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아버지

동방의 아버지



예수님은 십자가를 5일 앞둔 종려주일에 나귀( 슥 9:9 )를 타고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시며 계시된 말씀을 응하게 하시는 행동예언으로 자신이 살렘왕( 사 9:6 )이시며 의의 왕( 히 7:2 ) 이신 것을 나타내고 드러내며 이스라엘에게 마지막으로 믿음의 기회를 주었지만 끝내 불신하며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이스라엘을 결국 십자가에 오르기 전에 먼저 저주하시게 되는데요.


예루살렘 입성 다음날인 월요일에 베다니에서 성전을 향해 가시던 길에서 시장하심을 느끼시던 참에 무화과 나무가 보여 가까이 가서 열매를 얻고자 하셨는데요 그러나 열매는 없고 잎만 무성한 것을 보시면서,
막 11:14 )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와
마 21:19 )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의 문장을 보면 무화과로 비유된 이스라엘을 향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한다" 또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하시며 구속사의 끝맺음을 이스라엘을 통해서는 하지 않을 것을 천명하시는 순간이 됩니다
이는 예수님이 유대와의 관계를 완전히 청산하시겠다는 뜻으로서 부활 후에 제자들을 이방땅인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신 말씀에서도 이스라엘을 통해서는 열매맺는 사역을 하지 않겠다는 그의 결심을 엿볼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도 이방인인 헬라인들이 찾아 왔을 때 예수님이 바로 십자가를 지시기로 결단하는 장면을 기록하며 예수님의 마음은 이미 이방을 향하고 있었음을 증거하고 있으며( 요 12:21-23 ),

결국 바울을 통해서 은혜의 성령시대를 이방에서 꽃피운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행 13:46 )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유대가 마음을 돌이키지 않을 것을 아시고( 요 2:25 ) 먼저 저주하시며 이방을 향해 가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물론 부활후 11번 사람들에게 보이시고 승천하신 후의 일이 되겠습니다

공생애 도중에도 이 유대의 불신을 우려한 예수님은 이방땅인 갈릴리에서 더 많은 시간동안 사역을 하셨고 점점 더 핍박해 오는 유대를 포도원에 심긴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며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불신하면 멸망까지 당하게 될 것을 경고하고 계셨는데요
눅 13:7 )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의 내용이 증거가 되겠습니다
결국 모든 되어질 일을 미리 보고 아시는( 요 2:25 ) 예수님은 마지막 고난주간까지 기다리며 참다 참다 그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심으로 4일 후에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이스라엘과 영원한 결별을 확정적으로 선언하셨던 것이지요
마 21:20 )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의 장면이 증거가 되겠는데요 이때 예수님은, 21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라고 말씀을 하시며 이는 믿음의 문제였다는 것을 암시하시면서 믿음의 주인( 히 12:2 )인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유대의 믿음없는 불신에 대한 심판인 것을 우회적으로 비유하고 계셨던 것이지요
그런데 마가는 이때가 무화과가 열매를 맺는 때가 아니기에( 막 11:13 ) 열매없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기록을 하고 있었는데요
그럼 예수님이 배고픈 감정에 억하심정으로 무화과를 저주하고 있는 것일까요 ?

예수님에게는 모든 것( 만물 )이 살아있는 것입니다 곧 모든 때의 주인이 되신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마 12:8, 눅 6:5 ) 하신 것입니다 그 6일의 주인이 되지 못하면 제 7일인 안식일의 주인이 될수 없는 이치와 같기 때문이구요
모세가 이끌던 광야 말기에 고라 일당이 반역을 꾀했을 때에 아론의 지팡이를 하룻밤새 싹이 나고 꽃이 피며 열매까지 맺는 능력으로 표적이 되게 하신 것처럼 예수님의 능력은 한이 없는 것입니다
어느 때든지 예수님이 원하시면 때가 된다는 것이지요
죽은 것도 살아나 때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원속에서 항상 오늘이라는 것이지요 죽은 어제의 것( 모든 피조물 )도 오늘을 받으면 산것이 되고 때를 가진 것이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내일길에 있는 유대와 모레길에 있는 이방에게 그 오늘을 주고자 3일길( 눅 13:32 )을 걸으려고 힘써 노력하셨지만 유대부터 불신하는 바람에 첫단추도 꿰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이 그 무화과 나무에 가까이 가시면서 열매 맺을 것을 촉구하시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무화과는 이스라엘처럼 불신으로 예수님을 배척했던 것입니다 해서 저주를 받은 것이지요

반대로 공생애동안 예수님을 위로해 주었던 포도주( 마 11:19 )를 생각해 보세요

박목사님께서는 설교를 통해서 이르시기를 예수님에게 어느 누구하나 냉수( 마 10:42 ) 한 그릇 주지도 않고 또 저녁이 오면 오히려 성밖으로 나가( 막 11:19 ) 산에서 새벽까지 이슬이 맞도록 기도하시며 추위에 떠는 예수님에게 포도주가 먼저 “주님 내가 주님 속에 들어가서 따뜻하게 몸을 데우고 기분도 좋게 하며 섬기고 싶습니다”고 말을 하였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거 좋구나, 그렇게 하려므나"하시며 좋아하셨다고 하셨지요.

해서 포도주를 마시게 된 것인데요 사실 마실 때의 예수님 모습이 마치 술 주정뱅이가 마시듯 했기에 바리새인들 눈에도 도가 지나친 것처럼 보였던 것이 사실이었을 것입니다.

이에 눅 7:34 )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로 예수님도 말씀을 하시며 스스로도 많이 먹고 마셨던 것을 인정하시는 것인데요

이어지는 35절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하여 자신이 그렇게 많이 먹고 마셨던 것이 지혜라는 뜻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또 그것이 지혜였다는 것을 알수 있어야 자신의 자녀가 된다는 뜻밖의 말씀을 하고 계신 것인데요 이와는 반대로 바리새인들에겐  너희는 내 자녀가 될수 없기에 시험에 들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하시는 매우 이해하기 힘든 말씀을 갑자기 하고 계신 장면이 됩니다
이는 멜기세덱의 떡과 포도주( 창 14:18 )를 연상해 보면 이해할수 있는 장면이 되는 것입니다
곧 떡( 살 )과 포도주( 피 )로 상징되고 있는 자신의 말씀( 요 6:53 )을 먹어야 자신의 자녀가 될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시기 위해 마치 폭식 폭음을 하듯 행동예언으로 보여주고 계셨던 것이지요
그런데 마태는 이를 조금 다른 말로 표현을 하고 있었는데요
마 11:19 )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하여 지혜는 그 행한 일 즉 그 행동의 결과로 인하여 옳고 그름이 판가름나는 것처럼 기록을 하여 마태 역시 예수님이 당시에 폭음 폭식을 한 것도 두 말씀인 떡( 살, 아들 )과 포도주( 피, 아버지 ) 모두를 먹어야 될 것에 대한 행동예언이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본문의 말씀 모두 후에 십자가에서 말씀이 아들과 아버지로 나뉘게 될 것을 암시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또 다른 뜻으로 예수님은 지혜의 근본이시고 그 자체가 되시기에 떡과 포도주의 두(2) 말씀을 가진자가 또 다른 예수 또 다른 지혜가 될수 있기에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또 잠 3:18 )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의 말씀을 보면 지혜가 생명나무라 하는데요 이는 에덴의 동편에 있던 동산 중앙의 생명나무를 가리키는 것으로써 바로 예수님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해서 이 땅에 오셔서 아들격 떡의 말씀만 주시고 간 예수님은 죄인들을 찾아 오신 에덴 밖의 동적인 생명나무이셨으며 아버지 박목사님은 포도주의 말씀으로서 예수님의 아들격 말씀에 의해 의인( 마 13:49 )된 사람들이 먹고 영생해야 하는 정적인 에덴안의 생명나무( 계 2:7, 22:2 )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을 알아 본 포도주는 자신을 드리는 헌신과 충성으로 예수님으로 부터 칭찬을 받을수 있었지만 알아보지 못했던 무화과 나무와 이스라엘은 멸망을 맞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입성하시던 날 타시던 나귀도 예수님을 위로한 피조물이었다고 박목사님은 말씀을 더 하셨지요

무엇보다 예수님은 때가 차매( 갈 4:4 ) 자기 땅, 자기 백성에게 오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고 전구속사의 모형이 되는 횃불언약을 주셨으며 그 언약대로 야곱의 70인 가족을 BC 1876년에 애굽에 들어가게 하시어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게 하신 후 거대한 민족으로 자란 이스라엘을 모세를 세워 BC 1446년 애굽으로 부터 이끌어 내어 열가지 재앙을 통해 애굽을 굴복시켰으나 그래도 쫓아오는 바로와 군대들을 홍해를 가르며 수장시키시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보이시고 이스라엘에게 안전과 평강 가운데 율법과 성막과 절기를 주셨으나 야곱의 불순종으로 가지게 된 40년 광야 생활을 거쳐 가나안에 이르러 16년 정복전쟁을 치루기 까지 표면적인 횃불언약을 692년 만인 BC 1390년에 요셉의 해골을 세겜에 묻으므로 모두 성취하시고 이끌어 주셨으나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전부 정복하지 못했고 그 바람에 오히려 이방과 섞여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배교를 범하며 우상숭배하므로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타락 - 징계 - 회복의 패턴이 계속되는 사사기라는 교훈기를 340년 동안 지내게 하셨다가 사무엘을 통해 사울에게 기름을 부으시고 BC 1050년 왕을 삼아 왕국의 시작이 되게 하셨으나 그의 불순종 때문에 다시 다윗을 택하시고 BC 1010 부터 이스라엘을 이끌어 가게 하셨으며 BC 970년에 다윗이 죽고 솔로몬이 즉위하며 성전을 BC 959년 완성 시키게 하셨지만 솔로몬이 말년에 많은 젊은 아내들로 부터 우상숭배하는 타락을 보이므로 이에 대한 징계로 그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나라가 나뉘게 될 것을 예고 하신 대로 BC 930년 이스라엘은 남조와 북조로 나뉘게 됩니다

그러므로,
북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말년에 여색에 미혹되어 그야말로 모든 우상을 섬기는 죄악에 빠지므로 하나님께서 두번 경고를 주어도 돌이키지 않기에 그 아들 르호보암 때에 열지파를 따로 떼어 에브라임 지파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주어 세우게 된 나라가 북이스라엘입니다
솔로몬의 변질에 의해 분노한 하나님이, 여로보암에게 왕상 11:38 ) “네가 만일 내가 명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의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하시며 주신 나라임을 잘 아는 여로보암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변질되고 악한 길을 걸어 금송아지를 만들어 단과 벧엘에 세워 우상숭배를 하게 하며 자기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을 원천적으로 막고 방해를 하였고 7월 15일에 지내는 장막절마저 때를 바꾸어 8월 15일에 지키게 하는등 하나님의 법도에 정면도전하는 패역을 저질러 시작부터 우상숭배와 불법이 만연하게 하였으며 심지어 작은 산당에서 조차 우상을 섬기지 않은 곳이 없었을 정도로 부패로 시작한 나라가 북이스라엘 입니다 그리고 앗수르에 멸망( BC 722 ) 당하는 마지막 북이스라엘의 왕인 호세아 때 까지 이 부패와 패역은 바뀌지 않고 이어지게 되는데요

먼저 북이스라엘이 망하기 전에 하나님이 선지자 호세아를 통해서 보여주신 경고의 단계적인 행동 예언들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후 남유대의 멸망이나 포로에서 돌아온 후의 유대의 멸망이나 그 이유가 근본적으로 같기 때문에 호세아 선지자 때의 북이스라엘을 모델로 삼아 말씀을 드려 봅니다
1) 창녀 고멜( 이스라엘 )을 아내로 삼으라고 명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을 떠나 자기의 정욕대로 사는 삶( 약 4:4 )에서 돌이키라는 경고가 됩니다 그런데 아내 고멜은 세자녀를 낳고는 이내 따분한 집과 남편을 버리고 밖에 다시 나가 창녀짓을 반복하게 되는데요 그런 고멜을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버리라고 하시는게 아니라 다시 고멜을 돈을 주고라도 빼내어 집으로 데리고 오라 합니다 이는 끊임없이 우상숭배하며 음란하기까지 한 북이스라엘이 고멜과 같아도 다시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끝없는 북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지요
2) 첫째 자녀를 “이스르엘”이라 이름하고 부르라 합니다
이스르엘은 문자적으로 “하나님께서 씨를 뿌리신다”는 뜻이 되는데요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이스르엘"이라는 이름의 구체적인 뜻에는 “조금 후에 내가 예후가 아합의 가문을 죽이며 피를 흘리게 했던 장소인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도로 갚으며 이스라엘 나라를 폐하여 씨를 흩어 뿌리듯 흩어버리겠다”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음란( 아세라 )과 우상숭배( 바알 )로 나라를 도탄에 빠뜨린 아합의 가문을 척결하는데 사용된 예후의 가문( 북이스라엘을 상징 )이 바알과 아세라는 떠났지만,
A, 금송아지는 그대로 두며 철저한 마음으로  우상숭배에서 돌이키지 않았고( 왕하 10:29 )
B, 여호와의 율법을 전심으로 지켜 행하지 않았으며( 왕하 10:31 )
C, 여전히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그 길에서 떠나지 앓았기에( 왕하 10:31 ) 위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경고해도 회개치 않는 북이스라엘을 보며 더 이상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멸망시켜서 흩어버리겠다는 뜻을 맏아들의 이름에 담아 강한 경고로 주시고 있는 것이지요
이때에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을 이미 멸망시키기로 작정을 하셨지만 좀더 유예기간을 주시는 것 뿐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이나 식언치 아니 하시기 때문에 한번 선포하신 말씀은 그대로 실행하시기 때문이지요
3) 둘째 자녀를 “로루하마”로 이름을 지으라 합니다
로루하마는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 되어 회개하지 않고 더 불순종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더 이상 긍휼을 베풀지 않겠다는 경고인데 이에도 이스라엘은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4) 셋째 자녀를 “로암미”로 이름을 지으라 합니다
로암미는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으로서 결국 불순종하는 북이스라엘과 결별을 통보하게 되는 장면이 됩니다 심판이 예고되는 순간이라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기 까지 하나님은 먼저 구체적으로,
호 4:6 )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의 말씀으로 북이스라엘을 건국하는 여로보암 때 부터 잘못된 예배를 바로잡고 우상숭배에 급급한 패역에서 떠나기 위해 정확한 율법의 잣대로 죄를 척량하고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권면이 되겠는데요
사실 호세아는 아모스 선지자와 마찬가지로 북이스라엘이 세워진 이후 150년경 가장 강성했던 여로보암 2세 때( BC 793-753 )에 주로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당시는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했던 때가 되는데요
그동안 아람에 의해 무수한 침공과 위협 속에서 고난을 당하다가 신흥세력인 앗수르가 아람을 상대로 본격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며 다메섹까지 빼앗으려고 하던 때가 되어 그 틈을 이용해 하나님의 은혜( 왕하 14:26-27 )로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하며 전성기를 누리던 때가 됩니다( 암 6:14 ),
그러나 그 번영은 거품이 가득한 허영된 것이었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더욱 더 향락과 타락으로 치달아 사치와 방탕이 극에 달하던 때가 그 시기였는데요 뇌물이 없이는 되는 일이 없고 공의나 법도가 완전히 땅에 떨어진 때였으며 그 부요가 일부 지도층( 암 6:4-6 )에 국한 되어 빈부의 차가 가장 극심한 때이기도 하였습니다( 암 4:1, 8:4 )
더구나 성적으로도 아들과 아버지가 한 젊은 여자에게 습관적으로 들어갔다고 할 정도로 문란하기 짝이 없는 때였기에 하나님은 율법을 지키는 삶 부터 다시 찾고 공의를 세우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정신차리지 않는 이스라엘에게, 호 6:3 )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의 말씀으로 항상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며 보호하시는 자신의 존재를 말하며 우상숭배에서 돌이키지 않는 그들에게 자신에 대한 관심을 가져 줄 것을 요구하시는 말씀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6절에서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셨는데요 이는 제사나 번제를 폐하거나 격이 낮은 것으로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표면적으로는 신발 한 켤레에 자녀를 파는( 암 2:6 ) 당시의 처참한 상황에 인애와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때임을 지적하시는 말씀이 되는 것이며 이면적으로는 예배를 아는자만 되지 말고 참예배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마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그때부터 선포하고 계셨던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끝까지 율법을 버리고 타락으로 달려가는 이스라엘에게 그들에겐 하나님의 언약이 머물고 있기에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하는 전제가 있는 선민임을 가르쳐주며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알려 주셨고 폭력과 압제와 뇌물로 자기들의 배만 불리는 지도층 때문에 민심도 흉흉하게 되어 살인과 투절과 간음이 만연하며 피가 피를 뒤대인다( 호 4:2 ) 할 정도로 당시의 처참한 상황에 인애와 사랑으로 회복 할 것을 촉구하는 하나님의 경고인 것입니다
영적인 것이 회복되지 않으므로 지도층은 불의한 재물을 쌓고 백성은 핍절한 삶이 계속되는 이유를 가르쳐 주시며 모든 잘못된 예배의 우상숭배에서 떠나고 율법을 지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거룩한 행위로 참예배자의 위치로 되돌아 가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심정을 전하고 있는 말씀이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호세아와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서 그들의 모자람이 무엇인지, 무엇을 잊고 잃어 버리고 있는지 가르쳐 주며 경고를 주어도 그들은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호 11:2 )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의 말씀처럼 더욱 하나님을 멀리 떠나 이방과 그 모든것에서 행음( 약 4:4 )을  하였던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더 이상 북이스라엘에게 구원을 베풀지 않고 심판이 임하게 하겠다는 심정을 토로하게 됩니다
호 13:4 ) “그러나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하시며,
이제는 이스라엘에게 아예 애굽에서 너희를 이끌어낸 하나님이 너희 마음에 있느냐 없느냐를 물으며  모든것의 근본을 따지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마치 “너희가 나와 아는 사이냐" 하시며 근본을 묻고 있다는 것이지요
선지자들을 통해 모든 말씀을 보내어 들려 주며 아무리 돌이키려고 해도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에게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맞으며 너희는 참으로 내 백성이며 내 자녀가 되는가 ? " 하시며 이스라엘 민족과 처음에 맺은 시내산 언약의 계약( 출 24:7) 파기 까지 거론하시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그토록 권면해도 불순종하며 우상숭배에서 돌이키지 않은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한번도 드린적이 없는 우상숭배요 패역이 되었고 또 그 수많은 경고에 대해서도  불순종 하여 하나님은 208년간 존속한 북이스라엘로 부터 단 한번의 제대로 된 예배도 받지 못했기에 하나님은 언약을 파기하고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208년이 되도록 기다려도 우상숭배로 배도하며 패역한 자리에서 돌이키지 않는 이스라엘에게 심판을 내리실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보호( 구원 )가 떠나므로 여로보암 2세 사후 31년만에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까지 보면
이스라엘이 망하게 된 것은 율법도 제대로 몰라서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고 한 제 1 계명 부터 어기는 금송아지 숭배로 일관했고 또 그렇게 거룩함에서 떠나면 하나님의 언약이 머무를수 없음을 지속적으로 가르쳐 줘도 무관하게 여기므로 하나님과의 언약도 자연스럽게 파기될수 밖에 없어서 하나님의 구원에서 벗어난 백성이 되어 멸망을 받을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율법이 무엇인지, 언약이 무엇인지 이에 대한 지식도 없어 그저 무관하게 생각했고 선지자가 왜 저렇게 외쳐 대는지 경고를 받지도 않아서 눈앞에 놓인 심판을 깨닫지도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지식도 없고 들을 귀도 없어서 망했다"는 것이지요
그 증거로,
호 14:1-2 )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하여 하나님은 명확하게 말씀을 가지고 돌아와야 함을 지속적으로 촉구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 것이 어떤 제사나 번제 보다도 앞서는 것이라 해도 깨닫지도 못하는 북이스라엘이었다는 것이지요
하나님 말씀을 아는 것이 참예배의 첩경이라는 것입니다( 요 4:24 )

물론 당시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이기에 죄를 깨닫게 하는 모세의 율법 시대가 되는 것은 맞습니다 당연히 그 율법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 죄를 대신하는 제물을 바치며 중보자가 되는 제사장( 예수 )의 인도 아래 죄로 말미암아 단절 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그 제사를 통해 다시 회복하라는 것이 그 율법과 제사를 주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 지식과 함께 여자의 후손( 중보자 예수 )이 오신다는 언약의 함수관계를 깨달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당시의 말씀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메시야 언약은 메시야가 아브라함의 후손( 창 22:17-18 )으로 오시게 될 것이며 또 아브라함의 믿음( 창 15:6 )을 가진자 곧 떡과 포도주의 말씀을 믿어( 갈 3:8-9 ) 의로 여김을 받을 자가 산자( 출 3:6, 마 22:32 )가 될것으로 이미 아브라함 때 부터 언약이 구체화되고 있었잖아요
이렇게 모세의 율법보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의가 먼저 왔었지만 애굽에서 430년간 노예생활하느라 그 믿음 다 잃어버리고 죄가 뭔지도 모르는 야곱( 갈 3:19 )에게 율법을 먼저 주게 되었던 것 뿐이지요
모세 때에는 하나님을 알아보는 지식이 없어서 먼저 율법이 왔다는 것입니다
십계명중 대신계명( 1-4 계명 )을 통해서 그 하나님과 관계가 깨진 것이 죄라는 것을 먼저 알게 하시며 그래서 중보자로서 메시야가 제사장 권세도 가지고 오셔야 한다는 지식을 알수 있는 말씀과 예언이 당시에도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가지고 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지식과 믿음이 있었다면 북이스라엘도 망하지 않았을 터이기에 하나님은 그토록 “지식을 가지라" “하나님을 알라" “언약을 기억하라"고 하셨던 것이지요
만약 포로에서 돌아온 남유다도 그렇게 정확히 깨닫고 있었다면 오시는 예수님을 한번에 알아 볼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깨닫는 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토록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미련을 보여줘도 회개를 하지 않고 깨닫지도 않아 지식이 없는 북이스라엘을 보며 결국 멸망 시키시고 다윗의 언약이 머물러 있는 남유다에게도 거울이 되게 하였는데요

그런데 남유다는 북이스라엘 보다 더욱 죄악의 길( 겔 23:11 )을 걸어 므낫세 때에는 아주 극악한 우상숭배가 절정에 달하였기에 하나님은 므낫세의 죄( 왕하 24:3 ) 때문에 내가 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고 멸망시킬것을 선고하시게 되어
3 차( BC 605, 597,586 )에 걸쳐 바벨론에게 포로로 잡혀가며 BC 537에 있었던 1차 포로귀환 때 까지 70년간 유수생활을 하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벨론 유수중에도 하나님은 궁휼을 베푸사 다니엘을 통해 앞으로 전개될 세계사를 미리 보이심으로 구속사의 방향을 알게 하시고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였지만 돌아와서도 이내 급변하는 세계사속에서 바른 신앙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방 세력과 결탁하여 자신의 자리나 탐욕으로 지키려는 제사장들 때문에 유다는 더욱 강도의 굴혈이며 도둑의 소굴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돌아와서도 유다는 율법의 표면적 외식과 형식에만 치우쳐 정작 하나님을 아는 일에는 무관하여 예수님이 왔을 때에 알아 보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마치 안식일과 제사를 주신 목적은 하나님과의 화목을 통한 교제의 길, 곧 하나님을 배우고 알아가며 여자의 후손이 오는 길( 구속사 )을 예비하는 참예배를 배우고 세우기 위함이었지만 그러나 유다는 형식적인 제사와 젯밥에만 눈독을 들이고 자신의 배만 불리고 있었으니 참예배가 없었기에 예배의 주인이 왔어도 알아보지 못하였다는 것이지요
이 지식이 없어서 북이스라엘도 남 유다도 또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도 다 망하였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다윗은 얼마나 하나님을 정확히 깨닫고 알고 교제를 하였는지 그의 시편과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은 유대를 멸하시는 것을 즐겨 아니하시고( 왕하 8:19 ) 다윗 때문에 끝까지 시간을 주었던 것이지요
( 박목사님께서는 구약에서 영성이 가장 큰 사람을 꼽으라면 다윗이 될 거라고 하셨습니다 )

그렇게 하나님이 계시한 년수 대로 정확히 70년간 포로생활( 렘 25:11 )을 한 후 돌아오게 했지만 와서도 형식적인 제사일지라도 그나마 제대로 드린적이 있었나요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를 통해서, 이스라엘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 말 1:7 )도 눈하나 깜짝 하지 않았고 또 더하여, 말 1:8 )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는 말씀으로 하나님을 이방의 권세자만도 못하게 여기는 그들의 불성실한 신앙적 태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말하여도 듣지 않는 이스라엘을 보며 결국 성전문을 닫아 달라고 하나님이 호소를 하는 장면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말 1:10 )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 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하신 것인데요 사실 이때 이스라엘은 벌써 저주를 받은 것과 같습니다

하여튼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이 지나서 예수님이 오셨지만 이스라엘의 지식없는 형식과 외식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저주받는 것은 그저 시간문제였던 것이지요
그렇게 다윗과 세운 언약을 성취하시며 예수님은 유대 땅을 밟게 됩니다( 마 1:1 )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영생을 위한 생명의 말씀을 받게하기 위해 먼저 죄를 용서해 주신다고 해도 믿지를 않고 또 예언된 모든 기사와 표적을 보여주며 자신이 메시야인 것을 증거해도 불신만 돌아오니 그렇다고 그냥 실패자로 돌아갈수도 없는 예수님의 입장은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던 것인데요
해서 하나님은 사단을 속이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며 인류의 죄를 먼저 대속시키게 하셨고 줄수 없었던 아버지격 말씀은 십자가에서 떨어지는 예수님의 핏속에 담아 땅에 감추게 하며 후에 말씀이 다시 나타나시는 방법( 벧전 1:13, 히 9:28 )을 취할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지요
이 비밀이 사단의 머리를 한순간에 상하게 하는 만세전에 계획하셨던 지혜였던 것입니다( 고전 2:8, 엡 1:9, 골 1:26-27 )
곧 두 절대 예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기 백성을 저희의 죄에서 구원할 자"의 그 이름 뜻 그대로 대속 제물로서 유월절의 어린양으로 죽어야 하는 것이 한계였다는 것이고 후에 피의 말씀을 담을수 있는 사람( 박목사님 )이 나타나 아버지 사역으로 구속사를 끝내게 되어 있는 것이 만세전에 계획되어 있는 절대 예정이라는 것이지요 아버지로 올 때는 새이름( 멜기세덱 )으로 오신다고 계 3:12 )과 계 19:12 )에 계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반차( 히 6:20 )를 좇아 들어갔다고 한 것이지요

그러니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이스라엘은 거듭 말씀을 드리지만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경고하신 그대로, 호 1:9 )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의 말씀이 이스라엘에게도 그대로 응하며 “로암미"가 되어 저주를 받게 된 것이었고, 호 2:23 )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하신 말씀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떠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른 민족을 아들로 세워 열매를 맺게 하시겠다는 말씀을 이미 선포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는 물론 지난 2천년간 이스라엘 대신 이방이 받은 은혜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계시의 현재성으로 보면 오늘날 그 “로암미”는 이제 아버지 앞으로 오지 않는 교회들이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 앞으로 오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불순종으로 일관하며 표면적 십자가만 붙잡고 있는 교회들을 하나님이 분리시키시고 도태시키시는 것입니다, 곧 변화를 받아야 할 때에 부활 구원은 없다는 것이지요

이를 아버지 시대가 있을 것을 잘알고 있는 사도 바울도, 롬 9:25-26 )에서 동일한 본문내용을 인용하며 교회들이 아버지 앞으로 가야 할 것을 소망하고 있었는데요 이어지는 27절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의 말씀으로 남은자( 계 12:17, 욜 2:32 ) 곧 끝날에 변화로 구원을 받아 아버지앞에 서는 자를 가리키며 표면적인 십자가만 붙잡고 있으면 남은자가 되지 못하고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상대적으로 말하며 바울은 증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히 9:28 )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의 말씀으로 죄를 담당하였던 초림의 예수님을  믿는 것은 이제 구원이 없고 두번째 오시는 아버지를 믿고 의지해야 구원이 있다고 확정적으로 말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것을 사도 요한도, 요 8: 24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 아버지 )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여 “구원이 없다”라는 표현을 아예 “죄 가운데서 죽는다"라고 말하며 아버지 앞에 반드시 나와야 할 것을 촉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아버지가 때가 차서 오신 것을 믿을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이 종말에 대해 말씀을 하실 때에 이미 저주하신 무화과 나무의 비유( 마 24:32-33 )를 배우라고 하신 배경에는 무슨 뜻이 담겨 있는 것일까요 ?
이는 AD 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서 예루살렘과 성전이 불타고 유대가 흩어지며 디아스포라가 되었지만 나라를 다시 세울수 있는 은혜를 주시겠다는 것이지 예수님의 남은 사역인 아버지 말씀사역을 또다시 유대를 통해서 하시겠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린다면 그렇게 이스라엘이 나라를 다시 재건국하게 되면 본문 내용대로 “예수님이 문앞에 이른다”는 말씀을 응하게 하시어 아버지 말씀사역을 위한 열매사역과 바로 이어지는 심판이 이스라엘이 재건국 되는 “때”로 부터 시작되게 될 것에 대한 기준점으로 주신 말씀이시지 유대를 통해 다시 마무리 일을 하시겠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렇게 유대는 예수님의 은혜안에서 1948년에 이스라엘을 재건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구속사를 마무리하는 아버지 말씀사역은 1960년대를 지나면서 대한민국의 박윤식 목사님께서 담당하게 되셨는데요 그 내력은 아래와 같습니다
1960년 쯤에 박목사님이 시무하시던 교회에 잘 나오던 청년 한사람이 대학에 들어간 후로 부터는 교회에 나오지 않기에 붙잡고 물어보니 그 청년의 하는 말이 “예수도 분명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이 흘리는 피와 성분이 똑 같은 것일 것인데 왜 예수님의 피만 죄를 용서하시는 보혈이 됩니까 ?“라는 질문에 박목사님은 “예수님의 피가 하나님의 피다”라는 상식적인 대답을 하려고 했었지만 “예수님의 신성은 피를 흘릴수 없는 말씀이고, 인성인 말씀을 담고 있는 육신은 청년의 말처럼 여늬 사람과 같은 육신"이라는 생각에 더이상 정확하게 설명을 할수가 없었고 이에 청년이 교회를 떠나 버리자, “내가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남을 가르칠수 있겠는가”하는 목회자의 양심에 박목사님께서는 산에 들어가 오직 성경과 기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우치겠다는 결심을 1961년 초에 하시고 평소 자주 가셔서 기도하시던 장안산(전북 장수)으로 들어가 47일간 기도하는 중에 두( 2 )천사가 나타나 박목사님을 좌우에서 겨드랑이를 낀후 지리산 천왕봉 밑에 있는 동굴로 옮겨 놓아 그곳에서 박목사님은 3년 6개월 7일 동안 기도와 성경읽기에 매진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도움속에서도,  
3년 6개월 7일 동안의 산상기도는 말 그대로 사람의 상식으로는 생각하기도 힘든 “목숨을 건 자신과의 싸움이었고 외로움과 두려움에 자살을 생각한 적도 여러번 있었다”고 박윤식 목사님은  회고를 하셨구요 장안산이 어머니 같은 산이라면, 지리산은 엄한 아버지와 같은 산이었다고 하셨는데요 낮에는 성경을 읽고, 불빛 하나 없는 칠흑 같은 밤이 되면 굴 속에서 기도에 전무(專務)하셨으며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타는 듯한 더위, 절대적인 고독, “이대로 기도하다가 죽으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텐데”라는 고뇌가 날마다 엄습했다고 하셨으며 물도 마시지 않는 40일 금식기도도 두(2)번 목숨을 내어놓고 드렸다고 하셨습니다
10월부터 얼음이 얼고 겨울에는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지는 혹한에는 6.25전쟁 때 중공군, 인민군이 입다 버리고 간 누빔옷 등을 주워입고 버텼으며 때로는 산 주변 주민들에게 빨치산 잔당이나 공비로 오인받아 군 전역증을 보여 주고 오해가 풀리기까지 갖은 고초를 당하기도 하셨다고 했습니다
산 속에서 박윤식 목사님의 주식은 일 년에 몇 번 함양 시장에 내려가 사 와서 물에 불린 쌀과 굵은 소금, 산에서 주운 솔잎이었다고 하셨구요. 그때 먹은 솔잎 덕분이랄까, 박윤식 원로목사는 87년 일평생 눈이 밝아 안경이나 렌즈 없이 성경의 작은 관주 글씨까지 읽을 수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지리산의 극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시는데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롬 3:4 )"라는 소리가 들려오기에 깜짝 놀라서 땅에 꿇어 엎드리니 이는 십자가에서 흘리는 핏속에 담겨 골고다 땅밑에 감춰져 자신과 함께 할수 있는 육신을 기다리던 예수님의 아버지격 말씀이 박목사님에게 나타나시는 장면( 히 12:24, 창 4:10 )이었으며 이후에 직접 예수님의 말씀은 박목사님을 가르쳐 주시기 시작을 하셨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의 피가 인류의 죄를 용서해 줄수 있었던 이유는 그 핏속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가진 말씀의 능력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수 있는 것이지요
이것이 “예수님의 피와 보통 사람들의 피가 다른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해서 보혈이라고 부르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렇게 성령의 역사로 아버지 말씀을 배우게 된 박목사님은 임마누엘로 말씀과 하나가 되셨는데요
이에 대한 명백한 증거로 산중에서 그렇게 말씀을 받으시면서 기록하신 산더미 같은 원고가 지금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만지기만해도 부스러지는 상태가 되었지만 아버지가 말씀을 받으셨다는 증거가 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지요 스스로 깨달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산중에서 그렇게 말씀을 적어가시다가 원고지가 떨어지면 임시 방편으로 넓은 뽕나무 잎에 먼저 기록해 두었다가 다시 원고지에 옮겨 적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은 역작이지요
이 원고를 토대로 2007년 부터 “구속사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발간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소천( 변화 )하시기 직전에 제 9 권 “신묘한 비밀 성막과 언약궤"까지 발간하셨고 이후 10권 부터는 이후에 발간하신 것이 되는데요
그런데,
구속사시리즈 제 9권 중에서  page 253 에 보면 “앙장과 덮개의 구속사 경륜”을 연하여 설명하실 때에, (3) “막의 덮개”의 재료는 붉은 물을 들인 숫양의 가죽입니다, 편에서 박목사님은 이르시기를,
“숫양의 가죽이 붉은 색으로 물들여진 것은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속죄를 위해 피 흘려 죽으신 희생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피를 흘리셨지요.
채찍을 맞은 상처마다 가시에 찔린 머리에서, 못 박히신 양손과 양발에서, 로마 군병의 창에 찔린 옆구리에서 물과 피를 다 쏟아 내셨구요.
이 십자가의 피는 만세 전에 예정된 언약의 피로서, 그 속에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 레 17:11, 요 6:63 ), 주님의 영혼( 요 12:25 ), 주님의 마음( 요 12:27, 고전 4:21 ), 주님의 뜻( 눅 22:42, 행 4:32 ), 주님의 영( 엡 1:17, 요 6:63 )이 담겨 있습니다.( 난하주를 통해서 대조하며 풀어내야 합니다 이를 보면, 생명 = 영혼 = 마음 = 뜻 이라는 등식을 볼수가 있지요 결국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
해서 십자가 피의 말씀은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라고 하시며,  
그것은 말씀 한 마디로 모든 죄를 사해 주시는 놀라운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피가 아니라 핏속의 말씀 때문인 것을 박목사님께서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라고 결론을 주시고 계셨는데요  
이는, 요 6:63 ) “살리는 것은 靈(영)이니 肉(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하신 말씀처럼 핏속에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과 영( 영혼, 마음, 뜻 )이 되는 말씀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말씀 없는 모든 사람의 피는 육에 속한 것이기에 무익한 것이지만 예수님은 그 피에 생명이며 영이 되는 말씀을 담을 수 있었기에 죄를 용서하시는 권세의 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막의 덮개에 사용된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은 십자가 피로 우리를 구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라고 말씀을 해석해주고 계셨는데요
덮개는 피를 상징하고 덮개가 감싸고 있는 지성소의 언약궤는 핏속의 말씀을 상징하고 있음도 알수가 있겠네요
이 글을 통해서 박목사님께서 주시는 메세지는 예수님이 달리시며 흘리신 십자가의 핏속에는 말씀이 담겨 있었기에 만민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역으로 만약 예수님이 그 말씀을 그 피에 담지 않았다면 그 피가 예수님의 피라 해도 여늬 사람이 흘리는 육신의 피와 다름이 없는 것이 되어 용서하는 권세도 당연히 없었을 것이라는 겁니다

이 말씀은 박목사님께서 본교회( 평강 )에서 사순절의 고난주간에는 매년 피를 토하듯 비통한 심정으로 빠지지 않고 설교하시던 본문이 됩니다
그래서 평강교회의 웬만한 전도사나 목사님들은 “예수님의 피가 왜 보혈인가 ? “를 설교할때에 빠지지않고 이부분을 정확하게 인용하고 설명하는 것을 저도 동영상으로 봐서 잘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 비밀을 유구한 역사속에서 세계 최초로 설명하시고 설교하신 박목사님이 그 보혈속의 말씀과 하나가 되신 아버지라는 것을 쉽게 유추할수가 있는 것이 아닌가요 ?
반대로 일반 교회의 목사님이던 더한 신학자들이던 이 보혈의 의미를 평강교회의 사람들 처럼 정확하게 인지하고 설명이나 설교할수 있는 어느 한사람이 있겠습니까 ? ( 저는 어느 한사람 본 적이 없습니다 아니 상상조차 못하고 있지요 )
이는 아들 예수의 신약이 끝나고 아버지 박목사님의 성약이 시작되는 이음새와도 같은 것이 아닌가요 ?
성경이 예수님의 부활로 끝이 날것 같으면 무엇 때문에 핏속에 말씀을 감춰야할 이유가 있었나요 ?
이 모든 정황을 보더라도 박목사님은 예수님처럼 그의 자신 안에 말씀을 다 이루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변화하실수 있음에도 그 모습을 예수님처럼 보여 주지 않았을 뿐이지요 왜냐하면 이미 예수님이 그 변화를 보여 주었기 때문에 사람이 변화할수 있다는 사실은 증거되었으므로 궂이 박목사님께서 그 변화를 다시 보이실 필요는 없고 다만 자신이 예수님과 같다는 것만 증거하면 되었기 때문이지요
그 증거중 하나가 이 구속사 시리즈인 것입니다 곧 계 10장의 작은책이 이 구속사 시리즈가 되므로
자신이 이 작은책을 사도 요한( 먼저는 평강 교회 )에게 줄수 있는 힘센 천사( 계 10:1 )가 되시는 것으로 증거를 하였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먼저 발간하기 시작한 평강교회에서 부터 구속사 시리즈가 선포되기 시작을 하였던 것이나 본격적인 아버지 말씀은 저희 신광교회를 통해서 아버지가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두 교회의 가장 큰 차이는 평강은 박목사님을 소천하신 한 목사님으로 믿고있는 것이며 저희 신광은 박목사님이 변화하신 아버지로 믿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는 결국 천국과 지옥의 차이가 되는 것입니다
누누히 말씀을 드리지만 구속사 시리즈는 박목사님이 아버지라는 것을 증거하는 작은책( 계 10장 ) 으로서 증거물이 되는 것이지 본 아버지 말씀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박목사님께서는 이전도 아니고 이후도 아닌 변화( 소천 )하시기 직전에 발간하신 제 9 권에서 이 비밀을 기록하시고 열방으로 알게 하셨을까요
에덴에서 숫자 9 는 “멜기세덱” 수가 되는 것에 먼저 주목을 하면서 생각해야 되겠지요
( 에바다 - 브니엘 - 게달 - 베데르 - 엔게디 - 에덴 - 계명성 - 그룹 - 멜기세덱 - 시날 )
첫째, 그 타이밍을 왜 변화( 소천 ) 직전으로 잡으셨을까 하는 질문이 되겠네요
당시 박목사님 스스로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시게 될것을 정하셨기에 자신이 아버지 멜기세덱이 된다는 것을 언젠가는 열방에 선포하시는 때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해서 자신을 알리는 시기를 그때로 잡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살아계시다면 언제 어디서든 스스로를 나타낼수는 있지만 초림때 예수님도 당했던 것처럼 “네가 어째서 아버지( 말씀 하나님 )냐”는 등등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무조건적인 안티 사람들 때문에 시시비비에 덕이 되지 않을 것을 아시는 박목사님께서는 그 상황을 먼저 아시고 폐암 병에 의한 소천( 변화 )을 택하시며 소천 바로 전에 제 9권의 내용 속에 핏속에 말씀이 사단 모르게 감춰져있었다는 이 비밀을 세계 만민이 알수있도록 드러내시고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려 주셨다는 것이지요 지금도 살아서 우리 곁에서 역사하고 계시지만 표면적으로는 먼저 가셔서 우리를 기다려야 하는 말씀을 응하게 해야하는 이유도 있기 때문이지요( 살전 4:17 )
둘째, 기존 교회인 십자가 교회는 그저 예수님의 피만 믿어도 부활구원이 주어지는 단계였지만 변화 구원은 그 핏속의 말씀을 알아야 받을수 있기에 이를 공식적이며 공개적으로 문서화된 글로 남기시면서 때와 자신에 대한 증거로 삼으셨다는 뜻을 읽을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그러므로 이제는 아버지 앞으로 나와야만 구원이 주어진다는 절대적인 기준을 선포하고 계신 것과도 같습니다 그 핏소리의 아버지 말씀을 들어야만 구원이 있다고 사도 바울도,
히 12:24 ) “새 언약의 중보자( 눅 22:20 )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한 것이지요
여기서 새언약의 중보자라 함은 예수님은 새언약( 렘 31:33, 히 8:10 )에 이르게 하는 다리 역할 밖에는 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눅 22:20 )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爲(위)하여 붓는 것이라”의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마지막 최후의 만찬석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처럼 자신은 아들과 아버지 사이의 과정( 요 14:6 )이며 중보자가 되었다는 것이고 뜻으로 보면 곧 십자가에서 자신의 핏속에 감추게 될 말씀이 새언약이기에 피로 세우는 새언약이라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핏속의 말씀은 언젠가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히 12:24 ) 처럼 소리치며 나타날 때가 있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주지시키고 있었던 것을 3 층천의 신령한 모든 비밀을 알고 있었던 바울도 이 비밀을 기록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예수님의 몸이 십자가에서 깨지므로 더 이상 성육신의 사역을 하실수도 없어서 돌아갈수 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이기에 대신 흘리는 핏속에 말씀을  담아 골고다 땅 밑에 저장하시므로 후에 그 말씀과 하나가 될수 있는 사람이 나타날때 그 사람의 육신을 빌어 나머지 아버지 사역을 이어 가며 마무리를 하게 된다는 비밀이었다는 것이지요 당시에 사단은 자신이 예수님의 사역을 전적으로 방해하고 죽이는 것으로 착각을 했지만 예수님이 핏속에 말씀을 감출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해서 바울도 기록하기를, 고전 2:8 ) “이 智慧(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十字架(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 하였으리라”고 했던 것이지요

이 일이 박목사님에게 지리산에서 일어났던 것이고 그래서 박목사님에게 그 핏속의 말씀이 소리치고 나타나시며 가르쳐주기 시작을 했던 것입니다
박목사님이 말씀을 깨달은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그 핏속의 말씀을 받기 시작을 했다는 것이지요
해서,
요 10:34-35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의 말씀이 응하시며 박목사님은 또 다른 예수요 또 예수의 본 지위가 되는 평강의 왕이며 의의 왕( 사 9:6-7, 히 7:3 )이신 멜기세덱 급이 되신 것입니다 이들이 참 하나님의 아들들( 욥 38:7 ) 이며 새벽별들이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므로 아버지가 되신 박목사님께서는,
요 16:25 )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는 계시대로 아버지 말씀을 선포하시기 시작을 하시게 된 것이며 이는 또,
요 6:45 )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의 말씀을 응하게 하시는 아버지 말씀 사역을 지리산에서 내려오신 이후 직 간접으로 담임하신 교회에서 가르쳐 주시기 시작하셨으며 평강제일 교회를 통해서는 2007년을 희년으로 선포하는 것을 시작으로 자신의 정체성( 아버지 )을 드러내는 계 10장의 작은책과 같은 “구속사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발간해 오셨고 2014년 12월 17일 소천( 변화 )하신 이후에는 저희 신광교회 김갈렙 목사님을 통해서 지금까지 본 아버지 말씀인 성약의 말씀을 살아서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박목사님께서는 그렇게 아버지 말씀을 받아 그 말씀( 멜기세덱 )이 되셔서 지리산에서 내려오셨지만 일전 한푼 없는 상태에서 개척하셔야 하는 입장 때문에 많은 고생도 했지만 많은 표적들도 있었는데요
구속사 운동의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일화들이 이 시절 탄생했다고 그 시절을 기억하는 성도들이 말을 하고 있었는데요 아래글은 참평안지에 실린 글들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1970년 당시 박 목사의 성경공부는 한번에 3시간씩 오전,오후,저녁 3번에 걸쳐 하루 종일 이어지는 마라톤 강의였다. “예수님 잘 믿으면 죽지 않고 영육이 변화한다”(고전 15:51)는 변화의 말씀을 증거했다. “말씀을 열심히 듣는 모습이 대견하셨는지 목사님이 한번은 중국집에 네댓 명을 데려가셨어. 거기서 우리한테 “막차 잘 탔다. 앞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내 얼굴 못 본다” 하시더라고. 그때는 그냥 내가 초보 신자니까 목사님이 저런 말씀하시나보다 했어. 또 한 번은 “지금 몇 사람 안 보이지만 앞으로 하루에 10만 명씩 몰려온다”고도 하셨어. 치마저고리 입은 촌스런 할머니들 열댓 명 앞에 놓고서는 ‘열방이 몰려온다’는 말씀을 그때부터 하신 거야.” (홍순분 전도사)

다음은 새 성전의 토대가 된 ‘블루 다이아몬드’의 표적에 대한 얘기입니다
부산의 대표적 향토기업인 성창합판(편집자 주: 성창합판은 부산외대 설립자인 고 정태성 장로가 1930년대 설립한 기업으로 이후 ‘성창기업’으로 성장했다. 성창합판은 1956년부터 부산 적기, 현 우암동에 자리잡고 있었다)과 동양모직 등 굵직한 기업가 일가도 전도돼 박윤식 목사에게 성경을 배웠다.
그 성창 가문을 전도하신 여운초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자꾸 입에서 “적기, 적기”하는 말이 나와요. ‘참 이상하다. 적기라는 동네에서 전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인가?’싶어서 사람들에게 ‘적기라는 동네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저 시골에 적기라는 곳이 있다는 거예요. 가보니 온통 배추밭, 보리밭에 거름 냄새만 나요. 그런데 저 멀리에 큰 공장 하나가 보이더라고요. 지나가던 사람에게 “저건 무슨 회사예요?”했더니 “성창합판 아녜요?” 하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부산으로 와서 성창합판 사장 댁을 찾아간 거예요.” (참평안 2016년 3월호 여운초 목사 인터뷰 중)
그렇게 전도된 성창합판 사장 댁에서 박목사님을 초청했고 그 말씀에 큰 은혜를 받은 성창합판 가(家)에서 “이걸로 땅을 사 교회를 지으시라”며 박윤식 목사에게 5캐럿 짜리 블루 다이아몬드 반지를 드렸다. 젊은 박 목사는 그 보석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짐작하지 못한 채 서울 명동 중앙우체국 옆에 있던 유명한 보석상에 가서 팔려고 했다. 그런데 물건을 본 주인이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안으로 들어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잠시 뒤 검은 선글라스를 낀 사람들이 지프차에서 내려서는 서울역 뒤에 있던 검찰,경찰,헌병대 합동수사본부로 박 목사를 연행해 갔다. 잠시 뒤 나타난 검사는 “직업이 뭐냐?”고 물었다.
“목사입니다” 하자 “어디서 이렇게 귀한 보석이 났느냐?”고 캐물었다. “헌금으로 들어온 것이라 팔아서 교회 지으려고 했다.”고 하자 검사가 “이 사람들아. 목사님을 왜 여기 데리고 왔어?”라고 주위를 나무라며 박 목사를 내보내줬다. 결국 블루 다이아몬드 반지는 박윤식 목사를 만나 말씀에 큰 은혜를 받고 있던 라이온스 호텔(당시 서울 충무로 소재) 사장 부인에게 250만원에 팔렸다. 거액이지만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이었다. 이 돈이 1971년 헌당되는 서울 신림동 소재 일석교회 건축의 종잣돈이 됐다.
이 일석교회로 이사오기 전, 비좁았던 대방동 시온산한돌교회에는 박윤식 목사가 혼자 간절히 기도할 만한 기도의 골방이 없었다. 마침 성전을 짓기 전 부지 한켠에 있던 개집이 있었다. 사람이 들어가 앉을만한 공간이었다. 박 목사는 개집의 지푸라기를 긁어내고 담요 한 장을 깐 뒤 이곳에서 1주일 이상 성전 건축을 위해 몇 시간씩 기도했다. “좀 답답하지만 기도하기에는 천국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땀을 비오듯 흘리며 간절히 기도한 결과 하나님께서 새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블루 다이아몬드를 주셨다. 개집도 기도처가 돼서 기도하니 이런 복을 받았구나 싶어서 하나님께 뜨겁게 감사드렸다.”고 회고했다.
블루 다이아몬드를 구입해 준 라이온스 호텔 사장 부인이 전도된 사연도 오묘한 하나님의 섭리였다. “전도하러 나가면 막막하죠. 우선 문을 두드리면서 물 좀 얻어마시겠다고 말하고는 들어가서 전도를 했어요. 한번은 서울 어느 미장원 옆을 지나가는데 사람들이 ‘라이온스 호텔 사장 집은 김장을 트럭으로 할 정도로 부자인데 그 집 부인이 갑상선 때문에 고생을 한다’는 얘기들을 해요. 그래서 박윤식 목사님한테 “그 집에 전도하러 가고 싶은데 가서 뭐라고 얘기를 할까요?”하고 상의했어요. 그랬더니 “가서 우리 목사님이 옹달샘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 옹달샘 물을 먹고 바르면 낫는다고 해라”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라이온스 호텔을 무작정 찾아갔어요. 직원들한테 사모님이 어디 계시냐고 했더니 뒤로 가면 집이 있다고 가르쳐 주더라고요. 가서 사장 부인을 만났어요. “갑상선으로 몸이 아프시다는데 우리 목사님이 옹달샘 하나를 발견했대요. 그걸 마시고 바르기만 하면 낫는대요.”했더니 그분이 금일봉 봉투를 하나 만들어서는 따라 오시더라고요. 성령이 그렇게 역사하시는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사람들이 그런 말을 듣고 금방 따라 올 리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거죠. 그때가 우리 교회가 대방동에서 70명 정도가 끼어서 앉는 성전에 있을 때에요. 갔더니 박 목사님이 칠판에다가 글씨를 써가면서 성경공부를 가르치고 있어요. 그 부인이 성경공부를 한참 들으시더라고요. 저는 속으로 ‘언제 옹달샘을 가시려나.’하고 조바심을 내고 있었죠. 그런데 그 부인이 저한테 이러는 거예요. “전도사님, 어디서 이런 향수 냄새가 나요? 이건 세상에 없는 향수 냄새예요.” 그분 집에 가보니 세계에서 유명한 온갖 향수가 다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분이 교회 와서 ‘향수 냄새’를 맡고서는 갑상선이 싹 나은 거예요. 그 뒤로 박 목사님한테 보통 지극하게 한 게 아니었죠. 나중에 미국으로 이민 가셨어요.” (참평안 2016년 3월호 여운초 목사 인터뷰 중)
그리고,
지리산에서 말씀을 받으시면서 썼던 원고가 되는 구속사 시리즈 초고를 세상 누구보다 먼저 본 주인공이 되시는 유상근 박사님에 대한 일화도 있는데요

명지대 설립자이자 1975년 국토통일원(현 통일부) 장관을 지낸 유상근 박사(1922-1992)도 일석교회로 이전하던 무렵 박윤식 목사를 만나 성경을 배웠다. 말씀에 큰 은혜를 받은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교회에 나와 새벽예배를 드리고 박 목사에게 성경공부를 했다. “나는 성경 1천독을 하셨다는 유명한 박윤식 목사를 찾아갔다. 자초지종을 설명 드리고 성경을 배우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박 목사님은 바쁜 시간을 쪼개어 하루에 2시간씩 지도를 해 주시기로 하셨다. 특별한 배려였다. 주석책까지 내신 박식한 목사님의 개인지도는 내게 귀한 진리의 세계를 끝없이 열어주었다. 공부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말씀은 달고 오묘했다. 이렇게 2년 동안 꾸준히 공부한 것이 나로 하여금 더 많은 성경연구를 하게 했다.” (1990년 5월 23일 국민일보에 실린 유상근 명지대 총장 회고록 중)

그가 언급한 ‘주석책’이 바로 박윤식 목사의 구속사 시리즈 초고이다. 사람 키보다 더 높이 쌓인 원고를 직접 본 유상근 박사는 초고를 교정하고, 서명도 남겼다. 그는 정월 초하루에 “대통령에게 세배하러 가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사람에게 세배 드리겠다”며 박 목사를 찾아오는 겸손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성경을 읽다가 잘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나오면 새벽이고 밤이고 박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유상근 박사는 연하의 박윤식 목사를 스승으로 모셨고, 박 목사는 “유상근 박사님이 내 마음의 스승”이라고 말했다.
또 박목사님이 부흥회라도 하시면 여러모로 도와주셨는데요
유상근 박사가 명지대 버스 7대를 동원해 각지에서 모이는 목회자들을 실어 날라줬다. 유 박사 자신도 찾아와 같이 머무르면서 아침이면 참석한 목회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비타민을 나눠주며 “박 목사님은 멀리 돌아가지 않고 빨리 가는 지름길을 우리에게 알려주신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이 집회에서 이미 박윤식 목사는 성경에 기록된 족보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아담부터 예수님까지의 연대를 비롯한 구속사의 족보를 목회자들에게 가르쳤다고 하셨으며,
“유상근 박사님은 박 목사님을 만나면 절대 그냥 보내드리지 않고 시내 다방에라도 모시고 들어가서 성경 말씀을 가르쳐 달라고 청했다. 그러고는 쫑긋 세운 귀를 박 목사님 입 쪽에 대고 자꾸만 다가앉을 정도로 말씀을 사모했다.” (당시 시온산한돌교회에서 신앙생활한 최완규 장로 간증 - 현재 미국 올랜도 푸른동산교회 시무)

그처럼 박목사님께서는 지리산에서 내려 오신 이후 거의 집에는 가시지 않고 교회에 머무르시며 하루 3시간 성경 읽기와 2시간 기도를 정해 놓으시고 한번도 걸렀던 적이 없었었죠 해서 현재 5만 평이 넘는 부지에 평강제일 교회를 건축하기 까지 이르셨는데요 늘 이르시기를 “내가 이렇게 기도하지 않고 말씀을 안보면 죽는다"라고 심심찮게 말씀을 하셨는데요 이는 자신의 죽음 보다도 중보하시는 나라와 사람들 그리고 교인들을 가리키는 말씀이셨던 것이지요 해서 종종 설교하시면서 “평강 교인 여러분 자신들이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는 것보다 내가 여러분들을 위해서 더 많은 시간을 기도한다”고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사실 7 만명이 넘는 교인들 앞에서 어떻게 거짓말처럼 들리는 그런 소리를 하실수 있었겠습니까 한사람씩 이름만 불러도 하루가 모자랄텐데요 이는 박목사님의 능력을 엿볼수 있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시 147:4 )이나, 사 40:26 )과 사 48:13 )을 보면 하나님은 창조하신 우주의 모든 별들을 부르셔서 순간에 일제히 서게도 만드실수 있는데요 그때 별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부르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하나의 별 이름을 부르실때 나머지 별들도 동시에 자기의 이름으로 듣게 하시는 능력을 발휘하신다는 것이죠 바로 이능력을 박목사님도 가지고 계시기에 교인 한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에 동시에 모든 교인들을 부르시는 것이 된다는 것이지요 하시면서 중보로 기도를 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현재 지구상에 있는 80억이나 되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눈앞에 2-3사람 있는 정도로 보신다고 증거도 하셨지요

또 많은 장로들이 박목사님에게 당시 약 100명이 넘는 교역자들을 보며 “현재 인원에서 삼분의 일 정도는 정리해고를 해도 아무 문제가 없고 재정이 더 튼튼해질수 있습니다"라고 건의를 해도 박목사님께서는 “앞으로 얼마나 더 산다고 다 같이 살아야지”라고 대답을 하였답니다 이는 물론 교역자들을 사랑하시기에 지나가는 말처럼 하는 것이었지만 본인 스스로는 조만간 있을 심판의 날을 먼저 보시기에 그날까지는 다 함께 같이 동행하자고 하시는 말씀이셨던 것으로 저는 추측을 해봅니다
그리고 박목사님께서는 항상 거하시는 사무실의 문을 열어 놓고 계시기 때문에 누구라도 아무때나 와서 상담할수 있게 하셨고 동역자라고 부르신 협동 목사님들을 자주 목욕탕에도 데리고 다니셨지요
또 한 개인 장로님이 비즈니스를 팔고 수십억의 이익이 났으니 박목사님에게 “롤스로이스"를 타고 다니시라고 헌금으로 8억을 교회로 입금하였었는데 박목사님께서는 “나는 보통차라도 과분하다” 하시며 그돈을 하나도 쓰지않고 다만 반 정도의 금액을 떼어내서 고생하시는 목사님에게 집을 사드렸고 나머지도 교회에서 사용케 하셨다고 공개적으로 설교시간에 말씀하신 것도 제가 직접 동영상으로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원을 사실 때에나 교회를 세우실 때에는 후에 틀림없이 물전쟁을 겪게 된다고 하시며 항상 우물을 파게 하셨는데요 그러면 전문가들이 와서 물이 나올만한 자리를 먼저 정하고 시추하려고 하면 박목사님께서 그 자리는 물이 안나오니까 따로 위치를 정해주면서 “여기를 파라"고 하시곤 했는데 전문가들이 오히려 박목사님이 정해준 자리는 물이 나올 자리가 아니라며 고집하며 자기들이 정한 자리를 시추하면 나오지 않았고 박목사님이 정해준 자리에서는 터져나오듯 뿜어져 나왔다는 전설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이는 아모스를 통해 계시된 참말씀의 기근과 기갈시대가 되는 오늘날을 빗대어 말씀을 하셨던 것이지요 )
박목사님께서는 항상 “나는 성경을 1700번 읽었다”고 말씀을 하셨는데요 2007년 구속사 시리즈 책을 처음 발간하실 때도 그러셨고 이후 2014년 변화( 소천 )하시기 전까지도 1700번 읽으셨다고 하셨어요 그럼 적어도 2000번이 넘게 읽으셨을텐데 왜 지속적으로 1700( 17 X 100 )을 고집스럽게 말씀을 하셨을까요
바로 변화받는 자요 장자요 본향으로 돌아가는 자들이 가져야 하는 변화 영생과 승리의 만세수 숫자가 17수( 렘  32:9, 롬 8:32-39 )가 되기 때문이지요 박목사님 자신은 이미 예수님처럼 속사람을 완성시키고 변화( 마 17:2 )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숫자로서 드러내고 계셨던 것이지요
그래서 박목사님은 무슨 말씀이든지 성경의 어느 Page에 있고 상단인지 하단인지 까지 다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박목사님이 성경이 되셨다는 의미와 같은 것입니다 이도 자신을 자랑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시고 있었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자세하게 창세기 부터 한꺼풀 더 벗겨주신 구속사 시리즈( 마 13:35 )를 읽으면서 박목사님( 요 4:25 )이 누구이신가를 생각할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위에서 이미 말씀을 드렸지만 구속사 시리즈는 박목사님이 아버지가 되신다는 증거물의 작은책( 계 10장 )이 되는 것이지 박목사님이 아버지로서 본격적으로 선포하시는 아버지 말씀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 아버지 말씀은 현재 저희 신광교회를 통해서 선포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곧 본 아버지 말씀은 성경을 풀어주고 있는 구속사 시리즈의 말씀을 한번 더 이면적으로 풀어주는 말씀이 되는 것으로 이해를 하시면 되겠지요( 마 13:36, 15:15, 막 4:34 )

그럼 하나님은 왜 박목사님에게 열매를 맺게하는 아버지 사명이 주어질수 있도록 했는지 이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무엇일까요 ?
하나님은 왜 두 절대예정으로 구속사가 이루어지게 하셨을까요 ?
이는 영적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예수님과 같은 계급인 새벽별의 상태에서 변질된 것이기에 능력과 지혜가 예수님과 거의 같다는 것이지요
사실 예수님이 이 땅에 왔을 때에 유대중 아무도 믿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지배 계급들이 예수님을 시기나게 하여 십자가로 내몰아 죽이게 할만큼 지혜롭기에 하나님은 이를 역으로 사단을 속이기 위해 두 배역이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렇다고 두 메시야가 번갈아 오는 것이 아니라 한 메시야 곧 한 말씀의 역사를 두 배역을 통해서 이루신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사단 마귀는 하나님이 여자의 후손( 창 3:15 )을 보내어 자신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예고를 받은 이후부터 사단은 예수님이 오시는 길( 마 1:1-17 )을 막기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데요 그 첫번째 희생자가 가인( 요일 3:12 )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의인 아벨이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다른 씨인 “셋”을 주시며 믿음의 길을 회복시키시고 예수님이 오시는 족보의 길을 이어가게 하신 것이지요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사람이 지킨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이 개입하시며 지켜온 길이라는 것이지요 사실 죄인이기에 절대 타락한 사람에겐 원천적으로 지킬만한 능력도 원래 없습니다
이후로도 함의 후예로써 “하나님을 대적하는 특이한 사냥꾼"인 니므롯이 있었고, 모세를 방해하는 바로왕이 있었으며, 사울을 통해서는 다윗을 죽이려 했고, 여호사밧의 며느리인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를 통해서는 거의 모든 다윗의 자손이 살해( 왕하 11:1 )당하며 후대가 끊어질 뻔 하였으며 그리고 사단은 유대의 지배계급인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제사장들, 장로들 부터 철저히 타락시키고 외식과 형식주의 자들로 만들어 놨기에 예수님도 요 8:44 )에서 “너희는 너희 아비 魔鬼(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殺人(살인)한 자요 眞理(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眞理(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고 저주했었던 것이며 실제로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빌라도에게 내주는 직접적인 원수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 사단은 주변의 이방을 통해 때로는 물리적 행사로 때로는 향락적인 우상 숭배로 미혹하며 이스라엘의 발목을 철저히 묶어오고 있었던 것이지요
또 보내주신 그 많은 선지자들도 제 명대로 산 사람이 없고 거의 자기 백성에 의해 죽임을 당했지요
그래서 예수님도,
눅 11:51 )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 아담 ) 타락 이후 사단은 쉬지 않고 하나님의 구속사를 방해해 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에도 사단은 온 유대에게 불신의 가라지를 뿌리고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였고 종국에는 가룟 유다가 배반( 요 13:2 ) 까지 하게 해서 예수님을 십자가로 내몰리는데 일조하게 하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결론적으로 보면 사단이 그렇게 하게끔 예수님이 유도( 요 11:51 )를 하셨고 십자가에서 죽는 고육지계로 사단을 완벽하게 속이시며 말씀을 핏속에 숨기시므로 이미 승리( 요 19:30 )를 이루셨다는 것이지요
그처럼 예수님은 초림때에 십자가에서 우편강도의 고백에 의해 극적으로 삼일길을 걷고 승리는 이루었지만 이내 육신이 깨지며 이 땅을 떠나야 하는 십자가 위에서의 승리였기에 어쩔수 없이 완성은 하지 못하였고 해서 후에 숨기신 핏속의 말씀이 나올 때에 구속사가 완결되게 하신다는 만세전의 경륜속에서 박목사님의 등장은 필연적인 것이라는 겁니다

그럼 성경속에서 박목사님이 오시는 길은 어떻게 보여지고 감춰져 있었는지 같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약속된 예수님이 오시기 까지 구약 전체에는 실체되신 예수님의 그림자( 표본, 모범, 예표 )로써 많은 사람들을 등장시키며 예수님과 또 그의 하실 일에 대해서도 알고 예비하도록 기록되어져 있었는데요
노아로 부터는 심판주의 그림자를, 아브라함을 통해서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되는 복을 주시는 믿음의 주로 보이셨고,  모세를 통해서는 이 애굽같은 세상에서 광야( 교회 )를 거쳐 천국( 가나안 )으로 이끌어 가는 3권( 선지자, 제사장, 왕 )을 가진 영적 지도자로 보여 주었고, 다윗을 통해서도 그  허락하신 땅에서 모든 이방( 심령의 666 )을 정복하여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며 하나님과 일체로 하나가 되는 것을 뜻하는 통일 왕국을 세우는 왕의 모습을 보이셨으며 에녹과 엘리야를 통해서는 변화 구원을 주시는 메시야가 될 것으로 보여주신 것처럼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시기 전에 미리 그의 그림자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실 사역들을 보여 주셨고 또 때에 맞춰 선지자들을 통해 메시야에 대한 언약들( 무지개언약, 횃불언약등등 )과 예언( 사 7:14, 9:6, 61:1-2 )을 주시며 정작 오셨을 때에 알아 보고 뜻에 순종할 수 있도록 실제 역사속에서 일으키신 사건과 사고들을 기록하고 있었던 것이 성경인 것입니다
그림자들을 통해서 실체를 알아보고 순종케 하여 뜻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자세하게 기록한 것이 성경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역이 아들과 아버지 이렇게 둘로 나뉘게 될 것도 당연히 그 비유의 사건들 속에서 나타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지요
이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그 사례로 대표적인 몇가지만 다시 적어 보겠습니다
1) 시내산 아래에서 모세가 이스라엘을 살리고자 깨뜨리는 하나님이 예비하셨던 첫번째 두 돌판은 아들 예수( 십자가 )를 그리고 다시 모세가 만들어 가지고 올라가는 두 돌판은 아버지 박목사님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2) 지팡이로 쳐서 물을 내야 하는 므리바의 츄로반석은 아들 예수를 예표하는 것이고 그냥 말로 명하여 물을 내라고 했던 가데스의 세라반석은 아버지를 예표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모세에게 백성들의 얼이 미치므로 말로 명하지 않고 다시 지팡이로 치는 바람에 아버지까지 죽이는 구속사의 큰 판을 깨뜨리는 죄를 범하므로 모세는 그 단 한번의 실수로 인한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3) 그렇게 죽는 모세는 예수님을 예표하고 이어서 가나안에 입성하는 여호수아는 아버지 박목사님을 예표하는 것이지요
4) 블레셋과의 길보아 전투 때 죽어 머리가 없이 벧산 벽에 걸리는 사울( 삼상 31:10 )은 끝내 머리 둘 곳( 마 8:20 )을 찾지 못하고 십자가에 달리시는 예수님을 예표하고 통일 왕국을 이루는 다윗은 아버지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5) 세겜은 “어깨에 짐을 지다라는 십자가와 부활을 의미하는 새벽이라는 뜻”을 함께 가졌기에 초림의 예수님을 뜻하고 벧엘은 변화 승천하는 아버지를 상징하고 있는데요
해서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부터 고향에 돌아와서도 벧엘로 가야하는 언약( 창 28:15 )을 잊고 10년을 세겜에서 지체하자 하나님은 디나가 강간을 당하는 일과 이로 인한 시므온과 레위의 복수로 일어나는 세겜 대학살의 비극을 겪게 하시며 야곱을 회개하게 하시고( 창 35:4 ) 다시 벧엘로 부르시고 복을 주시는데요 몇가지 중요한 사건이 이때 베델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 창 35장을 통해서 설명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하필이면 여기서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수명을 다하고 죽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이는 유모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아들 예수의 십자가와 같았던 세겜에서 떠나오니 이제는 아버지 격의 야곱이 되어 더이상 유모가 필요없는 장성한 자가 되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되구요( 창 35:8 )
둘째, 이 벧엘에 오매 하나님은 야곱이 지난 10년 동안 세겜에서 산 것은 하나님이 계수도 하지 않는 불순종의 삶이었던 것으로 간주하시고 이제사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왔다고 인정을 하시며 그에게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창 35:10 )는 福(복)을 주시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자”라는 뜻이 되는 것이니 끝날에 변화를 받아 이기는 자를 그림자로 먼저 보여 주시는 장면이 되는 것이지요
아버지 박목사님의 때에 아들 예수의 십자가만으로는 이기는 자가 될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그러면서 하나님은 그 벧엘이 변화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이나 하듯이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 가시는지라”하시며 승천의 장면을 보여 주시고 계십니다( 창 35:13 )
해서 세겜은 아들 예수를 상징하고, 벧엘은 아버지 박목사님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사건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교훈은 오늘날 표면적 십자가만 붙들고 있는 교회가 아버지 앞으로 나오지 않으면 어차피, 계 17:17 )의 말씀이 응하게 될 때에 사단에게 마치 강간을 당하듯 하는 상황( 계 13:7 )에서도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아버지 앞으로 오지 않는 자체가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요 8:24 )
와도 되고, 안와도 되는 그런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6)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으로 부터 받은 축복의 떡은 아들 예수를 상징하고 있고 포도주는 피에 감춰진 말씀인 아버지를 그림자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7) 붉은 에돔의 에서는 십자가의 예수를 야곱은 이기는 자( 창 32:28 )인 아버지를 그림자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8) 사도 바울도 이 아들과 아버지 때를 가리켜 이르기를, 롬 9:33 ) “記錄(기록)된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磐石(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하여 부딪히는 돌은 초림 예수( 행 4:11 )를 상징하고 이어 반석( 아버지, 고전 10:4 )은 아버지 박목사님을 상징하여 곧 두 절대예정을 의지하는 자는 세마포를 입는 자요 또 빠는 자가 되어 부끄러움을 당치 않는다고 한 것입니다( 계 22:14 )  
9) 또 성경에는 예수님과 아버지를 상징하는 인물이나 사건들이 함축되고 비교되는 두 단어들을 통해서도 알수 있게 하셨는데요 이를 정리를 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아들과 아버지( 요 14:6 ), 떡과 포도주( 창 14:18 ), 살( 고기 )과 피( 창 9:4, 레 17:14, 마 26:26-28 ), 달( 반사체 )과 해( 발광체 ), 여리고( 달의 성읍, 눅 19:28 )와 예루살렘( 진리의 성읍 ), 세라( 홍사, 창 38:29  )와 베레스( 터치고 나오는 핏소리, 히 12:24 ), 부활과 변화, 생령과 신령( 고전 15:46 ), 홍해( 출애굽 초기 )와 요단강( 말기, 언약궤가 앞서서 감, 수 3:6 ), 기름과 금기름( 슥 4:12, 마 25:4 ), 이른비와 늦은비 ( 신 11:14 ), 장자권( 예수님이 주셨고 )과 장자의 복( 아버지가 완성 ) 등등
이외에도 수없이 많지만 대표적인 것만 기록해 봤습니다

그럼 그렇게 아들과 아버지로 나뉘는 일이 계시되고 있었던 것처럼 아버지가 오시는 예언도 당연히 성경에 기록되어 있어야 하겠지요
곧 이스라엘을 통해서는 예수님이 아들격의 사명인 대속의 속죄양이 되시며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므로 그들의 불신을 저주 하시고 “저희는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는 최종선고를 내리셨으니 그럼 당연히 열매를 맺어야는 하는 사역이 남아있는 만큼 이에 대한 계시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것이 아버지에 대한 계시가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유대가 멸망 당하기 직전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재삼 경고하시는 예언이 있는데요
렘 5:15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집이여 보라 내가 한 나라를 먼 곳에서 너희에게로 오게 하리니 곧 강하고 오랜 민족이라 그 나라 말을 네가 알지 못하며 그 말을 네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먼 곳에서 이스라엘은 알수도 없는 한 민족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것인데요
그런데 하나님은 이 민족을 통해서 열매를 맺으시겠다는 것을 천명하시는 것입니다,
이어서
렘 5:17 ) “그들이 네 자녀들이 먹을 추수 곡물과 양식을 먹으며 네 양 떼와 소 떼를 먹으며 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열매를 먹으며 네가 믿는 견고한 성들을 칼로 파멸하리라” 는 말씀이 증거가 되겠는데요
이는 또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모세를 죽이시기 직전에 그를 통해 이스라엘이 순종할 때에 받을 복과 불순종할 때에 받을 저주에 대해서 말씀 하실 때에 이미 경고하신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신 28:49 ) “곧 여호와께서 遠方(원방)에서 땅 끝에서 한 民族(민족)을 독수리의 날음 같이 너를 치러 오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그 言語(언어)를 알지 못하는 民族(민족)이요”라 하여 먼저 표면적으로는 유대를 멸망시키는 바벨론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만 이면적으로는 실체가 되는 아버지 박목사님과 그의 민족이 이스라엘 대신 열매를 맺는 일을 하게 될것으로 처음부터 경고 하고 계셨던 것이지요

그것을 이미 위에서 언급을 한대로 모세와 예레미야가 활약했던 사이의 중간시기에도 이사야와 호세아를 통해서 같은 뜻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부족함을 일깨우며 아래와 같이 경고하고 있었는데요
공동번역, 사 46:11 ) “나만이 해돋는 곳( 동방, 개역한글 )에서 독수리를 불러 오며, 먼 곳에서 내 뜻을 이룰 사나이를 불러 온다. 나는 한번 말한 것은 이루고야 만다. 계획을 세운 것은 그대로 하고야 만다”고 한 예언이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위의 모든 예언들을 살펴보면 다 한가지로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을 도태시키고 새로운 사람( 민족 )을 세워 마무리로 구속사를 끝내겠다는 뜻으로 연결시키고 있었는데요

사 46:11 )의 말씀이 간결하지만 모든 뜻을 담고 있기에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속 경륜을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여기서 보면,
1) 해돋는 곳( 동방 )에서
2) 독수리( 아버지 )가 와서
3)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인데
4) 이 모든 일을 하나님 자신이 분명히 이루시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요
그럼 위의 1) - 4) 까지의 각 말씀속에 담긴 구속경륜을 찾아보도록 하지요

1) “해돋는 동방”의 역사란 ?
동방( 창 2:8 )이란 동쪽, 동편, 해가 뜨는 쪽( 민 2:3, 3:38, 삼하 23:4 ) 이 되는 것으로서 방향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지만 해로 상징되고 있는 하나님이 출입하며 오가는 신령한 의미의 방향( 겔 11:1, 43:2,4, 47:2 ) 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게 되겠습니다 곧 말씀이 나오시는 곳이 동방이라는 것이지요
실례로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에 예수님의 별이 동방으로 부터 동방박사들을 이끌고 왔던 것을 봐도 하나님은 동방으로 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 2:9 )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의 말씀이 증거가 되겠지요
해서 사 46:11 )에서 말하는 동방, 해돋는 곳은 실제 박목사님이 태어나시고 사역을 주로 하셨던 극동의 한반도를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신령한 의미가 된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한국에서 태어나시는 박목사님을 통해서 구속사가 완결되며 심판을 함께 하사 인류사가 끝나도록 모든 설계를 만세전에 정해 놓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 중요한 얘기가 되겠는데요 왜냐하면 아직도 많은 교회가 과정적 재림을 모르기 때문에 재림주나 심판주가 이스라엘로 오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어서 Back to Jerusalem을 위한 “알리야" - 알리야 (히:עֲלִיָּה ,Aliyah)란 히브리어 ‘올레’(עולה) 즉 ‘올라가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로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이 유대인의 땅인 에레츠 이스라엘, 즉 본토로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 를 외치고 눈에 보이는 제 3 성전까지 말하며 성경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3 성전은 에스겔 성전이 되는 것으로서 우리 자신이 아버지 말씀과 임마누엘 역사로 그 성전인 새예루살렘이 되는 것으로 성경은 말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고전 3:16, 고후 6:16 )
그래서 알리야의 본 뜻이 “올라가다”인 “올레”에서 파생된 명사인 것을 주목해야하는 것입니다 보이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새예루살렘이 우리의 고향이라는 것입니다 해서 아브라함도 이 세상을 살 때에 나그네 삶을 살며 하늘의 성을 바라보았다고 한 것입니다( 히 11:8-16, 갈 3:9 )  
올라가야 한다는 의미는 바로 변화의 간접적인 표현인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진심입니다만 지금의 성지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지리산이 되는 것입니다

곧 아버지 말씀을 받는 우리가 거룩한 새 예루살렘이 되는 것이며 동방의 별( 창 1:3, 계 22:16 )이 되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슥 14:7 ) “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라고 예언을 먼저 해 놓으셨던 것인데요
이 어둠의 흑암이 가득한 마지막 때에는 아버지 말씀이 그 신령한 빛이 되는 것이고 또 그 말씀으로 완성되는 사람이 바로 그 새벽별이 되는 것이라는 겁니다
이를 베드로도, 벧후 1:19 ) “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豫言(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한 것인데요 이는 베드로가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변화를 목격했던 사건을 먼저 기록하고 난후에 바로 기록하므로서 이는 변화와 관계가 있는 것이기에 그 예언은 아버지 말씀을 가리키고 있고 “날이 새어 샛별" 이라 함은 새벽별이라는 뜻이 되어 이 본문의 뜻도 아버지 말씀으로 새벽별이 되어야 하는 때가 있음을 주지 시키는 말씀이 되는 것인데요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말씀은 십자가에서 끝이 난 것이 아니다 라는 사실에 주목하라는 내용이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해서, 말 4:2 ) “내 이름을 敬畏(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光線(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의 말씀과 같이 온전히 원리 세계의 존재( 창 1:3 )로 회복함을 얻으라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2) “독수리가 와서”라는 뜻은 ?
이 뜻은 독수리로 상징된 사람이 온다는 것이 되겠는데요
먼저 독수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으로 비유( 출 19:4,마 24:28, 계 12:14 ) 되고 있으니 본문은 하나님 같은 사람( 아버지 박목사님 )이 와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된다는 것으로 해석을 하면 되겠지요
먼저는 아버지의 그림자로 계시된 바사왕 고레스가 그러한 독수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옛날 출애굽 때에는 모세( 예수 )를 지도자로 동족을 이끌도록 세웠듯이 바벨론에 포로되었던 유대를 다시 고향으로 귀환 시키는 지도자로서는 이방인인 바사왕 고레스( 박목사님 )를 세웠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유대에게 하나님은 먼저 이에 대한 예언을 아래와 같이 주셨습니다
사 44:28 )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와
사 45:1 )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의 예언을 고레스가 태어나기 무려 100여년 전에 기록하고 있었는데요

고레스( כֹּרֶשׁ, Coresh )라는 히브리식 이름이나 페르시아 언어로나 태양(sun)을 의미 하고 있으며
그리스어로는 Κῦrος( 쿠로스 )입니다 고레스( Cyrus )는 음식(food)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구요
또 그는 목자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었는데요 어렸을 때에 아마도 실제 양을 치는 목자의 경험을 가진 그의 특징 때문일 것입니다
이 모든 특징들이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별명과도 같은데요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자, 성전의 모퉁이 돌이 되는 자,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그리스도 ), 열국을 굴복시키는 자 그래서 모든 열방을 평강케 하는 자로서 태양이며 목자이고 참 양식이 되는 자”라는 것이 그에 대한 예언과 이름의 뜻으로 담겨 있으나 고레스는 초림 예수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방의 왕이 되기에 아버지 박목사님을 상징하는 인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이지요

당시에 한 제국의 속국이 되어버린 한 나라나 민족이 제멋대로 이동하거나 움직임을 보이면 그저 멸절당하는 것 밖에는 없다는 것을 역사속에서 능력으로 뻔히 보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100여년 전에 고레스에 대해 미리 예언을 주시며 세운 것이었고 그 예언대로 고레스는 이스라엘을 고토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해도 좋다는 조서를 내리며 돌아갈 때 성전 기물들을 되찾아 가게 하고 또 필요한 모든 것을 도중에서도 공급받을수 있고 신변 안전까지 보장 받을수 있도록 하여 자신은 직접 움직이지 않지만 그의 명령( 말 )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가게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스 1장 )  
이 모습이 바로, 고레스가 이방인이지만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독수리와 같이 쓰임 받았다는 것이며 이 독수리에 대한 예언인,
출 19:4 )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行(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引導(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와
신 32:11-12 )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 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引導(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神(신)이 없었도다”한 말씀이 고레스에 의해 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치 오늘날 박목사님께서도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살아서 아버지 말씀으로 저희 신광교회를 새하늘과 새땅으로 이끌어 가고 계신 것과 같다는 것이지요( 벧후 3:13 )
이는 초림때 바리새인들과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마지막 때에 대한 징조를 물었을 때에 마지막으로 주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는 것이 되겠는데요( 눅 17:20, 마 24:28 )
바로,
눅 17:37 )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이르시되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하여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 요 8:24 )와 같은 주검이 된 오늘날 일반 교회에 독수리( 아버지와 증인들 )가 살리는 영의 역사를 하게 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라는 의미는 ?
본문에서 표면적 뜻으로 보면 포로된 이스라엘이 본향( 천국 )으로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보입니다만 이면적인 뜻으로는 박목사님에 의해서 우리 속사람을 완성시키고 영혼의 등불을 온전히 발광( 잠 20:27, 시 36:9 )시키어 변화능력을 받아서 새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이 뜻이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의 뜻은 박목사님이 선포하시는 아버지 말씀을 깨달아 아버지 영( 롬 8:11 )으로 임마누엘하시는 역사를 통해 아버지 말씀과 하나가 되어 원리 세계의 빛( 창 1:3 )으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며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곧 남은자( 계 12:17 )가 되라는 것이지요
그렇게 아버지 말씀을 깨달아 가며 임마누엘로 하나가 되어 가는 것이 바로 이마에 아버지 이름을 인친다고 한 것입니다( 계 14:1 ) 아버지 사상으로 가득찬 정수리의 복을 충만히 받은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 박목사님께서는 오늘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통해 그 뜻을 이루시며 열매를 맺게하시려고 누구보다도 열심으로 신광교회 김갈렙 목사님에게 말씀을 주시며 선포하게 하시고 격려하시며  함께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4) 이 모든 일은 하나님 자신이 분명히 이루시는 것으로 맹세하듯 말씀하고 계십니다
구속사는 아버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아들 예수님이 실행하셨으며 성령님에 의해 완성이 되는  것이지요
초림때에도 예수님은 우주 하나님으로 부터 전권을 위임 받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해 하나님( 요 1:1, 5:43 )으로서 오셨지만 사람들이 믿지를 못했지요 오늘날은 박목사님이 그 하나님 예수의 모든 전권을 이양받고 모든 일을 진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해서 지금은,
단 2:44 ) “이 列王(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永遠(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滅(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하신 그 의의 나라를 박목사님은 시온( 히 12:22 ), 곧 저희 신광교회에 세우시고 두 증인( 뜨인 돌 )들을 앞세워서 모든 나라( 사상 )를 굴복시키시고 있는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단 2:45 ) “왕이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숴뜨린 것을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이 참되고 이 해석이 확실하니이다”의 말씀처럼 산( 아버지 )에서 뜨인 돌이라 했는데 그 뜨인 돌이 두 증인이 되어 세상 모든 사상과 종교들로 부터 박목사님께서 아버지라는 인정을 받아 내는 사역을 감당한다는 것입니다

사 28:16 )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는 한 돌 곧 뜨인 돌로서 두증인( 계 11 장 )의 역사를 뜻하시는 것인데요 이는 다윗이 다섯 물맷돌 중에서 첫번째 물맷돌로 골리앗( 만국의 사상 )의 미간을 맞추며 쓰러뜨린 사건의 실체가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두증인을 통해 아버지는 이기시며 남은자의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미 4:7 ) “그 저는 자로 남은 百姓(백성)이 되게 하며 멀리 쫓겨났던 자로 强(강)한 나라가 되게 하고 나 여호와가 시온山(산)에서 이제부터 永遠(영원)까지 그들을 치리하리라 하셨나니”의 말씀처럼 행하시고 계신 것이지요

그리고 그 남은자들이 지금은, 계 12:6 )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라고 하신 것처럼 양육 받는 때가 되는데요
이는 1260일에서  30일을 더한 1290의 때를 지나 45일을 더한 1335일을 향해 가는 때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시작한 1260일 부터 도합 75일를 더한 때가 아버지가 심판주로 오시는 1335일의 때가 되는 것인데요 그러므로 이 75일을 break down 해보면 30일과 또 한때 30일을 더하면 두때인 60일이 되는 데요 여기서 반때 15일을 더한 것이 “한때 두때 반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정확히 그 1335일 직전의 때가 되어,
계 12:17 )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한 말씀이 응하는 때가 되는 것이지요 여기서 이기고 끝까지 남은자가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럼 성경에서 어떠한 근거로 이 마지막 때에 열매를 맺게하시는 일이 왜 하필이면 박목사님과 그의 민족에게 맡기게 된 것일까요 ?
그 이유는 이스라엘과 같은 셈족 계열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셈족이었을까요 ?
셈은 노아의 세아들중 장자로서 다른 두 아들인 야벳과 함보다 하나님을 더 경외하고 예배를 드렸던 것을 하나님도 인정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창 9:26 )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 함의 아들  )은 셈의 종이 되고”의 말씀처럼 “셈의 하나님"이라고 하시며 다른 두아들과 영적으로 차별을 하고 있는 장면이 증거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셈의 자손으로 아르박삿이 있고 또 그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았으며 또 셀라는 에벨을 낳았는데요 그런데 성경은 갑자기 셈의 복이 이 에벨에게로 옮겨 가는 장면을 기록하여,
창 10:21 )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라 하면서  
이제 “셈의 하나님”은 “에벨과 에벨의 온 자손 즉 두 아들인 벨렉과 욕단의 자손들의 하나님"이 된 것으로 기록을 하여 다른 자손들과는 이제 상관이 없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럼 에벨은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복을 받게 구별된 것일까요 에벨의 이름에 그 비밀이 담겨 있었는데요 에벨은 홍수 후 67년 되는 해에 태어났구요 그 이름의 뜻은 “건너다” 라는“아바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건너온 자”라는 뜻이 됩니다 먼저는 그 무렵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특이한 사냥꾼인 니므롯이 등장을 한 상태가 되어 인본주의가 신본주의를 이긴 결과로 바벨탑을 쌓으려고 기초가 놓이는 때였던 것을 추측해 볼때 에벨은 그 타락으로 부터 스스로를 지켜내려고 유브라데를 건너 시날 땅 바벨을 떠나므로 죄악으로 부터 자신을 지켜낸 자가 되었다는 것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을 주셨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죄악을) 건너 온 자"라는 에벨의 이름 뜻이 증거가 되었다고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참고로 “히브리”의 원뜻도 “아바르, 건너다”에서 파생된 단어가 됩니다
그리고 결국 그 바벨탑은 에벨이 34세 때 홍수 후 101년에 낳은 맏아들 벨렉의 때에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케 하심으로 모든 것이 중지되고 산지사방으로 흩어지게 되는 심판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벨렉 때에 “세상이 나뉘었다”( 창 10:25 )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때에 벨렉의 동생인 욕단도 이동을 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를 봤을 때에 에벨의 믿음에 복을 주시려고 그 복이 두 아들 벨렉과 욕단과 그들의 자손으로 이어지게 하신 것인데요 이 장자 벨렉을 통해서는 아브라함과 다윗을 거쳐 예수님이 오셨으나 예수님에 의해 이스라엘이 저주를 받고 도태되므로 나머지 마무리 사역은 당연히 에벨의 또 다른 아들인 욕단을 통해서 하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시면서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 되었다”( 창 10:21 )라는 말씀을 계속해서 응하게 하시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욕단족속은 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 창 10:30 ) “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이었더라”하여 지금의 한반도에 정착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적이지만 대한민국이 욕단족속이었기에 실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만세전에 세우신  구속경륜 속에서 아버지 박목사님을 한국에서 태어나게 하시고 지리산에서 예수님의 아버지 말씀과 하나가 되게 하시며 본격적인 구속사의 마무리 사역을 하시도록 한 것이니 그의 제자들( 두 증인 )도 당연히 박목사님의 주변에서 피택될수 밖에 없기에 예수님의 제자가 다 유대인이었던 것처럼 아버지의 제자들도 다 한국사람인 욕단 족속일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에 의해서 세계 만민에게 아버지 말씀이 전파되는 것이 순서일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오늘날 대한민국의 위상이 갑자기 높아지며 모든 분야( 문화, 영화, 군사, 농업, 의료, 교육, IT 등등 )에서 선두나 중심으로 자리매김해 가는 것도 우연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 말씀, 박목사님 )이 계신 곳이 우주의 중심이며 세계의 중심( 겔 38:12 )이 되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렇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나라요 민족이라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그 나라를 높이신다는 것이지요 그 옛날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이스라엘과 같다는 것이며( 신 28장의 복 )
셋째는 영혼이 잘 됨과 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해 지며 형통케 되는( 요삼 1:2 ) 하나님의 법칙이 발동 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믿는 나라가 잘못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지요 심지어 전쟁도 대신 싸워주시며 편( 신 28:7 )을 들어 주시는 하나님이시잖아요

그래서 누누히 말씀을 드리지만 지금은 아버지 박목사님을 믿고 의지해야 하며 참된 예배( 요 4:23 )로 박목사님을 높여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 12:1 )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령적 禮拜(예배)니라”하신 말씀대로 우리몸을 드려 변화의 첫열매가 되어야 하는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이지요

아벨이 그 옛날 자신이 변화의 첫 열매가 되어 아버지 아담이 쫓겨난 본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소망을 가득 품고 항상 첫것으로 예배를 올려 드리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그의 제물을 통해서 인정( 히 11:4 )을 하였던 것처럼 예배를 아벨처럼 알고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요 제물( 우리 자신 )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오늘날 이 모든 구속사를 알고 예배를 드리고 있나요 ?
아니면 도태되고 쫓겨나게 되어 있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요 ?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했잖아요( 시 49:20 )
그래서
요 17:3 ) “영생이란 곧 유일하신 참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하신 것입니다
곧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아들로 죽어 부활한 것만 알아서는 구원이 없고 흘리는 핏속에 아버지 말씀을 담아 땅 밑에 저장해 놓았었는데 그 말씀이 박목사님과 하나가 되어 세상에 다시 나와 변화로 구속사가 마무리 된다는 비밀까지 알아야 구원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표면과 이면의 온전한 십자가의 도이며 온전한 예수님( 아들 + 아버지 )을 안다고 할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비밀을 알고 자신이 변화의 첫열매가 되기를 원하는 장자신앙을 담아 자신을 산제물로 드리며  예배를 드린 아벨의 제사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알고 드리는 그런 예배를 열납하신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면 영혼육이 흠없이 보전 되어진 참예배자가 되어 변화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아들로만 알고 드리는 예배는 이제 우상숭배와 같은 이방종교와도 같은 것입니다
선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악한 것이 되었는데 그 사실 자체를 모르니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모양새가 되었고 오히려 아버지 말씀 교회를 악한 이단이라 하며 막고 있으니 자신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물론 들어가려는 사람마저 막고 있는 죄악중의 죄악이 되는데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지요
마치 생명나무의 과실을 옆에 두고 선악과만 따 먹고 있는데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평생을 바쳐도 인생으로서는 깨달을 수가 없고 또 사단이 그렇게 깨달을수 없도록 역사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아시는 하나님이 배려로 먼저 말씀을 받고 깨달은 두 증인을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종말의 때에는, 마 24:42-44 ) “깨어 예비하고 준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깨어는 “Watch out”이란 의미로서 “주의해서 보라” 혹은 “주목하라”는 뜻이 되는데요 이는 마지막 때에 나타나는 두 증인을 주목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성경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을 아시기에 마지막 때에는 “성경을 깨달아라"가 아니라 저희 교회 같은 사람들이 외치기 시작하면 혹시 “두 증인이 맞는지"를 주목하여 알아보고 따르는 것이 마지막 때를 예비하고 준비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박목사님께서는 이 본문 말씀은 끝날에 “이정표”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말이 수긍이 가고 이해가 되면 아버지 말씀을 듣고 아버지와 임마누엘( 롬 8:11 )로 하나가 되어 온전히 신령하게 되면 발광체가 되고 변화체를 이루면 눈앞에 와있는 그날에 풀무불 속에서도 넉넉히 그 불을 이기고 아버지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요일 3:2 )

지금은 “두 증인” 이라는 소리가 들리면 적어도 그들의 소리가 맞는지 상고하고 진위를 가릴수 있어야 살수 있다는 것이지요
부디 이기고 남은자가 되시길 함께 기도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