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하나님 나라는 서로 다른 나라가 아니라 같은 나라를 말합니다.
문제는 같은 나라에 대하여 볼 수 없다 또는 들어갈 수 없다는 표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볼 수 없다는 표현에서 육신적으로 볼 수 없다.
들어갈 수 없다는 표현에서 영적으로 들어갈 수 없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말씀(로고스)는 곧 하나님이시며 창조주가 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철저하게 예언된 메시야를 기다리면서도 말씀으로 오신 메시야 즉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표적을 행할 때는 그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습니다.
이와 같은 유대인들의 믿음을 예수님께서는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본다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믿음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를 볼 수 없다 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같은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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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ὁράω 스트롱번호 3708
보이다(마 8:4), 알리다(마 9:30), 주의하다(마 16:6), 보다(눅 1:22, 요 1:18, 고전 9:1).
I. [타동사]
1. 보다, 찾아내다, 주목하다, 관찰하다.
a. [사람의 대격과 함께 쓰임] 마28:7, 10, 막16:7, 눅16:23, 요8:57, 9:37, 14:9, 16:16,19,22, 20:18,25,29, 요일4:20, 계1:7.
b. [사물의 대격과 함께 쓰임] 눅1:22, 23:49, 24:23, 요4:45, 6:22, 행2:17.
c. [완곡어법] ㉠ ὁρ. τό πρό- σωπόν τινος, 얼굴을 보다, 행20:25, 골2:1, 계22:4. ㉡ ορ. τὴν δ όξαν τοῦ θεοῦ : 하나님의 영광을 보다, 요11:40.
d. [수동태] 보이다, 나타나다, 드러나다, 행2:3, 16:9, 계11:19, 12:1, 3.
2. 경험하다, 목격하다, 증언하다, 눅 17:22, 요1:50, 3:36.
3. [비유적, 정신적이고 영적인 개념]
a. 인식하다, 깨닫다, 이해하다, 행8:23, 히2:8.
b. 바라보다, 주목하다[정신적으로], 롬15:21.
II. [자동사]
1. 바라보다, 보다, 요19:37.
2. 조심하다, 주의하다.
a. 본대로 하다, 그대로 하다, 마27:4, 행18:15, 22:26, 히8:5.
b. 지키다, 경계하다, 마8:4, 18:10, 막1:44, 살전5:15.
* 들어가다
εἰσέρχομαι
스트롱번호 1525
뜻풀이부
1. (장소]
a. [도시의 명칭과 함께] 마8:5, 21:10, 막2:1, 11:11, 눅7:1, 행10:24, 23:33.
b. [기타 장소] ㉠ [성소 안으로] 히9:12,24,25. ㉡ [성전 안으로] 눅1:9, 계15:8. ㉢ [집 안으로] 마10:12, 12:29, 막7:17, 눅1:40, 8:41, 행11:12, 16:15, 21:8. ㉣ [회당 안으로] 막1:21, 3:1, 눅4:16, 6:6, 행14:1, 18:19, [참조] 약2:2. ㉤ [성 안으로] 마10:11, 27:53, 막1: 45, 눅10:8, 22:10, 행9:6, 14:20. ㉥ [마을 안으로] 막8:26, 눅9:52. ㉦ [관청 안으로] 요18:28, 19:9, [참조]마6:6, 24:38, 눅9:34, 17:27, 요10:1, 18:1, 20:6, 행25:23.
c. [일반적으로] 롬 5:12.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하여, 히10:5.
d. [흔히 장소가 언급되지 않지만 문맥상 유추할 수 있음] 마9:25, 막13:15, 눅19:1, 행1:13, 5:7,10, 10:25, 고전14:23, 24.
2. εἴς τινα
a. ~중에 들어가다[군중 속에], 행19:30, εἰς ὑμᾶς, 행20:29.
b. ~에게 들어가다[특히 귀신이] 막9: 25, 눅8:30. ㉠ [귀신에 대하여] 막5:12,13, 눅8: 32,33. ㉡ [사탄에 대하여 유다에게] 눅22:3, 요13:27. ㉢ [기타] 눅9:46, 계11:11.
3. πρός τινα: ~에게 오다, 가다, 막15:43, 행10:3, 11:3, 16:40, 계3:20.
4. ἐπί τινα, 행1:21.
5. [출발한 장소에 대한 언급과 함께] 마7:13, 19:24, 눅13:24, 18:25, 요10:1,2,9.
6. [ὑπὸ τὴν στέγην과 함께] 지붕 아래로 즉 집에 들어가다, 마8:8, 눅7:6.
7. [부사 εἰ. ἔσω와 함께] 안쪽으로, 내부로 가다, 마26:58, 22:12, 막14:14, 히6:20.
II. [비유적으로]
1. [사람에 대하여] ~것 안으로 들어가다=~을 나누다, 공유하다, ~을 누리 기에 이르다, 마5:20, 7:21, 19:24, 막9:47, 10:15,23,24, 눅18:17,25, 요3:5.
a. 영원한 생명 안으로 들어가다=그것을 얻다, 마18:8,9, 19:17, 막9:43, 45.
b. 안식으로 들어가다, 히3:11,18, 4:1
c. 그의 영광으로 들어가다, 눅24:26.
d. 시험에 들어가다, 마26:41, 눅22: 40,46
e. 은혜 안으로, 마25:21,23.
f. 수고 안으로 들어가다=수고의 열매를 누리다, 요4:38.
g. [이 용법과 함께 목표가 언급될 필요는 없으나 함축될 수 있는 경우] 마7:13, 23:13, 눅11:52, 롬11:25.
2. [사물에 대하여] 음식에 대하여, 마15:11, 행11:8, 사상에 대하여, 눅9: 46, 히6:19, 약5:4.
관련 성경
들어가다(마5:20, 눅4:16, 히9:12),
들어오다(마8:8, 눅7:45, 고전14:24), 참여하다(마25:21, 23), 들다(마26:41, 눅22:40,46),
나가다(막10:25), 오다(눅8:41), 일어나다(눅9: 46), 데리다(눅14:23), 돌아오다(눅17:7),
출입하다(행1:21), 이르다(행11:2)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하나님의 나라가 동일한 나라이라면 들어다와 본다는 것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들어가다와 본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요한복음은 구약에서 예언된 장차 오실 메시아는 말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주장합니다.
로고스로 오신 예수는 곧 하나님이시며 창조주가 되신다고 하셨습니다.
문제는 세상에 오신 메시아에 대한 유대인들의 신앙은 표적을 보면 메시아로 믿고 표적을 볼 수 없으면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일시적인 신앙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23-25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
들어갈 수 없다, 볼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고(요 3:3),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요 3:5).
교회에 다니는 것을 거듭난 것(born again)으로
오해하기도 하는데, 교회에 다니는 것은 종교행위이다.
거듭난 사람만이 주님의 교회에 속할 수 있고, 거듭난 사람이 “영과 진리”로
경배드릴 수 있다(요 4:24).
죄성을 지니고 태어난 인간은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모르면서 살아가고 있다.
인생은 짧고 미래는 불확실하다.
언제,
어떤 방법으로 죽을 것인지 모르고 산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죽으면 그의 혼은 어디로 가는가?
지옥으로 간다.
지옥은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곳이다(막 9:44, 46, 48).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누구든지 그분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된다(요 3:16).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면 죄가
제거되고 영생을 얻게 된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사람이 거듭나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적인 나라이다.
다른 방법으로는 이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인간이 만든 종교나 인간의 자의적인 열성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고 오직 거듭남으로만 들어갈 수 있다.
3절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본다고 하셨지만
5절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셨다.
어떤 이는 하나님 나라를 보는 것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똑 같은 의미라고 했다.
또 어떤 이는 하나님
나라를 본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경험한다는 뜻이거나 하나님 나라의 부분이 되는 것이거나 하나님의 통치를 공유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보고
듣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목격자가 되고 증인이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그러한 하나님 나라의 증인이 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부분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함께 경험하여 공유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예수께서 3절에서 본다는 말을 쓰고
5절에서는 들어간다는 말을 쓰신 것은 분명히 같은 말을 말만 바꾸어 하신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그 두 단계로 말씀하신 것이다.
먼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눈으로 보고 실제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믿는 자가 경험하는 하나님 나라는
단순히 구경꾼이나 관광객의 신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두번째로 말씀하실 때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표현을 쓴 것이다.
믿음이란
니고데모처럼 기적을 보았다고 믿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란 구약 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들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것이다.
물로 거듭나는 것도 역시 말씀을 듣고 회개함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고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도 역시 말씀을 듣고 믿을 때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어려운 본문에
단어 하나 하나가 구약성경의 깊은 울림을 간직하기 때문에, 구약성경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사람은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대화가
겉돈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겉도는 느낌이 아니라 굉장히 중요한 대화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소하기
위해서 거룩한 난동을 피우신 이 사건은 공생애 마지막 때에 있었다고 보입니다.
그 이유는 마태복음 26장에서 예수님을 고소하는
자들이 예수님이 한 말, 성전을 허물겠다고 한 그 말을 인용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무너뜨리겠다고 한 말이 예수님을 죽음으로
내모는 고소죄목이 되는 걸 볼 때, 공생애 마지막에 그 사건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죠.
마태 마가 누가 세
공관복음서에서는 그 사건이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때에 일어났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추측은 합당하게 맞는
것이고, 니고데모가 찾아온 그 밤도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때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니고데모에게 썼던 칭호를 보면,
아르콘이라는 말과 디다스칼로스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아르콘이라고 하는 관원이라는 말을 썼고, 10절에 보면 이스라엘 선생, 디다스칼로스입니다.
교훈적인이라는 말을 할 때 영어로 didactic 이라는 말을 쓰죠?
디다스칼로스가 바로 그 어원입니다.
아르콘은 뭡니까?
archangel, 아르크가 들어가면 대, 큰 천사, archenemy 하면 대 원수 이런 뜻이 되고, archangel 하면
대천사가 됩니다.
arche 하면 머리입니다.
창세기를 헬라어로 말하면 엔 아르케 가 되는 거죠.
요한복음도 엔 아르케, 이 말은
In the beginning, In the head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아르콘은 71명으로 구성된 이스라엘의 사법, 입법,
일종의 자치정치 기구의 한 관원입니다.
로마에 있었던 300명의 원로원과 같은 보수적인 지도자들의 모임입니다.
국회와 대법원을
겸했다고 보면 됩니다.
그 71명 중의 한 명인데, 이름이 니코데모인 걸 볼 때, 니코라는 말은 victories라는 말이고,
데모스는 백성이라는 말이니까 뜻은 victories people 승리한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말이니까 이 사람은
그리스문화에 찬동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죠?
대부분 두 개의 이름을 가졌습니다.
그리스 이름, 즉 헬라어 이름과 히브리이름을
가졌는데 이 사람이 니고데모라는 그리스 이름을 가진 걸 볼 때 대세에 순응하는 이스라엘 지도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디다스칼로스라는 말은 이스라엘 선생인데, 이 말은 씨, you yourself, 2인칭 대명사가 쓰였습니다.
당신은 이스라엘 선생님인데, 씨 에이호 디다스칼로스 투 이스라엘,
씨라는 2인칭 남성단수대명사는 원래 쓰이지 않습니다.
쓰이지 않고, 에이호 디다스칼로스, 그냥 동사만 써도 거기에 인칭과 성수가
표현돼 있기 때문에 인칭대명사를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칭대명사를 쓸 때는 굉장히 강조할 때만 씁니다.
그래서 씨 에이호 디다스칼로스,
여기서 You are the teacher of Israel, the teacher라는 말을 쓰면 뭐에요?
중세 때, the
philosopher 하면, 중세 때 그 철학자하면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리키는 말이죠?
the 라는 말은 대표단수 알죠?
정통종합영어에 보면 The wales is mammal, 할 때 그 고래는 포유류라는 말이 아니라 무릇 모든 고래는 포유류다,
the는 대표단수다 이렇게 배우잖아요.
the 디다스칼로스, 당신은 대표적인 이스라엘 선생님이다,
이 사람은 71명의 관원일뿐만
아니라 학식에 있어서 최고봉에 올랐다,
유대교, 예수님 당시에 닫힌 종교였던 유대교, 교양과 가문과 교육으로 단련된 즉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서 최고가 된 사람, 디다스칼로스입니다.
디다스칼로스는 닫힌 유대교 안에서 최고였기 때문에 초월
저편에서 쏟아지는 계시의 빛을 받고 깨달음을 갖기에는 매우 불리한 자기 충족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래로부터 쌓아올린
교육 교양 혈통적 우수성 등이 자기를 돋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 초월 저편에서 오는 새로운 진리에 목마를 가능성이 없는
것이죠.
그러니까 디다스칼로스가 바로 한 세계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교육을 통해 자기수양을 통해 최고의 경지에 오른
인물입니다.
문제는 왜 이 사람이 밤에 찾아왔겠습니까?
뉙토스, 밤에 찾아왔습니다.
밤에 찾아온 이유는,
예수님이 낮에 난동을 피우셨잖아요.
예수님이 난동을 피우셨는데 또 율법을 어기고 바리새인 적대감에 먹이를 주는 행동만 했다면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뭐라고 생각하면 됩니까?
율법파괴자이고 신성모독자이고 이렇게 생각하면 되는데, 이 사람이 헷갈렸던 것은 성전을
거룩하게 도발하시고 안식일 율법도 어기지 않는 것처럼 보이시는 이 분이 performed, 이적을 너무 많이 행합니다.
miracle, 표적을 너무 많이 행하니까, 2장 23절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었으나 예수는 이런 표적을 보고 믿는
대중들의 믿음에 자기 몸을 의탁하지 않았고, 표적을 보고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하나의 시대의 아젠다, 즉 자기를 임금 삼아서
정치적 지도자 삼아서 로마제국과 결승전을 치르게 만들려는 정치적 함정이 있는, 정치적 덫이 있는 열광과 지지와 추종인 걸 알았기
때문에,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 말은 무엇입니까?
표적을 보고 믿는 사람들은 예수를 로마제국을
이스라엘 땅에서 몰아내는 모세적인 영도자로 예수 자신을 오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예수님은 무얼 하러 왔습니까? 로마제국의
군대를 이스라엘 영토에서 추방하고 그 아래 토착 왕조, 다윗왕조를 세우러 오신 분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안에 와 있는 로마제국,
이스라엘 백성 안에 와 있는 우상을 몰아내고 이스라엘 각인의 심령에 성령의 내주를 매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각각의 심령에
성령 충만하도록 성령으로 세례를 주러 오신 분이지, 1장 33절입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주러 오신 그 분이 로마제국의 군대를
몰아낸 것으로, 로마제국의 군대를 몰아내면 대개 누가 옵니까? 토착 유력자들의 왕조가 들어서겠죠? 예수님은 로마제국의 군사력을
이스라엘 땅에서 추방하고 그 대신에 이스라엘의 토착 세습 왕조가 들어서는 게 전혀 하나님 나라 운동의 전진이 아닌 것을 아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각인 속에 와 있는 노예근성, 죄, 대세순응주의, 배금주의, 물신숭배, 형제자매 차별주의, 이런
죄악들을 몰아내기 위해서 성령으로 세례를 주러 오셨죠? 성령으로 세례를 주러 오셨단 말은 이스라엘 민족의 집단적 계약 갱신, 언약갱신,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헐거워진 언약을 다시 한 번 갱신하여, 다시 한 번 언약적 결속감을 강하게 해주는 것, 이게 예수님의 뜻이었거든요.
여러분, 백성사이, 국민구성원 사이에 언약 공동체적 결속감이 강하다면 가난의 문제가 발생할 때 어떻게 될까요? 7남 3녀가 사는
대가족에 만약 한 형제가 못 산다면 어떻게 하던가요? 못 사는 형제를 나머지 형제가 어떻게 돌봐요? 추석 때마다 보면 대개
돕죠? 그게 형제간입니다. 한 형제가 못살 때, 심지어 동기생들도 장신대 신대원 84기 중 누가 못 산다 그러면 동기생들이 돈을 내
돕습니다. 목사님들도 그렇게 합니다. 어떤 목사가 정당하게 목회를 하다 가난하게 됐다? 그러면 많은 돈이 들어옵니다. 많은 돈이
아니고 죽지 않을 만큼 돈이 들어옵니다. 부자가 될 만큼 들어온다는 뜻이 아니라, 그건 언약공동체의 결속감이거든요. 저도 형제가
많지만 내가 일차적으로 느끼는 책임과 경계선 안에 누가 잘 못살면 그건 송두리째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는 게 내 안에 있는
원천적인 상식이거든요. 교회가 그런 겁니다. 우리 가운데 누가 와서 탁 쓰러졌다, 그가 교회 등록교인이다, 쓰러진 그 사람은
공동체적 사랑의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등록이 참 중요한 겁니다. 등록이라는 말은 세례 받은 교우공동체, 성만찬 나눈 공동체에
그가 등록을 했다, 그러면 그때부터 법적으로 교회 상식으로 볼 때, 돌봄의 대상이 됩니다. 학교도 참 웃깁니다. 출장신고를 하고
가서 다치면 엄청난 보험금이 나오는데, 몰래 가서 다치면 전혀 돈이 안 나옵니다. 언약공동체를 확인하고 가는 사람, 그게 참
희한합니다. 이번에 인하대학교 학생들이 몰래 갔기 때문에 돈을 한 푼도 지원 못 받았습니다. 인하대학교 발명동아리 아이들이 춘천에
갔는데 학생처에 신고를 안 하고 자기들끼리 몰래 갔습니다. 그러니까 학교에 보고가 안 되었기 때문에 인하대학교랑 보험회사랑 맺은
수혜혜택에서 다 제외됐습니다. 그래서 꼭 모든 동아리가 갈 때는 반드시 등록을 하라고 숭실대학교에서는 교육을 합니다. 특히 춘천
펜션에 가는 사람들은 생명보험까지 드는 게 낫습니다. 언약공동체라는 게 그런 겁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개개인이 형제우애적
언약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시내산 기슭의 감격, 광야시대의 감격, 모세시대의 감격, 엘리야 시대의 감격을 회복하는 것이고, 이것은
최강로마를 이길 수 있는 군사력이라고 본 것입니다. 형제자매끼리 우애가 튼튼한 것이야말로 로마 제10군단, 벳세다에 와 있는
로마 제10군단, 강력하고 중무장된 로마보병보다 더 센 힘은 형제자매끼리 신실한 사랑으로 결속돼 있는 것, 군대보다 더 강한
것이라고 본 예수님입니다. 이런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계약 공동체의 중심이 돼야 할 성전을 깨끗하게 청소하여 성전이
function, 제 기능을 하도록 돌보아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는, 참새와 제비 같이 연약한 지체들을 돌보는 자비심의
본산이 되도록 성전을 고치도록 한 겁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 이 말은 무엇이에요? 내 아버지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 가장
멀어진 자, 땅 끝에서 추방되고 버려진 그 자마저도 이곳에 와서, 아버지 내 사연은 이렇습니다, 하소연 할 수 있는 그곳이
성전이란 말이에요. 그런 성전을 정결케했다는 말은 무엇이죠? 내가 부유하게 사는데 내 이웃이 여기 성전에 와서 기도를 합니다.
내가 예루살렘 산 1번지에 펜션과 빌라 엄청 좋은 집에 사는데 저 성전에 와서, 모레셋 가드 시글랏, 이런
지방민들이 와서 하나님 못 살겠다고 소리치면 부자인 내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못 살죠. 뭐할 때까지? 그들의 아우성이 그칠
때까지 내 재산은 전부 그들을 돕는 데 가야 되겠죠? 이것이 성전의 형평기능, 사회경제적 형평작업을 하는 것이 성전입니다. 성전이
부익부 빈익빈을 영구적으로 정당화하며 빈부격차와 인간의 비참한 상황을 하나님 이름으로 정당화해주면 그 성전은 파괴되어야 할
성전이죠. 예수님이 볼 때 성전은 빈부격차를 정당화하고 이방인과 야합한 이스라엘의 귀족층과 상류층들이 갈릴리 농민들을 못 살게
구는 악질적인 착취체제라고 보았어요. 그 착취체제의 배후에 성전이 있다고 본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성전을 부순 게 아니라
이스라엘 언약공동체를 산산조각 낸 파괴적인 빈부격차와 양극화 그 체제를 부순 것이죠. 그걸 정당화하는 성직자들의 본거지를 부셨단 말, 형제자매를 못 살게 굴고 형제자매를 노예처럼 부려 먹는 이 악한 세상을 예수님은 도발하신 겁니다.
여기서 중요합니다. 우리가 만일 성전 청소하는 일만 하고 아무 것도 안하고 아무런 표적을 베풀지 못하면 우리는 바로 죽습니다.
예수님은 안 죽은 이유가 그렇게도 하시면서 표적을 베풀었기 때문에, 강력한 개인기라는 히든카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표적을 행하니까 사람들을 헷갈리게 한 겁니다. 그래서 밤에 3장 1절에 많이 헷갈려하는 이런 뜻이 들어가 있습니다. 많이
헷갈려하는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헬라적 교양이 많은 사람이 밤에, 괄호하고, 낮에는 부끄러워서 못 찾아옴, 밤에
찾아와서 성전을 청소하는 난동사건과 이 표적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라고 질문을 한 겁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 당신께서는
성전을 훼방하시고 성전을 도발하신 이 사건은 꼭 불량배 폭도 같은 점이 있습니다, 신성 모독적 언동까지 보입니다, 성전을
허물어뜨리겠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런데 당신에게 그런 면모도 보이지만 진짜 저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이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모세급 엘리야급 예언자적 표적을 행합니다. 이 간극을 어떻게 메워야 할까요? 당신은 정녕
누구십니까? 이렇게 물어봅니다. 당신은 정녕 누구십니까? 성전을 훼방하고 율법을 어기고 안식일을 범하는 당신은 신성모독자입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행할 수 없는 표적을 행하는 당신은 진정 예언자입니까? 누구입니까?
3장 2절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이때 선생, 똑같은
말이 디다스칼로스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예언자라 보지도 않고 하늘에서 온,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생, 신적 권위를 가진
선생, 랍비 또는 디다스칼로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한 말이 디다스칼로스입니다. 예수님과 바리새인 니고데모는
동급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를 향해서 디다스칼로스라는 말을 썼고, 바리새인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하늘에서 내려온 디다스칼로스,
그런데 하늘에서 내려온 디다스칼로스를 믿음으로 영접하면 될 텐데 왜 영접하지 못하죠? 바리새인 니고데모가 속한 체제는 성전을
정점으로 하는 자기수양과 율법적 수련의 종교 그리고 인간적 교육적인 배경을 튼튼히 가지고 아래로부터 제공된 교육의 혜택을 듬뿍
받은 자들의 종교죠? 그렇게 혈통좋고 가문 좋은 집안에서 좋은 교육을 받아서 71명에 든 닫힌 유대교 종교 안에서 최고봉에 오른 그
자는 예수님을 하늘로부터 온 선생님이라고 만일에 믿었다면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합니다. 그가 속했던 체제를 떠나면 됩니다.
그런데 그가 떠나지 못했던 이유는 그는 이스라엘의 최고봉으로써 아르콘으로써 디다스칼로스로써 자기가 누리는 존경과 신망과 리더십을
송두리째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떠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밤에 옵니다. 만일 낮에 왔다면 스캔들이 되겠죠? 예루살렘 신문
일면에 나오겠죠. 니고데모 예수께 무릎을 꿇다, 그래서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연합정권 탄생하는가? 이렇게 나옵니다. 니고데모는
밤에 와서 예수님께 이런 딜레마를 물었더니, 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지금 자기가 하나님 나라라고 주장하는 거죠. 예수님이 지금 하는 것은 무엇이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통치하기 시작하는 증거라고 보는 거죠.
예수님의 모든 사역은 무엇이죠? 예수님의 모든 표적사역, 예수님이 성전을 청소하는 건 모두 뭐죠? 이스라엘 언약 백성들 사이에
오셔서 당신의 주권적인 통치와 다스림을 실현하고 있는 중이라는 거죠. ‘거듭나지 아니하면’ 이것이 중요합니다. 기노마이 동사,
거듭난다는 말은 위로부터 나지 않음이라는 뜻입니다. 이사야 32장 15-16절 읽어보세요.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 그 때에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리니’ 위로부터 오는 성령으로 이스라엘 각각의 사람들 마음이 바뀌고, 이스라엘이 집단적 갱신을 경험할 것이라는 대표적인
성경구절이 다섯 가지 정도 있습니다. 이런 것이 성경 안에 있다는 것을 왜 니고데모는 못 봤을까요? 지금 우리는 다 보는데 왜
니고데모는 이스라엘 선생님이라는 그가, 구약성경에 달통한 그가 왜 위로부터 초월적인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으로 이스라엘 개개인과
집단이 갱샌되어 하나님께 언약적 재결속감을 느끼는 그런 사태가 올 것을 왜 몰랐을까요? 이스라엘 선생인 그가 왜? 거듭난다는 말은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말입니다. 괄호하고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말은 6절에 보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난다는 말과 똑같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태어난다는 말과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말은 똑같습니다.
물은 곧 성령을 가리킵니다.
물 곧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은 위로부터 태어난다,
Born again은 born from above, 위로부터 태어난다,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말은 이사야
32장 15절, 앞으로 인용하게 될 성경구절에 의하면, 성령으로 그 심령이 갱신되는 걸 의미합니다.
이사야 32:15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신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삼림으로 여기게 되리라.
till the Spirit is poured upon us from on high, and the desert becomes a fertile field, and the fertile field seems like a forest.
에스겔 36:25-26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I will sprinkle clean water on you, and you will be clean; I will cleanse you from all your impurities and from all your idols.
I will give you a new heart and put a new spirit in you; I will remove from you your heart of stone and give you a heart of flesh.
예레미야 31:31-34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것이라
-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The time is coming," declares the LORD, "when I will make a new covenant with the house of Israel and with the house of Judah.
- It will not be like the covenant I made with their forefathers when I took them by the hand to lead them out of Egypt, because they broke my covenant, though I was a husband to them, " declares the LORD.
- "This is the covenant I will make with the house of Israel after that time," declares the LORD. "I will put my law in their minds and write it on their hearts. I will be their God, and they will be my people.
- No longer will a man teach his neighbor, or a man his brother, saying, 'Know the LORD,' because they will all know me, from the least of them to the greatest," declares the LORD. "For I will forgive their wickedness and will remember their sins no more."
요엘 2:28-32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And afterward, I will pour out my Spirit on all people. Your sons and daughters will prophesy, your old men will dream dreams, your young men will see visions.
Even on my servants, both men and women, I will pour out my Spirit in those days.
I will show wonders in the heavens and on the earth, blood and fire and billows of smoke.
The sun will be turned to darkness and the moon to blood before the coming of the great and dreadful day of the LORD.
And everyone who calls on the name of the LORD will be saved; for on Mount Zion and in Jerusalem there will be deliverance, as the LORD has said, among the survivors whom the LORD calls.
에스겔 37장
37 내가 여호와의 손길을 느끼는 순간 그의 성령이 나를 데리고 가서 한 골짜기 가운데 두었다. 그 곳은 뼈로 가득 차 있었다.
2 그가 나를 데리고 그 뼈 주위를 사방 돌아다닐 때 보니 그 골짜기 바닥에 대단히 많은 뼈가 있었으며 그 뼈들은 아주 말라 있었다.
3 그가 나에게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이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래서 나는 “주 여호와여, 주께서만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4 그때 그는 이 뼈들에게 이렇게 예언하라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어라.
5 주 여호와께서 너희 뼈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불어넣겠다. 너희가 살아날 것이다.
6 내가 너희에게 힘줄을 붙이고 살을 입히며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불어넣을 것이니 너희가 살 것이다. 그러면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 것이다.’ ”
7 그래서 내가 명령을 받은 대로 예언하자 갑자기 뼈가 움직이는 소리가 나더니 이뼈 저뼈가 서로 붙어 연결되기 시작하였다.
8 내가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가죽이 덮였으나 그 안에 생기는 없었다.
9 그때 그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너는 생기를 향하여 예언하고 나 주 여호와가 이렇게 말한다고 외쳐라. ‘생기야, 사방에서 와서 이 죽어 있는 몸에 들어가 이들을 살게 하라.’ ”
10 그래서 나는 명령을 받은 대로 예언하였다. 그러자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더니 그들이 살아서 일어나 굉장히 큰 군대가 되었다.
11 그때 그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은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을 가리킨다. 그들은 ‘우리 뼈가 말랐고 우리의 희망이 사라졌으며 우리는 완전히 망하였다’ 하고 말한다.
12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나 주 여호와가 이렇게 말한다고 일러 주어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를 거기서 나오게 하여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겠다.
13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를 거기서 나오게 할 때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 것이다.
14 내가 또 [a]너희 속에 내 생기를 불어넣어 너희를 살게 하고 너희를 너희 본토에 정착하게 하겠다. 그때 너희는 나 여호와가 그것을 말하고 실행한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나 여호와의 말이다.’ ”
유다와 이스라엘의 연합을 상징한 두 막대기
15 여호와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16 “사람의 아들아, 너는 막대기 하나를 가져다가 그 위에 [b]‘유다 왕국’ 이라 쓰고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가져다가 그 위에 [c]‘이스라엘 왕국’ 이라고 써라.
17 그리고 네 손 안에 그 두 막대기 끝을 서로 연결하여 한 막대기처럼 보이게 하라.
18 “네 백성이 너에게 ‘이것이 무슨 뜻인지 우리에게 말해 주지 않겠소?’ 하거든
19 너는 그들에게 나 주 여호와가 이렇게 말한다고 일러 주어라. ‘내가 이스라엘의 막대기와 유다의 막대기를 결합하여 한 막대기가 되게 하겠다. 두 막대기가 내 손에서 하나가 될 것이다.’
20 너는 네가 글 쓴 그 막대기를 그들이 보는 데서 들고
21 그들에게 나 주 여호와가 이렇게 말한다고 일러라. ‘내가 이스라엘 백성을 그들이 쫓겨간 모든 나라에서 사방 불러모아 그들의 본토로 돌아오게 하고
22 그 땅 이스라엘의 모든 산에서 그들이 한 나라를 이루어 한 왕이 그들을 모두 다스리게 하겠다.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않을 것이며 두 나라로 나누어지지 않을 것이다.
23 그들은 우상들과 더러운 물건들과 그들의 죄악으로 더 이상 자신들을 더럽히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들을 범죄하고 타락한 자리에서 구원하여 정결하게 할 것이며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24 “ ‘내 종 다윗과 같은 왕이 그들의 왕이 될 것이며 그들은 다 한 목자 아래서 내 법과 규정을 따르고 지킬 것이다.
25 그들은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그 조상들이 살던 땅에 자손 대대로 살 것이며 내 종 다윗과 같은 왕이 영원히 그들을 다스릴 것이다.
26 내가 그들과 평화의 계약을 맺겠다. 그것이 영원한 계약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들을 견고하게 하며 번성하게 하고 그들 가운데 내 성소를 영원히 세워 두겠다.
27 내 처소가 그들과 함께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28 내 성소가 영원히 그들 가운데 있게 될 때 모든 나라가 나는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임을 알 것이다.’ ”
Footnotes
37 The hand of the Lord was on me, and he brought me out by the Spirit of the Lord and set me in the middle of a valley; it was full of bones. 2 He led me back and forth among them, and I saw a great many bones on the floor of the valley, bones that were very dry. 3 He asked me, “Son of man, can these bones live?”
I said, “Sovereign Lord, you alone know.”
4 Then he said to me, “Prophesy to these bones and say to them, ‘Dry bones, hear the word of the Lord! 5 This is what the Sovereign Lord says to these bones: I will make breath[a] enter you, and you will come to life. 6 I will attach tendons to you and make flesh come upon you and cover you with skin; I will put breath in you, and you will come to life. Then you will know that I am the Lord.’”
7 So I prophesied as I was commanded. And as I was prophesying, there was a noise, a rattling sound, and the bones came together, bone to bone. 8 I looked, and tendons and flesh appeared on them and skin covered them, but there was no breath in them.
9 Then he said to me, “Prophesy to the breath; prophesy, son of man, and say to it, ‘This is what the Sovereign Lord says: Come, breath, from the four winds and breathe into these slain, that they may live.’” 10 So I prophesied as he commanded me, and breath entered them; they came to life and stood up on their feet—a vast army.
11 Then he said to me: “Son of man, these bones are the people of Israel. They say, ‘Our bones are dried up and our hope is gone; we are cut off.’ 12 Therefore prophesy and say to them: ‘This is what the Sovereign Lord says: My people, I am going to open your graves and bring you up from them; I will bring you back to the land of Israel. 13 Then you, my people, will know that I am the Lord, when I open your graves and bring you up from them. 14 I will put my Spirit in you and you will live, and I will settle you in your own land. Then you will know that I the Lord have spoken, and I have done it, declares the Lord.’”
One Nation Under One King
15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me: 16 “Son of man, take a stick of wood and write on it, ‘Belonging to Judah and the Israelites associated with him.’ Then take another stick of wood, and write on it, ‘Belonging to Joseph (that is, to Ephraim) and all the Israelites associated with him.’ 17 Join them together into one stick so that they will become one in your hand.
18 “When your people ask you, ‘Won’t you tell us what you mean by this?’ 19 say to them, ‘This is what the Sovereign Lord says: I am going to take the stick of Joseph—which is in Ephraim’s hand—and of the Israelite tribes associated with him, and join it to Judah’s stick. I will make them into a single stick of wood, and they will become one in my hand.’ 20 Hold before their eyes the sticks you have written on 21 and say to them, ‘This is what the Sovereign Lord says: I will take the Israelites out of the nations where they have gone. I will gather them from all around and bring them back into their own land. 22 I will make them one nation in the land, on the mountains of Israel. There will be one king over all of them and they will never again be two nations or be divided into two kingdoms. 23 They will no longer defile themselves with their idols and vile images or with any of their offenses, for I will save them from all their sinful backsliding,[b] and I will cleanse them. They will be my people, and I will be their God.
24 “‘My servant David will be king over them, and they will all have one shepherd. They will follow my laws and be careful to keep my decrees. 25 They will live in the land I gave to my servant Jacob, the land where your ancestors lived. They and their children and their children’s children will live there forever, and David my servant will be their prince forever. 26 I will make a covenant of peace with them; it will be an everlasting covenant. I will establish them and increase their numbers, and I will put my sanctuary among them forever. 27 My dwelling place will be with them; I will be their God, and they will be my people. 28 Then the nations will know that I the Lord make Israel holy, when my sanctuary is among them forever.’”
Footnotes
- Ezekiel 37:5 The Hebrew for this word can also mean wind or spirit (see verses 6-14).
- Ezekiel 37:23 Many Hebrew manuscripts (see also Septuagint); most Hebrew manuscripts all their dwelling places where they sinned
이사야
32장 15절, 에스겔 36장 25절 26절, 예레미야 31장 31-34절, 요엘서 2장 28-32절, 에스겔서 37장 전체,
다섯 구절이 성령으로 각각의 개인과 집단 이스라엘이 완전히 갱신될 것, 위로부터 거듭난다는 이야기가 이 다섯 구절입니다.
다섯군데 성경구절은 많은 성경구절 중에서도 거듭난다,
즉 성령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각각 거듭나서 언약 재갱신을 하게 된다는 말이 다
나옵니다.
이 외에도 너무 많습니다.
많은데 우선 다섯군데만 말씀드린 겁니다.
중간 요약하면, 거듭난다는 말은 6절에 의하면,
물과 성령으로 난다, 물과 성령할 때, 카이란 말, 히드로스 카이 프뉴마토스 할 때, 카이는 that is to say, 이런
뜻입니다. and 등위접속사, conjunctive 아닙니다. 카이는 and, 물과 성령으로 할 때, 물 곧 성령으로, 이런
뜻이에요. 위로 거듭난다는 말의 어원은 위로부터 난다, born from above 라는 뜻입니다.
born from above할
때 above는 무엇을 가리킵니까?
초월적인 하나님의 강권적인 성령으로, 이런 뜻입니다.
성령의 바람을 맞고 성령의 바람을
쐬고,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 3장 8절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이것은 정확하게 에스겔서 37장을 암시합니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사방에서 불어온 바람의 이야기 에스겔 37장이죠.
이 내용을 왜 몰랐을까?
그 말은 한 번 닫힌 종교의 체제에 갇혀 버리면 나머지 성경구절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력한 군사적 메시야에 관한 성경구절은 시편 2편과 솔로몬의 시편 18편, 외경 솔로몬시편 18편과 시편 2편만이 강력한 군사적
메시야, 정복군주, 알렉산더 대왕급 메시아에 관한 예언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강력하게 잡고 나니까 이사야 53장 같은
이런 본문이 오실 메시아에 관한 본문으로 보이질 않는 겁니다. 도살장에 끌려가 죽는 어린 양과 같은 이 연약한 자는 메시아에 관한
성경구절로 안 보인 겁니다. 무엇때문에요? 우리가 캘비니즘에 빠지면 큰일 납니다.
웨슬리즘에 빠지면 큰일 나요.
지금 우리
한국에 너무 어리석은 사람이 캘빈을 신격화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캘빈을 성경수준으로 올리는 사람이 있어요.
너무 어리석은
짓입니다. 캘빈의 글은 성경이 아닙니다. 많은 오류가 있습니다. 웨슬리도 마찬가지고, 오류와 한계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오류와
불충분이 있습니다.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런 캘빈과 웨슬리 등을 신격화시키고 정경화시켜서 캘빈파들은 다 모여라, 이렇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분열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런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넘어가고요. 위로부터 거듭난다는
말은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겁니다. 그러면 누가 이 성령을 받습니까? 하나님의 신적 임의성에 달려 있습니다. 여기가 참 중요합니다.
이것이 제가 풀지 못하는 미스테리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고 예수를 믿는 것은 신적임의성에 달려 있습니다.
한 번 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성령의 바람을 맞고 가지와 뿌리가 흔들리고 줄기가 흔들리고 세차게 갱신을 경험하지만 어떤 사람은
성령을 받지도 못하고 이해도 못하고 감도 잡지 못합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방향을 알 수 없는 바람에게 맞은 것처럼 내가 인간적으로 추적 가능한 교육의 결과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는 신적임의성과 초월성 때문에 내가 누구의 설교를 통해 성령을 받았다, 이렇게 말할 수 없고 내가 어느 시점에 성령을
받았다, 내가 장신대 가서 성령 받았다, 아차산 느티나무 밑에서 성령 받았다, 이게 안 된다는 말이에요. 왜? 신적임의성과
불가의성, 실제로 성령이 언제부터 내게 불었는지 몰라요. 제가 감을 잡기로 저한테는 79년 5월부터 많이 분 것 같습니다. 그때는
영감의 바람이 청년 20대 때 계속 불었습니다. 그때는 제 생각과 세계관이 막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고등학교 2학년 때
강한 전도를 받았습니다. 그때는 제가 신앙을 가질까 말까하고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때는 믿으려고 다닌 게 아니라 무얼 믿는가를
알기 위해서 다녔기 때문에 제가 아니었습니다. 가만히 보면 그전에도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 때 따라 다닌 것도 이리저리 다녔습니다.
성령의 임의성, 신적 임의성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모아 놓고 설교를 해도 제가 여러분에게 다 구원을 약속할 수 있는 상태가 못
됩니다. 절대로 인간 목사나 교사가 구원해줄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너무 놀랍고, 왜 둘 중의 한 사람만 거듭날까요?
저는 풀 수 없는 신비입니다. 왜 소수만이 거듭나고 나머지 절대다수는 왜 전부 다 바람에 나는 겨처럼 가버렸을까요? 지금 제가
돌이켜보면 12년 동안 캠퍼스 ministry 하면서 만난 사람 너무 많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제 강의를 듣고 1년 2년 3년
한 달 그렇게 만났지만 그 사람이 다 낳고 결실을 맺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13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예수님 당시의 니고데모는 혈통을 우선시했거든요. 혈통과
가문과 교육적 배경이 이스라엘 지도층을 구성했거든요. 혈통과 가문이 성전 제사장을 다 채웠거든요. 혈통과 가문과 인간의 유적으로
모든 이스라엘 리더십이 다 채워졌거든요. 예수님은 성령의 임의성을 강조함으로써 혈통기득권, 가문기득권, 학벌기득권, 교육기득권, 특별히 예루살렘 지역기득권을 송두리째 부정한 것입니다. 너무
신비한 겁니다. 위로부터 거듭난다는 약속은 성경에 너무 많이 있습니다. 성령으로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거듭난다는 건 분명히
있고 새 언약백성이 된다는 게 나오고 성령 받고 하나님께 순종할 능력이 생긴다는 게 분명히 있습니다. 에스겔 36장 25-26절
이것만 읽으면 다섯 개 대표 본문 구절 다 읽은 거예요. 평소에 에스겔을 못 찾으니까 양진일 목사밖에 못 찾잖아요. 실제로
여러분이 에스겔을 평소에 안 읽어보죠? 우리 가향형제자매들 성경지식이 거의 다른 교회랑 비슷한지 상당히 영적으로 총기가 많은지,
여러분이 영적 총기가 많은 것처럼 보였어요. 순수해 보이기는 하는데 똑똑해보이지는 않아요. 성경 말씀을 깊이 읽고 지적으로
파고들고 굉장히 영적으로 예민한 사무엘 같은 영적 총기는 안 보여요. 무교병 같은 순결은 보이는데, 그 말은 뭡니까? 간신히
1인분 신앙생활은 할 수 있지만 이 세상에 대해서 공세적 신앙생활을 하려면 지성과 영성이 둘 다 비슷하게 자라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여 하나님 진짜 사랑하는 건 말씀을 사랑하는 건데, 이 말씀 사랑이
여러분에게 그렇게 많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제가 대부분 청년대학부에 가면 하나도 안 느껴집니다. 여러분이 그걸 어떻게 개별적으로,
경건계획 보니까 성경 많이 읽겠단 사람은 거의 없던데, 대부분 그냥 단편적으로 소유하려고 하지 총체적으로 성경을 읽고 구원의
불길에 자기를 새롭게 태워서 정화하겠다는 야심찬 비전이 좀 모자란 것 같아요. 에스겔서를 이렇게 못 찾는 걸 보면, 오늘
느꼈습니다. 양진일 목사처럼 바로 찾아야죠. 찾지 말고 암송을 해야죠. 에스겔 36장 25절 26절은 바로 암송해야지 찾아 읽을
구절은 아니죠. 같이 읽겠습니다.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이 영이 바로 바람입니다. 영이란 말은 바람과 똑같은 말입니다. 바람도 되고 루하흐는
바람이면서 동시에 영입니다. 그래서 바람이 어디서 부는지 모르듯이 영이 어디서 부는지 모릅니다. 에스겔 37장이 바람과 영이
interchangeble 서로 상호이용되는 것, 영으로 되고 바람으로 된다는 것이 에스겔 37장이죠. 거듭났다는 말은 에스겔서
36장과 37장 undeniable,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히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히 나타난
위로부터 거듭나는 것,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 물과 성령으로 정확하게 거듭났죠? 거듭나는 걸 모른다, 누가? 니고데모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의 특징은 비약적인 능력에 사로잡힙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혀서 인생관이 바뀌고 재능은 바뀌지 않지만 인생관이 바뀌어요. 바둑을 정말 좋아했던 제가 성령 받고 나서
바둑을 두지 않습니다. 지금도 바둑을 두고 싶은 마음이 가끔 듭니다. 바둑 한 판 두었으면, 그런데 제가 하나님 말씀에 창영돼서
바둑을 끊었습니다. 서예가 제 특기입니다. 1필 2지, 큰 묵과 벼루가 우리 집에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저는
그것도 버렸습니다. 그걸 버리고 저는 하나님 말씀에 창영했습니다. 저는 20대 때 임해당의 바둑, 그걸 버렸습니다. 조선일보
신문만 보면 항상 바둑 기보를 보면서 내 머릿속에는 항상 누워잘 때마다 화투장이 들어온 게 아니라 바둑판이 들어옵니다. 그게 제
상태입니다. 바둑과 서예 등 제가 좋아하는 많은 것을 버렸습니다. 낭만적인 연애를 해보고 싶다, 그걸 예수 믿고 나서 버렸습니다.
그건 나한테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부자가 되어서 떵떵 거리고 살겠다, 가나난 사람들을 잊어버리면서 내가 홀로 안전하게
살겠다, 저는 그 꿈을 버렸습니다. 나는 안전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이 세상 모두가 불안전하게 살고 있기 때문에
내게 일정정도 불안전한 요소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중보자가 되기 때문에, 너무 오래 살고 싶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7,80대
죽는데 그때 죽어야지, 대부분이 일찍 죽는데 후배들보다 30년 오래 살면서 돌아다니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부지런함은
하나도 안 바뀌었습니다. 부지런함 성실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내가 많이 공부했던 것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고
위로부터 거듭나면 혈통과 육정의 비즈니스에는 더 이상, 대학교 동창 고등학교 동창, 혈통과 육정과 본토 친척 아비집은 제게 아무
상관 없습니다. 오직 보편적인 이웃 사랑, 하나님 사랑, 전 세계 만민이 어떻게 고루 우애롭게 살 것인가? 사자와 어린 양이
어떻게 살 것인가? 이런 것이 저의 모든 지향점이 되고 모든 관심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저의 전공이 돼버렸습니다.
영문학이 제 전공이 아니고 신학도 제 전공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가 제 메인 비즈니스가 되었습니다. 야러분, 진짜 거듭나면 세
가지가 나타납니다. 성령의 열매, 성령의 은사, 성령 충만, 성령의 은사는 성령의 충만한 상태를 6개월-1년이상 계속 경험하면
내가 어떤 일에 적합한지 개성이 뚜렷이 드러나고 나의 잠재적 은사가 뚜렷이 드러납니다. 성령의 역사를 2,3년 이상 경험하면
충성과 온유와 양선과 절제, 성령의 열매가 인격으로 나타납니다. 저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는 네임이 정해집니다. 충성스런 사람,
온유한 사람, 성령 충만한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있는,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이 항상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싶은 마음 상태가 계속 유지돼 있는 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이것 외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면 재미 없을까?
너무 긴박하기 때문에, 내 인생
자체가 드라마고 살아 있는 성공스토리고, 하나님의 감동스토리고 구원 이야기이기 때문에 내 인생 주변에 있는 사람까지도 이 감동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여러 사람을 구원하게 됩니다.
이런 구원의 감동 속에 들어온 사람들은 만지자마자 구원이 번지고 그렇게
됩니다.
제가 제 주변 사람에게 구원을 전합니다.
이게 바로 성령 충만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밤과
결별하셔야 합니다.
특히 여러분은 새벽기도에 나와야 하고, 밤과 결별하고, 20대 30대를 새벽에 제단을 쌓지 않으면 안 됩니다.
특정 체질상, 사상의학으로 볼 때 새벽에 일어날 때 당신은 일찍 죽는다.
이런 말을 듣는 사람은 새벽기도 안 해도 되지만,
그렇지 않은 청년은 여호수아처럼 새벽에 일어나서 밤의 문화와 결별해야 합니다.
이 시대와
결별해야 합니다. 잡다한 수다와 결별하고 말씀에 깊이가 있어야, 그래야 여러분이 2,30대 때 어떤 일에 적합한지를 아는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고 성령 충만함의 결과 열매가 나타나는데,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아직도 지향하지 못한다는 말은 성령이 여러분을
충분히 individualization, 개성화를 시켜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하면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면서 일치가 잘
됩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하지 않은 공동체생활이나 성령충만하지 않은 교회생활은 개성이 다 없어지고
획일화됩니다.
참된 공동체는 개성화와 일치감이 동시에 증가합니다.
내가 이 교회에서 해야 할 일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성령 충만한 아름다움으로 옛
허물을 벗지 못했기 때문에 제가 보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남녀들이 서로의 장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계속 내 님은 어디야, 하면서
엉뚱한 데를 쳐다봅니다.
성령충만하여 아름다워 지는 방법, 열매를 맺는 방법, 그건 인간의 값어치를 우주적 보배로 만들어버립니다.
성령충만은 우주적 보배의 값어치입니다.
여기에 한 번 도전해 봐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성령의 역사가 신적 임의성을 따라
불기 때문에 제가 여러분에게 성령 훅 불어준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다만 기도할 뿐입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신은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 성령이 충만하게 역사했을 때 모든 사람위에 각각 성령이 그 위에 머물러 있는 역사가 불가능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또한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거듭나는 인생 최대의 신비에 이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최근 주목받는 CEO 중의 하나가 KTF의 조서환 부사장입니다.
조서환 부사장은 아이디어가 많아 휴대전화 번호이동 서비스, 샴푸와 린스를 합친‘하나로 샴푸’, 20세의 치아를 80세까지 유지하라는 ‘2080치약’, 휴대전화 서비스 ‘쇼(show)’ 등 여러 히트상품을 제조했습니다.
조 부사장은 23살 때 육군 소위로 임관해 군 생활을 하다 사고로 오른손을 잃었습니다.
그 때 조 부사장에게 여자 친구가 있었습니다.
여자 친구는 병원 옆으로 이사 와서 병간호를 해 주었습니다.
손을 잃은 슬픔은 여자 친구의 넘치는 사랑 때문에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의 아버지가 나타나 딸을 끌고 가려 했습니다.
저항하는 딸에게 아버지는 그 남자를 택할 것인지, 집으로 갈 것인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했습니다.
그때 딸은 “만약 아버지가 손을 잃었다면 엄마가 어떤 태도를 보이기를 원하세요. 나는 이 남자의 전부를 사랑한 것이지, 손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조서환 부사장은 이때부터 평생 이 여자만을 행복하게 해주며 살겠다는 결심을 했답니다.
사랑의 빚진 자가 된 것입니다. <2008.02.27 국민일보 참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떤 자격이 있어서 온전히 갖춰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습 이대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신앙고백하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시고 구원 받은 백성 되게 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국 초대 교회에 김익두 목사님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한 다음 맨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의 부고장을 돌렸습니다.
“김익두는 죽었다.”
부고장은‘○○○가 죽었으니 ○월 ○일 ○시에 입관/발인’을 한다고 하는 사람의 죽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훗날 여러분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죽었을 때 사람들이 ‘참 아까운 사람 죽었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깡패 김익두가 죽었다는 부고장을 받고는 모두들 기뻐했습니다.
평소에 그 분이 얼마나 잔인하고 못된 일을 많이 저질렀기에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했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이 많은 시장 한복판에 그 죽었다던 김익두가 나타났습니다.
목사가 된 그의 손에는 시커먼 성경책 하나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의 등장에 사람들은 놀라기도 했지만 어떤 사람은 변화된 그를 시험해 보려고 지나가는 김익두 목사님에게 물 한 통을 뒤집어 씌었습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물을 툭툭 털고는 물 끼 얹은 사람을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옛날 김익두가 죽었다는 그 사실을 기뻐해라. 살았다면 너는 요절이 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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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여섯 가지 특징
1. 점진적 성장해 가는 나라
2. 사회 변혁보다 개인 회심
3. 하나님의 선물과 잔치로
4. 인간의 책임적 동참 요구
5. 역사성과 초월성 동시에
6. 모든 사람들 포함하는 곳
1장 : 선교와 하나님 나라(사도행전 1:1-11)
제자들이 기대하는 하나님 나라와 예수께서 생각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다른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1. 선교의 핵심주제 : 하나님 나라
사도행전 첫 장을 열어보면 하나님 나라가 아주 중요한 주제로 대두됨을 보게 된다. 1장 1-2절에서 사도행전 기자는 전에 쓴
기록인 누가복음에 대해 언급한 후, 3절에서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라고 말하면서, 부활과 승천 사이 결정적인 사십일 간의
말씀을 한 마디로 ‘하나님 나라’로 요약하고 있다.
뒤이어 6절부터 8절에 나오는 제자들과의 대화에서도 역시 주제는 하나님 나라이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제자들과 예수님 사이의 대화 역시 그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죽음 전에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하게 돼 있다. 예수님께서 승천 전 40일 동안 말씀하신 주제가 하나님 나라였다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있어 하나님 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초림을 통해 ‘다가올 세대(the age to come)’는 현 세대에 깊숙이 침입했으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이미 시작됐던 ’다가올 세대‘가 현 세대를 완전히 대치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뤄질 때 하나님 나라는 최종적으로, 그리고 완전하게 임하게 돼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 앞에 꿇고 모든
입이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빌 2: 10-11). 또한 그때 하나님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마 6:10).
이 같은 재림의 시기가 올 때까지 즉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 동안에는 두 세대가 겹쳐 있는 격이 될 것이며, 이때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열심히 증인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와 성도의 선교적 사명인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승천
바로 직전의 중요한 시기인 40여 일 동안 사도들에게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에 관한 가르침은 하나님 나라 완성을 위한 사도들의
선교적 사명과 깊은 연관을 지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 동상이몽(同床異夢)
하나님 나라가 이처럼 핵심적인 주제임에는 틀림없지만, 이에 대한 예수님의 이해와 제자들의 이해는 사뭇 달랐다. 제자들은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행 1:6)?”라는 질문을 했다. 사도들은 이스라엘의 민족적 독립과 회복을 통하여
실현될 하나님 나라를 보고자 하는 소망에 줄곧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나라가 회복되면 자신들이 권력의 자리에 앉게 될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었다 (참고 막 10:35 이하, 눅 22:24 이하). 즉 제자들은 다분히 정치적이고 민족적이고 이 세상에 제한된 하나님 나라 이해를 지니고 있었다.
제자들의 하나님 나라 이해는 당시 일반적인 유대인들의 하나님 나라 이해와 맥을 같이 하고 있었는데, 당시 유대인들은 우주적
메시아보다는 다윗 왕조를 재건할 지상적 왕으로서의 메시아가 오셔서 새롭게 통치하실 것을 기대했다. 즉 그들은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하실 고난의 메시아에 대한 기대보다(마 1:21), 정치적 메시아로서 그들을 대적들로부터 구출하는 정복자 메시아가 될 것을
기대했다(눅 1:73-74).
예수님은 이러한 제자들의 잘못된 이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않으시면서 간접적으로 가르침을 베푸시고 있다. 즉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행 1:7)”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다는
말씀은 이것이 믿는 자들의 사색 주제가 될 수 없다는 말씀이다.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은 때와 기한에 대해 사색할 것이 아니라, 그
나라에 대해 증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었다(행 1:8).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에서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은 사도행전의 주제라고 볼 수 있고, 여기 나오는 지리적 명칭들은
사도행전의 목차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예루살렘’은 1-7장, ‘온 유대와 사마리아’는 8장 1-11절과 18절, 나머지
11장 19절부터 28장 31절까지는 복음이 유대의 경계선을 넘어 로마에까지 이르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의 존망에 대해 어떤 목적이 있으시지만, 제자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었다. 즉 그들이 하나님 나라 실현을 위해 할 일은 해방운동이나 어떤 투쟁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는 것이었다.
제자들이 기다려야 할 나라는 정치적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증인이 됨으로써 임하는 하나님 나라이며, 이러한 나라를 위하여 성령 충만을 받고 증인이 되어야 함을 말씀하셨던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누가복음 18: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8: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요한복음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