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사도행전 19:2) - 모태신앙과 고백신앙(영접신앙)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사도행전 19:2)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and asked them, "Did you receive the Holy Spirit when you believed?" They answered, "No, we have not even heard that there is a Holy Spirit."

왜 성령을 받아야 하는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위한 것입니다.

헬라어 단어에 "안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두 개의 단어로 설명을 하겠습니다.
안다는 단어네 "기노스코"라는 단어와 "에이도"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But we know where this man is from; when the Christ comes, no one will know where he is from.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 전통적인 사고의 유래는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 중간 시대에 나온 계시 문학에서 엿볼 수 있는 사상의 결과라고 합니다.

계시 문학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갑자기 "구름에서 나타난다" 혹은 "해에서 나타난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제 4 에스라 7:28,13:32).

전통적인 사고가 옳은 방식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전통적 사고가 잘못된 방식이라면 잘못을 뉘우치고 옳은 방식을 따라 진리를 받아드려야 합니다.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과 생각을 갖는 것이 은혜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을 예언된 메시야로 인정할 수 없었던 사람들처럼 오늘날도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에 진리가 있다고 착각(錯覺)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왜 예수님을 인정하지 못할까요
그 이유는 예수는 요셉의 아들이며 그의 부모 요셉과 마리아를 잘 알고 있는데 하늘로서 내려왔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메시야로 인정하지 못합니다(요 6:42).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고 하셨을 때 "아노라" 라는 헬라 단어는 "에이도(
ĕidō. εἴδω)"라고 합니다.

'에이도'라는 단어는 내용을 깊이 알고 경험하여 아는 것이 아니라 표면적인 겉모양만 단순하게 아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사물과 실체에 대하여 정확하게 아는 것을 "기노스코(ginōskō. γινώσκω)" 라고 합니다.
기노스코의 앎은 마음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경험, 체험).
에이도의 앎은 머리로만 아는 것을 말합니다(지식, 정보).

따라서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를 안다는 것은 단지 일반적인 정보만 아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성령으로 잉태하셨다는 본질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온전하게 알려면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라는 질문은 단순한 방언을 하느냐?
환상을 보았느냐?
병자를 고칠 수 있느냐?
이러한 현장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을 알 수 있는 은혜를 받았느냐 하는 질문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받았습니까?
성령에 의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세주가 되시며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있습니까?


오이다 / 에이도와 기노스코의 차이를 말해주는 성구

요한복음 13: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오이다)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기노스코).

​성령을 받기 전에는 알아도 알지 못한다는 말씀이지요.
보아도 보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면 하나님을 보게 되고 알게 되고 체험한다는 것이지요.
제자들은 3년간 최고 스승이신 예수께 교육과 훈련을 받았어도 기노스코가 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성령 받기 전과 후는 차이가 분명합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을 듣고 보고 주목하고 손으로 만지게 되기 때문이지요.

​오늘도 하나님을 기노스코 하시길 기도합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사도행전 19:2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아노라(에이도. ĕidō) εἴδω 스트롱번호 1492

1. 보다.  2. ㉠ 별을 보다. 3. 눅 7:22
발음 [ ĕidō ]
관련 성경 /  보다(마 2:2, 막 1:10, 요 1:39), 알다(마 2:16, 막 10:42, 요 9:25), 뵙다(마 28:17), 보이다(막 12:15), 당하다(행 2:31, 13:36), 시인하다(딛 1:16), 알리다(눅 2:15), 의논하다(행 15:6).

알다(기노스코. ginōskō) γινώσκω 스트롱번호 1097

1. 알다.  2. 신비를~ .  3. 하나님을~
발음 [ ginōskō ]
관련 성경  /   알아보다(막 6:38), 알다(마 6:3, 12:5 ,7, 막 5:43, 8:17, 눅 20:19, 요 1:40), 알게 하다(마 9:30, 요 19:4), 알려지다(마 10:26, 눅 12:2), 깨닫다(마 24:39, 막 5:29), 알리다(막 9:30, 요 7:17), 동침하다(마 1:25), 주다(막 4:11)


왜 성령을 받아야 하는가?





모태신앙(母胎信仰) : 고백신앙(告白信仰) <迎接信仰>

모태신앙이란 용어는 기독교에서만 통용되는 말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모태신앙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무당을 이야기 할 때 강신무와 세습무라고 구분하지만 결국에는 모든 무당들이 신을 받아야만 그 일에 집중할 수 있다고 합니다.

모태신앙을 가톨릭에서는 "태중교우"라고 하며, 성공회에서는 "뿌리신자"라고 합니다.
그만큼 교세를 강조하기 위하여 어릴 때부터 세뇌하는 작업이라고 합니다.

모태신앙이란 아주 어렸을 때부터 혹은 어머니의 배 속에 있었을 때부터 자신이 교회와 교회에서 가르치는 내용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있는 배경 속에서 자랐다는 말이고, 그 속에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말입니다.
주일학교부터 청년회까지 교회에 꾸준히 다니면서 들려지는 매 주일 말씀을 듣고 소그룹에서 나누는 교제에도 함께했으며 침례를 받거나 만찬에 참여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성경의 대표적인 모태신앙인은 디모데입니다.
그는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믿음의 배경 속에서 자랐습니다(딤후 1:5).
그래서 그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습니다(딤후 3:15).
그는 사도 바울의 영적 아들로(고전 4:17) 사도의 소명을 이어받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교회를 든든히 세울 것을 명받았습니다(딤후 4:1-8).

또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의 성전에서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던 사무엘도 모태신앙인입니다(삼상 1:27-28; 2:18-21).
그는 어렸을 때부터 여호와께 드려졌고 여호와 앞에 자랐습니다.
왕이 없어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던 이스라엘의 암흑기 마지막 사사로서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을 세우는 중대한 일을 했습니다.
사무엘의 마지막 설교를 들으면 그가 얼마나 충성스러운 신앙인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삼상 12장).

하지만, 모태신앙인이라고 무조건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에 대한 수많은 예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과 함께 대제사장 엘리의 영향 아래 자라났던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는 자녀들로 자랐고 결국 엘리 집안을 멸망시켰습니다(삼상 2:27-36). 아이러니하게도 훌륭한 모태신앙인이라고 여겨지는 사무엘의 아들들 역시 아버지의 명예를 실추시킬 만큼 엉망이었습니다(삼상 8:3).  

오늘날에도 우리는 훌륭한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자란 흉악한 범죄자들에 대한 소식을 듣습니다. 반대로 암울한 배경 속에서 대를 이어가는 죄악된 삶의 사슬을 끊고 경건한 그리스도인 가정을 세운 신앙인의 간증을 접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모태신앙”이 곧 참 신앙이라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좋은 신앙의 배경이 좋은 신앙인으로 자라게 하는 좋은 토양이 될지 모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나무 자체가 좋은 나무인가? 나쁜 나무인가? 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 7:18)

기독교의 가르침과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어렸을 때부터 자랐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좋은 배경 속에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물론 교회에서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고 순종했다는 것을 전제로 말입니다). 그는 천지 만물을 지으신 이가 있다는 사실을 어려서부터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친히 선택하시고 그들과 일방적인 언약을 맺으심으로 그들에 대한 신실한 사랑을 보이셨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해 제사제도를 알려주시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삶을 배우게 하기 위해 율법을 주셨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죄와 허물로 죽은 인간은 끝내 율법을 완성시킬 수 없기에 사람이 할 수 없는 그것을 대신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대신 죽을 희생제물로 삼으셨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권세를 얻었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기업을 함께 이어 받을 영원한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도 배우게 됩니다.

어려서부터 이렇게 놀라운 하나님의 진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과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앞서 결론 내린 것처럼 ‘이 사실을 어려서부터 들어서 안다’는 것이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와 동의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배운 그 사실을 내 것으로 받아들였는가’에 있습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의 진리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자가 되었는가’가 중요하지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어왔다’는 사실은 좋은 배경 속에서 자랐다는 의미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마치 어려서부터 탁구장을 운영하는 집에서 태어나 많은 사람들이 탁구치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고 해서 무조건 탁구를 잘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내가 직접 배우고 연마하여 좋은 실력을 갖추는 것이지 좋은 배경속에 있었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실력을 갖추는 것은 아닙니다.

로마서 3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나님의 언약 아래 있었고, 율법과 계명을 맡은 자들이었습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자녀들에게도 그들이 앉았을 때나 섰을 때나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명하였습니다(신 6). 그들의 정치 지도자는 백성들을 하나님의 법으로 다스렸습니다. 이스라엘 국가 전체가 이방인과 구별된 모태신앙 집단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공동체 국가였고 교육과정은 하나님의 계명이었습니다. 이보다 더 모태신앙의 배경을 갖춘 자들이 있을까요?

바울은 그들 역시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는 죄인이었다고 분명하게 밝힙니다. 그들에 비해 너무나 빈약한 신앙의 배경을 가졌던 이방인과 동일하게 그들은 죄인으로서의 한계를 갖는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배경이 그들로 하여금 자동적으로 하나님을 잘 믿게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모태신앙이 그들로 하여금 신앙심을 강력하게 만들어주는 유익이 되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롬 3:9-18)

개와 같은 이방인들에 비해 월등한 모태신앙을 가졌다고 자부했던 유대인들에게 “독사의 자식”이라고 외쳤던 세례 요한과 예수님은 그들이 가졌던 자부심과 교만을 완전히 뿌리뽑고 바울이 외쳤던 그들의 진짜 영적 현실을 그들이 처절하게 바라보기 원하셨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 3:27-28)

그러므로 한 사람의 모태신앙인으로서 저는 이렇게 말하기 원합니다. 모태신앙의 배경을 가졌다는 것에 감사하십시오. 그러나 교만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곧 나의 신앙을 말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모태신앙이 곧 나의 영적 상태를 좌지우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에 대한 나의 겸손한 순종과 믿음이 결정합니다. 하나님의 강력한 주권과 능력이 나를 거듭나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이 나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자랑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태신앙입니다”라는 말이 “그러니 저는 당연히 그리스도인입니다”가 될 수 없습니다. 절대로 그렇습니다. 우리에겐 베드로와 같은 고백이 필요합니다.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혹은 주께서 크다고 칭찬하신 한 이방인 여인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여,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먹습니다.” 세리와 같은 겸손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모태신앙’은 감사의 제목이지 자랑거리는 아닙니다.
“저는 모태신앙입니다”라는 말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당신이 언제 그 은혜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는지 말해주십시오.
언제 당신이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죄인이었음을 알게 되었는지 말해주십시오.
언제 하나님께 “주여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부르짖었는지 말해주십시오.
어떻게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당신의 불의 가운데 드러나게 되었는지, 당신의 온전한 자랑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되었는지 말해주십시오.
그것이 모든 신자가 해야 할 믿음의 고백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위대한’ 모태신앙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욕단(Joktan)



욕단(Joktan)

욕단(Joktan 또는 Yoktan, 히브리어: יָקְתָן, 현대: Yoqtan, 티베리아어: Yāqṭān, 아랍어: يقصان, 로마자 표기: Yaqṭān)
에벨의 두 아들 중 둘째였다( 10:25, 대상 1:19).
욕단은 노아의 아들 셈의 후손이다.

창세기 10:25
에벨이 두 아들을 낳으니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니 이는 그 때에 땅이 나뉘었음이요 그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더라.

창세기 10:26~29
욕단의 아들들은 알모닷, 셀렙, 하살마웻, 예라, 하도람, 우살, 디글라, 오발, 아비마엘, 스바, 오빌, 하윌라, 요밥이다.

위필로(Pseudo-Philo)의 기록(약 70년)에서 니므롯과 베네크가 각각 함 (성경 인물)야벳의 자손을 다스리는 왕자였던 것처럼 욕단은 처음으로 셈 자손의 왕자가 되었다.
그의 버전에서 세 왕자는 모든 사람에게 바벨탑을 위한 벽돌을 굽도록 명령한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롯뿐만 아니라 욕단의 여러 아들을 포함하여 12명이 명령을 거부한다.
욕단은 그들을 시날에서 산으로 밀반출해 다른 두 왕자를 짜증나게 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욕단의 이동 경로와 한민족

성경에 ‘욕단’(이나 그의 후손(들)이 한반도나 한반도 근처로 이동을 했다는 흔적이 나타날 것입니다—그 흔적을 추적하겠습니다.

욕단은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웻과 예라와 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오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았으니 []들은  욕단의 아들이며 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이었더라” (창 10:26 – 30 / [  ] 안은 제 번역입니다)

위에 인용된 구절들에 의하면 ‘욕단’의 아들들이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에 거주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말씀 드리겠듯, 메사와 스발은 현재 ‘만추리아’(만주)와 ‘시베리아’로 일컫어지는 지역입니다.
그러므로 그 동쪽 산은 ‘백두산’입니다.

그래서 욕단의 아들들이 백두산에 거주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위에 인용된 구절들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현재의 이라크만나 거기 거류하며” (창 11:2)라는 구절이 따릅니다. 그 구절의 ‘그들’이 누구인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노아의 후손들일 수도 있고, 셈의 후손들일 수도 있고, 셈의 후손들 중 에벨의 후손들일 수도 있고, 에벨의 후손들 중 욕단의 아들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 ‘그들’이 욕단의 아들들이면 문제가 생기는 듯 합니다—그렇다면 노아의 방주가 정착했던 곳에서 전 세계로 흩어진 노아의 자손들 중 욕단의 아들이 거주했던 지역인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은 중동의 어느 지역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동쪽 산’이 중동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노아의 방주에서 셈이 나온 후 욕단의 형인 벨렉 (창 10:25)이 출생할 때까지 백년이 약간 넘는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창 11:10 – 16) 그 방주가 정착했던 곳인 중동의 북쪽에서 동쪽으로 백년을 넘게 이동했다면, 욕단의 아들들은 중동을 훨씬 넘어 동쪽 끝에—즉, 극동지방에; 한국에; 백두산에—도착하고도 남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구절의 원어를 들여다 보면 그 구절의 ‘동방으로’라는 번역이 잘못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동방으로’로 번역된 부분의 원어는 ‘미 케뎀’으로 ‘동방앞에서부터,’ 즉 ‘극동으로부터’(from the Oriental East; from the Orient)라는 의미입니다—그러니까, 구체적으로는, ‘한국(과 일본)으로부터’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그 구절은 “그들이 극동에서부터 이동하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창 11:2)와 같이 번역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욕단의 아들들이 극동지방에 거주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므로 (1) 그 구절의 ‘그들’이 욕단의 아들들이라도 욕단의 아들들이 거주했던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에서 ‘메사’를 ‘만추리아’(만주), ‘스발’을 ‘시베리아’, 그리고 ‘동쪽 산’을 그러므로 ‘백두산’으로 보는 견해와 그 구절은 충돌되지 않고; (2) 사실, 방금 말씀드린 이유로, ‘메사’는 ‘만추리아’(만주), ‘스발’은 ‘시베리아’, 그리고 ‘동쪽 산’은 그러므로 ‘백두산’이 될 수 밖에 없고; (3) 따라서 그 구절의 ‘그들’은 ‘욕단의 아들들’이 분명합니다—다시 말씀드리는데, 노아의 방주에서 백년이 넘는 세월동안 동쪽으로 이동했을 때 이르게 되는 동쪽 지방은—즉, 극동 지방은—한국(과 일본)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욕단의 아들들이 극동 지방의 만주에서부터 시베리아로 가는 에 있는 동쪽 에—즉, ‘백두산’에—거주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에 인용된 구절들과 그 구절들에 따르는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창 11:2)라는 구절은 아래와 같이 번역될 수 있습니다:

“욕단은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웻과 예라와 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오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았으니 그들은 다 욕단의 아들이며 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만주에서부터 시베리아로 가는 길의 백두산이었더라 ……욕단의 자손들이 극동에서 이동하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창 10:26 – 11:2)

그러므로 ‘욕단’이 한민족의 조상입니다. 한민족은 고조선의 후예입니다. 고조선은 백두산, 만주, 시베리아, 등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고조선의 후예인 한민족은 ‘욕단’으로부터 비롯됩니다—‘욕단’이 한민족의 조상입니다.

그런데 욕단의 자손들이 시날 평지에 거주하면서, 시날에 바벨탑이 건설되고 언어가 다양해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1.  한민족의 민족적 죄는 다른 민족에 비해 가볍습니다.
백두산에 살았던 욕단의 아들들이 그 먼 시날 평지로 다 갔을 리는 없습니다—그들 중 일부만 갔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두산에 남아있던 아들들은 ‘바벨탑’을 쌓는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욕단의 아들들 중 백두산에 남아있던 아들들이 한민족의 조상들입니다.
한편으로, 성경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유대전승에 의하면, 바벨탑을 쌓은 사건은 인류의 하나님에 대한 최초의 그리고 거대한 도전이었습니다—무서운 죄악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민족의 조상들은 그 죄악에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민족의 민족적 죄는 다른 민족에 비해 가볍습니다.

2.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세에 한민족을 사용하십니다.
세계적인 대부흥이 한민족에게 두번이나 나타났고, 한민족이 말세에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고, 이스라엘 선교의 사명까지 감당하는 현상은 우연이 아닙니다—하나님께서 한민족을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한민족(의 조상들)이 인류가 바벨탑에서 하나님께 도전했던 죄악에 동참하지 않았던 사실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세에 한민족을 사용하십니다. 

3.  한국어는 아담이 사용했던 원래의 언어입니다.
한민족(의 조상들)은 바벨탑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의 언어를 다양하게 변화시키실 때 바벨탑에 가지 않았던 한민족의 조상들의 언어는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언어는 아담이 사용했던 원래의 언어이고 한민족이 사용하는 한국어입니다.
그래서 한국어는 아담이 사용했던 원래의 언어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민족을 부러워 마시기 바랍니다.            
한민족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민족입니다.                      



창세기 10:25-29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Two sons were born to Eber: One was named Peleg, because in his time the earth was divided; his brother was named Joktan.

욕단
알모닷셀렙과 하살마웻과 예라와.
Joktan was the father of Almodad, Sheleph, Hazarmaveth, Jerah,

  • 하도람우살디글라
    Hadoram, Uzal, Diklah

  • 오발
    아비마엘과 스바와
    Obal, Abimael, Sheba.

    오빌
    하윌라요밥을 낳았으니 이들은 다 욕단의 아들이며.
    Ophir, Havilah and Jobab. All these were sons of Joktan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한국인의 조상은 성경상 욕단(Joktan)

    창세기 10장에 노아의 세째 아들 셈의 후예가 소개되어 있다.
    셈의 4대손 에벨이 낳은 장자 벨렉은 오늘날 유대인의 조상이며, 차자 욕단은 한국인의 조상(알이란 민족)이 된다. 

         셈-아르박삿-살라 - 에벨(24)--두아들 벨렉(과 욕단)-- 르우-스룩-나홀-데라 -아브라함, 

    선택받은 백성은 벨렉 계열과 욕단 계열 두 백성이 존재한다. 이 특별한 셈족들인 벨렉의 후손에서

     노아의 10대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음으로서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이 탄생했다(창 11:10~32). 그렇다면 욕단의 후손은 어디로 갔을까? 성경은 그들이 동방의 산악 지대를 넘어 아시아로 갔다고 말한다. “그들의 거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이었더라”(창 10:30) 여기에서 ‘산’이란 히브리어로 ‘하르’라고 하는데, 그 뜻은 ‘산맥’, 혹은 ‘산지’를 가리킨다. 동양에는 큰 산들이 많이 있다. 즉 욕단은 동쪽 산악 지대를 넘어서 -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 아시아로 이동했던 것이다.


    욕단의 가계는 에벨의 혈통으로서 셈족의 종가이었으므로 그들은 ‘알이랑 정신’, 곧 ‘하나님 중심 사상 ․ 신본주의 정신’이 확고한 하나님을 아는 족속이었다. 따라서 욕단 족속은 셈족의 정통성을 승계한 백성답게 ‘하나님과 함께 고개를 넘어 간다’, 즉 ‘알이랑(With God) 고개를 넘어 간다’라고 찬송하면서 ‘스발’을 향해 동방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스발’의 위치는 어디일까?

    ‘스발’을 히브리어에서 음역하면 ‘새팔’이다 그런데 모든 것이 홍수로 인해 지워졌기 때문에 ‘새팔’은 결코 당시에 존재하거나 알려진 장소 이름이 될 수 없다. 욕단이 동쪽으루 이동하기까지 동양에는 아직 누구도 살지 않았다. 따라서 창세기 10장 30절에 언급된 ‘스발(새팔)’은 현실적인 지명이 아닌 ‘예시적’인 지명이다. ‘예시’란 나중에 원형으로 구체화 될 어떤 ‘암시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스발(새팔)’의 원형에 해당할 수 있는 위치를 찾아야 한다. 예시적 지명 ‘새팔’은 일단 아시아 동쪽의 어느 곳이라고 추적한다면 욕단은 동방의 산악지대(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쪽으로 이동하였기 때문에  그곳은 ‘시베리아’이다. 알타이산맥을 넘어 동쪽으로 좀 더 이동하면 시베리아 벌판이 펼쳐진다. 시베리아는 고조선의 창건 무대인 만주 대륙이 연장된 땅으로 우리 한민족의 역사적 고향이다. 알이랑 고개를 넘어 유라시아 대륙 동쪽으로 멀리 이동한 욕단 족속은 만주 및 시베리아를 아우르는 동방의 새 땅을 ‘새발’이라고 하였다. ‘새발’은 ‘ ‘새 땅’ ‘새 벌판’이라는 뜻이다. ‘새팔’과 ‘새발’은 발음이 아주 유사하다. ‘ ㅍ’과 ‘ㅂ’은 모두 ‘파열음’으로서 한 계통의 소리이이므로 자주 혼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안팎’은 ‘안밖’이요, 동이족의 후예인 인디언은 ‘아버지’를 ‘아파치’라고 부른다.

    따라서 ‘새팔’ = ‘새발’로 간주할 수 있다.[유석근, '또하나의 선민 알이랑민족' 116쪽]

    그러니까 우리 알이랑 민족인  한국인의 성경상 직계 조상은 셈의 4대손 ‘욕단’이다. 따라서 한국인은 이 땅 위에 존재하는 또하나의 선민인 셈이다. 셈 계열 내에서 에벨의 혈통인 욕단의 후손도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볼 수 있다. 주 하나님께서 나중에 쓰시려고 “감추어 두신 선민”이 바로 알이랑민족인 우리 한국인이다.  우리 겨레가 하나님이 감추어 두신 ‘또 하나의 선민’이라는 교훈은 새로운 선민주의가 절대로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성경에 근거한 객관적 사실이다. 아시아 서쪽 땅 끝에 거주하는 유대인은 셈족의 ‘좌측 가지’인 벨렉의 후손이다(창 10:21,25; 11:10~32). 아시아 동쪽 땅 끝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셈족의 현저한 ‘우측 가지’인 욕단의 후손이며(창 10:21,25,30).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 또 하나의 선민인 것이다.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겉사람’과 눈에 보이지 않는 ‘속사람’이 있는 것과 같이 선민도 겉으로 드러난 선민(벨렉 계열 유대인)과 속으로 감추인 선민(욕단 계열 한국인)이 있다. 창세기 10장 21절에 의하면 벨렉 계열과 욕단 계열은 셈족의 현저한 두 가지(branch)로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족속인 ‘에벨의 혈통’이다.

    한국인의 특이한 점은 습성과 풍습이 유대인과 유사하다는 것이다.한국여성과 유대인 모두 물동이를 머리에 이는것, 외출시 얼굴을 가린다. 양 민족 모두 돌제단을 쌓아 제사를 지내고, 부모를 "에미","에비"라고 부른다. 또한 장례식에 베옷을 입고 '아이고', '아이고' 하며 곡을 한다. 유대인이 유월절에 문설주에 양의 피를 뿌리듯이 한국인은 이와 비슷하게 붉은 팥죽을 뿌린다.

    한국인은 유대인과 같이 근면하고, 흰옷을 즐겨 입으며, 종교성이 강하고, 장사 수완이 좋다. 그래서 예전에 유대인이 미국 흑인 지역에서 하던 수퍼마켓과 세탁소, 의류사업, 가발 등을 그대로 이어서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한국인이 유대인과 비슷한 핏줄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인은 홍수 심판 이후 살아 남은 노아의 자손이다. 노아에게는 야벳,셈, 함의 세 아들이 있었는데, 한국인은 셈의 셋째 아들인 아르박삿- 살라 - 에벨 - 욕단의 후손들이 한국민족이다.

     

    셈의 아들들 엘람과 앗수르의 자손은 지금의 아라랏산 부근에 살다가 바벨탑 사건 이후 동방으로 이주한 것이다. 그래서 고조선에서는 신정국가로 하늘에 있는 유일신에게 단을 쌓고 제사를 드린 하나님을 믿는 국가였다. 그런데 한국의 고대사를 기록한 삼국유사나 삼국사기가 불교나 유교적인 입장에서 역사를 왜곡해 진실을 가려 버렸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진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사24:16 땅의 맨끝 지역에서부터 나오는 노래가 우리에게 들렸으니 곧 의로우신 분에게 영광을 돌리는 노래라

    사41:2 "누가 동쪽으로부터 의로운 사람을 일으키고 그를 불러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으며,

    사41:9 내가 땅끝에서부터 너를 데려오고 땅의 우두머리(돌모퉁이)들로부터 너를 불러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내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였으며 너를 버리지아니하였노라, 하였노라

    사 46:11 내가 동쪽에서 굶주린 새를 부르되 곧 먼 나라에서 나의 계획을 집행할 사람을 부르리라. 참으로 내가 그것을 말하였은즉 또한 그것을 이룰것이요. 내가 그것을 작정하였은즉 또한 그것을 행하리라.   

    사 55:5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한 민족을 네가 부를 것이요, 주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인하여 너를 알지 못하던 민족들이 네게로 달려오리니 그분께서 너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10:19 모세는 말하기를 내가 백성이 아닌 자들을 시켜 너희의 질투를 일으키며 어리석은 민족을 시켜 너희의 분노를 자아나게 하리라.

    20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이르기를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들이 나를 발견하였나니 내게 묻지 아니하던 자들에게 내가 나타났노라.

     

    1. 지능지수 높은 동아시아인

    ‘미국에 사는 백인들의 평균 지능지수(IQ)는 백(100)이고 동아시아인들의 평균치는 이보다 적게는 2∼3점, 많게는 10점이나 높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심리학자인 리처드 헤른슈타인 하버드대 교수가 명저 ‘종(鐘)모양의 곡선’에서 밝힌 말이다.

    세계 13세 어린이 수학 및 과학 경시대회에서 한국 어린이들은 보통 5등 안에 든다. 미국의 50개 주는 매년 최우수 고교졸업생 2명씩을 뽑는데 거의 매년 한국 학생이 여러명 포함된다. 미국에는 1만개가 넘는 고등학교가 있는데 많은 한국학생들이 수석졸업을 한다. 하버드대가 이들을 다 뽑는다면 주요학과는 한국인들로 가득 찰 것이라고 한다. 인종 쿼터 같은 것이 있어서 입학생 수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1960년대 한국은 아프리카의 가나와 비슷했는데 지금 1인당 소득 면에서 20배 이상 앞서게 된 것은 교육열 근면성 등에서 그만큼 앞서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민총생산(GNP)은 60년대 불과 몇 조원에서 지난해에는 515조원으로 늘었다. 최근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이 방콕에서 공동 개최한‘아시아경제의 장래’에 대한 회의에서 마이클 페어뱅크는 과거 30년간 한국인의 생산성 향상은 세계 제일이라고 했다. 

    우리 주위에는 엄청난 저력을 가진 한국인들이 수없이 많다. 수많은 한국인들은 개인적으로는 헤른슈타인 교수가 밝힌대로 백인들을 능가하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국가 차원에서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안타깝다.

     

    2. 노아의 자손들

    세상에 악이 관영하자 하나님은 B.C. 2458년에 물로 온 지구를 심판하셨고, 당시 의인이었던 노아의 가족 8명 만이 방주를 만들므로써 대홍수에서 유일하게 살아 남았다. 40일동안 주야로 비가 내려 164일동안 온 땅이 물에 잠겼고, 물이 빠진 후 방주는 아라랏산 정상에 정착했다. 지금도 그 홍수의 증거로 알프스나 히말라야 등의 고산지대에는 조개나 물고기의 화석이 발견되고 있다.

     

    노아는 아라랏산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고, 하나님은 노아 가족이 다산생육하고 번성하도록 축복하셨다. 노아의 아들 셈은 다섯 아들을 낳았고, 함은 네 아들을 낳았으며, 야벳은 일곱 아들을 낳았다. 셈의 자손들은 산 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주로 아라랏 산 중턱에 살았다. 함의 자손은 메소포타미아의 평원에 정착했고, 야벳의 자손은 주로 섬과 바닷가에 자리 잡았다.

     

    셈의 자손들 중 일부는 산에서 내려와 우르 지방으로 내려와서 인류 최초로 문명을 건설한 수메르족이라 불린다. 우리말에서 남자를 뜻하는 '사내' 또는 '사나이'는 말은 '산(아라랏 산)에서 내려온 사람'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수메르 사람은 인류 최초 기호로 발음과 뜻을 나타내는 '쐐기문자'를 만들었다.'수메르'라는 말이 '셈'에서 나온 것으로 학자들 사이에 인정되고 있고, 수메르어는 아담 때부터 있었던 언어로 추정된다.

    수메르어와 우리나라 말 사이에는 유사점도 많은데 우리말의 '길'이 수메르어로 'gir'이고, 우리말과 같이 님(nim)이란 존칭을 붙이며, 하늘을 'an-ur'이라고 하고, 아버지를 'abba', 자신의 아버지를

    'ab'라고 부른다. 한국어와 수메르어는 모두 교착어로 주격, 소유격, 목적격을 나타내는 조사가 있고, 문장 구조도 한국어와 같은  주어-목적어-동사 순이다.

    노아로부터 저주 받은 함의 장자인 '구스'의 가문에서 태어난 '니므롯'은 영웅적 사냥꾼으로 바벨탑 문명을 건설한 인물이다. 함의 둘째 아들 미스라임은 이집트 지역으로 가 피라믿을 건설하고 수 많은 우상신을 섬기는 신비주의 종교를 만들었다.함의 넷째 아들인 가나안은 장사꾼 기질이 있어서 그의 후손은 시돈과 두로 지역에 페니키아를 건설하고 무역을 번성시켰으며, 수 많은 우상 신을 만들어 내었다. 이로써 함의 자손들은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사탄의 삼위일체라고 할 수 있는 바빌론, 이집트, 페니키아 문명을 건설한다. 이 곳에서는 각각 '인본주의 문명', '신비주의 종교', '물질 만능주의'가 태동되어 이스라엘과 인류를 타락시켰다.

    페니키아 사람들은 장사에 도움이 되는 물질주의와 쾌락주의를 보급하기 위해 아스다롯이란 여신을 만들어 내었다. 페니키아 신전에서는 여신의 역할을 대신하는 여사제들이 쾌락을 선사하기 위해 돈을 받고 매춘을 했다. 이 가나안의 여신이 수메르 지역에 있는 셈의 자손들에게도 스며들어 '이난나'(Inanna) 여신이 되었다.수메르 사람들은 이와 같이 주변국의 영향을 받아 점차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신을 섬기며 타락하기 시작했다.


    3. 한민족의 원래 종교 

    우리 민족은 고조선 시대부터 유일신인 하늘님(하나님)을 믿던 민족이었다. 천신(天神)에게 제사를 드리던 제사장을 천군(天君)이라고 하는데 천군이 신격화되어 단군이 되었다. 삼국시대 이전을 기록한 역사서는 고려 말에 승려인 일연 김견명이 저술한 삼국유사(三國遺事)와 고려시대의 장군 김부식이 저술한 삼국사기(三國史記)가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는 자료의 수집과 편찬 의도가 불교의 전파에 있었다. 불교의 윤회설을 입증하기 위해 인간의 조상이 곰이었다는 근거 없는 설화를 끼워 넣으면서 역사를 왜곡했다. 그래서 삼국유사의 고조선 편에서는 환웅(하나님의 아들)이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주면서 굴 속에서 견디라고 했는데 곰이 21일동안 견뎌 여자가 되었으며, 여자는 사람으로 변한 환웅과 혼인해 단군 왕검이란 아들을 낳았다는 근거없는 신화를 만들었다.

     

    삼국사기는 고려 17대 왕인 인종 때에 김부식이 삼국시대에 대해 저술한 가장 오래된 역사책으로 이 삼국사기는 김부식이 신라중심으로 중화사상에 젖어 쓴 역사서로 신라의 역사적 사실이 과장된 부분이 많다. 삼국사기는 불교와 유교적 관점에서 저술해 고조선 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단군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다.

    그러나 김부식과 일연이 우리 민족의 참된 역사를 왜곡하였다고 해도 중국에 있는 우리민족에 관한 역사까지 변질시킬 수는 없었다. 중국의 고대사는 분명히 우리 민족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숭상한 경건한 민족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후한서에서 예전은: "시월이 되면 반드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말씀을 읽으며 밤에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데 이를 무천(無天)이라 합니다."

    삼국지에서 고구려는: "시월에는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성회가 있는데 이를 동맹이라 했다."

    삼국지에서 진한은: "성마다 한 사람을 세워 천신께 제사를 주관하게 했는데 이를 천군이라고  헸다."

     

    중국의 고대사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규원사화'에도 단군이 신단수(神檀樹) 아래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던 제사장이자 임금임을 밝히고 있다.1675년(숙종 2년)에 북애자(北崖子)가 저술한 '규원사화'는 일본의 우리 역사 말살 때에 많은 책이 몰수, 폐기되는 와중에 무애(無涯) 양주동(梁柱東) 선생이 감추어 두었던 것을 남창(南倉) 손진태(孫晋泰) 선생이 극비리에 필사(筆寫)하여 빛을 본 책이다.

    일제가 고조선의 역사를 말살하고 왜곡했지만 '규원사화'를 비롯한 많은 古書와 중국의 역사책에서 밝혀진 바로는 엄연히 단군조선이 있었고, ‘단군檀君’이란 말은 ‘박달(壇) 나라의 임금(君)’이란 뜻이었던 것이다. 단군조선은 47대 1,195년간 존속했고, 공자를 비롯한 많은 중국의 성현들도 우리나라(동이 東夷)를 흠모했다는 기록이있고, 동방삭東方朔(한 무제 때의 사람)은 당시의 우리 민족을 가리켜 ‘태연하게 앉아 서로 범하지 않고, 헐뜯지 않고, 사람에게 근심이 있으면 서로 구해 주어 선인(善人)이라고 했다’고 기록한 바가 있다.

    고조선 시대에는 한문이 없었는데 어떻게 단군이란 이름이 생겨났는지는 규원사화에 잘 나와 있다. 규원사화 단군기를 보면, '박달임검지역야(朴達壬儉之譯也)'라 해서, '단군(박달나라 임금)을 번역한 것'으로 되어있다. 박달이라는 말은 옛부터 백달이나 배달로도 불렀고, 나라의 우두머리는 임검이라 했다. 규원사화 단군기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신씨이강어단목지하 이환검신인(神氏已降於檀木之下 而桓儉神人 )'이라 해서 그 뜻을 살펴보면, '신씨천황께서 이미 박달나무 밑에 하강했고, 환검신인이 다시 단목 아래에서 임금의 자리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단(檀)으로써 나라이름을 삼은 것이며, 단군이란 단국의 임검이다'라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단군을 환검이라고 했는데, 이 환검이 왕검이나 임검으로 변한 것입니다. 내용 중에 환검신인, 즉 단군이 박달나무 밑에서 인민들로부터 추대되어 임검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자연히 박달이라는  나라 이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단군이라는 것은 박달나라의 임검이라는 의미가 된다.


    박달나라의 임검이란 뜻인 이 '박달 임검'은 계속 불려져 내려 오다가 약 2천년 후인 고구려 소수림왕 2년(서기 372년)에 불교가 들어올 때를 전후해서 한문이 들어왔습니다. 그 때 사가들이 역사를 한문으로 서술하다 보니까, '박달 임검'을 박달단(檀)자 임금군(君)자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그 때부터 단군으로 부르기 시작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즉 한문이 들어오기 전에는 단군이라는 용어는 없었다는 겁니다. 즉 한문으로 박달나라의 임검이란 뜻을 번역하다 보니까 단군으로 된 것입니다. 규원사화의 내용 중에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는 내용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저 하늘에 제사를 지내어 근본에 보답하는 의식은 단군으로부터 시작된 것인데, 후세의 역대 모든 나라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지 않음이 없었으니..."

    "단군이 이미 하늘에 제사 지내고, 교를 세워 백성을 다스리고, 도를 이뤄 행하게 한지 몇해 동안의 백성들이 모두 감화되어 악은 없어지고 천하는 잘 다스려지게 되었다." 이는 창세기에서 노아가 홍수 심판 후에 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과 같습니다.

    창세기 8:20 노아가 주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가운데서 취하여 제단에 번제를 드리더라.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드리고 백성들에게 교시하는 내용은 성경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 되는 신으로서 가장 높은 곳의 하나 되는 자리에 있도다.

    하늘과 땅을 시작하게 하고 모든 세계를 주재하며, 한 없는 사물을 만드시니, 가없이 넓고도 넓음에 감싸지 아니한 사물이 없으며, 신령스럽게 밝고도 밝음에 가녀린 티끌마져도 새지 아니한다. 하늘 본보기는 오직 하나요, 그 문은 둘이 아니니, 너는 오로지 정성을 순수하게 하고 너의 마음을 하나되게 한다면 이에 하늘로 향하리라. 너희 무리들아! 오직 하늘 본보기를 본받아 모든 선함을 돕고, 모든 악함을 소멸시키며, 본 바탕이 통하여 맡을 일을 온전케 하면 이에 하늘로 향하느니라."

    중국 고대사와 규원사화를 통해 우리 민족이 오래 전부터 하나님을 믿는 민족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외국에서 들어온 불교나 유교를 전통종교로 생각하고, 기독교를 서양종교로 인식하는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민족은 외래 종교인 불교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귀신이나 우상을 섬기지 않은 유일신을 믿는 민족이었습니다.

     

    4. 한민족의 기원 

    인본주의적 사학자들은 인류가 한 곳으로부터 전파되지 않고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났다는 병행발생설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여러 고고학적 증거를 놓고 볼 때 인류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생해 전 세계로 흩어졌음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이것을 뒷받침하는 말씀이 이다.

    그러므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 하였으니 이는 주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라. 주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창11:9)

     

    성경은 B.C 2357년경에 노아의 자손들이 하나님을 대적해 바벨탑을 쌓자 하나님이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해서 서로 알아 들을 수 없게 한 뒤 온 세상에 흩으셨다고 명시합니다. 국내 사학자들이 터키 아라랏산 지역으로부터 중앙 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만주에 이르는 여정을 탐사한 결과민족 이동과 관련된 여러 증거들을 찾아내게 되었습니다.

    그 지역에는 셈족의 특징인 환저형 토기와 생활용기가 발견되었고, 우리 말과 같은 SOV형 교착어를 사용하며, 아라랏 산에만 있는 흑요석 공구를 사용하고, 대홍수와 까마귀에 대한 설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사단의 일원이었던 중국의 이벤허 박사가 조사결과를 중국 북경 대학에 논문으로 제출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으므로 북경대학도 한 민족의 민족 이동설을 인정한 것입니다.

     

    대홍수는 B.C. 2458년에 일어났으며, 바벨탑 사건은 B.C 2357년에 일어났습니다. 고조선의 건국이 B.C. 2333년이므로 바벨탑 사건이 일어난지 불과 24년만에 만주에 도착한 것이 어려울 것 같지만 셈족이 이동이 자유로운 유목민이었고, 조사단이 볼가강 하류의 아조프 박물관에서 바퀴 달린 집을 발견함으로써 이동속도가 빨랐던 이유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강화도 마니산에는 단군의 왕검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쌓은 천재단이 있는데, 천제단의 방향이 서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서쪽에서 섬겼던 하나님께 경배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한국인 조상에 대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5. 단군(檀君)은 노아의 아들 셈의 5대손인 욕단이다.

    아시아의 서쪽 끝 지방에서 시작된 기독교가 주장하는 사상과 철학이 아시아의 동쪽 끝에서 출발한 고조선의 개국정신과 토씨 하나까지 동일하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서쪽에서 살던 사람들이 동쪽으로 이민을 가서 자기들의 나라를 세웠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세계적으로 김치는 한반도의 한인들만 먹고 사는 것으로 아는데 미국에도 김치를 먹고 사는 사람이 있다니 이것이 어찌된 사실이냐 물으면 한국에서부터 김치를 먹고 살았던 사람들이 미국에 와서도 여전히 김치를 먹고 사는 것이라고 해명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그렇게 같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위에서 말했듯이 17세기에 저술된 규원사화(揆園史話)라는 책에 소개가 되어 있는데 이 책은 단군조선의 역사를 기록한 것으로 숙종 1년인 1675년에 북애자(北崖子)가 저술한 것이다. 저자가 당시의 고기(古記)를 자료로 삼아 쓴 것인데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 그리고 삼국시대의 왕들의 관한 이야기와 종교행사에 대한 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특히 조선조의 세조가 동국통감을 편찬하면서 근 20여종의 고서를 어명으로 수집해서 궁중에 보관한 일이 있었는데 이 규원사화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이는 이 책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말이다. 이 규원사회에 8조 금법(禁法)의 여덟 가지가 고조선의 종교와 신앙이 무엇인지 알려 주는 것이다. 그것은 놀랍게도 고대 한국인들이 유일신(唯一神) 하나님을 섬겼던 것인데 그 하나님이 바로 오늘 날 우리 기독교가 말하는 유일하신 주 하나님이신 것이다. 이상의 8가지 법조문을 단군팔조(檀君八條)의 교령(敎令)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법조문들이 구약성경 출애급기 20장 17절에 있는 십계명의 내용과 거의 같은 것이다. 두가지가 없는 것은 생각건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돌판으로 된 십계를 받기 전에 고조선을 개국한 분들은 아시아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미 이주를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8조 금법이나 십계명에서 가장 핵심조항은 제 1조문과 제 2조문인데 그 내용은 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것과 너희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을 정성을 다해 순수하게 섬기라는 것이다. 이는 두 법조문의 핵심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이다.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감히 동방으로 이주를 했는가? 또 그 사실을 무엇으로 증명할 것인가?

    구약 성경 창세기는 모든 인류와 우주의 시작과 기원을 기록한 책이다. 모든 인종의 시작, 모든 나라의 시작, 모든 역사의 시작 그리고 모든 문화의 시작이 다 이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으며 앞으로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그 사실은 더욱 더 명명백백 해질 것이다. 우리는 각 민족의 역사와 기원의 사실을 창세기 9장과 10장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 그러면 우리 민족의 기원은 어떻게 될까?

    짐작컨대, 우리 한민족은 노아의 아들이며 황인종의 시조가 되는 셈의 고손자이자 4대손인 에벨의 자손으로 이어지는 천손계보(天孫系譜)의 적통(嫡統)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에벨은 두 아들을 두었는데 한사람의 이름은 벨렉이다. 벨렉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세계가 펼쳐진 것이고 또 다른 형제의 이름은 욕단인데 바로 이 욕단이 동방으로 이주를 하여 고조선을 개국한 단군임금으로 보는 것이다.

    넓게 생각한다면 하나님은 에벨을 통해 이어진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을 통해서 인류역사의 전반기를 섭리하셨다면 이제 하나님은 욕단으로 이어지는 동이족 즉 대한국인을 통해서 인류의 후반기 역사를 마무리 하신다는 사실이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 대한국인을 동방의 고요한 나라요 은둔의 나라로 한적한 곳에서 비교적 순수한 혈통과 정신을 가진 종족으로 쓰시려고 보호하신 것이다.왜냐하면 미국에서 중국인들은 두셋이 모이면 식당을 열고 일본사람들은 회사를 연다는데 우리는 두 세가구가 모이면 우선 교회부터 시작하고 학교를 여는 것은 보통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천손의 혈통이 아니면 도대체 할 수 없는 신앙적인 거사를 매우 쉽게 저지르는 것이 바로 다 이런 연유 때문이아니겠는가. 그런데 우리 민족이 주 하나님 유일 신앙을 잊어 버렸기 때문에 그동안 숱한 민족적인 고난을 당한 것이다. 우리 민족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함을 받은 민족이요 하나님의 마지막 섭리와 경륜을 이루시는데 동반자로 택정함을 받은 선민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민족을 연단시킨 것이다.

    지금 전세계를 요동치게 만드는 이른 바 한류(韓流)란 무엇인가?
    전세계가 한국인을 사랑하고 흠모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대역사인 것이다.
    주연은 한국의 선남선녀들이지만 그 연출은 바로 우주를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며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이다.
    가난하지만 평화와 인자를 사랑하는 족속, 개국 이래 단 한 번도 타 민족을 침략하지 않은 민족, 여러 가지 흠결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쓰시려고 남겨 둔 민족이 바로 우리 동이족이요 단군의 후손들인 대한민국인 것이며 그 대한민국의 조상이라고 불렀던 단군은 성경에 나오는 욕단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욕단은 누구인가? 창세기 10:30

    예수원의 설립자 대천덕 신부님은 ‘우리와 하나님’이란 책에서 욕단이 단군이 아닌가 추정해 볼 수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그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창세기 10:25에 ‘에벨’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그에게는 ‘벨렉’과 ‘욕단이라는 두 아들이 있 었습니다. ‘벨렉’이란 이름의 의미는  ‘나뉘어진다’는 뜻으로 그는 아브라함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아우 ‘욕단’은 알모닷, 셀렙 등 13아들들의 조상이 되고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지로 갔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동방의 산지대로 갔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셈의 족속들이기 때문에 동방 사람들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욕단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하여 욕단이 혹 단군이 아닌가 추측해 볼 수도 있습니다. 정확한 계산은 할 수 없지 만 단군의 시대와 욕단의 시대가 비슷한 연대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추측은 옳았습니다. 우리 민족사를 시작한 단군은 바로 성경상의 욕단이었습니다. 여기에서 그 타당한 근거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단군 칭호의 의미와 유래

    한국인의 선조인 욕단의 족속은 신적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생래적으로 타고난 특별한 천성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곧 밝고 환한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섬 기는 하나님이 밝고 환한 천국에서 빛 가운데 계시는 빛의 근원이신 분이기 때문이셨습니다. 그 리하여 욕단 족속은 빛이 시작되는 땅인 ‘새 밝나라’ 곧 ‘새발’을 찾아가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밝고 환한 땅을 찾아가 온 백성이 밝고 환한 흰옷을 입고서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제사하며 삶을 영위하는 신시(神市), 곧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소망했습니다.  참으로 그것은 오직 천손민족 만 품을 수 있는 비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욕단은 광명의 본원지인 ‘밝의 땅’을 찾아서 아침에 뜨는 해를 따라 ‘알이랑 고개’를 넘어 쉬지 않고 동쪽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동해에 해 떠오르는 땅, 동방의 밝은 땅 끝 에 당도하여 아시아 동녘에서 가장(한) 높고 밝은 산인 한 밝산(태백산-백두산)과 그 변두리를 근거지로 하여 밝달 나라(배달나라)를 세워 우리 밝달겨레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그 때에 사람 들은 욕단을 ‘밝달임금’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욕단은 사람들을 밝의 땅, 동방의 땅 끝 으로 이끌고 온 밝달족의 우두머리였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욕단을 단군이라고 단정짓게 하는 결정적 단서입니다.

    ‘단군’이라는 칭호는 밝달 임금의 한자 표기식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단군이라는 칭호는 그 이름 자체에 이 인물의 성격이 어느 정도 집약적으로 반영되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따라 서 단군의 정체를 밝히는데 ‘단군’이라는 칭호가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그러므로 단군 칭호의 의미와 유래가 무엇인지를 해명해야 하겠습니다. 단군칭호의 의미와 유래라고 할 때에는 한자로 표현된 ‘단군’의 본래 우리말이 어떤 것이며, 그 우리말의 본질적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어원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를 주로 논의되어야 할 것입니다. 

    먼저 ‘단군(檀君)’의 ‘군’은 ‘임금’을 표현하는 우리말의 한자의역에 불과하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여기서 ‘단 임금’이 됩니다. 그리고 ‘단(檀’)자의 의미는 삼국유사에서 인용된 ‘고기’에서 ‘제단 단’ ‘壇’자로 쓴 외에 그 밖의 단군설화에서는 모두 박달나무 단(檀)자를 썼습니다. 삼국유사 정 덕본 이전의 조선왕조 초기의 다른 여러 책들에서는 단군에 대해서 전하면서 박달나무 단자를 썼습니다.  박달나무 단자는 그 자체만으로 ‘나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설화 에서는 ‘단’자 밑에 또 나무 수(樹)자를 덧붙여 ‘나무’라는 말을 겹말로 중복시킨 것이 나옵니다. 바로 신단수 (神壇樹)입니다. 이것은 원래 설화에 있었던 박달나무란 말의 ‘’박달 만을 ‘단’’자로 나무’ 를 ‘수’ 자로 의역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이처럼 ‘단군’의 ‘단’자가 우리말의 ‘박달’을 의 미하는 것이라면 단군은 ‘박달임금’이라는 말입니다.  ‘박달’의 ‘달’은 ‘아사달’ 할 때의 그 ‘달’인 데  땅이라는 말입니다. ‘박달’의 ‘박’은 밝과 통합니다. 오늘날에도 일상회화에서 ‘밝’의 바침 ‘ㄹ’이 생략되어 ‘밝다’가 ‘박다’로 발음됩니다.

    이것은 우리 말에서 겹자음 받침을 가진 경우 앞의 겹자음 하나가 발음되지 않는 것이 하나의 음 운법칙으로 되는 것과 관련됩니다. 예를 들면 젊다는 점다, 밝다는 박다, 읊다는 읖다.  밟다는 밥다입니다. 이로서 박달의 박이 밝다의 밝과 통하며, 그에 따라 ‘박달’을 ‘밝달’로 볼 수 있습니 다. 그러므로 단군은 밝달임금이라는 말입니다. 밝달은 밝은 땅이라는 뜻입니다. 즉 단군은 밝은 땅 의 임금 곧 배달임금이란 글자입니다. 밝달족 임금의 이두식 표현이 단군이라는 칭호인 것입 니다. 단군은 ‘밝달임금’ 또는’ 배달임금’ 등으로 구전되어 내려오던 우리 동방(조선) 고유의 호 칭 이었습니다. 이 토박이 말을 후세에 한자로 의역하여 박달 단, 임금 군이라고 표기하여 놓았 기 때문에 비로소 ‘단군’이라는 칭호와 발음이 생겨난 것입니다. 따라서 단군이라는 뜻을 가진 보통 명사입니다. 따라서 ‘단군’은 한 사람이 아니고 그 자리를 이어 받은 후손들 모두가 단군 이라고 불리어 왔습니다.

    삼국유사에서는 단군 한 사람이 천년 간 고조선을 통치한 것으로 잘 못 기록했기에 후세의 우리 들이 한 사람의 이름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계림유사(鷄林類事)란 책에선 말하기를 ‘밝달(檀) 은 배달(倍達)이요, 국(國)은 나라(那羅)요 군(君)은 임금이다.’하였습니다. 와유록(臥遊錄)이란 책에서 말하기를 ‘한밝산’은 세속에서 박달이라 일컫는데, 세상에서 밝달임금이 내려오신 땅이 라 이른다.’했습니다. 신단실기(神檀實記)란 책에서는 ‘밝달임금’ 때에는 사람들이 ‘밝달’을 ‘배 달’ 이라 하였는데 지금은 음이 구을러 ‘박달’이 되었다’했습니다.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는 ‘배 달’은 나라 이름이기 때문에 그 자손들은 모두 배달임금(단군)이라 한다.’하였고, 동국여지승람 에선 ‘단군이란 일컬음은 곧 배달나라 임금의 칭호인 까닭에 그 나라를 잇는 임금들을 모두 ‘단 군’ 이라 일컫는다.’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때까지의 고찰로써 성경상의 한국인의 조상 ‘욕단’이 다름 아닌 민족시조 ‘단 군’이라고 충분히 단정할 수 있습니다. 욕단이 홍수 후 알이랑 고개를 넘어 사람들을 이 동방의 땅 끝 ‘밝의 땅’으로 인도해 온 우리 밝달겨레의 조상이라면 사람들은 그를 부르기를 분명히 ‘밝 달의 임금’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단군의 정체를 정확히 해명하는 작업은 학계에선 난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안다면 그것은 절대로 어려운 과제가 아닙니다. 우리 아이랑 민족 배달 겨레의 조상 단군은 성경상의 욕단입니다. 사실은 단군의 시대와 욕단의 시대가 같다는 것에서 더욱 더 설득력을 얻습니다.

    둘째로 단군의 시대와 욕단의 시대

    조선의 건국은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최초로 등장합니다.《삼국유사》에는 ‘단군이 요임금 즉위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연은 요임금은 무진년에 즉위하였으므로 즉위 50년은 정사년이 되므로 정확한 시기 가 의심스럽다는 주석을 함께 실었습니다. 《동국통감》〈외기〉에는 “동방은 애초에 군장이 없었는데 신인(神人)이 박달나무 아래로 내려오니 나라 사람들이 임금으로 모셔 ‘단군’이라 하 고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으니 요 임금 무진년이다. 처음엔 평양에 도읍하였고 나중엔 백악으로 옮겼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왕운기》 역시 건국 연도를 무진년으로 기록하고 있고, 국사편찬 위원회는 삼국유사를 근거로 단군 조선의 설립을 기원전 2333년으로 보고 있고 현행 대한 민국의 국사 교과서들 역시 이를 바탕으로 기원전 2333년을 단군 조선의 건국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 2007년 교육부는 최근의 청동기 유물 발굴 결과 《삼국유사》의 건국 기록이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부합한다고 보고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고 한다’라는 기술을 ' ~ 건국 하였다'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주전 2333년인 단군기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습니 다. 왜냐하면 실제 단군의 조선 건국 연대는 그보다 더 앞선 연대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북한의 역사학계에서는 단군에 의한 조선 건국 연대를 기원전 3000년까지 소급해서 보고 있 습니다. 일부에서는 단군의 즉위 원년의 절대 연대는 사실로서의 의미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삼국유사 등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단군이 요와 동시에 즉위해 나라를 건국했다는데 의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요와 순은 이상적인 나라를 건국했다는 인물의 대명사격입니다. 

    특히 요는 공자가 성군으로 추앙하는 인물입니다. 바로 그런 요임금과 단군이 동시대에 즉위해 조선을 건국했다는, 즉 우리 나라가 지나(중국)와 대등한 시기에 건국된 유구한 역사를 지닌 나 라라는 것을 알리려는데 그 의의가 있다는 것입니다. 단군의 즉위 연대는 그 절대연대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내세우고자 했던 의식세계를 이해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 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현재 통용되고 있는 주전 2333년인 단군기원이 성경상의 욕단 의 연대와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인류의 조상 아담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기 까지 모든 연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역추적하여 계산해 보면 아담이 에덴에서 쫓겨난 때의 주전 원년은 4114년입니다. 그리고 노아 홍수 후 노아가 죽은 때는 BC 2458년입니다. 셈의 증손자 에벨은 BC 2391년에 태어나 BC 2357년에 욕단의 형제인 벨렉을 낳고 BC 1927 년까지 살았습니다. 벨렉은 239세를 향수했습니다. 그 때는 BC 2118년입니다.  BC 2118 년 과 BC 2333년과는 215년 차이가 있습니다. 이 성경 연대는 성경 연구가에 따라 계산이 조금 씩 차이가 있습니다. 4천년의 역사에서 215년은 비교적 근사한 차이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정 확 무오한 연대 산출이 아니라 욕단의 연대가 바로 단군시대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백두산 산정에서 창조주 하나님께 제천의식을 거행하고 조선을 건국한 단군이 성경상의 욕단이라는 것을 뒷받침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욕단이 조선을 건국했다는 사실은 조선이라는 국명에서 드러납니다. ‘조선’이라는 국호는 원래 ‘주신’이라는 순수한 우리말 의 지나(중국)식 표현입니다. 한국인의 조상인 욕단은 그가 도달한 시베리아와 만주 대륙에 이르 는 더 넑은 동방의 새 땅을 하나님이 ‘주신’ 땅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주신’이라고 했는데 후일에 주신이라는 말의 옛 음이 지나의 옛 글에 식신(息愼), 숙신(肅愼), 직신(稷愼), 주신(州愼),  조신(鳥愼), 조선(朝鮮)등으로 다양하게 표기된 것입니다. 

    한 민족 최초의 나라이름인 ‘조선’의 본뜻은 ‘주신’이라는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주신 ‘조선’으로써 하나님이 ‘주신 땅’이라는 것입니다. 흔히 아침 조, ‘빛날 선’해서 이른 단어 때문에 ‘아침 해가 빛난다’라는 뜻에서 조선이라는 국호가 생겼다 하나 조선이라는 국호는 한자가 생기기 전에 이미 있던 국호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조선이라는 말은 우리의 고대어로 무엇을 뜻하였겠습니까? 

    일찍이 단체 신채호는 조선의 어원은 숙신((肅愼)이라고 하고,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에서는 숙신의 옛 이름을 ‘주신(珠申)’이라 하고, 주신은 소속관경을 가리키는 만주 말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지금의 말로 일정한 지역의 땅, 영토를 의미합니다. 바로 여기에 조선의 원의가 있습니다. 즉 ‘주신’이 이 ‘숙신’의 어원이요, 조선의 어원이긴 한데 우리가 사는 땅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살라고 ‘주신(賜)’ 땅이라는 ‘주신’인 것입니다. 그리고 욕단은 조선을 건국한 역사적인 그 날을 ‘하늘 문이 열렸다’는 뜻의 ‘개천(開天)’이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욕단이 조선을 건국하기 전 먼 저 백두 산 산정에서 하나님께 단을 쌓고 경건히 천제를 드렸을 때 아라랏 산정의 노아의 제사 에서 하늘 문을 여시고 응답하신 하나님께서 욕단의 제사를 열납 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나라를 세운 건국일을 개천(開天) 즉 ‘하늘이 열렸다’고 했을 것입니다.

    셋째로 한국인의 조상 단군

    창세기 10;2에 백인종의 조상인 야벳의 아들들 가운데 두발과 메섹이라는 인명이 나옵니다. 서 구 성경학자들이 쓴 주석책들을 보면 오늘날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라는 지명은 메섹에서 유 래했다고 설명합니다. 메섹이라는 사람이 그곳에 가서 정착했기에 그의 이름이 지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랄산맥 동쪽에는 토블스크라는 지방이 있는데 그것 또한 야벳의 아들 두발 에서 유래한 지명이라고 설명합니다. 그것은 두발이라는 사람이 그곳에 가서 살았기에 그의 이 름을 따서 지명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서양의 주석가들이 무슨 타임머신을 타고 그 당시의 모스크바나 토블스크로 가서 메섹과 두발을 만나고 온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어떤 고고학적 유물이나 문헌 상의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메섹은 모스크바, 두발은 코블스크와 발 음이 유사하기 때문에 그렇게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연구 결과에 대해 믿을 수 없다고 악착같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 니다. 대부분 그대로 수용합니다. 왜냐하면 그럴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역사적 인물인 욕단이 ‘알이랄’고개를 넘어 동방으로 와서 밝달나라를 세운 밝달족의 우두머리 였는데 그가 단군이었다고 단정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더욱 욕단의 목적지 스발은 광명의 본원지인 새밝나라요 또한 서울과 같은 말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이라는 명사의 유래와 그 의미에 대해서 알아 보기로 하겠습니다. 서울이 한국의 수도라는 사실 은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서울’이라는 이름의 어원이 어떤 말인지 그 뜻을 무엇인지를 아는 사 람은 많지 않습니다.

    ‘서울’이라는 말은 바로 ‘새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새발’의 ‘새’는 ‘싀, 스, 시’등으로  쓰였고, 오늘날엔 ‘새, 스, 시’등으로 쓰입니다. 그리고 ‘발’은 ‘발-울’로 변했습니다. ㅂ-ㅂ.ㅇ-ㅇ’의 음운 전변에 의해서 ‘불-ㅂㅇ.ㄹ-울’로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시블’은 현대어 ‘서울’에 까지 이르렀 습니다. 즉 ‘서울’이라는 말의 시작은 ‘시블’이었습니다. ‘시, 싀, 스, 시’는 새롭다이며, ‘블 불’은 ‘밝’에서 출발된 말이니 ‘서울’이라는 말 역시 ‘새로운 땅’,좀더 자세히 말하면, ‘밝고 새로운 나라 (땅)’이라는 뜻입니다. 즉 ‘서울’은 ‘새밝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시적 지명인 ‘새팔(시블) 은 또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기도 합니다. 시블-시불-셔울-서울로 바뀐 것이 한국의 수도 ‘서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서울’이라는 말의 어원이 ‘시블’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수도는 국가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이라는 명사는 보통명사이기 때 문에 수도를 다른 지방으로 옮겨도 ‘시발’은 여전히 ‘서울’로 간주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이렇게 동방으로 간 욕단계 선민이 누구인지 오늘날 우리들이 분명히 알 수 있도록 성경에 분명히 단서를 남겨 두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또 하나의 선민인 욕단의 후손은 어느 땅에 있는 누구입니까? 그 존귀 한 백성은 바로 극동의 한국인입니다. 욕단의 목적지 ‘세팔’은 한 민족의 역사의 고향 ‘시블= 새 벌 =새 밝은 곳=배달이며, 또한 대한민국의 상징인 ‘서울’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알이랑 민족 한국인이 욕단계 선민이라는 사실은 그 증거가 아주 명확하여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따라서 욕단이 단군이라는 것도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역사적 인물 욕단이 알이랑(하나님과 함께) 고개 (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을 넘어 동방으로 와서 밝달나라를 세운 밝달족의 우두머리 였는데 그가 단군인 것입니다. 단군이란 밝달임금의 한자식 표현입니다. 욕단의 목적지 ‘스발’은 광명의 본원지인 새밝나라요 또한 ‘서울’과 같은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욕단의 시대와 단군의 시대가 같습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단군이 선포했던 ‘8조금법’이라는 배달나라 국법이 있었는데 ‘규원사화’에 의하면 제 1조가 ‘너희는 한 분이신 하나님을 정성을 다해 순수하게 섬기라’이며,  제 2조는 ‘너 희는 부모를 공경하라. 너희 어버이는 하늘에서부터 온 것이니, 너희의 어버이를 공경하면 이는 능히 하늘을 공경하는 것이니라.’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로 부터 받 은 십계명의 제 1계명과 5계명과 같은 것입니다.  단군이 ‘알이랑 정신’ 곧 ‘하나님 중심 사상’ 과 ‘신본주의 정신’의 소유자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이 ‘8조 검법’을 대했을 때에 세상 사람들이나 세속 사학자들은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성경중심으로 생각 하게 됩니다. 우리 배달겨레의 조상 단군은 대홍수 후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유일신 신 앙을 갖고서 알이랑 고개를 넘어 동방으로 천동한 하나님의 사람 ‘욕단’이었다고 더더욱 단정하 지 않을 수 없습니다.

    셈의 셋째 아들 아르박삿의 손자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은 우리 민족사를 시작한 한국인의 조상 단군이십니다. 한국인의 기원은 셈의 가계, 그 중에서도 약 4300(BC 2333+AD 2000) 전에 동  양으로 이주하여 우리 배달 동이겨레의 선조가 된 욕단의 후손, 곧 단군의 자손입니다. 동방의 한국인은 하나님께서 감추어 놓으신 또 하나의 하나님의 선민인 것입니다. 에벨의 혈통인 욕단 의 후손은 선택 받은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이 단군설화에 나오는 천손 강림의 모티브가 된 것입니다. 우리 한국인의 계보가 셈-아르박삿-셀라-에벨-벨렉과 욕단으로 이어지는 ‘천손민족’이라는 사실이 설화에 반영된 것입니다. 단군은 신화의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동방 ‘밝의 땅’에 당도하자 맨 먼저 백두산 산정에 올라 창조주 하나님께 천제를 드리고 조 선을 건국한 역사적 인물입니다. 성경상의 한국인의 기원은 노아의 작은 아들 셈의 현손 욕단, 즉 단군입니다. 

    결론
    대천덕신부님의 글로 시작했기에 그분이 ‘기독교는 오늘을 위한 것’이란  책의 한 내용을 가지고 말을 마치려고 합니다. ‘내가 보기엔 한국은 자신의 참 모습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 흡사 기억 상실증 환자와 같은 인상을 준다. 만일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한국 백성에 게 공동의 선에 기여할 수 있도록 어떤 특별한 역할을 부여하셨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러 니 만큼 한국인으로서의 가장 긴급한 과제는 스스로를 재발견하고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 일 이다’했습니다. 그가 무엇을 염두에 두고 ‘한국은 자신의 참 모습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 흡사 기억상실증 환자와 같은 인상을 준다.’라는 말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인은 자신이 누구인 지를 모릅니다. 실제로 한국인은 자신의 참 모습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토레이 신부의 말과 같이 스스로를 발견하고 본연의 모습을 속히 회복해야 할 백성이 바로 우리 한민족입니다.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 기록된 계시인 성경에 의하면 한국인은 천손민족, 즉 하나님의 택함 받은 선민 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한국인의 참 모습이며 우리 겨레가 회복해야 할 본연의 모습입니다. 한국인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당신의 특별하신 목적을 위해 사용하시고자 일찍 이 택하시고 감추어 놓으신 또 하나의 선민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유대민족은 복 음의 첫 주자로 사용되었습니다. 우리 한 민족은 복음의 마지막 주자로 쓰임 받을 것입니다.  예 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의 재림을 재촉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첫째는 선교적인 차원에서 말씀하신 마태복음 24:14에서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 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라.’하신 말씀이요 둘째는 유대인의 구원에 대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마태 복음 23:39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 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지 못하고 배척하여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는데 그들이 예수님 을 메시야로 믿고 영접하여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하고 환영할 때까지 오시지 않겠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바울사도는 로마서 11:25에서 이스라엘이 완악한 대로 내버려 두신 것은 이 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라 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11:14에서 이스라엘로 시기케 해서 그들을 구원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서양기독교는 유대인들을 핍박, 박해 살륙 했기에 유대인들의 시기의 대상이 아니라 혐오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서양 기 독교인들이 전하는 복음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시기의 대상이 될 민족은 그들의 조상 벨렉의 형제인 욕단의 후손인 한국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의 마지막 주자의 임무인 것 입니다.

    왜 유대인들이 한국민을 시기하게 됩니까?
    자신들만 천손민족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한국인도 천손민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들이 배척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그들에게 나 타난 동방의 천손민족 한국인이 전하는 복음을 그들이 시기심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의 마지막 주자임을 깨닫고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 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한국민은 욕 단의 후예로서 욕단이 가진 하나님 중심 사상으로 무장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잃 어버린 고대역사를 복원해야 할 것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미국 하버드 교수가 한국에서 밝혀낸 한자의 충격적 진실!
    동이족이 만든 한자에 성경 내용이 담겨있다? 학계가 발칵!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아르박삿 후손 벨렉과 욕단 미스터리
    - 욕단과 단이 우리 한민족 조상?

    노아 후손들은 어디로 갔을까?


    바벨탑, Pieter Bruegel the Elder, 1563, /출처 위키피디아

    아브라함의 조상 벨렉과 바벨탑 사건

    성경은 에벨(Eber)의 후손 벨렉-르우-나홀-데라-아브람으로 이어지는 족보를 통해 아브라함의 직계 조상들의 이름을 소개하고 있다(창 11:16~26; 대상 1:19-25; 눅 3:35).
    이 가운데 벨렉의 때에 세상이 나누어졌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다(창 10:25; 대상 1:19). 오직 성경 계시에서만 확인이 되는 자료다. 즉 바벨탑 사건 이전 인류는 구음(口音)이 하나요 언어도 하나였다(창 11:1,2).

    그렇다면 홍수 이전 인류는 어떤 언어를 사용하였으며 홍수 이후 최초 언어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비알파벳) 문자(쐐기 문자와 상형문자)가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주로 고대 셈어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고 예측할 수 있다. 언어의 혼잡이 일어난 바벨탑이 위치한 곳도 이곳 메소포타미아 지방이었다.

    그 셈어 가운데 주로 히브리어에 태초 언어의 원형이 많이 남아있을 것이다. 히브리인들이야말로 최초 문자 탄생지였던 애굽(상형문자)과 메소포타미아(쐐기문자) 문명을 모두 체험한 세계 유일 민족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고유 명사 등 특정한 언어자료에 있어 홍수 이전 언어와 홍수 이후 바벨탑 사건 이후 흩어진 언어 사이의 변동 폭은 그다지 크지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말 혈통이 신라어-> 고려어-> 조선어-> 현대 국어로 계승된 이유로 오늘날 문장 파악이 어려운 부여·고구려어나 백제어들을 추적하는 사학자들이 당시의 벼슬 이름이나 왕과 귀족들에 대한 칭호와 이름, 성씨, 지명, 숫자 개념들에서 그 흔적을 추적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이 태초 언어의 원형은 언제나 회복될 수 있을까? 성경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때 일어난 놀라운 언어 통합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어떤 암시와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바벨탑 사건 이후 인류가 온 땅으로 흩어진 때를 성경은 벨렉 시대부터 였다고 알리고 있다(창 11:8-9).

    비옥한 초승달 지대, /출처 위키피디아

    벨렉 시대 이후 인간은 빠르게 세속화되었다. 사람들은 홍수 교훈을 쉽게 잊어버렸으며 참 하나님보다 하나님의 피조 세계와 그 양상을 섬기기 시작했다. 신은 어느새 인간의 모습으로 대치되었으며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과 세상의 중심에서 배제되었다. 이렇게 에덴동산 추방 이후에도 사단의 미혹이 은밀하고 지속적이라는 것을 인간은 간과하였다.

    이때 영육 간에 남보다 뛰어났던 함족 니므롯은 영웅이 되었고 초대 지도자가 되었다. 세속화된 지도자를 중심으로 멋지고 거대한 탑이 구상되었다. 탑은 영적이면서도 문화적이며 어떤 홍수도 이겨낼 만한 견고한 당대 최신 과학이 동원된 건축물이었다. 강림하신 하나님은 이 바벨탑을 보시고 사람을 모두 흩으셨다(창 11:5-9). 하나님이 사람을 흩으신 방법은 바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신 방식이었다. 홍수 이전 언어의 원형은 셈의 일부 후손들에게만 남겨 졌으며 언어는 다양해졌다. 인류는 그 흩어진 언어를 따라 민족과 나라를 구성하면서 온 세계로 흩어졌다.

    아브라함 조상 벨렉보다 번성한 욕단의 후손들

    벨렉이 30세에 낳은 아들 르우는 아브라함과 예수님의 선조였다(창 11: 18-21; 대상 1:25; 눅 3:35). 반면에 에벨의 다른 아들인 욕단(Joktan)은 13명의 아들들이 있었다(창세기 10:26~30). 알모닷, 셀렙, 하살마웻, 예라, 하도람, 우살, 디글라, 오발, 아비마엘, 스바, 오빌, 하윌라, 요밥이 그들이다. 이들이 사는 땅은 메사(Mesha)에서 동쪽 산간 지역 스발까지 였다.

    이들 종족이 지금의 어느 민족을 말하고 이들이 거주하던 지역이 현재의 어디를 말하는 지 명확히 밝히는 것은 어려우나 성경은 이들이 종족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별로 흩어져 살았다고 했다(창 10:31). 금으로 유명한 오빌과 사베안족과 연관된 스바의 지명을 참고할 때 많은 학자들은 이들이 아마도 오늘날 아라비아 땅에 주로 정착했다고 본다.

    성경이 벨렉의 후손들과 달리 욕단의 후손들 이름을 이렇게 상세하게 거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경은 분명 욕단의 형 벨렉도 르우 말고도 많은 자녀를 낳았음을 우리들에게 알려준다(창 11:18-19). 239세를 살았던 벨렉은 아마 조상인 셈-아르박삿-에벨처럼 지금의 우리들보다 훨씬 많은 자녀들을 양육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성경은 르우 이외 벨렉의 자녀들 이름은 생략하고 동생인 욕단의 자녀들만을 소개하고 있는 걸까? 그 구체적 진실은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창세기 기자가 성경을 기록할 당시 욕단의 자녀들은 벨렉의 다른 자녀들과 달리 많은 이들에게 익히 알려진 족속이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12지파의 모자이크. 예루살렘 Givat Mordechai Etz Yosef 회당 외관, 맨 위 줄 오른쪽에서 왼쪽: 르우벤, 유다, 단, 아셀 중간: 시므온, 잇사갈, 납달리, 요셉, 단지파의 상징은 저울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우리 민족이 셈족 욕단, 단 후손?

    우리 민족을 셈족으로 비정하는 주장에는 세 줄기가 있다.

    먼저 심정적으로 막연히 셈족으로 보는 경우이다. 아시아인인 이스라엘 민족이 셈족이요 한때 페르시아제국을 이루었던 오늘날 이란의 조상인 엘람족이 셈족이요 지금의 이라크 땅의 주인이었던 대제국 앗수르의 주인공도 셈족이므로 같은 아시아 민족인 우리 민족도 당연히 셈족일 거라고 여기는 심정적 셈족설이 있다. 하지만 이 주장에는 어떠한 성경적, 인종학적 결정적 증거가 전혀 없다. 오히려 창조과학자 헨리 모리스는 우리 한 민족을 함족으로 비정한다. 물론 이것도 성경적 근거가 있는 주장은 아니다.

    두 번째는 이스라엘의 단 지파를 우리 민족의 조상이라고 보는 주장이다. 이 견해는 “단군”과 “단”지파의 언어적 유사성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단 지파의 오랜 무대는 가나안 땅이었다. 야곱의 다섯 번째 아들이요 야곱 아내 라헬의 종 빌하가 낳은 첫 번째 아들이 단이었다. 출애굽 시 성막 제조를 도왔던 아히시막의 아들 오홀리압(출 31: 6)이 단 지파였으며, 사사 삼손도 단 지파였다(참조: 삿 13-16장). 야곱의 축복 예언 가운데 단은 독사로 말의 발굽을 물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다(창 49:16-17). 이 예언을 통해 단 지파는 싸움에 능하고 싸움에 직면할 처지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모세는 단을 ‘바산에서 뛰어 나오는 강한 사자 새끼’(신 33:22)라고 묘사하고 있다. 이 예언처럼 단 지파는 요단강 동편에 있는 바산 부근의 한 지역을 점령하였다.

    처음 단 지파는 유다와 에브라임과 베냐민 사이의 한 지역과 해안 평야 지대를 분배 받았다. 가나안 정착 이후 왕국 시대 이전까지 단 지파는 이렇게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있었다(수 19:40-47). 이렇게 야고보가 모세의 예언대로 단 지파는 늘 블레셋과 아모리 족속과 충돌하면서 전쟁에 노출된 지파로 살게 되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보면 이스라엘의 12 지파 가운데 오직 단 지파만이 하나님의 종들 144,000명의 명단에서 누락된 것을 볼 수 있다(계 7:4-8). 단 지파는 여로보암 왕 시절 우상 숭배에 열심이었던 지파였다(왕상 12:29). 단 지파는 에브라임 중심의 북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도 우상의 미혹을 뿌리치지 못한 지파가 되었다. 에브라임 중심의 북 10개 지파가 사마리아인으로 변질되어 가는 과정에서 단 지파는 더욱 하나님 눈 밖에 나게 된다.

    단지파의 초기 영토는 이 지파지도에서 블레셋 북쪽의 짙은 녹색으로 나타난다. /출처 위키피디아

    그렇게 단 지파는 신약의 요한계시록에 와서 12 지파 명단에서도 탈락하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사라진 그들 단 지파가 우리 한 민족 조상 단군이 되었다는 것은 아무런 논리적 근거가 없는 너무 큰 비약이다. 설령 단군이 단 지파라 하더라도 그것은 명예가 되기는커녕 우리 한 민족이 비운의 민족이라는 멍에를 덧입을 뿐이다. 일부 일본인들조차 자기들이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비운의 단 지파의 후예들이라고 우기고 있으니 참으로 애처롭기만 하다. 우상 숭배로 인해 12 지파 가운데 요한계시록에서도 제외되고 하나님 공동체와 멀어진 비운의 단 지파가 그리도 좋을까?

    마지막으로 욕단을 언어적 유사성으로 인해 우리의 단군에 비정하는 주장도 있다. 이것도 우리 민족을 셈족 욕단 후손이라 전제하고 억지로 모든 것을 거기에 맞추려는 위험한 접근 방법의 하나일 뿐이다. 그렇게 억지로 우리 민족이 셈족 가운데 언약의 사람 아브라함의 후손도 아닌 곁가지에 불과한 욕단 후손이라는 황당한 꿰맞추기 주장이 민족사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으며 무슨 자부심이 될까?

    그리스도 안에서 육체적 할례자는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다. 마음의 할례가 참 할례가 된 것이다. 아브라함의 조상들도 달신(月神)을 섬기던 우상숭배자들이었다. 아브라함의 후손 이스마엘과 에서도 야곱의 후손들과 달리 여호와 하나님과 멀어졌다. 심지어 육적 아브라함 후손들은 오늘날 대부분 그리스도 예수를 메시아로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오늘날 셈의 후손들 가운데 그리스도를 제대로 따르는 민족이나 국가는 없다. 지극히 소수의 개인만이 그리스도인일 뿐이다.

    육체적 셈족이 영육 간에 복을 받는 다는 신화와 착각에서 빨리 벗어날 필요가 있다. 아무 근거도 없이 굳이 우리 민족을 아브라함 반열도 아닌 욕단의 후손이라 복을 누린다는 착각과 신화와 집착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아브라함과 달리 욕단에게는 육체적 할례 언약조차 없었다. 더구나 할례 언약이 중요한 언약이기는 하나 이것이 언약의 전부도 아니다. 육체적 할례 언약을 받은 아브라함 후손들(유대, 이스마엘, 에서 등)조차 신앙과 멀어진 현실을 보라!

    지금까지 노아 후손들 행로를 추적해 볼 때 우리 민족의 큰 줄기는 셈의 계열이 아닌 야벳 족의 흐름을 따라왔다고 본다. 역사는 신앙이 오히려 이방 야벳의 땅에 씨가 뿌려지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음을 보여준다. 육체의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요 믿음의 할례가 필요하다. 이방인의 사도가 된 사도 바울이 전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즉 욕단의 육적 후손이라는 명확한 증거도 없을 뿐더러 설령 욕단의 후손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닌 것이다.

    발굴과정에 있는 우르의 지구라트, /출처 Woolley, C. Leonard. "The Ziggurat of Ur." The Museum Journal XV, no. 2 (June, 1924): 107-114. https://www.penn.museum/sites/journal/1235/

    아르박삿 후손들의 미래

    모든 셈의 후손들이 아르박삿의 후손들은 아니다. 또한 모든 아르박삿 후손들이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아니었다. 모든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이스라엘 민족이 된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모든 이스라엘 민족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도 아니다. 명목상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하나님의 자녀일 거라는 착각도 버려야 한다.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하며 거짓 선지자 노릇하는 이단, 사이비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마 7)! 명목상의 아르박삿 후손이나 이스라엘 민족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난 참 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만 전도하면 종말이 온다는 착각에 빠지지 말라.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하나님은 차별 없이 오직 하나님의 참 자녀를 찾고 계신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의 역대 왕





     -



     -




    남 유다 왕국(BC 931-586) 바벨론 느부갓네살

    1. 르호보암(왕상 14장 / 대하 11-12장)

    유다의 첫 번째 왕인 르호보암입니다.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은 남유다의 초대 왕이 됩니다.
    르호보암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했던 기간은 고직 3년뿐이었습니다(대하 11:17)
    3년이 지나고 나라가 견고해지고 튼튼해지자 르호보암은 여호와의 율법을 저버립니다(역대하 12 :1)
    르호보암이 즉위한 지 5년째 되던 해, 예루살렘은 애굽 왕 시삭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왕상 14:25)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스마야를 통해 유다가 행한 죄악을 심판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시삭의 손에 넘겼다고 말씀합니다(대하 12:5)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성전과 왕궁에 있는 모든 보물과 솔로몬이 만들었던 금 방패를 빼앗겨(대하 12:9), 놋 방패로만 궁문을 지킵니다(대하 12:10)
    르호보암은 그렇게 17년 간 남유다를 다스립니다(대하 12:13)

    2. 아비얌(아비야)(왕상15장 / 대하 13장)

    유다의 두 번째 왕인 아비야라고도 불리는 아비얌입니다.
    르호보암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비얌이 왕이 되고, 총 3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아비얌 역시 다윗의 길을 따르지 않고, 아버지 르호보암의 모든 죄를 그대로 행합니다(왕상 15:3).
    당시 북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여로보암과 전쟁만 하다가(왕상 15:6) 병을 얻어 죽음을 맞이합니다.

    3. 아사(왕상 15장 / 대하 14-16장)

    유다의 세 번째 왕인 아사입니다.
    아비야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사가 왕이 되고, 총 41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아사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와는 달리 다윗의 길로 행했고, 여러 종교 개혁들을 단행합니다(왕상 15:11)
    먼저 남자 창기들을 밖으로 몰아내고, 조상들이 만든 모든 우상을 없애 버립니다(왕상 15:12)
    그리고 우상을 섬기던 할머니 마아가도 과감히 쫓아냅니다(왕상 15:13)
    또 오뎃의 아들 아사랴를 통해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대하 15:1) 우상 제거와 여호와의 제단을 재건하는 일에 박차를 가합니다(대하 15:8)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던 아사였지만 북이스라엘 바아사와의 전쟁 중,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아람 나라를 의지합니다.
    이를 꾸짖는 예언자 하나니의 말에 몹시 화를 내며 그를 감옥에 가둡니다(대하 16:10)
    아사 왕은 통치 말년에 발에 병을 얻어 죽음을 맞이합니다.

    4. 여호사밧(왕상 22장 / 대하 17-20장)

    유다의 네 번째 왕인 여호사밧입니다. 아사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여호사밧이 왕이 되고, 25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여호사밧은 아버지 아사를 따라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하는데요.(대하 17:4) 여호사밧 왕 때 남유다는 굉장한 부와 영광을 떨치게 됩니다.(대하 17:5) 여호사밧 역대 종교 개혁을 단행하는데요. 아버지 아사 왕의 개혁 후에도 남아있던 남자 창기들을 모두 쫓아내고(왕상 22:46), 재위 3년 차에 신하들과 제사장 그리고 레위 사람들을 뽑아 여호와의 율법책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게 합니다.(대하 17:9) 유다는 점점 더 강성해져 갔고(대하 17:10), 북이스라엘의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동맹을 맺게 됩니다.(대하 18:1) 하지만 그것이 여호사밧의 발목을 잡게 되었고, 하나니의 아들 예언자 예후를 통해 따끔한 질책을 받게 되죠.(대하 19:2) 여호사밧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2차 종교개혁을 단행합니다. 유다 곳곳을 직접 다니며 백성들을 살피고 재판관을 세우며, 공정한 재판을 할 것을 강조합니다. 얼마 후, 모압과 암몬, 그리고 마온 사람들이 힘을 합쳐 남유다를 공격 했고, 이에 여호사밧은 유다 온 백성과 함께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대하 20:5-6) 결과는 유다의 대승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여호사밧도 산당을 철거하지 않아서 온전한 개혁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대하 20:33)

    5. 여호람(왕하8장/대하 21장)

    유다의 다섯 번째 왕인 여호람입니다. 여호사밧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되고, 8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여호람은 왕권을 잡은 후, 형제들을 죽이는 끔찍한 일을 벌이는데요.(역대하 21:4) 그는 아합의 딸 아달랴와 결혼해 아합의 길을 따릅니다.(대하 21:6) 엘리야 선지자는 여호람에게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창자가 빠져나와 죽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전합니다.(대하 21:15) 그리고 말씀 그대로 창자가 빠져나와 죽게 됩니다.(대하 21:19)

    6 .아하시야(왕하8-9장/대하 22장)

    유다의 여섯 번째 왕인 아하시야입니다. 여호람의 뒤를 이어 막내아들인 아하시야가 왕이 되고, 1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아하시야 역시 아버지 여호람을 따라 아합의 집의 길을 따르죠.(대하 22:3) 아하시야는 당시 북이스라엘의 왕인 요람과 왕의 자리를 빼앗으려 했던 예후와의 싸움에 휘말려 예후에게 죽임을 당합니다.(대하 22:9)

    7. 아달랴(왕하 11장/대하 22-23장)

    유다의 일곱 번째 왕인 아달랴입니다. 아하시야의 죽음 뒤, 그의 어머니 아달랴는 유다의 왕족을 죽이기 시작합니다.(대하 22:10) 그때 아하시야의 누이인 여호세바(여호사브앗)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유모와 함께 빼내었고, 그렇게 요아스는 여호와의 성전에서 6년 동안 숨어 지냅니다.(왕하 11:2) 아달랴가 남유다의 왕이 된 지 7년째 되던 해, 제사장 여호야다는 아달랴를 몰아내고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기 위한 작전을 벌입니다. 작전은 성공했고, 아달랴는 죽임을 당하게 되죠. 이렇게 아달랴의 6년 간의 통치가 끝나게 됩니다.

    8.요아스(왕하 12장/대하 24장)

    유다의 여덟 번째 왕인 요아스입니다. 할머니 아달랴의 죽음 뒤에 왕이 된 요아스는 40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요아스는 아달랴 시대에 방치되었던 성전을 보수하고, 날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번제를 드리는 등 선한 왕의 면모를 보입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자신을 돌봐주고, 왕위에 오르게 한 여호야다가 죽자 요아스는 돌변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기게 된 건데요. 이에 하나님은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통해 무섭게 경고하시지만, 요아스는 그 경고를 무시하고 스가랴를 돌로 쳐 죽입니다. 얼만 지나지 않아 아람 왕 하사엘이 예루살렘을 공격해 왔고, 전쟁에서 부상을 당한 요아스는 신하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9.아마샤(왕하 14장/대하 25장)

    유다의 아홉 번째 왕인 아마샤입니다. 요아스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되고, 남유다를 29년간 다스립니다. 아마샤을 왕권을 잡은 후, 아버지 요아스를 죽인 신하들을 먼저 처형합니다.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아마샤는 에돔 사람들이 섬기던 우상들을 가져와 섬기기 시작하는데요. 이를 지적하는 선지자를 무시하고, 자신의 힘을 과신한 나머지 북이스라엘과 전쟁을 일으킵니다. 전쟁에 크게 패배한 후에, 아마샤는 백성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10.아사랴(웃시야)(왕하 15장 / 대하 26장)

    유다의 열 번째 왕인 웃시야라고도 불리는 아사랴입니다. 아마샤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사랴(웃시야)가 왕이 되고, 남유다를 52년간 다스립니다. 아사랴는 블레셋과의 전쟁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성을 튼튼히 하는 등 힘을 키워갔는데요. 유다의 힘이 커지는 만큼 아사랴의 교만도 커져갔고, 어느 날 제사장에게만 허용된 향을 피우는 일이 자신이 직접 행하려고 합니다. 제사장들의 만류에도 향을 피우려던 아사랴의 이마에 나병이 생기게 되었고, 죽을 때까지 격리되어 별궁에서 지내게 됩니다.

    11.요담 (왕하 15장 / 대하 27장)

    유다의 열한 번째 왕인 요담입니다. 아사랴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요담이 왕이 되고, 남유다를 16년 동안 다스립니다. 요담은 성전을 증축하고, 암몬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합니다. 하나님은 승리에도 겸손을 잃지 않은 요담을 점점 더 강하게 하시죠. 요담은 그렇게 다윗 성에 장사됩니다.

    12.아하스(왕하 16장/ 대하 28장)

    유다의 열두 번째 왕인 아하스입니다. 요담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되고, 남유다를 16년간 다스립니다. 아하스는 유다의 왕 중에서 가장 악한 왕으로 꼽히는데요. 바알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 심지어 자기 자녀를 제물로 바치는 끔찍한 일을 벌이죠. 그는 산당과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우상에게 제사를 드립니다. 아람과 이스라엘 연합군의 침입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고, 하나님이 아닌 앗시리아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도움을 청하죠. 급기야 앗시리아의 다메섹 제단을 그대로 유다로 가져오기까지 합니다. 아람과 이스라엘 연합군이 물러간 뒤 에돔 사람이 다시 유다를 공격 해 왔고, 블레셋 사람들의 공격까지 받게 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아하스 왕은 여전히 하나님이 아닌 앗시리아 왕과 다메섹 신들을 의지합니다. 마침내 아하스는 성전 안에 있는 기구들을 부수고 성전 문을 닫기까지 합니다. 또 유다 각 성읍에 산당을 세워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됩니다.

    지난 시간에는 북이스라엘의 멸망 전에 남유다를 다스린 왕들을 살펴보았는데요.

    오늘은 북이스라엘의 멸망 후에 남유다를 다스린 왕들을 쉽게 그리고 단숨에 정리해 보겠습니다. 영상을 끝까지 보세요.

    13. 히스기야(왕하 18-20장, 역대하 29-32장)

    유다의 열세 번째 왕인 히스기야입니다. 아하스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고, 남유다를 29년간 다스립니다.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는 유다의 왕 중에서도 가장 악한 왕으로 꼽히는 왕이었죠.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히스기야는 아버지 아하스와는 달랐습니다. 다윗의 길을 따른 건데요. 히스기야는 혼신의 힘을 다해 종교 개혁을 단행하는데요. 먼저 아버지 아하스가 닫아 놓았던 성전의 문을 열고 수리하는 성전 정화 운동을 벌였고, 다음으로는 오랫동안 멈춰있던 제사와 유월절을 다시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또 유다 온 땅에 펴진 우상과 산당 등을 제거하고, 유명무실했던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아 제 역할을 하도록 도왔죠. 성경은 히스기야를 유다 모든 왕들 중에 이처럼 하나님을 의지한 왕은 없었다고 평가하는데요. 그런 히스기에게도 어려움은 찾아왔습니다. 히스기야가 유다를 다스린 지 육 년째 되던 해,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히스기야 왕 제14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두 번에 걸쳐 유다를 침공 합니다.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의 경고에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앗수르 군대를 물리쳐 주십니다. 그 무렵 히스기야는 병에 들어 거의 죽게 되었는데요. 이때 히스기야는 벽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했고, 하나님은 역시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히스기야의 생명을 15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이렇게 많은 기적을 경험한 히스기야였지만, 병문안 차 방문했던 바벨론 왕의 사절들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교만의 덫에 걸려 넘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교만했던 히스기야에게 네 자손들이 후에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시죠. 히스기야는 다윗 자손의 묘실 중 높은 곳에 장사됩니다.

    14. 므낫세(왕하 21장, 역대하 33장)

    유다의 열네 번째 왕인 므낫세입니다. 히스기야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므낫세가 왕이 되고, 55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므낫세는 아버지 히스기야의 길이 아닌, 할아버지 아하스의 길을 따랐는데요. 심지어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우상의 제단을 쌓고, 손수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성전에 세우기까지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군대를 일으키셔서 므낫세를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하시죠. 포로가 된 므낫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고, 하나님은 므낫세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십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게 된 므낫세는 우상과 이방신들의 제단을 헐고, 여호와의 제단을 다시 보수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그는 웃사의 동산에 장사됩니다.

    15. 아몬(왕하 21장, 역대하 33장)

    유다의 열다섯 번째 왕인 아몬입니다. 므낫세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몬이 왕이 되고, 2년간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아몬은 아버지 므낫세를 따라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결국 그는 신하들에 의해 왕궁에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16. 요시야(왕하 22-23장, 역대하 34-35장)

    유다의 열여섯 번째 왕인 요시야입니다. 아몬의 갑작스러운 죽음 후에, 유다 백성들이 반역을 일으킨 신하들을 죽이고, 아몬의 아들 요시야가 왕위에 올라 31년간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요시야는 아버지 아몬이 아닌 다윗의 길을 따르는데요. 성전 수리를 지시했고, 대제사장 힐기야가 성전에서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하게 됩니다. 요시야는 율법책의 말씀을 듣고 크게 슬퍼하여 옷을 찢었고, 백성들에게도 언약책의 말씀을 읽어 주며 다시 여호와의 언약을 세울 것을 백성들과 함께 맹세하죠. 이러한 맹세는 우상과 산당의 제거 그리고 유월절의 부활로 이어졌는데요. 이후 애굽과의 전쟁에서 화살에 맞은 요시야는 예루살렘에 돌아와 숨을 거두게 됩니다. 요시야의 죽음에 유다의 백성들은 슬퍼했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애가를 지어 요시야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17. 여호아하스(왕하 23장, 역대하 36장)

    유다의 열일곱 번째 왕인 여호아하스입니다.
    요시야의 뒤를 이어 그의 넷째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고, 3개월간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여호아하스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 애굽에 끌려가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18. 여호야김(엘리야김)(왕하 23-24장, 역대하 36장)

    유다의 열여덟 번째 왕인 여호야김입니다.
    동생 여호아하스의 뒤를 이어 요시야의 둘째 아들 여호야김(엘리야김)이 왕이 되고 11년간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여호야김은 애굽 왕 느고에 의해 왕이 됩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여호야김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쇠사슬에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수모를 당합니다.

    19. 여호야긴(고니야, 여고냐) (왕하 24-25장, 대하 36장)

    유다의 열아홉 번째 왕인 여호야긴입니다.
    여호야김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되고, 석 달 열흘 동안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역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고, 바벨론의 공격으로 아버지와 같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갑니다.
    이때 성전과 왕궁에 있는 보물과 그릇들도 빼앗기게 됩니다.
    바벨론에서 37년 간 포로생활을 하던 여호야긴은 후에 느부갓네살의 아들 에윌므로닥이 다스릴 때, 감옥에서 풀려나 남은 여생을 에윌므로닥 왕의 지원을 받으며 살게 됩니다.

    20. 시드기야(맛다니야)(왕하 24-25장, 대하 36장)

    유다의 스무 번째 왕이자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입니다.
    시드기야는 요시야의 셋째 아들로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세워진 왕입니다.
    11년간 남유다를 다스리는데, 역시나 돌이킬 줄 모르고 여호와 앞에서 악행을 저지릅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예레미야와 에스겔, 그리고 하박국 선지자를 통해 경고하시지만, 시드기야는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고 결국 주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남유다는 멸망하게 됩니다.


    북 이스라엘 왕국(BC 931-722) - 앗수르 살만에셀

    1. 여로보암  :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많은 백성들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12개의 지파 중 무려 10개의 지파가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이 아닌, 여로보암을 지지했으니 그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여로보암은 그 인기를 잘 유지했습니다.
    백성들의 요구를 적극 반영하여 강제 노역과 세금을 경감시켜 주었습니다.
    이렇게 백성들의 인기를 유지했지만,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우상과 제사장과 절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여로보암은 22년 동안 북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여로보암이 왕이 된 지 이십이 년이라 그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들 나답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왕상 14:20)

    여로보암 ― 북왕국 이스라엘의 제1대 왕

    인적 사항

      (1) 여로보암은 '백성을 더하게 하소서'라는 뜻.
      (2) 에브라임 지파 출신(왕상11:25).
      (3)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22년간 통치(왕상12:2;14:20).
      (4) 솔로몬의 신복 느밧의 아들, 모친은 수루아(왕상 11:26).
      (5) 고향은 세겜의 서쪽 사마리아 스레다임(왕상 11:26).
      (6) 아들로는 아비야나답이 있음.

    시대적 배경

      여로보암 당시 이스라엘은 대변혁을 겪었다.
      즉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 왕국이 분열됨으로써(B.C.930) 남왕국은 남왕국 대로 정치적 안정을 회복하기 위해 정비를 막 서두르게 되었고, 북왕국은 북왕국대로 정치적, 종교적 정비를 서두르던 때였다.
      또한 이런 국내적 대격변과 함께 국외적으로도 솔로몬 말기부터 서서히 이스라엘을 침공해 오던 주변 국가들의 세력이 강성해짐에 따라 상당히 위기감이 고조되어 있던 때였다.
      그러나 솔로몬 때까지 탄탄했던 이스라엘이었기 때문에 남북 왕국 분열 직후인 이 당시에는 아직 외적의 침입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남북 왕국간의 적대 감정이 매우 높아 잦은 전쟁이 벌어졌다.
      이러한 시기에 여로보암은 새롭게 북왕국을 창건한 자로서 정치적으로는 매우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였으나 종교적으로는 악한 선례를 만듦으로써 북왕국 멸망의 근본 원인을 재공하고 말았다.

    주요 생애

      출생

      요셉 족속의 노역을 감독

      왕상 11:28

      자신의 왕됨을 예언 받음

      왕상 11:30-32

      솔로몬에게 반역함

      B.C.938 년

      왕상 11:26

      애굽으로 도피

      "

      왕상 11:40

      북쪽 열 지파의 요청으로 애굽에서 나옴

      왕상 12:1-3

      르호보암에게 노역 완화를 요구

      왕상 12:4-15

      북쪽 열 지파의 왕으로 추대됨

      B.C.930 년

      왕상 12:20

      세겜과 브누엘을 요새화함

      왕상 12:25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움

      왕상 12:27-30

      레위인의 제사장직을 폐함

      왕상12:31;대하11:14

      장막절의 날짜 변경

      왕상 12:32

      벧엘 제단 훼파 예언 들음

      왕상 13:1-10

      아히야에게서 재앙이 예언됨

      왕상 14:7-10

      르호보암과의 전쟁을 계속함

      왕상 14:30

      애굽 왕 시삭의 침입을 받음

      왕상 14:25

      유다 왕 아비얌과의 전쟁에서 패함

      B.C.913 년

      대하 13:1-20

      죽음

      B.C.910 년

      대하 13:20


    성품

      (1) 솔로몬 왕의 인정을 받아 공사의 감독자로 발탁될 만큼 부지런하고 유능한 자(왕상11:28).

      (2) 이스라엘 분단에 대한 아히야의 예언을 듣고 곧 반란을 일으킬 만큼 정치적 야욕이 강한 자(왕상 11:26-32).

      (3) 애굽 망명 후 유다 지파와 솔로몬 통치에 대한 백성들의 반목을 충동질하여 정권에 도전할 만큼 계략이 뛰어난 자(왕상12:2-4).

      (4) 이스라엘 열 지파의 추대를 받고, 북왕국의 초대 왕이 된 것을 볼 때 정치·군사적 지도력이 뛰어난 자(왕상12:1-3, 20).

      (5) 왕이 된 후 성막을 가진 유다로부터 종교적으로도 독립하는 동시에 왕권도 강화하기 위하여 북쪽 지역에 많은 산당과 우상을 만들만큼 대담한 인본주의 자(왕상 12:27, 31).

      (6) 하나님의 책망조차 무시할 정도로 교만한 자(왕상 13:1-10).

    구속사적 지위

      (1)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라진 후 북왕국의 초대 왕이 됨(왕상 12:20).

      (2) 왕권 강화를 위해 벧엘과 단에 우상을 만들어 섬기게 함으로써 자신뿐만 아니라 백성들까지도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게 한 왕(왕상 12: 28).

      (3) 여로보암과 그 집을 향한 하나님의 재앙이 선포됨. 이는 세상적 정욕만을 추구하는 자에게 임할 심판의 표징이 됨(왕상 14:7-16).


    주요 업적

          (1) 솔로몬의 '밀로' 건축과 예루살렘 성벽 수축 공사를 감독함(왕상 9:15).
          (2) 세겜과 브누엘을 건축하여 군사적인 요새를 강화함(왕상 12:25).


    실수

      (1)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워놓고, 백성들에게 우상 숭배를 강요함(왕상 12:27-29).

      (2)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을 제사장으로 삼음(왕상 12:31;13:33).

      (3) 후세들에게 악한 선례를 남김으로써 결국 북왕국 멸망의 원인을 제공함(왕상 14:10).

    평가 및 교훈

      (1) 여로보암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것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왕상12:28,29)고 하며 이를 경배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한 채 자신의 생각과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것은 곧 우상 숭배와 동일한 죄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완악한 마음이나 자신의 이해 관계가 앞서지 않도록 하며 오직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그 분을 섬겨야 한다.

      (2) 여로보암은 일찍이 솔로몬 왕의 인정을 받아 요셉 족속의 역사를 감독할 만큼, 또한 북쪽 10지파의 추대로 왕이 될 만큼 부지런하고 유능한 자였다(왕상 11:28;12:20). 그러나 이렇게 뛰어난 지도자요 존경을 받던 그였지만 하나님을 떠남으로써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임을 당했다. 이를 통해 하나님 없이는 인간의 지혜와 칭찬이 헛됨을 깨닫게 된다. 더욱이 하나님을 버리는 자는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자신도 버림받게 됨을 기억해야 하겠다. 참으로 일이 형통할 때에 더욱 하나님을 겸손히 섬기는 자가 되자.

      (3) 여로보암은 솔로몬의 왕권에 대적하여 북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였다. 이로써 그는 후세들에게 이스라엘의 분열이라는 좋지 않은 전통을 남겼고, 더더욱 우상 숭배를 조장함으로써 백성들의 신앙을 변절시켰다. 혹시 우리도 여로보암 처럼 그릇된 신앙의 모습을 신앙의 후배들에게 남기고 있지는 않는가?

    핵심 성구

      "여로보암에게 이르되 너는 열 조각을 취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나라를 솔로몬의 손에서 찢어 빼앗아 열 지파를 네게 주고"(왕상 11:31).


    2. 나답 :

    여로보암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나답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여로보암의 죄를 그대로 반복했고, 불과 2년 만에 바아사 장군의 반역으로 죽게 됩니다.

    유다의 아사 왕 셋째 해에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고(왕상 15:28)

    나답
    「고상하다, 관대하다, 고귀하다」

    여로보암 I세의 아들이다. BC 910년 경 왕위에 올라 아비처럼 하나님 앞에서 악을행하였다. 유다 왕 아사 제 3년에 바아사에게 학살 당하고,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이것은 여로보암의 집에 대한 여호와의 형벌이었다. 나답의 재위는 겨우 2년이었다(왕상 14:10,11,20,15:2531).나답(재위 기원전 909년경-908년경)은 분열 이스라엘 왕국의 2대 왕으로 아버지 여로보암 1세처럼 악한 짓을 많이 저질렀다.

    나답은 아버지 여로보암 1세가 죽자 왕위에 올랐으나 악한 짓을 많이 저질렀고 하나님의 눈에 거슬리지 짓도 많이 했다. 이에 이사카르 집안 출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반란을 일으켜 필리시테인에 속해있던 기브톤에서 나답을 공격했다. 결국 나답은 바아사에게 살해당하고 바아사가 왕위에 올랐다.

    바아사는 임금이 되자 여로보암 집안의 모든 사람들을 몰살해 전 여로보암 1세 때 베텔의 늙은 예언자의 예언이 이루어졌다.

    1. 나답의 출생과 초기 생애

    출생과 배경
    :

    • 나답은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열왕기상 14:20)
    • 그는 여로보암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지만, 그의 생애와 초기 생애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여로보암의 영향:

    • 나답은 여로보암의 통치 아래에서 자라며 왕위 계승자로 준비되었습니다. 여로보암의 종교적 개혁과 금송아지 숭배는 나답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 여로보암의 죄악된 길을 따라간 나답의 통치는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우상 숭배와 불순종으로 점철되었습니다.

    2. 나답의 즉위와 통치 (열왕기상 15장)

    즉위와 초기 통치:

    • 나답은 여로보암의 죽음 이후 왕위에 올랐으며, 북이스라엘 왕국의 두 번째 왕이 되었습니다. (열왕기상 15:25)
    • 그는 아버지의 죄악된 길을 그대로 따르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군사적 활동:

    • 나답의 통치 기간 동안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쟁이었습니다.
    • 그는 군대를 이끌고 블레셋의 성읍 깁브돈을 포위했습니다. (열왕기상 15:27)

    3. 나답의 암살과 바아사의 반란 (열왕기상 15장)

    바아사의 반란:

    • 나답이 블레셋의 깁브돈을 포위하고 있을 때, 이사갈 지파 출신의 바아사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열왕기상 15:27)
    • 바아사는 나답을 암살하고, 자신이 왕위에 오르기 위해 나답을 제거했습니다.

    여로보암 가문의 멸망:

    • 나답의 암살 이후, 바아사는 여로보암의 모든 후손을 제거했습니다. 이는 여로보암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열왕기상 15:29-30)
    • 여로보암의 가문이 완전히 멸망한 것은 그의 죄악된 통치와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줍니다.

    4. 나답의 종교적 행보 (열왕기상 15장)

    우상 숭배와 죄악:

    • 나답은 그의 아버지 여로보암이 시작한 죄악된 길을 따랐습니다. 그는 우상 숭배를 지속하며,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열왕기상 15:26)
    • 그는 백성들에게 우상 숭배를 조장하며, 영적 타락을 초래했습니다.

    5. 교훈과 적용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

    • 나답의 생애를 통해 우리는 불순종과 죄악의 결과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의 통치는 짧았고, 그의 죽음은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였습니다.
    •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줍니다.

    지도자의 책임 :
    나답의 이야기는 지도자의 죄악된 행보가 백성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의 불순종은 백성들에게 영적 타락을 초래했습니다.
    이는 지도자가 올바른 신앙과 도덕적 기준을 지켜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공의 :
    나답의 죽음과 여로보암 가문의 멸망은 하나님의 심판과 공의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죄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며, 공의롭게 심판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며,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6. 결론
    나답의 생애와 통치는 북이스라엘 왕국의 역사에서 중요한 교훈을 남깁니다.
    그의 짧은 통치와 죄악된 행보는 우리에게 불순종의 결과와 하나님의 심판을 상기시켜줍니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통해 순종과 신앙의 중요성, 지도자의 책임,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를 배울 수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과 함께 나답의 통치와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에 대해 토론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의견을 자유롭게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비극의 서막 (바아사, 엘라) 

    3.  바아사 :

    나답을 죽이고 왕에 오르게 된 바아는 24년 동안 나라를 다스립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은 그가 여로보암의 죄를 그대로 반복했다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바아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왕상 15:34)

    4.  엘라 :

    바아사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엘라가 왕이 되는데요. 공교롭게도 바아사가 죽였던 나답과 같이 재위 2년 만에 시므리의 반란으로 죽게 됩니다. 

    시므리가 들어가서 그를 쳐죽이고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 곧 유다의 아사 왕 제이십칠년이라(왕상 16:10)

    7일 천하 (시므리) 

    5. 시므리 :

    시므리는 바아사의 온 집안사람들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다 죽이고 왕위에 오릅니다.

    바아사의 온 집을 멸하였는데 선지자 예후를 통하여 바아사를 꾸짖어 하신 여호와의 말씀 같이 되었으니(왕상 16:12)

    그러나 전장에 나가 있던 백성들은 시므리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군대 지휘관이었던 오므리를 왕으로 삼고 궁전으로 쳐들어갑니다. 시므리는 성읍이 함락된 것을 보고 왕궁 요새에 들어가 왕궁에 불을 지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왕 위에 오른 지 불과 7일 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시므리가 성읍이 함락됨을 보고 왕궁 요새에 들어가서 왕궁에 불을 지르고 그 가운데에서 죽었으니(왕상 16:18)

    이렇게 시므리의 7일 천하는 끝이 납니다. 

    오므리 왕조의 시작 (오므리, 아합, 아하시야 여호람) 

    6. 오므리 :

    오므리의 등장으로 혼란했던 북이스라엘은 점차 안정을 찾기 시작합니다.
    오므리는 나라의 법을 새로 세우고 수도를 사마리아로 옮기는 “천도”를 실시하면서 많은 백성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게 됩니다.
    북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안정되고 평화로운 시기가 도래한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평가는 어땠을까요?

    5.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왕상 16:25)

    오므리는 그렇게 12년 동안 북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7. 아합 :

    아버지 오므리에 이어 왕이 된 아합은 그 이름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아합과 그의 아내 이세벨!
    아합은 여로보암의 길을 따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사마리아에 바알의 신천을 건축하는 끔찍한 악행을 저지릅니다.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왕상 16:32)

    아합과 싸움을 벌였던 엘리야 선지자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예언자를 정리할 때 다루겠습니다. 

    22년 동안 북이스라엘을 다스린 아합은 아람과의 전쟁에서 적이 무심코 쏜 화살에 맞아 죽게 됩니다.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겨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맞힌지라 왕이 그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려 내가 전쟁터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으나(왕상 22:34) 

    8. 아하시야 :

    지난 왕조들은 2대를 채 넘지 못했지만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면서 오므리 왕조는 3대째 왕위를 이어갑니다.
    아하시야는 다락 난간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고 2년 만에 엘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죽게 됩니다.

    왕이 엘리야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고 그가 아들이 없으므로 여호람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둘째 해였더라(왕하 1:17) 

    9. 요람(여호람) :

    아하시야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동생 요람(여호람)이 왕위에 오릅니다.

    왕이 엘리야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고 그가 아들이 없으므로 여호람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둘째 해였더라(왕하 1:17) 

    요람은 오므리 왕조의 4번째 왕으로 12년 동안 북이스라엘을 통치합니다.
    북이스라엘 전체 200여 년의 역사 중에 4분의 1에 해당하는 48년이라는 기간 동안 오므리 왕조가 다스립니다.
    더 놀라운 건 열왕기서 전체 분량 중에 삼 분의 일이 오므리 왕조의 이야기입니다.(왕상 16 - 왕하 12장)
    그야말로 오므리 천하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오므리 왕조를 무너뜨린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북이스라엘의 9번째 왕까지 살펴봤습니다.
    첫 번째 왕 여로보암과 그의 아들 나답.
    나답을 죽이고 새로운 왕권을 창출한 “바아사” 장군.
    그러나 바아사 왕조는 그의 아들 엘라에 이르러 시므리에 의해 무너지게 되죠.
    시므리는 바아사의 온 집안사람들을 다 죽이며 왕권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지만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7일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이후 왕위에 오른 오므리는 많은 백성들의 지지를 힘입어 오므리, 아합, 아하시야, 요람에 이르기까지 48년 동안 위세를 떨칩니다.

    북이스라엘 전체 역사 중에서 유례없는 전성기를 구가했던 오므리 왕조.
    그러나 하나님의 평가는 정반대였죠.
    모든 왕들보다 더욱 악한 왕이라는 혹평을 받습니다.

    예후 왕조의 시작 (예후, 여호아하스, 요아스, 여로보암 2세, 스가랴) 

    10.  예후 :

    아합의 군대 장관이었던 그는 요람 왕을 죽이며 영원할 줄 알았던 오므리 왕조의 시대를 닫고, 예후 왕조의 시대를 엽니다.
    하나님은 예후를 통해 그동안 쌓여 왔던 오므리 왕조의 악행을 철저하게 심판하시는데요.
    오므리 왕조와 관련된 모든 이들과 특히 그들이 지극히 섬겼던 바알, 바알 숭배자들을 잔인할 정도로 처단합니다.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왕하 10:28)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던 오므리 왕조는 한순간에 무너지고 맙니다. 
    이렇게 타락한 오므리 왕조를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된 예후였지만, 그도 타락에서 자유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왕하 10:31) 

    예후는 28년동안 북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11. 여호아하스 :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의 재임 기간은 17년입니다.
    금송아지를 섬기는 여로보암의 죄를 그대로 따랐던 여호아하스는 아람 나라의 공격을 받을 때는 잠시 하나님을 의지하는 듯했지만,
    상황이 다시 좋아지자 여지없이 하나님이 아닌 여로보암의 죄를 따랐습니다. 

    12. 요아스 :

    여호아하스의 아들인 요아스가 왕위에 오르는데요. 재임 기간은 16년입니다.
    요아스 때에 기억할만한 특별한 사건이 하나가 있는데요.
    엘리사 선지자의 죽음입니다.
    요아스 역시 여로보암 죄를 그대로 반복합니다. 

    13. 여로보암 2세 :

    다음으로 요아스의 아들인 여로보암 2세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여로보암과 이름이 같아서 2세로 구분한건데요.
    북이스라엘 역사상 최장기 집권으로 유명하죠.
    무려 41년간 나라를 다스립니다.
    그만큼 백성과 신하들의 신뢰도 컸다는 이야기겠죠.
    눈엣 가시와도 같았던 아람 나라를 정복하고, 이스라엘의 영토를 다윗과 솔로몬 때로 회복합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죠.
    실제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 나온 요나 선지자는 여로보암 2세에게 희망을 걸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왕하 14:27)

    막연한 기대는 아니었습니다.
    적군이 없어지고, 영토가 회복되고, 안정을 찾아가는 나라의 모습은 분명 매우 긍정적인 신호였죠.
    그러나 동시대를 살았던 아모스 선지자는 전혀 다른 메시지를 전합니다.
    아모스서 5장 10절부터 12절까지의 말씀을 보시죠. 

    10-12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듣기 싫어한다. 진실은 인기가 없는 법이다. 그러나 적나라하게 드러난 진실이 여기 있다. 너희는 가난한 이들을 악랄하게 짓밟고 그들에게서 빵을 빼앗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결코 너희가 건축한 화려한 집에 들어가 살지 못할 것이다. 너희는 결코 너희가 재배한 값비싼 포도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다. 나는 너희 위법이 어느 정도인지, 너희 죄가 얼마나 중대한지 정확히 알고 있다. 참으로 섬뜩하다! 너희는 의롭게 사는 이들을 괴롭히고 이리저리 뇌물을 받아 가며 가난한 이들을 바닥에 내친다. (메시지 성경) 

    여로보암 2세를 향한 요나와 아모스의 상반된 평가!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혹시 회개를 외쳐야하는 절박한 순간에 희망을 노래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14.  스가랴 :

    무려 41년 동안 장기집권을 했던 여로보암 2세가 죽고 그의 아들 스가랴가 왕위에 오릅니다.
    스가랴는 아버지와는 달리 6개월 만에 살룸에 의해 죽임을 당하며 예후 왕조는 이렇게 막을 내립니다.

    죽이고, 또 죽이고 

    102년간을 집권했던 예후 왕조의 몰락 이후 북이스라엘은 대혼란기에 접어 듭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다섯 명의 왕들 중에 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 반역을 통해 왕의 자리를 빼앗거든요.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한, 오직 권력에 눈이 멀어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이 시작된 겁니다. 

    15. 살룸 :

    예후의 후손인 스가랴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살룸은 7일 천하 시므리 다음으로 짧은 한 달간 왕으로 있다가 므나헴의 반역으로 죽게 됩니다. 

    16. 므나헴 :

    므나헴은 얼마나 잔인했던지, 왕이 된 후 자신을 선뜻 환영해 주지 않았다고 해서 그 주변 모든 임산부의 배를 갈랐습니다.

    그 때에 므나헴이 디르사에서 와서 딥사와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사람과 그 사방을 쳤으니 이는 그들이 성문을 열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므로 그들이 그 곳을 치고 그 가운데에 아이 밴 부녀를 갈랐더라(왕하 15:16)

    또 그는 친 앗수르 정책을 펼쳤고, 10년 간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17. 브가히야 :

    므나헴의 잔혹함 때문에 미처 반역할 생각을 하지 못해서였을까요?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가 왕 위에 오릅니다. 이렇게 므나헴 왕조가 시작되나 했지만 2년 만에 장관인 베가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18. 베가 :

    베가의 재임 기간은 20년입니다. 꽤 긴 시간동안 나라를 다스렸지만 성경에는 앗수르의 침략을 받았다.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다는 기록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기록하실까요? 반역으로 왕위에 올랐던 베가는 역시 반역으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19. 호세아 :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호세아 왕입니다.
    왕위에 오른 지 9년 만인 주전 722년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침략으로 멸망하게 됩니다. 

    오므리 왕조의 시대를 닫고, 예후 왕조의 시대를 연 예후, 그리고 이어지는 여호아하스, 요아스, 여로보암 2세, 스가랴까지. 영원할 줄로만 알았던 예후 왕조도 살룸의 반역으로 무너지게 됩니다.
    이후 북이스라엘은 대혼란에 빠지게 되는대요.
    살룸을 죽이고 왕이 된 잔혹했던 므나헴, 므나헴이 무서웠던 걸까요?
    반역 없이 그의 아들 브가히야가 왕 위에 오릅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2년 만에 부하였던 베가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베가는 20년이라는 비교적 오랜 시간 북이스라엘을 통치했지만 그도 역시 호세아가 일으킨 반역으로 죽임을 당합니다.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호세아는 왕 위에 오른 지 9년 만인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게 나라를 빼앗기게 됩니다.  

    열왕기하 17:34

    그들이 오늘까지 이전 풍속대로 행하여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라 이름을 주신 야곱의 자손에게 명령하신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는도다.

    당대에 최고라고 불리던 왕들이 여지없이 무너진 이유가 뭘까요?

    “이전 풍속대로 행하여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며”

    이전 풍속대로, 옛 습관과 본성을 버리지 못했기 아니,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듯 보이지면 결국엔 자신의 욕심과 쾌락과 안위를 위해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선물인 은혜를 마치 자기가 노력하여 얻은 자기만의 산물로 여겼던 것이죠.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내가 누리는 것들이 나만이 가져야 하는 산물로 여기시나요?
    아니면, 모두와 나눠야 할 하나님의 선물로 여기시나요? 어리석은 왕들의 이야기가 바로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17:35-39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며 이렇게 명령하셨다. “다른 신들을 높이지 마라. 그들을 예배하지 말고 그들을 섬기지 말며, 그들에게 제사 지내지 마라. 하나님 곧 큰 능력으로 너희를 친히 이집트에서 구해 내신 그 하나님을 예배하여라. 그분을 공경하고 경외하여라. 그분을 예배하여라. 그분께 제사를 드려라. 오직 그분께만! 무엇을 믿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그분이 가르치신 것, 너희를 위해 기록해 두신 모든 것을 너희가 사는 날 동안 행하여라. 너희는 어떤 경우에도 다른 신들을 예배해서는 안 된다! 그분이 너희와 맺으신 언약에서 너희가 지켜야 할 것을 잊지 마라. 다른 신들을 예배하지 마라! 하나님, 오직 하나님만 예배하여라. 너희를 원수의 압제에서 구원하실 이는 바로 그분이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텍스트(Text) & 컨텍스트(Context)



    텍스트(Text) & 컨텍스트(Context)


    성경 해석 텍스트에서 컨텍스트로

    성경 해석에서 문자적 접근을 넘어 상황적 해석이 필요한 이유

    성경 해석은 단순히 문자(텍스트) 그 자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기록된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상황(컨텍스트) 속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는 성경의 메시지를 더 깊이 깨닫고, 그것이 현대 사회 속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살피는 과정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사회적 참여와 역사적 책임이 성경 해석과 연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이며, 성경이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말씀으로 작용하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본 글에서는 문자적 해석의 한계와 상황적 해석의 필요성을 신학적, 역사적, 실천적 측면에서 탐구하며, 성경 해석이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를 논의하겠습니다.


    문자적 해석의 한계와 성경의 상황적 이해

    1. 성경은 특정한 역사적, 문화적 배경 속에서 기록되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특정한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기록하신 계시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문자 그대로만 해석할 경우, 원래의 의미를 왜곡하거나 시대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해석을 할 위험이 있습니다.

    • 예를 들어, 레위기에서 언급된 정결법과 제사 규례들은 당시 이스라엘의 사회적, 종교적 맥락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졌지만,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 기독교인들에게는 문자 그대로 적용될 수 없습니다(히 10:1-14).
    • 바울 서신에서도 여성의 역할(딤전 2:12)이나 노예제도(엡 6:5-9)에 대한 언급을 오늘날의 사회 구조와 동일하게 적용할 경우, 본래의 의도를 벗어난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2. 문자적 해석이 성경의 본래 메시지를 제한할 수 있음

    문자적 해석은 본문에 기록된 단어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이지만, 이것이 성경의 깊은 의미를 모두 담아내는 것은 아닙니다.

    •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에서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돌려 대라"라고 하신 말씀을 단순한 문자적 의미로 받아들이면, 기독교인의 윤리적 원칙을 놓칠 위험이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수동적 반응이 아니라, 악에 대한 적극적인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 성경은 시적, 비유적, 예언적, 교훈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며, 각각의 문학적 장르에 따라 해석 방식도 달라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요한계시록의 묵시적 언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많은 신학적 오류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성경 해석과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

    1. 성경은 사회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읽혀야 한다

    성경은 단순히 개인의 영적 성장만을 위한 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주신 공동체적 메시지를 포함합니다. 따라서 성경의 가르침은 공동체와 사회 속에서 구현되어야 하며, 기독교인은 세상 속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 선지자들은 당시 사회의 부정의와 불의를 비판하며, 하나님의 정의를 선포했습니다(암 5:24, 미 6:8). 이러한 메시지는 오늘날의 사회적 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 신약에서도 예수님은 단순한 종교적 가르침을 넘어, 가난한 자를 돌보고 억압받는 자를 해방시키는 사회적 메시지를 강조하셨습니다(눅 4:18-19).

    2. 기독교인의 역사적 책임과 성경 해석

    기독교인은 성경을 단순히 영적인 가르침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실천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는 교회가 역사적으로 사회 정의, 평등, 인권 등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돌아볼 때 더욱 분명해집니다.

     * 19세기 노예제 폐지 운동에서 기독교인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사회적 정의의 원리로 해석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 마틴 루터 킹 주니어와 같은 기독교 지도자들은 성경을 사회 변혁의 원동력으로 삼아 인권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 오늘날에도 환경 문제, 난민 문제, 경제적 불평등 등의 이슈에 대해 기독교인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근거로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고민해야 합니다.

    성경 해석과 실천적 적용

    1. 신앙 공동체 안에서의 성경 해석

    성경은 개인적으로 읽고 묵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동체 안에서 해석될 때 더욱 풍성한 의미를 가집니다.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을 함께 연구하고 토론하며, 그것을 공동체적 차원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 초대 교회에서는 성경을 공동으로 연구하고, 그 가르침을 함께 실천하였습니다(행 2:42-47).
     * 신학적으로도 개혁신학 전통에서는 ‘성경 해석의 공동체적 성격’을 강조하며, 신자들이 교회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성경을 실천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2. 성경의 가르침을 오늘날의 삶에 적용하기

    성경을 해석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문자적 의미에만 머물지 않고, 그것이 오늘날의 현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성경에서 정의를 강조하는 메시지는 오늘날의 사회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용될 수 있습니다.
     * 이웃 사랑의 원칙은 난민, 소외된 자, 가난한 자들을 돕는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교회는 단순히 말씀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그 말씀을 사회 속에서 실천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결론

    성경 해석은 단순히 문자적 의미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그 말씀이 기록된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여 해석해야 합니다.
    이는 기독교인의 사회적 참여와 역사적 책임과도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성경은 단순한 종교적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기를 원하시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성경의 가르침을 사회 속에서 실천하며, 정의와 사랑을 이루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합니다.
    성경 해석이 단순한 신학적 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 삶으로 이어질 때,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Text와 Context

    hermeneutics

    성경해석의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근원적인 대상이 있다면 Text, 즉 본문입니다.
    성경이라는 텍스트가 없다면, 성경해석이라는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성경을 성경해석의 출발점이며 또 종착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통된 출발점과 도착점을 가진) 성경해석이지만, 그 여정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경우의 수들이 매우 많습니다. 다시말해 해석의 결과가 천차만별일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그리고 이 다양한 해석들은 다양한 이해를 넘어서, 상이한 결과들까지도 야기합니다. 동일한 본문에 대한 너무도 다른 해석과 주장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때문에 성경해석의 시작과 끝은 성경텍스트이겠지만, 그 여정의 완성은 Context, 즉 문맥과 배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문맥과 배경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첫째로는 우리들에게 매우 익숙한 고대근동의 이해가 그렇습니다. 성경이 집필되던 시기의 시대상과 또 당시에 통용되던 문학적/문화적/지리적 이해 등이 그렇습니다. 흔히 성경의 여러 이야기나 이미지들을 다른 문화권의 작품들과 비교하는 작업이 좋은 예입니다. 둘째로는 성경본문을 집필하던 (인간)저자의 의도와 그 공동체의 신학적/신앙적 개념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이해는 성경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닌, 인간이 창작한 모든 종류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매우 자연스럽고 또 필연적인 현상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의 영상을 먼저 시청해보겠습니다. 이 영상은 무엇을 말하는 영상인지를 생각하시면서 시청하시면 되겠습니다.

    보셨다시피 이 영상은 현대의 어느 감독이 만든 영화 중 한 대목을, 어느 유튜버가 추출 및 편집한 결과물입니다. 21세기 홍수처럼 쏟아지는 다른 영상물들과 비교해볼 때, 원본 영상물과 편집본 모두 그렇게 높은 수준의 퀄리티를 가진 영화는 아닙니다. 어쩌면 B급 영화 수준의 매우 일반적인 작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용도 지루하기 그지 없습니다. 어린 소년이 거대한 장수를 대상으로, 돌팔매질을 한다는 상황설정이 황당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그럴싸한 전쟁장면 없이,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결과가 비평가들의 지탄을 받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아마도 저급 코미디 영화라는 평가를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제작 의도와 감독의 메시지를 이해한다면, 해당 영상은 다르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특별히 이 영상이 담아내려고 하는 것이, 특정 공동체의 신앙과 신학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영상미나 촬영기법등은 더 이상 핵심 평가 요소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비록 이 영상에서 표현하지도 않았고, 또 특정 대사로 담아내지도 않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선이해 할 때, 이 영상의 의미와 가치는 달라질 것입니다. 마치 거친 글씨로 쓰여진 편지이지만, 그 편지가 자녀를 향한 노모의 손글씨 편지일때 느낄 수 있는 감동처럼 말입니다.

    성경해석의 여정도 이와 비슷합니다. 본문의 배경을 이해함에 있어서, 그 본문을 집필하고 또 전수하였던 이들이 가졌던 고백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적이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그 공동체만의 특수한 고백를 선이해하지 않고서는, 해당 본문의 온전한 평가와 해석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선이해가 없는 해석자들에게는, 성경 본문이 단순한 짜집기의 B급 창작물로 밖에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신앙고백이라는 관점을 이해하는 해석자들에게는, 해당 본문의 의미와 가치는 심히 다를 것입니다. 결국 성경해석의 여정이란, 성경을 고대의 단순한 역사적 문서로만 볼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그 성경을 간직하고 전수하던 이들의 신앙적 문서로도 볼 것인지의 (선택/해석/평가/수용)문제입니다. 때문에 성경해석은 신앙고백의 문제이자 신학적 관점의 갈림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어떤 선택지를 택하든 그것은 해석자들의 권리겠지만, 그 평가와 해석적 결과물이 판이하게 다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말해 컵에 들어있는 물을 그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인식할 수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경해석은 신학해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낙관론자: 물이 반이나 남았군 / 비관론자: 물이 반밖에 남지 않았군 / 타노스: 물이 딱 완벽하군

    만약 여기까지의 논리전개를 잘 이해하시고 따라오셨다면, 신구약성경의 입체적 해석을 위해서, 그 당시 유대인들의 신앙고백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은 거의 필수적인 작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수님도 유대인이셨고, 심지어 사도 바울도 유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나 아브라함도 더할 나위 없는 유대인이자 유대인들의 조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나타나는 그들의 고백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결과물을 단순한 시대적 유산물이 아닌, 신앙적/신학적 메시지를 전달한 일종의 통로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 신앙고백이 어떻게 또 얼마나 지속되어 왔는지를 비교 연구하는 것도 성경해석의 또 다른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유대문헌과 유대학 연구는 좋은 예입니다. 우리 해석전통에 유의미한 기여가 될 줄 믿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세계관적 성경 읽기》
    콘텍스트로 나아가면, 텍스트는 어떻게 되나요?

             11000 세계관적 성경읽기 / 전성민 지음 / 성서유니온 펴냄 / 11,000원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자기 생각이나 관점을 성경 메시지로 오해하곤 한다.
    아무리 성경을 객관적으로 읽어낸다고 한들, 읽는 이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경험을 성경 이해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떤 성경읽기는 전체주의적 사고방식과 억압적 이데올로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를 극복할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인 벤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전성민 원장은 이 책을 통해 ‘세계관적 성경읽기’를 제안한다.
    ‘세계관적 성경읽기’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전체주의적 사고방식과 억압적 이데올로기에 빠지지 않고 이 시대에 성경을 적절히 읽을 수 있는지 고민하는 작업이다.

    저자는 성경읽기 태도로 ‘겸손함’을 강조한다.
    “성경을 나의 입장이 아니라 저자의 세계관 속에서 이해하려는 성실함과 나의 읽기가 틀릴 수 있다는 겸손함을 가지고 성경을 읽어야 한다”며, 세계관적 성경읽기를 “좋으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긍정하며 타자와 겸손히 대화하는 성경읽기”라고 정의한다.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나의 신앙고백을 다르게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이 흥미롭다.

    “우리가 “나와 언어와 신앙과 이상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볼 수 없다면, ‘내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고백과 달리 우리는 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107쪽)

    성경읽기는 결코 골방에서 벌어지는 ‘사사로운 행위’에 그칠 수 없으며, 이웃의 필요와 창조세계에 관심을 두는 ‘공적인 행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2019년에 최종원 교수의 《텍스트를 넘어 콘텍스트로》(비아토르)가 출간된 이후 강의에서 나온 “콘텍스트로 나아간 다음 텍스트는 어떻게 되나요?”라는 질문에 답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 부제도 ‘콘텍스트를 품고 다시 텍스트로’이다. 이 책은 “콘텍스트에서 생긴 질문을 품고 텍스트를 읽을 때에만 텍스트가 살아난다”고 밝힌다.

    후반부에는 ‘세계관적 성경읽기’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살펴보는 작업과 한국 기독교가 추구해야 할 자리와 방향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룬다.
    한국 기독교가 ‘평화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혐오와 차별, 독선과 대결을 넘어 사랑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전해진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텍스트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성경해석과 텍스트)

    ◈ 키에르케고르의 읽기와 성찰에 대한 세 가지 비유담

    야고보서 1:22~27 :

    키에르케고르는 사람이 자기를 보기 위해 거울 표면을 검사하는 것을 넘어설 경우에만, 말씀을 들여다봄으로 유익을 얻는다고 하였다.
    ‘거울 이미지’는 우리에게 현대 해석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텍스트 안에는 독자의 해석 활동과 별개로 독립되어 있는 어떤 실체를 반영하는 무엇이 있는가 아니면 텍스트는 오로지 독자의 실재를 반영할 뿐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연애 편지(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이상한 말로 쓰인 편지를 받은 한 남자에 관한 것) :

    언어적이며 역사적인 학문적 작업은 진짜 읽기에 해당되지 않고, 이러한 작업은 거울을 통해 거울 안을 들여다보기보다는 거울 면을 바라 보는 것과 같음. 이 비유를 통해 근대 성경 비평의 위험 제안

    왕의 칙령 : 공포된 왕의 조례에 순종하는 대신 새로운 해석을 하는 신복들에 대한 이야기

    키에르케고르는 이 세 가지 비유를 통해 독자들에게 이해를 추구하면서‘신앙 안에’있는지 자신을 살펴볼 것을 권유하고 있다.
    이 비유담의 교훈은, 독자들이 해석의 특권과 책임을 진지하게 취급하기를 중단했으며 해석의 목적이 더 이상 우리 자신이 아닌 타자로부터 온 메시지를 회복시키고 그 메시지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해 준다.


    ◈ 철학과 문학 이론 : 플라톤에서 포스트모더니티까지

    ‘포스트모던적’ 조건-해석 이론과 실천에 관한 오늘날의 논의는“의미에 대한 불신(incredulity toward meaning)이라 할 수 있다.

    1) 의미에 대한 불신

    ① 의미란 무엇인가?

    ※ 플라톤의 대화록「클라툴루스」

    ◎ 헤르모게네스(소피스트들의 제자) : 단어들은 그저 관례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이기에 단어는 사물의 본성에 대한 믿을 만한 안내자가 되지 못함. 언어를 임의적 관례들의 체계로 봄 ➡ 소쉬르의 언어학에 영향을 미침

    ◎ 크라툴루스 : 전부가 아니면 포기하는 입장. 이름은 사물에 대한 완전한 표현 아니면 그저 불명료한 발음에 불과하다고 주장.‘지시로서의 의미’에 대한 근대적 강조와‘의미의 무규정성’에 대한 포스트모던적 강조점을 담고 있음. 사물들에 해당되는 무상성을 기호들에게도 적용. 언어도 세계도 계속 변화하는 흐름 가운데 있기에 아무것도 참되다 할 수 없음

    ◎ 소크라테스 : 언어는 관례적이기도 하며 본성적이기도 하다는 중간 입장을 전개. 그는 어원들 또는 단어의 기원에 호소하며 언어를 흉내내는 소리라 함

    ② 필자의 의견 :‘의미’는‘명명하기’이상이라는 현대 사상가들의 의견에 동의하며, 참되게 말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옹호하는 플라톤의 관심사를 계속해서 공유하지만, 플라톤과는 반대로 언어와 언어 해석의 문제에 대해 신학이 갖고 있는 연관성을 쉽게 기각하지는 않음

    ③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의 생각

    ◎ 언어와 실재에 대한 진리는 유동적이라는 것

    ◎ 마골리스 :“실재는 불변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흐름인가?”. 해석이란 어떤 객관적 실재에 대해 주관적인 주해를 다루는 것이 아닌 텍스트의 의미를 구성하는 것

    2) 현대 철학의 문학적 전환

    ① 철학의 문학적 전환

    ◎ 자크 데리다(해체주의의 아버지) : 해체는 모든 형태의 담론에서 작용하는‘텍스트성’을 탐구함으로 과거에 철학과 문학 사이에 있던 단단하고 견고한 경계선을 흐리게 만듬

    ◎ 중심과제는 해석자들이 무엇을 쫓고 있는지를 기술하고 설명하는 이론적 작업.

    ◎ 해석은 텍스트에서 의미를 파악하는 실천적 작업에 국한시켜서는 안 되며, 해석자의 상황을 자리매김하는 정치적 작업에까지 확대시켜야 한다.

    ② 다양한 본문 해석 이론과 실천 배후에 자리 잡고 있는 철학적 쟁점들

    ◎ 형이상학에 대한 문제 : 텍스트에 진짜 무엇인가가 있는지의 문제

    ◎ 인식론의 문제 : 텍스트에 알 수 있는 것이 있는지의 문제

    ◎ 윤리학에 대한 문제 : 텍스트에 있는 내용을 가지고 독자들이 무엇을 하느냐 하는 것

    ➜ 이 문제들은 “인간이 된다는 것, 의미의 작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제기

    ③ 해석학의 위치

    ◎ 과거 해석학은 학문의 신데렐라

    ◎ 19C에 와서야 학문의 무도회장에 초청 받음(해석학은 인간 이해 일반에 대한 연구가 됨)

    ◎ 20C 후반에 와서 해석학은 모든 것을 텍스트로 다루게 됨 ➜ 해석학은 역사 의식의 사촌이며, 실재는 언어와 역사와 문화와 전통에 의해 매개되어 있는 해석되어야 할 텍스트다.

    ◎ 해체주의, 문예 비평 철학자들에 의해 해석학에 대한 매력이 점차 없어져 감

    ◎ 데리다(문예 비평 철학자들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의 주장 : 반성이나 자기 반성에 의해 자신들의 제한된 관점들을 넘어 세계와 자신을 신이 보듯 볼 수 없다고 주장

    ◎ 니체에게 예술가는 최상의, 가장 정직한 철학자, 즉 창조적 해석자임

    3) 권위와 이데올로기

    ① 데리다의 해체 전략 배후에 있는 동기 : 권위에 대한 부당한 호소와 권력의 부당한 행사들에 대한 경각심에서 비롯됨. 확정된 또는 정확한 견해해 도달했다고 으스대는 철학자와 주해자에게 도전

    ② 인문학에서 권위의 문제, 즉 역사와 문학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는 인간성 자체에 관한 물음과 연관되어 있다. 텍스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한 결정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 의미와 해석 : 문학적 지식의 도덕성

    ▶ 해석학은 모든 것이 일종의‘텍스트’인 한, 즉 해석을 요청하고 있는 인간 삶의 표현인 한, 삶의 모든 것에 관련되어 있다.

    1) 의미와 해석

    ◎ 전통적으로 해석은‘의미’를 끄집어 내는 절차를 가리키는데, 의미라는 용어에 대해 최근의 학자들은 모라토리움을 요구함 ➜ 텍스트를 가지고 하는 많은 일들을 단지‘의미’라고 부르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기에

    ◎ 한 가지 해석을 하나의 선택안 이상으로 간주하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문학적 지식이 진실로 가능하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필자는‘의미’라는 용어를 채택하기로 결정함

    2) 하비(Harvey)와 피쉬(Fish)

    ◎ 하비의「역사가와 신자 : 역사 지식의 도덕성과 기독교 신앙」: 신념이 역사적 탐구를 왜곡시키는 효과를 가짐. 하비의 지식의 도덕성을 뒷받침하는 가치관은 계몽주의에서 비롯. 도덕적 신념은 합리적 평가와 정당화 과정을 거쳐야 함. 비판적으로 해석된 현재적 경험이 과거에 대한 주장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됨. 하비는 의심이 믿음보다 더‘도덕적인 것’이라고 결론 내림

    ◎ 피쉬의「이 수업에는 텍스트가 있는가」: 독자의 외부에 존재하는 텍스트 내부의 의미 같은 것은 전혀 읽을 수 없고, 의미는 독자의 읽는 활동 이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읽는 활동의 산물임.

    3) 성경 연구와 관련한 주해자들의 싸움

    ◎ 해석학에 대한 피쉬의 접근 방식은 성경에서 권위를 제거한다

    ◎ 해석은 궁극적으로 텍스트가 아닌 독자의 정체성에서 그 단서를 얻음. 독자의 해석 체험을 지배하는 것은 정전(canon)이 아닌 공동체

    4) 이 책의 목적

    ◎ 읽는 자들이 정당하고 책임성 있게 성경에 대한 문학적지식을 획득할 수 있을 가능성을 명시하고 옹호

    ◎ 텍스트에 어떤 의미가 있고, 그 의미가 읽는 자에게 알려 질 수 있으며, 읽는 자들은 그 의미를 알고자 노력해야 함을 확언하기 위함

    ◈ 비평의 세 시대 : 책의 평면도

    ▶ 문학 비평의 역사 : 저자, 텍스트, 독자에 차례대로 몰두해 왔던 역사

    ▶ 필자가 현대 해석학에 대한 주요 도전을 다루는 이유

    ◎ 전통적 형태의 주해와 해석학에 대한 도전들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도전들에 정직하게 대면해야 하기에

    ◎ 현대 해석 이론의 위기는 사실상 신학적 위기이기에

    ◎ 실천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1) 저자의 시대 : 해석학적 실재론과 비실재론

    ◎ 슐라이어마허의 해석의 목표 : 저자가 이해하듯이 혹은 저자보다 텍스트를 더 잘 이해하는 것

    ◎ 해석학적 실재론 : 해석에 선행해서 존재하는, 텍스트 속의‘거기에’존재하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주장. 무엇인가는 해석자에게 알려 질 수 있으며, 해석자는 그것을 책임감 있게 다루어야 한다

    ◎ 해석학적 비실재론 : 의미가 해석 활동에 선행한다는 점을 부인하고 해석의 진리는 읽는 자의 반응에 의존하다고 함. 세계 또는 텍스트의 의미는 생각의 구성물이라고 주장

    ◎ 필자의 주장 : 의미가 일종의 행위 형태라고 주장하며, 저자성 개념이 궁극적으로 신학적임 것임을 보여 주고자 함. 인간의 저자성은 성육신과 계시의 행위들을 통해 자신을 전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근거하는 것

    2) 텍스트의 시대 : 해석학적 합리성과 상대주의

    ◎ 1940년대 신비평은 저자에 대한 흥미를 잃어 버리고 텍스트의 형식적 특징에 초점을 맞춤, 1960년대 구조주의 비평학자들은 텍스트의 역사적 정황보다 텍스트의 언어적이며 문학적인 관례들을 연구

    ◎ 텍스트 지향적 해석 방법은 텍스트에 내재해 있는 뜻을 기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함. 이 방법의 목표는 텍스트 자체의 형식과 구조, 즉 텍스트에 대한 지식을 설명하려는 것

    ◎ 텍스트의 시대에서 비평적 초점은 해석적 합리성의 성격으로 옮겨 감.

    ◎ 필자의 주장 : 해석 과정이 어떤 합리적 절차들에 의해 지배되며, 텍스트를 복합적 문학 행위로 보며 정경적 차원을 비롯해 다양한 차원을 존중하는‘두터운 기술’의 과정을 통해 의미가 적절하게 밝혀질 수 있다

    3) 독자의 시대 : 해석학적 책임성인가? 자유로운 놀이인가?

    ◎ 1970년대와 80년대 텍스트 실증주의를 배격하고 대신 독자의 역할을 검토하기 시작.

    ◎ 독자 반응 비평은 텍스트가 독자가 구성하거나 또는 해체하기 전까지는 미완료 상태라는 텍스트의 미완결성을 강조함. 우리는 사회적이고 문화적 편견들로 구성된 명확히 구획되어 있는 틀 가운데서 텍스트를 읽음.

    ◎ 필자의 주장 : 해석 원리에 대한 한 사람의 선택의 배후에는 궁극적으로 자신에 대한 이해가 그리고 적어도 암묵적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놓여 있다. 더욱이 문학적 지식의 도덕성은 해석자의 덕성이 없다면, 불충분하기 짝이 없다. 윤리적 해석은 일종의 영적 실천이며, 이해의 영은 바로 성령. 의미의 윤리학에 대한 논의에 기여하는 신학 교리는 성령론과 성화론

    ◈ 어거스틴주의 해석학

    ▶ 신학자가 의미의 문제를 가지고 씨름해야 하는 이유?

    ◎ 신학에 해석적인 차원이 담겨 있고, 해석에 신학적 차원이 담겨 있기에

    1) 신학의 해석적인 차원 : 신학은 텍스트 중심의 학문으로, 성경의 권위에 대한 질문과 성경 해석에 대한 질문은 실제적으로 서로 분리할 수 없음. 텍스트에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하는 것은 교회에게서 축적된 부를 박탈해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

    2) 해석의 신학적인 차원

    ◎ 포스트모던 독자는 더 이상 하나님이나 저자를 믿지 않으며, 현재의 해석학적 불가지론적 분위기는 신학적 도전을 나타냄

    ◎ 신학은 성경 해석에 대해서만 아니라 일반 해석학에 대한 논의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을 가지며. 신학은 텍스트와 독자 각각의 권리에 관한 토론과, 문화를 촉진시켜 주며 문화가 개발해 내는 가치들에 대한 토론에 기여

    3) 나는 이해하기 위하여 믿는다

    ◎ 우리는 믿는 존재, 우리의 믿음을 심화시키고 입증하기를 추구하는 존재들임. 텍스트에 의미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 것은 신앙 행위임.

    ◎ 해석하게 대한, 의미의 실재에 대한 필자의 어거스틴주의적 변호와 다른 두 가지 반대 입장

    a. 텍스트를 이해할 때 저자의 의도가 아닌 다른 열쇠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헤르메스주의자

    b. 의미와 이해는 더 이상 성취 불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냉소주의자들

    ➜ 우리는 텍스트라는 거울을 들여다 볼 때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알게 될 수 있다

    ◎ 폴 리쾨르의 해석학적 순환 : 믿기 위해서 이해하야 하며 이해하기 위해서 믿어야 한다.

    ◎ 해석자의 신앙 고백 : 나는 해석학적 실재론 ‧ 합리성 ‧ 책임성을 믿는다.

    ◎ 어거스틴의 저작들이 문학적 지식의 기독교적 도덕성을 뒷받침 해주는 신학 형성 작업에 주는 지침

    a. 언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을 믿음(언어적 기호들을 통해 의미를 전달)

    b.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얻는 이해가 단어들 자체보다 훨씬 중요함

    c. 모든 이단설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서술 : 텍스트와 그에 대한 주석을 구별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것은 가장 우선적인 해석학적 이단설일 것

    d. 문학적 이해의 도덕성과 관련해 최상의 해석학적 덕목인, 사랑을 옹호함 : 해석학적 첫 반응은 저자에 대한 사랑이 되어야 함

    ◎ 텍스트는 의미의 보고

    ◎ 어거스틴의 해석학적 공리 :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가장 많이 낳는 해석을 선택하라!

    ◎ 필자가 추천하는 해석학적 덕목 : 믿음, 소망, 사랑, 겸손

    ◎ 좋은 해석학은 좋은 이웃을 만드는데, 해석학에서나 윤리학에서 황금률은 텍스트들, 사람들, 하나님을 사랑과 존경으로 대하는 것.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컨텍스트의 4 요소 (4 Elements of Context)

     4  4 Elements ofContext

    컨텍스트 쇼핑, 컨텍스트 검색, 컨텍스트의 시대 (Age of context)까지 이제 컨텍스트라는 용어가 넘쳐난다. 그런데 컨텍스트란 대체 무엇인가? 이 포스트는 컨텍스트의 확장된 의미, 속성, 본질을 나누기 위한 글이다.

    쉬운 이해를 위해 컨텍스트를 4가지 요소(발견, 선택, 경험, 공유)로 정리했다. 편의상 구분을 했지만 실제로 4요소는 끊김이 없이 발현된다는 점, 컨텍스트란 연결을 만들며 진화하는 하나의 ‘상태’라는 점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므로 이 4요소는 사업자(미디어)가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 컨텍스트는 앞으로 모든 비즈니스의 핵심이 될 것이다. 하지만 너무 성급하면 본질을 보기가 어렵다. 컨텍스트를 사용자 관점에서 차근히 살펴보고 그 의미를 함께 나누는 시간이 되기 바란다.

    (*일러두기: 쉬운 이해를 위해 방송 프로그램을 사례로 다루었으나 ‘연결의 6하원칙과 IoT 네트워크‘에서 언급한 ‘컨텍스트 네트워크’를 포함하여 컨텍스트의 쟁점은 모든 비즈니스에 적용된다. 여러분들의 피드백에 따라 필요한 경우는 다른 비즈니스 사례도 추가하여 논의하기로 한다.)

    전통적 미디어 환경의 컨텍스트

    예전에는 컨텍스트가 사업자에게도, 사용자에게도 간단했다. 95년도 국내 드라마의 전설을 만든 SBS 24부작 ‘모래시계’의 컨텍스트를 생각해보자. 일명 ‘귀가시계’라는 별명은 전통미디어에서 컨텍스트가 어떤 특성을 지니는지 한마디로 암시한다.

    프로그램은 편성표가 24시간, 주간 단위로 나와 있으니 수목 밤 10시에 어김없이 발견될 수밖에 없다. 지금이야 본방사수 개념이 줄어들어 시청률 10%도 많다고 하지만 20년전 상황은 달랐다. 주로 지상파 3사가 저녁시간을 좌우하니, 이시간에 무엇을 할(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어렵지 않았다. 심지어 최민수가 ‘나, 떨고 있니?’하며 죽어가던 대목에서 순간 시청률은 75%에 달했다.

    SBS 드라마 모래시계. 프로그램을 발견, 선택, 경험, 공유하는 컨텍스트가 비교적 간단했던 시절이다.

    콘텐츠를 시청(경험)하는 컨텍스트는 어떤가? TV가 있는 거실에 모여 앉든, 방에서 혼자 보든, 방법은 많지 않았고 정전이 되거나 누군가 채널을 돌리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는 경험이었다. 콘텐츠만 좋다면 그 콘텐츠를 경험하는 컨텍스트 따위는 큰 고민거리가 아닌 것이다.

    콘텐츠에 대한 공유는 집, 학교, 직장에서 산발적으로 이뤄졌다.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하며 재잘재잘 수다를 떨면 이야기는 기록도 없이 사라진다. 그 모임에 없었던 사람들은 내가 어느 대목에서 울었는지 알 수 없겠지만 그래도 잔뜩 수다를 떨었으니 마음만은 후련할 것이다.

    컨텍스트, 사용자와의 교감이 시작되다

    그러나 연결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물리적 시공간 개념은 해체되었다. 방송 프로그램은 주간 편성표라는 공간에 매여 있지 않고 24시간의 규칙안에 순차적으로 담겨 있지 않다. 신문기사가 종이신문의 지면을 비집고 들어갈 필요도 없고 1면이라는 공간은 유일하지도, 절실하지도 않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1면이 생겼고 우리의 프라임타임은 매일매일 시시각각 변한다. 이처럼 시공간의 해체와 함께 물리적 유통 채널 위에 군림해 온 모든 사업자들의 전통적 권력은 해체되었다.

    컨텍스트의 발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일어난다. 세상의 가치가 ‘관계’ 기반으로 재편되었기 때문이다[1]. 기존의 단순하고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던 컨텍스트는 미디어에서,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시공간의 해체속에 컨텍스트는 무한대로 확장되었다.

    컨텍스트의 확장된 정의

    여기서 컨텍스트란 커뮤니케이션을 둘러싼 모든  정보와 환경으로, 주어진(given) 환경으로서의 컨텍스트(시공간, 주변정보 등 실시간 상황), 사용자의 경험, 체험, 학습 등 커뮤니케이션에 영향을 미치는 사용자의 기억 정보[2], 나아가 사용자의 참여를 통해 계속 연결되고 진화하는 컨텍스트 모두를 포함한다.

    “Context shapes language and language shapes context. […] Context is not simply a constraint on language, but also a product of language use.” [Duranti & Goodwin, Rethinking context: Language as an interactive phenomen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2, p.30]

    컨텍스트가 단순히 언어를 규정하는 조건(제약)이 아니라 ‘언어사용의 생산물’이기도 하다는 언어학적 정의는 미디어 관점에서도 유효하다. 컨텍스트를 단순히 미디어를 사용하는 시간, 공간적 조건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 과정 및 결과에서 발현되는 작용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사용자에게 ‘주어지는 컨텍스트 (contexte défini, conditionnant, donné)‘의 수는 무한대다. ‘지금, 여기(시간과 공간)’ 뿐만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경험과 지식을 쌓았는지, 그 밖의 무수한 상황(관계, 역할 등)에 따라 앞으로의 경험도 당연히 달라진다. 그렇게 각자는 유일한 순간을, 그 순간의 연속으로 삶을 살아간다. 미디어 환경에서 대화, 거래, 구매, 검색, 감상 등은 각각 다른 컨텍스트에서 발생한다. 알고리즘은 우리의 경험을 따라간다.

    우리가 보는 검색 결과 화면, 페이스북의 뉴스 피드, 아마존의 상품 추천 페이지는 모두 다르다. 각자의 데이터의 기록이 만드는 각자의 세상이다. 사용자의 사소하고 개인적인 모든 상황과 찰나가 모여 전체(universe)를 구성한다. 다만 사례 하나, 상황 하나만을 놓고 보면 참 시시하고 핵심의 주변처럼 보일 뿐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점은 이러한 컨텍스트가 사용자와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진화한다는 점이다(context construit, transformateur, évoluant)[3]’. 사용자 개개인의 참여 활동(대화, 거래, 구매, 검색, 감상 등)은 새로운 연결을 낳고 그것은 곧 ‘새로운 컨텍스트의 발현’을 의미한다. 아래의 킨들 사례가 그렇다.

    나의 밑줄이 정보가 되고 책의 컨텍스트를 진화시키는데 기여한다.

    책을 읽다 보면 어떤 대목에서 몇명이 밑줄을 쳤는지 발견하게 된다. 나의 밑줄도 이렇게 “인기있는 구절“이라는 정보를 생성하는데 기여한다. 나는 혼자 책을 읽지만 그 무심한 소비 과정이 다른 사람의 의사결정과 소비의 경험을 바꾸는 컨텍스트를 새롭게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독서에 대한 내 경험도 진화한다. 오직 참여만이 컨텍스트를 발현시킨다. 각자의 유일한 컨텍스트들이 만드는 매 찰나 사소한 연결들이 결국은 컨텍스트를 진화시키는 것이다.

    사용자의 개입으로 발현되는 컨텍스트는 발견, 선택, 경험, 공유로 그룹핑될 수 있다. 이 요소들은 독립배타적이지 않고 순차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끊김이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다중적으로 발생한다. 컨텍스트란 정지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흘러가는 하나의 상태(status)다.

    해석에 따라 이들을 컨텍스트의 하위 컨텍스트 또는 컨텍스트의 종류 또는 사용자 경험을 통해 결과적으로 발현되는 컨텍스트, 컨텍스트 비즈니스의 구성요소 등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4         4  action      4               status

    (오가닉) 미디어에서 컨텍스트를 규정하는 4가지 작용(action)을 구분하였다. 발견, 선택, 경험, 공유 컨텍스트는 사용자와 상호작용으로 발현된다.

    1. 발견하는 컨텍스트 (Discovering context)

    발견 컨텍스트는 콘텐츠, 제품, 메시지 등을 만나는 접점이자 계기다. 예전에는 편성표로 시청자를 만나고 광고로 주목을 받았다면 이제는 그 접점이 도처에 깔려 있다. 페이스북에서 지인이 이 노래에 얼마나 감동했는지, 한소절 적어올린 포스팅은 ‘도대체 어떤 노래길래?’ 하는 궁금증을 유발한다. 만약 링크를 클릭해서 들어갔는데 전혀 공감도 유익함도 없었다면 이것은 발견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지인이 얼마나 감성적인지는 발견했을지 모르겠다.)

       Kpop Star 4

    페이스북의 지인이 공유한 Kpop Star 4. 여기서 발견한 정승환, 박윤하라는 어린 가수들의 팬이 되어버렸다. 이런 발견은 때때로 돌아다니지 않아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문득 나에게 온다.

    발견의 컨텍스트는 문득 나에게 온다. 사용자가 헤매고 검색하고 돌아다니다가 만날 수도 있고 이런 수고가 없이 뜻하지 않은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런데 발견의 컨텍스트에서 완전한 우연이란 없다. 아니, 사용자는 뜻밖에 문득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지만 그것은 페이스북의 뉴스피드 알고리즘, 검색엔진 알고리즘, 콘텐츠의 추천 알고리즘 등을 통해 연결된 결과다. 이러한 발견의 경로도 제품, 정보, 콘텐츠 경험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2. 공유하는 컨텍스트 (Communicating context)

    그리고 이렇게 발견된 콘텐츠, 제품, 정보 등은 나 자신을 통해 어딘가로 연결되고 공유되어 갈 것이다. 직접 공유버튼을 누르거나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도 있지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요소는 도처에 깔려 있다. 지인이 공유한 동영상을 클릭하는 순간 그 조회수가, 지인의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순간 그 공감이, 그리고 이 가수들의 노래를 검색하고 챙겨 듣는 모든 흔적들이 이 콘텐츠를 누군가에게 (데이터로, 정보로, 내 목소리로, 글로) 전달하는 행위가 된다.

    컨텍스트가 중요한 환경에서 커뮤니케이션 활동은 콘텐츠, 제품, 정보의 소비활동과 구분되지 않고 양방향으로 연결되어 있다. 아니, 끊김이 없이 연결되기를 지향한다. 위에서 언급한 아마존 킨들처럼 각자의 밑줄이 ‘인기있는 구절’이라는 정보에 기여한다면 각자의 밑줄은 공유행위, 커뮤니케이션 행위다(보다 자세한 사항은 매개의 4가지 유형 참조).

    우리는 서로의 발견을 돕는 조력자들이다. 사업자는 이 조력자들이 더욱 그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커뮤니케이션 컨텍스트를 최적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발견의 경험은 매우 제한될 것이다.

    3. 선택하는 컨텍스트 (Choosing context)

    선택의 컨텍스트가 짧고 최적화되면 선택하는 과정 자체를 인지하기 어렵게 된다. 발견의 컨텍스트가 ‘문득’ 나에게 오는 것처럼 선택의 컨텍스트는 ‘저절로’ 부지불식간에 이뤄진다.

     TV         TV   IMDb

    아마존 Fire TV는 어떤 영상을 감상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줄여준다. Fire TV 시청자들의 평점과 IMDb 사용자들의 평점이 나란히 나와 있다. 또한 아마존 커머스와 같이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본 다른 영화’가 새로운 영상을 발견하는 컨텍스트로 이어진다.

    위의 이미지는 아마존 Fire TV에서 영화를 선택하는 컨텍스트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평점이 의사결정 시간을 줄여주는데 기여할 것이고, 아래 이어지는 추천 (이 영화를 본 사람이 본 다른 영화)을 통해 새로운 영화를 발견하는 컨텍스트로 이어질 수 있다.

    모든 것이 양적으로 넘쳐나는 시대에 사용자 혼자의 힘으로 어떤 제품과 브랜드, 서비스, 콘텐츠, 정보를 소비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물론 모든 것을 고객이 스스로 노동을 통해 선택하도록 방치하는 사업자들도 많다). 정확성, 최신성, 적합성 순으로 필터링하여 선택의 폭을 좁혀주는 검색엔진처럼 고객의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은 덤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 행위는 다시 검색 엔진의 성능을 높이고 다른 사용자의 검색 시간을 줄여주는데 활용될 것이다.

    결국 선택의 컨텍스트란 “다음에 뭐보지?, 다음에 뭐먹지?, 다른거 뭐사지?, 다음에 어디가지?”라는 질문을 하는 컨텍스트를 아예 죽여버리는 것이다.  끊김이 없이 다음 제품, 콘텐츠, 서비스가 ‘연결’될 때에만 가능하다. 물론 사용자의 컨텍스트(누구인지, 무엇을 보는지, 좋아하는지 등에 대한 데이터)를 알아야만 가능한 연결이란 것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4. 소비하는 컨텍스트 (Experiencing context)

    예전에는 제품, 콘텐츠, 정보재를 ‘경험’하는 컨텍스트가 비교적 제한되어 있었다. 콘텐츠는 주어진 것이고 일단 소비를 하게 하는 것만이 즉 시청률, 도달률, 매출만이 핵심 과제였을 때는 그랬을 것이다. 그 시각으로 보면 소비 컨텍스트는 TV를 볼 때 거실에서 모여서 보느냐, 쾌적한 쇼파냐, 지하철 퇴근길 스마트폰이냐 정도로 제한될 것이다.

    며칠전 Kpop 스타의 준결승전을 보느라 PC로 700원을 지불했다. 그 여정은 정말 멀고도 험했다. 시청할 수 있는 기기가 애플 제품들 뿐이었고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사용하지 않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결국 VM(Virtual Machine)을 통해 구매를 했지만 여기로 옮겨온 후에도 막다른 길에 대한 경험은 수차례 계속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새로운 콘텐츠를 ‘문득’ 발견하고 ‘저절로’ 선택, 지불하는 경험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대신 다시는 유료로 동영상을 보지 않으리라는 결심에 이르게 된다. 구매는 중요한 소비 컨텍스트다.

    네트워크의 끊김이 없이 얼마나 쾌적한 경험을 제공하는지,모바일로 보던 것을 집에 가면 TV로 이어서 보여주는지 등 경험의 컨텍스트는 수도 없다(물론 발견, 선택, 공유도 콘텐츠 경험의 컨텍스트로 간주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는 제품 소비(사용) 과정 자체에 국한하여 설명하고 있다).

    아래는 영화 펄프픽션의 유명한 그 장면, 우마써먼과 존트라볼타가 복고춤을 추는 장면이다. 안방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콘텐츠의 정보를 “X-ray“로 힐끔 거리며 시청중이다. 등장 인물, 배경, 배우의 다른 작품 등 모든 정보를 손안에 연결한다. 어디 TV뿐이겠는가?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제품을 사용하는 환경들이 모두 경험의 컨텍스트를 제공하며 우리의 매순간만큼 변덕스런 기분만큼 모든 컨텍스트는 유일하고 무한하다.

      Amazon Fire   TV

    침대에 누워 Amazon Fire로 영화를 시작했다가 ‘TV로 보기’ 버튼을 누르니 화면이 넘어간다. 보는 동안 장면마다 정보는 스마트폰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

    컨텍스트의 연결이 끊김이 없을 때 (Seamless context)

    모신문사에서 컨텍스트 연결을 강의하니 청중에서 ‘기자는 일일이 기사에 댓글을 달 시간이 없다’고 하소연을 한다. 4요소에서 살펴본 것처럼 컨텍스트를 발현시키고 연결하는 것은 사업자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연결이 반드시 댓글이나 좋아요도 아니다. 혼자 발품 팔아 어찌 지구 저편까지 소식을 전하겠는가. 우리는 사용자가 연결하도록 도와주는 역할만 수행하면 된다.

    콘텐츠에 그만한 가치도 있어야 하지만 컨텍스트의 4요소가 살아서 발현되도록 환경(사용자 인터페이스, 콘텐츠들의 관계, 데이터 분석 등)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사용자 관계, 콘텐츠 관계, 데이터 관계가 모이면 그것이 사업자의 자산 즉 네트워크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요소들이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단번에 발현된다면 컨텍스트 가치는 극대화된다. 아래 이미지처럼 말이다.

           4

    아마존 킨들 파이어에서 독서 중이다. 읽고 있는 책의 참고자료들과 연결되는 경험이다. 컨텍스트의 4가지 요소가 동시다발적으로 발현된다.

    종이책의 참고문헌을 보고 스스로 검색을 하고 서점을 찾아가 책을 직접 구매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아마도 논문을 써야 하는 특수 환경이 아니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관련된 책의 표지, 개요, 사람들의 평점이 함께 있고 클릭 한번으로 샘플 저장(내 온라인 책장에 책이 바로 담기는 경험), 심지어 구매를 하거나 지인들에게 바로 알릴 수도 있다면 어떨까?

    여기서는 새로운 것을 문득 발견하고 저절로 선택이 이뤄지며 (샘플을 클릭해서 서재에 담겼다면 이미 선택은 이뤄졌다) 독자들이 서로 암묵적인 도움을 주고 이 모든 컨텍스트가 다시 책을 읽는 경험 자체를 극대화 시켜준다. 4가지 요소가 동시다발적으로 부지불식간에 발현되며 여기서 나의 무의식적인 활동 (클릭 한번)이 새로운 컨텍스트를 스스로에게, 타인에게 연결시킨다. 컨텍스트가 흐르고 진화한다.

    컨텍스트의 본질에서 다시 출발하는 비즈니스

    지금까지 사용자 참여 관점에서 컨텍스트를 4가지로 그룹핑하여 살펴보았다. 컨텍스트는 쉽지 않은 주제다. 컨텍스트가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아직 정보미디어나 IT, 비즈니스쪽에서는 그 개념이 표면적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 영역이 언어학, 인지과학, 심리학, 사회학 등에서 지속적으로 다뤄지고 많은 융합 연구가 시도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미디어의 진화를 이해하려면 비껴갈 수 없는 영역이고, 사용자 경험(UX)을 논하자면 더욱 그렇고, 네트워크 시장에 대처하려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시공간이 해체되고 경계가 없는 오가닉 미디어 시대에 연결이란 바로 컨텍스트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컨텍스트는 결국 매우 사소한 사용자의 그리고 사용자에 의해 발현되는, 수도 없이 반복되는 상호작용의 결과이며 이 작은 작용들이 모여 미디어를 만들고 의미를 만들고 비즈니스를 만든다. 이에 예외가 될 수 있는 비즈니스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 글이 당신의 생각, 경험, 체험에 어떤 변화를 주게 된다면, 당신이 이 글을 발견하고 읽고 나누는 일련의 과정은 다시 이 글의 컨텍스트를 진화시키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물론 내가 여러분들의 참여를 측정하고 수렴하고 동반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말이다.

    <관련 포스트>

    * 글을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April 14, 2015
    Dr. Agnès Yun (윤지영)
    Founder & CEO, Organic Media Lab
    email: yun@organicmedialab.com
    facebook: yun.agnes, organicmedialab
    Twitter: @agnesyun
    Google+: gplus.to/agnesyun

    ———————-

    (*아직 더 읽을 힘이 남아있는 분들을 위한 각주입니다^^)
    [1] Context는 라틴어 ‘contextus, contextere’에서 출발했다. 여기서 ‘con-‘은 ‘함께(together)’를 뜻하고 ‘texere’는 ‘짜다(weave), 만들다’를 의미한다. 즉 컨텍스트는 이미 어원적으로 ‘함께 관계를 만들다’라는 의미를 내포해왔다고 볼 수 있다.

    [2] 이와 같은 관점은 언어학 (특히 화용론(Pragmatics))에서 논의하는 컨텍스트의 의미와 맥을 같이 한다. 우리는 ‘발화(utterance(énonciation))’보다 미디어 관점에서 컨텍스트를 살펴보고 있으나 사용자의 참여(engagement)와 경험(UX)의 확장된 의미에서 보면 상당 부분이 맞닿아 있다(D. Sperber, D. Wilson, 인지적 화용론 (Relevance: Communication and Cognition), 김태옥 등역, 한신문화사, 1993(원서출판: 1986))

    [3] 맹그노(D. Maingueneau)는 ‘담화분석사전(Dictionnaire d’analyse du discours)‘에서 담화와 맥락의 관계를 두 가지 대립/보완적 관점에서 정리한 바 있다. 이미 주어진 맥락이 담화를 규정하는 한편 담화 과정에서 상황이 지속적으로 재정의되고 맥락 또한 재구성된다는 점이다(“Le discours est une activité tout à la fois conditionnée (par le contexte) et transformatrice (de ce même contexte) ; donné à l’ouverture de l’interaction, le contexte est en même temps construit dans et par la façon dont celle-ci se déroule ; définie d’entrée, la situation est sans cesse redéfinie par l’ensemble des évènements discursifs.” (Patrick Charaudeau, Dominique Maingueneau, Dictionnaire d’analyse du discours, Edition du Seuil, 2002, p.135).





    사회의 각 분야가 날로 전문화되고 있어서 전문지식을 가진 감정인의 역할이 재판에서 점차 더 중요해지고 있다. 재판부는 전문적인 감정결과를 판별할 만한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피상적인 심리를 거쳐 감정결과가 상당 부분 받아들여지곤 하는 것이 현재 실정이다. 이제 감정인은 ‘법관의 보조자’라는 본질적 지위를 벗어나 실질적으로 판결의 결론을 좌우하며, 때때로 ‘법관의 소외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건설, 의료, 첨단기술분쟁인 경우에 이런 현상이 더 심하다. 이처럼 감정이 판결을 결정짓는 핵심 요인이 되었으므로 감정절차에 관하여 대리인은 어떤 점보다도 각별한 준비를 해야 한다. 감정절차의 준비과정을 순서대로 살펴보자.

     

    첫째, 감정 준비의 첫 단계는 ① 감정의 기준과 ② 감정 자료를 명확하게 정리하는 것이다. 예컨대 건물의 하자감정이라면 하자판정의 기준도면이 어느 설계도인지, 하자보수비 산정 시점은 어느 때로 할지 등 감정의 기준을 정해야 한다. 감정인이 검토할 자료도 감정대상과 관련성이 있는 것에 한정되어야 한다. 상대방이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을 자료로 제출하는지 살펴야 한다. 의료소송에서 치료 관련 서류를 내면서 ‘의심스러운 기록지’를 슬며시 끼어 제출한 경우도 보았다.

     

    1989년 검찰은 삼양식품이 라면에 공업용 우지를 사용했다고 발표하면서 회사 관계자들을 구속하였고 삼양식품은 하루아침에 도산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6년에 걸친 재판 끝에 식품위생법위반죄가 무죄로 확정되었다. 무죄의 근거는 감정의 대상인 우지를 수거한 방법이 잘못되어 그 결과에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엄청난 문제가 미세한 흠결 하나에서 뒤집히는 상황은 일반 감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감정자료가 적정한 것인지 세밀하게 검토하기 바란다.

     

    둘째, 감정기일에 감정의 기본요소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나는 감정이 필요한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을 고르라고 한다면, 서슴지 않고 1차 감정기일이라고 답할 것이다. 감정기준과 감정자료에 관하여 상대방과 협의를 하거나(간단한 사건의 경우), 협의가 안 되면 ‘감정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하여 감정인으로 하여금 감정의 기준과 자료를 확정하도록 해야 한다. 감정인이 감정의 전체 틀을 짤 때 당사자의 입장을 충분히 주장하여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 의견서는 법률 지식이 부족한 감정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평이하면서도 명확하게 쓰는 것이 좋겠다. 쌍방 의견이 달라서 감정인이 판단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쌍방 주장에 따라 복수로 감정하는 경우도 있다. 필요하면 감정 중간에 2차 의견서를 내는 것도 필요할 때가 있다.

     

    셋째, 감정인이 감정을 완료하여 감정서를 제출하면 당사자는 감정결과에 대하여 조회신청(실무상 사실조회라고 표현하지만 법적 성질은 감정보완신청이다)을 하여 다투게 된다. 하지만 일단 감정서를 제출한 감정인은 자신의 감정서에 관하여 철저히 방어적이 되어서 탄핵 효과가 크지 않다. 동문서답방식으로 일관하여 회피하는 감정인들이 종종 있다. 재판부가 이럴 경우 경고해야 하는데 이런 재판부가 별로 없었다. 감정결과에 모순점이 많으면 2차 감정인신문을 신청하여 법정에서 감정인 신문을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데 재판 실무상 허용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재판부가 보다 이를 넓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

     

    넷째, 감정결과가 매우 불합리하면 재감정신청을 해야 하는데 그야말로 좁은 길이다. 웬만한 사정이 없는 한 재감정은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는 증거보전 감정결과가 엉터리로 나온 사건에서 감정결과를 낱낱이 분석하여 2년간 다툰 끝에 재감정 결정을 받았고, 다시 2년 걸려서 위 감정을 뒤집는 재감정결과를 받아 승소한 적이 있다. 현재 실무상 합리적 기준에 미달하는 전문성이 부족한 감정인이 많은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감정에 대응하기 위하여 당사자 입장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은 옥상옥의 부담이지만 불가피한 면이 있다.

     

    나아가 현재 과학 기술 수준상 정확한 판단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지하철 2호선 당산철교가 붕괴의 위험성이 있다고 하여 철거되었는데 붕괴 위험성을 둘러싸고 ① 증거보전 감정은 3년 내 붕괴, ② 재감정은 60년 이상 사용 가능 결론을 내렸다. 두 감정결과가 워낙 차이가 나고 중대한 사건이라서 나는 당시 재판장으로서 ③ 3차 감정을 명하였는데 나중에 그 결과는 후자에 가까웠다.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사건에서의 감정 수준이 이런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수한 감정인이 선정되도록 특히 법원이 노력해야 한다.

     

    다섯째, 감정은 원칙적으로 소송이 진행되 어 쟁점과 기초 사실이 어느 정도 밝혀진 후에 하는 것이 좋겠다. 소송 초기에 감정신청을 하여 감정을 하였다가 나중에 쟁점이 바뀌거나 다른 사실이 밝혀지면 감정결과를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소송 제기와 동시에 감정신청서를 내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이는 잘못이다. 다만 대상이 소멸될 위험이 있거나 특별히 급박한 사정이 있다면 증거보전 신청을 하거나 또는 소송 초기에 해야 할 경우도 있다.





    엄마가 아들에게 “공부해라”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은 ‘언제 하였는가’에 따라 그 평가가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아들이 자야 할 시간인 밤 12시에 이 말을 했다면 엄마는 ‘무섭고 가혹한’ 사람이 되기 쉽고, 공부를 해야 할 아침 10시에 했다면 아들이 ‘게으른 학생’일 가능성이 높다. 이 사례에서 엄마가 아들에게 말을 했다는 것은 ‘텍스트’이고 말을 한 동기와 상황은 ‘컨텍스트’에 해당한다. 텍스트는 외적인 ‘사실’들의 모음이고, 컨텍스트는 사실의 진짜 의미를 밝혀주는 ‘맥락’이라고 하겠다.

     

    재판은 항상 인정된 ‘사실’을 판단의 출발점으로 한다. 하지만 동일한 사실(텍스트)이라도 어떤 상황에서 발생하였는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컨텍스트의 인정이 재판의 결론에 영향을 미친다. 내가 컨텍스트의 힘을 직접 경험한 사례 두 가지를 소개한다.


    # 식품회사 사장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냉장 식품의 포장을 비위생적으로 하여 부패한 식품을 판매했다는 것이 혐의 사실이었다. 압수된 식품의 사진을 보니까 포장이 약해 보이고 일부는 벌어져 있어서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 같았다(텍스트). 영세업자가 생산한 식품의 유통경비를 줄이려고 싸구려 포장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준비 미팅을 끝내면서 혹시나 하여 회사의 판매량을 물어보니까 동종 식품 업계 6위라는 것 아닌가! 당시 피의자의 회사보다 작은 업체가 광고를 활발히 하였는데 그 회사보다 판매량이 많았던 것이다. 회사의 규모를 대입하자 갑자기 이 사건의 실체가 달리 보였다. 이 정도 규모의 회사라면 상품 관리 차원에서라도 이런 식으로 포장할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컨텍스트). 이는 식품회사의 고의적인 행위가 아니라, 일부 대리점에서 실수를 하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구속영장심문기일에 이런 상황을 주장하였고, 구속영장은 당연히 기각되었다.

     

    # 공사업자가 공사 중단 시까지의 기성대금을 청구하였고, 도급인이 지체상금을 반소로 구하였다. 기성 공사대금 일부가 미지급인 사실은 다툼이 없었지만(텍스트), 공사업자는 도급인의 무리한 횡포를, 도급인은 공사업자의 시공 지연을 서로 주장하였다. 심리 결과 당시 도급인은 자금사정이 넉넉했던 반면에, 공사업자는 이 공사 이외에도 여러 곳에서 공사를 하면서 자금이 쪼들려 여러 하수급인들에게서 항의를 받았던 사정(컨텍스트)이 밝혀졌다. 도급인의 파이팅 넘치는 담당 직원이 공사업자의 하수급인들을 어렵게 찾아내서 이런 진술서들을 받았던 것이다. 공사업자의 부실하였던 경영 상황이 드러나자 컨텍스트가 명확해졌다. 결국 기성공사대금 미지급은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고 인정되어 도급인의 주장이 인용되었다.

     

    텍스트는 고정되어 있지만, 컨텍스트는 유동적이고 다의적(多義的)일 수 있다. 텍스트는 컨텍스트에 비추어 볼 때에만 실제 사정이 드러나고 이때 비로소 판단이 가능해진다. 결국 텍스트는 바꿀 수 없으므로 컨텍스트가 최종 판단을 좌우하는 열쇠인 셈이다. 따라서 변호사가 노력을 집중하는 대상은 ‘바꿀 수 없는 텍스트’가 아니라, ‘바꿀 가능성이 있는 컨텍스트’가 될 수밖에 없다. 컨텍스트는 외적인 사실이 발생했을 때의 상황과 원인들 가운데 제시되는 것에 따라 형성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컨텍스트를 효과적으로 구성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자료를 철저히 들여다보아 유리한 세부 사항들을 수집하는 것이 관건이고, 이들을 잘 엮으면서 상상력 한 줌을 얹는 것이 그 방법 아닐까. 당사자들은 서로 상반되는 컨텍스트를 내세울 때가 많으므로 상식과 감정에 맞는 자연스러운 컨텍스트를 주장해야 한다. 이렇게 간접적 정황사실을 잘 구성하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고려 없는 텍스트의 단순한 나열은 아무리 많이 하더라도 큰 힘이 없다. 항상 컨텍스트 단위로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보자.






    칭찬과 비난


    법구경 /  단단한 돌은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듯이
                   현명한 사람은 칭찬이나 비난에 흔들리지 않는다.

    숫타니파타 /  말과 행동과 생각하는 바가
                          그 누구에게도 거슬리지 않는 사람,
                          남들이 존경해도 우쭐대지 않고 교만하지 않는 사람,
                         남들이 비난해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올바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남들의 칭찬과 관심을 받기를 바라지 말라. 칭찬과 관심을 받으면 기쁘지만, 관심 받지 못하면 좌절하는 삶이란 남들의 말에 휘둘리는 나약한 자아를 대변할 뿐이다. 칭찬을 받거나 관심어린 시선을 받을 때를 조심할 줄 알아야 한다. 바로 그 때가 위험한 순간이다. 그것은 내 중심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중심 잡힌 대장부 수행자는 외부적인 칭찬이나 비난에 휘둘리지 않으며, 언제나 자기 중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칭찬에 크게 기뻐하는 사람일수록 비난에 크게 낙담하는 법이다. 그러나 칭찬에 크게 들뜨지 않으며 자신을 지키는 자는 설사 큰 비난을 받더라도 마찬가지로 거기에 휩쓸리지 않는다. 칭찬을 기대하지 않고, 비난을 싫어하지 않으며, 칭찬과 비난이 오더라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비난을 받기 싫다면 칭찬을 받고 싶어하는 그 마음부터 놓아야 한다. 칭찬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놓으면, 자연히 비난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놓여진다. 양 극단은 결국 하나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칭찬과 비난 그 어떤 것이라도 다 받아들이고, 내 안에서 다 녹여낼 수 있어야 한다. 칭찬을 듣더라도, 존경을 받더라도 크게 우쭐할 것 없고, 비난을 듣더라도 크게 좌절할 일은 아니다.

    ‘나 자신’ 스스로 중심이 잡혀 있는 사람이라면 남들의 말에 휘둘릴 것이 없다. 뿌리 깊은 나무나 큰 산은 아무리 비바람이 불더라도 흔들리지 않듯, 자기 중심이 딱 잡혀 있는 대장부 수행자라면 외부적인 그 어떤 말이나 경계에도 휘둘리지 않고 당당할 수 있다.








    칭찬과 비난, 어느 쪽을 더 많이 하시나요?

    미국 듀크대학교 연구팀은 사람의 뇌가 칭찬과 비난을 각각 다른 영역에서 다른 방식으로 처리한다고 밝혔습니다.
    비난처럼 부정적인 내용은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 영역에서 처리
    칭찬과 같은 긍정적인 내용은 편도 영역을 자극하지 않고 보다 논리적인 접근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다른 사람의 선한 행동에 대해서는 그저 우연으로 치부하는 반면 부정적인 행동은 고의로 한 일이라 여기며 감정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짙다고 합니다.

    그러나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비난보다 칭찬을 가까이해야 할 듯합니다.
    비난을 쉽게 내뱉고 칭찬에 인색한 사람보다, 비난은 자제하고 칭찬을 자주 하는 사람이 자신은 물론 주위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만드니까요.

    칭찬에 후한 사람이 되기 위해, 뇌의 작용 원리를 거슬러 반대로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다른 사람의 부정적인 행동은 우연이나 실수로, 선한 행동에 대해서는 이타적이고 배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칭찬도 비난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칭찬은 어떤 대상에 대한 장점을 말해주는 것이다.
    칭찬은 상대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잘못된 칭찬은 상대에게 부담을 주며, 역효과를 불러오는 경우도 있다.

    칭찬(compliment)과 역지사지(易地思之)

    칭찬(compliment)을 많이 하면 모든 것이 좋아집니다.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역지사지(put yourself in someone else's shoes) 하는 마음으로 칭찬하고 배려한다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긍정적으로 바뀌면서 행복이 찾아옵니다.

    1. 칭찬(compliment) 이란?

    1) 칭찬(compliment)의 정의

    칭찬(稱讚)이란, 좋은 점이나 착하고 훌륭한 일을 높이 평가하거나 또는 그런 유사한 말을 의미합니다. 칭찬(稱讚)의 한문적 해석은 일컬을 칭(稱), 기릴 찬(讚)입니다. 칭찬(稱讚)은 영어로 compliment, praise입니다.

    2) 영어 표현

    ① 칭찬받다  : win [receive, enjoy] praise, gain the good word, get praised

    ② 칭찬받을 만하다 : deserve to be praised, be praiseworthy, deserve praise

    ③ 칭찬을 듣다 : be praised, get [win] a praise

    ④ 칭찬을 받다 : be [get] praised, win praise

    3) 칭찬(compliment)에는 힘이 있습니다

    ① 자신에 대한 칭찬 : 자신을 칭찬하는 것은 자신감입니다. 스스로의 허물이나 잘못을 인정하면서 내면의 스스로에게 새로운 동기부여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자학하거나 자괴하는 생각과 마음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으며 만족과 긍정의 힘은 만들어 줍니다.

    ② 타인에 대한 칭찬 :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바다에서 사납고 포악한 범고래를 조련사가 공연장안의 관객들 앞에서 준비된 프로그램을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조련사가 바다에서 가장 무서운 포식자인 범고래를 이처럼 잘 따를 수 있게 조련을 하는 것은 조련사의 열린 마음으로 범고래를 신뢰하고 칭찬하였기에 가능했다는 책의 설명입니다. 상대에 대한 칭찬은 최악을 상황을 오히려 최상의 행복으로 만들어 주는 긍정적인 기능을 합니다.

    2. 역지사지(易地思之)

    1) 역지사지(易地思之)란?

    《맹자(孟子)》의 〈이루 편(離婁編)〉 하(下) 29장에 나오는 ‘역지 즉 개연(易地則皆然)’이라는 표현에서 비롯된 말로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역지사지 [易地思之]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2) 역사 속의 역지사지(易地思之)

    우(禹)는 중국 하(夏) 나라의 시조로 치수(治水)에 성공한 인물로 알려진 인물이다. 후직(后稷)은 신농(神農)과 더불어 중국에서 농업의 신으로 숭배되는 인물로 순(舜)이 나라를 다스릴 적에 농업을 관장했다고 전해집니다. 맹자는 우 임금과 후직은 태평성대에 세 번 자기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못해 공자가 그들을 어질게 여겼으며, 공자의 제자인 안회(顔回)는 난세에 누추한 골목에서 한 그릇의 밥과 한 바가지의 물로 다른 사람들은 감내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게 살면서도 안빈낙도(安貧樂道)의 태도를 잃지 않아 공자가 그를 어질게 여겼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맹자는 “우와 후직, 안회는 모두 같은 길을 가는 사람으로 서로의 처지가 바뀌었더라도 모두 같게 행동했을 것(禹稷顔回同道 … 禹稷顔子易地則皆然)”이라고 평하였습니다. 곧, 맹자는 안회도 태평성대에 살았다면 우 임금이나 후직처럼 행동했을 것이며, 우 임금과 후직도 난세에 살았다면 안회처럼 행동했을 것이라며 “처지가 바뀌면 모두 그러했을 것”이라는 뜻으로 ‘역지 즉 개연(易地則皆然)’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역지사지 [易地思之]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3. 칭찬과 역지사지

    칭찬을 하려면 먼저 역지사지 하는 마음으로 인정(recognize, concede)을 해야 합니다.

    인정이란, 나 자신이든 상대방이든 받아들이는 마음의 과정입니다. 인정은 또한 배려(consideration)입니다. 그래서 칭찬과 역지사지(put yourself in someone else's shoes)는 별개가 아니라 같이 움직이는 젓가락과 같습니다. 젓가락 하나로 음식을 먹을 수 없습니다. 두 개의 젓가락이 같이 움직여야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칭찬과 역지사지(put yourself in someone else's shoes)하는 말을 많이 표현하면 본인의 내면에 긍정적인 변화도 빨리 옵니다.

    4. 인간의 기본 심리

    인간은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사회적 승인을 얻고 싶다고 하는 욕구가 대단히 강합니다. 때문에 남에게 무시당하는 것만큼 괴롭고 슬픈 일은 없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장발한 갈색머리라는 외모를 보고 판단하여 그 인품에 대해서는 우선 제대로 보지 않고, 별로 관계를 갖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존재를 무시합니다. 그들 로서는 그런 취급을 당하면 당할수록 이번에는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고 싶어서 이상한 행동을 취합니다. 이런 감정을 갖는 것은 꼭 특별한 인간에 한한 것은 아닙니다. 여성들이 반지나 귀걸이, 목걸이와 같은 액세서리를 몸에 지니는 이유는 자기만족이라는 자아도취도 있지만, 그것은 남에게 보다 잘 보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칭찬의 말을 듣고 싶은 것입니다. 만약 무인도에 있다면 아무도 액세서리를 지니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런 인간 심리의 미묘함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상대방에게 호감을 사는 사람을 아마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5. 칭찬과 역지사지를 이용하는 방법

    1) 상대방의 장점 찾기

    상대방의 내면을 알아 가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상대방의 성격이나 MBTI도 쉽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원만한 인간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작은 장점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말을 합니다. "정말 보기 좋아", "뭐든지 잘하네"라고 좋든 싫든 말을 건네 보세요.

    2) 상대방과 공감하기

    상대방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잘 들어보세요. 긍정의 표현과 부정이 표현이 섞여서 들릴 것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말을 통해서 상대방을 평가합니다. 물론, 상대방의 몸짓이나 행동, 그리고 태도를 통해서도 알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말만큼 상대를 평가하는 강력한 것은 없습니다. 상대방의 말 중에 청중 하세요. 그리고 이렇게 표현해 보세요. "정말?", "많이 힘들어겠다", "지금은 괜찮은 거지?", "그랬구나"라고 상대를 공감하는 표현을 해 보세요. 

    3) 인내하면 상황을 기다리기

    우리는 미래의 어떤 상황을 너무 좋게만 받아들이려고 하는 심리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상상 이상의 기대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상대방에게 좋은 말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긍정적인 응답이 오지 않는 경우도 너무 많습니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합니다.

    6. 기대효과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인간관계와 부딪힙니다. 상황이 나를 기준으로 생각할 때 좋든 싫든 누군가를 만나서 나를 알리고 평가를 받거나 상대를 평가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칭찬(compliment)과 역지사지(易地思之) 하는 말을 말하는 언어의 습관과 태도를 만들어 보세요. 분명, 당신의 인생을 성공으로 가고 있을 것입니다.








    비난(非難)은 개인이나 단체의 사회적 또는 도덕적으로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 불신임하고 나쁘게 말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 용어는 칭찬의 반의어이다.
    누군가가 무언가 잘못된 일을 한 데 대해 도덕적으로 책임을 질 때 이 행위는 비난을 받을 가치가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어떤 사람이 옳은 일을 하는 데 도덕적 책임이 있을 때, 그 사람의 행동은 칭찬받을 만하다고 말할 수 있다.
    윤리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다른 칭찬과 비난의 의미도 있다.
    누군가의 좋은 옷차림을 칭찬할 수도 있고, 그 사람의 옷차림 감각을 자신의 스타일 감각 탓으로 돌릴 수도 있다.

    신경학

    비난은 측두두정접합(TPJ)부의 뇌 활동을 수반하는 것과 관련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할 때 편도가 기여하는 것으로 밝혀졌으나 긍정적인 행위에 반응할 때에는 그렇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