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단(Joktan)
욕단(Joktan 또는 Yoktan, 히브리어: יָקְתָן, 현대: Yoqtan, 티베리아어: Yāqṭān, 아랍어: يقصان, 로마자 표기: Yaqṭān)
에벨의 두 아들 중 둘째였다(창 10:25, 대상 1:19).
욕단은 노아의 아들 셈의 후손이다.
창세기 10:25
에벨이 두 아들을 낳으니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니 이는 그 때에 땅이 나뉘었음이요 그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더라.
창세기 10:26~29
욕단의 아들들은 알모닷, 셀렙, 하살마웻, 예라, 하도람, 우살, 디글라, 오발, 아비마엘, 스바, 오빌, 하윌라, 요밥이다.
위필로(Pseudo-Philo)의 기록(약 70년)에서 니므롯과 베네크가 각각 함 (성경 인물)과 야벳의
자손을 다스리는 왕자였던 것처럼 욕단은 처음으로 셈 자손의 왕자가 되었다.
그의 버전에서 세 왕자는 모든 사람에게 바벨탑을 위한
벽돌을 굽도록 명령한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롯뿐만 아니라 욕단의 여러 아들을 포함하여 12명이 명령을 거부한다.
욕단은 그들을
시날에서 산으로 밀반출해 다른 두 왕자를 짜증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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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단의 이동 경로와 한민족
성경에 ‘욕단’(이나 그의 후손(들)이 한반도나 한반도 근처로 이동을 했다는 흔적이 나타날 것입니다—그 흔적을 추적하겠습니다.
“욕단은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웻과 예라와 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오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았으니 [그]들은 다 욕단의 아들이며 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이었더라” (창 10:26 – 30 / [ ] 안은 제 번역입니다)
위에 인용된 구절들에 의하면 ‘욕단’의 아들들이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에 거주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말씀 드리겠듯, 메사와 스발은 현재 ‘만추리아’(만주)와 ‘시베리아’로 일컫어지는 지역입니다.
그러므로 그 동쪽 산은 ‘백두산’입니다.
그래서 욕단의 아들들이 백두산에 거주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위에 인용된 구절들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현재의 ‘이라크’를—만나 거기 거류하며” (창 11:2)라는 구절이 따릅니다. 그 구절의 ‘그들’이 누구인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노아의 후손들일 수도 있고, 셈의 후손들일 수도 있고, 셈의 후손들 중 에벨의 후손들일 수도 있고, 에벨의 후손들 중 욕단의 아들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 ‘그들’이 욕단의 아들들이면 문제가 생기는 듯 합니다—그렇다면 노아의 방주가 정착했던 곳에서 전 세계로 흩어진 노아의 자손들 중 욕단의 아들이 거주했던 지역인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은 중동의 어느 지역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동쪽 산’이 중동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노아의 방주에서 셈이 나온 후 욕단의 형인 벨렉 (창 10:25)이 출생할 때까지 백년이 약간 넘는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창 11:10 – 16) 그 방주가 정착했던 곳인 중동의 북쪽에서 동쪽으로 백년을 넘게 이동했다면, 욕단의 아들들은 중동을 훨씬 넘어 동쪽 끝에—즉, 극동지방에; 한국에; 백두산에—도착하고도 남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구절의 원어를 들여다 보면 그 구절의 ‘동방으로’라는 번역이 잘못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동방으로’로 번역된 부분의 원어는 ‘미 케뎀’으로 ‘동방앞에서부터,’ 즉 ‘극동으로부터’(from the Oriental East; from the Orient)라는 의미입니다—그러니까, 구체적으로는, ‘한국(과 일본)으로부터’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그 구절은 “그들이 극동에서부터 이동하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창 11:2)와 같이 번역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욕단의 아들들이 극동지방에 거주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므로 (1) 그 구절의 ‘그들’이 욕단의 아들들이라도 욕단의 아들들이 거주했던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에서 ‘메사’를 ‘만추리아’(만주), ‘스발’을 ‘시베리아’, 그리고 ‘동쪽 산’을 그러므로 ‘백두산’으로 보는 견해와 그 구절은 충돌되지 않고; (2) 사실, 방금 말씀드린 이유로, ‘메사’는 ‘만추리아’(만주), ‘스발’은 ‘시베리아’, 그리고 ‘동쪽 산’은 그러므로 ‘백두산’이 될 수 밖에 없고; (3) 따라서 그 구절의 ‘그들’은 ‘욕단의 아들들’이 분명합니다—다시 말씀드리는데, 노아의 방주에서 백년이 넘는 세월동안 동쪽으로 이동했을 때 이르게 되는 동쪽 지방은—즉, 극동 지방은—한국(과 일본)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욕단의 아들들이 극동 지방의 만주에서부터 시베리아로 가는 길에 있는 동쪽 산에—즉, ‘백두산’에—거주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에 인용된 구절들과 그 구절들에 따르는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창 11:2)라는 구절은 아래와 같이 번역될 수 있습니다:
“욕단은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웻과 예라와 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오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았으니 그들은 다 욕단의 아들이며 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만주에서부터 시베리아로 가는 길의 백두산이었더라 ……욕단의 자손들이 극동에서 이동하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창 10:26 – 11:2)
그러므로 ‘욕단’이 한민족의 조상입니다. 한민족은 고조선의 후예입니다. 고조선은 백두산, 만주, 시베리아, 등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고조선의 후예인 한민족은 ‘욕단’으로부터 비롯됩니다—‘욕단’이 한민족의 조상입니다.
그런데 욕단의 자손들이 시날 평지에 거주하면서, 시날에 바벨탑이 건설되고 언어가 다양해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1. 한민족의 민족적 죄는 다른 민족에 비해 가볍습니다.
백두산에 살았던 욕단의 아들들이 그 먼 시날 평지로 다 갔을 리는 없습니다—그들 중 일부만 갔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두산에 남아있던 아들들은 ‘바벨탑’을 쌓는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욕단의 아들들 중 백두산에 남아있던 아들들이 한민족의 조상들입니다.
한편으로, 성경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유대전승에 의하면, 바벨탑을 쌓은 사건은 인류의 하나님에 대한 최초의 그리고 거대한 도전이었습니다—무서운 죄악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민족의 조상들은 그 죄악에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민족의 민족적 죄는 다른 민족에 비해 가볍습니다.
2.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세에 한민족을 사용하십니다.
세계적인 대부흥이 한민족에게 두번이나 나타났고, 한민족이 말세에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고, 이스라엘 선교의 사명까지 감당하는 현상은 우연이 아닙니다—하나님께서 한민족을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한민족(의 조상들)이 인류가 바벨탑에서 하나님께 도전했던 죄악에 동참하지 않았던 사실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세에 한민족을 사용하십니다.
3. 한국어는 아담이 사용했던 원래의 언어입니다.
한민족(의 조상들)은 바벨탑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의 언어를 다양하게 변화시키실 때 바벨탑에 가지 않았던 한민족의 조상들의 언어는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언어는 아담이 사용했던 원래의 언어이고 한민족이 사용하는 한국어입니다.
그래서 한국어는 아담이 사용했던 원래의 언어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민족을 부러워 마시기 바랍니다.
한민족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민족입니다.
창세기 10:25-29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Two sons were born to Eber: One was named Peleg, because in his time the earth was divided; his brother was named Joktan.
욕단은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웻과 예라와.
Joktan was the father of Almodad, Sheleph, Hazarmaveth, Jerah,
Hadoram, Uzal, Diklah
오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Obal, Abimael, Sheba.
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았으니 이들은 다 욕단의 아들이며.
Ophir, Havilah and Jobab. All these were sons of Joktan
한국인의 조상은 성경상 욕단(Joktan)
창세기 10장에 노아의 세째 아들 셈의 후예가 소개되어 있다.
셈의 4대손 에벨이 낳은 장자 벨렉은 오늘날 유대인의 조상이며, 차자 욕단은 한국인의 조상(알이란 민족)이 된다.
셈-아르박삿-살라 - 에벨(24)--두아들 벨렉(과 욕단)-- 르우-스룩-나홀-데라 -아브라함,
선택받은 백성은 벨렉 계열과 욕단 계열 두 백성이 존재한다. 이 특별한 셈족들인 벨렉의 후손에서
노아의 10대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음으로서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이 탄생했다(창 11:10~32). 그렇다면 욕단의 후손은 어디로 갔을까? 성경은 그들이 동방의 산악 지대를 넘어 아시아로 갔다고 말한다. “그들의 거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이었더라”(창 10:30) 여기에서 ‘산’이란 히브리어로 ‘하르’라고 하는데, 그 뜻은 ‘산맥’, 혹은 ‘산지’를 가리킨다. 동양에는 큰 산들이 많이 있다. 즉 욕단은 동쪽 산악 지대를 넘어서 -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 아시아로 이동했던 것이다.
욕단의 가계는 에벨의 혈통으로서 셈족의 종가이었으므로 그들은 ‘알이랑 정신’, 곧 ‘하나님 중심 사상 ․ 신본주의 정신’이 확고한 하나님을 아는 족속이었다. 따라서 욕단 족속은 셈족의 정통성을 승계한 백성답게 ‘하나님과 함께 고개를 넘어 간다’, 즉 ‘알이랑(With God) 고개를 넘어 간다’라고 찬송하면서 ‘스발’을 향해 동방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스발’의 위치는 어디일까?
‘스발’을 히브리어에서 음역하면 ‘새팔’이다 그런데 모든 것이 홍수로 인해 지워졌기 때문에 ‘새팔’은 결코 당시에 존재하거나 알려진 장소 이름이 될 수 없다. 욕단이 동쪽으루 이동하기까지 동양에는 아직 누구도 살지 않았다. 따라서 창세기 10장 30절에 언급된 ‘스발(새팔)’은 현실적인 지명이 아닌 ‘예시적’인 지명이다. ‘예시’란 나중에 원형으로 구체화 될 어떤 ‘암시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스발(새팔)’의 원형에 해당할 수 있는 위치를 찾아야 한다. 예시적 지명 ‘새팔’은 일단 아시아 동쪽의 어느 곳이라고 추적한다면 욕단은 동방의 산악지대(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쪽으로 이동하였기 때문에 그곳은 ‘시베리아’이다. 알타이산맥을 넘어 동쪽으로 좀 더 이동하면 시베리아 벌판이 펼쳐진다. 시베리아는 고조선의 창건 무대인 만주 대륙이 연장된 땅으로 우리 한민족의 역사적 고향이다. 알이랑 고개를 넘어 유라시아 대륙 동쪽으로 멀리 이동한 욕단 족속은 만주 및 시베리아를 아우르는 동방의 새 땅을 ‘새발’이라고 하였다. ‘새발’은 ‘ ‘새 땅’ ‘새 벌판’이라는 뜻이다. ‘새팔’과 ‘새발’은 발음이 아주 유사하다. ‘ ㅍ’과 ‘ㅂ’은 모두 ‘파열음’으로서 한 계통의 소리이이므로 자주 혼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안팎’은 ‘안밖’이요, 동이족의 후예인 인디언은 ‘아버지’를 ‘아파치’라고 부른다.
따라서 ‘새팔’ = ‘새발’로 간주할 수 있다.[유석근, '또하나의 선민 알이랑민족' 116쪽]
그러니까 우리 알이랑 민족인 한국인의 성경상 직계 조상은 셈의 4대손 ‘욕단’이다. 따라서 한국인은 이 땅 위에 존재하는 또하나의 선민인 셈이다. 셈 계열 내에서 에벨의 혈통인 욕단의 후손도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볼 수 있다. 주 하나님께서 나중에 쓰시려고 “감추어 두신 선민”이 바로 알이랑민족인 우리 한국인이다. 우리 겨레가 하나님이 감추어 두신 ‘또 하나의 선민’이라는 교훈은 새로운 선민주의가 절대로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성경에 근거한 객관적 사실이다. 아시아 서쪽 땅 끝에 거주하는 유대인은 셈족의 ‘좌측 가지’인 벨렉의 후손이다(창 10:21,25; 11:10~32). 아시아 동쪽 땅 끝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셈족의 현저한 ‘우측 가지’인 욕단의 후손이며(창 10:21,25,30).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 또 하나의 선민인 것이다.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겉사람’과 눈에 보이지 않는 ‘속사람’이 있는 것과 같이 선민도 겉으로 드러난 선민(벨렉 계열 유대인)과 속으로 감추인 선민(욕단 계열 한국인)이 있다. 창세기 10장 21절에 의하면 벨렉 계열과 욕단 계열은 셈족의 현저한 두 가지(branch)로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족속인 ‘에벨의 혈통’이다.
한국인의 특이한 점은 습성과 풍습이 유대인과 유사하다는 것이다.한국여성과 유대인 모두 물동이를 머리에 이는것, 외출시 얼굴을 가린다. 양 민족 모두 돌제단을 쌓아 제사를 지내고, 부모를 "에미","에비"라고 부른다. 또한 장례식에 베옷을 입고 '아이고', '아이고' 하며 곡을 한다. 유대인이 유월절에 문설주에 양의 피를 뿌리듯이 한국인은 이와 비슷하게 붉은 팥죽을 뿌린다.
한국인은 유대인과 같이 근면하고, 흰옷을 즐겨 입으며, 종교성이 강하고, 장사 수완이 좋다. 그래서 예전에 유대인이 미국 흑인 지역에서 하던 수퍼마켓과 세탁소, 의류사업, 가발 등을 그대로 이어서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한국인이 유대인과 비슷한 핏줄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인은 홍수 심판 이후 살아 남은 노아의 자손이다. 노아에게는 야벳,셈, 함의 세 아들이 있었는데, 한국인은 셈의 셋째 아들인 아르박삿- 살라 - 에벨 - 욕단의 후손들이 한국민족이다.
셈의 아들들 엘람과 앗수르의 자손은 지금의 아라랏산 부근에 살다가 바벨탑 사건 이후 동방으로 이주한 것이다. 그래서 고조선에서는 신정국가로 하늘에 있는 유일신에게 단을 쌓고 제사를 드린 하나님을 믿는 국가였다. 그런데 한국의 고대사를 기록한 삼국유사나 삼국사기가 불교나 유교적인 입장에서 역사를 왜곡해 진실을 가려 버렸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진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사24:16 땅의 맨끝 지역에서부터 나오는 노래가 우리에게 들렸으니 곧 의로우신 분에게 영광을 돌리는 노래라
사41:2 "누가 동쪽으로부터 의로운 사람을 일으키고 그를 불러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으며,
사41:9 내가 땅끝에서부터 너를 데려오고 땅의 우두머리(돌모퉁이)들로부터 너를 불러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내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였으며 너를 버리지아니하였노라, 하였노라
사 46:11 내가 동쪽에서 굶주린 새를 부르되 곧 먼 나라에서 나의 계획을 집행할 사람을 부르리라. 참으로 내가 그것을 말하였은즉 또한 그것을 이룰것이요. 내가 그것을 작정하였은즉 또한 그것을 행하리라.
사 55:5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한 민족을 네가 부를 것이요, 주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인하여 너를 알지 못하던 민족들이 네게로 달려오리니 그분께서 너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10:19 모세는 말하기를 내가 백성이 아닌 자들을 시켜 너희의 질투를 일으키며 어리석은 민족을 시켜 너희의 분노를 자아나게 하리라.
20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이르기를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들이 나를 발견하였나니 내게 묻지 아니하던 자들에게 내가 나타났노라.
1. 지능지수 높은 동아시아인
‘미국에 사는 백인들의 평균 지능지수(IQ)는 백(100)이고 동아시아인들의 평균치는 이보다 적게는 2∼3점, 많게는 10점이나 높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심리학자인 리처드 헤른슈타인 하버드대 교수가 명저 ‘종(鐘)모양의 곡선’에서 밝힌 말이다.
세계 13세 어린이 수학 및 과학 경시대회에서 한국 어린이들은 보통 5등 안에 든다. 미국의 50개 주는 매년 최우수 고교졸업생 2명씩을 뽑는데 거의 매년 한국 학생이 여러명 포함된다. 미국에는 1만개가 넘는 고등학교가 있는데 많은 한국학생들이 수석졸업을 한다. 하버드대가 이들을 다 뽑는다면 주요학과는 한국인들로 가득 찰 것이라고 한다. 인종 쿼터 같은 것이 있어서 입학생 수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1960년대 한국은 아프리카의 가나와 비슷했는데 지금 1인당 소득 면에서 20배 이상 앞서게 된 것은 교육열 근면성 등에서 그만큼 앞서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민총생산(GNP)은 60년대 불과 몇 조원에서 지난해에는 515조원으로 늘었다. 최근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이 방콕에서 공동 개최한‘아시아경제의 장래’에 대한 회의에서 마이클 페어뱅크는 과거 30년간 한국인의 생산성 향상은 세계 제일이라고 했다.
우리 주위에는 엄청난 저력을 가진 한국인들이 수없이 많다. 수많은 한국인들은 개인적으로는 헤른슈타인 교수가 밝힌대로 백인들을 능가하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국가 차원에서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안타깝다.
2. 노아의 자손들
세상에 악이 관영하자 하나님은 B.C. 2458년에 물로 온 지구를 심판하셨고, 당시 의인이었던 노아의 가족 8명 만이 방주를 만들므로써 대홍수에서 유일하게 살아 남았다. 40일동안 주야로 비가 내려 164일동안 온 땅이 물에 잠겼고, 물이 빠진 후 방주는 아라랏산 정상에 정착했다. 지금도 그 홍수의 증거로 알프스나 히말라야 등의 고산지대에는 조개나 물고기의 화석이 발견되고 있다.
노아는 아라랏산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고, 하나님은 노아 가족이 다산생육하고 번성하도록 축복하셨다. 노아의 아들 셈은 다섯 아들을 낳았고, 함은 네 아들을 낳았으며, 야벳은 일곱 아들을 낳았다. 셈의 자손들은 산 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주로 아라랏 산 중턱에 살았다. 함의 자손은 메소포타미아의 평원에 정착했고, 야벳의 자손은 주로 섬과 바닷가에 자리 잡았다.
셈의 자손들 중 일부는 산에서 내려와 우르 지방으로 내려와서 인류 최초로 문명을 건설한 수메르족이라 불린다. 우리말에서 남자를 뜻하는 '사내' 또는 '사나이'는 말은 '산(아라랏 산)에서 내려온 사람'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수메르 사람은 인류 최초 기호로 발음과 뜻을 나타내는 '쐐기문자'를 만들었다.'수메르'라는 말이 '셈'에서 나온 것으로 학자들 사이에 인정되고 있고, 수메르어는 아담 때부터 있었던 언어로 추정된다.
수메르어와 우리나라 말 사이에는 유사점도 많은데 우리말의 '길'이 수메르어로 'gir'이고, 우리말과 같이 님(nim)이란 존칭을 붙이며, 하늘을 'an-ur'이라고 하고, 아버지를 'abba', 자신의 아버지를
'ab'라고 부른다. 한국어와 수메르어는 모두 교착어로 주격, 소유격, 목적격을 나타내는 조사가 있고, 문장 구조도 한국어와 같은 주어-목적어-동사 순이다.
노아로부터 저주 받은 함의 장자인 '구스'의 가문에서 태어난 '니므롯'은 영웅적 사냥꾼으로 바벨탑 문명을 건설한 인물이다. 함의 둘째 아들 미스라임은 이집트 지역으로 가 피라믿을 건설하고 수 많은 우상신을 섬기는 신비주의 종교를 만들었다.함의 넷째 아들인 가나안은 장사꾼 기질이 있어서 그의 후손은 시돈과 두로 지역에 페니키아를 건설하고 무역을 번성시켰으며, 수 많은 우상 신을 만들어 내었다. 이로써 함의 자손들은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사탄의 삼위일체라고 할 수 있는 바빌론, 이집트, 페니키아 문명을 건설한다. 이 곳에서는 각각 '인본주의 문명', '신비주의 종교', '물질 만능주의'가 태동되어 이스라엘과 인류를 타락시켰다.
페니키아 사람들은 장사에 도움이 되는 물질주의와 쾌락주의를 보급하기 위해 아스다롯이란 여신을 만들어 내었다. 페니키아 신전에서는 여신의 역할을 대신하는 여사제들이 쾌락을 선사하기 위해 돈을 받고 매춘을 했다. 이 가나안의 여신이 수메르 지역에 있는 셈의 자손들에게도 스며들어 '이난나'(Inanna) 여신이 되었다.수메르 사람들은 이와 같이 주변국의 영향을 받아 점차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신을 섬기며 타락하기 시작했다.
3. 한민족의 원래 종교
우리 민족은 고조선 시대부터 유일신인 하늘님(하나님)을 믿던 민족이었다. 천신(天神)에게 제사를 드리던 제사장을 천군(天君)이라고 하는데 천군이 신격화되어 단군이 되었다. 삼국시대 이전을 기록한 역사서는 고려 말에 승려인 일연 김견명이 저술한 삼국유사(三國遺事)와 고려시대의 장군 김부식이 저술한 삼국사기(三國史記)가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는 자료의 수집과 편찬 의도가 불교의 전파에 있었다. 불교의 윤회설을 입증하기 위해 인간의 조상이 곰이었다는 근거 없는 설화를 끼워 넣으면서 역사를 왜곡했다. 그래서 삼국유사의 고조선 편에서는 환웅(하나님의 아들)이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주면서 굴 속에서 견디라고 했는데 곰이 21일동안 견뎌 여자가 되었으며, 여자는 사람으로 변한 환웅과 혼인해 단군 왕검이란 아들을 낳았다는 근거없는 신화를 만들었다.
삼국사기는 고려 17대 왕인 인종 때에 김부식이 삼국시대에 대해 저술한 가장 오래된 역사책으로 이 삼국사기는 김부식이 신라중심으로 중화사상에 젖어 쓴 역사서로 신라의 역사적 사실이 과장된 부분이 많다. 삼국사기는 불교와 유교적 관점에서 저술해 고조선 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단군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다.
그러나 김부식과 일연이 우리 민족의 참된 역사를 왜곡하였다고 해도 중국에 있는 우리민족에 관한 역사까지 변질시킬 수는 없었다. 중국의 고대사는 분명히 우리 민족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숭상한 경건한 민족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후한서에서 예전은: "시월이 되면 반드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말씀을 읽으며 밤에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데 이를 무천(無天)이라 합니다."
삼국지에서 고구려는: "시월에는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성회가 있는데 이를 동맹이라 했다."
삼국지에서 진한은: "성마다 한 사람을 세워 천신께 제사를 주관하게 했는데 이를 천군이라고 헸다."
중국의 고대사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규원사화'에도 단군이 신단수(神檀樹) 아래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던 제사장이자 임금임을 밝히고 있다.1675년(숙종 2년)에 북애자(北崖子)가 저술한 '규원사화'는 일본의 우리 역사 말살 때에 많은 책이 몰수, 폐기되는 와중에 무애(無涯) 양주동(梁柱東) 선생이 감추어 두었던 것을 남창(南倉) 손진태(孫晋泰) 선생이 극비리에 필사(筆寫)하여 빛을 본 책이다.
일제가 고조선의 역사를 말살하고 왜곡했지만 '규원사화'를 비롯한 많은 古書와 중국의 역사책에서 밝혀진 바로는 엄연히 단군조선이 있었고, ‘단군檀君’이란 말은 ‘박달(壇) 나라의 임금(君)’이란 뜻이었던 것이다. 단군조선은 47대 1,195년간 존속했고, 공자를 비롯한 많은 중국의 성현들도 우리나라(동이 東夷)를 흠모했다는 기록이있고, 동방삭東方朔(한 무제 때의 사람)은 당시의 우리 민족을 가리켜 ‘태연하게 앉아 서로 범하지 않고, 헐뜯지 않고, 사람에게 근심이 있으면 서로 구해 주어 선인(善人)이라고 했다’고 기록한 바가 있다.
고조선 시대에는 한문이 없었는데 어떻게 단군이란 이름이 생겨났는지는 규원사화에 잘 나와 있다. 규원사화 단군기를 보면, '박달임검지역야(朴達壬儉之譯也)'라 해서, '단군(박달나라 임금)을 번역한 것'으로 되어있다. 박달이라는 말은 옛부터 백달이나 배달로도 불렀고, 나라의 우두머리는 임검이라 했다. 규원사화 단군기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신씨이강어단목지하 이환검신인(神氏已降於檀木之下 而桓儉神人 )'이라 해서 그 뜻을 살펴보면, '신씨천황께서 이미 박달나무 밑에 하강했고, 환검신인이 다시 단목 아래에서 임금의 자리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단(檀)으로써 나라이름을 삼은 것이며, 단군이란 단국의 임검이다'라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단군을 환검이라고 했는데, 이 환검이 왕검이나 임검으로 변한 것입니다. 내용 중에 환검신인, 즉 단군이 박달나무 밑에서 인민들로부터 추대되어 임검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자연히 박달이라는 나라 이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단군이라는 것은 박달나라의 임검이라는 의미가 된다.
박달나라의 임검이란 뜻인 이 '박달 임검'은 계속 불려져 내려 오다가 약 2천년 후인 고구려 소수림왕 2년(서기 372년)에 불교가 들어올 때를 전후해서 한문이 들어왔습니다. 그 때 사가들이 역사를 한문으로 서술하다 보니까, '박달 임검'을 박달단(檀)자 임금군(君)자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그 때부터 단군으로 부르기 시작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즉 한문이 들어오기 전에는 단군이라는 용어는 없었다는 겁니다. 즉 한문으로 박달나라의 임검이란 뜻을 번역하다 보니까 단군으로 된 것입니다. 규원사화의 내용 중에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는 내용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저 하늘에 제사를 지내어 근본에 보답하는 의식은 단군으로부터 시작된 것인데, 후세의 역대 모든 나라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지 않음이 없었으니..."
"단군이 이미 하늘에 제사 지내고, 교를 세워 백성을 다스리고, 도를 이뤄 행하게 한지 몇해 동안의 백성들이 모두 감화되어 악은 없어지고 천하는 잘 다스려지게 되었다." 이는 창세기에서 노아가 홍수 심판 후에 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과 같습니다.
창세기 8:20 노아가 주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가운데서 취하여 제단에 번제를 드리더라.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드리고 백성들에게 교시하는 내용은 성경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 되는 신으로서 가장 높은 곳의 하나 되는 자리에 있도다.
하늘과 땅을 시작하게 하고 모든 세계를 주재하며, 한 없는 사물을 만드시니, 가없이 넓고도 넓음에 감싸지 아니한 사물이 없으며, 신령스럽게 밝고도 밝음에 가녀린 티끌마져도 새지 아니한다. 하늘 본보기는 오직 하나요, 그 문은 둘이 아니니, 너는 오로지 정성을 순수하게 하고 너의 마음을 하나되게 한다면 이에 하늘로 향하리라. 너희 무리들아! 오직 하늘 본보기를 본받아 모든 선함을 돕고, 모든 악함을 소멸시키며, 본 바탕이 통하여 맡을 일을 온전케 하면 이에 하늘로 향하느니라."
중국 고대사와 규원사화를 통해 우리 민족이 오래 전부터 하나님을 믿는 민족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외국에서 들어온 불교나 유교를 전통종교로 생각하고, 기독교를 서양종교로 인식하는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민족은 외래 종교인 불교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귀신이나 우상을 섬기지 않은 유일신을 믿는 민족이었습니다.
4. 한민족의 기원
인본주의적 사학자들은 인류가 한 곳으로부터 전파되지 않고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났다는 병행발생설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여러 고고학적 증거를 놓고 볼 때 인류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생해 전 세계로 흩어졌음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이것을 뒷받침하는 말씀이 이다.
그러므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 하였으니 이는 주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라. 주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창11:9)
성경은 B.C 2357년경에 노아의 자손들이 하나님을 대적해 바벨탑을 쌓자 하나님이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해서 서로 알아 들을 수 없게 한 뒤 온 세상에 흩으셨다고 명시합니다. 국내 사학자들이 터키 아라랏산 지역으로부터 중앙 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만주에 이르는 여정을 탐사한 결과민족 이동과 관련된 여러 증거들을 찾아내게 되었습니다.
그 지역에는 셈족의 특징인 환저형 토기와 생활용기가 발견되었고, 우리 말과 같은 SOV형 교착어를 사용하며, 아라랏 산에만 있는 흑요석 공구를 사용하고, 대홍수와 까마귀에 대한 설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사단의 일원이었던 중국의 이벤허 박사가 조사결과를 중국 북경 대학에 논문으로 제출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으므로 북경대학도 한 민족의 민족 이동설을 인정한 것입니다.
대홍수는 B.C. 2458년에 일어났으며, 바벨탑 사건은 B.C 2357년에 일어났습니다. 고조선의 건국이 B.C. 2333년이므로 바벨탑 사건이 일어난지 불과 24년만에 만주에 도착한 것이 어려울 것 같지만 셈족이 이동이 자유로운 유목민이었고, 조사단이 볼가강 하류의 아조프 박물관에서 바퀴 달린 집을 발견함으로써 이동속도가 빨랐던 이유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강화도 마니산에는 단군의 왕검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쌓은 천재단이 있는데, 천제단의 방향이 서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서쪽에서 섬겼던 하나님께 경배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한국인 조상에 대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5. 단군(檀君)은 노아의 아들 셈의 5대손인 욕단이다.
아시아의 서쪽 끝 지방에서 시작된 기독교가 주장하는 사상과 철학이 아시아의 동쪽 끝에서 출발한 고조선의 개국정신과 토씨 하나까지 동일하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서쪽에서 살던 사람들이 동쪽으로 이민을 가서 자기들의 나라를 세웠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세계적으로 김치는 한반도의 한인들만 먹고 사는 것으로 아는데 미국에도 김치를 먹고 사는 사람이 있다니 이것이 어찌된 사실이냐 물으면 한국에서부터 김치를 먹고 살았던 사람들이 미국에 와서도 여전히 김치를 먹고 사는 것이라고 해명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그렇게 같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위에서 말했듯이 17세기에 저술된 규원사화(揆園史話)라는 책에 소개가 되어 있는데 이 책은 단군조선의 역사를 기록한 것으로 숙종 1년인 1675년에 북애자(北崖子)가 저술한 것이다. 저자가 당시의 고기(古記)를 자료로 삼아 쓴 것인데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 그리고 삼국시대의 왕들의 관한 이야기와 종교행사에 대한 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특히 조선조의 세조가 동국통감을 편찬하면서 근 20여종의 고서를 어명으로 수집해서 궁중에 보관한 일이 있었는데 이 규원사화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이는 이 책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말이다. 이 규원사회에 8조 금법(禁法)의 여덟 가지가 고조선의 종교와 신앙이 무엇인지 알려 주는 것이다. 그것은 놀랍게도 고대 한국인들이 유일신(唯一神) 하나님을 섬겼던 것인데 그 하나님이 바로 오늘 날 우리 기독교가 말하는 유일하신 주 하나님이신 것이다. 이상의 8가지 법조문을 단군팔조(檀君八條)의 교령(敎令)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법조문들이 구약성경 출애급기 20장 17절에 있는 십계명의 내용과 거의 같은 것이다. 두가지가 없는 것은 생각건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돌판으로 된 십계를 받기 전에 고조선을 개국한 분들은 아시아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미 이주를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8조 금법이나 십계명에서 가장 핵심조항은 제 1조문과 제 2조문인데 그 내용은 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것과 너희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을 정성을 다해 순수하게 섬기라는 것이다. 이는 두 법조문의 핵심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이다.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감히 동방으로 이주를 했는가? 또 그 사실을 무엇으로 증명할 것인가?
구약 성경 창세기는 모든 인류와 우주의 시작과 기원을 기록한 책이다. 모든 인종의 시작, 모든 나라의 시작, 모든 역사의 시작 그리고 모든 문화의 시작이 다 이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으며 앞으로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그 사실은 더욱 더 명명백백 해질 것이다. 우리는 각 민족의 역사와 기원의 사실을 창세기 9장과 10장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 그러면 우리 민족의 기원은 어떻게 될까?
짐작컨대, 우리 한민족은 노아의 아들이며 황인종의 시조가 되는 셈의 고손자이자 4대손인 에벨의 자손으로 이어지는 천손계보(天孫系譜)의 적통(嫡統)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에벨은 두 아들을 두었는데 한사람의 이름은 벨렉이다. 벨렉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세계가 펼쳐진 것이고 또 다른 형제의 이름은 욕단인데 바로 이 욕단이 동방으로 이주를 하여 고조선을 개국한 단군임금으로 보는 것이다.
넓게 생각한다면 하나님은 에벨을 통해 이어진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을 통해서 인류역사의 전반기를 섭리하셨다면 이제 하나님은 욕단으로 이어지는 동이족 즉 대한국인을 통해서 인류의 후반기 역사를 마무리 하신다는 사실이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 대한국인을 동방의 고요한 나라요 은둔의 나라로 한적한 곳에서 비교적 순수한 혈통과 정신을 가진 종족으로 쓰시려고 보호하신 것이다.왜냐하면 미국에서 중국인들은 두셋이 모이면 식당을 열고 일본사람들은 회사를 연다는데 우리는 두 세가구가 모이면 우선 교회부터 시작하고 학교를 여는 것은 보통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천손의 혈통이 아니면 도대체 할 수 없는 신앙적인 거사를 매우 쉽게 저지르는 것이 바로 다 이런 연유 때문이아니겠는가. 그런데 우리 민족이 주 하나님 유일 신앙을 잊어 버렸기 때문에 그동안 숱한 민족적인 고난을 당한 것이다. 우리 민족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함을 받은 민족이요 하나님의 마지막 섭리와 경륜을 이루시는데 동반자로 택정함을 받은 선민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민족을 연단시킨 것이다.
지금 전세계를 요동치게 만드는 이른 바 한류(韓流)란 무엇인가?
전세계가 한국인을 사랑하고 흠모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대역사인 것이다.
주연은 한국의 선남선녀들이지만 그 연출은 바로 우주를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며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이다.
가난하지만 평화와 인자를 사랑하는 족속, 개국 이래 단 한 번도 타 민족을 침략하지 않은 민족, 여러 가지 흠결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쓰시려고 남겨 둔 민족이 바로 우리 동이족이요 단군의 후손들인 대한민국인 것이며 그 대한민국의 조상이라고 불렀던 단군은 성경에 나오는 욕단이다.
욕단은 누구인가? 창세기 10:30
예수원의 설립자 대천덕 신부님은 ‘우리와 하나님’이란 책에서 욕단이 단군이 아닌가 추정해 볼 수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그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창세기
10:25에 ‘에벨’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그에게는 ‘벨렉’과 ‘욕단이라는 두 아들이 있 었습니다. ‘벨렉’이란 이름의
의미는 ‘나뉘어진다’는 뜻으로 그는 아브라함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아우 ‘욕단’은 알모닷, 셀렙 등 13아들들의 조상이 되고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지로 갔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동방의 산지대로 갔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셈의
족속들이기 때문에 동방 사람들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욕단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하여 욕단이 혹 단군이 아닌가
추측해 볼 수도 있습니다. 정확한 계산은 할 수 없지 만 단군의 시대와 욕단의 시대가 비슷한 연대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추측은 옳았습니다. 우리 민족사를 시작한 단군은 바로 성경상의 욕단이었습니다. 여기에서 그 타당한 근거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단군 칭호의 의미와 유래
한국인의 선조인 욕단의 족속은 신적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생래적으로 타고난 특별한 천성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곧 밝고 환한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섬 기는 하나님이 밝고 환한 천국에서 빛 가운데 계시는 빛의 근원이신 분이기 때문이셨습니다. 그 리하여 욕단 족속은 빛이 시작되는 땅인 ‘새 밝나라’ 곧 ‘새발’을 찾아가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밝고 환한 땅을 찾아가 온 백성이 밝고 환한 흰옷을 입고서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제사하며 삶을 영위하는 신시(神市), 곧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소망했습니다. 참으로 그것은 오직 천손민족 만 품을 수 있는 비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욕단은 광명의 본원지인 ‘밝의 땅’을 찾아서 아침에 뜨는 해를 따라 ‘알이랑 고개’를 넘어 쉬지 않고 동쪽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동해에 해 떠오르는 땅, 동방의 밝은 땅 끝 에 당도하여 아시아 동녘에서 가장(한) 높고 밝은 산인 한 밝산(태백산-백두산)과 그 변두리를 근거지로 하여 밝달 나라(배달나라)를 세워 우리 밝달겨레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그 때에 사람 들은 욕단을 ‘밝달임금’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욕단은 사람들을 밝의 땅, 동방의 땅 끝 으로 이끌고 온 밝달족의 우두머리였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욕단을 단군이라고 단정짓게 하는 결정적 단서입니다.
‘단군’이라는 칭호는 밝달 임금의 한자 표기식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단군이라는 칭호는 그 이름 자체에 이 인물의 성격이 어느 정도 집약적으로 반영되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따라 서 단군의 정체를 밝히는데 ‘단군’이라는 칭호가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그러므로 단군 칭호의 의미와 유래가 무엇인지를 해명해야 하겠습니다. 단군칭호의 의미와 유래라고 할 때에는 한자로 표현된 ‘단군’의 본래 우리말이 어떤 것이며, 그 우리말의 본질적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어원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를 주로 논의되어야 할 것입니다.
먼저 ‘단군(檀君)’의 ‘군’은 ‘임금’을 표현하는 우리말의 한자의역에 불과하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여기서 ‘단 임금’이 됩니다. 그리고 ‘단(檀’)자의 의미는 삼국유사에서 인용된 ‘고기’에서 ‘제단 단’ ‘壇’자로 쓴 외에 그 밖의 단군설화에서는 모두 박달나무 단(檀)자를 썼습니다. 삼국유사 정 덕본 이전의 조선왕조 초기의 다른 여러 책들에서는 단군에 대해서 전하면서 박달나무 단자를 썼습니다. 박달나무 단자는 그 자체만으로 ‘나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설화 에서는 ‘단’자 밑에 또 나무 수(樹)자를 덧붙여 ‘나무’라는 말을 겹말로 중복시킨 것이 나옵니다. 바로 신단수 (神壇樹)입니다. 이것은 원래 설화에 있었던 박달나무란 말의 ‘’박달 만을 ‘단’’자로 나무’ 를 ‘수’ 자로 의역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이처럼 ‘단군’의 ‘단’자가 우리말의 ‘박달’을 의 미하는 것이라면 단군은 ‘박달임금’이라는 말입니다. ‘박달’의 ‘달’은 ‘아사달’ 할 때의 그 ‘달’인 데 땅이라는 말입니다. ‘박달’의 ‘박’은 밝과 통합니다. 오늘날에도 일상회화에서 ‘밝’의 바침 ‘ㄹ’이 생략되어 ‘밝다’가 ‘박다’로 발음됩니다.
이것은 우리 말에서 겹자음 받침을 가진 경우 앞의 겹자음 하나가 발음되지 않는 것이 하나의 음 운법칙으로 되는 것과 관련됩니다. 예를 들면 젊다는 점다, 밝다는 박다, 읊다는 읖다. 밟다는 밥다입니다. 이로서 박달의 박이 밝다의 밝과 통하며, 그에 따라 ‘박달’을 ‘밝달’로 볼 수 있습니 다. 그러므로 단군은 밝달임금이라는 말입니다. 밝달은 밝은 땅이라는 뜻입니다. 즉 단군은 밝은 땅 의 임금 곧 배달임금이란 글자입니다. 밝달족 임금의 이두식 표현이 단군이라는 칭호인 것입 니다. 단군은 ‘밝달임금’ 또는’ 배달임금’ 등으로 구전되어 내려오던 우리 동방(조선) 고유의 호 칭 이었습니다. 이 토박이 말을 후세에 한자로 의역하여 박달 단, 임금 군이라고 표기하여 놓았 기 때문에 비로소 ‘단군’이라는 칭호와 발음이 생겨난 것입니다. 따라서 단군이라는 뜻을 가진 보통 명사입니다. 따라서 ‘단군’은 한 사람이 아니고 그 자리를 이어 받은 후손들 모두가 단군 이라고 불리어 왔습니다.
삼국유사에서는 단군 한 사람이 천년 간 고조선을 통치한 것으로 잘 못 기록했기에 후세의 우리 들이 한 사람의 이름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계림유사(鷄林類事)란 책에선 말하기를 ‘밝달(檀) 은 배달(倍達)이요, 국(國)은 나라(那羅)요 군(君)은 임금이다.’하였습니다. 와유록(臥遊錄)이란 책에서 말하기를 ‘한밝산’은 세속에서 박달이라 일컫는데, 세상에서 밝달임금이 내려오신 땅이 라 이른다.’했습니다. 신단실기(神檀實記)란 책에서는 ‘밝달임금’ 때에는 사람들이 ‘밝달’을 ‘배 달’ 이라 하였는데 지금은 음이 구을러 ‘박달’이 되었다’했습니다.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는 ‘배 달’은 나라 이름이기 때문에 그 자손들은 모두 배달임금(단군)이라 한다.’하였고, 동국여지승람 에선 ‘단군이란 일컬음은 곧 배달나라 임금의 칭호인 까닭에 그 나라를 잇는 임금들을 모두 ‘단 군’ 이라 일컫는다.’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때까지의 고찰로써 성경상의 한국인의 조상 ‘욕단’이 다름 아닌 민족시조 ‘단 군’이라고 충분히 단정할 수 있습니다. 욕단이 홍수 후 알이랑 고개를 넘어 사람들을 이 동방의 땅 끝 ‘밝의 땅’으로 인도해 온 우리 밝달겨레의 조상이라면 사람들은 그를 부르기를 분명히 ‘밝 달의 임금’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단군의 정체를 정확히 해명하는 작업은 학계에선 난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안다면 그것은 절대로 어려운 과제가 아닙니다. 우리 아이랑 민족 배달 겨레의 조상 단군은 성경상의 욕단입니다. 사실은 단군의 시대와 욕단의 시대가 같다는 것에서 더욱 더 설득력을 얻습니다.
둘째로 단군의 시대와 욕단의 시대
조선의 건국은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최초로 등장합니다.《삼국유사》에는 ‘단군이 요임금 즉위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연은 요임금은 무진년에 즉위하였으므로 즉위 50년은 정사년이 되므로 정확한 시기 가 의심스럽다는 주석을 함께 실었습니다. 《동국통감》〈외기〉에는 “동방은 애초에 군장이 없었는데 신인(神人)이 박달나무 아래로 내려오니 나라 사람들이 임금으로 모셔 ‘단군’이라 하 고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으니 요 임금 무진년이다. 처음엔 평양에 도읍하였고 나중엔 백악으로 옮겼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왕운기》 역시 건국 연도를 무진년으로 기록하고 있고, 국사편찬 위원회는 삼국유사를 근거로 단군 조선의 설립을 기원전 2333년으로 보고 있고 현행 대한 민국의 국사 교과서들 역시 이를 바탕으로 기원전 2333년을 단군 조선의 건국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 2007년 교육부는 최근의 청동기 유물 발굴 결과 《삼국유사》의 건국 기록이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부합한다고 보고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고 한다’라는 기술을 ' ~ 건국 하였다'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주전 2333년인 단군기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습니 다. 왜냐하면 실제 단군의 조선 건국 연대는 그보다 더 앞선 연대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북한의 역사학계에서는 단군에 의한 조선 건국 연대를 기원전 3000년까지 소급해서 보고 있 습니다. 일부에서는 단군의 즉위 원년의 절대 연대는 사실로서의 의미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삼국유사 등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단군이 요와 동시에 즉위해 나라를 건국했다는데 의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요와 순은 이상적인 나라를 건국했다는 인물의 대명사격입니다.
특히 요는 공자가 성군으로 추앙하는 인물입니다. 바로 그런 요임금과 단군이 동시대에 즉위해 조선을 건국했다는, 즉 우리 나라가 지나(중국)와 대등한 시기에 건국된 유구한 역사를 지닌 나 라라는 것을 알리려는데 그 의의가 있다는 것입니다. 단군의 즉위 연대는 그 절대연대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내세우고자 했던 의식세계를 이해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 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현재 통용되고 있는 주전 2333년인 단군기원이 성경상의 욕단 의 연대와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인류의 조상 아담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기 까지 모든 연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역추적하여 계산해 보면 아담이 에덴에서 쫓겨난 때의 주전 원년은 4114년입니다. 그리고 노아 홍수 후 노아가 죽은 때는 BC 2458년입니다. 셈의 증손자 에벨은 BC 2391년에 태어나 BC 2357년에 욕단의 형제인 벨렉을 낳고 BC 1927 년까지 살았습니다. 벨렉은 239세를 향수했습니다. 그 때는 BC 2118년입니다. BC 2118 년 과 BC 2333년과는 215년 차이가 있습니다. 이 성경 연대는 성경 연구가에 따라 계산이 조금 씩 차이가 있습니다. 4천년의 역사에서 215년은 비교적 근사한 차이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정 확 무오한 연대 산출이 아니라 욕단의 연대가 바로 단군시대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백두산 산정에서 창조주 하나님께 제천의식을 거행하고 조선을 건국한 단군이 성경상의 욕단이라는 것을 뒷받침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욕단이 조선을 건국했다는 사실은 조선이라는 국명에서 드러납니다. ‘조선’이라는 국호는 원래 ‘주신’이라는 순수한 우리말 의 지나(중국)식 표현입니다. 한국인의 조상인 욕단은 그가 도달한 시베리아와 만주 대륙에 이르 는 더 넑은 동방의 새 땅을 하나님이 ‘주신’ 땅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주신’이라고 했는데 후일에 주신이라는 말의 옛 음이 지나의 옛 글에 식신(息愼), 숙신(肅愼), 직신(稷愼), 주신(州愼), 조신(鳥愼), 조선(朝鮮)등으로 다양하게 표기된 것입니다.
한 민족 최초의 나라이름인 ‘조선’의 본뜻은 ‘주신’이라는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주신 ‘조선’으로써 하나님이 ‘주신 땅’이라는 것입니다. 흔히 아침 조, ‘빛날 선’해서 이른 단어 때문에 ‘아침 해가 빛난다’라는 뜻에서 조선이라는 국호가 생겼다 하나 조선이라는 국호는 한자가 생기기 전에 이미 있던 국호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조선이라는 말은 우리의 고대어로 무엇을 뜻하였겠습니까?
일찍이 단체 신채호는 조선의 어원은
숙신((肅愼)이라고 하고,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에서는 숙신의 옛 이름을 ‘주신(珠申)’이라 하고, 주신은 소속관경을 가리키는
만주 말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지금의 말로 일정한 지역의 땅, 영토를 의미합니다. 바로 여기에 조선의 원의가 있습니다. 즉
‘주신’이 이 ‘숙신’의 어원이요, 조선의 어원이긴 한데 우리가 사는 땅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살라고 ‘주신(賜)’ 땅이라는
‘주신’인 것입니다. 그리고 욕단은 조선을 건국한 역사적인 그 날을 ‘하늘 문이 열렸다’는 뜻의 ‘개천(開天)’이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욕단이 조선을 건국하기 전 먼 저 백두 산 산정에서 하나님께 단을 쌓고 경건히 천제를 드렸을 때 아라랏 산정의 노아의 제사
에서 하늘 문을 여시고 응답하신 하나님께서 욕단의 제사를 열납 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나라를 세운 건국일을 개천(開天) 즉
‘하늘이 열렸다’고 했을 것입니다.
셋째로 한국인의 조상 단군
창세기
10;2에 백인종의 조상인 야벳의 아들들 가운데 두발과 메섹이라는 인명이 나옵니다. 서 구 성경학자들이 쓴 주석책들을 보면
오늘날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라는 지명은 메섹에서 유 래했다고 설명합니다. 메섹이라는 사람이 그곳에 가서 정착했기에 그의 이름이
지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랄산맥 동쪽에는 토블스크라는 지방이 있는데 그것 또한 야벳의 아들 두발 에서 유래한
지명이라고 설명합니다. 그것은 두발이라는 사람이 그곳에 가서 살았기에 그의 이 름을 따서 지명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서양의
주석가들이 무슨 타임머신을 타고 그 당시의 모스크바나 토블스크로 가서 메섹과 두발을 만나고 온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어떤
고고학적 유물이나 문헌 상의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메섹은 모스크바, 두발은 코블스크와 발 음이 유사하기 때문에 그렇게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연구 결과에 대해 믿을 수 없다고 악착같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 니다. 대부분 그대로 수용합니다. 왜냐하면 그럴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역사적 인물인 욕단이 ‘알이랄’고개를 넘어 동방으로 와서 밝달나라를 세운 밝달족의 우두머리 였는데 그가 단군이었다고 단정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더욱 욕단의 목적지 스발은 광명의 본원지인 새밝나라요 또한 서울과 같은 말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이라는 명사의 유래와 그 의미에 대해서 알아 보기로 하겠습니다. 서울이 한국의 수도라는 사실 은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서울’이라는 이름의 어원이 어떤 말인지 그 뜻을 무엇인지를 아는 사 람은 많지 않습니다.
‘서울’이라는 말은 바로 ‘새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새발’의 ‘새’는 ‘싀, 스, 시’등으로 쓰였고, 오늘날엔 ‘새, 스, 시’등으로 쓰입니다. 그리고 ‘발’은 ‘발-울’로 변했습니다. ㅂ-ㅂ.ㅇ-ㅇ’의 음운 전변에 의해서 ‘불-ㅂㅇ.ㄹ-울’로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시블’은 현대어 ‘서울’에 까지 이르렀 습니다. 즉 ‘서울’이라는 말의 시작은 ‘시블’이었습니다. ‘시, 싀, 스, 시’는 새롭다이며, ‘블 불’은 ‘밝’에서 출발된 말이니 ‘서울’이라는 말 역시 ‘새로운 땅’,좀더 자세히 말하면, ‘밝고 새로운 나라 (땅)’이라는 뜻입니다. 즉 ‘서울’은 ‘새밝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시적 지명인 ‘새팔(시블) 은 또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기도 합니다. 시블-시불-셔울-서울로 바뀐 것이 한국의 수도 ‘서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서울’이라는 말의 어원이 ‘시블’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수도는 국가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이라는 명사는 보통명사이기 때 문에 수도를 다른 지방으로 옮겨도 ‘시발’은 여전히 ‘서울’로 간주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이렇게 동방으로 간 욕단계 선민이 누구인지 오늘날 우리들이 분명히 알 수 있도록 성경에 분명히 단서를 남겨 두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또 하나의 선민인 욕단의 후손은 어느 땅에 있는 누구입니까? 그 존귀 한 백성은 바로 극동의 한국인입니다. 욕단의 목적지 ‘세팔’은 한 민족의 역사의 고향 ‘시블= 새 벌 =새 밝은 곳=배달이며, 또한 대한민국의 상징인 ‘서울’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알이랑 민족 한국인이 욕단계 선민이라는 사실은 그 증거가 아주 명확하여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따라서 욕단이 단군이라는 것도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역사적 인물 욕단이 알이랑(하나님과 함께) 고개 (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을 넘어 동방으로 와서 밝달나라를 세운 밝달족의 우두머리 였는데 그가 단군인 것입니다. 단군이란 밝달임금의 한자식 표현입니다. 욕단의 목적지 ‘스발’은 광명의 본원지인 새밝나라요 또한 ‘서울’과 같은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욕단의 시대와 단군의 시대가 같습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단군이 선포했던 ‘8조금법’이라는 배달나라 국법이 있었는데 ‘규원사화’에 의하면 제 1조가 ‘너희는 한 분이신 하나님을 정성을 다해 순수하게 섬기라’이며, 제 2조는 ‘너 희는 부모를 공경하라. 너희 어버이는 하늘에서부터 온 것이니, 너희의 어버이를 공경하면 이는 능히 하늘을 공경하는 것이니라.’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로 부터 받 은 십계명의 제 1계명과 5계명과 같은 것입니다. 단군이 ‘알이랑 정신’ 곧 ‘하나님 중심 사상’ 과 ‘신본주의 정신’의 소유자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이 ‘8조 검법’을 대했을 때에 세상 사람들이나 세속 사학자들은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성경중심으로 생각 하게 됩니다. 우리 배달겨레의 조상 단군은 대홍수 후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유일신 신 앙을 갖고서 알이랑 고개를 넘어 동방으로 천동한 하나님의 사람 ‘욕단’이었다고 더더욱 단정하 지 않을 수 없습니다.
셈의 셋째 아들 아르박삿의 손자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은 우리 민족사를 시작한 한국인의 조상 단군이십니다. 한국인의 기원은 셈의 가계, 그 중에서도 약
4300(BC 2333+AD 2000) 전에 동 양으로 이주하여 우리 배달 동이겨레의 선조가 된 욕단의 후손, 곧 단군의
자손입니다. 동방의 한국인은 하나님께서 감추어 놓으신 또 하나의 하나님의 선민인 것입니다. 에벨의 혈통인 욕단 의 후손은 선택
받은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이 단군설화에 나오는 천손 강림의 모티브가 된 것입니다. 우리 한국인의 계보가
셈-아르박삿-셀라-에벨-벨렉과 욕단으로 이어지는 ‘천손민족’이라는 사실이 설화에 반영된 것입니다. 단군은 신화의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동방 ‘밝의 땅’에 당도하자 맨 먼저 백두산 산정에 올라 창조주 하나님께 천제를 드리고 조 선을 건국한 역사적 인물입니다.
성경상의 한국인의 기원은 노아의 작은 아들 셈의 현손 욕단, 즉 단군입니다.
결론
대천덕신부님의
글로 시작했기에 그분이 ‘기독교는 오늘을 위한 것’이란 책의 한 내용을 가지고 말을 마치려고 합니다. ‘내가 보기엔 한국은
자신의 참 모습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 흡사 기억 상실증 환자와 같은 인상을 준다. 만일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한국 백성에 게 공동의 선에 기여할 수 있도록 어떤 특별한 역할을 부여하셨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러 니 만큼
한국인으로서의 가장 긴급한 과제는 스스로를 재발견하고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 일 이다’했습니다. 그가 무엇을 염두에 두고 ‘한국은
자신의 참 모습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 흡사 기억상실증 환자와 같은 인상을 준다.’라는 말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인은
자신이 누구인 지를 모릅니다. 실제로 한국인은 자신의 참 모습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토레이 신부의 말과
같이 스스로를 발견하고 본연의 모습을 속히 회복해야 할 백성이 바로 우리 한민족입니다.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 기록된 계시인 성경에 의하면 한국인은 천손민족, 즉 하나님의 택함 받은 선민 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한국인의 참 모습이며 우리 겨레가 회복해야 할 본연의 모습입니다. 한국인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당신의 특별하신 목적을 위해 사용하시고자 일찍 이 택하시고 감추어 놓으신 또 하나의 선민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유대민족은 복 음의 첫 주자로 사용되었습니다. 우리 한 민족은 복음의 마지막 주자로 쓰임 받을 것입니다. 예 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의 재림을 재촉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첫째는 선교적인 차원에서 말씀하신 마태복음 24:14에서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 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라.’하신 말씀이요 둘째는 유대인의 구원에 대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마태 복음 23:39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 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지 못하고 배척하여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는데 그들이 예수님 을 메시야로 믿고 영접하여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하고 환영할 때까지 오시지 않겠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바울사도는 로마서 11:25에서 이스라엘이 완악한 대로 내버려 두신 것은 이 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라 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11:14에서 이스라엘로 시기케 해서 그들을 구원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서양기독교는 유대인들을 핍박, 박해 살륙 했기에 유대인들의 시기의 대상이 아니라 혐오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서양 기 독교인들이 전하는 복음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시기의 대상이 될 민족은 그들의 조상 벨렉의 형제인 욕단의 후손인 한국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의 마지막 주자의 임무인 것 입니다.
왜
유대인들이 한국민을 시기하게 됩니까?
자신들만 천손민족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한국인도 천손민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들이
배척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그들에게 나 타난 동방의 천손민족 한국인이 전하는 복음을 그들이 시기심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의 마지막 주자임을 깨닫고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 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한국민은 욕 단의 후예로서 욕단이 가진 하나님 중심 사상으로
무장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잃 어버린 고대역사를 복원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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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버드 교수가 한국에서 밝혀낸 한자의 충격적 진실!
동이족이 만든 한자에 성경 내용이 담겨있다? 학계가 발칵!
아르박삿 후손 벨렉과 욕단 미스터리
- 욕단과 단이 우리 한민족 조상?
노아 후손들은 어디로 갔을까?

바벨탑, Pieter Bruegel the Elder, 1563, /출처 위키피디아
아브라함의 조상 벨렉과 바벨탑 사건
성경은 에벨(Eber)의 후손 벨렉-르우-나홀-데라-아브람으로 이어지는 족보를 통해 아브라함의 직계 조상들의 이름을 소개하고 있다(창 11:16~26; 대상 1:19-25; 눅 3:35).
이 가운데 벨렉의 때에 세상이 나누어졌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다(창 10:25; 대상 1:19). 오직 성경 계시에서만 확인이 되는 자료다. 즉 바벨탑 사건 이전 인류는 구음(口音)이 하나요 언어도 하나였다(창 11:1,2).
그렇다면 홍수 이전 인류는 어떤 언어를 사용하였으며 홍수 이후 최초 언어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비알파벳) 문자(쐐기 문자와 상형문자)가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주로 고대 셈어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고 예측할 수 있다. 언어의 혼잡이 일어난 바벨탑이 위치한 곳도 이곳 메소포타미아 지방이었다.
그 셈어 가운데 주로 히브리어에 태초 언어의 원형이 많이 남아있을 것이다. 히브리인들이야말로 최초 문자 탄생지였던 애굽(상형문자)과 메소포타미아(쐐기문자) 문명을 모두 체험한 세계 유일 민족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고유 명사 등 특정한 언어자료에 있어 홍수 이전 언어와 홍수 이후 바벨탑 사건 이후 흩어진 언어 사이의 변동 폭은 그다지 크지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말 혈통이 신라어-> 고려어-> 조선어-> 현대 국어로 계승된 이유로 오늘날 문장 파악이 어려운 부여·고구려어나 백제어들을 추적하는 사학자들이 당시의 벼슬 이름이나 왕과 귀족들에 대한 칭호와 이름, 성씨, 지명, 숫자 개념들에서 그 흔적을 추적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이 태초 언어의 원형은 언제나 회복될 수 있을까? 성경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때 일어난 놀라운 언어 통합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어떤 암시와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바벨탑 사건 이후 인류가 온 땅으로 흩어진 때를 성경은 벨렉 시대부터 였다고 알리고 있다(창 11:8-9).

벨렉 시대 이후 인간은 빠르게 세속화되었다. 사람들은 홍수 교훈을 쉽게 잊어버렸으며 참 하나님보다 하나님의 피조 세계와 그 양상을 섬기기 시작했다. 신은 어느새 인간의 모습으로 대치되었으며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과 세상의 중심에서 배제되었다. 이렇게 에덴동산 추방 이후에도 사단의 미혹이 은밀하고 지속적이라는 것을 인간은 간과하였다.
이때 영육 간에 남보다 뛰어났던 함족 니므롯은 영웅이 되었고 초대 지도자가 되었다. 세속화된 지도자를 중심으로 멋지고 거대한 탑이 구상되었다. 탑은 영적이면서도 문화적이며 어떤 홍수도 이겨낼 만한 견고한 당대 최신 과학이 동원된 건축물이었다. 강림하신 하나님은 이 바벨탑을 보시고 사람을 모두 흩으셨다(창 11:5-9). 하나님이 사람을 흩으신 방법은 바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신 방식이었다. 홍수 이전 언어의 원형은 셈의 일부 후손들에게만 남겨 졌으며 언어는 다양해졌다. 인류는 그 흩어진 언어를 따라 민족과 나라를 구성하면서 온 세계로 흩어졌다.
아브라함 조상 벨렉보다 번성한 욕단의 후손들
벨렉이 30세에 낳은 아들 르우는 아브라함과 예수님의 선조였다(창 11: 18-21; 대상 1:25; 눅 3:35). 반면에 에벨의 다른 아들인 욕단(Joktan)은 13명의 아들들이 있었다(창세기 10:26~30). 알모닷, 셀렙, 하살마웻, 예라, 하도람, 우살, 디글라, 오발, 아비마엘, 스바, 오빌, 하윌라, 요밥이 그들이다. 이들이 사는 땅은 메사(Mesha)에서 동쪽 산간 지역 스발까지 였다.
이들 종족이 지금의 어느 민족을 말하고 이들이 거주하던 지역이 현재의 어디를 말하는 지 명확히 밝히는 것은 어려우나 성경은 이들이 종족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별로 흩어져 살았다고 했다(창 10:31). 금으로 유명한 오빌과 사베안족과 연관된 스바의 지명을 참고할 때 많은 학자들은 이들이 아마도 오늘날 아라비아 땅에 주로 정착했다고 본다.
성경이 벨렉의 후손들과 달리 욕단의 후손들 이름을 이렇게 상세하게 거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경은 분명 욕단의 형 벨렉도 르우 말고도 많은 자녀를 낳았음을 우리들에게 알려준다(창 11:18-19). 239세를 살았던 벨렉은 아마 조상인 셈-아르박삿-에벨처럼 지금의 우리들보다 훨씬 많은 자녀들을 양육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성경은 르우 이외 벨렉의 자녀들 이름은 생략하고 동생인 욕단의 자녀들만을 소개하고 있는 걸까? 그 구체적 진실은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창세기 기자가 성경을 기록할 당시 욕단의 자녀들은 벨렉의 다른 자녀들과 달리 많은 이들에게 익히 알려진 족속이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이 셈족 욕단, 단 후손?
우리 민족을 셈족으로 비정하는 주장에는 세 줄기가 있다.
먼저 심정적으로 막연히 셈족으로 보는 경우이다. 아시아인인 이스라엘 민족이 셈족이요 한때 페르시아제국을 이루었던 오늘날 이란의 조상인 엘람족이 셈족이요 지금의 이라크 땅의 주인이었던 대제국 앗수르의 주인공도 셈족이므로 같은 아시아 민족인 우리 민족도 당연히 셈족일 거라고 여기는 심정적 셈족설이 있다. 하지만 이 주장에는 어떠한 성경적, 인종학적 결정적 증거가 전혀 없다. 오히려 창조과학자 헨리 모리스는 우리 한 민족을 함족으로 비정한다. 물론 이것도 성경적 근거가 있는 주장은 아니다.
두 번째는 이스라엘의 단 지파를 우리 민족의 조상이라고 보는 주장이다. 이 견해는 “단군”과 “단”지파의 언어적 유사성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단 지파의 오랜 무대는 가나안 땅이었다. 야곱의 다섯 번째 아들이요 야곱 아내 라헬의 종 빌하가 낳은 첫 번째 아들이 단이었다. 출애굽 시 성막 제조를 도왔던 아히시막의 아들 오홀리압(출 31: 6)이 단 지파였으며, 사사 삼손도 단 지파였다(참조: 삿 13-16장). 야곱의 축복 예언 가운데 단은 독사로 말의 발굽을 물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다(창 49:16-17). 이 예언을 통해 단 지파는 싸움에 능하고 싸움에 직면할 처지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모세는 단을 ‘바산에서 뛰어 나오는 강한 사자 새끼’(신 33:22)라고 묘사하고 있다. 이 예언처럼 단 지파는 요단강 동편에 있는 바산 부근의 한 지역을 점령하였다.
처음 단 지파는 유다와 에브라임과 베냐민 사이의 한 지역과 해안 평야 지대를 분배 받았다. 가나안 정착 이후 왕국 시대 이전까지 단 지파는 이렇게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있었다(수 19:40-47). 이렇게 야고보가 모세의 예언대로 단 지파는 늘 블레셋과 아모리 족속과 충돌하면서 전쟁에 노출된 지파로 살게 되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보면 이스라엘의 12 지파 가운데 오직 단 지파만이 하나님의 종들 144,000명의 명단에서 누락된 것을 볼 수 있다(계 7:4-8). 단 지파는 여로보암 왕 시절 우상 숭배에 열심이었던 지파였다(왕상 12:29). 단 지파는 에브라임 중심의 북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도 우상의 미혹을 뿌리치지 못한 지파가 되었다. 에브라임 중심의 북 10개 지파가 사마리아인으로 변질되어 가는 과정에서 단 지파는 더욱 하나님 눈 밖에 나게 된다.

그렇게 단 지파는 신약의 요한계시록에 와서 12 지파 명단에서도 탈락하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사라진 그들 단 지파가 우리 한 민족 조상 단군이 되었다는 것은 아무런 논리적 근거가 없는 너무 큰 비약이다. 설령 단군이 단 지파라 하더라도 그것은 명예가 되기는커녕 우리 한 민족이 비운의 민족이라는 멍에를 덧입을 뿐이다. 일부 일본인들조차 자기들이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비운의 단 지파의 후예들이라고 우기고 있으니 참으로 애처롭기만 하다. 우상 숭배로 인해 12 지파 가운데 요한계시록에서도 제외되고 하나님 공동체와 멀어진 비운의 단 지파가 그리도 좋을까?
마지막으로 욕단을 언어적 유사성으로 인해 우리의 단군에 비정하는 주장도 있다. 이것도 우리 민족을 셈족 욕단 후손이라 전제하고 억지로 모든 것을 거기에 맞추려는 위험한 접근 방법의 하나일 뿐이다. 그렇게 억지로 우리 민족이 셈족 가운데 언약의 사람 아브라함의 후손도 아닌 곁가지에 불과한 욕단 후손이라는 황당한 꿰맞추기 주장이 민족사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으며 무슨 자부심이 될까?
그리스도 안에서 육체적 할례자는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다. 마음의 할례가 참 할례가 된 것이다. 아브라함의 조상들도 달신(月神)을 섬기던 우상숭배자들이었다. 아브라함의 후손 이스마엘과 에서도 야곱의 후손들과 달리 여호와 하나님과 멀어졌다. 심지어 육적 아브라함 후손들은 오늘날 대부분 그리스도 예수를 메시아로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오늘날 셈의 후손들 가운데 그리스도를 제대로 따르는 민족이나 국가는 없다. 지극히 소수의 개인만이 그리스도인일 뿐이다.
육체적 셈족이 영육 간에 복을 받는 다는 신화와 착각에서 빨리 벗어날 필요가 있다. 아무 근거도 없이 굳이 우리 민족을 아브라함 반열도 아닌 욕단의 후손이라 복을 누린다는 착각과 신화와 집착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아브라함과 달리 욕단에게는 육체적 할례 언약조차 없었다. 더구나 할례 언약이 중요한 언약이기는 하나 이것이 언약의 전부도 아니다. 육체적 할례 언약을 받은 아브라함 후손들(유대, 이스마엘, 에서 등)조차 신앙과 멀어진 현실을 보라!
지금까지 노아 후손들 행로를 추적해 볼 때 우리 민족의 큰 줄기는 셈의 계열이 아닌 야벳 족의 흐름을 따라왔다고 본다. 역사는 신앙이 오히려 이방 야벳의 땅에 씨가 뿌려지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음을 보여준다. 육체의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요 믿음의 할례가 필요하다. 이방인의 사도가 된 사도 바울이 전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즉 욕단의 육적 후손이라는 명확한 증거도 없을 뿐더러 설령 욕단의 후손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닌 것이다.

아르박삿 후손들의 미래
모든 셈의 후손들이 아르박삿의 후손들은 아니다. 또한 모든 아르박삿 후손들이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아니었다. 모든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이스라엘 민족이 된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모든 이스라엘 민족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도 아니다. 명목상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하나님의 자녀일 거라는 착각도 버려야 한다.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하며 거짓 선지자 노릇하는 이단, 사이비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마 7)! 명목상의 아르박삿 후손이나 이스라엘 민족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난 참 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만 전도하면 종말이 온다는 착각에 빠지지 말라.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하나님은 차별 없이 오직 하나님의 참 자녀를 찾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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