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분봉왕, 총독이란 무엇인가?
말라기 기록 연대
구약의 마지막 성경인 말라기서와 마태복음 사이에는 약 400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이 있습니다.
비록 이 4백년의 기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 시기는 알렉산더 대왕의 출현과 같은 세계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시기이며, 특히 우리 기독교인들이 신약성경을 이해하는데 알아두면 매우 도움이 되는 시기입니다.
누가복음 3:1-2
1.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누가복음 23:11-12
11. 헤롯이 그 군인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12.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본문에 나온 헤롯은 예수님이 갓 태어나셨을 때 2살 미만의 아이들을 모두 죽인 헤롯대왕이 아닌 그의 아들 헤롯 안티파스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헤롯 대왕에 대해서는 왕이라고 하고, 헤롯 안티파스는 분봉왕, 빌라도는 총독이라고 부릅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망했습니다.
물론 에스라, 느헤미야서를 보면 다시 유다민족이 포로생활을 끝내고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지만 말라기서가 끝날 때까지 유다에는 더 이상 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 마태복음을 보면 갑자기 유대인도 아닌 헤롯이 유다의 왕으로 소개가 됩니다.
헤롯은 유대인이 아니고 이두매인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지도
이두매는 구약시대로 말하면 에서의 후손인 에돔족속을 말하는 것입니다.
소돔 심판이후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큰딸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모압이고,
둘째 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벤암미입니다.
모압은 모압의 조상이고, 벤암미는 암몬의 조상입니다.
이두매인이었던 헤롯 대왕 이후에는 그 아들들이 분봉왕이라고 불리게 되고 로마의 총독이라는 관리가 유다와 사마리아를 통치합니다. 헤롯 안티파스와 빌라도 즉, 분봉왕과 총독은 본래 서로 원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구약을 보다가 바로 신약을 보면 뭔가 큰 연결고리가 빠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 400년의 연결고리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해 드리면서 왕과 분봉왕, 총독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36년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그 여파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어서 갈등의 요인으로 작용이 되곤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500년 이상을 타민족의 식민지배를 받았습니다.
대략 그 역사를 살펴보면
시대구분
1. 출애굽 후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정착한 후 사사시대가 시작됩니다.
이때는 왕은 없었고 각 지파에서 뛰어난 리더들이 등장하여 돌아가면서 리더십을 발휘했던 12지파 연합공동체의 시기였습니다.
이 기간이 사도행전에 따르면 450년입니다.(사도행전 13:19)
2. 사사시대가 끝나고 왕정시대가 시작되는데 사울-다윗-솔로몬때까지는 하나의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이 시기는 고고학적으로 거의 정확한 연대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솔로몬 사망한 B.C.931년 경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이 됩니다.
분열왕국 지도
지도에서 보라색이 유다이고 초록색이 이스라엘인데 이때부터 유다는 남유다,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분열 후 약 2백년 후인 B.C.722년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게 멸망하면서 잃어버린 10지파 시대가 시작됩니다.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유배
앗시리아는 북이스라엘을 점령한 후 포로들을 유배시키는데 본국에서 수백, 수천킬로가 떨어져 있는 고산, 할라, 메대까지 끌고 가기도 하고, 다른 나라의 포로들을 이스라엘로 이주시키는데 당시의 이런 상황이 앗시리아 부조에 그려져 있습니다.
앗시리아 부조) : “부조는 평면상에 형상을 입체적으로 조각하는 조형기법”
이 부조를 보면 앗시리아 인들이 포로들을 얼마나 잔인하게 대우했는지를 알 수 있는데 오른쪽 부조에서는 포로로 끌려가는 유대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과 이방 이주민들이 혼인을 하게되면서 10지파의 정체성이 사라지게 됩니다.
사마리아 지도
신약성경에서는 이들을 사마리아인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 당시의 상황을 보면 유대인들이 갈릴리와 유다 사이에 있는 사마리아를 밟지 않으려고 요단강을 건너 돌아갈 정도로 사마리아인들을 매우 격멸했는데 여기에는 이런 역사적인 유래가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
바벨론이 앗시리아를 정복하고 B.C.586년 예루살렘 성전을 멸망시키면서 유다역시 망하게 되는데 바벨론은 이때 유다의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6세기 열강들
앗시리아, 바벨론를 이어 새로운 고대근동의 패자인 페르시아가 등장하게 되는데 페르시아의 고레스왕이 B.C. 539년 바벨론을 점령합니다.
고레스 진흙 원통문서
당시의 상황이 고레스의 <진흙원통문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원통에는 페르시아가 바벨론을 점령한 사건과 유다를 비롯한 포로들을 본국으로 해방하겠다는 그 유명한 고레스 칙령이 새겨져 있는데 현재 대영박물에서 소장중입니다.
포로귀환
페르시아 왕인 고레스 2세가 유다의 포로들을 해방시키면서 유다의 백성들은 3차에 걸쳐서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때의 이야기가 에스라, 느헤미야이고 돌아온 유다의 백성이 다시 팔레스타인에 예루살렘 성전을 봉헌한 것이 B.C. 515년 입니다.
그러면서 이때부터 유다는 한 동안 자치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는 B.C. 430년 경의 인물입니다.
이제부터 성경에 없는 역사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알렉산더와 다리우스 3세의 익수스 전투
6. B.C. 336년 저 유럽 마케도니아에서 알렉산더라는, 당시 20세의 청년이 왕이 되면서 세계의 판도가 다시 한번 바뀌게 되는데 알렉산더는 이집트, 유다를 정복하고 331년 페르시아까지 패퇴시키고 바벨론과 수사까지 점령하게 됩니다.
알렉산더 통치지역
그리고 323년 겨우 33살의 나이에 이 엄청난 대제국을 남겨두고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알렉산더 제국의 분열
알렉산더 수하의 네 명의 장군 프톨레마이오스, 안티고누스, 데메트리오스, 셀류코스가 알렉산더의 제국을 분활해서 통치하게 되는데 이때 유다는 다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로부터 100년간 지배를 당하고, 그 후에는 또 다시 셀류코스 왕조의 지배를 당하게 됩니다.
남유다의 독립
B.C.167년부터 마타티아스 가문의 주도로 유다 독립전쟁이 시작되는데 이것을 마카비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이 마카비 혁명을 통해 결국 B.C.142년에 드디어 유다가 독립을 하게 됩니다.
446년의 식민지 시대
B.C.586년에 바벨론에게 망한 후 446년 만에 독립을 한 것입니다.
유다는 446년 동안 바벨론, 페르시아, 알렉산더, 프톨레마이오스, 셀류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은 것입니다.
이때 셀류코스 왕조에서 독립한 유다 왕조를 하스모니아 왕조라고 부릅니다.
폼페이우스의 유다 점령
하스모니안 왕조는 그 후 두 왕자인 아리스토불루스 2세와 히르카누스 2세 간의 왕위다툼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문제를 보이다가 히르카누스 2세가 B.C.63년 새로운 신흥강국이었던 로마를 끌여들이면서 결국 다시 식민지 시대가 시작됩니다.
구약과 신약 중간 400년간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알렉산더 대왕이 등장했고, 그의 후계자들인 프톨로마이오스, 셀류코스의 후손들이 유다를 식민지로 다스리다가 유다가 독립을 해서 하스모니안 왕조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다시 형제간의 다툼에서 궁지에 몰려 있던 히르카누스 2세가 로마를 끌어들이면서 B.C.63년부터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로마의 지배가 시작되었다지만 그래도 유다의 공식적인 통치자는 하스모니안 왕조입니다.
일제식민시대때의 조선왕조, 대한제국처럼 말입니다.
헤롯대왕의 통치
성경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유다의 왕이 누구였습니까?
헤롯대왕이었습니다.
헤롯이 누구기에 로마의 식민지배하에 있던 유다의 왕으로 있었던 것일까요?
헤롯 대왕은 하스모니안 왕가 사람이 아닌 것은 물론이고 앞서 말씀드렸다 시피 유대인이 아닙니다.
이두매인, 즉 구약의 에돔인입니다.
에돔의 조상이 누구입니까?
바로 에서입니다.
그런데 이런 헤롯이 어떻게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당시 유다의 왕이 되었을까요?
하스모니안 왕가 내에 있었던 왕의 다툼 과정에서 로마가 자신들의 대리자로 이두매인이었던 헤롯을 유다의 왕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때가 B.C.37년 입니다.
이때 헤롯은 유다를 통치하기 위한 정당성을 위하여 자신의 아내인 이두매인 도리스와 이혼하고, 하스모니안 왕가의 공주 마리암네와 결혼을 합니다.
헤롯 자신은 정통성이 없지만 하스모니안 왕가와의 결혼을 통해서 유다 통치의 정당성을 얻은 것입니다.
그래서 헤롯대왕 당시까지만 해도 헤롯이 유대와 사마리아, 이두매, 갈릴리, 베레아를 포함한 과거의 이스라엘을 모두 통치했습니다.
헤롯왕국의 분립
헤롯 대왕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은 그의 세 아들 아켈라오, 안티파스, 빌립에 의해서 3등분이 됩니다.
안디바는 보라색 부분인 갈릴리와 베레아,
빌립은 황토색 부분인 갈릴리 바다 북동쪽,
아켈라오는 빨강색 유다와 사마리아를 다스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렸던 헤롯대왕은 그냥 ‘왕’이지만 그의 아들들은 한 지역만을 다스리는 ‘분봉왕’이라고 부릅니다.
분봉왕으로 번역된 헬라어가 테트랄케스인데 이 단어는 한 나라의 3분의 1이나 절반 정도를 가리키는 통치자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헤롯대왕 때까지는 없던 분봉왕이 갑자기 생긴 이유가 무엇일까요?
로마가 유다의 힘을 분산시키기 위한 정치적인 전략에서 나온 것입니다.
헤롯의 세 아들 중에 아켈라오라는 인물이 몹시 억압적으로 유대인들을 다스렸고 성경에도 요셉과 마리아가 아켈라오를 피해 갈릴리 지방으로 떠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고향인 유다 베들레헴에서 살지 않고 갈릴리 나사렛에서 생활하셨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마태복음 2:22-23
22.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23.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결국 아켈라오의 폭정에 유대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러자 로마는 아켈라오를 추방시키고, 로마가 직접 로마의 통치자를 파견해서 아켈라오가 다스리던 유대, 사마리아, 이두매를 통치하게 됩니다.
역대 총독
로마가 이처럼 직접 파견한 사람들을 ‘총독’이라고 부르는데 로마의 첫 총독이 코포니우스이고 우리가 잘 아는 본디오 빌라도는 로마가 유다에 파견한 5번째 총독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재판했던 두 인물이 헤롯 안티파스 왕과 본디오 빌라도 총독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헤롯과 빌라도는 서로 적대적인 관계였습니다. 당연합니다.
헤롯은 나름대로 헤롯대왕을 뒤이어 유대를 통치하는 그나마 정통성이 있는 왕이었고, 빌라도는 로마에서 파견한 총독이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인들을 어떻게 하면 헤롯 왕조를 무너뜨리고 로마가 팔레스타인 전체를 다스릴까만 생각했기에 그 둘은 서로 원수일 수밖에 없는 처지인데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는 서로 협조를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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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
헤롯(영어: Herod, 라틴어: Herodes)은 에돔(이두매) 출신으로 로마제국 시대에 황제를 대신해 가나안(팔레스타인)과 그 인접 지역을 통치했던 헤롯 왕조(B.C. 37-A.D. 70)의 사람들을 말한다. 헤롯 가문은 기원전 1세기경 헤롯 안티파테르 2세가 유대의 행정장관으로서 유대 지경을 다스리게 되면서 창시됐다. 왕조의 본격적인 시작은 헤롯 대왕이 유대의 유일무이한 통치자가 된 기원전 37년으로 본다. 성경에는 헤롯 대왕, 헤롯 안디바, 헤롯 아그립바 1세가 '헤롯'으로 언급됐다.
헤롯 왕조의 창시
헤롯 안티파테르 2세는 당시 부흥하던 나바테아 왕국[1]의 귀족 딸과 결혼하여 큰 영향력과 부를 가지고 있었다. 기원전 63년 폼페이우스가 유대 지역을 침공했을 때, 그 원정을 지원함으로써 안티파테르 2세는 로마와 긍정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안티파테르 2세를 유대의 행정장관으로 임명하고 유대 지경을 다스리게 하면서(B.C. 47) 그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었다. 그 신분은 헤롯 대왕 및 그의 자녀들에게까지 계승됐다. 이방 지역 에돔 출신의 안티파테르 2세는 유대 지역을 다스리며 유대인의 지지를 얻기 위해 유대교로 개종하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였지만 끝내 이방인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없었다.
헤롯 대왕의 가계도
성경 속 헤롯
이름 | 재위 | 언급된 성경 구절 |
---|---|---|
헤롯 대왕(Herod the Great) | B.C. 37-B.C. 4 | 마 2장, 눅 1:5 |
헤롯 아켈라오(Herod Archelaus) | B.C. 4-A.D. 6 | 마 2:22 |
헤롯 빌립 2세(Herod Philip Ⅱ) | B.C. 4-A.D. 34 | 눅 3:1 |
헤롯 안디바(Herod Antipas) | B.C. 4-A.D. 39 | 마 14:1–12, 막 6:14–29, 눅 3:19, 9:7-9, 13:31-32, 23:7-15 |
헤롯 아그립바 1세(Herod Agrippa Ⅰ) | A.D. 41-44 | 행 12장 |
헤롯 아그립바 2세(Herod Agrippa Ⅱ) | A.D. 53-70 | 행 25:13-27, 26장 |
헤롯 대왕
헤롯 대왕(Herod the Great 또는 Herod Ⅰ, 헤로데 1세)은 안티파테르 2세의 다섯 자녀 중 차남이다. 갈릴리 총독으로 있다가 기원전 40년에 로마 황제 아구스도(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유대의 왕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 시기에 유대는 내전(內戰) 중이었기에 3년 뒤 전쟁이 마치고서야(36세) 실질적으로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B.C. 37).[2]
헤롯 대왕은 사마리아(세바스테), 여리고 등의 옛 도시를 재건하고, 예루살렘 성전 재건(헤롯 성전) 사업을 진행하며 유대인의 환심을 얻고자 했다.[3]
이방인으로서 유대 지역을 다스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극복하기 위해 하스몬 왕가의 공주 마리암과 재혼했다. 그러나 그의 잔혹성은
유대인들의 마음을 오히려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는 아내를 깊이 사랑했지만, 가정 내부에서 일어난 음모와 술수에 넘어가 아내와 두
아들을 처형시켰다. 거기에 마리암의 남동생과 조부, 모친까지 살해했다.[4] 헤롯 대왕의 잔혹성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듣고 베들레헴에 있는 두 살 아래의 유아를 모두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에서도 드러난다.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 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헤롯 대왕은 총 10명의 아내가 있었으며, 그 가운데 6명의 아내를 통해 14명의 자녀를 낳았다. 죽기 전 마지막 유언을 통해 아켈라오, 안디바, 빌립 2세, 세 아들을 분봉왕으로 임명해 유대 왕국을 세 지역으로 나누어 다스리게 했다.
헤롯 안디바
존 로저스 허버트(John Rogers Herbert), <헤롯을 책망하는 침례 요한>, 1848. 이복 형제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한 헤롯 안디바를 침례 요한이 책망하는 장면이다.
헤롯 안디바(Herod Antipas, 헤로데 안티파스)는 헤롯 1세의 차남으로 갈릴리와 베뢰아의 분봉왕[5]이었다. 성경에서 '분봉왕 헤롯', '헤롯왕'으로 언급됐다. 예수님은 교활하고 술수에 능한 그를 '여우'라고 부르기도 했다.[6]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갈릴리 해안에 '디베랴'라는 도시를 건설했고, 갈릴리 바다를 '디베랴 바다'라고 불렀다. 조카이자 이복 형제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결혼한 일로 침례 요한의 책망을 받자 요한을 옥에 가두었다.[7] 이후 헤롯 안디바의 생일 축하연에서 헤로디아가 전 남편의 딸 살로메를 이용하여 침례 요한의 목을 요구했는데, 헤롯 안디바는 잠깐 근심했으나 결국 살로메의 요청에 따라 침례 요한을 참수시켰다.[8] 헤롯 안디바는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해 끌려오신 예수님을 심문하기도 했다. 이는 빌라도가 예수님의 고향이 헤롯 안디바가 다스리는 갈릴리 지역임을 알고 그에게 보내었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님에게서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없자 희롱하고 빌라도에게 다시 돌려보냈다.[9] 통치 말엽에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득세를 시기한 헤로디아의 요청으로 그를 탄핵하려다가 실패하여 갈리아로 추방됐다.[10]
헤롯 아그립바 1세
헤롯 아그립바 1세(Herod Agrippa Ⅰ, 헤로데 아그리파 1세)는 헤롯 대왕의 손자이자 헤롯 안디바의 조카다. 어린 시절 로마 황실에서 교육을 받았고, 당시 황제였던 티베리우스의 아들 드루수스와 함께 자랐다. 헤롯 안디바가 해임된 지 2년 후 갈릴리의 분봉왕이 되었다. 후에는 로마의 신임과 총애를 얻어 유대와 사마리아 전역을 다스리는 통치자가 되었다. 유대 지도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옥에 가두었다.[11] 그날 밤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베드로를 구출하셨고, 이를 알게 된 아그립바 1세는 화가 나서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였다.[12] 아그립바 1세는 백성들이 그를 신으로 추앙했을 때 교만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으므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했다.[13]
그 외
- 헤롯 아켈라오
아켈라오(Herod Archelaus, 헤로데 아르켈라우스)는 헤롯 대왕 사후 유대, 사마리아, 이두매의 분봉왕이 된 자이다. 헤롯 대왕의 정통 후계자였으나, 수많은 학살과 학정을 일으켜 로마 당국에 의해 공직에서 해임되었다. 그가 유대의 왕으로 있을 때, 예수님의 부친 요셉이 난폭한 그를 피해 갈릴리 나사렛으로 이주했다.[14]
- 헤롯 빌립 2세
헤롯 빌립 2세(Herod Philip Ⅱ, 헤로데 필리푸스)는 헤롯 대왕과 그의 다섯 번째 아내인 예루살렘의 클레오파트라의 자녀다.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와 결혼했다. 헤롯 대왕 사후 베다니, 이두래,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이 되었다.[15] 아구스도가 헤롯 대왕에게 하사했던 도시를 새롭게 정비하고 황제를 기린다는 의미로 '가이사랴'로 명명했다. 이곳은 동명의 지중해 연안 항구 도시와 구분하기 위해 가이사랴 빌립보로 불리게 됐다. 빌립은 헤롯의 아들 중 가장 존경을 받았고, 37년간 영토를 평화롭게 다스렸다. 후사 없이 죽어 조카 아그립바 1세가 그의 왕위를 계승했다.
- 헤롯 아그립바 2세
헤롯 아그립바 2세(Herod Agrippa Ⅱ, 헤로데 아그리파 2세)는 헤롯 왕가의 마지막 통치자로서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아들이자 헤롯 대왕의 증손자이다. 성경에는 '아그립바'로 기록되어 있다. 44년 아그립바 1세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을 때, 아그립바 2세는 17세의 어린 나이에 불과했기에 로마 황제는 그에게 왕국을 넘겨주지 않았다. 세월이 흐른 뒤에야 레바논 산지의 작은 공국을 이어 받았고, 갈릴리와 베레아 지방의 분봉왕이 되었다.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하자 로마로 가서 로마의 행정관이 되었고, 100년경에 사망했다. 신약성경은 아그립바 2세가 로마의 행정관 베스도와 함께 가이사랴에서 사도 바울을 심문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16] 바울은 거기서 왕을 설득해 전도하려고 했다.[17]
헤롯당
헤롯당은 헤롯 대왕이 로마 정부에 의해 권력을 위임받아 팔레스타인 전역을 통치할 때부터 그의 왕조가 몰락하기까지 정치적 이익을 얻고자 모인 친로마 계열의 정치 세력을 말한다. 유대 지역에 헬레니즘 문화를 부흥시키려 했던 헤롯 안디바의 정책을 지지했다. 예수님을 자신들의 기득권에 도전하는 정치적 메시아로 여겨 바리새파 사람들과 합심하여 탄압하는 데 앞장섰다.[18][19]
같이 보기
각주
- ↑ "나바테아", 《표준국어대사전》, 국립국어원, "헬레니즘 시대부터 로마 시대에 걸쳐 번영한 아랍계의 왕국. 수도는 페트라이며 사해의 동남 지역에 있었다."
- ↑ 최창모, "헤롯은 유다의 왕이 되고" 《이스라엘사》, 미래엔, 2007
- ↑ 가스펠서브, "헤롯" 《라이프성경사전》, 생명의말씀사, 2006, "특히 그는 각종 건축 사업에 진력했다. 요새지 건설, 저수지와 수로 확충, 경기장, 궁전, 극장 건설 그리고 사마리아와 여리고 등의 도시 건설에 힘을 쏟았다. ...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 건축이라는 대 공사(B.C. 20년경에 시작하여 그의 사후 A.D. 64년에 완공됨)를 펼치기도 했다."
- ↑ "헤로데", 《브리태니커백과사전》제25권, 한국브리태니커회사, 1994, 85-86쪽
- ↑ 가스펠서브, "분봉왕", 《라이프성경사전》, 생명의말씀사, 2006, "왕이나 황제의 허락하에서 한 나라의 일정 지역을 다스리던 군주. 왕보다는 다소 지위가 낮았으나 때론 왕으로도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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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복음 13:31-32.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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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14:3-4.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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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14:6-11.
헤롯의 생일을 당하여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대로 주겠다 허락하거늘 그가 제 어미의 시킴을 듣고 가로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왕이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을 인하여 주라 명하고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옥에서 목 베어 그 머리를 소반에 담아다가 그 여아에게 주니 그가 제 어미에게 가져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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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복음 23:7-11.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 헤롯이 예수를 보고 심히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 헤롯이 그 군병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 ↑ "헤로데 안티파스", 《브리태니커백과사전》제25권, 한국브리태니커회사, 1994, 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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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행전 12:1-4.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일이라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사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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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행전 12:6-19.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숫군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 날이 새매 군사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숫군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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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행전 12:21-23.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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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2:22-23.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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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복음 3:1.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지 열 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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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행전 25:21-23.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 주기를 호소하므로 내가 그를 가이사에게 보내기까지 지켜두라 명하였노라 하니 아그립바가 베스도더러 이르되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베스도가 가로되 내일 들으시리이다 하더라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의를 베풀고 와서 천부장들과 성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신문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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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행전 26:27-29.
아그립바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바울이 가로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 뿐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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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가복음 3: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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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가복음 12:13.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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