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신앙은 성경적인가?
— 무교(복) · 불교(공덕) ·유교(권위)의 문화와 복음의 분별
로마서 12:2, 마가복음 7:6-8, 사도행전 17:11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Do not conform any longer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Then you will be
able to test and approve what God's will is--his good, pleasing and
perfect will.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Now the Bereans were of more noble character than the Thessalonians, for they received the message with great eagerness and examined the Scriptures every day to see if what Paul said was true.
오늘 우리는 조금 불편하지만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질문을 하나 가지고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나는 정말 성경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나는 기도합니다.
나는 헌금합니다.
나는 예배드립니다.
나는 직분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충분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에 다닌다는 것과 성경적인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반드시 같은 말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예수를 믿기 전에 이미 하나의 문화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은 한국의 전통문화 속에서 태어나고 자랍니다.
그 안에는 무교적인 요소도 있고, 불교적인 요소도 있고, 유교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그 문화 자체가 모두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효도는 귀합니다.
어른을 공경하는 것도 귀합니다.
질서와 책임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문화가 복음보다 앞설 때입니다.
전통이 성경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 때입니다.
사람의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할 때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한국 교회 안에 나타날 수 있는 세 가지 신앙의 모습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 무교적인 신앙
둘째, 불교적인 신앙
셋째, 유교적인 신앙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경적인 신앙은 무엇인가? 를 살펴보겠습니다.
1. 무교적인 신앙 — 하나님보다 “복”을 더 원하는 신앙
한국인의 전통문화에서 매우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 무교적 세계관입니다.
무교에서는 신령한 존재를 통해 복을 얻고, 재앙을 피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 얻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사업이 잘된다.”
“헌금하면 복을 받는다.”
“기도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예수 믿으면 자녀가 잘된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우리의 필요를 아십니다.
그러나 이것이 복음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의 중심은 복이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먼저 무엇을 구하라고 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을 먼저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도가 언제부터 바뀝니까?
“하나님, 이것을 주세요.”
“하나님, 이것을 해결해 주세요.”
“하나님, 내 자녀를 성공시켜 주세요.”
“하나님, 건강을 주세요.”
물론 이런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기도에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제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주십시오.”
라는 기도가 사라진다면,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복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받으셨을 때 사탄은 예수님께 떡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예수님은 떡을 무시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떡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복을 주시든 주시지 않든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까?
이것이 신앙의 중요한 기준입니다.
2. 불교적인 신앙 — 은혜보다 “공덕”을 생각하는 신앙
두 번째는 불교적 영향입니다.
불교 문화에서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가 공덕입니다.
좋은 일을 하고 수행하고 선행을 쌓는다는 사고방식입니다.
이러한 문화적 사고가 기독교 안으로 들어오면 어떻게 됩니까?
“내가 이것을 많이 했으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
“내가 교회를 오래 다녔으니까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것이다.”
“내가 헌금을 많이 했으니까 하나님께서 더 큰 복을 주실 것이다.”
“내가 봉사를 많이 했으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특별하게 보실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구원은 우리의 공덕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행위가 구원의 값을 지불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을 하나 구별해야 합니다.
“그러면 봉사할 필요도 없고 선행할 필요도 없습니까?”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봉사합니다.
구원받기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았기 때문에 봉사하는 것입니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공로주의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
공로는 사람을 자랑하게 만듭니다.
은혜는 사람을 감사하게 만듭니다.
공로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게 합니다.
“나는 저 사람보다 더 많이 했다.”
은혜는 이렇게 고백하게 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교회에서 하는 모든 일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예배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기도도 은혜입니다.
헌금도 은혜입니다.
봉사도 은혜입니다.
직분도 은혜입니다.
구원도 은혜입니다.
내가 한 일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해야 합니다.
3. 유교적인 신앙 — 하나님보다 사람의 권위를 높이는 신앙
세 번째는 유교적인 영향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유교의 영향은 매우 깊습니다.
어른을 공경합니다.
스승을 존중합니다.
질서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것 자체가 모두 나쁜 것은 아닙니다.
성경도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교회 안에서 잘못 적용되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특히 사람의 권위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높아지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말씀하셨으니까 무조건 맞습니다.”
“장로님이 결정했으니까 성도는 따라야 합니다.”
“오래 믿은 사람이니까 무조건 옳습니다.”
이런 생각은 성경적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7장을 보면 베뢰아 사람들이 나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베뢰아 사람들은 바울이 위대한 사도이기 때문에 무조건 믿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가지고 날마다 이것이 그러한가 확인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신앙입니까?
사람의 말도 성경으로 확인하는 신앙입니다.
교회에서 목회자를 존중해야 합니다.
당연합니다.
장로와 직분자를 존중해야 합니다.
당연합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목회자는 말씀의 주인이 아니라 말씀의 종입니다.
목회자도 성경 앞에 서야 합니다.
장로도 성경 앞에 서야 합니다.
성도도 성경 앞에 서야 합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 아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절대적인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4. 유교적 “체면”이 신앙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유교 문화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체면입니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가 중요합니다.
이것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면 매우 위험한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웃고 있습니다.
“은혜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마음속에는 상처가 있습니다.
미움이 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교만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감춥니다.
왜 그렇습니까?
체면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강하게 책망하셨던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죄인들만이 아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왜입니까?
겉은 깨끗해 보였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가리켜 외식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외식이란 무엇입니까?
겉과 속이 다른 것입니다.
사람 앞에서는 경건한데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교회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
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입니다.
세 가지가 결합하면 어떤 신앙이 만들어지는가?
이제 중요한 부분입니다.
무교적 요소,
불교적 요소,
유교적 요소가 잘못 결합하면 어떤 신앙이 만들어질까요?
무교적 영향
“하나님께 복을 받아야 한다.”
↓
불교적 영향
“내가 공덕을 많이 쌓아야 한다.”
↓
유교적 영향
“교회의 권위와 체면을 지켜야 한다.”
결국 무엇이 됩니까?
기복신앙 + 공로주의 + 권위주의
입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중심에서 밀려나기 때문입니다.
기복신앙의 중심에는 복이 있습니다.
공로주의의 중심에는 나의 행위가 있습니다.
권위주의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적인 신앙은 무엇입니까?
성경적인 신앙은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복보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무엇을 주십시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알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공로보다 은혜입니다.
“내가 얼마나 했는가?”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얼마나 은혜를 베푸셨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이 깊어질수록 자랑이 줄어듭니다.
감사가 많아집니다.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줄어듭니다.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내가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셋째, 사람보다 말씀입니다.
목회자를 존중하십시오.
장로를 존중하십시오.
부모를 공경하십시오.
그러나 그 모든 권위 위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의 말이 성경과 충돌한다면 우리는 성경을 따라야 합니다.
사도행전 5장 29절입니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것이 성경적 신앙입니다.
넷째, 체면보다 진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솔직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죄인입니다.”
“하나님, 제가 교만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7. 로마서 12장 2절 —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 12장 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여기서 중요한 말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를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 사람이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모든 문화적 사고방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말씀으로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말씀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말씀 앞에서 다시 물어야 합니다.
“이것이 한국 문화에서는 당연하지만 성경에서도 당연한가?”
“우리 교회에서 오래 해 왔지만 성경적인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만 하나님도 그렇게 말씀하시는가?”
이 질문을 해야 합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
그러므로 한국 교회의 개혁은 단순히 전통을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분별하는 것입니다.
효도는 성경적으로 아름답게 계승해야 합니다.
어른 공경도 성경적으로 계승해야 합니다.
공동체의 질서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복음을 대신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 문화가 복음을 지배해서도 안 되고,
복음이 한국 문화를 무조건 파괴할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을 성경 아래 놓는 것입니다.
9. 우리 자신에게 던져야 할 네 가지 질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집에 돌아가시기 전에 네 가지 질문을 마음에 가지고 가시기 바랍니다.
첫째,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복을 더 사랑하는가?
둘째,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가, 아니면 나의 공로를 자랑하는가?
셋째, 나는 말씀에 순종하는가, 아니면 사람의 권위에 무조건 순종하는가?
넷째, 나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가, 아니면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가?
이 네 가지 질문은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는 거울이 될 수 있습니다.
결론 — 다시 복음으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오늘 이야기한 무교·불교·유교를 무조건 정죄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 문화 속에는 아름다운 가치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문화와 복음을 구별하는 일입니다.
무교적인 기복신앙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으로
불교적인 공로주의에서 벗어나
은혜를 감사하는 신앙으로
유교적인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말씀 앞에 서는 신앙으로
유교적인 체면 문화에서 벗어나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신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의 중심에 누구를 세워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복이 중심이 아니라 예수님이 중심이어야 합니다.
내 공로가 중심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가 중심이어야 합니다.
목회자의 권위가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어야 합니다.
사람의 체면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함이 중심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적인 교회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적인 신앙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신앙을 다시 점검합시다.
“나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나는 누구를 따르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시다.
“주님, 내 안에 성경보다 앞선 전통이 있다면 내려놓게 하옵소서.”
“복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공로보다 은혜를 붙들게 하옵소서.”
“사람보다 말씀을 따르게 하옵소서.”
“체면보다 진실을 선택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의 신앙의 중심을 다시 예수 그리스도께 돌려놓읍시다.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
이것이 우리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