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비유 중 네 제목은 합당한가?
이번 개정판에서는 독자들이 내용을 편리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개역 한글판에서는 없는 소제목을 달았다. 그런데, 그 소제목 중 몇은 외국어 성경에서나 이전의 우리말 성경(공동번역, 표준새번역)에서 붙인 것과 다르다. 그것은 그 소제목을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대로 무비판적으로 따르지 아니하고, 그 실질적인 내용에 일치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
1)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 비유 (마 13:1-23)
본래의 개역성경에는 소제목이 없으나, 1995년 개정판 신약성경에서 소제목을 붙였다 (이미1967년의 새번역, 1971년의 공동번역, 1993년의 표준새번역에서는 소제목을 붙여 왔다). 그런데, 이들 소제목 가운데에서 그 본문의 내용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마 13:1-23의 내용을 보면 결코 씨 뿌리는 사람에 관한 비유가 아니라, 네 가지 다른 땅에 떨어진 씨가 어떻게 자라는가에 관한 것이다.
2) 잃은 양의 비유 → 잃은 양을 되찾은 목자 비유 (눅 15:4-7)
본문의 내용을 보면, 결코 잃은 양에 관한 비유가 아니라, 잃은 양을 찾은 목자가 기뻐하면서 집으로 돌아와서 친구들과 이웃 사람을 불러 모아 함께 기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결론으로, 그와 같이 하늘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의인 아흔 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기뻐할 것이라고 말한다.
3) 되찾은 드라크마의 비유 → 잃은 드라크마를 되찾은 여인 비유 (눅 15:8-10)
이 본문에서도 그 내용으로 보아 드라크마의 비유가 아니라 드라크마를 되찾은 여인 비유이다. 그 여인은 잃은 드라크마를 되찾으면 벗과 이웃 사람을 불러 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할 것이라고 하였다.
4) 되찾은 아들의 비유 →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 비유 (눅 15:11-32)
이 본문은 흔히탕자의 비유로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자세히 보면 그 이야기의 초점이 결코 회개하고 돌아오는 탕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아들을 되찾아 기뻐하는, 사랑 많은 아버지에게 있는 것이다. 이 아버지는 물론 회개하는 죄인을 용서하시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비유하는 것이다.
이상의 4 가지 소제목을 우리말 성경 개정판에서 그 본문의 내용과 일치시켜 바로잡은 것은 참으로 전 세계를 두고도 획기적인 것이라 할 만하다. 예를 들어 영어 번역 중 최근 또 최우수 번역이라고 하는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1989년, 번역위원장 Bruce M. Metzger) 에서도 보면 마태 13장의 소제목은 ‘The Parable of the Sower’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누가 15장의 3 가지 비유도 ‘The Parable of the Lost Sheep’ (잃은 양의 비유), ‘The Parable of the Lost Coin’ (잃은 동전의 비유), ‘The Parable of the Prodigal and His Brother’ (탕자와 그의 형의 비유) 등으로 되어 있어 그 본문이 가르치고자 하는 주제나 주역(마 13의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 눅 13의 목자, 여인, 아버지)을 나타내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