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귀신(鬼神) 프뉴마 아카다르토스




더러운 귀신(鬼神) An evil spirit

한글 개역 성경에서 "더러운 귀신" 이란 용어가 사용된 구절 수가 신약에서만 "25구절" 입니다.

마태복음 : 4
마가복음 : 11
누가복음 : 7
사도행전 : 2
요한계시록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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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의학에서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네 가지로 소개합니다.

1. 의학적 방법
2. 음식 치료
3. 자연 요법
4. 귀신 축출

의학과 음식과 자연 치유는 인간의 육체만 치료하는 것이다.
그러나 귀신을 내쫓는 것은 인간의 영혼을 치유하므로 육체도 함께 치유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 당시에는 의학적 방법이 현대처럼 발달한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귀신을 내쫓는 것은 인간을 전인적 치유하는 과정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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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귀신의 집(마태복음 12:43, 누가복음 11:24)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When an evil spirit comes out of a man, it goes through arid places seeking rest and does not find it.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When an evil spirit comes out of a man, it goes through arid places seeking rest and does not find it. Then it says, 'I will return to the house I left.'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자들을 고치실 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비난하여 바알세붑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였다.
그 때 예수님은 귀신의 집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셨다.
비유라는 것은 어떤 것에 대해 직접적인 표현이 아니라 비슷한 현상을 드러내어 쉽게 설명한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왜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로 말씀하셨을까?

마태복음 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므로 인간의 생각이나 지식 판단으로 알 수가 없고  성령의 비추임으로만 알수 있고 믿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거룩한 것 진주인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비유로 말씀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상의 권세자들이나 제국으로 여기고 크기나 규모로 판단하는 자들이 장난질 치지 못하게 하려고 하신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하셨는데 이는 육신의 귀가 아니라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의 귀를 의미한다.

분명한 것은 우리 주님이 말씀하신 모든 말씀은 성령의 비추임이 없이는 절대로 깨달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만일 성령의 조명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다면 예수님을 성인군자로 알고 예수님의 말씀을 성인의 가르침 정도로만 알게 될 것이고 죄가 무엇인지 의가 무엇인지 심판이 무엇인지 마귀가 무엇인지 모를 것이며 당연히 천국과 지옥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해서도 모르게 될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의 지식인들의 서재에는 성경이 꽂혀 있다고 한다.

일본에는 16세기에 천주교가 전파되었고 개신교는 1859년에 전파되어서 우리나라보다 훨씬 빠르게 성경이 전해졌는데도 지금 일본의 기독교인구는 1프로도 안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개신교 비율이 인구대 17프로인데 10년전에는 25프로까지 육박했지만 지금은 교회의 세속화로 10프로 정도가 떨어졌다. 

일본사람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 구원의 멧세지로 믿지 않고 교양서적으로 받아들이고 기독교도 여러 종교중에 하나로 보기 때문에 예수를 혼합종교중에 하나로 보지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믿는 자들이 극히 적다고 한다.

일본은 여러 종교들과 개인 수호신까지 합하면 800만개나 된다고 한다.
그야말로 일본은 귀신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가르침이나 정신수양하는 방편으로 여기거나 세상의 복을 받는 기복으로 여기는는 자의 마음은 수많은 귀신들의 집이 된다.

더러운 귀신

예수님은 귀신을 칭할 때 더러운 영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귀신은 영물이기 때문이다.

더러운 영( ἀκάθαρτον  πνεῦμα)은 무엇을 의미할까?

유대인들은 사탄이나 옛뱀 또는 마귀를 더러운 영(the unclean spirit)라고 불렀다.
사탄은 주로 구약에서 말하는 악한 영이고 마귀는 신약에서 말하는 악한 영인데 같은 종류이다.
사탄이나 마귀는 하나의 거대한 악한 영이다.
그러나 그 사탄안에 수많은 귀신들이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귀신들이 세상에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유혹하고 꼬이고 미혹케하는데 적그리스도인 짐승과 거짓선지자와 거짓선지자를 따르는 이단들과 세상에서 악을 행하는 세상권세자인 군왕들이 가운데서 활발하게 일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8:2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이것들은 마지막 심판에서 마귀와 더불어 불과 유황못인 지옥에 던저질 것이라고 요한계시록 20:10에서 말씀하고 있다.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귀신은 더러운 귀신인데 이 더러운( á̓κάθαρτος unclean )이란 뜻은 무엇일가?

단순하게 말하면 깨끗한(pure clean)의 반대뜻이다.

무엇을 깨끗하다고 할수 있는가?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순전하신 분이다.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거룩하시고 순전하시고 깨끗하신 분인데  마귀가 더러운 이유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떠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바로 더러운 것이요 악이요 죄이다.
그래서 마귀는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반대로 행하기 때문에 더러운 영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세상에서 거룩함과 더러움울 규정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은 하나님편에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반대편에 있는가에 달려있다.
그 외의 것으로는 무엇으로도 거룩함과 더러움을 결정한 기준이 없다.

더러운 영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마귀에게 속해서  사람들 가운데서 직접적으로 활동하는 마귀의 행동대원격인 귀신을 의미한다.
더러운 귀신은 사람에게서 나갔다고 주께서 말씀하셨다.
더러운 귀신은 사람안에 들어가기도 하고 나가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왜 나갔을까?
그것은 더러운 귀신의 특성 때문인데 우리가 옛말에 역마살이 끼었다고 하는데 사람이 한 곳에 진득하게 머물러있지 못하고 온 곳을 다 헤집고 싸돌아다니는 것이 역마살인데 이것은 떠돌아 다니는 귀신이란 뜻이다

귀신은 한 자리에만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 저 사람을 옮겨다니면서 사람들이 죄를 짓게 만드는 일을 한다.더러운 귀신이 이 사람 저사람을 찾아다닌다는 것은 이것이 사람의 마음을 자신의 집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귀신은 사람의 마음을 집으로 삼고 살아간다.
옛날사람들은 귀신이 나무나 바위나 집이나 길에 붙어서 산다고 한다.
그러나 귀신은 결코 사람을 떠나서 살수 없다.
귀신이 거하는 집은 사람의 마음이다.
우리가 사복음에 보면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보고 뛰쳐나와서 예수님앞에 엎드려 살려달라고 소리지르는 장면이 종종 나오고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아 나오라고 명령하셔서 귀신들린 사람의 병이나 정신을 고쳐주셔서 멀쩡하게 만들어 주시는 사건이 있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는 사건은 귀신이 사람의 마음을 거처로 삼고 있다는 증거이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시는 능력을 행하시기 전에는 이러한 사실을 입증해줄만한 어떤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더러운 귀신이 사람의 마음을 집으로 삼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게 해주셨다.
그런데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라고 주님이 말씀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더러운 귀신이 편히 쉴 안식처는 물없는 곳이란 뜻이다.

주님이 말씀하신 물없는( ἀνύδρων) 곳은 어떤 곳일까?

유대인들은 더러운 귀신이 물없는 곳 즉 모래사막이나 풀이 없고 황량한 황무지에 거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물없는 곳은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사막이나 메마른 황무지가 아니다.
우리나라 무속인들도 귀신이 깊은 산속이나 오래된 고목에 거한다고 믿고 산의 바위아래나 고목나무 아래서 귀신을 부르는 고사를 지낸다.
무속인들이 귀신을 부르는 제사를 지내는 것은 더 강하고 센 귀신을 등에 업고 굿을 하기 위해서이다.
마귀나 귀신은 영물이기 때문에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느 곳이나 다닐 수도 있고 이동할 수도 있지만 최종적으로 머무르는 집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들도 집을 떠나 여기저기 다닐수 있지만 최종적으로 집에 와서 안식을 누리고 쉼을 얻게 마련이다.
이런 경우처럼 더러운 귀신도 여기저기 옮겨다닐 수 있고 광야나 산에도 다닐수도 있고 하지만 쉴곳은 사람의 마음인데 예수님은 귀신이 쉴 곳은 물 없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물 없는 마음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물은 거룩함과 하나님의 은혜를 의미한다.
물없는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마음을 의미한다.
사람의 마음속에 물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자들의 마음이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그리스도의 은혜를 거부한 마음은 더럽고 황량하며 강퍅하고 사막과 같이 메마른 영혼이다.

더러운 귀신은 특성상 더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의 마음안에 거하기를 좋아한다.
더러운 이라는 것은 마태복음 15:19-20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귀신은 이런 더러운 생각과 같은 종류이기 때문에 더러운 마음을 가진 자 속에 들어가면 매우 편안함과 아늑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율법적 정결의 함정

그런데 이 더러운 귀신이 한 사람으로부터 나가서 물없는 곳을 찾아다닌 이유는 이 사람의 마음이 어느 정도는 정결해졌다는 뜻이다.
여기서 한 사람은 바리새인들인데 바리새인들은 한때 모세의 율법으로 일시적으로 또는 반복적으로 지킴으로 그 마음이 정결케 되어지기도 했다.
율법이나 인간의 강한 의지나 노력도 어느 정도 어느 기간동안에는 마음을 깨끗이 할 수 있다.
개과천선(改過遷善)한다는 말이 있는데 잘못 들어선 길을 버리고 착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결의를 실천하여 마침내 정결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죽을 힘을 다해 죄와 욕심을 억누를 수 있지만 인간은 깨지기 쉬운 그릇과 같기 때문에 한 번 방심하면 순간적으로 무너져 버린다.
그래서 율법이나 인간의 의지노력 수양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과거에 노름에 빠져서 가산을 탕진하고 나서 후회하며 다시는 노름을 하지 않겠다고 손가락을 잘라내었는데 나중에는 발가락으로 놀음질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과거에 양도천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예수믿고 어떻게 하면 자신의 마음속에서 음욕을 없앨까 날마다 노력했는데 그 음욕이 없어지지 않아 어느 날 산기도중에 돌을 들어 자신의 음부를 쳐서 잘라버렸다고 한다. 
그는 인간적인 노력으로 정결하게 되려다가 결국 이단 교주가 되고 말았다.

죄를 끊으려는 이 몸부림이 얼마나 처참한가?
그렇다고 해서 정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율법과 인간의 의지 수련은 어느 정도 효과는 있지만 결국 인간의 마음깊숙이 숨어 있는 욕망에 의해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신의 노력이나 율법 인내함으로 죄를 없이한다든지 거룩해지려고 하는 것은 자신의 무능함을 확인하는 비극이 되어진다.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으로 의로워지기 위해 발버둥을 쳤을 때 잠시마음이 깨끗해져서 더러운 귀신이 그들에게서 떠나간 것이다.

어쨌든 잠깐이지만 모세의 율법으로 깨끗해지기는 했기 때문이다.

율법으로 노력으로 수련으로 잠시 마음이 깨끗해진 사람에게서 더러운 귀신은 "어 이 사람이 마음이 깨끗해졌네"  하면서 귀신 적성상 맞지 않으므로 나와서 다른 더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으로부터 나간 더러운 귀신은 자신이 쉴만한 더러운 영혼을 찾고 찾아다니다가 찾지 못했다고 주님은 말씀하고 있다.

율법을 잘 지키고 수련으로 죄를 억누르고 도덕적이며 윤리적으로 마음을 깨끗케 한 사람으로부터 나온 더러운 귀신은 왜 다른 더러운 영혼을 찾지 못했을까?

이 세상에 더러운 사람들이 그렇게도 없었다는 이야기인가?

그런데 더러운 귀신이 쉴곳을 찾지 못했다는 뜻을 잘 생각해보자

쉬기를(ἀνάπαυσιν rest) 구하되(ζητοῦν seeking)  그러나( καὶ  but) 찾지 못했다( μὴ  εὑρίσκον not finds)

여기서 쉬기를 (아나파우시스ἀνάπαυσιs)이라는 말은 막간 잠깐( intermission )의 의미가 있다.
우리가 막간을 이용해서 라는 말을 하는데 연극공연할 때 일 막이 끝나고 이 막이 시작되기 전 잠깐의 휴식시간인데 이 때 관객들은 음료수를 마신다든지 화장실에 다녀온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마음을 율법이나 도덕 또는 수련등으로 깨끗하게 청소하는 그 잠깐 사이에  더러운 귀신이 잠시 가 있을 곳을 찾고 있었다는 뜻이다.
즉 우리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집안을 청소하면서 애들아 잠깐 밖에 나가 놀다가 엄마가 청소 다하면 들어와라고 하실 때가 종종 있었다. 왜냐면 어머니 생각은 애들이 집안에 바글바글있으면 청소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에 잠시애들한테 휴식시간을 주는 것이다.

더러운 귀신은 막간을 이용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흥미있고 신나는 일들을 찾아 다녔는데 더러운 귀신이 찾아다닌 것은 악하고 못되고 더러운 마음을 품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충동질했던 것이다.

더러운 귀신들은 말 그대로 악동들이라고 할 수 있다.
못된 짓 악한 짓 아주 혐오스럽고 더러운 그런 쓰레기같은 자들을 찾아다니는 악동들이 바로 귀신들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더러운 귀신은 좋아할만한 그런 악하고 더러운 짓들을 하는 자들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귀신들도 종류가 있다.

예수님은 귀신들을 쫓아내실 때 그 앞에 귀신들의 특성을 붙여서 이름을 부르셨다.
벙어리귀신, 더러운귀신, 일곱귀신, 군대귀신, 꼬부라져 펴지못하게 하는 귀신 등 예수님은 귀신들이 인간에게 정신병과 여러 가지 질병을 가지고 들어가며 귀신이 하는 일들을 병명을 통해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실 때 장님이 앞을 보기도 하고 벙어리가 말을 하기도 하고 경련을 일으키던 사람이 낫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정신이 온전하게 되며 병증들이 사라지게 되었다.

귀신들도 다 특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귀신은 어떤 귀신인가?

바리새인들 즉 율법주의라는 외식과 위선의 귀신이며 교만과 사람차별이라는 귀신이 들어와서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구원의 길을 가로막는 지식적이며 고상한 죄악을 범하는 자들이다.

이렇게 겉으로는 율법을 지키고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것처럼 위선을 떨고 있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더러운 영혼을 가진 자들을 사냥하는 귀신을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여기에 있는 더러운 귀신은 양반 귀신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서는 도덕군자요 법을 잘지키는 자요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떠받듬을 받는 자들속에 있는 위선과 그리스도의 진리를 대적하는 사악함을 우리 주님은 드러내고 계신다.

더러운 귀신은 자신이 쉴만한 곳을 탐색해봤지만 자신의 특성과 맞는 위선자들을 찾지 못하고 다시 나왔던 그 사람에게 찾아온 것이다.

또한 거짓말하는 귀신 음란한 귀신 시기질투하는 귀신 남을 비판하고 악담하는 귀신 자살하는 귀신등등 귀신의 종류는 매우 많은데 그 귀신들은 적성에 맞는 사람에게 들어간다.

우리가 살인을 행하는 사람들을 보면 갑자기 충동적으로 나쁜 짓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평소에 원망과 저주와 앙심을 계속 품고 있다가 귀신의 충동으로 들어와서 결국 끔찍한 악을 저지르게 된다.

 어떤 죄든지 순간적으로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죄된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으므로 언젠가 그 죄를 좋아하는 귀신이 들어와서 실제로 그 죄악을 짓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샤마니즘에 보면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되어 구천을 헤매다가 사람들 속에 들어온다는 말을 무당들이 하는데 이것은 다 귀신의 속임수이다. 

죽은 사람의 영혼은 결코 이 세상에 있을수 없고 단지 마귀의 하수인인 귀신이 죽은 자들의 흉내를 내어서 마치 전생이 있는 것처럼 죽은 영혼을 달래주어서 보내주어야 한다고 해서 마귀가 사람들에게 제사(섬김)을 받아먹으려는 수작이니 속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전생체험이나 무당이 죽은 자의 혼을 불러들인다는 초혼의식은 완전히 마귀의 장난질이다. 

결코 무당이 죽은 부모의 영혼이나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올 수 없다.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영혼은 모두 하나님의 권한에 들어가서 심판을 기다린다. 

그래서 죽은 자는 다시 세상에 불러올수도 머물수도 없다. 

불교에서 49제를 하는 것은 구천에 떠돌아 다니는 죽은 사람의 혼이 49일째에 저승으로 가는데 잘 보내줘야 한다고 하면서 고인의 가족들에게 돈이나 절에 필요한 물건을 바치라고 한다.

죽은 영혼을 이용해서 돈벌어먹는 사람들이 누가 있는가 주변을 둘러보라! 

실상 카톨릭에서는 죽은 자를 위해 선행을 하면 그가 지옥에서 연옥으로 올라온다고 거짓말을 하고 헌금을 뜯어낸다.

무당 점쟁이도 죽은 자의 혼을 달래기 위해 굿을 하면서 무지한 사람들에게 돈을 뜯어낸다.

만일 어떤 교회에서도 죽은 자를 위해 명복을 빈다든지 어떤 기념비나 기념회를 만들기 위해 헌금을 요구한다면 귀신의 짓거리이며 저주받을 일이므로 절대 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마귀의 하수인들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죽은 자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해서는 안되고 오직 살아있는 가족들이나 친척들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선행을 행해야 한다.

 나갔던 귀신이 다시 돌아오다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 되었거늘"

귀신이 나왔던 사람에게 돌아가보니까 그 사람의 마음은 깨끗해졌는는데 비어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마음을 깨끗이 청소한 사람의 맹점은 그 마음에 주인이 없었다는 것이다.

 빈집 빈 마음이라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아무리 모세의 율법과 구제와 금식과 기도로 자신들을 청소했지만 그 마음속에 진정으로 거룩한 하나님을 모시지 않고 빈 영혼으로 두었던 것이다.

깨끗이 청소되어 있는 정돈된 영혼에 주인이 없다는 사실은 더러운 귀신들에게 아주 구미가 당기고 굉장한 흥밋거리를 제공하는 상황이었다.

다시 일곱귀신을 데리고 들어간 이유는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깨끗하게 소제되고 정리된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온갖 더러운 것들로 다시 채우는 일이다.

세상사람들이 가장 흥미있고 매우 쇼킹한 뉴스는 너무나 착하고 도덕적이고 예의바르고 정의로운 사람이 갑자기 사기를 쳤다든지 뇌물을 받았다든지 혹은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러면 뉴스에 토픽으로 장식된다.

고아원이나 장애자 시설을 운영하는 목사나 신부 혹은 스님이 횡령을 하고 아이들에게 몹쓸짓을 했다는 뉴스를 들으면 사람들은 매우 흥분하면서 그럴수가 있어 그게 사람이야 하고 난리가 난다.

겉으로 볼 때는 매우 착하고 법없이도 살 사람인데 사람을 죽이고 강간하고 강도짓을 했데 하는 것이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지적인 마음을 가진 자의 삶을 더럽고 음란하게 어지럽히는 것이 더러운 귀신들의 아주 재미난 활동인 것이다.

세상사람들에게도 매우 흥미로운 소식이 될 수 있다.

특히 거룩하고 의의 사자같이 보였던 교회 목사가 성추행이니 그룸밍 성범죄니 하고 뉴스에 나오면  사람들의 입에 매우 흥미로운 가십거리가 된다.

마치 어머니가 깨끗하게 집안을 청소했는데 철없는 자식들이 밖에서 놀다가 들어와서 흙뭍은 옷을 털지도 않고 더러운 손과 발도 깨끗해진 방안을 휘젓고 다니며 온갖 때를 뭍히면서 깔깔대고 재미있는 놀이라고 하듯이 난장판을 만들어 놓는 것과 같다.

얼마나 악동들인가?

  지식으로 가득차고 윤리와 도덕으로 가득한 인격자들의 마음속에 들어와서 가지런히 정돈된 마음을 음란함과 탐욕으로 외식과 위선으로 더럽혀놓는 악동들이 바로 더러운 귀신들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도덕군자이고 법을 잘지키는 사람이라고 해도 예의범절이 뛰어나고 사람들앞에서 선비같고 점잖은 사람도 그가 혼자 있을 때 또는 그 마음속에 얼마나 더럽고 추한 것들이 들어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나는 아니다라고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 주님은 자기의 의와 자기의 의지 자기의 도덕과 자기의 법으로 스스로 깨끗하다고 자부하고 믿는 그런 사람들의 마음속에 더러운 귀신이 일곱이 들어가 상태가 전보다 더 악해졌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거짓과 위선 그리고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은 점점 더 더러워져서 나중은 처음상태보다 7배나 더 악한 더러운 귀신들의 집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주님은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다.

들을 귀 있는 자는 성령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말씀하신 귀신 이야기를 들은 바리새인들과 율법주의자들 도덕군자들이  주님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듣고 주님을 잡아 죽이려고 이를 갈았던 것이다. 
주님은 율법주의자 외식주의자들에게 너희가 아무리 겉으로 법을 잘지키고 도덕적이며  모범적이고 착한 척하지만 너희들의 영혼은 7마리 더러운 귀신의 잡탕질하는 놀이터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의 영혼의 집에 주인을 모셔야 한다.
우리의 영혼의 주인은 우리 자신이 될수 없다.
왜냐면 에덴동산에서 인간이 쫓겨난 후부터 인간의 영혼은 쭉 빈집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마귀는 사람들에게 네 인생은 네 거야 하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속삭인다.
그래서 케세라 세라 네 인생이니 마음껏 즐겨라 하고 귀신은 속살거린다.
내가 내 영혼을 주인이라고 아무리 떠들어대고 내 인생은 내것이라고 아무리 소리질러봐도 소용없다.
내 영혼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는 사실은 누가 가르켜주지 않아도 바로 우리 자신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내가 왜 이러지?
내 마음은 그게 아니었는데 할때가 있다.
이러한 자책은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한다.
착한 것같은 사람도 악한 일을 저지른 사람도 자신의 뜻과 달리 행동하는 자기를 보고 놀랜다.
그것은 자신의 영혼의 주인이 자기가 아니라 누군가 있다는 뜻이다.
그 영혼의 주인이 더러운 귀신이라면 점점 점점 더 나빠져서 결국은 일곱 귀신의 거처가 될 것이다.
일곱 귀신은 단지 숫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회복될 수 없는 완벽한 악의 상태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혹시 일곱귀신이 들렸다고 해도 회생의 가능성을 있다.
왜냐하면 일곱귀신이 들린 막달라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하나님으로 영접한 후에 놀라운 변화를 체험했다.

일곱귀신에 매여서 인생을 포기할 정도였던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의 부활을 가장 먼저 맞이했고 제자들에게 주님의 부활을 선포한 여인이 되었다.

우리의 영혼이 더러운 귀신의 집이나 난장판이 되지 않고 거룩한 하나님의 처소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수 그리스도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며 인간으로 오셨지만 죄가 전혀 없으시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으나 죄가 전혀 없으시기 때문에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지금은 하나님의 우편에서 우리의 중보자 그리스도 주가 되시고 장차 의인과 악인을 심판하시러 다시 재림하실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그리스도로 모시고 내 영혼의 집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다.

내 영혼에 거룩하신 예수그리스도가 거하시고 내 영혼의 주인이 되실 때 더러운 귀신들은 왔다가도 혼비백산 일곱 길로 도망가게 될 것이며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앞에 갈 때까지 더러운 귀신들은 우리의 영혼에 얼씬도 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의와 거룩함은 결코 도덕이나 율법 선행 수도 지식 인격으로 되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현 시대에 법을 집행하는 자들이 변태적행동과 탐욕으로 부끄러운 짓을 행하고 권력자들이 음란과 정욕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선생이 제자들을 대상으로 성폭행을 행하고 목사가 스님이 신부가 외간 여자들로 인해 수치를 당하는 것을 본다.

우리 자신이 이것을 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가 이러한 더러움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영혼속에 이 더러움이 깊이 숨어 있을 수가 있다.
더러운 귀신이 탐하고 유혹하는 더러움을 우리가 씻어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의 거룩함 밖에는 없다.
그리스도를 굳게 믿고 우리 영혼의 주인으로 붙잡아 모셔놓을 때 우리는 모든 더러움을 이겨낼 수 있고 어떤 종류의 귀신도 다 쫓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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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귀신(1140) 다이모니온(daimŏniŏn) δαιμόνιον, ου, τό
1. 신성,  2. 마귀,  3. 병든 사람을 고치는 것이 귀신을 쫓아내는 것으로 묘사된다
발음 / 다이모니온(daimŏniŏn)
관련 성경 / 귀신(마 7:22, 요 7:20, 딤전 4:1), 신(행 17:18)
신약 성경 / 63회 사용

마태복음 8:32
저희더러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마태복음 10:1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 프뉴마톤 아카다르톤(4151 169) 프뉴마 아카다르토스

4151. πνεῦμα, ατος, τό 
1. 불기,  2. 바람,  3. 숨 내쉬기
발음 / 프뉴마(pnĕnuma)
어원 / 4154에서 유래
관련 성경 / 성령(마 4:1, 막 1:10, 눅 2:27), 심령(마 5:3, 눅 1:17), 귀신(마 8:16, 눅 4:36, 요 16:18), 마음(마 26:41, 막 8:12), 영혼(마 27:50, 눅 23:46, 요 19:30), 중심(막 2:8), 하나님의 말씀(행 18: 5), 영(눅 24:37, 39, 엡 1:17), 빛(엡 5:9), 한마음(빌 1:27), 기운(살후 2:8), 바람(히 1:7), 생기(계 11:11, 13:15).
신약 성경 / 379회 사용

169. ἀκάθαρτος, ον 
1. 불순한,  2. 신성과 밀접할 수 없는,  3. 에베소서 5:1
발음 / 아카다르토스(akathartŏs)
어원 / 1[부정불변사]과 2508 ‘정결하다’의 파생어에서 유래
관련 성경 / 더러운(마 10:1, 계 18:2), 깨끗하지 아니한 (행 10:14), 깨끗하지 못한(고전 7:14), 부정한 (고후 6:17)
신약 성경 / 32회 사용


마태복음 12:43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마가복음 1:23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
Just then a man in their synagogue who was possessed by an evil spirit cried out.

마가복음 1: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마가복음 1:27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마가복음 3:11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마가복음 3:20
이는 저희가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마가복음 5:2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다.

마가복음 5:8
이는 예수께서 이미 저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마가복음 5:13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마가복음 6:7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

마가복음 7:25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 엎드리니.

마가복음 9:25
예수께서 무리의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누가복음 4:33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누가복음 4:36
다 놀라 서로 말하여 가로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세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누가복음 6:18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고침을 얻은지라.

누가복음 8:29
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이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귀신이 가끔 이 사람을 붙잡으므로 저가 쇠사슬과 고랑에 매이어 지키웠으되 그 맨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

누가복음 9:42
올 때에 귀신이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비에게 도로 주시니.

누가복음 11:15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저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누가복음 11:24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사도행전 5:16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사도행전 8: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요한계시록 18:2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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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 (마가복음 1:21-28)

문명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귀신”을 옛날 이야기에나 나오는 허구적인 존재로 치부되기 쉽습니다.
오늘날처럼 과학 기술이 발전한 시대에 천사나 귀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이 어린아이처럼 미숙하게 생각되기도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앙이 그 생명력을 잃게 된 중요한 원인들 중 하나는 성경의 이야기들과 우리 신앙 생활 가운데서 영적인 존재들 곧 천사들이나 귀신들을 쫓아내버린 것이다.”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세상은 크게 “보이는 세상(visible world)”과 “보이지 않는 세상(invisible world)”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보이는 세상은 우리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땅이며, 보이지 않는 세상은 영이신 하나님을 위시하여 온갖 종류의 영들이 존재하며 활동하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이야기들은 이 두 세상을 모두 섭렵하며, 또 그 두 세상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과 영적인 존재들을 그 주인공들로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보이지 않는 세상(invisible world)”과 그 세상을 채우고 있는 영들이야말로 많은 사건들 속에 진정한 주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도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와 “더러운 귀신”이 만나 격돌한 사건을 그리고 있습니다. 둘 모두 그 실체가 영적인 존재들입니다. 여기서 “사람들”은 구경꾼에 불과합니다. 이 사건에서 귀신을 빼버린다면 오늘 본문 말씀은 전혀 의미가 없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보이지 않는 세상(invisible world)”을 이해하고 성경적인 세계관을 갖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이라는 도시에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셨습니다. 회당(synagogue)이란 말 그대로 유대인들이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이스라엘 전체에 걸쳐 오직 하나뿐인 성전(Temple)이 있었으며, 유대인들은 명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이곳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평소에는 안식일에 각자의 마을에 있는 회당에 모여서 성경 말씀을 읽고, 이를 가르치고 배우는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유대인들에게 회당은 오늘날의 예배당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자, 사람들은 그 가르치심에 놀랐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22절은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서기관들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는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권세가 있었고, 서기관들의 그것은 권세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세는 바로 이어지는 사건에서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곧 예수님께서 귀신에게 명하시기를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자, 귀신이 그 말씀에 순종하여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지신 권세는 “영적인 권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서기관들은 이 불쌍한 사람을 사로잡고 있는 귀신을 쫓아낼 수가 없어서, 그냥 두고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이들에게 귀신을 제어할 수 있는 “영적 권세”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과 귀신이 나눈 대화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알아본 귀신은 크게 소리를 질러 말했습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려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이에 예수님께서 귀신을 꾸짖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예수님과 더러운 귀신 사이에 대화를 보자면, 이 둘은 서로가 어떤 존재인 것을 분명히 알았으며, 또 서로를 향하여 말을 하고, 그 말을 듣고, 이에 반응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사람들은 다만 그들 눈 앞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놀라워할 뿐이었습니다. 우리가 보는 현실 세계에서 예수님은 갈릴리 시골 나사렛에서 온 가난한 목수의 아들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 곧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분이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실체입니다. 예수님을 알아본 귀신은 두려워서 떨며 비명을 질렀습니다. 마치 컴컴한 방에 갑자기 불을 켜면 어둠 속에서 활동하던 벌레들이나 쥐들이 황급히 몸을 감추듯이, 이 더러운 귀신 또한 예수님의 빛 앞에 그 정체가 밝히 드러나고 두려워 떨며 급히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권세로 더러운 귀신을 완전히 제압하시고, 이 귀신 들려 비참해진 사람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영적인 싸움을 싸우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며, 또 이 싸움을 위해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일을 하신 것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유대인의 회당에서였습니다. 회당은 유대인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이 거룩한 곳에 “더러운 귀신”이 버젓이 드나들며 대놓고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유대인들이 결벽증으로 보일 만큼 “더러운 것”을 싫어하고 멀리하며 밤낮으로 손발을 씻었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예수님과는 달리 왜 유대인들은 이 더러운 귀신을 쫓아낼 수 없었을까요? 왜 회당에서 가르치는 서기관들의 말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권세가 없었을까요? 야고보서 4:7,8절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마귀를 이기고 쫓아낼 권세를 갖게 되는지를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순복하고 마귀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걸림이 되는 마음 속의 죄들을 즉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자복하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며,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가 온 마음을 들여 생각하고 기도하며, 최선을 다해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 속에 마귀를 미워하고 대적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마귀를 싫어하고 멀리하게 됩니다. 마귀를 쫓아낼 권세를 갖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유대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매우 연약했습니다. 이는 그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하나 그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났다”고 책망하십니다 (마태복음 15:8). 이들의 이러한 영적 상태를 생각하면 서기관들의 가르침이 권세가 없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권세 (authority)”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예수님을 “권세 있는 자”라고 하며 (22절), 또 귀신을 내어쫓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리켜 “권세 있는 새 교훈”이라고 합니다 (27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런 권세를 가지신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권세를 제자들에게도 주십니다. 마가복음 3:14,15절에는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세우시면서 그들을 부르시는 세 가지 목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세 가지란 첫째,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둘째, 보내사 전도하게 하시며, 셋째,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가 있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인 제자들이 귀신을 제어할 수 있는 권세를 갖는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이는 귀신 또한 어둠의 세계를 주관하는 일종의 영적 권세자(spiritual force of evil)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어둠의 세력을 무서워하는 대신 이를 대적하고, 제어하고, 내어쫓을 수 있는 권세를 가졌다는 것은 제자들의 신분이 “땅에 속한 사람(earthly being)”에서 “하늘에 속한 사람 (heavenly being)”으로 완전히 바뀌었음을 말해줍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보이지 않는 세계를 통치하는 영적인 권세자들이 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우리가 어떻게 이 권세를 가질 수 있을까요?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하나님의 권세”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는 “하나님의 권세는 밝은 눈과 같다(Divine authority is like the single eye)”고 말합니다. 어려운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밝은 눈”이란 마태복음 6:22절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밝으면 (If your eye is single - KJV) 온 몸이 밝을 것이요”라는 말씀에서 따온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께서 나를 똑바로 보시면서 나에게 어떤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권세에 순복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나로 사로잡으며 나의 밝은 눈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보이고, 귀신은 귀신으로 보이고, 빛은 빛으로 보이고, 어둠은 어둠으로 보입니다. 사랑할 것을 사랑하게 되고, 미워할 것을 미워하게 됩니다. 가까이 할 것을 가까이 하게 되고, 대적할 것을 대적하게 됩니다. 곧 하나님의 권세가 내 안에 살아있어서 마귀를 대적하고 제어하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세에 순복하여 마귀의 궤계를 분별하고 대적한 이야기들은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신 후 마귀에게 시험을 받은 것입니다. 40일 동안 금식하여 거의 죽음에 눈 앞에 보일 지경이 되신 예수님께 “시험하는 자” 곧 마귀가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하여 이 돌들에게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마태복음 4:3). 몹시 배가 고프신 예수님께 이 마귀의 말은 참으로 큰 유혹이 되었을 것입니다. 저 같으면 아마도 벌써 돌멩이가 떡으로 보이고, 유혹하는 마귀가 천사로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시험하는 마귀에게 대답하셨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이 “떡”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 달려 있는 것을 아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주관하시는 권세를 가지셨음을 잘 아시고 오직 이 하나님께 순복하셨습니다. 40일을 굶으신 상황에서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오직 하나님 한 분을 경외하시고 그 말씀에 순종하시므로 예수님께서는 항상 밝은 눈을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그 밝은 눈으로 마귀의 역사를 분별하고 대적하셨습니다. 심지어 마귀가 수제자 베드로를 통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러 가는 길을 막으려 할 때도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며 그를 책망하셨습니다 (마가복음 8:33).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시며 그 뜻을 이루는데 온 몸과 마음을 드리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하나님의 권세에 순복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께는 마귀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정말 바늘 구멍만큼도 없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사로잡고 있는 하나님의 권세가 예수님께 밝은 눈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귀신이나 마귀의 존재를 믿지도 않으며, 또 자신들이 지금 마귀의 권세 아래 있음도 깨닫지 못한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이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권세”에 순복하지 않음으로 그들의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눈이 어두워졌을 뿐 아니라 영적으로 깊이 잠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를 악한 영들로부터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들로 회복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어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성령님은 우리로 여호와를 경외하게 하시는 영(이사야 11:2)이시며,
또 우리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게 하시는 영(로마서 8:15)이십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성령을 받을 때, 우리 영의 눈이 열리게 됩니다.
악한 마귀의 더러운 귀신을 분별하고 대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권세를 의지하여 영적인 싸움을 싸우는 권세자가 됩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관하여 잘 모르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요한복음 4:24), 예수님의 말씀 또한 영입니다 (요한복음 6:63).
우리가 싸워야 할 싸움 또한 영적 싸움이며, 우리가 싸워야 할 대적은 혈과 육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입니다(에베소서 6:12).

우리가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시는 예수님의 권세를 덧입고 이 영적 싸움을 능히 감당하는 “권세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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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왕 바알세불 곧 사탄마귀는 이미 진 자다.
광야에서 금식하신 후 40일이 지난 시점에 예수님과 맞붙어서 3대 0으로 판정패 당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KO패 당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미 3대 0으로 판정승할 때부터 귀신을 쫓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12제자들과 70명의 제자들에게 위임했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에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귀신쫓는 권세를 위임해 주셨다.
예수께서는 공생애기간에는 판정승한 것으로 인하여 사탄마귀의 졸개들인 귀신을 쫓아내었고, 부활승천하신 후에는 KO승한 것을 바탕으로 모든 믿는 자들에게 그 권세를 위임했다.
그러므로 모든 믿는 자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으며, 쫓아내야 한다.
귀신이 쫓겨나가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데 필수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마 12:28).
귀신이 쫓겨나가지 않으면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는 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쫓아내야 하는가?
그리고 귀신을 쫓았는데도 그가 떠나가지 않을 때에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
알고 보면 쉬운 일이지만 모를 때에는 당황할 수도 있다.

지피지기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

지피지기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

성도의 신앙생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중에는 귀신(鬼神, 다이모니온)이 있다.
그런데 성도들 중에는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분들도 있으며, 귀신이 얼마나 많이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몰라 귀신에게 당하고 있는 분들도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듯이 귀신을 알아야 귀신을 대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귀신이 어떤 존재이며 성도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잘 모르는 분들이 이외에 많은 것 같다.

그리고 귀신의 공격하고 있음을 알고서도 귀신을 그냥 방치함으로 귀신으로부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도 적잖게 있는 것 같다.

예수 이름으로 귀신아 나가라! 하고 명령하면 왜 귀신들은 순종할 수밖에 없는가?  

성도들이 귀신들에게 나갈 것을 명령하면 왜 귀신들은 나가야 하는가?
나가지 않으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그들은 왜 성도들의 축사 명령에 그대로 순종해야 하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귀신은 패배자(敗北者)이기 때문이다.

귀신의 대장인 사탄 마귀가 성도들의 주인이신 예수님에게 이미 패했기 때문이다(벧후 2:1).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그러므로 귀신들도 자기들의 대장을 이긴 예수님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당신의 권세를 처음에는 당신 혼자 사용하셨지만, 이내 그러한 권세를 12제자들에게도 위임하셨다(마 10: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그리고 70명의 제자들에게 위임하셨으며(눅 10:1), 죽고 부활하신 다음에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그러한 권세를 위임하셨다(막 16:17).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는 예수께서 주어진 권세를 이용하여 귀신들을 쫓아낼 수 있다.

누가복음 10:1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마가복음 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왜냐하면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기 때문이다(벧후 2:19).

베드로후서 2:19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영계에도 엄연히 일정한 법칙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된다는 놀라운 법칙이다.
그런데 귀신들의 왕(지배자)인 마귀가 예수님과 한 판 붙어 싸웠을 때 마귀는 어떻게 되었는가?
마귀는 그때 예수님에게 3대 0으로 판정패 당했다(그리고 십자가에서 마귀는 완전히 패배당하여 사망과 음부의 열쇠마저 주님께 내어주어야 했다).

예수께서는 마 4장에서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신 후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그때 예수께서 마귀와 처음으로 한 판 붙으셨다.
그때만해도 마귀는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예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던 날, 그도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들었을 것이이다. 아니면 자기의 부하들을 통해서 그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이 누군지를 잘 몰랐으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고 싶어했다.

그래서 예수님께 질문을 던졌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 4:2)"
그때였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마귀에게 증명해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사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은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한낱 피조물에게 시험을 받으시겠는가?
하지만 그 때에는 예수께서 사람으로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때 예수께서는 어떻게 해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는가?
그것은 "기록된 말씀"을 사용해서였다.
예수께서는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4:4)"고 댓구하셨기 때문이다.
그러자 마귀는 의식주의 유혹으로 예수님을 넘어뜨릴 수가 없음을 알고는 새로운 시도에 들어간다.

이제는 마귀도 기록된 말씀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넘어뜨리고자 시도한 것이다.
우선 그는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웠다.
그리고 말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으니라(마 4:6)"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번에도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마 4:7)"이라고 말씀하면서 그를 물리쳤다.

최종적으로 마귀는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산으로 데리고가서 천하만국의 모든 영광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만일 내게 엎으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 4:9)"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저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으니라(마 4:10)"이라고 댓구하심으로 물리치셨다.

그러자 마귀가 예수님을 얼마동안 떠나야 했다.
마귀는 예수께 3대 0 판정패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 자로서 마귀의 부하들은 예수님에게 복종해야 했던 것이다.

만약 그때 예수께서 마귀의 시험 가운데 하나라도 마귀의 말에 순종했더라면 큰 일 날 뻔 했다.
만약 그날 예수께서 돌로 떡을 만들어 먹었거나, 성전에서 뛰어내렸다면, 그는 마귀의 말처럼 천하만국의 모든 영광을 취했을 수는 있으나, 그때부터 예수님은 마귀의 종이 되어버리는 것이니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계에서는 누구의 말에 순종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누구든지 순종한다면 우리는 순종하는 자의 종이 되기 때문이다.
즉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예수께서도 마귀의 말에 순종하고 말았으니, 예수님도 그만 마귀의 종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돌을 떡덩이로 만들어 먹을 수 있었지만, 결코 그 순간에는 마귀의 말을 듣지 아니했다.
예수께서 뛰어내리 때에는 천사가 와서 그를 받들어 지켜주실 것이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결코 뛰어내지지 않았다.
마귀의 말에 순종하지 않기 위해서다.
만약 마귀의 말에 순종했다면, 우리는 전부 마귀의 종이 되는 것이고, 그러면 마귀에게 진 자가 되어지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예수께서 어릴 적부터 기적을 행하셨고, 귀신을 쫓아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비록 예수께서 잉태될 때부터 하나님의 아들이기는 했지만,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세례요한에게 공식적으로 세례를 받기 전까지 그는 아직 기름부음을 받지 못했다.
그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메시야로서 사역을 시작하지 아니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기 전까지, 예수님은 그 어떤 기적을 행하시지 아니했으며, 귀신을 쫓아내시지도 아니하셨다.

그런데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한 이후에 마귀에게 한 판 승부를 벌여서, 그 싸움에서 이기심으로 이제 마귀의 졸개들인 귀신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신 것이다.

어느날 예수께서 귀신들려 눈멀고 말못하는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자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게 되고, 보게 되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비난하여 예수께서 귀신의 왕(통치자)인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있다.
그중에 왜 우리 믿는 이들이 귀신을 쫓아낼 수 있게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단서가 들어 있다.
그것은 마태복음 12:29의 말씀이다.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이 말씀에 나오는 "강한 자"는 귀신의 왕(통치자) 바알세불인 사탄 마귀(루시퍼)를 가리키며, 강한 자의 집 안에 있는 세간은 그의 졸개들인 귀신들을 가리킨다.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던 것은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의 힘을 빌린 것이 아니라, 그와 싸워서 이겼기 때문에, 그의 부하들인 귀신을 쫓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님으로부터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는 성도들은 누구든지 귀신을 쫓아낼 수가 있는 것이다.

둘째, 예수 이름의 명령은 이미 승리한 명령이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귀신들로 하여금 떠나갈 것을 명령하면, 귀신들에게 엄청난 타격이 가해짐으로 그들이 고통을 받기 때문이다(마가복음 5:7~9).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우리가 귀신들에게 명령하면 영적 질서가 세워진다.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에게 복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하신 하나님으로 엄청난 징계가 임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리의 말에 순종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순종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그들에게 괴로움이 임한다.
나갈 때까지 더욱 더 큰 고통이 찾아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입에서 나가는 말씀과 명령이 칼이 되고 불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명령하는 말씀이 칼이 되면, 칼은 밖으로 나가서 귀신에게 계속해서 엄청나게 타격을 가한다.
그리고 명령하는 말씀이 불이 되면, 귀신들을 태워버린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리가 떠나갈 것을 명령하면 명령할수록 고통을 받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한 번 내쫓으려고 했다면 계속해서 꾸짖어야 한다.
그가 떠나갈 때까지 말이다.

귀신에게 나갈 것을 명령할 때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며, 또한 어떻게 명령해야 하는가?  

귀신을 쫓아낼 때에는 어쩡쩡한 태도나 부탁조로 말해서는 아니 된다.
그럼 어떻게 쫓아내야 하는가?

꾸짖어서 쫒아내야 한다(마가복음 1:25, 9:2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Be quiet!" said Jesus sternly. "Come out of him!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When Jesus saw that a crowd was running to the scene, he rebuked the evil spirit. "You deaf and mute spirit," he said, "I command you, come out of him and never enter him again."


왜냐하면 예수께서도 귀신을 쫓아내실 때에 "꾸짖어"서 쫓아내셨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귀신도 인격체이므로 자신을 꾸짖는지 부탁하는지를 안다.
그러므로 귀신에게는 이제는 그가 사람 속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고지하고 그 사람에게서 떠나갈 것을 강력하게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직접 귀신을 쫓아내실 때에도만 "꾸짖"었지만, 귀신이 역사하고 있는 현장과 대상에 대해서도 꾸짖으셨다.
특히 베드로의 장로가 열병에 시달리고 있었을 때에는 열병을 꾸짖으셨으며(눅 4:39), 심지어 자연의 기본적인 힘들 즉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잠잠하게 하기도 하셨다(막 4:39).
왜냐하면 질병과 바람 가운데에 귀신이 역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4:39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So he bent over her and rebuked the fever, and it left her. She got up at once and began to wait on them.

마가복음 4: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He got up, rebuked the wind and said to the waves, "Quiet! Be still!" Then the wind died down and it was completely calm.



명령하여 쫓아내야한다(마가복음 5:7~9)

귀신에게 떠나나갈 것을 명령하고 나간 다음에는 "다시는 들어오지 말라"고 다짐시키듯 명령해야 한다(막5:7~9).

 

귀신이 잘 나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귀신에게 떠나갈 것을 명령했으나 잘 나가지 않을 때에는 당황해서는 안 된다.
성경에 보면,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거나 12제자들이나 사도바울이 귀신을 쫓아낼 때에는 그냥 귀신이 순종하며 떠나갔는데, 나 자신이 명령했을 때에는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고 꿈쩍도 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때에는 귀신이 떠나가지 않는 이유를 다시 확인해보아야 한다.
귀신이 떠나지 않는 데에는 다음의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어서다.
그때에는 그만한 이유들을 제거해주고 명령해야 한다.

첫째, 귀신들린 자가 회개하지 않은 죄를 갖고 있을 때 귀신은 잘 떠나가지 않는다.

죄를 완전히 인정하고 회개해야  떠나간다.
왜냐하면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기 때문이다(요일 3:8).
그러니 자기가 그 사람 속에 들어있을 합법적인 이유가 있는데 왜 떠나가려고 하겠는가? 그냥 버티려고 할 것이다.

둘째, 귀신들린 자에게 많은 귀신들이 들어있으면 귀신은 잘 안 떠난다.

그때에는 "너 말고 누가 더 있어?" 라고 물어보아야 한다.
군대귀신처럼 많은 귀신들이 들어있을 때에는 잘 떠나가지 않는 습성이 있다.
그때에는 "너 말고 다른 귀신도 함께 떠나 가~~"라고 명령해야 한다.

셋째, 귀신들린 자가 스스로 자기 안에는 귀신이 없다고 말하거나, 벌써 귀신들린 지가 몇 년쯤 되어서 귀신이 시키는 대로 거짓말을 하고 있을 때에는 귀신이 떠나가지 아니한다.

귀신은 계급이 높을수록 자기를 잘 감춘다.
이제 맨 밑의 귀신들은 금방 자신을 드러내지만, 오래된 높은 계급의 귀신은 어찌하든지 자신을 숨기려고 하기 때문이다.

넷째, 귀신이 그 사람 속에 들어갈 수 있는 합법적인 이유들이 있으면 안 떠난다.

예를 들어, 과거에 무당집에 살면서 그 집의 밥을 얻어먹고 살았다거나, 굿하면서 귀신에게 절을 한 일이 있다거나, 점을 친 일이 있다거나 하면 귀신들은 잘 안 떠난다.
그때에는 우상숭배한 죄를 직접 자신의 입으로 고백하고 시인한 뒤에 하나님께 분명하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또한 자기 몸에 귀신이나 용같은 문신을 새기고 있거나, 용반지를 타고 있거나, 용바클을 허리띠로 차고 있거나, 집 안에 옛날에 귀신을 섬길 때에 사용하거나 간직했던 물건이 있으면 귀신은 잘 안 떠난다.
벽에 걸쳐져 있는 사진이 남아있을지라도 귀신은 잘 떠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과거에 귀신을 섬기거나 귀신을 섬길 때에 사용했던 물건이 있으면 전부 태워버리거나 없애버려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귀신은 잘 안 떠나간다.

다섯째, 귀신더러 떠나가도록 명령하는 축사자가 기도를 많이 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저쪽에 있는 귀신의 숫자가 내가 기도함으로 나를 돕도록 하늘에서 내려보낸 천사보다 숫자가 많을 때에 귀신들은 잘 안떠난다.

예수님께서도 변화산 아래에서 9명의 제자들이 자신은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는지를 묻자, "기도 외에는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기도의 분량이 어느정도 되어야 한다. 그리고 강한 믿음을 소유해야 한다. 그러면 귀신이 저절로 겁을 먹고 떠나간다.

귀신이 잘 나가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귀신도 사람의 눈을 통해 우리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에는  두 가지를 생각하면 된다.

첫째, 지체하면 할 수록 귀신은 고통이 더 가중 될 것이다.

"너는 내가 떠나가라고 명령했는데도 불구하고, 네가 떠나가지 않는다면 너는 떠나지 않을수록 더 괴로울 껄. 그러니 지금이라도 당장 떠나가는 것이 좋을 껄!"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귀신들에게 떠나갈 것을 명령했음에도 불구하고 귀신이 떠나가지 않는다면, 귀신은 그순간부터 고통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명령하는 그 말씀이 이 귀신에게는, 때로는 칼이 되어 귀신을 잘라버리고, 때로는 불이 되어 귀신을 태워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귀신이 떠나지 않더라도 급하게 마음을 먹지 말라.
느긋한 마음을 먹으라.
"네가 떠나지 않을수록 너는 더 고통을 받을 것이다. 너만 손해보는 거야"하고 생각하고 있으라라.

둘째, 귀신의 속임수에 놀라지 말라

감히 네가 누구에게 들어와서 이 장난질을 하는거야! 하고 생각하라.
이미 우리 성도는 예수님의 피로 죄를 씻었기에 죄사함을 받은 자요, 예수님에 대한 믿으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자녀들, 장차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될 자에게 감히 종(노예)인 주제에 말을 듣지 않고 버티는구나.
감히 겁도 없이 말이야! 라고 생각하라.
그들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이 가소롭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우리가 두려워하고 당황해하며 포기하면 귀신들도 우리들의 마음을 다 알고 더욱 겁을 상실한 자가 되어간다.

귀신은 영물이다.
귀신도 영물이기에 귀신같이 알고 있는 것이 있다.
그러나 이 놈들도 다 지식의 한계를 가지고 있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들도 영적 세계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에 일정한 법칙과 질서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들이 비록 능력있는 존재라도 자기의 권한 밖의 일을 결코 행할 수가 없다.
그러면 그들의 불법에 대한 심판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법적으로 사람을 점거하고 있을 때에는 과감히 쫓아버려야 한다.
그러나 가만히 놔두면 저놈도 사람의 몸 속에 기생하면서 살아가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먼저 지은 죄들이 있으면 회개하라.
그리고 우상숭배와 관련된 물건들과 문신을 찾아내어 제거하라.
그리고 과감히 그들에게 선포하라.
꾸짖으면서 나갈 것을 명령하라.
나가지 않을수록 자기만 손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서 그들에게 명령하라.
내가 떠나가라고 명령하는데도 그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징계가 임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꾸짖으라.
내 입에서 나가는 명령과 말씀이 저들에게 칼이 되고 꽃히고 불이 되어 태워버린다는 것을 기억하고 쫓으라.
그리고 단호하게 떠나갈 것을 계속 명령하라.
떠나갈 때까지.
그러면 어느 순간에 이르면, 버티다가 버티다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그리고 그 후에 떠나가게 된다.
귀신도 상당히 끈질긴 놈이기도 하다.
그래서 믿음과 인내가 필요하며, 단호함이나 담대함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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