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十一租)


십일조(十一租)

헬라어로 십일조는 아포데카토오우(ἀποδεκατόω)이다.
아포(ἀπο)는 "~로 부터"(from)에 해당하는 전치사이고, 데카(δεκα)는 10이다.
그러므로 아포데카토오우의 직역은 "10으로부터 나온", 의역은 "10으로부터 나온 1"이 된다.
신약에서 십일조를 뜻하는 명사는 사용되지 않았다.
아포데카토오우는 동사로서 "십일조를 드리다"는 뜻이다. 

신약에서 십일조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사용되었다.
주로 바리새파가 드리는 것이고, 주님께서는 그들이 십일조 드리는 행위에 대해 비판적이셨다.
누가복음은 이를 잘 보여준다. 

누가복음 11:42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박하와 운향과 온갖 채소의 십일조는 바치면서, 정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소홀히 한다! 그런 것들도 반드시 행해야 하지만, 이런 것들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야 하였다.

누가복음 18:11-12 
바리새파 사람은 서서, 혼자 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남의 것을 빼앗는 자나, 불의한 자나, 간음하는 자와 같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으며, 더구나 이 세리와는 같지 않습니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내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예수 시대의 바리새파들이 십일조를 드렸던 것은 분명해 보이고, 또한 마치 종교 세금처럼 형식화 되어 있었던 것도 분명해 보인다.
십일조의 원래 뜻은 무엇일까?
종교세의 일종이었을까? 

십일조의 원래 의도를 신명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율법책에 기록되어 있는 십일조의 의미는 우리가 교회에서 흔히 듣는 십일조의 의미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교회에서 십일조에 대해 무엇이라 가르치는가?
제일 많이 듣는 말은 "하나님의 것"과 "복받는 비결"이다.
모두 말라기 3장에 근거하고 있다. 

8.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훔치면 되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나의 것을 훔치고서도 '우리가 주님의 무엇을 훔쳤습니까?' 하고 되묻는구나. 십일조와 헌물이 바로 그것이 아니냐!
10. 너희는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놓아, 내 집에 먹을거리가 넉넉하게 하여라. 이렇게 바치는 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서, 너희가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붓지 않나 보아라. 나 만군의 주의 말이다.

말라기의 이 말씀은 듣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말씀이다.
1/10을 바쳐서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시는 복"을 받는다니 수지 맞는 비결이 아닌가?
그런데, 과연 이 말씀이 십일조 정신의 정곡을 찌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십일조 전통이 희미해지는 이스라엘 역사 후기에 십일조를 독려하기 위한 격려의 말씀으로 들을 수 있겠지만, 십일조라는 전통을 세우면서 주신 말씀은 아니다. 

십일조는 율법책에서 시작되었다.
신명기 14장에 잘 설명되어 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신명기가 말하는 십일조의 우선 용처는 성전에 바치는 세금도, 레위인에게 주는 생활비도 아니고, 바친 사람들이 "주님 앞에서 먹고 마시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에게나 레위인에게나 드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친 그 사람들이 먹고 마시기 위함인데, 그냥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둔 곳에서" 먹고 마시는데 사용하라 규정한다.
다음 구절을 잘 읽어보자. 따로 설명이 필요없다. 

22   "당신들은 해마다 밭에서 거둔 소출의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23 당신들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처음 난 소와 양의 새끼와 함께,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자기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곳으로 가지고 가서, 주님 앞에서 먹어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24 그러나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곳이, 당신들이 있는 곳에서 너무 멀고, 가기가 어려워서, 그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25 당신들은 그것을 2)돈으로 바꿔서, 그 돈을 가지고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택하신 곳으로 가서,
26   그 돈으로 마음에 드는 것을 사십시오. 소든지 양이든지 포도주든지 독한 술이든지, 어떤 것이든지 먹고 싶은 것을 사서, 주 당신들의 하나님 앞에서 당신들과 당신들의 온 가족이 함께 먹으면서 즐거워하십시오.

이런 십일조의 용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일상생활에 대비되는 종교생활이라고 일단 정의 내릴 수 있지 않을까? 소출 중에 내가 일상생활을 누리는데 9/10를 쓰고, 종교생활을 누리는데 그 중 1/10을 사용하라는 말이다. 9/10도, 1/10도 나를 위해 쓰는 것이다. 용도가 다를 뿐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교회를 세워가면 그 유익은 다른 누가 아니라 세워가는 그 사람들에게 가는 것이다. 

십일조의 두 번째 용도는 공적 자금이다. 가끔 십일조는 레위인 주는 헌금이라는 말을 듣는데, 성경이 하는 말은 아니다. 매년 드리는 십일조는 이스라엘의 종교생활을 위해 쓰고, 따로 3년마다 드리는 십일조를 모아 이 기금을 공적 자금으로 사용하라는 말이다. 공적 자금의 용처에 레위인의 생활이 들어 있고, 나아가 "떠돌이 고아 과부"를 배불리 먹게하는 일이 들어 있다. 이 점도 신명기 14장에 쓰여 있고 별로 설명도 필요없다. 

28   당신들은 매 삼 년 끝에 그 해에 난 소출의 십일조를 다 모아서 성 안에 저장하여 두었다가,
29 당신들이 사는 성 안에, 유산도 없고 차지할 몫도 없는 레위 사람이나 떠돌이나 고아나 과부들이 와서 배불리 먹게 하십시오.

십일조 전통을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 원리"로 차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무엇의 십일조를 드릴 것인가?
수입의 십일조?
어떤 수입의 십일조? 세전?
세후?
생활비의 십일조는 어떤가?
식비의 십일조는 어떤가?
이런 질문에 대해서 자신 스스로 대답하며 원칙을 정할 수 있다면 좋겠다. 

바리새인들의 십일조는 무엇이 문제였을까?
십일조를 "서로 세워가는 원리"로 사용하지 않고, 교만의 근거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