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十字架)


십자가(十字架)

스타우로스(4716) [ staurŏs ]  σταυρός, οῦ, ὁ     

1. 십자가.   2. 형틀.  3. 수난과 죽음의 상징
발음 [ staurŏs ]
어원  / 2476의 어간에서 유래
  • 1.  십자가.
    • a.  [문자적으로] 형틀, 마27:32,40, 막15: 21,30, 눅23:26, 요19:17,19,25,31, 빌2:8, 히12:2.
    • b.  [상징적] 수난과 죽음의 상징, 마10: 38, 16:24, 막8:34, 눅9:23.
    • c. 기독교와 그 전파 내용의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인 그리스도의 십자가, 갈5:11, 6:12, 고전1:18, 엡2:16, 골2:14.
  • 관련 성경  /  십자가(마 10:38, 막 8:34, 골 1:20).

* 2476. 히스테미() ἵστημι    스트롱번호2476

1. 놓다.  2. 세우다. 3. 내세우다
발음 [ histēmi ]

관련 성경 / 서다(마2:9, 막9:1, 요1:35), 세우다(마4:5, 행6:6, 롬3:31), 데리고 가다(마18:16), 서 있다(마20:6), 두다(마25:33), 멈추다(행8:38), 작정하다(행17:31), 그대로 두다(고전7:37), 확정하다(고후13:1), 대적하다(엡6:13), 앉다(약2:3), 일어서다(계11:11).


십자가형

우선 사형수에게 기절할 정도로 모진 채찍질을 가한다.
다만 성경에서는 예수는 이러한 채찍질을 당했다는 묘사가 있으나 다른 죄수들은 이러한 묘사가 없다는 점을 들면 일반적으로는 십자가형을 당할 죄수에게 굳이 채찍질을 가하지는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십자가형이 공개처형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죄수가 오랫동안 살아있어야 공개처형의 효과가 커지니까 굳이 시작부터 반 죽여놓고 하면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당시 로마 제국에서 쓰던 채찍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노예들에게 작업을 강요하거나 군율을 위반한 병사에게 그 대가를 가르쳐줄 목적으로 때리는 채찍이었고,
다른 하나는 진짜로 죽일 생각으로 때리는 채찍이었다.
십자가형에서 사용되는 채찍은 대부분 후자로, 벌이 목적이 아니라 사실상 사형이 목적인 도구였다.
이러한 사형 집행용 채찍은 보통 39개의 가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해당 채찍을 휘두르는 병사의 마음에 따라 훨씬 가닥 수가 많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 채찍은 땋은 가죽으로 되어 있었는데, 가죽끈을 꼴 때 곳곳에 쇠 구슬, 날카로운 뼛조각, 쇳조각, 가시 등의 온갖 위협적인 흉기들을 박아 넣었다.
게다가 형을 집행하기 전에 채찍을 하루 동안 물에 담궈 불려놓아 무게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때문에 단순히 피멍이 드는 정도는 약과고, 상처난 곳이 벌어지고, 살이 찢겨져 나갔다.

이 채찍을 이용해 사형수의 전신을 거의 죽음의 문턱에 도달할 정도로 무자비하게 난타질한다.
이렇게 얻어터진 사형수의 피부는 모조리 뜯겨져 나오고 그 밑의 골격과 근육은 대부분 쓸려져 내리는데, 3세기의 역사가 요세푸스(에우세비우스)의 기록을 인용하면 '태형을 당하는 사람의 정맥이 밖으로 드러났고, 근육, 근골, 그리고 내장의 일부가 노출되었다'고 한다.

가장 유명한 희생자인 예수의 경우,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수준으로 망가져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구역질을 하며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고 한 성경 표현에 비유할 정도이니 일반적인 채찍질과는 차원을 달리함을 짐작할 수 있다.
네로 황제가 폐위된 후 이 채찍형을 당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자살했을 정도로 무서운 형벌이었다.

이렇게 채찍질을 당해 너덜너덜해진 사형수에게, 자신이 직접 십자가를 짊어지게 하고 처형장까지 이동시킨다.
십자가 형틀의 무게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가볍게 보는 학자들은 18㎏에서 무겁게 보는 학자들은 50㎏까지 다양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빈사 상태인 사람이 쉽게 지고 이동할 만한 무게는 아니다.
채찍질로 만신창이가 된 몸이 겪는 고통도 엄청난데, 이런 식으로 몸을 혹사당하면 그만큼 빨리 상처의 괴저가 일어나 전신이 불로 달구는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에 중도 사망하는 죄수도 많았는데, 이때 사형수의 가족들은 채찍질을 가하는 집행인에게 뇌물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채찍질을 살살 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채찍질을 엄청 심하게 해서 가능하면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에 죽게 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사형수가 십자가를 들고 처형장으로 오면 십자가에 매달 준비를 한다.
우선 사형수의 속옷까지 모두 벗겨 나체로 만든다.
형의 집행에 남녀를 가리는 일은 없었다.
이후 사형수를 십자가에 눕히고 손목과 발뒤꿈치에 18cm에서 13cm정도의 사람의 몸무게를 지탱할 만한 초대형 대못을 박는다.
이 못의 크기 때문에, 못에 박히는 순간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팔꿈치를 벽에 세게 부딪칠 때 혹은 척골신경을 펜치로 잡고, 비틀어서, 뭉개는 듯한 심한 고통이다.
쉽게 말해 무릎을 벽이나 책상 모서리 등 딱딱한 물체에 세게 부딪혔을 때나 정강이를 쪼인트까는 고통이 계속 이어진다고 보면 된다.

이걸 보고 몇몇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익히 알려진 손과 발등에 못을 박는 방식이라면 덜 고통스럽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팔을 십자가에 묶는 식으로 그런 형태를 재현한다 해봤자 결국 별 차이는 없다.
일단 팔과 어깨에 가해지는 압박감이야 그대로이고, 손이란 부위 자체가 촉감이 가장 크게 발달한 곳이라 손바닥에 대못을 박으면 역시 상당한 고통이 따르고, 무게로 인해 상처가 점차 찢어져갈 테니 더욱 고통스럽다.
특히 발등의 경우 뼈가 밀집한 곳이라 여기에 대못을 박는 것 자체가 뼈를 상하게 만드는 탓에, 발목에 못을 박는 것에 상응하는 고통이 따르게 된다.
애초에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부터가 이 전통적 인식의 십자가형에 기반한 것인데, 순화한 게 그만한 고어도를 선보였으니 말 다한 셈.

그리고 사형수가 박힌 십자가를 세워서 사형수가 죽을 때까지 방치한다.
얼핏 보면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 자체는 별로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지만 최악의 고통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우선 못박힌 상처에 몸무게와 같은 힘이 가해져 상술한 고통이 극대화되며, 못에 잔뜩 끼었을 이물질로 인한 감염 때문에 파상풍이 일어난다. 
여기에 못 박힌 팔이 몸무게 때문에 팔이 늘어나다 결국 양쪽 어깨가 탈골된다.
이를 시작으로 온 몸의 다른 관절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어그러진다.
거기다 양 팔이 대못에 고정되어 있어 가슴을 압박, 폐와 횡격막을 강제로 숨을 '들이쉬는 상태'로 만들어 놓는다.
때문에 사형수는 생존본능상 몸을 올려서 숨을 내쉬려고 하는데, 몸을 세우려면 못박힌 손목과 발목에 힘을 줘서 몸을 들어올려야 하니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받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힘을 빼버리면 또 다시 숨을 못 쉬는 상태로 돌아온다.
결국 이 과정을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반복해야 하는 것이었다.

현대의 연구에 따르면 십자가형의 수형자들은 못박힌 상태에서 대략 1,000번 정도 기절했다가 깨었다를 반복하며, 이 과정은 그야말로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상태라고.
그렇게 반복하다가 지치면 숨을 쉴 수 없게 된다.
호흡 수가 줄어들면서 질식사하거나 혹은 호흡 산독증(酸毒症)에 빠져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게 되면서 심장이 터지거나, 심정지로 사망한다. 후술할 십자가형 마지막에 다리를 부러뜨린 이유도 이제 그만 질식사해서 빨리 죽으라고 부러뜨린 것이다.

이러한 육체적인 고통을 제외하더라도, 십자가형은 당시에 수치와 혐오의 상징과도 같은 형벌이었다.
앞서 언급된 것처럼 백주대낮에 알몸으로 매달려 지나가는 행인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도 당연히 수치스럽지만, 십자가에 못박히게 되면 더럽고 추한 몰골로 인간성을 잃은 채 죽기 때문이다.
우선 형 집행에 앞서 채찍질을 당한 경우, 난도질 당한 상처들이 세균 감염과 괴저 현상으로 인해 곪아터져 진물과 고름이 흐르고, 부족한 산소와 계속되는 출혈로 인해 상처투성이인 전신이 썩어들어가기 시작한다.
이 때 풍기는 악취로 인해 주변의 벌레들까지 잔뜩 달라붙게 되니 사실상 목숨만 붙어있는 시체나 다름없는 모습이 되어버린다.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지속되는 극악의 고통으로 인해, 몸 안에 있는 모든 체액이 빠져나온다.
단순히 피만 흘리면서 깔끔하게 죽는 게 아니라는 것. 신체에 남아있던 소변, 대변 등의 오물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모조리 빠져 나온다. 한마디로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은 온 몸에서 고름과 진물이 흐르고, 악취와 함께 전신이 산 채로 썩어들어가며, 통제를 잃은 신체에서 분비되는 자신의 배설물에 범벅이 되어 죽는다.

이러한 이유로 로마의 정치인이었던 키케로는 십자가형을 "가장 역겹고 구역질 나는 형벌"이라고 묘사하며 "로마 시민의 시야는 물론 생각에서조차 지워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십자가형이 단순히 고통스럽게 피만 흘리다 죽는 형벌이었다면 이러한 극단적인 평가를 내릴 이유가 없다.

이러한 혐오스러움으로 인해 로마 시민이나 시민권자가 아니라도 자유민으로 인정된 사람. 그리고 해방노예는 십자가형을 적용받지 않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속주민은 적용이 가능했지만 자치가 인정되는 동방에서도 총독이 다른 사형으로 대체할 수 있었고 서방에서는 적용되지 않았다.
주로 적용 가능한 사례는 반란을 일으키거나 주인을 살해한 혹은 살해하려다가 실패한 노예들이었다.
노예가 아닌 자들은 반란이나 연쇄살인 같은 정말 심각한 중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십자가에 달려 죽는 일이 드물었고, 자치가 어느 정도 인정되던 동방이 아닌, 적어도 로마법이 원칙대로 집행되던 서방 지역에서 노예가 아닌 자는 차라리 맹수의 먹이가 될지언정, 십자가형을 당하는 일은 없었다. 
따라서 십자가형은 인간 사회의 가장 하찮은 자들 가운데서도 쓰레기들만 모아 처리하는 형벌로 인식되었고, 이 같은 관습은 형벌을 당할 때 수치스러움을 증가시켰는데 십자가에 매달린 시점에서 "나는 죄 지은 노예 아니면 가장 나쁜 죄를 저지른 범죄자입니다"라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외에도 십자가에 매달린 죄수는 이전에 당했던 채찍질과 못박힐 때의 출혈로 저혈량성 쇼크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 상태가 되면 심장이 더 이상 피를 퍼올리지 않게 되고, 혈압이 떨어져서 정신이 몽롱해지거나 기절한다.
그리고 신장은 남아 있는 피의 양을 유지하기 위해 소변을 만드는 일을 중단하며, 몸은 흘린 피를 보충하기 위해 액체를 요구하게 되기 때문에 매우 목이 마르게 된다.
성서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에도 로마 병사가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셔서 주었다.
번역에 따라서는 그냥 식초라 하기도 하지만, 당시 로마군은 쉬어서 식초나 다름없게 된 포도주를 상한 물에 타 둘 다 마실 수 있게 만든 포스카(Posca)라는 음료를 주로 마셨으므로, 예수의 처지를 동정하여 포스카를 준 것이라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이 병사 이전에도 몰약이나 쓸개즙을 섞은 포도주를 주기도 했는데 이는 십자가에 매달리는 죄인의 고통을 덜기 위한 마취약이었다는 설이 있다.
예수는 이 몰약 섞은 포도주는 거절했지만 해면에 적신 신 포도주는 마셨다.

보통 십자가에 못박히면 하루 안에 사망한다고 하지만, 처형자가 오래 버티면 다리뼈를 부러뜨리기도 하는데, 이 경우 다리가 버티는 힘이 사라지면서 몸이 순간적으로 아래로 쳐져서 가슴을 더 압박한다.
숨을 쉬기 위해서는 발을 세워야 하는데 뼈가 부서졌으므로 몸을 들 수 없어 곧 질식사하게 된다.
어찌 보면 자비를 주는 것이다.
요한복음 19:31-36에는 유대인이 안식일을 앞두고 시체를 십자가에 두지 않기 위해 예수와 두 도적을 처리해 달라고 본티오 빌라도에게 요청했고, 로마 병사들이 가서 두 도적은 다리를 꺾어 죽였는데 예수는 이미 죽었으므로 시체를 상하게 하지 않았다고 되어 있다.
말하자면 마지막 자비.
이에 대해선 성흔 문서의 내용도 참고.
다만 이는 유대에만 국한되었으며, 로마 제국의 다른 지역에선 시체를 계속 매달아 썩게 했으며 장례가 허용되지 않았다.
십자가형의 또 다른 잔인함인데, 십자가에서 내려진 두 강도의 시체도 장례를 치르지 않고 그대로 버려졌다. 
장례를 치른 예수가 상당히 이례적인 케이스.

죄수가 사흘간 생존했다는 기록도 일부 보이며, 사흘을 버티면 '너는 죄값을 다 치렀다'며 살려주었다고 한다.
물론 살아봤자 이미 채찍질 과정에서 등의 피부와 근육이 박살이 나고 십자가에 박히는 과정에서 손발목의 뼈와 힘줄에도 심한 타격이 갔고, 지저분한 못으로 인해 파상풍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또한 위생과 거리가 먼 시대고 십자가형을 당하는 사람이 재산이나 빽이 넉넉하지도 않을 테니 풀어줘도 세균 감염, 통증 등의 후유증으로 얼마 못 가 죽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예가 있는데, 유대 전쟁 당시 요새푸스가 십자가에 처형된 유대 반란자들 중에서 지인 셋을 발견하고 티투스에게 살려줄 것을 요청했다.
그래서 티투스가 십자가에서 내려주었으나 그 중 한 사람만 살고, 나머지는 전부 사망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사형이라서 로마도 사형 중에서 능지형과 함께 최악의 사형으로 규정해 두었고, 로마인들은 십자가에 못박힌 고통을 설명할 길이 없어서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야 했다.

'말 못할 고통, 미칠 듯한 고통' 라는 뜻의 'excruciating'의 어원이 바로 이 십자가(cross)에서 왔으며, 문자적으로 excruciating은 '십자가로부터'라는 뜻이다.
그 외에도 옛 로마의 문인들은 십자가형을 차마 말할 수 없이 잔혹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라틴어 욕 중 "천벌 받아라"는 의미의 "아비 인 말람 끄루쳄 / 아비 인 말랑 크루켕(Abi in malam crucem)!"은 직역하면 "X랄 같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라"이다.
한국어로 의역하자면 "육시랄 놈"과 의미가 일치하는 것이다.
법에서도 로마 시민들은 십자가형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었고, 그래서 로마 시민권자였던 바울로는 참수형을 받았지만 베드로는 시민권자가 아니었기에 십자가형을 당했다.
십자가형을 집행하고 죄수가 죽을 때까지 보초를 서는 병사들도 그 잔혹함과 죄수가 겪는 끔찍한 고통에 무심하지는 못했던지, 과다출혈이나 질식으로 죽더라도 고통을 덜 느끼고 죽게 하기 위해 죄수에게 마취제를 투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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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디까지나 죽는 데 며칠이 걸리는 십자가형에 비해 비교적 죽음에 이르는 시간이 길어야 몇 시간 정도로 적을 뿐이지, 확실한 사실은 거열형이나 팽형, 화형 역시 심각한 고통을 동반하는 사형법들이다.

거열형()은 사형의 방법 중 하나이다. 환열(裂), 환형(轘刑)으로도 불린다.

중국전국시대 때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변법과 개혁으로 유명한 나라 재상인 상앙이 개발했다고 전하며, 과 사지를 밧줄에 묶어 의 힘으로 각각 반대 방향으로 당겨 찢어 죽이는 방법이다.
이름에 수레 거가 들어가는 이유는 밧줄을 소의 몸에 묶은 모습이 우마차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사극 등에서는 이를 오해하여, 실제 수레가 형 집행에 동원되는 연출이 나오기도 한다.

5마리의 를 이용해 당기기에 오우분시(五牛分屍)라고도 하고, 몸이 5조각이 나므로 오체분시라고도 한다.
잘 안 찢어질 경우에는 망나니가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칼집을 내기도 했다.
능지형 정도는 아니라도 심히 아프게 죽을 것은 확실하다.

실제로 거열형을 실행하면 무릎 관절 혹은 허벅지 관절부터 찢어지지만 허벅지 관절이 뜯어지는 상황은 거의 없다.
적어도 역사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 무릎부터 파열한다.
또한 보통 상상하는 모습대로 양 손목과 발목에 줄을 묶었다간 손발만 뜯겨져 나가 죽지 않을 것이므로 실제로는 팔꿈치와 무릎에 줄을 묶는다.

이 벌을 고안해낸 상앙은 결국 죽은 뒤 이 형벌부관참시를 당했다.
사형대 기요틴을 고안해 낸 기요탱 박사가 기요틴의 이슬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소문에 불과하지만 상앙의 거열은 사실이다.
산 채로 당한 것은 아니고 숙청의 위기에 몰린 상앙이 반란을 일으켰다 사로잡혀 죽임을 당하자 그 시체를 함양으로 끌고 가 거열에 처했다. 그는 변법으로 진나라에게 부국강병을 이뤄주고 전국을 통일할 발판을 마련해줬지만, 무자비한 처벌을 한 터라 백성들의 원성은 하늘을 찔러서 거열당한 뒤엔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다투면서 그의 살을 씹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로 반란을 꾀한 역적을 처형할 때 쓰이며, 동양권은 물론 유럽에도 마녀이단, 반역자 등 중죄인을 처형할 때 비슷한 방법을 썼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루이 15세의 암살 미수범 로베르 프랑수아 다미앵이 말 3마리에 묶여 처형당한 장면은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미셸 푸코의 대표 저작 <감시와 처벌>의 도입부에 전근대의 대표적인 형벌로써 매우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 잔혹함 때문에 공개처형의 한 방법으로 쓰이기도 했다.

사실 고대 기준으로도 너무 잔인한 처벌이라 춘추전국시대 지식인들도 거열을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으며, 중국에서는 978년 요나라에서 평왕의 아들 진가가 부왕을 살해하려다 거열형에 처해진 후에는 공식 형벌로는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다.[2]


[2] 사실 능지형도 FM대로 집행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 보통 형대상자를 먼저 죽이고 시작하는 경우도 있었고(이 경우는 육시()라고 하며, 욕설 '육시랄'의 어원이 이것이다), 아니라 해도 죄수에게 마취를 목적으로 아편이라도 먹였다. 다만 이는 인도적인 이유라기보다는 쇼크로 너무 일찍 죽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때문에 능지형은 시신의 훼손 정도는 십자가형보다 더해도 실제로 가해지는 고통은 FM대로 집행하든 AM대로 집행하든 십자가형보다는 덜했다.[3] 그 밖에도 스카피즘이라는 고대 페르시아 제국에서 시행된 길고 고통스러운 사형방식이 있었다 전해지지만, 이는 실존 여부가 불확실하다.[4] 고대 아테네에서 사용한 십자가는 '아포툼파니스모스(Apotumpanismos)'라고 한다.[5] 스파르타쿠스는 전투 중에 전사했다.[6] 다른 건 몰라도 사형 선고만큼은 반드시 로마 행정관의 허가가 필요했다. 뒤집어 말하자면 사형 이외의 형벌은 로마인 행정관의 허가조차 필요 없었다는 뜻이 된다.[7] 다만 해당 전통이 복음서 외에서 발견된 적은 없기에, 현대 사학자들은 이 전통의 존재를 부정적으로 본다.[8] IESVS NAZARENVS REX IVDAIORVM. 예수스 나자레누스 렉스 유다이오룸. 십자고상을 보면 명패에 INRI라는 약자로 적혀있다.[9] 일부 해설본에서는 피지배민족인 유대인들의 선동에 어쩔 수 없이 예수를 처형하게 되자 자존심이 상한 빌라도가 처형하는 대신 유대인들에게 엿도 먹이려고 일부러 저런 명패를 달았다는 말이 있다. 사실 당시 빌라도는 예수를 진심으로 믿었거나 원칙주의자라서 처형을 말리려 한 것이 아니라 원래도 말 안 들었던 유대인들이 딱히 잘못한 것도 없어 보이는 사람을 죽이라고 엄밀히 정부에서 임명받아 그들을 다스리는 빌라도에게 떼쓴 것이니 빌라도 입장에서는 당연히 순순히 내줄 이유가 없었다. 쉽게 말해 기싸움(= 당신이 이 사람 안 죽이면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당신은 황제의 충신이 아니다 등등)에 져서 멀쩡한 사람을 죽이게 되었으니 일부러 불편한 심기를 팍팍 드러냈다는 것이다. 이 해석대로면 손을 씻으면서 이 사람들은 너희가 죽이는 거지 내가 죽이는 게 아니라고 선포하는 것도 일말의 양심선언이 아니라 이런 불쾌한 심기를 드러내는 거라고 볼 수 있다.[10] 특히 성경 관련 영화나 매체에서는 예수는 일단 채찍질을 당하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서 못에 박히는데 비해, 다른 두 죄수들은 멀쩡한 상태에서 못에 박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11] 성경에서도 누가복음 23장과 요한복음 18~19장을 통해 보면 빌라도가 군중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예수에게 채찍질만 가한 후 풀어줄 생각이었으나, 그 후에도 백성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하자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12] 성경에서 보면 양의 뼛조각, 철조각 등 온갖 날카로운 조각들을 붙여놨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하다.[13] 기독교계에서 유명한 영화인, 멜 깁슨 감독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이 장면에 가깝게 묘사되어 있다. 본 사람은 알겠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채찍질의 상식을 뛰어넘는다.[14] 이사야서 52장 14절: "무리가 그를 보고 기막혀 했었지. 그의 몰골은 망가져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었고 인간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이미 사람 비슷한 모습도 지니고 있지 않아서 보는 사람마다 질겁하며 고개를 돌렸다."[15] 참고로 이 채찍질은 십자가형만의 전매특허가 아니었으며, 로마 시민과 해방 노예를 대상으로 한 참수형에도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당시 기록에도 남아있다. 특히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 10분의 1형에서는 아예 죽을 때까지 후려쳤다고 한다.[16] 실제로 예수의 경우 골고타 언덕까지 십자가를 직접 짊어지고 올라갔다고 기록되어 있다.[17] 2004년작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는 두 죄수가 가로축인 파티불룸만 어깨와 팔에 걸쳐 묶어서 지고 가는 데 반해 예수는 종래의 이미지대로 십자가 전체를 손으로 들고 가며 2011년작 My Last Day에서는 죄수들과 마찬가지로 파티불룸만 진다.[18] 다만 예수는 빈사 상태에서 십자가를 지고 이동했고 다른 대부분의 죄수들은 채찍질을 맞지 않은 상태에서 지고 이동했다. 그렇다고 건강한 상태에서도 저 무게가 가벼운 무게는 절대 아니다.[19] 비슷한 사례로, 전근대 한국에서도 죄인의 가족 등이 참수형을 집행할 망나니에게 고통 없이 한 번에 편하게 보내 달라고 뇌물을 쥐어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도 정작 죄질이 극악할수록 오히려 채찍질을 안 하고 집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집행인에게 채찍질을 심하게 당하면 얼마 가지 않아 숨을 거두기 때문에 그나마 고통이 덜해지지만, 채찍질을 당하지 않고 집행하면 오히려 고통이 며칠이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십자가를 지기 전 따로 채찍질을 당한 예수는 6시간 만에 숨을 거두었으나, 그렇지 않은 두 강도는 안식일 시작 전(현대 기준 토요일 오전 6시)까지도 살아 있었기 때문에 다리를 부러뜨려야 했다. 또한 크라수스가 스파르타쿠스의 노예 봉기를 진압한 뒤 생포된 노예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할 때도 일부러 채찍질을 하지 않았는데, 반역자가 고통스럽게 죽는 광경을 다른 사람들이 며칠에 걸쳐 아피아 가도를 지나면서 봐야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다만 두 강도는 채찍질을 당했다는 묘사가 거의 없다시피하고 예수만 채찍질을 모지게 당했다는 묘사가 있는데 십자가형에 처하는 이유가 오랫동안 죽음의 고통을 맛보게 하기 위함이라는 걸 생각하면 오히려 채찍질을 안 해야 오래 살기 때문에 그렇다. 본티오 빌라도는 성서에 나오는 묘사로는 그저 예수를 채찍질만 하고 풀어주려는 생각이었으나 십자가형을 요구하는 군중들의 요구에 못 이겨 십자가형까지 선고해버려서 예수의 십자가형이 특히 잔혹해졌다는 평가다. 결국 예수는 두 강도보다 일찍 사망했고 두 강도는 시체를 매달아두면 안 되는 안식일이 시작될 때까지 죽지 않아서 병사들이 직접 다리를 부러뜨려 죽였다.[20] 다만, 여자의 십자가형이 미술에 묘사되는 일은 거의 없다. 물론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다 나오기는 하지만, 그것들도 거의 최근에 와서 예술로 그려진 것들이며, 보통 십자가하면 남성인 예수를 생각하기 마련이므로.[21] 흔히 성화상에는 예수의 손바닥에 못이 박혀 있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손바닥이 아니라 손목이다. 당시의 언어가 손바닥과 손목을 구별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고대 헬라어에서는 손목이 손바닥에 속했다)이다. 상식적으로도 손목의 뼈 사이에 못을 박아야 몸이 단단하게 고정이 되며, 손바닥에 못이 박히면 몸무게 때문에 손바닥이 찢겨져 나가서 십자가에서 떨어져 버린다. 물론 팔을 밧줄로 묶어서 고정했다면 손바닥에 박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22] 팔굽에 있으며 때리면 짜릿하고 고통스러운 느낌이 나는 부분의 신경.[23] 사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도 채찍질과 십자가에 못박히는 장면에서나 그나마 현실에 근접하는 고어도를 보인 정도이고, 막상 십자가가 세워진 다음 희생자가 겪는 끔찍한 고통에 대해선 그냥 대강 넘어갔다. 즉 현실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하면 절대 그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24]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도 묘사되지 않은 증상이지만,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못박힌 손목과 발목 모두 시간이 흐르면서 끔찍스럽게 부어올랐을 것이다.[25] 혈액 속 이산화 탄소탄산으로 분해되면서 혈액의 산성이 증가하는 것.[26] 사실 이 당시엔 최대한의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게 하는 사형방식이 유행이었는데, 앞서 설명한 방식대로 죄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둔 후 손발의 통증과 서서히 조여오는 숨통으로 인해 고통스러웠을 것이며 최대 3일까지 생존한 죄수도 있다고 한다. 성서에서 예수의 양옆에 못박힌 죄수들을 빨리 죽으라며 다리를 꺾었는데 이는 예수의 처형 다음날이 유대교의 명절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였다.[27] 이들에 대한 법정 최고형은 참수형이었다. 사도 바울로가 참수형으로 순교한 것이 바로 로마 시민이었기 때문이다.[28] 물론 네로처럼 대중에게 보여주고 방화죄를 뒤집어 씌울 겸 당시 로마에 살던 속주민 출신 기독교인들을 십자가형에 처한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네로 자체가 로마 역사상 극히 드문, 비정상적인 성향의 소유자였다는 걸 생각한다면 일반적인 사례는 아니었다.[29] 고대 로마 시대에 해면의 용도는 휴지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를 두고 로마 병사의 행위는 모욕을 위한 것이었다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현대의 휴지가 화장실에서만 쓰이지는 않듯이, 이 당시의 해면도 볼일을 본 뒤 닦는 용도뿐만은 아니었다. 로마 군인들도 해면을 두 개 소지하고서는 작전 등으로 인해 주둔지 밖으로 나갈 경우 깨끗한 해면을 이용해 물을 마셨는데, 이는 해면은 압축해서 들고 다닐 수도 있기에 공간 차지가 적고, 컵과는 달리 깨질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30] 요한 복음서에서는 창으로 찔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유명한 롱기누스의 성창이 이때 쓰인 창이다.[31] 부활 영화에서 십자가에 매달아 놓은 시체들을 처리하는 장면이 나온다. 거의 버리다시피 하는데 시체를 처리하는 병사들이 시체의 썩는 냄새 때문인지 구역질을 해댄다.[32] 아리마태아의 요셉이 예수의 시체를 요구했을 때 빌라도가 흔쾌히 시체를 내어주었는데 본래 십자가형을 받는 사형수는 장례조차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빌라도는 죽이는 걸 반대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있다. 그래서 빌라도는 어쩔 수 없이 죽인 예수의 시체를 도의적인 차원에서 예외로 장례를 허용해준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33] 로마 군법에는 더 상위의 처형이 하나 더 있었는데, 군단의 10% 인원을 무작위로 뽑으면 남은 동료들이 직접 때려죽이게 해서 집단 처형하는 1/10형(decimatio)이 그것이다. 워낙 악명높았기 때문에 학살을 의미하는 단어 'Decimate'의 유래가 됐다. 제노사이드보다 조금 더 광범위한 의미로 쓰인다.[34] 전자가 교회 라틴어, 후자는 로마 제국 당시 라틴어(즉 고전 라틴어) 발음.[35] 아킬레스건에 가까운 방향.[36] 요한 복음서 20장 27절.[37] 해당 언어들에서 손이라는 단어는 팔 전체를 가리키고, 발은 다리를 넘어 사타구니까지 포함한다.[38] 애시당초 개혁주의 개신교에서 성상을 꺼리는 이유에는 단순히 '비성경적이다', '우상숭배다' 외에 묘사된 성상들이 하나같이 재현 오류 투성이라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보는 면도 있기 때문이다.[39] NGC 예수 이전 메시아의 부활.[40] 대부분 속옷 비슷한 걸 입힌 십자가상이나 그림이 많지만 반대로 현실대로 다 벗겨놓은 그림이나 십자가상도 있는 편이다. 구글에 검색하면 나온다. 물론 영화에서도 마찬가지. 정말 그대로 다 벗겨서 처형하는 장면이 나오는 건 몬트리올 예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정도. 대부분 영화에서는 속옷 비슷한 걸 입고 있다. 이유는 알몸 표현이 예나 지금이나 많이 터부시되고 그림은 몰라도 영화 제작에서 이렇게 알몸 표현을 하면 성(性) 관련 심의규정 등 여러 제약이 생기기 때문이기도 해서 편의상 입힌다고 보면 된다.[41] 정확히는 좌우 옆구리에서 창을 찔러넣어 어깨로 관통하게 찔렀다. 이 때문에 일본 책형의 경우 애초에 죄수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과정이나 방식이 십자가형과는 전혀 다르므로 완전히 동일시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사실상 창을 이용한 자살(刺殺)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할 듯 하다.[42] 그 영향으로 오늘날 일본의 가톨릭 성당에 있는 십자고상 중에는 예수가 아니라 십자가형(책형)에 처해진 전근대 일본 가톨릭 신자의 모습을 한 게 많다. 그리고, 바울로는 십자가형이 아닌 참수형을 받게 되자 십자가형을 받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했고 사도 베드로는 십자가형을 받는 것도 송구스러워하면서 역십자형으로 순교했다고 전승된다.[43] 여자의 하의를 벗긴 후에 등을 묶어 매달아서 삼각목마형 고문도구에 태우는 것이다. 문제는 목마의 안장이 그야말로 칼날 그 자체라는 것. 그걸로도 부족하면 발목에 무거운 추를 매단다. 스페인 마녀재판에 주로 사용되었고, 역시 에도 시대 천주교 박해 때도 이용되었다.[44] 잔 다르크가 당한 것 같은 방식과는 달랐다. 당시 일본의 화형은 여성과 남성을 불문하고 전라로 만들어 기름을 붓고 기름에 절은 도롱이까지 입혀서 광장에서 불을 붙이는 방식이었다.[45] 슬로바키아자유 프랑스 국기에 그려져 있는 로렌 십자와 비슷한 것.[46] 실제로 이 문화는 문경 십자가 시신 사건 발생되기 훨씬 이전에 한국에서 방영된 TV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바가 있었다. 이에 해당 사건의 당사자가 이 방송을 보고 그대로 따라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사건에 대해서는 필리핀 현지인들도 어떻게 혼자서 할 수 있냐는 등의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라고 한다.[47] 심지어 테마곡 또한 '산제물의 역책형'.[48] 조피, 울트라맨, 울트라 세븐, 울트라맨 잭.[스포일러] 아라가키는 이미 죽었거나 의식불명 상태로 이탈한 시점이다.[50] 애초 로마가 모티브인 집단이다, 다만 존중받을 가치가 있을 만큼 강한 이들은 참수형으로 고통 없이 끝내준다.[51] 플레이어 선택에 따라 다르다.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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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라는 단어를 한글성경에서 검색하면 신약에서만 72구절이라고 한다.

마태복음 16
마가복음 12
누가복음 8
요한복음 11
사도행전 2
로마서 1
고린도전서 6
고린도후서 1
갈라디아서 6
에베소서 1
빌립보서 2
골로새서 3
히브리서 2
요한계시록 1
_________________ 72구절

예수님께서 십자가형(十字架 刑)을 받으신 이유는?

예수님께서 당하신 십자가형은 인간이 지닌 잔인성과 가학성,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형벌이다. 십자가형을 당하는 죄수들은 인권이 무시된 채 길가에서 공개적인 모욕을 당했다.

왜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이토록 참혹하고 치욕적인 십자가형을 선고받으셔야 했을까. 성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희생하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관해 알려준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십자가형의 잔인성

십자가형은 사거리, 극장, 언덕 등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장소에서 집행됐다. 이는 로마제국이 민중에게 공포심을 심어 국가를 향한 반란심이나 저항 의지를 초석부터 꺾기 위함이었다. 죄수는 대중 앞에서 십자가에 나체 상태로 매달려 처형당했다. 이러한 처형 방식은 죄수에게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 수치심까지 안겨주었다.

일단 십자가형이 선고된 죄수는 자신이 달릴 십자가를 처형 장소까지 직접 지고 가야 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의 질타를 받고, 십자가에 달린 이후에도 극심한 고통과 함께 배고픔, 목마름, 수치심을 겪는다. 그러나 목숨이 끊기기 전까지는 절대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 없다.

십자가형은 그리스어로 ‘Stauros’라 한다. 사람을 매달 수 있는 말뚝을 의미하는데, 집행 방법은 찌르기, 매달기, 묶기, 못 박기 등 다양한 방식이 사용되었다. 형틀은 기둥 모양이나, ‘T’자 모양, ‘十’자 모양이 보편적이었다.

예수님께서는 7피트(약 2m) 정도 높이의 십자가에 달리셨다. 실제 예수님을 못 박을 때 쓴 못의 길이는 5~7인치(약 12~17cm)인데, 못이 박힐 때 느껴지는 고통은 팔굽뼈의 신경을 잡고 펜치로 비틀어 뭉갤 때의 강도와 비슷하다고 한다.

죄수들은 보통 9시간에서 2~3일, 길게는 일주일까지 십자가형을 당했다. 그런데 성경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6시간 동안 십자가 고난을 당하셨다. 이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부터 예수님은 이미 생명이 위독하신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처형 이전 태형(채찍형)을 받으셨다. 로마의 태형은 매우 잔인하기로 악명 높았다. 이 형벌에는 ‘아홉 꼬리 고양이’라는 이름의 채찍이 사용되었다. 총 39가닥의 줄로 이루어진 채찍 끝에는 동물의 뼈, 쇠구슬, 유리조각 등이 박혀 있어, 한 번만 채찍질을 가해도 죄수는 치명상을 입었다. 로마 군병들은 이 채찍의 무게를 더 무겁게 하기 위해 처형 전 미리 채찍 가죽을 물에 불려 놓았다고 전해진다. 고대에는 이 형벌을 받다가 쇼크사로 즉사한 사례도 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문턱 직전까지 장시간 동안 채찍질을 받으셨다. 군병이 무차별적으로 휘두르는 묵직한 채찍은 예수님의 어깨, 팔, 가슴, 복부, 등, 허벅지, 종아리, 정강이 등 전신에 깊숙이 박혔다. 3세기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태형의 잔인함에 대해 “태형을 당하는 사람의 정맥은 밖으로 드러나고, 근육과 근골, 창자 일부가 노출되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리신 이후에도 인간이 가히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견디셨을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관해 연구하는 의학자들은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 극심한 호흡곤란과 혈액순환 장애를 겪었을 것’이라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그뤼네발트의 작품 <십자가형>, 1515년∙유화∙운터린덴 미술관

대한민국의 한 법의학자는 그뤼네발트의 작품 <십자가형>이 예수님의 고통을 잘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가슴 밑 부분이 잘록하게 파여 들어가고 흉벽에는 늑골 모양이 무늬를 이루고 있는 것은 호흡곤란이 오다 지쳐서 탈진상태에 들어간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못이 박힌 손바닥 부위를 보면 손가락은 부채 살처럼 퍼져 있는데 이것은 손바닥에 못이 박힐 때의 아픔 때문에 손목과 손가락이 경련을 일으켰을 때 보이는 모양이다. 발 부위는 두 발이 겹쳐 못이 박혔으며 발가락의 인대들이 줄무늬처럼 일어선 것 역시 아픔 때문에 일어나는 발가락의 경련으로 보이는 현상이다.”

예수님께서 선고받았던 십자가형의 의미

예수님께서 선고받으신 십자가형은 그 당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까? 유대인들에게 십자가는 그야말로 저주의 상징이었다. 십자가는 이미 구약시대부터 저주받은 나무로 여겨졌다.

모세 율법에 따르면 십자가형을 받은 이는 하나님께 저주받은 사람이므로, 그 시체를 밤새 두지 말고 그날에 장사하라고 명하고 있다.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신명기 21:22~23)

유대인들은 흉악한 죄,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중죄인을 처형한 후 나무 위에 매달았다. 그리고 나무 위에 매달려 죽은 자를 ‘하나님께 저주 받은 자’라 칭했다. 그러한 십자가형을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께서 당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형벌을 받으신 이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왜 예수님께서 이런 끔찍한 십자가 형벌을 받으셨는가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당신이 메시아임을 증거하시며,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마태복음 14:14~21),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기적(요한복음 2:1~10) 등을 보여주셨다. 그런데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정작 십자가 앞에서는 도수장에 끌려가는 잠잠한 양처럼 고난을 감내하셨다. 열두 영도 더 되는 천사를 불러 당신을 호위하게 할 능력이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정작 당신을 위한 이적과 기사를 보이셔야 할 때 그리하지 않으셨다(마태복음 26:53).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극한 고통을 묵묵히 감당하셨던 이유는 무엇일까?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로마서 6:23)

성경은 우리 인류가 지은 죄의 대가가 사망이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이 죄는 하늘에서 지은 죄를 의미한다. 즉 인류는 하늘에서 지은 죄로 인해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인류 인생을 가리켜 ‘하늘에서 잃어버린 죄인’이라고 하셨다(누가복음 19:10, 마태복음 9:13). 공교롭게도 우리가 지은 죄는 육신의 죽음뿐 아니라 영혼의 심판과 죽음까지 치러야 비로소 씻어낼 수 있다(요한계시록 20:11~15, 마태복음 10:28). 그렇다면 인류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예수님께서는 사망의 종노릇 할 수밖에 없는 인류를 구원할 구원자로서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인류가 감당해야 할 죗값을 대신 치르셨다(요한복음 1:29).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을 당하셔야 했던 이유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 우리의 허물, 우리의 죄로 인한 것이라고 증거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53:4~6)

우리가 겪어야 했을 사망의 형벌을 예수님께서 대신 짊어지심으로 인류는 생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형벌을 묵묵히 당하신 이유였다. 예수님의 크고 지극하신 사랑에 우리가 어찌 보답할 수 있을까.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과 새 언약 유월절

전 세계 모든 기독교는 교파와 상관없이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인류 구원을 위한 가장 큰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기념한다며 십자가를 교회의 상징으로 세우고 섬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작 예수님께서 그 희생을 담아 세우신 구원의 약속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하신 유월절 만찬 자리에서 이 유월절 지키기를 원하고 원하셨다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새 언약의 유월절을 세우시고 전해주시기 위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가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새 언약 유월절이기 때문이다. 새 언약 유월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 흘리심으로써 세워졌으며, 그 처절한 희생의 대가로 우리에게 허락된 진리다.

진정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을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인류의 사망 죄를 대신하신 예수님의 사랑, 그리고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셨던 메시지를 온전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붙는 것이라

(누가복음 22:15, 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