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 크로노스, 호라의 차이와 의미
크로노스의 시간 :
크로노스는 연속적이고 양적인 시간,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물리적 시간입니다.
이는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직선적인 시간의 흐름을 의미하며, 시간 관리와 계획을 통해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시됩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건들이 순차적으로 발생합니다.
χρόνος, ου, ὁ
스트롱번호 5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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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간, 때, 마 25:19, 눅 8:27, 요 7:33, 행 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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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예, 지체, 계 2:21,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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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성경
때(마2:7, 행1:7, 벧전4:2), 시대(행17:30), 얼마간(행19:22), 시간(11:32), 기회(계2:21), 동안(막2:19), 기한(눅1:57), 시대(행17:30), 항상(행20:18), 날(행27:9), 영세(롬16:25).
카이로스는 질적인 시간으로, 특정한 순간이나 기회를 의미합니다.
이는 적절한 순간에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을 강조하며, 기회와 행운의 신으로 묘사됩니다.
카이로스는 종종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빠른 결단력과 분별력이 필요하다고 설명됩니다
정량화할 수 없으며, 특정한 사건이나 기회를 나타냅니다.
"올바른 순간"에 대한 인식을 강조하며, 그 순간이 지나가면 다시는 잡을 수 없는 기회를 의미합니다.
주관적인 경험과 관련이 깊습니다.
καιρός, οῦ , ὁ 스트롱번호 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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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때, 시점, 기간,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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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일반적으로] 달가운 때, 고후6:2, 어려운 때, 딤후3:1, 열매 맺는 때, 행14:17, 때때로, 정규적으로, 요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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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옳은 때, 알맞은 때, 좋은 때, 제때에, 마24:45, 눅12:42, 행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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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정한 때, 마13:30, 21:34, 막1:15, 행17:26, 갈4:10, 6:9, 딤전2:6, 딤후4:6, 딛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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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종말론적 숙어] 마8:29, 16:3, 눅21: 8, 고전4:5, 엡1:10, 계1:3,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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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성경때(마8:29, 눅8:13, 딤후3:1), 날(마16:3, 눅1:20, 고후6:2), 세월(골4:5), 연대(행17:26), 틈(행24:25), 현재(롬8:18, 히9:9), 기회(갈6:10), 항상(엡6:18).
호라의 시간 :
호라의 시간은 카이로스에 속한 시간으로 카이로스는 좀 더 긴 기간과 시기를 말합니다.
반면에 호라의 시간은 아주 짧은 잠시의 시간을 말합니다.
ὥρα, ας, ἡ
스트롱번호 5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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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때[낮의], 막11:11, 마14:15, 눅12:39, 40, 계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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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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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시간의 한토막, 계9:15, 요11:9, 마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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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짧은 시간, 잠깐, 계18:10,17,19, 요5:35, 고후7:8, 막15:25, 행2:15, 23:23, 마20:5, 막15:33, 눅23:44, 요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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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어떤 일이 일어났거나, 일어나고 있거나, 일어날] 시점, 마8:13, 막13:11, 눅 7:21, 행16:33, 계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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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성경시(時)(마8:13, 막15:33, 계3:3), 때(마14:15, 요4:53, 요일2:18), 시간(마20:12, 눅1:10, 14:17), 날(마24:42), 한때(요5:35), 잠시(고후7: 8), ~시(마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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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란
무엇일까요?
고대 그리스 신화에는 시간을 의미하는 두 명의 신이 있습니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인데요 크로노스는 흘러가는 물리적인
시간으로 몇 시 몇 분 몇 초입니다.
크로노스는 태양과 달, 수성에서 유래된 시간 단위인데요. 상대적인 시간입니다.
카이로스는 현재, 순간의 시간입니다.
크로노스
뜻은 흘러가는 시간입니다.
바쁜 현대인들은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데요.
아침에 눈을 떠고 잠자리에 들기까지 무의식적으로 시계를
봅니다.
시계 속에는 3개의 시분초 침이 쉬지 않고 돌아가는데요 바로 크로노스 시간을 뜻합니다.
시계 속 시분초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고대 천문학자들은 밤하늘 천체를 바라보며 태양을 중심으로 행성이 도는 횟수로 시간을 측정하였습니다.
① 첫 번째는 몇 시 / 아워(hour)
hour 아워는 고대 이집트 태양신인 HORUSE (호루스)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호루스는 독수리
모양으로 상징되는데요 이것은 태양이 아침에 떠오르고 정오를 지나서 저 멀리 지평선으로 사라지듯 독수리도 하늘 높이 날아 지평선을
향해 사라지는 모습을 상징하는 것을 말합니다.
② 두 번째 몇 분 / 분(minute)
분은 MINUTE인데요 어두운 밤 하늘에 떠 있는 달, MOON (문)이 유래입니다.
③ 세 번째는 몇 초 / 초(second)
초를 가리키는 시간은 세컨드(SECOND) 인데요 SECOND의 어원은 수성(MERCURY)입니다.
수성은 태양계 행성
중에서 태양 주위를 가장 빠르게 도는 행성이고요 태양 다음으로 2번째 위치하고 있어서 세컨드라고 합니다.
이처럼 시분초 를 이루는 세 개의 침이 크로노스를 뜻합니다.
카이로스는 현재 혹은 순간 시간을 뜻합니다.
카이로스는 마치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위해 순간을 포착하는 것과 같습니다.
카이로스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일, 사람, 물건 등 관계에서 벗어나 오롯이 혼자 있어야 합니다.
이때 휴식을 제대로 이해해야
하는데요. 쉬는 날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혹은 취미활동은 본질적으로는 일하는 것이랍니다.
진정한
휴식은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이며 이때 내면의 카이로스 시간과 마주하고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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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노스(Κρόνος)와 카이로스(Καιρός)
헬라어는 '때'(시간)를 표현하는 단어로 '카이로스'와 '크로노스'가 있다.
이 두 표현을 이해하는 것은 성경을 해석하는 것 뿐만아니라 우리의 때와 시간을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이된다.
'크로노스'(Κρόνος)는 규칙적인 시간적 흐름을 가리키고,
'카이로스'(καιρός)는 시간의 어떤 특별한 시기를 뜻한다.
또 “때가 벌써 되었으니”(ὥρα ἡμᾶς ἐγείρω 호라 헤나스 에기로)라는 표현(은유)은 하나님의 구속적 계획 안에서 어떤 특별한 때(카이로스와 비슷함)를 가리킨다(종종 요한복음에서 사용됨 / 참조, 요 16:25, 3:26; 고전 7:29; 10:11; 약 5:8; 벧전 4:7; 벧후 3:9-13; 요일 2:18; 계 1:3; 22:10).
•'카이로스'에 대한 몇가지 예문
*막 1:15.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때가 찼고" - 이는 하나님의 경륜에 따른 구속사의 결정적인 시점을 맞았음을 시사해준다(갈 4:4;엘 1:9). 다시 말해 본문의 '때'(카이로스)라는 말은 단순히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변화되는 시기를 뜻하는 '크로노스'와 구별되는 것으로서 호기(好期,opportunity), 즉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일어날 결정적 기회라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드디어 구원의 약속들을 성취하시고 그 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절호의 기회를 맞으신 것이다. 이에 대해 슈바이쩌(Schweizer)는 말하기를 '그는 역사상 유래없는 특정한 구원의 때를 성취하신 것이다'라고 묘사하였다.
*계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때가 가까움이라." - 본문은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는 이유이다. '때'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로스'는 보편적인 시간을 나타내는 '크로노스'와는 달리 결정적인 섭리를 나타내는 종말론적 시각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가 승천한 이후부터 다시 오실 재림의 때까지는 인간 편에서 볼 때 항상 임박한 긴장(緊張)의 시간이며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정한 시간이다. 그러므로 복 있는 자는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킴으로 종말을 준비해야 한다(마24:3-51; 요21:22).
*눅 20:10.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때가 이르매" - '때'(카이로스)는 시간(time) 또는 어느 한 시점(point of time)이나 시기(period of time)를 뜻한다. 이 비유에서는 포도를 따 들이는 추수의 때 곧 종말적 심판의 때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때는 성도에게는 풍성한 결실과 완성의 때이지만 불신자에게는 파멸의 때이다.
신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언제라도 오실 것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살아야만 한다.
*롬 13: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에베소서
"이 시기를 알거니와" - 본문의 '시기'(카이로스)는 연대기적으로 흐르는 '시간'(크로노스)이 아니라 '계절'(season)과 같이 어떤 특성을 가진 개념의 시간이다. 여기에서 '이 시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톤 카이론'('그 시기를')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연상시킨다. 따라서 주의 재림으로 오게 될 역사의 종말을 그 시기의 성격이나 현상들을 통해 깨닫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깨달음은 주의 가르침(마 24장)에 근거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가 주는 의미를 바로 깨달으라고 하는 바울의 촉구가 담겨있는 표현이다. 우리의 구원이 - 본문의 '구원'은 현재의 고난으로부터의 탈피 또는 점진적인 구원의 과정에 참여함이 아니라 종말론적이고 최종적인 완성으로서의 구원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는 주의 강림 때 일어날 미래적 구원의 정점(定點)이 더 가까와지고 있다는 것이다.
*히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 '때를 따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카이론'은 '좋은' 혹은 '옳게'를 뜻하는 '유'와 '시기'를 뜻하는 '카이로스'가 합쳐진 합성어로서 '적절한 시기'를 나타낸다. 그리스도인들이라 할지라도 불완전하여 수시로 죄의 유혹에 넘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본절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자비와 도움을 필요로 하는 바로 그 때를 아실 뿐만 아니라 시기 적절하게 베풀어 주심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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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노스(Cronos)와 카이로스(Kairos)의 특징과 차이
시간을 뜻하는 단어 중에 그리스어로 크로노스(Cronos)와 카이로스(Kairos)가 있다.
두 개념을 구분하는 감각을 부지런히 길러서 잘 활용하면 매사 성공할 수 있다.
먼저 각각의 의미부터 알아보자.
1. 크로노스 (Cronos)
크로노스란, 시계와 달력으로 측정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의 단위를 의미한다.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시간 개념이 이 크로노스이다. 1초와 1분 같은 단위들로 시간을 측정한다.
'얼마나 오래?', '얼마나 자주?', '얼마나 빨리?' 와 같은 것들이 크로노스와 관련된 질문에 해당한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언제나 시계나 달력의 숫자여야 한다.
2. 카이로스(Kairos)
카이로스는 양적인 시간이 아닌 질적인 시간을 말하며, '적절한 순간'을 의미한다.
'언제?', '정확한 시점은'이 카이로스와 관련된 질문이다.
위기나 기회 같은 순간에 대한 개념들도 모두 카이로스와 관련된 것이다.
타이밍도 마찬가지다.
타이밍을 잘 잡으면 크게 성공할 수 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
늘 '어느 타이밍에 말하고 행동할 것인가?'를 깊이 숙고해야 한다.
타이밍이 좋지 않은 경우에는 모험을 시도하기 보다 말과 행동을 삼가는 편이 좋다. 우리가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경우도 타이밍을 잘 잡아야 생긴다.
카이로스와 크로노스 사이에 연관성도 있다. 양적인 시간인 크로노스가 충분히 채워지지 않으면 카이로스를 붙잡을 수 없다. 크로노스가 채워진 다음에 카이로스도 의미가 생긴다.
무작정 열심히 하지 말고 타이밍을 살펴라
일을 할 때나 사람을 만날 때 모두 타이밍을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 때나 무턱대고 열심히 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타이밍이다. 같은 행동이라도 적절한 시점이냐 아니냐에 따라 결과가 엄청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좋은 시기를 분별하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또 좋은 시기가 왔을 때는 놓치지 않아야 한다.
항상 '이것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마음 속에 담고 있어야 한다.
안목을 기르기 위해서, 일상에서 사소한 일이라도 타이밍이 맞는지 살펴보고 행동하는 것이 좋다.
건전한 시간 의식을 기르려면 면저 카이로스와 크로노스의 시간 개념을 잘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둘을 분별하는 감각이 생기면 시간관리 능력도 향상된다.
실생활에서 카이로스와 크로노스 감각 기르기
계획이나 시간표를 짤 때 반드시 카이로스와 크로노스 개념을 활용하자.
즉 다음의 두 가지를 고려한다.
언제 그 일을 시작해야 하며(카이로스) 시간이 어느 정도 필요한가?(크로노스)
그리고 타이밍이 모든 일의 가치를 결정하므로, 시간표를 잘 때 카이로스를 먼저 고려한다.
다음의 몇 가지 예를 보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시간 기준을 만들어 보자.
- 각각의 일이 얼만큼 시간이 걸리는지 예상하고 시간을 할당한다, (크로노스)
- 시간은 한정된 자원이므로 아껴 쓴다, (크로노스)
- 중요한 일에는 시간을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의미 없는 일에는 시간을 투자하지 않거나 최소한만 투자한다. (크로노스)
- 새로운 것을 배울 때 빨리 결과를 내려고 하지 않는다. (크로노스)
이때는 시간과 돈과 노력을 적당히 투자해야 일이 이루어진다. 운전, 악기, 외국어 배우기 등이 여기 해당하며, 기초부터 차근차근 익힌다.
- 최상의 상태일 때 노력을 최대한 집중한다. 그러면 기회를 더 쉽게 잡을 수 있다. (카이로스)
- 짧지만 의미 있는 연설을 하는 것이 (카이로스), 길고 지루한 연설을 하는 것 (크로노스)보다 낫다.
- 인내하면서 때를 기다려라. (카이로스) 나쁜 시기라면 더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
- 적시에 결단을 내려라. (카이로스) 우물쭈물하면 기회를 놓친다. 직관과 경험을 잘 활용해 선택한다.
- 시간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가끔은 시계를 보지 말아야 한다. (크로노스)
출처 : 성공하는 사람들의 시간관리 습관 (유성은, 유미현 / 중앙경제평론사)크로노스와 카이로스
시간을 훔치는 도둑이야기 '모모'
독일 작가 미하엘 엔데의 어른용 동화 (1973년 作)
시간을 훔치는 도둑과, 그 도둑이 훔쳐간 시간을 찾아주는 한 소녀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
모모 - 미하엘 엔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모모는 마을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줘서 항상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날부터인가 회색신사들이
나타나 "시간을 아껴야 행복해집니다."라며 시간을 쪼개라고 강요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모모에게 오지 않는다.
모모는 사람들을
돌아오게 만드려는 계획을 세우고 이를 준비하다 카시오페아라는 거북이와 박사를 알게 된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시간의
근원을 깨달은 모모는 결국 회색 신사들을 해치우는데 성공한다.
이 소설의 첫마디에는 "시간을 훔치는 도둑과, 그 도둑이 훔쳐간 시간을 찾아주는 한 소녀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라고 적혀있다.
왜 작가는 스스로 이상한 이야기라는 표현을 사용했을까 문득 궁금해져 호기심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모모에게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
바로 모모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고민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찾게 되는 것이다.
모모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들어주기만 하는데 말이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이 바로 경청이다.
사람들은 모모에게 이야기를 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나도 수학문제를 풀다가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차근차근 말하며 풀어보곤 한다.
그러다보면 내가 실수했던 점을 발견하고 또
해결방안이 나온다.
말도 이와 같지 않을까?
말은 정말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하지만 이러한 말 한마디는 경청이 있어야 시작되지 않나 싶다.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는 말의 반대말으로 이 소설에서는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 자신을 잊었다.'라고 표현한다. 나는 모임에 나가거나 친구들과의 만남이 있으면 주도적으로 말을 하는 편이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왠지모르게 마음 한켠이 답답한 느낌이 든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이 책을 읽으니 이 답답함은 내 얘기만 하느라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지 못했던 것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말에 집중하다보니 다른 사람의 표정이나 감정은 생각하지도 않고 너무 이기적으로 살았던것 같아 반성하게 된다. 나도 앞으로는 모모처럼 다른사람을 잘 경청해주고 내 이야기를 먼저 하기보다는 먼저 들어주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의 주요 키워드, 즉 주제는 시간이다. 이 책에서는 시간을 세상에는 아주 중요하지만 너무나 일상적인 비밀이라고 정의한다. 또 모든 사람이 이 비밀에 관여하고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나도 시간의 흐름에 대해 알고 있긴 하지만 시간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도, 아니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왜 시간을 아껴야하는 것일까? 열심히 살아서 얻는것은 무엇일까?
시간절약? 누구를 위한 것인가? 어릴적의 나는 빨리 커서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은 너무 느리게 갔다. 하루종일 뛰어놀고 지쳐 잠들면 또 하루가 시작됐다. 하지만 커갈수록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도록 바삐 살다보니 어느순간 1년이 지나있었다.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갈까 후회하던 찰나 금방 세월이 지나갔다. 어릴때는 시간이 많았고 지루할 새 없었지만 지금의 나는 항상 왜 이렇게 시간은 빨리가는지 고민하곤 한다.
사람들은 항상 빨리빨리를 외친다. 나는 커서 절대 그런 사람이 되지 않아야지.,, 일상 속의 작은 행복과 여유를 찾아야지... 다짐했지만 나도 어쩔수 없는 사람인가보다. 어느새 나도 빨리빨리를 외치고 산다. 짧은 줄도 기다리지 못하고 로딩창만 보면 한숨을 외치는 나..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변했는지 잘 모르겠다.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겠다는 생각에 삶의 목표와 행복을 잊은채 사는것이 아닐까? 살다보면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지,, 가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꿈도 없이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일만 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된다.
일상속에 지쳐가는 날엔 문득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어렸을 때 엄마가 "왜이렇게 빨리 늙을까... 매일 같은 일상의 반복이야."라는 말에 내가 "에이~ 엄마 하루가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매일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는 게 즐겁지 않아요?"라고 답했던 장면이다. 그때의 나는 하루하루가 매일 특별한 일들로 가득찬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 이제서야 나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가고 학원가면 벌써 밤이다. 인생이 항상 같은 날의 반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의 나는 시간이 많았고, 행복했다. 언젠가부터는 내가 "시간없어.", "서둘러." 등과 같은 말들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사는가? 왜 시간은 항상 모자란가? 나는 항상 남들처럼 바쁘게 살지만 왜 아직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어른들은 나중에 다 잘되라고 그런거라고 하지만 이런 삶속에서 따뜻함은 잃어버린지 오래다.
요즘 나온 말중에 소확행이라는 말이 있다. 소확행이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말의 줄임말이다. 소확행이란 말처럼 심심할때 함께 놀 친구가 있다는 것, 외로울때 들을 노래가 있다는 것, 우울할 때 위로해줄 친구가 있다는 것... 바쁜 일상 속에서 작은 행복들을 찾는 습관을 가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생활하면서 작은 여유를 찾는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싶다.
진정한 시간이란 시계나 달력으로 잴 수 있는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시간 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가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그러기에 시간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각각 다른 모습으로,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나는 시간이란 나의 추억이라고 생각한다. 시간 하나에 내 감정, 경험, 생각이 담겨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간은 금이다." 내 책상에 붙여놓은 문장이다. 나는 시간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앞서 나온 말처럼 시간에 대해 깊이 생각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제부터는 나만의 시간을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다린다는 것은 태양이 한 바퀴 돌 동안 땅 속에서 내내 잠을 자다가 드디어 싹을 틔우는 씨앗과 같은 거란다. 네 안에서 말이 자라나려면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게야." 이 소설이 정의한 기다림이다. 기다림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하는 책이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걸 핑계로 기다림을 참지 못하는 나에게 교훈을 주는 책인 것 같다. 또한, 경청과 오랜 고민, 생각을 거친 뒤에 말을 해야함도 깨닫게 되었다. 저마다 무슨 일을 하든, 자기가 필요한 만큼,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시간을 낼 수 있을때까지 시간을 관리하는 방법을 배워야겠다.
(줄거리 요약)
작은 고대 원형극장의 폐허가 있는 가난한 시골 마을에
어느 날 어린 고아 '모모'가 나타난다.
모모는 마음을 다해 경청하는 재능의 소유자로,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사랑받을 뿐 아니라
혼자 있을 때는 정적에 귀기울여 시간의 노래를 듣기도 한다.
어느 날부터인가 가난하지만 마음씨 넉넉하던 마을 사람들은 시간을
절약하고 더 많은 것을 가져야만 한다는 강박에 쫓기기 시작하고 각박한 분위기가 마을을 지배한다.
모모와 모모의 특별한 친구인 베포
할아버지는 이 사태를 퍼뜨린 '시간저축은행'의 영업사원인 '회색 신사'들과 맞닥뜨려 정체를 알게 되고, 이 때문에 시간저축은행의
표적이 된다.
모모는 거북이 '카시오페이아'의 안내를 받아 시간의 관리자인 '호라 박사'의 집에 피신하고, 이곳에서 황금빛 사원에 들어가 위대한 시간의 진면목을 목격한다.
호라
박사가 관리하는 모든 시간을 한꺼번에 빼앗고 싶어하는 회색 일당은 끝내 모모를 추격해 호라 박사의 집을 포위해 시간을 오염시키기
시작한다.
호라 박사는 그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지만 위험천만한 작전을 세우고 모모와 카시오페이아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긴다.
1. 크로노스 Chronos
- 물리적으로 흘러가는 객관적 시간, ·시계와 달력상에 나타나는 시간(절대적 양의 개념).
하루, 한 달, 일 년, 100년...
2 카이로스 Kairos
- 특정 의미가 부여된 주관적 시간
·인간이 현실에서 참여하여 만들어내는 시간 (상대적 질의 개념)
천천히, 급속히, 거꾸러...
격변기에는 카이로스의 1년이 크로노스 수백 년에 버금가는 중요한 시기일 수 있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
하나는 '크로노스 안트로포스(Kronos Anthropos, 시간의 신으로서 인간)'로 살아가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카이로스 안트로포스(Kairos Anthropos, 기회의 신으로서 인간)'로 살아가는 것이다.
크로노스(시간의 신)의 상징으로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시계다.
오늘날 크로노스의 상징물인 시계와 달력 속 기호로서 시간은 세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철학자 루이스 멈퍼드는 근대 산업 시대에 핵심 발명품은 증기기관이 아니라 바로 시계라고 주장했다.
시계는 하나의 도구다.
하지만 우리는 시계를 사용하면서부터 시계에 깊은 영향을 받게 된다.
그 결과 시계는 우리 생각에 침투해 우리 삶의 방식 자체를 바꾼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조끼 주머니에서 항상 시계를 빼어 들고서 "늦었어, 늦었어"라고 말하는 토끼가 등장한다.
여기서 토끼는 크로노스 안트로포스 모습을 상징한다.
철학자 존 스미스에 따르면 크로노스 세계에서 중요한 질문들은 '얼마나 빨리?' '얼마나 자주?' '얼마나 오래?' 등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주로 숫자로 표현된다.
시계에서는 모든 하루가 똑같다.
하지만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비범한 작품 '기억의 연속성'은 시간에 대한 우리 인식이 주관적인 체험에 따라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 그림에서 시계는 카망베르 치즈처럼 녹아 흐늘흐늘해져 있다.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도 '음향과 분노'에서 "시계 안의 조그만 바퀴들로 체크되는 시간은 이미 죽은 것이다.
시계를 멈출 때 시간은 생명을 얻는다"고 적었다.
반대로 카이로스 세계에서는 시간의 질적인 특성이 강조된다.
작가 린다 그린러는 작품 '굶주린 대양'에서 '카이로스의 시간'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항해
초기에 시간 흐름은 거리로 측정된다.
이때 마일 수는 초침의 수많은 움직임보다 훨씬 더 막강하다. 선원들이나 나 역시 시간을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의미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시간 개념을 조정하기 때문이다.
그 후 어장에 도착해서 그물을 던지게
되면 시간 흐름을 표시하는 척도는 거리에서 그물을 던진 횟수와 배 위로 던져 올린 고기 무게로 바뀐다.
선원들이 손목시계를 차는
법은 거의 없다."
카이로스(기회의
신)의 시간에서 중요한 것은 시계가 가리키는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전략적 시간, 즉 각 사건이 서로 연결되는 방식과 관계된
시간이다.
특히 카이로스적 시간에서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바로 그 순간 혹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바로 그 순간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리고 카이로스 세계에서는 '정확히 언제?'처럼 타이밍과 관계된 질문이 관심의 초점이 된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질문'은 카이로스 안트로포스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질문은 피터 드러커가 잭 웰치에게 했던 것과 유사하다.
"만약 당신이 지금까지 이 일을 하지 않고 있었다고 합시다. 그래도 당신은 지금 이 일을 새로 시작하시겠습니까?"
이러한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만약 기존에 불필요한 활동 때문에 소중한 자원이 낭비되는 것을 통제하지 못했을 때 주어진 기회를 붙잡는 데 필요한 자원이 부족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카이로스는 앞머리가
풍성하고 뒷머리는 대머리인 것으로 묘사된다.
이것은 기회가 한 번 놓치면 다시는 붙잡을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이처럼
행동해야 할 적기를 지혜롭게 알아차려 기회를 붙잡음으로써 시간에 종속되지 않고 주인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카이로스
안트로포스의 삶이다.
고영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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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노스와 카이로스, 시간에 대한 고찰
1.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라고 여겨지곤 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공평함이란 크기와 질량, 부피와 같이 수치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단위에서의 그 절대 값이 같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색하기를 즐겼던 고대의 그리스인들은 두 가지의 시간을 찾아내었던 것 같다. 이 중 하나가 크로노스(cronos)이고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kairos)이다.
크로노스는 일정하게 정해진 시간의 개념으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을 말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의 ‘정해진 크기와 단위를 가진 시간’이 이것과 가까워 보인다.
이에 반해 카이로스의 개념은 다소 형이상학적인 이해가 요구되는 시간의 개념이다. 카이로스는 ‘어떤 의미’를 가진 시간을 말한다. ‘시간이 의미를 가졌다’는 것은 카이로스를 시간의 주체로 보는 시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을 사용하는 인간을 중심으로 본다면 카이로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시간’이라 할 수 있게 되어 좀 더 능동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크로노스는 단 한순간, 그것이 비록 단 일 초 만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것 이외에 타인의 것을 빼앗거나, 자신의 것을 빼앗길 수 없는 객관적인 시간의 개념이다. 크로노스로 본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일 년을 365일, 하루는 24시간, 한 시간은 60분, 일 분은 60초와 같이 수치를 통해 정량화가 가능하다.
2.
시간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만 ‘시간이란 대체 무엇일까.’ ‘시간을 만든 것은 누구일까.’ ‘시간은 태초부터 있어온 것일까.’와 같이 시간의 본질에 관한 문제는 우선 논외로 붙여야 할 것 같다. 만약 본질을 따지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지면이 부족하게 될 것이다.
우선 ‘시간을 사용한다’는 관점에서의 시간에게로 눈길을 가져가 보자.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사용하는 것은 ‘완전하게 주어진 자유지만 스스로 그 결과를 책임져야’하는 권한과 의무를 지닌 행위이다.
시간은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에게 어떠한 제약을 가하려 하지 않기에, 그 자유로움으로 인해 크로노스의 소중함은 쉽게 잊혀 지기 일쑤이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카이로스가 필요했던 것 같아 보인다. 카이로스의 개념에는 책임을 잊어버린 시간의 낭비에 대한 경고가 담겨 있다.
카이로스란 의미를 가진 시간이다. 어제 내가 보낸 24시간을 돌이켜 보자. 그 시간 중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24시간 전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1시간 또는 2시간 정도인 것일까. 자신 있게 ‘분명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은 과연 얼마인 것일까.
만약 그것이 1시간이나 그 이하뿐이라면 어제 나에게 주어진 크로노스는 24시간이었지만, 카이로스는 1시간이 되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나머지 23시간이란 시간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아침 햇빛에 물안개가 사라지듯 그저 증발해버린 것일까.
이렇듯 크로노스는 객관적인 단위를 통해 일반화된 시간의 개념으로 볼 수 있고 카이로스는 주관적인 관점으로 바라본 특수화한 시간의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크로노스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원래부터 있어온 타의적 개념의 시간이고, 카이로스는 그 시간을 사용하는 자신의 의지가 반영된 자의적 개념의 시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The Persistence of Memory, Salvador Dali, 24 cm × 33 cm, 1931,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City
3.
시간 또한 개체이고 크로노스는 정량적인 개체로, 카이로스를 정성적인 개체로 여기게 된다면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해석이 끼어들만한 틈을 여기저기에서 만들어 볼 수 있게 된다.
인간의 능력은, 비록 그것이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 할지라도, 결코 없는 것으로부터 있는 것을 창조해 내지는 못하는 법이다. 원래부터 있어온 것에 대한 무지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나려는 정량적이고 객관적인 행위가 과학이고 그것에 의미를 담아 해석하려는 정성적이고 주관적인 행위가 철학이라 할 수 있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에 대한 생각의 걸음을 조금 더 앞으로 끌고 나가본다. 크로노스는 지극히 정량적이고 자연계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태초부터 주어진 시간이다.
그래서 자연계에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다른 모든 것들처럼 크로노스 또한 끊어지지 않는 연속성을 띄고 있으며 그것을 동일한 크기와 분량으로 나누어 연결할 수 있게 된다.
어느 날엔가,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의 생각하고 생각하던 ‘사고의 유희’가 어딘가 꼭꼭 숨겨져 있던 카이로스를 인간 세계로 끄집어내었고 그때부터 시간은 정성적 성질을 지닌 개체가 된 것이다.
비록 그것이 카이로스라 하더라도 시간 또한 자연계에 존재하는 하나의 개체가 된 이상 어떤 특정 구간에서는 반드시 연속성을 갖기 마련이었다. 이제 물질계로 끌려 내려온 크로노스에게 속성을 부여해가는 행위는, 예를 들어 크로노스를 글과 논리에 담아내는 행위와 같은, 생각하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인간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4.
그렇다면 정성적이고 가변적인 카이로스를 정량화할 순 없을까. 수학적으로 본다면 어느 특정 시점, 영에 가까운 지극히 짧은 시점에 대한 미분을 통해 카이로스를 크로노스화 할 수 있어 보인다.
그것은 영에 가까운 순간에서 미분된 개체는 비록 그것이 카이로스라고 하더라도 정량화된 특정 값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에서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일반화된 것이든 특수화한 것이든, 이 두 가지의 시간 모두는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고 있다. 자신의 삶에 조금이라도 더 풍요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면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를 바라보는 균형 있는 시야를 늘려가야만 한다.
카이로스 또한 크로노스 속에서 주어지는 것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가 해야 할 일은 객관의 크로노스를 아주 조금씩이나마 주관의 카이로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의미를 가진 삶이란 객관의 크로노스에서 주관의 카이로스를 찾아 쌓아 가는 것이다.
언젠가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았을 때, 흘러간 크로노스 속 어딘가에 쌓아둔 카이로스를 찾아 만지작거리며 채색하는 것이, 희끗해진 머리에 문득 불어오는 바람을 그리 차갑게 만은 느껴지지 않게 만들 것이다.
문득 궁금하다. 사뮈엘 베케트의 작품 <고도를 기다리며>의 주인공인 블라디미르(Vladimir)가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시간과,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돌을 굴려 산을 올라야만 하는 시시포스(Sisypos, Sisyphus)의 시간 속에는 얼마만큼의 크로노스가 있는 것일까.
비록 물질계 속을 살아가야만 하지만 ‘생각하고 생각하는’ 본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인간의 크로노스는 얼마만큼의 카이로스로 환산될 수 있는 것일까.
태초 신에게서 부여받은 인간의 시간 속에는 카이로스와 크로노스 외에 다른 시간은 없었을까. 혹시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놓친 게 있다면, 지금이라도 그것을 찾아 나서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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