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과 장로교 / 통합과 합동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고려신학대학원 계열)**과 다른 장로교단 간의 분열은 주로 신사참배 문제와 교회 재건 과정에서의 갈등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 신사참배 강요와 저항

일제강점기 말기인 1938년, 당시 조선 장로교 총회는 일본 정부의 압력으로 신사참배를 결의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부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이를 우상숭배로 규정하고 끝까지 반대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한상동, 주남선, 박윤선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투옥되거나 고난을 겪었습니다.

2. 해방 후 교회 재건 문제

1945년 해방 이후 가장 큰 쟁점은 신사참배에 참여했던 지도자들의 회개와 교회 재건 방식이었습니다.

신사참배를 반대했던 인사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 먼저 전국 교회가 신사참배 죄를 공개적으로 회개해야 한다.
  • 신사참배에 적극 가담한 지도자들은 일정 기간 교회 직무를 중지해야 한다.
  • 교회의 영적 순결을 회복해야 한다.

반면 다수 교회 지도자들은 교회의 신속한 재건과 화합을 우선시하며 보다 포용적인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양측의 갈등이 깊어졌습니다.

3. 고려파(고신)의 독립

1952년 신사참배 반대 세력을 중심으로 경남 지역에서 독자적인 교단이 형성되었고, 이것이 훗날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이 되었습니다.

1952년 총회에서 이들은 공식적으로 분리되었으며, 이후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교단으로 발전하였습니다.

4. 분열의 핵심 원인 요약

구분 내용
   역사적 원인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문제
   신학적 원인       교회의 거룩성과 순수성 강조
   교회정치적 원인      신사참배 참여자 처리 방식의 차이
   직접적 원인       해방 후 교회 재건과 회개 문제

고신 측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개혁주의 신앙과 교회의 순결을 지키기 위한 운동"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반면 다른 장로교단들은 교회의 일치와 포용을 더 강조하는 방향으로 재건을 추진하였습니다.

참고로 한국 장로교의 주요 분열은 크게 고신(1952), 합동·통합 분열(1959) 등으로 구분됩니다.






대한민국 장로교회가 오늘날의 **예장 통합(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과 **예장 합동(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으로 분열된 직접적인 계기는 1959년 제44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발생한 갈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신학적·정치적·교회 행정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습니다.

1. 직접적인 분열 사건: 1959년 제44회 총회

1959년 서울에서 열린 제44회 총회에서 총회장 선거와 교단 운영 문제를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이 발생하였습니다. 결국 총회가 두 장소에서 각각 열리면서 교단이 둘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 연동교회 측 → 후일 예장 통합
  • 승동교회 측 → 후일 예장 합동

이 때문에 흔히 **"연동측과 승동측의 분열"**이라고 부릅니다.

2. 신학교 운영 문제

가장 큰 쟁점 가운데 하나는 당시 교단의 대표 신학교였던 **장로회신학대학교**의 운영권 문제였습니다.

통합 측

  • 장로회신학교 중심의 기존 체제를 유지하려 하였습니다.
  • 교회 연합운동과 에큐메니컬 운동에 비교적 우호적이었습니다.

합동 측

  • 보수적 개혁주의 신학을 더욱 강조하였습니다.
  • 신학교 운영의 독립성과 보수 신학 수호를 중시하였습니다.
  • 후에 **총신대학교**를 중심으로 발전하였습니다.

3. 세계교회협의회(WCC) 참여 문제

분열의 중요한 신학적 배경은 **세계교회협의회>(WCC)에 대한 입장 차이였습니다.

통합 측

  • WCC를 세계 교회의 연합과 협력을 위한 기구로 이해하였습니다.
  • 에큐메니컬 운동에 비교적 적극적이었습니다.

합동 측

  • WCC 안에 자유주의 신학이 포함되어 있다고 우려하였습니다.
  • 복음주의와 개혁주의 신앙의 순수성을 강조하며 비판적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4. 신학적 차이

완전히 다른 신학 체계를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두 교단 모두 다음을 공통적으로 고백합니다.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표준 신조로 채택
  • 칼빈주의 개혁신학 수용
  • 장로교 정치 제도 유지

그러나 강조점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구분 통합 합동
신학 성향 보수적이지만 비교적 포용적 강한 보수 개혁주의
WCC 참여 비참여
신학교 장신대 중심 총신대 중심
교회 연합 적극적 신중 또는 비판적

5. 역사적 평가

많은 교회사 학자들은 통합과 합동의 분열이 단순한 신학 논쟁만이 아니라,

  1. 교권 갈등
  2. 신학교 운영권 문제
  3. WCC 논쟁
  4. 지도자 간 갈등
  5. 총회 정치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평가합니다.

결국 1959년의 분열은 한국 장로교 역사에서 가장 큰 분열 사건 가운데 하나였으며, 이후 한국 장로교는 수백 개의 교단으로 분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