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 예언과 성취
창세기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자의 후손(갈라디아서 4:4-5)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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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9: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베들레헴에서 탄생(마태복음 2:1)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이사야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동정녀의 탄생(누가복음 1:31)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눅 1장27절)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받기를 거절하는도다.
헤롯왕의 유아 학살(마태복음 2:16-18)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 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
애굽으로 피난감(마태복음 2:14-15)
이사야 40:3-5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나님의 아들(마태복음 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갈릴리에서 전도하심(마태복음 4:13-16)
시편 78:2-4
내가 입을 열고 비유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 이는 우리가 들은 바요 아는 바요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전한바라 우리가 이를 그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 능력과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비유로 가르치심(마태복음 13:3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
선지자로 오심(사도행전 3:20-22)
이사야 61:1-2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여호와 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심(누가복음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하고.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않음을 받는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유대인에게 배척 당하심(요한복음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나의 신뢰하는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친구에 의해 배반당함(누가복음 22:47-48)
말씀하실 때에 한 무리가 오는데 열 둘 중에 하나인 유다라 하는 자가 그들의 앞에 서서 와서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시니.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
은 삼십에 팔리심(마태복음 26:15)
불의한 증인이 일어나서 내가 알지 못하는 일로 내게 힐문하며.
거짓증인들에게 고소됨(마가복음 14:5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고소하는 자들 앞에서 침묵하심(마가복음 15:4-5)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
능욕 당하심(마태복음 26:67)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대신 고난을 받으심(로마서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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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죄인들과 함께 못 박히심(마가복음 15:27)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시편 22: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손과 다리가 찔림(요한복음 20:27)
조롱과 모욕당하심(누가복음 23:35)
백성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도 비웃어 가로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찌어다 하고.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
쓸개 탄 포도주를 마심(마태복음 27:34)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
옷을 제비뽑음(누가복음 23:34)
시편 34:20
그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 하나도 꺽이지 아니하도다.
뼈가 꺾이지 않음(요한복음 19:32-33)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요한복음 19:36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함이라.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옆구리가 찔림(요한복음 19:34)
부자의 무덤에 장사지냄(마태복음 27:57-60)
시편 49:15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
부활하심(마가복음 16:6-7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하라 하는지라.
부활하심(고린도전서 15:4)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를 끌고 선물을 인간에게서 또는 패역자 중에서 받으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려 하심이로다.
승천하심(마가복음 16: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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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과 꿈에 대한 성경적 이해
이집트라는 제국의 황제(파라오)가 자신이 꾸었던 꿈을 해석한 요셉을 총리로 임명했습니다.
제정분리를 원칙으로 하는 현대의 국가들은 공식적 업무를 결정하고 진행 할 때 종교적 현상인 꿈이나 환상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꿈이나 환상(에 대한 해석)을 인정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한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한 제국의 황제가 꿈(의 해석)에 따라 제국의 정책을 결정하고 진행 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가 힘듧니다.
그러나 제정일치가 원칙이었던 고대 사회에서는 꿈이나 환상 등의 종교적 현상을 무시 할 수 없었습니다—인정하고 (그 해석을) 심각하게 고려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종교적 현상에 대해 해석하고 조언할 수 있는 술객(?)들이 왕실에 신하들과 함께 황제의 주변에 있었습니다.
이집트의 경우 꿈 해석에 대한 기법이 수백가지가 되었습니다—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왕실의 술객이 되려면 그 수백가지나 되는 꿈 해석의 기법에 정통 해야 했습니다—실제 왕실의 술객들은 꿈 해석에 정통 했습니다.
어떠한 꿈도 그들의 꿈 해석 기법을 피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파라오에게 주셨던 꿈만은 그 많은 기법들을 다 피했습니다—술객들이 그렇게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술객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파라오에게는 충격적인 사실이었습니다—그 꿈이 범상하지 않음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태에서 요셉이 그 꿈을 해석 하니까 놀라서 당장 요셉을 인정 하는 것입니다.
바벨론 제국에서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황제의 꿈을 해석할 당시에도 상황이 비슷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황제도 다니엘을 인장 했던 것입니다.
이쯤이면 파라오가 자신의 꿈을 해석한 요셉을 총리로까지 임명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어느정도 이해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소속된 제국의 황제들까지도 꿈 해석으로 놀라게 했던 요셉과 다니엘은 꿈이나 환상(의 해석)과 관련된 설교나 강의 등에 항상 인용될 정도로 꿈이나 환상(의 해석)과 관련된 주제의 대표적인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셉과 다니엘에게도 해석 못한 꿈과 환상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요셉은 자신이 어렸을 때 꾸었던 꿈을 그의 형제들이 그에게 양식을 구하고자 굽신거릴 때까지 해석하지 못했습니다—자신의 꿈도 해석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석을 주지 않으시면 아무리 요셉과 다니엘이라도 해석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직접 양육하셨던 수제자 베드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가 욥바라는 곳의 한 옥상에서 기도 중에 환상을 봤습니다—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 하더니(행 10:9 – 17).
베드로 조차도 해석 하지 못했던 환상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석을 주지 않으시면 아무리 베드로라도 해석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희도 예외가 될 수가 없습니다—하나님께서 꿈이나 환상에 대한 해석을 주지 않으시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요셉, 다니엘, 그리고 베드로에게 문제가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꿈이나 환상에 대한 해석을 주지 않으셨던 것이 아닙니다. 저희도 마찬가지 입니다—저희가 아무리 신앙 생활을 잘해도 하나님께서 꿈이나 환상에 대한 해석을 주지 않으시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요셉, 다니엘, 그리고 베드로가 해석이 안되는 꿈이나 환상에 대한 해석을 달라고 기도 했을 것이라는 추정에 반대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기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해석을 주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저희도 마찬가지 입니다—저희가 아무리 기도 해도 하나님께서 꿈이나 환상에 대한 해석을 주지 않으시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석의 은사가 있다면서 모든 꿈과 환상을 해석하는 사람은 오히려 경계의 대상 입니다.)
그러나 요셉, 다니엘, 그리고 베드로가 꿈이나 환상에 대한 해석을 몰랐다고 해서 신앙 생활에 손해를 보거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졌던 것은 아닙니다—하나님께서도 그들이 해석을 모른다고 탓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처럼 알면 아는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저 신앙 생활만에 전념하면 되는 것입니다—알고 모르는 것이 신앙 생활이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손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탓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꿈과 환상(의 해석)에서 자유로와 지시기 바랍니다.
꿈을 꾸셨거나 환상을 보셨으면 하나님께 그 꿈이나 환상에 대한 해석을 주십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그 해석을 주고 안주시고는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해석을 받으셨다고 우쭐해 하실 필요도 없고 받지 않으셨다고 좌절하고 낙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해석을 알면 아는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신앙 생활에만 전념 하시면 됩니다.
그것이 ‘분명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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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 1장~8장 : 8개의 환상
스가랴 9장~10장 :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예언
스가랴 12장~14장 :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예언
스가랴서의 예언과 성취
1. 나귀 새끼(스가랴 9:9) 550년 후 성취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에 대한 나귀 새끼의 예언은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다.
스가랴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마태복음 21:5-7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제자들이 가서 예수의 명하신대로 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2. 은 30에 팔릴 것(스가랴 11:12) 550년 후 성취
은 30개에 팔릴 것이 문자적으로 상취되었다.
스가랴 11:12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
마태복음 26: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3. 토기장이의 밭을 구입(스가랴 11:13) 550년 후 성취
스가랴 11:1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바 그 준가를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마태복음 27:3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4. 메시아를 거절 후 흩어진 백성(디아스포라)(스가랴 7:11~14) 590년 후 성취
그들이 메시아를 거절하므로 여러 나라에 흩어질 것이다, 디아스포라.
스가랴 7:11~14
그들이 청종하기를 싫어하여 등으로 향하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신으로 이전 선지자를 빙자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노가 나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나왔도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었노라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은즉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고.
회리바람으로 그들을 그 알지 못하던 모든 열국에 헤치리라 한 후로 이 땅이 황무하여 왕래하는 사람이 없었나니 이는 그들이 아름다운 땅으로 황무하게 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4:2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마태복음 26:31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5. 예루살렘으로 귀환(스가랴 8:1:1~13) 2468년 후 성취
여러 나라에 흩어졌던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 올 것이다.
스가랴 8:1~13
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왔은즉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
7-8.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백성을 동방에서부터, 서방에서부터 구원하여 내고. 인도하여다가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성실과 정의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1947년 11월 29일 유엔 총회가 영국의 위임 통치를 받던 팔레스타인의 강제적인 분할 계획을 채택하여 실행을 추진하였으나, 이에 동의한 유대인과 달리, 이에 동의하지 않은 아랍인은 추후 이스라엘을 침공하게 된다.
1948년 5월 14일, 세계 시오니즘 단체 경영이사, 그리고 팔레스타인 유대인 기구의 대통령 다비드 벤 구리온은 "에레츠 이스라엘"에서
유대 국가를 수립하고 이스라엘 국가로 한다고 선언했다.
1948년 5월 14일, 영국의 위임통치 종료와 함께 독립이 되었다.
영국군이 철수한 다음날 동시에, 근처의 아랍 군대는 팔레스타인을 침공하고, 이스라엘 군대와 싸웠다.
이스라엘은 여러 번의 중동 전쟁을 하는 동안 요르단 강 서안 지구, 시나이 반도(1967년 ~ 1982년 사이), 남레바논(1982년 ~ 2000년 사이), 가자 지구와 골란 고원을 점령했다.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지역을 부분 합병했지만, 요르단 강 서안 지구와 국경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요르단과 평화 조약을 체결했지만,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은 여전히 이 지역의 갈등의 불씨로 작용하고 있다.
스가랴 12:2~3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그 사면 국민에게 혼취케 하는 잔이 되게 할 것이라 예루살렘이 에워싸일 때에 유다에까지 미치리라.
그 날에는 내가 예루살렘으로 모든 국민에게 무거운 돌이 되게 하리니 무릇 그것을 드는 자는 크게 상할 것이라 천하 만국이 그것을 치려고 모이리라.
아직 성취되지 않은 예언들(미성취 예언)
7. 이방 나라들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 것이다(스가랴 12:3~9, 14:12~15)
8-9. 그 날에 여호와가 예루살렘 거민을 보호하리니 그 중에 약한 자가 그 날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무리 앞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 같을 것이라.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열국을 그 날에 내가 멸하기를 힘쓰리라
8. 이스라엘 큰 애통으로 회개하고 메시아에게 돌아올 것이다(스가랴 12:10~13:1)
12:10-11.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
13:1.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9. 주께서 예루살렘 동쪽 감람산에 재림하실 것이다(스가랴 14: 4~5)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그 산 골짜기는 아셀까지 미칠찌라 너희가 그의 산 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 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하리라
10. 이방 나라들이 초막절을 지키러 에루살렘으로 올라올 것이다(스가랴 14:16~21)
16-18.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천하 만국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 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 오지 아니할 때에는 창일함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열국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08. 04. 2021(수)
Patris Church
08. 04. 2021(Wed) pm 7:00
Seoul Korea 08-05 am 8:00
스가랴서의 메시아 예언
12:3, 무거운 돌
신앙고백
찬송 / 511장(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요한복음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신, 죄, 구원)
<신> 단일신론 : 삼위일체
- JX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다
<죄>율법(소극적) : 마음(적극적)
- 눈으로 보이는 것에 집중
<구원> 제3의 성전 재건 : 메시아 재림
- 예수는 저주를 받고 지옥으로 가야 할 존재
로마서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프로톤)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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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먼저(프로톤 / πρῶτον)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태복음 6:33
스가랴 12:3
그 날에는 내가 예루살렘으로 모든 국민에게 무거운 돌이 되게 하리니 무릇 그것을 드는 자는 크게 상할 것이라
천하 만국이 그것을 치려고 모이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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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돌(에벤 마아마사)
돌(에벤, ’eben) אֶבֶן
베드로전서 2: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the living Stone)
다니엘 2:45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 2년 꿈을 꾸었다.
무슨 꿈을 꾸었으며 그 꿈의 내용을 해석하라!
희한한 일이다. 육체와 함께 거하지 않는 신들 외에는 그것을 보일 자가 없다.
큰 신상을 보셨다.
정금 머리 : 사자 바벨론
은 가슴 : 곰 메대 바사
놋 허리 : 표범 헬라
철 다리 : 짐승 로마
열 발가락 : 열 왕, 열 뿔
뜨인 돌 - 메시아 나라
이사야 28: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스가랴 3: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
마태복음 21: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
베드로전서 2:4-5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사람들에게 집을 그리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의 모양을 그린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먼저 지붕을 그리고 지붕 아래에 집을 그린 후에 여러 개의 창을 그린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집을 지어보지 못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귀, 눈, 입으로만 집을 짓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집을 직접 짓는 사람은 집을 그리라고 하면 먼저 땅을 그린다고 합니다.
어떤 땅에 집을 지어야 할지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몸으로 집을 짓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신앙생활을 집을 짓는 것에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집을 그릴 때 지붕을 먼저 그리고 창을 그리며 집의 모양을 그리는 사람은 마치 집을 모래 위에 짓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집을 지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먼저 모양을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의 문제가 예수님을 내가 만난 것이 아니라 자주 많이 듣기 때문에 이미 내 머리 속에 형성된 예수님에 대한 정보에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기초가 없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반석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내가 직접 집을 지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집을 짓기 위해서는 기초가 되는 땅을 잘 선택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구약에서도 예수, 신약에서도 예수를 찾아야 합니다.
어느 성경을 읽든지 그곳에서 예수를 찾는 것이 성경을 바르게 읽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다니엘 금신상의 비밀 - 느부갓네살의 꿈
다니엘 2:31~35
금 머리는 북부 이스라엘을 점령한 앗수리아 왕조의 계승국으로 소위 갈대아 나라로 불리워지는 신 바벨론을 의미하는데,
지금의 이라크에 해당되는 이 나라는 엄청난 힘을 과시했던 천하무적의 나라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두려움을 주는 세상나라를 상징한다.
건국자 느부갓네살 왕이 두라 평지에 금 신상을 세우고 경배하도록 하였다(단 3장 이하).
바벨론은 나라가 부강해지므로 유브라데 강 좌우에 구리를 재료로 하여 견고한 성을 쌓았는데 그 규모가 대단했다.
그러나 엄청난 시설로 건축된 성의 힘만 의지하여 인간의 교만함을 드러내던 바벨론은 느부갓네살 왕의 아들인 벨사살 왕 때에 무너졌다. 그 무너질 때의 상황을 보면, 밤에 1,000명의 기생과 술잔치를 벌이며 자기들의 신을 찬양할 때에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침공하여 유브라데 강물을 다른데(레토릭 호수)로 돌리고 강 밑으로 대군을 몰고 건너가 벨사살 왕을 죽임으로 금 머리로 묘사된 바벨론은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바벨론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① 예루살렘을 멸망시킴 *1차 침공 : 주전 606~605, ② 유대의 인물들을 포로로 사로잡아 감 ③ 이스라엘을 70년간 지배함 |
은 가슴 팔로 묘사된 메데 바사는 고레스Ⅱ세가 바벨론을 정복하고 지금의 이란 지역에 세운 나라로서 국법이 왕권에 우선한 국가였는데, 이는 다리오 왕이라도 법을 마음대로 바꿀 권한이 없어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져 넣게 되었을 정도였다(단 6:1~10).
그러므로 “왕만큼 못한 나라가 서리라”는 예언대로 된 것이다.
주전 558년 페르시아 제국과 합병하여 메데 바사로 불리게 된 이 나라가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들을 보면
사자로 상징되는 바벨론 제국과는 정 반대의 일들을 하였으니 곧 곰으로 상징되는 나라의 특성과는 달리 이스라엘에게 숫양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이 나라도 주전 331년 헬라에 의해 멸망함으로서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졌다.
① 바벨론에 의해 포로 된 유대인을 해방 |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분명 종말의 시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메시지는 종말의 역사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되는 주님의 재림에 대한 진리일 것입니다.
여기에는 종말에 나타날 여러
징조들에 대한 예언의 말씀과 주님의 재림에 이르는 여러 사건들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포함됩니다.
성 중건령이 내린 BC 457년부터 계산하여 7 이레와
62 이레에 성이 중건되었고,
메시야의 기름부음이 정확히 AD 30년에 이루어졌습니다.
메시야의 끊어짐과 예루살렘 성의 철저한
훼파 사건(AD 70년)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공백기인 신약시대를 지나 이제 마지막 한 이레의 직전에 와 있음을 함께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나타나고 있는 시기입니다.
오늘은 다니엘의 기록 중 또 다른 중요한 구원 달력이 되는 금신상의 예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즉위 2년 어느날 이상한 꿈을 꿨는데, 그 내용이 생각나지 않아 번민하게 되었습니다(단 2:1).
왕은 온 나라의 박수, 술객, 점장이, 갈대아 술사들을 불러 세우고, 자신이 잊어버린 꿈 내용을 밝히라고 요구했습니다.
해괴한 요구입니다.
물론 이 사건 배후에는 하나님의 손이 역사하고 있었습니다.
술객들의 대답입니다.
“왕의 물으신 것은 희한한 일이라. 육체와 함께 거하지 아니하는 신들 외에는 왕 앞에 그것을 보일 자가 없나이다”(11절).
이
말에 격분한 느부갓네살 왕은 바벨론 모든 박사들을 죽이라 명했고, 그들과 함께 애꿎은 다니엘과 친구들까지 죽게 되었을
때(12-13절),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이 기도하니 그 밤에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이상 중에 왕의 꿈에 대한 모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왕 앞에 선 다니엘이 왕에게 꿈을 해석하면서 언급한 말을 보십시오.
28절,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자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과연 왕의 금 신상 꿈은 세계의 역사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다니엘 시대로부터 종말에 이르는 장구한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접하는 기쁨을 맛보시기를 바랍니다.
1. 꿈의 내용과 다니엘의 해석
31-33절,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 데 크고 광채가 특심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그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느부갓네살 왕이 본 신상은 크고 광채가 특심하고 그 모양이 심히 두려웠습니다.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고, 가슴과 팔들은 은이고,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고, 종아리는 철이고, 발은 얼마는 철이고 얼마는 진흙이었습니다.
그 후에 한 뜨인 돌이 철과 진흙의 발을 쳐부수었는데(34절),
그 결과 신상은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습니다(35절).
하나님께서는 왕이 꾸고도 까맣게 잊어버린 꿈을 제 3자인 다니엘에게 정확하게 알게 하셨고, 또 그 해석까지 한점 막힌 바 없이 알게 하셨습니다.
다니엘의 해석은 이러합니다.
우상의
금 머리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고(36-38절),
은 가슴과 팔은 왕만 못한 다른 나라이며(39절),
놋 배와 넓적다리는 온
세계를 다스릴 다른 나라이고(39절),
넷째 나라인 철 종아리는 강하기가 철 같을 것이며(40절),
그 나라가 얼마는 철의 발로
얼마는 진흙의 발로 분리될 것이고, 서로 섞이지만 합해질 수 없는 열왕의 시대에 하나님이 세우시는 한 나라가 일어나(44절),
신상으로 상징되는 세상 나라들을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서게 될 것입니다.
2. 역사 속의 금 신상 비밀
우리는 다니엘의 해석에 근거하여 수천 년의 역사를 한 눈에 조명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지자에게는 모든 것이 미래에 일어날 일이었지만 오늘 우리에게는 대부분 과거 세계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신상
부위에 따라
금 머리는 바벨론(BC 605~539),
은 가슴과 팔은 메대·바사(BC 539~331),
놋 배와 넓적다리는
헬라제국(BC 331~168),
철 종아리는 로마 제국(동로마 AD 1453까지, 서로마 AD 476까지)으로 보는 것이
거의 모든 복음주의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입니다.
과연 금 머리 바벨론은 부강한 나라로서 유프라데스 강 좌우 언덕에
구리를 재료로 하여 견고한 성을 쌓았습니다.
주변 열국을 점령하여 천하에 이름을 드날렸고, 교만하여 두라 평지에 거대한 금 신상을
세워 강제로 경배케 할 정도였습니다.
성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성 둘레가 54마일, 높이는 300척, 성문은
100개나 되었습니다.
그의 손자 벨사살 때 1000명의 기생과 술잔치를 벌일 정도로 세계 최대 최강의 나라였으나, 메대·바사
연합군에 의하여 멸망합니다.
은 가슴·팔로 묘사된 메대·바사는 고레스(Cyrus) 2세가 바벨론을 정복하고 지금의
이란 지역에 세운 나라로서 국법이 왕권에 우선한 나라였는데, 왕이라도 법을 바꿀 권한이 없어 다리오 왕 때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져
넣지 않을 수 없었을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왕보다 못한 나라가 서리라”는 예언대로 된 것입니다.
메대·바사는 이전 나라인
바벨론에 의해 포로 된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건축케 했고, 이 나라 통치 때 70 이레의 예언이 있었습니다.
놋
배·넓적다리로 묘사된 헬라 제국은 “온 세계를 다스린 나라”로서, 28세의 알렉산더가 5년 만에 페르샤와 인도까지 정복했을
정도로 크고 넓은 영토를 보유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더가 32세에 요절하자 네 명의 부하 장군들에 의해 네 나라로
분열되었습니다.
철 종아리로 묘사된 로마는 지금의 이태리를 중심으로 하여 철 문화가 발달된 국가로서, BC
64년부터 지중해 전역과 중동 아시아를 지배해 온 무섭고 강력한 제국이 되어 천하무적의 군사력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가 나누일 것이며”(2:41) 라는 예언처럼 AD 395년 데오도시우스 황제의 사망 후 두 아들에 의해서 동·서로
분할되었습니다. 서로마는 게르만족 용병대장 오토아케르에 의해 AD 476년에 망하였고, 동로마는 오랜 후인 1453년 이슬람교도의
공격을 받아 오스만투르크에 멸망당했습니다.
신상이 금속으로 표현되고 있는 사실에 주목해 보면, 처음 금으로부터 은, 놋, 철, 흙으로 점점 나빠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가 흐를수록 점점 더 타락하는 모습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또한 머리는 무거운 금이고 발은 가벼운 진흙인 것은 결국 세상 나라가 무너지게 될 불안정한 모습을 말해줍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바벨론은 실제로 금을 많이 사용하여 우상들과 신당들을 금으로 단장했고, 메대·바사는 실제로 은을 돈으로 활용했으며, 헬라는 무기를 제조하는데 놋을 사용했고, 로마는 갑옷과 무기 모두를 철로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금속까지 그 시대를 예표하고 있음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깊고 오묘하며 한 말씀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영원한 진리의 말씀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느부갓네살 왕이 꾼 금 신상의 꿈은 역사적으로는 세상나라의 발전과정을 묘사하고 있는 반면에, 영적으로는 이스라엘과 교회를 핍박하는 나라들의 특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머리는 하나이므로 바벨론은 한 국가였습니다.
가슴과 팔은 두 팔이므로 메데·바사가 같은 시기에 강국으로 나타났습니다.
종아리는 둘이므로 동·서 로마로 분리됨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열 발가락의 비밀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예언적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비밀은 임박한 재림 때의 여러 나라에 대한 예언이기 때문입니다.
3. 발(足)의 국가
41절, “왕께서 그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철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나누일 것이며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철의 든든함이 있을 것이나”
42절, “그 발가락이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인즉 그 나라가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는 부숴질 만할 것이며”
43절,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들이 다른 인종과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철과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이다”
진흙·철 발가락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뜨인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숴뜨린 것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 발의 국가는 임박한 재림을 앞두고 출현할 열국(列國)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나라에서 적그리스도가 배출되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몇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발과 종아리는 서로 다른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종아리는 철이요,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습니다.
2)
신상의 부서짐에서 입증되기 때문입니다.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34절).
재림하실 주님에 의해
이루어질 사건이므로, 종아리의 국가와 발의 국가는 동일한 국가가 아님이 자연스럽게 증거되고 있습니다.
3) 계
17:9-10절이 입증하기 때문입니다.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간 동안 계속하리라”
여기서 사도 요한
당시에 있던 국가는 로마였고, “아직 이르지 아니한” 나라는 미래 적그리스도 국가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발의 국가는 네 번째
나라인 로마제국의 부패된 말기의 모습이 아니라 주님의 재림 직전에 나타나게 될 열국(列國)의 성격을 지닌 국가로서, 적그리스도를
배출하게 될 한 나라로 보는 것이 적절한 해석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발의 국가는 어떤 모습일까요?
여러 견해가 있지만 그중 가장 지지받고 있는 것은 발의 국가가 유럽연합국(EU)이 될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어떤 이유에서입니까?
1) 그 나라가 나눠지기 때문입니다(단 2:41).
단 7:23~24,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네째 짐승은 곧 땅의 네째 나라인데 이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며,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
열 뿔로 상징되는 열국(列國)은 넷째 나라인 로마 제국의 영토에서 나타나게 될 것임이 예언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지금의 유럽 연합의 회원국들은 옛 로마 제국의 영토에서 출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2)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는 부숴지기 때문입니다(단 2:42).
현재 27 회원국 중 영국· 프랑스·독일·이태리 등의 강대국들과 약소국들이 섞여 있습니다.
3) 이들은 반목 속에서도 협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단 2:43).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들이 다른 인종과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철과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이다”
EU를
구성하는 민족은 게르만계, 라틴계, 슬라브계로 나뉘는데, 이들은 역사상 은원관계가 많고 감정의 골이 깊어 하나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면서도 합쳐져야 할 이유는 군사적으로는 러시아를 대항하고 경제적으로는 미국을 대항하기 위함입니다.
4) 정치적 국가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앞의 금·은·놋·철 네 나라가 정치적 강국이었기 때문에 열 발가락으로 상징되는 EU 또한 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의
유럽 연합의 역사를 살펴보면, 1952년 유럽 석탄철강 공동체(ECSC)로 시작하여 1957년에 유럽 경제공동체(EEC),
1967년에 유럽 공동체(EC), 그리고 1993년 EU가 공식 출범했습니다. 1999년 1월부터 공용 화폐인 ‘유로’(EURO)
달라를 전 회원국이 함께 사용하고 있고, 금년 6월 새 조약이 발효하여 EU 대통령이 2009년부터 나타날 전망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EU는 다니엘과 계시록에 나타나 있는 열 뿔 권세를 지닌 강력한 국가로서의 출발을 예고하는 요소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말의 모든 사건을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예의 주시하며, 더욱 종말 신앙으로 무장해야 할 것입니다.
4. 유럽연합(EU)과 로마 카톨릭
계 17:11,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저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여기
짐승(=적그리스도)은 여덟 째 왕인데, 이는 일곱 중에 속한 자라고 했습니다. 일곱은 애굽, 앗수르, 바벨론, 메대·바사,
헬라, 로마, 그리고 EU를 상징하는데, 그 중 일곱 째 나라인 EU에서 여덟 째 왕인 적그리스도가 나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EU는 오래지 않아 최강 국가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EU의 모든 국가가 단합해서 적그리스도에게 권력을 줄
것입니다.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계 17:13). 이렇게 막강한 권세를 지닌
적그리스도는 전 세계의 통치자로 등장할 것입니다.
우리는 EU의 첫시작이 로마 교황청에서 비롯된 것에 유의해야
합니다(1957년 3월 25일 ‘로마조약’ 체결). 유럽 국가들의 70%는 카톨릭 국가입니다. 바티칸의 영향력이 어떠함을 짐작케
하는 대목입니다. 여러 유력 언론사들의 심층 취재는 EU가 로마제국의 재건을 꿈꾸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2002년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EU는 종교적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일찍이
루터나 칼빈 같은 종교 개혁자들이 교황을 적그리스도의 후보로 지목했듯이, 지금의 로마 카톨릭 제도하의 교황은 오늘의 EU로부터
솟아날 강력한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에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초대 교회 때 로마 황제에게 경배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믿음이었듯이 종말에는 적그리스도를 경배하거나 타협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주님은 종말에 고난 받는 성도들을 위하여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5. 뜨인 돌의 심판
34-35절,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
본문의 뜨인 돌은 재림 예수를 상징합니다. 재림 예수께서 적그리스도 국가를 심판하시되 ‘신상을 쳐서 부숴뜨리듯이’, ‘여름 타작마당 같이’ 바람에 날린 쭉정이를 모아 아궁이 속에 태워버릴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본 환상에는 재림 예수께서 검으로 만국을 치시고 철장으로 부수어뜨리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계 19:15,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참으로 무섭고 두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 믿는 자에게는 놀라운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
무슨
말입니까? 이 땅에는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이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이 왕국은 영원히 망하지 않습니다. 이 왕국에서 첫째 부활에
참여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게 될 것입니다(계 20:6).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역사를 주관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위대한 손길이 느껴지십니까? 바벨론, 메대·바사, 헬라, 로마와 같은 위대한 나라들의 흥망성쇠를 미리 정하시고 그대로 이루어 오신 주님의 영광스런 모습이 보이십니까?
지난 육십 구 이레의 모든 것을 이루신 우리 주님은 이제 마지막 한 이레의 예언의 말씀도 그대로 이루실 것입니다.
발의 국가, 곧 적그리스도 국가의 출현이 임박했습니다.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 성전에 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 종말 신앙, 재림 신앙으로 단단히 무장하여 마지막 시대의 이기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20)
스가랴서는 성전 재건의 환상을 이야기한 책입니다. 더 나아가 스가랴는 성전 재건의 환상만 노래한 것이 아니라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해서도 이사야처럼 구체적으로 예언했습니다. 9-11장에서는 메시아의 고난을 예언했는데, 나귀 새끼를 타고 겸손의 왕으로 오실 것에 대해서(9:9), 은 30개에 팔리실 것에 대해서(11:12) 예고했습니다. 또한 12-14장에서는 메시아의 통치를 예언했는데, 자신들이 십자가에 죽인 메시아를 하나님의 백성이 바라보고 애통할 것이며(12:10), 그날에 죄를 씻는 샘물이 열릴 것이며(13:1), 열방이 예루살렘에 올라와 하나님께 경배하는 메시아 왕국이 세워질 것(14:16-21)을 예고했습니다.
제목
이 책을 쓴 선지자 스가랴의 이름입니다. 스가랴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라는 뜻입니다.
저자
이 책을 쓴 스가랴는 에스겔처럼 선지자로 부름받은 제사장이었습니다. 에스겔이 새 성전에 대한 환상을 노래한 선지자라면, 스가랴는 재건 성전에 대한 환상을 노래한 선지자입니다.
기록 연대
스가랴의 연대는 성전 재건 이전과 이후로 크게 둘로 나뉩니다. 전반부는 1-8장으로 스가랴 선지자가 처음 계시를 받은 다리오왕 2년(1:1, B.C. 520년)에서부터 다리오왕 4년(7:1, B.C. 518년)까지 2년에 걸쳐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후반부 9-14장에는 기록시기를 짐작할 만한 아무런 단서가 없고, 다만 '헬라'(9:13)라는 표현이 언급될 뿐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본서 후반부가 성전 재건 후 오랜 세월이 지난 스가랴 선지자 말년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대략 B.C. 480-470년경).
배경
스가랴 선지자는 스룹바벨이 인솔하는 1차 포로 귀환 때(B.C. 537년)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후 17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 본격적으로 선지자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B.C. 520년). 이때는
예루살렘 성전 재건 사역이 중단된 지 14년이 흐른 뒤였고, 동시대의 선지자였던 학개의 두 번째 예언(학 2:1-9)과 세 번째
예언
(학 2:10-19) 사이에 해당되는 시기였습니다.
스가랴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
여호와 하나님은 그 백성에게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1:3)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바벨론 유수라는 징계를 내리셨지만 결코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셨습니다. 스가랴가 본 8가지 환상(1:7-6:15)은 학개를 통해 성전 재건 공사를 재개한 귀환 공동체에 큰 격려의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또한 귀환자들 중에 금식을 계속해야 하는지 질문한 자들의 외식을 책망하면서 진정성 있는 예배와 순종의 삶을 촉구함으로 내면의 영성을 세우는 일에도 힘썼습니다. 학개의 예언이 시작된(학1:1, 다리오왕 2년 6월 1일) 두 달 뒤 예언하기 시작한(1:1, 다리오왕 2년 8월) 스가랴 선지자는 학개 선지자가 2장에 걸쳐서 성전 재건과 메시아 도래를 예언한 것을 14장에 걸쳐서 확장판으로 예언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듯 스가랴는 메시야의 초림에서부터 재림, 세상 종말과 새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장래의 모든 인류 역사가 장차 메시야와 그분의 왕국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실제로 신약은 선지자의 예언들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렇다면 아직 성취되지 않는 세상 종말의 역사들 역시 선지자가 보여 주고, 신약의 여러 사도들이 보여 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은 자명하지 않겠습니까?
내용과 구성
성전 재건에 관한 10가지 환상(1-6장)
금식 문제와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메시지(7-8장)
메시아의 통치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언(9-14장)
산 돌과 신령한 돌들
베드로는 그 이름의 뜻이 “돌, 바위, 반석”이라는
뜻으로, 예수님께서 그에게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하나의 돌이었던 베드로는 교회의 진정한 반석, 진정한 초석과 바위와
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4절 말씀을 보면 베드로는 예수님을 돌에 비유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메시야를 자주 반석에 비유하였기 때문에, 구약성경에 익숙한 유대인이나 구약성경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반석과 돌로 부르는 것에 낯설지 않습니다(사 28:16; 시 118:21-23 참조).
그래서 구약 성도들은 “그
돌, 그 바위, 그 반석”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들은 언제나 약속하신 메시야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흔하고 흔한
돌들과는 달랐습니다.
그는 보배로운 돌이었고, 그는 반석이었으며, 무엇보다 그는 산 돌(Living Stone)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살아있고 보배로운 돌이요, 유일한 반석이라고 말씀합니다.
특별히 유대인들은 돌이라는 말을 들을 때에 제일 먼저 성전을
떠올렸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성전은 제사(예배)의 중심지였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그런 보이는 성전, 죽은 돌들로 이루어진 성전이 신앙의 목표와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성전이나 제사 제도나 제사장 제도를 허락하시고 세우신 것은 그것들을 통해서 보다 큰 어떤 영적 실체를 보여주시기 위한 하나의
모형으로 두신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돌들로 건축된, 보이는 성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이보다 훨씬 더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영적 실체를 나타내고 그것을 기다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5절 말씀을 읽어보면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들도 이 산 돌에 연결되어서 신령한 집으로 지어져 가라고 하였습니다.
성전은 하나의 그림자로 세워진 것인데, 그 성전의 실체는 그리스도와 그에게 연합되고 연결된 성도들, 곧 그리스도와 교회를 보여주는
심상(image)이었습니다. 산 돌이 있는데, 그는 그리스도이시며, 그리스도에게 연합되고 연결된 돌들, 곧 그의 몸의 지체이고,
하나님의 성전이 된 성도들은 신령한 돌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신령한 돌들로 세워지고, 서로 연결되어 자라가는
살아있는 돌들이며, 거룩한 성전으로 세워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보배로운 산 돌(the
precious living stone)”이라고 하셨고, 성도들을 가리켜서는 “신령한 돌들(spiritual house)”로
세워져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구약의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냅니다.
하나님이 임하시면서 예배를 받으시는 곳이
구약의 성전이었습니다.
신약의 성전, 신령한 집도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으로 그의 택한
백성들과 함께 거하십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에서 경배를 받으시고 그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이것이 온 땅에 흩어진 교회요
성도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모이고 성령으로 연합되고 연결된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면서 지어야 할 집이 바로 이런 집이요, 우리 자신이
그러한 신령한 집의 한 부분인 산 돌, 신령한 돌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반석(Rock)이십니다. 그는 신자들의 반석이요 주춧돌이요 초석이요 모퉁이돌이요 산 돌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반석이 무엇이고
누구인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허탄한 것에 우리의 영혼의 뿌리를 세우고 자신의 삶을 세워가기를 바라는 자들은 곧
실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그리스도는 산 돌이고 성도들은 신령한
돌들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성전의 실체이시고 성도들은 그 신령한 집의 한 지체와 돌이 되었습니다. 또한 이처럼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이시요 성도들은 이런 대제사장에게 연결되어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세우신 영원하고 완전한
대제사장이시며, 영원히 우리를 위하여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십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에게 연결되어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모든 성도들이 오늘날 거룩한 제사장들입니다. 성도들은 오직 그리스도를 인하여 하나님께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히 7:23-25 참조). 목사나 장로만 거룩한 제사장이라고 하지 않으셨고, 모든 성도들을 제사장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 그리스도를 반석으로 하여 지어져가는 신령한 돌들,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 이들이 다 거룩하고 신령한
제사장들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에 연합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도 성도들을 가리켜서 제사장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늘 영적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제사장이라는 말입니다. 모든 믿는 자들, 참된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다 제사장입니다. 이것이 소위 “만인 제사장” 교리가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모일 때 그것은 거룩한 제사장들의
회집입니다. 그냥 친목으로 모이는 단체도 아니고, 어떤 인종과 혈연으로 맺어진 집단도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온 세상에 흩어져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택한 민족, 택한 족속이었던 것처럼, 교회는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들입니다.
거룩한 제사를 드리라
그러면 우리는 거룩한 제사장으로서 어떤 제사를
드려야 합니까? 신령한 제사를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제사는 죄 사함을 위한 속죄제는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우리의 죄를 사함받기 위하여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2문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제사장으로서 나 자신을 감사의 산 제물로 그에게 드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드리신 제사, 희생과 화목의 제물로 자신을 완전히 드리신 그 제사에 의지하여, 오늘 우리는 주님께서 자신을
드리신 것처럼 우리 자신을 거룩한 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 가운데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드리는 감사제가
있었습니다. 구약의 감사제는 곡식을 빻아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곡식을 빻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깨뜨리고, 자기라고 하는 돌을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이것은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하여 드리는 감사의
제사이며,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헌신의 제사이며, 자기를 부인하여 드리는 자기부인의 제사입니다.
이러한 신령한
제사도 그리스도를 말미암지 않고는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말미암지 않고는 우리 자신을 온전히 깨뜨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말미암지 않으면 우리가 아무리 많이 드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께 조금도 열납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드리는 것뿐이면
하나님 앞에서 그것은 누더기와 같고 지푸라기와도 같이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사에 의지하고 연합하여 드리는
제사, 그것은 하나님께 열납되는 제사입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하나님 앞에 감히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피를
가지고 성전에 들어갔기 때문인데, 그 피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 메시야의 피를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제사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킨 완전한 제사였고, 영원한 제사였습니다(히 9:28).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 13:15-16).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 선을 행하고 구제하며 서로 나눠주는 것, 이런 것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순종하는 순종의
삶,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제사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하였습니다(미 6:6-8 참조). 또한 우리의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롬
6:13).
오늘 우리가 보배로운 산 돌, 우리의 머릿돌과 모퉁이돌, 초석과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합되고
연결되어 웅장한 성전의 신령한 돌들로 자라가고 있는 것을 인하여 감사합시다. 우리 모두 그 성전에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들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베드로전서 1 장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신분이 종에서 아들로 변화된 결과가 무엇이며 그 목적이 무엇인지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나서 이제 하나님께 온전하게 순종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근신하고 깨어 하늘에 간직한 산 소망을 온전히 바라고,
욕심과 정욕을 좇지 않고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로 빚어져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속량하시고 아들로 입양하여 주신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만세 전에 뜻두신대로 형제를 피차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를 구원하신 뜻이다.
베드로전서 2 장은 어떻게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셨는지 그리고 이 땅에서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말씀하고 있다.
1-3 절은 1 장의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인의 성장의 원동력임을 말씀하고 있다.
4-10 절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어떤 기초에 세워졌으며 어떻게 자라고 있으며 왜 세우셨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를 말한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를 가리킨다.
먼저, 사도 베드로는 1 장의 결론으로서 나그네와 같은 성도들에게 이렇게 쓰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베드로전서 2:1-3)
왜 베드로 사도는 곧바로 순전한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하지 않았을까?
대신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거짓)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고 하였다.
이러한 말은 듣기에 거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한 이유는 첫째는 악을 버리지 아니하면 신령한 젖을 사모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상을 숭배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다.
두번째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악을 버릴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불가능하다면 요구할 수도 없다.
여기에서 베드로 사도가 나열한 것은 우리가 모두 매일 경험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를 버릴 수 있는가?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악독과 거짓과 악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요한일서 1:9). 이것을 성경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십계명의 말씀을 주신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가 없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모든 죄와 허물을 대신하여 보배로운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계명에 순종할 수가 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할 수가 있다.
여기에서 젖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다.
이때 우리 안에 떨어져 심어진 말씀이 우리의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한다.
갓난 아이가 얼마나 엄마 젖을 사모하는지 모른다.
성장을 위해서이다.
그리스도인이 말씀을 사모하는 것은 영적 성장을 위함이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좋은 마음 밭에 떨어진 씨앗은 삽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셨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가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고 한다.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다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과거 우리의 사욕과 욕심대로 살았다.
그때는 아무리 후회하고 그렇지 않겠다고 작심해도 하나님께 순종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았기 때문에 나를 부인하고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게 되었다.
한가지 예로 예전에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할 수 있게 된 것을 들 수 있다.
돌아온 탕자를 다시 아들로 맞아주신 아버지와 같은 사랑을 우리는 모두 경험하였다.
또한 매일 우리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날마다 그의 피로 씻음을 받고 정결하게 되어 하늘 보좌 생수의 강에서 흐르는 생수를 마시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둘째는, 예수님은 그의 몸인 교회의 반석이 되신다. 4 절에 나와 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예수님을 왜 보배로운 산 돌이라고 하였는가? 돌은 움직이지 않고 요동함이 없는 것을 상징한다. 산 돌이라는 표현은 죽은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셨다. 예수님은 사람에게는 버림을 받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만세 전에 이미 그의 아들을 보배로운 산 돌로 택정하셨다.
산 돌이신 예수님은 그의 몸된 교회의 반석이 되신다.
그 반석 위에 교회가 세워진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구원의 근원이 되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정결하게 씻음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을 받았기 때문이다.
5 절에 나와 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집이라고 한 것은 계속 지어져가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인 이 신령한 집은 이천년 가까이 지금까지 계속 지어지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산 돌 같이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세워지고 있다는 것이 무엇인가?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죄아래 죽었던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일부분으로 세워지게 되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에 세우신 목적은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게 하려 하심이다. 구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그림자는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성막이다. 성막에는 짐승을 잡는 바깥뜰, 성소, 지성소가 있다. 그런데 성소는 제사장만이 들어갈수가 있고 지성소에는 일년에 한번씩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일반 백성은 짐승과 같은 예물을 가지고 성막의 바깥뜰에 들어가서 제사를 드렸다.
우리를 제사장이 되게 하신 뜻이 무엇인가? 이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것을 허용하신 것을 말한다. 그래서 만민 제사장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성막을 주신 이유는 그곳에 나와서 하나님과 교제케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죄라는 장벽 때문에 반드시 제사장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제사장으로서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신령한 제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이천년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예루살렘 성전의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갈라져 둘이 되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나가는 장벽이었던 죄가 제하여졌다는 것을 상징한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갈 수가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함을 받은 우리를 정죄치 아니하시고 받아주시기 때문이다.
베드로 사도는 이 진리를 뒷밤침하는 구약의 예언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베드로전서 2:6-8)
예수님은 어떻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는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로부터 배척과 거부를 당하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버림을 받고 죽으신 그의 아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그의 몸된 교회의 모퉁이 돌로 삼으셨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의 피로 말미암아 세워진 것이다. 왜 아무 죄가 없으신 예수님은 고난을 받으신 후에 머릿돌이 되셨는가? 예수님은 고난을 받으시기 전에도 머릿돌이셨다. 그런데도 고난을 받으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피가 없이는 사함이 없다. 이것이 구약의 제사 속에 숨어 있는 비밀이다.
또한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신 후에 머릿돌이 되신 것은 아무도 핑계치 못하게 하심이다. 조상 아담 탓으로 돌리거나 무슨 잘못이 있는지 항변하는 사람의 입을 막으시기 위함이다. 그 방법이 바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시는 것이 마땅하나, 대신 사랑하사 죄의 노예에서 해방 받을 수 있는 길을 아무 값없이 내어주셨다. 하나님이 애굽 왕과 백성들에게 내리신 마지막 재앙인 유월절이 바로 이것을 가리킨다. 죽음의 천사는 문설주의 피를 보고 그냥 지나갔다. 그 집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안전하였다. 누구라도 이제는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받지 아니한다. 부끄러움을 받는다는 것은 배척 받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피로 사함을 받은 우리를 받아주실 뿐만 아니라 영생을 선물로 부어 주신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신다. 왜 예수님이 부딪히는 돌이요 거치는 반석이 되시는가? 왜냐하면 모든 것이 예수님께로 말미암아 나왔기 때문이다. 우주 만물 가운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지어지지 아니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요한복음 1:3). 사람이 그로 말미암아 이 땅에 나왔기 때문이다. 풀과 같고 이슬과 같은 것이 인생이나 우연히 왔다가 무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목적이 있고 의미가 있고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다.
그 심판의 기준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세상에는 수 많은 잣대가 존재한다. 소위 성공이 가장 잘알려진 잣대이다. 어떤 이는 철학이나 이념이라고도 한다. 어떤 이는 도덕과 선행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성공도 철학도 도덕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 것도 존재할 수가 없다. 골로새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밝히고 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골로새서 1:15-18)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공평과 공의로 심판하실 수 있는 유일무이한 분이심을 밝혀주고 있다. 모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이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우주 만물을 있는 그대로 존재케하는 응집력이라는 의미이다. 우리가 일어나 서고 앉고 걷고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주 예수님께서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다. 만일 지구의 공전과 자전 속도가 조금이라도 변동이 있거나 그 궤도에서 이탈을 한다면 우리에게는 재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무지하고 완악하여 하나님을 만물의 주인이시요 왕으로 영접하고 섬기는 것을 거부하고 배척한다. 이는 믿지 않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소위 믿는 자라고 하면서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성경은 경고하고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이스라엘의 상황을 탄식하고 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이사야 1:2-3)
그들이 넘어지는 것은 완악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치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에 장자인 에서가 차자인 야곱을 섬길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저희가 멸망의 자식인 것을 아시지만 (사람은 모르지만), 오래 참으시고 인자하셔서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베풀어 주신다. 그러나 끝까지 돌이키지 않고 순종치 아니하면 하나님의 정하신대로 영원한 부끄러움에 처하게 된다. 예수님은 가라지 비유에서 그의 종들이 가라지를 제거하려고 하였을 때 가만 두어라고 하셨다. 그 이유는 가라지를 제거하다가 알곡을 함께 뽑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천사를 보내어 가라지를 거두어 불사르게 하실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다. 이것이 이 땅에서 교회의 역할이다. 9-10 절에 나와 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하나님은 만세 전에 우리를 아시고 택하시고 때가 되어 그리스도를 통해서 부르셨다. 이제 교회는 이 땅에서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다. 여기에서 교회를 한 족속 혹은 한 나라로 부르고 있다. 여기에는 모든 인종과 모든 족속과 모든 나라와 민족을 다 포함하고 있다. 모든 종교와 모든 철학과 문화와 이념과 도덕을 다 포함하고 있다. 그 조건은 단 한가지이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그리스도를 믿는가이다.
교회의 역할은 하나님의 기이한 빛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는 우리를 어두움에서 건져내어 주셨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나님의 기이한 빛을 나타내는가? 이는 그 빛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는 외적인 표식은 아무 것도 없다. 성경책을 들고 주일에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 사도가 1 장에서 말한 서로 형제 간에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그의 기이한 빛 안에 거한다는 증거이다. 또한 베드로전서 2 장 후반부에서 말하는 애매하게 고난을 받고 참고 인내하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가족과 이웃에게 우리가 더 이상 어두움 가운데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케 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기 때문이요 또한 이제 긍휼하심을 입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아들로 변화를 받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기를 거져 받았으니 거져 주어라 하신다 (마태복음 10:8). 우리는 아무 값없이 긍휼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서로 형제간에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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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의 8개의 환상
환상 1 : 온 땅을 돌아보는 말들(감찰하시는 하나님)
환상 2 : 네 뿔과 네 일꾼들(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자들과 그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환상 3 : 측량줄을 지닌 사람(하나님의 백성을 측량하시는 하나님)
환상 4 : 여호수아와 제사장의 옷(정결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환상 5 : 촛대와 두 올리브나무(성령의 기름으로 꺼지지 않은 등잔)
환상 6 : 날아다니는 두루마리(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환상 7 : 에바 속의 여자(디아스포라 예언)
환상 8 : 네개의 전차(네 개의 임무)
PART I
1. 환상 1 : 온 땅을 돌아보는 말들 (슥 1:7~17)
여호와의 전지전능은 우주적이고 지구적인데 거기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알고 계신다.
특히 그의 백성의 회복에 관심을 가지신다.
붉은 말과 자줏빛 말과 백말 등 여러 말들이 있는데 말을 탄 자들의 임무는 세상 전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살피고 보고하는 일이다
세상은 평온한 듯 보였지만 예루살렘의 성전건축은 중단되고 영적 나태함에 빠진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성전건축을 격려한다
환상 2 : 네 뿔과 네 명의 대장장이 (슥 1:18~21)
네 뿔은 이스라엘은 대적하고 괴롭히는 사방의 왕들을 의미한다.
넷이란 세상의 네 모퉁이 즉 지구 전체를 총체적으로 상징한다
역사적으로 앗시리아, 이집트, 바벨론, 메대바사, 헬라, 로마 등이다
네 명의 대장장이는 주의 백성을 괴롭히는 제국과 왕들을 심판하는 도구이다
하나님은 악한 권세자들을 두고만 보시지 않으시고 반드시 심판하신다
환상 3 : 측량줄을 지닌 사람 (슥 2:1~13)
한 사람이 자기 손에 측량줄을 잡고 있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예루살렘을 재어서 그 너비와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러 간다"
측량줄이 예루살렘의 성전과 성벽재건과 관계 있다면 이스라엘의 회복을 상징할 것이다
또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불성벽이 되어 주실 것이며 그의 눈동자처럼 보호하실 것이다
이는 성도들에게도 같은 보호막이 되어 주실 것이며 그들의 중심과 삶이 측량되어질 것이다
환상 4 : 여호와 앞에 선 여호수아와 새싹(슥 3:1~10)
네 번째 환상은 여호수아가 천상의 어전회의장에 서 있다
더러운 옷을 입은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여호와 앞에 서 있고 사탄이 고발하는 환상이다
여호수아는 죄로 더럽혀진 이스라엘 민족과 성도들을 상징한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깨끗한 관과 아름다운 옷을 입음으로써 정결함을 회복한다
사탄이 여호수아를 참소할 때 여호수아를 변호하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시며 그를 통하여 정결해 질 수 있다
새 싹과 세운 돌은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환상 5 : 금촛대와 두 올리브나무 (슥 4:1~14)
금촛대는 스룹바벨 성전, 교회와 성도를 상징하는데 일곱개의 등잔은 기름그릇에 대롱으로 연결되어 자동으로 기름이 보충된다
등잔의 기름은 성령을 상징하고 성령충만은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된다
두 올리브나무는 온 세상을 다스리는 여호와를 섬기는 기름 부음을 받은 두 사람이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총독 스룹바벨을 의미한다고 하지만 구약과 신약, 12지파와 신약교회, 두 증인 등을 다양한 견해가 있다
중요한 것은 교회와 신자들의 등잔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성령으로 충만해 지는 것이다
환상 6 : 날아다니는 두루마리 (슥 5:1~4)
날아다니는 양탄자처럼 길이 9m, 폭이 4.5m의 큰 두루마리가 날아 다닌다
두루마리의 크기는 성전의 성소 면적과 똑같았다
이 두루마리는 온 세계위를 날아 다니면서 범죄한 사람을 찾아 그 안에 기록된 죄를 짓는 자에게는 저주와 벌을 내렸다
두루마리의 양편에 써있는 글이 다음과 같다
날아다니는 두루마리는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한다
"도둑질하는 자는 모두 없어질 것이다"
"거짓 맹세하는 자도 모두 없어질 것이다"
당시 도둑질과 거짓맹세는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자들의 대표적인 죄였다
이 두 죄는 십계명을 요약한 죄이기도 하다
죄악된 삶은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공동체에도 범죄한 자들이 활보하며 내부적인 부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상기시킨다
환상 7 : 에바 속의 여자 (슥 5:5~11)
에바는 곡식의 양을 재는 되와 같은 측정도구로 범죄의 양을 재는 기준으로 쓰였다
에바의 크기를 속여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범죄를 측정하여 또다시 이방땅으로 쫓겨 가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
그들은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 디아스포라가 되어 세상을 떠돌아 다녔다
환상 8 : 네개의 전차 (슥 6:1~8)
놋쇠로 된 두 산 사이에서 네 대의 전차가 나온다.
네 대는 네 뿔, 네 대장장이, 네 바람처럼 온 세상 사방을 의미한다
붉은 말, 검은 말, 흰 말, 얼룩진 힘센 말은 요한계시록의 네 개의 인의 임무와 유사하다
전쟁, 기근, 기만, 전염병을 상징한다.
PART II
금식에 대한 질문 (슥 7: 1~14)
스가랴가 1~6장에 기록된 8가지 환상을 본 지 2년이 지났다
벧엘 사람들이 사절단을 보내 스가랴에게 금식에 대해 질문을 했다
"우리가 여러 해 동안 금식을 해 왔는데 올해도 금식을 해야 합니까?"
그들이 선지자에게 받은 네 가지 응답은 위선적인 금식보다 순종을 원하신다는 것이다
공정한 재판, 사랑과 자비, 억누르지 말 것, 서로 해치지 말 것에 대한 종교의 핵심 메시지를 받았다
예루살렘 회복에 대한 약속 (슥 8:1~23)
예루살렘은 회복되어 사랑과 공의가 넘치는 도시가 될 것이며 슬픔이 사라지고 온 세계 만민에게 구원을 전하는 성읍이 될 것이다
PART III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심판 (슥 9장~11장)
그는 공의로우시고 구원을 베푸실 것이며 겸손하여 나귀 새끼를 타실 것이다
메시아의 성품은 공의, 구원의 원천, 겸손하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에 대한 나귀 새끼의 예언은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다
은 30개에 팔리고 그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산 것도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다
그의 사역은 크게 4 가지로 언급되고 있는데
메시아는 평화를 선포할 것이며, 구원하실 것이며, 재림시에 거짓 목자들을 멸하실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모으실 것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배척한 결과로 겪게 될 무서운 심판(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였다
PART IV /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슥 12장~14장)
마지막 때에 이르러 예루살렘은 모든 민족들의 취하는 잔이 되고 무거운 돌이 된다.
이 예언은 우리 시대에 성취되는 것을 목격중이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1/3이 남고 2/3는 멸망당한다
그 남은 1/3도 불 속에 던져 연단받고 시험받아 정결케 할 것인데 짐승의 통치때 박해 받을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의 연합군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 것이고 이스라엘은 회개하며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아마겟돈 전쟁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승리할 것이다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를 패전할 것이고 메시아 왕국이 완성될 것이다
모든 나라는 여호와를 섬기며 예루살렘으로 초막절을 지키러 매년 올라올 것이다
온 세상은 여호와께 거룩하게 구별되어 드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