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을 선택한 이유(신명기 7:7)
성경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를 밝힌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신7:7)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은 민족이라서 택했다고 합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으로 택하셨는가?
이스라엘 국가에 대해, 신명기 7장 7-9절은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실 구세주(요 3:16)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실 민족이 되게 하기 위해 이스라엘 나라를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이후에 처음으로 구세주를 약속하셨습니다(창세기 3장). 그 후에
하나님께서는 그 메시아가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의 혈통에서 오실 것을 확인해 주셨습니다(창 12:1-3).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자신의 특별한 백성으로 택하신 궁극적인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선택 받은 백성을 둘 필요가 없으셨지만,
그분께서는 그렇게 하기로 결정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어떤 민족의 나라로부터 오셔야 했는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국가를 선택하신 하나님의 이유는 오로지 메시아를 태어나게 할 목적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바람은 그들이 나가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세상을 향한 제사장, 선지자, 그리고 선교사의
나라가 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이스라엘이 구별된 백성과 나라가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또한 그분이 보내기로
약속하신 구속자이며 메시아이신 구세주를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대부분 이 임무에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 곧, 세상에 구세주를 오게 하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말미암아 완벽하게 성취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
세상에서 무슨 일을 계획하고 추진할 때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똑똑하고, 가장 우수하고, 가장 세련된 사람을 원합니
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더 많은 지식과 경험과, 더 많은 자격증, 더 나은 학벌을 얻고자 합니다. 이 세상의 일들이 이러한 유능한 사람들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세상이 잘난 사람들을 위해 있는 것같이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정반대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을 선택하여 그들을 통해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면 유대 민족은 무엇 때문에 선택을 받았을까요? 다른 민족들보다 머리가 좋아서, 아니면 키가 커서, 아니면 강하고 아름다워서, 아니면 재능이 많아서, 아니면 믿음이 좋아서 선택을 받았을까요?
본문은 세상의 선택 원리와 정반대인 하나님의 선택 원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주의 수많은 별 가운데서 하나님은 이 조그마한 지구를 택하셨습니다. 지구 가운데서도 가나안의 조그마한 땅을 택하시고, 그 땅 가운데서도 여러 민족 가운데 가장 적은 민족인 이스라엘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가운데서도 너무나 작아서 유대 족속 중에서도 무시당하고 있는 베들레헴 성을 택하시고, 또 그 베들레헴 자체 안에서도 구유를 선택하셨습니다. 이 구유에서부터 십자가에 까지 하나님의 선택 원리는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장 적은 민족인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1.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아야 함을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가나안을 선택하셔서 인류 구원의 역사를 전개하셨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 족장들의 역사와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 그리고 광야에서의 삶을 살펴보십시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존재할 수 없는 민족이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200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황량한 광야에서 지낸 40년 동안의 삶을 통해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야 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종교 개혁자인 존 녹스의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친구를 붙잡고 고백했습니다. “여보게 나도 이단이 될 뻔 했네. 어제 저녁 문득 내가 교회와 진리를 위하여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며 일했으니 하나님도 조금은 나를 참작해 주시겠지 하는 생각을 했네. 이때 내 머리를 스친 성경 말씀은 ‘네가 가진 것 중에 내가 주지 않은 것이 무엇이냐’(고전 4:7)라 는 말씀이었네. 여보게, 나와 함께 기도하세.”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은 감명 깊은 기도를 남겼습니다.
“하나님이시여, 내가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입니다. 아! 아닙니다. 하나님! 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은혜가 내 곁에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미국에 아이언사이드(Ironside)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학자이자 설교가인 박사가 있습니다. 어느 날 아이언사이드 박사가 교회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한 청년이 손을 들며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법대로 합시다.”
이 말을 들은 아이언사이드 박사는 그 청년의 말에 놀라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대응했습니다. “여보게, 젊은이, 자네는 법대로 하는 것을 원하는가?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을 법대로 다루셨다면 자네는 지금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아마도 자네는 지옥에 가야 마땅할 것일세.”
교회에서는 법보다 은혜가 앞서야 합니다.
세계 제일의 철강 왕으로 미국 재계를 주름 잡았던 카네기는 스코틀랜드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일찍 결혼한 그는 가족과 홀어머니를 편안히 모시기 위해 사업에 최선을 다했으나 급기야는 파산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온 식구가 빈손으로 길바닥에 나앉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카네기는 마지막 수단으로 꿈과 미래가 있으나 모험과 불안이 도사리고 있는 미지의 땅 미국으로 이민을 가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갈 여비가 없었습니다. 남은 돈과 어머니가 지니고 있었던 낡은 금반지와 아내에게 선물로 준 목걸이를 다 팔아 긁어모아 보았으나 역시 부족했습니다.
이때 어머니의 친구 되시는 헨델슨 부인은 모자라는 뱃삯 20파운드를 선뜻 빌려 주었습니다. 언제 돌려받는다는 보장도 없이 멀리 낮선 땅으로 이민 가는 사람들을 믿고 빌려 준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빌려 간 돈은 다음에 꼭 갚겠습니다.” 카네기 가족은 너무너무 고마워하고 감격해하며 거듭 약속했습니다.
카네기 가족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많은 고생을 참아가며 닥치는 대로 돈을 벌었습니다. 어느덧 어렵게 모아둔 돈이 20파운드와 맞먹는 200달러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빚을 갚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카네기 가족은 200달러를 송금 수표로 바꾸고 난 다음, 그날 저녁 조촐하지만 온 가족이 모여 잔치를 벌였습니다. 가족들은 “이제 빚을 갚고 자유롭게 되었다!”라고 서로 축하하며 그동안의 고생을 위로했습니다.
이때 카네기는 상기된 얼굴로 가족 앞에 서서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빚은 갚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은혜는 영원히 갚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은혜에 대하여 평생 고마운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루하루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고,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야 할 자임을 잊지 않는 성도들이 됩시다.
2.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재료가 나쁘면 나쁠수록 그런 재료로 예술품을 만든 사람의 명예는 더욱 더 위대해지는 것이고, 군대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런 적은 군대로 대승한 승리자의 영예는 더욱 더 위대해지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기드온의 300명 용사입니다.
모세, 여호수아 시대를 지나 사사시대가 되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했습니다(삿 2:10)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실 때 기드온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을 붙이지 아니 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삿 7:2)고 하셨습니다.
이에 기드온은 두려워 떠는 2만 2천 명을 돌려보내고 1만 명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니은 1만 명도 많다고 하시고, 다시 선택 과정을 거쳐 300명만 남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300명 용사들을 통해 메뚜기의 중다함 같은(삿 7:12) 미디안 연합군을 물리치시고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나타내시고,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사업에 복을 주시고, 자녀들이 잘 되게 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영광을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
미국 오하이오주 나이마에 사는 스탠리 팜(Stanley Pam)이라는 사업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하면서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이제 제가 사업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일이 주님을 위한 사업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이 사업을 통해 최상의 것을 주께 드리며 영광 돌리기 원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경영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는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나를 위해 사업을 하고 나에게 영광 돌리기를 원한다면, 너는 단순히 종업원이 되어라. 끝까지 종업원으로 일하여라.”
하나님의 음성에 따라 스탠리는 회사 설립 신고를 할 때 회사의 주인을 ‘하나님’이라고 써넣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생애를 걸고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가 사업을 하는 동안 다른 기업처럼 여러 번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업은 놀랍게 발전했으며 그는 은퇴할 때까지 하나님의 음성대로 월급을 받는 종업원으로 일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렸습니다.
또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세계에서 가장 거부였던 록펠러는 많은 재산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했는데, 록펠러 의학연구소와 록펠러 재단을 비롯해서 시카고 대학 등 12개 종합대학과 12개의 단과대학, 4928개의 교회를 지어서 사회에 바쳤지만 자신이 세운 그 많은 대학과 교회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록펠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자신은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다는 태도를 가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고후 9:13), 그리고 구제(고후 9:9)와 선교를 위해 사용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3. 하나님의 긍휼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이 곧은 백성이었습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은혜를 입고도 끝없이 원망하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매번 용서하셨고, 끝까지 사용하셨습니다.
사람이라면 아무 수없이 대상을 바꾸었을 것이지만 하나님은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어떠하신지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속사를 이루어 가시면서 미천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그렇게 미천한 자들을 택하셔서 하시는 일이 있었습니다. 곧 세리 마태를 택하셔서 신약의 최초 증인이 되게 하셨고, 과거에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를 택하셔서 부활을 최초로 알리는 반포자로 삼으셨고(마 16:9, 요 20:11-18), 죄인 중의 괴수 바울을 택하셔서 가장 유력한 사도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왜 자신을 구원하시고 선택하셨는지 알았습니다. 바울은 그 이유에 대하여 디모데전서 1장 16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을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죄인 중의 괴수 바울을 통해 하나님의 긍휼을 여러 세대에 나타내시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죄인들도 바울로 인해 하나님의 긍휼을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긍휼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긍휼에 대하여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 3:5)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아니면 우리는 구원 받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도, 여러분에게도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긍휼을 입은 자는 긍휼을 나태내야 합니다.
비행기를 타고 미국 뉴욕을 가게 되면 일반적으로 케네디 공항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뉴욕에는 케네디 공항 외에 또 하나의 공항이 있습니다. 그 공항은 라구아디아 공항입니다. 본래 이 라구아디아라는 이름은 뉴욕 시민이 아주 사랑했던 유명한 한 시장의 이름입니다. 라구아디아는 시장이 되기 전에 아주 유명한 명 판사였습니다.
추운 겨울 어느 날 한번은 라구아디아 판사가 재판석 상에서 한 노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노인은 추운 겨울에 가족들 없이 외롭게 사는 분이었습니다. 그는 돈도 없고 너무나 배고픈 나머지 다른 사람의 지갑에서 20불을 훔치다가 체포되어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판결을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판사가 그 노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노인장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이 노인은 라구아디아 판사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판사님, 저에게 한번만 긍휼을 베풀어주십시오.”
잠시 동안 그 노인장을 조용히 굽어보던 판사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맞습니다. 노인장에게는 정말 긍휼이 필요하시군요. 그러나 노인이 잘못한 그 20불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마침 제게 10불이 있군요. 제가 이 10불을 노인장을 대신해서 변상하겠습니다. 노인장을 춥고 배고프도록 버려 둔 데에는 저의 책임도 상당히 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10불이 더 필요한데 여기 계신, 이 법정에 계신, 방청하시는 여러분, 우리 사회와 여러분도 이 노인이 춥고 배고파 방황하도록 그리고 도둑질하도록 버려둔데 여러분도 공동 책임이 있습니다. 이 노인을 위해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기부를 좀 하시죠.”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이 재판관의 명 판결을 보고 감동하여 자발적으로 헌금을 하여 그 노인을 구했습니다. 그 후 뉴욕 시민들은 라구아디아 판사를 긍휼이 많은 판사라고 인정하였고 그는 후일에 존경받는 시장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약 2:1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을 기억하며 긍휼을 나타내는 성도들이 됩시다.
결론 :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 원리에 나타난 하나님의 목적을 세 가지로 살펴보았습니다. 지금도 적용되고 있는 하나님의 선택 원리를 깨달아 하나님의 은혜로 살며,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전하는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됩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는?
[질문]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다윗 혈통에서 그리고 예수님이 초림하시기 위해 답이 없는 민족으로 그리고 지역상 전쟁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해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많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신 이유 몇 가지만 알려주십시오.
[답변]
가장 적은 민족이라 택했다.
성경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를 밝힌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신7:7)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은 민족이라서 택했다고 합니다.
그럼 그렇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가장 적은 민족이라면 주변의 큰 민족들로부터 여러모로 괴롭힘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직 당신만 의지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한국처럼 주변 강대국들에게 계속 침략과 노략질을 당하고 나아가 그들의 식민지로서 조공을 바쳐야만 했습니다.
그들로 자리 잡게 한 가나안 땅도 아주 척박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라는 말씀도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우선 말 그대로 일반적인 농업보다는 목축과 양봉 밖에 못할 정도로 산악지대나 황량한 땅이 많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이 위치한 팔레스타인 지역은 건조한 사막 땅이 대부분입니다.
땅이 비옥해서 농업이 번창하고 문명이 발달할 수 있는 곳은 큰 강이 통과하는 주변 평야입니다. 나일 강 하구 삼각주를 곡창지대로 품고 있는 애굽과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변의 비옥한 초승달지역으로 불렸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그렇습니다. 이 두 곳은 고대 문명의 발상지이기도 했습니다.
가나안은 그 두 곳의 중간에 있는 황량한 지역이라 문명의 발전이 늦었을 뿐 아니라 두 문명권이 충돌하는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지정학적으로 따져도 이스라엘은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항상 괴롭힘을 당할 수밖에 없기에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런 모든 악조건 가운데도 당신의 율법대로 거룩하게 살면 당신께서 일용할 양식을 풍성히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실증적인 증거로 사십 년의 광야방황 중에도 만나와 메추라기와 생수로 배불리 먹여주셨습니다. 그것도 가데스 바네야에서의 당신을 거역한 죄 때문에 광야만 방황하다 죽게 되는 심판을 내렸음에도 말입니다. 일용할 평범한 양식이라도 하나님이 선물로 주셨기에 젖과 꿀 같은 고급한 음식 이상으로 맛나고 감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바꿔 말해서 적은 민족을 택해서 당신만을 의지케 한 하나님의 뜻이 그들에게 병을 준 후에 약을 주려는 목적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 민족으로부터 핍박을 받은 것은 어디까지나 결과적인 모습이자 이스라엘 스스로의 잘못으로 인해 응분의 징계를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악의적으로 의도한 바가 결코 아닙니다. 주변 강대국들은 이스라엘더러 자기들의 잘못을 깨우치게 하려고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은 것입니다.
민족이 아니라 한 개인을 택했다.
상기 본문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데스 바네야에서 하나님을 거역한 출애굽 세대는 벌을 받아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신명기는 그들이 광야를 방황하는 중에 새로 태어난 신세대에게 모세가 여호와의 율법을 다시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가장 적어서 택했다는 말씀도 모세가 출애굽의 은혜를 회상하면서 깨달은 하나님의 뜻을 신세대들에게 전한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여러 민족들을 비교 검토해서 애굽에서 고생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의 어려운 사정이 너무 딱해서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준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 할 때 이스라엘은 약 2백만 명으로 그렇게 적은 민족도 아니었습니다. 당시 최강국 애굽의 바로가 이 백성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다고 걱정할 정도였습니다.(출1:9,10)
이스라엘은 출애굽 전에 이미 여호와의 백성이 되어 있었고 하나님이 그들의 선조와 맺은 언약 때문에 애굽에서 구원해 낸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이 아니라 아브라함이라는 한 개인을 택하여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었습니다.(창12:1-3) 그것도 그 지역의 우상을 섬기던 가문에서 말입니다.(수24:2)
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한 후에 얻었습니다.(창32:28) 그 뜻은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사기꾼 거짓말쟁이라는 뜻 대신에 당신의 택한 종으로 항상 당신의 보호와 인도를 받을 것이라는 거룩한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원래는 야곱의 개명한 이름 이스라엘이 그의 열두 아들이 열두 지파의 선조가 됨으로써 히브리 민족 전체와 나라를 대변하는 이름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이 열두 아들과 손주들과 함께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이주했을 때는 겨우 칠십 여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창46:27) 그냥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야곱 집안이라 민족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연약했던 집안이 애굽에서 사백 년 만에 바로가 두려워할 정도로 창성해졌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선조 아브라함에게 후손이 하늘의 뭇별처럼 많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던 대로 성취된 것입니다.(창15:5) 애굽으로 이주한 초기에는 요셉이 큰 공을 세웠기에 야곱의 후손 즉, 이스라엘은 후한 대접을 받았으나 얼마 안 가서 노예로 힘든 삶을 사는 가운데도 그렇게 번창한 것입니다. 최강대국의 노예로 지내니까 도적이나 전쟁의 위협이 없고 애굽도 그 노동력을 보존하기 위해서 숙식을 부족하지 않게 마련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야곱 가문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온 정말로 보잘 것 없는 뜨내기 집단이었습니다. 폭력이 난무하던 고대에서 가장 안전하게 후손을 번창시킬 수 있는 하나님만의 비책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가나안 족속들의 죄악이 차고 넘치도록 기다리셨다가(창15:13-16)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때가 되자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어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들이신 것입니다. 모세를 통해 거룩한 율법을 수여하고 당신만을 왕으로 모시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조직 건국하게 하려는 뜻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라는 개인을 택한 까닭은 한마디로 당시에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세상에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노아홍수로 심판을 받고도 바벨탑 사건에서 보듯이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을 거역 대적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설파한 대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 안에 보여 알 수 있는데도 그분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어 섬기고 있었습니다.(롬1:20-23) 그래서 당신만의 절대적 주권과 섭리에 따라서 당신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여 당신의 당신다우심을 계시해주고 복의 근원으로 세우겠다는 언약을 맺으며 믿음의 조상으로 세운 것입니다.
십자가로 향한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그런데 아브라함 또한 그보다 훨씬 이전에, 정확하게는 최초의 인간 부부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일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습니다. 아담이 범죄 한 후에 하나님은 그 타락의 원흉인 사탄에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는 벌을 내렸습니다.
여자의 후손이란 남자와 상관없이 성령으로 동정녀에게서 잉태되는 자손이라는 뜻입니다. 때가 되면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죽지만(여자의 후손이 발꿈치를 상함), 사흘 만에 부활해서 흑암 속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주실(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함)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성경 최초로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을 계시했기에 원시복음이라고 칭합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고 당신을 거역할 줄을 다 아시고도 자유의지를 준 것입니다. 인간으로 스스로 자의에 따라 당신을 기뻐하며 교제 순종 동행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의 타락 이후의 인류의 역사를 오직 이 원시복음이자 최초의 은혜 언약을 실현시키는 방식대로 이끌어 가셨습니다. 그 실현은 알다시피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인류를 대신해 죽음으로써 성취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선언한 것입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4:4,5) 그런데 예수님에 의해 그 언약이 실현되는 모습이 율법 아래에 난 자로 속량해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신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언급되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부터 율법 아래 있게 하여 예수님이 구속할 대상으로 삼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 후 모세를 통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신정국가를 세우게 하고 그 운영과 통치의 기준인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율법을 준행함에 완전히 실패하고 도리어 우상숭배의 죄에 빠져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나라가 멸망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에도 로마의 통치 아래 있는 식민지였습니다.
바꿔 말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로 율법을 지켜낼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선악과 금령을 주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율법 준행에 실패할 것을 다 아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오히려 이스라엘을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민족으로 택한 셈이 됩니다. 더 정확하게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그 어떤 민족이라도 율법을 온전히 준행하여 당신의 의에 들 수 없기에 그 실증적 증거를 이스라엘을 통해 보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시로선 약소국인 이스라엘의 역사에 개입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주관하시면서 세상 어느 민족도 알지 못하는 초자연적인 권능으로 보호 인도하셨습니다. 음란하게 우상숭배만 하던 세상에서 유일신 창조주 신앙을 갖게 하여서 당신의 백성답게 의롭게 살도록 율법까지 주셨습니다.(롬3;1,2) 그런 백성조차도 하나님의 의에 전혀 들지 못하는 정도를 넘어 진노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자리에까지 타락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19,20)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이스라엘은 인간의 행위로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확연하게 드러내는 본으로 선택 받은 셈입니다.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통해서 율법은 당신의 진노를 이룰 뿐이므로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계시해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위치한 지정학적 위치나, 기후와 풍토 뿐 아니라 그 민족성과 언어와 그들이 형성한 문화 전통 관습 등 모든 것이 하나님은 그 진리가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는 무대장치로 마련해준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악과 금령을 주실 때부터 아니, 그 전에 인간을 창조하실 때부터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 계획은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 계획에 따라 이스라엘이 아니 아브라함이 택함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전 인류의, 특별히 이스라엘을 그 십자가가 실현되는 방향과 모습으로만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14)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1:15-17)
성경을 주시려는 목적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로는 구원이 전혀 불가능하므로 예수님이 오셔야만 하는 당위성과 이유를 이스라엘의 부끄러운 역사를 통해 밝혀주었습니다. 구약성경 내내 메시아가 오신다고 이백 번이 넘도록 예언하신 까닭입니다. 그 예언이 완벽하게 이뤄지도록 이스라엘을 이끌었으니 그들을 택한 이유는 이것만으로도 이백 개가 넘습니다.
예수님이 여자의 후손으로 탄생하는 시기와 장소와 모습도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 가운데 이뤄졌습니다. 아구스도 황제에 의해 세상에 전쟁이 중지되고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는 로마제국의 영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그 시기에 제국의 변방 식민지에서 예수님이 태어났습니다. 당시에는 실제로 아구스도 황제를 복음(good news=gospel)을 전해주는 자라고 신격화하여 칭송할 때였습니다. 아기 예수가 바로 그 때에 태어난 것은 현실적 안락과 풍요는 죄에 찌든 인간에게 결코 복음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하고 십자가의 참 복음으로 대조시키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반드시 로마 제국의 십자가로 처형을 당하게끔 하나님은 이스라엘은 물론 주변 나라들의 모든 역사까지 주관하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심만이 인간의 모든 죄악과 고난까지 짊어지신 완벽한 구속제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비겁하고 출세욕에 눈이 어두운 빌라도가 그 때 유다 총독이어야 했고 더 음흉한 헤롯이 유대 왕이어야 했는데 그 모든 것이 골고다 십자가라는 창세전부터 있었던 각본에 따라 하나님이 완벽하게 주관한 것입니다.
복음서 기록을 잘 살펴보면 서로 원수 사이였던 유대인과 로마 이방인들이 힘을 합쳐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사탄이 배후에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인종 문화 종교에 구분 없이 미혹시키고 조종한 결과입니다. 사탄의 궤휼에 넘어가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그마저도 예수님이 다 주관하신 것으로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사탄과 죄에 찌든 인간이 합작했던 그 모략을 완전히 깨트렸습니다. 흑암 아래 죄의 노예로 묶여있는 온 세상에 참 생명으로 인도하는 구원의 빛을 찬란히 비춘 것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 전에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이 당시 지중해 세계를 점령하여서 헬라어가 공용어가 되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속담처럼 로마가 세상을 정복하면서 군대와 물자를 이동하기 좋게 만든 도로망이 당시의 지중해 세계를 하나로 묶었습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들고 땅 끝까지 전하기 좋게 하나님이 다 마련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 언어에는 특유의 리드미컬한 운율이 있습니다. 조상의 전승들을 암송하기 쉽게 하여서 구약성경을 대대로 기록 보존 유지하게끔 하셨습니다. 이처럼 성경을 보존하려는 것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한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이 기승을 부릴 때에 사해 근처의 동굴에서 한 목동에 의해 BC 2-3세기의 것으로 판명된 구약성경사본들(Dead Sea Scrolls)이 우연히 발견되었습니다. 그 발견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사항은 구약성경이 현존하는 사본과 완전히 일치한다는 사실입니다.
예컨대 예수님의 수난을 생생하게 묘사한 이사야서 53장이 예수님 오시기 훨씬 전에 유대인들이 익히 배워서 알고 있던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이었던 것입니다. 자유주의 측에선 그 기록이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 진리와 너무나 정밀하게 일치하므로 십자가 사건의 훨씬 후대 제자들 조작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그 발견으로 그 이론을 완전히 무색하게 만들었고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구약성경은 원본대로 잘 보존된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는 말씀임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유대인들은 이사야서에서 53장을 빼고 가르친다고 합니다. 이 또한 역설적으로 하나님이 끝까지 당신을 거역할 민족으로 이스라엘을 택한 이유일 것입니다.
주로 양피지에 쓰여진 성경이 이천년이 훨씬 넘는 그 오랜 세월 동안에 전혀 손상되지 않게끔 하나님이 보관해두었습니다. 아주 한적한 사해 근처의 컴컴한 동굴 안에서 가장 건조한 날씨에 따라 썩지 않도록 하나님이 숨겨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저작이라는 비평이 가장 절정에 이르렀을 때 어린 목동에 의해서 우연히 세상에 드러나게 해서 그것이 완전히 틀린 주장이라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신(?) 광대하고 완벽한 주권과 섭리가 얼마나 엄청나며 놀랍고 은혜롭습니까?
누차 강조하지만 정확히 말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조성하여서 모든 인물과 사건들에 간섭 역사하여서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이라는 그 엄청난 은혜를 죄에 찌든 우리에게 베푸신 것입니다. 당신께서 계획하신 때에 여자의 후손이 오셔서 사탄의 머리를 부수기 위해 구약성경에 기록된 모든 사건들이 바로 그 장소, 그 시간, 그 모습으로 일어나게 한 것입니다. 관련된 모든 인간들은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따라 자신의 욕심과 죄의 본성에 따라 행하도록 허용한 채로 말입니다. 그와 동시에 아브라함, 야곱, 요셉, 모세, 사무엘, 다윗, 이사야 같이 소수의 사람들을 따로 택하여서 믿음을 심어주시고 당신의 종으로 당신의 사역을 감당하게 하면서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창 12:1~3, 벧전 2:9~10)
새해가 되면 만나는 사람마다 서로에게 덕담을 건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기도 좋고 듣고도 좋은 말입니다. 여러분, 이 말이 이렇게 좋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은 누구나 복을 받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복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인지상정입니다. 그래서 연하장을 보면 거의 복(福) 자가 들어갑니다. 요즘은 덜 하지만, 옛날에는 주발에도 수저에도 이불에도 옷에도 복 자를 새겨 넣었습니다. 중국인들은 아주 특이하죠. 중국식당 같은 데 가 보면 복(福) 자를 거꾸로 써 붙여 놓은 걸 봅니다. 여러 가지 해석에 있다고 하는데, 그 중에 하나는 우스갯소리 같지만 뒤집어 놓아야 복이 하늘에서 쏟아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복을 주로 육신적 혹은 물질적인 것에 치중해서 생각합니다. 그리고 소유하고 움켜쥐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반면에 성경은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소유보다 누리는 것을 복이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소유하고도 누리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더 나아가 나누는 것을 복이라고 말합니다. 이건 아주 특이한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누리고 나누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복을 나누는 것을 가리켜 사명이라 부릅니다. 사명을 감당할 때 더 큰 복이 임합니다. 그리고 큰 기쁨이 넘칩니다. 심지어 천국의 영광까지 주어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명을 감당하는 것까지 복에 포함시킵니다. 세상에서 추구하는 복과 차원이 다른 겁니다. 이거야 말로 참 복이요 큰 복입니다.
요즘은 잘 안 쓰는 말인데, 홍복(洪福)이란 단어가 있죠. 넓을 洪 자를 붙여서 홍복(洪福)이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복보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더 큰 복을 ‘홍복’이라고 불러봅니다. 이 시간에 제가 여러분에게 홍복을 받기 위한 비결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성경에서, 아니 역사상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홍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홍복을 받으려면 아브라함을 따라 하면 됩니다. 부디 오늘 말씀을 통해 세상에서 말하는 복과 비교되지 않는 참 복, 그리고 큰 복인 홍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1]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 : 복의 근원
하나님이 메소포타미아 지역(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 초승달 모양의 비옥한 땅, 고대문명 발상지)에 살던 아브라함을 선택해서 불러내셨습니다. 그곳에서 그의 집안은 우상숭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월신 즉 달을 숭배하는 우상종교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 장사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부르신 겁니다. 어떤 이유로 그를 선택하셨을까요? 그에게 복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축복하는 게 아니라, 복의 근원으로 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를 부르시면서 약속하신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창12:2~3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you will be a blessing)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through you)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여기 보면 세 가지 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큰 민족 즉 위대한 민족(great nation)을 이루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창대한 이름 즉 위대한 이름(great name)을 갖게 해 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복 자체(blessing)가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전에는 ‘복의 근원’이라고 번역되어 있었죠. 이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이 되는 것, 즉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3절에 보니까 그를 통해서 많은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무명 인사였던 아브라함, 게다가 하나님을 모르고 우상을 섬겼던 그가 놀라운 축복을 받고, 더 나아가 많은 민족들에게 복을 끼치는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
창세기 17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예 그의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본래 아브람이었죠. ‘큰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으로 바꿔 주셨습니다. ‘열국의 아비’ 즉 ‘많은 민족의 조상’이란 뜻입니다. 그의 이름에는 하나님의 약속,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그를 선택하신 이유가 들어 있습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복을 받는 것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고 이뤄주신 복은 그 정도가 아닙니다. 그 범위가 엄청 넓습니다. 그래서 홍복이라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복을 받아 누릴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 복이 흐르고 넘쳐 많은 민족들에게 나누는 것까지를 포함합니다.
여러분, 이게 성경의 원리입니다. 축복은 항상 사명과 짝을 이룹니다. 비유하면, 축복과 사명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축복을 주시되,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축복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사명을 맡겨 주십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잘 감당하면 더 큰 축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시켜 주십니다. 세상에서 추구하는 복과 차원이 다릅니다.
비유하면 마치 이런 겁니다. 세상의 축복은 저수지와 같습니다. 소유하고 쌓아두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잘못하면 나중에 썩어버리게 됩니다. 반면에 성경의 축복은 강물과 같습니다. 축복을 받되 다른 데로 흘려보내니까 흐르고 넘치게 됩니다.
이와 같이 놀라운 축복을 약속받은 아브라함의 반응이 어땠습니까? 믿음으로 순종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처음 말씀하셨습니다. 창12:1 “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the land I will show you)으로 가라” 사람이 살던 곳을 떠난다는 게 정말 어렵습니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요즘도 그럴진대 고대에는 얼마나 어려웠겠습니다. 한번 떠나면 돌아올 수 없습니다. 게다가 어디로 가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시지도 않은 상태입니다. 앞으로 안내해 줄 테니까 그냥 믿고 따라오라는 겁니다. 또 그때 나이가 75세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믿음으로 순종합니다. 창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그에게 믿음이 없었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그를 믿음의 조상이라 부르는 겁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의 믿음을 이렇게 증거합니다. 히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그 후 아브라함이 어떻게 됐나요? 그의 생애 가운데 이 약속들의 상당 부분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75세까지 혈혈단신이던 그가 이삭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후손이 번창합니다. 많은 축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의 후세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었죠. 어디 그뿐인가요? 아브라함의 씨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만민이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믿으면 죄와 영원한 사망에서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저와 여러분도 그렇게 된 것 아닙니까? 지금에 와서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부르실 때 약속하신 말씀이 그대로 성취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 : 제사장 나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후 그 다음 그의 혈통적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셨습니다. 역시 복의 근원으로 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표현이 좀 다르죠. 출19:5~6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면서 제사장 나라로 삼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my treasured possession)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이스라엘을 내 소유 삼는다는 것은 특별 소유 즉 보배로운 존재로 선택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지중지하며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만 예뻐서 그런 게 아니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축복을 가지고 사명을 감당하라는 겁니다. 거룩한 백성이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라는 말씀이 바로 그겁니다. 거룩은 구별 즉 성별이란 말이죠. 하나님을 모르는 다른 민족들과 차별된 모습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삶으로 빛을 발함으로 제사장 나라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제사장은 라틴어 성경에 보면 ‘폰티펙스’(pontifex)라고 변역되어 있는데, 이 말은 다리 놓은 사람(bridge-builder) 즉 중보자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혼자서 축복을 받고 끝내지 말고, 그 축복을 다른 민족들에게 나눠주고 하나님께로 인도하라는 뜻입니다.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그들에게만 축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먼저 그들을 축복하시고, 그 다음에 그들을 통해 모든 민족을 축복하시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출19:5에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 ”라고 말씀하셨던 겁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이런 이스라엘의 사명을 가리켜 ‘이방의 빛’의 역할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메시아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입니다. 사49:6 “ ...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땅 끝은 모든 민족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혈통적인 이스라엘만 아니라 만민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겁니다.
안타깝게도 구약 이스라엘은 왜곡된 선민의식으로 자기들끼리만 축복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게다가 세상의 축복을 추구하다가 우상숭배와 도덕적 타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 결과 바벨론에게 멸망하고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다니엘이나 에스더 같은 사람들을 통해 이방인을 구원하는 선교가 이뤄지기는 하지만 구약시대는 이스라엘의 실패로 끝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셨고, 신약 시대에 그를 믿는 자들을 통해 복의 근원 즉 제사장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셨습니다. 이게 바로 저와 여러분을 선택하신 이유입니다.
[3] 우리(그리스도인과 교회)를 선택하신 이유 : 왕 같은 제사장
구약 이스라엘이 혈통을 중시했는데, 사실은 구약시대에도 혈통이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오직 믿음이 중요했습니다. 실제로 구약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무수한 이방인들이 믿음으로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들어와 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만 봐도 알 수 있죠. 그 가운데 다말과 라합, 그리고 룻 같은 여인들이 모두 이방인입니다. 혈통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롬3:29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과 동일한 원리입니다. 이제 신약시대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믿으면 다 영적인 이스라엘입니다. 유대인이라도 믿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방인이었지만 이제 믿음으로 영적인 이스라엘이 됐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얼마나 놀라운 축복을 받았는지 벧전2:9~10에 나와 있습니다.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아브라함을 선택하셨던 이유와 동일한 이유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죄와 사망 가운데 멸망할 인생을 이제 영생을 주시고 온갖 축복을 주십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들어가게 한 겁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사명을 맡겨주셨습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면 더 높은 치원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참여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받았던 홍복을 받게 되는 겁니다.
특별히 저와 여러분 우리 한국인들은 정말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해 주신 게 분명합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극동 아시아 귀퉁이에 있는 한반도, 그야말로 땅 끝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 130여 년 전 선교사들 통해 복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짧은 역사 가운데 엄청난 축복을 주셨습니다. 기적이란 말 외에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주 말씀드리죠. 대한민국의 3대 기적! 뭔가요? 복음화의 기적, 경제 부흥의 기적, 그리고 민주화의 기적입니다.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축복입니다. 1천만 성도에 5만 교회의 성장은 세계 교회사에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경제의 부흥은 눈부실 정도입니다. 얼마 전 보도를 보니까, 우리나라가 3년 연속 무역 규모 1조 달러를 달성했다고 합니다. 수출액이 세계 7위입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1960년대 3대 웃음거리가 있었습니다. 수출 1천억 달러, 국민소득 1천 달러를 달성하고 마이카 시대를 이루겠다는 말이었습니다. 지금 보면 그 때 웃었던 게 진짜 웃기는 일입니다. 초과 달성했죠. 이제는 자동차가 너무 많아서 걱정입니다. 그 가운데 저와 여러분 개인에게도 구원받고 영생을 얻게 해 주셨고, 개인차가 있지만 그래도 이만큼 살 수 있도록 육신적 물질적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계속 축복만 받으려고 한다거나, 혹은 받은 축복을 움켜쥐고만 있으면 큰일이 납니다.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잘못 하면 추락할 수 있습니다. 현재로서도 부정적인 면이 얼마나 많은가요? 도덕적으로 타락한 모습이 만연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자살지수 1위입니다. 왜 그럴까요? 계속 축복만 받으려고 해서 그래요. 이제는 교회나 그리스도인은 물론이고 국가도 축복을 나누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럴 때 진짜 축복이 되는 겁니다. 축복을 받았다고 하면서 행복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요? 오히려 저주이죠. 복의 근원 즉 축복의 통로가 될 때 비로소 축복이 행복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행20:35 “ ...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수년 전 서울대학교에 행복연구센터가 설립되어 국민들을 위해 더 나은 삶을 위해 행복을 연구하고 전파하는 좋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행복 교과서를 편찬해서 중학교 200개에 보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연구소에서 강조하는 게 이겁니다. “이웃에게 행복을 주면 당시에게 생복이 찾아옵니다.”(Giving happiness gives you happiness.) 좋은 일이기는 한데 연구할 게 뭐 있나 싶어요. 우리는 성경에서 이미 알고 있는 것인데 말입니다.
특히 우리는 복음의 빚진 나라입니다. 100년 동안 3천명 선교사들이 왔습니다. 그리고 6.25 때 16개국에서 전투병을 보내 많은 희생자가 있었습니다. 그런 은혜를 받은 나라입니다. 인간적인 도리로 봐서도 축복을 나눠주는 사명을 감당하는 게 마땅합니다. 사랑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고, 축복을 나누는 제사장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명을 잘 감당하면 앞에서도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께서 흘러넘치는 축복을 주십니다. 빌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우물물 원리입니다. 우물에서 물을 퍼내면 물이 더 흘러들어오는 원리와 같습니다. 또 눅6:38 보면, 마중물 원리가 나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펌프에 물을 조금만 집어넣어도 많은 물이 퀄퀄 쏟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이 참여시켜 주십니다. 달란트 비유 가운데 충성한 종에게 주인이 주신 말씀이 곧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입니다. 마25: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축복의 통로로 제사장 사명을 감당하면 큰 기쁨이 넘칩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가 장차 천국이 들어가면, 하나님 앞에서 자랑스러운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살전2: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여러분, 이제 2014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과연 어떤 축복을 받고 싶습니까? 여전히 물질적 육신적 축복만 받기를 원합니까? 우리가 육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당연하죠. 그러나 거기서 머물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 차원 더 높아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를 깨닫고 아브라함처럼 홍복에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백설 공주 동화책 수준으로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왕자님과 만나 오래 동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이건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가 결코 아닙니다. 축복을 받은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축복을 소원하더라도 그 다음까지 포함해서 소원하시기 바랍니다. 그 축복을 가지고 제사장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꿈과 비전을 담아 기도하고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60:1“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