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의 노예 생활은 몇 년 이었나?


이스라엘 민족의 ‘애굽 노예’ 생활은 정확히 몇 년이었을까?

난해 성경절

164. 이스라엘은 애굽에 430년 동안 거주했는가?
성경절
문제
 430년의 시발점이 아브라함 때부터인가 애굽에 거주하기 시작한 때부터인가의 문제다. 만일 아브라함 때부터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제로 애굽에 거주한 기간은 훨씬 짧아지게 된다.
해석
 A.
 우리의 판단을 어렵게 하는 두 종류의 성경 절들이 존재한다. 창세기 15:13에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아브라함의 자손을 괴롭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출애굽기 12:40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지 사백삽십년”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도행전 7:6에 보면 애굽에서 종노릇한 것이 400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스데반은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씨가 다른 땅에 나그네 되리니 그 땅 사람이 종을 삼아 사백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행 7:6)고 말하였다. 이런 기록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애굽에 거주한 기간, 즉 종노릇한 기간이 400-430년인 것처럼 보인다.

 B.
 그러나 또 한 편의 기록들을 보면 아브라함 시절부터 출애굽까지를 포함한 것이 430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갈라디아서 3:15-18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 이야기이다. 따라서 430년의 시작도 아브라함을 기점으로 잡는 것이 자연스럽다. 창세기 15:13에 보면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아브라함의 자손을 괴롭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어디까지가 이방인가? 그 당시는 가나안도 애굽의 일부로 알려져 있었으므로 가나안 생활도 애굽생활로 간주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창세기 15:16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4대 만에 가나안으로 돌아오도록 되어 있다. 그 4대 란 출애굽기 6:16에 보면 레위 - 고핫 - 아므람 -모세를 말하며 대략 50세에 아들을 낳았다고 치더라도 230년도 채 되지 않는다. 이렇게 계산하 면 애굽에 실제 거주했던 기간은 200-230년 정 도가 된다. 그러나 그럴 경우, 처음 애굽에 내려올 때 70여 명에 불과하던 야곱의 후손들이 4대 215년 만에 어떻게 200여 만명으로 증가할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
요약
 430년의 기간에 대해 두 가지 주장이 있다. 전자는 아브라함부터 출애굽까지를 430년으로 보는 견해와, 후자는 순수한 애굽 체류기간만 430년이라는 주장이다. 성경의 문맥과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도 어느 한쪽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증거를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기산점이 언제이든지간에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을 때는 430년 동안의 이스라엘의 유랑생활이 끝나는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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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2:40-41 / 430년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Now the length of time the Israelite people lived in Egypt was 430 years.
At the end of the 430 years, to the very day, all the LORD's divisions left Egypt.


갈라디아서 3:16-17 / 430년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The promises were spoken to Abraham and to his seed. The Scripture does not say "and to seeds," meaning many people, but "and to your seed," meaning one person, who is Christ.
What I mean is this: The law, introduced 430 years later, does not set aside the covenant previously established by God and thus do away with the promise.

제임스 어셔는 창조 연대를 산출할 때, 갈라디아서 3장 16-17절을 근거로 사용함으로써,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에 체류한 기간을 215년으로 추산했다.
이러한 현상은 70인역에도 나타난다.
이는 출애굽기 12장 40-41절에서 이집트 체류 기간이 430년이라는 말씀과 마치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430년이라 430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출 12:40-41)”.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430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갈 3:16-17)”.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75세였더라(창 12:3-4)”.

제임스 어셔는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과 출애굽 후 시내산에 이르러 “율법”을 받을 때까의 시간을 430년으로 읽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언약”은 아브라함이 75세 때 주신 것으로 읽었다.
그래서 아브라함 75세로부터 출애굽까지 기간이 430년이라고 읽은 것이다.

아브라함의 75세 때로부터 25년 후 이삭을 낳고(창 21:5), 이삭은 60세에 야곱을 낳고(창 25:26), 야곱은 130세에 이집트로 내려갔으므로(창 47:9) 아브람이 약속을 받은 후 자손들이 이집트로 내려가기까지 215년(25+60+130)이 걸렸고, 따라서 이집트 체류 기간은 430년에서 215년을 뺀 215년이라고 추산했다.

이러한 연대 산정에 대해, 70인역 출애굽기 12장 40절 번역은 더욱 확신을 갖도록 만들어준 것 같다.

“(70인역) And the sojourning of the children of Israel, while they sojourned in the land of Egypt and the land of Chanaan, was four hundred and thirty years”.

70인역 출애굽기 12장 40절 말씀에서, 430년이라는 기간은 이집트뿐 아니라 ‘이집트와 가나안에 있었던 기간’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70인역은 창세기 12장 10절(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을 근거로, 아브라함이 75세 때 이집트로 내려간 때부터 출애굽까지를 430년으로 읽는다. 제임스 어셔 연대와 일치하는 셈이다.

갈라디아서 3장 17절의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에서 ‘언약’은 16절의 “약속들”에 해당한다.
그 내용은 동일한 하나의 내용으로서 “오직 한 사람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한 구원의 복음”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신다는 것이다(창 12:3; 26:3-4; 28:13-14; 갈3:8). 그래서 17절의 ‘언약(디아데케)’은 단수명사다.

그런데 왜 16절에서는 ‘약속들(에팡겔리아이)’이라는 복수명사가 사용됐을까? 그것은 동일한 내용의 약속이 여러 번 주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 야곱에게도 주신 약속이기 때문이다.

(아브람에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

(이삭에게도)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단수)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창 26:3-4)”.

(야곱에게도)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단수)’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창 28:13-14)”.

여기서 ‘자손(단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자손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히브리서 11장 9절에서도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라고 말씀한다.

따라서 갈라디아서 3장 17절의 “하나님의 정하신 언약”은 아브라함에게뿐 아니라 이삭과 야곱에게도 하신 언약이므로, 아브라함의 75세 때로부터 시작되는 430년으로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70인역의 출애굽기 12장 40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430년의 여정의 주체는 “the sojourning of the children of Israel”, 즉 이스라엘 자손들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누구인가?
야곱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야곱의 자손들이다.
그러므로 이 430년 기간의 시작을 아브라함의 75세 때로 볼 수 없음이 명백하다.

창세기 15장 13-16절 말씀은 창세기 12장 10절 본문과 완전히 다른 상황이며, 창세기 12장 10절의 상황 이후 아브라함은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고 나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12장 10절을 창세기 15장 13-16절의 ‘사백년’의 시작으로 볼 수 없다. 참고로 여기서 ‘사백년’은 실제로 겪은 430년에 대한 어림수로 말씀하신 것이며, 그것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실 당시 전략적 모호성을 포함하신 하나님의 의도이셨다.

아마 어림수로 100년을 1대로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된다(옥스포드 원어성경대전 006 출 12:40, 30쪽 참조).

반면, 맛소라 본문을 근거로 하는 개역개정 성경은 출애굽기 12장 40-41절에서 ‘430년’을 두 번 중복하여 강조하는 동시에, “끝나는 그 날에(베에쳄 하욤 핫쩨, even the selfsame day)”를 서술하여 명확한 시간을 거듭 강조한다.

아빕월 14일이 지난 아빕월 15일이 정확하게 430년이 차는 날이었다(옥스포드 원어성경대전 006 출 12:41, 31쪽 참조).

출애굽기 12장의 이 문맥은 하루, 아침, 저녁, 밤 등의 시간 단위가 매우 세밀하고 자세하게 서술되고 있는 문맥이며(출 12:2, 3, 5, 6, 10, 11, 15, 16, 18),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지 않으면 목숨을 잃게 되는 위중한 시간이 포함된 서술이다(출 12:5).

출애굽기 12장 40절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지 430년”은 이스라엘(=야곱)이 130세에 이집트로 내려가 이스라엘의 아들 레위, 레위의 아들 고핫, 고핫의 아들 아므람, 아므람의 아들 모세에 이르는 4대에 걸쳐 거주하다가, 모세가 80세 때 이집트로부터 나오기까지의 기간이다.

출애굽기 12장 40-41절갈라디아서 3장 16-17절은 언뜻 모순된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오해이다.
단지 해석의 문제였을 뿐이며, 전혀 모순되지 않고 일치함을 확인할 수 있다.

김홍석(구약학 박사)
한국창조과학회 성경위원회, 군선교위원회 위원장
전 해군사관학교 교수
전 국방대학교 합참대 교수
전 KC대학교 구약학 외래교수


창세기 46장 7-11절과 출애굽기 12장 40-41절 간에 모순이 있는가?

1. 문제 제기

야곱이 130세에 자손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갔으며(창 47:9), 이스라엘 자손들은 애굽에 430년을 체류하고 나온다(출 12:40-41). 출애굽기 12장 40절을 보면 “이스라엘(=야곱) 자손들이 애굽에 거주한 지 430년”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레위, 고핫, 아므람, 모세가 창세기 15장 16에서 약속하신 4대에 해당한다.

그래서 창세기 15장 16절에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4대 만에 출애굽한 것이다. 출애굽기 6장 14-27절에 따르면, 레위의 수명은 137세, 고핫의 수명은 133세, 아므람의 수명은 137세였다.

아므람의 아들 모세는 80세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고 출애굽을 수행한다(출 7:6-7). 그런데 창세기 46장 7-11절에는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이와 같이 야곱이 그 아들들과 손자들과 딸들과 손녀들 곧 그의 모든 자손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애굽으로 내려간 이스라엘 가족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야곱과 그의 아들들 곧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과 … 레위의 아들은 게르손과 그핫(=고핫)과 므라리요(창 46:7-11)”.

여기서 야곱이 130세에 이집트로 내려갈 때, 레위가 그의 아들 고핫을 실제로 데리고 함께 내려간 것이라면 모순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고핫이 갓 태어난 상태에서 애굽으로 내려갔다고 하더라도 고핫은 133세, 아므람은 137세를 살았고, 모세가 80세 때 이집트에서 나왔기 때문에, 이 기간을 모두 합산해도 350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2. 해석

창세기 46장 11절 말씀을 출애굽기 12장 40-41절 말씀에 따라 주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 근거는 히브리어 원어성경(BHS) 창세기 46장 7절에서 표기되어 있는 문단 나누기 부호인 ‘스투마’, 즉 개역개정 성경에는 이를 따라 창세기 46장 8절이 시작되는 곳에 표기된 ‘동그라미’이다.

이는 새로운 문단의 시작을 알리는 표기로, 앞 문단과 문단을 분리하여 해석하라는 지시이다.

문단 구분에 따르면, 창세기 46장 7절의 “야곱이 그 아들들과 손자들과 딸들과 손녀들 곧 그의 모든 자손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에서 하나의 문단이 종료되었고, 창세기 46장 8절의 “애굽으로 내려간 이스라엘 가족의 이름은 이러하니라”는 새로운 문단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 경우 8절은 7절의 당시 상황이 아니라, 7절의 결과로 이집트로 내려가서 살았던 이스라엘의 자손들 가운데는 이러이러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이 명단은 야곱이 130세에 이집트로 내려갈 때 동행했던 명단이 아니라, 그로 인해 이집트에서 체류했던 사람들을 포함하고 있는 명단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히브리인들의 독특한 어법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도 거기에 동참한 것으로 말하는 방식이 있다. 예를 들면 창세기 46장 3-4절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을 애굽으로 가라고 하실 때, “반드시 너를 다시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창 46:3-4)”.

우리는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간 후 거기서 죽었으며, 요셉이 그를 장사지낸 자리가 아벨미스라임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창 50:5-11). 그리고 야곱의 유언에 따라(창 49:29) 야곱의 죽은 몸을 옮겨서 가나안에 장사지낸 것이 창세기 46장 4절에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창세기 46장 4절에서 말씀하신 ‘어법’은 자손들을 조상과 동일시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히브리식 어법이며, 성경의 말씀하시는 방식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신약성경에도 이러한 예가 나타난다. 히브리서 7장 4-10절에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칠 때, 나중에 아브라함의 증손자로 태어날 레위도 이미 이때 십일조를 바쳤던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논란의 여지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히 7:4-10)”.

이러한 어법을 적용한다면, 고핫은 실제로는 야곱이 130세에 애굽으로 내려갈 당시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고, 레위가 이집트에 내려간 후에 낳은 아들이지만 이미 레위의 허리에 있었던 것이다(히 7:10 어법). 그래서 창세기 46장 11절과 같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실제로 이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수 년 전에 터키를 방문했을 때. 이스탄불에서 큰 카펫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젊은 사람을 만났는데, 형제라고 부르면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대화를 하던 중에 자신이 한국전쟁에 참전했었다고 말했다. 농담이 아니라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알고 보니 이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참전한 것을 자신이 참전한 것으로 말한 것이다. 즉 자신을 아버지와 동일시하는 것이 오늘날에도 이들의 어법이다.

당시 필자는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을 때, 그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의 감정을 생각해보았던 적이 있다.

그러므로 이들의 독특한 어법(말하는 방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창세기 46장 11절과 출애굽기 6장 14-27절, 출애굽기 12장 40-41절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히브리서 7장 10절의 표현 방식으로 말하자면, 야곱이 130세에 이집트로 내려갈 당시에 고핫은 레위의 허리에 있었고, 그래서 같이 내려갔다고 말할 수 있다.


▲광야로 나서는 모세와 히브리 민족의 모습. ⓒ못생긴나무 제공

3. 결론

출애굽기 12장 40절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지 430년”은 이스라엘(=야곱)이 130세에 이집트로 내려가 이스라엘의 아들 레위, 레위의 아들 고핫, 고핫의 아들 아므람, 아므람의 아들 모세에 이르는 4대에 걸쳐 거주하다가, 모세가 80세 때 이집트로부터 나오기까지의 기간이다.

야곱이 130세에 이집트로 내려갈 당시 레위는 43세 정도였으며, 고핫은 레위의 허리에 있었다. 이후 레위는 이집트에서 고핫을 낳았다. 고핫은 아마 레위가 이집트로 내려간지 대략 90년 정도 지난 후에 태어났을 것이다.

창세기 46장 7-11절의 고핫에 대해서는 7절 끝에 있는 문단구분 부호에 따라 8절부터는 다른 새로운 문단으로 해석하고, 또한 성경의 어법, 히브리식 어법에 따라 조상과 자손을 동일시하는 어법을 이해하고 주석하게 되면, 어느 방법으로든지 창세기 46장 7-11절과 출애굽기 12장 40-41절 간의 모순처럼 보이는 마찰은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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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인들의 애굽체류기간은 400년인가 430년인가 자손4대인가(창세기 15:13~16)



이스라엘 민족이 되는 야곱의 70명의 가족이 애굽에 들어간 해는 언제였을까? 그리고 그들이 애굽을 빠져나온 해는 또한 언제였을까? 우리는 성경의 기록들을 통하여 그때가 언제 있었는지를 가늠해볼 수가 있다. 그렇다면, 히브리인들 곧 야곱의 가족 70명이 애굽에 들어갔다가 민족이 되어 탈출하기까지 히브리인들은 과연 몇 년을 애굽에서 살다가 탈출한 것일까? 성경의 기록을 보면, 400년인 것 같기도 하고, 430년인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창15:13에 의하면, 애굽체류기간은 아브라함의 자손 4대일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세어 보면 4대가 더 될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잘못 말씀하신 것일까? 그래서 오늘은 성경의 기록들을 통하여 실제로 히브리인들이 애굽에 얼마동안 체류해 있었는지를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어떻게 성취되어가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들어가며

  성경을 읽다보면, 어딘가에서 무엇이 잘 들어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성경본문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애굽체류기간이다. 출애굽했던 히브리인들은 과연 애굽에서 얼마동안 체류해 있었을까? 출애굽기 12장을 읽어보면, 히브리인들의 애굽체류기간은 430년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 곧 창15:13에 기록에 의하면, 애굽체류기간이 400년인 것 같이 보이기도 하고, 그것도 자손 4대가 아닌가 하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혹시 날짜를 혹시 계산하실 때에 잠깐 실수하신 것은 아닐른지... 아니면 처음 성경기록자는 제대로 기록했는데 베껴쓴 사람이 잘못 배껴쓴 것은 아닌지... 아니면 나이 많은 모세가 잘못 기록한 것은 아닌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얼마나 체류해 있었는지를 살펴보고, "4대"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신실한 분이며, 하신 약속을 어떻게 성취해가시는지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애굽은 무엇을 상징하여, 애굽의 바로왕은 누구를 상징하는 것인가?

  성경의 기록은 실제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어도 사실은 영적인 책이다. 영적인 비밀을 알려주는 책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실제 일어난 사건을 통하여 장차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자에게 하늘의 비밀을 알려주어, 믿음과 회개를 통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을 제시하려고 기록한 것이 성경책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신약성경은 매우 중요한 구약의 확증책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을 통해서 구약에 있었던 사건의 의미가 진정 무엇을 뜻하는 것이었는지를 파악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민21장에 기록된 놋뱀사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출애굽2세대들이 만나에 싫증난 나머지 만나를 하찮은 음식이라고 불평하자, 하나님께서 불뱀들을 백성들에게 보내 물려 죽게 한다. 그러자 그들은 모세에게 달려와 제발 기도하여 뱀들이 떠나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래서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장대 위에 높이 불뱀을 만들어 달라고 한다. 그리고 뱀에게 물린 자가 있다면 그것을 쳐다보면 살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 물린 자들마다 놋뱀을 쳐다 보았던 사람은 살아났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이 사건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요한복음 3장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장대 위에 높이 달린 뱀과 뱀에 물려 죽어가는 자가 놋뱀을 쳐다보았을 때에 살게 되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해주셨기 때문이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니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4~15)"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장대위에 높인 달린 뱀은 자기에게는 죄가 없으나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 죄를 전가받은 예수님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분을 믿는 자는 그 옛날 놋뱀을 쳐다본 자가 뱀의 독에서 해독될 수 있었듯이 누구든지 죄의 독으로부터 해독될 수 있음을 상징하고 있다.

  이러한 예는 이스라엘민족이 애굽에 들어간 것과 다시 애굽에서 나오게 된 것도 동일하게 적용가능하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들어가서 살게 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들어간 것은 사람이 이 세상에 들어와 사는 것을 상징하며(요일5:19), 그곳에서 애굽왕 바로를 섬기고 산 것은 이 세상임금인 마귀를 섬기고 사는 것임을 알 수 있다(요12:31~32). 그렇다면, 이때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어떻게 생활하며 살았는가? 비록 종살이를 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먹고 입고 마시는 것에 불편함이 없이 살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애굽에서 계속해서 살기를 바랬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야곱과 그의 가족 70명을 애굽에 들여보낸 이유는 애굽에서 영영토록 살게 하려는 데에 있지 않았다. 잠시 기근을 피해 들어가서 살다가, 반드시 그곳을 빠져나와서 약속의 땅인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위해 들여보낸 것이다.

  그렇다면, 애굽은 한 마디로 무엇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출1:7에 의하면, "풍요로움"과 "번성"의 장소를 상징한다.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출1:7)"고 했다. 사람은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에 있는 풍요로움을 누리고 살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하늘나라를 준비하기 위하여 임시로 주어진 기간인 것이지, 이 세상의 풍요로움에 푹 빠져 영영토록 이 세상에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또한 이 세상은 번성의 장소인 것을 알 수 있다. 천국은 영체와 부활체만 가는 곳이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번성의 축복은 결코 일어나지 아니한다. 오직 물질세계이자 육적인 몸을 가지고 있는 이 세상의 삶에서만 사람이 번성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애굽은 이 세상을 상징하되, 이 세상에 있는 풍요로움 속에서 번성의 축복을 해야 할 장소인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3.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얼마동안 체류한 뒤에 나왔을까?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얼마동안 살다가 탈출하여 거기를 빠져 나왔을까? 출12:40~11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때은 이스라엘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430년이 끝나던 해였다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출12:40~41). 다시 말해, 야곱이 자신의 아들과 손자와 증존자까지 이끌고 애굽에 들어간지 430년만에 탈출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왕상6:1의 기록을 통해,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해가 솔로몬통치 4년이 되는 해의 2월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왕상6;1). 그해는 역사적으로 따져보면 B.C.966년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출애굽연도에 관한 놀라운 하나의 단서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지 480년"이 되던 해에 성전을 지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후, 480년이 되던 해에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산 오르난의 타작마장에 다윗이 정한 곳에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한 연도는 B.C.966에다가 480년을 합친 B.C.1446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민족은 언제 애굽땅으로 들어가게 된 것일까? 출12:40~41에 의하면, 애굽땅에 거주한지 430년이 되는 해가 그들이 애굽에서 나왔다고 정확히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야곱이 자신의 가족을 데리고 애굽으로 들어간 해는 B.C.1876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때 야곱의 나이는 130세였으며(창47:9), 야곱은 애굽에서 17년을 더 살다가 그의 나이 147세(B.C.1859년)에 애굽땅에 죽게 된다(창49:33).

4. 그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은 틀렸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하신 말씀들은 어떻게 된 것인가? 먼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부터 살펴보자.

창15:13-16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우리가 이 말씀을 정확히 살펴보면서, 보통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금방 알 수 있다. 히브리인들의 실제 애굽체류기간은 430년이었다. 그렇다면, 400년은 무엇인가? 창15:13을 보니, 그것은 이방인들(애굽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을 괴롭히는 기간이다. 그렇다. 야곱이 130세에 애굽에 들어갔다가 17년을 더 살고 죽었는데, 그후 13년이 흐른 다음에, 애굽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을 괴롭히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처음에는 강도가 약했을 것이다. 하지만 셈의 자손인 힉소스인들의 통치(애굽13~17왕조)가 끝나고, 함의 자손(제18왕조)이 다시 이집트땅을 다시 다스리기 시작했을 때에는 그 고역이 어마어마하게 강해졌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4대만에 가나안땅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말씀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체류했던 기간은 정확히 430년이었다. 그런데 야곱은 애굽에서 17년을 더 살았고 147세에 .애굽에서 죽었다. 그리고 요셉은 아버지인 야곱의 나이 90세에 태어났다. 그런데 요셉이 17세의 소년으로 애굽으로 팔려갔을 때, 야곱의 나이는 107세였다. 그러므로 야곱이 죽을 때의 요셉의 나이는 57세였다. 그리고 요셉은 110세에 죽었으니, 야곱이 죽고 나서 약 53년을 더 애굽에서 산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 세대의 사람들의 나이들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얼마를 살았는지는 잘 모르는 것이다. 다만, 계보만 남아 있을 뿐이다.

  먼저, 애굽땅에 들어간 아브라함의 자손 4대가 누구였는지부터 살펴보자. 애굽땅은 야곱이 들어갔다. 그때 야곱은 자신의 12아들들과 손자와 증존자까지 데리고 들어갔다. 창46장 12절에 보면, 야곱은 넷째아들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데리고 들어갔고, 유다의 아들이자 자신의 손자였던 베레스와 세라를 데리고 들어갔으며, 베레스의 아들이자 자신의 증손자인 헤스론과 하물까지 데리고 들어갔다. 이는 야곱이 자신의 자손4대를 데리고 애굽에 들어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족보는 야곱 - 유다 - 베레스 - 헤스론이다. 그런데 이후의 사람의 족보가 역대기에 나오고(대상2:9~10), 마태복음 1장의 왕의 족보에도 나온다. 이 족보에 의하면 헤스론은 여라므엘과 람과 글루배를 낳았고, 그의 둘째아들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암미나답을 나손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대상2:9~10). 그리고 나손은 살마(살몬)을 낳았는데, 살몬은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정탐할 때 보낸 두 명의 정탐꾼 가운데 한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우선 헤스론 이후의 족보를 좀 더 보자. 헤스론 - 람 - 암미나답 - 나손이 그 족보다. 그런데 헤스론이 3명의 아들을 낳은 것까지는 분명한 것 같다. 왜냐하면 야곱의 증손자 헤스론이 고손자 람(누가복음 족보에는 '아니')을 낳은 것을 기록한 족보가 세 명의 아들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다의 계보가 헤스론에서 첫째아들이 아니라 둘째아들인 람으로 이어졌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람이 암미나답을 직접 낳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여러분은 혹시 람의 아들인 암미나답이 누군였는지를 알고 있는가? 암미나답(혹은 아미나답)은 아론의 부인인 엘리세바의 아버지라는 사실이다(출6:23). 다시 말해, 암미나답은 아들인 나손을 낳았고, 딸인 엘리세바를 낳은 것이다. 그리고 암미나답은 딸인 엘리세바를 모세의 형인 아론에게 시집보내었다. 이때 엘리세바는 아론에게 시집가서, 4명의 아들을 낳았으니, 그들은 바로 나답과 아비후, 엘르아살과 이다말이다(출6:23). 그런데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아론과 모세는 출애굽을 이끈 세대가 아닌가? 그리고 모세가 출애굽1세대들 중에 광야의 행진순서를 기록했을 때, 유다지파의 족장으로 기록한 사람이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라는 것이다(민2:3). 그러니까, 암미나답이나 나손은 출애굽하고 있는 세대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서 가나안땅에서 애굽에 들어간 자는 야곱 - 유다 - 헤스론까지며, 헤스론이 애굽땅에서 람을 낳았으리라 추측해본다.  왜냐하면 암미나답과 나손은 출애굽세대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야곱이 헤스론까지는 자신이 직접 대리고 들어갔는데, 람까지가 430년의 기간이라고 볼 수 있는지 말이다. 람이 분명 암미나답을 낳았다고 기록하고는 있지만, 암미나답은 람의 직접적인 아들이 아닐 확률이 매우 높다. 엄청 많은 세대가 거기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족보에는 그것이 생략되어 있다.

  왜, 성경의 기록은 람의 아들들 중에서 몇 세대를 생략한 채 기록하고 있는는 것일까? 우리는 그 해답을 마태복음 1장의 메시야의 족보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것은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메시야의 족보에는 여러 명의 왕들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요시아의 아들 여호아하스왕과 여호아하스왕의 아들 여호야긴(엘리야김)왕이 족보에서 생략되어 있는 것이다(마1:11).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메시야의 족보에 그 이름이 생략된 자들은 모두가 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자라는 공통점이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람의 아들들의 수 댓수가 아마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들이 생략되어 있고, 성경의 기록에는 람의 아들은 곧 암미나답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므로 애굽에 체류하고 있다가 나온 세대는 딱 4대만 가리키지 않다는 것이 어느정도 확실해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성경은 야곱의 후손이 4대만에 애굽에서 탈출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그것은 번역상의 잘못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원문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4대만에 가나안 땅에 돌아온다는 말씀이 아니라, "네번째의 세대" 때에 가나안땅으로 되돌아온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야곱이 애굽에 들어간 후 4번째 세대에 출애굽이 있을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람과 암미나답 사이에 여러 세대의 사람들이 들어있음을 추측해 본다. 그래야 사실 430년이라는 기나긴 기간이 전혀 문제가 없이 해석될 수가 있다.

5. 나오며

  성경의 기록은 사람이 썼지만 사람의 기록이라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직접 들어쓰셔서 기록게 한 성령의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책들은 성령의 책이자 하나님의 책인 것을 항상 염두해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그대로 성취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애굽체류기간에 있을지도 모를 야곱의 후손들도 이 원칙은 동일하다. 딱 4대가 아니라 네번째의 세대가 흘러간 다음에 출애굽한다는 것이 성경의 원뜻이다. 그러므로 메시야를 낳게 하기 위해 준비된 유다지파의 족보에는 천국에 못 들어간 자의 이름이 생략된체 기록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족보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분명 그도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죽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름 석 자에 대한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왜냐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라도 꼭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영원히 잊혀버리는 사람의 이름이 되어서는 결코 아니 될 것이다. 우리의 이름의 하늘의 생명책에 남아서,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존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회개와 믿음을 통하여 반드시 구원받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왕이면 충성하여 하늘에서 상급을 많이 받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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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생활을 400년, 430년, 450년 중 어느게 맞는가?
왜 이렇게 적으셨을까? 교회가 비방받는 이유는?

요즘 불신자들의 교회공격이 도를 넘고 있다. 이러다간 얼마 안가서, 가톨릭과 wcc와 함께 교회습격, 프랑스바돌로매사건이나 종교재판때 같은, 마녀사냥이 생기지 않을까 싶을정도다. 그러므로 우린 더 열매맺는 언행과 모든계명지킴과 강력한 영적전쟁과 기도가 필요하다.


성경에선, 교회가 욕먹는 이유를 뭐라 하시는가? 거짓교사들의 음녀짓 때문에 교회가 비방을 받는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즉 성경속 바알이며, 음녀들의 어미 가톨릭과 그 음녀딸 wcc, wea 가, 영적 창녀짓 호색 음란짓 하기에 비방을 받는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벧후 2:2,) 『여럿이 저희(거짓교사들)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


분명, 진리대로만 성경대로만 제대로 믿고, 교회에 침투한 가톨릭요소들=바알교리들을 모두 찾아 버리시면, 칭찬을 듣고 수도 더 는다.
(행 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얼마전, 어느 불신자가 올린 글중에, "성경은 거짓투성이다" "이런 거짓말을 믿지 말아야 한다" 라는 취지의 글로, 내용은, 애굽생활을 400년, 430년, 450년으로 적고 있어, 소설같다는 것이다. 물론 불신자에겐 말씀이 가려져서 잘보이지 않고, 보아도 못보게, 들어도 못듣게 하시니까 그런것도 있지만, 우리 기독교인도 제대로 답변하나 해놓은게 없어서 글을 올립니다.


또 그 가라지는, "어느게 정답이며, 또 (창 15: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에서 정말 4대가 400년이상이 되느냐?" 식이었다. "400년이면 40년씩만 해도 10대는 될텐데..?"


정답을 말씀드립니다.
일단 하나님은 거짓말을 못하시는 분이란 걸 아셔야 한다. 전지전능하시지만, 오직 하나 못하시는 건, 거짓말이다. 거짓의 아비는 마귀다(요8:44)
(히 6: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1. 4대 만에 나온다고 하신 말씀을 보자.
(창 15: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여기서 잘 아는 아론. 모세의 족보를 보자.
(대상 6:1) 『레위의 아들들은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요』
(대상 6:2) 『그핫의 아들들은 아므람과 이스할과 헤브론과 웃시엘이요』
(대상 6:3) 『아므람의 자녀는 아론과 모세와 미리암이요 아론의 자녀는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이며』

야곱은 거의 죽기 직전에 애굽에 들어갔기에 빠집니다.
요셉의 형인 레위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출애굽은 아론. 모세가 이끌었기에 아론.모세까지 세어야 합니다.

레위>그핫>아므람이 고모 요게벳과 결혼(출 6:20)>아론.모세.미리암
으로 4대 만에 출애굽 했다.  그러므로 4대가 맞다.
이 당시엔 보통 120년정도씩 살던 시대다.
(신 34:7)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이십 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물론 노아의 홍수 전에는 거의 천년가까이 살았다.
심지어 므두셀라는 969세까지 살았다.
노아와 샘은, 야곱과 요셉 때까지 생존해 있었다.

족보를 보면, 정말 아이러니다.
샘의 직계자손들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 때에 와서는 우상을 섬기게됐다(수24:2) 심지어 그토록 하나님을 잘섬기던 샘의 직계에서 말이다.
(창 9:26)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또 샘이, 같은 지역에서 생존해 있는 기간에도 말이다.

이토록 죄 때문에 점점 나이가 줄어드는 것을 보아야 한다. 역대일기를 보면, 왕들의 나이가 보통30-50세를 못산다. (시 109:8) 『그 년수를 단촉케 하시며 ...』 레위26장 신명28장도 보면 죄때문에 저주 받는 것을 알아야 한다.


2.  400년은?
(창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나그네)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창 15:14)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에서 분명히 답을 주십니다. "그들을 섬기겠고,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즉 <종으로 삼아 괴롭게하는 기간>을 말합니다. 분명 요셉 때는 되려 번성했고, 주인으로(창 45:9) 대우받았다. 하여 그 기간을 뺀 것이다. 요셉을 알지못하는 다음 새 왕이 나왔고(출 1:8) 즉 요셉 때 바로왕 외에 다음 바로부터는 이스라엘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정치적계산으로 학대한 것이다.


(창 45:9)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고하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내게로 지체말고 내려오사』

3. 430년은?
(출 12:40)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지 사백삼십 년이라』
(출 12:41) 『사백삼십 년이 마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갈 3:17) 『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


 430년은?  애굽에 거주한 총 기간을 말씀하신다.
즉 정확하게 하루도 차이없이, 430년 마치는 그날에 출애굽하셨다. 이렇게 정확한 하나님이시다.


4.  450년은?
(행 13:16)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행 13: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행 13:18)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
(행 13:19)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


여기서 바울은, 자신이 갈라디아성경에서 말한 430년을, 왜? 450년이라고 했을까요? 바울은 거짓말 못하시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정확히 문맥을 깨닫지 못하니까. 거짓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설교시작은 16절이고, 17절에선 핵심이 <나그네 된 그 백성>이다. 즉 요셉 때 30년은,  객이 아닌 당당한 주인으로 살았다.
(창 45:9)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고하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내게로 지체말고 내려오사』


애굽의 <주>로 세워진 요셉으로 인해, 당당히 주인으로 살았으나, 다음 바로왕 때부터는, 요셉이 죽고나서 객=나그네로 전락된다.  즉 나그네로 학대. 압제를 받은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희도 나그네를 잘 대해주라시며 너희도 애굽에서 나그네였다고 하신다. (출 23:9)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정경을 아느니라』


바울은 17절에서,

나그네의 학대 압제받은 기간인 400년으로 계산한 것이다.


그 다음 18절의 광야 40년간과
그 다음 19절의 가나안 정복전쟁 10년을 더하여  총 약 450년을 말한 것이다. 그것도 <약 450년간>이라고 하신다.


이처럼 깨닫고 나면, 얼마나 정확하신 분인지 아는데요.
불신자나 가라지나,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유일신 예수님을 욕하기 바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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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회복과 430년의 기간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눅 21:23-24)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리이까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아니요(행1:6-7)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간바 열국에서 취하며 그 사면에서 모아서 그 고토로 돌아오게 하고...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찌라(겔 37:21,24)

여러 날 후 곧 말년에 네가 명령을 받고 그 땅 곧 오래 황무하였던 이스라엘 산에 이르리니 그 땅 백성은 칼을 벗어나서 열국에서부터 나와서 다 평안히 거하는 중이라(겔 38:8)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성서적 근거
예수 그리스도는 공관복음서에서 마지막 때에 있을 징조들을 언급하면서, 우선 1차적으로는 예루살렘에 대한 멸망을 예언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누가복음 21 : 23, 24절 말씀에서 각각 <이 백성>, <예루살렘>을 언급함으로써 <유대인>들로 그 범위를 국한시키고 있다. 그리고 에스겔서 37:38절에서 말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회복>은 38:8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 처럼 <말년-a long time, in the distant future>에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누가복음 21:20-24절 까지의 말씀의 적용은 반드시 A.D 70년과 A.D135년의 시점에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21:23절에서 사용하고 있는 ‘진노(Wrath)’라고 하는 단어는 원어상의 의미인 ‘호르게’로써, 즉 <분노>, <분개>와 동일한 의미인데, 이는 누가복음 13:34-35절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 처럼<이스라엘을 향한 예수님의 탄식>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에스겔, 이사야, 스가랴, 학개, 그리고 스바냐 등 <바벨로 포로 이후>시대에 주로 활동했고 예언 했던 선지자들의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은, <마지막 때>에 있게 될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것이며, 이 예언서에서 가리키는 ‘시점’은 <종말의 때>에 맞춰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에서 말하는 바벨론 포로와 그 이후 이스라엘 귀환의 멧세지의 중심은 <마지막 때>에 성취될 <이스라엘의 귀환과 회복>을 동시에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선지서들에서 보여주고 있는 최후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겔38:17-23)은, 이스라엘에 대한 <저주>와 <분노>의 성격이 아닌, 하나님 그 자신의 <의>를 전 세계에 선포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누가복음 21:24절의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라는 말씀은 실제로 A.D 135년 조국 이스라엘에서 추방당한 유대인(디아스포라)들이 1917년 벨포어 선언(이스라엘 건국)과, 그 뒤에 이은 1947년 UN의 합의 결의안이 있기까지 약 1900여년 동안의 <흩어진 디아스포라 기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가복음 21:24절에서 에스겔서 37:21절의 말씀이 성취되기까지의 공백기간은 약 1900여년이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회복과 숫자의 상관성
성서에서는 고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몇 가지의 중요한 <숫자>가 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12, 7, 6, 4, 3 과 같은 숫자가 그 대표적이다. 그 중에서 ‘4’ 라고 하는 숫자가 지니고 있는 고유한 의미는 <고난>이며 '3은' <완전함>이다. 한편 <4>와 <3>이라는 숫자는 자주 <40일, 40년, 혹은 400년>, 그리고 3은 <30년>의<기간>을 나타낼 때 쓰이곤 한다. 그러면 성서에서의 기간, 즉 400년과 30년을 더한 430년이라는 기간이 <이스라엘의 회복>과 관련해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 지 살펴보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고 흥미로운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성서에서 가장 대표적인 두 사건, 즉 모세의 <출애굽 사건>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한 가지의 독특한 공통점을 이끌어 낼 수 가 있다. 그것은 <430년>이라는 기간이다.



1.성서 속에서의 이스라엘의 회복
430년과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 그리고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먼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애굽을 탈출할 때,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기간이 바로 <430>년이 정확하게 차던 해라고 말을 한다. 물론 이 기간과 관련해서 학자들 간에 몇 가지의 상이한 견해가 존재한다. 그러나 성서에서는 분명히 <400>년 혹은 <430>을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백 삼십년이 마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땅에서 나왔은즉(출 12:41)

모세는 43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출애굽을 한다. 먼저 그는 왕의 아들(애굽의 왕자)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버리고 미디안 광야에 들어가 40년간 양들을 돌보는 목자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목자로서의 40년이라는 기간은 하나님이 모세를 준비시키기 위한 특별한 준비기간임을 잘 알 수가 있다. 그리고 후에 그는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부름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된다. 그래서 그 백성들을 이끌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으로 향하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40년간의 광야생활을 마친 후에야 비로소 후계자인 여호수아에 의해 가나안 땅으로 진입하게 된다.

그리고 이어 신약으로 넘어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만난다. 앞서 언급했던 출애굽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의 예표임을 잘 알고 있다. 구약의 <출애굽 사건>이 애굽에서의 430년간에 걸친 종살이로부터 해방시켜준 사건이라면, 신약의 <십자가 사건>역시 430년간의 <신구약 중간기의 암흑>을 뚫고 참 구원과 회복을 가져다 준 사건이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B.C 4)까지의 기간을 약 400년간으로 본다. 선지자 말라기의 활동연대는 정확히 언제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견해는 400년이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시기는 B.C 4년경이라는 것은 이미 일반화 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이는 헤롯왕의 죽음(B.C 4)을 기점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이 거의 같은 시점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400년의 기간동안 선지자의 활동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흔히 이 400년의 기간을 <암흑시기>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암흑시기인 400년간 이스라엘은 제국국가들의 속국으로 있었는데, 즉 바사(이란), 헬라(셀류쿠스제국-시리아), 로마제국의 속박 아래에 놓이게 된다. 특히 셀류쿠스 왕조 안티오쿠스 4세가 유대인들에게 저지른 끔찍하고도 잔혹한 행위는 유명하다. 그는 예루살렘에 밀어닥쳐 성전에 들어가 보물을 빼앗고 시리아 군대를 주둔(B.C169-168)시킨다. 그리고 유대율법에 순종하는 일을 금지시키고 성전에 제우스신(바알신에서 유래되었으며, 로마제국 당시엔 주피터신)을 세우고 토라를 불태운다.(B.C167-164) 이렇듯 중간시대에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일들이 벌어진 기간이었다. 게다가 이어서 출현한 로마제국의 폭군 헤롯대왕(B.C37-4)는 가장 잔인한 인간 중의 하나였는데, 그의 잔인함은 그의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심지어 자신의 어머니도 살해할 정도였다.

바로 이러한 암흑시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종국적으론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고 십자가에서 운명(A.D 30)하게 된다. 정확히 말라기 선지자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까지는 43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바로 구약의 출애굽 사건의 실제를 의미하며, 이로 말미암아 진정한 구원과 회복을 안겨준다.(고전10:11)


2.역사 속에서의 이스라엘의 회복
430년과 UN <이스라엘 재건국>합의 결의안 (1517-1947)
그렇다면 출애굽 사건과 십자가 사건은 현재 이스라엘의 회복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다음의 논의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해석일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 성서의 관점으로 재조명하려 한 시도임을 밝혀두고자 한다. 적어도 성서의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사건을 통해 언급되는 <430년>이라는 기간, 이 기간을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현재의 <이스라엘의 회복>과 연관짓고자 한다. 또한 이 시점에 맞춰 일어나는 몇 가지의 중요한 사건들을 같은 맥락에서 분석해 보고자 한다.

A.D 70년의 이스라엘의 멸망에 이어서 A.D 135년에 유대인들은 전 세계에 흩어지게 된다. 아니 사실은 쫓겨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세계각처에 흩어져서 살아가는 유대인들을 디아스포라라고 부르게 된다. 앞의 글에서도 언급한 것 처럼 이미 예수 그리스도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아울러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의 운명을 예견하고 있으셨다. 아니 그것은 이미 창세기에 등장하는 장자 가인이라는 인물을 통해서(창4:10-26) 애초부터 예견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1947년 11월 UN의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분할 결의안이 합의 될 때 까지, 다시말해 이스라엘의 재건국이 공식적으로 인정되기까지 1900여년이 걸렸다. 이 기간동안 이스라엘은 신.구약 중간암흑시기 때에 겪었던 것 처럼, 많은 제국국가들의 지배 아래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세계의 3대 종교의 성지로 자리잡게 되는데, 즉 유대교, 기독교(가톨릭,정교회,개신교), 이슬람교가 그것이다. 게다가 예루살렘엔 저 유명한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가 옛 성전터 위에 세워지게 되며, 기독교도의 십자군(1096)을 시작으로 7번에 걸친 전쟁으로말미암아 수많은 유대인들이 대량 학살 되게 된다. 1096년에 시작된 유대인 대학살은 20세기 나치의 유대인 전멸 정책까지 유럽에서 계속 되었으며, 기독교도에 의해 주로 자행되었다는 사실은 그저 아이러니할 뿐이다.

430년간의 애굽종살이에서 출애굽사건의 시작, 그리고 430년간의 중간암흑시기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다시 마지막 때에 성취될 '이스라엘의 회복'(겔37:21)으로 연결된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1517년 팔레스틴에 대한 오스만왕조의 지배와 마틴루터의 종교개혁이 같은 해에 시작된다는 점이다. 마틴루터의 종교개혁은 1917년 '발포어 선언'이 있기까지 <이스라엘의 재건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며 강력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종교개혁은 <가톨릭>으로부터 <개신교>를 분리해낸 사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이스라엘의 회복>의 시작을 알리는 위대한 성격을 띤 사건이기도 하다.






A.<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준비기간 400년, 그리고 30년의 역사

1. 400년간의 역사의 재조명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지배와 멸망까지의 400년(1517-1917)
이스라엘에 대한 오스만 제국(터어키)의 지배는 정확히 400년간 지속된다. 이 기간동안 이스라엘은 오스만제국의 지배 아래 놓이며, 터어키가 회교 군주국이었으므로 이스라엘은 십자군 시대 200년간을 제외하곤 1천여년간을 거의 이슬람 교도에 의해서 지배를 받아온 셈이다. 그리고 비로서 1917년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에 영국군이 들어오게 되는데, 십자군 이래 처음으로 비이슬람 군대가 주둔하게 된다. 이 때 유대인의 부대도 함께 입성 하는데 육군 상병 데이빗 벤 구리온(David Ben-Gurion)이라는 지도자도 함께 들어왔다. 400년간에 걸친 이스라엘에 대한 오스만 제국의 지배는 이로써 종말을 고하게 된다.

종교개혁의 시작과 발포어 선언까지의 400년(1517-1917)
이스라엘의 회복에 서광이 비치기 시작한 것은 루터의 종교개혁 후 인문주의의 발달로 인간성 회복의 운동에서 부터이다. 이는 동시에 본격적으로 유대인 해방운동도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유대인 출신의 최고 학자들이 계몽주의에 편승해서 유대인 자유화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 영향으로 서유럽을 위시하여 유대인 해방운동은 빠른 속도로 번져나가게 되며, 이에 반해 동유럽에서는 그보다 후에 본격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이 영향으로 1657년 오란다에서 최초로 유대인들에게 시민권이 부여되었으며, 영국에서는 18세기 이래 유대인들에게 법적평등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1830년 이후부터는 유대인도 공직에 진출할 수 있는 문이 열리게 된다.
전세계에서 시작된 유대인의 법적 평등 및 권리의 부여, 그리고 그로 인한 유대인의 해방은 다음과 같은 역사를 따르게 된다.

미국(1776) / 프랑스(1789) / 이탈리아및 독일(유대인 거주지역인 '게토지역' 해방) / 프랑스(1846) / 영국(1858) / 이탈리아(1871) / 스위스(1874)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들은 결국 1897년 8월 29일 204인의 유대인 대표들이 모여서 최초로 개최한 <시온주의>를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된다. 이는 또한 전세계 시온주의 기구설립을 채택하게 되고, 전세계적인 운동으로 발전시켜나가는 촉매역할을 하게 된다. 그 결과 동유럽과 러시아(거주지 제한 정책의 철폐로 인해 가능하게 됨-1917.3월 시행)에서 불모의 땅 팔레스타인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으며, 당시 팔레스타인 땅은 굶주림과 고통이 따르는 황무지에 불과했다. 그리고 초기 정착민 중 많은 사람들은 질병과 굶주림으로 죽어가기도 했는데, 결국 유대인 민족의 저력은 지금의 키부츠(집단 공동체 농장)를 탄생시킨다. 한편 이것을 가능하게 한 중요한 요인중의 하나는 유대출신이면서 대부호들인 재벌 및 금융가들의 아낌없는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하게 되었다. 특히 미국에 있는 유대인 부호들의 역할이 결정적인 작용을 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1917년의 발포어 선언, 1947년의 UN의 분할 합의안, 그리고 최종적으로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공화국이 탄생하게 된다. 실로 이것은 1,900여년을 뛰어넘어, 2,600여년 만에 완전한 독립국가의 모습으로 재탄생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2. 30년간 역사의 재조명
발포어 선언과 UN 합의안까지의 30년(1917-1947)
1917년 발포어 선언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재건국을 승인한 1947년 UN 합의안이 있기까지의 30년의 기간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독립할 수 밖에 없는 <시대적 요청>을 잘 반영하고 있는 기간이다. 특히 세계전쟁의 발발로 인해(1914-1945 1,2차 세계대전)더욱 가속화 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맞게 된다.

또한 특이할만한 사실은 1917년 발포어 선언이 있었던 같은 해에, 러시아에서는 정말 중대한 역사적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것은 '러시아 혁명'이다. 러시아 혁명은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를 탄생시켰으며, 이로 인해 세계는 극단적인 두 세계로 양극화 되기에 이른다. 즉 이 사건은 정치적으로, 또 군사적으로 이념의 대립의 결과로 냉전, 전쟁, 그리고 그로 인해 수반되는 수많은 희생의 결과를 낳게 된다. 다시말해 비극의 시대를 알리는 첫 신호탄이 된 것이다. 그러다가 후에 결국 공산주의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최근 다시 <러시아의 부활>이 급속도로 가속화 되면서, 정치적으로, 또 군사적으로 대치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 이는 에스겔서를 비롯한 예언서에서 <이스라엘의 회복>과 함께 마지막 때의 예언을 이루는 하나의 확실한 징조를 보여주는 예이다.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대격동기를 경험하게 되는 이 시기에 역시 종교적으로도 하나의 큰 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같은 해 1917년 포루투칼의 파티마 지역에서 일어난 <성모마리아의 출현 및 예언>사건이 그것이다. 이 파티마 사건은 가톨릭의 교황에 의해 극비로 취급될 만큼 대단히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 된다. 현재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최근 서거한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그 비밀의 전모가 알려졌으며, 그 비밀의 내용에 대한 해석을 교리적으로 체계화하고 정립한 사람이 바로 당시 교리성 장관으로 있었던 라칭거 추기경(현 베네딕트 16세 교황)이었다. 대략 말한다면 그 비밀의 내용이란 <세계전쟁과 최후 심판>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예언이다. 물론 전쟁에 관한 예언은 이미 제 1,2차 세계전쟁으로 성취된 것으로 본다. (이것에 관하여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파티마' 예언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1917년과 1947년 사이에 일어났던 20세기 초의 사건들은 이상과 같이 인류 역사에서 가장 혹독한 시련기를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히틀러에 의해 자행되어진 유대인 대량학살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사실 홀로코스트는 유럽의 전체국가들에 의해 암묵적으로 합의되었던 사건으로 보는 것이 옳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이 당시 대량학살로 인해 수백만명의 유대인들이 참혹한 죽음을 당하게 된다. (최대 600만이라는 통계도 있지만 상이한 견해가 존재함). 그러나 결국 이러한 핍박과 협박으로 인해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는 결정적 계기가 마련 된다. 또한 1917년 러시아의 <거주지 제한 정책>이 해제 되면서 그곳에 디아스포라로 살았던 수많은 유대인들은 그 어떤 나라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보다 많은 수가 이스라엘로 귀환하게 된다.

제1차적으로는 유대인들에게, 또 2차적으로는 세계인류에게 혹독한 시련과 고통을 안겨다준 사건들이 30년 동안 발생하게 되는데, 놀라운 것은 이 시점이 바로 <이스라엘이 재건국>하는 시점과 일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스라엘은 수천년간의 침묵의 기간을 깨고, 그리고 마치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과 아픔을 딛고 잉태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에르쯔 이스라엘, 즉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땅>에 돌아와 독립국가를 세우게 되는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게 되며, 그 중심에는 이 세계의 역사를 주관하시고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개입이 있으셨음을 부인 할 수 없다.

한편 구약성서에서는 바벨론 포로와 이후에 성취될 이스라엘의 재건 사건이, 출애굽 사건과 아울러서 가장 중요하고도 의미 있는 사건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회복은 열국에 대한 하나님의 최후 심판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게 됨을 언급하고 있다. 또 그것은 가장 확실한 마지막 때의 징조로써 묘사되고 있다.







B.<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과정기간 60년(1947-2007)

1. 30년간의 역사의 재조명
UN 분할합의안에서 이스라엘/이집트 평화협정 제안까지 (1947-1977)
1947년 11월 UN 총회에서 유대국가와 아랍국가에 대한 동시 분할안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국가는 다시 재건되었다. 독립이 선포된 후 13명의 초대내각을 구성했으며 초대 대통령으로는 30년간 시온이즘 운동을 지도해 온 와이즈만 박사를 초대하였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 국가가 재건되면서 미국을 비롯한 다수 국가들이 속속 승인에 동참하게 된다. 그러나 아랍국은 이스라엘 국가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특히 이집트(애굽), 시리아(헬라-셀류쿠스 제국 ), 요르단(에돔,암몬,모압), 레바논(페니키아) 등은 강경하게 대항하기에 이른다. 결국 이스라엘은 주변국가의 단호한 반대에 부딪혀야만 했고, 1973년 욥키푸루 전쟁까지 모두 4차례에 걸쳐 중동전쟁을 치뤄야만 했다. 한편 이스라엘은 2차대전 당시, 줄곧 나치의 박해를 피해 팔레스틴으로 계속 모여들었다. 그래서 1947년 이후엔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정착하게 된다.

제 1차 중동전쟁(1948.5)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과 동시에 7개국으로 구성된 아랍 연합군이 이스라엘 영토를 침입했다. 절대적 약세 놓여있던 이스라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전쟁을 통해 UN 분할안에 명시된 영토보다 훨씬 넓은 영토를 장악했다.

제 2차 중동전쟁(1956. 7)
1956년 소련으로부터 막대한 군사원조를 얻어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진 이집트는 '이스라엘 국가의 전멸'을 다짐하고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인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는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 정책'에 반대하면서, 급기야 연합군을 결성해 시나이 반도를 급습한다. 하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인하여 미국 소련의 압력을 받게 되자 연합군과 이스라엘은 철수하게 된다. 한편 가자의 이집트군 기지를 철저하게 파괴시킨다. 2차 중동전쟁에서도 이집트는 대패했다. 3만여명의 군사가 갈증으로 죽어갔으며, 이중 5,000여명 정도가 포로로 잡힌다. 그러나 이에반해 이스라엘은 172명의 전사자와 8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게 된다.

제 3차 중동전쟁(1967.6)
1967년 대아랍 전쟁은 전쟁 역사상 가장 짧은 시일안에 가장 많은 영토를 점령한 전쟁으로 기록된다. 이 전쟁은 6일 안에 끝이 났으며 이집트로써는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며 복구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게 된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 선제 공격을 가함으로써 제공권을 장악, 출격 4시간만에 적기 4백여대와 군사 요충지 25개소를 격파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집트는 소련에서 지원받은 20억불의 군사장비 중 대부분을 6일 전쟁에서 소모하게 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19대의 비행기 손실을 입는데 그쳤다.
제 3차 중동전쟁은 다음 몇 가지의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첫째, 동예루살렘(이스라엘의 성지)을 점령하게 된다.
둘째, 북쪽의 시리아 골란고원(헤르몬산) 지대를 모조리 점령하게 된다.
셋째, 요단강 서안 일대를 점령하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세 곳이 지니는 성서적, 그리고 역사적 중요성을 반드시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제 4차 중동전쟁(1973.10)
3차 전쟁에 걸쳐 굴욕적인 패배를 맛본 아랍국가들, 특히 이집트는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우고 다시 전쟁준비에 돌입한다. 남쪽 시나이반도는 이집트, 그리고 북쪽 골란고원을 시리아가 동시에 공격하게 된다. 개전 초기 이스라엘은 골란고원에서 패전하게 되는데, 정말 놀라운 것은 전멸 위기에 처해진 이스라엘 군을 포기하고 시리아 군대는 작전상 후퇴함으로써 믿을수 없는 실수를 범하게 되며, 그로인해 전쟁은 한 순간에 반전이 되어버린다. 다시 이스라엘은 전열을 정비한 후 수에즈운하를 이집트군으로 가장해 도강한 후 이집트 영토에 몰래 침입한다. 이집트 영토를 직접 침입하기는 이스라엘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그리고 <마긴 다비드-다윗의 별표>를 이집트 영토 안에 게양한 후 수많은 이집트군을 포위, 전멸의 위기에 몰아넣게 된다. 다급해진 이집트 왕 사다트는 미국에 중재를 요청하며 미국무장관 키신저의 중재로 휴전이 성립하게 된다. 그러나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평화 협정 이후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은 군대에 의해서 암살을 당하고 만다.

1977년 11월 19일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이 역사상 최초로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이스라엘이 시나이 반도 점령지역에서 철수한다면 평화협정을 맺을 수 있다고 선언하게 된다. 그래서 1978년 9월 17일 미국의 카터 대통령과 사다트 대통령 및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수상이 평화의 원칙에 합의한 후 역사적인 캠프 데이비드 협정에 서명하게 된다.



2. 30년간의 역사의 재조명
이집트 평화협정 제안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정까지(1977-2007)
1973년 중동 4차 전쟁까지 아랍권은, 특히 이집트를 중심으로한 연합세력은 공산권(구소련-에스겔서에서는 <곡>이라고 언급된 국가 - 겔38:16) 의 막강한 군사원조를 바탕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했지만 모두 패배했다. 이집트의 피해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막대한 것이었다. 지난 4차에 걸쳐 치러진 중동전쟁의 성서적 의미는, 예언서에서 알수 있듯이 이스라엘을 압제하고 괴롭혔던 열국들을 하나님이 직접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 심판하고 계신 다는 것이며,(슥1:16-21) 이스라엘의 회복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의 의>를 온 열국 가운데에 보여주고 계시다는 사실이다.(겔38:16)

한편 1977년 평화협정의 제안에 이어 1978년 공식적으로 평화협정에 서명한 이후, 중동은 비교적 평화로운 상황을 맞게된다. 물론 주변국가들과의 몇차례 산발적인 충돌이 있긴 했었지만 4차에 걸친 중동 전쟁 만큼이나 큰 규모의 전쟁은 없었다. 그리고 최근 핵문제와 관련하여 이란 및 시리아와의 정치, 군사적 마찰이 일게 되었고, 그 와중에 다시 미국의 중재로 평화협정의 제안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1977년 이집트의 평화협정제안 이후 정확히 30년이 되는 해인 2007년에 미국의 중재로 2008년까지 평화협정을 완료할 예정인데, 여기에서 특이할 만한 사실은 다음과 같이 일정한 기간을 두고 이스라엘 역사가 전개된다는 사실이다.

1947년-UN 분할 합의안 > 1948년-이스라엘 독립국가 재건
1977년-이집트의 평화협정 제의>1978년-캠프 데이비드 평화협정 체결(미국중재)
2007년-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정 제의> 2008년-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정 완료 예정(미국중재)

1517년에서 1917년까지의 400년, 그리고 1947년 UN 분할 합의안까지 30년, 이후 정확히 30년간의 일정한 기간을 두고 평화협정이 제의되고 체결된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성서적인 언어로 말한다면 <때가 차매>라는 말이 이럴때 쓰는 것이 아닐까 한다. 또한 한 가지 주목 해야할 것은 1967년 3차 중동전쟁을 통해 차지한 동예루살렘 및 골란고원, 그리고 서안지역의 반환문제가 중동의 평화에 핵심적인 사안이 된다는 것이다. 1967년 이후 정확히 40년이 되는 해, 즉 작년부터 미국의 중재로 다시 한번 본격적으로 가시화 된다. 그리고 현재 부시 대통령의 중재로 본격적인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동예루살렘의 성서적 의미와 가치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고 요단강 서안지구 및 역시 골란고원(헤르몬산 부근-시리아와의 분쟁)은 또 얼마나 중요한가...지금 평화협정의 중심에 서있는 문제가 바로 이것에 대해 양보 하느냐, 안하느냐의 문제이다. 이것과 관련한 성서적 근거와 그 의미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차후에 논의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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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5장 횃불 언약에서 400년에 4대가 분명한가?

창세기 15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횃불 언약을 하시며 그 후손이 400년, 4대(Generation)만에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나온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어떻게 400년간 단지 4대만이 있을 수 있는가? 일반적으로 한 세대를 30년 정도로 계산 한다고 볼 때 400년이면 적어도 14대는 돼야 한다. 4대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출애굽기에는 이스라엘의 애굽생활을 430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성경에서 찾으려 했고, 속 시원한 답을 발견하게 됐다. 결국 필자는 ‘성경은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됐다.

'400년이 옳은가 아니면 430년이 옳은가?', '4대가 맞나?'라는 질문에 일부 성경학자들은 명확한 대답을 회피한다. 또 실제로는 430년이 옳은데 하나님께서 대충 400년이라고 말씀하셨으며 4라는 숫자가 고난과 시련을 의미하므로 일종의 상징(Symbol)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성경에 나타난 숫자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단지 하나의 상징으로만 본다면 우리는 큰 잘못을 범하게 된다. 바로 성경의 무오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조금 과장한다면 이는 성경의 분명한 역사(History-His Story)를 하나의 우화(Fiction)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고, 바르게 살아가야 함은 가장 중요한 일이며 인간의 '참된 도'이다. 숫자 1은 2가 될 수 없고, 2가 1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충’ ‘어름 짐작’으로 말씀 해주시는 분이 절대 아니다.

그러면 400년에 4대가 가능한 것인가? 그 대답은 분명히 Yes 이다. 성경이 그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횃불 언약에서 말씀하신 400년에 4대(Generation)가 되었음을 출애굽기 6장 16절~20절이 증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아론과 모세가 레위 후손으로 4대임을 분명히 밝혀주며, 그 조상들이 살았던 나이까지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야곱의 아들인 레위는 137세, 레위의 아들 고핫은 133세, 고핫의 아들인 아므람은 137세까지 살았으며, 아므람의 아들들이 바로 아론과 모세이다. 그러므로 1대는 레위, 2대는 고핫, 3대는 아므람이며, 4대는 아론과 모세이다. 분명히 횃불언약에서 400년, 4대라고 말씀하신 것은 상징이 아니요 사실이다. 그러므로 출애굽 당시의 족보로 보면, 아론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고--고조 할아버지 격이 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당시에 족보 순서로 최고로 높은 자 즉 아론과 모세를 지도자로 세우셨던 것이다.

이 사실을 더욱 증명해 주는 자료가 민수기의 열두 지파 인구 분포이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면서 레위족을 제외한 11지파의 인구는 장정 20세 이상의 남자들만 계수하여 603,550명이었다(민1:46). 그렇다면 평균 한 지파에 54,868명이 된다. 특히 유다족은 20세 이상의 남자들이 74,600명이었다. 그런데 레위족의 숫자는 생후 1개월 이상의 모든 남자의 숫자가 22,000명에 불과하다(민3:39). 이것은 레위족들은 대부분 400년 동안에 아주 늦게 자녀를 가졌거나 자녀 손이 아주 귀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아론과 모세의 조상들은 아주 늦게 자녀들을 가졌기에 400년 동안에 4대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스라엘의 노예생활이 400년이 옳은가 430년이 옳은가?

출애굽기는 야곱과 그 후손들이 애굽에 내려갔던 때(날짜까지)와 나온 때(날짜까지)를 분명히 말해 주고 있다. 그들이 애굽에 있었던 기간은 정확한 430년이었으며 하루라도 지나거나 모자라지 않다. 출12:41은 “사백 삼십년이 마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이스라엘)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이라고 말하고 있다. 애굽에 들어간 날과 나온 날이 같다는 말이다. 이토록 성경에는 정확하게 날짜까지 기록 돼있다.

출애굽한 날은 원래 성경유대월력으로 7월 15일이었으며 장막절의 시작이다. 이스라엘은 이 날에 출애굽하여 장막을 치며 광야 생활을 시작했으며 그날을 기념하며 장막절로 지키게 됐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달 즉 7월(디스리월/메담밈월)을 1월(니산월/아빔월)로 바꾸게 하셨다. “이 달(7월)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1월)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출12:2)”라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하여 변경하신 것이다. 왜 바꾸셨을까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로 다루기로 한다.

그러므로 야곱과 그 후손들이 애굽에 내려간 날짜는 창세후 즉 ac2338년 1월 15일이며, 출애굽한 날짜도 정확히 430년 채우는 날인 창세후 즉 ac2768년 1월 15일이 된다. 그리고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날은 주후 30년 즉 ac4034(?)년 1월 15일(수난일)이 된다.

위에 내용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의 애굽생활은 정확한 430년이며 날짜까지 정확한데, 하나님께서 400년 동안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은 왜 일까? 대충 말씀하신 것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횃불 언약에서 하나님은 “-- 그들은 400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창15:13)”라고 말씀하셨다. 즉 400년은 애굽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부려 먹는 기간이지, 이스라엘이 애굽에 산 기간이 아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독으로 재임하고 있을 때에는 이스라엘은 노예가 아니었다. 오히려 잘 살았고 넉넉하게 살았다. 애굽에서도 좋은 땅 라암세스에 거하며, 잘 살았었다(창47:11).

다시 말해, 이스라엘이 처음 30년은 애굽 총리인 요셉 때문에 잘 살았고, 그 후 요셉이 총리대신에서 물러나고 다른 왕이 들어서면서 상황이 변한 것이다. 애굽 사람들 눈에는 이스라엘이 남의 땅에 와서 자기들보다 더 잘 살고 있는 격이었고, 이를 미워하며 그들을 노예 삼아 괴롭혔다. 그 기간이 400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400년이란 노예생활 기간이고, 430년은 정확히 애굽에 거했던 기간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요셉은 17세에 애굽으로 노예로 팔려갔으며(창37:2, ac2216년), 30세(ac2229년)에 총리대신이 되었고(창41:46), 39세에 자기의 형제들과 아버지가 애굽에 내려오게 되었으며(ac2338년 1월 15일) , 그 후 대략 69세(ac2368년)까지 총리대신 이었을 것이며, 110세(ac2309년)에 죽었다, 그런데 요셉은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 그의 둘째 아들인 에브라임이 자손 삼대를 보았으니(창50:23), 즉 요셉은 약 80년 동안에 벌써 4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비하여 레위는 45세에 애굽에 가서 살게 되었으며, 애굽에서 92년 동안 살았으며, 6살 아래 동생인 요셉이 죽고 난 후에도 21년을 더 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레위의 후손으로 아론과 모세는 400년에 4대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조금 이해하기가 힘들다고 성경에 나타나는 숫자들을 그냥 상징이거나 대충 말한 숫자라고 단정 지어버린다면, 큰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한 가지 더. 야곱과 그 가족이 애굽에 내려갔던 가족의 숫자는 구약 창세기 46장 27절에는 70명이라고 분명히 말해 주고 있는데, 신약 사도행전 7장 14절에서는 75명이라고 말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옳은가? 이것에 대한 대답은 ‘성경은 절대 거짓말 하지 않는다’인데 이 또한 다음 기회에 언급하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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