과 그 사방을 쳤으니 이는 그들이 성문을 열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므로 그들이 그 곳을 치고 그 가운데에 아이 밴 부녀를 갈랐더라(왕하 15:16)
또 그는 친 앗수르 정책을 펼쳤고, 10년 간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17. 브가히야 :
므나헴의 잔혹함 때문에 미처 반역할 생각을 하지 못해서였을까요?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가 왕 위에 오릅니다. 이렇게 므나헴 왕조가 시작되나 했지만 2년 만에 장관인 베가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18. 베가 :
베가의 재임 기간은 20년입니다. 꽤 긴
시간동안 나라를 다스렸지만 성경에는 앗수르의 침략을 받았다.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다는 기록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기록하실까요? 반역으로 왕위에 올랐던 베가는 역시 반역으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19. 호세아 :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호세아 왕입니다.
왕위에 오른 지 9년 만인 주전 722년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침략으로 멸망하게 됩니다.
오므리 왕조의 시대를 닫고, 예후 왕조의 시대를 연 예후, 그리고 이어지는
여호아하스, 요아스, 여로보암 2세, 스가랴까지. 영원할 줄로만 알았던 예후 왕조도 살룸의 반역으로 무너지게 됩니다.
이후
북이스라엘은 대혼란에 빠지게 되는대요.
살룸을 죽이고 왕이 된 잔혹했던 므나헴, 므나헴이 무서웠던 걸까요?
반역 없이 그의 아들
브가히야가 왕 위에 오릅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2년 만에 부하였던 베가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베가는 20년이라는 비교적 오랜
시간 북이스라엘을 통치했지만 그도 역시 호세아가 일으킨 반역으로 죽임을 당합니다.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호세아는 왕 위에 오른
지 9년 만인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게 나라를 빼앗기게 됩니다.
열왕기하 17:34
그들이 오늘까지 이전 풍속대로 행하여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라 이름을 주신 야곱의 자손에게 명령하신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는도다.
당대에 최고라고 불리던 왕들이 여지없이 무너진 이유가 뭘까요?
“이전 풍속대로 행하여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며”
이전 풍속대로, 옛 습관과 본성을 버리지 못했기 아니,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듯 보이지면 결국엔 자신의 욕심과 쾌락과 안위를 위해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선물인 은혜를
마치 자기가 노력하여 얻은 자기만의 산물로 여겼던 것이죠.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내가 누리는 것들이 나만이 가져야 하는 산물로
여기시나요?
아니면, 모두와 나눠야 할 하나님의 선물로 여기시나요? 어리석은 왕들의 이야기가 바로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17:35-39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며 이렇게
명령하셨다. “다른 신들을 높이지 마라. 그들을 예배하지 말고 그들을 섬기지 말며, 그들에게 제사 지내지 마라. 하나님 곧 큰
능력으로 너희를 친히 이집트에서 구해 내신 그 하나님을 예배하여라. 그분을 공경하고 경외하여라. 그분을 예배하여라. 그분께 제사를
드려라. 오직 그분께만! 무엇을 믿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그분이 가르치신 것, 너희를 위해 기록해 두신 모든 것을 너희가 사는
날 동안 행하여라. 너희는 어떤 경우에도 다른 신들을 예배해서는 안 된다! 그분이 너희와 맺으신 언약에서 너희가 지켜야 할 것을
잊지 마라. 다른 신들을 예배하지 마라! 하나님, 오직 하나님만 예배하여라. 너희를 원수의 압제에서 구원하실 이는 바로
그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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