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1일(수) 오후 7시
수요성서학당 / 여호와의 날 & 새 하늘과 새 땅(스가랴 14:1, 요한계시록 21:1)
John Newton(1725-1807)
1. 저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2. 그 사람이 왜 여기에 없을까?
3. 나 같은 사람도 이곳에…..!
여호와의 날(스가랴 14:1)
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 그 날에 네 재물이 약탈되어 너의 중에서 나누이리라.
요한계시록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실 것(스가랴 14:9)
(E)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ㅍ)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ㅎ)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ㅏ)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
(E) 시편 47:7, 스가랴 14:16, 말라기 1:14
(ㅍ) 스가랴 14:1, 12:3
(ㅎ) 에베소서 4:5
(ㅏ) 스가랴 13:2
시편 47:7
하나님은 온 땅에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양할찌어다. 아멘
지혜의 시 : 노래로
스가랴 14:16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말라기 1:14
떼 가운데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사기하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열방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나는 큰 임금이요 : 나는 위대한 왕이다
스가랴 14:1
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 그 날에 네 재물이 약탈되어 너의 중에서 나누이리라.
이스라엘이 미움의 대상이 될 것이다
과거 : 북이스라엘(앗수르), 남 유다(바벨론)
현재 : 경제적,정치적 불안
미래 : ? <요한계시록>
스가랴 14:2
내가 열국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
성읍이 함락되며
가옥이 약탈되며
부녀가 욕을 보며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잡혀 가려니와 남은 백성은 성읍에서 끊쳐지지 아니하리라.
스가랴 14:4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감람산 공동묘지
사도행전 1: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스가랴 14:5
그 산 골짜기는 아셀까지 미칠찌라 너희가 그의 산 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 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하리라.
아셀(Azel) : 평안함
스가랴 14:6-7
그 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자들이 떠날 것이라.
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스가랴 14:8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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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창세기 2:10)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에스겔 47:1)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한복음 7:38)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요한계시록 22:1, 6)
생명수를 받으라(요한계시록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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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天國) 하나님 나라
신 선택에 따라 천국이나 지옥행
믿음조차도 인간 아닌 신의 결정
길을 걷다보면 기독교를 전도하는 사람들이 “교회 나와 구원 받으세요” “예수 믿고 천당 가세요”라는 말을 듣게 된다. 간단한 말이지만 여기에는 기독교가 어떤 목적을 가진 종교인지를 명확히 드러난다. 만약 기독교에 구원과 천국이 없다면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기독교인들에 있어 모든 삶은 결국 구원과 천국이라는 목적을 위해 행해진다.
죄에
오염된 인간은 예수를 통해 구원을 받고 그 구원은 천국이라는 내세를 통해 보장된다. 물론 기독교의 구원이 반드시 천국에 태어나는
것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과 천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로 구원이 곧 천국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기독교
성서를 보면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일관성 있게 천국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본래 천국이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나라로써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는 영역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성서에는 이곳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하나님을 보좌하고 찬양하는 천사들이 있는
곳이며 구원 받은 인간의 영혼이 머무르는 곳이라고 나와 있다. 또 천국에는 사망과 애통과 고통이 없는 곳이며, 저주와 목마름과
상함이 없는 곳이며, 사탄 마귀의 유혹이 없는 곳이라고 말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천국이란 이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며 영원한 행복과 아름다움이 가득하다고 말한다. 한때 요한이 성령에 이끌리어 천국을 상징하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보았다. 그곳은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데 보석과 같고 수정 같이 맑으며 생명수의 강이 흐른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기독교의 천국은 어떠한 자격을 통해 들어갈 수 있을까? 자업자득에 의해 천국에 갈수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과는 달리
기독교에서의 천국에 갈 수 있는 조건은 신의 선택에 의해서이다. 성서는 인간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요건으로 하나님에 의한
선택과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에 대한 믿음과 최후심판 때에 영광의 부활을 얻은 자에게 주는 보상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의 구원과 천국에 대해 예수를 믿으면 누구나 구원받고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짧은 생각일 수
있다.
물론 기독교 교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원과 천국의 조건이 믿음인 것만은 틀림없다. 기독교 입장에서는
인간이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예수를 믿지 않고서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고 천국에 갈 수 없다. 왜냐하면 원죄가 씻기지 않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로부터 전해 내려 온 인간의 죄는 절대 인간의 의지로서는 해결할 수 없다. 오직 신의 아들 예수를 믿고
그로부터 용서를 받아야만 원죄가 씻기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와 같은 믿음조차도 실은 인간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신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내가 신을 믿고 싶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신이 믿게끔 해야 비로소
믿음을 지니게 된다는 의미이다. 믿음조차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기독교 교리라고 할 때에 구원과 천국에 들 수 있는
조건도 철저히 신의 선택에 있는 것이지 인간의 선택에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칼빈주의 신학에서는 선택과 유기라는 교리를
가르친다. 선택과 유기란 신은 이미 세상을 창조하기 이전부터 모든 일을 예정 해놓고 설계하였으므로 구원 받을 자와 구원받지 못할
자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천국에도 상급의 차별이 있는지요?
[질문] 많은
교회에서 우리가 천국에 가면 우리가 헌신하고 봉사한 만큼 서로가 다른 상급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18:28-30에서 예수님의 대답은 "천국에서 영생"을 말씀합니다.
창 15:1, 시 90:1, 사 28:5에서도 우리의 참된
상급은 하나님 자신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완전한 은혜로 인한 구원과 연결시켜 보더라도 차별된 상급은 잘못된
가르침이라고 생각이되는데 목사님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답변] 동일한 면류관
성경 해석에 있어 한
가지 중요한 원칙은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는 범위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죽음 이후의 구체적인 상태와 종말에
관한 예언을 다룰 때는 더 조심해야 합니다.
인생의 다른 모든 경우와는 달리 이 두 가지만은 어느 누구도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신학과 성경에 정통한 학자나 목사라도 구체적인 현상까지 섣불리 단정적으로 설명해선 안 됩니다.
모든
자가 결국은 죽음을 경험하지만 이 세상으로 되돌아 와서 설명해 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눅 16:31)
죽음 이후의
상태는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으로 유추해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구세주 되신 예수님이 이 땅에서 제자들에게 부활과
영생에 대해 마지막으로 가르치고 성령 세례에 대한 준비를 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일반 신자가 천국 가서 겪어야 할 상황에 대해
연결해 생각해 볼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성도들이 천국에서 차별된 상급을 받을 것이라고 명시적으로
언급한 데는 없습니다.
질문자께서 지적하신대로 하나님 당신이 신자의 분깃이며 영생을 얻는 것 자체가 상급입니다.
그리고 영생은
성령으로 거듭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은 자 모두에게 그 내용에 질적 양적인 차이가 없이 동일합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8)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 1:12)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자와 주를 사랑하는 자들
모두가 의의 면류관을 똑 같이 얻습니다.
말하자면 이 땅에서 얼마나 착하게 살고 전도를 많이 했느냐에 따라 비례해서
천국에서의 대우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천국에도 한국의 어떤 신문사가 주는 청룡 봉사상, 효부 열녀상이나 간혹 어떤 교회에서
시상하는 전도왕 같은 제도는 없습니다.
나아가 몰몬교에서 이야기 하듯이 해와 달과 별의 천국 식으로 천국 자체가 일등, 이등,
삼등으로 나눠져 있지도 않습니다.
부끄러운 구원
그러나 다음 성경 구절은 신자라면 반드시 주목해야
합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니라."(고전 3:10-15)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는 교회 안에 사역자끼리 서로 따르는 무리가 다르고 그것으로 분파가 생기는 것에 대한 경계 말씀(고전3:1-9)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모든 주의 종들은 단지 심고 물을 주는 일만 다를 뿐이고 실제로 복음이 확장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런 뜻에서 주의 종 뿐만 아니라 복음의 확장에 쓰임 받는 성도는 그 맡은 역할만 다르지 모두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고전3:9)
그러므로 이미 먼저 복음이 증거 된 곳에서 사역을 하게 될 때는 개인적인 생각, 선호도, 친밀도를 떠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서만 사역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 사역의 결과는 마지막 심판 날에 정확하게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금, 은, 보물, 나무, 풀, 짚으로 비유되었듯이 사역한 열매와 종류에 따라 불에 타서 완전히 없어지거나 찌끼라도 남거나 더 정금 같이 바뀌는 것도 있는 것입니다.
본 질문의 주제와 연관하여 주목해야 할 부분은 마지막 15절에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다"입니다. 공력을 잘못 세운 자는 자기 혼자만 들어가는 가장 초라하고 가난한 구원을 얻는 반면에 공력을 제대로 세운 자는 그 열매가 남아 열매와 함께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의미가 됩니까? 하늘에서 따로 상이 준비되어 있지 않고 이 땅에서 자기가 세운 공력의 열매를 갖고 천국으로 올라 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문 사역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대로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동역자요, 왕 같은 제사장(벧전2:9)으로 누구나 주님을 증거하며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펼쳐지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증거 하는 것이 종교적인 전도와 선교에 국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신자가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신자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마 5:16)해야 합니다.
신자들이 이 땅에서 한 행실의 열매를 천국에 들고 올라 간다면 결국 천국의 상급이 달라진다는 것과 같은 뜻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니까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부끄러운 구원이냐 열매가 남아 있는 부끄럽지 않는 구원의 차이만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국에서 상급으로 차별하지 않습니다. 신자가 자기가 받을 상급을 가지고 올라 가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는"(고후5:2) 까닭이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고후5:3)이라고 했습니다. 신자는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의 구원(중생 이후 천국에서 누릴 상급)을 이루어야 합니다.(빌2:12)
죄인인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가 전가되어 하나님이 의롭다 칭해 주셔야만 구원을 얻습니다. 인간의 선행과 공적으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인간의 어떠한 고상하고 거룩한 의도 하나님 보시기엔 누더기와 같습니다. 구원 이후에도 죄의 본성이 남아 있는 인간의 의로는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한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신자가 된 후 하는 선행과 전도도 그 모두가 주님의 은혜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인간 스스로의 의가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으로 인간의 우열을 나누어 상급에 차등을 둘 수 있겠습니까?
천국에 상급의 차등이 없는 까닭은 이처럼 이신칭의의 은혜의 교리와 위배될 뿐 아니라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태생적으로 불구이거나, 사회 구조적으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거나, 개인적으로 너무 큰 불행을 당해 평생을 힘들게 보내므로 해서 선행이나 전도 한 번 못해 보고 천국 가는 신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한 없이 자비로운 분입니다. 신자 쪽에 귀책 사유가 없는 이와 같은 경우에 상급이 차별화 된다면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의 공의와 사랑의 본성을 거슬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신실하셔서 그럴 수는 없습니다.
천국의 상급-하나님과의 교제
그럼 부끄러운 구원, 벌거벗은 구원, 지상에서의 열매를 갖고 올라가는 구원은 무슨 뜻입니까? 알기 쉽게 디즈니랜드의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디즈니랜드 입장권을 가진 자(구원이 예정 된 자)는 반드시 공원이 문 닫기 전에 들어 갑니다. 그러나 늦게 들어간 자는 놀이 기구는 얼마 타지 못합니다. 반면에 아침 일찍부터 들어가 여러 가지 신나는 놀이기구를 다 타 본 사람은 디즈니랜드에 관한 느낌과 체험이 전혀 다릅니다.
천국에서 성도들이 하는 가장 주된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제와 경배입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만 있었고 또 지음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4:8,10,11)
천국에선 주님과 교제하며 경배할 때에 이 땅에서 디즈니랜드에서 신나게 놀이기구를 많이 탄 자는 이야기할 거리가 많고 제대로 타보지 못한 자는 나눌 내용이 별로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천국의 상급입니다. 자기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진다고 했습니다. 가서 순서대로 줄 서서 다이아몬드, 금, 은 면류관을 각각 다르게 받는 것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주님이 디즈니랜드(이 땅에 허락된 신자의 구원 이후의 삶)에서 얼마나 신나게 놀다 왔는가 물어 보면 신자는 이야기할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신자는 이 땅에서부터 천국을 누립니다. 죽어 천국을 가는 것은 이 땅에서부터 천국을 누려본 자라야 갈 수 있습니다. 죽어서 가는 천국은 이 땅에서 누린 천국의 연장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예수를 믿은 것으로 영생을 얻었으며 믿지 않은 자는 믿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 벌입니다.(요3:18) 사람은 최후의 심판 때를 빼고 죽은 후에 따로 심판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부터 디즈니랜드 입장권을 받아 입장해 있는 자는 그대로 천국으로 가고 입장권을 받지 못한 자는 죽은 이후에도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디즈니랜드 입장한 이후의 상태가 그대로 연결되므로 누가 신나고 재미있게 살았는지 주님과 본인만은 압니다. 신자가 무엇을 먹든 마시든 주님을 위해서 하고 또 이 땅의 모든 삶이 주님의 선한 통치 안에 있기 때문에 신자가 주님 안에서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과 더 깊고 친밀하며 진정한 사랑과 경배와 순종의 관계에 들어갔느냐 그렇지 못했느냐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천국을 간절히 소망하는 이유가 벗은 것으로 발견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천국을 더욱 간절히 소망하면 이 땅에서부터 더 주님의 은혜를 사모해 더 깊은 관계에 들어가고 그래서 덜 벗은 것으로 발견되어 덜 부끄럽게 됩니다. 반면에 천국을 간절히 소망하지 않았던 자는 더 벗은 것으로 발견되어 더 부끄러운 구원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천국에는 상급이 없고 찬양만 있다.
결론적으로 말씀 드려 천국에선 인간 세상 식의 차별된 상급은 없습니다. 부끄러운 구원과 부끄럽지 않은 구원이 있을 뿐입니다. 성도라면 누구나 자기가 천국에서 입을 옷을 자기가 갖고 올라 갑니다.
어쨌든 천국에서도 결과적으로 차별이 생기고 부끄러운 것 자체도 벌을 받은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되는 것은 죄의 권세와 본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와지지 못한 이 땅의 관점으로 봤을 때만 그렇습니다. 이미 천국 가 있는 성도들에게는 그런 것으로 인해 시기하거나 억울해 하지 않습니다. 천국은 죄의 존재 자체가 없는 곳(Free from the presence of sin)이고 오직 선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성화가 완성이 된 곳입니다. 차별, 질투, 시샘, 분노, 억울함, 눌림 등 왜곡되고 모순 된 것은 단 하나라도 천국이나 천국에 있는 성도에게서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천국에 상급이 있다고 강조함으로 목사가 교인들에게 종교적인 일에 열심을 내게 하는 수단으로 동원되어선 안 됩니다. 또 그 반대로 천국에 상급이 없다는 것으로 성도가 이제 구원을 얻었으니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핑계로 삼을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성도가 부끄럽지 않은 구원을 얻으려는 목표만으로 선행을 의도적으로 해서도 안 되고 지도자들이 이 말씀으로 자기들 사역의 효율성을 높이려 들어서도 안 됩니다.
성도란 구원 받았을 때에 이미 주님과 평생을 두고 온전한 참 사랑의 관계 안에 있기를
소원하는 자가 됐습니다. 바로 그 친밀한 관계가 성도가 된 축복이자 은혜이지 따로 이 땅에서 상급이 없습니다. 또 그런 관계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구태여 천국을 의식하지 않아도 선행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게 되고 믿지 않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은 열정에 사로 잡힙니다. 이 땅에서부터 예수님 당신을 상급으로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에 가서도 얼굴과 얼굴로 맞대면하여
세세토록 경배와 찬송과 영광만을 돌려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천국의 상급인데 이 땅에서 주님과 더 깊은 관계를 가진
자는 더 많은 면류관(이 땅에서의 성도로서의 열매)을 보좌로 던지며 더 큰 목소리로 경배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질문]
많은 교회에서 우리가 천국에 가면 우리가 헌신하고 봉사한 만큼 서로가 다른 상급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누가복음18:28-30에서 예수님의 대답은 "천국에서 영생"을 말씀합니다. 창15:1, 시90:1, 사28:5에서도 우리의 참된 상급은 하나님 자신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완전한 은혜로 인한 구원과 연결시켜 보더라도 차별된 상급은 잘못된 가르침이라고 생각이되는데 목사님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답변]
동일한 면류관
성경 해석에 있어 한 가지 중요한 원칙은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는 범위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죽음 이후의 구체적인 상태와 종말에 관한 예언을 다룰 때는 더 조심해야 합니다. 인생의 다른 모든 경우와는 달리 이 두 가지만은 어느 누구도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신학과 성경에 정통한 학자나 목사라도 구체적인 현상까지 섣불리 단정적으로 설명해선 안 됩니다.
모든 자가 결국은 죽음을 경험하지만 이 세상으로 되돌아 와서 설명해 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눅16:31) 죽음 이후의 상태는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으로 유추해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구세주 되신 예수님이 이 땅에서 제자들에게 부활과 영생에 대해 마지막으로 가르치고 성령 세례에 대한 준비를 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일반 신자가 천국 가서 겪어야 할 상황에 대해 연결해 생각해 볼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성도들이 천국에서 차별된 상급을 받을 것이라고 명시적으로 언급한 데는 없습니다. 질문자께서 지적하신대로 하나님 당신이 신자의 분깃이며 영생을 얻는 것 자체가 상급입니다. 그리고 영생은 성령으로 거듭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은 자 모두에게 그 내용에 질적 양적인 차이가 없이 동일합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8)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1:12)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자와 주를 사랑하는 자들 모두가 의의 면류관을 똑 같이 얻습니다.
말하자면 이 땅에서 얼마나 착하게 살고 전도를 많이 했느냐에 따라 비례해서 천국에서의 대우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천국에도 한국의 어떤 신문사가 주는 청룡 봉사상, 효부 열녀상이나 간혹 어떤 교회에서 시상하는 전도왕 같은 제도는 없습니다. 나아가 몰몬교에서 이야기 하듯이 해와 달과 별의 천국 식으로 천국 자체가 일등, 이등, 삼등으로 나눠져 있지도 않습니다.
부끄러운 구원
그러나 다음 성경 구절은 신자라면 반드시 주목해야 합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니라.”(고전3:10-15)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는 교회 안에 사역자끼리 서로 따르는 무리가 다르고 그것으로 분파가 생기는 것에 대한 경계 말씀(고전3:1-9)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모든 주의 종들은 단지 심고 물을 주는 일만 다를 뿐이고 실제로 복음이 확장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런 뜻에서 주의 종 뿐만 아니라 복음의 확장에 쓰임 받는 성도는 그 맡은 역할만 다르지 모두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고전3:9)
그러므로 이미 먼저 복음이 증거 된 곳에서 사역을 하게 될 때는 개인적인 생각, 선호도, 친밀도를 떠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서만 사역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 사역의 결과는 마지막 심판 날에 정확하게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금, 은, 보물, 나무, 풀, 짚으로 비유되었듯이 사역한 열매와 종류에 따라 불에 타서 완전히 없어지거나 찌끼라도 남거나 더 정금 같이 바뀌는 것도 있는 것입니다.
본 질문의 주제와 연관하여 주목해야 할 부분은 마지막 15절에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다”입니다. 공력을 잘못 세운 자는 자기 혼자만 들어가는 가장 초라하고 가난한 구원을 얻는 반면에 공력을 제대로 세운 자는 그 열매가 남아 열매와 함께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의미가 됩니까? 하늘에서 따로 상이 준비되어 있지 않고 이 땅에서 자기가 세운 공력의 열매를 갖고 천국으로 올라 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문 사역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대로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동역자요, 왕 같은 제사장(벧전2:9)으로 누구나 주님을 증거하며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펼쳐지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증거 하는 것이 종교적인 전도와 선교에 국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신자가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신자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마5:16)해야 합니다.
신자들이 이 땅에서 한 행실의 열매를 천국에 들고 올라 간다면 결국 천국의 상급이 달라진다는 것과 같은 뜻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니까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부끄러운 구원이냐 열매가 남아 있는 부끄럽지 않는 구원의 차이만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국에서 상급으로 차별하지 않습니다. 신자가 자기가 받을 상급을 가지고 올라 가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는”(고후5:2) 까닭이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고후5:3)이라고 했습니다. 신자는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의 구원(중생 이후 천국에서 누릴 상급)을 이루어야 합니다.(빌2:12)
죄인인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가 전가되어 하나님이 의롭다 칭해 주셔야만 구원을 얻습니다. 인간의 선행과 공적으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인간의 어떠한 고상하고 거룩한 의도 하나님 보시기엔 누더기와 같습니다. 구원 이후에도 죄의 본성이 남아 있는 인간의 의로는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한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신자가 된 후 하는 선행과 전도도 그 모두가 주님의 은혜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인간 스스로의 의가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으로 인간의 우열을 나누어 상급에 차등을 둘 수 있겠습니까?
천국에 상급의 차등이 없는 까닭은 이처럼 이신칭의의 은혜의 교리와 위배될 뿐 아니라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태생적으로 불구이거나, 사회 구조적으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거나, 개인적으로 너무 큰 불행을 당해 평생을 힘들게 보내므로 해서 선행이나 전도 한 번 못해 보고 천국 가는 신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한 없이 자비로운 분입니다. 신자 쪽에 귀책 사유가 없는 이와 같은 경우에 상급이 차별화 된다면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의 공의와 사랑의 본성을 거슬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신실하셔서 그럴 수는 없습니다.
천국의 상급 - 하나님과의 교제
그럼 부끄러운 구원, 벌거벗은 구원, 지상에서의 열매를 갖고 올라가는 구원은 무슨 뜻입니까?
알기 쉽게 디즈니랜드의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디즈니랜드 입장권을 가진 자(구원이 예정 된 자)는 반드시 공원이 문 닫기 전에 들어 갑니다. 그러나 늦게
들어간 자는 놀이 기구는 얼마 타지 못합니다. 반면에 아침 일찍부터 들어가 여러 가지 신나는 놀이기구를 다 타 본 사람은
디즈니랜드에 관한 느낌과 체험이 전혀 다릅니다.
천국에서 성도들이 하는 가장 주된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제와 경배입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만 있었고 또 지음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4:8,10,11)
천국에선 주님과 교제하며 경배할 때에 이 땅에서 디즈니랜드에서 신나게 놀이기구를 많이 탄 자는 이야기할 거리가 많고 제대로 타보지 못한 자는 나눌 내용이 별로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천국의 상급입니다. 자기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진다고 했습니다. 가서 순서대로 줄 서서 다이아몬드, 금, 은 면류관을 각각 다르게 받는 것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주님이 디즈니랜드(이 땅에 허락된 신자의 구원 이후의 삶)에서 얼마나 신나게 놀다 왔는가 물어 보면 신자는 이야기할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신자는 이 땅에서부터 천국을 누립니다. 죽어 천국을 가는 것은 이 땅에서부터 천국을 누려본 자라야 갈 수 있습니다. 죽어서 가는 천국은 이 땅에서 누린 천국의 연장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예수를 믿은 것으로 영생을 얻었으며 믿지 않은 자는 믿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 벌입니다.(요3:18) 사람은 최후의 심판 때를 빼고 죽은 후에 따로 심판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부터 디즈니랜드 입장권을 받아 입장해 있는 자는 그대로 천국으로 가고 입장권을 받지 못한 자는 죽은 이후에도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디즈니랜드 입장한 이후의 상태가 그대로 연결되므로 누가 신나고 재미있게 살았는지 주님과 본인만은 압니다.
신자가 무엇을 먹든
마시든 주님을 위해서 하고 또 이 땅의 모든 삶이 주님의 선한 통치 안에 있기 때문에 신자가 주님 안에서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과 더 깊고 친밀하며 진정한 사랑과 경배와 순종의 관계에 들어갔느냐 그렇지 못했느냐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천국을 간절히 소망하는 이유가 벗은 것으로 발견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천국을 더욱 간절히
소망하면 이 땅에서부터 더 주님의 은혜를 사모해 더 깊은 관계에 들어가고 그래서 덜 벗은 것으로 발견되어 덜 부끄럽게 됩니다.
반면에 천국을 간절히 소망하지 않았던 자는 더 벗은 것으로 발견되어 더 부끄러운 구원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천국에는 상급이 없고 찬양만 있다.
결론적으로 말씀 드려 천국에선 인간 세상 식의 차별된 상급은 없습니다.
부끄러운 구원과 부끄럽지 않은 구원이 있을 뿐입니다.
성도라면 누구나 자기가 천국에서 입을 옷을 자기가 갖고 올라 갑니다.
어쨌든 천국에서도 결과적으로 차별이 생기고 부끄러운 것 자체도 벌을 받은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되는 것은 죄의 권세와 본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와지지 못한 이 땅의 관점으로 봤을 때만 그렇습니다.
이미 천국 가
있는 성도들에게는 그런 것으로 인해 시기하거나 억울해 하지 않습니다.
천국은 죄의 존재 자체가 없는 곳(Free from the
presence of sin)이고 오직 선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성화가 완성이 된 곳입니다.
차별, 질투, 시샘, 분노,
억울함, 눌림 등 왜곡되고 모순 된 것은 단 하나라도 천국이나 천국에 있는 성도에게서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천국에 상급이 있다고 강조함으로 목사가 교인들에게 종교적인 일에 열심을 내게 하는 수단으로 동원되어선 안 됩니다.
또 그
반대로 천국에 상급이 없다는 것으로 성도가 이제 구원을 얻었으니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핑계로 삼을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성도가 부끄럽지 않은 구원을 얻으려는 목표만으로 선행을 의도적으로 해서도 안 되고 지도자들이 이 말씀으로 자기들 사역의 효율성을
높이려 들어서도 안 됩니다.
성도란 구원 받았을 때에 이미 주님과 평생을 두고 온전한 참 사랑의 관계 안에 있기를 소원하는 자가 됐습니다.
바로 그 친밀한
관계가 성도가 된 축복이자 은혜이지 따로 이 땅에서 상급이 없습니다.
또 그런 관계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구태여 천국을 의식하지
않아도 선행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게 되고 믿지 않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은 열정에 사로 잡힙니다.
이 땅에서부터
예수님 당신을 상급으로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에 가서도 얼굴과 얼굴로 맞대면하여 세세토록 경배와 찬송과 영광만을 돌려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천국의 상급인데 이 땅에서 주님과 더 깊은 관계를 가진 자는 더 많은 면류관(이 땅에서의 성도로서의
열매)을 보좌로 던지며 더 큰 목소리로 경배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